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26)
이튿날 설경성은 개경에 있는 제자들을 모두 불러들이였다.
멍석을 펴놓은 뜨락에 앉아 력동이로부터 그동안의 향도의 형편을 듣고난 설경성은 꽤 두툼한 종이묶음을 내놓았다.
이국에서 병치료를 하며 새롭게 터득해낸 비방들을 적은것이였다.
소갈에는 두릅나무껍질도 좋고 또 콩팥이 나빠서 눈에 검은 꽃무늬가 보이는데는 숙지황과 단국화가 괜찮으며 협통(담석증에 해당되는 병)뿐아니라 석림에도 율무를 달여서 늘 마시면 좋다는것도 새로 얻어낸 비방들이였다.
귀향길에 수집한 비방들도 적혀있었다.
그것들중에 신비로운 비방들이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것은 오리나무껍질가루가 오징어뼈가루보다 피멎이에도 특효있고 설사를 멈춘다는것, 늙은이들이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뽕나무재물로 늘 머리를 감으면 아이들처럼 눈이 밝아지며 쇠붙이에 베였을 때 밤가루를 바르면 상처도 곪지 않고 잘 아문다는것 그리고 흙물을 앙금앉혀 마시면 버섯중독을 풀며 리질에 지렁이를 끓인 물이 좋다는것 등이였다.
종이묶음을 력동이에게 들려준 설경성은 이 비방들도 향도의 모두에게 알려주라고 하였다.
그날 저녁 설경성은 첨의찬성사 홍자번을 찾아갔다.
한시급히 설경성을 만나보고싶어했던 홍자번은 너무 기뻐 눈물까지 흘리였다.
설경성을 자기 방으로 이끈 홍자번은 자리에 앉기 바쁘게 부르짖었다.
《이젠 됐네, 자네가 왔으니 조인규나 렴승익이 더는 기를 펴지 못할거네.》
조인규, 렴승익이라는 소리에 설경성은 이가 갈렸다.
그들이 저희 세력의 패권을 위해 자기를 해치려 하였으니 두눈에 흙이 들어간대도 어찌 그 원쑤를 잊겠는가.
그동안 조인규는 밀직사의 두번째 자리인 지밀직사사로 그냥 류임되여있었지만 렴승익은 첨의부에서 찬성사 다음의 첨의참리로 뛰여올랐다.
《자네가 후비라이의 목숨을 거머쥐고 우리 고려에 유익한 일들을 하자 그에 얼마나 질겁했던지 그것들이 기가 죽어 머리를 쳐들지 못했네. 정말 통쾌하단 말일세.》
홍자번의 말은 사실 그대로였다.
설경성이 의술로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된 첫날부터 조인규네는 그를 해칠 기회를 노리기는 했어도 내놓고 탐욕을 부리지 못했다.
그것들의 거두인 강윤소까지도 설경성의 눈밖에 나서 조정에서 밀려나는판인데… 게다가 설경성이 후비라이를 살려놓으니 아예 어제날과 결별한듯 고려를 위해 애쓰는척 하였다.
설경성이 긴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
이 몇해 설경성은 스스로 깨달은것이 있었으니 어이하여 임금이 친원세력을 그냥 내버려두고있는가 하는 까닭이였다.
건국이래 이 땅을 침범한 거란이든 몽골이든 그 어떤 대적도 모조리 쳐물리친 고려인데 오늘의 임금이라고 해서 외적에게 순종할리는 없었다.
다만 오랜 전란으로 모두가 지친 그 점을 고려하여 잠시 친원세력을 지켜볼뿐이였다.
이제 기운이 회복되면 임금부터가 빼앗긴 강토를 되찾는 싸움을 벌리자고 할것이고 그와 더불어 친원세력에게 가차없이 벌을 내릴것이라고 설경성은 생각하고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설경성이 입을 열었다.
