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6)
설경성은 역참의 덕으로 탐라를 떠난지 스무날만에 개경의 숭인문(동대문)에 당도했다.
이미 성문을 닫으라는 인경을 친 뒤의 밤이라 숭인문밖의 주막에서 묵지 않을수 없었다.
이튿날 주막을 나선 설경성은 력동이에게 을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을나와 함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제자들을 모이라고 하게. 오후에 내 집에서 모임을 가져야겠어.》
력동이와 헤여져 집으로 향한 설경성은 이제 해야 할 일을 그려보았다.
홍자번이 성상페하와 왕후마마의 병때문에 나를 급히 만나자고 했다지만 지금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과도 같은 역병부터 다스려야 한다. 온 개경에 그 몹쓸 역병이 휩쓴다면 그 후과를 무엇으로 만회할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속에 집에 들어서니 그를 알아본 문우가 《아버지-》하고 소리치며 뛰여왔다.
이제는 다 자라서 설경성의 큰 키와 견주는 문우였다.
문우를 껴안은 설경성은 흡족해하였다.
《그새 몰라보게 컸구나. 관례를 하고 장가를 가도 되겠다. 하긴 네 나이 벌써 열여섯살이지.》
이어 나리와 함께 박씨가 달려나왔다.
일흔고개를 바라보는 박씨였지만 10년은 젊어보였다.
그에 만족한 설경성이 박씨의 손을 잡으며 나리에게 말했다.
《
나리가 생글 웃으며 문우를 가리켰다.
《그런 말씀 마시오이다. 이젠 의술을 통달했다면서 저 애가
박씨가 나리와 문우의 팔을 잡으며 만족해하였다.
《아범은 아예 내 걱정은 말라구. 이들이 날 끔찍이 위해주는데 열자식 부럽지 않네.》
이윽고 문우가 근심조로 말했다.
《요새 웬일인지 날마다 밀직부사 강윤소네 창두들이
그 말에 설경성의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나를 헐뜯지 못해하던 그놈이?!…
《아범아, 객지에서 고생했겠는데 어서 들어가 쉬라구.》하며 박씨가 설경성을 잡아끄는데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의원님이 돌아오셨소이까?》
문우가 대문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 사람들이오이다.》
《문을 열어주어라.》
문우가 대문을 열자 검은 도포에 유각복두를 쓴 두사람이 들어섰다.
한쌍의 귀가 달린 유각복두를 쓴 그들을 바라보는 설경성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강윤소가 창두들까지 이렇게 치장할 정도로 권세가 커졌단 말인가. 나라법에 유각복두는 벼슬아치들과 황태조의 후손들이 부리는 하인들만이 쓰도록 되여있었다. 그러던것을 권력을 거머쥔 최충헌이 제집의 하인들에게도 유각복두를 쓰게 한것이 관례로 굳어져 오늘은 대신들이 그 본을 따르고있었다.
3품관에 불과한 강윤소따위로서는 분수에 넘치는짓이 아닐수 없었다.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한 그들이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의원님을 모셔오라는 주인어른의 분부를 받고 왔소이다.》
기분이 상한 설경성은 모르쇠를 하며 물었다.
《어느 주인말인가?》
《밀직부사 강윤소어른이옵니다.》
문우가 도끼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어째서 우리
《예. 주인어른이 간적에 걸려서…》
그 말에 놀란 설경성이 물었다.
《간적이라니… 누가 그런 말을 했다더냐?》
《원나라 태의 련덕신이 그렇다고 하였소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적을 알아낼수는 있어도 고치지는 못한다고 말했소이다.》
설경성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천하명의라고 자처한다는 사람이 그런 병을 가려보지 못할리는 없다.
《너희 주인에게 일러라. 천하명의도 고치지 못하는 병인데 나같은 돌팔이의원이 어떻게 고칠수 있느냐고 말이다.》
목이 황새목같은 창두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사정했다.
《주인님말씀이 위위윤 리덕손어른도 의원님이 살려주셨다면서 꼭 모셔와야 한다고 했소이다.》
리덕손이라는 말에 설경성은 《십팔자식》이라고 소리칠번 하였다.
