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19)

 

설경성은 태자에게 이끌려 수레에 오르고 두 제자와 왕택소는 말을 타고 수레뒤를 따랐다.

원나라임금이 사는 궁성에 들어선 수레는 흥경궁곁의 별궁앞에서 멈춰섰다.

흥경궁이 원나라임금 후비라이의 궁전이라면 이 별궁은 그의 자손들이 거처하던 집이였다.

후비라이가 설경성을 대우하여 이 별궁을 내여주라고 한것이였다.

설경성이 진금태자의 안내를 받으며 별궁에 들어서니 아릿다운 궁녀들이 나부시 절을 하며 반기였다.

설경성의 량팔을 부여잡은 궁녀들이 왕골돗자리를 편 화려한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 들어서자 진금태자가 흡족해하는 투로 말했다.

《명의님의 마음에 드시리라고 보오이다.》

설경성이 방을 둘러보니 한쪽 벽에는 천하의 명산 금강산이 그려있고 그 맞은켠의 벽쪽을 아이들 키만큼 큰 꽃병으로부터 무릎에 드는 작은 꽃병들로 장식을 했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흑백상감이 령롱한 고려청자였다.

다른 벽에는 고려사람들이 《3우》라고 하면서 제일로 좋아하는 소나무와 참대, 홍매화가 그려진 열두폭의 병풍이 치여있다.

바닥의 왕골듯자리에는 무궁화, 함박꽃, 까치들이 그려져있었다.

이국에서 고국의 향수가 어리여있는 이런 집에 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설경성이였다.

《이 집에다 우리 고려를 떠옮겨온것 같소이다.》

진금태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부왕께서 이 집을 이렇게 꾸리도록 하였소이다. 실은 여기를 찾아오는 고려임금을 위해서 마련한 방인데 부왕께서는 명의님에게 이 집을 내여주도록 하였소이다.》

진금태자가 설경성에게 나이 듬직한 궁녀를 가리켰다.

《이 녀인이 이 별궁을 맡아보는 녀관으로서 명의님을 시중들어줄것이오이다. 무엇이든 부족한것은 다 녀관에게 분부하시오이다. 그럼 오늘은 려독을 푸시고 래일은 급한 병자부터 병을 보아주도록 해야겠소이다.》

그 말에 설경성은 은근히 화가 치밀어올랐다.

후비라이가 해도 너무하구나. 병을 고쳐달라고 사람을 청해놓고 말씨름끝에 이젠 또 시험까지?!…

설경성은 쓰겁게 웃고말았다.

진금태자가 돌아간 방에는 녀관과 설경성만이 남았다.

후리후리한 키에 틀진 몸가짐, 남아답게 잘생긴 설경성의 용모에 혹한 녀관의 숨결이 높아졌다.

팔에 매달리여 설경성을 두툼한 비단방석우에 앉히며 녀관이 은근한 어조로 여쭈었다.

《나으리께서 외로와하시는것 같은데 애젊은 나인들로 시중을 들게 하는것이 어떻겠나이까?》

허허 웃고난 설경성은 교태를 머금고 몸을 꼬는 녀관에게 엄하게 일렀다.

《난 미인대접을 바라고 온게 아닐세. 날 돕고싶다면 우리 사람들의 행처나 알려주게.》

녀관이 설경성의 팔에 턱을 고이며 방실 웃었다.

《나으리를 따라온 세사람도 다 이 옆방에 들였나이다. 마침 점심이 오니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오이다. 황제페하께서는 수라상을 나으리께 대접하라고 하셨나이다.》

자기의 음식상을 남에게 주는것은 임금으로서는 최대의 성의를 보여주는것이다.

허- 그래도 한쪼각의 례의는 있는가부지 하고 생각한 설경성은 녀관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럼 밥먹으러 가세.》

녀관이 설경성의 팔을 끼고 나가더니 그의 제자들과 왕택소를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열댓명이 둘러앉아도 넉넉한 커다란 상이 놓여있고 그우에 갖가지 음식이 그들먹하였다.

