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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을 앞두고 재판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순기라는 필명으로 지하출판물들에 자주 나타나 누구나 하고싶으면서도 막상 하지 못하고있던 속이 시원한 소리를 해주어서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필자가 어느 공단에 위장취업을 한 이전 법대학생이며 《부르독》이라고 불리우는 최검사의 손자라는 과연 놀랄만 한 소문이 시내에 파다하니 퍼져서 인기있는 화제거리로 되였기때문이였다. 여기에 또한 필자가 미남이며 인격자라는 소문이 겹쳐져서 그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겠다고 찾아온 아가씨들도 적지 않았다. 강용찬이네가 법정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방청석이 초만원이여서 문자그대로 립추의 여지가 없었다. 방청객의 태반은 진주와 함께 양로원에 자주 찾아오던 대학생들이였다. 그들은 자기네 모임의 회장인 진주가 모시고 들어오는 강용찬을 보자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생님 여기에 앉으십시오, 저기 앞자리로 나가십시오라고 깍듯이 권했다. 최성규는 이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까지 거느리고 들어 와서 피고의 가족들이 앉게 되여있는 맨 앞줄의 가운데좌석을 차지하고있었다. 그는 대학생들이 누구인가를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앞자리로 모셔들이기에 어느 존경받는 교수님이 재판을 구경하러 왔는가부다 했었는데 웬걸 당사자는 놀랍게도 강용찬이였다. 그것도 혼자서 온게 아니였다. 신수가 멀끔한게 돈깨나 있어보이는 동료와 삐여지게 아름다운 아가씨까지 데리고 나타났다. 강용찬이가 고목이라면 아가씨는 그 가지에 피여난 탐스러운 백장미랄가. 어쨌든 두사람이 서로 판판 다르면서도 서로 잘 어울리는것이 신기할 지경이였다. 당당히 피고의 가족들이 앉게 되여있는 앞좌석을 차지하는 그들을 넌지시 바라보던 최성규는 강용찬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먼저 수작을 걸었다. 《강선생, 몸이 편찮으시유? 신색이 말이 아니로구만요.》 최성규가 먼저 집작거리는걸 보니 수헌이의 일이 심상치 않아서 강용찬은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최검사의 귀에 익은 야유조의 목소리에 룡세는 흠칫 몸을 떨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최성규는 그를 알아보았다. 《아니, 이건 뉘시오. 심군이로군. 정말 오래간만이요. 헌데 군이 어떻게 여기에 왔소?》 룡세는 표리부동하기에 이를데 없는 상대방의 맷맷한 낯짝만 봐도 속이 떨려서 아무런 응대도 못하고 덤덤히 앉아있었다. 저쪽에서 속이 편치 않아 한다는것을 직감한 최성규는 더 기세가 올라서 추근추근 캐물었다, 《강선생, 당신의 옆에 앉아있는 예쁜 아가씨는 누구요? 따님은 아닐게고 손녀라도 되는가요?》 강용찬은 좀 으시대는듯 한 어조로 뻐젓이 대꾸했다. 《내 손자의 약혼녀요.》 《무슨 롱담을… 》 《난 당신과 실없는 소리를 해본적이 없소.》 그제서야 최성규는 눈이 퀭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이때 최성규의 옆에 앉아있던 중년부인이 팩 고개를 돌리며 강용찬을 야멸차게 쏘아보았다. 수헌이의 어머니가 분명했다. 언젠가 자기네 집에 찾아왔던 강용찬을 매정하게 돌려보냈던 그 녀자가 오늘도 원망에 찬 눈초리로 쏘아보는것이였다. 이통에 분위기가 상당할 정도로 어색하고 랭랭해졌는데 한쪽 어깨에 사진기를 둘러멘 정윤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선생님, 오래간만입니다.》 강용찬은 그를 대뜸 알아보았다. 《정말 오래간만이요. 선생이 보내준 잡지를 받았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잡지사에 전화를 거니까 경찰에 련행되여갔다고 그러더구만.》 《예, 나도 순기군덕분에 둬달정도 감옥밥이라는걸 먹어보았습니다.》 《거 정말 안됐소.》 정윤수는 여전히 싱글벙글 했다. 《아니지요. 순기군의 론문을 싣는통에 우리 잡지사의 인기가 높아져서 발행부수가 배로 늘어났답니다. 이번에도 순기군이 재판을 받는다기에 만사를 젖혀놓고 부랴부랴 떠났지요. 공판소식을 실었다고 경찰에서 또 모시러오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건 말뿐이니까요.》 정윤수는 언젠가 자기를 물어메쳤던 《부르독》이 곁에서 노려 보는데도 이렇게 거리낌없이 말하고나서 고개를 떨구고있는 심룡세를 보자 반색을 했다. 《아니, <진주특산>주인님이 어떻게 여길 다 오셨습니까? 어허, 따님도 함께 오셨군요. 요새도 영업이 잘됩니까?》 최성규는 그제서야 강용찬이 방금전에 자기 손자의 약혼녀라고 자랑하듯 소개한 백장미꽃이 다름아닌 심룡세의 딸이라는것을 알게 되여서 더우기나 속이 뒤틀렸다. 전향서에 지장을 찍은 놈이 말년에 빨갱이와 다시 짝자꿍을 치면서 사돈까지 맺었다는거지, 괘씸한 놈들, 그 애가 누구의 손자이기에 저희들끼리 감히 약혼이요 뭐요 해? 어디 보자. 너희들이 이 자리에서 톡톡히 망신을 하게 될거다. 최성규는 쪼간이 있는지라 속이 든든해서 이제 곧 펼쳐지게 될 그 광경을 미리 눈앞에 그려보면서 랭소를 머금었다. 재판장과 판사와 배심원들이 이런 장소에 나올 때는 의례히 그래야 하는것처럼 꾸며낸 엄엄한 표정을 짓고 틀스럽게 걸어나오고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한바탕 싸울 태세를 갖추며 자기의 자리를 차지했다. 좌중이 물뿌린듯 조용해진 가운데 두손에 수정을 찬 수헌이가 고개를 떨군채 량옆에 붙어선 두명의 경찰에게 끌리워나왔다. 강용찬은 수정을 찬 순기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와서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었다. 그처럼 끼끗하고 름름하던 젊은이가 초절임을 당했는지 완전히 한풀 꺾이워서 후줄근해졌다. 곁에서 진주가 발을 구르며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다. 《어머! 어쩌면 저렇게까지… 어쩌면…》 강용찬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은 진주를 진정시켜 주노라 처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경찰이 수헌이의 손목에서 수정을 벗겨주었다. 그제서야 수헌이는 고개를 들며 방청석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진주와 눈길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어보이려던 그는 곁에 있는 강용찬의 침통하게 굳어진 얼굴을 보자 자기도 굳어져버렸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듯 조갈이 든 입술을 감빨던 그는 심룡세를 지나쳐서 무언의 고무를 해주노라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최성규와 눈길이 마주치자 미간을 약간 찡그렸고 이붓아버지를 지나쳐서 몹시 긴장되여있는 어머니와 눈길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떨구더니 괴로운듯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는것이였다. 순기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서 강용찬은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다. 아무리 여겨봐도 한풀 꺾이우고 주눅이 들고 번민에 잠긴 모습이였다. 하기야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저 애가 예심기간에 놈들의 악행을 받노라 얼마나 고통을 겪었겠는가. 모름지기 최성규놈이 담당검사와 짜고들어 회유를 하고 협박을 하고 고문을 들이댔을건 뻔한 일이다. 만약 저 애가 놈들에게 정신적으로 굴복당했다면, 숱한 방청객들이 모여든 이 재판정에서 자신이 한 의로운 행동을 범죄행위로 자인하면서 제발 용서해달라고, 자비심을 베풀어달라고 빌게 된다면… 더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강용찬은 자기가 순기의 그런 비굴한 모습을 도저히 볼수 없으며 그것을 보기 전에 자기의 심장이 터져나가리라는것을 모진 아픔속에 예감하였다. 하지만 그는 진리를 깨달은 한 의로운 젊은이를 자신처럼 믿고 싶었다. 수헌이는 잠시 고개를 떨구고 그 무슨 착잡한 생각에 잠겨있더니 재판관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이윽고 검사의 기소가 시작되였다. 최성규가 어쩌면 자기와 꼭 같은 놈을 골랐는지 검사는 아예 생겨먹기를 인정사정이라는것을 꼬물만치도 모르는 랭혈한이였다. 뻐쩍 마른 체구에 얼굴은 갱핏하고 까무잡잡한데 코와 턱이 칼날처럼 뾰죽했다. 눈은 챕챕하지만 거기서는 마주보는 사람의 가슴을 섬찟하게 해주는 차겁고 예리한 빛이 번뜩이였다. 그는 낡은 축음기를 수리하여 돌리는것처럼 성량이 적지만 박박긁는듯 한 소리로 군말 하나 없이 딱딱 꼬집어가며 피고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렬거하였다. 그러고나서 닉명으로 반국가적인 언론행위를 한것과 위장취업을 한것은 《국가보안법》 몇조 몇항에 해당된다고 빈틈없이 론거를 세웠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피고의 범죄행위는 고의적인것으로써 대단히 엄중하므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에 해당됩니다. 이상입니다.》 검사가 기소를 끝내자마자 벌써부터 엉치를 들썩거리고있던 변호사가 아주 유쾌한 일이라도 하려는듯이 벌씬 웃으며 일어났다. 그는 무엇때문인지 재판관들쪽에도 방청들쪽에도 고개를 깍듯이 숙여 경의를 표하고나서 노래라도 부르는것처럼 머리를 흔들며 류창하게 언변을 토했다. 《존경하는 재판장각하! 배심원제씨들! 그리고 한 젊은이의 불우한 운명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천금 같은 시간을 아낌없이 내서 이 장소에 왕림해주신 청중 여러분! 지금 우리앞에 서있는 피고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과연 우리는 어떠한 젊은이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것입니까?》 모두에게 던진 변호사의 질문은 청중들은 물론이고 재판관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강용찬은 호인격인 변호사가 자기의 변론을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하는지 도저히 짐작할수 없었다. 《피고는 대한민국의 초창기부터 나라의 기틀인 법을 지키는데 헌신분투해오신 명망높은 최성규검사의 손자입니다.》 변호사는 이것이 각별히 중요하다는듯이 다시금 방청석을 의미심장하게 둘러보고나서 재판관들을 향하여 말을 이었다. 《피고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좋은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때문에 몇해전에는 법대에 수석으로 입시함으로써 장차 전도유망한 법관이 될수 있겠다고 법조계가 인정한바도 있는 수재입니다. 이러한 피고의 위법행위가 의식적인것이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박식함과 총명함을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법률연구행위로 보아야 하겠는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하늘의 계시라도 받으려는것처럼 잠시 천정을 쳐다보던 변호사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설득력이 있게 말을 이었다. 《저는 두번째 경우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에… 대학시절에는 총명한 젊은이들이 공명심에 들떠서 공연한 객기를 부리다가 이러루한 실수를 흔히 하기때문입니다. 