십팔자식이란 말은 너절한 사람을 가리키는 욕이였다.
인종때 임금의 외할아버지로서 조선국공이라는 더할바없이 존귀한 작위를 받은 리자겸이란 야심가가 있었으니 그는 조정의 권력을 거머쥐자 룡상까지 넘보았다.
고려를 뒤집어엎고 리씨의 나라를 세우리라 마음먹은 리자겸은 하늘이 십팔자를 가진 사람으로 임금을 세울것이라는 요언을 퍼뜨리면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망하고말았다.
여기서 십팔자란 리자겸의 성인 오얏 리자(李)를 가리키는것이였다.
그때 사람들은 역적 리자겸을 가리켜 십팔자식이라고 욕을 했다.
세월의 흐름속에 이 말은 너절하게 구는 사람들 일반을 가리키는 욕설로 되였던것이다.
덕손의 이름만 들어도 그놈을 살려준 제손을 자르고싶어지는 설경성으로서는 또다른 십팔자식인 강윤소를 건져줄수 없었다.
설경성은 쓴입을 다시며 말했다.
《덕손이는 그때 젊은 나이였으니 고칠수 있은게다. 너희 주인이야 늙은이로서 제 명을 다 살았는데 그래서 련덕신까지 손을 들었을게다. 그러니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아라.》
쫓기듯 문밖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문우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
분이 사그라진 설경성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병이 합병된 늙은이는 살려낼수 없다. 그러나 강윤소 그놈은 호강을 한 덕에 그렇지는 않을게다. 내 생각엔 인삼을 열댓근 먼저 써서 원기를 살린 다음 약과 함께 음식비방을 잘만 쓰면 얼마든지 십년이상은 더 살수 있을게다. 허나 악독한 놈은 한놈이라도 더 빨리 없어져야 세상이 좋아질수 있는게다.》
설경성은 사람들을 다섯개의 부류로 갈라보고있었다.
첫째 부류는 늘 남들을 동정하고 그들을 도와주는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리승휴, 최유엄, 백운대사, 칼침의원, 력동이의 아버지, 한송빈, 대중보와 같은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둘째 부류에는 제가 배불러야 남을 생각하고 도와는 주나 그 은혜갚음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속한다.
셋째 부류의 사람들은 남을 도와주는것이자 자기를 위하는것으로 알고 도와준것만큼 반드시 그 갚음을 받아내려고 한다.
넷째 부류에는 남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남들의 도움만 바라는 사람들이 속한다.
마지막 다섯번째 부류에는 남들을 자기의 희생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은 제 리속을 위해서라면 그가 누구이든 가리지 않고 희생시키려든다.
이것을 입에 올린 설경성이 분노에 차서 말했다.
《강윤소나 리덕손과 같은 십팔자식들이 다섯번째 부류에 들어가는 악한들이다. 유감스럽게도 벼슬길을 들여다보면 첫째 부류는 개울에서 잉어를 보기만큼이나 적고 십팔자식들은 송사리만큼이나 많구나.》
문우를 국학으로 보낸 설경성은 행랑채의 한방을 거두었다.
여러개의 방을 가진 행랑채는 병자치료를 위해 지은 집이였다.
방 하나를 깨끗하게 손질한 설경성은 앉은뱅이책상우에 망진비법의 요령을 적은 목책을 놓아두었다.
을나를 이 방에 들게 하고 망진비법부터 통달시킬 생각이였다.
의술에 능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살펴보고 병을 진단해내는 망진의 묘리에 환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나니 력동이 수십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집에 그들모두가 들어앉을수 있는 큰 방이 없으니 설경성은 마당에 멍석들을 펴고 제자들을 앉히였다.
끌끌한 제자들을 마주한 설경성은 배심이 든든해졌다.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큰 재부가 뜻을 같이하는 제자라는데 한두명도 아닌 숱한 제자를 가지였으니 이런 부자가 어데 있단 말인가.
각지에 나가있는 제자들까지 합치면 백명도 넘을것이다.
하긴 해마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의술을 배우러 찾아왔으니…
설경성은 제자들속에서 두드러지게 표가 나는 채홍철을 바라보았다.
