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타국만리에서
8
며칠후 유정이가 대궐에 교또태수를 만나러 갈 때 손문욱과 마광우는 객관에 남아있었다.
원래 정사인 손문욱이가 매번 사신행차를 주관하며 외교치레때도 앞에 나서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활동해야겠으나 그는 본토에 건너와서부터 물갈이때문에 배앓이가 심해 치료를 받는데다가 유정의 출중한 자질을 잘 알고있는지라 그에게 만사를 떠맡기고 집안에 들어앉아 속탈치료나 해왔다.
제김에 심기가 불안해서 건물안팎을 들락날락하던 마광우는 누비돗자리바닥에 셈평좋게 퍼더버리고앉아 환약을 놋그릇의 물에 끓여 졸금졸금 마시고있는 손문욱에게 볼부은 소리를 해댔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있소이까? 조정의 중신은 골방지킴이나 하고 불가의 비천한 삭발중은 대청에 나앉아 나라정사를 거론하니 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니옵니까.》
마광우의 그러한 불만은 이미 교또에 첫발을 들여놓던 날에 크게 야기된것이였다.
가마가리앞바다에서 도요또미네 패당들의 기습을 당한 후 그곳 관사에서 압연경을 하며 나흘밤 묵은 조선사신일행은 새 봉행이 휘동하는 왜인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와 강길로 해서 이틀만에 교또에 도착했었다.
그들이 배를 강기슭둔덕에 대고 연안에 판자를 깔아 만든 부교에 내리니 교또태수가 거느리고 나온 왜인관원들과 관노들이 곰살궂게 맞아주었다.
태수는 관노들에게 교자 두조를 메워가지고 나왔었는데 대교(다이묘나 막부장관들이 타는 큰 교자)는 부사인 유정이앞에 갖다대고 현교(하급관원들이 타는 교자인데 두사람이 멜빵을 만들어 멘 초라한 가마)는 정사인 손문욱참의앞에다 갖다대는것이였다.
종사관인 저한텐 겅뚱하니 못생긴 역마가 차려져 기분이 잡쳐있던 마광우는 왜인통사에게 사람을 삭갈렸다면서 손문욱참의가 대교를 탈 정사라고 쭝해서 일렀다.
통사가 저희 행수인 태수에게 그 사실을 귀뜀하자 태수는 《난 막부의 령을 따랐을뿐이다. 막부에선 저 수염풍성한 도승이 사신행차의 주관이라 했단 말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는 제 고집대로 영접을 벌리였다.
유정이본인이 미안하여 대교를 손문욱에게 양보했으나 손문욱은 기분이 상한지 잉해서 저한테 차례진 현교에 아무렇게나 올라앉아 입술을 삐죽이 내민채 일언반구의 말도 안했었다.
마광우는 그날 대교에 거연히 올라앉아 시틋해서 실려가는 유정이가 되우 눈꼴사나왔댔는데 이후에도 교또태수가 유정을 상대로 하여 래왕도 가지고 회담도 벌리자 기가 꺽 막혀 죽을지경이 되였다. 날이 갈수록 눈뜬 소경처럼 놀아대는 쪽발이 왜인들은 물론이요, 이때다 하고 상대편의 대접에 흔연스럽게 응수하는 유정에 대한 괘씸한 감정이 우걱우걱 끓어올랐다.
그래서 유정이가 첫날 후시미성안에 있는 대궐로 태수를 만나러 갈 때도 왜놈들의 푼수없는 쏠라닥질에 놀아대려면 당신 혼자나 실컷 그러라는 식으로 왼새끼를 꼬며 앉아버티기를 한것이다.
사실 손문욱이도 왜인들이 정사인 자기보다도 부사인 유정이를 우선으로 일러주는것때문에 속감정은 좋지 않았으나 서뿔리 내색을 안했었다.
