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7)

 

이튿날 해가 떠오르자 서경을 나선 임금의 행차는 북행길에 올랐다.

설경성을 임금의 행차속에서 찾아볼수 없었다.

이 행차에 이름을 올린바도 아니고 그저 홍자번의 줄을 타고 몽골에 가려 한것이니 가고싶으면 가고 싫으면 마는것은 설경성의 마음대로였다.

몽골행을 단념한 설경성은 어제저녁 홍자번에게 제 뜻을 알리고 서경에 떨어진것이였다.

헤여지기를 무척 아쉬워하는 홍자번을 바래운 설경성은 서경수박패를 찾아나섰다.

서경수박패가 하도 유명한지라 몇사람에게 알아보았더니 장수봉(대성산)너머의 탑골이라는 곳에 거처하고있다는것이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가니 불과 반나절만에 탑골이 나타났다.

이 고장이 탑골이라 불리운데는 고구려시기 절간을 지으면서 세웠던 7층석탑이 그대로 남아있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탑골사람들 말이 요즘 수박패가 북쪽에 치솟은 청운산골안에서 무술을 수련한다는것이였다.

정오무렵 청운산앞에 이른 설경성은 야!- 하는 탄성을 절로 터치였다.

서경은 평탄하기로 유명한 고장인데 문득 앞을 꽉 메운 큰 산이 볼수록 장관이였다.

기묘한 봉우리들이 청룡이 평지돌출하여 하늘로 날아오르는듯 치솟은 그아래에 흰구름들이 뭉게뭉게 떠있는 모양새가 이름그대로 청룡산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이런데서 무술교련을 하는것을 보면 수박패가 지세도 중시하는 모양이였다.

속이 출출해진 설경성은 마을에 있는 주점에 들어가 점심을 청했다.

설경성이 점심상을 차려주는 녀주인에게 물었다.

《주모님, 청운산에서 수박패를 만나려면 어느 골안으로 가야 하오이까?》

사발에 막걸리를 부어주며 녀주인이 말했다.

《길손은 타고장사람인가본데 백운사에 가시우다.》

《백운사라니요?》

녀주인이 열려있는 뒤문으로 손을 들어 가리켰다.

《백운사는 저 골안에 있는데 백운대사님이 제자들에게 무술을 가르친다우.》

설경성이 의아해하였다.

살생금지를 계률로 엄히 여기는 절간에서 그것도 스님이 사람을 죽이는 술법을 가르치다니…

녀주인이 의아해하는 설경성의 태도가 이상하다는듯 싱긋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보였다.

《백운대사님은 무술이 이거라우. 서경의 젊은이들치고 백운사에서 무술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우. 백운사에서 무술을 닦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수박패라고 하는데 말을 똑바로 한다면 온 서경이 수박패라고 할수 있다우.》

녀주인이 자랑조로 말했다.

《백운대사님은 지략에서도 이거라우. 몽골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백운대사님이 기묘한 계책을 써서 적을 쳐부셨다우. 그래서 몽골놈들은 우리 마을에는 얼씬도 못했다우.》

그제서야 설경성은 깨도가 되였다.

살생을 바라지 않는게 불가의 계률이라지만 제 나라, 제 겨레를 무참히 짓밟으려 하는데야 외적을 못 본척 념불이나 외우고있겠는가.

점심을 먹은 설경성은 인사를 남기고 주점을 나섰다.

벼랑과 바위투성이의 산을 끼고 얼마쯤 가니 과연 절간이 있었다.

절간에서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마주 달려나오고있었다. 절간에서 무술을 닦는 젊은이들이였다.

길옆으로 비켜선 설경성은 의문어린 눈으로 지나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래자루를 등에 진것은 흔히 볼수 있으나 발목마다 빨간 끈으로 동여맨것은 보다 처음이였다.

왜서 발목을 동여맸을가?…

절문안에 들어선 설경성은 보다 의아쩍은 광경과 맞다들리였다.

