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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구역경찰서에서 경고서를 보내왔다.
강용찬귀하. 검찰청의 위임에 의하여 귀하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게 됨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만일 이 경고내용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보안관찰법》 27조에 의하여 형사처벌 등 불리익한 처분을 받는다는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경고서에는 구역경찰서장의 이름이 있고 그옆에 명판과 도장이 찍혀져있었다. 경찰의 끄나불노릇을 하던 총무는 강용찬이 밤경비를 자진하여 서주는데 감동되여 이렇게 고정하고 성실하고 착한분이 왜 수십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끌끌하고 젊은 대학생들이 자주 찾아오게 되자 이를 양로원에 대한 사회적관심을 높일수 있는 기회로 여기면서 환영하고있었다. 그러니 양로원에서 진행되여온 모임은 안전했다고 볼수 있었다. 하지만 강용찬을 찾아오는 대학생들의 수가 날로 늘어나게 되자 장소를 넓은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였고 따라서 경찰의 감시도 피할수 없게 된것이였다. 강용찬은 조만간에 이런 경고를 받게 되리라고 각오하고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경고의 내용이였다. 《지원》의 뜻과 3대각오에 대한 이야기는 수헌이와 진주에게만 들려준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경찰에서 그것까지 알게 되였는지 모를 일이였다. 진주가 또 무슨 기쁜 소식이 있는지 웃는 눈으로 찾아왔다. 《선생님, 래일 오후 다섯시부터 부산시내의 대학생들이 모두 우리 대학교운동장에 모여서 미제침략자들을 규탄하는 성토모임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모임이 주최가 되여 이렇게 큰 규모의 반미행사를 조직하긴 이번이 처음입니다.》 《너희들이 정말 수고를 했다.》 《이건 다 선생님이 저희들을 깨우쳐주신 결과랍니다.》 《력사를 바로 아는 모임》은 6.25를 맞으면서 40년전에 일어난 전쟁의 원인을 분석규명하고 조선반도에서 다시는 동족상쟁이 되풀이되지 않게 실질적인 대책을 찾는데 모를 박고 학술연구토론회와 강연회 등을 자주 조직하고있었다. 강용찬은 이러한 모임들에 초청받으면 빠짐없이 참가하여 대학생들의 열기띤 토론을 주의깊게 들었고 참전자로서 자신이 전쟁기간에 보고 듣고 느낀 체험담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보안관찰처분을 받고있는 몸으로 이런 장소에 참석하는 그자체가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였다. 진주는 래일 성토대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무력이 투입될건 뻔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을 안전하게 대회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고층건물의 옥상에 모시기로 했다, 선생님이 멀리에서 대회장을 지켜보기만 해도 우리는 큰 힘을 얻게 될거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강용찬은 방금 경고서를 받은 몸이지만 이런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알겠다. 그런데 요즘 수헌이한테서 무슨 소식이 없냐?》 《며칠전에 대전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거기엔 왜 갔노?》 《이전 형무소자리와 6.25전쟁직후에 감행된 좌익수 대량학살현장에도 가보았다고 합니다. 이번 현장답사를 끝내고 돌아가서 론문집필에 착수하려고 한답니다.》 진주는 모임을 통하여 자기의 동무들을 깨우쳐주고 이끌어주고있는데 수헌이는 무슨 결심을 했는지 독수리처럼 단독비행을 하고 있었다.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이들의 일거일동을 가까이에서 누군가가 감시하고있는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강용찬은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난 너희들이 걱정되는구나. 내가 무송에서 <지원>의 뜻과 3대각오를 받아안게 된 사연은 수헌이와 너에게만 해준 이야기인데 어째서 경찰이 알게 됐을가? 너희들 혹시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해서 믿고 그 말을 옮긴적이 없었냐?》 진주는 긴장해진 기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습니다. 그런데…》 진주는 좀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수헌씨가 자기의 할아버지와 론쟁을 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게?》 《지방검찰청 검사라고 합니다.》 강용찬은 놀라도 이만저만 놀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최수헌이가 최성규검사의 손자였단말인가? 이 정녕 청청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는듯 한 소리였다. 《어느 날 수헌씨의 할아버지가 우리들이 선생님을 자주 찾아가는걸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야단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부터 경찰이 양로원출입을 금지시킨걸 보면 자기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지시한것 같다고 수헌씨가 말했습니다.》 강용찬은 경악해서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진주는 몹시 놀라서 아연실색해진 강용찬을 안심시켜주려고 서둘러 사연을 이야기했다. 《선생님, 수헌씨는 믿을수 있습니다. 그 검사가 자기의 친할아버지가 아니라는겁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강용찬은 당혹해진 눈으로 진주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수헌씨는 지금 사실 외롭고 괴로운 처지에 놓여있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해서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그 집에 가서 살게 됐는데 법대에 다닌다, 승용차를 몰고다닌다 하는건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겁니다.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승용차를 사주었지만 비위에 거슬리면 그 차로 자기를 무자비하게 깔아뭉갤거라고 합니다.》 《그래?!》 강용찬은 수헌이를 깊이 알지 못하고있었다. 고급승용차까지 몰고다니기에 재산이 넉넉한 집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지만 요행 때묻지 않고 정의감도 있는 똑똑한 젊은이라는 정도로 생각하고있었는데 그 리면에는 동정을 자아내는 이런 비극이 숨겨져있었던것이다. 《저… 선생님은 감옥에서 희생된 동지의 손자를 찾고 계신다죠?》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진주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버지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와 무척 가까운 사이였더군요.》 《그래, 가까운 사이였지.》 강용찬은 진주에게 자기와 심룡세와의 관계를 될수록이면 로출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진주는 이미 그것을 다 알고있었고 그런 티를 내지 않았을뿐이였다. 