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진 강 가 에 서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주체63(1974)년 7월 어느 날 림진강가의 어느 한 마을을 찾으신 일이 있었다.

림진강을 사이에 두고 뭉청 끊기운 지맥의 한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에는 강너머 저쪽에 친척친우들을 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북과 남으로 갈라 져 친척친우들이 한가위날에도 서로 오가지 못하며 그저 소복단장하고 강기슭에 나와 서로 발돋움하며 바라 볼 마을사람들을 그려 보시는듯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오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민족분렬의 아픔을 한가슴에 안으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이날 이 마을의 집집을 찾으시여 그들의 가슴 아픈 심정을 깊이 헤아려 주시며 생활의 구석구석을 따뜻이 보살펴 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여 마을 뒤쪽에 있는 산마루에 오르시였다. 흐리신 안색으로 남녘땅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부모처자들이 서로 갈라져 사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고, 그들의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서라도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해야겠다고 일군들에게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사랑의 교육원조비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수륙만리 머나먼 이역에 흩어 져 사는 동포들을 한없이 넓은 품에 안으시고 언제나 그들의 생활을 세심히 알아 보시며 은혜로운 사랑을 베풀고 계신다.

주체63(1974)년 한해도 다 저물어 가는 12월 어느 날이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해외동포들이 걱정되시여 여러모로 알아 보시다가 재일동포자녀들에게 보낼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대하여 료해하시였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해 예견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아직 다 보내지 못하였다는것을 아시게 된 그이께서는 년말이 다 된 지금까지 그러면 되겠는가고 나무라시며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하여 보내게 되여 있는 금년도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다 보내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아무리 나라의 외화사정이 긴장하더라도 총련에 주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만은 기일을 어기지 말고 꼭 보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리하여 그 한해에만도 재일동포들은 여섯차례에 걸쳐 경애하는 령도자의 사랑이 깃든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 안게 되였다.

그때 재일동포들은 가까이 있는 자식보다 멀리 떨어 져 있는 자식을 더 생각하시며 잠 못 이루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은혜로운 사랑에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리였다.

 

일군들을 울린 설날밤이야기

 

주체65(1976)년 1월 1일 밤 11시경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이를 뵈옵는 순간 일군들은 뜨거워 오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지난 밤을 꼬박 새우신 그이께서 설명절날에도 여러가지 바쁜 사업으로 하여 온종일 쉬지 못하시였다는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들이 방에 들어 서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친히 한사람한사람에게 먼저 새해를 축하하여 주시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들을 둘러앉히시고 새해에 할 일이 많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나라의 분렬로 하여 겪고 있는 겨레의 고통을 깊이 통감하시는듯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과업을 다음 세대에 넘겨 주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 세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여야 합니다라고 힘 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새해에 더 많은 일을 할데 대하여 간곡하게 가르쳐주시였다.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위해 설명절에도 정력적으로 사업하고 계시는 경애하는 령도자를 일군들은 눈굽을 적시며 우러렀다.

 

<조선은 하나다!> 이것은 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주체68(1979)년 10월 어느 날 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한 일군과 담화를 하시면서 지금 국제무대에서 론의되고 있는 우리 나라의 통일전망에 대한 견해를 말해 보라고 하시였다.

일군은 우리 나라의 통일전망과 관련한 세계여론을 종합해 놓고 보면 조선의 통일이 우리 세대에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일부 회의적인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솔직히 말씀 드렸다.

일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계시던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들이 왜 생겨 난것 같은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자기 나름대로 말씀드렸다.

일군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계시던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 통일의 전도를 비관하는 론조는 결국 하나의 조선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속에서 나오는 사상적경향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조선의 통일문제는 결국 하나의 조선인가 아니면 《두개 조선》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고 하시면서 나는 언제나 하나의 조선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개 조선》을 순간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조선은 하나로 합쳐 져야 살고 둘로 갈라지면 살수 없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조선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입니다, 《조선은 하나다!》이것은 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확신에 넘치신 그이의 말씀을 새기는 일군의 심장속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용솟음쳤다.

 

통일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안겨 주시며

 

주체69(1980)년 8월 어느 날 현지지도의 길에서 잠시 머무르고 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로 한 일군이 급히 드릴 보고를 안고 달려 갔다.