피고는 제나름으로 정의감에 불타서 이런 행위를 한것은 사실입니다. 법률연구과정에 자기가 발견한 모순점을, 례하면 국제법상 견지에서 우리의 법이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는데 어쩌면 이럴수가 있겠느냐고 통탄한것입니다. 물론 남북대결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인권옹호의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의 즉시 철페를 주장한것은 피고가 정치적미숙성에서 본의 아니게 범한 과오일것입니다. 검사선생, 재능이 있고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의 실수를 반국가행위로 엄중시하고 실형을 언도한다는것은 국익에도 저촉되고 민심도 거슬리는 처사입니다. 나는 피고를 감옥에 보낼것이 아니라 법학을 배우는 교정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는바입니다. 이것은 피고를 교화시키려는 근본목적에도 전적으로 부합됩니다. 이런 관대성을 베풀어준다면 피고가 자기의 실수를 교훈으로 삼고 학업에 더욱 매진하여 장차 훌륭한 법관이 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세우는데 이바지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변호사는 자기의 류창한 언변에 스스로 만족한듯 재판관들에게 고개를 깍듯이 숙여보이고 청중쪽에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검사는 인상이 좀 밝아진걸 보니 설득력이 있는 변호사의 제기에 저으기 감동된듯 한 기색이였다. 그는 챕챕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서류철을 뒤적거리더니 만약 피고가 자기의 실수를 자인하고 뉘우친다면 무죄로 석방될 가능성의 여지가 있다는데 대하여 인정하지 않을수 없노라고 했다. 반국가적인 범죄행위로 기소된것이 변호사의 류창한 언변에 의하여 실수로 기울어지자 적지 않은 방청인들이 안도감에 휩싸이며 모두었던 숨을 길게 내쉬였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고 몇사람은 투닥투닥 박수까지 쳤다. 말년의 걸작으로 이런 멋진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출해낸 최성규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강용찬을 돌아보았다. 여느때는 밉살스러울 정도로 무표정하던 상대방의 얼굴이 불안과 초조감에 휩싸여 벌겋게 달아오르고있었다. 꾹 다물린 입술과 살이 헐끔하게 빠진 볼편이 푸들푸들 떨리고 관자노리의 피줄이 당장 튀여나갈듯이 부풀어올랐다. 이제 극이 절정에 이르면 어떻게 될것인가? 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수류탄처럼 터져서 고함을 지를것인가? 아니면 쇼크되여 김 빠진 공처럼 쭈그러들것인가? 저놈은 어찌되든지간에 자기는 무죄석방된 수헌이를 포옹해주고 가족들과 함께 유유히 퇴장할걸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한바탕 추고싶었다. 그는 이 연극을 성공적으로 연출해내기 위해서 검사와 변호사와 사전에 면밀히 짜고든것은 물론이고 며느리의 모성애까지 서슴없이 악용하였다. 수헌이가 체포됐다는 말을 듣고 며느리가 제발 자비심을 베풀어주십사 하고 눈물로 호소할 때 그는 가장 슬퍼하는체 하면서 오냐, 그녀석의 행실이 고약해서 괘씸하기는 하지만 나도 기른 정이 있으니 어쩔수가 없구나, 내가 담당검사에게 관대히 봐달라고 부탁하고 유능한 변호사도 내세우겠다, 아무쪼록 무죄석방시키도록 힘쓸터이니 걱정일랑 말아라, 요는 그녀석이 재판장에서 자기는 반국가적인 범죄를 저지른게 아니라 그저 법률연구과정에 실수를 했노라고 뻗쳐야 된다는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판에서는 이기고 봐야 하는것이니 그렇게 하도록 네가 구치소에 찾아가 타일러보아라 하면서 며느리의 등을 떠밀었던것이다. 구치소에 찾아갔던 며느리는 어떻게 설복을 했는지 아들이 동의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됐구나! 하고 이 멋진 연극을 보여주려고 아들과 며느리와 손녀까지 데리고 온것이였다. 재판장은 큰 은혜라도 베푸는듯이 자못 너그럽고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래 피고는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는가?》 술렁거리던 법정은 다시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은 실형을 언도받고 교도소로 가는가 아니면 무죄석방되여 대학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기로에 서있는 수헌이에게 쏠려있었다. 수헌이는 그 어떤 생각에 골똘히 잠긴듯이 고개를 떨군채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그는 스무날남짓이 구치소에 들어가 검사의 조사를 받는 기간에 특별교육이니, 피티체조니 하는 명색의 고문도 받아보았고 이에 항의했다고 해서 이틀간이나 통졸임통같은 먹방에 들어가 엄정독거를 치르면서 수정을 찬채로 바닥에 엎드려서 《개밥》도 먹어보았고 자기가 신고있던 고무신에 퍼주는 쩝쩔한 소금국도 눈물과 함께 마셔보았다. 이러루한 고문과 학대는 이미 각오하고있어서 얼마든지 견디여낼수 있었다. 그런데 구치소에 찾아와 울며불며 통사정을 하는 어머니앞에서는 어쩌는수가 없었다. 너에게 유명한 변호사를 대려고 한다, 그분이 네가 위법행위를 한게 아니라 실수를 했다고 뻗치기만 하면 얼마든지 무죄석방될수 있다는구나, 꼭 그렇게 해다오, 그렇게도 못하겠으면 차라리 네 손으로 이 에미를 죽여라, 나도 살기가 귀찮다, 네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감옥귀신이 되면 나도 식칼로 목을 찌르던지 배를 가르던지 죽어버리고 말테다, 어쩔셈이냐? 이렇게 실성을 한듯이 야단을 치는 어머니를 보니 당장 까무라치기라도 할것 같아서 예, 그렇게 합시다, 마음을 놓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하고 진정시켜보낸것이였다.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서 변호사가 장황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단순히 위법행위를 부인하려는것이 아니라 극히 교묘한 수법으로 자기의 정치적순결성을 강간하려드는것이였다. 여기에 검사도 맞장구를 치고있었다. 결국 이것은 법정이라는 무대우에서 진행되고있는 모종의 연극, 정치협잡극이였다. 《피고는 어째서 대답이 없는가?》 재판장이 미간을 찡그리며 다소 엄하게 물었다. 재촉을 받은 수헌이는 재판장이 아니라 방청석에 앉아있는 강용찬을 돌아보았다. 반공교육에 오염됐던 자기에게 진리를 깨우쳐주고 참된 길로 이끌어준 비전향장기수선생님이 근엄한 눈빛으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그것은 자기의 친할아버지처럼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한몸을 서슴없이 바쳐 싸우다가 결전장에서, 고문장에서, 사형장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친 애국투사들이 이 땅의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눈빛이기도 했다. 하기에 그는 이 순간에 자기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력사적인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러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수헌이는 재판장을 향하여 어엿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실수를 한것이 아닙니다.》 뜻밖에도 피고의 입에서 자신에게 극히 불리한 발언이 튀여나가자 장내가 쑤셔놓은 벌둥지처럼 술렁거렸고 재판장은 놀라며 두눈을 흡떴다. 《그렇다면 피고는 반국가적인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는것인가?》 수헌이는 당당한 자세로 재판장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결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은 그만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눈을 부라리며 신경질을 썼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피고는 무엄하게도 신성한 법정을 감히 우롱할셈인가?》 재판장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일수록 어찌된 일인지 가련하고 초췌해보이던 피고의 모습이 당돌하게 어엿한 존재로 뚜렷해지는것을 모든 사람들이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특히 애인을 지켜보는 진주의 맑은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이였다. 수헌이는 알릴듯말듯 조소를 머금으며 지나칠 정도로 정중히 대답했다. 《재판장각하, 저는 마땅히 신성해야 할 법정이 존경하는 변호사선생과 검사선생에 의하여 이미 우롱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심히 파격적인 발언에 장내는 바람맞은 숲처럼 술렁거렸다. 검사의 기소와 변호사의 류창한 변호를 들으면서 누구나 막연하게 느끼면서도 설마 그러랴 했던 조작감을 피고가 명백히 지적한것이였다. 초긴장으로 굳어졌던 강용찬은 소리없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최성규를 돌아보았다. 의기양양하던 최성규는 얼굴이 컴컴하게 질려서 독기에 찬 눈으로 수헌이를 당장 잡아먹을듯이 노려보고있었다. 수헌이는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조리있게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검사가 기소한대로 <국가보안법>의 즉시 철페를 요구하는 언론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의식적인 활동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범죄로 되지 않는 리유는 당국이 이 법을 이미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기때문입니다. 누구나 잘 아시다싶이 <국가보안법>은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북에 잠입하거나 거기서 탈출하는 경우 사형에까지 처하게 되여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에 당국에서는 고위급대표단을 평양에 보낸바 있습니다. 평양에 갔다온 대표단성원들과 체육인, 연예인들은 <국가보안법>을 심히 위반했으므로 마땅히 처형을 받아야 했지만 검찰측은 법집행을 포기했습니다. 누구는 지켜야 하고 누구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라면 차라리 없애치워야지 시끄럽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건 없애자, 그것이 리롭다고 한건데 어째서 죄로 됩니까?》 재판장은 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질문으로 역습을 시도 했다. 《피고는 자기의 처사가 정당했다면 어째서 제가 쓴 글들을 닉명으로 발표했는가?》 수헌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닉명이 아니라 나의 본명입니다.》 방청석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일어번졌다. 일순 아연해졌던 재판장의 무뚝뚝한 얼굴에도 호기심이 어렸다. 배심원들, 지어는 검사와 변호사까지도 눈이 둥그래져서 목을 길게 뽑으며 귀를 강구는것이였다. 《으흠?! 