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운명의 쪽배
1
세월은 다시금 갑진(1604)년에 이르렀다.
임진조국전쟁이 끝난 때로부터 6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으나 이 땅의 곳곳엔 아직도 전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한 속에서도 여하튼간에 한성은 지엄스러운 임금을 모시고 조정이 틀고앉은 나라의 도읍인지라 거리중심부의 일부 관청들과 가옥들이 다시금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며 어지간하게 복구되였다.
새해의 봄을 맞아 갖가지 꽃들이 울긋불긋 피여난데다가 명절까지 되자 한성안은 나라의 도성다운 맛을 풍기며 제법 흥성거렸다.
이른여름철의 뙤약볕이 행인들의 살을 내려지지는 한낮무렵 입에 거품을 문 파발 하나가 남한강나루쪽에서 다급하게 질주해와 한성 남문인 숭례문앞에 이르러 멈춰섰다.
몸통이 땀에 질벅하게 젖은 절다마가 량쪽 앞발통을 공중 들어올리며 호용을 지르는 속에 패랭이를 제껴쓴 파발군이 말잔등에 바싹 붙어앉은채로 《급보요-》 하고 성루의 파수군사들한테 숨가쁘게 웨쳐댄다.
명절분위기에 취해 마음의 탕개가 풀어져가지고 젊은 녀자들의 분홍치마자락이 창공에서 너풀거리는 그네터쪽에만 눈을 팔고있던 파수군사들이 웬 영문인가 해 기웃이 루대아래를 굽어보는데 파발군의 입에선 더욱더 청천벽력같은 웨침소리가 튀여나왔다.
《란이 났소- 젠장, 왜놈들이 쳐들어온단 말이요-》
그 소리에 파수군사들은 질겁을 하여 황황히 파발군의 첩보를 받으러 루아래로 뛰쳐내려왔고 오가던 행인들은 경악을 하며 그 자리에 굳어졌다.
왜란이 터졌다는 소문은 삽시에 한성안을 바람같이 퍼져돌았다.
곳곳의 거리들과 집집마다에서는 수년전의 화난이 되풀이되는가 하여 당장 놀란 소리가 튀여나오고 소동이 일어났다.
이튿날 아침에 열린 어전모임은 여느때없이 심각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원래 대궐에서는 상참이란것이 있어 그때마다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을 접견하고 며칠씩 간격을 두고는 조참이라는것이 있어 그때마다 임금이 근정전에서 신하들의 조회를 받아오는것이 상례이건만 아직 전란때 파괴된 궁성이 복구되지 못한 때라 림시로 협소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조회여서 례식을 차리기가 불편했는데 이날은 더구나 회리바람마냥 도성을 뒤흔든 불길한 소식으로 하여 조회청안이 숨막힐것만 같았다.
금빛이 번쩍거리는 곤룡포차림인 선조왕이 내시들의 옹위를 받으며 편전을 벗어나 조회청에 나타나자 《상감마마 납시오!-》 하는 전배내시관의 예령이 장내로 앞질러 날아들었다.
그러자 어제 생벼락같이 날아든 부산진첨사의 첩보를 놓고 서로 수군거리던 각기 직품에 따르는 의관차림인 조정관료들이 동반(문관), 서반(무관)별로 쫙 갈라져 품계에 맞게 제자리들을 차지하고 정숙히 읍례를 취했다.
월대우에선 통례원(궁중의 각종 의식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의 인의(종6품의 관리)가 읍을 한 자세로 길게 소리쳤다.
《숙배, 사배-》
인의의 말을 받아 찬의(통례원의 정5품관리)가 엄숙하고 정중한 소리로 웨쳤다.
《국구-응-》
길다랗게 말꼬리를 끌어맺는 그 소리에 맞추어 비단도포자락을 너풀 흩날리며 중신관료들이 바닥에 끓어앉는다.
《바이-》
찬의의 구령에 따라 중신관료들이 선조왕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했다.
《흐응-》
긴숨을 내그으는듯 한 그 음성에 맞추어 문무백관들이 고개를 든다.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찬의가 다시 소리친다.
