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날 밤 진주찐빵집에서 나온 강용찬은 그길로 역에 나가 기다리다가 새벽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역에 내리니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1차진공때 패주한 적들이 가물철 말라가는 물웅뎅이에 올챙이처럼 모여들어서 와글벅작했던 이 해안도시는 지금 생존경쟁으로 끓어번지고있었다. 시내중심에는 각양각색의 크고작은 건물들이 비좁게 들어서고 좁은 도로로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내달리고 인파가 끓어번져서 멀미가 날 지경이였다. 이런 번잡한 판에서 전우의 아들집을 찾기가 하도 난감하게 여겨져서 두리번거리던 그는 웬 사람을 붙잡고 룡세가 적어준 주소쪽지를 내보이며 어디쯤인가고 물었다. 상대방은 저기 물고기가공공장쪽에 가보라고 했다.

거기로 가니 물고기비린내가 지독스레 풍겼다.

계선장에서는 녹투성이가 된 뜨랄선 몇척이 물고기를 퍼내고있었다. 납작하게 말라죽은 쥐새끼처럼 생겨서 이름도 쥐치라고 부르는 물고기가 더미더미 쌓여있는데 그 주위에 얼굴이 까맣게 탄 아낙네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질기고 꺼칠꺼칠한 쥐치의 껍질을 벗겨내고있었다. 껍질을 벗긴 쥐치는 닭고기처럼 하얀게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인석이의 안해가 혹시 이 녀인들속에 끼워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한 녀인에게 물어보았다.

《하루에 얼마나 받소?》

녀인은 고개를 들더니 대뜸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돈을 얼마나 받는가 말이요?》

《그저 3천원도 받고 4천원도 받지요.》

《그 돈으로 꽤 살아갈만 하오?》

《코구멍만 한 세집을 쓰고 사는데두 매달 6만원을 내야 하는데 3천원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간다고 그래요. 어림도 없어요.》

강용찬은 시끄러운듯 짜증을 내는 녀인에게 주소쪽지를 내보이였다.

녀인은 고기비늘이 잔뜩 묻은 칼을 쥔 손으로 저쪽 어방을 가리켰다.

《저기 해수욕장근처에 가보세요.》

그 자리를 떠나는데 뒤에서 아낙네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별난 사람이지.》

《거 차림새를 보니 방금 가막소에서 나온 사람인것 같애.》

《옳아. 중처럼 머리를 박박 깎지 않았니.》

《얼굴은 껍질을 벗긴 쥐치보다 더 하얗거든.

아마 십년이상은 해빛을 보지 못했을거야.》

강용찬은 귀가 간지러워서 걸음을 멈추고 우정 눈을 부릅뜨며 뒤를 돌아보았다.

수작질을 하던 아낙네들은 범을 본 할미처럼 와뜰 놀라며 기겁을 했다.

그는 어이가 없어서 쓰겁게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까 역에 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자기를 쳐다본다 했더니 자기에게서 어쩔수없이 감옥냄새가 풍기는 모양이였다.

수산물가공공장을 꿰질러나가니 과연 코구멍만 한 판자집들이 귤깍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니 역시 얼굴이 까맣게 탄 녀인들이 모래불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물을 깁고있었다. 찢어진 그물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그곳을 지나니 푸른 소나무들이 늘어서서 운치를 돋구는 고요한 백사장이 펼쳐 졌다.

해빛을 가리우는 커다란 비닐양산들이 버섯처럼 드문드문 서있는데 거의나 알몸뚱이인 남녀들이 모래판에서 자반뒤집기를 하거나 엎드린 상태로 무엇을 마시는 꼬락서니가 눈에 띄였다.

해수욕장근처에 있는 주택들은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

인석이네 집이 바로 이런 조용하고 경치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것이 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게도 해주는것이였다.

자그마하나 오붓한 단층벽돌집앞에서 그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멈춰섰다.

고무신으로 자동차를 만들어가지고 저 혼자서 뛰뛰 빵빵 하며 모래를 실어나르던 네댓살 나보이는 애녀석이 인기척을 느꼈던지 고개를 들었다. 그 애는 낯선 할아버지가 자기네 집 마당에 들어선걸 보자 냉큼 일어나며 당돌하게 물었다.

《누굴 찾나요?》

갑자기 무릎이 매시시해졌다.

강용찬은 오금을 꺾고 앉으며 눈물이 핑 도는 눈으로 그 애를 말없이 마주보았다. 동그란 얼굴에 이마가 도두룩하고 눈정기가 유난히도 맑은 녀석이였다. 한쪽 뺨에 보조개까지 패였는데 계집애처럼 곱살하게 생겼다. 그 애를 보니 못 잊을 동지의 얼굴이 절로 눈앞에 되살아났다.

《할아버진 누구나? 왜 우나요?》

애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강용찬은 목메인 소리로 반문했다.

《네 이름이 뭐지?》

《김순기.》

애녀석은 랑랑한 목소리로 여무지게 대답했다.

옳구나! 룡세의 말마따나 신통히도 제 할아버지를 닮았군.

이런 생각, 이런 느낌이 격정을 불러일으켜 강용찬의 눈굽을 따겁게 지졌다.

《아버지의 이름은 뭐지?》

《김인석!》

역시 랑랑한 목소리.

《할아버지의 이름은?》

순기는 대뜸 두눈이 올롱해졌다.

《난 할아버지가 없어요.》

강용찬은 불시에 울음소리 같은것이 터져나와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잠시후에야 그는 순기를 왼손으로 그러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북받치는 정에 넘쳐 말했다.

《이 녀석아, 너에겐 훌륭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순기는 몸을 비틀며 강용찬의 품에서 빠져나가 한걸음 물러섰다.

《거짓부리야. 난 할아버지가 없대두.》

강용찬은 왼손을 다정히 내밀었다.

《녀석두…내가 네 할아버지다. 이리 오너라.》

순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반신반의하면서 뒤걸음을 쳤다.

《가만, 이거 할아버지라는 사람이 빈손으로 너를 찾아왔구나.

잠간만 기다려라.》

강용찬은 가까운 곳에 있는 구멍가게로 달려가 방아쇠를 당기면 총구에서 파란 불꽃이 튕겨나오는 장난감권총과 색갈 고운 비닐에 싼 우유사탕을 한봉지 사가지고왔다.

하지만 그는 마당에 들어서지 못하고 무춤 멈춰섰다. 웬 젊은 녀인이 마당에 나와서 어딘가 모르게 불신과 적의가 깃든 랭랭한 눈초리로 자기를 맞아주었기때문이였다. 녀인의 치마폭뒤에 몸을 숨기고있던 순기가 갸웃이 고개를 내밀더니 쬐꼬만 손가락을 내밀어 강용찬을 가리켰다.

《엄마, 저 할아버지야!》

장난감권총과 사탕을 보고 눈을 반짝이며 달려나가려는 아들을 뒤로 밀어넣으며 녀인은 쌀쌀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저…》

《누굴 찾으시나요?》

《김인석이라구… 이 집 세대주가 분명하겠지요?》

녀인은 몹시 당황한 기색이였다.

《난 인석이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갇혀있던 사람이웨다.》

감옥이라는 말이 나오자 가뜩이나 불안해하던 녀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얼어붙었다.

《감옥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아이, 기막혀라. 제 남편에겐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가 없답니다.》

강용찬은 분명 거짓말을 하는 그 녀자의 태도가 놀라왔고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그럼 시아버지의 이름이 김혁창이가 아니란 말인가요?》

녀인은 몹시 두려운 눈길로 황급히 사위를 둘러보고나서 딱 잡아뗐다.

