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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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태박사의 살림집 응접실은 별로 넓지 않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개 병원의 자기 방에서 만나군 하기때문에 살림집 응접실을 애당초 좁은 방에 꾸렸던것이다.

그날 아침 그 응접실에 맨 처음 들어가 앉은것은 한영태박사였다. 9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약 10분후에 진호와 그의 어머니 주씨가 나타났다. 그들모자는 한영태박사와 수인사를 나누고 푹신푹신한 쏘파에 나란히 앉았다. 또 한사람 주택진검사가 들어 온것은 9시 30분이 거의다 됐을 때였다. 그는 누이와 조카가 미리 와있는것을 보고 조금 놀라면서 한박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긴겁니까?》

《글쎄 나두 모르겠네.》

한익훈로인이 어제 밤 전화로 진호모자와 주검사를 래일 아침 9시 30분까지 와달라고 불렀던것이다. 아들 한박사에게는 아무개 아무개가 올거니까 자네도 응접실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했었다. 무슨 일때문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것이 없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얼마전부터 무슨 원고인가 쓰는것을 한영태박사도 눈치채고 있었는데 며칠전부터 딸 선아가 저녁마다 시집에는 가지 않고 할아버지방에 들어박혀 그 원고를 정서한다고 했다. 딸에게 그게 무슨 원고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정서가 끝날 때까지 할아버지가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대답이였다.

오늘 아침에 만난 딸의 말에 의하면 정서작업은 어제 밤에 끝났는데 할아버지가 지금 그것을 읽어보는중이라고 했다. 원고정서가 끝나는것과 때를 같이 해서 응접실에 진호네 모자와 주검사 그리고 자기까지 모이게 한것으로 보아 그 원고를 보여주려고 하는것이라고 한박사는 짐작했다.

《두 집 식구들을 모아놓고 무슨 합동가족회의라두 하자는것이 아닙니까?》

직업상 습관으로 합동수사니, 합동회의니 하는 말을 자주 쓰는 주택진검사는 합동가족회의소리를 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의 말대로 합동가족회의라면 한익훈로인과 선아, 그리고 한박사의 부인까지 세사람이 더 참석해야 되는데 응접실에 빈 의자는 하나밖에 없었다.

한박사부인이 다반에 인삼차잔 다섯개를 담아가지고 들어왔다. 커피가 질색인 한익훈로인이 평소 즐겨마시는것이 인삼차였다. 한박사부인은 시아버지가 청한 손님인줄 알고 일부러 인삼차를 끓여가지고 온것이였다. 빈 안락의자앞의 탁자에도 차잔 하나를 놓고 한박사부인이 나가자마자 한익훈로인이 지팽이를 짚고 응접실에 들어섰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진호는 그를 부축해서 안락의자에 앉혔다.

《다들 왔구먼. 일요일인데 편히 쉬지 못하게 불러서 안됐네. 응, 차를 갖다놨군. 어서들 식기 전에 마시게.》

한박사와 주검사가 먼저 차잔을 들었다.

한익훈로인은 진호와 주씨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어서 들라고 권했다.

진호는 머리를 약간 숙여 사의를 표하고 주씨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갑자기 몸이 퍽 안 좋아지신것 같습니다.》

《나말인가? 그만하면 너무 오래 살았는데 건강이 좀 나빠진들 무슨 걱정이겠나. 항규 할머니는 감기를 좀 앓았다면서?》

《예,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

한익훈로인의 눈길이 주택진검사에게 돌아갔다.

《자네는 어째 좀 수척해진 얼굴이군. 업무가 바빠서 그러나? 아니면 술을 과음해서인가?》

《예, 공직자의 생활이야 늘 그렇구 그런거지요. 술두 이래저래 기회가 생겨 자주 마시게 됩니다.》

《남자가 술을 전혀 못하는것두 병신이지만 지내 과음하는것두 몸에 해로운거네. 정신건강에두 안 좋구.》

《명심하겠습니다.》

한익훈로인은 진호에게 한마디 할듯 하다가 아들을 쳐다보았다.

《내 방에 좀 가보게. 선아가 무얼 꾸물거리구 있는지 모르겠군.》

《불러오랍니까?》

한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그래, 아니 그냥두게. 공연히 재촉할것 없네. 두어장 정서를 고쳐 하랬으니까. 끝내면 가지구 오겠지.》

무엇을 가져오는겁니까, 하고 한박사가 눈빛으로 물었지만 한익훈로인은 진호에게 얼굴을 돌렸다.

《요새는 공부만 한다지?》

한익훈로인의 어조에는 따뜻한 애정이 어려있었다.

《예.》

한익훈로인은 차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그동안 원고를 하나 썼네. 이제 선아가 가지구 올거네.》

한로인은 기침이 나와서 잠간 이야기를 중단했다.

《어디 월간지에 보낼 생각인데 그건 차차 할 일이구. 잡지에 발표해서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자네들이 먼저 보았으면 해서 이렇게 와달라구 부른거네.》

한익훈로인은 또 기침이 나와서 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 원고가 어떤 의미에서는 자네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글로 쓴거네. 월간지에서 그것을 실어주지 않는다 해두 자네들이라두 읽어주면…》

선아가 들어왔다.

《다 됐니?》

한익훈이 선아에게 물었다.

《예.》

선아가 두툼한 원고를 한로인에게 주었다.

