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6)

 

설경성이 강윤소의 방을 나서니 그를 잡아끌던 홍자번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판병부사어른께서 자네가 병자를 보아주라고 분부하셨네.》

《이번 일행에 의원이 여럿이나 있는데 왜 나에게 그런 일을 시킨단 말인가?》

《그럴만해서 그러니 어서 가기나 하세.》

홍자번에게 이끌려 어느 한 방에 들어선 설경성은 놀란 눈으로 누워있는 병자를 굽어보았다.

할라트(두루마기 비슷한 몽골옷)를 입은거며 그곁에 나딩구는 유진그(중절모처럼 생긴 몽골모자), 그보다는 머리를 깎은 모양이 병자가 몽골사람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몽골사내들은 웃머리의 한가운데만 조금 머리털을 남겨두고 빡빡 깎아치우는데 그것을 가리켜 개체라고 하였다.

설경성이 의아해하는 눈길로 홍자번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야 몽골사람이 아닌가?》

홍자번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병자가 들을세라 설경성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사람은 우리처럼 고려사람일세. 자네도 홍복원이란 이름을 들었지?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일세.》

그 말에 설경성은 끓어오르는 격분에 못이겨 주먹을 불끈 쥐였다.

고려사람치고 홍복원이라면 이를 갈지 않는 사람이 없을것이였다.

나라의 북쪽고을에서 나서자란 홍복원은 수십년전 살례탑이 쳐들어왔을 때 투항하여 놈들의 길잡이군이 되였고 나중에는 고국을 해치려고 반란까지 일으킨 극악한 역적이였다.

어떻게 하나 대동강이북을 몽골에 섬겨바치고 그 대가로 그 땅을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되려던 그놈을 나라에서는 군사를 풀어 잡아들이게 하였다.

이에 질겁한 놈은 몽골로 달아나서는 외적이 준 동경총관이라는 벼슬감투를 뒤집어쓰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국을 해치는짓만 일삼았다.

홍복원이야말로 열두번 릉지처참을 해도 시원치 않을 상역적인데 그놈의 아들을 치료하라니 이게 제정신이 있는짓인가.

설경성은 다짜고짜 홍자번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섰다.

밖에 나온 설경성이 홍자번에게 삿대질을 하였다.

《자네 날 무엇으로 아는거야? 그렇게도 역적놈을 위해주고싶다면 자네나 하란 말일세.》

성이 난 홍자번이 두눈을 부릅떴다.

《누군 뭐 저놈을 위해주고싶어 이러는줄 아나. 저놈을 살려내라는건 판병부사어른의 뜻이네.》

리성을 잃다싶이 한 설경성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 아니라 그 하내비의 분부래도 난 듣지 않겠네. 그런 역적을 위해 의술을 배운게 아니란 말일세.》

홍자번도 소리쳤다.

《자네가 뻗치면 성상페하께서 어지를 내리실거네, 그래도?》

두눈이 떼꾼해진 설경성이 한걸음 물러섰다.

《그놈이 뭐길래 어지를 내린단 말인가?》

한결 기세가 수그러든 설경성의 태도에 홍자번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놈은 아비때부터 몽골사람으로 둔갑했으니 고려사람이라고 할수 없네. 그놈은 아비가 하던 동경총관이라는걸 물려받아가지고 이번에 우리 임금님을 모셔오라는 몽골임금의 어지를 받고온 몽골칙사란 말일세.

헌데 그놈이 누구라는걸 어떻게 알았던지 오늘 서경사람들이 활로 쏘질 않았겠나.》

설경성은 또다시 분노가 끓어올랐다.

서경사람들이 죽이자 하는 놈을 내가 살려야 한단 말인가?!

《난 그놈을 살릴수 없네. 정 그놈을 살려주고싶거든 어의들에게나 부탁해보게.》

홍자번이 또다시 성이 나서 두눈을 흘기였다.

《어쩜 그렇게도 코막고 답답한가. 어의에게 부탁해도 될것 같으면 벌써 그랬지. 그놈은 독화살에 맞았단 말일세. 독화살의 독을 풀수 있는 사람은 내곁에 자네밖에 없네.》

설경성이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그런 잔재간때문에 궁지에 빠지다니…

예로부터 어느 나라나 화살촉에 바르는 독을 만드는 비방을 극히 엄수해오고있었다.

그 비방이 알려지면 독을 풀수 있기때문이였다.

대대로 의원을 해온 설씨집사람들은 전란이 일어날 때면 솔선 용약원으로 나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나날 이웃나라들에서 쓰는 화살의 독까지 모두 푸는 비결을 얻어내였다.

그 비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설경성인것이였다.

약이 오른 설경성이 땅에 대고 침을 내뱉았다.

《운지, 네가 내 친구가 맞아? 자네만 입을 다물고있었더라면 그 어른이 그런 분부를 내렸을게 뭔가 말일세.》

설경성을 설복할수 없음을 알아차린 홍자번이 무작정 그의 등을 떠밀었다.