그럼 피고의 이름인 최수헌이가 가명이라는건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재판장은 방청석의 앞줄에 앉아있는 최성규를 흘끔 쳐다보았다. 최성규는 그야말로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심정이였다. 《예, 저의 본래 이름은 김순기입니다.》 최성규는 너무도 분통이 터져서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났다. 다른 장소도 아닌 법정에서 이미 자기의 손자가 아니기를 선언한 피고에게 사형판결이라도 내리려는듯이 삿대질을 하며 뭐라고 고함을 치려던 그는 문득 굳어졌다. 유감스럽게도 자기는 이 장소에서 검사가 아니라 방청인에 불과함을 뒤늦게야 깨달았던것이다. 말뚝처럼 서있던 그는 곁에 앉아있던 아들이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무너지듯 풀썩 주저앉았다. 《망할 놈… 배은망덕한 놈…》 푸들푸들 떨리는 그의 입술사이로 허연 거품과 함께 이런 분명치 않은 소리가 새여나왔다. 그 소리를 짓눌러버리며 수헌이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그는 자기의 할아버지가 망국적인 《5.10단선》을 반대하여 일어난 려수군인봉기의 참가자이며 지리산빨찌산의 대원임을 밝히고 자기의 아버지는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죄 아닌 죄로 어릴 때부터 당국의 박해를 받아온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빨갱이>의 자식은 이 사회에서 생존이 불가능했던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전쟁때 체포되여 무기징역을 살다가 사형장에서 희생된 할아버지의 신원을 위조하고 호적에서 지워버리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결국 국가폭력이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존재를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한것입니다. 이런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아버지는 취직을 하고 가정도 이룰수 있었으며 나도 이 세상에 태여날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해상사고로 사망하였습니다. 재혼을 한 어머니를 따라간 나에게 양할아버지는 자기의 성을 달아주고 이름도 수헌이라고 고쳐주었습니다.》 재판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성규는 피고의 발언을 중지시키지 않고 그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라도 되는것처럼 귀가 항아리만 해서 듣고있는 재판장의 처사가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양할아버지의 권고로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나의 희망은 기자나 작가가 되는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된바치고는 검사나 변호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36년간이나 감옥에 갇혀있다가 출소한 비전향장기수로인을 만나서 교도소와 감호소의 실태를 료해하던 나는 사상과 정의와 량심에 대한 당국의 야만적인 폭압에 격분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런 살인악법이 없이는 존재할수 없는 이런 나라에서 살며 법률을 배운다는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였습니다.》
《발언주의!》 재판장이 엄하게 경고를 주었다. 《그 장기수로인과 접촉하던 과정에 나는 나의 친할아버지도 비전향장기수로서 통일운동에 한몸 바친 애국자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 놀라운 사실앞에서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양로원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로인은 나의 친할아버지와 다름이 없는분이였습니다. 그분을 사형으로 기소하여 감옥에 넣은 검사는 나를 길러준 양할아버지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가? 나는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쳐오고있는 비전향장기수로인의 손자로 될 결심을 하고 탈가했습니다.》 재판관들은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숨을 죽이고있던 방청석에서도 경탄하여 슬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법정에서 비전향장기수인 강용찬선생님을 자기의 할아버지라고 선포한 수헌이는 긍지와 자부심이 어린 당당한 눈길로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강용찬은 눈굽이 확 달아오르고 눈앞이 뿌잇해져서 사랑하는 손자의 모습을 뚜렷이 볼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검사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걸고들었다. 《피고는 법대학생인데 그런 행동이 실정법에 심히 어긋난다는걸 모르는가?》 수헌이는 깨우쳐주는듯 한 어조로 대답했다. 《검사님, 법은 원칙적으로 도덕원리에 적합해야 하는 내재적인 제약을 가지고있습니다. 비전향장기수할아버지들은 바로 우리 젊은 세대에게 통일된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수십년간을 감옥에서 고생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존경해드리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당국의 실정법은 이러한 초보적인 도덕원리를 부인하고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느 쪽에 충실해야 하는가는 심각한 문제로 나섭니다. 법이냐 도덕이냐? 나는 인륜을 무시한 법은 지키지 못해도 인간으로서 도덕은 지켜야 했던것입니다.》 론리에 몰리운 검사는 입만 쩝쩝 다시는데 재판장이 삿대질을 하며 악을 썼다. 《그것이 바로 반국가적행위라는걸 몰랐는가?》 《왜 몰랐겠습니까.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국을 반대할지언정 조국은 배반할수 없었습니다.》 수헌이가 말하는 조국은 의심할바없이 통일된 조국이였다. 항일의 선렬들이 피흘려 찾았고 통일애국투사들이 사형장에서도 그려 보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던 바로 그 조국이였다. 장하다! 순기야! 강용찬의 눈굽에서 끓던 뜨거운것이 드디여 보뚝이 터진듯 두볼을 지지며 화락하니 흘러내렸다. 손자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는 할아버지로 하여금 수십년세월 겪은 옥중고초를 달게 여기게 해주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있었다. 손자의 목소리는 더 크게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나의 할아버지와 같은 통일애국투사들이 있기에 광복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파쑈독재가 란무하는 이 땅에서도 인간의 고상한 정신과 깨끗한 량심이 지켜졌고 통일운동의 정통성이 꿋꿋이 이어지고있습니다.》 몹시 흥분하고 격동된 진주는 저도 모르게 힘껏 박수를 쳤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요란한 박수갈채가 일어번졌다. 최성규네는 그 파도에 휩쓸려서 정신이 나간듯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는 이미 지면을 통해서 주장했지만 지금 이 법정에서 재삼 주장합니다. 당국이 진정으로 평화통일을 할 의사가 있다면 <국가보안법>을 당장 철페하고 통일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고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즉시 석방하여 북으로 송환해야 할것입니다.》 《옳소!》 진주네 모임에 속한 대학생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피고의 주장에 전적으로 호응했다. 또다시 터진 박수소리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법정의 천정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발언중지!》 당황망조한 재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본 재판과정에 피고의 신원이 새롭게 밝혀진것과 관련하여 검사의 조사를 다시할 필요가 제기되였는바 조사가 끝날 때까지 휴정입니다.》 재판관들과 배심원들이 등단할 때의 그 위엄있던 자세를 어디에 버렸는지 의자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허겁지겁 퇴장하자 대기하고 있던 두명의 경찰이 수헌이에게 수정을 채웠다. 수헌이는 수정을 찬 두손을 머리우에로 들어올리며 방청석을 향하여 돌아섰다. 그 모습은 불굴의 기상이 유감없이 어려있는 장부의 당당한 모습이였다. 그는 강용찬을 향하여 큰소리로 웨쳤다. 《할아버지!》 《순기야!》 강용찬은 하나밖에 없는 팔을 내밀며 일어났다. 온 정신과 육체가 사랑하는 손자에게로 쏠렸던 그는 곁에서 누군가 자기의 오른쪽 빈 팔소매를 우악스레 거머쥐며 탁 잡아채는통에 흠칫 고개를 돌렸다. 《기뻐하지 마시오. 결국 저 애의 손에 다시 수정을 채운건 당신이요.》 최성규는 강용찬을 노려보며 이렇게 한마디 한마디 가혹하게 씹어서 내뱉았다. 보름후에 비공개로 다시 진행된 재판에서 순기는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을 언도받았다. 이미 기소된 반국가적인 언론활동과 함께 수배생활기간에 《소나무회》라는 친북적인 지하단체를 조직하고 로동자들속에서 의식화활동을 벌린것이 상당히 엄중한 위법행위로 첨가됐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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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세월이 류수처럼 또 흘렀다. 이미 낡았던 양로원의 건물들은 세월의 눈비를 맞아서 벽에 퍼렇게 물때가 끼고 고삭은 추녀들은 맥없이 처져내렸으며 바람에 날려온 흙먼지가 쌓인 지붕의 기와우에는 잡초까지 돋아나서 제명을 다산 사망직전의 늙은이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정원과 후원에 있는 사과나무, 감나무들도 늙고 기력이 쇠진해 져서 이제는 봄이 와도 엉성해있는 가지에 꽃이 제대로 피여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문옆에 서있는 한그루의 소나무만은 키높이 자라나서 6월의 봄바람에 푸르청청한 잎새를 흔들며 젊음을 자랑하고있 었다. 그 소나무를 심어놓고 십년세월 정성을 들여 가꾸어온 강용찬은 오랜 감방생활에서 얻은 고혈압과 심장병이 악화될대로 악화되고 거기에 로쇠까지 겹쳐져서 방에 드러누워 며칠째 바깥출입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다. 손자는 감옥에 가있는데다가 들려오는 소식도 어수선해서 그동안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정작 그를 넘어뜨린것은 희소식이라고 볼수 있었다. 랭전종식에 평화와 완화라는 세계적인 변화와 추세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얼어붙을대로 얼어붙기만 하던 북남관계에 돌연 개선의 봄바람이 불어왔다. 수일내에 당국자가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는거다. 그 소식을 듣고 강용찬은 흥분하지 않을수 없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병약하고 로쇠해진 육체가 그 흥분을 감당해내지 못한것이였다. 