제 3 장

기이한 상봉

3

 

아오즉- 아오즉-

사원뒤산에선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밤늦도록 울리고있었다.

자정이 훨씬 지났으나 그때까지도 잠 못 들고 이리뒤척 저리뒤척 자반뒤집기를 하던 시나지로태장로는 몰숨을 꺼지도록 내그었다.

마가을철이면 기후 온화한 규슈쪽으로 날아갔다가 이듬해 봄에야 다시 날아오는 소쩍새가 느닷없이 동산도의 도성주변인 이곳 남선사뒤산에 나타나 애절하게 울어대는것이 어쩌면 신통히도 자신의 애달픈 심정을 알고 그러는것 같아 마음이 더구나 산란해진것이다.

가슴이 답답해와 우무적 일어나앉은 시나지로는 왜서인지 이밤따라 싸늘하게만 여겨지는 희푸른 달빛을 하염없이 내다보다가 조선의 허란설헌이라는 녀류명사가 남겼다는 옛시 한수를 중얼중얼 외웠다.

 

        우리 놀던 옛길에 려막을 지어놓고

        미역감던 강물을 날마다 바라보네

        거울속의 란새는 어느덧 늙어가고

        꽃밭에 놀던 나비도 가을을 맞았구나

       

        차거운 모래불에 기러기 내려앉고

        비속에 외로운 배 돌아가누나

        깊은 밤 홀로 앉아 사창을 닫으니

        그대와 놀던 옛일 눈앞에 삼삼해라

 

그 느긋한 음률을 타고 상념은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올랐다.

가슴 아릿한 옛 추억의 화폭속에 한 젊은 중이 나타나 싱글거리며 다가든다.

《설봉법사, 기다렸소. 마른 솜이 물빨듯이 대주면 대주는대로 쑥쑥 받아무는 설봉이 없이야 어디 강론할 재미가 있어야지요.》

시나지로의 머리속에 조선의 지장보살로 인식되였던 유정이였다.

유정을 생각할 때면 늘 먼저 떠오르는것이 다 죽게 됐던 자기를 그가 제 목숨을 내대고 나서서 살려주던 가슴섬찍한 회억이였다.

늦게 단 쇠가 더 뜨겁다고 중년기 말엽에야 승과급제를 하고 경향각처의 사찰들에 양양 명성을 날리던 설봉이 뜻밖의 일로 하여 난을 겪게 됐다.

어느해 초봄날 직지사에서는 전례없던 살인미수라는 끔찍스러운 사건이 터졌는데 그 내막인즉은 설봉이 불공하러 왔던 어떤 량반을 구타하여 목대 꺾어진 병신으로 만든것이다.

관가에서 나온 포졸들이 사원대문밖에서 어슬렁거릴 때 마당안에서는 백수십명의 늙고 젊고 어린 중들이 살인미수자에 대한 규탄집회를 벌리였다.

신목주지가 설봉을 결박하여 대중앞에 끌어내다가 세우게 하고 엄히 문책을 했다.

《파계승은 제 죄를 아는고?》

《…》

설봉은 주지의 처사가 못마땅스러워 머리를 외로 튼채 꿋꿋해서 침묵만 지켰다.

그 불손한 태도는 주지를 심히 자극시켰다.

《고현토다. 살생금지는 불도의 첫 계률일진대 네 오래전에 불계를 받은 승으로서 더군다나 승과급제자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요망스럽게도 부처님의 존상을 모신 신성한 이 사당에서 살생을 시도했은즉 어이 극심한 그 죄를 용서할손고. 파계승은 스스로 야차왕에게로 가 벌을 받을지어다.》

한바탕 기염을 토하고난 주지가 우럭지게 생긴 불목하니 몇을 손짓으로 불러냈다.

이제 주지의 호령 한마디면 계률을 저버린 불량자로 락인된 설봉은 사원밖으로 내던져지고 그러면 포교들한테 붙잡혀가 옥살이를 하든지 목을 잘리울판이였다.

