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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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 관후판서 오윤부가 설경성을 찾아와 하는 말이 정 바쁘면 자기가 나서서라도 련덕신을 설경성의 집으로 청해오는것이 어떤가고 물었다.
오윤부가 이 일에 발벗고나선것은 련덕신이 밉기도 하거니와 지첨의부사 홍자번의 부탁을 받았기때문이였다.
설경성이 련덕신을 꾹 눌러놓을 때라야 임금의 관심을 사게 될것이고 결국은 조인규를 압도할수 있기에 홍자번은 이 일에 오윤부를 끌어들인것이였다.
이 일에 제가 직접 개입하는 경우 인차 조인규의 시야에 들것이기에 불의를 원쑤처럼 미워하는 오윤부를 내세운 홍자번이였다.
홍자번의 이런 마음을 잘 아는 설경성은 련덕신을 만나는 일을 더는 미룰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련덕신을 불러올것 없이 내가 그를 찾아가는것이 좋을것 같소이다. 내 집이 루추해서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이 우렬을 가르게 하잔 말이오이다. 련덕신이 광명사의 별궁에 거처하고있다니 더없이 마춤한 장소인줄 아오이다.》
황성안에 있는 광명사는 왕건이 나서자란 집을 절간으로 만든것으로서 지극이 웅장화려했다.
련덕신을 광명사의 별궁에 들게 한 임금은 그곳으로 행차하여 병치료를 받군 하였다.
오윤부의 주선으로 설경성의 제의는 이루어질수 있었다.
설경성은 력동이와 채홍철, 조석견, 을나 그리고 승의들인 학선과 복산을 거느리고 광명사를 찾았다.
오윤부를 앞세우고 광명사의 별궁에 들어선 설경성을 놀라게 한것은 홍대촉이라고 하는 초였다. 붉고 큰 초라고 해서 홍대촉이라 불리우는 이런 초를 지금껏 본적 없는 설경성이였다.
굵기는 아름드리기둥과 같고 높이가 한길이나 되는 홍대촉은 구리로 상돌만 하게 부어만든 코끼리모양의 촉대우에 세워져있었다.
나라법에 이런 홍대촉은 오로지 궁중에서만 사용할뿐 천하없는 부자일지라도 금지되여있으니 이런 곳에 와본적 없는 설경성이 놀라와하는것은 응당한 일이였다.
초심지가 손목만큼 굵은 홍대촉에 불을 달면 캄캄하던 밤도 대낮같아진다는 말은 들었던지라 설경성은 보통사람들은 함부로 드나들수 없는 곳에 발길을 했다는 두려움까지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촌닭 관청에 온것처럼 내가 왜 이럴가?
나라고 이런 곳에 드나들면 안된단 말인가? …
오윤부가 문을 열어주는 어느 한 방에 들어서니 화려하게 꾸민 그 방에서 몽골행색의 사람들이 일어서며 맞아주는것이였다.
오윤부가 작은 키에 뚱뚱한 늙은이를 설경성에게 가리켰다.
《저 사람이 원나라 태의 련덕신일세.》
인사를 나누며 설경성이 련덕신의 얼굴을 굽어보니 두툼한 아래눈까풀이 축 늘어진 모양이 여간한 고집불통같지 않아보였다. 게다가 좁쌀처럼 작은 두눈이 쥐눈처럼 반들반들한것이 잔꾀가 발발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경성이 련덕신과 마주앉자 그들의 제자들도 저희 스승의 뒤에 자리를 잡고앉았다.
설경성의 곁에 앉은 오윤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두 나라 의원들이 자리를 같이한것은 이 자리를 통해 의술을 론하고저 함이요.》
오윤부가 청해온 역관이 류창한 한어로 그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련덕신과 그의 제자들이 멸망한 송나라의 사람들이라 한어로 통역을 해야 의사소통이 잘될것이였다.
설경성이 련덕신에게 말했다.
《그대가 불원만리 찾아와 우리 성상페하를 위해주고있다니 고려의원으로서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한번 드리오이다.
오늘 전 우리들이 마음껏 의술에 관한 의견을 론하기 바라오이다. 이에 대해서 다른 의향은 없소이까?》
설경성의 온화한 안색이며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점잖은 몸가짐에 은근히 위압된 련덕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의술을 론하자는데 무슨 다른 의향이 있겠소이까?》
미소를 지은 설경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련의원이 먼저 말씀하시는게 어떻소이까?》
긴장된 련덕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려있었다.