해변가의 백사장을 거니시며 조국통일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가다듬으시던 그이께서는 그 일군에게 신념과 의지가 강한 사람은 언제나 미래를 사랑하는 법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것이 가능하지 결코 불가능한것이란 있을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우리는 언제나 통일을 생각하며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침에 깨여 나도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고 저녁에 잠들때에도 통일을 위한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그이의 말씀에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삼천리 조국강산에 기어이 통일의 축포를 올려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져 있었다.

 

《조국통일소년호》렬차

 

주체69(1980)년 11월 중순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기쁜 소식에 접하시였다.

평안북도 정주군안의 소년단원들이 1960년대에 파동, 파철을 모아서 만들었던 《조국통일소년호》렬차를 새롭게 갱신할것을 발기해 나섰다는것이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매우 만족해 하시였다. 20년전에 전국의 소년단원들이 통일의 념원안고 유휴자재를 모아 만든 그 렬차가 1980년대에 들어 선 이때까지 신의주-남포사이를 쉬임없이 달리는 과정에 낡아 졌다고 하여 그것을 새롭게 만들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사회주의공업강국인 우리 나라에서 렬차 하나를 만드는데 자재와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남반부를 잊지 않고 조국통일의 그날을 그리는 소년들의 심정에 감격하시여 그 발기를 높이 평가하시고 이 사업을 힘 있게 밀고 나가도록 고무하여 주시였다.

《조국통일소년호》를 현대적으로 갱신하려는 제의가 경애하는 령도자의 높은 평가와 지지를 받았다는 소식은 소년단원들은 물론 제철소, 제련소, 유리공장, 전기기관차공장의 로동자, 기술자들을 고무추동하였으며 주체70(1981)년 3월말 현재로 새로운 《조국통일소년호》렬차를 만들어 내게 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조국통일소년호》렬차가 다 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친히 감사문과 귀중한 선물을 안겨 주시고 그곳 사로청(당시)일군들과 교직원들에게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 주시는 크나큰 배려를 베푸시였다.

또한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소년호》렬차를 떠나 보내는 행사를 잘하여 전체 소년단원들과 인민들이 조국통일을 앞당겨 오기 위해 힘차게 떨쳐 나서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해 주시였다.

그리하여 얼마후 정주역에서는 꽃속에 묻힌 《조국통일소년호》렬차가 통일념원의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게 되였던것이다.

 

로목사의 고백

 

주체70(1981)년 6월 말이였다.

미국에 있는 《조국통일촉진회》회장이며 《한국인교회련합회》고문이였던 전 남조선숭전대학교 총장인 79살의 그리스도교목사 김성락은 평양에 도착하자 기자들에게 자기의 도착소식을 보도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김성락의 이러한 심정을 십분 리해한 보도기관에서는 그의 요구대로 평양도착보도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 가서 북에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려고 했던 당초의 자기 생각이 매우 잘못된것이였음을 뉘우쳤다.

그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의 현명한 령도밑에 일떠선 공화국북반부의 찬란한 현실에서 받은 감동이 컸기때문이며 두분께서 자기를 따뜻한 품속에 안아주시고 온갖 배려와 은정을 다 베풀어 주시는데 끝없이 감격하였기때문이였다.

내가 왜 이제야 이북에 왔던가, 왜 내가 나의 평양도착소식을 세상에 알리는것을 두려워 했던가, 생각할수록 그는 자신이 한없이 역겹고 미워 났다.

하여 김성락은 자기의 조국방문보도와 함께 각지를 참관하면서 보고 느낀 소감을 그대로 신문과 통신에 보도해줄것을 부탁하게 되였고 7월 7일 평양을 떠나는 날에는 비행장에서 스스로 기자들과 회견하고 출발성명까지 발표하는데 이르렀던것이다

그는 성명에서 망국노의 몸이 되여 일제에게 쫓겨 해외로 나갔다가 일구월심 그리며 고대하던 조국을 방문하여 비로소 내 조국의 참모습을 보고 내 조국의 따뜻한 체온을 실감했다고 하면서 자기의 마음속에 품었던 모든 오해를 깨끗이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통일의 신심을 안고 돌아 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하늘이 낸 위인이시고 다능다재하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를 주석의 후계자로 모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했다.

그날 비행기에 올라 조국을 떠나는 그는 시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평양을 바라보면서 젊음에 넘치시는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계시기에 조국통일은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확신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몸소 조직해 주신 음악회

 

 주체71(1982)년 여름 어느 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을 진두지휘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친히 윤이상교수가 작곡한 교향곡을 록음으로 들어 주시고 연주회를 조직하도록 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 주시였다.

