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사향은 눈을 떴다.
얇은 창가림을 한 창문이 희붐히 밝아보였다. 자기는 침대에 누워있다. 밤이 새고 잠을 깬것이다.
온몸이 거뜬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잠을 잤다는것을 말해준다.
미국땅을 떠나올 때 밤에 잠잘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쩍하면 불면증으로 고통받고 어쩌다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리군 하는 사향이고보면 더럭 겁도 났다.
조선은 산천도 기후도 생소하고 사람도 다 낯설지 않은가. 잠자리가 바뀐데다가 시간대까지 다르니 수면보장이 힘들것이라고 여겼다.
아닌게아니라 첫날밤은 머리속에 의문표들만 자꾸 살아나서 잠을 설쳤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면서부터
머리속에 아직은 이 나라의 현실에 대한 의문표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안정되고 편하였다.
평양에 와서는 모든것이 달았다. 잠도 달고 입도 달고 코도 달았다. 보는것 듣는것마저도 달았다.
아침에 잠을 깨서 호텔에서 멀지 않은 대동강반에 나가면 공기가 어찌나 청신한지 걸탐스레 들이키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었다.
물맛은 왜 이리도 달가. 식탁에 마주앉으면 식욕은 또 왜 이리도 왕성해지는것일가.
사향은 맑은 샘물이 들어있는 수지통을 몇번 안되여 바닥내거나 식사때 음식그릇들을 다 비울 때면 한창 식욕이 왕성하고 어리광을 부리던 철부지로 갱소년된듯싶어 자기 혼자 피식 웃기까지 하였다.
선친들의 고국에 왔다는 생각에 이리도 마음편할가. 그들이 눈을 감으면서도 잊지 못하여 머리만이라도 돌려놓아달라던 그 산천, 그 사람들속에 안겨서일가.
예로부터 조선은 《맑은 아침의 나라》로 불리워왔다더니 그래서 이렇게 심신이 거뜬하고 정이 드는것인가.
안내를 맡은 혜정이와 자기사이에 엊그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이름할수 없는 행복감이 밀물처럼 그윽히 차오른다.
두눈동자가 흑진주처럼 반짝이고 입이며 코며 두볼이며 지어 머리칼밑에 반쯤 숨겨져 좀처럼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귀방울까지도 귀염성스럽게
생긴 발랄한 녀성 혜정이. 처음에 그를 처녀로 알고 이름뒤에 《양》을 붙여 부르다가 가정을 이루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애까지 있다는것을 알고는
그날 아침 그는 큼직큼직한 함박꽃무늬가 박힌 꽃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정히 싸들고 사향이 있는 호텔방에 나타났다. 바쁜 걸음을 걸은것같았다. 입언저리와 코방울에 잔구슬같은 땀발까지 약간 돋아있었다. 자분치 몇오리가 이마에 달라붙었다.
《혜정씨가 어떻게 아침일찍 나타났어요?》
사향은 눈이 둥그래졌다.
《좀더 빨리 온다는게… 선생님, 아침식사를 하셨나요?》
자기 묻는 말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전혀 다른것을 물었다.
《아직… 방금 식당으로 가려던 참인데… 함께 내려가요.》
그 말에 혜정은 안도의 숨을 호- 내쉬였다.
《아이, 그럼 됐군요.… 선생님, 식당식사를 한끼 건느지 않을래요?》
생긋 웃는데 두볼에 아직도 보조개가 또렷이 패였다. 얼마나 천진스럽고 정답게 말하는지 사향의 마음조차 맑아지고 동심이 되는것 같았다.
《오늘 아침 식사를 건느라?》
사향은 말뜻을 미처 몰라 이렇게 되받아외웠다.
《하긴 끼니까지 에울만 한 음식은 못되는거니까 맛이나 보시고 식당에 내려가셔도 됩니다.》
혜정은 또 한번 생글 웃으며 보자기를 풀었다.
《그게 뭔데?!》
《선생님 맛보시라고 내 손으로 지진 록두지짐을 몇짝 가지고왔어요. 좋아하시는지두 모르고 들고왔는데 흉을 보지 않겠는지.…》
혜정은 퍽 숫저어했다.
《?!…》
보자기안에 두툼한 모달리천같은 싸개가 또 있었다. 그것까지 풀고 보온밥통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식지 말라고 무척 왼심을 쓴것 같다.