《아뇨. 그런 이름은 듣기에 처음이예요.》

《그럴수가 있나?》

《손님, 어서 다른 곳에 가보세요.》

녀인은 매정하게 말하더니 황급히 아들애의 손목을 잡아끌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 소리가 《쾅!》 하고 폭음처럼 울려왔다. 강용찬은 그 녀인이 자기의 뺨을 후려갈긴것만 같았다. 눈앞이 아찔했다. 꽉 닫겨진 문,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졸지에 맥이 풀린 그의 손에서 장난감권총과 사탕봉지가 떨어졌다. 봉지가 터지고 색갈 고운 비닐에 싼 우유사탕들이 윷가락처럼 땅바닥에 쫙 흩어졌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저 녀자는 김혁창의 며느리가 분명한데 왜 저런 태도로 나오는가?

무슨 오해가 생겼는가? 혹시 저 녀자가 제 남편과 싸움을 하고 갈라지기라도 했는가?

망연자실하여 잠시 그 자리에 굳어져있던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서다가 땅에 흩어진 우유사탕을 보자 허리를 굽히고 한알한알 꼼꼼히 주어서 봉지에 넣었다.

감옥에 있을 때 어쩌다 생긴 이런 사탕 한알을 세명의 동지들이 꼭같은 몫으로 쪼개여 나눠먹었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때문이 였다.

그는 사탕봉지를 장난감권총과 함께 토방우에 정히 올려놓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정작 갈 곳도 없어서 그저 발이 움직이는대로 터벅터벅 걷다가 바다가 앞을 가로막기에 멈춰섰다.

스무해가 넘도록 감방속에 갇혀있을 때 그리도 보고싶었던 바다였다. 바다도 그를 만난것이 무척 기쁜듯이 쏴 쏴! 소리를 치며 밀려온다.

갈매기들도 다투어 날아와 그의 머리우에서 춤을 추며 끼르륵거렸다.

무심한 대자연은 저리도 반겨주는데 그 녀자가 어쩌면 그다지도 박정하게 굴수 있나.

강용찬은 노엽고 허전한 심정을 달랠수가 없어 모래불에 풀썩 주저앉았다.

방금 악몽에서 깨여난듯 마음이 산란하고 어수선했다. 뭐가 뭔지 도대체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캄캄한 먹방에 하루종일 꼼짝 못하고 갇혀있을 때처럼 혈압이 오르고 골이 지끈지끈 쑤시기 시작했다. 관자노리의 피줄이 얼마나 부풀어올라 펄떡거리는지 자칫하면 툭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담배라도 한대 피우고싶어서 주머니를 만져보았지만 있을리 만무했다.

이때였다.

곁에서 웬 사나이의 목소리가 침울하게 울렸다.

《당신이 나의 아버지와 함께 감옥살이를 했다는분입니까?》

두눈을 지그시 감고있던 강용찬은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봄가을외투를 멋스럽게 입고 중절모를 눌러쓴 웬 사나이가 주머니에 량손을 깊숙이 찌른채 강용찬을 외면하고 저 멀리 수평선만 지켜보고있었다.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사나이는 여전히 눈길을 돌리지 않은채 그러나 공손하게 물었다.

이러한 상봉을 차마 예상할수 없었던 강용찬은 억이 막혔다. 그러지 않아도 방금전에 있은 일로 속이 언짢았던참이다. 헌데 그 녀자의 남편까지도 이런 태도를 취하니 이건 성을 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내옆에 서있는 이 사나이가 김혁창의 아들이 옳긴 옳은가? 혹시 내가 잘못 찾아온게 아닐가? 생판 남일수도 있지 않는가.

이런 의심조차 들 지경이였다.

방금전 김혁창의 손자애를 보았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이 사나이에게서 조금도 반가운 감정을 느껴볼수가 없었다.

《네가 김혁창의 아들이 분명하냐?》

강용찬의 물음에 사나이는 한숨만 짤막하게 내쉬였다.

《네가 인석이란 말이지?》

《예.》

차라리 다른 대답이 나오기를 바랬던 강용찬은 쓰겁게 입을 다셨다.

《정녕 그렇다면 이건 너무한것 같구나.》

인석이는 그제서야 중절모를 벗고 강용찬을 향하여 돌아서며 고개를 숙이였다.

《죄송합니다.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까.》

《그까짓, 고생은 고생이고 어쨌든 난 이렇게 살아서 나왔다. 그러나 네 아버지는 이미 십여년전에 잘못됐구나. 사형장에서 나에게 날아오는 총탄을 네 아버지가 막아주었지. 그래서 난 네 아버지가 되여주려고 이렇게 찾아온거란다.》

인석이는 침울한 기색으로 말했다.

《고맙습니다만 저에겐 아버지가 필요없습니다.》

차마 이런 소리가 나올줄이야?

강용찬은 기가 막혀서 고개를 떨군채 서있는 인석이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 리유를 말씀드리지요.

려수군인봉기가 있은 후에 아버지가 지리산에 들어가자 놈들은 우리 가족을 다 잡아죽였습니다. 다행히도 외할머니네 집에 가있던 내가 겨우 살아남았지요. 나를 키워주던 외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난 의지가지할데가 없는 놈이 되였습니다.

취직을 해야 먹고 살겠는데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어 받아주겠다는데가 없더군요. 서울에 올라가 헤매다가 세탁소에 겨우 들어갔지요. 사내란 놈이 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빨래를 했습니다. 녀자들의 속옷까지 빨아주어야 했을 때 그 모멸감과 수치감에 고개를 들수가 없었지요.

나는 왜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 아버지때문에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 모양 이 꼴로 한생을 지지리 짓밟히우고 고생할걸 생각하니 너무도 원통해서 나는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답니다.》

강용찬은 인석이가 고생하던 그 정상이 너무도 아프게 눈에 밟혀와서 두눈을 꾹 감았다.

《어느 날 심룡세라는분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내가 고생하던 이야기를 다 들어준 그분은 네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버지가 전쟁때 폭격에 사망된것으로 신원보증을 서주었습니다. 나는 신원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날가봐 대전으로 광주로 두루 거처를 옮기다가 여기 부산에 와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겁니다.》

인석이는 강용찬의 출현으로 신원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날가봐 내심 두려워하고있었다.

강용찬은 가슴이 찢기는듯 아팠다.

아버지는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바로 그때문에 아들은 이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천대를 받아온것이였다.

가슴을 치며 통탄해도 씨원치 않을 이 꺼꾸로 된 현실앞에서 그는 아무런 분노도 느낄수 없는게 이상할뿐이였다. 그런 분노는 기나긴 옥중생활기간에 너무도 많이 느껴왔다. 그러니 별로 이제와서 새삼스러울것이 없었다.

현재 김혁창의 아들을 위해서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용히 물러가는것뿐이였다.

《네 심정을 알만 하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해라. 네 아버지는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애국자다. 너는 아버지를 원망할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아버지처럼 떳떳하게 살아야 해.》

강용찬은 이렇게 힘주어 말하고 일어났다.

《그럼 더 긴 말을 할것 없이 우리 여기서 헤여지자꾸나.》

인석이는 떨구고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는 거처할 곳이 있습니까?》

강용찬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고보니 자신의 처지는 그 누구를 위해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신세를 져야 할 형편이였다.

《우선 려관으로 가십시다.

제가 며칠안으로 세방을 하나 얻어드리지요.》

《고맙다만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

강용찬은 단호히 돌아섰다.

《아저씨, 저를 리해해주십시오. 달리는 어쩌는수가 없군요.》

강용찬은 괴로운 심정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실업자들이 흔히 그렇게 하듯이 소공원의 긴의자에 불편한대로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전지불이 번쩍이더니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다.

《여! 일어나! 왜 여기서 잠을 자는가?》

강용찬은 상반신을 일으키며 반문했다.