아니, 다는 알수 없었을것이다. 심룡세가 딸에게 다는 이야기할수 없었을테니까. 《우리 아버지는 자기가 그 구빨치의 아들을 잘 돌봐주지 못해서 일이 그렇게 됐다고 괴로와하십니다. 그 아들이 해상사고로 잘못된 후 며느리와 손자의 행처를 찾으려고 했지만 종시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뵈올 면목이 없어서 그러는것 같습니다.》 진주는 자기의 아버지가 양로원에 와서 강용찬을 만나고 간것을 전혀 모르고있었다. 《전 혹시나 해서 수헌씨에게 친할아버지를 기억하고있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더냐?》 《자기의 친할아버지는 전쟁때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렸을 때 웬 로인이 자기네 집에 찾아와서 몹시 반가와하면서 내가 네 할아버지라고 말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장난감권총과 사탕을 사주었는데 어머니가 웬일인지 그 로인을 매정하게 돌려보냈다고 하더군요.》 강용찬은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져서 얼른 두눈을 감았다. 룡세가 적어준 주소쪽지를 들고 김혁창의 아들네 집에 찾아갔을 때 마당에서 모래장난을 하던 곱살하게 생긴 애녀석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네 이름이 뭐지? 하고 물으니 김순기! 하고 챙챙하게 대답하던 그 목소리도 귀전에 되살아났다. 그런데 어찌하여 김순기가 최수헌이로 될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아니야! 그럴수 없어!》 강용찬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큰소리로 되뇌이며 채머리를 흔들었다. 진주는 모두었던 숨을 나직이 내쉬였다. 《하긴 수헌씨도 아니라고 했답니다.》 17년전의 그 괴로운 추억에 어쩔수없이 잠겨들었던 강용찬은 불시에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라니?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거냐?》 《선생님은 그 로인이 아니라는거죠.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래일 또 오겠습니다.》 강용찬은 진주를 바래줄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 망연히 서있었다. 번거로와진 그의 머리속에서는 의문부호들이 련이어 떠올라 미처 답을 찾을 사이도 없이 서로 부딪쳤다. 아니, 수헌이는 내가 그 로인이라는걸 분명히 알아차렸을것이다. 그런데 나를 찾아오지 못하고있는 리유는 무얼가? 최성규검사의 손자로 된 제 처지때문일테지. 어째서 그런 왕청 같은 일이 생겼을가? 우연일가? 아니면 최가놈이 흉심을 품고 고의적으로 그렇게 한것일가? 그놈이 순기에게 제 성을 달아주고 이름까지 바꾸고는 대체 어찌자는 심산이였을가? 강용찬은 갑자기 심장이 비틀리우는듯 한 진통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뼈저린 후회와 자책감이 전신을 휩쓸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저주할것이 없었다. 책임은 자신이 져야 했다. 나는 생명의 은인인 김혁창동지가 일점혈육으로 남긴 인석이를 어떻게 대했던가? 그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는것도 아니고 생존을 위해서 아버지를 호적에서 지워버렸다고 해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인석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헤여지고말았다. 《사법보호소》에 가있을 때도 얼마든지 다시 인석이를 찾아가 만나볼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해서 인석의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주고 순기 엄마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이야 벌어지지 않았을게 아닌가. 물론 젊은 미망인이 재가를 하고 말고 하는건 본인의 의사에 달린것이다. 그걸 놓고 곁에서 못마땅해하거나 노여워할건 없다. 문제는 순기 엄마가 남편이 사망한 후에 계급적처지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없이 재가했다는 여기에 있다. 자칫하면 지리산의 구빨치이며 비전향장기수로 통일성업에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친 김혁창동지의 대가 영영 끊어질번 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순기가 진주와 함께 나를 찾아온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순기야! 너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나는 너를 바른길로 가게 이끌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나는 너에게 백발이 성성한 이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빌어야 했구나. 강용찬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제꼈다. 순기에 대한 애정이 화산처럼 끓으며 솟구쳐올라서 도무지 진정할수가 없었다. 순기야! 나는 네 선생이기에 앞서 할아버지가 되련다. 어서 오너라! 그런데 지금껏 그 애를 호강하게 길러주고 일류급대학에 보내준 최성규가 그 애앞에 담벽처럼 막아서서 안된다! 하고 호통을 치고있었다. 순기가 그 담벽을 서슴없이 뛰여넘어 나의 품에 달려와 안길수 있을가? 그러나 나에게는 손자에게 줄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나에게는 그 애가 대학공부를 계속할수 있게 뒤를 받쳐줄 재력이 없다. 그는 허전한 마음으로 창문을 닫고 고개를 떨군채 오래도록 움직일줄 몰랐다. 23
여름방학을 맞이했지만 수헌이는 집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다음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의 옹근 한달기간을 론문집필에 깡그리 바치기로 결심하고 기숙사의 자기 방에 들어박혔다. 방학기간이라 기숙사식당도 문을 닫아서 불편한대로 자취를 했다. 과자 몇쪼박에 맹물 한고뿌나 라면 한봉지 등으로 식사를 극히 검소하게 했다. 돈이 딸려서가 아니였다. 주머니는 불룩했다. 하지만 될수록이면 이 기간에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항시적인 굶주림과 견디기 어려운 고독감을 체험해보고싶었다. 한편 앞으로 있을수 있는 고난, 즉 그 누구의 후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여 빈궁의 밑바닥으로 여지없이 굴러떨어지는 경우에 대처할수 있는 정신육체적인 준비를 미리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전향장기수들처럼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련마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극히 적은 량의 물을 가지고 랭수마찰을 했으며 운동도 방안에서 했다. 삼복기간이라 방안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웠다. 파란 물결우에 흰 파도가 이랑을 지으며 밀려오는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렸지만 그는 그 유혹을 참아내고 세면장에서 얼마든지 시원하게 몸을 적실수 있는 샤와도 하지 않았다. 이런 찌물쿠는 무더위에 얼음과자 한꼬치 안 사먹고 방안에 스스로 갇혀있어보긴 난생처음이였다. 