임진왜란때 유정이가 세운 공훈이 이루 말할수없이 크고 그의 외교술 또한 남달리 뛰여났음을 인정하는 손문욱이였다. 그는 조정에서 자기를 이번 사신행차에 내세운것은 대의명분을 위한 한갖 겉치레일뿐이고 실지 기대는 출중한 백승로장이고 호걸스러운 도사이며 능란한 외교관인 유정이한테 걸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기에 조정의 대관으로서 일개 목탁중한테 밀리운다는 선입감을 애써 누르며 자존심이 상하는대로 지금까지 행수의 권한을 유정이한테 떠밀어 맡기고 크고작은 문제처리에서 그의 의향을 따랐었다.
내심은 그러한 손문욱이였으나 자기까지 짝자꿍을 해대며는 본성이 원래부터 막돼먹은 마광우가 더욱 승이 세져 어떤 불미스러운짓이라도 쳐댈가봐 일부러 흔연한 기색을 짓고서 되려 마광우를 질책했다.
《아무렇든간에 나라님의 시책을 실행할 자질을 지닌자가 외교활동에도 나서고 사신대접도 받으면 되는건데 뭘 자꾸 귀솔갑게 그러나. 반반한 숫돌은 부엌에 두고 얽은 망돌은 방안에 두는것처럼 사람도 외형이나 관직보다도 실속이 중요한거네.》
망건을 쓴 상투머리를 지싯대며 꺼림없이 내뱉는 손문욱을 못마땅해서 지켜보던 마광우는 이거야 소귀때기에 대고 경을 읽어도 이처럼 답답하지는 않겠다며 쓴입을 쩝쩝 다시고 그만 물러났다.
소박당한 계집처럼 시쁘둥해서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는 시에미역증에 개배때기 차듯 애매한 제 하인들한테 신경질을 부렸다.
《제 주인이 골이 쏘고 속이 비틀어져 괴로와할 땐 곁에서 훈수라도 한마디 들어주면 못쓴다더냐? 그러다가 이제 밥줄이 끊어지지 않나 봐라. 밥줄이 끊어지면 명줄이 끊어진다는걸 어째 모르느냐? 명줄이자 복줄이란걸 명심해.》
그 소래기 한 웨침에 기절할듯이 놀라 설설 기는 하인들한테 마광우는 냉큼 술상을 들이라고 호령했다.
그런데 제기랄, 재수없는 날 삽자루를 찍고보면 마디에 옹이가 겹친다더니 집에서부터 가지고 오며 아껴먹던 찰수수소주가 다 떨어졌다는것이였다.
《이 교또바닥의 술집의 술은 술이 아니라더냐. 냉큼 말을 끌어 내-》
한식경쯤 지나 무관복인 푸른 천릭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마광우는 말우에 거드름스레 올라앉아 하인들의 시종을 받으며 거리로 나갔다.
먹기는 파발이 먹고 뛰기는 역마가 뛴다고 평시에 록미는 주인인 마광우가 타먹고 길치닥질은 늘 그의 하인배들이 하느라 역사질이다. 마광우는 률동적으로 흔들거리는 말잔등우에서 건들거리며 휘휘 주변살핌이나 하는데 앞귀에서 시종하는 하인들은 바싹 긴장해서 길을 튀여나가고 견마를 잡고 제 주인 신변을 지키기에 경황이 없었다.
토기와나 목판으로 지붕을 뾰족하게 해씌운 가옥과 점포들이 비좁게 들어앉은 골목을 지나자 기둥과 도리들에 울긋불긋 단청장식을 한 2층, 3층의 다락건물들이 량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대통로가 앞에 나졌다. 이따금 건물들사이에 지붕만 너렁청하니 씌운 루각이 끼여앉았는데 평상을 놓은 그안에선 개꼬리처럼 머리태를 늘어뜨린 왜인들이 끼리끼리 모여앉아 히히닥거리며 차나 술을 마시고있었다.
바람결에 실려 풍겨오는 술내에 벌써 취기가 동한듯 길잡이하인이 제법 건드러진 소리를 뽑아댔다.
《휘여- 비켜가라 물러가라 쉬여가라, 종사관님 행차시여-》
통로가 미여지게 오가던 각양각색의 행인들이 류다른 벽제소리에 눈이 뚱그래서 마광우네 일행을 지켜보았다.
