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16)
밥상을 물리기 바쁘게 설경성은 대중보를 쳐다보며 말했다.
《주인어른께서 일러준대로 달래무침을 장복한 운두골편자군은 석림이 뚝 떨어져서 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소이다.
제 보기에도 석림에는 달래무침이 약보다 좋은것 같소이다.》
대중보가 미간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석림처럼 지독한 병도 많지는 않을걸세. 콩팥에 돌이 생겨 약을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별의별 약방문을 다 쓰지만 그들중 일부는
그 어떤 약도 말을 듣지 않네.
그런 사람들인 경우 끼식마다 달래무침을 빼놓지 않으면 그 고통을 면할수 있게 되네. 사실 그 비방은 그리 대단한게 못되네.》
설경성이 지금 강렬하게 알고싶어하는것은 적을 미리 막는다는 음식비방과 그 병이 생기는 까닭이였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적이 어이하여 생기는것 같소이까?》
설경성의 질문에 대중보가 앉은 몸가짐을 바로하며 대꾸했다.
《자네 욕심이 지나치거던. 초면임에도 그런걸 대달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다니… 하여간 그 욕심이 마음에 들어. 그러나 그에 대한 옳은 답을 내자면 한생을 바친대도 모자랄거네. 그런걸 앉은자리에서 공짜로 알겠다?》
그 말이 진담으로 하는 말인지 롱담인지 알수 없어 설경성은 숨을 죽이였다.
대중보가 엄한 눈길로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자네한테 나리라는 약혼녀가 있다며?》
보옥이 어느 틈에 그런것까지 귀뜀을 했을가. 설경성이로서는 놀랍기만 하였다.
《난 아들이 없어 가문의 비방을 데릴사위한테 물려주자고 하네. 이것이 대씨집의 가법이니까. 그러니 자네같이 내 집 사위가 아니될 사람에게야 안되지. 달래무침만은 하도 크게 신세를 입었기에 남한테 대준거라네.》
로인이 롱이 아닌 진담을 하고있다고 판단한 설경성은 아스라하게 높은 절벽을 마주한 심정이였다.
그러니 헛걸음이란 말인가?… 가만, 력동을 이 집에 데릴사위로 들여보내면 어떨가?!…
인차 설경성은 그 생각을 털어버리고말았다.
의과에 나가 급제를 하고 나라의 의술에 기여할 뜻을 세운 력동이를 이 집에 발목을 묶게 할수야 없지.…
은근히 불만이 솟구친 설경성이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보건대 주인어른은 우리 고려가 모든 면에서 세상을 앞서나가기를 바라시는것 같은데… 전 남다른 비방이나 배워가지고 일신의 공명과 권세를 누리자는건 아니오이다. 저도 우리 나라가 선조의 나라 고구려가 그러했듯 천하를 압도하는 강국이 되길 바래서 이 길에 나선것이오이다.》
심드렁해있던 대중보가 별안간 방바닥을 철썩 내리쳤다.
《바로 그거야. 난 자네가 그런 사람일것임을 첫눈에 알아보았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길 기다렸단 말일세.》
순간에 설경성은 무거운 돌지게를 벗어던진 기분이였다.
정말로 주인어른이 마음의 대문을 활 열어놓았단 말인가?!
대중보가 믿음이 실린 눈길로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대개 의원들은 무서운 적이 생기는건 몸의 정기가 허해졌거나 7정의 손상으로 생겨난 독기가 위에 이르면 위적이요, 간에 이르면 간적이 된다고 하지. 희, 노, 우, 사, 비, 공, 경 다시말해서 기뻐하고 성내고 근심하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겁내고 놀라는 이 일곱가지 성질이 어떤 자극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병이 생긴다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7정이 무엇때문에 손상되는가 하는것에 대해서는 의술에 제노라 하는 사람들도 명쾌한 대답을 주기 힘들어하네. 왜냐하면 실은 그들도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기때문일세. 슬픈 일이지만 사람은 아직 자기
사람의 육체와 그 육체속에 어려있는 넋에 대해서 학문으로 옮겨놓는것은 온 천하를 밝혀내는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세. 자기를 너무도 모르면서도 안다고 하는것이 사람일세.
자네가 얼마만큼 의술을 닦았는지는 몰라도 이 손가락 하나를 놓고 가죽으로부터 뼈속에 이르기까지 그 생김새며 손가락이 움직여지는 리치며 감각을 느끼는 리치 그리고 피가 도는 리치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옳게 할것 같은가? 아니, 사람이 그걸 밝혀냈다면 벌써 세상이 크게 달라졌을거네.》
그 말이 그른데 없다고 생각하니 설경성은 자기라는 존재가 터럭같이 여겨졌다.
