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20)

 

그 즉시 설경성은 후비라이의 병치료에 달라붙었다. 한시라도 더 빨리 손을 쓸수록 그만큼 더 큰 효험을 볼수 있기에 그래서 병치료에서 시간이 생명이라고 하는것이다.

설경성은 여느 의원들과 달리 약과 침, 뜸, 음식료법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신비한 비방일지라도 병자의 성격, 체력과 년령, 학식이나 심리에 맞게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묘리를 안받침하지 못하면 범상한 비방과 별차이가 없게 된다.

생에 대한 욕구를 잃어버리고 울적한 기분에 묻혀있는 병자는 환생약으로도 추세우지 못한다.

병자로 하여금 앞날에 대한 애착이 간절해지도록 그리고 그 삶을 실지로 누릴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할 때 범상한 비방도 용을 쓰는 법이다.

하기에 설경성은 즐거움을 안겨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병자의 마음을 틀어쥐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설경성이 병치료와 더불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후비라이로 하여금 미지의 세상에서 벌어진 이야기처럼 신비함을 자아내였다.

신비로운 이야기에 취해서 쾌감의 절정에서 한바탕씩 웃고나면 괴로웁던 몸에 기운이 부쩍 솟구치는것을 느끼는 후비라이였다.

이로써 후비라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늘 떠나지 않았다.

이래놓으니 약효가 조화를 부리지 않을수 없었다.

바싹 여위였던 몸이 부해지기 시작하면서 남방의 토인들처럼 새까맣던 얼굴에 혈색이 돌고 발의 종창에서도 병조가 벗겨지면서 부었던것이 퍼그나 가라앉았다.

이때 설경성은 말다래벌레집열매를 약처방에 더해주었다.

말다래나무의 열매에는 혹같은 벌레집이 잘 생긴다. 이것을 따서 뜨거운 물에 데쳐내여 말린것이 손발의 마비를 푸는데 약효가 있었다.

고구려때 어떤 의원이 고양이가 별나게 말다래의 벌레집열매를 그러안고 노는데서 암시를 받고 발을 잘 쓰지 못하는 병자에게 그것을 따서 달여먹이였더니 한달만에 효험을 보았다는것이다.

말다래벌레집열매를 약처방에 넣어주어서인지 후비라이는 발이 더 거뜬해졌다며 좋아했다.

또 보름이 지났다.

오늘도 후비라이는 아침회진을 하러 온 설경성을 하나밖에 없는 구면지기인듯 반겨맞아주었다.

이제는 잠시도 설경성이와 떨어져서는 살지 못할것 같은 후비라이였다.

《아, 팔합식!》

몽골말로 팔합식이란 선생이란 뜻이다.

설경성을 보기 드문 인재로, 은인으로 여기는 후비라이는 그를 공경하여 팔합식이라고 불렀다.

말투까지도 죽마고우를 대하듯 허물없는 후비라이였다.

늘 그러했듯 설경성은 후비라이를 자리에 엎드리게 하고 슬근슬근 잔등을 주물러주었다.

이렇게 잔등의 침혈들을 적당히 자극해주면 병자가 시원해하니 좋고 또 주근주근 이야기판을 펼칠수도 있어 좋았다.

즐거운 이야기에 맛을 들인 후비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간밤에 어제 임자가 들려준 최루백이에 대한 이야기를 돌이켜보면서 고려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생각해보았네.》

최루백은 고려의 수원고을 사람이였다.

백여년전 최루백이 15살났을 때인데 산에 갔던 아버지가 범에게 물려죽었다.

이를 안 최루백은 즉시 날이 시퍼런 도끼를 들고 범을 찾아나섰다.

어느 한 골안에 이르니 아버지를 해친 황소만큼 큰 범이 불쑥해진 배를 척 깔고 누워있었다.

그때 최루백이 나는듯이 달려들어 도끼로 범의 골통을 까서 죽이였다.

범의 배를 가르고 아버지의 시신을 모아 장례를 치른 최루백은 무덤곁에서 3년을 지키였다.

《자네네 고려사람들에게는 남달리 강한 기질이 있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겠나?》

설경성은 생각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옛적에 우리 강토에는 이웃나라들에서도 명사라고 일러준 한사람이 있었소이다.

그분은 생전에 많은 글을 남기였는데 그중에서 <두 녀인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겠소이다.》하고 허두를 뗀 설경성의 목소리는 구슬프게 올리였다.

후비라이는 곧 그의 이야기에 심취되였다.

《과거에서 급제한 최공이 어느 한 고을의 원으로 부임된 어느날 경치구경을 나섰소이다. 경치구경에 흥이 난 최공이 어느 한 둔덕에 이르렀는데 쓸쓸하게도 무덤 하나가 앞을 막는것이였소이다. 동행한 부하들에게 알아보았더니 무덤에는 두 처녀자매가 묻히였는데 그들의 이름도 알수 없거니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는것이였소이다.

