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타국만리에서

5

 

제사터에 올라갔다가 불쾌한 일을 당하고 먼저 떠나 내려온 옥비가 방안에 혼자 들어앉아 서러운 눈물만 짓고있는데 이웃집 곤도의 처가 도적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찾아들어왔다.

나이 사십을 갓 넘긴 왜녀인데 남이 하품하는새에 금이발 뽑아가는 판인 왜땅에서 나서자란지라 원체 금여우처럼 깜찍하고 능갈쳐 순박한 조선인포로들의 등을 어루치고 간빼먹기 잘한다. 매일 기름지게 처먹는건 다 어디 가고 목이 회초리같이 가늘어빠졌는데 그래가지고도 정욕은 어찌나 세찬지 제 서방과 양양 물어뜯으며 시앗싸움을 할내기 볼장을 못 보는 년이다.

곤도의 처는 옥비의 기색을 할끔할끔 훔쳐보며 이말저말 늘어대던 끝에 입에 침바른 소리로 그를 구슬려댔다.

《아사꼬, 어서 결심을 내려요. 다이묘의 후실자리는 일본의 귀랑자들도 군침을 흘리는 자리라니까요. 우리 고을 다이묘님이 지금은 십만석에 불과한 지방관리이지만 제 상전인 가또태수님과 그우로 막부의 총애를 받는지라 머지않아 삼십만 아니 백만석의 봉미를 받는 장군감이고 대관감이시여. 그런 지체높은 어른의 귀염을 독차지한 후실이 되여 복을 누릴 생각은 어이 안한담? 세상 더없을 이쁜 용모에 스스로 숯검댕이칠을 하며 천하게 도자기나 굽고 사니 실루 답답스런 처사가 아니유.》

한참 그러며 시끄럽게 놀아대던 년은 옥비가 아프다는 구실을 대며 요포를 뒤쓰고 누워 일언반구의 대척도 안하자 제풀에 메사해져 휘지해서 물러갔다.

옥비의 시야에서 얼씬거리던 알룩달룩한 기모노자락이 희끗 바람을 풍기고 사라지며 방문이 텅- 닫겼다. 이어 토방을 내려서는 게다소리가 따각따각 들려왔다.

옥비는 그제야 호- 숨이 나갔다. 숨은 나가면서도 무엇을 잘못 먹고 얹힌것처럼 속이 무죽했다. 곤도의 처가 일시 가버리긴 했어도 《아사꼬만 잘 돌려눕히면 료미를 이천석이나 더 늘여주겠다.》는 다이묘의 침질을 당한 그들량주가 또 다른 방법으로 시끄럽게 놀것이라는 생각으로 해 그냥 불안스러워질뿐이다.

다이묘와 그의 부하들로부터 벌써 수년째나 그런 시달림을 받아오는 옥비였다.

정유왜란때 울돌마을에서 왜놈들한테 붙들려 갖은 릉욕을 당하고 처참하게 죽을번 했던 옥비가 머리털 한오리 상하지 않고 지금껏 무사할수 있은것은 남달리 아릿다운 용모때문이였다. 병졸들한테서 옥비를 가로챈 왜장놈은 그를 략탈한 재물들과 함께 배에 실어 고스란히 본토의 령지로 보냈던것이다.

옥비는 지금도 손발을 결박당한채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너오던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소스라치며 깨여나군 했다. 어머니를 찾으며 왕왕 소리쳐울던 처녀들과 아이들, 병에 시달리고 배멀미를 못이겨 쓰러진 사람들을 시끄럽게 여겨 날바다속으로 내던지면서 너털웃음을 치던 왜군들이며 마주 지나치는 배안의 사람들한테 《광양고을 배진사댁 둘째며느리 이러이러하게 되였다고 알려주시오-》 하고 피터지도록 웨치던 아낙네며 왜놈들과 맞서다가 칼날에 머리를 잘리우고 절명하던 남정들의 스산한 광경이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더욱 생생해져 좀처럼 잊을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돌덩이처럼 옥맺힌 그 원한을 풀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옥비가 절치부심에 잠겨있는데 밖에서 말투레질소리가 울렸다.

호오홍-

다이묘가 타는 밤색토종말의 귀익은 울음소리였다.

멍- 멍-

뜨락에서 얼룩이가 기를 쓰며 짖어댄다.

《가라- 가-》

성가신 어성으로 개를 쫓는 소리에 이어 뚜벅뚜벅 뜨락을 질러와 토방에 올라서는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잇달아 마른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옥비는 얼른 요포를 다시 뒤쓰고 누웠다.

