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타국만리에서
6
동지섣달의 맵짠 하늬바람이 행인들의 살을 쏙쏙 얼구어대는 겨울날이다.
조선사신일행은 해볕이 어지간히 퍼진 중낮무렵때 숙소인 객관을 떠나 교또거리에 나섰다.
행렬의 맨 앞장에선 우람진 체구에 윤기나는 수염발까지 길다랗게 늘어뜨려 풍채가 장히 름름스러운 유정이가 가사자락을 펄럭이며 왜인과반(접대맡은 관원)과 나란히 걸었고 그 착 뒤로는 역시 겹장삼과 겹저고리차림인 계명이, 홍창해, 백손이 이 세명의 젊은 호행원이 그 어떤 불의적인 정황에도 대처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전후좌우를 예리하게 경계하면서 걸었다.
맨뒤에선 상투머리에 깨끗이 빨아 다린 무명수건을 질끈 동이고 중치막을 틀스럽게 차려입은 오팔이가 이 낯선 타국의 도성거리가 마치나 제 집뜨락이기라도 한듯이 셈평좋게 누렁이와 놀음질을 치면서 흥걸흥걸 따라 걷는다.
유정이네는 가와꾸찌앞바다에서 기막힌 봉변을 당한 후 막부군의 호위를 받으며 배와 역마를 갈아타면서 오까야마, 히메지 등 수십개 고을을 거쳐 엊그제야 왜국의 막부 쇼궁이 마중와서 기다리고있다는 교또에 도착했었다.
그날 도성밖에까지 마중나와 조선사신행차를 친절히 맞아준 교또태수가 오늘 아침 과반을 특별히 선정하여 그들의 숙소로 보내 일행을 후시미성안의 대궐로 청한것이다.
유정이 태수의 초청을 달게 받아들여 행장을 갖추는데 의외에도 정사인 손문욱참의가 반기를 들었다. 국가사신의 체면을 지키고 행차의 기강을 바로세우자면 일개의 지방관청우두머리에 불과한 태수의 요청같은건 하찮게 무시해버려야 한다는것이였다.
마광우 또한 그 의향을 지지하면서 유정의 처신이 경솔하다고 내놓고 힐난을 했다.
그러했건만 유정은 교또태수와 상면하는 기회에 왜나라의 실정을 가늠도 하고 쇼궁과의 담판에 필요한 자료들도 걷어쥐기 위해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헐헐히 길을 떠난것이다.
유정이네가 토기와나 나무판자로 지붕을 얹은 2층루각과 점포들이 처마를 엇겯고 비좁게 들어앉은 저자거리에 접어드는데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형형색색의 왜인들이 조선사신을 구경하겠다고 대통로 량쪽에 몰려들어 담을 쌓았다.
삼베로 지은 검은 도포같은것을 중치막처럼 후렁하니 걸친데다가 머리칼을 뒤통수에 꽁져붙이고 짚신감발까지 한 평민들도 보였고 삼단같이 틀어얹은 머리에 은비녀며 대못빗을 꽂고 허리에는 무슨 베개통같은것을 띤 마님들이 늘씬한 덧옷자락을 나풀대며 들까부는것도 보였다.
말타고 오비에 찬 칼을 절렁거리며 거들먹스럽게 오가는 사무라이가 있는가 하면 비단도포에 감싸인 살진 몸뚱이를 교자에 싣고 배놀이하듯 한가로이 인총들의 머리우로 둥둥 떠가는 외뿔모 쓴 관리도 있었다.
앞이마를 반반하게 밀고 뒤머리칼을 죤마께식으로 수탉의 볏처럼 깜찍하게 따늘인 조무래기들이 유정의 주변을 맴돌면서 참새떼처럼 재잘거렸다.
《목탁중- 목탁중-》
《수염쟁이 승군장수-》
《스님, 도술을 써보소이다. 하늘이 땅이 되고 바다가 산이 되게 하소이다.》
왜인과반이 시끄럽게 노는 애녀석들을 휘휘 한팔을 내저어 쫓아버리려고 했으나 애녀석들은 그가 내쫓는 소리를 섣달그믐께 떡치는 소리만큼이나 심상히 여길뿐이였다.
