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21)
며칠후 대중보와 보옥의 바래움속에 이른아침 온정골을 나선 설경성은 반나절이 지나 례성강의 나루에 이르렀다.
길복이 있어서인지 마침 시작되는 썰물을 타고 강화도로 가는 배들이 있었다.
그 배에 오른 설경성은 섭섭한 마음으로 떠나온 온정골을 그려보았다.
리별의 아픔이란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젠 알만 했다.
아, 정든 사람과의 리별이 이다지도 가슴을 허빌줄이야…
대중보뿐아니라 백운대사며 칼침의원, 운두골의 사냥군로인의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러는 설경성의 두눈에 눈물이 고여올랐다.
설경성의 이런 마음을 알리 없는 배는 기세차게 내리흐르는 썰물을 타고 질풍같이 내달렸다.
배가 어찌나 빠른지 걸어서 하루길이 넘는 벽란도에 반나절도 못되여 당도했다.
이제 가야 할 곳은 개경이였다. 개경의 《귤나무집》주인에게 로채병을 다스리는 신통한 재간이 있다니 벽란나루에서 내려 한나절이면 찾아갈수 있었다.
나루에 내린 설경성은 강화도를 향해 다시금 달리는 배를 바래워주고는 난생처음인 벽란도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그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여기가 그 유명짜한 벽란도가 옳긴 옳은가?!
나루를 품고있는 나지막한 벽란산과 그 맞은켠의 봉미산 그리고 방골마을이 등지고있는 산에 나무가 울창할뿐 고색짙은 정각들은 아무리 둘러보아야 눈에 뜨이지 않았다.
벽란산에 외국사람들을 맞아들이는 우벽란정이라는 궁궐같은 집이 있었다던데…
고려를 찾아온 이국의 배들로 숲을 이루었다던 벽란도는 무서운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듯 번번하였다.
여기가 고려의 천하화공 리녕이 송나라에 가서 그려보였다던 례성강의 벽란도란 말인가. 그 누군가가 지은 시 한수까지 떠올라 마음은 더욱 처량하였다.
남쪽배 북쪽배 멀리에서
모여들어 신나게 교역하누나
한적한 선창에 못박힌듯 서있는 설경성을 지나가던 로파가 의아히 여기며 말을 건넸다.
《어떤 길손이기에 하염없이 서있기만 하노?》
그제서야 로파를 본 설경성이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벽란도가 도읍처럼 번창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이게 웬일이오이까?》
로파가 혀를 차며 대꾸했다.
《길손은 예가 처음인가보군. 다 지나간 옛말이라우.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갔으니 이국의 배들이 여기에 올리 없고… 악귀같은 몽골군이 달려들어 집들을 모조리 불질렀다네. 그 재더미속에서 이만큼 일어선것만도 다행이라네.
그전에는 여기서 개경까지의 수십리길에 온갖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추녀밑으로 가면 비가 와도 옷이 젖지 않았네만 지금은 그게 다 옛말이지.》
쓸쓸한 마음을 안고 설경성은 큰길로 접어들었다.
해질녘에 국청사의 앞을 지나 고개길에 올라서니 죽배천을 가로지른 큰 다리가 나타났다. 황교였다.
설경성은 황교앞에 있는 주막으로 찾아들었다.
하루밤 주막신세를 진 설경성은 아침해가 떠오르자 황교를 지나 개경성의 서문인 오정문으로 들어섰다.
대중보의 말이 개경의 《귤나무집》은 오정문에서 반마장가량 떨어진 락성동에 있다고 했다.
거란군을 전멸시켜 명장이라 이름을 떨친 강감찬
락성동에 이르러 마을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꽤 큰 기와집을 가리키며 그 집이 《귤나무집》이라는것이였다.
《귤나무집》에서 대뜸 눈길을 끈것은 한길을 훨씬 넘는 탱자나무울타리였다. 울타리로서 탱자나무를 어찌나 배게 심었는지 바람 한점 스며들지 못할것 같았다.
굵고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한 탱자나무에 돌배만 한 탱자가 주렁주렁하였다.
울타리 하나로써 약재로 쓰이는 탱자도 얻고 짐승따위도 함부로 범접할수 없게 하였으니 이 집주인의 일솜씨가 여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경성은 관가의 대문마냥 크게 세운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주인어른 계시오이까?》
인차 으험- 하는 기척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대문이 찌쿵 열리였다.