《로인장 있소?》

이젠 듣기가 막 역스러워진 칼칼한 음성이 울린 후 잇달아 방문이 드르륵 열리였다.

외뿔모자를 납작하게 눌러쓰고 자색비단도포를 후렁하니 걸친 중년기의 사나이가 안을 기웃이 넘겨보다가 성큼 들어섰다.

이마리지방의 다이묘인 요시하찌(어제날의 가또부대 참모)였다.

그는 지금 동부규슈 구마모또일대의 큰 다이묘가 된 가또수하에서 한개 고을을 관할해오고있었다.

옥비는 그가 보기 싫은 왜놈의 두목이긴 하나 어쨌든간에 현재는 자기네 조선이주민들의 목숨을 한손아귀에 거머쥐고있는자인지라 요포를 밀어치우고 일어나서 어설피 례의를 차렸다.

소철이며 철쭉꽃 같은 화초들이 아름답게 피여나고 파란 무우와 파가 싱싱 자라는 방안 한쪽의 창밑화단과 꽃그림이며 꽃수예품이 가득찬 방안을 두릿두릿 살피던 요시하찌는 수심이 짙은 옥비의 아릿다운 얼굴을 들여다보며 제법 은근한 소리로 《아사꼬, 어디 아픈가?》 하고 물으며 손을 내밀어 옥비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뱀이 올라붙은것처럼 몸이 산뜩해와 소스라치던 옥비는 한뉘 칼을 다루느라 굳은 살이 박힌 사무라이의 투박스런 손을 황황히 털어버리며 내쏘았다.

《다치지 말아요.》

그 야멸찬 웨침소리에 흠칫 놀라 손길을 거둔 요시하찌는 게면쩍은 기색이 되여 건기침만 흠흠 깇었다.

이미 오래전에 강압적인 방법으로 옥비의 정조를 꺾으려다가 그가 단검으로 제 가슴팍을 찌르면서 죽겠다고 날치는통에 혼쌀이 난 요시하찌는 그때부터 유화적인 방법으로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써왔다.

생각같아서는 이 매몰스럽기 그지없는 조선계집을 강짜로 간통하고 아예 탁 일도량단해버리고싶었으나 천하절색인 그의 월용화태같은 인물이 아까와 차마 용단을 못 내렸었다.

더구나 상전인 가또가 《세상에서 제일 얻기 힘든건 재물이나 땅보다도 사람일세. 세상만물을 빚어낸다는 조물주가 수백년만에야 하나 겨우 산생시킬 그런 천하절색을 없애버린다는건 후세앞에 죄되는짓이네. 계집이란 떡반죽과도 같아 주무르면 주무를수록 말랑말랑해지는 법이니 잘 얼리라구. 젊은 계집 하나 후려내지 못해 칼로 찔러죽였다면 우리 사무라이들 체면이 뭐이 되겠나. 중히 명심할건 임자네 일이 단순히 계집과 사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일본남자와 조선녀자 즉 일본사람이 조선사람을 굴복시키는 심각한 민족관계의 문제라는거네.》 이렇게 늘 훈계를 하는통에 망탕짓을 금해오는터였다.

요시하찌는 근년간에 자기네의 난해한 관계를 알고있는 주변의 다이묘들과 측근 부하들앞에서 체면도 세우고 기어이 자신의 야욕도 채우자면 이 용모절륜한 조선미녀가 스스로 수절관념을 버리고 자기의 품에 안겨들게 하는것이 지당한 처사라고 여겼기에 사무라이의 야한 기질을 억지로 눌러가며 순후하게 지내오는터였다.

하기에 요시하찌는 속으로는 후일에 열백배의 앙갚음을 하리라는 독을 도사려먹었으나 겉으로는 그런 티가 없이 돌절구도 밑빠질 날이 있고 박달나무도 좀쓸 날이 있다는 식으로 절친하게 옥비의 옥맺힌 심정이 흐무러지도록 이모저모에서 혜택을 베풀어왔다. 그 단적인 실례가 바로 곤도를 시켜 옥비네한테 집도 별도로 한채 잘 지어주고 쌀과 옷감 같은 필수품도 자주 보내주군 한것이였다.

《타향의 물이 내장에 아직 익숙 안되여 탈이 생길수가 있으니 여하튼 주의하오. 아사꼬, 내가 뭘 가져왔나 좀 보라구.》

요시하찌는 옆구리에 끼고 온 병풍묶음을 내리워 방안벽을 따라 펼쳐세웠다.

