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17)

 

설경성을 뒤에 달고 밖에 나선 대중보는 터밭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밭을 덮고있는 오이넌출을 가리켰다.

《자네 저걸 보면서 의문이 나는 점을 찾아보게.》

설경성으로서는 거듭 눈빗질을 하였지만 좀처럼 의문이 드는 점을 찾아볼수 없었다.

《저… 실은 제 농사엔 깜깜이오이다.》

설경성의 솔직한 말에 대중보의 눈길이 엄해졌다.

《아무리 도성에서 자랐다 한들 의술을 파고들겠다는 사람이 어쩜 농사를 외면하는가 말일세. 그래가지고서야 어찌 뜻을 이룰수 있겠나. 농사를 떠나서, 먹는것을 떠나서 의술을 론할수 없어.》

그 말에 설경성은 대중보가 아버지처럼 여겨졌다.

《제 이제부터라도 농사일도 배우겠소이다.》

《암, 그래야지.》

대중보가 오이그루의 옆에서 별로 푸르싱싱한 잎새를 추겨든 부루를 가리켰다.

《양에 속하는 부루는 독이 없는 아주 좋은 남새일세. 그래서 부루는 미나리와 달리 아무리 많이 먹어도 석림같은걸 모르네. 부루는 진디물을 없애는 명약이기도 하네. 오이나 참외는 진디물에 꼼짝을 못하네. 복숭아나무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난 오이와 부루를 섞어심는다네. 그러면 진디물이 끓이지 못하네.》

설경성은 그제서야 오이그루마다 그 량옆에 두포기씩의 부루가 심어져있는것을 알아보았다.

《그럼 부루잎을 좀 따볼가?》

설경성은 대중보와 함께 종다래끼에 부루잎을 한가득 따서 담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시키는대로 하게.》

설경성은 대중보가 일러주는대로 뜨락의 돌절구에 부루를 쏟아넣고 절구공이로 찧었다.

《자, 이젠 짓이긴 부루를 소랭이에 퍼담고 거기에 물 한바가지를 붓게.》

그가 분부하는대로 하였더니 소랭이의 물이 시퍼렇게 변하였다.

《소랭이를 날 주게.》

소랭이를 안고 뜨락을 나서며 대중보가 말했다.

《이제 이것으로 진디물을 잡자는걸세.》

오이밭에다 소랭이를 내려놓은 대중보가 벼짚으로 만든 비자루로 그안의 물을 듬뿍 묻혀가지고 오이순에 발라주며 말을 이었다.

《오이밭에 부루를 함께 심었다고 해서 진디물이 아예 끓이지 않는건 아닐세. 조금이라도 생기거던. 진디물은 반드시 순에 먼저 달려드네. 여길 보게나.》

대중보가 가리켜보이는 오이순에 벼룩같이 생긴 몇마리의 진디물이 붙어있었다.

《바로 여기에 부루즙을 발라주면 진디물이 맥을 추지 못하네.》

대중보에게서 비자루를 앗아든 설경성은 신바람이 나서 부루즙을 듬뿍듬뿍 묻혀주었다.

그 일을 마치였더니 언제 가져왔는지 대중보가 널판자로 교자모양으로 만든 앉을깨를 내밀었다.

《밭최뚝에 앉아 땀을 들이자구.》

설경성을 밭최뚝에 눌러앉힌 대중보가 입을 열었다.

《겨울이나 이른봄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몸을 앓는다네. 그럴 때 의원들은 솔잎즙을 내여마시거나 버드나무가지 달인 물로 양치질을 하라고 하네. 자넨 여름과 달리 이른봄에 많은 사람들이 이몸을 앓는걸 어떻게 보나?》

설경성이 의서에서 배운대로 대답한다면 그것은 이른봄이면 위나 신이 허약해져서 열이 나고 또 기혈부족이 더 잘 생기기때문에 그것이 이몸에 미쳐온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대중보가 그런 대답이나 바라고 물은것은 아닐것이였다.

비로소 설경성은 대중보를 스승으로 삼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사부로 모시지 않는다면 어찌 남다른 배움을 이룰수 있단 말인가.

설경성은 힘있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고싶소이다.》

사부라는 말에 대중보가 눈물이 글썽해졌다.

《내가 사부라… 고마우이. 내 지금껏 숱한 사람들에게 음식비방을 알려주었네만 나를 사부라고 불러준 사람은 많지 않았네. 자네가 나를 사부라 한 이상 내 아는건 다 물려주겠네.》

그 말에 감동된 설경성이 대중보의 앞에 너푼 꿇어엎드렸다.

