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롱안에 갇혀있는 새가 푸르른 창공을 그리워하듯이 수인들에게는 바깥세상이 그리운 법이다. 만약 감옥안에서의 일년을 감옥밖에서의 하루와 바꿀수만 있다면 누구나 선뜻 응할것이다. 그런데 교도소에 22년을 갇혀있고 또 《보안감호소》에서 14년을 보낸 장기수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용찬은 석방이 되여 정작 《보안감호소》의 그 저주로운 콩크리트담장밖으로 나왔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기쁨도 흥분도 느낄수가 없었다.

그처럼 고대하던 소망을 정작 이루게 되면 그것이 차마 현실로 믿어지지 않아서 누구나 이처럼 일순 무감정상태에 빠지는것인가?

방금전에 피물이 채 빠지지 않은것 같은, 그래서 그 색갈만 보아도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황갈색수인복을 벗어던질 때 가슴이 울렁거렸던것만은 사실이였다. 정녕 끝이 없을것만 같던 이놈의 고생살이도 종시 끝이 났구나, 이제부터는 자유로운 몸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런데 14년전 감호소에 들어올 때 벗어주었던 허줄한 작업복을 받아서 입는 순간 갑자기 격분이 치솟아서 하마트면 눈을 부릅뜨고 목이 터져나가도록 노성을 지를번 했다. 글쎄 그동안에 신체가 얼마나 줄어들었던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옷을 입은것 같았다.

감옥이라는 괴물이 자기의 피를 빨아먹고 살점도 다 뜯어먹고 뼈에 가죽만 씌워서 내뱉고있지 않는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절통한 일이였다.

그래 남은것은 뼈와 가죽뿐인가? 아니, 감옥이라는 괴물도 종시 씹어삼킬수 없었던 그의 정신은 남아있었다.

그것은 옥중고초라는 숫돌에 더 연마되여서 칼날처럼 날카로와졌다. 무엇이든지 단숨에 베여내거나 찌를수도 있을것 같은 정신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그의 눈동자에 비껴있었다. 수십년 세월 옥중에서 쌓이고 쌓인 원한이 타오르고 타오른 분노가 다져지고 다져진 복수심이 함께 어려있는 눈동자로 하여 그는 마치 고결한 정신과 원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빚어놓은 조각상 같았다.

물 날은 작업복도 축 드리워진 오른쪽 빈 팔소매도 왼손에 들려있는 그의 재산의 전부인 자그마한 보따리도 그의 용모를 초라하게 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엄을 돋구어주는듯 싶었다.

좀 벗겨질사한 그의 이마에는 수난의 흔적이 년륜처럼 무수히 새겨져있었다. 눈섭은 수북한데 범의 수염같은 허연 장미 한오리가 유표하게 삐여졌고 광대뼈는 주먹처럼 두드러졌으며 턱은 보병삽날처럼 날카로왔다. 그는 언제나 눈을 반쯤 내리감고 고개를 숙일사 하고있는 품이 무언가 퍼그나 오래전에 있은 일을 곰곰히 돌이켜보는듯 싶었다. 독감방에 홀로 있을 때도 그랬고 놈들에게 끌려나가 전향강요나 고문을 받을 때도 역시 그랬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서 눈을 치뜰 때면 장미가 꿈틀거리고 눈동자에서는 마주보는 사람의 가슴을 섬찟하게 찌르는 퍼런 불꽃이 번뜩이는것이였다. 이 사람을 성내게 하는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성이 나면 범보다 더 무섭다는것을 교도관들도 잘 아는터이다.

간혹 벙글써 미소를 짓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면 신기하게도 그 날카로운 눈빛이 더할나위없이 부드러워지고 억센 턱도 누긋해지는데 그저 무던한 호인처럼 보이는것이였다.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감호소정문앞에 잠시 멍하니 서있던 그는 전혀 달갑지 않은 서글픈 눈길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비가 내리려는지 재빛으로 흐려진 하늘이 낮게 드리워있었다. 엉성한 가로수들이 겨울을 재촉하며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에 락엽을 우수수 흩날렸다.

하늘도 땅도 거리도 건물들도 지어는 사람들까지도 오래된 사진이나 그림처럼 퇴색하고 누래졌으며 침침해졌다.

그래서인지 눈에 뜨이는 모든것이 황량하고 어수선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마가을이로구나. 그땐 봄이였지, 봄이였어.)

불쑥 뇌리를 스치는 이런 생각에 가슴이 허전해져서 그는 부지중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1952년 3월초순 지리산의 봄.

적들의 대대적인 《토벌》공세와 함께 얼어붙었던 배암사계곡의 시내물이 녹아 흐르기 시작하고 동굴주변에 잔디가 파랗게 움터나고 희망을 안겨주며 진달래가 부풀어오른 꽃망울을 터치려 하던 그 환희로운 계절에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북상하려던 마지막전투에서 그는 부상을 당했고 의식을 잃었었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목이 타는듯 한 갈증에 몸부림을 치다가 《물!》 하고 정신없이 웨치며 눈을 뜨니 놀랍게도 자기는 웬 천막안에 축축하게 젖은 헌 가마니짝을 깔고 누워있었다.

정신이 드니 관통상을 입은 오른팔이 불꼬치로 지지듯이 쿡쿡 쑤셔나기 시작했다. 그 진통을 참노라 입술을 깨무는데 곁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무엇때문인지 대오에서 떨어져서 홀로 동굴안에 남아있던 심룡세였다.

《강형은 나때문에… 나때문에…》

얼굴을 잔뜩 이그러뜨린 룡세는 울음을 씹어삼키며 넋을 잃은듯이 중얼거리고있었다.

《여기가 어딘가?》

《남원포로수용소라고 하더군요. 》

《뭐라구?》

강용찬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려다가 신음소리를 내며 맥없이 눈을 감았다. 죽을 각오는 했었지만 이렇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세월은 그 얼마나 흘렀는가.

황금같은 인생의 봄과 여름은 철창속에서 사정없이 흘러가고 어느덧 가을이 온것이다. 그것도 마가을이…

그의 나이는 일흔하고도 세살이 더 많았다.

나이로 보면 한생을 다 살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렇다. 감옥안에서 한생을 다 살고나서야 감옥밖으로 나온것이다.

그의 고향은 남해바다가이지만 거기에 찾아가봤댔자 반겨맞아줄 사람이 있을리 만무했다.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고 오른팔마저 없는 칠순로인이 갈 곳은 그 어디이며 누가 돌봐줄것인가?

이 문제로 출감을 앞두고 감호소측에서도 저으기 난감해했었다. 그래서 본인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강용찬은 주저없이 북으로 가고싶다고, 그것이 자신의 필생의 소원이라고 대답했다. 감호소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잠시 마주보다가 그건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는 소원이라고 대꾸했다. 강용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두고보시오. 내 소원은 꼭 이루어지게 될거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서울에 가서 살겠소.》

《그건 안됩니다.》

《어째서?》

감호소장은 일깨워주듯이 말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니까요. 강선생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잊으신게죠.》

강용찬의 입이 쓰거웠다.

서울이 이른바 수도이기때문에 거기에 가겠다고 한것은 아니였다. 이왕이면 북쪽땅이 가까운 곳에 가서 여생을 보내고싶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서울은 안된다니 차라리 부산에 가기로 했다.

부산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그가 몹시 가보고싶었던 도시이다. 그때 만약 인민군대가 락동강을 건너서 그 도시까지 해방시켰더라면 이 나라의 력사는 달라졌을것이고 강용찬의 운명도 달라졌을것이였다.

어제날 인민군군관의 이런 속마음을 감호소장이 알리 만무했다.

