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22)

 

그날 밤 설경성은 꿈속에서 날마다 그려보던 나리를 만났다.

그저 만나본데 그친것이 아니라 나리를 데리고 어머니에게 가서 혼례도 하고 깨가 쏟아지게 사는 달콤한 꿈이였다.

달콤한 꿈에서 깨난 설경성은 그밤으로 나리에게 막 달려가고싶었다.

허나 가야 할 길을 떠올려보니 지금당장은 개경부터 돌아본 다음 어머님께 아뢰이고 나리를 데려오리라 마음먹었다.

이튿날도 한송빈은 이른아침 밥상을 물리자 설경성을 밖으로 이끌었다.

그가 이끌어간 곳은 황성의 정문인 광화문앞이였다.

두대의 수레가 동시에 드나들수 있을 정도로 넓고 크게 만든 광화문앞에 창을 꼬나든 군사들이 지키고있었다.

한송빈이 그들에게 다가가 설경성을 가리켰다.

《이 젊은이는 도성의원인데 궁성구경을 시켜주자고 하네. 정 들여놓기 힘들면 그만두겠네.》

파수장인 젊은 군교가 존경의 눈길로 한송빈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원, 무슨 말씀을… 다른 사람이면 몰라라 우리도 의원님의 신세를 지고있는데 텅 비여있는 궁성이야 왜 보여드리지 못하겠소이까?》

고려에서는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가긴 했지만 개경의 궁성을 그대로 보존하고있었다.

광화문을 열어놓은 젊은 군교가 한송빈에게 말했다.

《어서 들어가보시오이다.》

한송빈을 따라 광화문안에 들어서며 설경성은 그가 군사들의 신망을 크게 얻고있다는것을 느끼였다.

그게 다 의술과 함께 인정이 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광화문을 거치고 또 그안의 궁성문을 지나니 웅장한 대궐이 나타났다.

책에서 읽은바가 있어 여기가 연경궁과 같은 큰집들이 가득한 만월궁일거라고 짐작하는 설경성이였다.

한송빈은 대궐앞의 첨성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거대한 꽃병을 세워놓은듯 매끈한 큰 돌들로 멋스럽게 쌓은 첨성대를 쳐다보며 한송빈이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거란의 군주들이 그렇게도 없애고싶어했던 첨성대일세. 자네 동경에 가본적 있나?》

고개를 젓는 설경성을 바라보며 한송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경에 가보지 못했다니 신라의 첨성대를 볼수가 없지. 젊었을 때 난 동경에도 가보았네. 그래서 신라첨성대를 볼수 있었네. 신라첨성대는 우리의 첨성대보다 크지 못했네. 전해오는 말에 평양으로 천도해온 고구려가 그곳에 대단히 큰 첨성대를 높이 세웠다고 하네.》

설경성은 한송빈이 만월궁이 아니라 첨성대를 앞에 놓고 떠받드는 그까닭을 알수 없었다.

기껏 높아 열길을 좀 넘겠고 그 밑둥도 려염집 한두채나 앉힐 그런 첨성대가 무엇이 대단하다고 이러는것일가?!

첨성대에 손을 얹은 한송빈이 그우를 쳐다보며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첨성대는 천자국들에서 흔히 볼수 있는거네. 보라구, 이 첨성대를 쌓아올린 돌벽의 층수를 28개로 한것을… 이건 하늘나라 28개의 별자리를 의미하는것일세. 꽃병처럼 벽을 둥글게 쌓은것은 하늘은 둥글다는 뜻일세. 자네에겐 이런 의문이 들수 있을거네, 신라야 고구려와 달리 천자국이 아닌데 어떻게 하늘나라를 살피는 첨성대를 가질수 있는가고… 그렇지 않은가?》

설경성은 남의 생각을 앞질러 내다보는 한송빈의 지감이 놀라와 그를 쳐다보았다.