《바-이-》
개개명관인 중신들이 다시금 엄숙하게 상감을 향해 큰절을 했다.
《평-시-인-》
찬의의 구령에 따라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고개만 숙여 읍례를 표했다.
운두가 삐주름한 검푸른 익선관을 쓰고 가슴이며 어깨며 잔등에서 다섯마리의 룡이 꿈틀거리는 홍색곤룡포를 엄엄히 차려입은 선조왕은 옥좌에 거연히 앉아 신하들을 한동안 둘러살피다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과인이 때아니게 경들을 조회청으로 부른것은 그네들과 허심하게 나라에 드닥친 막중대사를 상론하기 위해서요. 그 내막에 대해선 경들도 얼추 알고있겠기에 구태여 피력하진 않겠소.》
침중한 음성으로 몇마디 뇌이던 선조왕은 저절로 말을 끊고 한숨만 시름겹게 내그었다.
세해전인 신축년(1601)에 일본에서는 예전에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수립해놓았던 태합위주의 정권을 무시해치우고 새로운 막부정권이 세워졌었는데 그 내막인즉은 도요또미의 측근부하였던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반변을 일으켜 도요또미네 일당을 꺼꾸러뜨리고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것이였다.
새로 수립된 도꾸가와막부에서는 도요또미가 군림하던 때와는 다른 정책을 실시하였는바 그 일환으로 조선과의 통상을 추구한것이다.
본토의 새 막부로부터 통상을 개척할데 대한 지령을 받은 쯔시마도주가 수차례나 제 부하인 재판(조선관계의 일을 맡아보는 높은 직의 관원)을 띄워 조선에 본국의 화친의지를 알리다못해 자기가 직접 바다를 건너와 궁궐에까지 찾아들어 조선왕의 국서를 지닌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줄것을 요구했다.
조선으로서는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도꾸가와막부의 요구에 응하여 왜나라와 화친교류를 하자니 임진조국전쟁때 사무친 왜놈들에 대한 원한이 너무도 컸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왜국의 요구를 거절해버리자니 가뜩이나 조폭하고 사악스러운 왜놈들이 발끈 증을 내여 임진년때처럼 전쟁이라도 일으킬가봐 심히 우려됐기때문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날만 보내던중인데 어제 조정을 놀래우는 충격적인 일이 터졌다.
그 충격적인 일이란 다름아닌 부산진첨사가 띄운 급보였다. 그 급보의 내용인즉은 임진왜란때 일본에 잡혀갔던 경상도 유생이 배를 타고 도망쳐와 관가에 상소를 해왔는데 머지않아 왜국이 대군을 일으켜 조선을 침범하니 하루빨리 왜국과 화친교류를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실제로 현재 왜국에는 수십만의 상비군이 양병된 상태이고 숱한 병쟁기와 군량이 장만되여있다고 했다.
유생이 안고온 소식은 남해변방의 고을들을 설설 끓게 만들었다. 금시 임진왜란때와 같은 참혹한 전쟁이 또 터지는가 하여 관가의 벼슬아치들은 업무를 파하고 피난짐을 꿍지기에 급급했고 읍거리의 주민들과 외촌 농군들은 조정에서 어서 방비책을 세워주기를 바라며 생업마저도 잊고 한성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형편이였다.
그런 판국에 누구보다도 난처해진 사람은 다름아닌 국사를 떠맡은 선조왕이였다. 원쑤와는 절대로 상종하지 않는다는 대의명분을 줴버리면서까지 일시 국난을 모면하겠다고 왜국의 막부가 내여미는 화친의 손을 잡기가 죽기만도 못한 일이였고 그렇다 하여 또 왜국과 뒤틀리여 나라와 백성들을 임진왜란때와 같은 무서운 전란의 참화속에 빠뜨릴수도 없었다. 어째야 좋겠는지 궁냥이 바이 트이질 않아 전전긍긍을 하던중에 신통한 방안이 하나 떠올라 신하들과 그에 대한 의논을 해보려고 이렇듯 문무백관이 모인 조회에서 그 문제를 꺼낸것이다.
