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22)

 

《원나라 세조가 병이 생겨서 사신을 보내여 의원을 구하였을 때… 설경성을 보냈다. 약을 써서 효과가 있었으므로 세조가 기뻐하여 주택과 생활비를 주었으며 궁중문지기에게 지시하여 무시로 출입할수 있게 하였고… 더욱더 후하게 대우하였으며 여러차례에 걸쳐서 세조가 준 재물은 아주 기록할수 없다.》 (《고려사》권 제122 렬전 제35에서)

 

설경성을 찾아오는 병자들은 좀처럼 줄어들줄 몰랐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은 설경성이 천년에 한번 나오는 천하명의라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대신들뿐아니라 부자들까지도 황족을 끼고 높디높은 궁성을 사생결단하고 넘어오기때문이였다.

설경성이 바쁜것만큼 제자들의 의술이 높아졌다,

의술을 닦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스승과 한자리에서 병자를 다룰 때였다.

스승이 꼬리를 맞물고 들어서는 병자들의 병을 진단하고 약처방을 내리는걸 직접 보면서 그 비법을 터득하는 제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배움이 없었다.

오늘 오전은 병자들을 받아들이는 날이라 아침일찍부터 설경성은 바빴다.

첫 병자로는 손발을 쓰지 못하는 로인이였다.

첫눈에 그가 중풍의 후유증으로 반신불수임을 알아본 설경성은 제자들에게 솔잎찜질과 형개이삭가루가 들어간 약처방을 대주었다.

이 병은 소금을 두고 쪄낸 솔잎으로 마비된 팔다리를 찜질하면서 형개이삭가루를 술에 타먹으면 낫게 되여있었다.

로인을 그의 식솔들이 부축하여 나가기 바쁘게 코흘리개 애녀석이 녀인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녀인의 하소연이 애녀석이 열흘째 설사를 하는데 값비싼 약을 썼지만 낫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맥을 보니 리질병이였다.

설경성은 제자들에게 애엽산에 오이풀뿌리를 더해주라는 분부를 내리였다.

약하게 닦은 쑥잎에 함박꽃뿌리, 당귀, 황금을 섞어지은 약이 애엽산이다. 여기에 오이풀뿌리를 넣으면 그 어떤 설사에도 효험이 있었다.

그 아이를 내보내기도 전에 역시 애녀석이 녀인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양고기를 먹고 체한 아이였다.

설경성은 즉석에서 황백가루에 감초를 넣고 달여먹이라는 처방을 내리였다.

녀인이 고맙다고 이마가 바닥에 닿아라 절을 하는데 로파가 다급히 들어오며 애원했다.

《술에 질려 죽어가는 아들을 구해주옵소서.》

설경성은 붓을 들어 흰까치콩과 팥, 록두, 검은콩, 하얀콩을 같은 량씩 넣고 달인 물을 먹이라는 글을 써주었다.

설경성이 로파의 손에 글을 쓴 종이를 들려주는데 젊은 녀인이 들어오며 울부짖었다.

《딸애가 개에 물렸나이다.》

로파의 등을 떠밀며 설경성이 물었다.

《미친개요?》

《미치진 않았나이다.》

《그럼 빨리 돌아가서 개한테 깨물린 자리를 뽕나무재물로 여러번 씻어내고 백반가루를 발라주라구요. 그리고 참기름을 세숟갈 먹이고 며칠간 칡뿌리를 달여먹이면 일없을거요.》

설경성이 말을 끝내기 바쁘게 서너살된 사내아이를 안은 녀인이 울며 뛰여들어왔다.

《오늘은 아이들을 치르는 날인가.》하고 설경성이 중얼거리는데 녀인이 울며 아뢰였다.

《이녀석이 바늘을 삼키였소이다.》

설경성의 제자들이 입을 딱 벌리였다.

바늘을 삼키였다면 배안에 들어갔겠는데 그걸 무슨 재주로 끄집어낸단 말인가?!

설경성이 제자들에게 일렀다.

《어서 참나무숯가루를 한줌 가져다가 찬물에 타서 먹이게.》

그리고는 우는 녀인에게 웃는 눈길을 던졌다.

