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21)

 

또 한달이 지나갔다.

요즘 설경성은 눈코뜰새 없었다. 한것은 후비라이의 병세가 호전되면서 그의 식솔에게만 허락하였던 설경성의 손길이 일가친척들한테까지도 미쳐야 하기때문이였다.

그 발단으로 된것은 후비라이의 4촌동생을 죽음에서 건져준때문이였다.

한달전 그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그때 고려명의 설경성이 후비라이의 병을 고쳐냈다는 소문이 병자의 집에 날아들었다.

귀가 번쩍 뜨인 병자의 자식들이 고려명의에게서 병을 고칠수 있게 해달라고 상주문을 올리였다.

혈육의 정을 잡아뗄수 없어 후비라이는 허락하지 않을수 없었고 설경성은 원나라의원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병자를 단 며칠만에 살려냈던것이다.

그러자 황족들이 저마다 후비라이를 찾아와 고려명의의 신세를 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그들의 성화에 후비라이는 손을 들고말았다.

그래서 설경성이 눈코뜰새없이 볶이우는것이였다.

설경성이 한담할새없이 들볶이우자 그때문에 바빠난 사람도 후비라이였다.

설경성이 늘 제곁에 있어야 병도 낫는것 같고 즐거운데 그와 마주앉는 시간이라야 회진때뿐이니 그에 성이 난 후비라이는 일가친척들에게 하루건너 그것도 오전 한나절만 병을 볼수 있다는 불호령을 내리였다.

그러나 그 한나절도 설경성이 없이 지낸다는것은 후비라이에게 있어서 참기 어려운 고통이였다.

첫사랑에 취한 사내가 온넋을 바치고싶어하던 처녀를 남에게 떼운 심정이라고 할가.…

병때문에 일시 나라의 정사를 태자에게 위임한 후비라이에게 설경성은 첫사랑보다도 더 귀한 존재였다.

그가 있어야 생도 있고 래일도 있으니 설경성을 결코 녀인에게만 비길수 없었다.

후비라이는 속으로 자기는 천하를 거머쥔 땅의 제왕이라면 설경성은 그 땅우의 모두의 목숨을 거머쥔 의술의 제왕이라고 생각하는터였다.

오늘은 설경성이 이 나라 황족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여있는 날이였다.

그런데도 황제의 령을 거스리는 병자가 나타났으니 그는 황후에게 오라비가 되는 로인과 그의 며느리였다.

오늘 새벽 갑자기 허리가 뜨끔하더니 쑤시는 아픔에 로인은 산후탈로 쩍하면 출혈을 하는 며느리까지 뒤에 달고 황후를 찾아가 그를 앞세우고 설경성을 찾아온것이였다.

좀 있어 별궁에 나타난 후비라이는 설경성의 귀에 대고 서투른 고려말로 대충 손대서 병자를 쫓아보내라고 일렀다.

그 말에 설경성은 후비라이가 아이같이 여겨져 웃고말았다.

허리가 시큰해진것쯤은 얼른 다스릴수 있는 설경성이라 곧 병자의 엉치우에 사발만 한 부항을 척 붙여놓았다.

바로 요안혈이라고 하는 그 자리가 압통점이였던것이다.

설경성은 제자들에게 일렀다.

《반경쯤 지나서 부항을 떼고 병자를 돌려보내게. 그러되 음식으로는 뱀장어탕을 들라고 이르라구. 그리고 산후혈붕(산후출혈)이 있는 녀인에게는 당귀와 형개를 각각 한줌씩 주정이 약한 술에 달여 마시라고 하게.》

당귀와 형개는 산후출혈에 특효가 있는 약재였다.

후비라이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온 설경성이 익살조로 말했다.

《페하께서 이르신대로 대충 손대고말았소이다.》

그 말을 곧이들은 후비라이가 놀라와하였다.

《그러다 그대의 명성이 흙칠당할가 우려되네.》

설경성이 웃는 눈길로 후비라이를 바라보았다.

《괜한 근심이오이다. 이제 부항을 떼면 그 자리에 머루알같은 물집들이 가득할것이고 그러면 허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거뿐해지오이다.》

놀라와하는 후비라이에게 설경성이 귀속말로 말했다.

《그건 아직 이 나라 어의들이 모르는 비방이오이다. 아주 간단한 그속에 침구술로도 대신할수 없는 신비한 효험이 들어있소이다.》

후비라이와 함께 화원에 이른 설경성은 세월의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신록이 무르익던 이곳에 벌써 단풍이?!…)

설경성과 어깨를 나란히 한 후비라이가 문득 쓴웃음을 지으며 볼멘 소리를 하였다.