구척장신의 로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설경성을 내다보며 물었다.
《누군고?》
《전 강화도에서 나서자란 설경성이라 하오이다.》
설경성이 소매속에서 대중보가 써준 소개신을 꺼내 내밀었다.
소개신을 받아 단숨에 훑어본 로인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대중보와 전장에서 사귀였던 용약원 한송빈일세. 어서 들어오게.》
한송빈이 설경성을 이끌어간 곳은 양지바른 후원이였다.
여러채의 려염집이 들어앉을수 있는 널다란 후원에 한길을 넘는 귤나무가 꽉 차있었다.
아기주먹만 한 열매들이 가지가 휘여지게 달린 귤나무를 본 설경성의 입이 하 벌어졌다. 강화도에서도 귤나무는 그림자도 찾아볼수 없는데…
《주인님, 겨울에 이 나무들이 얼어죽지 않소이까?》
설경성의 질문에 한송빈이 고개를 저었다.
《물음에 물음으로 대답하는건 실례되는 일이오만… 자네 쌍명재 리인로선생이 남긴 〈파한집〉을 읽어는 보았나?》
설경성은 한때 고려의 문인들을 대표했다는 해좌7현중에서도 기둥이였던 리인로가 많은 시를 남겨놓았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그의 저서로서 《파한집》이 있다는것은 알지 못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은 《파한집》이 리인로가 세상을 떠나간지도 40년이 흐른 몇해전에 그의 아들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기때문이였다.
그때는 설경성이 문을 닫아걸고 의서에만 묻혀있었으니 《파한집》이 나왔다고 한들 얻어볼새도 없었다.
《제 미처…》
얼굴이 붉어지는 설경성을 바라보며 한송빈이 웃었다.
《〈파한집〉은 몇부밖에 내지 못해서 제노라는 문장가들도 얻어보기 힘드네. 내가 그 책을 얻을수 있은것은 쌍명재선생과 나의 조부님이 형제처럼 지냈기때문일세. 그래서 선생의 아들이 나한테만은 보내주었거던.》
한송빈은 숲을 이룬 귤나무를 가리켰다.
《내 〈파한집〉의 한대목을 읽어줄가? 잘 들어보게.
〈어화원에 이르러 키가 한길을 넘는 귤나무를 보았는데 열매가 주렁주렁하였다. 너무도 이상하여 어화원의 관원에게 더운 곳에서 사는 귤나무가 어떻게 되여 여기에 뿌리를 내렸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가 대꾸하기를 이 귤나무는 전라도에서 떠옮겨온것을 심고 아침마다 소금물을 주었더니 겨울에도 얼어죽지 않았고 무성하게 자란다는것이다. 귤나무는 본시 제 사는 터가 따로 있는것인데 소금물의 덕에 추운 고장에서도 뿌리를 내리였구나.〉하고 쌍명재선생이 글을 쓰셨다네.》
귤나무를 취한듯 바라보는 설경성에게 한송빈이 물었다.
《이젠 그 까닭을 알겠나?》
설경성은 두손을 모아잡으며 감탄조로 대꾸했다.
《장독이 물독과 달리 겨울에도 얼어터지지 않는것은 소금이 조화를 부리기때문이 아니겠소이까?》
《옳거니, 바로 그걸세. 전라도에서 귤나무를 가져다가 어화원에 퍼친 사람이 바로 나의 조부님일세. 강화도로 천도할 때 어화원의 꽃나무들은
떠가면서도 귤나무들은 버리고갔네. 귤나무는 뭐 떠옮기면 살릴수가 없다나… 하긴 그때 우리 조부님도
자랑스러운 눈길로 귤나무를 둘러보던 한송빈이 다른 질문을 꺼내였다.
《자네 개경이 처음인가?》
《이번까지 두번째이오이다. 지난해는 몽골에 가는 임금의 행차를 따라와 사흘을 묵었댔소이다.》
《그럼 개경이라고 할 때 무엇이 제일먼저 떠오르나?》
그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설경성은 멍히 귤나무를 바라볼뿐이였다.
사실 그는 개경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한순간 한송빈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스치였다.
