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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1
늦가을이여서 그런지 보통강변의 수려한 풍치는 퍼그나 쓸쓸하게 채색돼 있었다. 강을 따라 휘우듬하게 뻗어나간 강안길로는 오늘따라 낚시줄을 드리운 로인들이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청춘들이 보이지 않는것으로 하여 이상할 정도의 고요를 느끼게 했다. 바람마저 한점 없어 말그대로 한폭의 풍경화같기만 했다. 다만 멀리에서 이쪽으로 미끄러져 오는 몇척의 경기용뽀트와 배우에 있는 선수들이 휘저어대는 긴 노대만이 유일하게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쪽에 보이는 건물이 체육관이고 저 앞에 있는 궁륭식교각이 보통교랍니다. 여기선 보이지 않지만 저 보통교앞에서 뻗어나간 거리가 바로 천리마거리예요.》 여느때없이 활기를 띤 은옥경이 마치 이 지역은 자기의 관할구역이기라도 한것처럼 자신있게 설명했다. 그가 손을 들고 이쪽저쪽을 가리킬 때마다 선생은 《아, 그래요. 보통교, 체육관》 하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선생님!》 은옥경이 갑자기 두눈을 반짝이며 선생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제가 주인이니 제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합니다. 예? 아시겠습니까?》 《어째서 오늘은 은동지가 주인인가요?》 의외라는듯이 그러나 알아야 되겠다는듯이 선생은 옥경이를 마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은 제가 현선생님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인계받았으니까요. 취재로부터 하루일과에 이르기까지 다 말입니다. 그렇지요? 선생님.》 이번에는 이쪽을 돌아보는 그에게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인계라기보다 양보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오늘 취재만은 야외에서 그것도 보통강유보도에서 하자고 제기한것은 물론 취재를 끝내고는 동석식사를 해야 한다며 벌써 청류관개별실까지 예약해 놓은 옥경이였다. 사실 우리로서는 선생이 출옥후부터 평양에 오기까지의 오늘취재가 마지막이기도 했거니와 선생자신도 래일부터는 정방산이며 구월산으로 견학을 떠나야 하기때문에 결국 오늘이 선생과의 마지막 날이였다. 그 작별을 의의있게 장식하기 위해 왼심을 써온 옥경이에게 나는 오늘 하루의 권한을 양보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실은 양보라기보다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고 해야 정확할것이다. 처음엔 취재에 끼여들어 나를 밀어내더니 이제와서는 취재는 물론 일과까지도 주인행세를 하는 판이였다. 권한이란 어디까지나 주도권을 쥐는 사람이 가지게 되기 마련인지… 그래도 나는 나무랍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지내볼수록 순박하고 소탈한 처녀라는 느낌, 특히 어떤 말을 할 때면 제편에서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 하다가도 또 어떤 땐 당돌한 아이처럼 속을 꺼리낌없이 털어 놓기도 하는 그의 천진한 행동이 어느덧 남다른 매력으로까지 느껴졌던것이다. 《이 보통강을 옛날엔 장마가 지기만 하면 흙범벅이 된다고 해서 토성랑이라고 불렀답니다. 흙토에 성벽 성자, 랑자는… 음… 랑자는 무슨 랑자를 씁니까? 선생님.》 나를 바라보며 묻는 말이였다. 《물결 랑자를 쓰는게 아니요?》 홍수로 범람하던 강, 감탕으로 이루어진 불모지라는 의미에서 필경 그 글자를 쓰리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혹시 행랑 랑자가 아닐가요?》 선생의 말에 나는 쭈삣했다. (행랑 랑자?) 나는 그런 글자가 있는지 되새겨보지 않을수 없었다. 《감탕의 물결이라는 의미보다 내 짐작에는 토성으로 된 행랑이라는 뜻에서 토성랑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예요. 바로 옆에 보통문이 있는것으로 봐서…》 (아 하-)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니 오늘의 멋진 보통강반의 선경이 옛날엔 토성랑, 즉 진탕과 오물의 시궁창우에 펼쳐져 그렇게 불리웠다고만 인식해 온것이 얼마나 무식한 생각이였는가! 나는 저절로 얼굴이 달아 올랐다. (이런 망신이라구야…) 여섯살에 벌써 사자, 소학, 명심보감을 통달한 선생앞에서 함부로 아는척 하다니? 이거야말로 공자앞에서 문자를 쓰다가 코를 떼운것이 아니고 뭔가! 옹색한 처지에 빠진 나를 구원해 주려는듯 옥경이가 얼른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저길 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만수교옆에는 전승기념탑이 있는데 거긴 전쟁때 싸운 인민군용사들과 함께 남조선빨찌산들의 투쟁군상도 멋 있게 조각되여 있답니다. 가보시겠습니까?》 《이미 견학을 했어요. 그 조각상앞에서 사진도 찍고요. 정말 많은 추억들을 불러일으키는 군상이였어요.》 생각에 젖어 걸음을 옮기던 선생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옥경이를 돌아 보았다. 《기자선생, 한가지 물어봐도 될가요?》 반짝 하고 빛을 뿜은 옥경이의 두눈이 곧 기쁨으로 차넘치였다. 선생으로부터 어떤 질문을 받는다는 자체가 더없는 영광이 아닐수 없다는 기색이였다. 《혹시 기자선생한테 남쪽에 어떤 친척이라도 계시는가 해서요.》 선생을 마주보던 옥경이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자신있는 대답을 해서 선생을 기쁘게 하리라 결심했던 학생이 도리여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락심천만해하는 표정이였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얼른 두손을 맞잡으며 반색을 지었다. 《있습니다. 리기렬오빠!》 