《생각할수록 고려는 고약하오.》

《?!…》

《고려의 왕씨가문의 처녀를 우리 황실에 시집을 보내라고 벌써 몇번째 부탁을 했는데 이번에도 거절해왔단 말이네.》

후비라이가 성을 내는 까닭을 안 설경성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부탁이라면 몰라도 그것만은 안될것이오이다.》

《그건 어째서?》

《그건 우리 임금도 어쩔수 없는 일이기때문이오이다. 옛적 고구려의 장수왕때 북위에서 자기 나라 임금에게 고구려공주를 시집보내게 해달라는 국서를 가진 사신들이 온적이 있었소이다.

북위가 그런 청혼을 해온데는 당시 여러 나라로 갈라져있던 중원에서 패권을 쥐자면 동방의 강대국인 고구려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오이다. 그때 고구려에서는 강대국의 임금은 제집 녀인을 타국에 시집보내지 않을것이며 그것이 또한 우리의 풍습이라고 거절했소이다. 바로 그때문이오이다. 고구려를 이은 고려가 어찌 그 풍습을 버릴수 있겠소이까?》

후비라이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설경성의 말을 거꾸로 뒤집어놓으면 남의 나라에 공주를 시집보낸 원나라가 도리여 강대하지 못한 나라라는 답이 나오기때문이였다.

그때문에 후비라이가 격했다는것을 알면서도 설경성은 그에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병세가 상당히 수그러들어 원기가 날로 성해지는 후비라이니만치 그쯤한 흥분이 건강에 해를 줄리 만무했다.

이제는 고국을 위해서 그의 몸값을 회계해야 할 때가 왔다고 여기는 설경성이였다.

후비라이가 격해서 부르짖었다.

《고려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는것을 그대는 어떻게 말해줄수 있소?》

설경성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롱을 할 때가 아니다.

《고려라는 국호에 담겨진 뜻과 우리 황태조께서 나라를 세우자 후당과 같은 이웃나라들이 고려를 가리켜 동명성제를 이은 나라라는 국서를 보내여왔다는것은 이미 페하께서도 알고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오이다.

전 한가지만을 가지고 그것을 말해주려고 하오이다.

개경에서 동쪽으로 수십리를 가면 현화사라는 절이 있소이다. 그 절에 큰 비석이 있사온데 비몸의 웃부분에 금까마귀가 그려있소이다.

금까마귀는 곧 붉은 까마귀로서 해를 뜻하는바 이는 천자의 나라 고구려를 가리키는것이기도 하오이다.

처음 고구려가 일떠섰을 때 동족의 강토를 모두 하나로 합칠 뜻을 품고 부여국과 다툰바가 있었소이다. 한사코 고구려의 국토통일을 막아서던 부여국의 임금이 붉은 까마귀를 고구려에 보냈소이다. 검은색은 북방의 나라 부여를 가리킨다면 붉은색은 남쪽나라 고구려를 이르는 색인데 부여에서 희한하게도 붉은 까마귀를 얻었으니 부여임금은 어리석게도 고구려가 저희 나라에 귀속될 조짐이라고 생각한것이였소이다.

그래서 붉은 까마귀를 보낸것인데 도리여 부여는 고구려에 귀속되고말았으니 이로써 그 새가 고구려의 새로 된것이오이다.

그래서 우리 고려에서는 고려가 명실공히 고구려를 이은 나라임을 먼후세에까지 전하려고 현화사의 비에 금까마귀를 새겨넣은것이오이다.》

이야기가 흥미는 있었어도 천자국이라는 말은 후비라이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

《무엇을 가지고있기에 고구려도 그렇고 고려까지도 천자국이라고 하는건가?》

지금이 바로 후비라이와 맞서야 하는 결정적인 시기라고 생각한 설경성은 배에 힘을 주었다.

《력대로 중원에 있던 나라들이 우리와 우리 선조들을 미워한것은 우리가 천자의 나라이기때문이였소이다.

우리의 시조 박달임금이 하늘나라 임금의 자손이라는 말은 더 하지 않겠소이다.

우리 고려사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동명성제를 가리켜 해와 달의 아들, 천제의 아들이란 문구가 있으며 고구려때 세운 비석들에도 그런 글이 새겨져있소이다.

고구려가 처음 일어섰을 때만 하여도 중원사람들에게는 천자라는데 대해서 리해조차 없었소이다. 그러던중 중원의 여러 나라를 통일한 영정이 자기를 황제라고 하였소이다.

그것이 전례로 되여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는 말할것도 없고 송나라나 거란까지도 자기를 황제국이라고 하였소이다.》

설경성의 막힘없는 달변에 성이 난 후비라이는 화풀이를 한다는 노릇이 그에게는 못해보고 애꿎은 나무가지나 꺾어버렸다.