《부산이라면 보내드리지요. 참, 거기에 강선생을 부양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순간 강용찬의 눈앞에는 부산에서 16년전에 만나보았던 한 사나이의 우울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나이는 지리산의 오랜 빨찌산대원이며 자기 생명의 은인인 김혁창이가 이 험한 세상에 용케도 일점혈육으로 남겨놓은 아들이였다. 그때 방금 교도소에서 나왔던 강용찬은 김혁창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었다. 사형장에서 장렬하게 희생된 동지를 대신하여 아버지구실을 해주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런 호의를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헤여지고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내가 공연한 질문을 했나보군요.》

강용찬의 얼굴에 떠오른 고통스런 표정을 일별한 감호소장은 큰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그럼 양로원에 보내드리지요.》

강용찬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혹시 거기서 강선생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내가 소개신을 써드릴가요?

아마 도움이 될겁니다.》

감호소장은 소개신을 쓰더니 거기에 도장까지 찍어서 봉투에 넣고 봉인하여 자못 정중한 자세로 넘겨주었다.

《참, 강선생이 우리 감호소에 들어온지 몇년이 되였던가요?》

《14년이지요.》

《그전에 교도소에서는 몇년을 지냈습니까?》

《22년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인사삼아 그런 질문을 했던 감호소장은 자못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도합 36년이군요.

강선생은 세계적으로 놓고봐도 제일 오랜 장기수입니다. 때문에 감호소 소장인 나로서도 존경하지 않을수 없군요. 솔직히 말해서 아마 나라면 강선생의 처지에서 견디여낼수 없었을겁니다.》

그자의 말에서는 놀랍게도 진정이 느껴졌다.

강용찬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상대방을 바라보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다운 말을 해준걸 고맙게 생각하겠소.》

《직업이 고약해서 그러지 나 역시 인간인걸요.》

감호소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여간 헤여지자니 서운합니다.

강선생도 아시겠지만 전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설사 석방된다 해도 자유로울수가 없습니다.

부산에 있는 양로원에 가면 다음날로 주거지관할 경찰서에 찾아가서 출소신고를 해야 한다는걸 잊지 마십시오.》

결국 당국에서는 출옥후에도 비전향장기수에 대해서는 자유를 구속하고 감시하겠다는것이였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출옥이 아니였다. 이제부터 또 다른 형태의 감옥생활이 시작되는것이다.

그가 수십년만에 드디여 감옥밖으로 나왔지만 아무런 기쁨도 흥분도 느낄수 없는 리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2

 

강용찬은 원래 사형수였다. 그런데 무기수로 되였고 그후에는 22년으로 감형되였다. 옥중투쟁으로 모진 생을 꿋꿋이 이어나가던 그는 드디여 만기출소하게 되였다.

하여 16년전 그 악명높은 대구교도소에서 나왔을 때 그는 너무도 흥분해서 눈앞이 핑 돌았고 높뛰는 심장이 당장 튀여나올것만 같았다.

도무지 한평도 못되는 독감방에서 2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고 넓고넓은 대지로 나왔으니 단지 그것만으로도 미칠듯이 기뻤다.

해빛을 쪼일수 있다는것, 땅냄새를 맡으며 발목이 시큰하도록 마음대로 걸어다닐수 있다는것 자체가 커다란 만족이였고 기쁨이였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땅냄새, 풀냄새를 맡으니 독한 술이라도 마신것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문득 배가 고팠다.

감옥에서는 노상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감옥밖에서는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갈수 있었다. 거기에 가서 우선 배부르게 먹고싶었다. 요기를 하고나서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생각해보아야 했다.

교도소앞의 거리는 비좁았다.

그러나 장사목이 좋은지 가게방, 차집, 술집, 국수집따위들이 처마에 처마를 이으며 길게 늘어서있었다. 거기에는 각이한 크기의 간판들이 나붙어있었다. 말꼬리처럼 머리칼을 길게 기른 반라체의 미녀가 서양주를 들고 웃어반기는 그림을 그린 간판도 있었고 기름진 통닭을 그린 간판도 있었다.

쉼없이 여닫기는 식당문들에서 경쟁적으로 흘러나오는 기막히게 고소한 음식냄새를 기분좋게 맡으며 간판들을 훑어보던 그는 어느 한 간판앞으로 이끌리우듯 다가섰다.

소박하게 명승고적맛이 나는 루정을 그려넣고 《진주찐빵집》이라고 쓴 간판이였다.

진주라는 지명과 찐빵이라는 음식이름이 어쩌면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어서 빵집에 들어가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중학시절 진주에 가서 하숙을 할 때 인심좋은 하숙집어머니가 종종 해주던 고기남새소를 넣은 찐빵의 그 독특한 맛이 생각났기때문인지도 모른다. 후날에도 그 맛이 잊혀지지 않았다.

어쩌다가 그런 빵을 먹게 되면 중학시절의 하숙집이 생각났고 하숙집 아들인 심룡세와 학우들이 자주 찾군 했던 명승고적 촉석루가 눈앞에 떠오르군 하는것이였다.

못 잊을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정든 하숙집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그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진주찐빵집에 들어갔다.

유감스럽게도 간판은 빵집인데 내용은 술집이였다.

술병과 고뿌, 안주접시 그리고 음식찌꺼기들이 혼잡을 이룬 식탁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지독스레 피우며 소란스럽게 지껄이고있었다. 그 술냄새와 담배연기가 역하게 느껴져서 강용찬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도 젊어 한때는 담배를 피웠고 술도 적당히 마셨다. 그러나 감옥살이 20여년에 술맛이고 담배맛이고 깡그리 잊어버린것이였다.

그는 다른 음식점에 갈가 하다가 어쨌든 찐빵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으니 청하면 빵을 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석진 빈 식탁으로 다가갔다.

《여! 빵집주인! 축음기를 돌리라구! 어서!》

누군가 주방쪽에 손을 저으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웨쳤다.

《리규남의 노래를 듣고싶단 말이다!

난 술 먹으러 온게 아니라 그 노래를 듣자고 왔어!》

누군가 주방에서 달려나와 구식축음기의 손잡이를 돌려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이윽고 구식축음기에서는 축음기판이 낡을대로 낡아서 벅벅 긁히는 소리와 코맹맹이소리가 나는, 하지만 그때문에 옛스러운 맛을 돋구어주는 남성가수의 노래소리가 처량하게 울려나왔다.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가

촉석루의 달빛만은

나무기둥을 얼싸 안고

아 타향살이 이 심사를

위로할줄 왜 모르나

 

빈 식탁을 마주하고 덤덤히 앉아있던 강용찬은 무척 귀에 익은 그 노래소리에 이끌려들었다.

중학시절 그가 하숙하던 심룡세네 집에도 저런 구식축음기가 있었다. 뜻있는 학우들이 모여서 금지된 서적들을 읽은 감상을 토로할 때면 열기띤 목소리들이 밖으로 새여나갈가봐 일부러 그 축음기를 돌리군 했었다.

광복전에 류행했던 그 노래를 지금에 와서 들으니 감정이 별스러워지는것이였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언 반세기가 되여오지만 이놈의 세상은 그 모양 그 꼴로 남아있고 타향살이에 진저리가 난 불쌍한 인생들의 설음도 그대로 남아있는게 아닌가. 그 설음을 위로하자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술을 마시고있는것이다.

《손님! 음식값을 치르고 가세요!》

서글픈 노래소리, 술에 취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혼잡속에서 웬 녀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째지는듯이 울려퍼졌다.

푹 취해서 비틀거리며 식당문을 나서려던 한 젊은이가 그 소리에 덜미를 잡힌듯 놀라며 멈춰서더니 엉거주춤 돌아섰다.

《뭐? 뭐라구요?》

몸매가 둥실둥실하게 생긴 녀인이 그쪽으로 달려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음식값을 내지 않았지요?》

《아, 깜박 잊었군. 아주머니, 야단을 치지 마시우. 아무렴 내가 술 마시고 돈도 안내고 그냥 도망을 칠 사람인것 같소. 옛수다!》

젊은이는 주머니를 털어내여 꼬깃꼬깃 구겨진 지전 몇장을 꺼내더니 세여보지도 않고 녀인의 얼굴에 팽개치고 돌아섰다.

