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기이한 상봉

1

 

《세상일이 어쩌면 이다지도 오묘하단 말인가? 금강산 중과 내가 본국에서 다시 만나다니.》

가또 기요마사는 오늘 하루에만도 벌써 수십번이나 이 말을 외웠다.

그는 지금 관사와 동떨어진 호화로운 별당안에서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제백술(옛날 일본의 이름난 술)로 흥분된 심정을 달래이고있었다.

하늬바람에 날려온 이른 겨울철의 눈꼬치가 창호지를 휘때리는 초저녁때였다.

문짬과 널마루새로 스며드는 싼득싼득한 랭기를 몰아내며 히바찌(사기단지안에 불찌와 재를 넣은 화로)는 열기를 확확 풍기고 그우의 얼구쇠에 올려놓은 도자기방구리에선 향긋한 홍차가 기분좋게 보글보글 끓었건만 가또의 가슴속에 옥맺힌 독한 감정은 좀처럼 녹아내릴줄을 몰랐다.

가또는 좀전에 도꾸가와쇼궁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들어가 그를 만났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가또를 패전지장처럼 눈아래로 굽어보던 도꾸가와였으나 어떻게 된건지 이번만은 상대켠에서 더 옹색할 정도로 태도가 싹싹해져 가또를 절친하게 대해주는것이였다.

《태수와 그 조선중은 남다른 연고로 얽혀진 사이가 아니요? 그러니 한번 수고를 해주오. 조선사신의 접반사노릇을 하며 그의 마음을 휘여잡아야겠소. 현재의 정황에선 어떻게 하나 조선사신들을 얼리여 통상체결을 맺는게 급선무요. 태수가 나서면 형세를 역전시켜 나라의 리권을 지켜낼수가 있으니 부디 분골투신해주기를 바라오.》

가또는 늘쌍 《후다이》들만 끼고돌면서 《도자마》인 자기네를 무우꽁지 따버리듯 하던 쇼궁이 이번엔 제켠에서 낮추 들어붙는것이 어이없어 속으로 앙천대소를 하다가 제가 개인감정에 치우쳐 나라의 대업을 차요시한다는 자각이 들어 잡념을 털어버리고 신중해졌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 조선중은 어느 누가 얼리거나 위협한다고 호락호락 굽어들 졸부가 아니옵니다. 그러니 괜한짓으로 시간소비나 하지 말고 미리 단호한 대책을 강구함이 좋을것이옵니다.》

가또가 우뚤해서 강경하게 나오자 도꾸가와는 기색이 애절해지며 사정하는 말투로 그를 설복했다.

《태수의 궁냥을 내 모르는바가 아니요. 하지만 그 결단을 찬성할수가 없구려. 태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거던. 만약에 국서까지 정식으로 일본에 봉정한 그들을 이제 본토에서 억류하거나 없애버리기라도 한다면 저 바다건너의 조선이 가만있을것 같소? 그땐 조선과 통상교류는 고사하고 전쟁을 해야 한단 말이요, 전쟁을.》

《설사 전쟁을 하는 한이 있어도 초강경조치를 취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비참한 결말이 초래됩니다. 사신을 처리한것때문에 만약 전쟁이 일면 소장이 원정군을 휘거느리고 출전하여 접때 조선원정에서 패한 보복을 하겠소이다.》

《허허, 명망높은 장군이 애들처럼 선입감에 사로잡혀가지고 그게 뭐요? 현재 본국의 실태로썬 조선과 싸울 형편이 못되지 않소. 난 일본의 운명을 한어깨에 떠멘 태정대신이고 정이대장군이기에 보다 더 심사숙고를 하는거요. 가또태수도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공신이고 장군이니 지체에 맞게 보다 높은 안목으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며 자중하기를 바라오.》

가또는 일본의 운명을 떠멘 장상들답게 처신하자는 그 소리에 그만 속이 여리여져 더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헌데 림시 거처하는 숙소로 돌아와 쇼궁의 당부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하며 골머리를 짜내느라니 부지불식간에 자기가 공연한짓에 휘말려든다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느닷없이 울화가 치밀어올라 주먹으로 바람벽을 쾅 들이쳤다.

그 순간 바람벽의 알룩알룩한 잡동사니그림이 갑자기 황금색투구를 쓰고 시뻘건 전포를 걸친 조선승병대 총대장의 모습으로 환각되여 안겨들었다.

