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13)

 

병치료속에 이해도 저물어 새해를 하루 앞둔 섣달그믐날이 왔다.

이날에는 그렇게도 붐비였던 력동의 집이 조용하였다. 병자들이 설맞이로 제 집에 돌아간때문이였다.

설경성을 크게 탄복케 한것은 발이 썩는 병으로 고생하던 로인이 다나아서 제발로 걸어 제 집으로 돌아간 그것이였다.

뜻밖에도 력동이 아버지에게 비록 한가지이기는 해도 난치라고 알려진 탈저를 다스리는 특출한 재주가 있으니 설경성은 감탄에 앞서 그 비방을 손에 넣고싶었다. 이런 신비한 재주를 보면서도 배우지 못한다면 억울하지 않는가.

허나 호환에서 구원해준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이 집의 대대로의 비방인 그것을 물려달라고 손내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메돼지고기로 풍성하게 차린 아침상을 물리고났는데 력동의 아버지가 정색해서 입을 뗐다.

《이보게, 설의원.》

력동의 스승이라며 반드시 설의원이라 공대하는 로인의 말에 설경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발이지 말씀 좀 낮춰주소이다.》

《아아, 공과 사는 구별이 명백해야 한다 했거늘 설의원은 그러지 말게. 그건 그렇고 오늘 조용한 이 기회에 설의원에게 알려줄게 있네. 실은 설의원이 할일을 다하고 내 집을 나설 때 말해주자 했네만 괜히 애태울게 있겠나.

그래 설의원 보기에 발병을 고치는 그것도 의술이라 할수 있겠나?》

설경성은 그렇게 알고싶었던 비술을 당사자가 먼저 꺼내드니 숨이 턱 막히는것 같았다.

《그런게 바로 신… 신비한 의술이오이다.》

설경성의 말을 믿기 어렵다는듯 로인이 두눈을 꺼벅거렸다.

《하여튼 그것도 의술이라 한다니 그럼 됐네. 사실 이건 우리 집 비방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써 얻어낸것도 아니며 또 그것으로는 밥벌이도 되지 않기에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네. 그저 발병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의술을 생업으로 하는 설의원에게는 그게 소용될것 같아 오늘 알려주자는것일세.》

설경성은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얼빠진 사람처럼 로인을 초점잃은 눈으로 쳐다볼뿐이였다. 주먹만 한 금덩이를 얻었다 한들 이런 기쁨에야 어찌 비길수 있으랴. 하늘나라의것처럼 신비한 비방을 줌안에 넣게 되다니

《내가 발병때문에 뜸을 뜬건 설의원이 눈감고도 아는것이니 그건 그만두고… 약재로는 말일세, 전갈, 왕지네, 단너삼, 금은화, 당귀를 쓰는데 하루에 전갈과 왕지네는 가루내여 한숟가락, 나머지는 한줌씩 섞어 달여쓰면 되네.》

온몸이 귀가 되여 듣는 설경성의 뇌리에 그의 말이 바위에 글을 쪼아박듯 깊이깊이 새겨졌다.

생전 잊혀지지 않도록 새겨넣은 설경성은 그 비방이 부골류독이라고 하는 고름독이 뼈속에까지 미치는 병과 뼈마디에 고름이 드는 류담(골관절결핵)을 다스리는 비방과 비슷한것이 놀라왔다.

무엇이나 밑뿌리를 헤쳐보면 신기한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늘나라것처럼 여긴것도 막상 알고보니 천하의 그 어떤 의술도 능히 깨칠수 있겠다는 자신심이 생기였다.

그런 신심을 안겨준 로인이 고마와 설경성은 정히 무릎을 꿇고 아뢰였다.

《거듭 입는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소이다.》

설경성의 손을 잡으며 로인이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신통한 비방은 못되는것 같네. 겪어보니 발가락이 이미 썩어문드러졌을 때는 별로 효험이 없었네. 그런즉 이 비방은 병든 초기에나 맞는다고 할수 있네.

나에게 이걸 배워준 삭주총각이 이르기를 때를 놓쳐 발가락이 썩었을 때에는 썩은 발가락을 잘라낸 다음 이 약에 몇가지 약재를 섞어써야 한다고 했는데 나야 의원이 아니니 흘려듣고말았네.》

설경성이로서는 대단히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 약처방까지 알았더라면…

《삭주총각이 이 비방을 배워주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사오이까?》

추억을 더듬는듯 벽에 몸을 기대인 로인의 두눈이 축축해졌다.

《벌써 수십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려, 살례탑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왔을 때이니까. 그땐 나도 팔팔한 젊은이였지.

살례탑이 쳐들어오자 고을들에서 숱한 젊은이들이 군사가 되였네. 나도 군사가 되여 살례탑의 대군과 맞서 싸우는 서북면(오늘의 평안남북도와 자강도일대에 있었던 고려의 지방)의 구주로 갔었네. 거기서 삭주총각을 알게 되였지.

지금도 보다싶이 난 타고난 힘장사라 싸움만 벌어지면 남들보다 더 많은 적을 잡았다네. 내가 때려잡은 적만 해도 백놈은 썩 넘을거네.

