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산은 수백년전부터 왜인들이 무시로 드나들던 항구도시여서 그런지 어느 거리나 왜풍에 쩌들어버렸다. 특히 번화한 시내중심을 째고 나간 카페거리는 완전히 일본식이였다. 간판들은 알락쿵달락쿵 하고 음식은 들크무레했으며 반주음악도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요사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가운데 박혀있는 음식점인 《진주특산》에는 민족고유의 정서랄가 토색이랄가 어쨌든 령남지방의 전통적인 향취가 다행히도 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이 음식점의 간판에는 진주촉석루의 고색창연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안에 들어서면 수묵화를 그린 족자들이 벽에 걸려있다.

그 족자들가운데는 촉석루를 노래한 다음과 같은 옛시를 써넣은것도 있다.

 

천고에 처량해라

진주 남강물이여

성밑에 이르러선

울며 가지를 못하누나

세 장사는 당당한

사나이들이로다

연약한 기생도

절개지켜 죽었나니

 

이 족자밑에는 손으로 태엽을 감아주는 낡아빠진 구식축음기가 놓여있는데 《오케》니 《빅타》니 하는 오래된 레코드판까지 몇장있어 인기가 대단했다.

어디 그뿐이랴. 진주벌에서 나는 쌀로 지은 흰쌀밥에 남강이나 섬진강의 잉어로 끓인 매운탕에 진주나 하동의 특산인 참대순료리, 문경의 참나물로 담근 김치, 천왕산의 돌버섯볶음과 같은건 《진주특산》의 고정음식으로서 요즘은 여기에 오지 않고서는 구경조차 할수 없는것이였다.

식후에는 차대신에 대구의 사과나 배로 만든 화채가 나오기도 했다.

하기에 나날이 서양화, 일본화되여가고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이 음식점을 즐겨 찾는다. 《진주라 천리길》이나 《울며 헤여진 부산항》을 들으며 고추가루를 얼벌벌하게 친 잉어탕을 안주로 곡주 한병 달게 마시며 시국을 론하는 재미란 꽤 즐겨볼만 한것이였다. 서양료리만 먹는다는 족속들도 가끔 여기에 들리군 했다. 그들도 입맛이 산뜻한 참나물김치나 참대순료리를 좋아하는 까닭에… 하여 《진주특산》은 늘 만원이였다.

깨끗한 조선바지저고리를 입고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을 친절하게 맞아들이군 하는 주인 심룡세는 고객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그를 두고 고객들은 일정때 무슨 운동에 관여했다느니, 전쟁때는 기관차를 몰다가 지리산에 들어갔댔다느니, 그후엔 감옥살이도 했다느니 하고 수군거리군 했다. 한마디로 말하여 고객들의 눈에 비치운 심룡세는 파란만장의 력사와 혼란된 현실속에서도 민족의 얼과 인간의 량심을 지켜싸웠고 지금도 지키고있는 우국지사였다.

언젠가 한 일본인관광객이 여기에 들어왔다가 구식축음기에 눈독을 들이고 심룡세에게 흥정을 건 일이 있었다. 자기는 골동품수집가인데 그걸 주면 거액의 돈을 내겠다고 했다. 그 액수란 실로 대단해서 웬간한 음식점 하나를 통채로 살수 있었다. 하지만 심룡세는 그 유혹적인 흥정에 무서운 침묵으로 대답했다. 상대방을 쏘아보는 그의 두눈에선 시퍼런 불줄기가 뿜어나오는것만 같았다. 일본인관광객은 기가 질려서 비실비실 뒤걸음을 치다가 의자에 걸려 벌렁 나자빠졌다.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손님들이 동시에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건으로 하여 심룡세는 고객들로부터 더 존경을 받게 되였고 음식점의 인기도 더 높아졌다.

심룡세내외는 부산대학교에 다니는 외동딸 진주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들부부의 공통된 견해에 의한다면 외동딸은 가정에 화목을 조성해주고 부를 가져다준 복동이였다. 사실 그 애가 태여나지 않았더라면 심룡세는 안해와 갈라질번 했다.

결혼을 하고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무리 아글타글해도 살림이 펴이지 않았다.

안해는 감옥살이후과로 몸이 허약해서 사내구실도 바로 못하는 나이든 남편을 더이상 존경하려 하지 않았다. 쩍하면 짜증을 내고 바가지를 긁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룡세는 술을 퍼마시고 주먹을 휘둘렀다. 차마 연약한 녀편네를 때릴수는 없어서 이불장이나 찬장을 왱강댕강 쥐여박군 했다. 그리고는 술이 깨면 자신의 망동을 후회했고 젊은 안해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런 놀음이 계속되자 어머니가 물려준 찐빵집도 거덜이 나게 되였다.

아무래도 사람 살기엔 도소재지가 나을상 싶어서 그는 찐빵집을 팔아버리고 대구로 갔다.

거기서 어찌어찌하다가 손님목이 좋은 교도소앞거리에 술집을 차려놓게 되였는데 그때에야 비로소 안해가 입쓰리를 되게는 하더니 딸을 낳은것이였다.

자기도 다른 녀인들처럼 어머니가 되고싶었던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소원을 드디여 성취한 안해는 사뭇 살틀해졌다. 녀편네가 곁에서 쨍쨍거리지 않고 매양 정답게 웃어주니 룡세는 신바람이 났다. 그래서 금옥같은 딸의 이름을 진주라고 짓고 술집간판도 《진주찐빵집》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진주찐빵집의 특색을 살리려고 어머니가 물려준 가산가운데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장난 구식축음기를 수리하여 틀어놓았다. 그러자 찾아오는 손님들이 날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쪼들렸던 살림이 퍼그나 펴이자 사람 살아가는 재미란것을 알게 되였다.

이럴 때 방금 교도소에서 나온 강용찬을 만나게 된것이였다.

그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차마 멀쩡한 정신상태로는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도를 넘어 지나치게 마셨고 취해서 쓰러졌다. 그대로 곯아떨어졌다가 아침에 깨여나서 하도 목이 컬컬해서 랭수를 한사발 벌컥벌컥 들이키고나니 강용찬이가 생각났다. 방안을 둘러보니 그가 없었다. 안해에게 물어보니 어제 밤에 부산으로 떠났다고 했다.

