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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고동이 막 울리는데 대문밖에서 승용차경적소리가 울렸다. 주검사가 올 때마다 타고 오는, 주씨의 귀에 익은 승용차의 경적소리였다. 에구머니, 인제야들 오네. 주씨는 얼른 방에서 뛰여나갔다. 대문께로 채 가기 전에 밖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네.》 반갑게 소리치며 달려가 빗장을 벗기고 대문을 활짝 열었다. 동생 주택진검사가 혼자 대문밖에 서있었다. 그가 타고 온 《검찰청》 승용차안에도 운전사외의 딴 사람이 없었다. 주택진검사는 운전사에게 잠간 기다리라고 이른 다음 대문안에 들어섰다. 《이거 너무 늦어서 안됐습니다.》 말소리와 함께 술냄새가 풍겨나왔다. 《왜 혼자 오나?》 주씨는 대문을 닫으며 가만히 물었다. 《빗장 걸어놓으세요.》 주택진검사는 조금도 급해하는 기색이 아니였다. 풍채좋은 중년신사의 여유작작한 걸음걸이로 마당을 질러가면서 불이 꺼져 있는 조카의 방을 곁눈질로 잠간 흘겨보았다. 《어떻게 됐나? 어머니는 어디 계시구?》 주씨는 방에 들어서면서 또 물었다. 주검사는 담배부터 꺼내물었다. 주씨가 얼른 아들방에 가서 재털이를 가지고 왔다. 《진호는 한영태박사네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어머니도 거기에 계시구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하는 동생의 말이였다. 《많이 다친게로구나.》 《갈비대가 두개 부러지고 허리도 조금 다쳤다더군요. 어머니를 공연히 경찰서까지 데리고 갔어요. 진호가 그 꼴이 돼서 나오는것을 보더니 까무러쳤지 뭡니까.》 《원 저런!》 《너무 걱정 마세요. 한박사가 직접 치료했어요. 곧 정신 깨시고 지금 그 집에서 쉬고 계십니다.》 《그만해도 다행이네. 그런데 진호는 얼마나 매를 맞았으면 그 지경이 됐다던가?》 주검사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이였다. 연방 담배연기만 푸우푸우 내뿜었다. 주씨는 더 묻지 않았다. 동생이 성을 내는 그 마음을 십분 짐작할수 있었다. 조카가 반《정부》투쟁의 길에 나섰으니 공안검사인 외삼촌이 왜 성이 나지 않겠는가. 《집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구 있은거예요?》 절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재털이에 버리고 주검사가 물었다. 《무얼 말인가?》 《진호가 이번 란동판에 끼여들려구 하는걸 말예요,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주씨는 아들의 일기책생각이 피뜩 떠올랐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동생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님도 정신 차려야겠어요. 학생이면 얌전하게 공부나 할거지 그게 무슨 지랄이예요. 경찰서에서 들으니 어제 진호가 극렬분자로 뛰였다는겁니다. 진호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서 상한 경관도 있고, 체포될 때도 무섭게 반항했다지 않아요. 서장에게 겨우겨우 사정해서 앞으로 다시는 그런 란동 부리지 않도록 내가 책임지고 선도하겠다는 담보 주고 빼내온겁니다.》 《외삼촌이 큰 수고를 했네.》 주검사는 또 담배 한대를 끄집어내여 불을 붙였다. 《참, 저녁식사는 어떻게 했나? 다 지어놓구 기다렸는데… 국을 덥혀서 차려올가?》 《지금이 몇신데 여태 저녁도 안 먹었겠습니까. 한박사네 집에서 얻어먹었어요.》 그 집에서 술도 한잔 한게로군, 하고 주씨는 생각했다. 《그 댁 신세를 이번에 많이 지게 되네그려.》 《그건 큰 문제가 아닌데, 누님 내 한가지 걱정되는게 있어요.》 《뭔데?》 《진호가 어쩌다가 운동권에 끼여들었나 하는거예요. 아버지 생각을 해서라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건데… 혹시 아버지일을 아는거 아닙니까?》 《아직 모르고있네.》 《정말이예요? 누님이 이야기해준거 아니지요?》 《아무 소리도 안했네.》 《앞으로두 절대 알려주지 말아야 해요. 진호가 이 세상에서 편히 살게 하려면 절대로 그걸 알려주지 말구 남들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검사가 루루이 당부한것이기도 했다. ××동의 그 판자집에서 모녀상봉이 이루어진 후의 어느 날이였다. 충수염수술을 받고 퇴원, 집에서 쉬고있던 주택진이 어머니에게서 누이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뛰여왔다. 10여년만에 동생을 다시 만난 그날 주씨는 상봉의 기쁨에서 샘 솟아오른 눈물을 씻으면서 동생이 묻기 전에 남편이야기를 했다. 검사가 된 택진이가 네 남편이 어떤 사람이라는것을 알면 펄쩍 뛸거라고 걱정하던 어머니의 말을 잊어먹은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검사라도 동생은 동생이 아닌가. 펄쩍 뛰긴 하겠지만 제 누이와 조카에게 해를 끼칠짓이야 하랴 싶었고 어쩌면 검사의 권한으로 무슨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가지고 남편이야기를 한것이였다. 주검사는 어머니가 걱정한대로 펄쩍 뛰지 않았다. 연방 한숨만 내뿜으며 좁은 방안이 굴뚝속처럼 되도록 줄담배만 피웠다. 