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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남조선에서는 민족적분노를 자아내는 가슴 아픈 소식이 련이어 전해 졌다. 신라, 백제, 가야때의 유물들을 비롯하여 유구한 력사를 통해 보존되여 오던 우리 나라의 귀중한 민족적재보들이 외세에 의해 유린되고 로략질당하는 참을수 없는 사태를 두고 누구보다 격분을 금치 못하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이시였다. 비길데없이 숭고한 조국애를 지니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우리 나라 력사와 문화가 비껴 있고 우리 선조들의 뛰여 난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하나의 고적, 한점의 문화유물도 파괴략탈되는것을 결코 용허할수 없으시였다. 주체50(1961)년 11월 8일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남조선에서 미국인들이 문화유물을 파괴략탈하고 있는 실태자료를 료해하시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시며 우리는 하루빨리 남조선에서 외세를 몰아 내고 조국을 통일하여 남조선에 있는 문화유물들을 원상대로 북구정비하고 그것이 우리 인민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적긍지를 키워 주는데 널리 리용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날 학생들은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고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보인 문화유물들을 원상대로 복구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령도자의 숭고한 뜻을 가슴깊이 새기였다.
주체57(1968)년 7월 어느 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제9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할 대표단성원들을 바래워 주시기 위해 몸소 평양비행장에 나오시였다. 뜻밖에도 그이를 만나뵙게 된 대표단성원들은 크나큰 감격에 휩싸여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이께로 달려 왔다. 그이께서는 대표단성원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 주시며 꼭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 오라고 당부하시였다. 멀어 져 가는 비행기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다가 한 일군에게 갈리신 음성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북과 남의 쳥년학생들이 손 잡고 국제무대에 나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어느 한시도 남녘동포들을 잊지 않고 계시는 그이의 숭고한 동포애에 일군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예술영화 《한 자위단원의 운명》창조사업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주체59(1970)년 3월 어느 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친히 촬영현장을 찾아주시였다. 먼 발치에서 촬영가의 활기에 넘친 촬영모습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저 동무가 이젠 더 늙지 않게 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일에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잘 돌봐 주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관심을 두시는 영화촬영가 박병수로 말하면 남조선에 고향을 둔 사람으로서 주체37(1948)년에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와 소망대로 영화촬영가가 된 사람이였다. 휴식시간이 되자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친히 박병수에게 다가가시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주시며 어서 땀을 씻으라고, 그러다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찌겠는가고 걱정하시였다. 너무도 황송하여 얼른 자기의 수건을 꺼내 든 촬영가는 자꾸만 손수건을 눈언저리에 가져 가는것이였다. 그가 울고 있다는것을 아신 그이께서는 왜 그러느냐고 가볍게 나무라시며 그의 손을 당겨 자신의 무릎우에 올려 놓으시고 부드러운 어조로 아바이는 우리 영화계의 보배라고. 꼭 몸을 돌봐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 순간 그는 남녘에 고향을 둔 자기를 소망대로 영화촬영가로, 각별히 중요한 영화창조의 사명을 띤 백두산창작단의 촬영가로 내세워주시고 《최학신의 일가》, 《피바다》등을 촬영하여 유명한 촬영가가 되도록 해주신 그이의 한량없는 사랑과 배려를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이것은 생전에 박병수가 받아 안은 은혜로운 사랑에 대한 한 토막의 이야기이다. 그의 생활과 영화창조의 매 순간순간은 이처럼 비길에 없는 열도와 깊이를 가진 경애하는 령도자의 숭고한 은정으로 꽃 핀 끝 없는 행복의 련속이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때의 일이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남측 대표단일행을 떠나보내는 송별오찬회에서 북남간에 신뢰와 단합을 도모하고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호상 비방중상과 상대를 자극하는 일체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쪽에서도 북을 적대시하는 6.25관련행사들을 그만 두며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이어 남측 수행원들을 향하여 그것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공동선언이 휴지쪼각이 된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조절을 잘못하면 자신께서 남쪽에 나가 장관을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장내에는 웃음판이 벌어 졌다. 그러나 남측의 장관들은 경애하는 령도자의 이 유모아적인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 짐을 금할수 없었다. 온 겨레와 민족앞에 엄숙히 다짐한 6.15북남공동선언을 기어이 리행해야 할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이 그들의 뇌리에 깊이 파고 들었던것이다.