《강형에게 려비가 없을텐데.》

《당신이 주질 않았나요.》

《음, 그랬지. 거 혼자서 꽤 찾아가기나 했을가? 함께 갔어야 하는건데… 왜 하루밤 쉬여가게 하지 못했소?》

《쉬라는데도 고집을 쓰며 떠나시더군요.》

《내 부산에 갔다오겠소.》

부랴부랴 차비를 하고 집을 나서려던 룡세는 미타한 생각이 들어서 안해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보, 엊저녁에 강형이 무슨 말을 했소? 나에 대해서 무슨 소리를 한게 없소?》

안해는 자랑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지리산에서 싸움을 잘했다고 하시더군요.》

《감옥이야기도 합디까?》

《아니요.》

룡세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여보, 아무래도 강형을 당분간 우리가 돌봐주어야 하겠소.》

《그건 어째서요?》

《글쎄 그럴만 한 사정이 있다니까.》

심룡세는 부랴부랴 부산으로 갔다.

김혁창의 아들을 만나보니 신색이 좋지 않았다. 우려하던바 그대로 강용찬은 동지의 아들과 즐겁지 못한 상봉을 하고 헤여진것이였다.

그는 인석이와 함께 부산시내의 숙박업소들을 다 뒤져보았지만 강용찬을 찾지 못했다.

심룡세는 며칠후 집으로 돌아왔다.

안해가 남편이 부산에 갔던 일이 궁금해서 물어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강용찬을 만나본 이후로 마음이 불안하고 뒤숭숭해져서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찐빵집창문으로 교도소의 높은 담벽이 바라보였다. 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지들이 그 담벽을 뚫고 자기를 지켜보는것만 같았다.

번민과 고민끝에 그는 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손님목이 좋아서 영업이 잘되는 이 명당자리를 왜 뜨지 못해서 안달이냐고 푸념을 하는 안해를 종시 설복시켜서 멀찌감치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종적이 묘연해진 강용찬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비록 마음에 없는 전향서를 써서 동지들을 배반했지만 어린시절부터 자기를 참된 길로 이끌어준 강용찬이와의 개인적인 우정만은 지키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 강용찬의 모습을 더는 볼수 없었다.

김혁창의 아들은 이듬해 가을 상선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상선이 항해도중에 사고로 침몰됐다나. 수명이 지난지 오랜 상선인데 기업주가 우정 사고를 내고 굉장한 보험금을 타먹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뒤늦게야 그 소문을 듣고 인석이네 집에 찾아가니 거기서는 벌써 낯도 모를 사람이 살고있었다. 인석이의 처는 재가를 했다고 했다.

이젠 십여년전의 일로 되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의 인정이라는것도 그리되는 모양이다. 그는 강용찬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홀연 바람처럼 사라진 그의 행적을 두고 더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량심의 가책을 받게 되는 지난날을 돌이켜보기보다는 오늘의 돈벌이가 더 재미있었고 나날이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나는 외동딸을 바라보며 래일을 그려보는것이 더 흐뭇했다.

진주는 단출한 가정의 기쁨이였고 웃음이였고 미래의 전부이기도 했다. 흠이라면 너무도 곱게 생긴게 흠이였고 지나칠 정도로 마음이 어진것도 흠이였다. 딸은 남에게 없는것이 자기에게 있으면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나했고 남의 불행을 보면 자기의 불행처럼 진심으로 슬퍼했다.

눈 감으면 코 베여갈 이 험한 세상에서 저렇게 어져가지고 장차 어떻게 살아가겠는지 근심이 될 지경이였다.

진주는 늘쌍 밝은 미소가 남실거리는 두눈이 매혹적이였다. 바로 그 눈동자에 어쩌다가 슬픔과 고민의 그림자가 비끼면 심룡세의 마음도 공연히 울적하고 불안해지군 했다. 그래서 너 어째서 그러느냐? 하고 물으면 학교에 갔다오던 길에 동냥하는 늙은이를 만났다거나 차에 치운 사람을 보았다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를 보았다는 말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날 저녁에도 진주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웃는 눈이 아니라 우는 눈으로 말없이 집에 들어섰다.

룡세네 부부는 또 무슨 일이 생겼군 하는 눈빛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

안해가 먼저 물어보았다.

《진주야, 왜 그러니?》

수심에 잠긴채 인사도 없이 저녁상을 차려놓은 거실을 지나쳐서 자기 방으로 가려던 진주는 하는수없이 멈춰섰다.

《또 무슨 일이 있었니?》

이번에는 룡세가 조심스레 물었다.

진주는 살풋이 두눈을 내리깐채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자, 이리와서 앉아라. 식사를 하면서 무슨 사연인지 들어보자꾸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식탁에 마주앉은 진주는 선뜻 밥술을 들지 못했다.

《난 방금 양로원을 찾는 웬 할아버지를 만났댔어요. 아마 그 할아버지에겐 집도 자식들도 없는 모양이예요.》

심룡세는 안해가 부어준 약주를 한잔 달게 마시고 돌버섯볶음을 안주로 집었다.

《집이 있고 자식들이 있으면야 무엇때문에 양로원으로 가겠니.》

《그 할아버진 정말 불쌍해요. 아마 저녁식사도 못했을거예요. 퍼그나 지치고 허기진 기색이였어요.》

심룡세는 약주를 또 한잔 달게 마시며 무심코 응대했다.

《넌 별 걱정을 다하는구나. 어서 밥이나 먹어라. 국이 식겠다.》

진주는 여전히 그 생각에 잠겨 밥술을 들지 못했다.

《아버지보다 퍽 늙은신분이였어요.》

《늙었으니까 양로원으로 가는거지.》

《오른팔이 없는 불구자인데 창백한 얼굴색이랑 차림새랑 보니 방금 감옥문을 나선것 같애요.》

심룡세는 흠칫 몸을 떨었다.

하마트면 손에 쥔 술잔을 떨굴번 했다. 그는 당황한 눈길로 안해를 피뜩 쳐다보았다. 자기를 마주보는 안해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비껴있었다.

진주는 눈이 둥그래졌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심룡세는 얼른 자기의 얼굴표정을 수습했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는 술맛이 싹 없어져서 술잔을 상에 내려놓았다.

《아버지, 나 래일 그 할아버지를 찾아가볼가?》

어려운 부탁을 할 때처럼 진주는 반응석조로 물었다.