《이제 약을 먹으면 배속에서 바늘이 아무런 화도 입히지 않고 뒤를 볼 때 저절로 나올것이니 념려마오.》

그 녀인을 돌려보내니 황후에게 조카가 된다는 중년사나이가 들어와 허리와 배가 쩍하면 아프다고 호소했다.

얼굴에 윤기도 없고 머리는 정수리까지 벗겨진데다 가운데손가락과 새끼손가락에도 손톱반달이 없는걸 보아 신장이 병든게 분명했다.

배와 허리를 만져보니 아니나다를가 신장에 돌이 들어있었다.

이제는 그 어떤 석림도 다 고칠수 있는 비방을 터득한 설경성이 제자들에게 일렀다.

《이 사람에게 먼저 달래처방을 그 다음은 호두처방을 쓰라고 하게.》

해묵은 석림일지라도 여러해 달래무침을 먹으면서 호두살을 참기름에 볶아낸걸 쓰면 더는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그때 녀관이 고와진 얼굴에 웃음을 가득 싣고 들어왔다.

설경성이 대준 비방을 써서 볼에 있던 무사마귀가 씻은듯 없어졌으니 그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활짝 웃는 녀관이였다.

존경어린 눈길로 설경성을 쳐다보던 녀관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황제페하께서 병자들을 제자들에게 맡겨두고 나오라고 하오이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설경성이 밖으로 나오니 정자나무아래를 거닐던 후비라이가 다가와 그의 손목을 덥석 쥐여잡았다.

《그대의 제자들도 명의인데 이젠 병자들을 그녀석들에게 맡기라구.》

원기가 전혀 딴 사람인듯 회복된 후비라이는 설경성이 없으면 갑갑해서 죽을 지경이였다.

설경성이와 정사로부터 군사와 시문, 문물과 산천, 천문 등 세상만사에 대해서 날마다 론하고있지만 돌아서면 또 론하고싶어지는 후비라이였다.

하기에 그는 인생에 다시없을 말벗이고 군신간을 초월하는 망년우로는 세상에 설경성이밖에 없다고 여기고있었다.

늙마에 고독은 죽음이라는데 의술의 제왕을 만나 젊었을 때처럼 삶의 희열을 맛보고있는 후비라이에게 설경성은 만금을 주고도 얻을수 없는 친구였다.

힘이 넘치는 후비라이는 대군을 이끌고가서 자기와 엇서는 적수들을 모조리 무찌르고싶었다.

그러나 설경성의 도움이 없이는 그게 다 꿈으로나 남게 될것이다.

《이보라구, 팔합식!》하고 허두를 뗀 후비라이가 절절한 눈길로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사내란 누구든지 오래동안 외지에 나와살면 녀인이 그리워지는 법일세. 난 그대에게 곱고 영특한 미녀들을 주고싶네. 이 늙은이의 성의를 받아준다면 다소나마 은혜를 갚는것으로 될게 아닌가.》

설경성은 후비라이의 눈길에서 그가 빈말을 하는것이 아님을 알수있었다.

설경성이 고개만 끄덕여도 지금당장 미녀들이 차례질것이였다.

벌써 지금의 녀관도 부족해서 젊은 나인들을 설경성의 시중군으로 붙여준 후비라이였다.

그러나 설경성은 그 말속에 감추어져있는 후비라이의 진속을 꿰뚫어보고있었다.

허- 이 늙은이가 날 제곁에 붙들어두고싶어서 미인계까지 쓰려드는군.

걸음을 늦춘 설경성이 힘있는 어조로 대꾸했다.

《저의 고국에도 미인은 얼마든지 있소이다.

하지만 전 미인들에게 관심이 없소이다.

아직도 제가 가야 할 길이 먼데 그런데 눈을 밝힌다면 끝까지 갈수 없기마련이라 더는 그런 말씀 말아주소이다.》

후비라이는 입만 쩝쩝 다셨다.

미인도 재물도 바라지 않는 이런 사람은 무슨 수를 써야 내 사람으로 만들수 있을가.

어떻게 하나 설경성을 고려로 돌려보낼 생각이 아닌 후비라이는 조정의 거물들과만 국사를 의논하는 밀실로 설경성을 이끌었다.