《선생님, 왜 지짐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지지는족족 먹는거라구 해서 지짐이라구 한대요. 호호호…》
유모아도 재미있었다.
《따끈한것으로 잡수어야 제맛이 나는데…》
혜정은 그러며 집에서 가지고온 접시에 지짐을 한짝만 올려놓았다.
《잡순 다음 또 꺼내놓을래요.》
그러는 목소리에 응석기가 섞였다.
연한 록색을 띠면서도 골고루 노릿노릿하게 익은 지짐짝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콕 찌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볼샘에서 군침이 스르르 돌았다. 무슨 흰 무늬같이 네모난것이 지짐짝 한가운데 잘 어울리게 박혀있었다.
보온밥통 말고도 또 다른 작은 꽃단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갓김치가 담겨져있었다. 마늘과 파를 다져넣고 겨자를 적당히 섞어만든 초간장그릇도 있었다.
《선생님, 어서요.》
혜정은 사향의 손에 준비해가지고온 저가락까지 쥐여주었다.
사향은 목이 탁 메고 눈굽에 눈물이 핑 어렸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할머니와 부모들이 세상을 떠난 후 인정에 주리고 메말라 살아온 사향으로서는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도저히 영문을 알수 없었다. 저가락을 받아쥐기는 했으나 선뜻 접시에 손을 내밀수가 없었다.
《혜정씨, 먹어도 알고나 먹어야지.…》
《선생님두 참, 알고 모르고가 있어요? 잡수시면 되는거지요.》
《그래두…》
《먼저 어서 한짝 들어요. 그래야 사연도 말할래요. 어서요.…》
그가 권하는 목소리가 너무도 곡진해서 사향은 접시의 지짐을 들어 한입 베였다. 그랬던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두번에 다 먹어버렸다. 혜정이 밥통뚜껑을 열고 또 한짝 꺼내놓았다. 그러면서 조용조용 말해주었다.
《실은 우리 경수 아버지가 이 록두지짐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도 잘 청하지만 내 손으로 자주 지져 밥상에 놓군 하지요. 어제 저녁에도 록두지짐으로 포식했는데 글쎄 우리 경수 아버지가…》
혜정은 사향을 마주보다 입을 가렸다.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애아버지되는분이 어쨌게요?》
《나더러 〈여보, 당신 요즈음 이국땅에서 온 기자선생님과 함께 다닌다는데 이 록두지짐을 좀 맛보이게 하면 어떻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아유, 그 선생님이 미국땅에서 살긴 하지만 기자여서 세계 안 다니는 나라가 없겠는데 우리 집에서 지진 이런 록두지짐을 대접해요?〉 이렇게 말했지요. 그랬더니 〈당신 뭘 좀 아는것 같으면서두 모르누만. 우리 나라의 이 록두지짐이 어떻다구 그러오? 영양가나 광물질, 비타민 같은것이 골고루 함유되여있는 장수식품인데다가 맛 또한 독특하지. 그리구 몸에 들어온 독성물질을 해독시키는 작용도 한단 말이요.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 인민들이 즐겨먹던 음식이였소.
하기에 우리
설사 아무리 진수성찬으로 지내는 선생님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을거요. 그러지 말고 래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번 솜씨를 보이오. 나도 곁에서 도울테니…〉 이러지 않겠어요. 안해야 가정에서 남편의 〈령〉을 따라야지 별수 있어요? 호호호…》
혜정은 또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부부간의 따뜻한 정과 가정의 행복까지 다 엿보게 하였다.
《그러니 오늘 아침 이 록두지짐은…》
혜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접시가 빌세라 놓아주는 록두지짐을 맛스레 들던 사향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이 지짐지지는 방법까지 김
《선생님 , 그렇습니다.》
《놀랍군요. 놀라와…》
사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혜정이 접시에 또 놓아주는 지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날 아침 사향은 록두지짐은 더 말할것도 없고 갓김치며 초간장까지 입술을 감빨며 맛있게 들었다. 혜정이 그래도 식당에 가서 정식으로 아침식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자 사향은 펄쩍 뛰며 한손으로 배까지 쓰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이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줄 알았으면 벌써 지져왔을걸.…
이제 선생님이 시간이 허락되면 우리 집에 한번 가시자요. 집구경도 하고 경수 아버지랑 함께…》
《혜정씨, 고마와요. 정말 고마와요.》
《그런 말씀마세요.》
《이제 집에 돌아가면 남편되는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세요. 혜정씨의 가정은 깨가 쏟아지게 행복할것 같애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혜정씨와 남편되는분사이에 있었던 로맨스랑 듣고싶은데…》
《별로 특이한것도 재미나는것도 없답니다.》
《왜? 다감한 혜정씨고 보면…》
주섬주섬 빈 음식그릇을 거두어 보자기에 싸던 혜정이 그러는 사향을 쳐다보며 방금전과는 달리 좀 새침한 기색을 보였다.
