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타국만리에서

7

 

도꾸가와쇼궁은 대궐과 수백행보쯤 떨어진 귤나무숲속의 별궁에 틀어박혀 《조선사신영접행사》를 조종하고있었다.

초저녁때 태수를 조용히 불러 조선사신검토결과를 보고받은 도꾸가와는 신중해서 방안을 거닐었다.

《헌즉 그가 진짜로 생불이라는거요?》

《그렇소이다.》

마치나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보고 오기라도 한듯 잔뜩 허겁이 든 태수를 올곧게 주시하며 수염성긴 턱을 주억거리던 도꾸가와는 갑자기 한쪽팔로 허공을 홱 내저었다.

《난 당초에 사람사는 세상에 생불이 존재한다는걸 믿지 않소. 가만 보니 요즘것들은 남보다 재능이 조금만 나아도 마치나 제가 살아있는 부처라도 되는듯이 우쭐해서 머릴 휘저으며 돌아치더군.》

시답지 않게 뇌이고난 도꾸가와는 서류장안에서 까만 옻칠을 한 자그마한 함 하나를 꺼내 태수한테 넘겨주었다.

《조선중한테 이안에 무슨 물건이 들어있는가를 알아맞히고 그에 맞는 시나 한수 써달라고 하오.》

《하잇.》

태수는 나무함을 받아들고 총망히 물러갔다.

봉인된 함안에는 노란 기장알 하나와 빨간 대추알 하나가 들어있었다.

한밤중에 태수는 나무함과 종이장을 가지고와서 도꾸가와앞에 내놓았다.

종이장에는 일본글로 휘갈겨쓴 시가 한수 들어있었다.

 

       작은것은 요사함이고

       큰것은 포악함이니

       그네들의 속통에

       이 두가지가 자리틀고있더라

 

       청해놓은 사신을 저울질할뿐

       모를 세워 맞대들지는 못하니

       마치도 둥글둥글한 심정이요

       웃었다 성냈다 하는 그 겉색은

       노란 호박꽃 빨간 동백꽃

       이 두 색이나 같구나

 

그야말로 신통한 시구인지라 도꾸가와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찼다.

귀신의 조화인들 이보다야 더할수가 있으랴.

《함안의 내용과 시가 그럴듯하게 어울리는구려. 헌데 이건 누가 통역해 받아썼소?》

《그 조선중이 제 손으로 직접 썼소이다. 그는 통사가 없이도 일본말과 일본글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옵니다.》

《흐흥- 귀귀관주요, 자자비점이라. 과시 령험스런 존재로군. 하지만 그쯤한 문구나 외우고 쓰는거나 가지고 사람자질을 총평지을수야 없지 않소. 참, 그들이 지참했다는 국서는 확인해봤소?》

《쇼궁사마께 직접 봉정하겠다 하옵니다.》

《하긴 그게 적실한 처사이지.》

그러긴 하면서도 도꾸가와는 자기가 이제 조선중을 상면하면 그 중의 갖춤새에 따라 쇼궁인 자기의 값도 매겨지겠기에 서뿔리 그와 마주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보통 세지 않은 도꾸가와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조선중의 자질을 떠보기로 하고 그를 대궐에 불러들이도록 하였다.

그날 해저물어가는 때에 조선사신들이 대궐에 입궐했다.

신변을 호위하는 수행원들을 대문밖에 떨궈두고 정사인 손문욱참의와 둘이서 맨몸으로 꽤 널직한 대궐마당에 들어서는 유정의 앞에 총과 칼과 창으로 완전무장을 갖춘 막부시위대의 수십군사들이 삼엄하게 둘러서있었다.

그뒤에는 황금빛이 번쩍거리는 갑옷과 관복을 요란하게 차려입은 장군들과 대관들이 쇼궁을 한가운데에 옹위하고 량줄로 늘어서있었다.

도꾸가와는 한편으론 조선사신에게 위압감을 안겨주어 그의 기를 단번에 꺾어놓고 또 다른 한편으론 그의 담력을 시험하기 위해 그런 광경을 펼쳐놓았던것이다.

대체로 사람이란 날면 기는것에 능하지 못하듯이 이 세상의 현인군자로 자처하는자들 대개가 문에 밝으면 무가 빈약하고 반대로 무가 출중하면 문이 희박한지라 문장에서는 비할바없이 뛰여난 이 조선중이 무예에는 영 문외한이 아닌지를 직접 제눈으로 알아보고 만약 말이나 잴잴거리는 글뒤주라면 그와 대상하는것이 일개의 나라까지도 일떠세운 정이대장군의 존엄을 흐리겠기에 수하 장관이 나서서 대상하게 할 잡도리를 한것이였다.

그런 내막에 대해선 알리가 없는 유정인지라 절로 위축되여 어깨를 옹송그리는 손문욱의 손을 슬며시 잡아 용기를 주며 이것들이 어째 정식으로 국서를 지닌 사신이 호행원도 없이 맨몸으로 나타났는데도 웬 경계를 이리도 와디디하게 폈노? 이런 눈찌로 마뜩지 않게 주변을 휘둘러살폈다.

그러다가 피뜩 짐작되는바가 있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두 나라의 대표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주서서 간단한 례식을 치른 후 조선사신단의 명의로 손문욱참의가 조선왕의 국서를 정중히 내드렸고 막부 쇼궁의 군정보좌관이 그것을 무겁게 인수받아 상좌에 웅건하게 틀고앉은 도꾸가와쇼궁에게 전달하였다.