마광우는 저절로 기분이 흥뜨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이놈의 교또시내가 별루 넓은것두 아니였구나.》
귀국할 때 집의 아들애한테 가져다줄 무슨 알맞춤한 물건을 하나 살 생각이 나 눈을 두릿거리며 가게점을 찾던 마광우는 참지를 바른 살창문들을 활짝 열어제낀 어느 한 목조건물앞에서 말을 멈춰세우고 뛰여내렸다.
밖을 할끔히 내다보던 중년기의 왜인계집이 게다를 달달 끌며 나왔다. 아마 마광우의 화려한 관복차림에서 돈냄새를 맡았는지 분을 뽀얗게 바른 해사스러운 얼굴에 요염기가 찰찰 넘쳐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시우?》
원래 안주목사댁의 도차지였던 제 아비를 닮아서 골머리가 좋고 눈썰미가 빠른 광우인지라 왜국에 건너온 넉달새에 웬간한 일본말과 일본글엔 미립이 트이여 통사가 없이도 왜인들과 교제할수가 있었다.
《조선사신행차의 수교인 종사관이요.》
신패를 내보인 마광우는 제 먼저 쑥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은 일용백화의 점포였다.
나무판자를 매끈하게 밀어 길다랗게 층층 단을 잇댄 그안에는 놀이감으로부터 시작하여 로인들의 털등거리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 생활필수품들이 다 진렬되여있었다.
천도 비단, 공단, 무명, 모시 같은 고급천들만 무데기로 쌓여있었다.
헌데 놀이감은 조선가게점들에 다 있는것들이요, 최근에 명나라에서 새로 들여왔다는 모보단이 마음나긴 하지만 가지고 다니기가 부담스러운지라 단념하고 물러났다.
행여나 하여 방문객의 주머니만 살피는 주인녀자를 지나쳐 밖으로 나온 마광우는 옆의 건물로 향했다.
쌍미닫이문을 크게 내고 그우에 현판을 붙인 길다란 목조건물은 서점이였다.
동서고금의 제자 백가들 특히는 명나라와 조선의 일류명사들이 집필한 서적을 종류별로 비치해놓고 비싼 값으로 팔아주거나 빌려주고있었다.
《시퍼런 대낮에 남나라의 책으로 벌이를 하는구나.》
기분이 잡친 마광우는 힝 돌아나와 그다음의 건물로 향했다.
온통 창문투성이인 그 다락건물은 약방이였다.
알싸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방안의 매장에는 지보단이요, 화중산이요, 통성단이요 하는것들과 일본에서 제조한 이른바 보약들이 더러 보이긴 했으나 잔뜩 저장된 오래 묵은 약봉지들 대개가 우황청심환이나 구심환이나 령신환같은 조선고려환약들이였다.
구경을 끝내고 말세워놓은 곳으로 돌아가던 마광우는 쓰겁게 웃고 말았다.
《조선의 물산이 수다히도 건너왔군. 역시 우리것이 괜찮아. 왜인들이 이래서 우리 나라와 교류를 성사하려고 애를 빡빡 써대는구나.》
은연중 자부심이 살아나 휘휘 팔을 내저으며 왜국의 도성 한복판을 활개쳐걷던 마광우는 눈이 휘둥그래서 멈춰섰다.
2층다락집들사이에 불편하게 끼여들어앉은 단층 목조집기둥에 용수(술거르는 기구인데 술집에서는 이것을 밖에 걸어놓는다.)가 걸리고 그우의 처마끝에 현판이 나붙은것을 띄여봤던것이다.
《청주! 맑고 감미로운 술이니 어서 옵소사. 하, 요것들이 우리 나라에서 청주만드는 재간까지 훔쳐왔구나. 조선청주야말로 그지없이 맑고 감미로운 술이지. 애들아, 우리 오늘은 청주맛이나 좀 보자.》
마광우는 저바르쯤의 말세워놓은 곳에서 어정거리는 하인들을 소리쳐 찾아가지고 청주집으로 향했다.
마광우가 하인들과 어울려 걸으면서 현판의 글을 읽어주자 그들은 벌써 군침부터 삼키며 좋아들 했다.