점심을 먹고나니 녀관이 경치구경을 하자며 밖으로 이끌었다.

신록이 한창인 계절이라 나무들마다 잎새 무성하고 화초마다 꽃이 다투어 피고있었다.

어느덧 화원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금나라황제가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화원은 나무도 화초도 기이한것이 많았고 커다란 인공늪은 기괴한 바위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었다.

주변에는 만수산이라는 인공산도 있었다.

고려의 만수산은 황태조의 선산으로 되고있는데 원나라에서는 경치를 돋군다며 만수산을 만들었으니 이렇게 두 나라의 풍습이 너무도 차이났다.

이국의 류다른 풍경에는 흥미가 끌리였지만 이런 신선놀음에 묻혀있을수는 없었다.

이곳에 온것도 이 나라 임금때문이고 이런 대접을 받는것도 이 나라 임금때문이니 아무쪼록 병치료에 실수가 없어야 할것이였다.

인차 돌아선 설경성은 밤늦도록 녀관과 마주앉아 후비라이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이튿날 아침, 설경성이 밥상을 물리기 바쁘게 녀관이 다가와 저쪽 방에서 후비라이가 보낸 병자가 기다린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설경성이 녀관의 안내를 받으며 어느 한 방에 들어서니 바싹 여윈 로인이 울상이 되여 맞아주는것이였다.

녀관이 로인을 가리켰다.

《이 어른은 황제페하의 6촌동생이온데 무엇이 목에 걸리였는지 제대로 자시지 못하오이다.

황제페하께서 어의들을 보내시여 약을 써주었지만 병은 날로 심해만 지고있소이다.》

서서 병자의 안색이며 거동을 살피고난 설경성이 그의 손을 끄당겨 맥을 보았다.

이윽고 설경성이 입을 뗐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게사니의 피를 받아 마시오이다. 하루 어미게사니 한마리의 피를 마시되 며칠을 쓰면 목에 걸린것이 반드시 없어질것이고 오늘부터 효험을 볼수 있으니 마음을 놓아도 되겠소이다.》

선자리에서 병자를 돌려보내니 녀관이 의문이 가득한 눈길로 설경성을 쳐다보았다.

의문이 가득한 눈길로 쳐다보는 녀관의 오른쪽볼에서 그때에야 팔알만 한 군살을 발견한 설경성이 빙그레 웃었다.

《옥에 티라고 자네의 고운 얼굴에 무사마귀가 있었군그래.》

녀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부끄러워할건 없네. 얼굴에 생긴 무사마귀나 쥐젖은 약으로는 고칠수 없지만 바다물로는 얼마든지 없앨수 있네. 가을철 바다물이 더 좋은데 날마다 여러번 바다물로 얼굴을 씻으면 한달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마네.

바다물이 없을 땐 소금자루에 배여나온걸 물에 타서 써도 되네. 이건 우리 고려에서 대대로 써오는 비방이니 의심할게 없네.》

녀관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날 저녁 목에 뼈가 생긴 로인이 게사니피를 마시고 벌써 효험을 보았다는 소식은 후비라이에게 전해졌다.

여기에 설경성이 녀관에게 대준 비방까지 전해져 그에 놀란 후비라이는 래일은 고려의원을 불러들이라는 령을 내렸다.

후비라이가 만나자고 한다는 전갈을 받은 설경성은 고국에서 가지고온 상자를 끄집어냈다.

그안에 왕후가 손수 지어준 두벌의 옷이 들어있었다.

이 옷을 주면서 왕후는 원나라황궁에 드나들 때 입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땅이 넓어 비단을 제일 많이 낸다는 원나라에서도 고려비단 경포라고 하면 귀물로 여긴다. 바로 그 경포로 지은 옷으로 갈아입은 설경성은 제 옷차림에 놀라와 감탄했다.

