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16)

 

후비라이의 병을 고쳐주라는 어명을 받은 설경성은 이틀후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설경성은 솟구치는 눈물로 하여 앞을 가려볼수 없었다.

벼르던 제사에 물도 못 떠놓는다고 마음속으로는 늘 어머니에게 효도를 바치리라 다짐해오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또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가야 하니 그때문에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언제면 효도를 해볼수 있겠는지…

멀리로 떠나는 아들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 강심을 먹은 박씨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사내가 눈물이 헤프면 못쓴다. 난 내 아들이 뛰여난 의술로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병자들을 찾아다니는걸 제일 큰 효도로 아느니라.》

《어머니!…》

나리가 손에 들려주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설경성은 박씨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급히 돌아섰다.

또 눈물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설경성은 대문밖으로 따라나서는 나리에게 일렀다.

《어서 돌아서오. 그대까지 없으면 어머니가 견디지 못할거요.》

《그럼 잘 다녀오시오이다.》

개경성을 나선 설경성을 바래워주는 사람은 많았어도 그의 행차는 너무도 단출하였다.

일행으로는 지난해 제자로 받아들인 애숭이총각 두명과 무술에 능한 군사 세명이 전부이고 행장이라야 사람이 타지 않는 두필의 말에 실은 짐이 고작이였다.

대개 원나라로 가는 사신들의 행렬은 시중군들까지 합치면 수백명을 헤아리는데 그에 비기면 설경성의 행차는 나들이를 나선 시골부자나 같았다.

설경성이 일행을 단출하게 무은것은 갈길을 다그치는 동시에 떼도적의 기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원나라가 강탈해가진 서북면에서는 때없이 떼도적이 출몰하고있었다.

그때문에 두 나라의 지경을 넘나드는 사신들과 장사치들은 무술에 뛰여난 장사들을 채용하는 까닭에 일행이 수백명으로까지 불어날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걸음이 굼뜨고 오히려 도적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점을 헤아렸기에 일행을 단출하게 무은것이였다.

그의 행렬에서 좀 류다른 점은 여섯명 모두가 날랜 말을 타고있는 그것이였다.

황교까지 따라나온 홍자번과 최유엄 그리고 제자들이 더는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 설경성은 두명의 군사를 거느린 텁석부리군교에게 일렀다.

《하루 400리씩은 가야 열흘안에 대도에 갈수 있네.》

《알겠수다.》하고 대꾸하는 텁석부리의 이상야릇한 눈빛이 설경성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보로 걷던 준마들이 습보로 달리였다.

맨앞에서는 텁석부리가, 그뒤로 각각 짐을 실은 말을 몰아대는 두명의 군졸과 애숭이제자들이, 맨뒤에서는 설경성이 준마에 박차를 가했다.

길가의 집들이 언듯언듯 스쳐지나가는데 설경성의 마음은 불안스럽기만 하였다.

그게 무엇때문에서인지…

두 제자를 바라보는 설경성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제자들때문에는 아니였다. 물론 이들의 의술이 아직은 초학도이라 그런 재주로는 도움을 바랄수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굳이 데리고 나선것은 그들이 홀몸이니 처자를 근심할것도 없고 보다는 행동이 민첩한 그 점을 중시한때문이였다.

이역땅에서 목숨을 지키는 길은 오로지 자기에게 의지해야 하니 될수록이면 몸이 날래야 하는것이다.

설경성의 눈길은 맨앞에서 말을 내모는 텁석부리에게 옮겨졌다. 얼굴절반을 수염으로 가리운 텁석부리군교의 이름은 백치락이였다. 맨손으로 하는 격투인 수박희의 능수로서 혼자서도 열명을 당하는 장사인때문에 홍자번이 특별히 경군에서 뽑아온 사람이다.

나머지 두 군졸도 백치락이 데려온 사람이였다.

분명 백치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십년세월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온 의원의 특수성이 설경성으로 하여금 용모와 행동거지만을 보고서도 상대의 됨됨을 옳게 식별해내는 통찰력을 안겨준것이였다.

이제는 그런 통찰력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사람을 평가하는데서 실수라는것을 거의 몰랐다.

설경성이 첫 대면에 백치락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것은 그의 뱁새눈에서 비쳐나오는 이상야릇한 눈빛때문이였다.

탈바가지를 써도 가리울수 없는것이 사람의 눈빛이였다.