외뿔머리를 한바탕 휘저어 소름끼치는 그 불쾌한 환영을 털어치우고난 가또는 입술을 피나도록 짓깨물면서 개탄했다. 세상에 이처럼 얄궂은 운명의 희롱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러다가 불현듯 조선원정에서 패하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며 배를 타고 간신히 도망쳐오던 일이 떠오르는통에 가슴이 왈칵 뒤번져지여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

이러하든저러하든간에 아무튼 좋다. 금강산 중, 우리 다시 맞붙어보자. 통상체결이 되든 안되든 너는 절대로 금강산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할것이다. 일단 우리 본국에 온 이상 나와의 결산을 말짱히 치르어야 한다.

가또는 격정이 끓어번져 독한 술만 연방 들이켰다.

그러는데 똑똑똑- 하고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가또는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돌리며 소리쳤다.

《누구냐? 들어오라-》

그 귀찮은 대응이 울리자 출입문이 조심스럽게 열리였다.

가또의 시종부하가 들어섰다.

《이마지리고을의 사마께서 도착했소이다.》

《어서 들라고 해.》

《알겠소이다.》

이마를 조아리고 돌아나가는 시종부하를 가또가 갑자기 멈춰세웠다.

시종부하의 구붓해진 등허리와 허옇게 센 머리카락을 한참 여겨보던 가또는 측은한 기색을 지었다.

《임자 생일이 이달 그믐께더라?》

《그렇소이다. 닷새 있으면 소인이 귀빠진 날이옵니다.》

《그러니 임자 나이가 쉰아홉고개를 넘어섰구만. 륙십환갑이라 허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한걸. 임자가 조선원정때 나를 따라다니며 신변호위와 집시중을 맡아하느라 고생하던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십여년이 돼오는군그래. 내 구마모또중심에 가옥이랑 소작지랑 마련해줄테니 이번 생신날이나 쇠고선 그곳에 내려가 여생을 즐기라구.》

《고맙소이다, 태수님! 하오만 소인은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이 비천한 중생을 여한없이 보살펴준 태수님을 끝까지 시종하며 분골쇄신하겠소이다.》

그러한 눈물겨운 맹약을 남기고 시종부하가 나간 후 인차 요시하찌가 칼집을 절렁거리며 나타났다.

《군장님,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아, 참모! 어서 오게.》

가또는 희색을 지으며 요시하찌를 반겨맞았다. 가또는 친절과 신임을 표하느라 지금도 그를 임진조국전쟁때처럼 참모라고 불러온다.

요시하찌도 옛 우의를 중히 여기고 충성을 맹약하는 의미에서 가또를 태수님이 아니라 예이제 변함이 없이 군장님으로 불러왔다.

몇마디 문안인사를 건늬고나서 요시하찌를 눈여겨 살피던 가또가 갑자기 씨물거리며 웃었다.

《혈색이 좋아졌는걸. 어여쁜 후처의 약주가 효험을 본게지?》

《…》

얼굴이 뻘깃해지며 벙어리가 되여버리는 요시하찌를 본 가또는 그의 허점이 들여다보여 눈살이 찌긋해졌다.

《왜? 아직 그 조선년을 휘여내지 못했나?》

《…》

《그년이 금봉침을 안 꽂겠대?》

《죄송하옵니다, 군장님. 사무라이의 얼굴에 흙칠을 해서 실로 면목이 없소이다. 사실 그년이 얼마나 독종인지 도무지 성사를 할수가 없었소이다.》

《그 조선계집이 절세가인이여서 사방에서 다른 녀석들이 달라며 금덩이를 내놓는것도 뿌리치고 자네의 후실감으로 준건데 노는 꼴이란 참. 허니 임자 여직 그 계집년의 진맛도 못 봤겠구만?》

《…》

요시하찌는 목덜미가 뻘개가지고 어물거리기만 했다. 사람이 중한 대목에서 말하면 팔백냥을 얻는것이요 입다물면 천냥을 얻는다는 옛 성인들의 고견을 따라서라기보다 늘쌍 용맹과 지략만을 사무라이의 장끼로 여겨오는 상전에게 실망을 줄가봐 서슴어져서였다.