하긴 올해 여든세살이니 그럴만 한 나이도 되였다. 십여년전 그가 양로원에 입소할 때부터 있던 늙은이들의 다수가 이미 저세상으로 갔으며 고향이 북청이라는 그처럼 건강하던 원장령감도 사망하여 지금은 약삭바른 총무가 원장노릇을 하고있었다. 늙은이들의 사후처리가 범상한 일로 되여있는 원장은 이승과 저승간에 있는 이 주막집에서 이젠 그만 떠나갈 손님들을 며칠전에 알아보는 미립이 텄는데 슬프기는 하지만 양로원의 최년장자인 강선생도 그렇게 된것으로 간주하고 진주에게 미리 가까운 사람들과 작별할 기회를 마련해주는게 좋겠다고 귀띔하였다. 진주는 《량심수가족후원회》에 망라되여 그 기간 변함없이 애인의 옥바라지를 해주면서 옥중에 있거나 강용찬이처럼 보안관찰처분을 받고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의 딸이 되여 효도를 해오고있었다. 진주는 즉시 교도소에 달려가 순기에게 원장의 말을 전해주었는데 이때 손자가 받은 심리적인 충격은 실로 치명적인것이였다. 순기는 이제 석달만 지나면 만기출소를 하게 된다. 그러면 진주와 가정을 이루고 그동안 고생이 많으신 할아버지를 자기들이 모시고 여생을 다문 얼마만이라도 행복하게 해드릴 생각이였다. 그런데 림종에 처하다니 이 어인 말인가? 모성애란 참으로 쉬이 버릴수가 없는것이여서 순기의 어머니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눈을 피하여 이따금씩 교도소에 찾아와 아들을 만나보군 했다. 순기는 어머니에게 빨리 양로원에 가서 자기 대신에 할아버지의 림종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뭐? 그 령감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냐? 그건 못하겠다.》 녀인은 매정하게 거절했다. 《어머니,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분이랍니다. 결코 어머니를 탓하지 않으실겁니다.》 《어머니가 그렇게밖에는 달리 할수 없었던 모든 일들을 리해하고 용서해주실거예요. 그래야 어머니의 마음도 편하실게 아닙니까. 예?》 아들의 말마따나 녀인에게는 양로원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로인에게서 용서를 받아야 할 일이 있었다. 20년이 넘도록 감옥에 갇혀 있다가 출소하는 길로 자기네 집을 찾아왔던 강용찬이를 그는 어떻게 대해주었던가. 인정상으로 봐도 례의상으로 봐도 그 녀자는 차마 못할짓을 한것이였다. 남편이 사망한 후 덮어놓고 돈 많은 홀애비를 택하여 재가한것도 결국 잘된 일이라고 볼수 없었다. 그 일이 이렇게 번져졌으 니까… 《어머니,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가 이렇게 말씀드리세요. 절대로 눈을 감으시면 안된다구요. 백날만 기다려달라구요. 그러면 제가 만기출소하여 할아버지를 모시러간다구요. 이 손자가 할아버지를 다문 며칠간이라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구요. 내 말을 어머니가 꼭 전해주세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실거예요.》 녀인에게는 아들의 이 절절한 부탁을 거절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오냐 알겠다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막상 양로원에 가자니 후과가 두려웠다. 녀인은 망설이다가 시아버지에게 여사여사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최성규도 팔십고령이라 하는 일없이 집에서 놀고있었다. 그도 피차 인생을 총화해야 할 날이 가까와오고있어 요즘은 자신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 더듬어보며 생각이 많던차였다. 그런데 강용찬이가 림종에 처했다는 며느리의 말을 듣고보니 대단히 심각해졌다. 물론 강용찬은 화해 불가능한 숙적이다. 그러나, 하긴 그렇기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자기는 그와 마지막결산을 해야만 했다. 이랬든 저랬든 동향인이라 적수의 림종을 지켜주고 심심한 애도의 뜻도 표하는 아량도 보여주고싶었다. 《가야지, 나도 함께 가겠다.》 범상치 않은 낯색으로 일어나는 시아버지의 거동이 자못 불안해서 녀인은 오금이 저려들었다. 《그만두시지요. 아버님이야 무엇때문에 거기에 가시겠나요.》 《걱정할건 없다. 어서 가자.》 최성규가 양로원마당에 차를 세우는데 룡세가 왕진가방을 든 의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의사를 택시에 태워서 바래워주고 돌아서던 룡세는 하얀 승용차에서 내리는 최성규를 보자 어찌도 놀랐던지 기겁을 하며 한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최성규는 정색하여 물었다. 《그래 강선생의 몸상태는 어떻소?》 룡세는 불안해서 어쩔바를 몰라 했다. 《희망이 없다고 하더군요. 제발 당신은 돌아가주시오. 림종의 순간까지 강형을 괴롭힐거야 없지 않소.》 최성규는 룡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어서 들어가기요. 난 강선생을 위로해주자고 왔소.》 룡세는 최성규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리는 순기의 어머니를 보고서야 안심이 되는지 안내를 했다. 강용찬의 방은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도 소박했다. 참지에 한자로 쓴 《지원》이라는 두 글자가 벽에 붙어있을뿐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전자일용제품들도 없었으며 가구도 한심했다. 그런데도 깨끗했으며 어딘가 모르게 엄숙한감을 주었다. 벽에 붙어있는 《지원》이라는 두 글자때문인것 같았다. 어쨌든 최성규는 자그마한 이 방에 강용찬이 고행을 하며 일생 신봉하던 그 사상이라는것이 꽉 들어차있는것처럼 느껴져서 교회당에 들어 온 신자처럼 몸가짐이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강용찬은 방바닥에 요를 깔고 누워있는데 십년어간에 체구가 퍽 졸아든것 같았다. 최성규는 강용찬의 곁에 다가앉아 너그럽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불렀다. 《강선생.》 강용찬은 기진하여 감고있던 눈을 가까스로 떴다. 그는 처음에 최성규를 인차 알아보지 못했다. 아마 의사가 또 왔는가부다 했는데 자세히 보니 천만뜻밖에도 최성규가 며느리까지 데리고 와서 자기곁에 앉아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강선생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기에 찾아왔소.》 최성규는 며느리에게 할말이 있으면 먼저 하라고 했다. 기력을 잃고 간신히 숨을 쉬고있는 로인의 정상이 너무도 불쌍해서 녀인은 그만 흐윽 소리내여 흐느끼고말았다. 《저는… 아들을 만나러 교도소에 갔다가… 그 애가 하는 말이… 그 애가 하는 부탁이…》 녀인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 토막이 났다. 《그 애의 부탁이… 제발 할아버지에게 기운을 내여 석달만… 백날만 견디여내라고… 그렇게 말씀드려달라고 하기에 … 그러면 그 애가 출소를 한답니다. 자기가 할아버지의 여생을 다문 며칠만이라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는겁니다.》 녀인은 가까스로 말을 끝맺고나서, 아니 아들이 준 임무를 달갑지는 않지만 수행하고나서 몸을 돌리더니 무엇때문인지 진주를 와락 껴안고 소리내여 슬피 울기 시작했다. 운명이 경각에 이른 이 로인도 불쌍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수중고혼이 된 자기의 이전 남편도 불쌍하게 생각되였고 지금 십년째나 감옥에 들어가서 아까운 청춘을 썩이고있는 자기의 아들 역시 불쌍하거니와 운명이 제 할아버지처럼 순탄치 않은 아들과 결합되게 될 이 처녀의 신세도 가긍하게 여겨져서 슬픔이 도를 넘어선것이였다. 그러자 진주도 참고있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억눌러도 참아도 어쩔수없이 그냥 터져나오는 녀인들의 울음소리는 가뜩이나 무거운 방안의 분위기를 더 침울하고 비장하게 만들었다. 강용찬은 괴로운듯 눈을 감고있었는데 숨을 쉬는것이 거의나 알리지 않아서 이미 숨이 진것처럼 보였다. 최성규는 자기도 속이 울적하고 답답해져서 입을 다시며 한숨을 내쉬였다. 이 순간에야 그는 처음으로 강용찬이가 불쌍해보였고 그래서 동정심이 생겨났으며 진심으로 위로해주고싶은 마음까지 우러나는것을 느꼈다. 《강형, 마지막으로 나에게 뭐 부탁할건 없소? 내 무슨 일이든지 해드리겠소.》 강용찬은 여전히 맥없이 눈을 감은채 알릴듯말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허! 정말 허무한 인생이로다.》 최성규는 그만 꺼지게 탄식을 했다. 《리념이란 뭐고 사상이란 뭔지 그것때문에 강형의 신세가 결국은 이렇게 되고말았구려. 그걸 지켜서 별의별 고생을 다했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오? 당신이 값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지켜낸 그 사회주의사상이라는건 이북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미 인정을 하지 않고있소. 이북도 그렇지. 바로 당신처럼 사회주의를 고집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국제공동체로부터 고립되였고 그래서 지금 몇년째나 형언할수 없는 고생을 하고있지 않소. 그런데 당신은 그 사상을 순진한 젊은이에게까지 주입시켜서 그 애의 전도를 망쳐놓았소. 결국 남은게 뭐요? 고생한것밖에 없지 않소.》 강용찬의 창백하고 주름잡힌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난 당신이 그 고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려고 그야말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써보았소. 그런데도 당신은 끝내 전향을 거부했소. 나는 당신이 놀랍소. 도저히 당신을 리해할수 없소. 당신으로 하여금 그 사상과 리념을 끝까지 지키게 해준 요인이랄가 원인이랄가 그게 도대체 뭐요? 난 이게 알고싶어서 찾아왔소. 이젠 나도 법관이 아니니 어디 한번 인간적으로 툭 터놓고 솔직히 말해보잔 말이요.》 최성규의 목소리와 얼굴표정에는 그 어떤 힐난이나 야유나 꾸밈이 없었다. 그는 지금 무엇을 강요하는것도 아니고 누구를 협박하거나 회유하는것도 아니였다. 그는 자기의 진심을 터놓았고 상대방 역시 진심을 터놓기를 바라는것이였다. 강용찬은 비단 최성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기에게서 그 대답을 바라고있다는것을 감촉하였다. 그는 한손을 겨우 내밀며 진주에게 말했다. 《나를 좀 일으켜주렴.》 진주가 강용찬이 상반신을 일으키도록 몸을 조심스레 받들어주고 이불을 등에 기대여주었다. 강용찬은 몇시간전에 당국자가 평양에 가기 위해 비행기로 출발하는 소식이 방영되였다고 하기에 양로원 원장에게 수고스러운대로 텔레비죤을 볼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말을 곁에서 듣던 룡세가 이왕이면 좋은걸로 한대 사오라고 돈을 꺼내주었다. 그런데 텔레비죤을 사러간 원장이 날래 오지 않아서 강용찬의 심정은 몹시 초조해졌다. 《이 사람이 왜 아직 오지 않노?》 《제가 가보겠습니다.》 강용찬의 심정을 알아차린 진주가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강용찬은 최성규를 바라보며 기운을 돋구노라 숨을 모두었다. 《이렇게 찾아와주어서 감사하오. 나는 그 어떤 사상이나 리념을 지켰다기보다는 고마운분에 대한 의리를 지켰던거요.》 최성규는 전혀 예상밖인 그 대답에 어리둥절해졌다. 심룡세도 순기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은 세계지도에서 없어졌던 우리 나라를 다시 찾으려고 수고를 제일 많이 하신분이요. 나는 민주련군에 있을 때 그이께서 풍찬로숙하시며 만주벌판에 찍어놓으신 피어린 자욱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요. 