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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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중대보도는 비행사들의 가슴을 멸적의 의지로 더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였다.
새로운 곳에 와서 훈련을 진행하고 전투임무를 수행하고있는 기간은 비록 며칠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비행사들은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적들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음흉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책동한다 해도 즉시에 탐색하고 무자비하게 타격할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 숙련하였으며 전투임무도 여러번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비행사들은 가장 극악한 조건에서도 조종간을 놓지 않고 더욱 억세게 틀어잡았다.
하루훈련과 임무수행정형을 놓고 편대와 편대사이에, 주도기와 대렬기사이에 열띤 경쟁과 론쟁이 벌어졌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높은 수준의 전투기능을 련마해나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하루이틀사이 동생 진혁이가 의기소침해졌다. 그동안 그는 진철이와 한 약속대로 그처럼 어렵다던 비행전투방안을 제일먼저 실천에 옮기고 숙련하였다. 한다하는 비행사들도 혀를 내둘렀다. 진혁이에 대한 집단의 믿음과 사랑은 더욱 커졌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고 어깨가 처져다녔다.
무슨 일이 생긴것인가.
왜 그처럼 기세가 올라 윽윽하던 그가 풀이 죽어 다니는것일가.
비행사들의 하루훈련정형을 총화하고 그들의 새로운 결의까지 들은 후 교양실에서 나오던 유진철은 정치지도원임무를 맡아 수행하고있는 한철후를 먼저 만나보기로 하였다.
그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지내보니 한철후는 웬간해서는 얼굴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속이 깊은 정치일군이였다. 그는 비행사인 자기를 정치일군으로까지 키워준 당의 신임과 사랑을 매우 귀중히 여기는 의리깊은 사람이였다.
비행사들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정확하게 말하는것을 별로 보지 못하였다.
정치일군이라면 언변이 좋고 선동력도 있으며 와와 소리를 치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고있던 진철에게는 그가 너무 조용하고 온순한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가만 보니 그에 못지 않은 힘으로 비행사들을 교양하고 이끌어나가고있었다. 그는 비행사들 개개의 심리와 특성을 어찌나 잘 아는지 혀를 찰 정도였다. 이곳에 내려와서도 모여놓고 장황하게 말하는것은 보지 못했지만 비행사들을 한사람씩 빠짐없이 만나 이번 훈련과 임무의 중요성에 대하여 깊이 새겨주었다. 비행사들과 꼭같이 훈련하면서 언제 그런 일을 하는지 진철이로서도 놀라왔다.
하면서도 어려운 훈련과제가 나서면 솔선 앞장섰고 무슨 할일이 생기면 누굴 시키기 전에 자기 손으로 수걱수걱 해놓았다. 비행사들의 의견을 듣는데서도 허심하였고 제기를 받으면 제때에 해결해주군 하였다.
이곳에 갓 왔을 때 한 비행사가 휴식장에 고성기가 있긴 하지만 침실에서도 방송을 들을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정치지도원은 좋은 의견이라고 지지해주더니 뛰여다니며 그 문제를 제꺽 풀었다. 이런 그를 비행사들이 여간 따르지 않았다.
진철은 이곳으로 이동해올 때 대대장은 시원시원하고 머리가 픽픽 돌며 비행술도 부대적으로 소문난 지휘관이여서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치지도원은 그런 파악조차 없는데다가 말이 적고 온순한것 같아서 좀 아쉬운감이 없지 않았다.
진철은 이곳에 와서 벌리는 한가지한가지의 정치사업들과 비행사들을 이끌어나가는 솜씨를 보며 그를 잘못 본
그런 그가 눈에 알릴만큼 몇번씩이나 머밋머밋하는것을 보면 분명 자기에게 무슨 터놓을것이 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마침 교양실앞 휴식장에 아무도 없었다.
《정치지도원동무, 저기에 앉아 담배나 한대 태우지 않겠소?》
뒤따라 나오는 정치지도원에게 진철이 혼연한 목소리로 일렀다.