《이거 철하지 않았으니까 진호부터 먼저 여라문장 보구 다음 차례루 어머니한테 넘기게. 그렇게 돌려봐야 시간두 절약될거네. 아니 진호 어머니가 선참으루 보는게 좋겠네.》

진호가 냉큼 일어나 한로인에게서 원고를 받아가지고 어머니에게 주었다.

주씨는 원고를 받으면서 첫장에 적힌 제목부터 보았다. 《늙은 사학도의 마지막강의》, 이상한 제목이였다.

주씨는 의아쩍은 시선으로 한익훈로인을 바라보았다. 그 원고를 왜 자기들에게 보라는것인지, 그것도 자기부터 먼저 보라고 찍어 말하는것인지, 그 까닭을 알수 없었다. 그 어떤 불길한 사실을 알려주는 원고 같은 생각이 들어 저으기 겁이 나기도 했다.

한익훈로인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서글픈 빛이 어려있었다. 마음속의 어떤 회한이 있어 괴로와하는것 같기도 했다.

주씨는 제목이 적힌 첫장을 번지고 두번째 장에 눈길을 가져 갔다. 제목보다 글씨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걸 어쩌나, 선아가 얼른 다가오더니 돋보기안경을 주었다. 돋보기없이는 신문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것을 알고 미리 준비한것인가, 며느리의 그 다심한 마음이 고마왔다. 한익훈로인이 쓰던 안경 같았다. 도수가 좀 높아서 글자가 퍽 크게 보였다.

《그럼 읽어들 보게. 나는 방에 가서 좀 쉬겠네.》

힘겨웁게 몸을 일으키는 한로인을 선아가 부축해서 함께 방에서 나갔다.

아들 진호와 동생 주검사 그리고 한영태박사가 어서 읽고 자기들에게 넘겨달라고 재촉하는 눈빛으로 주씨를 돌아보았다.

주씨는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이 졸고의 필자는 한때 교단에서 중학생들에게 력사를 가르친 퇴직교사입니다.

그것이 아주 먼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교단에서 강의하던 습성이 있는데다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꼭 알려주고싶은 사항이기도 해서 강의라는 제목을 붙여 이 졸고를 썼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졸고가 어느 월간지에 게재된다면 일반독자들과 더불어 사계의 권위자며 고명한 인사들도 보아주는 영광을 지니게 될줄 압니다.

그럴 경우 무명의 퇴직교사가 언감생심 무엇을 강의한다고 《오만성》의 감투를 씌우고 탓하는분들도 없지 않으리라 짐작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는것이라면 그것이 퇴직교사의 글이건 애젊은 초학도의 말이건 오만성의 발현이라고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론에 들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이 늙은 사학도가 책으로 력사를 공부하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노릇을 그만둔 후에도 공부를 아주 중단해버린것은 아닙니다. 책공부도 좀 했지만 많은 경우 몸으로, 눈과 마음으로 이 땅의 현대사를 공부했던것이고, 이 졸고를 쓰게 된것도 그렇게 공부하는 과정에 알게 된 《한국》현대사의 리면에 숨어있는 치부를 고발하고싶은 충동에 연유된것입니다.

《한국》현대사의 시발점을 1945년 8월 15일로 보는것이 일반적견해인줄로 압니다.

그러면 그 시발점이 어떠한 력사적상황을 가져다준것입니까? 국토의 분단과 민족의 분렬, 바로 그것입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단일민족으로 한강토에서 살아온 우리 겨레가 일제의 군사적강점에서 벗어나자마자 북위 38°선을 사이에 두고 분렬된 민족이 되였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비극입니까.

그러면 왜 하필 38°선에 분단선이 그어졌습니까? 미국방성의 두 대령이(늙은이의 기억력이 쇠진해진탓에 그네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여기에 명기하지 못하는 점 량해를 바랍니다.) 일본이 패망한 후 미군의 점령지역을 어디까지로 할것이냐, 그 계선을 그어보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한국》지도에 자를 옆으로 대고 북위 38°선을 따라 색연필로 쭈욱 그어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비밀》입니다.

그후 이 땅에서 일본군대와의 전투 한번 하지 않은 미군이 38°선 이남지역을 점령했고, 점령군사령관이 포고문을 발포하고 군정통치를 실시했던것입니다. 광복만세를 부르며 춤 추던 사람들이 MP들의 찦차에 치이고 카빈총탄에 피를 흘리는 피압박 백성신세가 되였다 그것입니다.

응당 우리 민족의 소유로 돼야 할 일본인들의 재산들이 《적산》이라고 미군정청에서 뺏아가지고서는 그것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새 시대의 민족반역자로 등장한 친미파족속들에게 《적산불하》라 해서 아주 헐값으로 팔아주었다는것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경향각지에 조직된 자생적인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쌀을 달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달라고 시위하는 민중에게 총탄을 퍼부은것도 양키 점령군이였습니다. 미군정청에 의해 조직되고 무장한 《국군》과 경찰들이 통일조국건설을 위해 궐기한 제주도를 온통 죽음의 섬으로 만든 그 비극도 《한국》현대사의 한 치부였습니다. 그러한 사례들을 렬거하려면 끝이 없을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였습니다.

8.15후에 겪은 최대비극의 하나는 50년대의 《한국》전쟁이였습니다.