그이는 열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선친께서 물려주신 <지원>의 높으신 뜻과 3대각오와 두자루의 권총을 가지고 항일의 길에 나서시여 20성상이나 혈전분투하여 마침내 광복대업을 이룩하시였소.》 소중한 추억이 원기를 돋구어주기에 강용찬은 나지막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음속으로 흠모하며 따르던 전설적영웅이신 그이를 나는 우리 부대가 귀국한 다음해 봄에 몸가까이에서 만나뵈옵고 가르치심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소.》 최성규는 상대방이 비상한 희열에 잠겨서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말을 하기에 이 사람이 지금 일종의 환각상태에 취해있거나 무슨 꿈을 꾼것을 정말로 착각하고 이야기하고있지 않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였다. 《그럼 당신이 김일성장군을 직접 만나뵈웠다는거요?》 강용찬의 창백하던 얼굴에 긍지로운 미소가 밝게 어렸다. 《그렇소. 그때 나는 후방분대장이였소.》 강용찬은 어제런듯 눈앞에 어려오는 그날을 그려보며 감동적인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어렵고 외롭고 힘겨울 때마다 그날을 생각했소. 그러면 힘이 솟았소. 당신이 공주교도소에서 나를 사형장으로 끌어냈을 때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그이만을 우러르고있었소. 내 나라, 내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장차 통일되고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여 후대들에게 넘겨주자고 하신 그이를 나는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믿고 따랐을뿐이요. 나는 순기와 진주에게도 그 무슨 사상이나 리념에 대하여 이야기한게 아니라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통일되고 부강한 나라와 민족으로 되려면 남에 있건 북에 있건 그이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소.》 최성규는 무언가 신중히 생각하는 기색이고 룡세는 이제야 비로소 그 무엇을 깨달은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순기의 어머니는 거의나 황홀해하는 눈길로 새삼스레 강용찬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민족의 태양을 등대로 바라보며 통일된 조국을 향하여 가는 내 인생의 항로를 당신이 암초가 되여 걸음걸음 막아나섰소. 민족공동의 리익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개인의 리익을 위하여 외세에 추종하는 바로 당신같은 사람들때문에 오늘까지도 남쪽땅엔 미군이 남아있고 나라도 분렬되여있는거요. 당신도 조선사람이라면 이제라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련방제통일방안을 지지하고 따라나서야 하오. 글쎄 련방제를 하자는데 당신네가 반대할 리유가 도대체 뭐요?》 최성규는 퍼그나 위축된 어조로 대답했다. 《그 통일방안이 선전을 목적으로 한게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할 구실이 없는건 사실이요. 그러나 그 통일방안을 내놓으신분이야 이미 서거하지 않았소.》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심장이 부정맥을 일으켰다. 강용찬은 급기야 왼손으로 가슴을 싸쥐며 신음소리를 냈다. 룡세와 순기 어머니가 얼른 그를 량쪽에서 부여잡고 자리에 눕히려고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셨다는 천만뜻밖의 비보에 접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그날의 모진 아픔이 되살아나서 당장 쓰러질것만 같았다. 그는 초인간적인 의지의 힘으로 겨우 자신을 다잡았다. 《아니요. 그이는 영생하고 계시오. 그이와 꼭 같으신 민족의 태양 김정일장군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고 계시오. 그래서 우리 공화국은 붉은기를 더 높이 추켜들고 시련과 난관을 맞받아 나아가고있소. 통일의 날도 이젠 현실적으로 눈앞에 다가왔단 말이요.》 강용찬은 더 이상 말할 기운이 없어서 룡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무엇인가 일생토록 바라던것이 가까이에 있는데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잡히지 않을 때처럼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렇다!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날이 눈앞에 다가오고있다. 그런데 나는 몇날 더 살것 같지 않다. 결국 나의 인생은 희망의 기슭에 종시 가닿지 못하고 여기서 끝이 나는것인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그의 온 심혼을 그러잡았다. 그는 살고싶었다. 살아서 통일의 날을 꼭 맞이하고싶었다. 한생토록 희망의 등대로 바라보던 태양의 품, 혁명의 수도에 인생의 닻을 내리고싶었다. 그런데 몸에서는 기운이 쇠잔해지고 의식조차 각일각 가물가물 흐려진다. 배전을 치는 거치른 파도처럼 최성규가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분명치 않게 들려왔다. 《당신은 이번에 자기가 바라던 큰 소원이라도 성취될것처럼 생각하고있는 모양인데 지나친 기대는 가지지 않는게 좋을거요. 보나마나 김대중대통령은 별 소득이 없이 돌아올거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만나주지도 않을거란 말이요.》 강용찬은 그자에게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었고 또 상대하고싶지도 않았다. 최성규는 예언자연해서 계속 중얼거렸다. 《그쪽에서 초청을 한것도 아니지 않소. 이쪽에서 요청을 하니 저쪽에서는 올테면 오라는 식이요. 그래서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놓고 국회에서도 의견상이가 생겨서 론의가 분분하다는거요.》 아니꼬운 눈초리로 최성규를 바라보던 심룡세는 노상 기가 죽어있던 그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그만 화를 내고말았다. 《여보! 당신은 앓는 사람에게 무엇때문에 그런 미적지근한 소리를 자꾸만 하는거요?》 최성규는 좀 면구스러워 하는 눈길로 심룡세를 돌아보며 변명하듯 대꾸했다. 《강선생이 공연한 기대를 가지게 할 필요가 없을것 같아서 그러오. 기대가 허물어지면 그것이 환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될수 있거든.》 룡세는 희망을 가지고 말했다. 《나는 이번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통일의 물고를 터뜨려놓을거라고 생각하오. 내 서울의 믿음직한 소식통에 알아보았는데 이번에 긴장완화와 경제교류측면에서는 상당한 전진이 있을거라고 했소.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문제도 토의될 가능성이 있고…》 진주와 원장이 텔레비죤을 맞들고 들어왔다. 원탁우에 텔레비죤을 설치하고 전원을 련결했다. 스위치를 누르자 화면에는 평양비행장의 화려한 모습이 나타났다. 환영군중들의 모습은 꽃바다를 펼쳐놓은것만 같았다. 생방이여서 방송원의 흥분된 목소리와 군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그대로 울려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강용찬은 두눈을 번쩍 뜨며 상반신을 일으키려고 모지름을 썼다. 진주가 로인의 웃몸을 일으켜주고 편안한 자세에서 텔레비죤을 볼수 있게 이불로 등을 받쳐주었다. 강용찬은 텔레비죤에 눈길을 준채 심룡세에게 들릴듯말듯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의 송환문제가 토의될 가능성이 있다는건 확실한 소린가?》 《예, 서울에 있는 정윤수기자가 한 말이지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강형의 병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알려주니 자기는 지금 평양상봉을 앞두고 언론들이 모두 초긴장상태에 들어 가서 몸을 뺄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진주도 평양상봉에 큰 기대를 가지고있는 강용찬을 조금이라도 실망하게 하면 건강에 리로울것 같지 않아서 확신있게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이번에 선생님들의 송환문제가 꼭 중요의제로 론의될것입니다.》 강용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고 최성규는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하는 식으로 진주를 흘끔 쳐다보았다. 《아가씨, 그 리유를 말해줄수 없겠소?》 진주는 평양상봉 그자체를 달갑지 않아 하는 이 불청객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론거를 세웠다. 《몇해전에 북에서는 남측에 강한 압력을 가하고 국제사회의 여론과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비전향장기수인 리인모선생님을 끝내 데려갔습니다. 그후에도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문제를 계속 정면에 제기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야 말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있지 않습니까. 지금 <량심수가족후원회>를 비롯한 인권단체들과 교인들은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를 내오고 이에 적극 협력해나서고있습니다.》 《그건 사실이요.》 최성규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부드럽게 반박하였다. 《하지만 리씨의 송환이 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가?》 최성규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건 아니였다. 남측은 리인모를 북에 보내고 약차한 손해를 봤던것이다. 그것은 리인모의 송환이 북조선에 대한 남조선의 항복을 의미하기때문이였다. 다시말해서 북조선의 사회주의제도가 남조선보다 우월하다는것을 력사적으로 증명한 명실상부한 사례로 되고말았다고 언론에서도 일치하게 인정하였다.
