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타국만리에서

4

 

서부규슈의 한끝인 히젠 이마리지방에는 가시노미네라는 지명을 가진 촌락이 있었다. 앞벌로는 노상 뿌옇게 흐린 강물이 흘러내리고 량옆과 뒤로는 높다란 구릉으로 둘러싸인 벽촌이다.

땅이 척박하고 물산이 없어 사람 못살 고장으로 일러오던 이 고장이 몇해전부터 갑자기 소문을 내며 번성하기 시작했다.

임진조국전쟁때 포로로 끌려온 조선인도자공 윤각청에 의해 구릉지대가 전부 도자기원료인 회백색찰흙이라는것이 밝혀지고 그 흙으로 실지 도자기를 만들어 내다 팔면서부터였다.

가시노미네마을에서는 임진조국전쟁때 왜놈들한테 강제로 끌려온 조선사람 100여명이 도자기생산에 종사하며 육체를 혹사당하고있었다.

그들이 강가와 산기슭에서 토굴집을 짓고 살면서 돌가마로 보리알을 익혀먹던 그때로부터 어지간히 세월은 흘러 이제는 가족별, 친척별, 동향별로 초가를 짓고 생활하며 가마터를 운영해갔다. 왜땅에서 어떻게 하나 조선사람의 대를 끊기우지 않으려는 억심이 생겨 젊은이들은 새 가정을 뭇고 자식낳이도 했다.

마가을의 따가운 해볕이 살을 지져대는 한낮이다.

가마터에서는 도자기구이가 한창 벌어지고있었다.

장정들은 웃옷을 활 벗어붙인채 연줄 잇달린 도자기가마의 화구마다에 주런이 늘어앉아 비지땀을 좔좔 흘리면서 풍구질을 해대고 젊은 아낙네들은 치마폭을 걷어동이고 무릎까지 잠기는 찰흙속에 들어서서 가까스로 발을 뽑아 옮겨가며 흙반죽을 걸싸게 이겨댄다. 중늙은이와 애들은 질통을 하나씩 메고 점토장의 흙을 져나른다. 그런가 하면 산에서 통나무를 찍어 끌어오는 사람, 장작을 패여 화구안에 던져넣는 사람도 있다.

한창 일자리가 날 때인데 허기진 배를 달래이며 허기영치기영 힘겹게 풍구질을 하던 중년남정인 홀아비 박서방이 헉 맥빠진 신음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바람에 풍구채가 덜컥 멎어섰다. 그대로 한식경쯤 지나면 가마안의 온도가 변화되여 거의 익었던 숱한 도자기들이 못쓰게 될판이다.

몸이 온통 털투성이이고 얼굴만 살가죽이 반지르르하게 드러나 흡사 원숭이를 방불케 하는 왜인사내 하나가 말을 타고 다급히 그곳으로 달려왔다.

이곳 고을의 다이묘수하에서 도자기터를 맡아 관리해오는 곤도였다.

곤도는 말잔등에서 뛰여내리자바람으로 박서방의 엉뎅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오이, 빠리빠리 일어나 바람을 부채란 말이다. 도자기나 다 식는다.》

엉기적거리며 상반신을 일으킨 박서방은 풍구채를 잡아쥐다가 빈혈을 못이겨 재차 픽 꼬꾸라졌다.

《야로- 건달군같은 놈.》

곤도는 성이 나서 박서방을 마구 짓밟아댔다.

《아그머나, 사람죽는다-》

흙반죽을 이기던 중년아낙네인 울산댁이 기겁을 하며 달려와 곤도를 떼말렸다.

옆가마에서 풍구질을 하던 장정들도 모여들어 울산댁을 역성들었다.

사람들이 말리자 곤도는 더 승악해져 박서방과 모여온 장정들을 차고 때리며 날뛰였다. 그 바람에 울산댁이 태를 치며 나딩굴었고 장정들도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졌다.

《이 밥벌레같은것들, 싹 다 뒈져- 도자기를 굽지 않을바엔 죽어 자빠지란 말이다.》

성깔사나운 곤도놈의 행패질이 극도에 달했을 때 나직하면서도 서리발비낀 녀자의 꾸짖음이 등뒤에서 울리였다.