《사부님.》

《됐네, 됐어.》

설경성의 손을 잡아일으킨 대중보가 목메여 말했다.

《사람이 한세상에 났다가 스승이 되여 제자를 거느리는것만큼 자랑스러운 일은 없을걸세. 제자를 둔 사람은 몸은 죽어도 그의 뜻은 살아 후세에 이어져가니 말일세. 그러니 내게 행운이 열렸어.》

그릴수록 설경성의 감격은 더해만졌다.

《사부님

《됐네, 이젠 앉으라구.》

설경성의 곁에 나란히 앉은 대중보가 말했다.

《내 다년간 눈여겨보았더니 사람이 이몸을 앓게 되는것이 확실히 차나 남새와 관련이 있는것 같네. 겨울부터 봄까지는 어느 집에서나 신선한 남새를 먹기 힘드네.

하지만 차를 늘 마시는 부자들속에서는 이몸을 앓는 사람을 찾아볼수 없네. 차야말로 남새를 대신할수 있는 좋은 명약일세. 그러나 차라는게 전라도나 경상도와 같이 따뜻한 고장에서나 자라는데다가 그 값이 비싸서 보통사람들은 사먹을수가 없네. 그러니 추운 고장의 백성들에게는 차가 그림의 떡이란 말일세.

겨울이라 할지라도 해가 잘 드는 밭에 심은 파는 물론 냉이 같은 들나물도 파릇파릇하다네. 그걸 뜯어먹는 사람들은 이몸을 앓지 않네. 결국 파란 생남새가 이몸을 든든하게 해준다는것을 말해주지.》

사람의 병은 약이나 침과 뜸으로만 다스릴수 있는것으로 생각해온 설경성에게는 그 말이 신비스럽게 들려오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다면 가을에 무우나 배추를 얼지 않게 움에 두고 먹으면 될게 아니겠소이까?》

설경성의 질문에 대중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걸세. 누구나 이런 리치에 맞게 음식을 지어먹으면 병없이 오래 살수 있네. 내 우리 가문의 국비방을 하나 알려주지. 이건 뭐 그리 만들어먹기 힘든건 아닐세. 국거리로는 무우시래기, 참나무버섯, 우웡, 미나리면 되네. 이것들을 같은 량으로 섞어 끓인 국은 간에 든 병뿐아니라 소갈(당뇨병), 여은내장(백내장에 해당되는 병)에도 좋고 지어는 하얗게 센 머리칼도 다시 검게 할수 있다네. 자, 이젠 몸을 좀 놀려볼가?》

얼른 일어선 설경성이 대중보를 부축하려드니 그가 손을 내저었다.

《내 아직은 동네씨름판에 나서면 세손가락에 꼽히는 힘장수일세.》

씨엉씨엉 걸음을 내딛던 대중보가 터밭에서 반마장가량 떨어진 개울가의 밭에서 멈춰섰다. 콩밭이였다.

콩밭에서는 한뽐가량 자란 콩대들이 우줄거리며 키돋움을 하는데 바람이 불 때면 싱싱한 잎들이 춤을 추는듯싶었다.

대중보가 한마지기가 잘되는 콩밭을 가리켰다.

《곡식이 자라는걸 보기는 좋지만 그걸 가꾸기는 대단히 헐치 않네. 만인을 먹여살리는 농사군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네. 농사를 짓는데서 제일 힘에 부친 일은 씨뿌리기도 아니요, 가을걷이도 아닐세.》

대중보가 밭고랑에서 바랭이를 뽑아들었다.

《바로 이런 잡풀을 잡아야 하는 김매기일세. 곡식을 씨뿌려서 거두어들일 때까지 이 몹쓸 김은 검질기게 기여나오는데 그걸 내버려두었다가는 페농일세. 그래서 농군들은 날마다 이 몹쓸 김과 씨름을 해야 하는데 땡볕이 쏟아지는 날에는 하루종일 비지땀으로 미역을 감고 비가 오는 날에는 찬비에 물자루가 되는데 그게 어디 사람의 몰골인가? 그 모습을 오죽이나 보기에 민망했으면 이런 시도 생겼겠나.》

대중보가 지그시 두눈을 내려감았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시 한수가 흘러나왔다.

 

비맞으며 이랑에서 김을 맬 때면

우리 모습 람루하여 사람같지 않지만

잘사는 집 아드님들 업수이보지 마오

자네들의 부귀함도 우리의 덕이라오

 

늙은이가 류창하게 시를 읆는것이 놀라와 설경성의 두눈이 둥그래지는데 대중보가 크게 눈을 떴다.