《그렇다고 락심해할것까지는 없네.
7정은 짐승들에게도 있는것이지만 사람만이 그 느낌을 능히 표현할수가 있으며 제 손으로 그걸 변화시킬수도 있단 말일세. 이게 바로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차이점일세.
자네는 천하의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다툰다고 생각하나?》
설경성은 어줍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거야 먹고 쓰고 사는 그때문이지요.》
《옳아, 그때문이지. 요는 먹는것때문이야. 먹는것때문에 사람들은 옛적부터 종족들간에, 나라들간에 싸움을 해오는거네. 사람들이 지위를 탐내는것도, 땅에 침을 흘리는것도 실은 다 그때문일세. 누구나 잘 먹으면 즐거워하네. 그 즐거움은 사람에게 분노와 공포, 근심과 슬픔을 가시여주고 기쁨을 가져다주니 어찌 몸이 좋아지지 않겠나. 몸이 좋아지면 병이 달아난다는것은 삼척동자도 아는것일세.
그래서 숙수(료리사)가 사람의 건강을 위해 의원 못지 않은 일을 한다고 하는것일세.
섭생에서 요는 먹는것이라 음식감을 어떻게 손질해 먹는가에 따라 건강이 좌우되네. 사람은 누구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네. 그런 음식이라야 입에도 잘 붙으니까.
허나 기름진 음식으로 포식하는 사람들은 대개 명이 길지 못하네.》
대중보가 불쑥 질문을 들이댔다.
《자네 우리 임금들이 오래 살지 못하는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설경성은 솔직하게 대답을 터놓았다.
《전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소이다.》
대중보가 한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수도 있지, 그건 보통일이 아니니까. 올해가 우리 고려가 일어선지 347년이 되는 해일세. 이 기간에 임금의 대는 어느덧 24대에 이르렀네. 24대에 이르기까지 예순살을 넘겨사신 임금으로는 황태조(왕건)와 11대 문종, 19대 명종, 22대 강종 그리고 23대 고종 이렇게 다섯 임금뿐일세. 이들중에서 오로지 명종만이 일흔한살을 사셨네. 일흔한살이면 장수자라고 할수 없네. 반면에 마흔살도 살지 못하시고 병으로 잘못되신 임금은 무려 열명을 넘네.
그중 명군이라는 이름을 남긴 2대 혜종은 33살에, 6대 성종도 37살에, 현종도 39살에 세상을 떠났네.》
설경성은 시골의 로인이 그런것까지 환히 꿰뚫고있는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어떻게 그런걸 다?!… 대씨인때문에?!…
고려에서 대씨가문은 귀족의 대우를 받고있었다. 그 덕에 대씨가문에서는 재상도 장수도 적지 않게 나왔던것이다.
《그럼 어이하여 우리 임금들이 장수하지 못했는가? 어의들의 재주가 박한탓일가? 아닐세, 난 그렇게는 보지 않네. 예로부터 우리의 의술은 이웃들한테 뒤져본적이 없었네. 어느 시절에나 막론하고 명의들이 있었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되였는가. 그건 의원들의탓이 아니라 궁중의 숙수들이 음식짓는 비방을 잘 몰랐기때문일세.
고구려의 임금들속에는 장수자가 많았네. 태조대왕은 무려 118살, 차대왕이나 장수왕들도 거의 백살의 수를 누리였네. 물론 의술의 덕때문이기도 하지만 난 고구려의 숙수들이 음식을 차리는 비방을 잘 알고있은 덕때문이라고 생각하네.
외적란에 고구려도 백제도 무너지고 신라도 국력이 쇠진하여 끝내는 쓰러지고마니 궁중의 음식비방이 후세에 전수되지 못하고말았네.
그걸 론증할수 있는가? 할수 있네. 대씨가문의 음식비방은 발해의 궁중에서 물려받은것일세. 참, 다행스러운 일일세.》
설경성은 적을 론한다는것이 자꾸만 갈래를 치고있었지만 조금도 지루한줄 몰랐다. 바로 그 갈래들속에서 이루어지는 해답을 한데 모으면 답이 나올것이였다.
《오히려 음식을 차리는데서는 약을 쓰는것보다 주의해야 할것이 더 많다네. 의술을 배운 사람이라면 독이 있는 약재를 모르지 않을걸세. 그러나 음식은 그걸 갈라보기가 조련치 않네.
가령 단고기라든가 록두지짐이라고 하면 몸보신에 좋다고만 생각하지 그것들을 함께 먹으면 무서운 독이 된다는것은 잘 모르고있네.》
설경성은 그것을 알고있었다. 그의 가문이 대대로의 의원집이라 음식들을 함께 먹을 때 독이 될수 있다는 그 점에 대해서도 후손들에게 가르치고있었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독을 일으키는지 그 까닭에 대해서는 전해오는것이 없었다.