제자는 많아도 의원으로서 과거에도 급제하고 벌써 7품관으로 출세한 사람은 채홍철이뿐이다. 그가 조정의 조회의식을 주관하는 통례문에서 합문지후의 관직을 가지고있으니 조정대신들이 나라의 의술진보에 관심을 돌릴수 있도록 영향을 줄수 있었다.
의술로서 채홍철의 특기는 사람들의 체질에 맞게 약을 잘 지어주는것이였다.
제자들속에는 홍법사의 학선과 같은 승의들도 있었다.
제자들을 한명, 한명 믿음어린 눈길로 둘러보며 설경성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을 모이라고 한것은 역병때문일세. 지금 사람들을 해치고있는 병은 곽란(콜레라에 해당되는 병)의 돌림이네. 이 돌림을 제때에 바로잡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무리로 쓰러질수 있네. 곽란의 독기는 물과 파리에 묻어다니네. 그래서 이 병을 막자면 사람들이 늘 손을 깨끗이 씻고 음식을 먹도록 해야 하고 반드시 물을 끓여마시게 하며 집뜨락에다는 삽주나 마른 소똥을 태워 파리를 몰아내야 하네.
병자들에게는 류화탕이나 리중탕, 오이풀뿌리와 황경피, 속썩은풀뿌리를 달여먹이고 음식에는 반드시 초를 쳐먹도록 해야 하네.
죽은 사람들은 지체없이 매장해야 하는데 사실 이 일은 의원들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네.》
설경성은 눈매가 날카로운 채홍철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의 성패는 채홍철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혜민국에서 역병구제를 할수 있게 도와달라는 청을 드렸건만 조정이 그 청을 들어주지 않은것은 임금의 측근이라는 강윤소네때문일것이다.
백성을 개, 돼지만큼도 여기지 않는 탐욕의 무리가 강윤소네일진대 그것들이 무엇이 안타까와 그런 청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그러니 임금에게 직접 역병구제를 아뢰일수 있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조정의 수석인 김방경이 채홍철의 가시아버지이니 이번 일을 맡아해낼수 있는 적임자가 바로 그였다.
《무민(채홍철의 자)은 내 말을 듣게. 예로부터 역병이 돌면 나라에서는 구제도감을 설치하고 어의들까지도 병자들을 돌보게 하였네. 그런데
조정에서 속수무책이라니 자네는 가시
채홍철이
《사부님, 그건 념려마소이다.》
제자들을 엄한 눈길로 둘러보며 설경성이 힘주어 말했다.
《의술이란 곧 사람을 살리는 재주임을 명심하고 다들 솜씨를 보이길 바라네.》
제자들로 다섯개의 조를 무은 설경성은 그들에게 개경 5부의 하나씩을 맡겨주었다.
제자들을 떠나보낸 설경성은 행랑방으로 을나를 불러들였다.
《오늘부터 이 방에서 살도록 하게.》
설경성은 망진비법이 씌여있는 목책을 내밀었다.
《여기에는 내가 터득한 망진의 비결이 들어있네. 뜬금으로 외울수 있도록 읽고 또 읽게.》
이날 저녁 설경성은 처남인 김석을 자기 방으로 불러들였다.
김석은 나라의 의술을 주관하는 태의감에서 의원으로 일하고있었다.
설경성은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궤짝을 가리켰다.
《저안에는 문둥병에 좋은 대풍자가 쉰근이나 들어있네.》
오늘 낮 설경성은 이전부터 거래가 있는 약장사군에게서 대풍자를 사들였다.
그 약장사군에게는 고려의 약재들은 물론 머나먼 남쪽나라들에서 나는 희귀한 남방약재도 많았다.
설경성은 줌안에 드는 종이말이를 김석에게 내밀었다.
《이 종이에는 탐라에 사는 문둥병자들의 거주지들이 자상하게 씌여 있네. 탐라에는 문둥병자들이 많네. 관가의 도움이 없이 그들을 구제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지만 조정에서 그들을 쓴외보듯 하고있으니 우리라도 애써야 하네.》
그 말에 놀란 김석이 설경성을 쳐다보았다.