《지금당장 조인규네를 몰아내고싶어하는 자네 마음을 내 모르는바 아닐세. 죄는 지은대로 간다고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을 땐 꼭 준엄한 대가가 차례질것인즉 우린 제할바를 하면 될거네.》
밤깊도록 설경성은 앞으로
다음날부터 상약국과 태의감은 물론 제위보며 혜민국 같은 의술과 관련된 관청들을 일일이 돌아보며 실태를 료해한 설경성은 무능한자들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의술이 높은 의원들을 천거하는 상주문을 올리였다.
그와 함께 태의감과 혜민국에 내온 의생당들에서는 조석견과 력동이 의술을 강의하는 조치도 취했다.
이어 김석에게는 원나라에서 가지고온 대풍자를 탐라의 문둥병자들에게 가져다주라는 분부를 내리였다.
이렇게 의술과 관련한 일들을 바로잡으면서 설경성은 자기를 해치려던 조인규와 렴승익을 조정에서 몰아내고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국사에 어찌 사사로운 감정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국사를 처리함에 있어서 공적인 립장에 서면 일이 잘 펴나가지만 사적인 립장에 서면 랑패를 보기마련이다.
그러니 한걸음 물러서서 그들을 진정으로 대해주면 제 잘못을 후회할게 아닌가.
그러나 끝까지 제 잘못을 숨기고 원나라에 국익을 팔아먹으려 한다면 그땐 내 몸이 그대로 검이 되여 목을 칠테다.
이렇게 생각한 설경성은 이어 장수들을 료해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한편 첨의찬성사 홍자번과 달리 요즘 삼사의 두번째 자리인 좌사로 전직된 조인규는 설경성의 활약에 몹시 불안해하였다.
이러다 우리가 망하는게 아니야?
생각할수록 홍자번의 친구인 설경성이 임금의 총애속에 일약 군부총랑으로 출세한것이 기가 막혔다.
조인규에게는 설경성이 고래와도 같이 여겨졌다.
상대가 어슷비슷해야 돌팔매질도 하고 물어뜯는 험담도 할수 있는 법이다.
고래와도 같은 존재를 건드렸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것이라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생각한 조인규는 부하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제 맡은 일에 전심하라는 령을 내리였다.
설경성이 제일로 관심을 가진 장수로는 한희유였다.
초야에 있을 때 장차 나라의 군사를 통솔할 대장으로는 한희유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온 설경성은 그에 대해서 잘 알고있을 홍자번을 찾아갔다.
설경성이 찾아온 사연을 안 홍자번이 한희유는 타고난 장수라며 칭찬해마지않았다.
《한희유는 가주고을태생일세. 아이때부터 무술과 병법을 이악하게 배운바도 있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을 타고났네. 내 보건대 오늘 우리 나라에 그와 견줄 장수는 없네. 이웃나라들에도 없을거네.
우리의 지경을 범했던 원나라군을 정벌할 때 있었던 일을 들려주지. 그때 한희유는 고려군의 선봉장으로서 선참 적진에 뛰여들었네. 했더니 적들이 벌떼처럼 그에게 달려들었지.
그런데 그 사람이 솔선 앞장에서 달려나가며 긴 창을 휘둘러댔더니 삽시에 적들이 무리로 쓰러지고 진격로가 열리더라니까.
그의 용맹에 원나라군사들은 기절초풍을 하였네. 적장이 한희유를 가리키며 비명을 지르기를 오늘의 관운장, 조운이라나…
한희유의 됨됨을 말한다면 성품이 활달하고 정직한데다 아주 청렴해서 남의 재물에 절대로 탐을 내지 않네. 그래서 얼마 안되는 록봉으로 살아가자니 살림이 여간 구차스럽지 않네. 소문에 안사람이 늘 바가지를 들고 쌀을 꾸러 다닌다고 하네.》
설경성은 의문점을 입에 올렸다.
《한희유가 타고난 장수라는데 왜 아직도 상
홍자번의 두눈에 적의가 번쩍이였다.