주체62(1973)년 11월 초였다. 하루는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 일군들과 협의회를 하시다가 총련상공인들가운데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경제의 불황때문에 판로난을 겪고 있는데 그 타개책을 찾지 못해 안타까와 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판로를 우리가 맡아서 열어 주자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몇해전에도 판로난에 직면한 고베의 동포신발업자의 처지를 가긍히 여기시여 조국에서 100만컬레의 신발을 사도록 하여 주시고 같은 처지에 있는 동포고철업자의 고철을 조국에서 사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재일상공인들이 제3국과의 무역을 잘하여 그들의 기업활동을 세계적판도에로 넓혀 나가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 주시였다. 이렇듯 한두명도 아닌 수많은 동포상공인들의 판로난을 걱정하여 구원의 출로를 열어 주시니 재일상공인들의 감격은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감격은 그에만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판로개척과 관련한 사업포치정형을 알아 보시던 그이께서는 재일조선상공인생산품전시회대표단 성원들에게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존함이 새겨 져 있는 시계를 선물로 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실로 천만뜻밖의 말씀이였다. 그이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이 어려 있는 시계를 받아 안은 그들은 정말 황송하기 그지없다고 하면서 앞으로 기업활동을 잘하여 경애하는 령도자께 반드시 기쁨을 드리겠다고 감격하여 말하였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해외동포들에게 돌려주시는 이처럼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 있기에 그들은 조국과 멀리 떨어 져 있어도 조선민족된 긍지를 가지고 떳떳이 살아 가고 있는것이다.
주체60(1971)년 화창한 4월 어느 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몸소 과일군 과수종합농장을 찾으시였다. 만발한 하얀 사과꽃, 연분홍 복숭아꽃속에 묻혀 바다처럼 설레이는 백리청춘과원을 찾으신 그이께서는 무연한 청춘과원을 굽어 보시였다. 끝없이 흘러 가는 백리청춘과원을 내려다 보시던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곁에 있는 농장일군에게 조국이 통일되면 여기서 생산하는 과일을 인천항으로 실어 보내여 남조선인민들에게도 공급하여야 한다고, 북반부인민들만이 아니라 남녘의 동포들을 위해서도 과수들을 잘 가꾸고 과일생산을 늘여야 한다고 숭고한 동포애정 넘치는 뜻 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한알의 과일을 놓고도 남녘겨레들을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령도자, 그이의 심중에는 언제나 남녘겨레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분계선일대의 어느 한 마을을 찾으신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 유정한 달빛이 흐르는데 남쪽의 숲속에서 소쩍새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한동안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들으시다가 동행한 일군들에게 주석께서는 산에서 싸우실 때 소쩍새가 울면 일제의 총칼밑에서 신음하는 조국동포들이 생각나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고, 분계선 가까운 여기에 나오면 그래도 멀리에서나마 남녘인민들의 얼굴을 볼수 있을것 같고 하다 못해 그들의 목소리라도 들을수 있을것 같은데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쩍새소리만 저렇게 처량히 들려 온다고 말씀하시였다. 분계선너머 남녘동포들을 그려 보시듯 그이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다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에 고향을 둔 피아노연주가 민동무가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를 창작한것은 주체60(1971)년 7월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민동무에게 조국통일주제의 피아노협주곡의 곡상을 틔워 주시고 창작열정을 북 돋아 주시였을뿐아니라 이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게 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작품이 완성되여 시연회를 하게 되였는데 제기된 의견들은 구구하였다. 민동무가 갈피를 못 잡고 망설이던 어느 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 무대예술인들이 준비한 음악무용소품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몸소 평양대극장에 나오시였다. 한 일군이 올린 공연순서를 보시던 그이께서는 왜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가 빠졌는가고 하시면서 어서 준비시키라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이날 민동무는 경애하는 령도자앞에서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를 연주하는 더 없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협주곡을 다 들어 주신 그이께서는 저으기 흥분하신 어조로 아주 잘하였다고 하시며 매우 만족해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을 돌아 보시며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를 텔레비죤과 방송으로 널리 선전하라고 이르시였다. 오늘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통일열망을 불러일으키며 힘 있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에는 바로 이처럼 비록 작은 싹이라 할지라도 통일에 리롭고 힘이 되는것이라면 그것을 내세워 주시고 키워 주시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고귀한 은정이 깃들어있는것이다.