《작은주인님, 이게 무슨짓이오이까?》

《이건 또 웬년이야?》

주먹을 추켜들며 홱 돌아서던 곤도는 당황하여 주춤거렸다. 용모 아릿다운 젊은 녀자가 성난 표정으로 서있었기때문이다. 흰 모시저고리와 검정무명치마를 단정하니 차려입은 그 미모의 조선녀인은 비록 포로로 끌려와 도자기생산에 종사하는 처지이기는 하나 곤도의 명줄을 쥐고있는 이곳 이마리주 다이묘가 자기의 후실감으로 점찍고 직접 아사꼬라는 일본이름까지 달아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존재였던것이다.

《아하, 미안하오.》

곤도는 헤식게 웃으며 주먹을 내리웠다.

《이제 다시 란동을 부려 도자기생산에 지장을 주면 가만있지 않겠소이다. 재삼 간하건대 우린 결코 노예가 아니오이다.》

《알겠소, 알겠소, 난 그럼 아사꼬를 믿고 가겠소.》

비굴한 태도를 취하던 곤도는 얼른 말에 올라 가마터를 떠나버렸다.

젊은 녀인은 질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가지고 와 장정들의 피묻은 얼굴과 울산댁의 흙묻은 옷을 닦아준 후 박서방을 대신하여 직접 풍구채를 잡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추동했다.

《가마가 식기 전에 마저 바람을 불어넣자요. 우린 왜놈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자기자신들을 위해 일해야 해요. 불량제품이 무데기로 나면 놈들은 우리한테 봉미를 안 줄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굶어죽어 고향에도 못 돌아갈게 아닌가요. 자, 어서 마음들을 안정하고 일손을 잡자요.》

그리하여 다시금 도자기가 빚어지고 화구의 불길이 치솟았다.

로안의 열과 시간을 알맞춤히 보장한 후 화구들을 밀봉하고난 장정들은 차거운 개울물에 뛰여들어 활활 세면을 하고는 화구앞의 공지에 털썩털썩 드러누웠다.

그제야 젊은 녀인도 일손을 떼고 동네로 향했다. 머리태는 부녀들처럼 뒤로 꿍져올렸으나 발그레한 두뺨과 날씬한 몸매에서는 처녀의 티가 짙게 풍기는 미모의 녀인! 그는 다름아닌 정유왜란때 왜군들한테 붙들려 이곳으로 온 윤옥비였다.

옥비는 령주가 곤도네 집곁에 특별히 기와지붕까지 씌워 지어준 집에서 도자공인 70고령의 윤로인과 둘이 할아버지와 손녀사이가 되여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고있었다.

오늘은 조선사람들이 가시노미네마을에 첫발을 들여놓은 때로부터 일곱해가 되는 날이다.

매해 이날이 오면 사람들은 음식을 차려가지고 뒤산에 올라가 떠나온 고향과 헤여진 혈육들을 그리는 《고마제》를 지내며 망향의 슬픔을 위로하군 했다.

그래 오늘 낮에도 전례를 따라 제사터로 가져갈 음식을 준비하려고 윤로인보다 한발 앞서 집에 들어가는 옥비였다.

아궁에 불을 지핀 옥비는 어제밤부터 물에 담그었던 차좁쌀을 건져 떡보에 싸안치고 국가마로는 여름철에 뜯어다가 데쳐 말리웠던 산나물과 소금에 절구어뒀던 고등어, 송어, 련어같은 염물고기도 볶아냈다.

그가 반찬을 그럭저럭 원만하게 장만한 후 나무절구로 떡을 한창 쳐대는데 윤로인이 들어왔다. 왜땅에 끌려와 10년가까이 도자기구이로 육신을 혹사당하는데다가 마음고생까지 겪다나니 잔등이 낫가락처럼 휘고 얼굴은 온통 주름살이 덮인 키가 자그마한 로인이다.