《신라가 첨성대를 세운 때는 저희네도 고구려처럼 박달임금의 조선을 이은 천자국이라며 자칭 인평이란 년호를 제정했던 선덕녀왕때일세.》

한송빈은 첨성대의 돌벽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첨성대는 보다싶이 임금이 계시는 궁성안에 세우는것이 전례일세. 때문에 궁성에 마음대로 드나들수 있는 특전을 지닌 사람들에는 조정대신들뿐아니라 첨성대에서 일을 보는 천관들도 속한다네.》

한송빈이 송악산꼭대기를 가리키며 저 산이 우리 고려의 진산으로서 가운데봉우리에는 복원천황당이 있고 그안에는 환인과 환웅, 박달임금 그리고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제의 신주를 모셨으며 이것만 보아도 고려는 명실공히 박달임금과 동명성제의 나라를 이은 천자국이라는것을 알수 있다고 말하였다.

한송빈은 손을 더 높이 들어 서쪽과 동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네 도성밖으로 서쪽에는 만수산이요, 동쪽에는 태묘가 있네.》

한송빈은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대궐을 쳐다보았다.

《만월궁안에는 궁과 전과 각과 문들이 숲을 이루고있네. 만월궁이란 하늘나라의 궁전이란 뜻일세 그런데 만월궁이라는 어원을 따진다면 밤하늘의 보름달궁전이란 답이 나온다네.

어이하여 고려는 이 궁전을 만월궁이라고 했는가? 이는 음양의 리치로써만 그 답을 낼수가 있네. 우리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일세. 고구려가 있었기에 고려도 있는것이니 고구려가 양이라면 고려는 음일세. 하기에 고려에서는 건국의 그때 벌써 서경에 있던 고구려의 옛성을 고쳐쌓게 했던거네. 서경에 있었던 고구려임금의 궁전을 해에 비긴다면 개경 황성안의 고려임금의 궁전은 보름달에 비길수 있네.》

한송빈의 목소리가 의분으로 떨리였다.

《바로 그때문에 저희만이 황제라고 떠돌던 거란의 성종이 개경에까지 쳐들어와 만월궁과 태묘를 불사르고 첨성대와 복원천황당을 허물어버렸던거네. 그것도 모자라 고려실록을 포함해서 우리의 책들을 불태웠네, 그러나 우리 고려는 거란군을 쳐부시고 그놈들이 페허로 만들었던 만월궁도 첨성대도 모두 보란듯이 다시 일떠세웠네. 어디 그뿐인줄 아나?》

설경성은 한송빈이 펼쳐놓는 이야기가 지루하기는커녕 하루종일이라도 싫지 않을것 같았다.

한송빈이 송악산마루를 타고 이어진 성벽을 가리켰다.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 황도에는 저 황성밖에 없었네. 강감찬장군이 거란군을 전멸시킨 대첩의 자랑을 안고 온 나라가 떨쳐나서 개경의 외성을 쌓았네. 그 성을 라성이라고 부르네. 둘레가 29 700보에 달하는 라성은 황성과 이어져있네. 결국 황성과 라성을 모두 합치면 우리 도성의 둘레는 삼만삼천보에 달한다네. 우리 도성의 둘레를 삼만 삼천보로 만든데는 실로 깊은 뜻이 담겨져있네. 우리 고려에서는 1리를 이웃나라들과 달리 333보로 하고있네. 그런즉 도성의 둘레는 99리가 되네. 99라는 수에는 33이라는 수가 세번 들어가있네.

여기서 33이란 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만월궁의 본전인 회경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수를 세보면 알수 있네.

회경전으로 오르는 계단의 수가 33개일세.

예로부터 하늘의 높이를 33만리라고 하질 않나.

결국 33이란 수는 하늘나라 임금의 자손이 다스리는 천자의 땅임을 의미하는 수일세. 그래서 회경전을 오르내리는 계단의 수도, 도성의 둘레에도 33이란 수가 들어가게 했던거네.》

설경성은 책에서도 읽지 못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온넋이 끌려 한송빈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한송빈이 머리우의 해를 가리켰다.

《이젠 저 불가마속에 묻히기 전에 여길 뜨는게 어떤가?》

허나 배우고싶은 마음뿐인 설경성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사부님은 그런걸 어데서 알았소이까?》

이제는 그가 누구이든 배워주는 사람이라면 사부라는 공대의 말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설경성이였다.

한송빈이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나라를 귀중히 여기면 알수가 있지. 눈에 보이는 모든것들에 고려의 얼이 어려있는데야 제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어찌 그걸 깨닫지 못하겠나. 자, 어서 가자구.》

설경성은 궁성을 돌아보고싶었지만 한송빈이 늙었음을 생각하여 공손하게 따라섰다.