《저야 고려의 손님인데 주인이 먼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는것이 도리인줄 아오이다.》
긴장되여있는 상대의 마음을 풀어줄 생각으로 설경성은 소리내여 웃었다.
설경성은 따라웃는 련덕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먼저 물어보는것이 도리라면 제 먼저 묻겠소이다.
원나라 농군들도 소를 농가의 기둥으로 여길것이오이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는 분명하게 둘인 송아지가 태여나는것을 볼수 있소이다. 그 까닭을 어떻게 생각하오이까?》
설경성은 이 질문만으로도 상대의 학식이 어떤지 능히 가늠할수 있었다.
눈길을 허둥거리던 련덕신이
《그건 의술과 거리가 먼것 같소이다. 굳이 대답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하늘의 변괴로밖에 달리 볼수 없소이다. 혹시 설의원은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있는지? 있다면 들어보고싶소이다.》
재치있게 역습을 들이댔다고 생각해서인지 련덕신의 좁쌀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 한마디로 련덕신의 학식이 보통의
《흑생흑상이란 말을 들어보았소이까? 하늘에는 오운이 있고 땅에는 수, 화, 목, 금, 토의 이 다섯가지 오재가 있어 세상만물이 생존하며 변하는것이오이다.
물, 불, 나무, 쇠, 흙의 이 다섯가지 오재중에서 첫째는 수 즉 물인바 습윤하여 흘러내리는것이 바로 물의 본성이오이다.
물이 제 본성을 잃게 되면 천하에 재앙을 불러오는바 그 본성을 잃게 하는것이 오운의 변화때문이오이다. 우뢰와 번개가 일면서 폭우가 쏟아져 농토와 마을들이 해를 입게 되는것도, 눈과 서리, 우박이 나타나는것도 물이 제 본성을 잃었기때문이오이다.
의원들도 응당 이런 리치로써 사물이 변화되는 까닭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오이다.
사람도 짐승도 오운의 변동에 따라 그 변화정도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오이다.
때때로 그 변동이 짐승의 기를 왕성하게 충동하는데 그럴 때면 정자에 이상이 생기게 되오이다.
결국 정자의 기가 몹시 성해진 수소와 쌍붙는 암소는 쌍둥이를 잉태하게 되는것이오이다.
이러한 실례는 얼마든지 있소이다. 논에 늦벼를 심었는데 한두개 이삭이 한달이나 앞당겨 여무는거나 올벼를 심었는데 한달이나 늦게 여무는 이상이 생기는 등 어미의 본태를 잃은것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수 있소이다.》
련덕신의 좁쌀눈이 당황해서 허둥거렸다면 그의 제자들은 눈들이 둥그래서 설경성을 쳐다보았다.
의술을 오운에 비추어 의논한바 없는 그들은 설경성에게서 배우고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련덕신의 수제자가 용기를 내여 일어섰다.
《오운이란 무슨 말이오이까?》
설경성은 그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오행의 움직임을 가리켜 오운이라고 하는데 오운은 해와 달과 별의 영향을 받소. 그중에서도 해에 생기는 흑자(흑점)가 제일 심한 영향을 주오.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때에도 궁성안에 첨성대를 세우고 하늘을 살펴왔소.》
설경성이 오윤부를 가리켰다.
《이 어른이 한때 우리 고려의 첨성대를 맡아보시였소. 이 어른의 말에 의하면 해에 흑자가 커지면 중풍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거요. 달도 마찬가지라오. 달이 제일 커졌을 때와 제일 작아졌을 때 중풍이 배로 많아진다는거요. 이런걸 알아야 중풍을 막을 방책을 더 잘 세울수 있을거요.》
설경성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련덕신의 제자들이 저저마다 질문을 하였다.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시킨 설경성이 일렀다.
《한사람씩 물어보오.》
키큰 젊은이가 코등을 문지르며 물었다.
《우역이 사람에게도 퍼질수 있소이까?》
그를 손짓으로 눌러앉힌 설경성이 웃으며 대꾸했다.
《세해전 우리 고려의 경상도에서도 우역이 돌았소. 그때 그 병에 걸린 소를 도살한 사람의 손이 불에 덴듯 살이 물크러지면서 끝내는 죽고말았소. 물론 우역이 소끼리는 잘 퍼져도 사람에게는 거의나 그렇지 않소. 그러나 간혹 사람이 우역에 걸린 소를 잡아먹으면 배설물을 통해서 다른 소들에 병을 옮겨놓을수 있고 간혹 제가 해를 당할수 있소. 그래서 우역에 걸린 소는 잡아먹지 말고 땅에 깊이 묻어버려야 하는거요.》
이번에는 나이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찌기 공자는 생이지지 즉 사람은 날 때부터 안다고 했소이다. 그래서 사람은 태여나기 전에 벌써 지혜로운자와 암둔한자로 갈라진다는것이오이다.