(례절이 없는 녀석이군.)

내심 그 젊은이를 탓하던 강용찬은 흠칫 굳어져버렸다.

뒤늦게야 자기의 호주머니에 동전 한푼도 없다는 서글픈 사실을 깨달았던것이다.

교도소에는 수인들이 일하는 공장이 있었다.

거기서 일하면 1등식이나 2등식을 주었고 보잘것없는 액수이지만 돈도 주었다.

그러나 전향을 하지 않은 량심수들에게는 일할 권리도 주지 않았다. 하루종일 독감방에 가두어두고 식사는 5등식을 주었다. 콩과 보리를 섞은 5등식은 애기주먹보다 작았다. 여기에 절인 무우쪼박지나 시래기국이 전부였다.

의학적으로 놓고볼 때 이런 음식을 먹으면 3년내에 영양실조로 죽는다고 했다.

하지만 강용찬은 그런 음식을 20년이 넘게 먹고도 죽지 않았으니 기적이였다.

그건 그런대로 교도소가 바깥세상보다 나은지도 모른다. 거기서는 하루종일 꼼짝 안하고 앉아있어도 5등식이나마 주었지만 여기서는 돈이 없으면 빵 한쪼각도 먹을수 없지 않는가.

오늘 당장 굶어죽을수도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새삼스레 깨달은 강용찬은 얼른 일어나려고했다.

설사 굶어죽어도 돈 안내고 음식을 먹을 체면과 용기는 나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주방쪽에서 앞치마를 두른 접대부가 음식쟁반을 한손에 들고 잽싸게 달려왔다.

《손님, 앉으십시오. 식사를 제때에 내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목소리를 듣고 자세히 보니 상대방은 애젊은 접대아가씨가 아니라 나이 지숙한 사나이였다.

사나이는 치여날대로 치여난 솜씨로 식탁우에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얀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먹음직스러운 찐빵과 내포국, 북어 두마리와 술도 한병 있었다.

여기서는 흔해빠진 눅거리음식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감옥식사에는 비길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인셈이였다.

《손님, 자, 어서 드십시오.》

사나이는 어쩔바를 몰라하며 서있는 강용찬에게 술까지 착실하게 한고뿌 부어주었다.

《더 요구하실 음식은 없는지요? 값은 식사를 다 하신 다음에 치르면 됩니다. 아주 눅거립죠.》

사나이의 지나친 친절에는 일단 자기 음식점에 들어섰던 손님을 놓치지 않고 몇푼이라도 짜내려는 이악스러움이 비껴있었다.

강용찬은 정말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미안하오. 나에겐 이 음식값을 치를만한 돈이 없소.》

《원, 그럴리가 있겠나요.》

《사실이요.》

강용찬은 밖으로 나가려는데 사나이는 억지로라도 앉히려는지 그의 오른팔을 잡았다. 헌데 사나이의 손에 잡힌것은 팔이 아니라 빈 팔소매였다.

이 순간에야 사나이는 손님의 오른팔이 없다는것을 알아차렸던지 덴겁을 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이상하게도 몸을 부르르 떨면서 강용찬을 뚫어지게 살펴보는것이였다.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이제야 생각해낸듯이 사나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주저주저 물었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강형이 아니요?》

강용찬이도 뒤늦게야 상대방의 얼굴과 목소리가 어쩐지 눈에 익고 귀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치마를 두르고 서있는 이 사나이를 자세히 여겨보았다. 사나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더는 강용찬을 마주볼 용기가 없었던지 고개를 떨구었다. 강용찬은 자기앞에서 속죄라도 하듯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 사나이가 다름아닌 심룡세라는것을 겨우 알아차렸다.

만약 피 묻은 푸른 수인복을 입고 철창속에 름름히 서있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대뜸 알아차렸을것이다. 하지만 접대부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서있는 상대방의 꾀죄죄한 몰골에는 그때의 그 름름함과 당당함이 없었다. 인간적인 면모가 깡그리 사라져 버린 지금의 모습은 너무도 가련했다. 인간이 아니라 그 허울이였다.

《자네 심룡세가 옳긴 옳은가?》

강용찬은 차마 믿을수가 없어서 나직이 물었다.

《강형! 뵈올 낯이 없구려.》

가까스로 고개를 든 심룡세의 두눈에서는 뿌연 눈물이 볼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살아 계셨군요. 언제 출소했습니까?》

《방금 교도소에서 나오는 걸음일세.》

심룡세는 놀라와했다.

《아니 그럼 여기 대구교도소에 계셨단 말입니까? 공주교도소를 언제 떠났습니까?》

《몇달전에 여기로 이감됐네. 자네가 교도소코앞에서 음식점을 차려놓고있을줄은 정말 몰랐네.》

심룡세는 꺼질듯이 한숨을 내쉬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살아가자니 이런 놀음밖엔 별 뾰족한 수가 없더군요. 강형이 여기 교도소에 이감온줄 알았더라면 옥바라지라도 해올리는건데… 이거 정말 면목이 없수다.》

이제라도 각별한 대접을 하여 면무식을 할셈인지 그는 강용찬의 손을 잡아끌었다.

《강형, 조용한 안방으로 들어갑시다. 이건 음식점이자 우리 집이지요.》

《아니, 난 가겠네.》

심룡세는 펄쩍 뛰였다.

《가다니요? 이대론 못 갑니다. 자 어서요.》

강용찬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하는수없이 심룡세를 따라서 주방칸을 지나 어느 방에 들어갔다.

크지 않은 온돌방이였다. 쇠로 만든 자그마한 탁상금고와 화장품이 놓여있는 경대, 이불장 이것이 전부였다. 가구는 몇개 안되지만 방안은 매우 알뜰하게 꾸려져있었다. 결혼사진을 넣은 액틀이 벽에 걸려있었는데 그때문인지 방안에는 신혼살림의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맛이 어디에나 깃들어있었다.

강용찬이 그 사진을 눈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부인이요?》

심룡세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떡이였다.

《자식이 있소?》

《예, 이태전에야 겨우 딸을 하나 보았습니다.

감옥에서 고문을 받은 후과인지 그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더군요. 자, 한대 피우십시오.》

심룡세는 서둘러 담배갑과 라이터를 내밀었다.

《난 피우지 않네.》

《강형이 그전에야 담배를 얼마나 좋아했습니까.

지리산에서 고생을 할 때는 담배가 떨어지면 가랑잎을 말아피우군 했었지요. 지금도 그때 일이 눈에 선합니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다소 신경질이 어린 녀인의 목소리가 날아들어왔다.

《당신은 여기서 뭘해요? 손님들이 술을 더 내오라고 야단인데.》

《여보, 소란을 피우지 말고 어서 들어와서 인사나 하오. 귀한 손님이 오셨소.》

방금전에 웬 젊은이에게서 음식값을 이악스레 받아내던 그 녀인이 들어왔다.

《이분은 나와 함께 감옥살이를 했던 동지요.》

심룡세가 소개를 하자 녀인은 강용찬에게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였다.

《처음 뵙습니다. 감옥살이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까.》

강용찬은 어줍게 인사를 받았다.

《뭐 고생이랄게 없습니다.》

심룡세가 안해에게 독촉했다.

《여보, 빨리 뭘 좀 차려오우. 오늘은 영업을 이만합시다.》

《예. 우선 술상부터 챙겨드릴테니 천천히 마시면서 좀 기다려주세요.》

기름진 안주와 두부국을 놓은 술상이 들어왔다. 룡세는 커다란 고뿌에 술을 가득 부어서 강용찬에게 내밀었다.

《자, 감옥에서 든 어혈이 단숨에 풀리게 쭉 내십시오.》

강용찬은 듣기 좋은 말로 거절했다.

《난 술맛도 다 잊어버렸네.》

《그럼 한모금만 마시지요.》

《아니, 생각이 없네.》

룡세는 모욕이라도 당한듯이 얼굴이 벌개졌다.