누가 어떤 궤변과 허위《증거》로 력사를 위조하려 해도 《한국》전쟁이 미국이 야기시킨 전쟁이였다는 사실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더 뚜렷한 력사적사실로 증명되고있다는것은 독자제위도 알고있을겁니다. 때문에 이 졸고에서 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지 않으렵니다.

필자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저 하는것은 그 전쟁에서 미군이 무슨 짓을 했고 우리 겨레가 무슨 일을 당했던가 하는 문제입니다.

군사전략상 시각에서 고찰하고 론증하는것은 필자의 전문이 아닙니다. 다만 필자가 두고두고 잊을수 없는 비극 한 토막을 소개하고저 합니다.

전쟁의 포성이 한창 진감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강원도에서 교직에 종사한 필자와 막역한 동료교사 한분이 있었습니다. 물리과목을 가르친 아주 선량하고 유능한 교사였습니다. 그분의 가족들이 아직 생존해있고, 그들의 사전동의없이 이 졸고를 쓰기때문에 그 동료의 성함을 여기에 밝히지 않습니다. 편의상 ㅈ선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ㅈ선생과 내가 한날한시에 군《로무대》에 끌려나갔는데, 이제 구체적인 상황설명을 하겠지만 ㅈ선생이 《로무대》에서 그만 사망했습니다.

 

주씨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ㅈ선생이란 틀림없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한익훈로인이 40여년전의 그 비극에 대해서 왜 이제 와서 새삼스레 상기시키는지 그 저의는 얼른 알수 없었다.

한동안 눈을 감고있다가 다시 원고를 보았다.

 

당시 《로무대》를 흔히 《로무사단》이라고 불렀는데 사단산하에 여러개 대대가 있었습니다.

ㅈ선생과 필자는 소속대대가 달라서 언제나 딴 장소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자주 만나지도 못했구요. 그때 《로무대원》들이 한 일이란 대개 일선고지에 탄약상자를 날라다주거나 파괴된 다리를 보수하는 작업이였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발생한것은 ××계선전투가 한창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ㅈ선생네 대대로무자들에게 일선고지에 있는 미군부대에 탄약상자들을 날라다주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명령이니까 복종할수밖에요, 처음 해보는 일도 아니였습니다. 모두들 무거운 탄약상자를 지고 재밤중에 험한 비탈길을 톺아 올라갔습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여서 고생꽤나 했습니다. 엎어지고 넘어지며 겨우겨우 고지에 올라가보니 동녘이 희붐하게 밝아지기 시작하는데 아 글쎄 미군병정들이 하나도 없지 않겠습니까. 《로무대원》들이 당도하기전에 진지를 내놓고 슬쩍 뒤로 퇴각한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자들의 퇴각로와 《로무대원》들이 기여올라간 길이 달라서 어긋난셈이였습니다.

《로무대원》들은 맥이 풀리고 어처구니 없는 심정이기도 해서 미군들이 먹다 버린 식품찌꺼기며 더러운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있는 고지에서 한동안 쉬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환히 밝아오고 배도 고프고 또 북의 군대가 고지에 나타나면 야단이다 하는 겁도 나는 바람에 《로무대원》들은 고지에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막히는 일은 그들이 고지에서 절반쯤 내려왔을 때 벌어졌습니다. 그들에게 총알이 비발치듯 날아왔다 그겁니다. 순식간에 다섯사람이나 즉사하고 10여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골짜기길을 따라 내려가는 그들에게 옆의 릉선에서 두정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으니 어디 숨거나 도망칠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미군병정들이 쏘는 기관총이였습니다. 그자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습니다. 《로무대원》들중 담이 큰 사람이 벌떡 일어나 그자들에게 《우리 편이다! <로무대>다!》 하고 서투른 영어로 웨쳤지만 그 사람도 말끝을 맺기 전에 가슴을 부여안으며 쓰러졌습니다.

천하에 이런 변이 또 어데 있겠습니까. 앞에서 말한 그 ㅈ선생도 거기에서 부상을 당했던겁니다.

부상자들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읍거리의 민간인병원에 실려갔습니다. 거기에 가서 들으니 미군병정들이 《로무대원》들을 변장한 북의 인민군대라 생각하고 총을 쏘았다는겁니다. 삼척동자도 믿기 어려운 소리인데, 백보 양보해서 그자들이 잘못 보고 잘못 사격한것이라면 응당 사죄하고 응분의 보상도 해야 될것인데 그자들이 또 총을 빼들고 날뛰였습니다.

부상자 한사람이 울화를 참다못해 양키놈새끼들때문에 이 꼴이 됐다고 소리지르며 떠들어대자 여느 부상자들까지 들썩거리게 됐는데 그날 밤에 미군 MP 한 녀석과 《국군》헌병 두 녀석이 나타나 그 부상자를 끌고갔습니다. 그날 밤 《국군》 소령계급장을 부착한 검찰관이라는 자가 나타나 낮의 그놈은 《동맹군 미군》을 근거없이 비난한 죄로 전시법에 준해 총살했다, 너희들에게 기관총사격을 한것은 북《한》 《공산군》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또 어느 놈이든지 미군을 비난하는 개소리 지껄이면 전시법에 따라 총살할거다 하고 공갈을 때렸다지 않습니까.