《당신은 누구요?》

《경찰이요. 주민등록증을 봅시다. 어서!》

이젠 쳐다보기만 해도 입에서 신물이 나오는 경찰이라는 폭력과 권력이 여기에까지 검질기게 따라와서 성화를 먹이고있었다.

《령감! 귀가 먹었어? 주민등록증을 빨리 내놓으란 말이야!》

경찰은 상대방이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지 않자 버럭 언성을 높였다.

《난 그런걸 구경도 해보지 못했소.》

《엉? 이 령감이 괴짜인걸.》

경찰은 전지불로 강용찬의 얼굴을 유심히 비춰보았다. 중처럼 박박 깎은 머리, 남의것을 빌려입은듯 몸에 맞지 않는 허술한 작업복차림새…

《음, 이름은?》

《강용찬이요.》

《주거지는?》

《없소.》

《직업은?》

《그것도 없소.》

《일어나시오. 파출소로 갑시다.》

강용찬은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어째서 거기에 가야 하오?》

《령감은 출소자지?》

《그렇소.》

《보아하니 갈 곳이 없는것 같은데 법에서 보호해주자는거요. 자, 갑시다.》

경찰은 그를 하루밤 류치장에 가두어넣더니 이튿날에 대구에 있는 《사법보호소》로 호송했다.

후날 《갱생보호소》라고 이름을 바꾼 그곳은 교도소에서 만기출소하였지만 재범의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하는 장소였다.

피치 못할 사연으로 가정이 파괴됐거나 가정에서 버림을 받아 범죄의 길에 들어선 잡범출소자들이 대다수였다. 타락할대로 타락한 그들은 쩍하면 싸움질이였다. 보리밥 한공기, 막걸리 한사발을 놓고도 목에 피대를 돋구며 다투거나 치고 받기가 일쑤였다.

이런 자들과 함께 생활하느라니 강용찬은 눈길만 한번 마주쳐도 정이 통하고 어쩌다 생긴 사탕 한알도 쪼개고 쪼개여 골고루 나눠먹던 특별사동안의 동지들이 때없이 그리워지군 했다.

간혹 《사법보호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도소앞거리에서 찐빵집을 경영하고있는 심룡세가 생각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동지이기를 그만둔 그와 다시는 만나고싶지 않았다.

그곳에 꾹 박혀서 이태를 살고나니 환갑을 맞게 되였다.

이날 별스레 가슴이 허전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사나이 나라 위해 큰 뜻을 품고 나섰다가 한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채 감옥에서 그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낸걸 생각하면 분하기 짝이 없었다.

환갑날이라고 상을 차려주는 자식도 없고 설사 차려준대도 그 상에 마주앉을 동지들도 곁에 없는것이 마음속의 허전함을 더해 주는것이였다. 정말이지 그날따라 인정이 그리웠고 사랑이 그리워서 진정할수 없었다.

이럴 때 김혁창의 아들인 인석이라도 찾아와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특히 그 영특하게 생긴 순기라는 녀석이 달려와 목에 매달리며 《할아버지!》라고 불러준다면 더 바랄것이 없을것만 같았다.

그런데 왕청같이 최성규라는 작자가 불쑥 나타났다.

그자는 일본류학을 마치고 돌아와 검사보노릇을 하다 광복직후에 하마트면 친일파로 청산당할번 했는데 미군정이 실시되자 검사로 발탁되였다.

전쟁시기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여있던 강용찬을 사형으로 법정에 기소한 자가 바로 이놈이였다.

그 당시 무더기로 내린 사형판결이 대법원에 올라가서 일부는 무기로 감형되였는데 구사일생이라 해야 할는지 이통에 강용찬이도 사형을 면하게 되였던것이다.

그후 4.19항쟁이 전역을 휩쓸고 리승만의 동상이 올가미에 걸려서 나자빠져 청년학생들의 피로 물든 포도우로 질질 끌려다니고 있을 때 새로 들어앉은 《민주당정권》은 《간첩죄》를 제외한 무기수들에게 일괄적인 감형조치를 취했다.

이때 강용찬이도 미결기간까지 합쳐서 징역 22년으로 감형되였다. 그 징역을 다 살고 나와서도 감옥이나 다름없는 《사법보호소》에서 이태를 보냈는데 최성규가 불쑥 찾아온걸 보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

《강선생, 정말 오래간만이군요. 참 오늘이 선생의 생일날이죠?》

《기억력이 비상하구려.》

《그저 생일날이 아니라 환갑날인데 이거 동향인으로서 축하를 해드리지 못하고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리자니 미안하군요.》

최성규는 자못 괴로운듯 얼굴을 찡그렸다.

《여보, 빙빙 에돌지 말고 직방 말하시오.》

《하여간 딱한 사정이예요.

이번에 <사회안전법>이 새로 제정됐지요. 이 법에 따라 전향을 하지 않은채 만기출소를 한분들은 다시 교도소로 가야 해요. 그래서 체포령장을 발급하다가 강선생만은 차마 그렇게 할수가 없어서 우정 걸음을 한거랍니다.》

강용찬은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다시 교도소로 가느니 차라리 죽고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강선생, 환갑이 된분이 이제 어떻게 또 교도소로 가시겠소.

내가 도와드릴테니 이제라도 가정을 꾸리고 여생을 편히 지내도록 합시다. 참, 심룡세를 만나보셨는가요?》

강용찬은 쓰거워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여기 대구에서 산답니다.

가정을 이루고 찐빵집을 경영하면서 아주 행복하게 지낸답니다. 룡세는 전향을 했으니까 이번에도 안전해요. 강선생도 그렇게 하시구려.》

《어서 체포령장에 수표나 하오.》

행여나 해서 치근치근 구슬려보려던 최성규는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문밖에 대고 뭐라고 고함을 쳤다. 문이 열리더니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늬큼 들어왔다. 최성규는 체포령장에 자기의 수표를 휘갈겨서 경찰에게 넘겨주었다.

놈들은 이처럼 형식적인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비전향장기수들을 림시로 《대전교도소》에 몰아넣었다가 청주에 새로 지은 《보안감호소》가 완공되자 그리로 이감하였다.

교도소에서 입고있던 푸른색수의를 황갈색수의로 바꿔입고 《보안감호소》에서 흘러보낸 세월은 어언 14년이나 된다.

5

 

그는 부산으로 가는 고속뻐스를 탔다.

김혁창의 아들네가 지금도 부산에서 살고있는지? 그때 인석이의 집주소를 대준 심룡세는 지금도 대구에서 찐빵장사를 하고있을가? 룡세는 나보다 서너살 아래니 칠순을 바라보는 늙은이가 됐을게고 인석이는 쉰고개에 올라섰을거다.

그러니 그때 네댓살 나보이는 순기녀석은 20대의 끌끌한 젊은이로 자랐을게 아닌가.

궁금한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출소는 했지만 아무런 기쁨도 흥분도 느끼지 못한채 싸늘하게 식어있던 그의 가슴은 별안간 울렁거리며 훈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동그란 얼굴, 도두룩한 이마, 유난히도 맑은 눈동자, 계집애처럼 한쪽 뺨에 살짝 패이던 보조개… 지금은 어떻게 번져졌을가? 제 할아버지처럼 키가 늘씬하게 자랐을테지. 코밑에 수염터랑 잡히기 시작했겠지. 목청도 변하고 제법 어른스러워졌을걸, 그 애가 보고싶구나. 정말 보고싶어.

순기가 나를 알아보고 《할아버지! 그새 어디에 가있다가 나타났어요?》 하고 큰소리로 부르며 달려와 안기면 장기간의 옥살이에 덧쌓인 피로가 순간에 씻은듯이 사라지련만…

강용찬은 인석이네 집 근처에 슬며시 접근하여 지켜서있다가 먼 발치에서라도 름름하게 자랐을 그 애의 모습을 보고싶은 충동을 누를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거기부터 가보기로 했다.

