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9)
설경성이 집에 들어서니 반가운 사람들이 기다리고있었다. 총명하게 생긴 두 젊은이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와있는것이였다.
설경성은 그들을 데리고 처마를 마주한 력동이네 집으로 건너갔다.
력동이네 본채에 잇대여 지은 여러개의 방을 가진 집은 새로 받아들이는 제자들을 위해 지은것이였다.
그 방들에서 요즘 받아들인 문생들이 침식을 하면서 의술을 배우고있었다.
그들에 대한 강의는 설경성이 없을 때는 력동이와 조석견, 김석이들이 하였고 밥시중은 력동의 안해가 맡아했다.
두 젊은이들에게 방을 내준 설경성은 력동이를 만나 탐라행에서 새로 모아들인 비방들을 묶은 책을 넘겨주었다.
《이걸 제자들모두에게 옮겨베끼도록 하게.》
설경성이 키운 제자들이 남달리 의술이 높은데는 비결이 있었다.
그 비결은 설경성이 비방을 모아들이는족족 제자들에게 물려주기때문이였다.
《내 없는 동안 의재가 문생들을 가르치게.》
력동이 근심어린 눈으로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그럼 또 집을? … 이제는 머리에 흰서리도 내리는데 집을 떠나 다니는걸 삼가해주소이다.》
진정이 어려있는 그 말에 설경성은 배심이 든든해졌다.
《알겠네. 휴휴선생이 앓으신다니 잠간 그곳에 가있으려네.》
긴숨을 내쉬는 설경성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것이 있었다.
탐라에서 급히 돌아온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역병으로부터 도성의 백성들을 지켜주고 또 병고에 시달리는 성상페하를 돌봐주자는것이 아니였던가. 이 설경성이 련덕신을 의술로써 압도하면 성상페하께서 불러줄줄 알았는데. …
허나 련덕신은 별궁에 잡인들을 끌어들였다는 리유로 그곳에 갇힌 신세가 되였다.
누구의 작간때문에?! …
설경성은 그 장본인이 임금의 측근에서 못된짓을 일삼고있는 강윤소의 패거리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있었다.
조정의 쇄신과 부국강병을 위해 애쓰는 홍자번을 눈에 둔 가시처럼 여기는 그것들을 내놓고 누가 그런짓을 할수 있단 말인가.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고 진실은 밝혀지기마련이니 조만간에 그자들의 죄행은 드러나고말것이다.
그러니 그사이 휴휴선생을 구제하고 보자.
설경성은 근심어린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력동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의재 이사람, 지금껏 우리가 놓치고있는것이 있네. 나라를 위해 마음쓰는 충의지사들을 잊고있었단 말일세. 이제부터는 자네들이 홍자번, 최유엄, 정가신, 리익배와 같은 사람들을 병이 날세라 돌봐드리게. 물론 나라에서 조정신하들의 병을 보아주고있지만 그것으로 만족해할수가 없네. 그러나 민심을 어지럽히는 탐관오리들은 절대로 손대지 말게. 우린 단순히 병자를 고쳐주는 사람이 아닐세. 이걸 명심하게.》
그날 밤 나리와 한자리에 누운 설경성은 안해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나리를 이 집에 데려온 첫날부터 그의 연약한 두어깨에 집일을 통채로 메워주고 돌아보지 않았으니… 오죽 힘이 들었으면 때이르게 겉늙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지난날 못해준바를 두곱세곱으로 봉창해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설경성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는데 나리가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제 문우 아버지의 마음을 다 아오이다. 그 마음이면 전 더 바랄것이 없소이다.》
오히려 남정네를 위해주는 안해의 뜨거운 정에 감동된 설경성이 나리를 꼭 끌어안았다.
《난 내가 택한 이 길에서 내인 하나 보살펴주지 못할줄은 정말 몰랐소. 그저 생각할뿐이지 집일을… 정말 면목이 없소.》
나리가 설경성의 목을 얼싸안았다.
《난 백성을 위해 의로운 길을 가는 문우 아버지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소이다. 래일 또 집을 떠나가야 하는데 돌아오시여 남 보지 않는 밤에 조용히 업어주면…》
격정이 북받친 설경성이 더 세차게 나리를 껴안았다.
《그거야 열백번이란들…》
설경성에게는 남모르는 습관이 있었으니 그것은 멀리 고을들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날 밤에는 반드시 안해를 업고 방안을 도는것이였다.