두눈에 비껴지는 눈빛의 변화가 그 사람의 내적감정을 반영한다는것이 설경성의 리론이였다.

악한이 제아무리 아닌보살하며 선량한체를 해도 임의의 순간에 제 눈에서 발산하는 독기어린 눈빛까지는 숨길수 없는 법이다.

그런 눈빛은 억지웃음으로도 가리울수 없었다.

물론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느낄수 없어도 얼굴을 보고 병을 진단해내는 설경성의 예리한 두눈을 속이지는 못했다.

아무리 보아도 저 군교는 동행자로 편안치 않다.

드디여 이런 결론에 이른 설경성은 만일에 대처할 생각으로 길이 어떻게 축나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그날 저녁 황주고을의 객사에 든 설경성은 여전히 그 한생각이였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마음은 더욱 불안스러웠다.

래일부터는 원나라가 강탈한 서북면을 지나가야 하는데도 텁석부리의 눈길에는 근심하는 마음이 꼬물만치도 어려있지 않고 도리여 총각의원들에게 《애숭이의쟁이》라고 시까슬러대고있으니 딴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수가 있겠는가.

의심이 더더욱 갈마드는 속에 설경성의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저 백치락이 홍자번이 골라잡았을뿐 그 본판이 조인규나 렴승익의 부하가 아닐가, 나에게 불상사가 생긴다면 그것이 누구에게는 리롭고 누구에게는 손해가 되겠는가?…

문제를 이렇게 세우고보니 안겨오는것이 있었다.

조정에는 두 세력, 조정을 쇄신하자고 하는 세력과 탐욕을 부리는 친원세력이 다투고있다.

만일 내가 로상에서 잘못된다면 이를 구실로 조인규네가 홍자번에게 그 죄를 들씌우자고 할것이다.

그러니 내가 잘못되면 리득을 볼수 있는자들이 조인규네이다.

백치락이 조인규의 부하가 아닌지를 밝혀내지 않고서는 잠을 잘것같지 못했다.

어떻게 그자의 본색을 알아낸다?!…

한동안 고심끝에 그럴듯싶은 궁냥이 떠올랐다.

설경성은 곧 얼마간의 돈이 든 돈주머니를 남몰래 텁석부리의 곁에다 가져다놓았다.

이튿날 아침 밥을 먹고난 설경성은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구 내 돈주머니를 보지 못했나?》

텁석부리는 뻔뻔스럽게도 고개를 저으며 딴전을 부렸다.

간밤에 자는척 하면서 돈주머니를 텁석부리가 가지는것을 똑똑히 보아둔 설경성이 속으로 웃었다.

(어리석다 이놈아, 돈앞에 검은 심보로 변하는 놈치고 불의한짓을 아니하는 놈 없거늘 이젠 네가 어떤놈인지 똑똑히 알겠다.)

길에 나선 설경성은 텁석부리가 조인규의 부하라면 언제 어디서 못되게 나올가 하는 그 생각뿐이였다.

서푼값에도 못 드는 저놈의 손에 죽는것도 맹랑한 일이지만 아직은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제자들까지 무주고혼이 되게 한다면 이런 가슴아픈 일이 어데 있겠는가. 아니, 나도 제자들도 죽어서는 안된다.

흉계만 알면 화를 막을수 있다.

내가 자객이라 하고 생각해보자.

자객은 될수록이면 두 나라의 령이 덜 미치는 곳에서 사신들을 해치려 할것이다.

그런 고장이 어데인가. 동녕부가 아닌가. 그럼 서경이?!…

서경은 너무도 번화한 고장이다. 자객질로는 길손들이 적은 산골길이 좋을것이다. 청천강으로부터 압록강의 사이가 좋을것이다.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닥쳐올 불행을 간파해낸 설경성은 자기의 생각을 제자들에게 알려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나 혼자서는 백치락을 당할수 없겠는데… 아니, 길고 짧은것은 대봐야 안다.

설경성은 안장뒤의 보짐을 어루만지였다. 그안에 력동의 아버지가 준 보검이 들어있었다.

제자들과 말머리를 나란히 한 설경성은 곁눈질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호는 의홍, 의성이다. 병자구제에 전심하는 참의원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 설경성이 지어준 호였다.

키가 큰 의홍에게서 표가 나는것은 눈매가 날카롭고 한쪽 볼에 칼에 맞은 자리까지 나있어 그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것이였다.