요시하찌의 내심을 한찰나에 꿰뚫어본 가또는 기가 차서 혀를 쩍쩍 털다가 값이 나가는 물건일수록 그것을 자기것으로 만들려면 그만큼 공력을 들여야 한다고 훈계를 한마디 뇌이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이번에 쇼궁사마께선 나한테 조선사신을 접대하며 그들을 휘여잡아 막부의 요구에 순응시킬데 대한 중임을 맡겼네. 그래서 함께 일을 하려고 자네를 불렀네. 참, 임자 조선사신으로 온 사람이 누군지 알지?》

《전에 말씀하시던 그 금강산 중이…》

《옳으이. 조선전장에서 우리와 기이한 인연을 맺은 조선승병대 총대장이네.》

《그러니 그 수염쟁이중이 끝내 제발로 우릴 찾아왔군요. 원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옛말 그른데가 없소이다.》

《허허, 그야말로 기연기봉이지.》

탄식조로 중얼거리는 가또를 본 요시하찌는 불시에 흥분하며 울부짖었다.

《이번 기회에 그자를 실컷 보복해치웁시다.》

《국사를 떠멘 동량지재들이 개인감정에 빠져서 경솔하게 처신해서야 안되지. 그가 어제날에는 적군의 수장이였지만 오늘날엔 화친교류를 위해 국서를 가지고 온 이웃나라의 사신이라는걸 알아야 하네. 자, 우선 목추김이나 하라구.》

가또는 사기잔에 술을 가득 부어 요시하찌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재차 기름진 닭다리를 뚝 뜯어 그에게 쥐여주었다.

요시하찌가 거퍼 몇잔을 마시고 볼살이 불깃불깃해지자 가또는 먼저 자리를 거두고 일어났다.

《이젠 가서 그 잊지 못할 도승과 회포나 나누자구.》

가또와 요시하찌는 곧 풍을 친 유개마차를 타고 가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선사신일행이 들어있는 객관으로 갔다.

방금 저녁끼식을 때고 누비돗자리바닥에 둘러앉아 한담을 나누던 유정이네는 급작스레 들이닥치는 가또네 일행을 어벙벙해서 맞이했다.

유정이 인차 자세를 수습하고 가또와 마주섰다.

《허- 가또군장이 아니시오.》

《그간 무고하셨소, 승장? 이게 얼마만이요.》

가또도 눈꼬리를 떨며 대척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꼭 다시 만날 날이 있다더니 그게 우리 경우를 두고 하는 소리같소그려.》

《옳소. 내 그래서 승장을 다시 만나려고 이날껏 죽지 않고 살아있었소.》

야유조로 뇌이는 그 말을 들은 유정은 임진조국전쟁을 결속하는 울산도산성전투때 조선침략원흉의 한놈인 가또를 처단하지 못하고 놓쳐버린것이 절심해져 눈을 지그시 감으며 두손을 올려 목에 건 념주알을 세여넘겼다.

제 스님의 등뒤에 긴장하게 서서 신변호위를 하던 계명은 스님이 지금 심정이 몹시 격해지고 괴로와졌음을 알았다.

유정스님이 속이 격해질 때면 끓어번지는 심정을 눅잦히느라 두눈을 지그시 감고 목에 건 념주알을 세여넘기며 인간수양법대로 쉰까지 셈세기를 한다는것을 잘 아는 계명이였다.

드디여 셈세기를 끝냄과 동시에 격정을 눅잦히고난 유정이가 느직한 말투로 가또에게 대척했다.

《그렇게 애심하게 기다렸다면서 어째서 내가 본국에 건너오지 못하도록 자객까지 급파했댔소?》

유정은 가또를 호위하는 젊고 다부진 가병대장이 그때 한밤중에 자기를 죽이려고 쯔시마객관에 달려들었던 괴한과 형체가 비슷한데다가 그때 그 괴한이 자기네는 가또군장의 부하라고 줴치던 말이 피끗 상기되여 어디 네놈의 속부터 좀 헤쳐보자는 식으로 직통 내찔렀다.