《선생님, 내 선생님한테 투정질을 한가지 하랍니까?》
《투정질? 아이, 재미있어요. 어서…》
《이제부턴 나를 부를 때 이름뒤에 〈양〉, 〈씨〉하는 말을 붙이지 말아주세요.》
눈을 곱게 흘긴다. 꼭 다정한 자매간인 동생이 제 언니에게 하는 엇드레질같다.
《그건 왜요? 난 처음에는 혜정씨를 처녀인줄로 알고 그렇게 부르다가 내 실수를 깨닫고 이제는 제대로 부르는줄 알았는데…》
《그 말이 좋은 말 같기는 하지만 우리 조국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고 이름뒤에 〈동무〉라고 부른답니다. 어쩐지 〈양〉, 〈씨〉하고 부르니 선생님이 남남으로 대하는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다는거지요? 그래두 어떻게 내가 〈동무〉라고 부를가.》
《왜요? 그럼 〈혜정이〉 이렇게 이름만 부르세요.》
《〈혜정동무!〉, 〈혜정이!〉 이렇게?》
《그래요. 얼마나 듣기 좋아요?…》
혜정은 사향의 손을 자기의 두손으로 꼭 포개잡았다. 따스한 정이 온몸에 전류처럼 퍼지는것 같았다.
《혜정씨, 그럼 나도 한가지 요구조건이 있는데…》
《또 〈씨〉…》
《참, 혜정동무!…》
《뭔데요?》
《혜정이 요구나 같아요. 이제부턴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는거예요.》
《예? 그건 안됩니다.》
《안되다니요?》
《사향선생이야 유명짜한 기자인데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요. 우리 나라에서도 선생님이란 말은 스승이라는 뜻으로 존경담아 부른답니다.》
《혜정이, 내가 무슨 혜정안내원의 선생님이겠어요. 오히려 이번 평양에 와서 혜정이한테서 많은것을 알고 배우고 가려고 하는데… 그러니 선생으로 말하면 혜정안내원쪽이…》
《아니, 그런게 아니예요.》
《이 이국민의 욕심같아선 날 〈언니〉라고 불러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진 않겠지요?》
사향은 애절함과 따뜻한 정이 실린 눈길로 혜정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향언니!》
혜정이도 물기가 그렁한 눈을 아래로 떨구며 입속으로 불러보았다.
《혜정이!》
《언니!》
혜정이 사향의 손을 꼭 잡은채 그의 한쪽어깨에 다소곳이 얼굴을 기댔다. 사향이도 혜정의 함치르르한 까만 머리칼에 한쪽볼을 기대였다.
평양에 와서는 보고 듣는것마다가 새롭고 놀라왔다. 많은것이 정말일가 하고 잘 믿어지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이였다.
식사를 하고난 사향은 그날 일정에 있는대로 참관을 떠날 차비를 하면서 안내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혜정이가 아니라 최성훈이 불쑥 나타났다.
《밤사이 불편한데는 없었습니까?》
늘 봐야 차림이 단정하고 인상이 밝은 그는 먼저 인사를 하고는 안부를 물었다.
《최선생이 어떻게 이렇게 일찍…》
사향은 뜻밖이여서 약간 의아스러워했다. 최성훈은 나이는 자기보다 아래고 젊지만 한 나라 성의 부국장이면 한다하는 국가관리인데 틀이나 격식같은것을 차리지 않고 만날 때마다 소탈하게 대해주었다. 사향은 그것이 여간 감사하지 않았다. 이날 아침도 그의 꾸밈없는 인사에 《잠도 잘 자고 식사랑 많이 했습니다. 불편한 점두 없구요.》라고 대답했다. 하면서도 혜정이대신 그가 나타난것이 궁금하였다.