그의 책상우에는 그동안 품을 들여서 그러모은 자료들이 종이집개에 물리운채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것을 종합하고 분류하고 취사선택하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를 조명시키면서 집필에 몰두하였다. 《통일의 장애물인 <국가보안법>》이라고 제목을 단 론문원고는 한장 또 한장 겹놓이면서 부피가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뭉청 끊어져나간 조국을 하나로 잇기 위하여 온 민족이 4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힘을 합쳐 기울여온 피타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아서 최근에 하나 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전대협의 대표 림양이 평양에 갔을 때 겨레의 마음속에 쌓이고 쌓인 통일열망은 무서운 힘으로 일시에 폭발하여 이름없던 단발머리 녀대생을 일약 《통일의 꽃》으로 활짝 피워놓았다. 림양의 평양축전참가는 통일이냐 분렬이냐를 가르는 매우 첨예한 력사적인 현 시기에 그가 누구든지 통일을 위해 한몸 바칠 각오가 되여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남북민중의 한결같은 찬양을 받을수 있고 민족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길수 있다는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난해 여름에 한반도를 달구어놓은 통일열망은 조금도 식지 않고 올해에 들어와서도 더 뜨거워만 지고있다. 8.15를 계기로 남북고위급회담개최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분단 4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통일축구경기와 남북통일음악회도 평양과 서울에서 열리게 된다는 꿈 같은 소식에 온 겨레는 벅찬 흥분과 산 같은 기대로 가슴을 들먹이고있다. 그런데 개탄스럽고 당혹감을 금할수 없는것은 자기의 한생을 고스란히 통일운동에 바쳐오신분들을 이 삼복철에도 해빛 한줄기 비쳐들지 않는 감방속에 가두어둔채로 있는 이남의 현실이라 하겠다. 북쪽동네에 가서는 녀왕도 부러워할 지경으로 대환영의 열파속에서 아름답게 피여났던 《통일의 꽃》도 남쪽동네로 돌아와서는 수정을 차고 어둡고 차거운 감방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으니 이 동네는 왜 이런가? 확실히 괴물이 틀고앉아있는것이 분명하다. 그 괴물인즉 통일애국투쟁에 몸바치는분들은 물론이고 그저 통일이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아가리를 쩍 벌리고 서슴없이 잡아먹는 《국가보안법》이다. 이 법은 터무니가 없이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통일운동을 모조리 리적행위로 몰아서 탄압하며 국토를 영구분렬하기 위한 반통일악법이다. 이 법은 사람들의 마음속에까지 분렬선을 긋고있다. 부모처자, 형제자매, 친척친우를 리념을 기준으로 하여 서로 갈라놓고 서로 감시하고 서로 고발하도록 강요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잡아 먹는다. 이런 괴물을 그냥두고서는 북과 남이 서로 화목하게 지낼수도 없고 하나로 합쳐질수도 없으며 특히 아래동네에서는 초보적인 민주주의와 생존권조차 보장받을수 없다. 이놈의 괴물은 남쪽땅에 언제 어떻게 되여 생겨났으며 무엇으로 살이 지고 날이 갈수록 더욱 포악스러워지고있는가? 그는 서두에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서 광복직후에 복잡다단했던 《이남》의 정치정세를 간단히 언급한 다음 미제가 《유엔》의 간판을 도용하고 매국역도를 내세워서 총칼을 휘두르며 치른 《5.10단선》의 비법성을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낱낱이 까밝혔다. 온 남녘땅을 민중의 피로 붉게 물들이고도 실패로 끝난 《5.10단선》은 친미매국노들의 《정권》이라는것을 날조해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국회》가 부랴부랴 만들어낸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라는것, 이 법에 의하여 삼천리강토에 남북총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적인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전체 민중이 《적》으로 규정되였고 류혈적인 탄압의 대상으로 되였다는것, 이리하여 남조선의 감옥들은 저마다 입을 벌리고 애국자들을 삼키게 되였는데 이때 그들을 체포, 투옥, 고문, 학살한 자들의 대다수가 광복직후에 응당 청산되였어야 했을 일정때 순사나 경찰, 검사나 판사들이였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그 생동한 실례를 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국가보안법》을 고수하기 위하여 분투하고있어 당국의 존경을 받는 인물인 모검사는 일정때 도꾜에 건너가서 법대를 졸업하고 돌아와 검사보가 되였으며 《단독정부》가 생기자 검사로 등용되여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하거나 사형장으로 끌어냈는데 그 수는 헤아릴수 없다고 고발하였다. 이 대목을 서술할 때 수헌이는 최성규가 당장 씹어삼킬것처럼 독기어린 무서운 눈길로 자기를 노려보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조금도 덜거나 과장하지 않고 진실을 그대로 써넣었다. 계속하여 그는 모검사와 같은 자들에 의하여 일제시기의 중세기적인 고문방법과 인간의 량심에 칼질을 하는 《사상전향제도》가 부활되였다고 까밝히고 바로 이때로부터 매국노들의 악랄한 폭압속에서도 자신의 정치적신념과 인간의 량심을 지키기 위한 애국자들의 전향거부투쟁이 시작되였다고 력점을 찍었다. 이 대목에서 역시 자기가 잘 아는 비전향장기수를 실례로 들어 언급하였다. 36년간이라는 기록적인 옥고를 치르고 출소하여 어느 양로원에 가있는 모로인에게는 지금도 《보안관찰법》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져있다는것, 그는 엄연히 전쟁포로로서 정전후 포로교환시 북송되여야 했지만 우에서 실례를 든 모검사가 사형으로 기소했다고 썼다. 이 대목을 서술할 때 수헌이는 역시 또 한사람의 할아버지가 근엄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음을 느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한 이 판결이 3심에서 무기로 감형된것은 우연이다. 정전후에 체포된 좌익수의 수는 수만명에 달하는데 대부분이 학살되였다. 《앞줄 사형, 뒤줄 무기》식의 비법적인 날치기재판에 의하여 요행 뒤줄에 섰던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들중에 수십년의 장기옥고를 치르고 현재까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합하여 백명을 얼마 넘지 못한다. 그들중 90여명이 지금도 옥중에 있으며 그 절반이상이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여 있다. 필자는 이들을 만나보러 대전에 간 기회에 일제때부터 악명이 높았던 이전 형무소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분단으로 인한 민족비극의 가장 처참한 현장이였다. 6.25전쟁기간에 이 형무소에서는 무려 수천명에 달하는 량심수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을 추모하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이 비극의 현장이 멀리에서 바라보이는 류동천기슭의 인평산골짜기에 자그마한 암자를 지어놓고 묘비조차 없는 령혼들에 대한 위로와 속죄로 20년가까이 홀로 지내는 늙은 중이 있는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여기에 그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다. 