헌데 뻐스에서 내리니 그사이에 이 항구도시가 너무도 몰라보게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통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인석이네 집이 자리를 잡고있던 조용하고 경치좋은 바다가는 번화한 카페촌으로 변했다. 초저녁인데도 흥행업소들은 벌써부터 네온싸인을 도깨비불처럼 번쩍거리며 다투어 환락의 세계로 손님들을 유혹하고있었다. 길이 메여지게 흘러가는 승용차들, 술에 취하여 떠들썩 노래를 부르며 돌아치는 젊은이들, 날씨가 꽤나 쌀쌀하지만 수영복차림으로 거리에 나서서 손님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아가씨들… 정신이 어질어질해질 지경이였다.

순기의 얼굴이나 알아보려던 생각을 하는수없이 단념하고 양로원으로 가자니 그건 또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오거나 밀려가지만 정작 말을 붙여볼만 한 상대는 없었다.

다행히도 비교적 단정해보이는 젊은이들의 한패가 즐겁게 웃으며 자기앞을 지나치기에 불러세웠다.

《말 좀 묻자구. 양로원이 어디에 있나?》

젊은이들이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개중의 한 녀석이 버르장머리가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거야 늙은이들이나 알지 우리가 알게 뭔가요.》

젊은이들은 키득키득 웃어댔다.

《하긴 그렇구나.》

젊은이들은 괴상한 음악이 자지러지게 울려나오는 카페쪽으로 밀려갔다. 그런데 한 처녀는 몇걸음을 못 떼고 돌아섰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강용찬을 동정이 어린 눈길로 잠시 바라보던 처녀는 알릴듯말듯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할아버지, 양로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주소안내소에 가십시다.》

강용찬은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 처녀를 유심히 여겨보았다.

처녀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했다. 희맑은 살결에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총명하게 생긴 두눈동자가 흑진주처럼 반짝거렸다.

《괜찮아. 주소안내소가 어딘지 가리켜만 달라구.》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처녀는 스스럼없이 강용찬의 오른팔을 잡으려다가 흠칫 놀랐다.

《아니?! 할아버진 오른팔이 없으시군요.》

강용찬은 처녀를 놀래운것이 미안스러웠다.

《음, 그대신 이 왼쪽팔이 있지 않니.》

처녀는 조심스레 강용찬의 왼쪽팔을 붙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 양로원에는 왜 가십니까?》

강용찬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덤덤히 걸음을 옮기다가 방금전에 젊은이들이 야유조로 하던 말이 생각나서 그것을 되풀이했다.

《그저 늙었으니까 가는거지.》

처녀는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강용찬의 모습을 다시금 주의깊게 살펴보더니 주저주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감옥에서 나오시는 걸음이 아닙니까?》

그전에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처럼 이번에도 자기의 몸에서는 감옥냄새가 어쩔수없이 풍기는 모양이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특히 녀자들은 감옥에 무서운 사람들이 갇혀있다고 생각하면서 꺼려할수 있었다. 때문에 강용찬은 사실대로 말해서 이 순진한 처녀를 놀래우고싶지 않았다.

《감옥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냐.》

자기의 짐작이 어긋나서인지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기웃거리던 처녀는 택시가 달려오자 손을 들어 멈춰세웠다.

《저… 양로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젊은 운전수가 차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벌씬 웃으며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택시운전수가 그것도 모르겠소.》

《그럼 이분을 거기에 모셔다주세요.》

처녀는 재빨리 료금을 치르고 강용찬을 택시에 태워주었다.

남해바다가치고는 꽤 높은 산을 배경으로 부산교외의 한적한 숲속에 양로원이 자리를 잡고있었다. 건물들은 조선식기와집으로서 낡은것이였는데 그래서인지 처량한 달빛아래 웅크리고 앉아있는 시름겨운 늙은이들을 련상시켰다.

양로원의 경리사업을 맡아본다는 총무는 서른살인지 마흔살인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약삭바르게 생겨먹은 사나이였다. 기생오래비처럼 반지르하게 차려입고 머리기름까지 착 바르고 나선걸 보니 양로원의 총무가 아니라 고급카페의 접대원이 더 어울릴것만 같았다.

《여기가 양로원입니까?》

강용찬의 물음에 총무는 반색을 했다.

《예, 어서 오십시오.》

《여기서 살아갈만 한가요?》

《그럼요. 부산에 양로원이 서너개 있지만 우리 양로원만한 곳이 없답니다.》

《그럼 여기에 들어가야 하겠군.》

강용찬은 이제야 비로소 결심이 된듯 총무를 따라 들어가 사무탁을 마주한 긴의자에 앉았다.

소지품이라고는 감호소에서 나올 때 들고나온 세면도구를 싼 보자기뿐이였다.

총무는 그 보자기를 흘끔흘끔 엿보면서 늘그막에는 양로원이 제집보다 낫다고 력설했다.

《자식들이라는건 그저 키울 때뿐이지요. 다 키워놓으면 어디 부모에게 효도할 생각을 하기나 합니까. 오히려 저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와 함께 사는걸 거치장스러워 하거든요. 며느리란건 남의 자식이니까 더하지요. 며느리를 맞아들이면 시아버지가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는 말도 우연히 나온게 아니랍니다.》

강용찬은 상대방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수 없어 그저 덤덤히 듣기만 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양로원은 국가가 지출하는 자금으로 운영합니다. 때문에 무의무탁자가 아니면 들어올수 없지요. 그렇다고 뭐 례외란게 없는건 아니랍니다. 먼저 말씀드렸지만 늙은이들에게는 이래저래 딱한 사정이란게 있기마련이니까요.》

총무는 배시시 웃으며 계속했다.

《그런 경우엔 적당한 비용을 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내면 그만큼 대우를 잘 받게 되지요. 우리는 그걸 은행에 고스란히 예금시키고 리자를 받아서 생활조건을 보장해드립니다. 사후엔 섭섭치 않게 목사님을 청해다가 장례도 치러드리구요. 본인이 양로원에서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엔 원금을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로인님은 얼마나 지참하고 오셨는가요?》

기름칠을 한듯 반들거리는 총무의 눈동자는 다시 강용찬의 무릎우에 있는 자그마한 보자기에 머물렀다.

지참금이란건 시집가는 처녀에게나 필요한것인줄 알았더니 양로원에 가는 늙은이에게도 필요한것이란다. 강용찬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에겐 돈이란게 한푼도 없소.》

《그건 뭡니까?》

《세면도구요.》

총무의 얼굴엔 실망의 그늘이 비꼈다.

《허, 그렇다면 수속절차가 대단히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무의무탁자라는게 증명이 돼야 하니까요. 아들도 없고 딸도 없고 마누라도 없다, 사실 이런 늙은이는 별로 없단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우선 주민등록증부터 보여주십시오.》

그저 가는 곳마다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니 강용찬은 기분이 상했다.

《나에겐 그런것이 없소.》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무슨 서류를 책상우에 꺼내놓던 총무는 아연해졌다.

《주민등록증이 없다뇨? 분실했는가요?》

《나에겐 그런게 애당초 없었소.》

《그럴수가 있나. 아니 로인님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는겁니까?》

《그렇소, 아니요.》

강용찬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총무는 눈이 퀭해졌다.

주민등록증이 없다기에 비꼬는 식으로 그런 질문을 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이런 대답이 도전적으로 튀여나온것이였다.

강용찬은 자기를 새삼스럽게 훑어보는 총무에게 《보안감호소》에서 발급해준 출소증명원이라는것을 보여주었다.