거기에는 늙은 어머니와 자식들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안해에 대한 고마움이 뜨겁게 어려있었다.
《집들은 걱정마시고 잘 다녀오시오이다.》
《나리! …》
이튿날 설경성은 을나와 함께 개경을 나섰다.
역참을 찾아가 그전에 홍자번이 내준 역마리용허가증서를 내보였더니 역장은 군말없이 달라는대로 두필의 말을 끌어왔다.
말에 오른 그들은 경산부를 향해 말을 내몰았다. 역참들에서 말을 갈아타면서 내달렸더니 사흘안에는 경산부에 들어설수 있었다.
역참에 말을 바친 그들은 부지런히 걸음을 다그쳤다.
이 고장을 다녀간바 있는 설경성은 구동을 가까이하자 걸음이 굼떠졌다.
문득 들고온 돈이 너무도 보잘것 없다는 생각이 든때문이였다.
사실 설경성의 집형편은 겨우 밥술이나 뜨는 정도였다.
설경성은 사람됨이 자나깨나 의술뿐 집살림은 관심밖이였기에 병을 고쳐준 대가로 부자들에게서 묵돈을 받을 때면 아낌없이 가난한 병자들을 구제하는데 썼을뿐 안해의 손에 들려준적이 없었다.
그의 식솔들이 살아갈수 있은것은 안해의 덕이였다. 나리가 날마다 명주낳이, 베낳이를 하지 않았더라면 설경성의 오늘이 없었을것이였다.
이번에 설경성은 수중에 돈이 없어 안해한테 손을 내밀었다.
안해에게서 한푼두푼 모았을 돈을 두손에 받아들었을 때에는 무겁게 느끼였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적은 돈이 병자한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마을입구에서 종시 걸음을 멈춘 설경성이 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 나의 스승인 시문의 천재가 살고있네. 대국이라고 뽐내는 원나라사람들을 경탄시킨 사람일세. 금방석에 앉혀도 아깝지 않을 인재가 이 마을에서 고생하고있다네.》
눈물속에 설경성은 10여년전을 그려보았다.
그때 리승휴의 학식을 잘 아는 고려임금 원종이 그를 직접 불러들이고 두 나라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원나라에 가는 사신단의 서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대도에 온 고려의 사신들속에 유명한 문장가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원나라임금은 대국의 체면이 깎일세라 한림학사 후우현을 불러 관반(외국사신의 접대를 맡은 관리)으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두 나라사이에 시문을 겨루는 대결이 벌어졌다.
원나라사람 후우현으로 말하면 다섯살에 유교의 경전들인 시전과 서전을 통달했다는 신동으로서 시문에서도 원나라 제일의 재사라는것이였다.
그래서 원나라임금이 직접 한림학사로 천거한 사람이였다.
고려사신들을 얼굴도 들고다니지 못하도록 꾹 눌러놓을줄로 믿었던 후우현이 리승휴의 시를 보고는 그를 스승처럼 따르자 원나라임금은 아연실색하였다.
리승휴의 시재앞에 마침내는 원나라임금도 감동되여 그의 시를 즐겨 읊었다고 한다.
그 덕에 사신들은 지닌 사명을 뜻대로 실현하고 돌아올수 있었으니 이를 계기로 나라에서는 리승휴에게 30석의 쌀까지 하사하였었다.…
눈물을 닦으며 설경성이 말했다.
《그런 명사를 구제하지 못한다면 의원이라고 할수 없네. 내 기어이…》
리승휴의 초가집은 마을 한켠의 산자락에 붙어있었다.
뜨락에서 다리 하나가 부러진 지게를 손질하며 쿨룩쿨룩 줄기침을 하고있는 리승휴를 삽짝문너머로 들여다보는 설경성은 너무도 가슴이 아파 선뜻 발을 옮기지 못하였다.
이윽고 뜨락에 들어서며 설경성이 목메여 소리쳤다.
《휴휴선생, 제가 왔소이다. 경성이가…》
천천히 일어서며 설경성을 쳐다보던 리승휴가 왈칵 눈물을 쏟으며 그의 손을 부둥켜잡았다.
《날… 잊지 않았네그려.》
뒤뜨락에서 리승휴의 두 아들이 달려왔다. 림종이와 연종이였다.
《의원님!-》
어른이 된 그들이 설경성의 량손을 부여잡았다.