설경성이 홍자번에게 떠밀려 들어선 방에서는 판병부사 리장용이 여러 사람들과 한창 무엇을 의논하고있었다.

성이 나서 들어선 두 젊은이를 본 리장용은 대뜸 그 까닭을 짐작했는지 손짓으로 어서 앉으라고 하였다.

예순살이 넘었지만 정력이 넘치는 리장용의 앞에 꿇어앉은 설경성은 강박을 해도 응하지 않으리라 강심을 먹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리장용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리였다.

《이 사람, 나에게도 자네또래의 외손자가 있네. 나도 자네 마음을 아네. 역적같은 놈을 살려주라고 하니 분이 날수밖에…》

설경성은 마치도 아버지를 마주한 심정이였다.

리장용은 용모부터가 호감을 끄는 로인이였다. 이목구비가 하나같이 점잖아보이고 풍채도 좋아서 그를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심이 우러나오게 하였다.

실지 리장용은 청렴검박하고 겸손하며 높은 학식으로 조정의 본보기라 사람들의 칭찬을 모으고있었다.

《자네도 우리가 무엇때문에 성상페하를 모시고 몽골을 찾아가는지 모르지 않을거네.》

이해에 연경(베이징)을 대도로 칭하고 도읍을 옮겨온 몽골임금 후비라이는 황제의 즉위식을 하려 하니 고려임금이 꼭 참석해달라는 국서를 보내여왔다.

몇해전 황제라고 칭한 후비라이는 거듭되는 전란으로 하여 아직 황제의 즉위식을 하지 못했던것이다.

후비라이의 초청을 받은 고려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대다수 대신들은 임금이 대도로 가는것이 좋지 않다며 반대를 하였다.

그 리유는 송나라와의 싸움에 지친 몽골이 이 기회에 우리 임금에게 군사와 군량을 내라 할것인데 이보다 딱한 일이 없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그때 리장용이 나서서 임금의 몽골방문을 주장하였다.

이 기회에 두 나라의 임금이 마주앉아 두 나라사이의 화친을 허심탄회하게 론의하고 동시에 우리의 변방에서 소란하게 구는 몽골군의 침입을 막기 위한 강한 조치를 세우고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있어 임금의 몽골방문이 마련된것이였다.

《국사에 사사감정을 뒤섞으면 국익을 망치게 되네. 만일 홍다구를 역적자식인것만을 생각하여 죽게 한다면 이는 곧 좋게 되여가던 두 나라의 화친에 불찌를 날리게 되네.

자네도 아다싶이 우리 고려는 장장 수십년이나 강포한 몽골과 싸우느라 얼마나 많은 재난을 당했나 말일세.

뒤늦게나마 몽골이 고려와 싸워 이길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화친하자며 손을 내밀었는데 우리도 손을 내밀어 화친을 이루는것이 나라와 백성에게도 다 리로울게 아닌가. 이걸 깨면 안되네.

그래서 몽골칙사를 살려내라는거네. 몽골칙사가 우리 임금을 마중하러 온것이니 그를 빨리 살려내야만 압록강을 빨리 건너갈수가 있네. 나라를 배반하고 몽골에 가붙은 역적은 한줌도 못되니 꺼릴게 없어. 우린 반드시 몽골을 견제하고 나라를 지켜낼수 있네. 자네의 의술도 이에 기여하는게 옳지 않을가?》

그만에야 자리에서 일어선 설경성은 공손히 절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울분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잠시 밖을 거닐며 울분을 누른 설경성은 홍다구를 찾아갔다.

홍다구의 상처자리를 보는 설경성은 쓴입을 다시였다.

어떻게 쏜것인지 독화살은 홍다구의 오른쪽 팔뚝에만 상처를 입히였다.

좀더 잘 겨누어서 가슴팍을 꿰뚫었더라면 벌써 뒈진지 오랬을것이였다.

명중을 시키지 못한 사람을 속으로 꾸짖으며 상처자리를 살피는 설경성은 화살독이 어떤 독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화살독으로는 살모사의 독이나 청개구리독, 보가지독이 흔하고 초오나 독버섯에서 추출해낸 독도 쓰고있다.

홍다구를 맞힌 화살에 쓴 독은 서해에서 많이 잡히는 보가지에서 뽑아낸 독이였다.

즉시 홍다구의 량쪽 발가락에 있는 독음혈을 찾아 침을 꽂은 설경성은 병자의 시중군을 불러 참기름은 그대로, 당귀는 달여오라고 일렀다. 참기름과 당귀는 독벌레나 독물고기의 독을 푸는데 효험이 있었다.

침을 뽑고나서 좀 있으니 량손에 그릇을 든 시중군이 들어왔다.

설경성은 홍다구를 일으켜 앉히고 당귀달인물을 먼저 마시도록 하였다.

이어 참기름을 세숟갈 떠먹인 설경성은 밖으로 나오고말았다.

홍자번이 따라나와 근심조로 물었다.