《난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그렇던가요? 그럼 앉아 이야기나 좀 하다 들어가기요.》
진철은 제먼저 휴식장의자에 가앉았다.
정치지도원도 따라가 그옆에 자리를 잡았다.
휴식장 한복판에 서있는 버드나무가 파란물이 오르고 새싹을 피우기 시작한 아지를 흐느적이고있었다. 한무리의 참새떼가 날아와 앉으려다가 아래에 사람들이 있는것을 보았는지 푸르릉 하고 다시 솟구쳐올라 저쪽으로 사라졌다.
맑은 하늘 한쪽에 구름 몇송이가 둥실 떠있었다. 봄날의 길어지는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가길 아쉬워하는것 같았다.
《정치지도원동무, 이번에 비행사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많은것을 느끼고 배우고있소. 우리 비행사들의 사상정신상태가 얼마나 좋고 신념과 의지가 얼마나 무쇠같은가를 더 똑똑히 알게 되였소.》
《대좌동지랑 제때에 깨우쳐주고 잘 이끌어주기때문이지요.》
《아니, 아니요. 무슨 그런 말을…》
진철은 손을 내저었다.
《그건 사실입니다.
대좌동지, 오늘도 보셨지요. 〈우리에게는 돌아올 항로가 필요없다. 그대신 타격목표를 더 달라. 우린 일단 유사시에 바다에 떠있는 적의 함선정도가 아니라 놈들의 아성까지 송두리채 들부셔버리겠다!〉 이것이 우리 비행사들의 신념이고 배짱입니다.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을것입니다.》
《나도 그걸 확신하오. 우리 비행사들이 어떤 동무들이라구.…》
진철은 정치지도원의 그 말이 다시금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온몸에 강렬한 새 힘을 북돋아줌을 느꼈다.
그는 총참모부에 매일 하는 사업보고에 훈련과 임무수행정형은 물론 비행사들의 이러한 사상정신적각오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다.
진철은 잠시후에 생각했던바를 터놓았다.
《우리 진혁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소?》
그 물음에 한철후는 진철을 마주보며 웃음부터 지었다.
《뭐 특별한것은 없습니다. 대좌동지도 잘 아시는것처럼 훈련이랑 잘하고 이젠 당당한 싸움군비행사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좀 바재이다가 내친김이라는듯 계속했다.
《이 며칠새 어쩐지 얼굴에 그늘이 좀 있는것 같아서…》
《나도 그래서 묻는거요. 정치지도원동문 한번 만나보았소?》
《나야 뭐… 늘 함께 있는데요. 다른 일이 없다고는 하는데… 대좌동지가 한번 만나보십시오.》
《정치지도원동무한테 터놓지 않는걸 나에게라구 훌훌 말할가?》
《허허… 그래도 형님이 아닙니까.》
정치지도원은 한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조심히 웃기까지 했다.
진철은 그제서야 방금 자기가 말한것처럼 그동안 동생 진혁이의 비행술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관심하면서도 마음속은 모르고있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형이라고 해서 알은체를 하고 자주 따로 만나면 다른 비행사들에게 주는 영향이 그리 좋지 못할것이라는 제딴의 생각을 했던것이다. 그래서 다른 비행사들이 훈련에서 성과를 거두었거나 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을 때는 목마까지 태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동생 진혁이에 대해서만은 덤덤해있군 하였다.
혹시 누가 칭찬하는 소리가 나오는 경우에도 손을 내젓군 하였다.
얼마전에 진혁은 미제침략군전략정찰기 《RC-135》에 대한 경계임무를 잘 수행하였다. 그즈음에 와서 미제는 우리의 인공지구위성발사정형을 탐지하려고 정찰위성을 통한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전략정찰기 《RC-135》를 북부국경지대령공에 은밀히 침입시키려고 하였다.