그들을 대견해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설경성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너희들도 과거장에 나설 때가 되였구나.》
기침을 하며 리승휴가 대꾸했다.
《내 그래서 밤이면 이녀석들에게 글을 가르친다네.》
설경성은 재차 떠오르는 의문속에 리승휴를 바라보았다.
《림종이
설경성의 물음에 림종이도 연종이도 눈물이 글썽해졌다.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리승휴가 뒤산을 가리켰다.
《갔네, 저승에 가는것이 뭘 그리 바쁘다고…》
그만 슬픔이 북받친 설경성이 고개를 떨구었다.
설경성에게 있어서 리승휴의 부인은 친누이와도 같은 존재였다.
서경에 가서 나리를 데리고온 녀인도 그였고 혼례식을 주관한 사람도 그였으며 늘 나가사는 설경성을 대신하여 이모저모로 돌봐주던 그였다.
《고생만 시키다가 먼저 보냈네. 급작스레 독한 병이 들었으니 어찌겠나. 자, 안으로 들어가세.》
설경성은 을나에게 눈짓했다.
점심을 지으라는 뜻임을 알아차린 을나가 부엌으로 향했다가 인츰 방으로 들어오더니 설경성에게 좁쌀이 든 바가지를 내보였다.
《사부님, 이 집의 쌀이 곰(곰팽이)투성이오이다.》
설경성이 들여다보니 정말 좁쌀이 누런 곰투성이였다.
리승휴가 한숨을 내쉬였다.
《그건 땅임자네 집에서 꾸어온 묵은쌀일세.》
리승휴는 놀라와하는 설경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린 고향으로 내려온 그날부터 이웃마을의 백부자에게서 늘 이런 쌀을 꾸어다먹고있네. 우리에게 소작을 주겠다는 사람이 없어 이 집뒤의 산자락을 일구었더니 그게 뭐 백부자 자기 땅이라나. 그래서 그 집 작인이 되여 그 집에서 묵은쌀을 가져다먹고 가을에는 리자까지 합쳐 물어준다네. 리자까지 물고나면 곧 절량이라 하는수없이 백부자에게서 묵은쌀을 꾸어다먹을수밖에…》
설경성의 언성이 높아졌다.
《쌀에 곰이 쓸면 독이 생긴다는걸 모르오이까? 이런 곰이 쓴 쌀을 먹으면 간이 녹아나오이다.》
리승휴가 고개를 저었다.
《원, 사람두. 당장 굶어죽을판에 그쯤이 무슨 대수라구.…》
그 말에 기가 막혀 물끄러미 쌀을 들여다보던 설경성이 을나에게 일렀다.
《이렇게 하세. 그 쌀을 먼저 더운물로 씻으라구. 그다음 반바가지의 물에 회가루를 한숟가락 타서 그 물로 여러번 쌀을 씻어내면 곰의 독기를 없앨수 있네.》
이 비방도 백성들에게서 배운것이였다.
림종이 을나를 따라나서며 말했다.
《회는 제가 얻어오겠소이다.》
을나가 차린 점심상은 괜찮았다. 오던 길에 사가지고온 굴비를 구운데다 소고기국에 주열이 보낸 잣술까지 올려놓으니 리승휴에게는 잔치상 맞잡이였다.
설경성의 지성에 감동된 리승휴는 눈물을 머금으며 수저를 집어들었다.
밥상을 물리자 설경성이 약을 꺼내놓았다. 그속에는 해수병의 특효약도 있었다.
리승휴에게 약들의 쓰는 법을 일러준 설경성이 말했다.
《난 여기서 겨울을 보내고 가겠소이다.》
리승휴의 몸을 추세울 방도를 세운 설경성은 림종이와 삽을 들고나섰다.
논판에 나가 샘이 있는 감탕을 파내니 손가락같은 미꾸라지가 꿈틀거리며 기여나왔다.
남향의 논뚝밑을 파도 미꾸라지가 적지 않았다.
반나절만에 두사발이 잘되는 미꾸라지를 건져낼수 있었다.
설경성이 미꾸라지를 잡아온것을 안 리승휴가 두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그건 뭣에 쓰려고 잡아왔나?》
《뭣에 쓰다니요? 몸보신에 그저그만인데. …》
리승휴가 얼굴을 찡그렸다.
《돼지먹이라면 몰라도… 난 그런건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네.》
미꾸라지를 끓여 리승휴에게 먹이려 했던 설경성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심정이였다.
