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가의 심정을 헤아리시여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에 있은 일이다.

고향방문차로 공화국북반부에 왔던 남조선의 한 기업가가 우리 안내일군에게 백두산들쭉술을 많이 살수 있게 해줄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들쭉술에 홀딱 반했다고 하면서 자기의 요구를 들어 달라고 거듭 간청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연회때 들쭉술을 그저 보통술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마셔보니 그 향기가 어찌나 이채롭고 감미로운지 정신이 핑 돌 지경이였다, 거뜬하고 혈액순환이 잘되고 아주 좋은 술이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이름 난 술은 다 마셔 보았지만 백두산둘쭉술이 제일이다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들쭉술이 백두산에서 나는 특산품이여서 그런지 더 마음이 끌린다고 하면서 남에 있는 친지들에게 꼭 이 술을 맛 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날 저녘 해당 일군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아시게 된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가져 가게 해야 한다고, 고향방문을 왔는데 돈을 받겠는가, 마음껏 가져 가게 해야 한다고 하시며 포장도 잘해서 보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친부모의 다심한 심정으로 남녘동포들을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사랑에 목 메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영화창작사업을 지도하시면서도

 

주체81(1992)년 5월 어느 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문학예술부문 창작가, 예술인들을 몸 가까이 부르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을 계속 잘 만들어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를 조국통일위업실현에로 힘 있게 추동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한생을 회고하시면서 주석께서는 외세에 의하여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오늘까지 어느 하루도 분렬로 인한 우리 민족의 불행과 고통을 잊으신적이 없었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을 하나로 굳게 묶어 세우는 사업은 정치선전만으로는 안된다, 사람들의 심장을 틀어 잡고 마음을 움직이는데서 문학예술이 큰 역할을 한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은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 이바지하는데서 문학예술의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고,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을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의 길로 이끌어 나가는데서 선도자적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뜨거운 사랑은 이역만리에도

 

주체84(1995)년 1월 17일 《1995년 국제10대뉴스》의 하나로 세상을 놀래운 최대의 지진이 일본에서 일어 났을 때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지진피해상황이 실린 자료를 해당 부문 책임일군들에게 내려보내주시면서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가 하는것을 빨리 알아 보라고 이르시였다.

대참변에 관한 사실을 보고 받으신 그 순간부터 우리 동포들이 걱정되시여 좀처럼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신 그이께서는 뜻밖의 재앙을 당하고 고통과 불안속에 잠겨 있을 동포들의 정상을 그려 보시며 피해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료해하여 시간에 관계없이 자신께 직접 보고하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새벽 2시, 3시에도 몸소 일군들에게 전화를 거시여 동포들의 피해정형을 또다시 알아 보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 다음날인 18일에 깊은 동정과 뜨거운 은정이 어린 사랑의 위문전문을 친히 보내주시였으며 그로부터 얼마후에는 설사 우리가 죽을 먹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불행과 고통을 겪는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시며 피해지역 동포들에게 1백만미딸라를 보내주시였다.

그이의 뜨거운 사랑이 깃든 이 위문금은 민족의 분계선이나 리념의 경계선도 없이 총련뿐아니라 《민단》비조직동포들에게도 꼭같이 가닿았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또한 일본인 피해자들을 념려하시여 20만미딸라의 위문금을 그들에게 따로 보내주시였다.

사상과 정견, 단체와 소속, 나라와 민족의 차이를 초월하여 피해지역 모든 사람들을 걱정하시며 은정 어린 위문금을 보내주신 경애하는 령도자의 뜨거운 사랑에 재일동포들과 일본인피해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백화점붕괴참사를 두시고

 

주체84(1995)년 6월 어느 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한 일군으로부터 남조선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무너 져 내려 앉아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사고의 경위와 피해상태를 여러차례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저녁시간에 물건 사러 나왔던 가정부인들이 수백명이나 파묻혔다니 이런 큰 변이 어디 있습니까, 숱한 아이들이 어머니를 잃고 울고 있을텐데 그 애들이 누구보다도 불쌍하게 되였습니다, 정말 가슴 아픕니다, 새벽 6시에 퇴근하여 잠간 쉬려고 누웠는데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전화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서울시민들과 녀성들, 아이들이 당한 고통과 불행을 두고 그토록 가슴 아파 하시는 경애하는 령도자께 일군은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올라 미처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

 

사랑의 불사약

 

주체85(1996)년 7월 당시 남조선에서 비전향장기수 김인서로인이 심한 뇌출혈로 쓰러 졌다는 소식이 전해 졌을 때였다.