그런데 신라사람 문창후 최치원이 당나라에 와있을 때 생이지지가 부당하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래웠소이다. 그의 리론이 옳다고 한다면 누구나 애를 쓰면 명의로 될수 있다는건데 사실은 그렇지 않소이다.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하오이까?》
설경성은 이 자리가 련덕신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배움터로 된것이 차라리 잘된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련덕신이 의술에서 귀신이라고 할수 있는 명의인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고려에는 그와 대등한 아니, 그를 릉가하는 의원이 얼마든지 있다.
그걸 이 자리에서 깨우쳐주어야 한다.
《난 고운 최치원이 우리 강토의 사람이기때문이 아니라 그의 주장이 지극히 옳기때문에 그를 지지하는거요.
고운선생이 말하기를 사람은 학식을 어머니의 배속에서 가지고나오는것이 아니라 생후에 배움을 통해서 가지게 된다고 하였소.
공자도 오랜 배움을 통해서 유교를 내놓았던거요. 그렇소. 사람은 사실 총명을 타고난자와 둔한 머리를 가지고나온자가 있소. 그러나 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타고난자라고 할지라도 애써 배우지 않으면 명인이 될수 없소.
백여년전 우리 고려에 리상로라는 명의가 있었소. 그는 이웃나라들에서 청해온 명의들도 고치지 못한 우리 임금의 병을 침구술로 어렵지 않게 고치였을뿐아니라 고황에 들어 저승문턱을 넘던 사람들을 수없이 살려냈소.
그런데 그는 어른이 되였을 때까지도 글을 보고 읽지 못하던 까막눈이였소. 늘 술친구들과 밀려다니며 놀기만을 좋아했단 말이요.
그런 사람이 의술이 비상한 승의님을 만나 제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배운 덕에 명의가 되였던거요. 만일 그때 리상로가 귀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세상사람들은 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지도 못했을거요.》
또 다른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불문에서 정설이라고 하는 4대부조설과 생사화복설을 어떻게 보아야 하오이까?》
불가에서 의술리론의 기둥으로 삼는것은 모든 질병은 땅, 물, 불, 바람 이 네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에 생긴다고 보는 4대부조설이다.
하기에 불승들은 땅, 물, 불, 바람에 의해서 각각 101개의 병이 생기고 그 네 요소가 조화롭지 안는 경우에는 404개의 병이 들기때문에 이를 막아내자면 먼저 부처에게 빌고 주문을 외운 다음 약을 써야 효험을 본다고 설교하고있었다.
생사화복설 역시 4대부조설처럼 궤변이 아닐수 없다. 불공을 열심히 하는자는 괴이한 재변을 능히 물리칠수가 있기에 죽음도 생으로, 화도 복으로 만들수 있다는것이 생사화복설이다.
설경성이 짐짓 엄한 눈길을 던지며 대꾸했다.
《불당에 와서 귀빈대접을 받는것 같은데 그런걸 론해서야 쓰겠소? 부처에게 만금을 아끼지 말고 시주도 하면서 빌고 빌면 장수를 할수 있다는데…
옛적에 우리 강토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었소. 신라에서 어느 한 임금에게 등창이 났을 때 혜통대사라는 스님이 주문 하나로 그 병을 고쳤다는거요. 그리고 임금에게 말하기를 등창이 난 까닭은 그전에 신충이라는 사람의 송사를 잘못해주어 그가 원망했기때문이라는것이였소. 다시는 등창이 도지지 않고 장수를 하자면 신충이 원한을 풀수 있도록 절을 지어놓고 그의 명복을 빌라는거요.
그래서 임금이 신충봉성사라는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장수하기는커녕 인차 죽고말았다오. 그대들은 부처에게 빌어 백년장수를 누린 사람 보았소? 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았소? 그러니 이런건 더 론의하지 맙세.
사람은 오운과 오재가 있는 곳에서 태여나는 까닭에 인, 례, 신, 의, 경이라는 다섯가지 오경을 타고나는것이며 용모와 말을 하며 보고 듣고 생각하는 등 이 다섯가지 오사도 가지게 되는것이요.
