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시는 현석우가 6.25전에 자주 가본 곳이였다. 그러나 그날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풍경에서 낯익은데를 하나도 찾아 볼수 없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공연한 소리가 아니였다. 10년이 두번 지나가고 또 몇해 더 지난 사이에 많이도 달라진 도시였다. 지금 차타고 가는 거리가 예전의 어느 거리였던가 하는 기억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은탓인지도 몰랐다. 한가한 마음으로 어디로 놀러가는 길이 아니라 행처도 용무도 모르고 검사와 함께 차타고 가는 길이여서 여기저기 살펴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것이다. 교도소에서 떠날 때부터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있는 검사에게 굳이 물어보고싶지도 않았다. 악의를 가지고 억지로 끌고가는것이 아니라고 믿으며 따라 나선 이상 끝까지 따라가보리라고 생각했다. 승용차가 멎은 곳은 3층짜리 호텔앞이였다. 그것도 현석우가 전에 보지 못했던 호텔이였다. 근년에 신축한 건물이라는것이 첫눈에 알렸다. 검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층계에도 복도에도 주단을 깔지 않은것으로 미루어보아 일류급호텔은 아니였다. 2층복도의 맨 끝방 문앞에서 검사가 걸음을 멈추고 현석우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을 할듯 싶더니 되돌아서서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검사가 문을 열고 비켜섰다. 《어서 들어갑시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새삼스레 무슨 영문인가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현석우는 말없이 방안에 들어섰다. 제법 넓은 호실이였다. 쏘파와 안락의자며 원탁, 그러루한 집기들이 있는 그 방에 한 녀인이 서있었다. 그 녀인을 본 순간 현석우의 시야에서 다른 모든것이 싹 사라졌다. 녀인의 모습만이 방안의 넓은 공간을 꽉 채우며 그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녀인이 뭐라 입안의 소리로 가볍게 부르짖는것 같았다. 현석우도 뭐라고 웨치고싶은 충동을 느끼며 눈을 흡떴다. 혹시 이게 무슨 착각이 아닐가? 얼른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녀인이 쓰러질듯 한 걸음으로 그에게 급히 다가왔다. 현석우도 마주 가면서 그 녀인이 놀라서 달아나기라도 할가봐 걱정스러운듯 가만히 불렀다. 《여보!》 안해 주봉혜였다. 20년전에 이미 죽은줄 알았던 그 안해였다. 자살했다는 그 안해가 살아서 숨쉬는 사람으로 자기앞에 나타난것이다. 아니 이게 꿈인지도 모른다. 현석우의 기억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안해는 젊디젊은 얼굴인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안해의 얼굴은 잔주름투성이였다. 새까맣던 머리도 반백이 되였다. 만약 이게 꿈이라면… 아, 제발 깨지 말아다오! 《여보!》 큰소리를 지르면 꿈에서 깰가봐 겁이 나서 다시 가만히 부르며 안해앞에 바싹 다가섰다. 안해가 금시 쓰러질듯이 비칠거리면서 두손으로 눈물에 함빡 젖은 얼굴을 감쌌다. 현석우는 얼른 안해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안해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현석우는 불덩어리를 안은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안해의 흐느낌소리가 귀전을 두드렸다. 《여보!》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꿈속의 환영이 아닌, 살아있는 안해를 부둥켜안았는데야 더 무슨 말을 하랴. 《앉아서 말씀들을 하십시오.》 문득 검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석우는 피뜩 그를 쳐다보았다. 이 검사가 왜 자기를 이 방으로 데려왔을가 하는 의심을 품은채 안해를 쏘파에 앉히고 자기도 그옆에 바싹 붙어앉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물었다. 《여보, 이거 어떻게 된 일이요? 당신이 그때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거요?》 《죄송해요. 공연히 저때문에 마음고생을 더 하셨겠지요.》 《그게 아니라…》 현석우는 안해의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문득 검사생각이 났다. 그를 쳐다보며 한마디 감사의 말을 했다. 《검사님,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지만 살아있는 안해가 있는 곳에 자기를 데려다준 그에게 사례하지 않을수 없었다. 《형님, 말씀을 낮추십시오.》 검사의 입에서 새여 나온 《형님》소리에 현석우는 어리둥절해졌다. 《여보, 이 사람이 제 동생이예요.》 