평시에는 설봉의 근면한 성품과 학구열을 극구 칭찬하면서 그에게서 여사모사로 시중을 많이 받던 관록있는 숱한 로승들도 정작 죽는가 사는가 하는 판가리의 대목에 접하자 입들이 얼어붙어가지고 설봉을 두둔하는 일언반구의 발언도 못했다.

그 운명적인 순간에 유정이가 대중앞에 나서서 설봉을 변호했다.

《설봉은 비록 과년하고 승과급제자이긴 하나 과거응시를 걸친지 몇개월 못 넘긴 한갖 사미에 불과하옵니다. 그러므로 아직 볼가의 계률에 미숙한탓에 즉흥적인 충동을 이겨내지 못했을것이옵니다. 소승이 이번 사달의 내막을 자상히 료해해본즉 살생을 진짜로 시도한건 설봉이 아니라 그한테 얻어맞은 량반자옵니다. 그자는 길마잡이로 따라온 제집 가노가 말을 잘못 몰았다 해 인정사정없이 가노를 죽도록 매질하여 중태에 빠뜨렸소이다. 마침 주변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설봉은 그가노가 불쌍히 여겨져 매판에 끼여들어 떼말렸었는데 건방진 량반자가 되려 제켠에서 야료를 부리면서 먼저 주먹질을 해댔소이다. 그통에 격분한 설봉이 그자를 도랑에 멨다꽂아 목대를 부러뜨렸구요. 아마 그때 설봉이 없었더라면 가노는 제 주인의 매에 치여 절명했을것이옵니다. 그런즉 설봉은 살생시도가 아니라 살생금지를 한셈이지요. 주지님, 불쌍한 생령을 구제함은 우리 불도의 본업일진대 어이 저 의로운 사미를 처벌할수가 있소이까.》

법무조실대리의 사리정연한 말을 듣고서야 자기의 선입견을 뉘우친 신목주지는 설봉에 대한 엄벌을 취소시킨 후 제가 직접 관가에 내려가 사유를 까밝혔다.

그런 사달을 겪은 후 설봉은 유정이가 비록 자기보다 20년차이로 손아래사람이였으나 은인으로, 선사님으로 깍듯이 존대했고 그의 강론이라면 부처님의 계시처럼 곧이 섭취했었다.

그러하면서도 자기의 본색만은 드러내지 않았었다.

사실 설봉은 시나지로라는 본명을 가진 일본인이였다.

동산도의 산성주태생인 시나지로는 교또 본능사에서 첫 수도를 한 중으로서 서해도의 고명도사 모사엔과 쌍기둥을 이루며 일본불교계의 중진으로 자랐었다.

그들 둘은 이 땅엔 하나의 불종만이 존재해야 된다고 주장한 묘법련화경의 창시자인 니찌렝의 숭배자이면서도 실천상에서는 견해가 서로 달랐다.

모사엔의 《하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민족을 위주로 한 전세계적인 하나였다면 시나지로의 《하나》는 한 나라와 한 민족의 테두리를 초월한 세상의 여러 나라, 여러 민족들이 평등하게 어울리는 하나였다.

혈기와 의욕이 한창 용솟음치던 중년기때에 시나지로는 일본을 떠나 여러 불교국들에 대한 편답을 단행하였다.

불교의 발생지인 인디아며 명나라며 내륙지대들의 사원들을 속속들이 들려 그야말로 현실속에서 여러 종과 파를 하나로 화합할 방안을 모색하던 시나지로는 조선에 이르러 걸음발이 멎어버렸었다.

조선의 유명한 중들, 그중에서도 천하 수재로 소문난 유정이라는 애젊은 중을 한번 만나보며 자신의 불도의 빈약함을 절감하고난 그는 더없이 뛰여난 유정의 문하에 들어 불도숙련을 더하기로 작정하고 조선사람으로 변신하고 직지사에 눌러앉았던것이다.