《그건 간신 조인규놈때문일세. 그따위 오사리잡놈이 어떻게 조정에 기여들어왔는지… 수치일세.
한희유가 나와 가까운건 사실일세. 그때문에 나를 꺼려하던 조인규놈이 임금의 측근에서 사사모사로 훼방을 놓았으니 어찌 상
그따위 놈때문에 군부의 대들보감이 썩고있었으니… 그러나 이젠 마음이 놓이네. 그대같은 인재가 성상페하를 보필하고있으니 그놈이 맥을 추지 못할걸세.》
설경성이 다른 사람들도 만나 한희유에 대해서 료해하고났을 때 내안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국서를 가지고 원나라사신들이 찾아왔다.
그 소식에 유독 설경성이만은 놀라지 않았다.
원나라에 가있을 때 예견했던바 그대로이기때문이였다.
내안은 후비라이의 적수인 오고타이한국의 대한 해도와 내통한 원나라의 장수였다.
몽골의 대귀족인 내안이 료동에서 10만대군을 통솔하는 군장으로서 룡상을 넘보던중 해도와 손을 잡자 그의 친구들인 합단, 실도아까지 들고일어났다.
군력으로써만 원나라에 빼앗긴 강토를 수복할수 있다는것을 통절하게 느낀바가 있는 설경성은 드디여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고 무릎을 쳤다.
한걸음만 내디뎌도 강토를 되찾을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것이라는 생각에 설경성은 지체없이 임금을 찾아갔다.
홀로 임금앞에 나선 설경성은 기탄없이 의견을 터놓았다.
《성상페하께서 북쪽의 강토를 수복할수 있는 때가 온것 같소이다.》
웃음이 가득 실렸던 임금의 얼굴이 정색해졌다.
《그건 무슨 소린가?》
두손을 모아잡으며 설경성이 절절하게 아뢰였다.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 도와주는것이 도리가 아니겠소이까?》
《그러니 내안의 군란을 평정하러 우리 군사를 원나라에 파해야 한다 그거겠소?》
《그렇소이다.》
임금이 대궐안을 거닐며 설경성을 기대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긴 경보다 원나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지. 내안의 군란이 장차 어찌 될것 같은고?》
이미 그에 대한 견해도 세워가지고 온 설경성이였다.
《고려를 내놓고 천하에 원나라군주와 맞설수 있는 군주나 장수는 없을것이오이다. 원나라군주가 문무를 겸비했다는것은 세상이 아는바이오이다.
오고타이한국의 대한 해도가 원나라와 형제의 나라로서 후비라이와 맞서려고 하는데 사실 그는 자기가 원나라군주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이오이다.
오고타이의 아들이라는 해도조차도 원나라군주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데 내안따위야 더 말해 무엇하겠소이까?》
임금이 웃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걸 알면서도 군사를 파하자는건 뭔가? 공연히 소란스럽기나 하지.》
《바로 거기에 요점이 있는것이오이다.
옛말에도 반드시 공세를 취해야 할 대목에 앉아뭉개면 도리여 불행이 닥쳐든다고 하였소이다.
오늘 하늘이 성상페하로 하여금 강토를 수복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소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즉시 대군을 들이미는것은 이웃집의 불을 끄는데도 크게 도움을 줄수 있소이다.
원나라군주가 명장이라는 평판은 자자하나 늙은 몸이라 반란을 평정하는 일이 힘에 부칠것이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상페하께서 강건너 불보듯 하신다면 그로 하여 고려까지도 원나라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는것이 세상에 알려질것이며 또 해도는 내안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겠소이까. 그러면 원나라가 불리할것은 자명한 리치이오이다.
만일 해도와 손을 잡은 내안이 뜻을 이룬다면 그것들은 오고타이가 그러했던것처럼 우리 고려로 쳐들어오자고 할것이오이다.》
임금은 무거운 걸음으로 대궐안을 거닐었다.
