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야기
(2)
벼슬을 바친 설경성이 고을들을 찾아나선지도 어느새 여러해가 흘러 계축년(1313)의 봄이 왔다.
그동안 교주도뿐아니라 동북면과 서북면까지 편답하면서 병치료와 더불어 비방들을 수없이 수집한 설경성은 개경을 접한 서해도의 어느 마을에서 여러날을 묵고있었다.
한것은 이 마을에서 두창(천연두)에 온역(돌림성열병)이 겹친 세쌍둥이와 맞다들렸기때문이였다.
예로부터 두창에 걸리면 십중팔구는 죽거나 죽지 않아도 얼굴이 보기 흉한 곰보로 되기때문에 무섭다고 하였다.
여기에 온역까지 겹치면 명의라 할지라도 병자를 건져낼수 없다는것이 의술계의 공인된 지론이였다.
설경성은 오랜 세월 내려오는 이 진리에 도전해나섰다.
여러날동안 세쌍둥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흰삽주와 흰솔풍령, 감꼭지로 지은 두창약에 온역에 쓰는 금은화를 섞어 먹이면서 온갖 의술을 다했더니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을에서 죽은 아이들이라던 세쌍둥이들이 병을 이겨내고 일어선것이였다.
그 애들의 부모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설경성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 집을 나서니 졸지에 피곤이 장마철의 비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아직은 해가 하늘높이에 걸려있어 길을 갈수 있건만 77살의 몸으로 며칠 꼬바기 심신을 태웠으니 당장 자리에 눕고싶었다.
하는수없어 을나가 그를 원집으로 이끌었다.
마침 마을에 원집이 있었다.
강을 가로지른 큰 다리나 높은 고개, 나루를 낀 마을들에 먼길을 오가는 길손들이 묵어갈수 있도록 지은 집을 가리켜 원집이라고 불렀다.
오늘은 길손들이 없어 원집은 조용하였다.
텅 빈 방에 들어선 설경성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이런 일에 습관된 을나는 얼른 설경성을 아래목에 눕히고 온몸을 주물러주었다.
이렇게 녹초가 되였을 때 온몸을 주무르면 인차 원기를 회복할수 있었다.
이번에도 초점잃고 풀렸던 설경성의 두눈에 정기도 돌고 해쓱하던 얼굴에서도 혈색이 피여났다.
푸릿하던 입술에도 혈색이 돌자 설경성이 입을 열었다.
《나에겐 힘은 들었어도 오늘처럼 사는 보람을 크게 느껴보기는 별로 많지 못했네. 아, 단번에 세 생명을 구원한게 꿈은 아니겠지?…》
다리를 주무르던 을나가 소리없이 웃었다.
《원, 사부님도. 하루에 여러명의 목숨을 구원한게 어디 한두번이라구, 지난해에는 곽란으로 숨져가던 열식구까지 전부 살려내지 않았나이까.》
설경성이 놀랍다는듯 두눈을 꺼벅였다.
《그런 일도 있었던가? 이젠 늙어서인지 지나간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아.》
《호호- 그건 늙어서가 아니라 그쯤한 일로 례사롭게 여긴때문이오이다.》
자기를 리해해주는 을나의 마음에 감동된 설경성은 젊었을 때의 고운 모습이 남아있는 그의 얼굴을 정겹게 쳐다보았다.
《의원에게는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 례상사로 되였을 때가 진정한 삶이 아닐가? 그렇지 않다면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겠나.》
설경성은 머리맡에 놓아둔 자그마한 나무함을 끄당겼다.
그속에는 새로 수집한 의술의 비방들을 적어둔 책이 있었다.
새로 수집한 비방들에서 흥미있는것은 지난해 숙주(숙천군일대에 있었던 고려의 고을)에서 얻은 물매미로 병을 다스리는 비방이였다.
그 비방을 내놓은 숙주의원은 자기네 고을에서는 예로부터 위완통(여기서는 취장염으로 인한 아픔을 말한다.)이나 륵간협통(륵간신경통)때에 물매미를 먹이여 아픔을 멈추었다고 말하였다.
등에는 어혈에, 불개미는 뼈아픔에 그리고 소똥구리는 곪는 병에 좋으며 물매미는 다리가 쏘는데 효험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그 물매미가 다른 병에도 쓰이는줄은 몰랐었다.
머리에 생긴 종처를 쉽게 고칠수 있는 비방도 얻었다.
몸의 다른 부위보다도 머리에 생긴 종처는 고치기 어렵다.
그러나 곰열과 황경피나무껍질로 만든 고약은 머리의 종처에도 특효가 있었다.
과연 천금짜리 비방이라고 할수 있는 이 약의 처방은 맹주(맹산군일대에 있던 고려의 고을)의 산골마을에서 얻었다.
그뿐아니라 너리증이나 이몸에 병이 났을 때 마른 뽕잎을 종이에 말아가지고 불을 태워 그 연기를 입으로 빨아들여도 효험이 있고 갑자기 치미는 위완통(위경련을 말함.)에는 무릎우의 량구혈을 손가락으로 세게 눌러주어도 낫는다는것, 잠이 잘 오지 않는 경우 겨자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발을 담그어도 좋으며 양기가 부족한 사내들이 잠자리의 몸뚱이를 많이 먹으면 기운이 솟구친다는것 그리고 더위병에는 마늘 한줌을 볕에 달아오른 흙과 찬물에 섞어 갈아서 그 물을 밭아 마셔도 낫는다는 비방도 얻어냈다.
벼슬길에서 물러선 이 몇해어간에 수집한 비방들은 이보다도 몇곱이나 더 많은데 그것들은 다 개경의 제자들에게 가있다.