안해가 울음이 실린 소리로 설명해주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주택진검사의 말이였다. 《64년 그땐 형님인줄 미처 몰랐던겁니다.》 현석우는 억이 떡 막혔다. 다름아닌 처남이 나를 심문했단 말이지, 세상에 그런 고약한 일이 또 어데 있으랴, 국토분단과 리념의 대립이 빚어낸 또 하나의 어처구니없는 비극에 의분과 함께 치미는 슬픔을 금할수 없었다. 《형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그때 미처 형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실례되는 말을 많이 한것 같습니다.》 주검사가 때늦은 사죄를 했다. 만약 그때 내가 자형이라는것을 알았다면 다르게 심문했을거라는 말인가? 《여보, 우리 진호가 벌써 다 자랐어요.》 안해의 말이 현석우로 하여금 처남생각에서 얼른 빠져나오게 했다. 《뭐, 진호!》 그것은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이름이였다. 1954년 그날 안해에게 아들을 낳으면 진호라고 이름지어주라고 당부한 그 일을 어이 잊을수 있었으랴. 그러니 안해도 죽지 않았고 아들도 태여나 무사히 성장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럼 왜 그 애를 데리고오지 않았소?》 1954년 그날 안해에게 당신도 아이도 면회 오지 말라고 한 말 같은것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안해를 다시 만난 이 자리에서 아들도 만나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던것이다. 《이제 다 말씀 드리겠어요.》 안해가 눈을 내리감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럼 천천히 말씀들을 하십시오.》 주택진검사가 그들부부를 남겨두고 방에서 나갔다. 현석우는 안해의 손을 잡은채 새삼스레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얼굴에 가로세로 그어진 주름이 그의 심장에 파고 들어 뻑뻑 금을 그어대는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으랴, 문득 1954년 그날의 안해얼굴이 떠올랐다. 만삭이 된 때여서 부종이 오긴 했으나 그래도 한창나이의 젊음이 깃든 얼굴이였다. 그 젊음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속으로 얼른 안해의 나이를 세여보았다. 아직도 50전이였다. 그런데 이 머리에 내려앉은 흰서리와 얼굴의 주름은 벌써 60을 바라보는 녀인의것이 아닌가. 《여보!》 위로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대화가 중단된, 기쁨과 가지가지 회한을 담은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여보, 미안하오. 당신을 너무 고생시켜서…》 다르게 할 말이 없었다. 《아녜요, 고생이야 당신이 하신걸요. 전 언제나 …》 안해는 울음이 북받쳐 뒤말을 잇지 못했다. 현석우는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검버섯이 박힌 안해의 손을 무슨 귀한 보물이나 만지듯이 가만가만 쓸어만졌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된 일이요? 꿈에도 당신이 살아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소. 어디 좀 자세히 이야기해보오.》 《미안해요. 당신에게 큰 죄를 지었던거예요. 춘천에 가서 제가 한익훈선생님에게 보낸 그 편지 보셨다는것도 후에야 알았어요.》 《그 편지 보고 당신이 이미 죽은줄 알았다니까. 그래 누구의 구원을 받았던거요? 그후엔 어떻게 살아왔소?》 그 모든 가슴아픈 추억의 나날들에 대해서 앉은자리에서 어찌 다 이야기할수 있으랴. 그것은 한 평범한 녀인이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걸어온 너무나도 쓰라린 생활의 나날이였다. 어느 한 추억의 단상도 눈물부터 앞서 제대로 차근차근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남편이 아닌가. 20여년만에 다시 만난 남편이니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사연까지 다 이야기해야 하는것이다. 안해의 이야기가 1964년 가을 어느 날 이미 여러달전에 출소한 자기를 마중하려고 서대문형무소에 달려갔다는 대목에 이르자 현석우는 그만 혀를 끌끌 찼다. 《원 저런! 그때는 내가 다시 수인복 입고 감옥에 갇혀있었는데.》 《다 제탓이예요. 출소날을 미리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지 뭐예요.》 《어머니와 동생은 언제 만났소?》 아들이야기도 구체적인 세부까지 다 듣고싶었다. 아이가 보채지 않았는가? 첫 이는 언제 돋아났는가? 걸음마를 뗄 때는 몇번이나 넘어졌는가? 《크면서 아버지를 찾지 않았소?》 《왜 안 찾아요.》 《그래 뭐라고 말해주었소?》 안해는 아빠가 멀고 먼 외국에 갔다고 대답해주었다는 소리만 했다. 아들이 《갈보》소리를 해서 울었다는 이야기까지는 차마 할수 없었다. 《학교 들어간 다음에 공부는 잘했소?》 《그러문요.》 