《단고기와 록두지짐을 함께 먹으면 왜 죽음을 일으키는가?》
질문을 던진 대중보가 그에 대한 대답도 입에 올렸다.
《세상만물은 다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졌네. 음식감도 다를바가 없네. 집짐승을 음과 양으로 갈라본다면 풀을 먹는 소나 말, 양은 음에 속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개나 고양이는 양에 속한다고 볼수 있네. 개는 맹수인 늑대의 후손이라 양기가 센 짐승일세.
한편 곡식에서는 봄에 심어 여름에 이삭을 뽑고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콩이며 조며 수수, 기장, 벼는 양에 속하고 가을에 씨뿌려 봄에 이삭을 패는 보리나 밀은 음에 속한다고 할수 있네.
여기서 록두는 콩처럼 양에 속하는데 양기가 아주 세다고 볼수 있네. 그건 록두의 성질이 그러하기때문일세. 곡식중에서 약물중독이나 음식중독을 푸는데서, 부스럼과 서열증의 독기를 푸는데서도 록두만 한게 없네. 록두의 특출한 양기가 바로 그런 효험을 내게 하는것일세.
결국 양기가 극히 센 단고기와 록두가 합쳐지면 그 양기가 너무도 과도해져서 결국은 무서운 독을 일으키는것일세.
5장은 양인 몸의 겉에 비해서는 음에 속하지만 그 5장에서 심은 간장과 비장의 우위에 놓여있다는데로부터 양에 속하는지라 단고기와 록두가 화합되여 내보내는 과도한 양기의 독기를 이겨낼수 없네.》
대중보의 설명은 설경성의 페부로 쏙쏙 흘러들었다.
정말이지 그의 설명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잘 째여있었다.
《사람이 음양의 조화를 무시하고 음식을 먹으면 화를 당하게 되네.》
대중보는 온 정신을 모아 귀를 강구고있는 설경성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미나리김치를 좋아하나?》
그 말에 설경성은 금시 입안에 침이 그득해져서 꿀꺽 삼키였다.
개울이나 논도랑의 음달진데서 연하게 자란 미나리로 담근 김치만 한 밥도적도 흔치 않을것이였다.
《우리 고려사람치고 미나리김치를 싫다할 사람이 있겠소이까?》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입에서 좋다고 하여 지나치게 먹으면 해를 입네. 미나리는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기때문에 음기가 세다네. 그때문에 미나리를 지나치게 먹으면 음에 속하는 장기인 신장을 못쓰게 만드네. 신장에 돌이 든다 그 말일세. 미나리뿐이 아닐세. 산나물인 고사리도 그렇고 고비도 다 음지를 좋아하는지라 음에 속한다고 볼수 있네. 이런것들을 지나치게 먹으면 석림에 걸려 고생할수 있네.》
설경성은 지금 신선의 세상에 있는 기분이였다.
대중보의 훈시는 별세상의 설교인듯 신비로왔다.
이윽고 대중보가 선하품을 하며 말했다.
《하루에 지은 집은 오래 갈수가 없은즉 그만하는것이 어떤가?》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듯 웃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이 열리고 이불을 안은 보옥이 내려왔다.
그날밤 잠자리에 누운 설경성은 신선의 설교와도 같은 신비한 이야기를 마저 듣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실방에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절정의 고비에서 듣지 못한것처럼 귀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코를 골며 자는 대중보의 곁에서 눈을 감기는 하였으나 음식비방의 세계가 이 집앞에 높이 자란 은행나무처럼 안겨왔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에 가지들은 얼마나 많으며 거기에 붙어있는 잎들은 또 얼마나 무수한가.
음식비방의 세상도 그러할진대 그를 깨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설경성은 밤가는줄을 모르고 새록새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여기서 배운바를 한줄로 꿰여나갔다.
날이 밝고 아침상에 나앉은 설경성이였지만 조금도 피곤한줄 몰랐다.
오로지 어서 대중보의 가르침이 시작되기를 바랄뿐이였다.
밥상을 물려서야 대중보의 입이 열리였다.
《내 생각엔 낮에는 오륙을 놀리고 밤에는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 어떤가?》
그 말에 설경성은 얼굴이 뜨거웠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가, 이 집은 농사하는 집인데…
부끄러워하는 설경성에게 대중보가 손을 내저었다.
《아아, 난 자네를 부려먹자는게 아닐세. 그저 몸을 좀 놀리는 정도로 터밭이나 가꾸고 자네가 바란다면 온정욕도 하고 병자들도 손을 대고…》
대중보의 진정에 설경성은 고개를 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