심룡세는 헛기침을 하고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녀가 양로원에 찾아가면 남들이 웃는다.》

《그래두… 그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진주는 아버지가 무엇때문인지 몹시 언짢아 한다는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헌데 아버진 왜 식사를 안하세요?》

《네가 밥은 안 먹고 자꾸만 그런 소리를 하니까 나도 밥을 먹고싶은 생각이 없어졌구나.》

진주는 얼른 사과의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제가 밥을 먹을테니까 아버지도 식사를 하세요. 예?》

《오냐.》

심룡세는 마지 못해 잔에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그 달콤하던 술이 쑥물처럼 쓰거웠다. 안주로 입에 넣은 돌버섯볶음이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았다.

애써 흔연스러운 태도를 지으며 겨우 식사를 끝낸 그는 자기 방으로 갔다.

심장이 활랑거리고 불안스러워서 진정제를 찾는데 안해가 조용히 들어왔다.

《여보, 진주가 만났다는 로인이 당신이 찾던 그분이 아닐가요?》

심룡세는 공연히 두눈을 흡떴다.

《그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요?》

《당신보다 늙었고 오른팔이 없다질 않나요.》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을상 싶소?》

룡세가 증을 내자 안해는 더 말을 못했다.

《여보, 진주는 너무 어진게 탈이야.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모르겠거든. 언제 봐야 아무런 리해관계도 없는 일을 놓고 괜한 걱정을 한단 말이야. 잘 타일러서 양로원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라구요. 알겠소?》

안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상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예. 그런데 진주아버진 나에게 뭐 숨기는게 있지 않나요?》

심룡세는 속이 철렁했다.

그럴수록 겉으로는 태연해지려고 애쓰면서 롱담조로 반문했다.

《아따, 그건 무슨 소리요? 내가 머리가 허얘가지고 무슨 바람을 피우겠소?》

《아니, 됐어요.》

남편이 딴전을 부리자 안해는 단념한듯이 물러섰다.

이게 뭐야? 진주가 만났다는 그 령감이 강형이란 말인가? 그새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왔단 말이지. 그러니 살아있었다는건가?

아니, 그럴수 없지. 그럴수가 없는거야.

심룡세는 세차게 채머리를 흔들었다.

8

 

이튿날.

점심시간이 아직 안되였는데 사진기와 록음기를 둘러멘 사나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면서 《진주특산》의 문을 두드렸다.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있던 심룡세는 안해에게 빨리 접대준비를 하라고 이르고나서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주인님, 오래간만입니다.》

정윤수가 선참으로 웃어반기며 들어왔다.

《아, 어서 오시오. 정선생》

심룡세는 두팔을 벌리고 그를 모셔들이다싶이 각별한 친절을 보였다.

정윤수는 이 음식점의 령남특산음식과 특히는 30년대에 제작된 레코드판들을 가지고있는 구식축음기에 대하여 신문에 큼직하게 소개해줌으로써 심룡세의 영업을 크게 도와준 기자였다.

정윤수는 구식축음기의 태엽을 감아주며 레코드판을 고르고있는 동료들을 눈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들과 함께 토픽뉴스감취재를 갔다가 문전거절을 당하고 쫓겨오는 길이랍니다.》

《허, 취재대상자가 누구이길래 고명한 기자선생들을 튕겨냈는가요?》

《양로원에 있는 늙은이지요.》

《양로원이요?》

《예, <보안감호소>에서 출소한 비전향장기수랍니다.》

순간 심룡세는 심장이 턱 멈춰서는것만 같았다.

《난 그대로 물러설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렴치불구하고 그 로인의 방으로 쳐들어갔지요. 겨우 몇마디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정윤수가 취재를 독점했다고 저 친구들이 한턱 내라는거죠. 그런데 이 호주머니가 비여서 딱한 일이 아닙니까.》

심룡세는 가슴을 진정시키노라 숨을 길게 내쉬였다.

《정선생의 호주머니도 마를 때가 있소?》

《양로원에 갔다가 그냥 나올수가 없더군요.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꺼내서 총무에게 주면서 감옥에서 오랜 기간 고생하신분의 건강회복에 써달라고 했습지요.》

《기부를 한셈이군요.》

《예. 만나보니 저절로 고개가 숙어져요.》

정윤수는 정색한 어조로 계속했다.

《그 로인이 내가 세상에 태여나서 지금까지 살아온것보다 더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고생했거든요. 분단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말입니다. 지금도 애오라지 바라는건 조국통일이래요.

주인님,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외상으로 저 친구들에게 술 한잔 마시게 해주십시오.》

《정선생의 친구들을 어찌 소홀히 대할수 있겠소. 잘 대접해드리지요.》

태엽을 다 감은 구식축음기가 낡은 레코드판을 돌리기 시작했다.

남성가수의 처량한 노래소리가 애절한 음조를 타고 끊길듯말듯 가까스로 흘러나온다.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가

 

그리스도교방송기자가 흥분해서 손바닥으로 식탁을 탁 쳤다.

《어랍쇼! 이거 진짜 리규남이의 목소리구만.》

모두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여기 앉아서 <진주라 천리길>을 들으니 어기여차 노저어서 이 나라 력사를 거슬러 올라가는것만 같소이다.》

《이 노래를 누가 지었더라?》

《리가실이 작사에 리운정이 작곡이지.》

《그 재사들이 지금도 살아있는가?》

《광복직후에 월북했다더군. 작곡가의 본명은 리면상인데 이북음악계의 대가로 쟁쟁하다는거야.》

그리스도교방송기자가 록음기를 식탁우에 올려놓고 노래를 록음하려고 서둘러댔다.

심룡세는 허겁지겁 달려가서 손을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록음은 할수 없습니다.》

《어째서요?》

《이 노래는 <진주특산>의 독점이지요.》

《주인님은 이 레코드판을 어디서 구했습니까?》

《일정때 리규남이가 내 고향인 진주에 와서 노래를 부르면서 레코드판을 팔았지요. 그때 우리 어머니가 산거랍니다.》

《아, 유명한 가수가 행상군노릇을 겸했구만.》

이때 젊은 접대부가 술과 음식을 내왔다.

《자, 노래는 훔쳐가지 말고 그저 감상하면서 술이나 마시십시오. 섬진강의 잉어로 끓인 매운탕에 천왕산의 돌버섯볶음도 다 우리 <진주특산>의 독점료리들입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정윤수가 사례를 하고나서 술병을 들고 동료들에게 한잔씩 부어주었다.

그리스도교방송기자는 아쉬운대로 록음기를 식탁밑에 내려놓고 궁금한듯이 정윤수에게 물었다.