그래서 동료들이 날 부러워하면서 싸움법을 배워달라고 했네. 나한테서 무술을 배우느라 삭주총각이 더 극성이였네.

그 친군 약골이라 힘이 약했거던. 그래서 더 극성을 부린거네. 난 그 친구를 동정해서 열성껏 배워주었네. 그게 고맙다고 그 친구가 그 비방을 배워준거네, 자기 집 비방이라나.

싸움판에서는 동상을 입기 쉽고 그때문에 발병이 날수 있으니 배워두면 반드시 유익하다기에 배웠던거네. 그런데 그 친구는…》

로인의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그 친구는 끝내 우리가 크게 이긴 승전을 보지 못하고 전장에서 쓰러졌다네. 지금도 구주성의 뒤산에 그의 무덤이 있을거네.》

설경성의 두눈에도 눈물이 가득하였다.

그날밤 잠자리에 누운 설경성은 생각이 많아서 잠들수 없었다.

발병을 다스리는 비방을 지닌채 전장에서 숨졌다는 삭주총각의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삭주총각이 비방을 남에게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천금같은 비방이 모두 없어지고말았을것이다.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고 없어진 비방이 오죽이나 많겠는가.

의업을 바다에 비긴다면 약비방의 수는 바다물속의 물고기만큼이나 많을것이다.

그 비방들을 모두 건져 의서로 써내면 수천수만권의 책을 이룰것이다.

겨레가 살아있는 한 조상들의 비방도 존재하는 법, 발병을 고치는 비방도, 칼침술도 그중의 하나일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찾아다니면 얼마든지 선조들의 비방을 걷어쥘수 있을것이다.

그 길에서 유익함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선조들이 남겨놓은것보다 더 많은 비방을 얻게 될것이다.

백운대사만을 놓고보더라도 그 한사람이 무려 수십가지의 새로운 비방을 얻어내지 않았던가.

이 집에서 병자들을 치료하던 나날들을 돌이켜보던 설경성은 지금도 새로운 비방들이 샘솟듯 생겨나고있음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나도 병자들한테서 분명히 새롭다고 할수 있는 비방을 얻어내지 않았던가.

설경성에게서 속탈을 고친 한사람은 가끔 코피를 흘리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누운 자리에서 발버둥을 친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코피가 멎더라는것이였다.

그래서 자기는 코피만 나오면 누워 발버둥질을 한다는것이였다.

그 리치를 따져보니 허망한 말은 아닌것 같았다. 누워 발버둥질을 하였다면 틀림없이 발뒤꿈치로 방바닥을 쳤을것이다.

발뒤꿈치에는 딱히 이렇다할 침혈은 없어도 그 부위가 손상되면 허리아픔을 일으키는것이니 무시할데가 못되는 곳이다.

그 부위에 코안에서 나오는 피를 다스리는 혈이 있다고 보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마침 마을에 코피를 흘리는 아이가 있어 발뒤꿈치로 바닥을 치게 하였더니 정말로 코피가 멎는것이였다.

다른 병자는 보리가을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였는데 상처를 싸멜 헝겊이 없었다. 그래서 쑥과 몇가지 풀을 짓이겨 싸맸더니 피도 즉시 멎고 아픔도 멎었을뿐아니라 상처도 덧나지 않고 깨끗이 아물더라는것이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보라고 하였더니 과연 효험이 다른 약에 비길바가 아니였다.

가만히 앉아서도 그런 비방을 얻어냈는데 마음먹고 찾아다닌다면 얼마나 많은 비방을 얻게 될것인가.

그러니 내가 가야 할 길이 명백하다.

백성들이 사는 곳이라면 심심산골마을에도, 바다 한가운데의 섬마을에도 다 찾아가야 한다.

의술의 본도자체가 천하의 모든 병자들을 구제하는것이니 더욱 명백하다.

백운대사나 칼침의원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것이 나의 진리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을것이다.

이 진리를 찾으라고 등을 떠민 리승휴가 진정 고마왔다.

고려의 방방곡곡에 묻혀있는 비방을 모두 찾아낼적에 우리의 의술이 진정 천하제일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할수 있으니 내 그날을 위해 뛰고 또 뛰리라.

가야 할 길이 뚜렷해지니 울렁이던 가슴도 가라앉았다.

하건만 잠이 좀처럼 찾아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눈앞에 어머니가 보이였다.

태여나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설을 쇠지 못하겠구나. 이제 더는 어머니를 고생시킬수 없다. 새해에는 나리를 맞아들여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야 해.

이번에는 나리의 아릿다운 자태가 눈앞에서 얼른거리는것이였다.

나리에 이어 여러 친구들의 모습도 떠오르면서 그들의 안부가 념려되였다.

그리고 알고싶어지는것은 몽골에 갔던 일에 대한 소식이였다.

이달에 임금의 일행이 몽골에서 돌아온것은 알고있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고왔는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과연 두 나라사이의 화친을 두터이하였는지.…

설경성은 뜬눈으로 새해를 맞이하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