특히 당국은 리인모의 송환을 미국의 승인도 받지 않고 자의대로 했는데 이것이 상전의 신경을 심히 건드려놓게 되였다. 미국은 남조선의 처사를 도저히 리해할수 없다고 비난하였다. 어째서 30여년간이나 전향을 거부한 공산주의자를, 무너져가는 북조선체제를 동경하는 사람을 돌려보낼수 있는가? 너희들 이 기회에 우리의 승인도 받지 않고 북과 관계를 해보자는 속심이지. 좋아. 우리도 너희들을 제껴놓고 북과 말을 좀 해보자는거야. 미국이 이런 식으로 나오다나니 남조선은 리인모의 송환을 계기로 북미접촉의 명분을 세워주는 또 하나의 엄중한 실수를 한셈이 되였다. 아마 당국으로서는 손해가 막심한 이런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할것이다. 최성규는 진주를 가볍게 물리치고 강용찬을 상대로 공격의 도수를 높였다. 《지금 북한은 리인모를 데려갈 때보다 경제형편이 더 어려워졌소. 이번 남북간의 협상에서 북이 장기수송환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그것은 다른 문제에서 남측에 크게 양보해야 한다는것을 전제로 하오. 지금 형편에서 그렇게까지 할수 있을것 같소?》 강용찬은 텔레비죤의 화면만 바라보면서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최성규는 그야말로 최후의 기력을 깡그리 모아 일어나 앉아서 온 정신을 평양상봉에 집중하고있는 상대방에게 더 이러니저러니 해봤댔자 맨발로 바위를 차는 격이여서 그만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갑자기 평양비행장에 나와있던 환영군중들이 일진청풍이 불어오자 설레이는 바다처럼 꽃다발을 일제히 흔들며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 강용찬은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마주볼 때처럼 별안간 눈이 부셨다. 태양! 오로지 그것에만 비길수 있는 열정의 미소, 사랑의 미소를 환하게 지으신분이 수수한 잠바옷차림으로 군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답례를 보내시며 걸어오신다. 아! 정녕 꿈에도 못 잊던 우리 수령님과 꼭 같은 걸출한 위인의 모습이시다. 50년만에 또다시 받아안은 강한 충격에 심장이 그날의 젊음을 되찾은듯 꿈틀 고패쳤다. 그러자 서서히 박동을 멈추려던 그것이 갑자기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며 새로운 활력으로 튀여나올듯이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설설 끓는 붉은 피가 짜릿짜릿한 쾌감을 주며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흐리마리해지던 정신이 순간에 말짱 개이고 온몸에 새로운 기운이 벅차게 넘쳐났다. 강용찬은 저도 모르게 스스로도 놀랍게 벌떡 자리를 차고일어나며 목청껏 웨쳤다. 《장군님! 우리 장군님이시다!》 진주가 얼른 일어나 그를 부축해주었다. 최성규는 믿어지지 않는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거 흥분을 앞세우지 마오. 아직 아나운서의 소개도 없지 않소. 아마…》 현지에서 생방을 하는 방송원도 뜻밖의 광경에 놀라고 위인의 거인상에 압도되여 일순 얼어붙었던 모양이였다. 뒤미처 방금전에 강용찬이가 터친 감격과 흥분, 경탄의 목소리와 꼭 같은 방송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친히 비행장에 나오시였습니다!》 강용찬은 자기에게 오른팔이 없는것을 이 순간처럼 야속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는 박수를 칠수가 없어서 한손을 높이 들어 힘껏 휘저으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진주도 룡세도 순기 어머니도 양로원 원장도 일제히 온몸을 들먹이며 박수를 쳤다. 최성규는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어리벙벙해진 눈으로 멍하니 화면을 지켜보고있을뿐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방금 비행기에서 내려 무엇때문인지 한쪽 다리를 약간씩 절면서도 서둘러 걸어오는 김대중대통령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신다. 동포애의 정으로 뜨겁게 포옹해주신다.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북과 남의 수뇌분들이 평양에서 상봉하였다. 력사적인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북과 남이 한목소리로 만세를 목청껏 부르고있었다. 삼천리강산에 메아리치는 이 환호성은 이것이 바로 통일이다, 통일은 이렇게 되는것이다라고 온 세상에 대고 웨치는것만 같았다. 《아니?! 이럴수가 있나?》 최성규는 아연하여 두눈을 희번뜩이였다. 앞으로 통일이 될것은 명백한데 그것은 자기가 바라던 그런 식의 통일이 결코 될수 없다는것을 직감했기때문이였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졸지에 맥이 탁 풀렸다. 그는 당장 쓰러질것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켰다. 빨리 이 장소에서 탈출해야지 숨이 막혀 넘어지던지 까무라칠것만 같았다. 그는 어푸러질듯이 비칠거리며 가까스로 방을 나섰다. 모두 텔레비죤에 정신이 팔려서 바래주지도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복도에 홀로 나선 그는 이 세상 한끝에 저 홀로 밀려난것 같은 무서운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꼈다. 지어 그처럼 시아버지공대를 잘하던 며느리까지도 자기를 아예 잊어버린듯 저 사람들속에 남아있었다. 이미 손자를 떼웠는데 이러다간 며느리까지 떼울것 같은 우려가 들었다. 심술이 되살아나서 리성을 잃어버린 그는 다시 문을 탁 열고 방안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수정이 에미야! 뭘해? 어서 가자!》 녀인은 와뜰 놀라며 고개를 돌리더니 자기를 무섭게 쏘아보는 시아버지의 눈길과 마주치자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면서 마지 못해 일어났다. 30
텔레비죤생방이 끝나는것과 거의 동시에 강용찬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쓰러졌다. 텔레비죤에 정신이 팔렸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림종의 마지막숨을 가까스로 몰아쉬던 팔십고령의 병약한 늙은이가 별안간 자리를 차고 일어나 만세를 부른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것이였다. 진주는 서둘러 로인을 요우에 바로 눕혀주었다. 비록 쓰러지기는 했지만 로인의 얼굴은 방금전에 받아안은 비상한 환희와 격동의 여운에 밝게 빛나고있었다. 그는 진주를 안심시키려는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힘을 돋구려는것인지 입속말로 되뇌이였다. 《됐다. 인젠 됐어. 난 죽지 않는다. 오래오래 살아야 하겠다.》 그러더니 만시름을 놓은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로인의 가슴은 한결 더 눈에 띄우게 오르내렸고 평온하고 고르로운 숨소리가 흘러나오는것이였다. 잠결에도 빙그레 미소를 짓는걸 보니 달콤한 꿈을 꾸는 모양이였다. 《거 정말 놀라운데요.》 원장은 한번도 틀린적이 없었던 자기의 예감이 이번에만은 빗나간게 하도 이상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하긴 초불도 마감엔 최후로 밝게 빛나고 꺼지는 법이지요. 그러니 안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소생할 가능성도 있어보이니 빨리 손을 써야 할것 같습니다.》 룡세는 원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둥지둥 경비실로 달려 나와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오자 룡세는 부산대학교 부속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몇시간전에 이미 왕진을 갔던 의사는 권위있는 심장병전문가인데 환자가 소생할 가능성이 보이길래 찾아왔다는 룡세의 말을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 《글쎄 한번만 더 수고를 해주십시오. 왕진비는 곱으로 물겠습니다.》 《어쨌든 흥미가 있는 일이군요.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흥미있는 일입니다. 어서 가봅시다.》 다시 왕진을 온 의사는 강용찬을 깐깐히 진찰하고나서 몹시 놀라와 했다. 《아니, 이런 경우도 있을수 있는가? 결국 티비생방이 환자에게 강한 충격을 주어 심장활동을 증진시켰다는건데 어쨌든 부정맥이 자주 나오던 심장이 매우 고르롭게 뛰는군요. 맥박과 혈압도 정상수치에 접근하고있습니다.》 룡세는 절절히 부탁했다. 《의사선생,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환자를 소생시키면 치료비는 부르는대로 내겠습니다.》 의사는 저으기 못마땅한 눈길로 룡세를 흘끔 돌아보았다. 《이런 경우엔 돈이 문제로 되는게 아니지요. 통일을 위해 지금껏 고동쳐온 심장인데 통일을 눈앞에 둔 이 시각에 멈춰서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환자는 이미 소생하였습니다. 의사인 내가 아니라 그 어떤 신비스러운것이 환자의 운명을 구원해준것입니다.》 의사는 신심과 그 어떤 숭엄한 의무감조차 가지면서 아예 눌러앉아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다. 진주와 룡세도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한 환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사흘밤을 꼬박 지새우면서 간호를 했다. 로인은 방금 태여난 어린애처럼 숨소리도 고르롭게 단잠을 잔다. 그러다가도 텔레비죤에서 평양상봉소식만 나오면 눈을 번쩍 뜨며 상반신을 일으키군 했다. 지금 그는 오로지 그것을 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듯 싶었다. 평양상봉의 고귀한 결실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이 꿈 아닌 현실로 되였을 때 그는 자신의 육체를 옥죄이고있던 세월의 녹이 쓴 쇠사슬이 드디여 탁 풀려나가는듯 한 쾌감에 하마트면 또 벌떡 일어나 목청껏 만세를 부를번 했다. 얼마나 기뻤던지 진주는 철부지소녀처럼 박수를 치며 새된 소리로 뻐기듯이 웨쳤다. 《보세요! 제 추측이 맞았죠?》 양로원 원장은 눈물이 글썽해서 목 멘 소리를 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고진감래라더니 정말 이북으로 돌아가게 되셨군요.》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오로지 그만이 할수 있는 값진 말을 한마디 했다. 《늙은이들이 바로 이런 순간에 젊어지는거랍니다.》 심룡세는 그만에야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강형이 부러웠으며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자신이 생각할수록 저주로와서 차마 고개를 들수 없었다. 이런 날이 끝끝내 올줄 알았으면 누군들 신념을 지켜내지 않았으랴. 결국 믿는 마음이 부족했던탓으로 본의 아닌 탈선을 하게 된 그는 온 민족이 기뻐하는 이 순간에 뼈아픈 자책에 잠기지 않을수 없게 된것이다. 방안에 무겁게 드리워있던 죽음의 검은 그림자는 어느새 간 곳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둠이 쫓겨가고 검은구름이 밀려간듯 창문으로 6월의 밝은 해빛이 눈부시게 비쳐들었다. 그것은 천신만고를 이겨내고 소생의 기쁨으로 충만된 봄빛이였다. 피기가 가셔져 해쓱해졌던 로인의 얼굴에 놀랍게도 홍조가 피여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음의 고비를 겨우 넘겼다기보다는 이제부터 새롭게 삶이 시작되는, 젊어지는 모습이였다. 문득 밖에서 승용차가 달려와 급정거하는 소리가 나더니 한쪽 어깨엔 사진기를 둘러메고 다른 손엔 터져나갈듯이 배가 불룩한 려행가방을 쥔 정윤수가 비장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서두르며 들어왔다. 그는 이불을 등에 기대기는 했지만 단정히 앉은 자세로 텔레비죤을 시청하고있는 강용찬을 보자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환성을 질렀다.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선생님!》 강용찬은 그제서야 정윤수를 알아보고 참으로 반가와 했다. 《오래간만이요! 어서 오시오.》 정윤수는 아직도 뭐가 잘 리해되지 않는지 문지방에 선채 묻는 눈길로 심룡세를 돌아보았다. 강선생이 림종에 처했다는 심룡세의 전화련락을 받고도 그는 력사적인 평양상봉때문에 언론이 모두 초긴장상태에 들어가있어 쉬이 몸을 빼지 못하고있다가 걸음이 늦어진것이였다. 그런데 정작 와보니 당장 뭐 어쩐다던 강선생의 신수가 십여년전에 방금 출소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멀끔해진게 갱소년한듯 싶었다.