《자네가 군말없이 한턱 내는걸보니 기습취재가 소득이 있는 모양이구만. 그래 사진 한장 찍었나?》

정윤수는 도리질을 했다.

《사진이 다 뭔가. 못 찍었네.》

《자네의 독점뉴스를 절대로 다치지 않을테니 우리한테 먼저 공개하라구. 우린 공짜술이나 얻어먹자고 자네를 따라온게 아닐세. 그걸 들어보자는거야.》

모두들 어서 이야기하라고 재촉했다.

정윤수는 먼저 술 한잔 마시고 안주까지 집어먹고나서야 말문이 열린듯 입을 뗐다.

《로인의 이름은 강용찬이고 나이는 일흔셋. 경남 하동출신이네. 일정때 탈가하여 만주로 들어갔는데 광복직후에 팔로군에 입대했더군. 아니, 팔로군이 아니라 장개석이와 싸우는 민주련군인데 거기에 속한 조선인부대가 49년도에 귀국해서 인민군대에 배속됐다는거야.

전쟁때 강선생의 부대가 여기 남해바다가에까지 내려왔댔다누만. 아마 후퇴때 락오된 모양이요.

지리산에 들어갔다가 부상을 당하고 체포되여 지금까지 감옥에 있었네.

이건 본인이 말한게 아니라 양로원의 총무가 제공해준 자료네.》

《그러니까 그 로인이 항일전쟁에도 참가했던분이로구만. 대단한 인물이요.》

누군가 이렇게 탄복을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였다.

심룡세는 가슴이 다시금 활랑거려서 숨이 가빠났다.

옛 상처는 아물고 그 허물자리조차 지워져버린 오늘에 와서 안정되고 만족한 자기의 생활을 뒤흔들어놓을셈인지 강용찬이라는 존재가 불쑥 나타난것이였다.

《나는 강선생에게 출소하신 소감이 어떤가고 물었소. 그러자 파격적인 대답을 하시더군. 자기는 감옥밖으로 나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거야.》

모두들 눈이 둥그래졌다.

정윤수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동료들을 돌아보며 쓰겁게 웃었다.

《당국에서 전향을 못 시킨 장기수를 곱게 내보낼리가 있겠나. 총무가 그러는데 무슨 보안관찰처분이라는걸 했다누만.》

기자들은 이제야 깨도가 되였는지 고개를 끄덕이였다.

《강선생의 견해는 독특한데 매국노가 애국자를 재판하여 감옥에 넣었다는거야.》

그리스도교방송기자가 제꺽 공감을 표시했다.

《거야 리승만이를 념두에 둔것이겠지.》

곁에서 그 말을 받아넘겼다.

《왜 리박사뿐이겠나. 오까모도중위님도 계시는데.》

《전두환이는 어떻고?》

《아마 현 당국자까지 포함시켜야 할걸.》

기자들이 받고 채기로 툭툭 한마디씩 하는 소리가 위험계선을 넘어서자 심룡세는 불안해서 창밖을 흘끔 쳐다보았다.

정윤수가 한수 더 뜨며 비꼬았다.

《그래도 현 당국자야 강선생을 감옥에서 내보내지 않았나. 이건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에로의 일보전진일세.》

누군가 코웃음을 쳤다.

《이보게, 보안관찰처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서 내보낸것도 인권보장인가?》

《그게 바로 당국의 인권보장이라는거야.》

모두들 앙천대소했다.

정윤수는 조용하라고 손가락을 입술앞에 세워보이고나서 목소리를 한결 낮추었다.

《어쨌든 력대적으로 그런 자들이 대통령을 해자셨으니 일이 꺼꾸로 되였거든.

강선생이 또 뭐라고 했는지 들어보게.

자기자신보다도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가야 할 곳은 감옥이라는거요. 어떻소?》

모두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그래 자네들에게 이 무서운 진실을 그대로 보도할 용기가 있나?》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강선생은 기자제씨들과 애당초 상대를 안하겠다는거야. 진실을 보도할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아무때고 찾아오라더구만.》

너나없이 술 마실 생각조차 잊어버렸는지 고개를 떨군채 숨을 죽이고있었다.

《난 강선생에게 반생을 철창속에 있으면서 전향을 하지 않은 리유가 뭔가고 물었네. 그러자 선생은 즉시에 대답하기를 죽고싶지 않았기때문이라는거야.》

심룡세는 어리둥절해졌다.

죽고싶지 않아서 전향을 하지 않다니?!

죽고싶지 않아서 전향을 한 자기로서는 도저히 그 말을 리해할수 없었다.

다른 기자들도 눈이 퀭해서 정윤수를 지켜본다.

《강선생의 견해에 의하면 사람이 짐승과 다른것은 사상과 신념이 있기때문이라는거요.

하기에 사상과 신념을 버린다는것은 곧 그 인간의 죽음을 의미한다는거지. 그런 의미에서 사상과 신념을 지켜 죽은 사람들은 오히려 살아있다고 볼수 있다는거요.》

순간 심룡세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해쓱해졌다.

강용찬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를 념두에 두고 그 말을 한것만 같았다.

그리스도교방송기자가 크게 감심한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건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견해로구만.

마치 성서의 한 대목처럼 비장하고 숭엄하오.》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비전향장기수만이 할수 있는 말이지.》

《그럼 전향한 사람들은 뭐라고 말을 할가?》

《애당초 말을 못하지. 그들은 산 목숨이 아니니까.》

심룡세는 낯이 근질거려서 고개를 들수 없었다.

기자들이 자기를 빗대놓고 이런 비난을 하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장소에서 음식점주인을 안중에 두고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정윤수는 흥분된 어조로 계속했다.

《난 강선생에게 마감으로 통일이 언제쯤이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네.

그러자 선생은 조국통일은 바란다고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우리 민족모두가 애써 노력하기에 달린거라고 하면서 기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만약 언론이 진실을 그대로 보도하게 되면 통일은 인차 될것 같다, 이렇게 의미있게 대답하시더군.》

누군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아니, 반세기가 되여오도록 이 나라가 갈라져있는 책임을 우리가 지라는건가?》

《우리가 응당 책임을 져야지!

생각해보게. 지금껏 어느 언론사나 할것없이 북쪽의 관계기사들을 어떻게 써냈나? 그저 무턱대고 헐뜯는 식이였지.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조국통일을 위한 이남민중의 투쟁의 력사도 외면하고 있었네.》

저으기 격해서 언성을 높이는 정윤수를 모두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윤수군, 자네 비전향장기수와 잠간 만나고 나오더니 뭔가 좀 달라졌구만. 빨간 물이 들었나?》

누군가 롱담조로 말했지만 정윤수는 개의치 않고 계속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강선생이 한 말을 그대로 기사화해서 신문에 내겠네.