《혜정이는 어데 갔는가요?》
《혜정동문 오늘 아침 비행장에 나갔습니다.》
《비행장에요? 무슨 손님들이 또 오는가요?》
사향은 묻지 않을걸 묻는다는 자책을 느끼면서도 혹시 혜정이 이제부터는 자기곁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닐가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혜정동문 동생마중을 나갔습니다.》
《동생마중이요? 동생이 외국에서 살고있는가요?》
《그런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완쾌되여 오늘 돌아온답니다.》
《동생이 무슨 병을 앓았게요?》
사향은 혜정의 가정에 그런 그늘이 있는줄도 모르고 지낸것이 미안스러워 최성훈에게 한걸음 다가서기까지 하였다.
《병을 앓은것은 없고…》
최성훈은 방금전과는 달리 퍽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혜정동무에게 막내동생이 있는데 인민군대에서 복무하고있습니다. 녀성해안포병이지요.
사향선생이 알고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인민군대에 감나무중대라고 불리우는 녀성해안포병중대가 있답니다.》
《감나무중대를 내가 왜 몰라요? 김정일국방
《예. 맞습니다.!》
최성훈은 놀라운 눈길로 사향을 마주보았다.
《미국땅에서도 소문이 짜하답니다.
그 중대에서 혜정의 동생이 군사복무를 한단 말이예요?》
《그렇습니다. 그런 중대에서 복무하던 혜정동무의 동생이 군사임무수행중에 한쪽눈을 다쳤답니다.
이 사실을 아신 김정일
《김정일국방
《예.
《병사의 눈을 고쳐주려고 그를 다른 나라에까지 보낸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김정일국방
사향은 최성훈이 하는 말이 도저히 자기로서는 리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물음까지 한것이다.
《혜정동무나 그의 동생은 랑림산골의 평범한 벌목공의 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민군군인들 누구나가 다
최성훈은 례사롭게 말했으나 사향이에게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날 사향은 최성훈이와 함께 참관을 하면서도 한 평범한 녀병사, 안내를 맡은 혜정의 친동생이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눈을 고치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몇번이나 혼자서 머리를 기웃거렸다.
랑림산골벌목공의 딸이 무슨 돈이 많아 비행기를 타고다니며 눈을 고치고 온단 말인가. 사향이 살고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더 말할것도 없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돈이 없으면 병을 고치기는 고사하고 병원에 가서 진찰 한번 받아보기 힘들다. 돈없는 사람은 병나면 죽어야 하는것이다.
더우기 나라를 지키는 군대는 훈련을 하고 싸움을 하다가 몸에 부상을 당할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수도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사향이로서는 난생처음 알게 되는 일이였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 가서도 들어본적 없는 사실에 접하고보니 도무지 믿게 되지 않았던것이다.
참관을 끝내고 저녁에 호텔에 돌아와보니 혜정이가 휴계실에 앉아있었다.
《언니, 돌아왔어요? 미안해요. 오늘 함께 다니지 못해서…》
사향이가 나타나자 혜정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며 몹시 반가와하였다. 아마 기다리고있었던 모양이다.
얼굴이 예전처럼 밝았다. 그렇지만 그 맑고 초롱초통하던 눈이 붉어지고 눈등이 좀 부석부석하였다. 무슨 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혹시 완쾌되여 돌아온다던 최성훈의 말과는 반대로 동생이 다친 눈을 그대로 가지고온것이 아닐가.
《비행장에 나갔던 일은 어떻게 됐지요?》
사향은 조심스레 이렇게 물으면서도 그의 아픈 상처를 다쳐놓지 않나해서 눈치를 살폈다.
《내가 비행장에 나갔다는걸 언니가 어떻게 알아요?》
혜정이 여전히 웃으며 사향의 팔까지 꼈다.
《왜 몰라? 최선생이 말해주었어요. 그래 동생이 돌아왔나요? 눈은 정말 고쳤어요?》
혜정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은 않고 들고온 손가방을 열었다. 그안에서 하얀 모조지봉투에 들어있는 사진 두장을 꺼냈다.
《내 동생 혜영이예요.》
사향은 얼결에 손을 내밀어 한장을 먼저 잡았다. 군복을 입은 단아한 처녀가 사향을 정답게 마주보았다. 맑은 살결이며 어깨우에로 올라가게 가쯘하게 자른 함치르르한 머리카락, 당실한 코마루와 어글어글한 두눈, 귀가 약간 처질사한 입술은 신통히 제 언니 혜정이를 닮았다.
혜정이보다는 애돼보이지만 군복을 입어서 그런지 오돌차면서도 무척 진중한 기품이 느껴졌다.