《과인의 생각엔 믿을만 한 사람을 하나 골라 왜국의 요구에 응하는척하면서 대마도(쯔시마)까지만이라도 건너가 왜국의 내정과 동향을 알아오면 좋을것 같은데 경들의 의향은 어떠한고?》
선조왕이 이런 말로 속뜻을 내비치기 바쁘게 왕년기의 령의정이 제 섰던 자리에서 한행보쯤 앞으로 나서더니 읍한 자세로 극구찬성을 표명했다.
《소신이 감히 출반(여렷이 있는데서 썩 나서는것)하여 아뢰건대 열백번 지당한 만고에 다시없을 선견지명이옵니다. 상감마마의 령험스러운 분부대로 일을 벌리면 우린 일거량득을 할수가 있사옵니다. 그에 대하여 구태여 구구히 까밝힌다면 크게는 나라님의 존엄과 조정의 대의명분에 손상이 없게끔 국사를 성사시키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사신왕래로써 림시 횡포한 왜를 달래이며 시간을 얻어 형세에 따르는 해당한 대책을 세울수가 있는것이옵니다.》
그 말에 문무대신모두가 감동과 찬탄을 엇섞으며 호응을 했다.
그러한 분위기의 흐름을 타고 잇달아 중년기의 우의정이 한걸음 나서서 선조왕을 향해 읍례를 표하면서 도리옥을 붙인 관모를 수그리고 웅글은 소리로 아뢰였다.
《령상의 의향에 소신도 동감이옵니다. 자고로 범을 잡으려면 직접 범의 굴에 들어가야 하듯이 왜국의 동태를 자상히 알고 그에 마땅히 대응하자면 기필코 어지를 받은 우리 사람이 왜땅에 건너가 그곳의 실정을 속속들이 헤집어보고와야 지당한줄로 아옵니다.》
말을 끝낸 우의정이 침방울을 입가에 묻힌채 제자리로 물러서서 숨을 돌릴 때 횡렬의 네댓번째 자리에 꺽실한 체구를 짓수그리고 서있던 형조판서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두 정승님네들의 의견대로 국책을 수립하오면 나라앞에 드닥친 난국도 타개하고 아울러 이번 소요의 주창자인 유생 김광이 진실로 구국안민을 바래 거사를 단행했는지 아니면 왜놈들과 한짝이 되여 량국의 교류를 추구하려고 그랬는지 그 본색을 까밝혀 조처함으로써 나라기강도 바로세울수가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면 민심은 절로 눅잦혀질것이니 이야말로 일거량득이 아니겠사옵니까.》
충의지심이 그득히 차넘치는 그 아뢰임에 여기저기서 호응이 일어나며 장내가 바람맞은 숲처럼 술렁거렸다.
세 신하의 기탄없는 찬사와 만장일치의 호응에서 신심을 얻은 선조왕은 저으기 흥이 돋아 미소를 머금으면서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하다면 그 일을 누가 감당해낼고?》
의논조로 무랍없이 던진 그 한마디의 말이 조회장을 금시 쥐죽은듯이 조용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입에서 침방울이 날리도록 겨끔내기로 말방아를 찧어대던 두 의정과 판서는 물론이요 량쪽에 줄느런히 읍하고 서서 이마를 조아리며 그들의 아뢰임을 긍정하던 3공 6경의 문무관료들 모두가 일시에 목을 움츠리면서 서로 눈치보기만 할뿐이다.
숨막힐듯 한 침묵이 한동안이나 지속됐다.
즉석에서 자진하여 중임을 맡아나서는 신하가 있기를 기대했던 선조왕은 그만에야 실망하고말았다. 침울해진 선조왕의 안광에 서서히 비구름이 끼였다.
어언간에 기분이 잡쳐버린 선조왕은 노여워진 시선으로 단아래의 너렁청한 마루바닥에 량수거지를 한채 송구스러이 허리굽히고 서있는 조정의 수십신하들을 둘러살폈다.
