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랑의 조치

 

주체73(1984)년 9월 남조선지역에는 수십년만에 처음 보는 큰물패해가 들이 닥쳤다.

당시의 상황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큰물로 하여 200여명이 죽고 20만 7,000여명의 리재민이 생기였으며 3만 6,700여채의 살림집이 파손되고 많은 농경지와 도로들이 류실매몰되는 등 그 피해는 막심하였다.

남조선주민들은 참혹하고 원통한 사연을 하소연할데도, 동정과 구원을 요청할데도 없이 생사기로에서 헤매이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불행에 우는 자식을 더 깊이 생각하는 친어버이심정으로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을 펼치신분은 다름아닌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이시였다.

피해지역인민들의 피해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수재민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것은 식량, 옷감, 주택, 의약품같은것들이라고 하시면서 쌀 5만석, 천 50만m, 세멘트 10만t과 많은 량의 의약품을 즉시 보내줄데 대한 은정 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는 실로 뜨거운 동포애와 숭고한 민족애를 지니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만이 베푸실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조치였다.

19세기 중엽에 시작된 국제적십자구제운동의 력사를 더듬어 보아도 이렇듯 방대한 량의 구제물자를 그처럼 빠른 시일내에  수재민들의 손에 가 닿도록 한 례는 동서고금 그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다. 

 

민족의 혈맥을 잇는 일이라면

 

주체74(1985)년 북남적십자회담이 진행되던 때의 일이다.

민족의 분렬과 국토의 량단으로 당하는 겨레의 고통을 누구보다 통감하고 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일군들에게 동포애의 정을 나누고 민족의 혈맥을 잇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 말아야 한다고, 우리는 언제나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 얼마후에는 또다시 온 겨레가 평양과 서울로 오가며 그립던 정과 동포애를 나누고 끊어 진 민족의 혈맥을 완전히 잇자면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하기에 평양에 온 남측 고향방문단성원들은 일가친척들을 만난 기쁨과 감격으로 울고 웃는 속에 그 무엇이라 말할수 없는 격정으로 경애하는 령도자에 대한 경모심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민족의 분렬로 하여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풀어 주시려 마음 쓰시는 위대한 그 사랑, 그 은정에 대한 고마움이였다.

 

신자의 격정

 

주체74(1985)년에 민족분렬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북과 남사이에 예술단과 고향방문단교환사업이 이루어 졌을 때였다.

그때 평양에 오는 남측의 고향방문단에 한 늙은 신자가 있었는데 실무일군들은 그도 방문단의 한 성원인것만큼 여느 성원들과 같은 방에 들도록 호텔배치안을 짜놓고 있었다.

물론 그 호실도 나무랄데 없이 훌륭한것이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이사실을 아시고 한 일군을 부르시여 평양에 오는 남측고향방문자들속에 한 늙은 신자가 있다고 하는데 잘 돌봐 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고령의 몸으로 고향의 가족, 친척을 찾아 오는 그의 생각이 얼마나 복잡하겠는가고, 그 신자를 평양고려호텔의 1등실에 들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좋은 호텔을 지었다가 이런데 쓰지 않고 어디에 쓰겠는가고 뜻 깊은 은정의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의 사랑속에 평양고려호텔의 1등실에 들게 된 그 신자는 국빈들이나 들수 있는 고급호실을 놀라운 눈길로 휘둘러 보면서 민족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자기를 탓할대신 이처럼 극진히 환대해 주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이시야말로 한없이 넓은 포옹력,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신 위인이시라고 격정을 터뜨렸다.

 

민족적사변의 발단

 

조국광복 40돐을 몇달 앞둔 주체74(1985)년 5월 중순 어느 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북과 남사이에 예술단교환공연문제를 몸소 발기하시고 북과 남이 예술단을 교환하여 민족적내용을 주제로 한 종목을 가지고 공연하게 되면 민족적단합과 통일의 분위기를 마련하는데도 유리한 작용을 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그이께서는 크나큰 흥분과 격정으로 상기된 일군들읕 둘러보시며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동포애의 정을 나누고 민족의 혈맥을 잇는 일이라면 그어떤 일도 서슴없이 해야 한다고, 민족을 위하는 애국의 길에서는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언제나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그대로 분단 40년의 가슴 아픈 년륜을 아로새기는 삼천리강산에 동포애와 민족애의 장엄한 메아리로 끝없이 울러 퍼졌다.