국서를 넘겨받아 얼추 확인을 하고는 별로 씁쓸해서 자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쇼궁과 그곁에 얄궂은 비웃음이 실린 상통으로 줄느런히 서있는 대관들과 장군들을 주시하던 유정은 (이들한테 당초에 조선사신의 진맛을 좀 보여야겠군.) 하고 강심을 먹은 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바늘끝같은 예리한 시선으로 막부시위대의 군사들을 한사람씩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러자 돌연 이상한 현상이 마당 한가운데서 일어났다. 수십명의 군사들이 무아몽중에 빠진 사람처럼 제정신들이 없어지며 헤든헤든해지더니 유정이가 불덩이같은 눈동자를 돌리는데 따라 앞으로, 뒤로 또 그러다가는 옆으로, 모로 일제히 왔다갔다하는것이였다.

《쇼궁사마, 소승이 모처럼 왔던김에 막부군사들에게 조선의 18반무예나 좀 일러주고 가겠소이다.》

유정이가 눈이 화등잔처럼 되여가는 도꾸가와에게 근엄하게 뇌인 후 왜인군사들을 마주하고 서서 입을 꾹 다문채로 이리저리로 눈짓만 하자 군사들은 군소리 한마디도 없이 괴이한 침묵속에서 곰상스럽게 어떨적에는 칼을 휘두르고 또 어떨적에는 창대를 내치거나 비껴치면서 무술동작을 이어나갔다.

그 내막인즉은 유정이가 발산하는 눈기합술(일명 최면술이라 함.)에 모두 걸려든것이였다.

막돼가는 판을 지켜보다가 황당하여 혀를 내털던 도꾸가와는 군정보좌관한테 형세가 더 글러지기 전에 저 수염쟁이도사를 상방안으로 어서 모셔들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군정보좌관이 유정에게로 반달음쳐와 간청을 했다.

《도사, 지금까지는 다 오해였으니 널리 마음을 돌리고 이젠 용무를 보옵시다.》

왜국의 막부는 비로소 문무를 겸비한 조선중의 출중함을 인정하고 그를 일개국의 사신으로 정식 맞아들인것이다.

그제서야 유정은 눈기합술을 풀고 머리를 싸쥐며 땅바닥에 털썩털썩 주저앉는 군사들을 뒤에 버린채 손문욱을 앞세우고 대청안으로 들어갔다.

해양지쪽에 위치한 쇼궁이 거처하는 상방안에서 유정이네와 원탁에 차다반을 놓고 량쪽으로 벌려 마주앉은 도꾸가와는 천하를 호령하던 정이대장군답게 일부러 웅건하고도 태연자약한 자세를 취하며 량해를 구했다.

《미안하게 됐소. 먼길을 힘들게 온 귀한 객들을 지체시켜서.》

그 말에 손문욱이 비로소 사신의 위세를 차리며 노염을 표했다.

《일본의 례법이 좀 고약스럽구려. 사람을 오라고 청해놓고는 정작 나타나자 뒤골방에 들어박혀 상대를 말짱 중떠보고야 만나니 말이요. 우린 당장 되돌아가려다가 이왕지사 왔던 길에 새 쇼궁의 모상이나 한번 보구 가려고 잠시 물러앉았소.》

손문욱은 막부군사들을 한순간에 길들여놓은 유정의 무예에 힘을 얻고 가슴을 쭉 펴며 정사답게 쇼궁을 추궁했다.

도꾸가와는 귀객을 몰라봐서 안됐다고 공순히 사과를 하고는 은근한 눈초리로 정사곁에 목에 건 념주알만 세여넘기며 묵묵히 앉아있는 부사만 여겨보았다.

도꾸가와는 조선도승의 름름한 기품과 거쿨진 풍채에 어울리는 단정하면서도 당당스러운 자세며 철벽이라도 순간에 꿰뚫어낼듯이 예리하게 빛발치는 눈동자와 시내물처럼 조용하다가도 격동되면 폭포처럼 용용히 쏟아지는 거침없는 언변에서 함부로 범접할수 없는 위엄과 공경심을 이미 느꼈던것이다.

외국의 사신을 상면하는 관례대로 조선사신들과 문안인사와 더불어 이러저러한 여담을 나누고난 도꾸가와는 담소자약하여 목에 건 구슬알만 만지락거렸다. 일본《천황》의 징표로 된다고 하는 3종의 신기중의 하나인 구워만든 구슬이였다. 그것들은 사실 일본 고분시기의 유물로서 별로 신기한것도 아니였다. 헌데 어떻게 그것이 《천황》의 징표로까지 되였던가? 조선이주민들에 의하여 개척된 문명의 유산인 검, 거울, 구슬은 당시 뒤떨어졌던 일본렬도의 원주민들에게는 신비한 물건으로 여겨졌기때문에 그때부터 대대로 물려오며 신성시되였다는것을 도꾸가와는 알지 못했다.

그 《3종의 신기》가 조선사신한테 신심과 담력을 안겨주는 유물인줄도 그는 모르고있었다.

유정은 고국의 옛 조상들이 남겨놓은 슬기의 흔적인 그 《3종의 신기》를 보니 능히 왜나라 족속들을 짓누르고 시초에 자기가 의도했던대로 일을 벌려나갈수 있다는 자신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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