《강형, 왜 이러시우? 나같은 너절한 놈과는 술도 마시고싶지 않다는겁니까? 섭섭합니다. 내가 뭐 하고싶어서 전향을 했소? 강형도 아다싶이 강짜로 그리 된거지요. 최성규검사놈의 깜짝극에 속아넘어갔단 말입니다. 정말로 총살을 하는줄 알았댔지요. 장가도 못가본 놈이여서 그런지 막상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 용기가 나지 않더라니까요. 어쨌든 살아야 인생이 아닙니까.》

《그만하게나.》

심룡세는 자기의 고뿌에 술을 넘칠듯이 부어서 단숨에 쭉 들이켰다.

《하긴 너절한 인생이지요.

감옥밖에 나와서 살아가기도 헐치 않습디다.

이렇게 술장사나 하면서 살바에는 차라리 감옥에 그냥 있었을걸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나군 하지요. 그렇게 하는게 마음은 편하니까요.》

심룡세는 신세타령을 하면서 또 한잔 부어서 맹물 마시듯 하고 안주 한점 집지 않았다.

《감옥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자신이 부끄럽고 괴로왔지요. 그 맘고생이란 참… 그래도 이걸 한잔 마셔야 속이 좀 편해지더군요. 모든걸 잊을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또 마시군 하지요. 술이 곧 인생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심룡세는 벌써 술 두병을 마시고 세번째 병의 마개를 열었다.

잔에 넘쳐나도록 술을 부은 그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떨구고 술잔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술잔에 비낀 내 인생이 가련하군요.

돌이켜보면 내 인생항로는 이미 오래전에 탈선한셈이지요. 강형이 중학시절에 우리 집에서 하숙하던 일이 생각나시우? 마르크스서적 몇권을 읽었다고 왜놈경찰서에 끌려가 졸경을 치르던 일이 잊혀지지 않거든요. 그후에 강형은 빨찌산을 찾아 만주로 떠났는데 난 그런 용단을 내리지 못했지요. 바로 거기서 탈선을 했단 말입니다.

난 원체 의지가 나약한 놈인것 같아요.

그때 일이 지금에 와서 후회가 될줄이야…

아니, 왜 그렇게 앉아만 계시우? 어서 잡수시우. 자, 한잔만… 딱 한잔만 들라구요. 어쨌든 뜻이 깊은 좌석인데 나 혼자만 마실수야 없지요.》

강용찬은 혐오스러워 하는 눈길로 상대방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왜 안 마시우? 이 심룡세를 용서할수 없다는건가요? 용서는 못해줘도 리해야 해줄수 있지 않소.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던 나를 좀 리해해달란 말이요.》

타락한 인생의 서글픈 넉두리였다.

강용찬은 이따위 사설이나 듣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

《룡세, 자네가 전향하던 그날 사형장에서 희생된 동지가 생각나나?》

그 물음에 룡세는 낯이 창백해지면서 부지중 몸을 떨었다.

《김혁창동지가 생각나는가 말이야. 난 그 동지의 가족들부터 찾아봐야 하겠네.》

고개를 떨구고 굳어졌던 룡세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내가 어떻게 그분을 잊을수 있었겠소. 나도 김동지와의 개인적인 의리는 지키자고 했수다. 그래서 교도소에서 나오는 길로 우선 김동지의 가족부터 찾아보았단 말이요.》

강용찬은 왼손으로 룡세의 무릎을 덥석 쥐며 다우쳐물었다.

《그래서? 누가 살아남았나? 어서 말하게.》

《그저 아들이 하나 남아있습디다. 혼자서 길가의 조약돌처럼 이리 채우고 저리 채우고 짓밟혀서 주제가 말이 아니더군요. 서울바닥에 있는 증기가 뽀얗게 들어찬 세탁소에서 아낙네처럼 빨래를 하며 죽지 못해 살아가고있는걸 겨우 찾아냈지요.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어서 그런 천대를 받고있더군요.》

강용찬은 흥분을 누르며 침착하게 물었다.

《그 애가 지금 어디에 있나?》

룡세는 저으기 기를 펴면서 대답했다.

《아버지때문에 아들이 신세를 영영 망칠수야 없지 않소. 그래서 내가 살구멍수를 찾아주었지요. 감쪽같이 신원을 위조하고 지금은 부산에서 사는데 무역선을 탑니다. 그만하면 수입도 괜찮은 편이라 고운 색시도 얻고 떡돌같은 아들도 보았습니다. 거 손자녀석이 신통히도 제 할아버지를 닮았습디다.》

강용찬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 소식을 들으니 총탄에 맞고 쓰러진 동지가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것처럼 기뻤다.

《그 애의 이름이 뭔가?》

《아들은 김인석이고 손자는 김순기라고 부르지요.》

강용찬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룡세가 그의 빈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갑자기 왜 이러슈?》

《당장 그 애를 만나보고싶네.》

《아따, 부산이 뭐 엎디면 코닿을데요?

차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식사나 하고가슈.》

강용찬은 벙글써 웃으며 다시 앉았다.

룡세는 문밖에 대고 안해에게 빨리 식사를 들여오라고 독촉을 했다.

《룡세, 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네.

어떻게 해야 그 애를 찾아갈수 있는지 그거나 어서 자상히 알려주게나.》

《부산에 가자면 기차나 고속뻐스를 타야지요.

참, 려비가 없겠군요. 아니, 그놈들이 돈 한푼 쥐여주지 않고 내보냅디까?》

강용찬은 허구프게 웃었다.

《내가 뭐가 곱다고 돈까지 쥐여주면서 내보내겠나.》

《그래도 강형이야 환갑나이에 이른 불구자가 아니요. 여긴 생존경쟁이 치렬해요. 오륙이 성성한 놈도 자칫하면 굶어죽기 십상인데 오른팔이 없는 강형이 이놈의 세상에서 어떻게 벌어 자시겠소. 쯔쯔…》

룡세는 혀차는 소리를 내더니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탁상금고앞에 다가가 번호쇠를 주물러서 뚜껑을 열고 지전을 몇장 꺼냈다.

《여기선 돈이 없으면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해요. 이놈의 종이장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지요. 이거 얼마 안되지만 려비로 쓰십시오.》

강용찬은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심룡세를 만나게 된것이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되였다.

《이거 페를 끼쳐서 정말 안됐네.》

《우리사이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슈.

주소를 적어드릴테니 좀 기다리시우.》

룡세가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끄적거리는데 안주인이 정성껏 차린 밥상을 들고들어왔다.

그뒤로 제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서 꽃망울같이 탐스럽고 예쁘게 생긴 계집애가 아장아장 들어선다.

《할아버지 안녕.》

제 엄마가 시키는대로 또랑또랑 인사말을 번지며 방실방실 웃는데 깜찍하게 만든 인형아기가 살아서 움직이는것만 같았다.

《요런, 정말 곱게 생겼구나.》

강용찬은 감탄을 하며 왼팔로 그 애를 담쑥 그러안았다. 정말 제 할아버지로 아는지 스스럼없이 두팔을 벌리며 강용찬의 품에 안긴 계집애는 뭔가 이상한것을 감촉했던지 두눈이 올롱해졌다. 그러더니 한손으로 강용찬의 오른쪽 빈 팔소매를 조물락조물락 만져보더니 맑고 챙챙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 왜 밥먹는 손이 없나?》

강용찬은 허허 웃어버렸다.

《난 이쪽 손으로 밥을 먹는단다.

너 이름이 뭐지?》

《심진주.》

《진주라.》

진주 엄마가 말참견을 했다.

《주인의 고향이름을 달아주었답니다.》

《음, 거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이름이군요. 그런 이름을 달아주어서 그런지 이애의 얼굴이 꼭 진주처럼 생겼군요.》

강용찬은 룡세를 돌아보았다.