김이 뽀얗게 서린 부엌안에서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가지고 부지런히 음식을 만드는 옥비를 본 윤로인은 미안한 기색을 지었다.

《네가 늘쌍 동자질을 맡아가지고 고생을 하는구나.》

《할아버님도 참, 아녀자가 동자질을 맡는거야 응당한 본분인데 무슨 그런 말씀이옵니까. 고생이야 사실 할아버님이 더 하시지요 뭐.》

이러며 새죽이 웃어보인 옥비는 어서 세면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라면서 질그릇에 더운 물을 가득 퍼담아 내다주었다.

면수건과 양재물덩이까지 받쳐준 후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문대며 되돌아와 다시 떡절구질을 했다.

정오가 되여 무명겹저고리차림을 한 윤로인과 음식광주리를 인 옥비는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면서 뒤산으로 올라갔다.

허리굽은 로송이 외톨로 서있는 펑퍼짐한 산등공지의 제사터에는 이미 숱한 사람들이 올라와있었다.

모두가 낡은 옷일망정 깨끗이 빨아 다려입었는데 집집마다 애써 마련한 햇곡식으로 밥, 떡, 강정, 완자같은 조선음식들과 갖가지 특색있는 료리들을 만들어가지고 와서 자리를 정돈하는중이였다.

올 사람이 다 모여들자 가마터의 도장이며 겸사해 동네 존위노릇도 하는 윤로인의 주관하에 제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제상은 조선풍습대로 차렸다. 맨 앞줄에는 《반좌갱우》라 해서 신패를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밥, 오른쪽에 국이 놓이고 국과 밥사이에 수저를 담은 시첩이 놓이였다.

둘째줄에는 《적전중앙》으로 적(꼬치구이)을 담은 접시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 육고기붙이와 떡국, 오른쪽에 물고기와 떡이 놓였는데 《어동육서》라 해서 물고기는 동쪽으로, 산짐승고기는 서쪽으로 몰아붙이고 《두동미서》라 해서 조기대가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놓았다. 그다음 간장종지를 놓고 《생동숙서》대로 김치와 생채는 동쪽에, 숙주(콩나물)와 산나물볶음을 비롯한 남새찬들은 서쪽에 벌려놓았다.

과일은 《홍동백서》라 해서 대추, 감, 귤같은것은 동쪽으로 밀어붙이고 배와 껍질벗긴 밤 같은것은 서쪽으로 갈라놓았다.

일년 사시절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는 어려운 생활고속에서도 오직 이날을 기다리며 품들여 장만하고 아껴온것들을 성의 다하여 차려온지라 상이 제법 알뜰하고 풍성하게 이루어졌다.

거기에다가 단군성왕의 존함을 새긴 신패를 중심으로 해서 각기 제 조상의 성함을 쓴 위패들을 단우에 주런이 놓으니 위세가 자못 엄엄하고 격식이 아주 틀스러워졌다.

희색이 만면한 윤로인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대중을 둘러보며 이해의 《고마제》를 선언하려는 때였다.

때절은 베잠뱅이를 입은 박서방이 헐썩거리며 제사터에 나타났다.

《미안하오이다, 도장어른.》

윤로인한테 먼저 량해를 구한 박서방은 옹배기안에 담아온것을 상 한쪽귀퉁이에 조심스레 내놓았다. 소금에 절였다가 찐 민물고기 서너마리와 귤 몇알이 전부였다.

박서방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것도 큰 성의라면서 고개들을 끄덕였다. 김해관가의 쇠부리터에서 쟁인바치노릇을 하다가 가족이 통채로 왜놈들한테 붙들려온 박서방은 토질병때문에 처와 딸을 한날에 잃고 홀아비로 궁색하게 살아오고있었다. 그는 원래 손재간이 좋고 눈썰미가 빠른 사람인지라 윤로인의 후비로 지목되여 그한테서 도자기제조기술을 넘겨받으면서 로인을 도와 가마터의 수공작업을 지휘해왔다.