《그럼 제가 탐라에 가야 한다는것이오이까?》
설경성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래야 하네. 자네는 태의감의 허락을 받아가지고 수일내로 떠나게. 가서 내가 돌보던 문둥병자들에게 대풍자를 나누어주고 오게.》
언제나 병자들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는 설경성의 마음을 알고도 남는 김석은 《예.》하고 대답했다.
이튿날 역병을 시급히 바로잡으라는 첨의부의 령이 개성부에 떨어졌다.
설경성은 이것으로 만족해할수 없었다.
관가것들이란 시키지도 않는 호색질에는 능수여도 백성을 위해주는 일에는 오뉴월에도 손발이 시려한다. 설사 조정의 령일지라도 저에게 리득이 없으면 앞에서는 받드는척 해도 뒤에 돌아앉아서는 코방귀나 뀌는 작자들이다. 그러하기에 관가것들에게는 쉬임없이 채찍을 안겨야 하는것이다.
그래서 설경성은 홍자번은 말할것도 없고 오윤부도 정가신도 리익배도 하여간 면식이 있는 벼슬아치들은 다 찾아다니며 첨의부의 령이 삼일공사가 되지 않도록 힘써줄것을 부탁하였다.
이로써 구제도감까지는 내오지 못했어도 의술을 업으로 하는 관청들과 개성부가 이 일에 전심할수 있게 하였다.
제자들과 함께 한달동안 뛰여다니며 애쓴 끝에 역병은 사그라들었다.
비로소 마음이 놓인 설경성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들이였다.
이번에 역병을 다스리는데서 얻은 좋은 경험은 무엇이고 결함은 무엇인지 일일이 지적한 설경성은 탐라행에서 새로 알아낸 비방들을 알려주었다.
이어 매 제자들에게 병치료에서 풀어야 할 일감들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하고난 설경성은 저밖에 없는듯 놀아댄다는 련덕신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전 홍자번이도 어서 왕후마마의 신상에 해를 끼치는 원나라어의를 눌러놓고 성상페하를 만나뵈와야 한다고 당부했었는데 드디여 련덕신을 찾아갈 때가 된것이였다.
크고 잘 익은 벼이삭일수록 고개를 깊이 숙이고 꿀이 가득찬 통일수록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거늘 진짜 명의는 병자들이 명의라고 해야 하는것이다.
바로 이런 말도 해주고 서로 모르는것을 배워주는것이 같은 의원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설경성은 련덕신을 찾아가는 일행으로 을나도 셈에 두고있었다.
장차 훌륭한 녀의로 키우려면 그런 자리도 겪어야 좋을것이였다.
저녁상을 물린 설경성은 제 방으로 을나를 불러들였다.
《그동안 문진비결을 퍼그나 익혔을것이니 어디 말해보게.》
이날을 기다려 열심히 터득한 을나는 온 정신을 모아 입을 열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병을 밝혀내려면 먼저 눈알부터 보아야 하오이다.
검은 동자에 흰점이 박혀있다면 신장에 병이 든것이며 동공이 형편없이 커지고 의식이 없으면 중풍이 심한것이오이다.
눈의 흰자위가 뿌잇하면 대변불통(변비)이 온것이고 흰자위가 누렇게 황달이 들었으면 간과 쓸개에 병이 온것이오이다.
눈알이 두드러지게 나오고 흰자위가 불그스름하면 영류(갑상선의 질병)에 걸린것이고 눈알이 두드러지게 나오지는 않았으나 붉은 점이나 피가 졌으면 중풍이 오기 전이며 혹은 소갈에 걸린것이오이다.》
을나가 한자도 빼놓지 않고 류창하게 내리엮으니 기분이 좋아진 설경성은 벽에 등을 기대였다.
《그다음은 눈까풀을 보아야 하오이다. 눈까풀이 저절로 떠졌다 감아졌다 하면서 푸드득거리면 구안와사(얼굴신경마비)때문이고 눈까풀이 부어올랐으면 밥맛을 잃었거나 신장과 심장에 병이 들었기때문이며 혹은 영류때문일수도 있소이다.