《이젠 마음을 놓아도 될가?》

설경성이 퉁명스레 내쏘았다.

《육실할 놈이 뒈졌으면 춤이라도 추겠네.》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홍자번이 소리를 내여 웃었다.

설경성이 손을 쓰고있는지 사흘째 되는 날 홍다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홍다구가 설경성에게 큰절을 하며 부르짖었다.

《저를 살려준 은혜에 결초보은하겠소이다. 난 스물한살이라 의원님을 형으로 모시겠소이다.》

설경성은 입만 쩝쩝 다실뿐이였다.

(허, 밉다니까 깨꼬한다더니…)

설경성의 마음을 알리없는 홍다구는 넉살스럽게 지껄여댔다.

《형님이 우리 몽골로 의술을 배우러 간다는데 잘 생각했소이다. 몽골에서는 제가 큰소릴 치는 사람이니 형님을 섭섭치 않게 모시겠소이다.

좋은 집도 재물도 미인도 다 드리겠소이다.

형님의 의술이면 고관대작 부럽지 않게 잘살수 있소이다.》하더니 홍다구는 제 낯짝을 가리켜보였다.

《내 관상 좀 봐주시오이다. 내 명이 어떨것 같소이까? 사람들 말이 나의 지위가 장차 제후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것도 좋지만 난 장수하는게 더 좋소이다.》

그제서야 설경성은 홍다구의 낯짝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때까지는 그자의 상통이 구린내나는 밑구멍으로 여겨져 바로 보지 않았던것이다.

인차 설경성은 쓴웃음이 나갔다.

그자의 낯짝이 너무나도 멀쩡하게 잘나서 미남이라 할만 하기때문이였다.

인물이 아깝구나. 상통이 좀 못생겼어도 이다지도 분하지 않겠는데하긴 이놈이 미운것은 아비때문이 아닌가.

설경성은 곧 홍다구의 오른쪽 얼굴에서 가는 주름살들을 발견하였다. 얕게 패여서 얼핏 보고는 그게 주름살인지 알아볼수 없었다.

그 반대편에는 주름살이 없었다.

이놈이 간에 병들었구나.

자세히 보니 그자의 얼굴색도 침침하였다.

확실히 간이 말썽을 부리겠군.

갑자기 홍다구가 방바닥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내 고려를 가만두지 않을테다. 감히 나를 쏘아? 난 독화살을 쏜 놈들이 누구들인지 안다. 서경수박패 이놈들, 내 이제 압록강을 건너가면 조정에 아뢰이고 대군을 끌고올테다. 아니, 고려임금에게 일러바쳐 그놈들을 당장 요정내라고 할테다.》

홍다구가 어찌나 악을 쓰는지 두눈깔은 광기를 뿜는 미친개의 눈망울같고 앙다문 주둥이에서는 더러운 느침이 흘러나왔다.

그 몰골에 설경성은 통쾌한 웃음을 터치고싶었다.

하- 이놈이 단명할 팔자로구나. 벌써 간병이 든게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광기를 부리는 그 못된 성질때문이였구나. 이제 뒤따라 심과 신에도 병들것이라 명의를 구하지 못하면 스무해를 넘기지 못할것이다.

홍다구를 죽을 놈이라고 제쳐놓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허나 그 스무해가 이 역적으로 하여금 고려에 얼마나 많은 불화를 가져다줄지 생각지도 못한 설경성이였다.

광기를 부리고난 홍다구가 설경성의 팔을 부여안았다.

《내 명이 기오, 짧으오?》

《길구말구, 륙십갑자를 한바퀴 돌고 반바퀴는 더 돌수 있을거네.》

바로 그런 대답을 바랐던 홍다구라 입이 쭉 가로 째지였다.

《고맙수다. 고려임금이 래일은 떠나자고 한다니 형님은 나와 함께 동행해주우. 좋은 말을 드리리다.》

떠난다는 소리에 설경성이 심드렁해졌다.

몽골로 가고싶은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린때문이였다.

강윤소의 말을 들어보아도, 홍다구의 수작질을 들어보아도 몽골에 명의라 할만 한 인물이 별로 없는게 확실했다.

명의가 없다면 무엇때문에 찾아가겠는가.

그것도 그것이지만 고국을 원쑤인듯 여기는 홍다구와 같은 역적들을 싸고도는 몽골이 외적의 소굴이나 무엇이 다른가.

휴휴의 말대로 내 나라에서 배움을 찾는게 옳지 않을가. 아직은 모르겠어. 그럼 어데로 간다?!

명백한것은 서경수박패를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그것이였다.

고국을 해치려고 광기를 부리는 홍다구가 서경수박패를 노리고있으니 그들이 대처할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래일은 임금일행이 서경을 떠난다니 독사같은 이놈이 성상페하께 고해바치면 서경수박패가 욕을 볼수 있다. 그러니 래일 아침 서경수박패를 찾아가야 한다. 그다음 홍자번을 뒤쫓아가도 될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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