노랗고 하얀 국화와 녀랑화(마타리꽃) 그리고 견우화(나팔꽃)며 사꾸라꽃이 란잡하게 그려진 꽃병풍이였다. 옥비가 류달리 꽃을 좋아한다는것을 알고 숱한 은냥을 뿌리며 장만해온것이다.

얼핏 병풍을 둘러보던 옥비는 어지럼증이 동해 눈을 감아버렸다.

색조화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데다가 구도도 절제가 없고 형체까지도 란잡스러운 왜국의 병풍을 역스럽게 보고나니 흰색, 연분홍색, 붉은색의 꽃송이가 주렁진 장방형, 사발형, 항아리형의 화분을 창가에 주런이 놓고 산뜻한 벽을 따라 소나무며 참대며 매화며 모란꽃이며 함박꽃이 곱게 그려진 사계절분병풍을 둘러치군 하던 고향집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런줄도 모르고 요시하찌는 저대로 실망하여 옥비가 새벽에 수를 놓다가 그대로 둔 웃목의 흰 천에 새겨진 진홍색의 해당화꽃송이를 눈이 찌불서해서 굽어보았다.

그러다가 불시에 태도가 돌변하며 살기찬 말투로 뇌까렸다.

《태수님을 수행하여 내 교또에 며칠간 올라가있다가 돌아올테니 그때까지 결심을 내리길 바라네. 나의 품에 안겨 부귀영화를 누리든지 아니면 이 칼에 목이 잘리우든지 두 길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구. 제앞에 차례지는 큰 복을 스스로 마다하는 계집은 살다살다 처음 보는군.》

코김을 거칠게 내불던 요시하찌는 찬바람을 씽 풍겨놓고 나가버렸다.

옥비는 다이묘놈이 사라진쪽에 서리발같은 눈총을 내쏘았다.

(물론 사람은 복을 위해 울고 웃기도 하고 살고 죽기도 하는것이다. 하지만 너희것들이 주려는 부귀영화는 나에겐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이 아니라 화근이나 같다. 나의 복은 내 나라, 내 고향, 내 그리운 사람들속에 있다는것을 너희네 왜족속들은 모를거다. 우리 조선사람들에게 한뉘 고통만을 주는 네놈들과는 소금이 쉴 때까지 해볼줄 알라-)

그날 밤 윤로인과 옥비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자정이 넘도록 울적한 심사에 휘잠겨있었다.

한숨만 시름겹게 내긋군 하던 윤로인이 서글픈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내 그때 장히 죽음을 택했어야 하는건데 부질없이 잔명을 유지한가보이.》

왜땅에 갓 끌려왔을 때의 일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임진조국전쟁에서 패하고 자기 령지로 돌아온 요시하찌는 수백명의 포로들앞에 윤로인을 내다세우고 공공연히 위협공갈을 했었다.

《도자기를 만들어 자기 동포들을 살리겠는가 아니면 저 사람들과 함께 땅속에 묻히겠는가?》

그 말이 끝남과 때를 같이하여 요시하찌의 졸개들이 조선인포로들의 잔등에 칼과 총구를 겨누었다.

죽어도 왜놈들을 위해 도자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앙버티던 윤로인이였으나 그런 판에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자기때문에 수백명의 무고하고 불쌍한 조선사람들을 죽게 할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윤로인은 마지못해 회백색점토를 찾아냈었고 도자기를 빚어 구워내기 시작했던것이다.

차잔이며 호로병이며 밥사발이며 등등 여러가지 종류로 가시노미네 마을 도자기터에서 생산된 그것들은 소문을 내며 경향각지에로 퍼져나갔다. 날이 다르게 수요가 높아가는 이마리자기는 령주와 관리인들의 재부를 급격히 늘여주었다.

윤로인은 본의아니게 왜놈들의 배를 불리우고 원쑤의 나라에 문명을 도입시킨것만도 괴로운데 울산댁처럼 함께 이역살이를 하는 동포들한테서까지 랭대를 받으니 그 고통은 실로 묵새기기 힘든것이여서 스스로 절망에 빠져들군 하는것이였다.

《나이 일흔다섯살이면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을 때다. 암 그렇구말구. 황천길만이 나를 편하게 해줄게다.》

《할아버님.》

옥비는 울상이 되여 윤로인의 뼈만 남은 손목을 잡아 흔들었다.