조무래기들의 시달림에 난처해진 과반이 유정에게 량해를 구했다.
《대사님의 령험스런 명성이 본토에까지 미쳤던지라 소인네들의 호기심이 지나쳐 례의마저 잊었는가 봅니다.》
《아니올시다. 이국의 하찮은 범승에게 호기심을 베푸는것만도 과한 례의옵니다.》
유정은 이렇듯 헌거롭게 대꾸하며 선선히 웃어넘기였다.
그 바람에 기분이 어지간히 들뜬 왜인과반이 교또의 래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풍물이며 지형지세 같은것들을 두서없이 주절댔다.
일본의 8도 66주중에서 제일로 크고 번창한 산성주(한자음)의 도읍인 교또는 섭진주(한자음)와 이웃한 내륙지방으로서 《천황》궁을 모신 《성지》이다.
교또는 오사까와 더불어 맑고 푸른 랑화강의 상류를 품안고있어 산이 울창하고 농경지가 비옥하니 오곡과 뽕나무와 삼도 잘되고 생선과 소금도 흔하다. 만일 여기서 천그루의 귤나무와 천무의 참대밭과 천이랑의 토란(약용식물의 일종)밭만 가지고있다면 산해의 진귀한 물건은 저절로 들어오며 금, 은, 동, 석 같은 희유금속과 질좋은 목재 같은것도 얼마든지 구할수가 있다.
도꾸가와가 세끼가하라격전에서 이긴 다음 천하를 거머쥐고 새로 설립한 막부를 에도로 옮겨간 후로는 교또에 탕목지(제후들에게 떼주어 부유한 생활을 하게 하는 곳)들이 생겨나 지역이 협소해졌으나 그 번창함엔 변화가 없다.
하기에 이 나라 사람들은 에도를 동도라 하고 교또는 서도, 오사까는 남도라 칭하며 이 세 도성을 나라의 표본으로 삼아간다.
행정구획은 3보(한평)를 1간으로 하고 60간을 1정으로 하고 36정을 1려로 하여 려에 존장을 두었으며 마을의 표식으로 리문을 세웠다. 주민들의 납세는 신(인신에 대하여), 전(농경지수입에 대하여), 택(매 세대에 대하여) 등 3종이 있는데 조세와 부역대금과 지방특산물의 납부 등으로 추호도 빠짐없이 받는다. 하여 납세로 받아들인 금은전이 허다해 궁실의 부고(금품과 곡식을 두는 창고), 원유(동식물원같은것) 및 인공으로 된 못 등 토목시설이 에도보다 오히려 훌륭하다. 금은을 축적하고 철포(총)를 비치하고 검과 창, 기타 병기들을 갖춰 창고에 두어 방어 또는 전쟁준비를 하였다.
술을 파는 루각에는 상매, 인신, 제백 등의 이름난 술이 차넘치고 집집의 화원에는 수사앵, 옥잠화, 사시매, 백모란, 목필 등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만발한다.
(흠, 어윤다이는 무실(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다.)이라.)
유정은 왜인과반의 일장지설에 속으로 웃음을 쳤다. 그러하면서도 그자의 실없는 한담에서 왜국의 실정을 얼추 추려냈고 허례허풍을 즐기는 왜인들의 기질을 꿰뚫어보았고 또 필요한것은 머리속에 새겨넣기도 했다.
유정이네가 승교와 수레들로 붐비는 세거리에 접어들 때였다.
허우대가 늘씬하고 얼굴이 강파롭게 생긴 젊은 사무라이 하나가 창녀와 게이샤들이 사는 로화정쪽의 전각모퉁이에서 비틀거리며 급스레 삐여져나오다가 유정이와 부딪쳤다.
유정은 약간한 충격을 받고 주춤거리는데 사무라이는 혈기방장한 나이의 무사답지 못하게 맥없이 덜썩 넘어가는것이였다.
《어이쿠-》
《어허 쩌 이런.》
급작스러운 사태에 놀란 유정의 젊은 호행원들이 와당탕 튀여나왔다.