밀실에서 설경성과 마주앉은 후비라이는 아직은 본심을 묻어두고 귀맛좋은 말부터 꺼내들었다.

《우리 몽골이 자네네 고려와 수십년이나 싸웠지만 이기지 못한걸 보면 고려사람들이 참 용해, 강하단 말일세. 어이하여 고려가 강한지 그걸 말해줄수 있겠나?》

아주 로회하고 음흉한 후비라이의 진속을 알리 없는 설경성은 신이나서 열변을 토했다.

《그것은 첫째로, 백성이 강하기때문이오이다. 한가지 실례만 들겠소이다.

수주고을 정곡촌이라는 마을에 장수자할머니가 살고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백네살나던 해에 있은 일이오이다. 그때 나라에서 수주에 성을 쌓으라는 령을 내렸소이다. 이를 안 할머니는 나라가 있고야 내집도 있다면서 아흔다섯명이나 되는 자손모두를 부역장으로 내보냈소이다.》

그 말에 후비라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과시 훌륭한 백성일세.》

《둘째로, 죽으면 죽었지 적에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고려사람이오이다.

그에 대해서는 두가지 실례만을 들겠소이다.

몽골에서 다섯번째로 야굴이라는 장수가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일이오이다. 대군의 공격에 충주성이 무너지였소이다. 그러나 성안의 사람들은 한명도 도망치지 않았고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다 전원 잘못되였소이다. 그때 조효림이란 사람은 성이 무너지자 안해를 부둥켜안고 불속에 뛰여들어 타죽었소이다.

그보다 앞서 살례탑의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철주성에서는 가렬한 싸움끝에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집들에 불을 지르고 모두 타죽었소이다.》

그 말에 전률을 느낀 후비라이는 눈길을 떨구었다.

생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말을 달린 후비라이였지만 항복을 치욕으로 여겨 온 성안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광경은 보지 못했던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진 고려였기에 당하지 못한게 아닌가. 그러했기에 살례탑이 죽음을 당한것이고 야굴과 같은 맹장들이 패전지장의 수치를 남긴것이 아니랴.

《셋째로, 고려군은 군사들모두가 무술의 능수들이오이다. 한가지 실례를 들겠소이다.

야굴이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평주고을에서는 장자방이라는 군사가 단 한번의 싸움에서 적병 스물다섯을 버이였소이다. 장수도 아닌 보통군사가 이러할진대야…》

후비라이의 얼굴이 거멓게 질리였다.

《넷째로, 우리 고려장수들은 이웃나라의 장수들과 다른 점이 있소이다. 고려에서는 문, 무, 지, 인, 용을 겸하지 않은 장수는 명장이라고 하지 않소이다.

허나 이웃나라들에서는 그렇지 않소이다. 실례를 들어 손자병법을 내놓은 손무를 가리켜 다른 나라들에서는 명장이라고 칭찬하지만 우리 고려에서는 꾀를 잘 쓰는 모사라고 할뿐이오이다. 우리 고려에서는 제갈량도 명장이 아니라 모사로 보고있소이다.

옛적에 촉나라, 오나라, 위나라가 중원에서 패권을 다툴 때에도 명장이라고 할만 한 사람은 없었소이다. 관운장이나 장비처럼 용맹한 장수들은 지혜가 부족하였고 제갈량이나 사마의 같이 꾀가 있는 사람들은 무술이 부족하였소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을지문덕, 연개소문과 같은 사람들은 훌륭한 지략과 뛰여난 무술을 겸비한 명장이였기에 수백만대적도 쳐부신것이오이다.》

흥미가 동하여 고개를 끄덕이던 후비라이가 불쑥 물었다.

《고구려는 그렇다치고 고려에도 명장이 있었나?》

《강감찬장군을 꼽을수 있소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자기 나라로 도망치는 적은 막지 말라고 하였소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강렬한 적을 막으면 그것들이 악을 물고 달려들기때문에 그런 적은 이길수 없고 오히려 화를 당한다고 하였소이다.