《그런 나약한 말씀 마소이다. 끝까지 살아 고향에 돌아가 그리운 자손들을 만날 생각은 왜 못하나이까? 죽지 말고 살아야 왜놈들의 악독한 죄행을 세상에 폭로하고 원쑤도 갚을것이 아니오이까.》

이런 말로 오금을 박고난 옥비가 실없는 한숨은 희망을 허물고 쓸데없는 고민은 인생을 시들게 한다면서 한참 설복을 시켜서야 윤로인은 어지간히 태도가 달라졌다.

《나도 사실 기러기떼가 날아가는것만 봐도 조국으로 가고싶고 혈육을 만나고싶은 생각에 차마 죽지를 못했니라. 참, 내 아까 도자기를 사러 왔던 왜인장사군한테서 들었는데 조선에서 왜왕과 담판하러 사신이 건너왔다더라. 조정의 한 관리와 임진왜란때 승병대총섭을 한 중이 사신이라던데 혹시 그 중이 송운대사가 아닌지 모르겠다.》

《도총섭이라면 송운대사님이 틀림없소이다. 그분이 오셨다면 혹시 그이도 같이 왔을수 있는데.》

옥비는 절로 흥분하여 가슴을 들먹이였다. 느닷없이 그의 시야에 체격이 쭉 뽑히고 눈매가 부리부리하게 생긴 젊은 사내가 우렷이 떠올라 벙글거렸다.

옥비가 한생의 반려자로 삼고 비밀리에 삼생가약(과거, 현재, 미래를 같이할 약속)을 맺았던 홍창해였다.

마음속에 일루의 희망으로 간직해온 련인의 정다운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그와 남다른 관계를 가져온 옛날 일들이 삼삼히 돌이켜지며 심정이 타들었다.

옥비는 별이 총총히 내돋는 뙤창밖의 하늘만 내다보며 한숨을 쉬였다. 그인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있을가? 그인 내가 이 험한 왜땅에 끌려와 역고를 치르고있는걸 알기나 할가? 아, 아, 무정한 님이여, 이 무맥한 녀인을 찾으려고 어이 바다를 건너오지 않나이까?

그러자 자책에 겨워하던 사나이의 모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대신 인자스러운 녀인이 나타나 옥비를 근심스럽게 굽어본다. 옥비가 큰엄마라 부르며 자별히 따르던 최씨였다.

옥비는 자기가 울돌마을에서 왜병들한테 붙들리던 날 놈들의 칼에 크게 상하고 태를 치며 쓰러져 기척이 없던 최씨의 일이 오늘까지도 걱정되며 그가 그날에 아예 절명한것만 같아 속으로 큰엄마생각을 할 때마다 슬픈 눈물이 자꾸 났다.

《남걱정하기 전에 제 몸보존이나 잘하거라. 살벌한 야수의 소굴에 끌려간 너때문에 이 아빈 속이 타버려 재가 되고말았니라. 조금만 참아라. 내 기어코 널 데리러 가마.》

엄하면서도 자애넘친 음성이 귀전을 치기에 흠칫 시선을 들어보니 뽀얀 안개발을 헤가르며 갑옷차림인 아버지가 군마를 짓쳐몰아 장검을 휘두르면서 달려오는것이였다. 사무치는 육친의 정으로 하여 옥비는 오열을 씹었다. 그러다가 설레설레 도리를 저었다. 아버님! 오지 마소이다. 여긴 위험한 곳이와요. 이 딸이 아버님을 찾아가겠으니 기다리오이다. 이렇게 속으로 애타게 웨치노라니 눈물이 줄줄이 볼을 적셨다.

보고싶은 사람들, 가고싶은 나라, 발이 부르트도록 실컷 밟아보고싶은 고향땅! 아, 언제면 그 간절한 소망을 이룰수가 있을가?

옥비가 비분에 휩싸여 몸을 떠는데 추억속의 한 소년이 새뭇이 웃으면서 다가와 소담스러운 해당화송이를 그의 머리태에 꽂아주었다.

《울지 마. 난 네가 이 꽃처럼 억세고 곱게 피여나길 바래.》

옥비는 자신을 다잡고 소년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겠어요, 오라버님. 내 억세게 고초를 이겨나갈래요. 사람이 마음만 잘 가지면 죽어도 옳은 귀신이 된다지 않나요. 내 후날 야살스러운 왜놈들에게 조선녀성의 절개가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이 몸이 한줄금 혼백으로 변해 그대 품으로 날아가 안길테니 부디 기다려요.

애절하게 속으로 뇌이는 옥비의 두볼로는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