궁성문을 나서던 한송빈이 대궐같은 집들을 가리켰다.

《황성안의 저 집들에 중서성과 문하성, 상서성들이 있었다네. 상서 6부는 광화문밖에 있었고…》

인차 광화문을 나서니 한송빈은 집쪽으로가 아닌 남쪽으로 뻗은 대통로로 이끌었다.

《이제 또 개경거리를 구경시켜주겠네. 그다음 의술을 론하세.》

아직은 개경에 대해서 모르는것이 많은 설경성에게는 그 말이 고맙게 들리였다.

누구나 우리의 강산, 우리의 백성, 우리의 력사를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눈길을 드니 대통로 량옆으로 2층, 3층의 루각들이 추녀를 맞대였는데 그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이 점방이나 음식점들이고 이 거리가 행랑거리임을 알아본 설경성은 강화도의 행랑거리보다 웅장한데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얼마쯤 가니 새로운 행랑거리들이 옆으로 갈래를 치는데 그 입구에서 《영통》이란 글을 쓴 간판을 볼수 있었다.

설경성이 그 간판을 가리켰다.

《영원히 통한다는 저 현판의 글을 보니 마치나 강도(강화도의 도성이라는 뜻)의 행랑거리에 온듯싶소이다. 강도에도 이런 행랑거리들이 있는데 그 입구마다에 영통, 광덕, 홍선, 통상, 존신, 자양, 효의, 행손이란 글을 쓴 간판들을 내다걸었소이다.》

한송빈이 껄껄 웃었다.

《그건 다 이곳의 행랑거리들을 그대로 본땄기때문일세. 우리 개경의 행랑거리들에는 성례, 락빈, 연령, 령액, 옥장, 희빈이란 현판을 내건 음식점들이 있는데 아마 강도에도 그와 꼭같은 현판들을 내건 음식점들이 있을거네.》

그만에야 설경성은 강화도의 도성거리들이 개경을 본따 만든것임을 깨달았다.

하긴 개경사람들이 고스란히 옮겨가서 세운 강도이니까…

《여기로 들어가세.》

한송빈을 따라 2층집으로 올라서니 꽤 넓은 방에서 두명의 미녀가 나부시 절을 하며 맞아주는것이였다.

거울같이 얼굴이 비치는 큰상에 자리를 잡은 한송빈이 미녀들에게 일렀다.

《두명분씩 삼계탕을 먼저 내오고 그다음 사면을 내오게.》

미녀들이 얼른 삼계탕이 담긴 커다란 접시를 안고나왔다.

어른의 주먹보다 조금 큰 약병아리에 3년생 약삼을 넣고 끓인 삼계탕이 개경의 별식임을 아는 설경성은 군침을 삼키였다.

한송빈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삼복철엔 단고기국도 삼계탕도 좋다네. 개경에서는 삼계탕이 더위병도 막아주고 몸보신에서도 제일이라고 일러준다네. 식기 전에 들라구.》

애써 감질을 참고있던 설경성은 약병아리의 다리부터 뜯어냈다.

입에 넣으니 고기는 버섯볶음처럼 만문하고 뼈도 굳지 않았다.

잠간사이에 설경성의 접시는 반반해졌다.

설경성에게는 냠냠하기 그지없었다. 적어도 서너마리쯤은 먹어야 배가 부를것 같았다.

자기 접시에 반나마 남아있는 삼계탕을 굽어보며 한송빈이 말했다.

《삼계탕은 냠냠하게 먹어야 약일세. 허나 자네같은 젊은이야 다르지.》

하더니 한송빈이 미녀들에게 일렀다.

《우리 총각에게 삼계탕 하나를 더 가져다주게.》

한 녀인이 잰걸음으로 다가와 설경성이앞에 새 접시를 놓아주었다.

삼계탕을 맛스럽게 먹는 설경성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한송빈이 말했다.