설경성은 시종 입가에 웃음을 띠우고 열변을 토했다.

《고구려를 이은 우리 고려에서는 임금이라는 말을 글로 적을 때에는 황왕 또는 성상페하로, 부를 때에도 성상페하라고 하는것이오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고려임금을 가리켜 성상페하라고 썼으니 한때 나라의 권력을 줌안에 넣고 조정을 쥐락펴락했던 최충헌이라는 권신까지도 임금을 반드시 페하라고 불렀소이다.》

그때 녀관이 나타나서 후비라이에게 차반을 내밀었다.

차반에서 약물이 든 잔을 집어들고 단숨에 마신 후비라이가 설경성을 흘겨보았다.

《내 알건대 고려가 금나라를 섬기였다며? 우린 그런 금나라도 한주먹으로 쳐눕혔단 말이네.》

설경성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죽게 된걸 살려놓으니까 내 뺨을 치려드는군. 허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내앞에 굴복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걸.…

《고려가 금나라를 섬겼다는것은 이웃나라들이 꾸며낸 무근거한 소리이오이다. 사실말이지 금나라는 건국 이전부터 우리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며 섬겨왔소이다. 금나라의 시조부터가 고려사람이였소이다.

옛적에 고려의 평주고을에서 나서자란 고려사람 김극수가 어떤 일로 백두산이북으로 갔다가 문무를 겸비한 덕에 그 고장의 추장으로 추대되였소이다. 김극수의 고손자의 대에 이르러 추장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웠소이다. 하기에 아골타는 나라의 이름을 고조부의 성을 따서 김이라고 하였소이다. 김이란 글자는 금으로도 통하니 그래서 김나라를 금나라라고도 하는것이오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고려의 예종임금시기의 기록에서 볼수 있소이다.

물론 금나라가 발해를 먹어치운 거란을 쳐부시고 강토가 넓어지니 황제국으로 자칭하면서 우리 고려와 형제로 지내자는 국서를 보내온것은 사실이오이다. 그때문에 우리 고려에서는 너희 시조가 어디에서 나왔기에 부모의 나라와 형제가 되자 하는가고 금나라사신을 꾸짖어 보냈소이다.》

설경성은 거만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후비라이를 주저없이 마주 바라보았다.

《페하께서는 금나라가 우리 임금에게 높이가 열아홉척이나 되는 굉장히 큰 수레를 만들어보낸걸 아시오이까?》

후비라이는 듣느니 처음인지라 미덥지 못한 눈길로 설경성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높이가 무려 열아홉척이나 되는 그런 큰 수레를 타본 임금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소이까? 금나라임금이 올린 수레가 어찌나 요란하게 크던지 황성에서 제일 큰 광화문으로도 들어갈수가 없어 길바닥을 파내지 않으면 안되였소이다.

금나라가 고려를 부모의 나라, 천자의 나라로 여기지 않았다면 그런 웅장한 수레를 올리지 않았을것이오이다.》

그 말에 후비라이는 감탄은 하면서도 고려를 천자의 나라라고 인정하고싶지는 않았다.

《난 금나라가 늘 고려를 하대해온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은가?》

설경성은 즉시 반격을 들이댔다.

《페하께서는 잘못 알고있소이다.

고려에게 있어서 녀진은 중원사람들과 전혀 다른 관계에 있소이다. 박달임금때부터 녀진은 우리의 백성으로 살아왔고… 하기에 고구려나 발해에서도 또 우리 고려에서도 녀진을 우리의 백성으로 여겼소이다. 때로는 그것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그때에는 사정없이 짓뭉개버렸소이다. 금나라가 차지했던 압록강이북의 강토로 말한다면 예나지금이나 변함없는 우리 겨레의 강토이고 그 땅에 살고있는 녀진사람이나 발해사람이나 다 우리 고려의 백성인것이오이다.

금나라가 일어서기 전에 녀진에서 제일 강한 세력이 바로 김극수의 고손자인 아골타가 거느린 부족이였소이다.

그래서 아골타는 금나라를 세운 후에도 여전히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하였소이다.

거란을 멸망시킨 아골타의 금나라는 당나라의 옛땅인 송나라로 쳐들어가 그 나라 임금을 붙잡아가고 강토를 빼앗아가지면서도 고려의 나무한그루, 풀 한포기도 건드리지 못했소이다. 물론 그들은 고려가 거란이나 송나라에 비해 군력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것을 알고있었소이다.》

고려의 왕씨처녀를 원나라에 시집을 오게 함으로써 그 땅을 빼앗아내지 못한 패전의 분풀이를 다소나마 덜어보자던노릇이 물거품으로 되고만 그때문에 밸이 뒤틀린 나머지 설경성에게 화풀이를 하려들었던 후비라이는 도리여 호되게 얻어맞고 불그락푸르락댔다.