이미 용감한 우리 비행사가 《RC-135》기에 15메터까지 접근하여 발사단추를 누르면 뼉다귀도 추리지 못하고 하늘중천에 날려보낼수 있게 혼찌검을 낸적이 있었다.
그때 거기에 탔던 미제침략군 비행사와 승무원놈들은 얼혼이 다 빠지고 어떤 놈들은 미쳐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지라 적들의 비행기는 공공연히 함부로는 기여들지 못하지만 요즈음에 와서 자주 도적고양이처럼 기회를 노리고있었던것이다.
진혁은 이런 놈들을 견제할 임무를 받았었다. 그는 미명에 리륙하여 하늘도 바다도 푸른 한빛이고 륙지도 섬도 없는 하늘고공에서 30분나마 비행하였다. 그러나 대상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탐지기재들을 가동시키고 지상의 지휘소와 련계를 가지면 모든것을 명백하게 알고 더 용이하게 행동할수 있었지만 그렇게 할수 없었다. 그렇게 하는 시각부터 자기의 비행기가 로출되며 적이 오히려 선손을 쓸수 있었던것이다.
진혁은 탐지기재의 시동단추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몇번이나 가는것을 용케 참았다. 지상에서 토론한 적기에로의 돌입지점에 이르러 몇번이나
선회한 다음 자체의 판단과 결심으로 비행을 전환하였다. 가력체계를 련결한 다음 60도 급상승으로 고도 1만메터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제는
탐지기를 련결하고 전방감시를 하였으나 목표는 보이지도, 계기판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적들이 우리의 출격을 알아차리고 뺑소니를 친것이 아닐가? 아니, 그럴수 없다. 분명 매복권내에서 아직도 은페하고있는것이 틀림없다.)
진혁은 좌우보충기동을 하면서 전후좌우감시를 더욱 주의깊이 하였다. 그런 초긴장과 오랜 비행시간으로 해서인지 허상이 오고 착각현상이 일어난것 같았다.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는 쓰러질 권리가 없다!)
진혁은 이발을 사려물고 조종간을 더욱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그는 상하좌우기둥을 억척스레 반복하였다.
바로 그때 전방 50키로메터지점에서 불시에 대형물체가 눈앞으로 육박해왔다.
《적기다!》
진혁은 계기를 통하여 그놈이 우리 령공을 불의에 침범했다가 달아빼자고 기회를 엿본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적비행사놈도 그때 진혁이의 비행기를 알아보았는지 기수를 급히 꺾고 상승하면서 공해상으로 내빼는것이였다. 진혁은 그러는 놈의 앞을 꿰질러 혼을 뽑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지휘소와 련계를 가지였다. 지휘소에서는 적들의 도발에 걸리지 말고 사격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진혁은 몹시 아쉬웠지만 자유주의적으로 행동할수 없었다. 그는 적비행기의 주위를 몇번 더 돌면서 비행사놈의 혼을 뽑아놓은 다음 유유히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지상에서 이 모든것을 관찰한 지휘성원들과 항법사들은 진혁이의 능란한 비행술과 대담무쌍한 돌격정신 그리고 적정찰기의 기술적우세를 우리 식의 전술로 솜씨있게 제압하는것을 보고 여간 감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진철이만은 먼발치에서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을뿐 칭찬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견하고 사랑스러웠지만 형제간의 정으로 그것을 표현하고싶지는 않았던것이다.
그랬던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것인가?!
말이 적고 속이 깊은 정치지도원의 눈에 그늘이 진 그의 얼굴이 비꼈다면 그건 틀림없이 무슨 사연이 있는것이다.
《정치지도원동무, 내가 좀 덜퉁하고 짧게 생각했던것 같소. 실은 총참모부에서 내려왔다는 사람이 제 동생이라해서 자주 만나고 어자어자한다고 할것 같아서 대대장이나 정치지도원동무들에게 다 맡겨놓고는 별로 관심없이 지내왔소.》
진철은 솔직하게 자기 심정을 터놓았다.