그러나 강감찬장군은 손자병법을 뒤집어엎고 제 소굴로 도망치는 거란의 10만대군을 가로막고 전멸시켰소이다. 그것도 조금만 더 가면 제소굴로 들어설수 있는 구주에서 말이오이다.》

설경성이 제가 입고있는 옷을 가리켜보였다.

《이 옷의 섶을 좀 보시오이다. 우리 고려사람들은 원나라사람들과 달리 왼섶옷이 아닌 오른섶의 옷을 입고있소이다.》

당시 고려사람들은 남녀가 다 오른섶옷을 입는것이 풍습으로 되여있었다.

《만일 그때 강감찬장군이 거느린 우리 고려군이 거란을 쳐이기지 못했더라면 우리 겨레가 왼섶옷을 입어야 했을것이오이다.》

후비라이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설경성의 옷을 바라보았다.

설경성은 후비라이와는 반대로 옷깃의 왼쪽이 오른쪽으로 가게 만든 오른섶옷을 입고있었다.

그런데 몽골족과 한족, 거란족은 후비라이처럼 왼섶옷을 입는것이 풍습이였다.

《천하의 그 누구도 우리 고려사람에게서 이 오른섶옷을 빼앗지 못할것이오이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설경성의 말에 음흉한 후비라이는 짐짓 감탄을 터뜨렸다.

《과시 고려사람들은 용맹하고 슬기롭소. 그건 그렇고 살례탑이 고려로 쳐들어갔을 때 어이하여 강화도로 천도를 했나? 더 멀리 남쪽으로 갔더라면 좋았겠는데…》

그 까닭을 모를리 없는 후비라이의 질문에 설경성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여튼 립장만은 바로 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경성이 입을 열었다.

《고려가 아직 일떠서지 않았을 때 해동에는 지리풍수의 대가인 도선스님이 있었소이다. 어려서 불학을 통달하고 천하를 돌아보며 지리풍수를 익힌 그가 귀국하여 선참으로 찾은 곳이 백두산이였소이다. 백두산에 올라 겨레의 강토를 살펴본 그는 백두산줄기가 머무른 곳이라며 송악산을 찾아와 황태조의 아버지에게 이 고장에서 고구려를 재건할 성인군자가 태여날것이라고 예언했소이다. 그러면서 고구려를 이은 나라는 반드시 세 서울을 가지되 개경을 중경으로, 목먹벌을 남경으로, 평양을 서경이라 할것이며 한강을 남하하여 도읍을 옮긴다면 해동의 강토가 둘로 갈라질수 있다는 글을 남기였소이다. 이것을 가리켜 <도선의 비기>라고 하는것이오이다.

실은 <도선의 비기>보다는 한강을 넘어가지 않고 강화도로 천도를 하는것이 더없이 유리하였소이다. 왜냐하면 고려는 세면에 바다를 끼고있는 까닭에 예로부터 수군이 강했소이다.

수전에서 고려의 수군과 맞설 군사는 세상에 없기에 바다로 빙 둘러싸여있는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간것이오이다.》

후비라이는 또 다른 질문을 들이댔다.

《자네 범문호를 아는가? 그를 맹장이라 할수 있겠나?》

범문호는 멸망한 송나라에서 꾀를 잘 쓴다고 칭찬을 모으던 장수였다. 그때문에 원나라가 장수로 써준것이였다.

몇해전 홍다구와 함께 원나라의 사신으로 개경에 온 그는 설경성에게서 병치료를 받은바 있었다.

《페하께서 남송을 치는 마지막공세를 들이댔을 때 남송군을 거느린 범문호가 자기네 양양을 포위한 원나라군의 배후를 쳤더라면 어쩔번 했소이까. 모름지기 페하의 군사는 대패하고 남송은 무너지지 않았을것이오이다.

지혜는 있으나 겁이 많은 범문호는 한몸을 내대기는커녕 군사들을 거느리고 원나라에 투항하고말았소이다. 그런 사람을 어찌 맹장이라고 할수 있겠소이까?》

후비라이는 입을 쩝쩝 다시였다.

범문호가 대군을 거느리고 솔선 투항해옴으로써 남송을 무너뜨릴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에 그 공을 높이 사서 크게 써주었는데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그에게 대군을 맡긴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였다.