설경성의 말에 일리가 있다. 오고타이가 고려에 전란을 들씌웠다면 후비라이는 그 싸움을 거두고 우리와 화친을 맺게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후비라이를 도와 오고타이의 족속들을 족치는것이 우리에게 리로운것이다.…
《해도가 원나라에 대군을 들이밀기 전에 성상페하께서 손을 쓰셔야 하오이다.
고려군이 압록강이북에 진을 친 내안을 토벌하러 나섰다는 소문이 나면 해도도 고려의 군력을 모르는바는 아닐것이라 군사를 일으키지 못할것이오이다.
결국 성상페하께서 출병을 허락하시면 원나라를 해치려드는 반란의 무리를 답새기는것으로서 후비라이를 크게 돕는것으로 되고 아울러 우리의 강토를 되찾는 길로 이어질수 있소이다.
더불어 우리의 강토로 날아드는 전란의 불찌를 미리 막아내는것이기도 하오이다.》
걸음을 멈춘 임금이 의아한 눈길로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불찌란건 또 무슨 소린가?》
설경성이 힘주어 말했다.
《그전에 칭기스한이 금나라를 칠 때 그 땅에서 쫓겨난 거란것들이 우리 나라로 기여들어와 얼마나 애를 먹었소이까? 반란을 일으킨 내안이 패하는 경우 우리가 압록강가에 진을 치지 않는다면 패잔의 무리가 우리의 강토로 달려들것은 뻔한 일이오이다.》
임금이 경탄의 눈길로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정녕 보통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렇다면 누구에게 대군을 주어 보냈으면 좋겠는가?》
설경성이 몸을 꼿꼿이 펴며 대꾸했다.
《그 누구도 성상페하를 대신할수 없소이다.》
《?!…》
《오로지 성상페하께서만이 이 일을 해낼수 있사옵니다.》
설경성은 너무 외람된 생각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옛글에도 군사는 큰 어른이 거느릴수록 승전이 크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성상페하께서 대군을 친솔하시고 가야 내안이나 해도에게는 더 큰 공포를 그리고 원나라조정에는 큰 힘을 줄수 있소이다.
이것이 밖으로는 고려의 군력을 시위하는것이고 안으로는 우리의 강토를 되찾는 거사로 될것이오이다. 원나라는 성상페하께서 차지하신 강토를 내놓으라고 감히 청하지 못할것이오이다.》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은 원나라에 군사를 파하는 경우
《짐이 출전한것을 구실로 내안이 우리에게 달려들지는 않겠는지?!…》
《일이 그렇게만 된다면 도리여 얼마나 좋겠소이까.
옛적에 자기네를 넘보는 적국을 선제공격하고싶어하던 어떤 나라는 그 나라의 도성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기 위해 국경에다 여러개의 돌소를 가져다놓고 돌로 만든 그 소들이 금똥을 눈다는 소문을 냈다고 하오이다.
그 소문에 욕심이 난 적국의 임금이 즉시 부하들을 보내여 알아보니 과연 돌소들의 꼬리밑에 주먹만 한 금덩이가 있었소이다.
그래서 그 나라 임금이 돌소를 훔쳐오게 하였소이다. 결국 그 돌소를 구실로 선제공격의 명분도 얻고 적국의 도성으로 가는 길도 알아낸 그 나라는 저희네를 넘보던 화근덩이를 멸망시킬수 있었소이다.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계략도 마다하지 말아야 하오이다.
내안의 무리가 우리에게 달려든다면 성상페하께서는 그것들의 둥지에로 대군을 들이밀수 있는 명분을 얻을수 있으니 그런 복이 어데 있겠소이까.
원나라사람들이 말하기를 칭기스한이 싸우는대로 이길수 있었던것이 그가 매번 자기가 바라는데서 싸움을 했기때문이라는데… 우리가 만전을 갖추고있다가 바라는 곳에서 적을 답새기고 도망치는 적을 따라가 바라는데서 족친다면 어찌 조상의 땅을 되찾지 못하겠소이까.