《뭐야, 이건?》
《소경도 아닌 작자가 대낮에 사신행차를 들이받아? 이 자식이 우리 스님을 놀리는게 아니여?》
홍창해와 계명이가 당장 주먹을 틀어쥐며 강타를 가할 자세를 취했다.
당황해하던 왜인과반도 사절의 행차를 방해한 불량배를 즉결처형하려고 허리츰에서 장도를 뽑아들었다.
그러는 그들을 엄한 눈짓으로 제지시킨 유정은 넘어진 사무라이를 일궈세우다가 《아하, 알만한 젊은이로군!》하며 반색을 했다.
그 젊은 사무라이는 야마가끼까지 마중나와 조선사신행차를 호행해온 막부군의 초장인 히까리였던것이였다.
이상한 색조가 비낀 눈으로 유정을 마주보던 히까리는 제켠에서 먼저 상대를 엇찌르는것이였다.
《낯선 땅의 낯선 길은 항시 주의하는게 유익하지요.》
이러고는 바지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면서 몇보쯤 사이둔 과반의 눈치도 살피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살피고 하더니 다시금 유정에게로 돌아섰다.
《한뉘 싸움판에서 굴러먹은 소장도 별치않은 충돌에 넘어가듯이 전지전능하신 스님도 뜻하지 않던 정황으로 인해 험한 구뎅이에 빠질 때도 있다는걸 알아야 하옵니다. 아무리 초의, 초신, 초갓을 즐기는 불승일지라도 남의 나라땅의 초물엔 손발대기를 삼가해야지 그때문에 화를 당할수도 있소이다.》
그러할 때 《히까리-》하는 웨침소리가 전각쪽에서 울려왔다.
황금빛전포를 쓴 급높은 막부군 장수가 유정이한테 뜻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던 히까리를 자기한테로 어서 오라고 부르는 소리였다.
히까리는 왜서인지 까닭없이 아수한 기색을 짓는것이였다.
유정은 선뜻 걸음을 떼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젊은 사무라이의 이상한 거동을 지꿎게 눈여겨보았다. 그가 자기와 말을 건넬 기회를 조성하느라 우야 충돌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정은 의혹을 그대로 안은채 계명이네의 손에 끌려 그 자리를 떴다. 거리에서 동남쪽으로 두어마장쯤 벗어나 험하면서도 묘한 지세에 맞게 후시미성이 자리잡았는데 관사는 그안의 대궐에 자리틀고있었다.
일본의 《천황》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 어제날의 태합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정사를 보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대궐이 오늘은 한낮 지방장관의 대청으로 변하여 세월의 눈비만 속절없이 맞고있었다. 그래도 으리으리한 성곽과 건물들은 제법 위세를 뽐내며 길손들을 거만스레 굽어보기만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잡으며 성문을 지나 관사담장대문안에 들어서던 유정이네는 당황하여 주춤거렸다.
뜻밖의 광경이 그들을 맞이했던것이다. 대문에서 대청나들문까지 오백보가 실히 넘을 구간에 말리워 다듬은 왕골이나 창포줄기에다가 여러가지 색갈을 먹여 호화롭게 엮은 초물제품인 누비돗자리가 일여덟보의 넓이로 깔렸는데 그 한쪽 옆으로는 개수를 가늠하지 못할 수백폭의 병풍이 벌려세워져있었다.
(대접이 과한걸.)
눈살을 찡그리며 자기네를 안내해온 왜인과반을 흘낏 돌아봤다.
까닭없이 태도가 별스러워지며 송구한 낯색을 짓던 과반은 인차 곰살궂게 대척하는것이였다.
《바다너머에서 험로를 헤치며 불원천리 왕래하신 사절을 초졸스레 맞아서야 되겠소이까.》
그러하며 과반은 흔연해졌으나 한찰나 당황해하던 그자의 거동에서 유정은 이상스러운 느낌을 피끗 받아안았다.
그때 좀전에 들은 젊은 사무라이의 말이 유정의 귀전을 쳤다.
《초물제품을 삼가해야지 그때문에 화를…》
유정은 번개불같은 예감이 머리를 치는통에 소스라쳤다. 조선을 통채로 고아먹지 못해 간장을 태우던 놈들이 조선중이 곱다고 화문석까지 깔아줄리는 없는즉 이는 분명코 야인들의 간계가 꾸며낸 허례허식이로다.