《이애가 자네의 딸이 옳긴 옳은가? 거 의심이 될 정도로 곱군그래.》

《허, 강형이 이제야 기분이 좋아서 롱담을 다하시는구려. 자, 어서 식사를 하시우.》

강용찬은 진주를 제 엄마에게 넘겨주고 왼손으로 수저를 들었다.

련민의 정이 어린 눈길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주 엄마는 알릴듯말듯 혀를 찼다.

《저런, 얼마나 불편하실가.》

룡세가 자책이 어린 목소리로 안해에게 나직이 말했다.

《강형은 지리산에서 싸울 때 나때문에 오른팔에 부상을 당했소. 그때 우린 함께 체포되였는데 놈들이 제때에 치료를 해주지 않아서 부상자리가 썩어올라갔지. 그래서 팔을 뭉청 잘라내게 된 거요.》

《저런…》

강용찬은 너그럽게 웃었다.

《그런 말 말게. 내가 부상을 입은게 어째서 자네때문이겠나.》

《나때문이지요. 강형이 아니였다면 내 목숨이 붙어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미련한 놈은… 참 부끄럽기 짝이 없수다.》

심룡세는 얼굴을 고통스럽게 이그러뜨리더니 또 잔에 술을 부었다.

남편의 말과 행동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감촉을 받은 녀인은 긴장해서 두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엄마의 품에 안긴 진주도 맑고 초롱초롱한 두눈을 깜박이며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그쪽을 주시하였다.

강용찬은 술에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닌 룡세의 입에서 자기 안해를 놀래울 무슨 말이 튀여나올지 몰라서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룡세, 자넨 포연속을 뚫고 기관차를 몰아 전선에 얼마나 많은 군수물자를 실어날랐나. 지리산에 들어가서도 싸움을 잘했지.

화개장터를 들이치고 돌아와서 훈장수여식을 하던 일이 생각나나? 그때 자넨 군공메달을 받게 되였지. 그날 불무지를 피워놓고 밤이 새도록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겠다. 참 그 시절이 그립구만이라.》

룡세는 그제서야 기색이 좀 밝아졌다.

《나두 그 시절이 그리워 죽을 지경이요.

그때 고생을 했지요. 노상 죽음을 등에 지고 다니면서도 당당했고 떳떳했고…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그 시절을 잊을수 없나봅니다.》

룡세는 그때 불무지곁에서 군용밥통에 술을 부어마시던 생각이 났는지 고뿌의 술을 빈 식기에 쏟아넣고 꿀꺽꿀꺽 마셨다.

《어, 좋군. 그때 즐겨부르던 노래나 해볼가.》

벌써 혀가 까부러질 정도로 흠뻑 취한 룡세는 별안간 주먹을 번쩍 들더니 《태백산맥에―》 하고 청높은 소리를 질렀다. 이와 거의 동시에 진주 엄마가 기겁을 하며 보동보동한 손으로 남편의 입을 막았다.

《쉿! 어쩌자고 그래요? 큰일나겠네.》

《망할 놈의 세상. 노래도 맘대로 못 부른다는거야?》

룡세는 취기가 부쩍 올라서 허세를 부렸다.

《조용하래두 이러시네.》

《알겠소. 그럼 강형이랑 옛적에 부르던 류행가라도 한곡조 부르자구. 강형, 생각나시우? 촉석루에 올라서 처량히 흘러가는 남강을 바라보며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부르던 그 노래가 말이요.》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가

 

룡세는 노래를 채 부르지도 못한채 점점 모로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풀썩 꼬꾸라졌다.

진주 엄마는 녹초가 된 남편을 바로 눕혀주고 한쌍의 원앙새가 수놓아진 베개를 베워주었다. 그리고는 몹시 미안스러운 기색으로 강용찬을 돌아보더니 애달프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 량반은 그저 술만 마시면 노상 이러신답니다.》

강용찬은 주섬주섬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시렵니까?》

《예. 차시간을 놓칠가봐 그럽니다.》

《밤이 깊었는데 주무시고 래일 떠나시죠.》

진주 엄마가 이렇게 권고했지만 강용찬은 부득부득 룡세네 집에서 나와 김혁창의 아들을 찾아 부산으로 떠났던것이다.

 

 

3

 

오늘도 그날처럼 부산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못잊을 동지의 아들이 아니라 낯모를 늙은이들이 모여있을 양로원에 찾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인지 강용찬의 심정은 마가을의 어수선한 풍경처럼 어둡고 무겁기만 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빼앗긴 내 나라를 찾자고 용약 떠났던 사나이의 인생항로가 마지막닻을 내려야 할 곳이 결국은 부산에 있는 양로원이란 말인가?

태풍이 불고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는 날바다에 인생의 닻을 올렸던 그날이 오늘따라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바다가마을이였다.

당시 남해와 린접한 섬진강하구에 있는 너뱅이벌의 한쪽 귀퉁이를 소작으로 파먹고 살아가는 그에게는 어마어마하게도 《불온분자》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거기서 륙칠십리 떨어져있는 진주는 경남에서 손꼽히는 소비도시로 번창하고있어 한다하는 세력가들은 다 거기에 모여들어서 풍청거리는 판이였다. 진주라면 예로부터 기생이 유명해서 시내엔 기생이 파리보다 더 많다는 말이 생겼을 지경이였다. 기생집도 많았거니와 농업학교요, 상업학교요, 남중이요, 녀중이요 하는 당시로서는 대학에 맞먹는 교육기관들이 집중되여있어 하숙집들도 역시 많았다. 그래서 하동에도 중학이 없는건 아니였지만 진주에 가서 중학을 다녀야 일러주었다.

아버지가 손바닥만 한 소작논과 참대밭에서 한푼두푼 모아주는 돈을 가지고 진주에 가서 중학공부를 하던 그는 독서회사건으로 류치장신세를 톡톡히 지고 퇴학당하여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이른바 요시찰대상이여서 쩍하면 주재소에 불리워가 단련을 받아야 했다.

전형적인 쪽발이로서 땅개처럼 앙바틈하게 생겨먹어 《세빠드》라는 별명이 붙은 일제경찰놈의 행패질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는 갓 스물에 머리털이 다 희여질 지경이였다. 그놈에게 노상 물어뜯기우며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느니 어디로 멀찍이 도망을 치든가 죽어버리든가 해야지 더는 견딜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 이 나라 북변 압록강기슭에서 터져나온 보천보전투소식이 나래가 돋쳐 남해바다가인 경남 하동에까지 날아왔다.

강용찬은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너무도 기뻐서 하마트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번 했다. 십년 묵은 체증이라도 풀린듯이 속이 씨원했다. 사람같지도 않은 쪽발이들이 남의 나라를 통채로 타고앉아 거들먹거리며 못된짓을 골라가면서 하더니 이제야 된벼락을 맞은것이다.

그는 부랴부랴 화개삼거리에 있는 자전거방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진주로 갔다.

하숙을 하던 룡세네 집에 가보니 처마밑에 《진주찐빵집》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손님들이 들락날락하는데 함께 하숙을 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눈에 띄우지 않았다. 뒤골방에 가보니 룡세가 거기에 달팽이처럼 들어박혀서 수건으로 골을 질끈 싸매고 책을 읽고있었다.

《룡세! 소식을 들었나?》

강용찬은 성큼 방안에 들어서며 큰소리로 호기있게 물었다.

그제서야 책에서 눈을 뗀 룡세는 얼떨떨한 기색으로 마주보기만 한다.

《여, 보천보전투소식을 못 들었어?》

《그건 무슨 소리요?》

《이 친구야, 귀를 막고 살았나.

김일성장군님의 빨찌산이 압록강을 건너와서 보천보를 들이쳤다는거야.》

책읽기에 지쳐서인지 흐리멍텅해있던 룡세의 두눈이 번쩍 하더니 왕사발처럼 커졌다.