7.4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에 있은 일이다. 재일동포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밝히신 조국통일3대원칙이 구현된 7.4북남공동성명을 받아 안자 기쁨과 환희로 하여 들끓었고 총련중앙상임위원회는 북남공동성명을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는 성명과 담화를 발표하였다. 총련뿐아니라 《민단》동포들속에서도 우리의 조국통일방침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울려 나오게 되고 분렬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서 총련산하 동포들과 함께 손 잡고 나갈 의향이 날로 높아 져 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받으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밝히신 조국통일3대원칙과 7.4북남공동성명을 지지실현하기 위하여 총련이 《민단》동포들과 공동보조를 맞춰 나가려고 하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입니다, 조상대대로 한 혈통을 이어 온 겨레가 둘로 갈라 져 서로 반목하고 질시해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타향에서 고향사람들을 만나도 친척과 같다고 하는데 어찌 이역땅에서 한 겨레가 장벽을 쌓고 살수 있겠습니까, 국토분렬로 겪는 민족의 이 불행을 너무도 뼈 저리게 느끼고 더는 참을수 없다고 생각해 왔기때문에 이번에 북남공동성명이 나오자 총련과 《민단》동포들은 서로 힘을 합쳐 통일성전에 나서려고 한것입니다, 이것은 귀중한것입니다, 민족적단합을 이룩해야 합니다, 혈육의 정은 끊어 질수 없는 법입니다, 민족의 뉴대는 어차피 이어 지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총련에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위업수행에서 민족적단합운동을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는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혈육의 정은 끊어 질수 없고 이어 지기 마련이라는 경애하는 령도자의 이 절절한 말씀, 그것은 정녕 오늘도 해외동포들을 통일애국의 한길로 이끌어 주는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으로 되고 있다.
어느 해인가 총련의 한 일군을 만나신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총련사업과 관련한 말씀을 하시다가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화제에 올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비전향장기수문제를 생각하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희미해 지는것이 아니라 더 강렬해 진다고, 그래서 34년동안이나 남조선의 철창속에서 고생한 리인모동지를 데려 왔다고, 이렇게 하는것이 전사들에 대한 령도자의 의리이고 의무라고,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반드시 데려 와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서거 100일이 되는 날에도 일군들에게 조국을 통일하지 못하다보니 남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 오기 위한 사업을 계속 벌려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비전향장기수들, 그들은 흘러 가는 분렬사와 더불어 묻혀 버린 이름 없는 전사들이였다. 낳은 부모도 사랑하는 처자들도 그들을 저 세상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가장 뜨거운 마음을 지니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잠못 이루시며 그들의 신상을 걱정하시였고 기어이 데려 올 결심을 굳히시였다. 사랑과 의리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령도자께서는 비전향장기수송환문제와 관련하여 수십차례의 말씀을 주시면서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구원대책 조선위원회》도 내오고 이 문제가 20세기 최대의 인권문제, 인도주의적문제로 되도록 하시면서 그들을 송환해 오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 주시였다. 그리하여 신념과 의지의 강자 비전향장기수들이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 오는 력사의 기적이 창조되게 되였다. 정녕 그 무엇으로서도 다 표현할수 없는것이 비전향장기수송환을 위해 기울이신 경애하는 령도자의 로고와 심혈의 크기이며 천만마디의 말과 글로 엮어도 다 담을수 없는것이 전사들에 대한 우리 령도자의 위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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