이 기회에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자는거야.

당신들이 제 한목숨과 식구들을 먹여살리자고 생존경쟁판에 부대끼면서 서로 속이고 다투고있을 때 분렬된 조국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감수하며 독감방에서 검은 머리가 희여진 사람들이 있는줄 알기나 했는가? 이분들이야말로 민족의 자랑이다. 이분들을 맑은 거울로 삼아 자신의 인간됨을 비추어보자. 이분들처럼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민족을 생각하고 통일을 위해 헌신해보자.

이렇게 나도 진실을 말해보자는거야.》

《그러다가 콩밥을 먹게 되면 어쩐다?》

《내가 세상에 태여나기도 전부터 지금까지 콩밥을 잡수신분들이 있는데 내가 콩밥을 먹는걸 두려워할것 같은가?》

모두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흥분이 지나쳐서 얼굴까지 벌겋게 상기된 저 량반이 희떠운 소리를 하는것인지 진심을 표명한것인지 가늠이 가지 않아 고개를 기웃거렸다.

사실 정윤수는 강용찬을 만나고 나올 때만 해도 이런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기사를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한잔 걸치고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격동되여 스스로도 놀라운 이런 결심을 내린것이였다.

심룡세는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선생, 그런 기사를 써내면 강용찬이라는분이 화를 입을수 있으니 심사숙고해요.》

그제서야 음식점주인의 존재를 느낀듯 정윤수는 흘끔 돌아보았다.

《왜 그분이 화를 입는단 말입니까?》

《그분이 출소는 했지만 보안관찰처분을 받고있다기에 하는 말이지요. 그건 지금도 그분이 법의 감시속에 있다는거예요. 만약 감옥에서 수인들이 그런 모난 말을 하면 당장 엄정독거를 당하게 된답니다.》

음식점주인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측면을 튕겨주기에 정윤수는 조심스레 물었다.

《엄정독거란 어떤것입니까?》

다른 기자들도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음식점주인을 바라보았다.

《수인의 손목에 수정을 채우고 0.75평짜리 독감방에 넣는 처벌이지요. 식사시간에도 수정을 풀어주지 않아요. 그러니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서 입으로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 광경을 상상해보기조차 기가 차서 모두들 혀를 찼다.

《차마 그렇게까지야.》

《그건 인권유린의 극치요.》

《교도소 간수놈들도 사람종자가 옳긴 옳은가?》

격해서 떠들어대는 기자들을 바라보던 심룡세는 침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황소를 그런 감방안에 넣어두면 우황이 생긴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 사람이 어디 견디여낼수 있겠나요. 신경이 약한 수인들은 미쳐버리고 말지요.》

이것은 그 모진 고통을 제 몸으로 겪어본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였다.

그것을 문득 깨달은 정윤수는 음식점주인을 새삼스레 여겨보았다.

그런 모진 고통을 겪었다고 하기에는 상대방의 신수가 너무나도 멀끔했다.

그러나 유들유들하게 군살이 진 그의 얼굴은 진통을 참는듯 잔뜩 이그러져서 푸들푸들 떨고있었다.

《주인님은 감옥사정을 잘 아시는군요.

여기에 앉아서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정윤수는 일어나며 자리를 권했다.

심룡세는 쓸데없는 참견을 한 자신을 후회했다. 그는 옥중에서 고생을 하노라 일찍부터 희여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백발이 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그저 당신들에게 차라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감옥에는 가지 말라고 당부하고싶소.》

심룡세는 꺼질듯이 무거운 숨을 내쉬고나서 돌아섰다.

기자들은 저으기 불안하고 의기소침해진 눈으로 당장 쓰러질듯이 비칠거리며 주방안에 들어가는 음식점주인의 뒤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9

 

《부산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비전향장기수 양로원에 입소.

전 조선인민군 군관이며 지리산빨찌산이였던 비전향장기수 강용찬씨가 36년이라는 길고 긴 감옥생활을 마감짓고 보안감호소에서 나와 부산양로원에 입소하였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하동이지만 부양해줄 사람이 없다고 한다.

반생을 옥중에서 보낸 73살의 늙은이가 가야 할 곳은 양로원뿐인가?

잃어버린 청춘, 잃어버린 일가친척, 홀로 남은 그에게는 오른팔도 없다. 남은것은 백발뿐인가?

강씨는 출옥했지만 감옥밖으로 나온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기자들의 인터뷰요청을 일체 거절하였다.

정윤수는 심사숙고하여 이처럼 보도형식의 짧은 기사를 써냈지만 당국의 보도지침을 어겼다는 리유로 지방검찰청에 호출당했다.

그를 불러들인 검사는 학력으로 보나 근무년한과 사건처리실적으로 보나 로숙한 경험으로 보나 법조계의 좌상격이여서 칠순이 가까와오도록 고등검찰에서 《국가안보》상 중대사건들만 전적으로 맡아보다가 말년에 아들네가 사는 부산으로 전근해온 최성규였다. 고등검찰청에서는 력대 《대통령》들의 신임을 받아온 이 희한한 존재인 반공투사를 죽는 날까지라도 그 자리에 앉혀두고싶어했다. 그러나 본인은 광복직후부터 오늘까지 일개 검사로 앉아 뭉개는데 이젠 그만 진절머리가 나서 인생말년이지만 대담하게 방향전환을 하여 《국회의원》휘장이라도 한번 달아보고야 죽을 생각을 했던것이다. 이런 야심을 실현하자면 자기의 출신지역에 가서 검사라는 유리한 직권을 리용하여 착실히 발판을 닦아야 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늙어갈수록 젊었을 때보다 원기가 왕성해지고 성격이 더 기승스러워져서 무슨 일이든지 한바탕 소란을 피워놓고 제멋대로 해제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최성규가 바로 그런 인물이였다.

그는 본적지인 부산에 내려온지 한해도 채 못되지만 어느 구석에든지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는데다가 일단 꼬리를 잡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적수의 멱살을 물어메치는 솜씨를 한두번이 아니게 보여준것으로 하여 《부르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바로 그 《부르독》에게 꼬리를 잡히운 정윤수는 몹시 불안했다.