경치구경의 흥이 깨진 최공에게는 황량한 무덤의 모양이 가엾고 애처롭게 생각되였소이다.

두 처녀자매가 한무덤에 묻히였다면 여기에 무슨 곡절이 있겠으니 그들의 령혼이라도 만나고싶었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담은 시를 지어 무덤에 놓고 처소로 돌아갔소이다. 그날밤…》

설경성이 말라든 목을 추기느라 침을 삼키는데 후비라이가 재촉했다.

《그래서?》

《그날밤이였소이다. 취금이라는 처녀가 최공을 찾아와 무덤속의 두자매가 최공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글이라고 하면서 종이 한장을 내놓았소이다. 그러면서 취금이 하는 말이 자기는 무덤속의 자매들에게 시비가 되는 처녀라고 하였소이다.》

눈물이 글썽해진 설경성이 이야기를 내리엮었다.

《취금이 가져온 글을 통해서 두 자매가 자기와 만나고싶어한다는 것을 안 최공이 그밤으로 그들을 청한다는 시를 취금이에게 써주었소이다.

과연 곱게 단장을 한 두 처녀가 찾아와 자기들은 부자집의 딸들로서 소금장수와 차장수에게 억지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아버지의 억지처사때문에 죽음을 택했다는 기막힌 사연을 털어놓았소이다. 최공과 하루밤을 보낸 그들은 새벽닭이 울자 부디 자기네를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무덤으로 돌아갔소이다.

이튿날 처녀들의 무덤을 찾은 최공은 하루밤을 보낸 일을 인연을 맺은 정으로 여겨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시를 지어놓고 어데론가로 떠나고말았다 하오이다.》

벌떡 일어나앉은 후비라이가 탄식해마지않았다.

《아, 애달프도다. 나도 젊어 한때 정을 나는 처녀가 있었지. 하지만 우린 함께 살지 못했네. 전장에 나갔다 돌아오니 아버지의 강박에 다른 사내에게 시집을 갔겠지. 허나 그 처녀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구만.》

설경성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억지공사는 사람도 일도 망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싶어 고운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꾸민것 같소이다.》

후비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공사로야 잘되는 일이 별로 없지.》

후비라이를 바라보며 설경성이 물었다.

《듣자하니 몽골이란 말에 순박하고 용맹하다는 뜻을 담고있다는데 그게 옳소이까?》

후비라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번성하여 힘을 떨친다는 뜻도 담고있네.》

《송나라를 병합한 페하께서 원나라사람들을 크게 네 부류로 갈라놓았다고 하던데 그것도 사실이오이까?》

《그렇네.》

광활한 강토에 널려사는 여러 종족들을 쉽게 다스릴 목적으로 후비라이는 이전의 송나라와 그 남부의 사람들은 《남인》, 장강이북의 한족, 거란인, 녀진인을 《한인》 그리고 원나라에 거처하는 아랍인들은 《색목인》으로 갈라놓고 몽골인은 남인과 한인을 지배할수 있도록 특별대우를 하고있었다.

《제가 말하자고 하는건 빛갈에 대한것이오이다. 몽골사람들은 흰색을 제일로 길하고 좋은 일의 상징으로 여기기때문에 정월을 흰색의 달로 정해놓고 정월초하루를 흰색의 절이라고 한다는데…》

후비라이가 놀랍다는듯 두눈을 크게 떴다.

《그대가 이야기만 잘하는가 했더니 남들의 풍속에도 환하구만. 그건 먼 옛날에 벌써 관습으로 굳어졌으니 후손들이야 따라야 하는게 도리가 아닌가?

참, 고려사람들은 비색을 좋아한다지?》

바로 그런 질문이 나오기를 바래서 화제를 돌리였던 설경성이였다.

앞으로 후비라이한테서 살려준 몸값을 톡톡히 받아내자면 그가 고려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많이 깨우치도록 하는것을 놓치지 말아야 했다.

《우리 고려는 동방에서 제일로 동쪽에 자리를 잡고있소이다. 그 위치를 5행으로 나타낸다면 목 즉 나무에 해당되오이다. 나무는 푸르르니 그래서 고려사람들은 푸르른 비색으로 동쪽나라 사람임을 나타낸것이오이다. 우리 고려사람들은 흰색도 좋아하오이다.》

그 말에 후비라이가 기뻐했다.

《고려사람들과 몽골사람들이 다같이 흰색을 좋아하니 진작 화친을 하였어야 했네.》

설경성에게 마음이 가있는 후비라이는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알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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