그래서 사람은 하늘과 땅의 변화속에서 풍, 한, 서, 습과 음식물, 습성의 변화로 병이 들게 되는거요.》
또 다른 질문이 계속되였다.
《다리를 펴지 못하는 병자를 고친적 있소이까?》
이들도 제자라고 여기는 설경성은 힘들게 터득한 비방도 아낌없이 입에 올렸다.
《고쳐보았소. 사람이 다리를 펴지 못하는것은 한두가지 까닭때문이 아니요. 침혈들을 잘 잡으면 얼마든지 고칠수 있소.
정갱이가 허벅다리에 맞붙어 오금을 쓰지 못하는 병자인 경우 먼저 양릉천과 중완, 양지혈들에 뜸을 놓아서 피가 통하게 해야 하오.
그다음 기문, 대횡, 거료, 환도혈들은 물론 위중과 위양혈들에도 침을 놓아야 하오.
그러면 병자는 다리를 좀 펼수 있게 될거요. 그때 신유, 경문, 지실, 고황혈들에 침을 놓으면 오금을 놀리게 되오.
넉넉히 한달동안 이 비방을 쓰면 병자가 대지를 활보하게 될거요. 사실 이 비방은 이미전에 우리 고려의 명의 리상로가 물려준거요.》
련덕신의 제자들은 설경성의 말을 글로 적느라 부지런히 붓을 달리였다.
이에 심술이 난 련덕신이 설경성을 쏘아보며 투덜거렸다.
《말로야 누구인들 하늘의 별을 따오지 못하겠소. 이 절에 중병자가 있다는데 그를 고치면 내 진실로 그대를 명의로 받들겠소.》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한 설경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병자를 보여주소.》
기세가 등등해진 련덕신이 불당뒤의 집으로 설경성을 안내했다.
어느 한 방에 들어서니 어깨와 목이 퉁퉁 부어서 어디까지가 목이고 어깨인지 알아보기 힘든 병자가 있었다.
련덕신이 천하명의라는 소문에 어느 고관대작의 집에서 그를 찾아온 병자였다.
련덕신이 병자를 가리키며 설경성을 쳐다보았다.
《무슨 병에 든것 같소이까?》
잠시 병자를 들여다보던 설경성이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단저(종기의 일종)가 아니라 부골저(골수염에 해당되는 병)에 걸렸소그려.》
련덕신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대는 이 사람을 살려낼수 있소?》
사실 부골저에 든 병자를 받아놓고 련덕신은 신통한 비방이 없어 며칠째 속수무책으로 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때 광명사의 승의가 들어와 우는소리를 하였다.
《련덕신어른, 큰일났소이다. 지금 원나라사신을 호위해온 군교가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고있소이다.》
련덕신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 사람이 어데 있느냐?》
《마당에 있소이다.》
《그럼 어서 데려오도록 해라.》
인차 여러명의 중들이 덩지가 큰 군교를 부축해왔다.
꼬꾸라지듯 주저앉은 군교가 배를 그러쥐고 아우성을 질렀다.
련덕신은 병자의 맥을 본다, 배를 만져본다 하며 허둥거렸다.
광명사의 승의가 병자가 허리를 꼬부리고 배를 몹시 아파하는것으로 보아 내옹(충수염에 해당되는 병)이 아닌가고 물었다. 허나 말없이 병자를 지켜보는 설경성은 그가 밸이 서로 말려들어가는 장중첩증에 걸렸다는것을 가려보았었다.
눈길을 허둥거리던 련덕신이 설경성을 쳐다보았다.
《나도 내옹으로 보는데 그대 생각은?》
설경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내옹때문이 아니라 밸이 겹쳐서 아파하는거요. 이대로 내버려두면 며칠을 넘기지 못할거요.》
그 말에 련덕신은 울상이 되였다.
밸이 겹치는 병은 밸벽이 헐었거나 회충이 많아서 요동을 칠 때 또 빈속에 갑자기 음식을 먹었을 때 생기는데 배를 주무르거나 침을 놓고 약을 먹이는것으로는 고칠수 없었다.
아무리 원나라의 태의로 둔갑을 했건만 원체 망국노이라 병자를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를 면치 못할것이였다.
《이런 병은 편작이나 화타가 아니면 고칠수 없는데… 이 일을 어찌면 좋담.》
이것을 보고 설경성이 력동에게 일렀다.
《내 집에서 풀무를 가져오도록 하게.》
설경성에게는 이 병을 간단히 고치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도 항간에서 배운것이였다.
