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27)
임금이 서경에 행차함으로써 행영병마사도 그곳으로 옮겨졌다.
행영병마사는 국경일대에서 이웃나라들과 분쟁이 생길 때면 조정대신들이 그곳으로 내려가 군정을 도맡아보는 전선사령부였다.
서경에 행차한 임금은 원나라가 없애버렸던 서경류수관도 다시 내왔다.
서경류수관은 건국의 초창기에 황태조가 서경에 내온 서경대도호부의 후신으로서 이곳의 군민을 다스리는 관청이였다.
이로써 원나라가 서경에 설치했던 동녕부는 페지되고말았다.
서경에 나와있는 임금의 곁에는 언제나 설경성이 있었다.
설경성은 벼슬이 아직은 재상에 이르지 못했지만 국사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였다.
설경성의 정열적인 보좌속에 임금은 나라의 쌀창고를 헤치고 백성구제를 하게 하였고 조세는 물론 부세도 받지 않도록 하였다.
자나깨나 원나라군을 몰아내고 고국의 품에 안길 그날만을 고대했던 백성들은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며 너도나도 군사가 되였다. 삽시에 군사는 수만명이나 불어났다.
이것이 임금을 크게 고무했다.
새로 수만대군을 무은 임금은 조정대신 박지량을 동북면병마사로 임명하였다.
박지량은 조정대신들속에서 군사에도 밝고 용맹하기로 알려진 사람이였다.
이어 임금은 한희유에게서 군사를 배웠다는 대
그리고
고려는 건국 처날부터 동북면과 서북면에는 특별히 병마사를 두고 있었다.
그 제도를 오늘 다시금 되살린것이였다.
임금에게서 직접 부월을 받고 부임되는 병마사는 임지의 모든 군무를 처리하는 조정대신으로서 실제적인 주인이라고 할수 있었다.
서북면과 동북면에서는 병마사영에 많은 관리들을 두고 각 고을들까지 통솔하였다. 결국 병마사는 군정뿐아니라 민정까지도 다스리는 큰 권한을 지니고있었다.
대군을 거느린 동북면병마사가 동북면으로 진출함으로써 백두산 이남의 강토가 수복되였다.
결국 원나라가 내온 쌍성총관부라는것도 철페되고말았다.
고려가 되찾은 동북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려군사로 자원했다.
굴리는 눈덩이마냥 불어난 동북면군은 원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 반란군의 잔당을 추격하여 만수(두만강)쪽으로 밀고올라갔다.
이에 보조를 맞추어 설경성은 제자들로 수십개의 조를 무어 서북면과 동북면에 파견했다.
그들이 할일은 현지에서 군민을 치료하면서 그 고장 사람들에게 의술을 배워주는것이였다.
설경성의 하루하루는 가을걷이하는 농군처럼 바빴다.
임금의 건강도 돌보면서 제자들이 병치료에 전심할수 있도록 걸린것들로 풀어주며 나라방비와 백성살이에 제기되는 문제들도 알아내여 국사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 힘든줄 몰랐다.
설경성을 기쁘게 한것은 임금의 믿음을 얻은 한희유가 부지밀직사사의 높은 관직에 오른것이고 친원의 두목 조인규의 날개가 되였던 렴승익이 원정군의 군량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다가 태공한 죄로 파직된것이였다.
아쉬운것은 내안의 잔당을 추격하여 만수이북으로 북상하려던 고려군이 만수만은 넘어서지 말아달라는 원나라조정의 요구에 그 진격을 멈추지 않으면 안된 그것이였다.
원나라조정은 만수이북까지 고려에게 떼울가봐 몹시 꺼려하고있었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경인년(1290)의 봄볕이 강산을 따스하게 비치는 새봄이 왔다.
이해 봄, 원나라의 황궁에는 원나라를 방문하는 고려임금의 일행이 머무르고있었다. 일행속에는 설경성이도 있었는데 그는 고려임금보다 한걸음 앞서 이곳에 와있었다.
해마다 한번씩 꼭꼭 찾아와 병을 보아달라는 후비라이의 부탁을 들어 먼저 온 설경성이였다.