마광우네가 청주집뜨락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대쪽살창을 댄 나들문이 왈카닥 열렸다.
그와 동시에 알룩달룩한 덧옷을 입은 애된 계집이 안에서 뿌려나와 땅바닥에 딩굴었다.
잇달아 집안에서 불량기가 완연한 젊은 사내 서넛이 범잡은 포수마냥 기세가 등등해가지고 나왔다.
살진 수돼지처럼 미욱하게 생긴 녀석이 계집의 부풀어난 젖가슴을 거머잡아 흔들며 씨벌여댔다.
《뭐, 향기롭고 감미로운 청주? 하하, 우리한테 향기롭고 감미로운건 청주가 아니라 네년의 몸이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환갑이 지났을 령감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들어 사내의 팔에 매달렸다.
《이보시우, 우리 딸애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요?》
《이 잘난 몸뚱이를 은덩이보다 더 귀히 여기며 재세하는게 잘못이란 말이다. 두상태기네 딸년이 요망스럽기가 그지없다.》
《제발 이러지 마옵시오. 소인이 술을 헐값으로 많이 드릴테니 사정 좀 봐주소이다.》
《그 잘난 조선청주? 흥, 우린 딸년의 생생한 살맛이나 봐야겠다.》
장작개비처럼 바짝 여윈 녀석이 이렇게 이죽거리다가 술집주인인 령감의 턱수염을 줴흔들었다.
길가던 사람들이 오구구 몰려들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녀자들은 저걸 어쩌노, 저걸 어쩌노 하며 동동 발을 굴렀고 남정들은 《저런 불망나니들이 언제야 없어지겠노.》하며 개탄을 한다.
마광우는 저도 모를 충동에 떠밀려 란장판속으로 들어섰다.
《이 자식들아, 조선청주가 뭐 어쨌다고 감히 하찮은 술집 계집년의 몸뚱이에 비하며 야단질이냐?》
난데없는 조선관리의 출현에 놀라 한순간 얼뻥해졌던 불망나니들은 곧 살기가 돋쳐 날뛰였다.
《어랍쇼, 이건 또 어느 밑구멍에서 삐여져나온 시러베자식이여?》
《남의 나라 땅에 나들이왔으면 방구석에 얌전히 들어박혀 주는 밥이나 곱게 받아 먹을거지 푼수없이 싸다니며 참견질이냐? 네가 우리 일본땅에 와서 병신이 되지 못해 몸살이 나는게로구나.》
《이 고마(당시 일본놈들이 조선사람들을 얕잡아 부르던 호칭임. 고구려를 가리킴.)놈아, 청주맛 보기 전에 내 주먹맛이나 봐라-》
수돼지처럼 생긴 녀석이 이러며 마광우를 지끈 후려쳤다.
면상을 정통 얻어맞고 비칠거리던 마광우는 분격이 울컥 살아나는통에 외교사절단의 중임마저 까먹고말았다.
《계집맛 보기 전에 조선택견맛이나 봐라-》 하고 웨치면서 몸을 훌쩍 솟구쳐 날아들어가며 발휘둘러차기로 수돼지같은자를 먼저 타격하고 재차 손곧추찌르기와 무릎올려차기로 곁의 녀석들을 꺼꾸러뜨렸다.
혀를 빼물고 나가 쓰러졌던 불망나니들은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리고 푸시시해 일어나더니 비실비실 꽁무니를 사렸다.
술집 주인령감은 눈물이 막 글썽해서 마광우한테 고두사례를 했다.
《장사님,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마광우네 일행을 집안으로 이끌고 들어간 령감은 맛좋은 청주를 동이채로 내맡겼고 마른 낙지와 새우같은 건작들과 삶은 고기도 아낌없이 있는대로 다 내놓았다.
그리고도 모자라 철궤안에서 은냥 한덩어리를 꺼내 사례금이라며 주었다.
마광우는 제 하인이 그 은덩이를 넘겨받아 주머니안에 넣어주는것을 모르는척 하고 청주사발만 천천히 기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