 

애국애족의 통일관

 

주체74(1985)년 5월 어느 날이였다.

친선의 정을 안고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의 한 국가수반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를 만나뵙게 되였다.

담화석상에서 그는 경애하는 령도자께 통일문제에 대한 소감과 그 전망에 대하여 말씀해 주실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조선의 통일문제는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민족최대의 숙망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이다, 나라의 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여야 우리 인민은 민족분렬로 인한 재난과 불행에서 벗어 날수 있으며 온 민족이 다같이 진보와 번영의 길로 나갈수 있다고 명철한 해답을 주시였다.

민족의 분렬로 겨레가 당하는 고통과 불행을 자신의 고통과 불행으로 여기시고 그것을 하루빨리 가시기 위해 불면불휴의 로고와 심혈을 다 기울이고 계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애국애족의 통일관에 외국의 국가수반은 크게 탄복하였다.

 

력사적인 4월 남북련석회의를 귀중히 여기시며

                    

주체75(1986)년 1월 말 어느 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일군들에게 백범 김구선생의 평양방문과 남북련석회의를 주제로 한 글을 쓸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이 과업을 주신데는 뜻깊은 사연이 있었다.

어느 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와 남북련석회의를 회고하시며 감명깊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는데 광복후 김구와 려운형, 김규식을 비롯하여 남조선에 있는 민족주의자들과 민주인사들이 자신께 써보내 온 편지가 많았는데 전쟁시기에 없어 졌다고 하시면서 못내 아쉬워 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주석의 교시대로 남북련석회의와 관련한 글을 쓸것을 구상하시고 김구선생과 연고가 있는 김종항(당시 김구선생의 비서)과 안우생(당시 김구선생의 대외담당 비서)선생까지 찾아 주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이 글이 완성되였는데 《민족대단합의 위대한 경륜(남북련석회의와 백범 김구선생을 회고하여)》라는 제목을 달아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 38돐에 즈음하여 신문지상에 발표되자 친히 글을 읽어보시고 글을 잘 썼다고, 수고했다고 분에 넘치는 평가를 주시며 제일 기뻐 하신분은 경애하는 령도자이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이 글을 보시고 그처럼 기뻐 하신데는 바로 그날의 위대한 민족대단결사상과 경험에 기초하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완성하시려는 그이의 깊은 뜻이 담겨 져 있었던것이다.

 

통일전선탑건설을 두고

 

북과 남, 해외동포들속에서 조국통일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가고 있던 주체78(1989)년 3월 어느 날이였다.

당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사업하던 한 일군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평양의 한복판을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에 솟아 있는 쑥섬을 사적지로, 인민의 유원지로 꾸릴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하였다.

경애하는 령도자의 말씀을 전달 받은 그의 가슴은 몹시 설레였다.

쑥섬으로 말하면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를 성과적으로 마치신 김일성주석께서 김구, 홍명희, 김규식 등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했던 정당사회단체 지도급인사들과 함께 회의결정들을 관철하기 위한 전술적대책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신 뜻 깊은 장소였기때문이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쑥섬사적지건설을 발기하신데 그치지 않으시고 거기에 세울 통일전선탑형성도안을 보아 주시고 건설지휘부도 조직해주시였으며 강력한 건설력량을 친히 무어 주시고 현대적인 건설수단과 자재들도 보내주셨을뿐아니라 건설자들의 생활조건까지 보살펴주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통일전선탑건설과 관련하여 돌려주신 배려에 대한 소식을 전달 받은 그 일군은 쑥섬협의회에 직접 참가한 사람으로서 그이께서 어찌하여 이 건설에 그토록 마음 쓰시는가를 가슴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애국, 애족, 애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는 얼마든지 함께 손 잡고 나아 갈수 있다고 확언하시는 위대한 령도자이시기에 이 공사에 그토록 마음 쓰시느것이라고…