당시 윤이상선생은 서부베를린음악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애국적인 음악활동을 벌리고 있었다.

그는 민주주의적인 해외교포단체의 부의장겸 유럽지역 의장(당시)으로서 조국통일에 헌신하고 있는 애국적인 작곡가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지난 날 윤이상선생이 작곡한 노래들을 발굴하는 사업을 벌리도록 하여 주시였다.

그리하여 그가 음악활동의 초년기에 작곡한것으로서 그때에 약간 빛을 보였을뿐 본인의 기억속에서도 사라 져 가던 가요들이 발굴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영영 사라 질번 하였던 작곡가의 작품들이 소생의 빛을 안고 다시 세상에 태여난것을 못내 기뻐 하시면서 시간을 내시여 그 가요들을 들어주신 다음 발굴된 가요들을 가지고 그의 음악회를 진행하도록 해주시는 고마운 은정을 베풀어 주시였던것이다.

청중들은 음악회를 통하여 해외에 있는 한 작곡가에게 사랑의 은정을 베푸시여 조국통일의 길에서 그의 음악활동을 빛내여 주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숭고한 덕망에 가슴 뜨거움을 금치 못했다.

 

새벽에도 깊은 밤에도

 

주체73(1984)년 온 나라가 씨붙임으로 들끓던 봄날의 아침이였다.

기상관측소에 알아 본 한 일군으로부터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시름이 놓인다고, 지금 북반부지역이건 남반부지역이건 비가 내리지 않아 큰 걱정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예보대로 점심때가 지나자 대륙성저기압이 밀려 오면서 한소나기 퍼부었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일군에게 또 전화를 거시여 다락밭들에 씨붙임이 안될가봐 근심하였는데 이제는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면서 비가 우리 나라의 전반지역에 다 오겠다고 예보하였는데 예보가 맞았는지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이 여러곳에 알아 보고 대체로 공화국북반부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렸으나 남반부지역에는 적게 왔는데 밤에 또 한차례의 비가 온다는 예보를 그이께 보고 드렸다.

그날 밤 늦게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그 일군에게 또다시 남쪽에 비가 온 정형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사업이 바빠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리면서 기상예보에서 비가 남녘땅에도 온다고 하였으니 그에 대하여 더는 걱정하지 마실것을 덧붙여 말씀 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못내 격하신 음성으로 무슨 소리를 하오, 그래 남녘땅은 내 나라, 내 땅이 아니란 말인가, 남녘겨레들은 우리와 한피줄을 나눈 동족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녘겨레들도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아 갈게 아니요, 그러자면 비가 내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수화기를 드시고 해당 부문을 찾으시여 비가  남녘땅에도 오는가를 알아보라고 이르시였다.

잠시후에 많은 비가 남조선전역에 내린다는 전화가 오자 그이께서는 비록 남녘땅에 비를 준것은 하늘이지만 바라던 소원이 성취되여 오늘밤에는 발편잠을 잘 것 같다고 하시면서 웃으시는 것이였다.

 

조국통일은 최고의 애국이라고 하시며

                               

주체73(1984)년 8월에 우리 나라에는 전례없이 많은 비가 내리였다.

그무렵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어느 날 밤 창밖 멀리 남쪽하늘가를 오래도록 바라보시다가 한 일군에게 심중한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비가 자꾸 내리니 남조선인민들이 걱정됩니다, 이렇게 비가 퍼부으면 남조선에 영낙없이 큰물이 납니다, 큰물이 나면 그들이 또 고통을 당할게 아닙니까, 조국의 분렬때문에 겪고 있는 남녘동포들의 불행은 나의 마음을 끝없이 괴롭힙니다,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불행에 우는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도 그렇고 동무들도 그렇고 우리 모두 남녘동포들을 순간이나마 잊으면 조국통일을 할수 없습니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참된 애국은 오직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속에 있으며 조국통일이야말로 최고의 애국으로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새길수록 가슴 뜨거운 말씀이였다.

분렬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통일을 떠난 참된 애국이란 있을수 없으며 통일을 위해 사업하는 길이 참된 애국이고 애국을 바탕으로 일할 때만이 통일을 성취할수 있다는것이 바로 그이께서 지니신 통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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