《이 사진이 우리 혜영이가 부상당했을 때 찍은것이고 그 사진이 이번에 눈을 고친 다음 찍은거예요.》
사향은 다른 사진까지 마저 받아보았다. 그 고운 군인처녀의 한쪽눈이 험상궂게 되여있었다.
(혜정이가 반대로 말하는것이 아닐가? 고운 두눈을 가진 사진이 부상당하기 전에 찍은것이고 그 험상궂은 눈을 가진 사진이 치료를 받은후에 찍은것이 아닐가? 목숨을 건진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겠는데 이렇게 아무 흔적도 없이 고쳐놓을수 있을가?)
사향이 어정쩡해서 그저 두 사진을 자꾸 번갈아보았다.
그러는데 혜정이 웃으면서도 손수건으로는 연방 눈굽을 찍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우리
혜정은 참지 못하고 사향의 한쪽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아마 혜정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동생을 만나는 시각부터 너무도 고맙고 격정이 커서 계속 이렇게 눈물을 흘렸을것이다. 그래서 눈이 부엇으리라.
세상에 이런 희한한 일도 있는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떠나간 고국에는 쉽게 믿기 어려운 이런 일만 가득차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너무도 모르고 살아왔고 은근히 경원시하며 찬서리발을 가슴에 안고있었으니 이 무슨 죄되는 일인가.
혜정의 등을 어루쓸며 사향이도 그의 머리우에 뜨거운것을 쏟았다.…
그런 혜정이가 오늘도 나타날것이다.
친동생처럼 사랑스러우면서 매사에 빈틈이 없는 그에게 내 가슴속에 품고있는 의문표들을 하나씩하나씩 없애기 위해서라도 많은것을 알아보고 부탁하리라.
정말 이 나라는 내가 평양에 와서 보고 느끼는 그대로일가. 리면에 서방세계가 그처럼 요란스럽게 떠드는 그 무슨 《석연하지 못한것》들이 깊숙이 숨겨져있지 않을가?
아니야! 이 나라는 확실히 다른 나라들과 다른것 같다.
이 나라는 아직 썩 잘사는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잘산다고 허세를 부리며 부를 탕진하고 황금을 만능으로 여기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 없는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박하고 수수하다. 권세와 돈, 직업이나 신앙같은것에 따라 처지가 다르고 차별을 받고 사는것 같지 않다. 모두의 얼굴은 밝고 희망과 신심에 넘쳐있다. 지향이 명백하고 목표가 뚜렷하다.
나라의 재부속에 자기의 몫도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 확신이 큰것 같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것 같다.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없다고 머리를 숙여 굽신거리거나 구차스럽게 손을 내밀고 동냥하는 로인들이나 아이들도 없는것 같다.
미국이나 서방세계에서처럼 거리의 뒤골목에 욱실거리는 실업자, 거지, 매춘부, 강도, 거간군, 술주정뱅이, 마약중독자, 몽유병환자 같은것은 찾아볼래야 찾아볼수 없는것 같다.
이런 나라를 나의 선친들은 왜 그리도 쉽게 버리고 떠났을가. 아니, 쉽게야 떠나지 않았겠지. 그때는 제 나라가 힘이 약하여 강자에게 먹히우는것이 숙명이라고 여겼겠지. 사람들을 몰살시킨다는 원자탄바람에 할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니였다고 언젠가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았는가. 히로시마나 나가사끼의 수십만 생명체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한줌 재로 만든 미국이라는 나라가 휘두른 원자탄마귀때문에 이역만리 타향에서 사람의 존엄이나 가치같은것은 다 잃고 살았다고 했지. 그때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처럼 제 나라를 믿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생각을 했더라면 선친들, 우리 가정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가.
조국을 버리고 떠난 수치와 죄책감만 없어도 그 후손이 제 선친들의 고국에 와서 품고온 사진조차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고 이렇게 바재이는 일이야 없지 않을가.
그래도 이 나라는 나를 따뜻이 대해주고있다. 탓하지 않고 차별없이 대해주고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모든것이 달다.
혜정이와 같은 좋은 안내를 만나 마음속에 꽁꽁 싸안고온 함통을 열고있다. 아직 활짝 열어젖히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열고 한가지씩 조심스럽게 알아두고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해가 떠오른것 같다. 한줄기의 해살이 엷은 창가림을 한 창문을 거쳐 방안을 불그스레 물들였다. 밖에서는 잠을 깬 새들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