《이건 뭡니까? 출소자라?! <사회안전법>위반에 보안관찰처분을 받았다구?》

총무는 덴겁을 하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경계심이 어린 눈길로 강용찬을 주시하며 출입문쪽으로 비실비실 게걸음을 쳤다.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내 원장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후렁후렁한 조선바지저고리에 비단조끼까지 껴입어서인지 고풍의 지주를 련상시키는 뚱뚱보령감이 총무를 뒤에 달고 황급히 들어왔다.

령감은 수북하고 희끗희끗한 장미를 꿈틀거리며 턱없이 불쾌한 눈초리로 강용찬을 지꿎게 뜯어보더니 아무래도 나이대접은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지 례의를 지켜 정중히 물었다.

《로형은 감옥밥을 몇해나 자셨는가요?》

강용찬은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36년입니다.》

너무도 상상밖이였던지 원장령감은 흠칫 눈섭을 치켜올렸고 총무는 입을 딱 벌렸다.

《이북출신입니까?》

《아니요. 여기 경남출신이지요.》

《그런데두 로형을 부양해줄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예, 나는 일정때 만주에 들어갔댔지요. 그때부터 오늘까지 가족들소식은 전혀 모르고있습니다.》

원장령감은 불만스러운듯 뙤살이 진 볼편을 씰룩거렸다.

《만주에선 언제 귀국했는가요?》

《전쟁이 일어나기 한해전이지요.》

《팔로군출신인게로군.》

《팔로군이 아니라 민주련군에 있었소.

귀국해서는 조선인민군에 복무했소. 전쟁때 여기 부산 코앞에까지 내려왔다가 미처 후퇴를 하지 못해서 지리산에 들어갔댔소. 거기서 부상을 입고 체포되였소.》

《군관이였겠군요.》

강용찬은 심문을 받는것 같아서 불쾌했다.

《그렇소. 소대장이였소.》

원장령감은 조끼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여 한가치 뽑았다. 담배를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거 참 곤난한데요. 정말 딱합니다.

총무가 이미 말씀을 드렸겠지만 우리 양로원은 당국이 지출하는 자금으로 운영하고있지요. 그런데 당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수 있겠습니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자를 부양해줄수는 없는거지요.》

강용찬은 배포유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당신네 당국은 나를 마땅히 북으로 보내주어야 했을거요. 그렇게 할수 없으니까 여기로 보낸거란 말이요. 자, 이건 감호소장이 당신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원장령감은 강용찬이가 주는 편지봉투를 받아서 이리저리 깐깐히 살펴보더니 개봉을 하고 속지를 꺼냈다. 눈을 잔뜩 쪼프리며 편지를 읽어보려던 그는 총무에게 주었다.

《잘 보이지 않는군. 자네가 소리내여 읽게나.》

《예.》

총무는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부산양로원 원장귀하.

새로 제정된 보안관찰법에 의하여 청주보안감호소에서는 칠순이 된 장기수들은 전향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석방시키되 보안관찰처분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무의무탁자인 강용찬을 귀 양로원에 보냅니다.

강씨에 대한 보안관찰처분은 관할구역의 파출소와 경찰서 그리고 부산지방검찰청이 하게 되니 귀하는 적극 협력해야 할것입니다. 만약 귀하가 정당한 리유가 없이 강씨에게 거소제공을 거부하면 6개월 구류 또는 50만원의 벌금형에 처하게 됨을 알려드리니 불리익이 없게 처신하기를 바랍니다.》

원장령감의 눈살이 대번에 꼿꼿해졌다.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총무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에 그렇게 씌여있습니다. 보안감호소 도장까지 찍었는걸요.》

원장령감은 편지를 신경질적으로 잡아채더니 조끼 안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여 끼고 제눈으로 읽어보았다.

《젠장, 요즘엔 법이라는것두 더럽겐 변하는군.》

원장령감은 쓰겁게 입을 다시더니 탄식을 했다.

총무가 눈을 깜짝깜짝하면서 속으로 무슨 타산을 해보더니 령감에게 달래듯이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수속을 해드립시다.

아버님이 감옥에 들어갈수야 없지 않나요.》

령감은 볼이 잔뜩 부어서 오만상을 찡그린채 응대가 없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달더니 한숨과 함께 연기를 길게 내뿜고나서 강용찬에게 트집을 걸듯이 물었다.

《참, 아까 이북에 가고싶다고 했지요?》

《그렇소. 당신이 보내주겠소?》

《거기에 가면 뭐 돌봐줄 사람이라도 있을것 같아서 그러우?》

《있어도 많지요. 이북은 하나의 대가정이라는 말을 못들었소?》

원장령감은 가뜩이나 두꺼운 입술을 비죽이 내밀더니 채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빨갱이들의 선전에 불과하지요.

아무렴 나라전체가 어떻게 한가정이 될수 있겠소. 제 집안사람들끼리도 이래저래 말썽이 많아서 다투고 헤여져서 남들처럼 되기 여반장인데요. 우리 양로원에 와있는 늙은이들의 대다수가 자식들의 버림을 받았지요. 그래도 제 아비나 어미의 손에 돈푼이나 쥐여주어서 양로원으로 보내는 자식들은 효자인셈이요. 어떤 녀석들은 돈때문에 제 부모를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판이니까요.》

강용찬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건 이남의 현실이지요. 사회주의제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원장령감은 짜증을 냈다.

《내가 뭐 이북의 실태를 모르는줄 아슈?

난 이북출신이란 말이웨다.》

강용찬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월남자요?》

《그렇수다. 내 고향은 북청이지요.

참 살기 좋은 고장이였수다. 우리 집에는 자그마한 과수원과 논이 있었고 고기배도 서너척 있었지요. 헌데 광복이 되니 그걸 다 빼앗아서 공동소유로 한다는거요. 참 기가 막혀서…》

령감은 혀를 쯔쯔 차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부친이 과수원이랑 고기배랑 헐값으로 팔아버리고 온 가족을 데리고 38선을 넘었지요.

타향에 와서 여기저기 떠돌이를 하면서 개고생을 했수다. 부친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구 난 토목일에 미장질, 굴뚝수리 그저 닥치는대로 하면서 한푼두푼 돈부스레기를 모아서 겨우 살길을 열었지요. 그 고생스러운 생각을 하면 지금도 지긋지긋해요. 까놓고 말하면 그래서 당신도 환영할수 없단 말이요.》

《음, 부친이 친일파였소?》

원장령감은 닁큼 뛰며 눈을 흡떴다.

《그게 무슨 당치 않은 소리요? 나의 부친은 상해림정에 독립자금까지 기증한 애국지사요.》

《그렇다면야 무엇때문에 월남했소?

광복직후 북에서는 악질친일파를 숙청했지 량심적인 기업인들을 숙청한건 아니요.》

원장령감은 말문이 막혔던지 두눈만 껌벅껌벅하다가 또다시 담배연기와 함께 무거운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래서 부친도 뜬소리를 듣고 성급히 고향을 떠난걸 후회했지요.

나도 이젠 환갑이 지나니 그리운게 고향이군요.

그런데 로형은 고향이 있는 남쪽땅을 떠나서 북으로 가고싶다니 나로서는 그 심정을 리해할수가 없수다. 하여튼 내 생각엔 로형이 이제라도 전향을 하는게 리로울것 같소. 양로원에 와서까지 경찰의 감시를 받으면서 살수야 없지 않소.》

강용찬은 순식간에 혈압이 올랐다.

《여보! 당신은 양로원 원장이요 아니면 교도소 전담반장이요? 쓸개빠진 소리는 작작 하고 빨리 내가 들 방이나 정해주시오.》

일단 성을 내니 그의 기상은 쳐다보기조차 무서웠다.