관모에는 도리옥을 붙이고 비대한 몸뚱이를 감싼 비단도포에는 쌍학흉배나 호랑이흉배를 붙인 문무백관 대개가 《평난공신》 (1589년 정여립의 반란을 진압하는데서 공적이 있는 관료들에게 준 칭호)이요, 《호성공신》 (l592년 선조왕을 의주까지 호위해간 신하들에게 준 칭호)이요, 《광국공신》 (선조왕때 조선봉건왕조 초기 실록을 수정보충한 편찬자들한테 준 칭호)이요, 《청난공신》 (1596년 리몽학일당의 반란을 진압한 무관들한테 준 칭호)이요 하는 충의지신들이다.
전에는 더없이 대견스럽고 미덥게 여겨지던 그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는 왜서인지 자리만 차지하는 무능한 대신같아 까닭없이 미워지며 그들한테 하사했던 요란한 공신칭호와 품계들이 한갖 빛좋은 개살구처럼 느껴져 선조왕은 자연히 심정이 서글퍼졌다.
(인걸이 없구나, 인걸이…)
선조왕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탄식했다.
그러느라니 당쟁에서 패하고 락향하여 시골에서 은둔생활을 하고있는 류성룡이같은 정의롭고 대바른 대감들과 임진조국전쟁때 국난을 가시기 위하여 처절격렬한 전장에 한목숨 아낌없이 내대고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리순신, 김시민, 조헌, 송상현, 신각 같은 충의롭고 용맹한 열혈무장들과 현재 외진 남해변방에서 수군장수로 군무하고있는 정기룡이같은 맹호무관들과 산같은 공적을 그대로 묻어둔채 한갖 유생으로 향촌에서 수수하게 살아가고있는 곽재우같은 충의지사들이 그리워졌다.
아마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조정의 중신으로 있었더라면 자진하여 중임을 떠맡아안고 야수들이 복수의 칼을 벼리고있는 왜국에로 서슴없이 건너갔을것이라는 생각으로 하여 현재 조정지반을 이루고있는 신하들이 더욱 민망스러웠다.
국가대업보다도 제 한목숨과 일개인의 영달만을 중히 여기는데다가 국사를 떠멜 자질 또한 갖고있지 못하는 신하들에 대한 괘씸한 감정이 살아나 선조왕은 별안간 꾸중조로 내뱉았다.
《각자 주변을 더듬어 적임자를 선출할지어다.》
벼락이 제 정수리에 떨어지기라도 한듯 문무관료들은 하나같이 흠칫 몸을 떨며 선조왕의 불찌 튕기는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밑둥박힌 부석처럼 굳어져가지고 오래동안 묵묵부답인 신하들을 씁쓸해서 굽어보던 선조왕은 속타는 한숨을 내긋다가 훌쩍 룡좌에서 일어나 편전으로 들어오고말았다.
바로 그날로부터 여러날이 지나서였다.
조정에 틀고앉은 제 동료들한테서 여사모사한 통고를 받았는지 경상도 도체찰사 리덕형이 긴급상주문을 올려왔다.
《금강산에 상거하는 중 유정이 왜국행차의 적임자인줄 아옵니다.》
그 충간을 받고서야 선조왕은 초야에 묻힌 옥과도 같은 그런 동량지재를 찾아 중히 쓸 궁리를 못한
그에 따라 하교(임금이 내리는 명령)를 지닌 선전관이 부랴부랴 강원도감영을 항해 떠나갔다.
헌데 선전관은 며칠후 저 혼자만 돌아왔다.
본인인 유정이 무엄하게도 어명을 거절하고 조정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괘씸할지고. 국운도 안중에 없는 그 안하무인의 불승을 잡아올려라-》
선조왕의 노기대발한 웨침이 궁성안에 섬찍한 분위기를 휘몰아오는 속에 의금부의 도사(종5품)가 포교들을 거느리고 다시금 강원도로 떠나갔다.
독기를 풍기며 내려갔던 그 도사일행마저도 빈손으로 돌아왔다.
유정이 거처하던 금강산의 절간에서 없어져 행처불명이 돼버렸다는것이였다.
바로 그 행처불명이 됐다던 금강산 중이 여러날만에 제발로 대궐에 찾아들어 조정을 또 한번 놀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