《이 시는 고려명사로 이름을 떨친 백운거사 리규보가 지은걸세. 백운거사가 벼슬길에서 이런 시를 지었다는게 놀랍기만 하네. 그분이 삼복더위에 제 손으로 김을 매보았더라면 이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더 크게 울리는 시를 내놓았을거네.

농사일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것이 저절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삼복철의 김매기일세. 삼복철에는 왜 그리도 김이 기승을 부리며 성해지는지.

어제까지도 깨끗하던 논밭인데 왜 그리도 무더기로 김이 쏟아져나오는지 조금만 손이 늦어가도 범이 새끼를 치겠다니까. 그때문에 농군들은 무더위에 논밭에 들어가 팥죽같은 땀을 흘리는걸세. 땀이 두눈을 가리우고 곡식잎에 가죽이 베여지고 숨을 헐떡일 때면 애숭이농군들은 운다네.

부자들은 음달에서도 덥다고 랭수욕을 한다 야단을 치는데… 그래서 농군들이 골병에 드는걸세.》

그 말에 설경성은 마음이 쓸쓸해졌다.

나도 농사군으로 태여났더라면 그런 고생을 하겠지.

설경성의 쓸쓸해하는 기분을 엿본 대중보가 콩이랑에서 북데기같은것을 한웅큼 집어들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한건 자네가 뼈에 새기고 음식비방을 더 잘 깨우치길 바라서이네. 그건 그렇고… 농군들도 머리를 써서 일할 때가 많네.》

대중보가 손에 쥔것을 내보였다.

《이게 뭔고 하니 들깨짚을 부스러뜨린걸세. 들깨짚북데기를 이랑에 덮어주면 김이 나오지 못한다네. 그리고 장마철전에 후치질만 해주면 고된 김매기를 하지 않고서도 농사를 지을수 있네.》

설경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들깨와 김이 상극이라는게 아니오이까?》

《그렇네. 수화상극이라고 할수 있지. 음식도 마찬가지일세. 이런 상극을 무시하고 음식을 먹으면 화를 당할수 있네.》

대중보는 숨을 죽이고 자기를 지켜보는 설경성의 그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자네에게 적을 방비하는 음식비방을 알려준다면서 삼거웃마냥 자꾸만 겉껍질이나 가지고 사설했는데 실은 그런것도 알아야 진속을 깨우칠수가 있다네.》

설경성이 절절하게 말했다.

《사부님, 소생은 사부님이 아시는 그 모든걸 다 배우고싶소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가르쳐주소이다.》

향학열이 이글거리는 설경성의 두눈을 들여다보며 대중보가 껄껄 웃었다.

《좋아, 자네에겐 젊은 오늘의 하루하루가 천금맞잡이니… 내 장담 하건대 한달안에 그 모든걸 물려주겠네. 그럼 오늘은 음식에서 상극의 비결을 알려주려네.》

그때 보옥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대중보가 다 큰게 아이마냥 뛰여다녀서야 쓰겠느냐 하는 눈길로 딸을 흘겨보는데 그 눈길을 느끼지 못했는지 보옥이 설경성의 팔을 덥석 부여잡는다.

《이보세요, 방금 옆집아이가 발목을 접질렀는데 꼼짝 못하오이다.》

대중보가 설경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가 솜씨를 보일 때가 왔네. 아무리 음식비방이 기이하다 해도 그것으로는 급한 병을 고칠수 없네. 난 밭을 마저 돌아보겠으니 자넨 보옥이를 따라가보라구.》

보옥이를 따라가보니 과연 옆집의 뜨락에서 엉엉 우는 코흘리개 애녀석을 부여잡은 어른들이 사색이 되여있었다.

애녀석의 부어오른 발목을 들여다보며 설경성은 뼈는 상하지 않았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이런것쯤은 침만으로도 다스릴수 있었다.

발목부위 구허혈과 태계혈을 비롯해서 몇군데 침을 놓았더니 엉엉 울어대던 애녀석이 곧 뛰여노는것이였다.

그에 놀란 사람들이 명의가 나타났다고 소문을 내돌리는 바람에 병자들이 앞을 다투어 설경성을 찾아왔다.

마을사람들에게 발목을 잡힌 설경성은 그날부터 밤늦게까지 병치료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문에 대중보와 침식을 같이하면서도 음식비방을 전수받을 사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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