《저희들이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사실은 대대장동무나 우리 비행사들이 원칙과 인정을 혼탁시키지 않는 대좌동지의 언행에서
《에에- 그런 말 마오. 난 아직 부족한것이 많은 사람이요. 오히려 이번에 내가 동무들속에서 많이 배우고 체험하고있소. 지금 일도 같지. 가까이에 있는 제 동생의 심정 하나 들여다볼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제구실을 똑똑히 한다고 말할수 있겠소.》
《아닙니다. 진혁동무는 쉽게 흔들릴 사람이 아닙니다.》
정치지도원은 진철이 동생때문에 심한 자책을 느끼는것을 보고는 오히려 당황해하며 어쩔줄 몰라했다.
《공연한 소릴 하다니, 아니요. 큰일도 눈앞에 두었는데 마침이요. 내 인차 진혁이를 만나보겠소.》
《고맙습니다.》
비행사침실쪽에서 노래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
우리의 날개우엔
우리의 날개아래 평양이 있다
비행사들이 어디에 가서나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노래였다.
진철은 그 노래의 우렁찬 울림속에 동생 진혁의 목소리도 들어있지 않을가 해서 귀를 강구었지만 가려낼수는 없었다.
《갑시다. 우리도 가서 함께 부르지 않겠소?》
《예. 그게 좋겠습니다.》
둘은 움쭉 일어나 비행사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다음날 저녁이였다.
식사가 끝난 다음 진철은 어제 정치지도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휴식장에서 동생 진혁이를 만났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밤기온은 산산하였다.
하늘에서는 보석을 쥐여뿌린것처럼 별들이 반짝이였다. 하늘이 맑아서인지 이밤따라 그 별들이 더 도글도글해보였다. 먼곳에서 처절썩- 처절썩- 하는 파도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형님, 찾았습니까?》
어둑시그레한 속에서 진혁이 불쑥 나타났다. 차렷자세를 하고 거수경례를 절도있게 했다. 말은 형님이라고 불렀지만 행동이나 제식동작은 군대물이 푹 뱄다.
진철은 움쭉해서 의자의 한옆으로 나앉았다. 다른 의자에 자리를 잡으려던 진혁이가 좀 주저하며 형이 내주는 자리에 조심히 앉았다. 오래간만에 형제간이 한의자에 앉아 어깨를 나란히 한것이다.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형인 자기의 손탁에서 자란 동생이다. 어머니없는 설음을 모르게 하자고 무척 마음을 썼지만 어떻게 그 깊이를 헤아릴길 없는 그처럼 다심한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할수 있었으랴.
철이 들고 커가면서는 자립성을 키워주고 헴을 빨리 들게 한다면서 엄하게 굴고 요구성을 높이였다. 그를 곁에 앉혀놓고보니 어릴 때 어머니도 없는 그를 좀더 살뜰하게 대해주고 사랑해줄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며 짜릿한 아픔이 가슴을 허비였다.
이제는 철부지가 아니다. 비행사가 되고 가정까지 이루었다.
《그래 요즈음 훈련과 전투임무를 수행하는데서랑 힘들지 않니?》
《힘에 부치지는 않는데 어쩐지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아서…》
《네가 결의한대로 새로운 전투방안을 습득하는데서 앞장서더구나. 며칠전 미국놈들의 전략정찰기 경계전투임무랑도 잘 수행한것 같다. 경험이 많은 비행사들과 비행지휘관들까지 입을 모아 칭찬하더라.》
《뭘요, 다른 비행사들이였다면 더 멋지게 해냈을겁니다. 나는 아직 멀었습니다.…》
진혁은 형님앞인데도 어줍게 대답하며 무릎우에 올려놓은 손을 주물럭거렸다.
《용타, 항상 그렇게
진철은 말과 행동거지가 몰라보게 달라진 동생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화제를 슬쩍 바꾸었다.