이거 정말 난사로구나!…
인차 그럴상싶은 생각에 설경성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곧 을나에게 콩을 사다가 물에 불구라는 분부를 하였다.
이튿날 아침 밥상을 물리기 바쁘게 설경성은 콩망질을 벌려놓았다.
설경성이 물에 불군 콩을 망질로 갈아놓으니 을나가 그것을 베자루에 쏟아넣고 콩물을 짜냈다.
이어 불을 지핀 가마에서 부글부글 콩물이 끓어올랐다.
거기에 서슬을 쳐서 콩물이 엉겨붙기 시작할 때 그러기를 기다리던 설경성이 가마에 미꾸라지를 쏟아넣었다.
갑자기 퍼들짝 용을 쓰던 미꾸라지들이 인차 잠잠해졌다.
그제서야 두손을 털며 설경성이 을나에게 일렀다.
《가마를 휘저어 미꾸라지들이 고루 섞이게 한 다음 베천에 퍼담고 꼭 지질러두게. 그게 바로 추어두부라는것일세. 추어두부가 굳어지면 잘 드는 칼로 모를 뜨고 보기 좋게 썰어서 끓는 국에 넣으라구. 그게 곧 개경의 유명한 추어탕일세.
잊지 말아야 할것은 파를 듬뿍 치는것일세. 그래야 추어탕의 진미를 살릴수 있네.》
추어탕으로 점심을 차리게 한 설경성은 밥상에 나앉자 먼저 한숟갈 국을 떠서 맛을 보았다.
을나로서는 난생처음 만든 추어탕이였지만 그 맛이 개경녀인들이 끓인 국에 못지 않았다.
만족해진 설경성이 리승휴에게 말했다.
《어서 맛보시오이다.》
리승휴가 미간을 찌프렸다.
《글쎄 나는 미꾸라지는 먹지 않는다니까. 아무리 두부로 감쌌기로서니 미꾸라지야 갈데가 있을라구?》
설경성의 목소리가 엄하게 울렸다.
《휴휴선생도 만사는 생각하기탓이다라는 말의 참뜻을 아시지 않소이까?》
그 말이 설경성이 조상이라 일컬으는 신라의 이름난 중이였던 원효대사의 명담인줄 글을 배운 사람치고 누가 모르겠는가.
보다 심오한 불도를 깨우치리라는 결심을 품고 천축으로 가려던중 만사는 생각하기탓이다는 진리를 찾은 원효대사는 고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배울수 있다는 생각으로 돌아섰기때문에 해동화엄종이라는 새로운 리론을 내놓아 불교의 세계를 흔들어놓았던것이다.
《휴휴선생처럼 병약해진 사람에게는 육붙이보다도 미꾸라지가 맞소이다. 미꾸라지는 몸보신에도 좋고 속탈과 음위증에도 특효가 있소이다. 그러니 미꾸라지를 보기에 좋은 잉어라고 생각한다면 어찌 얼굴을 찡그리구있겠소이까.》
설경성의 요구를 뿌리칠수 없게 된 리승휴는 추어탕을 굽어보았다.
이 사람의 말대로 미꾸라지를 잉어로 생각하고 먹어보자, 만사는 생각하기탓이라는데.…
그렇게 마음먹어서인지 메스꺼움도 사라지고 한숟갈 떠먹으니 맛도 괜찮은것 같았다.
설경성이 추어탕을 떠먹는 리승휴에게 말했다.
《휴휴선생이 미꾸라지를 꺼려한것은 어려서부터 그 생김이 싫었기때문이오이다. 하지만 미끈미끈한 미꾸라지가 기력을 돋구어주는 명약이라는걸 진작 중시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것이오이다.
일찌기 개경사람들은 보기에도 좋고 맛도 돋구느라고 미꾸라지를 두부속에 감추는 추어두부를 만들어가지고 추어탕을 해먹은것이오이다.》
…
추어탕을 장복하니 리승휴의 몸이 점차로 좋아지는것이 알렸다.
설경성이 리승휴의 건강을 위해서 또 한가지 바로잡은것은 그가 잠을 충분히 자도록 한것이였다.
리승휴의 습벽이 밤늦게까지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것이였다.
그렇게 해를 거듭하면 건장했던 사람도 몸이 쇠약해질수밖에 없다.
설경성은 잠을 충분히 자야 명을 단축하지 않기때문에 결국은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다는 말로 그를 설복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