옷이 날개라더니 자기가 신선처럼 돋보이는것이 아닌가.

언제 들어왔는지 경포로 지은 옷을 입은 설경성을 본 녀관이 입을 딱 벌리였다.

황홀한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는 녀관의 눈길앞에 설경성은 가슴을 쭉 폈다.

《어서 나를 그대의 임금에게 안내하게. 역관으로는 왕택소를 데리고가세.》

녀관과 왕택소를 앞세우고 흥경궁의 어느 한 방에 들어선 설경성은 룡상에 걸터앉아있는 여윈 로인이 후비라이일거라고 짐작했다. 그의 등뒤에 여러명의 남녀가 서있었다.

로인의 얼굴이 이그러져있는것으로 보아 지금도 동통을 겪는 모양이였다.

녀관이 설경성에게 귀뜀했다.

《늙으신분이 황제페하이오이다.》

갑자기 로인이 다급하게 굵은 소리로 재채기를 하였다.

그 재채기소리에 설경성은 후비라이의 성격이 어떠한지 알수 있었다.

저렇게 재채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결단성이 있고 자기의 의사를 남에게 내리먹이기를 좋아하는 반면에 남의 조언을 듣기 싫어했다.

후비라이의 성격까지 파악한 설경성은 배심이 든든하였다.

병자의 성격을 알면 그에 맞게 상대의 마음을 틀어잡을수 있는 묘책을 세울수 있었다.

자신심에 넘친 설경성이 활달한 동작으로 후비라이를 향해 절을 하며 입을 열었다.

《고려사람 설경성이 우리 성상페하의 령을 받고왔소이다.》

왕택소가 통역을 하니 후비라이가 자기앞의 걸상을 가리켰다.

《고려의원은 거기에 앉소.》

설경성이 앉자 후비라이가 제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짐의 식솔들일세.》

그들속에서 알수 있는 사람은 태자 진금뿐이였다.

진금태자가 황후와 태자비, 황자 탈환(철목아) 그리고 황녀 망가대를 차례로 소개했다.

가운데의 머리칼을 조금 남겨두는 원나라남정들의 개체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지만 황후나 태자비의 머리차림은 눈에 설었다.

그들은 둥그런 머리쓰개를 쓰고있었다.

그것은 몽골족의 귀부인들만이 쓰는 고고라는 모자였다.

후비라이가 병색이 진한 목소리로 뜨직뜨직 입을 열었다.

《그대가 벌써 병고에 시달리던 짐의 동생을 살수 있게 하였다니 고려의술은 참으로 신기하도다. 이제는 고려의술에 믿음이 가네. 짐은 꼭 칠십년을 살았노라. 말년에 병고에 시달리고있는데 괴롭기 그지없다. 하루를 산대도 아픔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후비라이의 온몸과 함께 그의 행동거지를 눈여겨본 설경성은 병자의 이런 심리로는 명약을 써준다고 해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것을 간파했다.

약절반 마음절반이라고 병자를 추세우려면 병을 능히 고칠수 있다는 신심이 우러나오도록 그의 마음을 틀어쥐는것이 선차였다.

후비라이의 목숨이 자기의 손끝에 달려있다고 생각한 설경성이 입을 열었다.

《제 보건대 페하께서 이만큼 견딜수 있은것도 련덕신과 같은 어의들의 힘인줄 아오이다.》

그 말에 진금태자가 설경성을 쏘아보았다.

《그렇다면 부황의 병을 고칠수 없다는거요?》

설경성이 한손을 쳐들어 그의 말을 제지시켰다.

《이 자리에서 말할수 있는 사람은 의원과 병자뿐인줄 알아두어야 하오이다.

페하, 의술이 능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시황도 죽었다라는 고담으로 곧잘 자기의 무능을 가리우고있소이다.

보통사람들도 환갑을 맞는 사람이 많은데 진시황은 겨우 쉰살을 넘겨살고 죽었으니 참 맹랑하다고 할수 있소이다. 그에게는 확실히 명의라고 할 그런 의원이 없었소이다.