내친김에 주씨는 한익훈에게 그 편지를 써보낸 일이며 영숙의 도움으로 죽음의 한걸음앞에서 멈춰선 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정말 많은 고생을 했군요.》 주씨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주택진이 한숨어린 소리로 말했다. 《누님이 그때 춘천에서 한익훈선생님에게 그런 편지를 써보낸 심정도 알겠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건데, 어쩌겠습니까. 이제 와서 팔자타령만 할수도 없는거구.》 주씨는 동생이 그렇게 사뭇 동정어린 소리를 하는것이 여간만 고맙지 않았다. 《누님이 그렇게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땅의 현대사가 빚어낸 비극입니다. 사실은 그러한 비극적운명의 사슬에 매인 사람이 누님 혼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더 큰 피해를 안 입고 살 방편을 세워야지요. 누님나이에 재혼하기는 어려울거니까, 아니 혹시 재혼할 생각이라도…》 주씨는 동생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것도 말이라구 하나!》 《내가 그만 실언했습니다. 지금까지 홀몸으로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진호 하나를 의지하고 살아갈 생각이겠지요.》 《맞네.》 《그러니까 그 애를 잘 키워야 합니다. 지금 학교에 가있지요? 몇시쯤 돌아옵니까?》 《한시간쯤 지나면 올거네.》 《됐습니다. 진호가 오기 전에 이야기하지요. 그 애한테 절대로 아버지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숙아주머니에게 이미 다 이야기했다니 할수 없지만 딴 사람에겐 더 진호 아버지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누님도 누님이지만 진호가 앞으로 어른이 돼도 <빨갱이>의 아들이라는것이 알려지는 경우 사회생활에서 많은 지장을 받게 되니까요.》 주택진검사는 그후에도 자주 그런 당부를 했고 주씨 역시 그런 걱정도 없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남편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주씨의 마음이 오늘은 좀 이상했다. 동생의 그 새삼스러운 당부가 은연중 불쾌감을 자아냈다.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물었다. 《진호는 무슨 치료 받던가?》 《가슴에다 붕대를 칭칭 감더군요.》 《붕대는 왜?》 《전에는 키브스했지만 요새는 붕대를 감는대요. 그러는편이 환자에게도 편하고 부러진 갈비대 붙는것도 빠르다고 하데요.》 《허리도 다쳤다면서?》 《과히 심하지 않아서 진통제주사 놨는데 곧 나을거라고 한박사가 장담했어요.》 주씨는 동생의 말만 듣고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밖에 차를 세워두었지?》 《예, 이제 집에 가야겠습니다.》 《가는 길에 나를 병원까지 태워다주게.》 《걱정 말래두요. 누님이 이 밤중에 가봐야 진호몸이 빨리 나을것도 아니잖아요. 어머닌 주무시는걸 보구 왔구요. 밤에 집을 비우구 가는것도 안되는거 아닙니까?》 하긴 그것도 안될 일이라고 주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줄것은 없어도 도적맞을것은 있다고 고가품이 있는 집이 아니지만 야밤에 집을 비웠다가 도적이라도 들면 야단이다. 《래일 아침 내가 차 보내서 어머니를 모셔오게 할거니 그 차 타고 진호한테 가보십시오. 운전사한테 그렇게 일러둘거니 까요.》 주씨는 동생 말대로 하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그럼 가보겠습니다. 너무 걱정 말고…》 주택진검사는 갑자기 흠칫 놀라며 하던 말을 중단했다. 옷장우에 있는 그 사진액틀을 그제서야 본것이다. 《저게 웬 사진입니까? 누님이 젊었을 때 찍은 사진 같은데 옆에 선 저 남자는 누굽니까?》 주씨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동생이 그 사진을 처음 본다는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긴 해도 자형임에 틀림없는 사람을 가리켜 《저 남자》라고 하는 동생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 주택진검사는 누이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실눈을 지으며 계속 사진을 쏘아보았다. 뭔가 마음에 짚이는것이 있어서 그러는것 같았다. 주씨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였다가 내뿜으며 말했다. 《진호의 아버지네.》 주택진검사는 치뜬 눈으로 누이를 쳐다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기억의 실마리가 잡혔던것이다. 1964년 8월이였던가, 《서울지방검찰청》의 한 방, 초임검사인 자기앞에 앉아있던 그 피의자, 그의 이름도 피뜩 떠올랐다. 《이름이 현석우죠?》 이번에는 주씨가 깜짝 놀랐다. 《자네가 어떻게 우리 진호 아버지이름을 아나?》 《그건 후에 말할건데, 누님, 우선 저 사진을 없애버리 세요.》 《하나밖에 없는 진호 아버지사진인데 그걸 왜 없애버리라고 하나?》 《누님도 참, 그걸 몰라서 묻는겁니까. <빨갱이>의 사진을 저렇게 버젓이 내놓으면 어떡합니까?》 《아무리 <빨갱이>라두 진호의 아버지이고 내 남편이네.》 주씨는 마디마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아직도 저 남편을 안 잊고있다는겁니까?》 