《전쟁직후에만 해도 저기 보이는 대전형무소에는 좌익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2천명이나 수감되여있었네. 대부분이 4.3봉기와 려수사건의 관계자들이라 새파란 젊은이들이였지. 인민군대가 막 밀고 내려오는데 형무소측은 이들을 그냥두고 후퇴할수 없었던거야. 그래서 군용트럭들을 들이대고 한꺼번에 수십명씩 가까운 절골에 싣고 가서 닥치는대로 쏴죽였지. 나도 그랬어. 뭐 그들을 죽이고싶은건 아니였는데 경찰이니 별수가 있나. 명령을 집행하는수밖에 없었지. 거역하면 내가 죽을 판국이였으니까. 그때는 제 정신이 없이 총질을 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사람이 아니라 악귀였다는 생각이 들더구만. 죽은 사람들이 자꾸만 꿈에 보이는데 어디 견딜수가 있더라구. 그래서 내 죽는 날까지 그들에게 용서를 빌고싶어서 여기에 와있네.》 이처럼 당시 사형을 집행한 무지막지한 경찰나부랭이까지도 량심의 가책에 못이겨 속죄로 여생을 보내고있는데 정권욕에 들뜬 이른바 정치인들은 《룡산왕국》에 뻔질나게 들어가 양료리로 배를 채우며 《국가보안법》을 개정할수도 철페할수도 없다고 생억지를 쓰고있다. 그래도 대통령을 해먹고 국회의원을 해먹는 자들의 사고방식이 어제날 경찰이였던 늙은 중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니 격분에 앞서 통탄해야 할 현실이 아닐수 없다. 20세기의 마지막년대인 90년대에 들어와서도 《국가보안법》에 의한 구속자수는 계속 증가의 폭을 넓히고있다. 때문에 무려 40여개소에 달하는 교도시설들이 수용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수감자들로 차고넘치고있다. 아시아 최대의 교도시설이라는 대전교도소의 경우에도 4평정도의 감방에 열명씩 몰아넣은 상황이다. 실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상범, 량심수들의 경우에는 《독방사용의 편리》를 제공해주고있다. 락원에도 홀로 있으면 지옥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 악독한 일본경찰도 장기독거는 6개월로 규정했다고 한다. 현재 장기독거는 2년으로 규정되여있다. 전향을 하지 않으면 장기독거는 무한정이다. 역시 전향을 하지 않으면 재소자로서의 초보적인 권리도 박탈 당한다. 면회는커녕 서신거래조차 할수 없고 병이 나도 치료를 받을수 없으며 지어 가족들이 넣어주는 약조차 받을수 없다. 생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급증하는 환자의 병적심리를 악용하여 전향하면 치료를 해준다, 약을 준다는 치졸한 방법으로 공작을 들이댄 실례가 허다하다. 앞에서 례를 든 인민군 군관출신의 비전향장기수로인은 체포될 당시 오른팔에 총상을 입었다. 그가 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치료를 해주지 않아서 팔이 썩어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오른팔을 어깨부위에서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왼팔에 수정을 차고 엄정독거를 수십일간이나 당했고 20년이상 장기독거를 했다. 이처럼 장기독거를 당한 비전향장기수들의 대다수가 심장병이나 구급성 고혈압병에 걸려있다. 현재 대전교도소의 전속의사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만 생긴 이 병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의학박사론문을 집필하고있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삶을 유지한다는 그자체가 기적이 아닐수 없다. 헤아릴수없이 많은 통일애국투사들이 맞아죽고 얼어죽고 병이 나서 죽고 더는 견딜수가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대부분의 옥중사망은 전향공작담당반에 의한 고의적인 살인》이라고 간수들도 인정하였다. 국가폭력이 애국자들의 사상과 량심을 강제로 바꾸려고 물리적인 압력을 가하다가 그만 죽여버린것이다. 결국 수십년간 계속되여오는 이 대학살만행의 책임은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순간도 존재할수 없는 당국에 있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있는것이다. 초인종이 거퍼 울렸지만 수헌이는 듣지 못했다. 그는 지금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을 타고앉아 해부를 하고있었다. 그의 정신은 온통 이 땅에서 가장 어두운 곳, 숨쉬는 무덤속에 비길수 있는 감옥안에 쏠려있었다. 차디찬 콩크리트바닥에 철쇄가 끌리는 소리, 전향하라!고 악에 받쳐 웨치는 소리, 살이 타는 냄새, 지독한 피비린내… 원한 품고 쓰러진 령혼들이 눈을 부릅뜨고서 그가 놀리는 수술칼을 주시하고있었다. 갑자기 곁에서 향수내가 이상야릇하게 풍겼다. 수헌이는 펜을 멈추며 얼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무덤우에 피여난 한떨기의 양귀비인가? 진하게 화장을 한 요염하게 생긴 처녀가 함뿍 웃음을 지으며 문지방에 서있었다. 《수헌씨, 오래간만이네요. 아유, 여기에 들어박혀서 대관절 뭘해요?》 무척 가까운 사이라도 되는듯이 가볍게 나무라며 춤을 추듯이 률동적인 걸음으로 다가오는 처녀는 다름아닌 윤의원의 따님이 였다. 수헌이는 외계와 엄격히 차단된 교도소의 담벽을 뚫고 들어가기 위하여 법계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윤의원의 방조를 받았다. 그래서 그의 저택에 몇번 찾아갔었는데 그때마다 이 처녀가 난딱 나서서 음식접대를 해준다, 피아노를 쳐준다 하며 반갑지도 않은 친절을 베푼것이였다. 《난 수헌씨가 혼자서 도망친줄 알았네요.》 처녀는 어디에 숨어있는 수헌이를 추적하여 붙잡아내기라도 한듯이 이렇게 말했다. 《도망을 치다니요?》 수헌이가 정색해서 묻자 처녀는 깔깔 웃었다. 《수헌씨가 부산에 가있는줄 알았단 말이예요. 댁에 전화를 거니까 마침 어머님이 나오시더군요. 우리가 함께 오기를 기다리고있다나 봐요.》 이 복더위에 어쩌는수가 없었겠지만 수영복같은 옷차림을 하고 자기에게 바투 다가와서 향수내를 풍기며 이러니저러니 하는 처녀앞에서 수헌이는 상당할 정도로 당황해졌고 거북해졌다. 《아유, 한증탕에 들어온것 같네.》 그 녀자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자료철을 하나 들고서 활활 부채질을 했다. 《지금은 피서계절이라는걸 잊었나요? 우리도 빨리 부산해수욕장으로 가자요. 전 이 기회에 수헌씨네 집구경도 하고싶어요.》 수헌이는 윤의원의 집에 갈 때마다 그 처녀를 례의를 잃지 않을 정도로 대해주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무슨 미련이 있는지, 성격이 워낙 그런지 갖은 교태를 다 부리며 그저 막 감겨드는 판이였다. 《난 보다싶이 그럴 시간이 없는데… 먼저 떠나지 않겠습니까? 내 하던 일을 끝내고 인차 뒤따라 가죠.》 처녀는 책상우에 침대우에 널려있는 자료철들과 종이장들을 일별하더니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듯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미래의 검사나리가 뭐 학자님이 되고싶어서 이런 수고를 하시는가요?》 이런 공연한 수고는 자기 학대며 시간랑비다, 그저 우리 아빠만 믿어라 하는 수작이였고 청춘을 즐길줄 모르는 네가 과연 답답하구나 하는 로골적인 비난이기도 했다. 수헌이는 허영에 들뜬 이 천박한 아가씨를 마주하면 환멸감이 생기고 그것을 차마 표현할수가 없어서 구속감을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빠져나갈 출로를 찾아서 갈팡질팡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처녀에게는 일종의 쾌감을 안겨준다는걸 모르고있었다. 처녀는 금강석반지를 낀 손으로 침대우에 널려있는 종이장들을 흘 밀어던지고 앉아서 그네라도 탄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수헌씨,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통일음악회라는걸 한다는 소식을 들으셨죠?》 