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 정윤수는 가방과 사진기를 방바닥에 놓고 주저앉아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와 목덜미에 내배인 땀을 훔쳤다. 《난 속이 철렁했댔지요. 그래서 이거 아니 할말로 령전에 부을 술까지 준비해가지고 왔는데요.》 강용찬은 소리없이 웃고 초면인 의사가 신이 나서 설명을 했다. 《기자선생이 마침 잘 오셨수다. 이게 바로 특종뉴스감이지요. 강선생이 림종직전에 이르렀던건 사실이예요. 그런데 티비에 나오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모습을 뵈옵자마자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만세를 불렀다는군요. 결국 그분이 저승의 문턱을 넘어서려는 강선생의 손을 덥석 잡아서 이승으로 끌어당겨주신거예요.》 《그렇습니까? 하여튼 먼저 사진부터 한장 찍읍시다. 이번에는 제발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정윤수는 사진기를 들고 텔레비죤을 시청하고있는 강용찬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샤타를 누르고나서 계속했다. 《지금 이남의 경향각지가 <김정일충격파>에 부딪쳐서 굉장한 찬사의 메아리를 일으키고있어요. 그런데 그 충격파가 여기서는 한 비전향장기수로인의 꺼지던 생명을 소생시켰군요. 하여간 반영이 대단해요.》 강용찬이 손짓을 했다. 《자, 어서. 여기에 와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오.》 《예.》 정윤수가 강용찬의 곁으로 다가가자 모두들 무릎걸음으로 그쪽에 바투 다가앉았다. 《이번에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들도 일부 있는데 거기엔 북남정상회담의 기회를 놓쳐버린 전 당국자도 끼워있다고 합니다. 아마 통일이라는 대업을 놓고서 감히 당리를 차리려들거나 질투심도 작용한것 같습디다. 한줌도 못되는 반통일보수세력이 이번에 자기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놓은셈이지요.》 심룡세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음, 엊그저께 여기도 그런 사람이 하나 왔다가 꼬리를 사렸수다.》 《그가 누굽니까?》 《언젠가 강형의 출소소식을 보도했다고 정선생을 물어메친 그…》 《아! <부르독>이요? 그 검사나리가 아직두 살아있습니까?》 《강형의 림종을 지켜주겠다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여기에 찾아왔댔다니까요. 그래도 이번엔 좀 사람다운데가 있어보이더군요. 까짓거 그건 그렇고. 어서 계속하시우.》 《예.》 정윤수는 활기에 넘쳐 손세를 쓰며 그 청산류수 같은 언변을 토했다. 《그까짓 영삼이나 회창이, 최성규 같은 놈들은 반대를 했지만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가는셈이였지요.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앞두고 지구촌의 이름난 언론사들이 저마다 서울에 취재단을 특파했지요. 대통령을 따라서 갈 예정이였는데 평양이 입국승인을 해주지 않아서 하는수없이 서울에서 티비로 평양을 지켜보면서 간접취재를 해야 했어요.》 양로원 원장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평양이 어째서 외국취재단들을 받지 않았을가요?》 《아마 통일문제를 놓고 동족간에 진지한 토의를 해야 할 마당에 동족이 아닌 사람들이 끼여드는건 설사 기자들이라고 해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것 같습니다. 물론 례외도 없는건 아니였어요. 이미 평양에 주재해있던 신화와 따쓰기자들은 현지취재의 특전을 지녔다나 봅니다. 하여간 그래서 천여명에 달하는 만국의 기자들이 롯데호텔의 대형티비앞에 진을 치고 앉았지요.》 강용찬은 그 광경을 상상만 해봐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긍지감이 솟구쳤다. 결국 온 세상이 숨을 죽이고 평양을 지켜보는 판이 아닌가. 평양이 국제공동체로부터 고립된게 아니라 바로 평양을 축으로 해서 이 행성이 돌아가고있었다.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엎으면서 북의 최고령도자인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 친히 비행장에 나오시자 현지에서 생방을 보내던 아나운서는 순간에 넋을 잃었던거예요.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굳어졌다가 뒤늦게야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 친히 나오셨다고 소리를 치자 롯데호텔이 무너지도록 박수갈채가 일어번졌어요.》 강용찬은 몹시 흥분해서 정윤수의 말허리를 끊었다. 《이보게, 결국 세계가 우리 장군님의 영상을 뵈옵고 우렁우렁하신 육성을 들으며 순간에 매혹되여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단 말이지.》 《예. 그분은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를 한번 보여주고 한번 들려주는것으로써 자신에 대한 서방과 남쪽의 그릇된 편견을 순식간에 바로잡아놓으셨지요. 과연 출중하신분입디다. 지금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은 물론이고 아줌마들과 철부지아이들까지도 북의 령수님이 듣던바와는 달리 대단히 인자하고 호방스러우며 친절하고 좋은분이라고 절찬과 호평이 대단한데 이것이 바로 <김정일충격파>가 일으켜놓은 소용돌이라는거예요.》 신이 나서 말하던 정윤수는 려행가방에서 술을 한병 꺼냈다. 포장종이를 벗기니 놀랍게도 《평양술》상표가 나타나서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애주가인 양로원 원장이 어느새 날쌔게 다가와 덮치듯이 술병을 받아쥐고 그 무슨 신기한 보물이나 구경하듯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웬겁니까?》 정윤수는 아주 으시대면서 대꾸했다. 《보시다싶이 평양술이지요.》 《모조품은 아니겠지요?》 《웬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요? 이게 어느 통로로 서울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서울시내 음식점들에 나타나서 인기가 대단하지요.》 《한병에 얼마 합니까?》 《글쎄요. 공짜로 주더군요.》 양로원 원장은 벌써부터 목젖이 꿈틀거리는지 침을 꼴깍 삼킨다. 《공짜로요? 누가 이런 귀물을 공짜로 준단 말입니까?》 정윤수는 좌중을 둘러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아니, 여기선 무료봉사를 안합니까? 역시 서울이 서울이군요. 서울에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축하해서 공짜술, 공짜랭면을 봉사한 음식점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특히 평양술은 어디서나 무료로 내놓아서 서울장안이 그야말로 명절처럼 흥성거리고있습지요.》 심룡세는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아차!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니. 우리 <진주특산>도 오늘은 무료봉사를 하겠소. 우선 강형을 비롯해서 여기에 있는분들을 첫 손님으로 초대합니다.》 《가만!》 의사가 도수 높은 안경을 벗어쥐며 소리쳤다. 《그럼, 나도 왕진비를 받지 않겠소이다. 소인은 력사적인 남북공동선언발표기념으로 비전향장기수를 무상으로 치료해주는 영광을 지니게 된걸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나이다.》 삽시에 방안은 흥성거렸다. 정윤수는 려행가방에서 비닐로 포장한 마른 안주들과 과일을 꺼내놓고 잔에 술을 부으려다가 망설이더니 의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실 이건 고인의 령전에 붓자고 가지고 온건데 본인에게 축배로 드려도 괜찮을가요?》 의사는 웃는 얼굴로 강용찬을 슬쩍 바라보고나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거야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지요. 거 항간에서 하는 말이 있지 않나요. 죽었다고 헛소문이 난 사람은 장수한다구요. 자, 어서 선생이 국민의 눈이며 귀인 언론계를 대표해서 조상술을 소생술로 부어올리십시오.》 정윤수는 유리잔에 술을 넘칠듯이 부어서 두손으로 정중히 강용찬에게 내밀었다. 《통일로 가는 분단의 길에서 제일로 고생이 많으셨던 선생님, 선생님은 실로 한민족의 장대한 력사를 신념과 의지로 살아오시면서 참된 애국이 어떤것인가를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민중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선생님 같으신분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분단시대를 마감짓는 오늘이 있을수 있었겠습니까.》 정윤수는 갑자기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어올라서 잠간 말을 멈추었다. 술이 남실남실 넘쳐나는 잔우에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이제부터는 하고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말문이 막혀서 이처럼 눈물을 앞세우게 되는것인지도 모른다. 《선생님들은 오랜 싸움에서 끝끝내 이겼습니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추켜들며 심판관처럼 엄숙히 언명했다. 《순기군이 법정에서 주장한바와 같이 비전향장기수들이 존재한다는 그자체가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됩니다. 선생님들은 근 반세기나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공세를 물리치고 통일의 신념을 견지함으로써 통일운동의 정통성을 확보해내셨습니다. 하기에 선생님들의 송환은 통일로 가고 민족의 대단결로 가는 실질적인 첫걸음으로 되였습니다.》 모두들 박수를 쳤다. 《선생님, 민중의 마음을 담아서 올리는 이 잔을 받아주십시오.》 강용찬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받았다. 수난의 흔적인듯 검버섯이 드문드문 돋은 그의 얼굴에 얼기설기 잡혀있는 잔주름들이 별안간 폭풍을 맞은듯 격랑을 일으키며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걷잡을수 없는 환희와 격정의 소용돌이였다. 민족사의 장엄한 전환기에 소생의 기쁨을 받아안은 그는 후더운것을 급급히 삼키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별안간 목이 꺽 메이고 눈굽이 확 달아오르자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왜 이다지도 눈물이 헤퍼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은 감사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였고 최후에 이긴 사람만이 떳떳이 흘릴수 있는 기쁨의 눈물이였다. 침몰직전의 위기에 처해있던 그의 인생의 쪽배는 새 희망으로 한껏 부풀어오른 돛을 올리고 시대의 순풍을 타고서 봄빛이 찬란한 아름다운 기슭을 향하여 경쾌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정다운 어머니의 품이런듯 풍만하고 순결하고 눈부신 백사장이, 푸르러 설레이는 소나무숲이 두팔을 활짝 벌리고 어서 오라고 백발청춘인 아들을 부르고있었다. 《북남공동선언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자주통일의 경륜과 의지가 낳은 고귀한 열매요. 글쎄 이 위대한 선언문에 우리들의 송환문제를 반영해주실줄은 정말 몰랐소. 우리들로 하여금 수십년 기나긴 세월 천신만고를 달게 여기게 해준 그 믿음이 헛되지 않았단 말이요. 우리들의 운명을 끝까지 지켜주신 고마운분에게 내 지금 무슨 말로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모르겠소.》 