그러는 후비라이를 지켜보는 설경성은 개경의 귤나무집주인 한송빈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싶었다.

그가 우리의 력사부터 알아야 한다며 많은것을 일깨워주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렇게 후비라이를 눌러놓지 못했을것이였다.

가슴을 쭉 펴고 의젓한 태도로 마주 바라보는 설경성이앞에 후비라이는 밸이 뒤틀리는것을 참아야만 하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욕설을 해대는것만큼 열적은짓도 없는지라 후비라이는 딴전을 부릴수밖에 없었다.

《벌써 정오일세. 내 오늘 점심에 그대를 위해서 별식을 차리도록 하였네.》

후비라이에게 이끌려 어느 한 방에 들어선 설경성을 황후와 태자비가 반겨맞아주었다.

방에는 음식이 가득한 큰상이 여러개나 이어져있었다.

후비라이가 내주는 자리에 앉은 설경성은 제앞의 잉어국을 보고 군침을 삼키였다.

후비라이가 잉어국을 가리켰다.

《고려사람들은 생선국을 좋아한다지? 많이 들게.》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후비라이가 자랑조로 말했다.

《우리 몽골사람들은 양고기를 제일 좋아한다네. 고려사람들은 육붙이로 소고기를 제일이라고 한다는데 유감일세.》

설경성이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고려사람들이 소고기를 좋아하는건 사실이오이다. 소는 뼈까지 푹 고아서 먹어야 별맛이오이다. 하지만 양고기도 소고기 못지 않게 좋아하오이다. 옛적부터 우리 고려사람들이 즐겨온 놀이의 하나가 윷놀이오이다. 윷놀이에 걸이라는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양을 이르는 말이오이다.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적부터 북방에서는 양을 많이 길렀소이다.

우리 고려에도 양을 수백마리나 기르는 집들이 있소이다. 우리가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엇때문에 기르겠소이까?》

별치않은 말을 꺼내들었다가 설경성이 고려의 자랑이나 하게 만들었다는 후회속에 후비라이는 새로운 화제거리를 입에 올렸다.

《고려에 국보로서 네개의 금탑이 있다던데 그걸 본적 있나?》

설경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개가 아니라 세개이오이다. 대대로 임금이 국사를 의논하는 회경전에 있는 13층의 금탑 그리고 황금이 144근 들어간 흥왕사의 금탑, 국청사의 원성금탑 이렇게 세개이오이다. 이외에 황금 200근이 들어간 13층 금탑이 흥왕사에 또 하나 있사오나 역적 최이가 만들어 바친것으로 하여 국보라고는 할수 없소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전 아직 그것들을 본적 없소이다.》

후비라이가 목을 뒤로 제끼고 웃어댔다.

《허허허- 역적이 바친건 국보가 아니다? 그것도 틀린 소리는 아닐세. 이젠 또 밖에 나가 바람이나 쏘이세.》

화원에 이른 후비라이가 또다시 격한 어조로 물었다.

《고려의 시조가 본래부터 왕씨였다는게 사실인가?》

설경성은 부드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사실이오이다. 왕씨는 고구려에도 발해에도 있었소이다. 고구려의 옛땅인 발해의 백두산근방에서 나서자란 호경이란 사람이 우리 황태조의 7대조부인데 그가 왕씨였음은 두말할게 없소이다.》

설경성은 오늘따라 후비라이가 고려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그 까닭이 짐작되였다.

우리 성상페하의 가문에서 처녀를 데려오지 못했으니 분이 나서 나중엔 왕씨성까지 건드리려고 하는구나.

앞으로 두번다시 우리 고려를 헐뜯지 못하게 하려면 이제라도 이 늙은일 꾹 눌러놓아야 한다.…

설경성이 격해서 후비라이를 바라보았다.

《남을 시기질투하면서 해를 끼치지 못해 속을 썩이는 사람은 절대로 병을 고칠수 없소이다.

병자로서 마음을 곱게 가져야 능히 병을 이겨낼수 있소이다.》

그 말에 약이 바싹 오른 후비라이였지만 너무도 지당한 리치앞에 입술을 깨물고말았다.

설경성이 성이 나서 비칠거리는 후비라이를 부축하며 나직이 말했다.

《괜한 생각으로 마음을 쓰지 마시오이다.》

하는수없이 후비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말았다.

《자네 말이 옳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