진호가 대학때 운동권에 참여했고 춘천의 그 한익훈선생의 손녀딸과 가까운 사이가 됐다는 이야기까지 듣자 현석우는 젊었을 때처럼 싱긋 웃었다. 《허 괜찮은데, 우리 진호가 제법이군! 그 처녀도 우리 진호하구 같은 대학에 다녔소?》 《예, 우리 진호가 군대에 나간 다음에도 계속 대학 다니다가 미국에 갔어요.》 《미국엔 왜? 공부하러?》 《조금 복잡한 일이 있었어요.》 《복잡한 일이라니?》 주씨는 천성이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녀인이였다. 애당초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몰라도 일단 말꼭지를 뗀것을 가지고 남편이 캐여물으니 사실대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겪는 불행때문에 남몰래 속을 썩여온 주씨였다.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수 없는 사연이였지만 그 아들의 아버지인 남편에게만 실토하고 싶었다. 안해의 이야기가 끝나자 현석우는 심장을 에이는듯 한 날카로운 아픔에 부지중 몸서리를 쳤다. 다름아닌 자기때문에 아들이 애인까지 잃게 되였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우리 진호가 이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겠구먼.》 《이제 제대해오면 어쩔는지 모르겠어요.》 현석우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 애가 어떤 아들인가. 이 세상에 태여나지도 못한것으로 알고있었던 아들이 아닌가. 그래서 더욱 위해주고싶은 아들인것이다. 정녕 그 아들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고싶은 현석우의 마음이였다. 그런데 그 아들이 오늘은 이 아버지때문에 애인을 잃는 굴욕을 당했다면 래일은 또 어떤 비운에 빠져들것인가. 그런데도 이 아버지 현석우에겐 아들의 행복을 지켜줄 방도가 없는것이다. 아버지의 이 아픈 마음을 아들이 과연 리해해주겠는지? 만약 리해할 대신 원망이라도 한다면 그것이 또 얼마나 큰 불행인가. 《여보.》 안해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또 무슨 일 있은거요?》 《아녜요. 그런게 아니구요. 여보.》 《어서 말하오.》 안해는 주저주저하다가 물었다. 《10년 남았지요?》 《내 형기 말이요?》 《예.》 《맞소. 10년은 더 감옥을 살아야 하오.》 《지금까지 20년동안이나 고생하셨는데 또 10년동안이나 어떻게 견디실거예요? 몸이 아주 쇠약해졌다는것이 알리는데…》 《견디여낼거니 내 걱정 마오. 나는 되려 당신과 진호일이 걱정이요.》 《저야 뭐라나요. 진호일이 걱정이지.》 《내가 만날수 있으면…》 《제대하면 면회 데리고 올가요?》 현석우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니, 와도 면회시켜주지 않을거구. 매번 외삼촌이 데리구 올수도 없잖소.》 《외삼촌이 그만한 수고야 못할라구요.》 《그게 아니라… 좀 생각해봅시다.》 아들이 자기에게 면회 오면 비전향좌익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더 널리 알려질것이 아닌가. 그것이 아들의 생활에 부정적영향을 줄것이다. 현석우는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만약 아들이 통일애국투쟁전선에서 싸우는 젊은이라면 아버지를 자랑으로 여기겠지만 그러기 전에는 아버지가 비전향좌익수라는 사실로 해서 피해의식을 느낄것이다. 아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사소한 피해의식이나 렬등감을 주고싶지 않은 현석우의 마음이였다. 때문에 일찌기 1954년 그날에 안해에게 미리 당부했던것이다, 아들이 투사로 성장하기 전에 아버지이야기를 해주지 말라고. 그런데 그 아들이 투쟁전선에 나서기도 전에 모욕과 배신을 당했다는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얼른 결심이 되지 않아 바재이고있는 그를 안해가 또 조심스레 불렀다. 《여보.》 《또 무슨 일이 있었소?》 《딴게 아니구요. 저 … 제 동생이 전향소리 하지 않던가요?》 현석우는 저도 모르게 고소를 머금었다. 주택진의 그 말마디들이 불쾌감을 자아내며 귀전에 되살아났고 그와 동시에 안해도 이게 곧 전향소리를 하려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피뜩 떠올랐다. 맞다, 그럴수 있다. 주택진검사가 제 아버지를 죽인것이 북의 인민군대라는 그 사실을 가지고 누이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겠지, 그래서 안해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을게다, 하긴 그러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딸이니 비전향좌익수인 남편의 존재가 하나의 고민거리로 되였을것이다. 《알만 하오, 당신마음을.》 현석우는 노여움과 불쾌감이 묻어나오는 소리로 뒤말을 이었다. 《동생을 앞세우고 나를 찾아온 당신이 이제 전향소리를 할거면 여보, 섭섭한 일이지만 공연히 온거요. 당신이 아무리 그런 소리를 해도…》 안해가 당황해 하며 그의 말을 막았다. 《아녜요, 그런거 아녜요!