《강형! 그게 정말이요?》

《정말이구말구, <동아일보>에까지 그 소식이 실려서 경향각지가 들썩하는 판이야.》

강용찬은 자기가 직접 그 싸움판을 지켜보기라도 한것처럼 손세를 쓰며 떠들어댔다.

《하루밤사이에 왜놈들의 경찰서가 기습을 당하구 소방대며 면사무소구 다 불타서 재더미가 됐대.

듣자니 한 왜놈경찰은 너무 급해서 도망을 못치고 돼지우리에 숨었댔다누만. 닛뽄도를 차고 거들먹거리던 그놈이 북데기를 뒤집어쓰고 엎드려서 돼지똥냄새를 맡는 꼬락서니를 생각해보라구. 얼마나 통쾌한가 말일세.》

룡세도 속이 후련해서 탄성을 올렸다.

《야! 쪽발이새끼들 꼴 좋게 됐군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거든. 우리도 피가 한동이씩 고여넘치는 조선청년들인데 도대체 뭘하고있냐 말이야. 그런 쪽발이들이 무서워서 지금껏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왔거든. 더는 그렇게 살수 없는거야.》

강용찬은 괴춤에서 지전이고 동전이고 있는대로 다 털어놓았다.

《자, 어디 가서 얼른 술 한되, 고기 한근 받아오라구. 축배를 들어야지.》

《예, 술이건 고기건 우리 집에 다 있으니 잠간만 숨이나 돌리라요.》

성수가 나서 춤을 추듯이 달려나간 룡세는 잠시후에 술상을 챙겨든 어머니를 앞세우고 희색이 만면하여 들어왔다.

《룡세 어머니, 그동안 무고했습니까?》

강용찬이 얼른 일어나 깍듯이 인사를 하자 녀인도 못내 반가와했다.

《참 오래간만일세. 듣자니 임자 그새 색시를 얻었다면서? 요즘 깨가 쏟아지겠구만.》

《예. 부모님들의 성화에 못이겨서 그만…》

《그저 장가를 가야 철이 든다구. 임자 퍼그나 의젓해졌네. 자 오래간만에 왔는데 어서 들라구.》

《고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하숙생들을 받지 않습니까?》

녀인은 홰홰 손을 내저었다.

《말두 말게. 학생들을 받아놓으니 모여앉아서 금지된 책을 읽는다고 경찰서에서 야단을 치기에 싹 그만두고 빵집을 차려놓았네.

글쎄 그까짓 책이나 읽고 수군덕거려선 뭘하나. 공연히 경찰서에 잡혀가서 매나 맞고. 그저 저 살아갈 궁리나 착실히 해야 하네. 임자도 인젠 착심이 돼서 장가를 들고 농사를 짓는다니 말썽이 날 일두 없고 좀 좋은가.》

룡세 어머니는 독서회사건의 주모자였던 강용찬이가 불쑥 나타난것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반가와는 하면서도 단단히 신칙하려 드는것이였다.

《최성규를 보게. 비록 첩의 소생이지만서두 골 싸매고 공부에만 열중하더니 뻐젓이 동경에 류학을 가질 않았나. 장차 크게 출세할거네.》

룡세 어머니가 부러워하는 최성규는 강용찬이보다 세살 아래인데 한마을에서 나서자랐다. 도청에 다닌다는 세력가인 성규네 애비가 섬진강하구의 노란자위인 너뱅이벌을 사놓고 거기에 작은 댁을 두고있었던것이다. 그놈이 이따금씩 자기의 소유지와 첩년을 보러 오군 할 때마다 소작인들은 하동의 특산물인 섬진강의 잉어를 잡아 바쳐야 하는데 강용찬의 아버지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애비란 놈이 거들먹거리며 나타나서 잉어탕냄새를 동네가 들썩하게 풍겨놓으면 성규란 녀석도 잔뜩 우쭐해서 까불어대는데 그게 눈에 거슬려서 강용찬은 《첩의 자식인 주제에 까불거려!》 하면서 보기 좋게 한대 쥐여박군 했다.

성규는 저보다 힘이 약한 애들한테 공연히 트집을 걸고 못되게 굴면서도 강용찬이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버리군 했다.

그 녀석이 중학공부를 하러 진주에 와서도 애비를 등대고 우쭐렁거리는게 아니꼬와서 하숙생들은 누구나 그를 랭대했다. 따돌리워서 외토리가 된 그 녀석이 무슨 낌새를 차리고 경찰서에 고발을 하는통에 독서회사건이라는 소동이 일어난것이였다.

《룡세 어머니, 그 자식이야 왜놈들에게 굽신거리는 애비덕에 류학을 간거지요.》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서울만 가면 될게 아닌가. 이거 과부설음이자 과부네 자식설음일세. 우리 룡세는 애비가 없으니 누가 그렇게 앞이 훤하게 선을 그어주겠나.》

룡세가 바빠맞아서 눈을 흘기며 볼멘 소리를 했다.

《어머닌 무슨 사설이 그리도 많으세요.

손님들이 찾겠어요. 어서 가보세요.》

룡세 어머니가 나가자 강용찬은 조심스레 물었다.

《요즘은 독서회를 안하나?》

《강형이 없는데 그걸 누가 주관하겠나요. 그래 독서회를 다시 시작하자는건가요?》

《방구석에 모여앉아서 프랑스혁명이 어떻소 로씨야혁명이 어떻소 하고 떠들어대선 뭘해. 우리도 말공부는 그만하고 손에 총을 잡고 왜놈들과 싸워야지.》

룡세는 총소리에 놀란듯이 두눈이 퀭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관절 어떻게 싸운다는거요?》

강용찬은 방구석에 있는 축음기앞으로 다가가 태엽을 감고 손에 잡히는대로 축음기판대기를 하나 올려놓았다.

작별을 슬퍼하는 련인의 심정을 담은 노래가 울려나왔다.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어인일가 이 리별

푸른 동산 나무아래

너를 보지 못하리

 

강용찬은 축음기를 틀어놓고도 안심치 않아 룡세의 곁에 바싹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의 빨찌산을 찾아가자구.》

룡세는 흠칫 몸을 떨었다.

《만주에 가자는거요?》

《음, 여기에 앉아서 뭉개다간 본의 아니게 왜놈들의 개노릇을 하게 돼. 난 그렇게는 살수 없다. 너도 마찬가지겠지?》

룡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독서회에 모이던 친구들은 다 믿을만 하니까 한사람씩 몰래 만나서 의향을 타진해보라구. 그들도 다 데리고 가잔 말이야.》

《알겠어요.》

《결심이 된 친구들을 데리고 닷새후에 기차시간에 맞추어 진주역으로 나오게. 거기서 만나자구.

룡세, 비밀을 꼭 지켜야 하네.》

그들은 지금 문밖에서 룡세 어머니가 그 비밀을 죄다 엿듣고있는것을 알지 못했다.

하동으로 돌아온 강용찬은 자전거를 돌려주려고 가다가 공교롭게도 주재소앞을 지나게 되였다. 피해의식이 들어서 재빨리 지나치려는데 주재소마당에서 누군가 소리쳐 불렀다.

《강형! 오래간만이요!》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돌아보니 사각모를 쓰고 금빛단추가 주르르 달린 학생복을 입은 최성규가 《세빠드》라는 별명이 붙은 왜놈경찰과 나란히 서서 자기를 바라보며 짜장 반가운듯 웃고있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을수가 없어서 건성으로 알은체 하고 지나가려는데 무슨 낌새를 차렸던지 《세빠드》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불렀다.

《오이, 오이, 이리 와!》

강용찬은 재수없이 걸려들었군 하고 생각하면서 마지 못해 자전거를 끌고들어갔다.

《세빠드》는 강용찬을 위협하려는것인지 아니면 최성규앞에서 자기의 위세를 떨쳐보려는것인지 옆구리에 찬 긴 칼을 한손으로 툭툭 치며 물었다.