《진혁아, 내 한가지 물어도 되겠니?》
《형님두 참, 동생에게 승인을 받고 묻겠습니까?》
진혁이 진철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하얀 이발이 어둠속에 드러나는것으로 보아 웃음을 지은것 같았다. 밝을 때 보았다면 그 얼굴은 무척 사랑스러울것이다.
《하긴 그렇긴 하다만… 너 요새 마음속에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니?》
《예?!》
진혁은 이번에는 흠칫하며 형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인차 고개를 수그렸다.
가는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무릎우에 놓은 손으로 손톱여물을 썰었다.
침묵, 침묵… 먼곳의 파도소리가 아까보다 퍽 크게 들려왔다.
(정치지도원동무의 말이 옳구나. 무슨 곡절이 있는것이 틀림없구나!)
진철은 가슴이 철렁하였다. 방금전과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동생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 집안 친척들중에 지금 미국에서 살고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국에서 사는 사람?!》
아닌 밤중에 홍두깨내밀듯 동생의 입에서 불쑥 튀여나온 말은 진철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냈다.
《좀 차근차근 말하려무나. 난 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차근차근이구 천천히구 입에 다시 올리기조차 싫습니다. 미국놈들과 당장 대들이판 싸움을 벌리려는 때에 그런 악의 나라에서 사는 친척이 나타나다니요? 지금까지 자라면서 아버지나 형님한테서 그 비슷한 소리도 한번 없지 않았습니까?》
형님앞에서 지금까지 어려움을 타며 얌전하게 앉아 묻는 말에나 대답하던 동생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푸들푸들 떨었다. 마주잡았던 두손을 풀어 주먹을 꽉 틀어쥐고 제 무르팍을 약간씩 두드렸다. 말투도 아까와는 달리 거칠어졌다.
《너에게 누가 뭐라더냐? 누가 그런 소릴 해?》
《형님, 누가 말하든 그건 상관마시고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하고 명백히 답변을 주십시오.》
몹시 흥분한 진혁의 어조에는 아버지와 형을 못마땅해하는 감정이 짙게 배여있었다.
《진혁아, 분별을 잃지 말아. 사람이란 어떤 경우에도 똑바른 제정신을 가지고 남의 말도 듣고 분석판단해야 한다. 더우기 너야 하늘을 나는 비행사가 아니냐.》
《그래서 더 분한 생각이 듭니다. 나라에서는 나에게 얼마나 큰 믿음과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었습니까. 미국놈들이 우리의 인공지구위성을 요격하겠다고 날치는 때에… 놈들과 사생결단해서 싸워이겨야 하는 때에 그런 나라에서 사는 친척이 나타나다니요.… 그쯤한 일에 마음이 흔들릴 이 유진혁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쩐지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허참…》
진혁은 푸념질하고나서는 제딴에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김빠진 웃음을 터쳤다.
진철은 그러는 동생이 천진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내처두었다. 그렇지만 그런 랑설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알고싶어 다시 물었다.
《어데서 그런 말을 들었느냐?》
좀 주저하며 진혁이 맥없이 입을 열었다.
《집사람이 알려왔어요.》
《제수한테서?》
《예.》
진혁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앉았다가 잠시후에
엊그제 부대정치부에서 한 일군이 이곳으로 왔다. 그는 부대일군들과 군인들이 보내는 전투적인사와 함께 비행사가족들이 쓴 편지도 전투가방이 터지게 가지고왔다.
진철이도 그것을 알고있었다. 비행사들은 부대일군들과 군인들의 전투적인사에서 큰 고무를 받고 새로운 힘과 용기가 북받쳐 일떠섰다. 사랑하는 안해와 자식들의 편지를 보면서는 입이 귀밑까지 째지게 웃기도 하고 절절한 당부를 가슴에 새기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조국앞에, 사랑하는 처자들앞에 부끄럽지 않게 싸울 결의를 더욱 굳게 가다듬기도 했다.