원장령감은 대뜸 기가 질려서 목을 움츠리는데 눈치만 살피며 잠자코 있던 총무가 얼른 나서며 발라맞추듯이 상냥하게 말했다.

《강선생님, 어서 가십시다. 제가 제일 좋은 방에 모셔다 드리지요.》

강용찬이 총무의 안내를 받으며 나가자 원장령감은 그제서야 흰목을 뽑으면서 게두덜거렸다.

《젠장, 큰소리는… 여기가 뭐 제 집인줄 아나부지. 여기 주인은 나란 말이야.》

령감이 귀먹은 욕을 하면서 혼자서 푸들쩍거리는데 총무가 갑삭거리며 들어왔다. 아직도 속이 안풀린 령감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눈을 흘기는격으로 사위인 총무에게 훌뚝질을 했다.

《이 답답한 사람아.

그런 괴짜령감을 왜 받아들였어?

팔로군출신에, 인민군군관에 지리산에서 빨찌산까지 했으니 빨갱이중에서도 상빨갱이인데 빨갱이들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난 내가 그런 괴짜령감을 고이 모시고 시중까지 들어주어야 한다는 거냐?

괜히 곁에서 쫄딱 나서가지고…》

《아, 아버님. 진정하십시오.

칠순이 넘었다는데 이제 살아야 몇해를 살겠습니까.》

《그래도 이거야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아니. 리승만이 박정희도 감히 어쩌지 못한 비전향장기수를 아버님이 어쩌겠다고 그러십니까.

저런 특수한 사람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우리 양로원의 인기가 높아져서 리익이 될수가 있답니다. 그 점을 타산하셔야죠.》

그제서야 원장령감은 한풀 수그러든다.

《음, 그렇다면야 받을만도 하지.》

총무는 린색한인 가시아버지를 이렇게 얼려놓고나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버님, 강선생이 저녁식사를 못했겠는데 이제라도 식모를 깨워서 밥을 시켜야지요.》

원장령감은 찔 눈을 흘긴다.

《그만 둬라. 양로원에 쌀이 썩어난다더냐?》

사위는 멋적은 기색으로 잠시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더니 감심한 어조로 말했다.

《어쨌든 인간으로서 존경이 가는분입니다.

36년이 어딥니까. 사상을 지키자고 그 기나긴 세월을 감옥에서 고생하다니요. 전향만 했으면 그 고생을 안했을터인데.》

《빨갱이란 다 그렇게 악질이야. 세상을 살아갈줄 모르는 놈들이지.》 하고 원장령감은 여전히 볼이 부어서 악담을 했다.

《좌우간 언론에 알려야지요? 리익이 될겁니다.》

《음, 리가 난다면야 그래야지.》

총무는 눈알을 반들반들 굴리면서 전화기번호판을 돌리기 시작했다.

6

 

양로원에는 마침 빈 방이 하나 있었다.

자유당시절에 깡패노릇을 하며 뒤골목 앞골목의 반반한 녀자는 다 다쳐보았다는 희떠운 늙은이가 보름전까지 그 방의 주인이였다. 그런 화려한 전적이 있어서 늘그막에는 응당하게도 처와 자식들의 버림을 받게 되였다. 늙어도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령감은 양로원에 와서도 쩍하면 카페촌에 찾아가 술을 마시고 애젊은 녀급들에게 치근거리군 했다.

양로원의 골치거리였다.

령감이 술에 만취되여 꼬꾸라지면 총무가 찾아나가서 손달구지에 짐짝처럼 실어오군 했다.

보름전에 그 령감이 죽었다.

가족들에게 련락을 했지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방에서 3일간 장례를 치르고 뒤산에 묻었다. 그런 연고로 그 방에는 누구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가 꺼려하는 그 방을 강용찬에게 내준것이다.

장판을 한 자그마한 온돌방인데 가구란것은 옷장 하나와 원탁이 전부였다.

총무가 이불과 베개를 들여다놓았다.

원탁우에는 무슨 꽃인지 말라서 죽어버린 화분이 하나 있는데 원래 이 방의 주인은 그것을 재털이로 리용한 모양인지 담배재와 꽁초가 수북했다. 벽지를 바른 벽에는 전 주인의 저속한 몰취미를 보여주는 화보장과 사진들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것인데 주로 젊은 녀인들의 자극적인 모습이였다.

어쨌든 불만 때면 뜨뜻할 온돌방이요, 창문이 있어 밖을 시원하게 내다볼수 있으니 교도소 특별사동의 독감방에는 비길수 없을 정도로 사치스럽다고 해야 할것이다.

총무가 저녁식사를 했느냐고 묻기에 못했다고 대답했는데 웬일인지 시간이 퍼그나 흘러도 식사하러 오라는 소리가 없었다.

강용찬은 기다리다 못해서 배가 고픈대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이상하게도 등이 배기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도 교도소나 감호소의 독감방에서 온몸을 새우처럼 쪼그리고 차디찬 마루방에 누워있을 동지들을 생각하니 장판방에 다리를 쭉 펴고 누워있는것이 못내 송구스러웠다.

부산에 도착해서 다행히도 인정이 많은 기특한 처녀를 만났기에 도움을 받아서 밤이 깊어지기 전에 여기로 찾아왔다. 아마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원장령감이 양로원에 들여놓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하마트면 정문밖에서 덜덜 떨면서 밤을 지새울번 했다.

양로원이라?! 나라를 찾자고 큰 뜻을 품고 떠났던 내 인생의 종착점이 이런 곳이란 말인가? 결국 여기서 여생을 보내야 한단 말이지.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궁싯거리던 그는 어뜩새벽에 일어났다.

세면장에 가서 소랭이에 물을 길어오고 자기 재산의 전부인 세면도구를 꺼냈다.

옷을 벗고 랭수마찰을 하려던 그는 수건을 펴든채 잠시 서있었다.

그것은 출소할 때 감옥안의 동지들이 선물로 준 베수건이였다. 타올수건처럼 부드럽거나 꽃무늬장식 같은것은 없어도 질기고 발이 거칠어서 랭수마찰에는 제격이였다.

수건에는 꽃무늬장식대신에 이런 글발이 찍혀있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나는 새싹처럼

하루가 저무는무렵에도 아침처럼

항상 새로이 우리 생활 시작합시다

 

항상 새로운 기분으로 참신하게 인생의 하루하루를 값있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고무적인 글이였다.

《량심수가족후원회》나 기타 인권단체들에서 감옥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들여보낸 물품들가운데서 제일로 인기가 있고 호평을 받은것이 바로 이 베수건이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아침이면 랭수마찰로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음지에 있는 특별사동의 겨울은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았다. 세수물을 받아놓으면 잠간사이에 살얼음이 건너가군 했다. 이런 형편에서 매일 아침 랭수마찰을 한다는것은 강한 의지력이 없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였다. 스산하고 옴짝하기 싫어서 랭수마찰을 간혹 번진 날에는 별의별 잡다한 생각들이 다 떠올라서 머리속을 심히 어지럽히군 했다. 이것은 정신이 나약해졌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래서 강용찬은 옴짝하기 싫어질수록 이를 악물고 찬기운에 헉헉 흐느끼면서 랭수마찰을 했다.

그는 피부를 단련시키기 위해 육체를 닦은것이 아니라 의지의 노력으로 정신을 연마한것이였다.

강용찬은 베수건을 소중히 포개서 건사해두고 감옥에서 쓰던 수건으로 랭수마찰을 시작했다.

그 수건은 수인복이나 이불, 담요에서 실을 뽑아꼬아서 자체로 만든것이다.

오른팔이 없는 그에게 있어서 이 작업은 사실상 거의나 불가능한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왼손으로 실을 뽑아서 자기의 종아리에 대고 비벼서 굵은 실을 꼬았고 역시 왼손으로 씨실과 날실을 늘여 놓고 수건을 짜군 했다. 이런 수건을 하나 만드는데 꼬박 백날이 걸린적도 있었다.