대중보가 써보낸 글월에서는 설경성이 총명을 타고난 인재라고, 벌써 그가 이룬 학식중에서 의술은 한봉우리를 이루었으며 시문이라든가 지리, 이웃나라에 대해서도 웬만한 학자들과 어깨를 견줄만 하다고 자랑했었다.
그런데 고려의 력사에는 밝지 못하니 씨알맹이가 없는 허수아비라 아니할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아무리 다재다능하다고 한들 나라를 위해 무슨 유익한 일을 할수 있단 말인가.
허나 아직은 상대가 총각이라는 점에 한송빈은 너그러운 마음이 우러났다.
하여간 설경성을 제자로 여겨 잘 가르치라는 옛친구의 부탁을 달갑게 들어주고싶은 마음에 한송빈은 그를 방으로 이끌었다.
저녁상을 물리자 한송빈은 설경성이 쌓은 의술의 봉우리가 얼마나 높은지 타진해볼 심산으로 자정이 넘도록 병을 진단하는것으로부터 침구술의 묘리, 약을 짓는 비결 등을 캐물었다. 그 모든 질문들에 설경성의 대답은 한결같이 간단명료하면서도 요진통을 빼놓지 않아 한송빈을 크게 감탄시키였다.
한생 의술로 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의에 두서없이 련속질문을 들이대면 그 절반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할것이였다.
어떤 질문은 한송빈도 그 답을 모르는것이였다.
도리여 모르던것을 배우게 된 한송빈은 설경성이 타고난 의술의 인재임을 알수 있었다.
이런 사람일수록 고려의 력사를 바로 심어주어야 할것이였다.
《난 자네가 앞으로 뛰여난 명의가 될수 있다는걸 아네. 하지만 그에 앞서 참된 넋이라고 할가… 하여간 자기 나라의 력사부터 잘 알아야 진정으로 고려를 위해 애쓰는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네. 자네가 바란다면 난 천자국의 얼이 어려있는 개경을 속속이 보여주겠네.》
그렇지 않아도 개경에 대해서도 깊이 알고싶어하던 설경성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이튿날 이른아침 한송빈은 설경성을 뒤에 달고 오정문을 나섰다.
황교를 끼고있는 죽배천을 따라 북쪽길로 접어든 한송빈이 물었다.
《어이하여 거란이 그러했듯 몽골이 우리 나라를 해치지 못해 악을 쓰는것 같나?》
코흘리개들도 아는걸 묻는다는 생각에 설경성은 입을 다시였다.
그래도 대답은 아니할수 없어 입을 열었다.
《그거야 그놈들의 심보가 도적같은지라 남의 강토를 빼앗지 않으면 잠이 올수 있겠소이까?》
대바람 한송빈의 눈길이 엄해졌다.
《어쩜 국자감까지 나왔다면서 대답이 그 꼴인가. 시골아낙네도 그 정도의 대답은 할걸세.
아, 강화도천도가 멀쩡한 젊은이에게서 얼을 뽑아갔구나.》
설경성은 한송빈이 안타까와하는 까닭을 알수 없으니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이보게 경성이, 사람이 큰일을 하자면 제 나라부터 잘 알아야 하네. 물론 외적들치고 도적같지 않은 놈이 어데 있겠나?
하지만 우리 고려가 오늘까지도 외적란을 당하고있는데는 이런 까닭도 없지 않네. 그건 우리 나라가 하늘나라 임금의 자손인 박달임금이 세운 조선을 이은 나라이고 또 동명성제의 고구려를 물려받은 나라이기때문일세.
우리가 이은 나라들은 천자국일세. 그래서 황태조께서 국호를 고구려를 물려받은 나라라는 뜻에서 고려라 하신것이고 당당하게 천수라는 년호까지 쓰게 하신게 아니겠나.
하기에 우리 고려에서는 임금을 천자라고 칭하는거네. 고구려에서는 임금을 가리켜 태왕, 발해에서는 황상이라고 하였네.
우리 고려는 명실공히 천자국인 까닭에 도읍 개경을 황도라 한것이고 평양을 서경, 경주는 동경, 한성은 남경이라 하는거네.
력대임금들의 신주를 두고 제사를 하는 사당도 제후국에서는 종묘라고 해야 하지만 우리 고려에서는 당당하게 태묘라고 하는거네.