본전곁의 승방마루에서 허연 수염으로 가슴을 덮은 로승이 한 젊은이를 눕혀놓고 입에 무엇인가를 넣고있었다.

주모의 말이 백운대사는 80고령이고 머리에도 수염에도 온통 눈을 떠인듯 하다 했으니 그 로승이 백운대사인것 같았다.

무엇때문에 저럴가? ·

가까이 가보았더니 로승이 젊은이의 이발을 치료하고있었다.

로승의 곁에 있는 숯불이 담겨진 화로안에 검정콩알같은것이 몇알 있었다.

호기심에 설경성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데 로승이 허리를 펴며 젊은이에게 말했다.

《다시는 이발이 쏘지 않을거네.》

그 말에 설경성은 은근히 놀라왔다.

앓던 이발이 다시는 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신기한 비방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 비방을 배울수 있다면…

설경성을 본 로승이 뜨락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어데서 오신 시주님이요?》

설경성은 제 소개에 이어 백운사를 찾아온 사연을 아뢰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로승의 두눈이 적의로 번쩍였다.

《감히 홍다구따위가? 그런 놈이 나타나면 온 마을의 개들이 짖어댈거네.》

이윽고 로승이 설경성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다니… 소승이 속세에서 백운이라 불러주는 이 절의 주지일세. 실은 소승도 그때문에 속을 태우던중이요.

며칠전 여기서 무술을 배우던 한 젊은이가 제집에 갔다가 몽골놈을 활로 쏘았다는것이 아니겠소. 왜 쏘았는고 하니 그놈이 몽골놈으로 둔갑한 상역적 홍복원의 아들놈이기때문이였소.

그런데 그놈이 몽골칙사일줄이야… 하여튼 이번 길이 무난해졌다니 마음이 놓이누만.

왔던김에 절구경이나 하면서 며칠 쉬시오.》

백운대사가 기뻐하니 이때라고 설경성은 그의 뒤에 서있는 젊은이를 가리켰다.

《방금 대사님은 저 사람에게 이발이 다시는 쏘지 않을거라 하였는데 그 비방을 알고싶소이다.》

백운대사가 두눈에 웃음을 머금었다.

《시주님이 의원이라는걸 깜빡 잊었댔소. 소승도 일찌기 의술을 배운바 있는 승의이기도 하오. 그동안 터득한 비방들이 좀 있는데 마침일세.》

마루에서 검정콩같은것을 집어든 백운대사가 그것을 설경성에게 내밀었다.

《이런걸 보신적 있소?》

설경성이 고개를 저었다.

벽에 기대놓았던 한길짜리 지팽이를 손에 쥔 백운대사가 그것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저쪽으로 가세.》

설경성이 백운대사에게 이끌려간 곳은 승방뒤의 터밭이였다.

백운대사가 터밭의 한가녁에서 두길높은 나무비슷한것을 가리켰다.

《이게 피마주라는건데 잎의 모양새가 삼(역삼)의 잎과 비슷하다네. 시주님께 보여드린게 피마주의 씨앗이요.》

설경성은 그제야 피마주씨를 약으로 쓴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피마주는 사시절 더운 남쪽나라에서 들여온건데 부스럼이나 련주창에 약으로 쓰이고있소.

껍질을 벗긴 피마주속씨를 보드랍게 갈아서 꿀에 개여바르면 부스럼이 잘 낫소.

그런데 피마주씨가 여간 독이 세지 않소. 어린 아이들은 열알가량만 먹어도 죽고마오.

이런건 피마주를 써본 의원이라면 누구나 아는것이고… 피마주씨가 앓는 이를 고치는 명약인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소. 소승은 아이때부터 이 절에 들어와 불도와 함께 무술을 닦았소.》

백운대사는 제 입을 가리켰다.

《젊었을 때 소승은 무술을 하다가 돌에 이발을 짓쪼았소. 그래서 어금이가 하나 깨져 반쪽만 남았소. 한해가 지났는데 그 이발이 썩으면서 쏜다는데… 아프다아프다고 해도 이쏘는것만큼 참기 어려운 아픔이 없는것 같네.