ㅈ선생이 숨을 거둔것이 바로 그날 밤이였습니다. 중상을 입은 ㅈ선생은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운명직전에 옆침대에 누워있는 홍씨의 손을 잡고 가족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주씨는 눈물이 쏟아져나와 더 읽을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구나, 원통했다.

《천벌받을 놈들! 벼락맞아 뒈질 놈들!》

눈에선 계속 비분의 눈물이 쏟아져나오고 입에선 저주가 터져나갔다.

《어머니!》

진호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가만히 불렀다. 진호의 저쪽 자리에서 원고의 앞부분을 읽고있던 주택진검사와 한영태박사가 놀란 눈으로 주씨를 돌아보았다.

《수십년세월 속아왔구나. 세상에 이런 법두 있는가.》

주씨는 턱을 후들후들 떨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진호가 겁먹은 소리로 말했다.

《옛다 읽어보아라.》

주씨는 그 끔찍한 불행이 서술된 부분의 원고를 아들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한 다음에야 원고의 다음 부분을 읽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가 ㅈ선생과 같은 날에 《로무대》에 끌려나가긴 했지만 소속대대가 달랐기때문에 ㅈ선생네가 당한 그 참변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필자네 대대는 ㅈ선생네 대대에서 약 100리쯤 떨어진 곳에서 파괴된 교량복구공사를 하고있었습니다. ㅈ선생네가 그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도 나흘후에야 들었습니다. 그때 필자의 뇌리에 맨 처음 떠오른것이 ㅈ선생생각이였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상사에게 사정사정해서 허락을 받자마자 뛰여갔습니다. 아니나다를가 ㅈ선생은 이미 사망한 뒤였고 ㅈ선생의 옆침대에 누워있던 홍씨가 그 참변의 《자초지종》을 필자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홍씨가 나에게 말해준 그 《자초지종》이란것이 군검찰관의 엄포에 겁을 먹고 북의 인민군대총에 맞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한가지, 홍씨나름의 《리해득실》에 대한 타산도 있어서 진실을 이야기하는것을 방해했답니다. 그 《리해득실》에 대한 타산이란 만약 ㅈ선생이 미군의 기관총에 맞아 사망한것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그것이 ㅈ선생의 가족들에게도 알려질것이 뻔하다, 그러면 그 가족들이 대미감정이 악화될게고 그래서 그네들이 원쑤를 갚겠다고 나서기라도 하면 미군 MP와 그 소령검찰관 같은 자들이 욱실거리는 이 세상이 그들을 징벌할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복수를 제대로 할수 없을터인즉 그럴바에야 차라리 ㅈ선생이 《공산군》의 총에 맞아 죽은것으로 해두면 그의 유가족들이 《반공》을 제1국시로 삼는 《한국》에서 살기가 편할것이다 하고 생각했다는 그것입니다.

하지만 홍씨의 그 거짓말이 또 하나의 비극을 산생시키리라는것을 홍씨는 물론이고 필자도 몰랐습니다.

거기에는 필자의 실수도 작용했습니다. 필자의 실수라는것은 홍씨의 말을 믿고 ㅈ선생의 부인에게 ㅈ선생이 북의 인민군대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알려주어 결국은 그 부인을 속인것입니다.

그것으로 그친것도 아닙니다. 54년 봄 어느 날, 다년간 부모슬하를 떠나 외지에서 살던 ㅈ선생의 딸이 불의에 필자를 찾아와 자기 부친이 《공산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것이 사실인가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며칠후 그에게서 편지 한통이 왔습니다. 자기가 좌익혁명가의 안해가 되였는데 이제 곧 해산하게 된다, 그래서 친정어머니를 찾아가던 길에 선생님을 만나 아버지소식을 들었으니 내가 무슨 체면으로 어머니에게 가겠느냐, 나는 아버지도 사랑하지만 남편도 사랑한다, 이것이 내 죄냐, 내가 이제 누구를 믿고 살거냐, 아버지의 유혼을 욕되게 하면서 남편을 두둔할수도 없고 남편을 배신하고 아버지의 원쑤를 갚겠다고 할수도 없는 일이 아니냐, 유일한 길은 나를 이러한 비극적운명속에 몰아넣은 이 세상을 원망하며 죽는거라고 생각한다, 대개 이러한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이를테면 《유서》였는데 필자는 그것이 단순한 《유서》에 그치지 않고 《한국》현대사를 욕되게 한 양키들의 죄행을 단죄하는 일종의 고발장으로 된다고 생각되여 문갑속에 깊이 간수해두었습니다.

그런데 홍씨의 때늦은 고백에 의해서 《한국》현대사의 비극적상황속에 그 어떤 허위와 기만이 내포되여있는가 하는 사실까지 밝혀진셈입니다.

자, 그럼 다시 옛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유서》를 받은지 10년이나 지난 후에 그동안 감옥살이를 한 ㅈ선생의 딸의 남편이 필자를 찾아왔습니다. 사실은 ㅈ선생의 딸이 그 《유서》를 필자에게 써보낸 후 소양강에 몸을 던지려다가 한 녀인의 구원을 받아 죽지 않았는데 그런줄 모르고 그 《유서》를 남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그 남편이 얼마나 비통한 심정이 되였겠는가 하는 것은 독자 여러분들도 십분 짐작할수 있을것입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통일애국투사인 그 남편이 안해를 잃은 슬픔에서 채 벗어나기 전에 또다시 체포되여 20년징역형을 언도받았는데, 그 모든 불행과 고통이 과연 무엇에서 비롯된것입니까?