강용찬은 고개를 삼가 들고 벽에 써붙인 《지원》의 글발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수난의 나날에 오리오리 희여진 머리를 깊숙이 숙이였다. 장내의 분위기는 숭엄해졌다. 그는 눈물이 번들거리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기자선생이랑 진주랑 여러분들모두가 우리 장기수들을 위해 정말 수고가 많았소. 이 기쁜 날에 어찌 나 혼자 축배를 들겠나. 모두 함께 듭시다.》 그러지 않아도 다름아닌 평양술이기에 자기도 한모금 꼭 마셔보고싶어서 감질이 났던 양로원 원장은 냉큼 일어났다.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술잔들을 더 가지고 오겠습 니다.》 원장이 재빠른 걸음으로 나가자 강용찬은 서운한 기색을 지으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이 뜻깊은 자리에 그 애가 없구나.》 진주는 얼른 눈굽을 찍으며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순기씨는 시월초에 만기출소하게 된답니다.》 《그러게 하는 말이다. 자칫하면 그 애를 만나보지 못하게 될것 같구나.》 강용찬은 홍보석반지를 진주의 손가락에 정히 끼워주었다. 그것은 그가 양로원의 밤경비를 서면서 받은 돈을 저축하여 마련한 약혼선물이였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진주는 처음으로 강용찬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원장이 좀 지체해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갑삭거리며 몇가지 음식과 술잔들을 챙겨든 식모를 뒤에 달고 들어왔다. 정윤수는 평양술을 매 사람의 잔에 골고루 부어주고나서 자기의 술잔을 먼저 추켜들며 웨쳤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건배!》 《건배!》 술잔들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치며 맑고 챙챙한 소리를 냈다. 축배를 들고 나자 양로원 원장이 좌중에 량해를 구했다. 《저, 제가 이자 왜 지체하지 않으면 안되였는고 하니 병원에서 긴급전화가 와서 그걸 받노라 그랬습니다. 방금 티비를 보다가 심장발작으로 쇼크된 환자가 들어왔으니 의사선생은 빨리 병원으로 오시랍니다.》 의사는 이런 뜻깊은 자리를 뜨기가 아쉬운지 좀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가 누구라오?》 원장은 웬일인지 강용찬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 하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저… 거 이전에 검찰청에 있던 최성규령감이라누만요.》 모두들 깜짝 놀랐다. 《모를 일인데…》 하고 심룡세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 사람이야 시시펀펀해서 강형의 병문안까지 왔던게 아니요.》 정윤수가 능히 그럴수 있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아, 짐작이 가요. 이남을 강타한 <김정일충격파>에 그 사람이 쇼크됐군요.》 의사가 쓰겁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다 하늘의 뜻인것 같은데 내가 손을 쓴다고 해서 살려낼 가망이 있겠는지 모르겠군요. 하여간 가봐야지요. 내 직업이 이렇게 고약하답니다.》 왕진가방을 들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방을 나서던 의사는 놀라는 소리를 하며 뒤걸음쳐 들어왔다. 《아니?! 저게 웬 사람들이요? 여기가 양로원이 옳긴 옳소?》 양로원 원장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물었다. 《왜 그럽니까?》 그 물음에 대답을 하듯이 의젓한 장년들과 끌끌한 젊은이들이 앞을 다투어 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력사를 바로 아는 모임》에 속했던 대학생들과 《소나무회》에 속해있는 로동자들이였다. 강용찬을 축하해주려고 다투어 달려온 그들의 떠들썩한 활기에 고리타분하던 양로원이 다 젊어지는것만 같았다. 정문옆에 서있는 푸른 소나무는 싱싱한 가지를 흔들며 해빛이 유난히도 눈부시게 쏟아져내리는 창공높이 우쭐우쭐 키를 솟구치고있었다. 수많은 손자들을 품에 껴안고 행복의 미소를 짓는 강용찬이를 양로원의 늙은이들은 못내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는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석달이 지나서 김순기는 만기출소하여 할아버지가 심고 가꾸던 양로원 정문옆의 푸른 소나무를 배경으로 진주와 나란히 서서 약혼사진을 찍었다. 이들의 결합을 축복해주어야 할 강용찬은 한달전에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북으로 송환되였다. 그날 분단의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통일애국투사들을 온 나라가 떨쳐나와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을 찌뿌둥해서 텔레비죤으로 지켜보던 최성규는 왼손에 꽃다발을 들고 흔드는 강용찬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는 순간 두눈을 부릅뜨며 거품을 물고 나자빠졌는데 이번에는 병원에 실려가서도 종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강용찬은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55돐을 축하하기 위하여 남쪽에서 들어온 대표단을 수행한 정윤수기자로부터 순기와 진주의 약혼사진을 넘겨받았다. 《순기군과 진주양은 통일이 되는 날에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할아버지를 저희들이 모시겠다고 합니다.》 강용찬은 그 약혼사진을 생활조건이 훌륭히 갖추어진 자기 집의 제일 채광이 좋은 방에 걸어놓았다. 이따금씩 그 방의 문을 조심히 열어보면 미더운 손자와 사랑스러운 손자며느리가 푸르른 소나무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자기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는것이였다. 그러면 그는 방에 들어가서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그 애들과 이야기를 하군 한다. 자기의 가슴팍에 《조국통일상》의 금메달이 빛나게 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신임과 이런 최상의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고 인생의 락을 다 누리도록 해주신 고마운 은덕에 대하여 이야기는 하고 또 해도 끝이 안 나고 매일같이 새라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생겨나군 한다. 그렇다! 위대한 태양의 품에 인생의 닻을 내린 나는 무한히 행복하다. 너희들도 힘껏 노를 저어서 풍파를 헤치고 이 품을 찾아 오너라. 너희들모두가 이 품에 안기게 되는 그날이 바로 조국이 하나로 되는 날이란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이런 훌륭한 살림집에 손자와 손주며느리를 맞아들이고 잔치를 크게 차려줄 그날을 기다리고있다.
작가의 말
비전향장기수를 원형으로 한 장편소설 《인생항로》를 창작하는 과정에 나는 광복전부터 오늘에 이르는 조국의 광복사와 통일운동사를 인간들의 각이한 운명속에서 꿰뚫어보며 참된 인생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는 주체45(1956)년 12월 1일 자강도 강계시에서 태여나 중학교를 거쳐 고등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인민군 해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전투함정을 타고 사나운 파도를 뚫고나가는 보람찬 해병생활의 나날에 나는 짬짬이 시도 쓰고 소설도 써보느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욕망에 불과한것이여서 지상에 발표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당에서는 해군에서 제대되여 불과 한두해밖에 문학통신원생활을 하지 못한 저를 작가양성반에서 마음껏 배울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에 《미술박물관에서》를 비롯한 여러편의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였고 졸업후 그처럼 바라던 작가로 되였습니다.
저는 평양-향산사이 관광도로건설장에서 발휘된 군민일치의 아름다운 미풍과 그 생활력을 반영한 중편소설 《원천》과 뜻하지 않게 적구에 들어가게 됐지만 신념을 지키고 돌아와 위대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작년에 통일애국투사들인 비전향장기수들을 원형으로 한 장편소설들을 창작할데 대한 은정어린 사랑을 돌려주시였습니다. 이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은 저는 몹시 흥분되였습니다. 왜냐하면 광복전에 남조선에서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던 저의 아버지가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의용군에 탄원하여 싸우다 중상을 입은 영예군인이기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갈라진 조국의 통일문제에 몹시 관심이 높았고 건강이 허락치 않아서 더 힘껏 일하지 못하는 자신을 두고 늘 안타까와 했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영예군인이 아니였다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에 서슴없이 나섰을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위대한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온 통일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들이 다 나의 아버지처럼 생각되였고 그들의 특이한 인생과 운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하긴 저만이 이런 관심을 가지고있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지금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이, 전세계가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인 비전향장기수들을 격찬하고있으며 그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신념과 의지를 지켜낼수 있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생활적으로 알고싶어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장편소설을 써내고보니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아서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날가봐 두렵기도 합니다. 저는 앞으로 비전향장기수들처럼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영원히 한길을 가는 당의 작가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하기 위해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주체90(2001)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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