최성규는 그에게 신문에 실린 문제의 그 기사를 그 무슨 유력한 증거물처럼 가리키며 능글맞게 웃었다.

《이게 당신의 창작품이라지요?》

《제 재간에 무슨 창작을 다 하겠습니까.》

《음, 그러니까 나는 져널리스트이지 라이터는 아니라는 건데…》 최성규는 담배를 한가치 뽑아물고 라이타를 절컥거렸다.

《내 보기엔 당신이 쏠씨올리스트 같구먼 그래. 어떻소?》

기자를 작가라고 추어올리더니 사회주의자라는 감투까지 씌워놓는 판이였다.

자존심이 강한 정윤수는 이런 조롱을 참기가 고통스러울 지경이였다.

《검사님, 모욕적인 언사는 삼가해주십시오.

나는 내가 무슨 위법행위를 했기에 과분하게도 여기에 호출되여 왔는지 알고싶습니다.》

《당신은 자기가 쓴 이 기사에 실린 강용찬이라는 자와 꼭같은 빨갱이요. 알겠소?》

정윤수는 과연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리해할수 없군요.

당국이 석방시켜 내보낸 량심수의 출소소식을 보도하면 저절로 빨간물이 든다는 말씀인가요?》

최성규는 그래도 기자나부랭이랍시고 검찰청에 불려와서도 제법 코를 드는 이 젊은 녀석을 한대 후려갈기고싶은걸 겨우 참았다.

그는 화가 치밀어오를수록 자제력을 발휘하여 겉으로는 친절하게 웃으며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이봐요. 기자선생.

물론 당신이 비전향장기수의 출소소식을 써낸 그자체는 잘못된것이 없어요.

문제는 기사의 내용이란 말이죠.

당국에서는 강용찬이가 전향을 하지 않은 완고한 빨갱이지만 년로한 점을 고려해서 별도로 석방시킨거예요.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 늙은이를 당국이 운영하는 사회보호시설에 보내주었지요. 이건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견지에서 당국이 민주화를 과감히 실시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 산 실례인거야요.

그런데 고명한 기자선생은 뭐라고 썼나요?

이것을 외면하고 잃어버린 청춘이니 잃어버린 일가친척이니 남은것은 백발뿐이니 이런 지엽적인것을 루루이 강조하면서 마치도 당국이 강용찬의 청춘을 빼앗고 일가친척을 멸살시키고 다 늙어서 죽게 되자 송장처리를 하기 싫어서 감옥에서 내보낸것처럼 묘사했거든요.

특히 강씨는 출옥했지만 감옥밖으로 나온 느낌이 전혀들지 않는다고 했다는 이 대목은 매우 엄중한거예요.

본인이 정말 그렇게 말했나요?

아니면 당신이 꾸며낸건가요?》

정윤수는 사실대로 말하려다가 자칫하면 강용찬에게 화가 미칠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상대방이 아무 말도 못하자 최성규는 부쩍 승이 나서 별안간 말투를 바꾸며 열을 올렸다.

《여보! 이건 결국 양로원이 감옥이라는 소린데 당국이 지출하는 사회복지비로 운영하는 사회보호시설이 그래 교도소나 감호소라는거야?

나쁜놈의 새끼! 솔직히 말해!

이건 새로 제정된 <보안관찰법>을 념두에 두고 한 악담이지?

임마! 법은 곧 국가란 말이다! 너도 국민이야? 어디다 대고 감히 주먹질이야? 건방진 자식! 너따위 놈이 빨갱이와 뭐가 다른가 말이야?》

최성규는 이렇게 생트집을 잡으며 펄펄 뛰였다.

이것은 강용찬이에 대한 간접적인 행패질이였고 분풀이였다. 무능한 당국에 대한 화풀이기도 했다.

최성규도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서야 강용찬이가 출소한 사실을 알게 되였다.

전향을 안하면 감옥에서 무한궤도인생살이를 하다가 늙어죽어야 할 놈이 감옥밖으로 나왔다니 매우 속이 상했다.

박정희의 걸작품인 《사회안전법》을 정치문맹자인 로태우가 뜯어고치는 놀음을 벌리더니 교도소와 감호소의 두꺼운 담벽에 틈사리가 생긴것이였다. 그래 당국자에게 귀먹은 욕을 하고나서도 성이 차지 않아서 기자를 불러들여 달구는중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놈들은 모조리 꽁져서 감옥으로 보내는건데 그 무슨 《민주화시대》라는걸 표방해나선 지금은 곤난했다.

그래도 이런 놈을 처리하는건 검사의 수완에 달린 일이다.

최성규는 송수화기를 들고 신문사 사장을 찾아서 정윤수기자를 당장 해직시키라고 압력을 가했다.

《정윤수라는 기자가 제멋대로 꾸며냈지요.

양로원에 알아보니 강용찬은 인터뷰를 거절한게 확실합니다. 본인이 거절했는데 왜 기사를 써냈는가? 이게 문제지요. 언론의 자유라고 해서 제 생각대로 아무 말이나 망탕하면 됩니까?

사장님이 이 일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는 신문사의 언론활동은 물론이고 행정업무활동까지도 죄다 검토해볼 의향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시끄러워질수 있었다.

신문사라고 모든 면이 청렴결백한건 아니여서 들춰놓으면 구린내가 날건 뻔했다.

《알겠습니다. 해직시키지요.》

사장이 마지 못해 응하자 최성규는 수화기를 놓고 승리자연한 눈길로 꼼짝없이 희생양이 된 정윤수를 바라보았다.

《윤수군, 신문사에 돌아가서 사표나 제출하게.

참, 당신의 출세작이 된 이 창작품도 가지고 가라구, 난 그따위 꾸며낸 기사는 보기도 싫네.》

별치 않은 일로 잠간사이에 밥자리를 떼우게 된 정윤수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그 구변 좋은 입을 가지고도 할말이 없었다.

그는 락심천만해서 검찰청에서 나왔다.

어디로 갈것인가?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사표를 내는건 서두를 일이 아니기에 화김에 술이나 한잔 걸치려고 《진주특산》에 들 렸다.

죽지 부러진 새처럼 어깨가 축 처져서 들어오는 정윤수를 보고 심룡세는 눈이 떼꾼해졌다.

《정선생의 신색이 말이 아니로군요.》

정윤수는 손에 말아쥐고있던 신문을 그에게 주며 쓸쓸히 웃었다.

《그 기사를 쓴 죄로 해직을 당하게 됐지요.