방문일정이 끝나가는것과 관련하여 후비라이는 고려임금과 회담을 가지였다.
원나라측에서는 태자로 책봉된 철목아와 황녀 망가대, 승상 안도 그리고 고려측에서는 설경성이 왕후, 태자, 왕자와 함께 각기 저희 임금을 모시고 참가하였다.
과일들을 가득 차린 커다란 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은 두 나라 사람들의 분위기는 대단히 만족한듯싶었으나 실은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한것은 두 나라가 호상 제일 큰 관심사로 되고있는 일을 이 자리에서 매듭지어야 했기때문이였다.
고려임금이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주연이니 공연구경이니 하며 두 나라 군주들이 자주 마주앉았었지만 그것은 다 외교관례상의 겉치레에 불과했다.
고려임금이 원나라를 찾아온 진짜목적은 백두산 이남이 고려의 강토임을 눌러놓기 위해서이고 후비라이가 고려임금의 병문안을 달갑게 받아들인것은 조상의 강토를 전부 되찾으려고 하는 그들을 회담을 통해서 눌러놓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고려임금이 귀국할 때가 되였으니 더는 량측이 추구하는 진속을 계속 묻어둘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후비라이는 누구에게나 아비벌 되는 늙은이였지만 서둘러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늘 그러했듯 상대의 심금을 울리는 말주변으로 주도권을 쥐여온것처럼 이번에도 그 솜씨를 능사하려들었다.
《어험, 우리와 고려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주 친한 사이인줄 아오.》하고 허두를 뗀 후비라이는 손짓을 하여 고려임금의 곁에 있던 고려태자를 제곁에 와앉도록 하였다.
이 자리에서 모두의 이목을 끄는 사람은 고려태자 왕장이였다.
지난해 관례를 치르고 장가를 든 왕장은 열다섯살의 그 나이에 비해 조숙할뿐아니라 애써 쌓은 학식과 타고난 영민으로 국사에 큰 도움을 주고있었다.
다정하게 왕장의 손을 잡은 후비라이가 목멘 소리로 말했다.
《이 젊은이가 고려태자인줄 다 알거요. 이런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두 나라에 유익한 일을 해야 하는게 늙은이들의 도리일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그 말에 좌중은 흥그러운 기분에 휩싸였다.
이윽고 후비라이는 고려임금의 곁에 자리를 잡은 설경성을 가리켰다.
《의술의 제왕이 고려에 없었더라면 나의 오늘도 없었을것인즉 그런면에서 보아도 고려는 나에게 은인의 나라라 아니할수 없소.》
후비라이의 얼굴에 진심이 비낀 웃음이 가득하였다.
《내 새롭게 터득해낸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뛰여난 인재가 없다면 다수는 아무런 존재가치도 없다는것이요.
나에게는 태의가 수두룩하지만 그들모두를 다 합쳐도 저 설경성의 발뒤꿈치에도 가지 못하니 그래서 인재란 얻기 힘들다는게 아니겠소?》
어서 본론으로 화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설경성이 대꾸했다.
《페하, 그건 페하의 어의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당초에 복잡한것도 단순하게 보고 단순한 처방으로 병을 다스리는 고려의술을 배우지 못했기때문이오이다.
소인은 페하께서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오이다.》
어서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하는 그 말에 후비라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치를 보니 고려사람들이 저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그 태도가 똑똑히 알렸다.
자칫하다가는 큰것을 잃을것 같았다.
고려임금이 설경성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우리 고려에 이런 천하명의가 있는것은 이웃나라에게도 큰 복이라고 할수 있소이다. 이 사람이 해마다 꼭꼭 대도를 찾아와 병을 보아준 그 은혜 하늘인들 잊겠소이까?》
후비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려임금에게 말했다.
《나도 그대의 마음을 모르는바는 아니오이다. 그건 그것이고…》
후비라이는 드디여 두 나라가 다 최고의 관심사로 여기는 화제를 입에 올렸다.
《나는 인차 대군으로 내안의 한패당인 합단을 치려고 하오이다. 그러면 그것들이 십중팔구는 고려로 도망쳐갈게 아니겠소이까. 왜냐하면 내가 그것들이 오고타이한국으로 가붙지 못하도록 퇴로를 끊어놓고 공세를 들이대기때문이오이다.