랭수마찰을 하고나니 몸이 날아갈듯 거뜬해지고 기분이 자못 상쾌해졌다. 꼬박 잠을 못 자서 흐리터분하던 뇌수속으로 맑은 샘물이 흘러드는것만 같았다. 그 차거울 정도로 시원한 샘물이 손끝과 발끝에까지 피줄을 타고 흘러나가는 짜릿짜릿한 감촉이 좋았다.

그는 맑게 개인 정신상태로 새삼스레 방안을 둘러보았다.

감방에 비하면 따스하고 채광조건이 좋아서 꽤 호사스러워보이던 방안이 실은 어지럽고 텁텁하기 짝이 없었다. 담배대진냄새와 땀냄새 그리고 대소변도 못 가리며 앉아뭉개는 늙은이들이나 환자들에게서 어쩔수없이 풍기기마련인 송장냄새 비슷한 악취가 방안의 곳곳에 찐득찐득하게 배여있었다.

그는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먼지부터 말끔히 털어냈다.

다음엔 물걸레를 들고 방안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닦아냈다. 벽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화보장들은 벽지에 손상이 갈세라 조심스레 뜯어냈다.

늦가을 이른아침의 맑은 공기가 꽉 들어찬 방안은 훨씬 아늑하고 정갈했다.

단 하나, 화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꽃이길래 말라 죽었을가? 이제라도 살려낼수는 없을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이미 꽃이 아니라 검부레기에 불과했다.

이런걸 놓고서 한때 아름답게 피여나 향기를 풍겼을 꽃송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는 화분을 들고 나가서 흙을 말끔히 털어냈다.

깨끗이 닦은 빈 화분을 원탁우에 올려놓고 여기에 무슨 꽃을 심으면 좋을가? 하고 궁리를 하는데 총무가 문을 빠금히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편히 주무셨습니까?》

고개를 갑삭하고난 총무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져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저런! 이거 술도깨비령감의 방이 때벗이를 하니 신방처럼 알뜰해졌구만요.》

《술도깨비령감이라니?》

총무는 헤식게 웃었다.

《먼저 이 방에서 살던 령감이 술을 참 좋아했습니다. 녀자들도 좋아했구요. 그 녀자들이 이 방에 스무명은 잘 있었댔는데 어이구 벌써 다 쫓겨나갔구만요.》

《아직 쫓아내진 않았소.》

강용찬은 벽에서 떼낸 미녀들의 모습이 찍힌 화보장들을 총무에게 주었다.

《이거 불편하신 몸으로 손수 청결사업을 하시노라 수고가 많으셨겠습니다.》

《제가 사는 방이야 응당 제가 거두어야지.》

《선생님처럼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양로원의 늙은이들이란게 깽지근해서 자고나면 이부자리도 제대로 개놓지 않는답니다.

끼마다 밥타발을 하는가 하면 하루종일 텔레비죤을 마주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가 아니면 섹스록화물을 보는 재미로 살지요. 그리고는 늙은이들끼리 련애를 하질 않나 질투를 하질 않나, 참 골치 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랍니다.》

이때 식모가 아침식사를 차려들고 나타났다.

흰쌀밥에 고기국인데 순대와 닭알부침도 있고 얼음산을 그린 외국제 상표가 붙은 고급술병까지 곁들여있었다.

《선생님, 저녁식사도 못하셨으니 몹시 시장하시겠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총무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권했다.

《이거 양로원의 식사질이 대단하구만.》

《아닙니다. 여기 식사질이라는게 한심하지요.

그러나 오늘은 선생님을 위해서 좀 성의를 보인것입니다.》

총무는 술병을 들고 잔에 술을 부었다.

《자, 드십시오. 양로원입소를 축하합니다.》

강용찬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사양했다.

《고맙소만 난 그동안에 술마시는걸 잊어버렸소. 늙은이들을 돌봐주노라 수고가 많은 총무나 마시라구.》

《그래도 딱 한잔만 드십시오.》

총무는 자못 섭섭한듯 재차 권했다.

《이걸 한잔 마시면 또 한잔 마시고싶겠지?

그래 앞으로도 나에게 이걸 매일 한잔씩 보장해줄수 있소?》

《그거야 어떻게…》

총무는 난처해서 두손바닥을 펴보였다.

《사실 당국에서 양로원에 지출하는 자금이란게 명색뿐이지 보잘것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선단체들에서 이따금 기부해주는 돈과 무의무탁자가 아닌 로인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돈으로 겨우 둘러맞추는 판이지요.》

강용찬은 어제 저녁에 왜 이 사람이 세면도구를 싼 자기의 보자기에 눈독을 들이며 친절을 베풀었는가를 이제야 알게 되였다.

《사정이 그러하다니 나는 술이라는걸 애당초 입에 대지 않겠소. 자, 이건 내가 부어준셈치고 총무가 마시라구.》

《선생님은 정말 고정하신분이군요.》

총무는 잔을 들고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강용찬이 밥을 국에 말아서 서너숟갈 뜨는참인데 원장령감이 벌쭉 웃으며 들어왔다.

《강선생, 경사가 났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강용찬은 어정쩡해졌다.

웬일인지 원장령감은 어제 저녁 심술을 부리던 때와는 판이하게 아주 삽삽해졌다.

《선생이 출소하여 우리 양로원에 오신걸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찾아와서 인터뷰를 요청하는구만요.》

원장령감은 강용찬이 자기의 말을 듣는척도 하지 않고 다시 밥술을 들자 사위에게 재촉했다.

《자넨 뭘하고있나. 얼른 나가서 기자들을 여기로 모셔들이게.》

《예.》

총무는 일어나려다가 엉거주춤 굳어졌다.

강용찬의 엄한 눈초리에 찔리운것이다.

《가만! 난 그들을 만나지 않겠소.》

제 리속을 차리려고 이런 기회를 마련한 두사람은 몹시 당황해졌다.

《저… 선생님…》

총무가 눈치를 보면서 말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강용찬은 아예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원장령감과 총무는 눈만 꺼벅꺼벅하다가 물러나오고말았다.

《과연 괴짜로군, 괴짜야.》

원장령감은 눈살이 꼿꼿해서 두덜거렸다.

《아니, 강선생은 참으로 고정한분입디다.

술도 한방울 안 마시더군요. 불편한 몸이지만 손수 방을 분곽처럼 알뜰하게 청소해놓은걸 보셨지요?》

사위가 강용찬을 두둔해나서자 원장령감은 눈을 흘기며 볼이 꿰져나가는 소리를 했다.

《망할것, 그래서 괴짜라는거야.

모처럼 청해온 기자들을 그저 돌려보내야 하니 이게 참 야단이 아니냐.》

그들이 총무방에 들어가니 초조한 기색으로 담배를 피우던 기자들은 동시에 튕기듯 일어났다.

원장령감은 입만 쩝쩝 다시며 외면하고 총무는 배시시 웃으며 량해를 구했다.

《이것 참 안됐습니다.

강선생은 여러분과 만날 의향이 없다누만요.》

기자들은 아연해서 서로 마주보았다.

부산일보사 정윤수기자가 여유작작한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일없습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인터뷰에 응하도록 그분을 설득시킬테니 마음놓고 기다리십시오. 자, 총무님, 어서 가십시다.》

정윤수로 말한다면 청와대의 뒤골방에까지 뚫고들어가서 특종뉴스감을 꺼내온다는 언론계의 명물이여서 이런 때마다 한몫을 하군 했다.

강용찬이 정말 오래간만에 기름진 흰쌀밥을 고기국에 말아서 몇술 뜨고나니 인차 배가 불러서 수저를 놓는참인데 총무가 사진기를 든 기자를 뒤에 달고 들어왔다.