술이나 한잔 주십시오.》

그는 술매대앞의 둥글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룡세는 재빨리 그에게 약주를 한잔 부어주고나서 호기심을 가지고 기사를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아니, 이 정도로 쓴것도 문제가 됩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 <부르독>이 나에게 무슨 원쑤진 일이 있는지 문구를 따져가며 생트집을 걸어서 물어메치는군요.》

《<부르독>이란건 누굽니까?》

정윤수는 잔이 비자 제손으로 부어서 또 마셨다.

《지방검찰청에 그런 로구가 있지요.

최성규라고 서울에서 악명을 떨치던 놈입니다.》

《최성규?!》

심룡세는 이렇게 되뇌이며 진저리를 쳤다.

그놈이 부산에 왔단 말이지. 하긴 강형이 출소한걸 그놈이 달가와 할리 없지. 그놈때문에 강형도 이제 무슨 화를 입게 될는지 모른다.

《정선생, 그래 이젠 어떻게 하시려우?》

《글쎄요. <부르독>이 꼴보기 싫어서 부산을 뜰가 합니다. 서울로 가야지요. 거긴 친구들이 많으니까 굶어죽지 않을 무슨 수가 생기겠지요.》

정윤수는 술기운이 나서 그런지 제법 배포유한 소리를 하면서 돈지갑을 꺼냈다.

《전번에 외상으로 먹은걸 갚아드려야지요.》

심룡세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만두시오.

그건 작별에 앞서 내가 정선생에게 한턱 낸걸로 칩시다.》

정윤수는 돈지갑을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일어났다.

《자, 그럼 실직자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언제면 또 여기에 찾아오게 되겠는지 모르겠군요. 안녕히 계십시오.》

《서울에 가면 전화라도 한통 걸어주시오.》

단골손님을 잃게 된 심룡세는 허전하고 어수선한 심정으로 정윤수를 바래워주었다.

그는 정윤수가 두고간 신문을 사람들의 눈에 띄우지 않는 곳에 치워놓지 못한것을 후회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대학에서 돌아온 진주가 식당의 뒤거두매를 도와주려고 술매대에 나왔다가 그 신문을 보았던것이다.

《아버지, 이 신문을 봤어요? 이 기사말이예요.

강용찬이라는 이분은 며칠전에 내가 만났던 그 할아버지가 틀림없어요.》

진주는 큰일이나 난듯이 몹시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심룡세는 딸애앞에서 몸가짐이 이렇게 거북스러워 보기가 처음이였다.

《음, 나도 그 신문을 봤다.

여보! 빨리 식사나 하자구.》

안해가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렸다.

진주는 밥상에 다가앉아서도 밥을 먹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였다.

《그 할아버지가 지리산빨찌산이였군요.

참, 아버지도 전쟁때 지리산에서 싸웠다고 했지요?》

심룡세는 낯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면서 마지 못해 대답했다.

《음, 그랬지.》

《그럼 이 할아버지를 아시겠군요.》

진주는 신뢰와 기대가 담겨진 맑은 눈동자로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심룡세는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잘 생각나지 않는구나. 그때 지리산엔 입산한 사람들이 쭉 깔렸댔다. 소속두 서로 달랐지.》

진주는 호기심으로 두눈을 반짝이였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됐나요?》

《싸움판에서 거의다 전사했지. 견디다 못해서 도중에 산에서 내려간 사람들도 있고 마지막까지 항전하다가 부득이한 일로 체포되여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단다.》

《아버지는 어떻게 됐나요?》

《나야 뭐…》

심룡세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피하자 긴장해서 남편과 딸을 번갈아보던 안해가 끼여들었다.

《진주야, 밥이나 먹어라.

어서. 국이 식겠다.》

《예.》

진주는 곰상스레 밥을 두어숟갈 뜨다가 무슨 생각에 골똘히 잠겨버렸다.

《너 왜 그러니? 정신이 나간것처럼…》

어머니의 핀잔을 받고서야 진주는 흠칫하더니 방금 꿈에서 깨여 나기라도 한듯 한 표정을 지었다.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가요.

자꾸만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거든요. 아무래도 찾아가봐야 하겠어요.》

심룡세는 안해에게 눈짓을 했다.

안해는 그제서야 남편이 이르던 말이 생각났던지 딸을 타일렀다.

《그건 안된다. 처녀가 양로원에 찾아가다니.

남들이 웃는다. 알겠니?》

진주는 자기가 바라는것을 손에 넣을수 없게 된 어린애처럼 당장에 울 가망이 되였다.

《그래두… 그 할아버진 가족두 친척두 없다질 않나요. 얼마나 외로우시겠나요.》

《네가 그러지 않아도 아버지가 다 생각이 있지 않으리.》

진주의 우는 눈이 당장 웃는 눈으로 변했다.

《정말 그렇군요. 난 공연한 걱정을 했네.》

심룡세는 심기가 대단히 불편해져서 그만 밥상에서 물러나고말았다.

복도로 나간 그는 딸의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잠간 멈춰서서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 아버지가 왜 저러실가요?》

《아마 몸이 편찮으신 모양이다.

진주야, 너 다시는 아버지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지 말렴.》

《왜요?》

《아버지는 지난날을 돌이켜보기 괴로와하시는것 같구나. 생각해보렴.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를… 산에서두 죽고 감옥에서두 죽고… 그분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니.》

심룡세는 갑자기 빈혈이 와서 벽에 등을 기대며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강용찬이가 정윤수에게 했다는 의미심장한 말이 생각났기때문이였다.

사상과 신념을 지켜 죽은 사람들은 오히려 살아있다고 했다지. 차라리 나도 그렇게 죽든가 살았어야 했어. 그랬으면 늘그막에 이런 마음고생도 안했을게 아닌가.

잠시후 안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아버지도 체포되여 십년동안이나 감옥에서 고생을 하시다가 다 죽게 된 몸으로 나오셨단다.

그래서 늦게야 가정을 이룬거야.

우리가 결혼한 초기에도 아버지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막 헛소리를 치군 했단다.

식은땀을 너무 흘려서 속내의가 푹 젖군 했어.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던 그 끔찍한 생각이 자꾸만 나서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다고 하시더구나.》

그런 이야기를 엿듣는것만으로도 골수에 배겨있는 어제날의 그 모진 고통이 되살아나서 룡세는 어금이를 부스러질 지경으로 깨물었다.

《엄마…》

공포에 질린 딸의 목소리는 흐느낌소리로 변했다.