몇해전 설경성은 파직되여 고향으로 내려가는 리승휴와 동행한바 있었다.
그때 경산부고을에서 이상한 일과 맞다들리였다.
어떤 로인이 죽은듯 쓰러져있는 염소의 홍문에다 가죽으로 만든 관을 꽂고 자그마한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고있었다. 풀무질을 할수록 염소의 배는 터져나갈듯 팽팽해졌다.
좀 있어 염소가 꿈틀대더니 이어 네발을 버드럭거리며 일어서는것이였다.
알아보니 관가에서 제사때문에 기르는 염소인데 밸이 겹쳐 죽어가기때문에 배속에 바람을 불어넣었다는것이였다. 배속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바람의 힘으로 밸이 본래대로 돌아가 백이면 백을 다 살릴수 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장중첩증에 걸린 사람의 배속에다 풀무질을 하였더니 과연 그 효과가 대단하였다.
얼마후 풀무질의 덕택으로 금시 병을 털고 일어선 군교는 설경성의 팔을 잡고 울었다.
허나 설경성은 그를 붙잡고있을새가 없었다.
등을 떠밀어 군교를 보낸 설경성이 복산에게 일렀다.
《자네가 부골저염에 걸린 병자를 맡아야겠네.》
스무살을 겨우 넘긴 복산은 남달리 부골저를 잘 다스리는 특기가 있었다.
칼을 잡은 복산이의 손이 흡사 기계손인듯 움직여졌다.
마취약을 먹이자 병자는 곧 정신을 잃고 잠잠해졌다. 그러는 병자를 요동칠수 없도록 침상에 단단히 비끄러맨 복산이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나섰다.
련덕신도, 그의 제자들도 손에 땀을 쥐고 복산을 지켜보았다.
복산이 날랜 솜씨로 퉁퉁 부은 어깨부위에 칼을 대니 피고름이 콸콸 흘러나왔다.
설경성이 련덕신에게 말했다.
《이 병자에게 있어서 독의 뿌리는 이 어깨의 꺽쇠뼈에 박혀있소. 벌써 꺽쇠뼈의 반쯤은 썩었을거요. 그렇기때문에 썩은 뼈를 깨끗이 긁어내야만 병자를 살려낼수 있소.》
복산이 썩은 살을 저며내니 뼈가 시꺼멓게 썩어있었다.
칼을 쥔 복산의 손이 비수날듯 하였다.
재치있고 날랜 솜씨로 썩은 뼈를 박박 긁어낸 복산은 약물로 상처를 거듭거듭 씻어냈다.
약물은 뚝갈나무잎을 삶아낸 물이다. 이런 약물로 씻어내야 상처가 덧나지도 않고 빨리 아문다.
상처를 깨끗이 처치한 복산은 그우에 토란고를 붙이고 천으로 꼼꼼히 감쌌다.
설경성이 복산의 등을 두드리며 련덕신에게 말했다.
《래일 아침 병자는 깨여날것이고 보름후에는 상처도 아물거요. 그러니 무얼 더 근심하겠소?》
그때까지 복산이를 지켜보던 련덕신이 불쑥 그의 앞에 무릎을 꿇더니 부르짖었다.
《제가 잘못 생각했소이다. 진짜명의를 가려보지 못했으니… 절 제자로 받아주소이다.》
그에 깜짝 놀란 복산이 얼른 련덕신의 손을 잡아일으켰다.
《아니, 왜 이러시오이까. 난 설의원님의 제자이오이다.》
허리를 굽히고선 련덕신이 부르짖었다.
《아오이다. 세상에 설의원님과 같이 뛰여난 명의가 있는줄 모르고 제가 제일인가 했으니… 나같은 사람이 어찌 그런 명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청하겠소이까.》
련덕신의 손을 잡으며 설경성이 빙그레 웃었다.
《우리야 병든 사람들을 구제하러 나섰는데 마음이 통하니 얼마나 좋소이까. 우리 함께 있는 재주를 다해서 천하의 병자들을 위해주는것이 어떻소이까?》
《더 없이 훌륭한 말씀이오이다.》하더니 련덕신이 제자들에게 일렀다.
《오늘부터 난 고려명의님에게서 의술을 배우겠네. 자네들도 나와 함께 고려의술을 착실히 배우는게 좋겠네.》
련덕신의 제자들이 일제히 꿇어엎드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윤부는 통쾌한 기쁨에 눈굽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