사랑과 인정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이 소식을 접하시고 매우 가슴아파 하시면서 보약과 고가약을 환자에게 보내주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푸시고 그것이 무사히 본인에게 가 닿을수 있게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그이의 사랑은 그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그 다음해에도 두 차례나 귀한 약들을 김인서로인에게 보내주시여 그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도록 해주시였다.

하여 일점혈육도 없는 남조선에서 생사기로에 놓였던 환자는 이 귀중한 약들을 쓰고 건강을 회복하였으며 대지를 다시 밟을수 있게 되였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김인서로인이 뇌출혈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또다시 사랑의 고가약을 보내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 보내주신 귀중한 고가약들은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사랑의 불사약으로, 재생의 생명수로 되였다.

이 위대한 사랑과 은정이 있었기에 김인서로인은 원기를 회복하게 되였으며 드디여 혈육들이 기다리는 어머니조국의 품으로 돌아 올수 있었던것이다.

 

한 애국인사를 잊지 못해 하시며

 

주체86(1997)년 6월 어느 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일군들에게 려운형선생 서거 50돐이 되는 계기에 모란봉극장에서 추모회를 조직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어느 일군도 려운형선생의 서거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했고 또 그런 일에 대해 관심하지 않았던것이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만이 광복직후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애국애족의 뜻을 높이 받들어 통일애국의 길에 한몸 바친 려운형선생의 서거일을 기억해 두시고 그렇듯 한량 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 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서거 3년상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크나큰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고 계신 경애하는 령도자이시였다.

하건만 그이께서 그 바쁘신 속에서도 반세기전에 세상을 떠나 간 남조선의 한 애국인사의 서거일을 잊지 않으시고 그의 추모회까지 진행하도록 해주시였으니 사랑이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으며 은정이면 이보다 더 큰 은정이 어디 있겠는가.

일군들은 격정의 눈물을 삼키고 또 삼키였다.

 

남녘동포들을 위하시는 뜨거운 마음

 

어느 해인가 남조선어선 《신진3》호가 뜻밖에 풍랑을 만나 공화국북반부령해에 밀리여 들어왔을 때였다.

그때로 말하면 미군이 도발한 《판문점사건》으로 나라의 정세가 극도로 긴장되여 있던 시기였다.

바로 이러한 때 《신진3》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판문점사건》은 미국과의 문제이고 《신진3》호는 우리의 혈육인 남조선인민들과의 문제이라고 하시면서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을 동포애의 정을 가지고 최대의 성의를 다해 돌봐 줄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들의 건강상태를 일일이 알아 보시고 그들이 공화국북반부의 도시와 농촌, 공장과 명승지들을 참관하고 영화도 볼수 있도록 몸소 체류일정을 헤아려 주시였을뿐아니라 한가위를 앞둔 어느 날에는 선원들에게 한가위명절음식도 잊지 말고 잘 차려주며 체육과 오락도 조직하여 그들이 유쾌하게 지내도록 은정 깊은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의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신진3》호 선원들이 남으로 떠나게 되였을 때에는 그들이 섭섭해 하지 않도록 모든 편의를 보아 줄데 대하여 해당 일군들에게 당부하시였고 배우에서 한끼만 먹으면 가닿을수 있는 길이건만 도중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쌀과 부식물도 푼푼히 실어 주며 가다가 회도 쳐 먹을수 있게 식초와 고추장 같은것도 잊지 말고 넣어주라고 이르시였다.

하여 고향으로 돌아 가기 위하여 부두를 떠나는 선원들은 정말이지 세상에는 자기 민족을 위한다는 령도자들이 적지 않지만 경애하는 령도자처럼 동포들을 친혈육과 같이 사랑하고 위해 주시는 그런 위인은 이 세상에 없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문배술에 대한 일화

 

력사적인 평양상봉시기에 있은 일이다.