그러나 명의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늙어죽는것을 막을수는 없소이다.

하지만 제 명을 다 누릴수 있도록 도와줄수는 있소이다.

명의가 할일은 병자의 고통을 덜어주어 하루라도 더 오래 살면서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것이오이다. 오죽 사람들이 늙마에 고통없이 살다가 죽기를 바랬으면 고종명이라고 제 명에 편안히 살다가 눈을 감는것이 소원이라면서 오복의 하나로 쪼아박았겠소이까.》

설경성은 벌겋고 푸르칙칙하면서 부어오른 병자의 한쪽발을 들여다보며 병든 부위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는 곧 후비라이의 발병이 보통의술로는 고칠수 없는 탈저임을 알아보았다.

이 병은 주로 간과 신, 비가 허한 사람이 심한 추위를 겪을 때 생기는데 흔히 발가락부터 썩어서 떨어져나간다.

이미 여러번이나 탈저에 걸린 병자들을 구원해낸 경험이 있는 설경성에게는 후비라이의 발병이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후비라이의 발에서 손을 뗀 설경성이 자신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고려의술로는 페하의 고통을 씻어줄수 있으며 강산이 변할 때까지 왕성한 기력으로 수를 누리도록 할수 있소이다.》

그 말에 후비라이는 말할것도 없고 식솔들도 환희에 넘쳐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몹시 흥분한 후비라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짐의 조부이신 칭기스한은 예순다섯살에 전장에서 세상을 마치였고 부친 툴루이는 명이 짧았네. 그런데 짐만은 일흔살까지 살아오니 명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10년을, 그것도 젊은이처럼 살수 있다니 꿈만 같네. 아, 고려의술이 그처럼 신비하단 말이지.》

후비라이의 손을 당겨 맥을 본 설경성이 웃음을 머금었다.

《페하를 괴롭히는 병은 발에 생긴 종창이오이다. 페하의 어의들이 그 종창을 뿌리뽑지 못한것은 그 하나에만 몰두했기때문이오이다.

페하의 몸에서는 겉에서는 탈저가, 속에서는 열비(류마치스성관절염)와 각기(비타민B1의 부족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병)가 무섭게 독을 쓰고있소이다.

그보다 페하는 오래전에 오장에 든 병을 제때에 손을 쓰지 못해 <7전자사>라고 하는 생의 절벽우에 서있소이다.

처음 페에 생긴 병을 고치지 못하면 그 독기가 간으로 이어 비장에로 그다음은 신장을 병들게 하며 병든 신장은 심장에다 그 독기를 옮겨놓게 되오이다. 이렇게 되면 심수페병전이라고 병든 심장이 제일먼저 병에 든 페로부터 오는 독기에 견디지 못하게 되며 또한 페수심병전이라고 병든 페는 저대로 병든 심장에서 오는 독기에 견디지 못하게 되오이다.

이것을 가리켜 <7전자사>라고 하는데 이 경우 의원들은 36계줄행랑을 칠수밖에 없소이다. 더는 병자를 구원할수 없기때문이오이다.》

3자의 눈으로 볼 때 설경성은 아주 수월하게 말하는것 같지만 사실 그는 젖먹은 힘까지 쥐여짜고있었다.

지금껏 다져온 의술을 다해 신통한 비방을 내놓자고 하니 초인간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설경성이였다.

《하지만 이 나라의 의술로는 7전자사를 풀기 어렵소이다. 7전자사를 풀려면 각기와 열비를 다스리면서 5장을 보하는 약을 쓰는 동시에 발의 종창에 맞는 묘방을 택해야 하오이다.

각기를 다스리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소이다. 고려의술을 물려준 고구려의 선조들이 각기의 독기가 심장으로 들어가서 손발의 맥을 끊어놓을 때 오수유와 목과로 다스리는 비방을 찾아내였소이다.