그때 의술을 배워주던 늙은 승의가 하는 말이 이아픔이 멎으면 이발을 뽑아치우자는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이아픔이 멎지 않았소.

그러자 승의는 또 불로 지지면 나을거라 했소. 그 말에 소승은 피마주씨를 생각해냈소. 피마주씨는 기름이 많아서 불이 잘 당긴다네. 그래서 껍질벗긴 피마주속씨를 숯불에서 불에 당길 때 그것으로 앓는 이발을 지졌소.

열번쯤 그렇게 하였더니 이아픔도 멎고 성한 이발처럼 음식도 씹을수 있었다네.

그때부터 이 비방을 써서 사람들의 이아픔을 고쳐주었네.》

백운대사는 웃으며 손에 쥔 지팽이를 내보였다.

《이 지팽이는 피마주대를 잘라 만든것인데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서 로인들에게 좋다오.》

이어 피마주로 다른 병들을 고치는 비방을 알려주었다.

설경성이 재미나는 옛말을 듣는것 같아 감탄하는데 달리기를 하던 젊은이들이 뜨락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설경성이 급히 그들을 가리켰다.

《대사님, 저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발목을 동여맸소이까?》

배움의 의욕이 두눈에서 이글거리는 설경성을 보며 백운대사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 사람이 보통사람이 아니로구나.

《그건 래세에 드신 이전 주지대사께서 배워준 비방일세. 발목을 동여매고 달리면 다리와 허리힘이 보다 세진다네.》

거듭 모르던것을 알고보니 설경성에게는 백운대사가 신선인듯 돋보였다.

《나무아미타불, 독화살의 독을 푸는 시주님앞에서 의술을 론하는게 참 멋적소.》

설경성은 게면쩍어하는 백운대사를 존경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제발 터득하신 비방들을 모두 가르쳐주소이다. 전 사실 그런 비방들을 배우고싶어 집을 나선 사람이오이다.》

《그렇다면…》하더니 백운대사가 젊은이들에게 일렀다.

《오늘은 자네들끼리 교련하게.》

백운대사가 천천히 뜨락을 거닐며 말했다.

《적지 않은 늙은이들이 그 몹쓸 풍비(중풍의 후유증)로 고생을 하고있네 소승도 한때 그 고통을 겪어보았네. 약이란 약은 다 써보았지만 효험이 신통치 못했소.

그래서 따져보았더니 풍비라는게 음기가 부족해서 오는 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음기를 돋구는데서 몸을 움직이는것보다 더 좋은 처방이 없는지라 그날부터 손가락, 손목, 발목, 팔굽, 무릎, 목이며 허리 하여간 뼈마디라고 하는건 다 움직이기를 극성이라 할만치 하였네.

그랬더니 점차로 마비되였던 팔다리가 풀리는게 아니겠나. 그래서 보는바와 같이 몸이 성성해졌다네. 의서에서는 중풍(뇌출혈과 뇌혈전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 올것 같으면 봄과 가을에 삼리혈과 절골혈에 뜸을 뜨라 했는데 그건 사실 실속없는 말이라 아니할수 없네. 아, 누가 일부러 그런걸 생각하여 뜸을 뜬단 말인가.》

백운대사가 불쑥 질문을 꺼내였다.

《시주님은 사람이 마시는 물이 어떤게 더 좋다고 생각하오?》

설경성은 딱히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우물거렸다.

《자고로 도를 닦아온 사람들은 례외없이 물좋은 산에 거처를 정하였소.

불가에서는 사원자리를 택할 때 일수, 이지, 삼용을 중시하네. 말하자면 절간의 명당자리로는 첫째로 물이 좋아야 하고 둘째로는 지형이 좋아야 하며 셋째로 시주를 받는데 유리한 곳이라야 하네.