임진조국전쟁때 조선승병대의 총대장을 한 금강산 중이 사신직임을 맡고 본토로 온다는 쯔시마도주의 통보가 막부로 날아든것을 알고 인차 일본의 화근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자객을 건너보냈던 가또는 그 거사가 실패한 후로는 자객의 중임을 맡았던 다나까를 부실한 놈이라고 욕설을 하며 이제는 일이 다 글러졌다고 한탄을 했었는데 정작 조선사신과 자리를 같이하고나니 차라리 일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생숙적인 금강산 중을 직접 제 터에서 만나 임진조국전쟁때 채 못다했던 실력쟁투를 마저 벌리고 아울러 최후결산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소위 일개국의 사신이랍시고 거만방자한 자세를 취하는 금강산 중의 풍성한 턱수염의 길다란 오리오리마다에 원한과 증오를 쏘아박으며 주먹을 떨던 가또는 자기가 걸머멘 중임이 자각되여 애써 자중하였다.

그들은 차주전자와 잔이 놓여진 둥그런 원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았다. 그뒤로 호행원들이 섰다.

유정은 옛날처럼 군장의 기백과 호걸스러운 성품은 여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고뇌에 절어 초췌한 느낌을 풍기는 가또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다가 가볍게 야유했다.

《놀랍구려, 도요또미태합을 받들어 충성다해온 군장이 천하를 다투는 세끼가하라격전때는 도꾸가와네 편에 가붙어 도요또미일가를 꺼꾸러뜨리고 도꾸가와의 신하로 된것이. 자고로 인간력사에는 충신은 불사이군하고 렬녀는 불사이부해야 한다는 훈계가 있거늘 군장의 처사가 썩 잘된 일같진 않구려. 결국 군장은 어제날의 자기를 스스로가 부정한셈이요.》

그 말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수염만 뚝뚝 잡아뜯는 가또의 우둥퉁한 얼굴이 고통스럽게 이지러졌다.

속이 괴로운듯 두터운 입술을 움씰거리던 그는 한숨만 쓸쓸히 내뿜었다.

《나의 인생전환에는 우리 일본의 불우한 력사가 비껴있는거요.》

이렇게 변명조로 대꾸하던 가또는 자연히 심사가 울적해졌다. 그의 눈앞에선 수년전 어느 가을날 세끼가하라벌판에서 벌어졌던 대격전이 스산한 환영으로 되살아 펼쳐지며 얼른거렸다.

가또는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말년을 보고 환멸을 느꼈었다.

임진조국전쟁말엽에 이르며 과대망상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히데요시는 제 처첩들의 자식들을 한곳에 끌어내다가 무참히 죽여버려 부하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민심을 소란케 했다. 그후 더욱 포악해져서 제가 관백자리를 넘겨주었던 누이의 아들을 강박하여 자살하게 만들었으며 측근관료들이며 수하의 장군들과 태수들이 제 비위를 조금만 거슬려도 리유불문하고 가차없이 사형해버려 조정과 군대의 통치체계를 마비시켰다. 히데요시는 끝없는 치부욕과 개인향락에 물젖어 국고건 사고건 가림없이 사취하여 탕진함으로써 나라를 빈곤에로 몰아갔다. 그렇듯 미친짓을 잇달아 벌려대는 히데요시를 보며 가또는 자기가 지금껏 섬겨온 히데요시라는 인간은 일본의 통일(66주를 병합한것)을 이룩한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단합과 번성을 파괴하는 광신자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러다나니 히데요시의 주변에서 맴도는 이시다 미쯔나리며 고니시 유끼나가같은 간신들도 역겨워졌다.

하여 그들 무리와 등을 지고 나앉아 미친개같은것들을 모조리 쳐죽이고 국가기강을 바로세울 기회만 노렸다.

그러던중 히데요시가 갑작스레 병사하고 옥좌를 쟁취하기 위한 여러 다이묘들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때 가또는 현상황에서 민족분렬의 위기를 막고 전국을 무난히 통솔하여 일본을 다시 일떠세울 인물은 관록과 수완이 출중한 도꾸가와뿐이라고 여기고 그와 손을 맞잡았다. 그런 후 도꾸가와가 도요또미네를 타승하고 새 막부를 세우도록 적극 도와나섰던것이다.

바로 그렇게 다난하고 복잡했던 사연을 어떻게 말 몇마디로 일본의 력사에 생소한 조선사신들에게 설명해줄수 있단 말인가.

가또는 더군다나 일본의 가장 무서운 적수인 금강산 중에게 일본민족의 허물이고 일본의 망신이 될 그 일을 말해주기도 싫었다.