그 비방은 당나라사람 왕도가 의서 <외대비요>에 그대로 옮겨놓았소이다.

열비도 어려울게 없소이다. 사람이 열비에 걸리게 되는것은 몸이 허약해졌을 때 풍한습사가 심장으로 들어오기때문이오이다. 그때문에 그 독기가 피줄을 타고다니면서 팔다리의 뼈마디들에 병이 나게 하오이다.

이 경우에 약은 많지만 페하에게는 율무쌀과 뽕나무가지, 오갈피, 물매미와 같은 흔한 약재로 지은 약이 맞을것 같소이다.

각기와 열비를 없애면 그때문에 병들었던 심장도 구원되게 되고 심장이 좋아지면 상생의 리치로서 비장이 좋아지고 차례로 페, 신, 간이다 좋아지게 되여 결국 7전자사는 풀리게 되오이다.

페하의 발에 탈저가 생겨난것은…》

설경성은 다시한번 병자의 앓는 발을 들여다보았다.

설경성이 력동의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탈저를 다스리는 비방을 얻지 못했을것이다.

후비라이를 괴롭히는 탈저는 처음에는 피줄이 그다음에는 살과 뼈가 썩는 무서운 병이였다.

《모름지기 추운데서 오래동안 말을 타고다녔기때문이오이다. 발에 동상을 입으면 피가 잘 통할수 없기때문에 피줄이 물크러져 이런 병이 생기게 되는것이오이다. 의원들은 흔히 이런 병을 고약으로 고치려드는데 고약의 약효는 오래 갈수 없소이다.》

후비라이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고려의술에서는 기죽마와 중완과 같은 혈들에 뜸을 뜨면서 전갈, 왕지네, 단너삼, 금은화, 쇠무릎풀, 당귀와 같은 약재로 지은 약을 쓰면 아픔도 멈추고 상처도 곧 없앨수 있다고 하였소이다.》

이 처방이 력동의 아버지가 대준 비방이였다.

《탈저에 아무리 좋은 비방일지라도 5장에 든 병을 함께 다스리지 않으면 응당한 효험을 기대할수 없소이다. 그래서 비방속에 또 비방이 있다고 하는것이오이다.

부언할것은 음식비방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것이오이다. 어제 분에 넘치게도 페하께서 하사하신 수라상을 받았는데 음식의 가지수가 아주 많았소이다.

한끼에 여러가지 음식을 자시면 상극때문에 좋지 않소이다. 예로부터 중원사람들은 약이나 음식을 지어도 될수록 가지수가 많이 들어가야 좋은것으로 일러오는데 우리 고려의술에서는 그것이 결코 좋은것이 못된다고 하오이다.

약이든 음식이든 주되는것 외에 기껏 많아서 서너가지를 넘지 않게 지어야 상극을 피할수 있소이다. 고려의술의 요는 단방으로 한가지 병을 다스리는것이오이다.

페하께서 음식을 많이 차린 수라상에서 두세가지만 드시고 다음끼에 또 다른 음식을 그렇게 자시는것이 보신에 유익할줄로 아오이다.

제 할말은 다했소이다.》

얼굴이 환해진 후비라이가 손벽을 치며 기뻐하였다.

《아, 달변으로 혼을 빼는 사람이 있다더니 내 마음을 사로잡는 명의도 있구나. 짐이 천하의 명의들은 다 만나보았지만 나를 격동시킨 달변가는 오로지 그대뿐이노라. 신비로운 비방이 차고넘치는 그대의 달변에 병이 다 나은듯싶도다. 고려에 천하명의가 있다는 련덕신의 말이 과연 헛말이 아니였도다. 련덕신의 말을 믿고 난 그 사람을 서북의 변방에 나가있는 동생에게 보냈네.

이젠 살것 같군, 허허허-》

설경성도 웃음을 터치였다.

병자의 마음을 틀어잡았으니 이런게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환생약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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