유정은 주저없이 누비돗자리를 펴놓은 길을 버리고 그와 한두행보쯤 사이를 둔 공지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러면서 희기한 모양과 글발로 이루어진 병풍을 곁눈질로 살폈다. 얼핏얼핏 눈에 걸려드는 문자들을 해석하니 분명 팔만대장경의 내용들이였다.
유정은 옛날 묘향산에 가서 도를 닦을 때 서산대사가 하던 말이 느닷없이 돌이켜졌다.
《일본사람들은 고려 말엽부터 조선봉건왕조 초기까지 100여년간에만도 무려 80여차례나 이 대장경을 찍어줄것을 간청하였으며 수십여회에 걸쳐 인쇄해갔네.》
(옳다, 틀림없이 우리 나라에서 고려시기에 출판한 대장경을 복사한것이다, 간특하고 요사한 놈들. 너희들이 내 실력을 떠보자고 수작질을 하는구나. 어디 두고보자.)
유정은 속이 뜬뜬해져 기껏 활개를 치며 대청으로 들어갔다.
관사의 호칭은 본능사라 하는데 이는 교또의 절중에서 그중 큰 축에 속하는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건물이였다.
왜국에선 도시나 촌락에 세워진 절간들을 관사나 객관으로 쓰는 례가 흔한지라 이곳 교또의 관청도 대사찰을 그대로 리용하는것이다.
넓고 좁은 방들이 수백간은 돼보이고 불상을 앞단에 앉힌 법당은 크며 무늬좋은 느티나무로써 기둥을 만들고 퇴는 높이가 한길이 넘는 돌을 깎아 쌓았다. 기둥과 도리와 들보는 다 황금색을 칠하였으며 또 나무를 아로새겨 철망같이 꾸미고 붉게, 검게 옻칠한것 등 얼른얼른 광채가 령롱했다. 그러나 여기에 단청칠이나 채색그림은 베풀지 않았으니 이는 왜나라 풍속이 그러한것 같았다.
법당의 왼편 복도로 들어가면서 출입구들이 굽이굽이 각방에 통하게 되여있고 사신일행전원과 이웃주에서 온 호행자전부 또한 본주의 접대자 등 수백명이 여기 한곳에 들어 살아도 되게끔 각각 침실, 주방, 목욕실, 세면실, 변소가 따로 있는것을 보니 이래서 도착한 첫날에 태수가 관사에 숙소를 정하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정이가 저를 호행해온 젊은이들을 접수실로 쓰는 첫방에 떨궈두고 류꾸에서 난다는 빛좋고 보드라운 누비돗자리를 깐 아담스럽고 널직한 남향받이 방에 들어서니 주홍빛휘장을 등진채 삼층방석을 깔은 옥좌에 거만스럽게 앉아있던 태수가 달싹 일어나 그를 반겨맞아주었다.
태수는 머리칼이나 겨우 가릴만 한 바리깨같은 모자를 눌러썼는데 모자우로 솟은 뾰족한 꼭지에는 옻칠을 한 까만 나무비녀가 가로질리고 그뒤로 길이 한자 남짓하고 너비가 두어치가량 되는 외가닥뿔이 휘우듬이 늘어져있었다.
막부장군이하 대관들과 각주 태수들이 쓴다는 일각모를 얹고 법승의 장삼같이 소매가 넓은 검정도포에 알락바지를 받쳐입은 태수는 무겁게 읍례하는 유정을 친절히 옥좌 가까운 웃자리로 이끌어 앉혔다.
유정은 좌석에 앉으려다가 잠시 주춤하며 자리에 펴놓은 비단방석을 집어 한옆으로 밀어놓았다.
《살생을 금함은 우리 불도의 첫 계률이외다. 비단도 누에라는 생물체에서 나는 실로 짠 천이거늘 비단물건을 태우거나 짓밟음은 생명을 해하는짓과 무엇이 다르겠소이까.》
처음엔 웬일인가 하여 가늘게 치째진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을 굴리던 태수는 역시 고명한 도승이 다르다며 감탄을 표했다.