그렇게 펄쩍 앉아서 몸을 흔드니 그 녀자의 육체가 너무도 적라라하게 드러나서 수현이는 차마 마주보지 못하고 눈길을 허둥거 렸다. 처녀에게는 자신의 눈부신 광채앞에서 매양 몸둘바를 몰라하는 숫저운 사내를 보는것이 즐겁기만 했다. 그래서 더 흔들어대는 판이다. 《벌써 통일원과 문화관광부에서는 평양에 갈 연예인들을 선발하고 공연종목도 고른다나 봐요. 나도 가고싶어서 막 몸살이 날 지경이예요.》 《아니? 윤양이 거길 어떻게 간다고 그럽니까?》 수헌이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물었다. 《왜요? 어째서 내가 갈수 없다는거예요?》 처녀는 모욕이라도 당한듯이 발끈해서 따져물었다. 《피아노로 땐스곡과 발라드곡을 연주하는데서는 직업적인 연예인들도 나를 당할수 없어요. 리듬, 장단, 률동적인 동작, 광적인 연주, 현대음악은 이게 기본이예요. 고전음악의 이른바 고상한 선률이라는건 이미 낡아빠진거예요. 양로원에 있는 늙은이들이나 좋아하라지요. 그런데 듣자니 유럽의 고전음악도 아닌 옛날 사당패들이 하던 사물놀이 같은게 공연종목에 들어갔다는거죠.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나와 앉아서 꽹과리를 치고 장고를 두드리겠다는건데 아유 평양사람들이 웃겠어요. 그런 망신이 어디에 있어요.》 주제넘은 욕망, 자화자찬, 그 무슨 현대음악리론이 처녀의 연지 바른 입술사이에서 수도물처럼 쫙쫙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초불처럼 태우는 사람들은 옥중에 있는데 분렬된 조국의 아픔을 순간도 느껴보지 못하고 피아노건반만 미친듯이 두드려대던 엉석받이 아가씨가 평양구경을 가겠노라고 남먼저 호들갑스레 나선것이다. 이거야말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일이였다. 《나도 당당히 방북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선발될 가능성은 적어요. 저절로 되는 일이 있나요. 막후공작을 해야죠. 해외나들이를 가신 아버지가 빨리 돌아와야 하겠는데 막 속이 상해 죽겠어요. 에라 모르겠다. 해수욕장에 가서 시원히 미역이나 감고 오자.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거죠.》 수헌이는 이 방해군을 어떻게 물리쳐야 할지 생각이 안 나서 그저 덤덤히 앉아있었다. 마침 텅 빈 기숙사를 지키고있는 아주머니가 불쑥 문을 열었다. 《학생, 부산에서 진주라는 아가씨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빨리 바꿔달래요.》 《진주양이?!》 찌뿌둥해있던 수헌이의 얼굴이 그 순간에 확 밝아지는것을 그 녀자는 질투심이 어린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윤양, 잠간만 기다려주오.》 수헌이는 전화를 받으러 성급히 달려나갔다. 《진주!》 《수헌씨!》 사랑에 불타고 그리움에 북받친 두 젊은이는 이렇게 서로 큰소리로 부르고는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만족한듯 잠시 가쁜 숨만 몰아쉬였다. 《그새 몸 건강했어요?》 《음, 진주는?》 《저두요.》 《선생님도 건강하시겠지?》 《예. 수헌씨를 무척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왜 늦어지나요?》 《이젠 거의다 됐소. 하지만 출판에 물려놓고 가자면 며칠이 더 걸려야 할것 같소. 실어주겠다는 출판사가 있기나 하겠는지도 모르겠소.》 《그럼 정윤수선생님을 찾아가보세요.》 《그가 누구요?》 《작년 가을 <부산일보>에 강선생님의 출소소식을 싣고서 해직당한분이예요. 지금 서울에 가서 해직기자들로 자그마한 잡지사를 내오고 정치정세와 민주화운동의 실태를 반영하는 월간잡지를 발간하고있다고 해요.》 수헌이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 잡지제목이 뭐요?》 《<정치정세>인데 이달에 창간호를 냈답니다. 우리 아버지와 친교가 있는분이여서 무료로 창간호를 보내주었는데 거기에 주소와 전화번호가 찍혀져있어요. 잠간만 기다리세요.》 수헌이는 안도의 숨을 후련히 내쉬였다. 《국가보안법》을 정면으로 공격한 자기의 글을 실어주겠다는데가 있을것 같지 않아서 은근히 걱정을 하던참이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 일이 수월하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 진주는 잡지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나서 자랑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헌씨, 우린 이번 광복절에 큰 잔치를 차리려고 한답니다.》 그것은 8.15를 계기로 부산의 대학생들이 벌릴 여러가지 다채로운 통일맞이행사들을 념두에 둔것이였다. 《거기엔 효도나들이도 포함되여있어요. 수헌씨가 꼭 참가하셔야 해요.》 효도나들이라는 소리는 듣기에 처음이였다. 《그건 뭐요?》 《우리를 위해 고생이 많으셨던 할아버지를 모시고 해운대랑 촉석루랑 명승고적들을 찾는 일이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말도 듣고 노래도 부르고 조개랑 캐고 물고기랑 잡아서 맛있게 끓여먹고 사진도 찍고…》 《그것 참 멋진데?》 수헌이는 탄성을 올렸다. 《내 하던 일을 빨리 끝내고 인차 내려가겠소. 우리 하동에도 가보자구. 섬진강의 잉어를 잡아서는 할아버지께 올리고 바다의 진주조개를 캐서는 내가 가지겠소. 어떻소?》 《어머… 난 몰라요.》 수태를 머금으며 노을빛으로 얼굴을 확 붉히는 진주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 전류가 흐르는 소리, 두 심장이 함께 행복하게 고동치는 소리… 방금전까지만 해도 아가씨앞에서 몸둘바를 몰라하며 덤덤히 앉아있던 수헌이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였다. 그는 진주와 만나면 기지있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갔고 그와 나누는 별치 않은 이야기도 그저 재미있고 즐겁기만 했다.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속삭이던 그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진주, 이만하기요. 잘 있소.》 그는 아쉬운대로 서둘러 통화를 끝내고 자기 방으로 갔다. 해수욕장으로 가자고 꼬드기던 그 아가씨는 방에 없었다. 귀찮은 방해군은 저절로 물러갔지만 그가 뿌리고 간 싸늘한 기운이 방에 떠돌았다. 어쩐지 불안했다. 그는 안심치 않은 눈길로 자기가 집필하던 원고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혹시 그 녀자가 읽어보지 않았을가? 아니, 그 녀자야 이런데는 전혀 무관심하지. 하지만… 그는 껄끔하고 미타한 느낌을 종시 털어버리지 못한채 그 어떤 긴박감과 조급성에 뒤쫓기우며 다시 집필에 몰두했다. 《국가보안법》과 일제시대의 잔재인 《전향제도》와 《사회안전법》을 대신한 《보안관찰법》 등 사상을 처벌하는 법은 이미 정치후진국이라는 남아프리카나 대만에서도 페지된것이다. 결국 남쪽땅은 식민지시대의 유물을 가지고있어야만 존재 가능한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나라다. 실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당국자는 세계를 향하여 《대한민국엔 량심수가 한명도 없다.》고 공언했다. 이거야말로 뻔뻔스럽기 그지없고 짐승조차 낯을 붉힐노릇이다. 재삼 묻노니 사상의 순수성과 통일에 대한 념원, 민주화의 바람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죄로 될수 있단 말인가? 우리 세대가 태여나기 훨씬 오래전부터 매일같이 악착한 고문과 끈질긴 전향공작에 시달리면서도 사상과 념원과 량심과 사랑을 꿋꿋이 지켜낸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들은 《국가보안법》의 최대희생자들인 동시에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분들 한사람 한사람은 원한을 품고 숨진 수천수만에 달하는 애국자들의 령혼을 고스란히 지니고있다. 