해마다 설이나 추석에는 집에 가서 쇠였는데 그때면 새로 모은 비방들을 제자들에게 맡겼던것이다.
《이제 몇해만 더 고생하면 이 길도 끝이 날거네. 그러면 우리는 의술비방의 부자가 될걸세.》
그 말에 을나가 아수한 마음으로 한숨을 내그었다.
《벼슬길만 아니였어도 사부님은 이미 온 나라의 비방을 가지고 큰 의서를 내놓았을것이오이다.》
설경성이 크게 숨을 들이키며 대꾸했다.
《허- 자넨 가끔 실없는 말을 곧잘한다니까. 힘겨워도 벼슬길까지 걸었기에 백성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수 있은게 아닌가.》
존경과 련민의 눈길로 설경성을 굽어보던 을나가 보조개가 패이도록 활짝 웃었다.
《알겠나이다. 제발 부탁이온데 이번에 돌아가시여서는 의서를 쓰는 일을 하였으면 하오이다.》
을나의 손을 움켜쥔 설경성의 두눈에 눈물이 어리였다.
《그러지. 임자를 볼 때면 미안한 생각이 드네.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집안의 안주인이 되여 남정네도 섬기고 아이들도 낳아키우며 보람을 느꼈으련만… 나때문에 자네가 인생을…》
을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시오이다. 소녀가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삶이 어떤것인지 알기나 했겠소이까? 소녀는 사부님의 곁에 있으면 더 바랄게 없소이다.》
이윽고 을나가 설경성의 손에서 제 손을 뽑으며 일어섰다.
《인차 진지상을 차려오겠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이다.》
을나가 부엌으로 내려가자 설경성은 자리에 눕고말았다.
자리에 누운 그의 생각은 개경에 가있었다.
설경성은 곧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기뻐하는것은 최유엄이 건강한 몸으로 조정을 버티고있기때문이였다.
그런 늙은이들을 가리켜 로당익장을 한다고 하는데 그건 다 제자들이 의술로써 최유엄을 돌보아주는 덕이였다.
최유엄이 조정을 버티고있는 한 간신들이 득세하지 못할것이니 그를 오래 살게 하는것이자 조정의 쇄신이 아니겠는가.
기쁜 일이 그뿐만이 아니였다.
자나깨나 바라마지않았던 제자들이 벼슬길에 오른것이였다.
채홍철은 벌써 밀직부사가 되였고 다른 제자들도 이전보다 더 높은 관직을 맡아가지고 백성구제에 힘쓰고있었다.
기쁜 일은 집에도 있었다.
아,
기쁨속에서 설경성은 곧 단잠에 들었다.
인차 환희의 꿈이 펼쳐졌다.
제자들뿐아니라 그들이 키워낸 두벌, 세벌제자들도 아니, 진정 나라와 백성을 위하려는 모든 의원들이 우로는 조정으로부터 아래로는 고을의 관가들에 들어가 백성구제에 힘을 쓰니 온 나라에 흥겨운 노래소리가 차넘치는것이였다.
이런게 부국이고 강병이고 무릉도원이 아니랴.
아, 나라가 흥하니 노래소리 들썩함이 마땅한 일이로다.
설경성이 껄껄 큰 웃음을 터치였다.
허나 그 웃음이 마지막웃음이 될줄은 누구도 몰랐다.
밥상을 안고 들어선 을나가 굽어보니 설경성은 잠을 자고있는듯 싶었다.
심장이 박동을 멈춘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려있었다.
고려의술로 천하를 뒤흔든 설경성은 이렇게 외지에서 조용히 생을 마치였다.
그의 부고가 전해지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설경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미구에 병을 털어버릴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던 명의가 영영 떠나갔으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한생을 병자구제에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친 설경성!
그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 굶주림과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밖에 없었다. 병자들의 고통은 곧 그의 고통이였고 그들의 기쁨이자 그의 기쁨이였다.
병없는 세상을 이루어보려고 그리도 애쓴 설경성이였기에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두고 땅을 치며 슬퍼했고 원통해한것이였다.
그러나 설경성은
설경성이 한생을 바치였고 또 제자들이 그가 걸은 길을 이어갔건만 백성구제의 참세상은 오지 않았다.
백성이 정녕 나라의 근본으로 되지 않는 한 그런 세상에서 백성구제란 영원한 꿈으로밖에 달리 될수 없다는것을 그때는 누구도 알수 없었다.
사람은 갔어도 그가 세운 공적은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설경성은 갔지만 고려뿐아니라 이웃나라들에서까지 두고두고 천하명의라 일러주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설경성은 정녕 의술의 신, 전설속의 구세주라고 할수 있었다.
설경성이 남겨놓은 비방들을 가지고 그의 제자들은 고려의술을 보다 귀중히 여기라는 의미에서 《향약》이라는 글이 들어간 의서들을 적지 않게 내놓았다.
고려 이후에도 고려의술의 바통은 맥맥히 이어졌으니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향약집성방》, 《의방류취》, 《동의보감》과 같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의학백과사전들의 탄생으로 도약할수 있은것이였다.
하기에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설경성을 가리켜 세상을 놀래운 천하명의, 고려명사라고 찬탄해마지않는것이 아닌가.
정녕 설경성은 세상에 보기 드문 의술의 거봉을 이룬 명의였다.
어찌 그뿐이랴. 한생 백성과 함께 겨레의 강토를 붙안고 국력을 떨치기 위해 애썼기에 강포한 외적을 몰아내고 조상의 땅을 굳게 다지는데도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긴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