조선의 사원에서 조선의 중이 되여 조선의 도승에게서 배워 미약했던 학문의 경지를 보다 세숙시키던 나날에 시나지로는 저희네 일본민족앞에 어떤 가책을 느끼거나 조선중들이 모르게 야심을 품은적이 없었다.

이 세상의 온갖 불종들을 하나로 만들려면 승려들부터가 속세의 잡념에서 해탈해야 된다고 생각해왔기때문이다. 사람들이 저마끔 제 가족이요, 제 종족이요, 제 민족이요, 제 나라요 하는 잡념에 휘말린탓에 서로 시기질투하고 죽일내기까지 하는게 아닌가.

시나지로는 유정을 자기를 그러한 사회적불화의 근원인 《친리각》, 《족성각》, 《국토각》 등의 번뇌에서 해탈시켜준 진짜배기법사로 여겼었다.

열다섯해만에 일본으로 되돌아온 시나지로는 모사엔과 상면한 자리에서 불교계의 대성인이 될 조선의 유정이라는 젊은 중에 대한 자랑을 늘어댔다.

그러자 모사엔은 자기도 일본의 장래를 떠맡은 장상재목감을 하나 발굴하고 키운다며 가또 기요마사라는 사무라이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시나지로는 모사엔과 같이 니찌렝을 숭배하는 한 류파였으나 민족적인 불교냐 세계적인 불교냐 하는 정견의 차이로 해 씁쓰름한 관계로 지내다나니 그의 애제자라는 가또 기요마사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헌데 세월의 흐름은 그들의 운명을 오묘하게도 한쪽배에 실어 한곬으로 몰아갔다.

모사엔이 반란군한테 피살된 후 가또의 상전인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8도 66주를 평정함과 동시에 전국시대가 끝장나고 일본의 통일이 이루어져 몇해 안되였을 때 시나지로는 일본군사들이 임진조국전쟁을 강행한 사실을 알았다.

시나지로는 우야 품을 놓아 전선군독부가 자리를 튼 나고야항까지 가서 원정군의 우군선봉장인 가또 기요마사를 만났다.

시나지로가 모사엔과의 연고부터 말하자 가또는 눈굽이 축축해져 감회에 잠기는것이였다.

가또와 마주앉아 모사엔에 대한 회고담을 어지간히 나는 후 시나지로는 근엄하게 따져물었다.

《본토의 내란만 해도 숱한 사상자를 냈는데 이제 또 나라와 나라간의 싸움을 벌려놓고 끔찍스런 떼죽음을 내자는거요?》

그러자 가또군장은 오히려 제켠에서 상대방을 기갈하는 투로 나왔다.

《소장이 일생 스승으로 삼은 모사엔스님께선 생전에 늘 말씀하기를 시나지로스님은 인류의 화합이란 민족자체에 그칠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판도에로 확대시켜야 된다고 주창한 웅지로운분이라던데 그 뜻대로 태장로님께서 널리 량해를 하옵소서. 우리가 단행한 조선원정은 온 세계를 큰 하나로 만들기 위한 거사옵니다. 물론 그 과정에 자그마한 희생은 있을테지만 정의로운 대업을 실현하느라면 어차피 죽고 사는 쟁투는 있기마련이지요. 조선과 명나라가 우리 일본의 의지에 순순히 응한다면 사상자를 안 낼수도 있소이다.》

종족자체를 초월한 큰 하나를 실현하기 위한 대업이라는 말이 곧이들려 시나지로는 더이상 가타부타하지 않고 물러났으며 일본군의 조선원정에 편승하여 수하장로들과 제자승들이 군장들의 모사와 통사 지어는 군졸로 종군하는것을 보고도 말리지 않았었다.