결국 고려가 화물단지를 당하게 될것이고 그게 걱정이오이다.》
이미 만단의 싸움준비를 갖추고있는 고려임금은 배심이 든든하였다.
원나라를 찾아올 때 고려임금의 제일 큰 관심사가 합단의 무리였다.
수만명에 달하는 합단의 무리는 만수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진주땅에 진을 치고있었다.
그런 형편에서 원나라가 공격을 들이대면 고려로 밀려들것은 뻔한 일이였다.
이와 관련하여 고려에서는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징발한 수십명의 군사를 거느린 한희유가 동북면군을 응원하도록 하였다.
한희유 같은 무적의 장수가 버티고있으니 그까짓 합단이 두려울게 없었다.
고려임금이 후비라이를 근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때문이라면 마음을 놓아도 되겠소이다. 난 오히려 그것들이 우리의 지경으로 들어올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라고 하였소이다.
난 그것들을 우리의 험한 산골로 깊숙히 끌어들여가지고 조상전래의 청야수성전으로 전멸시키려고 하오이다.》
후비라이가 랭담한 어조로 말했다.
《하긴, 고려의 일은 고려가 알아서 할 일이니 난 참여하지 않겠소.》
후비라이가 합단의 무리를 자기의 지경으로 유인하여 족치겠다는 고려임금의 결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립장을 취하는것은 정말로 반란군이 고려의 땅으로 기여드는 경우 팔장을 끼고 앉아서 구경하는것을 나무라지 말라는 의도에서였다.
합단의 무리와 싸워 고려의 군력이 진해지기를 바라는것이 후비라이의 흉심이였다.
후비라이의 흉심을 간파한 고려임금은 지금이야말로 공세를 들이대야 하는 결정적인 시기라고 생각했다.
고려임금이 후비라이를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고려가 바라는건 원나라가 백두산 이남의 우리 강토에 더는 미련을 두지 말라는 그것이오이다.》
후비라이는 숨이 꺽 막히는것 같았다.
다른 나라들의 임금이 이 비슷한 요구를 했다면 즉석에서 대군을 풀어 짓뭉개버리겠다고 위협을 했으련만 군력이 만만치 않은 고려이니 화를 낼수도 없었다.
그러나 권모술수를 능사로 하는 후비라이인지라 인차 그럴듯싶은 궁냥을 해냈다.
그는 설경성과 고려임금을 능청스러운 눈길로 번갈아보았다.
《이미 고려군이 제 강토를 차지했는데 그런걸 론할거나 있겠소이까?》
고려임금이 고개를 저었다.
《원나라가 다시는 백두산 이남의 우리 강토를 넘보지 않겠다는 대답을 이 자리에서 주어야 할줄로 아오이다.》
고려임금이 바싹 목을 조이는 바람에 후비라이는 한걸음 물러설수밖에 없었다.
그는 철목아를 바라보았다.
《태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부친의 목숨이 설경성의 손에 쥐여있으니 철목아로서는 고려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수 없었다.
하기에 그는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는 황제페하께서만이 결론을 내릴수 있는줄로 아오이다.》
후비라이의 눈길이 안동의 길쑴한 얼굴로 옮겨갔다.
《승상의 생각은 어떠한가?》
안동이 고개를 떨구며 대꾸했다.
《소신도 태자전하의 생각과 같소이다.》
더는 버틸수가 없게 된 후비라이가 고려임금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정 그렇다면 동녕부를 없애겠다는걸 이 자리를 빌어 약속하겠소이다.》
그러자 고려임금이 불만조로 들이댔다.
《우리 고려가 바라는건 쌍성총관부란것도 다시는 생각지 말라는 그것이오이다.》
급해맞은 후비라이는 사레가 든듯 쿨럭거렸다.
서경성의 은혜에 보답하려면 그러하겠다는 대답을 주어야 하겠으나 그때문에 닥쳐들 후과가 두려웠다.