《삼계탕에 쓰이는 약병아리는 아무 고장에서나 기른것을 가져다 써도 좋지만 인삼만은 반드시 우리 개경인삼을 써야 효험을 더 크게 볼수 있네. 그건 전국 각처에서 인삼을 심긴 하지만 개경인삼만큼 효험이 크지 못하기때문일세.》

그 말에 설경성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눈길로 한송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인삼이 그 산지에 따라서 약효가 차이나는 까닭을 알고싶어했는데

《사부님, 개경인삼만이 인삼의 신비로운 약효를 그대로 간직하고있다 했는데 무엇으로 그것을 론증할수 있소이까?》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한송빈이 대꾸했다.

《내 의술로 밥벌이를 해온지도 어언 50년이 흘렀네. 그동안 인삼이 들어간 약과 음식으로 구완한 병자가 아마도 수천명은 잘될걸세.

그들에게 개경인삼을 쓸 때가 제일로 효험이 있었네. 그럼 왜서 개경인삼만이 그 효험이 우뚝한가?》

한송빈은 뜻밖의 횡재앞에 가슴을 두근거리는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그건 개경을 품고있는 천마산이 조화를 부리기때문일세. 먼 옛적부터 저 중원땅의 임금들이란것들이 신령스러운 불사약, 인삼이 우리네 삼신산에 많다면서 그걸 구해오라고 신하들을 보내군 하였다네.

그 삼신산이란 봉래, 방장, 영주라는건데… 내 생각에 봉래는 오늘의 금강산이고 영주는 지리산 그리고 방장은 바로 개경의 천마산일세.

어이하여 천마산을 방장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방장은 대방국 남쪽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였네. 여기서 대방국은 고구려가 처음 일어섰을 때 지금의 서해도에 있던 나라로서 후에 고구려에 귀속되였다네.

그런즉 대방국 남쪽에서 산삼도 많이 나고 예로부터 인삼을 심어온 산으로는 천마산뿐일세. 천마산 꼭대기의 한 바위에는 방장이란 글귀가 있는 시가 새겨져있네. 옛사람들은 천마산을 가리켜 방장이라고 했던거네.

천마산에 심어온 인삼이 특별히 좋았기에 그 고장의 삼포동골안에는 옛사람들이 인삼풍년을 기원하여 깎아만든 인삼바위까지 있는거네.

우리 고려에서 인삼신을 형상한 인삼바위라든가 삼포동이란 이름을 가진 고장은 오로지 천마산밖에는 없네. 난 개경인삼을 써서 죽어가던 병자를 살려냈지만 다른 고장의 인삼으로는 살려내지 못하였네.

이것은 천마산이 품고있는 개경의 땅속에 인삼이 신비로운 조화를 부릴수 있게 하는 토기가 어려있다는걸 말해주는것일세.》

생각밖에 의문을 푼 설경성에게 또다시 떠오르는 의혹이 있었다.

《개경인삼이 좋다고 하면서 왜 각처에서 인삼을 심게 하는것이오이까?》

약삼을 씹으며 한송빈이 대꾸했다.

《우리 개경은 터가 넓지 못해 인삼을 많이 심지 못하는것이 흠일세. 인삼의 수요는 늘어만 가는데… 그래서 나라에서 전국각지에 심도록 할수밖에… 개경인삼이 아니더래도 세상사람들에게는 더없는 불사약으로 되는것이니까.》

두사람앞의 접시들이 반반해지자 미녀들이 국수를 내여왔다. 닭고기로 꾸미를 듬뿍 얹은 국수그릇에는 얼음덩이까지 떠있었다.

한송빈이 설경성에게 어서 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랭면이라고 할 때 서경랭면이 으뜸이고 그다음이 우리 개경의 이사면일세. 개경랭면을 사면이라고 하는것은 국수발이 명주실처럼 가늘기때문일세.》

설경성은 도읍에서나 먹어보는것으로 알던 국수발이 실처럼 가는 국수를 개경에서도 받아놓으니 기뻐서 함뿍 웃음을 지었다.

국수를 맛있게 먹고나니 한송빈이 한쪽눈을 끔뻑해보이며 말했다.

《이 음식점에서는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네.》

《?!…》

《난 이 음식점의 단골손님이고 이 집 사람들은 나에게 병을 보이는 단골일세. 우린 서로 값을 치르지 않고 지낸다네. 이를테면 인정을 품앗이한다고 할가.》

설경성은 다시한번 감탄해마지 않았다.

인정도 품앗이라, 과연 인생을 재미나게 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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