눈까풀이 아래로 몹시 처지였으면 춘온(뇌척수막염)을 의심해야 하오이다.》
을나는 눈을 반쯤 내리감은 설경성을 존경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다음은 얼굴에 나있는 주름살을 살펴야 하오이다. 눈주위로 활모양의 주름이 생기였다면 치질에 걸리였거나 귀가 어두워지고있다는것이오이다. 눈밑에 반달모양의 주름이 있으면 신장과 방광 혹은 심장에 병이 들었기때문이오이다.
광대뼈우에 낫가락모양으로 주름이 잡혔다면 발에 병이 든것이오이다.
얼굴의 왼쪽보다 오른쪽에 주름이 많고 깊은것은 간이 좋지 않기때문이오이다.
코에서 입둘레로 길게 주름이 나있다면 그건 심장이 나쁘기때문이오이다. 그리고 코등에 열십자모양의 주름이 많으면 허리뼈나 심장에 병이 든것을 말해주오이다.》
설경성의 두눈이 아예 내리감겼다. 그러나 그의 귀는 잠들지 않고있었다.
《그다음으로 살펴야 하는것은 입술이오이다. 입술이 말라있으면 간이 좋지 못한것이고 입술이 검푸르다면 몸에 어혈이 들었기때문이오이다. 입술에 물집이 생기였으면 비장이 병든것이오이다. 입술이 터갈라졌다면 마음고생을 겪거나 피로했기때문이며 혹은 조증(주로 비타민 PP나 B군의 부족증)에 걸렸기때문이오이다. 입술의 변두리로 쌀알만한 부스럼이 나있으면 방광에, 녀인들인 경우에는 자궁에 이상이 왔다는것을 말해주오이다. 입술에 피기가 없으면 기력이 진했거나 피가 잘 돌지 않는 병때문이고 입술이 지나치게 붉은것은 열이 나거나 몸에 피가 지내 많기때문이오이다.》
이어 얼굴색과 얼굴표정에 따르는 병을 내리엮는데 설경성은 말뚝잠속의 몽롱한 의식속에서도 가려듣고있었다.
《얼굴에 나타나는 검고 희고 누렇고 붉고 푸른 이 다섯가지 색은 5장의 병과 련관이 있소이다. 얼굴이 검어졌다면 신장에, 창백해졌다면 페에 병이 들었기때문이오이다.
얼굴이 노래지면 비장이, 붉어지면 심장이 그리고 검푸르러졌다면 간에 병이 든것이오이다.
눈의 아래부위가 검붉거나 붉은 기미들이 있다면 적에 든것으로 의심해야 하오이다.
눈언저리가 검거나 밤색이면 신장이나 자궁에 병이 들었거나 피가 잘 돌지 않는 병 혹은 로채에 걸렸기때문이오이다.
얼굴이 이그러져있으면서 창백하면 위탈이 난것이오이다.》
이윽고 을나의 목소리가 멎고 그와 동시에 설경성도 말뚝잠에서 깨여났다.
설경성이 잠기에 실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망진비결을 외웠다고 해서 병을 척척 알아낼수 있는건 아닐세,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이니까.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정신과 혼백이 어려있네. 정신은 곧 심장과 신장의 정기이고 혼백은 간장과 페장의 정기이네. 비장의 정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혼백과 정신을 주도하여 생각을 하게 하고 지혜를 샘솟게 한다네.
그래서 5장에 병이 들면 혼백과 정신, 생각과 지혜가 헝클어진다고 하는것이지. 다시말해서 간이나 페가 나빠지면 밤잠이 오지 않고 늘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성격이 나빠진다네.
비장이 나빠지면 낮에 졸음이 오고 마음이 울적해지면서 건망증이 생기고 머리가 아둔해지네.
신장과 심장이 나쁘면 정신이 흐리터분해지면서 쉽게 피로해지고 인내력도 떨어지기때문에 무슨 일에서나 곧 싫증이 나는 법이지.
바로 이런 점들을 깊은 련관속에서 세세히 따져보아야 보다 옳은 답을 낼수가 있네. 그럼 오늘은 이만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