필자는 최근에 ㅈ선생의 죽음에 대해서 나에게 거짓말을 한 그 홍씨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그가 위증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던터라 40여년만의 그 만남이 무척 반가왔습니다. 우리는 조용한 식당에 들어가 마주 앉았습니다. 나도 그동안 많이 늙었지만 홍씨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이 확연히 알리는 얼굴이였습니다.

생의 마감이 다가올수록 추억이 많아지고 지난날에 저지른 이런저런 잘못을 뉘우치고 속죄하고싶어 하는것이 무릇 인간들의 상정입니다. 홍씨는 소주잔을 천천히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ㅈ선생의 유가족들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내 대답을 유심히 듣던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면서 자기가 너무너무 큰 죄를 지었다고, 죽기 전에 속죄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마침 한선생을 만난것이라고 하면서 40여년전에 자기가 ㅈ선생의 죽음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노라고 실토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자기가 그따위 너절한 위증자노릇을 한 리유에 대해서도 변명하더군요.

나는 그때 홍씨의 낯짝에 침이라도 뱉아주고싶었지만 동시에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홍씨를 그러한 위증자로 만든것이 다름아닌 미국이라는 사실을, 그도 미국의 대《한》정책이 빚어낸 한개 불쌍한 소인배라는 사실을 깨닫고보니 자연 불쌍한 생각이 들었던것입니다.

실상 미국의 대《한》정책탓에, 그자들이 도발한 전쟁탓에 비겁한 위증자로 된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엄중한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죄없는 사자(死者)로 됐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제 총알과 폭탄, 포탄에 목숨을 잃은 우리 겨레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다리밑에서 쉬고있는 피난민들에게 기관총란사를 가한것도 미군이였고 정거장에 폭탄을 떨구어 무리죽음을 낸것도 미군이였습니다. 그 집단적살륙만행을 《공산군》으로 《오인》해서 한짓이라는 그자들의 변명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군 고위장성들이 소위 《작전지휘권발동》으로 출동시킨 《한국》군경들에 의해서 수없이 많은, 정녕 경악을 금할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남《한》사람들이 살륙당했다는 사실도 세인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지리산의 여러 골짜기들과 태백산맥의 높고 낮은 산기슭을 통일조국을 열망하는 애국자들의 피로 물들게 한 그 천추에 용서 못할 만행에 대해서도 미군은 그러한 작전을 조직지휘한 범죄자로서 준엄한 력사의 심판을 응당 받아야 할것입니다.

또한 미국제 보총과 기관총, 박격포가 무고한 남《한》 백성들을 무리로 학살한 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진 거창량민학살사건뿐이 아니였습니다.

근년에 흘러간 력사의 허위속에 묻혀버린 진실을 찾아내 기 위한 작업에 종사하는분들이 밝혀낸데 의하면 지난 전쟁시기 경상남도 산청군과 함양군에서도 무려 800여명의 적수공권의 백성들을 살해했고 전라남도 함평군 라선면 한개 고장에서만도 1,000여명의 죄없는 량민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닐것입니다. 이 땅에 민족적량심을 귀중히 여기고 외세의 침해를 만천하에 고발하는분들이 살아있는 한 앞으로 더 많은 사례들 즉 미군병정들이 직접 방아쇠를 당기기도 하고 저들의 고용병력을 투입해서 우리 겨레들을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살해한 사건들이 계속 드러나고야 말것이라고 필자는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귀축같은 살인만행은 《휴전》과 함께 끝난것도 아니였습니다. 동두천과 의정부, 파주와 오산을 위시하여 미군이 주둔한 지역들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 녀인들과 근로자들이, 나무군 아이들과 농군들이 엠완과 카빈에 맞아죽었고 찦차에 치이고 장갑차에 깔려죽었습니까. 그야말로 남《한》땅이 온통 미군의 살인만행의 란무장으로 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행정협정》이라는 도깨비문서에 묶인 《한국》의 《사법부》는 미군살인귀들을 법정에 끌어다 세울 대신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무슨 공무집행방해니, 《한미친선》 훼손이니 하는 올가미를 씌우고있는 상황입니다.

이 땅에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이 있기는 해도 이른바 력대 《정권》교체가 미국의 백악관과 국무성의 지휘봉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점도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본거지로 자처하는 미국이 이 땅에 파견한 미8군의 작전지휘권 발동으로 《국군》을 내몰아 4.19광장과 3.24-6.3의 거리, 그리고 80년 5월의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사실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필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그러한 악행을 서슴없이 감행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잠간 고찰해보고저 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1776년에 독립국가로 발족하기 전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당시 13개 주의 판도를 가지고 독립한 미국이 오늘은 50개 주를 가진 광대한 나라로 되였는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200년 좀 남짓한 기간에 그처럼 넓은 령토를 가지게 된것이 주로 인디안원주민들에 대한 추방과 살륙, 략탈의 결과였다는 점을 미리 지적하는바입니다. 《인디안들은 떠나야 한다.》, 《인디안들은 죽어야 한다.》, 《죽은 인디안만이 좋다.》, 그것이 령토확장열에 들뜬 미국위정자들이 하달한 명령이였고 그 명령실시를 위해 출동한 백인기마대가 남부와 서부로 진격하면서 부지기수의 원주민들을 기병총과 장검으로 사살하면서 돈벌이까지 했습니다.