남측 대표단성원들은 연회석상에서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 남조선에서 손가락에 꼽힌다는 문배술을 정중히 부어 올렸다.

술을 받아 드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술이 좋다고, 그런데 문배술의 진맛은 모란봉 주암산의 샘물로 담그었을 때 비로소 알수 있다고, 그래서 예로부터 문배술은 주암산의 샘물로 담그어 왔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들은 깜짝 놀랐다.

남조선에서 살고 있는 자기들도 문배술의 유래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 술의 유래에 대해 그토록 환히 알고 계시는것이였다.

이 사실이 신문들을 통해 남조선에 크게 보도되자 문배술제조업자는 놀라움과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그는 광복전은 물론 리조말기때부터 모란봉 주암산에서 솟아 나는 샘물로 문배술을 담그어 온 평양태생인 증조할머니에게서 술제조기술을 넘겨 받았던것이다.

그는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를 굽어 살피시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하찮은 사람이 양주하는 문배술의 진맛까지 아시는분이라고 생각하니 놀라움을 금할수 없으며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그분이시야말로 과연 하늘이 낸 분이심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민족의 미래를 창창하게 이끌어 나가실 그분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정녕 자연의 동쪽은 해 솟는 곳이지만 민심의 동쪽은 그이께서 계시는 곳이다.

 

《제주도어머니》라 부르시며

 

어느 해 여름 함경남도 영광군 상중리를 현지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서호수산사업소에 지난 날 제주도에서 해녀로 일하던 한 나이 지숙한 녀인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차를 보내시여 그를 데려 오게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고향이 제주도라기에 함께 이야기나 하자고 불렀다고 하시며 고향은 제주도 어디인가, 몇살때부터 해녀생활을 하였는가, 고향에 가까운 혈육으로 누가 있는가고 일일이 물으시였다.

그 녀인은 고향은 남제주 표선리라는 고장이고 열살때부터 《작은 해녀》노릇을 하였으며 다섯살짜리 어린 딸애와 생리별하게 된 사연에 대하여 말씀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여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당장 풀어 드리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도 괴롭다고, 오늘은 우리와 함께 보내자고 하시며 그 녀인을 어느한 휴양소로 데리고 가시여 즐겁게 휴식하도록 해주시였으며 친히 선물까지 남기고 가시였다.

그로부터 한해가 지난 어느 날 수산물생산정형을 알아 보시기 위하여 서호수산사업소에 가시였던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 녀인을 또다시 불러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숨 가삐 달려 온 녀인을 반갑게 맞아 주시며 어서 배에 오르라고, 바다에 함께 나가보려고 불렀다고 하시며 그를 부축하고 배에 오르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곁에 있는 녀인을 돌아 보시며 이 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저 물새들은 자유롭게 북과 남을 오가는데 한 피줄을 나눈 부모처자들이 서로 갈라 져 생사여부조차 모르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국은 반드시 통일된다고, 어머니는 그날까지 늙지 말고 오래 사셔야 한다고 뜻 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 바쁘신 현지지도의 길에서 이름 없는 한 녀인을 두번이나 불러 주시여 그의 아픈 마음을 달래여 주시며 통일에 대한 락관을 안겨 주신 경애하는 령도자의 심중에는 언제나 남녘의 동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찾아 오는게 도리지요》

 

력사적인 평양상봉의 나날에 있은 일이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와 김대중대통령사이의 두번째 회담은 원래 김대중대통령이 경애하는 령도자를 찾아 와 그이의 집무실에서 열리게 되여 있었다.

그런데 첫번째 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김대중대통령일행이 거처하고 있는 숙소를 몸소 찾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오신다는 련락을 받은 김대중대통령은 너무나 황송해서 미리 현관출입문앞까지 나와 그이께서 도착하시기를 기다렸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도착하시자 김대중대통령은 《제가 찾아 가려고 하였는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감격해마지 않았다.

그러자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괜찮습니다. 몸도 불편한데 젊은 사람이 찾아 오는게 도리지요.》라고 스스럼없이 말씀하시면서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회담장으로 향하시였다.

한없이 겸허하시고 례의가 밝으신 경애하는 령도자의 넓으신 도량과 풍모는 김대중대통령은 물론 수행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 이 도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보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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