주검사는 저으기 놀란 얼굴로 거칠게 물었다. 《그렇네.》 주검사는 그 짧은 대답속에서 누이의 땅땅 굳어진 집념을 보았다. 누이에게 그러한 집념이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한 주검사였다. 《그럼 진호한테도 저 아버지이야기를 해줄 생각입니까?》 《이제 때가 되면… 아들이 아닌가. 제 아버지를 알아야지.》 《누님.》 《또 뭔가?》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신겁니까. 아버지가 북의 인민군대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걸 벌써 까마득히 잊은겁니까?》 《내가 자식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다 그건가?》 《맞습니다.》 주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누가 나한테 불효자식이라는 욕을 하면 그 욕을 먹을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그렇지만 내 아들이 또 불효자식이 되는걸 바라지 않네. 나야 아버지의 딸이면서 동시에 한 남자의 안해이고 그 남편의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이네. 내가 불효자식이 되는것이 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편의 뜻을 저버리고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않는 큰 죄를 저지를수 없다 그거네.》 주검사는 자기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이가 생과부로 된 불행을 한탄하면서 남편을 원망하고있으리라고 믿은것이 실수였다. 조카에 대해서도 그랬다. 아버지 없는 자식의 설음을 겪으면서 그 미지의 아버지에 대해서 원망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이따금 조카에게 아버지없이 자라는 사람이니 뭐니 하는 말을 던진것도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입밖으로 튀여 나간 《실언》이긴 했지만 실은 아버지없이 자란 그 불행을 상기시킴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키워주자는 숨은 의도에서 그랬던것이다. 자기딴으로는 조카를 위해 한 말이고 조카가 이 땅의 생리가 요구하는 류형의 인간으로 성장해서 제대로 잘살면 그것이 곧 누이의 행복으로 된다는 호의적인 타산을 하면서 그런 소리를 했던것이다. 누이가 안해와 어머니의 의무를 두고 말한것이라면 자기는 동생과 외삼촌의 책임감에서 그러한 호의적인 생각을 한것이였다. 그런데 누이가 그 호의에 반발하고있지 않는가. 어찌하여 이러한 배리가 생겨났는가? 주검사는 또 담배를 붙여 물었다. 뭐라 딱히 찍어 말할수 없는 배신감에 은근히 화가 났다. 자기도 그 무엇에 반발하고싶은 충동이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었다. 문득 국토분단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국토분단현실, 바로 그것이 한피줄을 이어받고 성장한 남매사이까지 이러한 이률배반을 가져다주고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혈육의 정까지 거부하게 하는 리념의 대립이 과연 옳은것이겠는가? 나도 그때 그 대오의 한 성원이 되여 뛰였던 4.19세대들이 웨친, 우리는 리념의 차이에 앞서 한피줄을 나눈 동족이다, 그 말의 진의는 무엇이였던가? 문득 그런 물음이 머리속 한구석을 흔들어놓았다. 한박사의 병원에 누워있는 조카의 얼굴이 눈앞에 육박해오는것은 또 무엇때문인가? 이번 《란동》이 첫걸음이라면 두번째 걸음으로 그 무슨 리념써클성원이 되고 세번째 걸음으로 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통일애국투쟁전선이라는 길에 나설수도 있지 않는가, 그럴 경우 나는 외삼촌으로서… 《내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게 뭔지 아나?》 그의 착잡한 상념을 중단시키며 주씨가 차분히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진호가 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거네.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인데 그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거야 천벌을 받을 불효가 아니겠나.》 륜리도덕적시각에서는 그렇게 말할수도 있는것이다, 하고 주택진검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륜리도덕 하나만 지키며 살수 없다. 나는 공안검사이다. 누구의 동생이며 외삼촌인 동시에 공안검사인것이다. 공안검사의 의무에 충실하면서 누이와 조카를 잘 돌봐주어야 하는것이다. 《누님,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또 같은 말이라면 더 듣고싶지 않네. 밤도 깊었는데 집에 꼭 가야 할거면 더 늦기 전에 어서 떠나게.》 주씨의 어조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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