《하기야 이젠 다 지나간 일이지.

아버지처럼 그런 죽을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람들은 누구나 지나간 그 일을 돌이켜보거나 그것을 이야기하는걸 괴로와 하신단다.

양로원에 갔다는 그분도 그래서 기자들을 만나주지 않았을거야.

아버지가 왜 그분을 만나러 양로원에 찾아가고싶어하는 너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는지 인젠 알만 하냐?》

《음… 어머니…》

진주의 흐느낌소리가 더 높아졌다.

심룡세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해 침실로 갔다.

누워야 잠이 올리 만무하기에 침대에 걸터앉아서 줄담배를 피웠다.

아무리 생각을 굴려봐도 강용찬이와의 만남은 피할수 없는것이였다.

어제날 생사운명을 함께 하고 희로애락도 함께 나누던 동지가 외로운 몸으로 양로원에 와있다.

그런데 멀지도 않은 곳에서 어떻게 외면할수 있단 말인가.

인정이나 의리로 본다면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수 없었다.

우선 강용찬이가 이미 동지이기를 그만둔 자기의 그런 호의를 고맙게 받아줄리 만무했다.

설사 강용찬이가 그 호의를 받아줘도 문제였다. 그와 한지붕아래서 사노라면 자신의 떳떳치 못한 과거의 오점이 저절로 드러날수 있다. 이것이 여간만 두렵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되는 경우 안해는 남편을 존경하지 않을것이고 딸자식은 아버지에 대하여 여태 품어온 긍지와 자부심을 잃어버리게 될것이다.

안해와 딸,

이들로 이루어진 단란한 가정은 심룡세에게 있어서 이 세상전부였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 그는 전향을 한셈이다.

그 무슨 대업을 성취하지 못할바에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소박한 행복만은 누려보고싶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굴복하고 감옥밖으로 나와서 온갖 수모를 다 참으며 뼈빠지게 일을 해서 드디여 그 자그마한 행복을 마련해놓았는데 안해와 딸에게서 응당 받아야 할 존경을 잃어버리고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밤이 새도록 종시 잠들수가 없어서 얼굴이 부석부석해진 그는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자그마한 가방에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양로원에 찾아갔지만 막상 강용찬을 만날 일이 두렵게만 여겨져서 정문앞에서 서성거리는데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사나이가 기름내를 맡은 생쥐처럼 쪼르르 달려나왔다.

《로인님, 왜 여기에 서있습니까?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사나이는 아주 친절하게 손을 잡아끌면서 탐욕스러운 눈길로 심룡세가 들고온 가방을 재빨리 훔쳐보았다.

《뭘 망설이는겁니까? 어서 들어가자는데요.

글쎄 자식들이라는게 키울 때뿐이지 다 키워놓으면 어디 부모에게 효도할 생각을 하기나 합니까? 오히려 저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와 함께 사는걸 거치장스러워 하거든요.》

심룡세는 초면에 이런 왕청같은 수작을 하는 사나이가 얄밉기 그지없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심룡세는 상대방을 경계하며 엄하게 물었다.

로인들이 양로원에 찾아올 때마다 되풀이하군 하던 그 사설을 늘어놓던 사나이는 배시시 웃었다.

《저로 말한다면 양로원의 일체 경리사업을 다 맡아보는 총무입니다. 앞으로 로인님도 친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여기에 강용찬이라는분이 있소?》

총무의 얼굴에서 아첨기와 친절한 미소가 대뜸 씻은듯이 사라졌다.

그는 정색해서 심룡세를 깐깐히 뜯어보았다.

《있지요. 강선생을 왜 찾습니까?》

《그저… 그분을 좀 조용히 만나게 해줄수 없겠소?》

심룡세가 주저하며 청을 드리자 총무는 잔뜩 기고만장해서 까다롭게 따지고들었다.

《대관절 령감님은 어디서 오신 누구요?》

《그걸 꼭 알아야 하겠소?》

《예. 다른 늙은이라면 몰라도 강선생을 만나러온 사람들은 자기의 신분을 정확히 밝혀야 합니다.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니까요.》

일이 꽤 말째게 번져지기 시작했다.

심룡세는 은근히 속이 떨렸다.

《난 그저 의지가지할데 없는 불쌍한 늙은이가 감옥에서 나왔다기에 말동무라도 잠간 되여줄가 해서 왔던거요.

헌데 감옥에 면회를 간것만치나 그분을 만나기가 헐치 않군 그래. 너무하구만.》

심룡세는 이런 식으로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강용찬을 만나려는 의향을 재차 내비쳤다.

총무는 눈을 깜짝깜짝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 발라 맞추는 태도로 나왔다.

《거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고마우신분이군요. 그럼 이 경비실에 들어가서 좀 기다리십시오. 강선생은 지금 안 계십니다.》

《어딜 갔소?》

《지방검찰청에 가셨습니다.》

《으음?!》

심룡세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틀림없이 최성규놈이 호출했을것이다.

강용찬을 만나려 하다가는 그놈의 가시눈에 걸려들수 있었다. 그러면 랑패다.

전향을 했다고 해서 맘 편히 살수 있는 세상이 아니였다.

십여년전에 전향하고 사회에 나와서 가정을 이루고 무사태평히 살아가던 아무개를 《안기부》가 다시 잡아들여서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패고 허위자백을 시켜서 어마어마한 간첩사건을 날조해낸적도 있었다.

《난 기다릴 시간이 없는데… 아무래도 후날에 와서 만나봐야 하겠군.》

총무는 무엇때문인지 불안해하면서 급급히 사라지려는 정체 모를 로인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로인님, 이왕 오셨다가 그냥 가시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감옥에서 오랜 기간 고생하신분을 위하여 성의는 표시하고 가셔 얍죠.》

《참, 그걸 잊을번 했군.》

심룡세는 얼른 가방에서 돈봉투를 꺼내주었다.

《강선생에게 꼭 전해주시오.》

《예.》

《그리고 어련하겠소만 그분을 잘 돌봐드리시우.》

《예. 마음을 푹 놓으십시오.》

심룡세는 멀찍이 세워놓은 택시를 향하여 도망치듯 재빨리 걸어갔다.

총무는 봉인을 한 돈봉투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적지 않은 액수인것 같았다.

그런데 봉투에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돈을 선뜻 맡기고 황급히 사라진 로인이 어딘가 모르게 수상쩍어서 그는 한참이나 고개를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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