《비상시국에 어디에 갔다 오는가?》

《진주에 볼 일이 있어서요.》

《거기엔 왜 갔댔는가?》

강용찬은 생트집을 잡으려 드는 그놈을 온곱지 않게 마주보며 대꾸했다.

《그저 심심해서요.》

《자식!》

눈앞에서 번개불이 번쩍 했다.

자기의 후배가 보는 앞에서 따귀를 한대 얻어맞은 강용찬은 눈에서 불이 확 일었다.

당장 《세빠드》의 멱살을 틀어쥐고 골받이를 하고싶은걸 겨우 참았다.

《너는 자기가 요시찰대상이라는걸 잊었는가?

왜 주거지를 떠날 때 주재소에 알리지 않았어.

솔직히 말해. 거기엔 왜 갔댔는가? 또 불온서적을 읽으러 갔댔지?》

거사를 앞두고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이럴 땐 한풀 꺾이우는척 해야지 별수가 없어서 공손히 대답했다.

《하두 클클하기에 촉석루에 바람을 쏘이러 갔댔지요. 진주기생들이 론개의 사당에서 제를 지낸다고 하기에…》

《군은 명심하라. 진주기생이나 예로부터 나쁘다.

내선일체에 동조동근인데 론개의 사당에 제를 지낸다는것 자체가 대단히 옳지 않단 말이다.

알겠는가?》

《예.》

《군은 고운 색시를 얻고서도 바람이 났는가?

젊은 놈이 농사를 하기 싫으면 순사시험이나 치란말이다.》

곁에서 야릇한 미소를 짓고 지켜보던 최성규가 끼여들었다.

《강형, 그게 좋겠군요. 시험준비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주겠다는 놈도 미울 때가 있다.

강용찬은 일본류학이나 한답시고 우쭐렁거리는 그 녀석이 뇌꼴스러워서 응대도 하지 않았다.

《세빠드》가 훈시를 계속했다.

《보라. 최군이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최군은 영광스럽게도 제국의 도읍에 가서 법률을 배우고있단 말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돌아오면 검사님으로 출세하신다. 너는 류학을 갈수 없으면 순사시험공부라도 착실히 하라.》

《저는 순사가 될 재목도 못되니 농사나 착실히 하겠습니다.》

《어쨌든 다시 승인을 받지 않고 다니면 용서가 없다는걸 명심해. 가라!》

강용찬은 이런 단련을 받고서야 자전거를 끌고 주재소마당을 나섰다. 자전거를 돌려주고 터벌터벌 집으로 오니 아버지가 토방에 나와 앉아서 낫을 갈고있었다. 강용찬은 슬며시 방에 들어가려다가 아버지가 꽥 고함을 치는통에 무춤 굳어졌다.

《너 상판이 왜 그 모양이 됐니?》

강용찬은 벌겋게 부어오른 왼쪽볼을 얼른 손으로 싸쥐였다.

《저… 승인을 받지 않고 진주에 갔다 온다고 <세빠드>란 놈이…》

《꼴 좋다. 빨찌산은 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기는데 넌 사내대장부라는게 쪽발이한테 따귀나 얻어맞고 다녀?》

《나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응당 그래야지. 으흠!》

아버지는 선들선들하게 날이 선 낫을 들고 집오래에 있는 참대밭에 성큼 들어가더니 키 높이 자란 미끈한 참대들을 베여내기 시작했다.

강용찬이가 일손을 도와주려고 하자 아버지는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다. 넌 네가 할 일이나 해라.》

아버지는 아들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벌써 눈치를 차린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모르는척 하는지 매일 참대를 베서 지고 장에 나가군 했다.

래년도에 또 소작을 받으려면 잉어라도 몇마리 사서 바쳐야 하니까 그 준비를 하는것 같았다.

강용찬은 은밀히 떠날 준비를 했다. 정작 떠나자고 보니 시집을 온지 몇달밖에 안되는 안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마디 했다.

《당신 나 없이도 꽤 살아갈만 하지?》

그러지 않아도 이 며칠사이에 남편의 거동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감을 받고 내심 긴장해있던 안해는 당장 울상이 되였다.

《어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강용찬은 안해의 눈길을 외면하며 헛기침을 했다.

《어쩌자는거예요? 예?》

안해는 강용찬의 무릎을 꽉 그러잡으며 따지고들었다.

《그저 해보는 소리요.》

《솔직히 말해요. 내가 미워서 그러지요?》

강용찬은 등잔불을 훅 불어서 끄고 안해를 살뜰히 껴안아주었다.

《난 당신이 제일로 곱소. 그런데 말이요. 여기에 박혀서 땅이나 뚜지며 아득바득해야 소용이 있나. 살기는 점점 더 고달파지는데 무슨 마련이 있어야 하겠거든. 대처에 나가서 돈벌이라도 해볼가 하는 생각이 나서 그러오.》

안해는 남편의 애무에 몸을 맡긴채 속살거렸다.

《그럼 저두 함께 가자요.》

《부모님들은 누가 모시겠나?》

《그야 뭐…》

안해는 별안간 남편의 손을 뿌리치더니 돌아누워서 가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그래? 못나게스리.》

대답이 없었다. 흐느낌소리만 더욱 커질뿐… 아래방에서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강용찬은 안해의 흐느낌소리가 새여나갈가봐 이불을 푹 뒤집어씌웠다. 잠시후 진정이 됐는지 흐느낌소리가 잦아들었다. 무엇때문인지 안해는 남편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겨 자기의 따스한 배우에 올려놓았다.

《저… 당신은 몇달후엔 아버지가 될거예요.》

부끄러워하면서도 자랑에 넘친 안해의 속삭임소리가 강용찬의 귀전에 달콤하게 울려왔다.

그러고 만져보니 안해의 배가 좀 둥실해진게 확연히 손끝에 감촉되였다.

무엇인가 그 손끝으로부터 피줄을 타고 전류처럼 흘러들더니 심장을 쩌르르하게 해주었다.

내가 아버지로 된단 말이지. 그런즉 나에게는 미구하여 태여나게 될 자식의 운명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단 말인가.

《여보.》

안해의 정이 함뿍 어린 목소리.

《음.》

《그런데도 기어이 떠나시겠나요?》

강용찬은 작고 보동보동한 안해의 손이 뿌리칠수 없는 억척같은 힘으로 자기의 발목을 틀어잡는다는것을 두려운 심정으로 깨달았다.

《젠장, 하두 속이 상해서 롱으로 한마디 한걸 가지고 왜 이 야단이요?》

그는 본의 아니게 화를 내고말았다.

《당신은 빈말을 해본적이 없지 않나요.》

《어쨌든 그 말은 안했던것으로 칩시다. 어서 잠이나 자기요.》

안해는 더 말이 없었다. 체념을 한듯이 나직이 한숨만 내쉬였을뿐… 시시각각으로 불안과 초조감을 더해주며 밤은 깊어만 갔다. 강용찬은 어둠속에서 손더듬을 하여 마라초를 굵게 말아서 피워 물었다. 심경이 착잡했다.

이제 떠나면 그것이 고향과 부모님들과 사랑하는 안해와의 영원한 리별로 될수 있었다. 몇달후이면 태여나게 될 자식은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자라야 한다. 이팔청춘인 안해는 생사조차 기약할수 없는 길을 떠난 무정한 남편을 기다리며 과부 아닌 과부의 설음을 겪어야 한다. 만약 저 혼자서 가는 길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고싶었다. 그런데 룡세를 비롯한 동무들이 함께 가자고 나를 기다리고있지 않는가.

큰소리는 먼저 쳐놓고 정작 방바닥에서 엉치를 떼지 못하고 뭉개는 자신을 발견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이놈아! 너도 사나이냐? 하고 그는 자신을 혹독하게 꾸짖었다. 아낙네가 띄워놓은 쪽박처럼 한생 가정이라는 샘터안에서 맴돌셈이냐? 그런다고 자식구실을 하고 남편구실을 하고 앞으로 애비구실을 떳떳하게 할것 같애? 천만에. 그러니 어서 일어나! 닻을 올리고 사나운 파도를 맞받아 바다로 나가라! 무엇이 두려우냐? 등대가 네 인생항로를 비쳐주고있지 않니.