 

친히 고쳐 주신 도안

 

주체79(1990)년 6월 말 어느 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일군들이 만들어 올린 《조국통일상》메달견본과 상장견본을 친히 보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상》메달은 다른 메달들과 달리 금으로 하며 그안에 통일된 조국을 상징하여 조선지도를 그려 넣도록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영웅메달이나 금으로 만드는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런 상식으로 하여 어느 일군도 어느 도안창작가도 《조국통일상》메달을 금으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조국통일상》메달을 금으로 만들도록 하신 여기에는 메달의 무게로만 단순히 잴수 없는 통일애국인사들의 애국, 애족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귀중히 여기시며 값 높은 표창을 안겨 주시고 그들의 삶을 끝없이 빛내여주시려는 그이의 의리 깊은 사랑이 어려 있었다.

조국통일성업에 공헌한 애국인사들을 조국과 민족이 영원히 기억하며 온 겨레가 존경하는 영웅처럼 내세워 주시려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믿음과 사랑은 다함이 없으시였다.

《조국통일상》메달에 미흡한 점이 있을세라 그 견본을 세심히 보살펴주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애국인사들을 다시금 추억하시며 《조국통일상》상장견본을 읽어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못내 만족해 하시며 친히 《조국통일상》상장견본을 비준해 주시였다.

《조국통일상》은 이렇듯 그 제정으로부터 메달과 상장에 이르기까지 경애하는 령도자의 구체적인 지도와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마련되였다.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는 량심

 

애국의 량심을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인간의 참된 가치를 찾은 사람들속에는 《민단》계의 한 상공인도 있었다.

주체79(1990)년 10월 하순 어느 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해당 일군으로부터 《민단》계 한 상공인과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그가 조국에 오면 대우도 잘 해주고 따뜻이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민족적량심과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모두 애국의 길에 나서도록 잘 이끌어 줄데 대하여 가르쳐 주시였다.

《민단》계의 그 상공인은 본시 고생도 많이 한 사람이였으나 한때 총련과의 조직적련계를 거의 끊다싶이 하고 기업활동에만 전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부 일군들은 그를 경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민족적량심을 저버리지 않고 막대한 돈을 내여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을 위하여 조선학교를 크게 건립하였고 교원들과 학생들의 재정적부담도 덜어 주고 조국에도 적지 않은 지원을 하면서 조국에 리롭고 민족에 보탬이 되는 일을 스스로 찾아 하였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조국이 알고 민족이 알아 주면 될것이 아니냐는것이 그의 관점이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바로 그의 이러한 마음을 귀중히 여기시였던것이다.

주체80(1991)년 여름 경애하는 령도자의 배려에 의하여 그는 드디여 조국방문의 꿈을 실현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친히 배려하여 주신 유람선을 타고 해금강의 절경도 구경하면서 그는 조국의 륭성번영과 통일위업을 위해 자기의 량심을 다 바쳐 갈 굳은 결심을 더더욱 가다듬게 되였다.

 

넓은 도량과 뜨거운 사랑으로

 

《조국통일상》수상자 선발사업이 한창일 때였다.

《조국통일상》을 수여할 대상자들의 명단을 보아 주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잠시 시선을 창밖에 보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민족의 사랑을 받는 통일애국인사들중에는 한때 주의주장이 다르고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것으로 하여 반공의 길을 걷다가 비로소 잘못 살아 온 지난 날과 결별하고 통일애국위업에 헌신한 사람들도 많았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조국통일상》수상자들의 명단에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없는것을 보시고 그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 지신것이였다.

이윽하여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비록 지난날 잘못된 길을 걸었지만 오늘은 련공애국의 길에 들어 선 사람들도 《조국통일상》수상자명단에 넣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의 말씀을 새겨 안은 일군들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비록 지난 날에는 반공의 일선에서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생전환을 하여 애국과 통일을 위해 한몸 바쳐 일한다면 관용으로 대하고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 주는 것이 경애하는 령도자의 인덕정치,광폭정치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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