참으로 민족사와 통일운동사에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할아버지들을 오늘까지도 철창속에 가두어둔채로 통일이나 민주화에 대하여 운운하는것은 위선이며 빈말공부에 지나지 않는다. 매국의 산물, 반역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을 당장 철페하라! 이것은 통일을 바라고 민주를 바라기에 앞서 우리가 목청껏 웨쳐야 할 함성이다.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들을 당장 석방하여 그들이 꿈에도 가고 싶어하는 북으로 송환하라! 이것만이 분렬의 장벽을 깨고 민족의 화합과 대단결을 이룩하며 통일에로 나아가는 실지적인 첫걸음으로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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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리라 저물녘에도 집안은 찌는듯이 무더웠다. 최성규네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선풍기까지 틀어놓은 거실의 탁자에 둘러앉아서 화투놀이를 하고있었다. 이럴 때면 최성규는 손녀와 한편이 되고 아들은 제 처와 한편이 되군 한다. 저녁식사를 겸하는 놀음이여서 주패를 치면서 마시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최성규는 이런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도수가 높은 술을, 아들은 랭장고에서 방금 꺼낸 차거운 흑맥주를, 며느리와 손녀는 코카꼴라나 망고팅크따위를 마시며 과자를 먹는다. 돈을 걸고 하는 놀음이여서 한식솔끼리지만 누구나 지려고 하지 않는다. 원래 그들은 이번 삼복기간에 제주도에 피서를 갈 계획이였다. 그런데 수헌이가 아직 오지 않아서 기다리며 그럭저럭 날을 다 보내고있었다. 사실 수헌이는 이런 가족적인 려행이나 놀음에서 제외되기가 일쑤였다. 우선 본인이 이런데 잘 끼여들려고 하지 않았고 어쩌다 그가 끼여드는 경우에는 왜서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따돌려놓군 했었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수헌이가 서울장안에서 미녀로 손꼽힌다는 윤의원의 따님과 함께 올수 있으니 기다렸다가 그들과 같이 피서를 가서 즐기자는 최성규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것이였다. 윤의원은 의원대표단에 망라되여 동남아시아나라들을 돌아보러 떠나면서 전화로 최성규에게 방학기간에 딸을 부산에 피서 보낼 계획이니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했다. 며칠후에는 윤양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수헌이도 그 아가씨도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모두들 기다리기에 짜증이 날 지경이였다. 딩동! 하고 전화종이 울렸다. 며느리가 얼른 일어나 전화기가 놓여있는 탁상앞으로 걸어갔다. 《예, 최검사댁입니다. 뉘신지? 아, 그렇습니까? 곧 바꿔드리겠습니다.》 며느리는 얼굴이 환해서 전화기를 통채로 들어다가 시아버지앞에 놓아주었다. 《윤의원님입니다.》 《그래?》 최성규는 손에 들고있던 주패장들을 훌 줴뿌리고 며느리가 주는 송수화기를 받았다. 《나 최성규올시다. 언제 돌아오셨소?》 이쪽에선 반가와서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상대방은 웬일인지 인사차림도 없이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댁에서는 참으로 훌륭한 도련님을 두셨더군요. 하기야 고명하신 최검사님의 손자인데 어련허겠나요.》 이게 뭐야?! 최성규는 물론이고 기대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전화를 엿듣던 식구들도 어정쩡해지고말았다. 《허, 윤선생.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대관절 무슨 섭섭한 말씀이시오?》 《지금 손자가 기숙사에 꾹 들어박혀서 세상을 깜짝 놀래울 굉장한 준비를 하고있다누만요.》 《무슨 롱담을… 그 녀석이 뭐 그럴만 한 재목이나 됩니까?》 《내 그래서 하는 소리요. 그 젊은놈이 누굴 믿고 언감생심 어디다 대고 감히 골받이를 해보자고 날치는지 모르겠단 말이요.》 윤의원이 실없는 소리를 하는것 같지 않았다. 수헌이란 녀석이 심상치 않게 굴더니만 종시 무슨 일을 치는가부다. 이런 변이라구야. 삽시에 흙빛이 된 최성규의 얼굴에서는 진땀이 돋아났다. 《여보시오, 거 빙빙 에돌지 말고 직팡으로 말해주시오. 혹시 내 손자녀석이 그 집 따님과 다투기라도 한게 아니요?》 《웬걸요.》 윤의원은 쓰겁게 웃었다. 《댁의 도련님은 격이 지내 높아서 천박한 내 딸 같은건 거들떠 보지도 않는대요. 그럴셈이면 당초에 발길질을 하지 말았어야지요. 그 녀석이 감히 내 이름을 거들면서 감옥이란 감옥은 다 찾아 다녔소. 실태를 조사하고 <국가보안법>은 반민주적이고 반통일적인 살인악법이니 당장 철페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는거요.》 최성규는 와뜰 놀랐다. 《설마, 그럴수야…》 《출판물에 공개되면 정말 큰 일이요. 그놈의 자식을 내가 혼쌀내주려고 했는데 벌써 꼬리를 사렸소. 거기에 가있지 않소?》 윤의원은 약이 올라서 년장자인 최성규에게 반말질로 호통을 쳤다. 최성규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여보! 그놈이 도착하면 그 원고부터 빼앗아 불태워버리시오. 그 정형을 나에게 즉시 알리고… 그리고 말이요. 이제부터 우리의 관계는 당초에 없었던것으로 칩시다.》 윤의원은 결단코 절교까지 선언했다. 결국 국회의원으로 출마해보려고 최성규가 지금껏 기울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윤선생! 의원님!》 그는 급해맞아서 소리를 쳤다. 상대방은 이미 송수화기를 내던졌는지 응대조차 없었다. 성이 머리끝까지 돋아나서 경풍을 만난듯 푸들푸들 떨기만 하던 최성규의 입술사이로 드디여 분노가, 쌍욕이 터져나갔다. 《못된 놈의 새끼! 어자어자 고이 길러주니까 감히 내 멱살을 물자고 덤벼들어? 고현놈! 어디 두고보자!》 주먹으로 식탁을 치는 소리, 술잔들이 나딩굴었다. 아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담배갑을 집었다. 《아버님, 내 갸가 그렇게 나오리라고 이미 짐작을 했댔어요. 엉큼한 녀석이 수박씨를 까거든요.》 손녀는 잘코사니야 하는듯 입술을 삐죽 했다. 《보라요. 할아버진 그저 오빠만 곱다곱다 하더니… 승용차두 오빠만 사주고…》 그 말이 귀에 거슬렸던지 제 애비가 꽥 소리를 쳤다. 《고년, 입 다물지 못해? 오빠는 무슨 오빠!》 며느리는, 그 녀석의 불쌍한 어머니만은 낯이 해쓱하게 질려서 눈을 까뒤집는게 하마트면 기절해버릴것만 같았다. 최성규는 시아버지의 공대를 그처럼 잘하는 며느리를 저 지경이 되게까지 놀래워놓은것이 속에 걸려서 어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 기침소리에 다소 용기를 얻은듯 며느리가 주저주저 입을 열 었다. 《아버님, 설마하니 그 애가… 무슨 오해가 생긴게 아닐가요?》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냐. 하여간 본인의 말을 들어봐야지. 헌데 이 녀석은 왜 아직 나타나지 않을가?》 그 물음에 대답을 하듯이 거실의 문이 열렸고 화목하던 이 집안에 폭풍우를 몰아온 장본인이 불쑥 들어섰다. 《그새 편안들 하셨습니까?》 수헌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큰소리로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무엇인가 애쓰며 모대기다가 드디여 성사를 보았을 때의 그 기쁨, 그 희열이 그의 얼굴에 환하게 비껴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잘 생긴 얼굴이 더 멀끔해보였다. 