몇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마사츄세츠지방의 백인통치자들은 자기 휘하의 병사들이 인디안원주민을 사살하고 그 머리가죽을 벗겨오면 100딸라를 상금으로 지불했습니다. 펜실바니아주에서도 비슷한 추행이 벌어졌는바 그곳에서는 12살이상의 인디안남자 머리가죽 하나에 130딸라, 녀자의 머리가죽 하나에는 50딸라씩 주었다고 합니다. 더욱 가공할 일은 윌리암 헨리 하리손장군 휘하의 장병들이 자행한 만행인바, 그들은 제 손으로 죽인 인디안의 살가죽으로 면도칼을 가는 혁띠를 만들어 저들의 《전공》을 자랑하는 《기념품》으로 나누어가졌다는겁니다.

오늘 미국의 판도안에 들어있는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 아리조나주, 네바다주, 유타주, 뉴 메히꼬주, 콜로라도주, 그리고 와이오밍주의 일부가 린접국가인 메히꼬에 대한 침략전쟁의 《전리품》으로 획득한 령토라는 사실도 력사는 생생히 기억하고있습니다.

독립직후에 발표된 미국정부의 정령에 《인디안과의 관계에서는 항상 성실해야 하며 그들의 동의없이 그들의 재산, 토지를 취득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그 조항의 요구가 준수된적이 없었습니다.

력사적기록이 후세사람들에게 보여준것은 양키라는 비칭으로 불리우면서 종주국 영국의 멸시를 받던 미국의 건국《공신》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인디안들을 야수적으로 략탈하고 살륙한 사례들뿐입니다.

매수행위는 또 얼마나 파렴치했겠습니까, 피터 미뉴프라는 양키가 24딸라의 가격표가 붙은 장난감방울을 주고 맨해턴섬을 샀다는 그 사실은 그네들의 구매행위의 강도적파렴치성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제반 사실이 인간상식이하의 이야기라 해서 독자제위들속에 필자의 말을 믿지 않는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분들에게 윌리암 제트 포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인이 쓴 《아메리카정치사 개요》를 읽어볼것을 권고합니다. 상, 하 두권으로 된 책입니다. 《한국》에서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듯 한데 일어번역판이 있어서 필자는 그것을 뒤적거리면서 몇가지 사례들을 뽑아 여기에 인용했습니다. 미국인자신이 있지도 않았던 제 나라의 치부를 조작해서 세상에 공개했을리가 없다는 생각에 그 내용을 믿고 일부 인용한것입니다.

누구든지 그 책을 보면 필자가 인용한 사례들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것을 알게 되고 이 늙은 사학도에 못지 않은 의분을 느낄줄로 압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개 국가로서 발족한 이후 략탈과 살륙을 자기의 국가적생리로 하여 광대해지고 부유해졌다는 사실을, 미국이야말로 흡혈귀, 강도, 파렴치한, 악마의 나라이며 악의 본산지라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그 나라가 이 땅에 기여들어 무슨 짓을 한것입니까? 8.15후에 그리고 전시와 전후에 총으로 사람을 쏘아죽이고 폭탄으로 마을을 불태워버린것이 그자들이 저지른 죄행의 전부가 결코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거리에 나가보십시오. 그러면 양키문화의 지독한 오염상을 알려주는 무수한 영어간판들과 포스터들을 보게 될것입니다.

《사법계》에 가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백성을 장갑차로 깔아죽인 미군병사들이 백주에 대로를 활보하고있는데도 《한미행정협정》때문에 범인을 사법처리하지 못하고있는 무력한 《법관》들을 보게 될것입니다.

《행정부》 각 부 청사에서는 대양건너 백악관 《어르신네》들이 재채기를 하면 감기를 앓는 관리들의 몰골들을 수없이 보게 될것입니다.

군부의 실상은 또 어떻습니까. 2성장군이니, 3성장군이니 하는 고위장성들이 온통 《웨스트 포인트》출신들이고 작전지휘교범이며 병력편제도 온통 미국식인데다가 작전지휘권이 주《한》미8군 사령관에게 속한 군이라 대대병력 하나 움직이자 해도 8군사의 《사전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재계는 재계대로 뉴욕주권시장시세가 오르내릴 때마다 몸살이를 하고있습니다.

자, 그러니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이 땅의 실제적인 주인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땅이 양키들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부인할수 없는거 아닙니까.

이미 8.15직후부터 생겨난 이 현실이 이 땅에 예속적인 정치문화와 경제문화, 군사문화가 생겨나게 했고, 사람들의 머리속에 공미사대주의의식이 자라나게 했고, 미국의 힘과 의사에 거역해보아야 소용없다는 패배의식이 몸에 배여들게 했고, 량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자의반 타의반의 위선적인 행위를 하는 사례들까지 생겨나게 한것입니다. 홍씨의 경우 앞에서 이야기한 그 ㅈ선생의 죽음에 관해 허위증언을 한것도 바로 그러한 자의반 타의반에서 한것이였습니다. 얄팍한 리해득실에 대한 타산이 자의였다면 미국의 식민지인 《한국》적인 상황이 그러한 허위증언을 하게 강요한 타의였다 그것입니다.