쌍성총관부까지 페지한다면 고려와의 국경은 싫든좋든 만수로 해야 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백두산 이북을 원나라가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실은 명색뿐이고 그 고장에는 후비라이의 령이 통하지 못하고있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은 발해의 도성이 있던 곳이여서인지 발해사람들의 반항이 보다 드셌다.
그런 까닭에 만수를 내준다면 발해를 동족의 나라로 여기는 고려에 그 땅을 떼울수 있었다.
고려사람들이 만수 이북의 광활한 땅을 차지한다면 그 국력이 지금에 비길바가 아니될것이고 결국 료수쪽으로 밀고나갈것은 당연한 리치였다.
그것을 내다본 후비라이였기에 3년전 동북땅으로 쫓기우는 내안의 잔당을 치겠다며 만수 이북으로 대군을 들이밀겠다던 고려조정에 그렇게는 하지 말고 단지 군량이나 보내줄것을 요청했던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려군의 북상을 저지시킨 후비라이였다.
덤덤한 얼굴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는 후비라이를 바라보는 설경성은 의분이 끓어올라 견딜수 없었다.
고려의술의 덕으로 목숨을 부지하고있는 사람이 그 은혜를 저버리고 한사코 고려에 해로운짓을 고집하니 이보다 더 큰 배운망덕이 어데 있단 말인가.
이 자리가 두 나라 군주간의 지엄한 회담탁이 아니였다면 벌써 상대를 호되게 꾸짖은지 오랬을 설경성이였다.
주먹을 불끈 쥔 설경성에게서 분노에 찬 눈빛이 뿜어져나왔다.
그것을 느낀 후비라이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비로소 그는 설경성의 손끝에서 생을 이어가는 자기라는 존재를 인식한것이였다.
이해에도 설경성이 아니였다면 명을 재촉하고있는 로환을 이겨내지 못했을 후비라이였다.
바로 이 자리에 들기 방금전에도 설경성의 손길이 그의 몸을 지켜주었고 회담을 마친 다음에도 그 손길이 반드시 미쳐야만 하는 후비라이였다.
배고플 때 밥 한술을 덜어준 사람도 일생 잊지 말고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원나라황실의 구세주와도 같은 설경성이에게는 그가 바라는것을 한사코 외면하고있으니 낯가죽이 곰발바닥이라고 한들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을수 없는 후비라이였다.
후비라이는 이제 한마디만 더 고려사람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망발을 내뱉는다면 더는 자기 목숨을 지탱할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하늘처럼 도량이 크고 손탁이 센 황제라고 해도 이승을 떠나 무슨 뜻을 펼쳐나보겠는가. 다문 한시라도 명을 이어야만 황실의 안녕도, 광활한 광토도 더 잘 보존할수 있을텐데…
후비라이는 자기를 쏘아보는 설경성의 눈길앞에 종시 고개를 떨구고야말았다.
고개를 떨군 후비라이가 빗장을 지른듯 입을 열지 않으니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이 한순간을 놓치면 국익에 막중한 손실을 미칠수 있다고 생각한 설경성은 고려임금을 바라보며 침묵을 깨뜨렸다.
《성상페하, 외람된 일이오만 신이 감히 한말씀 여쭈어도 되겠소이까?》
그 물음에 고려임금이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면 펄쩍 놀란 후비라이는 고개를 쳐들었다.
이때라고 설경성이 후비라이에게 엄한 눈길을 던지며 부르짖었다.
《우리 성상페하의 뜻은 대대손손 물려오는 조상의 강토에서 절대로 물러설수 없다는것이오이다.
서북면에서뿐아니라 동북면에서도 단 한명의 고려군사도 퇴군시키지 않을것이니 만일 원나라가 군사를 들이민다면 전란은 피할수 없게 될것이오이다.》
설경성의 강경한 주장에 후비라이는 입만 쩝쩝 다실뿐이였다.
이것으로 회담은 막을 내리였다.
회담장을 나서는 설경성은 강력한 군력만이 국익을 지켜줄수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절감하였다.
고려의 힘이 약했더라면 담판장에서 우리의 강토를 차지하겠다고 들이대기는커녕 눈물을 흘리며 더 많은 땅을 내놓아야 했을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