그중 물을 으뜸으로 치는것은 물이 좋아야 정신이 맑아지고 속탈이 나지 않아 도를 잘 닦을수 있기때문일세.

그럼 어떤 물이 좋은 물이라 하겠소? 그 빛갈이 구슬인양 맑아야 하고 아무런 냄새도 없어야 하며 맛이 달고 성질이 유순하면서 차고 더움의 변함이 적은 샘물이라야 하네. 말하자면 랍설수나 이슬의 성질을 다 갖춘 물이라야 하오.》

그제서야 의서에서 읽었던 좋은 물에 대한 글귀가 생각난 설경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랍설수라고 할 때 동지가 지난 뒤로 오는 세번째의 술일에 받은 눈을 녹인 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성질이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없는 랍설수는 온역(급성돌림성열병)이라든가 술독으로 오는 열나기, 황달을 고치며 여러가지 독을 푸는데도 효험이 있다.

그러나 이슬은 사람에게 좋다는것은 알아도 써본적 없었다.

《이슬을 아침마다 빈속에 한보시기씩 마시면 중풍도 막을수 있고 심과 신이 다 좋아진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을수 있소이까?》

설경성의 물음에 백운대사가 힘있게 대꾸했다.

《물론이지. 심이나 신이 나빠서 얼굴이 부석부석해진 사람에게 이슬로 아침마다 세면을 시키면 인차 가라앉네. 그래서 이슬이 약이라고 하는것일세.

시주님은 정신을 맑게 하는데 오미자가 좋다는걸 아오?》

오미자를 페가 허한 병자들에게 써준 설경성이였지만 그것이 정신을 맑게 하는데도 좋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였다.

고개를 젓는 설경성을 건너다보며 백운대사가 말했다.

《흔히 의원들은 오미자가 페나 간이 나쁜 사람들 그리고 설사를 하고 오줌을 자주 보는 사람에게 좋다는것은 알지만 그것이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데 대해서는 관심하지 않고있네.

불경을 깨치려면 한오리의 정신도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게 용이한 일이 아닐세.

그것을 용이하게 하자고 흔히 차를 마시는데 차란게 저 남쪽고을들에서 나는 물건이라 우리 서경과 같이 추운 고장에서는 쉽게 구할수 없지 않나? 반대로 추운 고장에는 오미자가 흔하니 그래서 오미자를 쓰면 좋다는거네.》

시간이 흐를수록 백운대사에게 매혹된 설경성은 그의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고싶지 않았다.

《시주님은 심, 다시말해 염통이 좋고나쁨을 즉시에 가려보는 법을 아오?》

그것도 설경성이 아직은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비로소 설경성은 백운대사가 거듭 질문으로 상대의 정신을 집중시켜놓고 일깨워주는 수법을 쓰고있음을 간파했다.

《소승은 오랜 기간 무술을 하면서 나름대로 그 비법을 터득해냈소. 한되짜리 물병에 가득 채운 물이 가는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는동안

사람의 맥박을 재여보고 그다음 그 사람을 힘껏 삼백보를 달리게 한다네.

그다음 또 같은 수법으로 맥박수를 세지.

그렇게 해서 달리기후의 맥박수가 그전의 맥박수보다 한배반정도이면 심장이 괜찮은것으로, 두곱이상이면 좋지 못한것으로 판단한다네.》

백운대사가 제가 터득한바를 구술하는데 끝이 있을상싶지 않았고 그말마디들이 설경성의 귀에 쏙쏙 흘러들었다.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은 풍한사의 독기를 심하게 받기때문에 페가 나빠지기 쉽다는것 그래서 들깨를 장복하면 해수(천식)나 로채(페결핵에 해당되는 병)와 같은 병을 막을수 있으며 육체적부담이 심한 장사들에게는 검은콩과 마를 먹여야 한다는것, 공복에 고된 일이나 무술을 시키면 근육아픔을 비롯한 여러가지 병에 쉽게 걸린다는 등 백운대사의 이야기는 저녁식사후에도 계속되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