보천보의 홰불, 그것은 정녕 그리도 갈망하여 찾고찾던 민족재생의 빛, 광복의 빛을 뿌리는 등대였다. 등대는 칠칠어둠을 밝혀 반짝이며 이 나라 젊은이들을 광복의 성전에 어서 달려나오라고 부르고있다.

그는 닻을 들어올렸다기보다는 차라리 닻줄을 끊어버리는 심정으로 후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무작정 배낭을 지고 서둘러 문밖에 나서니 뜻밖에도 아버지가 토방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 둥근달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고있었다. 흠칫 굳어진 강용찬은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더니 말없이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참대를 판거다. 15원밖에 안되는구나. 로자로 보태쓰거라.》

강용찬은 눈굽이 화끈해서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드려야 하겠는데 목이 메여서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왜 그러고있냐? 어서 떠나거라. 나라를 찾기 전에 이 집에 들어설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라.》

웃방에서 인기척이 나는걸 보니 안해가 깨여난것 같았다. 강용찬은 아버지가 투박한 손으로 등을 떠밀어주자 얼른 삽짝문을 나섰다. 남해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키높이 자란 참대숲이 달빛을 휘저으며 파도치듯 설레였다.

순풍에 돛을 올린 쪽배처럼 참대숲을 헤치고 씨엉씨엉 걸어가던 그는 미타한감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닐세라 안해가 어푸러질듯이 헤덤벼치며 정신없이 자기를 따라오고있었다.

그런즉 닻줄이 채 끊어지지 않은것이다. 이거 정말 난사였다.

《여보! 어쩌자는거요?》

안해는 흠칫 멈춰서더니 가쁜 숨만 다몰아쉰다. 땀을 함씬 흘린 안해의 복스러운 얼굴에 달빛이 유정하게 흘러넘쳤다. 이 순간에 그 녀자는 참으로 아름다왔다.

강용찬은 막 진땀이 났다.

안해가 가지 말라고 울며불며 매달리면 정말 야단이였다.

《여보, 돌아가오. 난 돈벌이나 하자고 떠난 걸음이 아니란 말이요.》

안해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예쁜 입술만 감빨아물더니 흑 흐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난 왜놈들의 감시만 받으면서 기를 펴지 못하고 더이상 살고싶지 않소.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손에 총을 잡고 놈들과 싸우려고 항일유격대를 찾아 떠난 길이요.》

안해는 흐느낌소리가 새여나갈가봐 손으로 입을 싸쥐고 동실한 어깨만 들먹이였다. 안해의 손가락에서 홍보석이 박혀있는 금반지가 달빛에 유난히도 아름답게 빛을 뿌렸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가락에 끼워준것을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물려주었고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또 물려준 강씨가문의 가보이자 그중 값이 나가는 재산이기도 했다.

《여보, 나를 대신하여 부모님들을 돌봐드리면서 조국이 광복될 날을 기다려주오. 만약 그날에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 세상에 없는줄 알고 다른데…》

안해가 갑자기 자기의 손가락에서 보석반지를 뽑아 내미는통에 그는 말꼬리를 잘리웠다.

 

 

《그런 말씀은 마시고 꼭 돌아오세요. 그리고 이거라도 팔아서 로자로 보태쓰세요.》

강용찬은 불시에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로자걱정은 안해도 되오. 사람두…》

강용찬은 반지를 안해의 오른손 가운데손가락에 깊숙이 끼워주고서 북받쳐오르는 애정을 더는 누를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두팔을 벌리며 안해를 힘껏 껴안았다. 안해도 이제 헤여지면 다시 보지 못할수도 있는 랑군을 꽉 부둥켜안고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숨 막히는 포옹이였다. 강용찬은 이제부터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의 무거운 짐을 메고나갈 안해의 연약하고 동실한 어깨를 자꾸만 쓰다듬어주었다. 가리마를 곧게 탄 윤기가 함치르르 흐르는 안해의 머리칼에서 가슴을 뛰놀게 해주는 동백기름냄새가 풍겼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억센 포옹에 몸을 맡긴 녀인은 행복에 겨워 속삭이듯 물었다.

《아기가 태여나면 이름을 뭐라고 지을가요?》

그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자기가 아버지로 할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일로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목이 메여서 그는 선뜻 입을 열수 없었다. 안해는 여전히 남편의 억센 품에 어린애처럼 안긴채 응석이라도 부리듯이 몸을 흔들기까지 하면서 재촉했다.

《어서요.》

《응, 저… 참, 아들일가 딸일가?》

안해는 부끄러운듯 고개를 들면서도 제법 자신있게 대답했다.

《아들일거예요.》

《정말?》

《그럼요. 꼭 당신을 닮은 사내애를 낳겠어요.

그 애와 함께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겠어요.》

미래의 아버지들이 다 그러하듯이 강용찬이도 앞으로 태여날 아들에게 뜻이 깊은 이름을 지어주고싶었다.

《그럼 충신이라고 부를가? 강충신, 어떻소?》

안해는 맞선을 보던 그 순간처럼 수태를 함뿍 머금으며 정답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애는 나처럼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을거요.

내 아들은 제 나라, 제 땅에서 제 나라말을 하며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게 될거란 말이요.》

강용찬의 품에 안겨있는 안해가 고개를 들더니 흥분하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그날이 언제면 오게 될가요?》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기자고 나는 이 길을 가는거요. 그 애도 크면 장가를 가야지. 그때 당신처럼 마음씨 곱고 인물도 고운 며느리를 맞아들이고 당신이 끼고있는 그 보석반지를 물려주자구. 내가 없어도 당신이 그렇게 하오. 응?》

안해는 대답을 하려다가 급히 입술을 감쳐물더니 물기에 젖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젠 그만 헤여져야 했다.

그런데 강용찬은 무엇때문인지 안해를 더 힘껏 그러안았다. 안해도 남편의 품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련애라는걸 해보지도 못하고 가정을 이룬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사랑이란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듯 싶었다.

이 순간에는 육체가 아니라 서로의 넋이 하나로 엉켜있었다.

리별의 순간에야 사랑을 알게 되는것인가?

기약없는 리별이 사랑을 깨우쳐주는것인가?

강용찬의 귀전에는 할딱거리는 안해의 숨소리와 함께 며칠전 룡세네 집에서 들은 축음기의 노래소리가 은은히 울려오는것이였다.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어인일가 이 리별

 

그는 불쑥 눈물이 쏟아져나오는것을 겨우 참았다.

글쎄 어이하여 우리는 리별을 해야만 하는가?

왜 나는 따뜻하고 경치 좋은 정든 바다가, 사랑하는 안해와 이제 태여나게 될 자식을 두고 이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 삼천리를 걸어서 압록강을 건너가야만 하는가?

이것이 짓밟힌 이 나라의 아들로 태여난 운명인가?

자기의 마음이 애상에 잠겨 나약해질가봐 두려워진 그는 별안간 안해를 밀쳐버리듯이 떼놓고나서 배낭을 한쪽 어깨에 메고 어푸러질듯 정신없이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렇게 헤여지고는 다시 만나보지 못한 안해가 강씨가문의 대를 이을 일점혈육을 남겨놓았다는것을 그는 퍼그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는 전쟁시기여서 품을 놓고 아들을 찾을 사이도 없었고 찾을수도 없었다.

그 애가 아버지를 찾아 북으로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기대만 품고있을뿐이였다.

바로 그래서 김혁창의 아들인 인석이가 자기의 친아들처럼 생각되는지도 모른다.

김혁창이 아니였으면 강용찬은 이미 죽은 몸이다.

때문에 은인인 동지의 아들을 만나서 그의 친아버지가 돼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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