《늘 빈 쌀단지를 놓고 타개죽으로 근근득생을 하는 처지인데도 저렇듯 성의가 지극하다니까. 이봐요 작은도장님, 이리 와 숨을 돌리시라요.》

옥비곁에 서있던 울산댁이 한발자국 저쪽으로 물러서면서 박서방을 옥비와 나란히 세웠다.

이러저러한 계기때마다 쩍하면 옥비와 박서방을 맞세우느라 왼심을 쓰는 그다.

여하튼 그러한 속에서 향불이 지펴졌다.

제관인 윤로인의 지명에 따라 늙은이, 남정, 아낙네, 아이 이런 구별로 나이순서를 맞춰가며 제상앞에 나와 서서 술을 붓고 절을 했다.

제상이 향작을 둔 뒤의 서북쪽하늘가에는 떠나온 조국이 있었다. 그쪽을 향하여 절을 하면서 매 사람들은 넓고 험한 바다건너의 고향땅에 죽어 묻혔거나 아직 살아있을 혈육들을 그리며 심중의 회포를 나누는것이였다.

속이 여린 녀인들이 먼저 쿨쩍거리며 눈물을 지었다. 잇달아 아이들도 울고 장정들도 울었다. 망향의 슬픔은 눈물로 변해 쏟아졌다. 비탄의 한숨은 어언간에 애절한 갈망으로 변해 서북쪽하늘가로 날아올랐다. 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여!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그리고 만백성을 보살피시며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켜주실 나라님이시여! 부디 걸출하고 령험스러운 사자를 보내여 이 불쌍한 중생들을 구원해주옵시오. 그 절절한 심정을 속으로 아뢰이면서 사람들은 꿇어앉아 깊숙이 허리굽혀 절을 하고 또 했다.

제를 끝낸 후 공지 풀밭의 한곳에 둘러앉아 음복례로 저마끔 성의를 다해 차려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누어먹었다.

사기잔에 술을 찰랑찰랑 넘치도록 부어 윤로인한테 올리던 울산댁이 중떠보듯 왼뚱같은 말을 꺼냈다.

《도장님, 이젠 손녀를 출가시킬 때가 되지 않았소이까?》

그 소리에 술잔을 받아들던 윤로인의 손이 주춤 서버렸다.

《무시게라구?》

《옥비를 출가시키지 않겠나 말이오이다!》

《음, 옥비? 물론 출가시켜야지. 헌데 어디 맞춤한 대상자가 있어야지.》

《작은도장님은 대상자가 아니오이까.》

울산댁이 박서방을 가리키며 아부재기를 치자 윤로인은 미간을 찌프렸다.

《어허, 실없는 소릴. 저 앤 귀랑자야. 생생한 처녀를 그것도 대감댁의 귀한 규수를 감히 어디다 맞세우는고? 아낙이 과히 새살스럽군.》

의외로 날벼락을 당한 울산댁은 금시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험악스런 왜나라땅에서 조선사람끼리 서로 의지해서 살게 하자는건데 그게 뭘 나쁘다고 욕설이오이까? 녀자나이 서른한살에 귀랑자 재세를 하는것도 가당치 않거니와 포로로 끌려온 같고같은 처지에 반상구별을 하는것도 적실치 않소이다.》

울산댁은 마구 대꾸질하며 옥비한테로 가시돋친 눈길을 돌렸다.

《옥빈 지금 령주의 후실자리를 탐내고있지?》

그러자 이상야릇한 눈총들이 옥비한테로 비발치듯이 날아들었다. 적의가 싸늘하게 내돋치는 시선도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윤로인이 술잔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단정하면 못써-》

《하긴 기와집에서 쌀밥을 먹으며 사는 사람의 마음을 우리같은 천민이야 알수가 없지요 뭐.》

울산댁은 이렇게 쫑알대다가 앵 해서 사람들 틈에 숨어버렸다.

다이묘놈의 특별한 호의를 받으며 남다른 생활을 하는 윤로인과 옥비를 빗대고 하는 그 흉질에 윤로인은 낯색이 꺼멓게 질려가지고 쓴입만 다셨다.

울상이 되여있던 옥비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산아래로 뛰쳐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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