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전향소리 하지 말라고 동생한테 당부했던거예요.》 현석우는 안도의 숨이 나갔다. 지레짐작을 앞세우고 안해를 노엽게 생각했던 일이 뉘우쳐졌다. 《당신을 만나고싶은 생각에 동생을 따라오긴 했지만 당신이 전향하기를 바란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당신의 뜻이 옳다는걸 제가 왜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그래요. 당신이 옥중에서 고생하는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그 장한 뜻을 굽히기를 바라진 않아요.》 《고맙소!》 현석우는 다시 안해의 손을 잡았다. 《나때문에 당신이 앞으로도 많은 고생을 하게 되겠지만 우리의 통일애국투쟁이 반드시 승리할거니까 그때까지 참고 견디여 주리라 믿소.》 《제 한몸이 좀 고생하는건 얼마든지 참을수 있지만…》 안해는 시름겨운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진호일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워요. 나이만 먹었지 아직 철이 덜 들었는데 앞으루 또 무슨 변을 당하면 사람을 버릴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두 해요. 그러지 않아도 지금 오죽 속이 상하겠어요. 그 생각을 하면 잠두 안 오구…》 아들걱정에 밤잠도 제대로 못 자는 모성애의 안타까움을 현석우라고 왜 모르겠는가. 그것은 현석우자신의 마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본능적모성애와 부성애만 가지고 아들걱정을 하는것이 과연 옳은가? 《여보!》 안해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채 귀를 기울였다. 《당신도 그렇지만 나도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요. 그렇지만 내가 이날이때까지 지켜온 혁명가의 신념만은 버릴수 없소. 왜냐하면 그 신념이 아들보다도, 내 목숨보다도 더 귀중한것이기때문이요. 만약 우리 진호도 앞으로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되면 떳떳하게 살수 있을거요. 때문에 당신이나 내가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그런 신념을 가지도록 도와주어야 하오.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또한 참된 사랑이요.》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주택진검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거 교도소측과 약속한 시간이 다 돼서… 그런데 누님, 왜 아무것도 대접하지 않았어요?》 주검사의 말에 주씨가 얼른 일어났다. 《어머머, 내 정신 보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 주씨는 쏘파옆에 둔 묵직한 려행가방쟈크를 열었다. 가지가지 음식들이 들어있는 가방이였다. 《당신한테 대접하려구 좀 만들어가지고 왔어요.》 하고 주씨는 동생에게 물었다. 《잡숫구 가실 시간이야 있겠지?》 《그러문요.》 현석우는 음식그릇들을 탁자우에 꺼내놓는 안해의 손을 잡았다. 《꺼내지 마오, 당신의 정성이 담긴 이 고마운 음식을 우리 특사동지들과 나눠 먹고싶소.》 《그렇게 하시죠. 이걸 특사에 가지고 들어갈수 있도록 제가 보안과장에게 말해주겠습니다.》 주택진검사의 말이였다. 주씨가 음식그릇들을 도로 가방속에 넣었다. 현석우는 안해를 곁눈질로 슬쩍 돌아보고 주검사에게 말했다. 《오늘 이렇게 저 사람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준건 고맙네. 그러나 앞으론 누구든지 전향소리 할거면 다시 오지 말게.》 주검사가 짧게 한숨을 지었다. 《형님, 제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서 말하게.》 《딴게 아니구요. 과거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앞날을 위해서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되려 내가 자네한테 하고싶은 말이네. 사법계에서 살아온 자네의 과거에 대해서 구태여 시비하지 않겠네만 자네도 더 늦기 전에 앞으로 깨끗이 살 생각을 해야 하네. 이건 비단 나 한사람의 충고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량심이 자네에게 하는 권고네.》 현석우는 얼굴이 벌개지는 주검사의 어깨를 한번 가볍게 두드려주고 안해에게 다가섰다. 안해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게 고여있었다. 《여보 울지 마오.》 현석우는 안해의 손을 잡았다. 안해의 눈물이 그의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 《우리 앞으로 반드시 웃으며 만날 때가 있을거요.》 《저도 알아요.》 안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뜨거운 눈물을 그냥 현석우의 손등에 떨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