유감인것은 이 장소에 자기를 달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것이였다. 지어 어머니까지도 랭담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볼뿐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수헌이는 영문을 알수 없어서 그 자리에 엉거주춤 굳어지고말 았다. 그는 필경 자기때문에 집안에 상서롭지 못한 분위기가 조성되였다는것은 직감했지만 그것이 다름아닌 자기의 론문때문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쨌든 이 심상치 않은 침묵의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숨이 막힐 지경으로 고통스러웠다. 《아니, 왜들 이러십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거냐?》 하고 최성규가 눈을 부라렸다. 《너 세상을 놀래울 무슨 굉장한걸 준비했다지? 그걸 당장 내놔라. 어디 구경을 좀 해보자.》 수헌이는 그제서야 자기가 은밀하게 해치운 일을 여기서는 빤히 알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해수욕장에 함께 가자고 찾아왔던 아가씨를 각성없이 대한 후과로 이런 대접을 받게 된게 뻔했다. 《어서 그 물건짝을 내놓으라는데두!》 최성규가 얼굴을 험악하게 이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건 제가 쓴 론문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그것은 …》 독기가 어린 눈초리로 쏘아보던 이붓아버지가 담배를 쥔 손으로 삿대질을 했다. 《야! 론문이구 나발통이구 어서 내놓으라지 않아!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이로군.》 수헌이는 그것을 정윤수에게 넘겨주고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며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건 제가 학술연구상 그저 써보느라고 한건데 대학에 두고 왔습니다.》 최성규는 수헌이가 거짓말을 한다는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그래, 그게 <국가보안법>을 없애자고 주장한 론문이냐? 사실대로 말해라.》 수헌이는 더 변명을 할수 없었고 또 구차하게 그러고싶지도 않았다. 《예.》 최성규는 치솟는 분노를 가까스로 누르며 물었다. 《왜 그 법을 죽이지 못해서 그다지도 몸살이 났느냐?》 수헌이는 의젓하게 자세를 바로잡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새 세기가 다가오는데 유독 우리만이 그런 구시대의 유물을 가지고있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 법을 없애는건 시대의 요구이고 그걸 없애야 우리도 세상사람들앞에서 떳떳할수 있다고봅니다.》 《설사 그렇다 한들 하필이면 네가 왜 주제넘게 나서느냐 말이다. 그 법이 있기에 내가 있는것이고 우리 가정도 있는거야. 네가 지금까지 부러운것없이 살아왔고 편안히 대학공부를 하고있는것도 다 그 법의 혜택인셈이야. 법대생이라는 녀석이 나라의 기둥인 그 법을 지켜낼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찍어버리겠다고 도끼를 들고 덤벼들어?》 《글쎄 그 법의 덕분에 우리는 락원에서 살고있겠지요.》 수헌이는 그것을 흔연히 인정했다. 《그런데 절대다수의 근로민중은 어떻습니까? 지옥에서 살고있지요. 바로 그 법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 법때문에 수십년을 철창속에서 고생해오시는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라의 기둥이 되는 법일진대 초보적인 인권이야 보장하는것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신이 경에 막히듯이 최성규도 그 명명백백하고 정정당당한 주장에 말이 막혔다. 그가 보기에 손자의 태도가 이처럼 의젓하고 뻐젓하고 당당하기도 처음이였다. 참으로 아깝긴 아까운 녀석이로구나, 그런데… 하는 느낌이 그 어떤 배반감과 상실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면서 가슴 한구석을 허전하게 해주었다. 곁에 있던 아들이 아연실색해서 입을 딱 벌렸다. 《어랍쇼. 저게 어쩌면 빨갱이들과 신통히도 꼭같은 소리를 하고있구만요.》 최성규는 락심천만해서 중얼거렸다. 《빨갱이와 접촉을 했으니 그 물이 들수밖에 없었겠지.》 아들은 휘딱 놀라서 최성규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최성규는 게면쩍은듯이 수헌이를 힐끔 쳐다보고나서 아들의 귀에 입을 바투 들이대고 낮은 소리로 뭐라고 수군거렸다. 수헌이의 어머니는 당장 울음을 터뜨릴듯 한 얼굴로 시아버지와 남편을 바라보았다. 수정이는 손거울을 꺼내서 그것만 들여다보며 머리칼의 모양새를 바로잡고있었는데 지금 방에서 벌어지고있는 소동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태도였다. 수헌이는 자기가 피차 각오하지 않을수 없었던 그 시각이 너무도 빨리 닥쳐왔음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라는 사람의 귀속말을 듣고난 아버지라는 사람은 이제야 깨도가 된다는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하! 그런즉 그렇게 된 일이였구만요.》 가볍게 탄성까지 올리는 품이 자기와는 전혀 무관계한 그 어떤 흥미있는 이야기라도 듣고난듯 한 표정이였다. 그는 뭔가 석연치 않은데가 있는지 수헌이를 얄미울 정도로 지꿎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버님, 그렇다면 저 애가 어째서 양로원에 가지 않고 여기로 왔는지 알수 없구만요.》 자신의 처지를 너무도 가혹하게 상기시켜주는 그 말에 수헌이는 참을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저는 작별인사나 하려고 왔습니다.》 그 말이 너무도 쉽게, 너무도 태연하게 수헌이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통에 모두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무리 그런들 수헌이가 이런 호사스러운 생활을 버리면서까지 자기 배짱대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당사자인 수헌이 역시 자기가 이런 생활, 이런 가정과 더우기는 어머니와도 서슴없이 결별할 용단을 내릴수 있으리라고는 방금전 이 집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었다. 피차 가까운 시일내에 그런 용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것이라고 각오는 했지만 은연중 그것을 두려워했고 될수록이면 그것을 뒤로 미루면서 가능한껏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상처입은 자존심은 지금껏 할수 없었던 그 용단을 주저없이 내릴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은 결코 개인적인 자존심에 관한것이 아니였다. 그는 적은 힘이나마 민족을 위해 바침으로써 력사앞에, 선배들앞에서 떳떳하려고 노력했고 바로 그것때문에 이런 랭대와 이런 모욕을 받았기에 이 모욕에 반발하는 그의 자존심 역시 민족의 존엄과 결부된 값높고 성스러운것이 아닐수 없었다. 노상 이붓아버지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빚진 놈처럼 늘 송구스럽게 지내야 했던 이 굴욕적인 더부살이의 신세를 끝장낼 시각은 왔다. 다만 사랑하는 어머니와 헤여지게 되는것이 가슴에 걸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갈린 소리로 불렀다. 《어머니!》 불쌍한 녀인은 이제는 다시 못 볼 아들을 붙잡기라도 하려는듯 두손을 내밀며 일어났다. 