신은 원나라에 가있을 때 강토를 되찾는 일은 말로는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고 오로지 힘을 써야만 된다는것을 깨달았소이다. 지금이야말로 성상페하께서 압록강을 건느신다면 발해의 후손들이 모두 떨쳐나 맞아줄것이오이다. 원래 그 땅이야 우리 조상의 땅이 아니오이까?》
원나라를 다녀올 때 본 광활한 땅을 그려보는 설경성은 의분이 끓어올랐다.
임금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설경성의 말이 옳다. 지금이 바로 군사를 일으킬 때이다!
《좋네, 선봉장으로는 누가 좋겠는가?》
임금이 결심을 내렸다는것을 안 설경성은 감격에 겨워 부르짖었다.
《성상페하에겐 황태조의 유금필
그 말에 임금이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튿날 임금은 대궐에서 긴급어전회의를 열었다.
어전회의에는 조정대신들과 군부사의 관리들이 참가하였다.
설경성의 벼슬이 아직은 2품에 이르지 못했지만 임금은 그를 재상들과 나란히 선두의 반렬에 내세워주었다.
임금이 신하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짐은 원나라의 반란무리가 우리의 지경으로 기여들수 있는것과 관련하여 직접 대군을 이끌고 서북면으로 가자고 한다. 경들의 의향은 어떤고?》
기다렸다는듯 앞반렬에서 홍자번이 한걸음 나섰다.
《성상페하, 신 홍자번 한말씀 아뢰겠나이다. 이 나라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구월심 빼앗긴 강토를 되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오는데 무슨 다른 생각이 있겠소이까. 소신을 성상페하의 선봉장으로 써주소이다.》
그 말에 홍자번의 뒤자리를 차지한 조인규는 불만이 꿈틀거렸다.
이런 변 봤나, 이건 혹시 이 틈에 서북면을 타고앉자는것이 아닌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원나라가 절대로 강건너 불보듯 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전란이 일어나겠는데 우리가 무슨 힘으로 큰 나라를 대적할수 있단 말인가?!…
조인규는 원정을 하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설경성이 자기의 멱살을 부여잡는 환각에 얼른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은 내 목숨이 귀중하다.
이번에는 설경성이 나섰다.
《성상페하,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말하기가 어려운게 아니라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소신은 그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하오이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구상하고 해낼수 있는 묘책을 찾아내여 사람들에게 일러주는것보다 그것을 실천하는것이 더 어려운 법이오이다.
성상페하께서 몸소 서북면에 가시여 우리의 강토도 지키고 백성들도 구제한다면 어느 나라가 감히 우리 고려를 넘볼수 있겠소이까?》
임금이 호탕하게 웃으며 룡상에서 일어섰다.
《옳거니, 짐은 서북면에 가서 백성구제도 하련다. 나라의 쌀을 풀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병도 보아주고 또 한두해 조세도 면제시키겠노라.
바로 이렇게 하는것이 정사의 묘리이노라. 백성들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선대임금의 훌륭한 법이라도 뜯어고치라 했거늘 짐은 그렇게 하련다.
그렇게 한다면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어찌 아끼겠는가?》
신심이 넘치는 어조로 임금이 엄하게 일렀다.
《첨의부와 군부사에서는 즉시 원정군을 무을지어다. 원정에 대해서 불평을 부리는자 목을 치겠다.》
이날 고려임금이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북상하겠다는 국서를 받은 원나라사신들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고 며칠후에는 임금이 원정군을 사열하였다. 그 다음날에는 만여명의 정예군을 거느린 한희유가 선봉장이 되여 북행길에 올랐다.
뒤따라 수만대군을 친솔한 임금이 개경을 출발하였다.
임금의 서경입성과 더불어 압록강이남의 강토는 고려의 천하로 되였다.
고려의 대군이 출병했다는 소식은 날개를 펴고 내안의 무리에게도 전해졌다.
그에 겁을 먹은 반란군은 원나라군에 격파당했고 내안은 사로잡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