비행사 안동혁의 안해가 보내온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
국성이 아버지, 당신이 떠날 때 보일락말락하던 국성이의 앞이가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젠 제법 딱딱 이발소리를 내며 어-어-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답니다. 마을에선 국성이를 보고 꼭 제 아버지를 빼닮았다고 해요. 당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않으면 누굴 닮겠어요. 나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것보다 어찌나 좋은지 밤이면 정신없이 애를 들여다보며 다독여준답니다.
〈어서 커라, 어서 커서 아버지처럼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비행사가 되거라. 그리고 용감하구 씩씩하구… 미남이 되거라.〉
이렇게 누가 들을세라 나혼자 중얼거린답니다.
요즈음 저의 마음은 기쁘기도 하고 당신 생각에 잠 못 들기도 해요. 이번 전투임무수행에서 기어이 빛나는 위훈을 세워주세요.
…
당신을 끝없이 사랑하는 안해 성옥이와 아들 국성이 씁니다.》
비행사 정영남의 딸애의 편지는 또 얼마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던가.
《…아버지가 보고싶어요. 정말 보고싶어요. 그래서 밤마다 아버지를 만나는 꿈을 꾸어요.
언제나 용감한 아버지.
미국놈들을 꼭 복수하고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있겠어요.…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딸 정원경 올립니다.》
비행사 조창기의 안해는 자기 마음도 쌍기가 되여 결전의 항로를 난다고 했고 차영전의 안해는 남편이 결사옹위의 길에서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다 해도 변함없는 모습, 변함없는 마음으로 영원히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비행사의 안해들에게는 가정을 이룬 다른 녀성들과 구별되는 자기식의 생활방식이나 계률이 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누가 배워준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도 없으며 남편들조차도 언제한번 요구한적이 없다.
그러나 비행사의 안해들은 그것을 가장 신성한것으로,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여기고있다. 경계선도 국경선도 없는 가없이 넓은 하늘에서 조국과 인민을 지켜싸우는 남편들과 마음도 몸도 하나가 되여 분분초초를 함께 보내는것이 그들이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비행장에서 리륙의 폭음이 울리고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 때면 남편과 꼭같이 뜬눈으로 지새는 그들이다. 갓 결혼한 신혼살림때에는 사랑이 샘물처럼 찰랑거리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피여오르는 불안과 위구심때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있었다면 지나가는 날과 흐르는 세월속에서는 그 진할줄 모르는 사랑이 지심깊은 곳에서 뿜어져나오는 활화산의 열도처럼 뜨겁고 반석같이 굳은 믿음으로 화하여 이번처럼 중요한 임무를 받고 먼길을 떠날 때에도 눈물을 모르는 녀성들로 되게 하였다.
그들은 요즈음도 몸은 비록 천리 먼곳에 있지만 마음은 낮이건 밤이건 하늘을 나는 남편들과 함께 있는것이다.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고 그렇게 절절히 그리워하며 그렇게 뜨겁게 포옹하고싶어하면서도 조국이 준 명령을 수행하기 전에는 절대로 집문턱을 넘어서지 말라고 하는 비행사의 안해들.
이들처럼 열렬하고 이들처럼 강잉하고 이들처럼 순결한 량심과 의리를 간직한 사랑스러운 녀인들이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 또 있겠는가.
유진철은 비행사들의 처자들에게서 온 편지를 함께 보면서 멀리 평양에 두고온 안해 경림이와 딸 철림이를 그려보았다. 그들도 군복입은 남편과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리라.
요즈음 안해의 몸은 좀 어떤지, 철림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는지.
불시에 보고싶고 그리움이 차올랐다.
그런데 제수는 동생 진혁이에게 어떤 소식을 전했기에 그가 이렇게 풀이 죽어가고 마음이 번거로와하는것인가.
그도 이젠 당당한 비행사가족이 아닌가.
진철은 아직 그 영문을 알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