대궐도 제후국은 북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짓는 천자국과 달리 동쪽을 등지고 서쪽을 향해 짓는다네. 옷도 천자는 해를 의미하는 황포를 입지만 제후는 붉은 홍포를 걸쳐야 하네.
또한 제후들은 자기를 칭할 때 과인이라고 해야 하지만 천자의 나라 고려에서는 짐이라 하고있으며 신하들이 임금을 부를 때 제후국에서는 전하라 하지만 우리 고려에서는 떳떳하게 성상페하라고 하는거네.
어찌 그뿐인가. 제후국에서는 신하들이 임금을 맞이할 때 천세라고 웨쳐대지만 우리 고려에서는 만세라고 하는거네.
이때문에 발해를 삼키고도 부족하여 송나라의 광활한 북방의 강토를 빼앗아 천하의 대국이라 으시대던 거란이 우리를 보고 저희네 제후국이 되라고 강박을 한거네. 저희네만이 천자국이라면서 저 하늘에 두개의 해가 있을수 없듯 하늘아래에도 두 황제가 있을수 없다는것이라네.
그것들의 강박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거란이 우리를 삼키려고 달려들었던거고… 몽골도 마찬가지일세. 우리가 황제국이라고 자처한 거란이나 몽골에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 제후국이 되였더라면 고려는 그것들의 한개 주로 되여 우리의 풍속이 변한지 오랬을거네.
박달임금이 물려준 천자국으로서의 자존자대의 유풍이 고구려를 거쳐 고려에로 이어졌거늘 이게 바로 우리 겨레의 얼일세. 바로 이걸 짓밟으려고 외적들이 악을 쓰는거네.》
가슴을 치는 그 말에 설경성은 어느덧 만수산기슭에 이른지도 알수 없었다.
이 근방에서 제일 높다고는 하지만 동쪽의 송악산에 비해서는 야산이라고 할수 있는 주봉을 축으로 여러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만수산이다.
반마장가량 되게 동남으로 점차 낮아지다가 불쑥 끊기운 이 산의 릉선에 7개의 릉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있었다.
그것들을 가리키며 한송빈이 말했다.
《자네에게 오늘 보여주자고 하는것이 칠릉을 안고있는 이 산일세. 이 산을 왜 만수산이라고 하는가?
그건 바로 황태조의 선산이기때문일세. 오직 천자만이 자기의 선산을 가리켜 만수산이라고 할수 있는거네.》
숭엄한 눈길로 만수산을 쳐다보던 설경성이 물었다.
《그럼 여기에 황태조의 7대조부 호경으로부터 아버지 세조에 이르기까지 다 묻혀있다는것이오이까?》
한송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중요치 않네. 이 산이 만수산이라 불리워지고 이 산에 황태조의 7대조상을 안치한것은 고려가 일어서서 퍼그나 세월이 지난 후일세. 저기를 보게.》
한송빈이 가리켜보인 곳은 만수산뒤의 자그마한 산아래에 있는 릉이였다.
《저 무덤이 강감찬
설경성이 자세히 살펴보니 선릉과 7릉들이 무덤의 크기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었지만 릉앞의 제당에서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선릉의 제당에 비해 칠릉의 제당들은 몇곱이나 크지 않소이까?》
《바로 그걸세. 칠릉처럼 제당을 크게 지은 무덤들은 없네. 칠릉에 제당을 남달리 크게 지은것은 그 무덤들이 순수 황태조의 조상무덤임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자의 선산임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란 말일세. 말하자면 고려임금의 성지라 그것일세.》
한송빈이 손을 들어 남쪽의 둔덕같은 산을 가리켰다.
《저 산너머의 양지가에 황태조의 현릉이 있네.》
설경성이 두눈을 꺼벅이며 물었다.
《황태조의 무덤이야 강화도로 옮겨오지 않았소이까?》
《그건 사실일세. 거란란때에도 황태조와 세조의 시신을 남쪽으로 옮겨갔댔으니까. 비록 황태조의 시신을 강화도로 옮겨갔지만 본래의 그자리에는 무덤이 그대로 있네.》
깨도가 된 설경성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 만수산은 우리 임금의 선산으로서 7대조상들의 령혼을 받들기 위해 세웠다는것이겠소이다?》
《바로 그걸세. 이젠 깨달았으니 우리도 음달을 찾아가세.》
높이 떠오른 해는 세찬 열기를 내뿜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