륙칠년간이나 지속된 임진조국전쟁에서 십수만의 군사들과 숱한 승려들이 돌아오지 못했을 때 시나지로는 그들을 강제로 죽음의 싸움터로 내몬 태합을 비롯한 싸움미치광들인 다이묘들을 욕했고 일본의 화합의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해 결사항쟁으로 응전한 조선사람들을 원망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런 대참사를 미연에 막지 못한 자신을 탓했었다.

시나지로는 가또군장이 수만에 달하는 수하장졸들을 타국의 산야에 백골로 줴뿌리고 저 혼자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도망쳐왔다는것을 알고는 그를 사람잡이밖에 모르는 괴한으로 여기며 그런자를 장상재목감이라고 애중히 키워온 모사엔을 입이 닳아지도록 타매했었다.

바로 그러한 시나지로한데 남해도에서 대수노릇을 힌다는 가또의 부하인 요시하찌가 수일전에 찾아왔었다.

밉다면 깨꼬한다더니 요시하찌는 찌뿌등해서 저를 외면하는 시나지로에게 제켠에서 먼저 곰살궂게 인사를 건늬며 접어들었다. 그가 하는 수작질이 조선에서 유명한 도승이 사신으로 왔으니 일본의 관록있는 태장로인 시나지로가 그를 만나 화친교섭을 잘해달라는것이였다.

《허니 임자넨 조선중을 이곳에 끌어다놓고 전쟁에서 패한 앙갚음을 해댈 작정이군그래. 난 착하고 약한것을 불쌍히 여기는 불교인이니 누가 누구를 해칠내기를 하는 그런 일에 적합치 못하이.》

이러며 시나지로가 성을 냈으나 요시하찌는 개의치 않았다.

《종족과 종족, 나라와 나라들이 화합을 해 큰 하나를 이루자는 웅지를 지닌 대장로님답지 않소이다. 이번 일은 단순히 가또태수나 소장의 의사가 아니라 조선과의 화친교류를 주창하는 새 막부의 시책이오니 부디 심사숙고하여 처신함이 좋을것이외다.》

그런 말을 내뱉고 훌쩍 사라지는 요시하찌를 보면서 별 싱거운 놈 다있다며 코방귀를 뀌고말았는데 그가 오늘 진짜로 제 상전인 가또태수와 조선사신을 달고 나타난것이다.

조선사신이라는 그 수염쟁이도승을 처음 대할 때 시나지로는 그한테 어째서 조선의 중들은 불교인답지 않게 병쟁기를 가지고 전장에 나서서 숱한 인생을 해쳤는가고 된욕을 퍼부을 잡도리였다. 그러다가 그 도승이 옛날 자기의 선생이였던 유정임을 알고는 오감을 싹 버리고 절친스런 심정이 돼버렸다.

헌데 유정이켠에서 되려 꿋꿋해서 민족차별이라는 계선을 긋는통에 상봉의 기쁨은 깨져버리고 찬서리가 가슴안에 불어들었다.

유정의 오연하고도 단호한 처신은 시나지로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제 한생의 우상이고 본보기라고 여겼던 선사에게서 자기의 장구한 한생을 무시당했기때문이다.

시나지로는 분하고 노여웠다. 그 분기와 노여움이 쇠갈퀴마냥 가슴을 허벼대여 이밤 늦도록 잠에 못 들고 심뇌에 허덕이는것이였다.

날이 샐녘에야 어렴풋이 잠기에 휩싸이던 시나지로는 의문을 금치 못해 쑹얼거렸다.

《가또네가 어떻게 나와 유정의 연고를 알가? 하긴 예전때에 모사엔이 말해줬을수 있지. 헌데 그자들이 하필이면 나와 유정선사를 상면시켜가지고 싸우게 만드는고? 괘씸한 놈들같으니.》

시나지로는 신경이 다시금 바짝 살아나 이불을 차버리고 일어나앉았다.

그는 때없이 상좌애를 불러들여 랭수를 한사발 떠오게 하여 그것을 꿀럭꿀럭 마시고야 어지간히 속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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