바다가태생인 그는 이태전 마을에 기여든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볼을 칼에 찔리운것이였다.

의성은 중키에 다부지고 무던하게 생겼다.

청천강을 끼고있는 녕주(오늘의 안주에 있던 고려의 고을)의 주막에 들어설 때까지도 설경성은 제자들에게 자기 생각을 말해줄수 없었다.

밤에도 텁석부리가 지켜보는것 같아서 말해주지 못하였다.

이튿날, 청천강을 건너서기 바쁘게 설경성은 선두에서 말을 달리였다.

정말로 텁석부리가 자객이라면 오늘을 넘기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기때문이였다.

불행을 면하자면 될수록 텁석부리와 한걸음이라도 더 멀리 떨어져있어야 했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설경성이 짐짓 성을 내여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이녀석들아, 젊으나젊은것들이 왜 꾸물거리느냐?》

그 말에 두 제자가 황급히 말을 때려몰았다.

설경성이 죽어라고 말을 내모니 짐을 실은 두필의 말을 끌고가야 하는 텁석부리네와 간격이 크게 벌어졌다.

백여보쯤 간격이 벌어져서야 설경성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내 말을 명심해 듣거라. 저 백치락이 암만 봐도 수상하니 이제부터는 매사에 정신을 도사리고 아무때건 칼을 쥘수 있게 해야겠다.》

얼마쯤 더 달렸더니 말들이 지쳐서 제대로 뛰지 못했다.

《좀 쉬여가지 않으려우?》

텁석부리가 뒤에서 소리를 쳤다.

설경성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고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길 좌우로 나무가 울창한 산세가 도적이 숨어있기에 좋아보였다.

자객이라면 이런 곳에서 손을 쓰자고 할것이였다.

텁석부리가 진짜 자객이라고 해도 적아간의 머리수가 1대 1이니 바이 두려울게 없었다.

설경성이 말고삐를 끄당기며 제자들에게 일렀다.

《애들아, 정신차려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에서 내리면 안된다.》

좀 있어 뒤쫓아온 텁석부리가 설경성의 눈치를 보며 뇌까렸다.

《제길할, 이 고생을 하며 대도에까지 갈것 있수? 누구나 한번은 가기마련인데 그래도 고국에 묻히는게 얼싸 낫지.》

본색을 드러내는 텁석부리를 쏘아보며 설경성이 말했다.

《이제라도 내 돈주머니를 내놓는게 좋지 않을가. 솔직히 내놓으면 도루 돌려주지.》

허리에 찬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텁석부리가 뱁새눈을 사납게 번뜩이며 《옳다, 내가 가졌으니 어쩔셈이냐? 저 두필의 말에 실려있는 짐도, 너희들이 가진 보짐들도 다 내것이 될터인데 시비나 갈라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하더니 군졸들에게 소리쳤다.

《이것들을 해치워라.》

그 순간 설경성도 제자들도 재빨리 칼을 뽑아들었다.

《우습도다, 나하고 맞서겠다? 어디 죽어봐라.》하고 소리를 지르며 칼을 휘두르던 텁석부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무술의 무자도 모를것이라고 깔보았던 설경성의 칼쓰는 솜씨가 여간 아닌것이였다.

내리치면 올리막고 찌르면 비껴막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상대의 급소쪽으로 칼끝을 들이대니 자칫하다가는 텁석부리 제가 화를 당할것같았다.

《허- 이것 봐라, 제법인데…》

혼자서도 장사 열명을 당한다는 텁석부리가 용을 써대니 설경성과 그의 제자들은 어쩔수없이 바위를 등진 좁은 곳으로 밀리웠다.

허공을 종횡무진 써는 텁석부리의 칼에 얻어맞고 두 제자의 칼들이 땅바닥에 나떨어졌다.

텁석부리가 히죽 웃으며 그들의 목을 향해 겨눈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어데선가에서 날아든 화살이 그의 팔을 꿰찔렀다.

《악!-》

그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여러대의 화살이 설경성을 에워싼 두 군졸의 등으로 날아들었다.

너무도 꿈만 같은 일에 설경성도 제자들도 멍하니 서있을뿐이였다.

좀 있어 숲속에서 열댓명의 군사들이 뛰쳐나오는데 행색을 보니 원나라군사들이였다.

이 또한 청천벽력이라 설경성은 탄식해마지않았다.

승냥이뒤에 이리떼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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