드디여 후비라이가 본심을 드러냈다.

《난 금나라와 남송의 화통병기도 다 가져다 보았는데 고려의것보다 못하더군. 고려가 가지고있는 뢰등석포가 내 마음에 제일 들었네. 뢰등석포를 철포라고 한다지? 철포를 쏘는 소리는 천지를 진감하고 사방으로 내뿜는 연기도 볼만 했네. 하늘높이 날아오른 돌탄이 성문을 박살내는데 그 위력은 천하으뜸이였네.

고려는 풍랑에도 끄떡없는 병선을 곧잘 뭇거던. 참, 왜놈들이 차지한 쯔시마가 본래는 고려의것이라며?》

의분이 솟구친 설경성이 격해서 부르짖었다.

《그렇소이다.》

《자네가 도와준다면 내가 직접 왜나라를 짓뭉개놓고 쯔시마를 고려에 넘겨주겠네.》

그 말에 설경성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늙은이가 아직도 그 못된 마음을?!…

수많은 나라들을 재더미로 만들고도 성차지 않아하다니?!…

만일 원나라가 왜섬을 타고앉는다면 그길로 길을 빌려준 우리 고려를 집어삼키자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왜섬보다도 끝끝내 우리 고려를 먹어치우자고 하는게 너희들 원나라조정의 본심인데야… 그 흉심을 고려사람이라면 삼척동자도 알고있다.

설경성은 한수 앞질렀다.

《제 소견에는 큰 싸움을 이끌수 있는 성인이 있다면 오직 한명 페하뿐이라고 생각하오이다.》

설경성의 수를 알리 없는 후비라이가 흥이 나서 대꾸했다.

《내 그래서 자네한테 도움을 청하는거네. 태자가 나라의 정사를 용의주도하게 해낼만 하니 난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왜섬이나 타고앉자는거네.》

설경성이 슬며시 반격을 들이댔다.

《제 알기엔 원나라와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오고타이한국이 그렇게도 페하를 미워한다는데… 이러한 때 페하께서 왜섬이나 바라고 자리를 뜨시면 이때라고 그들이 대도로 쳐들어올것이오이다.》

설경성의 말대로 원나라 서북부에 위치한 오고타이한국은 후비라이와 원쑤지간이였다.

천하를 삼킨 칭기스한은 죽기 전에 맏아들에게는 해지는 곳인 서쪽땅을, 둘째아들에게는 서료의 땅을, 셋째 오고타이에게는 서부의 몽골을 그리고 막내아들 툴루이에게는 자기의 령지를 나누어주었다.

칭기스한이 죽으니 오고타이가 아비를 이어 대한이 되였다.

오고타이다음에는 툴루이의 맏아들인 후비라이의 형 뭉께가 대한자리를 차지하고 자기를 싫어하는 이전 대한의 일족 수십명을 죽이였다.

이것이 원한으로 되여 오고타이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오고타이한국이 후비라이네를 복수하려고 칼을 벼리고있었다.

《난 그따위 오고타이한국은 코흘리개로나 여긴다네. 한발길질로도 짓뭉개버릴수 있거던. 단지 지하에 계시는 조부님을 생각하여 참을뿐이지. 그들도 혈육이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설경성이 결정적인 반격을 들이댔다.

《페하께서 그 몸으로 전장에 나선다면 의술의 신일지라도 지켜드릴수 없소이다. 전장에서 풍찬로숙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나 할수 있는것이지 병약한 로인은 견디지 못하오이다.》

설경성의 완강한 태도에 후비라이는 한숨만 내쉬였다.

왜섬까지 타고앉아 칭기스한처럼 강토를 넓힌 용맹한 대한으로 후세에 이름을 크게 남기고싶은데 그 욕망을 묵새기자니 원통했다. 그러나 그보다 귀한것은 목숨이였다.

한숨끝에 후비라이가 맥없이 입을 열었다.

《알겠네, 내목숨을 그대가 쥐고있으니.…》

설경성은 그제야 크게 숨이 나갔다.

그후에 후비라이는 두번다시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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