옛적에 어느 나라 명장이 남겼다는 시 한수를 쓸쓸해서 외우며 서글프게 웃던 가또는 더 앉아있을 흥심이 없어 일어나고말았다.

《일단 초벌인사는 나눈셈이니 우린 그만 실례하겠소. 날바다를 건너 예까지 찾아오느라 육체도 과로했고 나라 위한 중책감으로 해 심중도 무거울테니 푹 쉼을 하시오.》

가또는 자기가 조선사신접반사의 직임을 맡았다는것을 금강산 중에게 알려준 후 래일은 자기네와 같이 씨원히 바람을 쏘이면서 명산대찰구경이나 하자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파했다.

가또와 요시하찌는 술 한방구리 퍼마실 시간도 못 걸리여 별당으로 되돌아왔다.

후시미성안의 관사뒤뜨락에 마차를 세우고 내릴 때였다.

먼저 뉭큼 일어나 풍막문을 제끼던 가또는 그때까지 시무룩해서 앉아있는 요시하찌를 보고 멈춰섰다.

《왜? 회포가 맨숭맨숭하게 끝나서 그러나?》

가또의 지꿎은 눈총을 맞은 요시하찌는 분기가 살아나는지 옆구리에 찬 칼집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부르짖었다.

《군장님, 그 수염쟁이중을 당장 죽여치웁시다. 전쟁때 그자가 강화담판이요 뭐요 하면서 우리의 간을 말짱 빼먹고 또 조선승병대를 내몰아 우리 부대를 몰살시키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려 못 참겠소이다.》

《궁냥이 협소하기란. 현재는 금강산 중과 우리가 서로 적군의 장수로서가 아니라 량국의 사신과 접반사로 만났다는걸 중히 자각하라구.》

요시하찌를 꽁무니에 달고 겅정겅정 별당으로 향하던 가또는 정원의 떨기나무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키를 넘게 무수히 줄기를 뻗친 그 떨기나무는 쌀쌀한 밤바람에 앙상한 가지를 떨고있었다.

와비수께나무였다.

꽃이 매혹적이면서도 열매 또한 약재와 식용으로도 쓰고 기름을 뽑아 치장용으로 귀히 쓰는 그 꽃나무는 원래 조선에서만 자라던것이였다.

그러던것을 지난 임진년 조선원정때 저희 상전을 따라 조선에 건너갔던 와비수께라는 한 시종군졸이 남들은 조선의 재물을 다 훔쳐가는데 자기는 특별히 차례지는게 없어 《옛다, 모르겠다, 난 이거나 가져가자.》 이러면서 동백꽃나무를 하나 떠가지고 와 제 집뜨락에 심었다고한다.

그후 동백열매의 유익성이 소문나며 본국에 널리 퍼지였는데 사람들은 그 나무에 시종군졸의 이름을 달아 《와비수께》라고 불러왔다. 그 와비수께나무를 싸늘한 시선으로 한참 올리보고 내리보고 하던 가또는 코방귀를 퉁 뀌였다.

《이따위 자잘스러운 꽃나무 하나를 떠옮겨놓는건 식은죽먹기 한가질세. 허지만 사유력을 가진 사람, 그것도 지조와 기개가 비할바없이 강한 금강산 중같은 인걸을 엇떠넘긴다는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을 따기지.》

《그러게 차라리 없애치우고마옵시다.》

결이 부쩍 동해 진정을 못하는 요시하찌를 힐끔 돌아보던 가또는 과도한 흥분은 대사를 그르친다고 오금을 박은 후 제 속궁냥을 터놓았다.

《죽이는건 아무때나 할수 있으니 그리 조급해할건 없네. 일단 판이 이렇게 된바엔 밑지는셈치고 수나 한번 써봅세. 래일 그 수염쟁이 도승을 데리고 남선사엘 다녀오자구. 그한테 희한한 상봉을 하나 마련해줘야겠네.》

이런 말끝에 가또가 요시하찌의 귀에 대고 뭐라뭐라 몇마디 쑥덕거리자 요시하찌는 매섭게 치째진 눈을 반짝거리며 웃었다.

《거참 명안이옵니다. 헌데 군장님이 직접 앞에 나서면 귀체에 흠이 가고 명성을 흐릴수 있으니 군장님은 가만 계시오이다. 이제부턴 소장이 직접 앞에 나서서 채를 쥐고 만사를 제바로 벌려나가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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