정윤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사진기렌즈의 초점을 맞추면서 아주 쾌활하게 말했다.

《선생님, 잠간만! 예, 좋습니다. 먼저 무상으로 사진부터 한장 찍어드리겠습니다.》

그가 샤타를 누르려는 순간 강용찬은 엄하게 제지시켰다.

《그만두시오! 당신은 누구요?》

정윤수는 사진기를 내리우며 반죽좋게 웃었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부산일보사 기자 정윤수라고 합니다.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난 이미 당신들과 만나지 않겠다고 했소.》

《예. 그런 취지의 말씀을 전달받고서도 렴치없이 선생님앞에 나타난 저를 제발 쫓아내지 말아주십시오. 선생님과 저는 동갑나이랍니다.》

기껏해야 서른대여섯살밖에 나보이지 않는 사나이가 자기와 동갑이라니 강용찬은 어이가 없었다.

《이건 사실입니다.

제 나이가 서른여섯이지요.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신 해에 내가 태여났단 말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감옥나이 36년과 꼭같지 않습니까?》

기자가 엉뚱하게 둘러맞추며 너스레를 피우는데 밉지 않아서 강용찬은 허허 웃고말았다.

정윤수는 별안간 얼굴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떨구며 침통한 어조로 계속했다.

《사실 가슴아픈 일이지요.

동서고금에 선생님처럼 오래 옥중생활을 하신분이 없거든요. 세계기록을 세운 장기수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에 있다는 자체가 비극이 아닙니까. 이런 비극이 곁에서 벌어지고있다는것을 사람들은 거의나 알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인터뷰를 거절하십니까?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 사회에 주는 충격이 매우 크리라고봅니다.》

청산류수로 엮어대며 반죽좋게 달라붙는 상대방을 막무가내로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그래 기자선생 나이가 정말 서른여섯살이요?》

《아닙니다. 사실은 서른다섯살이지요.

선생님은 제가 어머니배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감옥에 들어가셨으니 동갑이 아니라 형님벌이 되십니다.》

이통에 웃음이 터지고 어색하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선생님, 이거 굉장한 상을 받으셨구만요.

양로원의 식사질이 고급료정의 뺨을 치겠는데요.

총무님, 늘 이렇습니까?》

총무가 입을 싹 씻으며 대답했다.

《예. 우리 양로원은 국가가 중시하는 시설이니까요. 자고로 늙은이를 천대하면 나라가 망한다지 않습니까.》

《어랍쇼. 이런 대우를 해준다면 나도 양로원에 들어오고싶군요. 고진감래라고 선생님은 오랜 감옥살이끝에 편안한 보금자리를 찾으신셈입니다. 그래 출소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강용찬은 무표정한 기색으로 되돌아가서 흥심없이 대답했다.

《나에겐 감옥밖으로 나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구만.》

《예?》

정윤수와 총무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렇다면 이 장소가 감방처럼 생각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설사 다른 장소라고 해도 나에겐 마찬가지일거요.》

정윤수의 얼굴표정이 심각해졌다.

《결국 선생님에겐 감옥안이나 감옥밖이나 다른 차이가 없다는건데 그 리유는 뭡니까?》

《그건 구역경찰서나 지방검찰청에 가서 물어보시오. 난 더 할말이 없소. 이만합시다.》

정윤수가 재간을 부려 화기애애하게 만들어놓았던 분위기는 인차 깨지고말았다.

총무는 기자의 옷자락을 슬며시 당겼다. 그러나 정윤수는 그대로 물러설수가 없었다.

《선생님, 취재를 거절하시는 리유가 도대체 뭡니까?》

강용찬은 벌컥 증을 냈다.

《그건 당신들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아서 그래.》

그는 흑백을 전도하는 《이남》의 어용언론에 환멸을 느끼고있었다.

교도소와는 달리 감호소에서는 신문이나 텔레비죤 같은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언론사나 할것없이 《통일전망대》, 《통일의 길》이니 하는 북쪽고정란은 악의에 찬 비방중상으로 일관되여있었다.

정윤수는 속이 찔리웠지만 구차한 변명을 했다.

《언론은 국민의 눈이고 귀이고 목소리인데 어떻게 진실을 보도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럼 당신은 매국노가 애국자를 재판하여 감옥에 넣은 사실을 그대로 보도할 용기가 있소?》

《…》

《지금 누구나 말로는 통일을 바란다고 하지만 진실로 통일을 원하고 통일을 위하여 한생을 아낌없이 바친 의로운 사람들은 감옥안에 있소.

누구때문인가? 무엇때문인가? 이걸 까밝혀낼수 있겠소?》

그처럼 언변이 좋던 정윤수는 갑자기 벙어리가 되고말았다.

《물론 진실을 말하자고 애쓰는 량심적인 언론인들도 있겠지. 결국 그들이 가야 할 곳도 감옥이거든. 난 진실이 거짓으로 보도되는것도 바라지 않을뿐더러 당신이 감옥으로 가는것도 바라지 않소. 그러니 우리는 만나지 않았던것으로 합시다.》

비록 목소리는 투박했지만 가식이 없었고 진정이 담겨져있었다.

정윤수는 총무가 다시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당기기에 못견디는척 하고 복도로 나왔다.

그는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돈지갑에서 있는 돈을 다 꺼내여 총무에게 주었다.

《이거 얼마 안되지만 강선생님의 건강회복에 써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참, 내가 작별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나왔군.》

정윤수는 다시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총무는 흡족한 눈길로 사위를 할끔할끔 살피고나서 재빨리 돈을 세여보기 시작했다.

기다리기에 지쳐버린 기자들이 총무실에서 나와 강용찬의 방앞으로 우 몰려들었다.

총무가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마침 정윤수가 나오면서 손을 홰홰 내저었다. 《돌아들 가세. 아무리 권고해도 강선생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는 일체 거절이라오.》

록음기를 둘러멘 그리스도교방송기자가 물었다.

《어째서 그런다오?》

《그건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기때문이라는거요.》

기자들은 저마다 입맛을 다시며 락심한 기색으로 두덜거렸다.

《그 령감이 정말 괴짜로구만.》

《그럼 우리가 거짓말쟁이라는건가? 아무리 진실을 보도하고싶어도 당국의 보도지침을 어길수야 없지 않나.》

《오늘 취재는 공을 쳤으니 어쩐다?》

《우리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술이나 마시자구.》

《그게 좋겠네. 오늘 취재를 독점한 윤수군이 한턱 내게나.》

정윤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네. <진주특산>으로 가세. 내가 자네들에게 령남특산음식을 맛보이면서 <빅타>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류행가를 감상할수 있게 해주지.》

기자들이 문전거절을 당하고 물러가자 등이 단것은 원장령감이였다.

《흥, 인터뷰요, 뭐요 신새벽부터 소란을 피우더니 거 약차하게 손해만 봤군.》

총무는 새물새물 웃는다.

《아버님, 아무렴 제가 뭐 손해보는 노릇을 했겠나요.》

《카페에 가봐라. 그만한 식사를 차리자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어?》

《강선생은 술도 안 마시고 식사도 얼마 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이걸 보세요. 정윤수라는 기자가 준거예요.》

푸르딩딩하던 령감의 낯색이 사위가 꺼낸 돈을 보고서야 헤벌쭉해졌다.

《강선생의 건강회복에 써달라더군요.》

《건사해두게.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그 괴짜령감이 돈은 해서 뭘할고.》

《두고 보세요. 앞으로 이런 돈이 자주 굴러들어오게 될겁니다.》

《그렇다면야 더없이 좋은 일이지.》

령감은 손으로 사위의 어깨를 제법 다정히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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