이 늙은 사학도의 나이도 어언 90고개를 바라보게 되니 지난날에 저지른 잘못이 연줄연줄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에 대한 반성을 하려는 생각만으로 이 졸고를 쓰려고 작정한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도 서두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교단에서 떠난지 퍽 오래되기는 했지만 력사교사출신이라 《한국》현대사의 치부에 대해서 고발함과 동시에 이왕 붓을 든김에 사학도의 시각에서 본 력사의 진실과 력사의 의지에 대해서 몇마디 더 이야기하고저 합니다.

내가 말하고저 하는 력사의 진실이란 무엇이냐 하면, 흡혈귀이며 강도이며 파렴치한이며 악마의 나라인 미국의 힘이 결코 절대적인것이 아니라는것입니다. 진실로 강대하고 위력한 힘은 정의의 편에 있는것이고 그 정의는 반드시 악을 타승한다는것이 바로 력사의 의지입니다.

이것은 결코 막연한 추상론이 아닙니다. 비근한 사례로 지난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언필칭 《휴전》협정이라 하지만 압록강까지 밀고올라가 《한국》땅 전역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전략적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백전로장이라고 하던 띤소장을 비롯한 수많은 장병들이 살상포로되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흰기를 들었던것입니다. 전에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에 의하면 미국이 건국이래 20세기 초엽까지 치른 전쟁이 무려 114회나 되고 매번 승리해서 령토를 본래의 10배이상으로 확장하고 재부를 불쿠었답니다. 그러나 금세기 50년대의 《한국》전쟁에서 패배했으니 이것은 세론이 평한대로 《초대국》 미국이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것을 뜻하는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미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절대적인 강자가 아니라는것을 증명한 사례를 또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독자제위들도 60년대 세계정치기상도에 비상을 걸었던 《푸에블로》호 무장간첩선 나포사건을 기억하고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북령해에서 간첩임무수행중이던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공화국해군에 나포됐을 때 미국이 그 얼마나 노발대발해서 날뛰였습니까.

백악관에서 련일 작전회의가 열렸고, 미국의 초대형항공모함을 비롯한 각종 전투함선들이 동해로 쓸어들었고, 남《한》과 일본에 주둔한 미지상군부대들에 출동대기령이 내렸고, 또 오산과 일본 오끼나와기지의 최신예항공기들까지 림전태세를 갖추게 하고 으르렁거렸지만 결국 공화국에 항복사죄문을 써내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후 《EC-121》간첩비행기가 북의 명중탄에 격추되였을 때도 초대국 미국은 공화국에 사죄하는 패자로 되고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우리모두 한결같이 민족적긍지를 가질만 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를 포함한 적지 않은 이남사람들이 당시까지만 해도 그 력사적사변들의 참뜻을 리해하지 못한탓에 민족적긍지를 느끼지 못하고 의연 약소민족의 수난이니, 설음이니 하고 한숨이나 쉬면서 《불가항력》의 힘앞에서 자의반 타의반의 언행을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나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그 력사의 진실, 력사의 의지를 보여준 공화국의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조차 잘 모르고있었던겁니다.

무릇 과오와 실수는 많은 경우 무식과 몰지각에 연유되는 법입니다.

내가 전에 들은 이야기를 하나 여기에 소개하고저 합니다. 《사랑의 다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연인즉 다음과 같습니다. 북의 황해남도 은천군의 어느 한 깊은 산골마을에 자그마한 시내를 건너 학교에 다니는 나어린 학생 몇명이 있었답니다. 산촌에 흔히 있는, 수심도 깊지 않은 시내여서 징검다리를 딛고 다니는것이 조금도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지지도의 길에 그곳을 지나가시던 김정일령도자님께서 어린 학생들이 시내를 건너가는것을 보시고 아이들이 징검다리를 헛디디여 발을 적시면 야단이라고 사뭇 걱정하시였다지 않습니까. 한 나라의 령도자님께서 산간벽촌의 몇명 아이들이 시내를 건너가는것에 대해서까 지 걱정해주시는것만 해도 고맙기가 이를데 없는데 글쎄 며칠후에는 령도자님께서 보내주신 건설자재를 실은 자동차들이 그 시내가에 오더니 콩크리트다리를 번듯하게 건설해놓았다는겁니다. 이북동포들은 그 다리를 령도자님의 사랑이 어린 다리라 해서 《사랑의 다리》라고 이름지어 부른다고 합니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하나의 물방울에도 우주가 비낀다지 않습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김정일령도자님의 비범한 위인상과 정치철학, 정치방식을 알게 되였습니다. 산골마을의 나어린 학생 몇명을 위해서 국가적투자로 콩크리트다리를 놓아주신 그 이야기에서 령도자님의 뜨거운 애민사상을 알수 있었고 그이의 정치야말로 전적으로 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입니다.

그러한 령도자를 백성들이 어찌 따르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령도자님께서는 하나에서 열까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시고 백성들은 령도자님을 충성으로 따르니 공화국의 힘이 얼마나 막강하겠습니까!

바로 그 힘이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놓은것이 아니겠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공화국의 그 힘이 미국을 굴복시켰다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입니다.