《수정아!》 누이동생은 흠칫 놀라며 손에 들고있던 거울을 떨구었다. 《그럼 모두 부디 안녕히들 계십시오.》 수헌이는 불시에 눈굽이 찌르르해짐을 느끼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출입문을 닫고 복도를 지나서 층계를 무겁게 내리는데 별안간 정신이 나간것 같은 녀인의 광적인 울부짖음이 뒤에서 울려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두눈을 꽉 감으며 멈춰섰다. 그것은 어머니의 울음소리였다. 자식을 영영 잃게 된 어머니의 절망에 찬 비통한 울부짖음이였다. 사랑하는 자식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눈물로 애원하고있었다.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고있 었다. 수헌이는 당장 돌아서 뛰여들어가 어머니를 데리고 나오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층계란간을 손으로 꽉 쥔채 굳어져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빈궁의 심연이 입을 쩍 벌리고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도 그속에 무작정 뛰여들기가 죽기보다 무서울 정도로 끔찍했다. 그러니 어머니까지 데리고 빈궁의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자기는 이 가정과 미련없이 결별할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정이 달랐다. 어머니에게는 이 집에 남편이 있었고 딸이 있었고 시아버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씨네 집안사람이 아니라 최씨네 집안사람이였다. 수헌이는 이를 악물고 다시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층계를 다 내려서면 극빈자가 된다. 거처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대학공부에 대해서는 꿈조차 꿀수 없게 된다. 오늘 밤 당장 어디에 가서 등을 붙여야 할지 그것이 난문제로 된다. 해결책은 없다. 마지막계단을 내려서려는 순간이였다. 누군가 어푸러질듯 층계를 달려내려와 그를 와락 부여잡았다. 《안된다! 가면 안돼!》 어머니는 억척같은 힘으로 자기보다 덩지가 큰 아들을 껴안고 실성한듯이 필사적으로 웨쳤다. 수헌이는 그 절망적이고도 광적인 포옹에 몸을 맡긴채 묵묵히 서있었다. 《어서 들어가자. 이제라도 네가 자기를 뉘우치고 론문인지 뭔지 그걸 내놓으면 할아버지는 용서해주시겠단다. 무엇때문에 그까짓 종이 몇장에 네 인생을 망치겠다는거냐?》 수헌이는 눈물에 젖은 어머니의 얼굴을 차마 마주볼수 없었다. 그래서 외면한채 갈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어째서 못한다는거냐? 제발 부탁이다. 빈다. 넌 이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네가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간다는거냐?》 《어머니, 그렇다면 저와 함께 가십시다.》 아들을 힘껏 그러안았던 어머니의 두팔에서 차츰차츰 기운이 풀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어디로 간다는거냐?》 수헌이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어머니의 눈물에 젖은 절망적인 얼굴에 비양과 조소의 빛이 떠올랐다. 《너를 종시 꼬드겨낸 그 빈털터리 병신령감을 찾아서 양로원으로 가자는거냐?》 수헌이는 소스라쳐 놀랐다. 어머니는 양로원에 누가 있는지 이미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르는척 했다. 《어머니! 그분을 모욕하지 마세요! 그는 나의 친할아버지와 같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성이 나서 큰소리를 치자 녀인은 어리둥절해졌다. 《어머니, 나의 원래 이름은 무엇입니까?》 녀인은 당황해서 변명하듯이 애원조로 말했다. 《애야, 이제 와서 그건 알아서 뭘하겠니? 무슨 소용이 있어? 이름을 고친것도 다 너를 위해서였다. 너를 굶겨죽일수가 없어서 이 에미는 다시 가정을 이루게 된거야.》 《어머니, 제 원래 이름은 김순기지요?》 대답이 없었다. 《제 할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녀인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른다. 알고싶지도 않다.》 《어머니, 아셔야 합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김혁창입니다. 할아버지는 지리산과 옥중에서 용감히 싸우다 희생된 통일애국투사입니다. 지금 양로원에 계시는 강용찬이라는분도 마찬가지랍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자입니다. 내가 어떻게 달리 처신할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강용찬선생님을 친할아버지로 모시고 따르겠습니다.》 《공연한 생각일랑 그만두어라. 어쨌든 너를 길러주었고 장래를 책임져주실분은 여기에 있는 할아버지가 아니냐. 글쎄 할아버지가 너에게 못해준게 뭐냐? 대학에 보내주었고 승용차까지 사주었지? 양로원에 있다는 그 령감은 네가 어렸을 때 사탕 한봉지와 장난감권총밖에 사준게 없단다.》 어머니의 사고방식이 너무도 유치하고 단순해서 수헌이는 저도 모르게 빙긋이 웃었다. 《어머니, 그런게 아니랍니다. 강용찬선생님은 나에게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고귀한것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난 보람이 있게 살수 있도록 가르쳐주었지요.》 《애야, 어쨌든 제발 여기서 살자꾸나.》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마지막희망을 잃은 녀인은 맥이 탁 풀려서 쓰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기운을 내십시오.》 수헌이는 어머니를 일으켜세우려고 허리를 굽히며 두손을 내밀었다. 《나를 건드리지 말아라.》 별안간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들이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게 쌀쌀하게 울렸다. 수헌이는 꼼짝없이 굳어졌다. 아들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친 녀인은 가까스로 일어나 돌아서더니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한계단 또 한계단 올라갈수록 그 녀자는 아들로부터 영영 멀어지고있었다. 아들은 굳어진 자세로 자기의 곁을 떠나가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고있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빈궁의 밑바닥에 내버려두고 저 혼자 부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어머니의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마지막계단을 차마 올라서지 못한채 녀인은 돌아서며 다시 달려 내려가려고 했다. 이때 누군가 자기의 손목을 잡아끌어당겼다. 돌아보니 남편이였다. 《여보! 제발 부탁이예요. 저 애를 용서해주세요. 가지 못하게 붙잡아줘요!》 녀인은 터져나오는 눈물로 절절히 호소했다. 남편은 괴로운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랬으면 좋겠소만 당신의 아들은 벌써 가버렸구려.》 《예?!》 녀인은 얼른 고개를 돌리며 계단밑을 굽어보았다.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영영 가버린것이다. 《아… 》 그 녀자는 맥없이 눈을 감더니 그대로 어푸러졌다. 실신한 안해를 남편이 그러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