태수와 유정이가 원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사례적인 대화를 어지간히 이어가며 홍차를 나눌 때였다.
태수가 불쑥 나무람하듯 뇌이는것이였다.
《어이하여 승은 우리의 성의를 마다하셨소? 품을 들여 마련해 펼쳐놓은 화문석에 그 거룩스런 발자취조차 남겨주지 않았으니 그처럼 서운한 일이 또 어디 있겠소이까.》
그 소리에 유정은 담담해서 《도노사마의 지어먹은 성의를 받아들이자니 어쩐지 가시돋은 생밤송이를 삼키는것 같아 속이 께름직하고 불안스러워서 그러했소이다.》 이렇게 대꾸하고는 눈을 슬며시 내려감고 합장을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태수는 언턱없이 웬 까박이냔듯 눈이 올롱해서 유정을 건너다봤다.
《?!》
《그 누비돗자리를 밟았다가는 소승이 헤여나기 힘든 곤경에 빠지겠는데 부디 그 고통을 취하자고 그걸 밟겠소이까?》
《…》
덤덤해서 뇌이는 유정의 말에 태수는 실망한 기색을 지었다.
유정이가 재차 그 돗자리들을 치우면 아마 물을 채운 구뎅이나 함정 같은것이 나질것이라고 직통 내찌르자 태수는 락심한 모상으로 돌변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을 가누어잡고 천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도승께서 학식이 출중하다는 소문은 수차 익혀 들었소이다. 우리가 희귀한 문구들을 병풍에 가득 옮겨 마당이 차넘치도록 펼쳐세우긴 했으나 그것의 표제도 내용도 출처도 제대로 모르고있으니 도승이 모처럼 오신 길에 해석이나 좀 해주소이다.》
태수가 자기를 중떠보느라 그런다는걸 안 유정은 쓰거운 웃음을 눈가에 담으며 자신있게 응했다.
《그건 조선에서 발행한 <팔만대장경>이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중엽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대장경조판사업을 진행하였소이다. 이때 조판한 판목총수는 8만여매나 되며 그것으로 찍어낸 대장경책은 6천7백 9십여권에 달하였소이다. 참, 말이나 들어서야 알겠소이까. 대궐에 보관한 불교서적을 가져다가 대조해보소이다.》
유정의 말에 못이기는척 하며 태수를 곁들던 관원 두엇이 슬그머니 방에서 나가더니 잠간사이에 옛 문헌을 한아름씩 안고왔다.
유정은 그들에게 턱짓으로 제 건너편의 자리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 소승의 말을 들으며 책이나 들춰보소이다. 대장경은 1 531부로 나뉘여졌는데 편찬체계상 네가지 체계로 구분하였소이다. 우선 갑번으로 1회에서 1 087회까지인데 여기에는 불교의 대승 및 소승경전들을 경장, 률장, 론장의 순서로 싣고있으며 기타 성현집들을 싣고있소이다. 을번으로는 1 088회부터 1 263회까지인데 여러가지 불교문헌목록들과 계송(불교교리나 석가모니를 칭송한 불교시)잡집 등을 싣고있소이다. 병번에서는…》
이렇게 일목료연하게 부류와 체계를 구술하고난 유정은 거침없이 회, 체, 절의 내용을 문장 하나, 토 하나 틀리지 않고 상기시켜나갔다.
고문서의 장을 련속 번지며 유정의 말과 서적에 찍혀있는 글자를 맞춰보던 관원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던중 한 관원이 큰것이라도 발견한듯 야단질을 쳤다.
《어서 승께선 67회의 7체 3절내용을 훌쩍 건너뛰시는거요?》
《그네들이 그 대목의 병풍쪽을 접어놨길래 소승도 우야 그 대목을 번졌소이다.》
태수가 눈짓을 하자 한 관원이 총망히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잠시후 되들어온 관원은 태수의 귀에 대고 뭐라고 수군거렸다.
그러자 태수는 놀라와 입을 딱 벌렸다. 진짜로 그 대목을 옮겨쓴 병풍쪽이 접혀있었던것이다. 태수는 신통력을 지닌 이 조선의 도승이 차츰 두려운 존재로 여겨지여 언행과 거동을 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