이 진의를 옳바로 리해한다면 우리모두가 소위 미국의 《강대성》앞에서 주눅이 들어버릴것이 아니라 이마를 번쩍 높이 들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약소민족이 아니며 때문에 약자의 저자세를 보여서는 안됩니다. 약자의 저자세는 악당들을 더 거만해지게 하는 자극제로 되며 다음번의 굴욕과 또 그 다음번의 략탈과 억압을 당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합니다.

미국의 힘은 결코 절대적인것도, 영원한것도 아니다! 우리는 억압과 굴욕, 략탈만을 당하도록 운명 지어진 무맥한 약소민족이 아니다! 미국을 패배시킨 공화국의 위력을 보라,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인민의 힘이야말로 정의의 힘이며 그 정의의 힘을 당할 자 이 세상에 없다! 이것은 력사의 교훈입니다. 우리 나라 현대사가 뚜렷이 보여준 귀중한 교훈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력이 아직은 막강하고 그 국력이 어제도 오늘도 세계도처에 뻗치며 타국에 대한 침략과 략탈로 세계평화를 엄중히 위협하고있다는 엄연한 현실적상황을 무시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오만성에서 중요한것은 바로 《핵공갈》입니다. 비근한 사례로 남《한》에 배비된 미국의 핵무기를 들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남땅이 미국의 거대한 핵무기기지로 되였는바 이미 1958년에 미국방성이 주《한》미8군을 원자포로 장비할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는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후 얼마나 많은 핵무기가 이남에 반입되였습니까? 일찌기 1970년대 중엽에 핵무기수가 1,000여개나 되였는바 당시 미하원 의원이였던 로날드 델럼즈가 《미국은 남<한>에 1,000여개의 핵무기와 54대의 핵폭탄운반용비행기를 보유하고있다.》라고 실토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이 이 늙은 사학도의 낡은 노트짬에 지금도 끼여있습니다. 그후에 주《한》미8군의 핵무기보유량이 얼마나 증가되였는가. 1985년 《한국국회》 회의록에 의하면 당시에 벌써 1,750개나 되였다고 했습니다. 군사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현재 이남에 배비된 핵무기의 총 폭발능력은 무려 1만 3,000kt이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1945년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1,000배나 되는것이라고 합니다.

그 모든것이 구경거리로 끌어들인것이 아니라 이북에 쏟아붓기 위한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

북에 살고있는 인민들도 우리와 한피줄을 이어받은 우리 민족, 우리의 동포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그 엄청난 살상파괴력을 가진 핵탄들을 쏟아부으려 하는 미국의 기도를 어쩔것입니까? 특히 최근년간 미국호전세력들이 북의 소위 《핵의혹》이라는 무근거한 트집을 잡고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위협강도를 더욱더 높이고있는바 이것은 곧 제2의 《한국》전쟁을 원자전으로 도발해서 우리 나라 삼천리강산을 재가루로 만들겠다는것입니다. 일단 원자전 이 발생하면 이 땅 전체가 방사선오염지대로, 온갖 생명체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무서운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페허로 될것입니다. 북과 남의 구분이 없이 이 땅 전체가 페허가 되고 우리 민족전체가 방사선에 오염될수 있다 그것입니다.

결코 그러한 비극을 감수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삼천리강토를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보존하고 우리 민족이 이 강토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미국의 핵선제공격기도를 파탄시키고 미군을 철거시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을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보존하고 우리 민족이 하나의 자주적이며 존엄있고 평화로운 민족으로 살기 위한 가장 시급한 선결조건은 바로 미국의 핵선제공격기도를 파탄시키고 미국병정들을 이 땅에서 내쫓는것입니다.

재삼 강조했지만 우리 민족은 결코 약소민족이 아닙니다. 지난 《한국》전쟁에서 미국을 패자로 만든것으로 미국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깨여버렸고 《푸에블로》호 간첩선을 나포하고 《EC-121》간첩비행기를 격추시킨것도 우리 민족이 아닙니까.

더욱 자랑스러운 기쁨을 안겨주는 소식이 또 하나 있는바 그것은 다름아니라 북에서 미국을 협상마당에 끌어내여 놈 들의 《핵소동》의 범죄적기도를 파탄시키고있다는 사실입니다. 늙은 이 사학도는 공화국정부가 미국을 협상마당에 끌어내여 소위 《핵의혹》을 트집잡아 제2의 《한국》전쟁을 도발하려는 그 악당들의 호전적광기에 된매를 안기면서 우리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고있다는 소식을 언론매체들을 통해 접할 때마다 그것이 단지 북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남까지 포함한 우리 민족전체의 존엄과 생존을 지키며 이 땅 전체를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한 성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에 멀리 북녘을 향해 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있습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자기자신과 민족의 생존 그리고 래일을 귀중히 여기는 이남사람들모두가 우리 민족을 미국의 핵전쟁광신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믿음직하게 수호해주는 공화국에 충심으로부터의 감사를 드려야 할줄 압니다.

또 한가지 여기서 필자가 단언하고저 하는것은, 공화국의 그 위력과 의지가 있는 한 미구에 이 땅에서 미국의 존재는 종식되고야 말것이라는것입니다. 이것은 력사의 필연이며 의지입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우리모두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기 위하여, 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헌신분투하는것이 오늘의 력사적과제라는것을, 실은 교단에서 떠난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력사교사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뜻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시작한 이 졸고― 강의를 여기서 이만 마치고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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