《오빠?》 선생은 물론 나까지 어리둥절해 지지 않을수 없었다. 《오빠라니?》 《정확히 말하면 리기렬렬사예요. 아시지요? 서울 <문화원방화>사건때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한 고려대학생말이예요. 우린 대학때 그 렬사를 학급에 등록했거던요. 수업때마다 선생님이 <리기렬동지!> 하고 출석을 부를 때면 학급장이 <리기렬동지는 반미성전에서 용감히 싸우다 희생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한 길을 힘차게 걸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군 했지요.》 선생은 놀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길은 북의 대학에서는 그런 일도 있느냐고 못내 감심해하는 시선이였다. 《전 그 렬사의 반미투쟁을 내용으로 한 원고를 준비해서 대학웅변대회에 출연했는데 글쎄 1등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오빠>가 되였구만.》 내가 한마디하자 옥경이는 고개를 저었다. 오빠가 된데는 다른 리유가 있다는 뜻이였다. 《졸업때가 되였습니다. 저의 졸업론문은 <우리 문화에 미친 미국문화의 영향에 대한 력사적고찰>이라는 제목이였는데 심사교수들은 론문이 괜찮다고 평가하면서도 어째서 그런 쩨마를 잡았는가고, 그건 강의내용에도 언급되지 않는것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 그건 바로 리기렬렬사가 대학때부터 연구하던 쩨마이지만 미처 끝내지 못하고 희생되였다고, 우리와 함께 몇년동안 같이 공부한 렬사인데 응당 그의 론문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요. 그러면서 그 론문을 리기렬렬사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해달라고 제기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들은 물론 동무들까지 절 리기렬렬사의 누이동생으로 대해주지 않겠습니까. 호-》 《…》 선생은 새삼스런 눈길로 옥경이를 바라보았다. 다함없는 선망과 온정이 어려 있는 눈빛이였다. (그러니 우리 민족은 남에서 살건 북에서 살건 또 량쪽에 혈육이나 친척이 있건 없건 모두가 한가정이고 친형제라는것이 아닌가!) 한가정이라는 생각에 미친 나의 머리속에는 문득 어제부터 떠나지 않는 한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것은 고선생이 출옥한 후에도 10년동안이나 남녘땅에서 살았는데 어째서 가정을 꾸리지 않았을가 하는 의문이였다. 쉰살이 넘었을 때까지 령어의 몸으로 있다가 풀려난 선생의 처지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첫째가는 과제가 아닐수 없었으리라. 더우기 늙은 어머님이 옥살이로 청춘을 다 보낸 아들에게 바란것이 그 이상 무엇이였으랴. 그런데 과연 어떤 사정이 결혼을 미루게 했을것인가? 모르긴 해도 거기엔 분명 무슨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을것 같았다. 어느덧 나는 직업에 습관된 타성대로 선생이 결혼을 마다한 원인을 나름대로 점쳐 보았는데 그 점괘는 은연중 한 녀인, 바로 희애에게로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청춘을 고스란히 바쳐 자기를 사랑했지만 받아 들일수 없었던 도덕적인 구속감과 그래서 더 잊을수도 지워 버릴수도 없는 희애에 대한 미련이 생활을 꾸리는데 장애로 되였으리라. 희애 역시 선생과의 결별이 명백해지자 승옥이가 소개하는 어떤 남자와 벼락결혼을 하다싶이 하긴 했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자포자기, 어떤 반발로 시작한 생활이여서 모름지기 부부사이가 원만치는 못했으리라. 몸은 비록 남편과 함께 있다 해도 마음은 언제나 선생한테 가 있었다고 해야 할가. 나는 어느새 선생의 생활에서 풍기는 어렴풋한 자취를 따라 내가 앞으로 써야 할 글의 륜곽을 더듬어 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고약한 버릇은 처음엔 주인공의 발자취를 고분고분 따라가다가도 어느 정도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주인공의 운명을 앞질러 가면서 제가 바라는대로 생활과 사건들을 꾸미게 되는것이다. 엄연한 의미에서는 탈선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그것을 도리여 허구나 과장이라는 자기 직분이 준 특전으로 타당화하게 되는데 그땐 벌써 술에 취해 기분이 들뜬 사람처럼 제나름의 창작적희열에 흥분돼 있기 마련인것이다. 나도 바로 그런 상태에 있었다. 가정은 꾸렸지만 희애의 가슴속에는 선생에 대한 사랑이 마냥 사라지지 않고 일렁인다. 가정생활에 대한 불만이 쌓여 갈수록 그 불길은 점점 더 세차게 타오른다. 안해의 이런 번민을 함께 사는 남편이 모를리 없다. 이윽고 부부사이에는 균렬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때 선생이 출옥한다. 인위적인 생활에 대한 환멸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한 희애가 마침내 못다 이룬 사랑을 구가해 선생을 찾아간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고 체면이 무슨 상관이랴. 그러나 선생은 이번 역시 희애의 사랑을 받아 들일수 없다. 이번에는 신념때문이 아니라 한 가정을 파괴해야 하는 인간적인 괴로움때문인것이다. 본의는 아니라해도 희애의 청춘을 유린했던 자기가 그에게 행복은 고사하고 도리여 또다시 불행을 안겨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를 결코 용납할수가 없는것이다. 일생 주인공에 대한 사랑으로 하여 수난만 겪는 한 녀인의 운명과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 들일수 없는 주인공의 곡절이 어딘가 신파극의 한 장면 같기도 했으나 나로서는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는 그것이 바로 불공정한 세상에서 사는 진실한 인간들의 피치못할 운명이라는 진리를 예술적으로 확증할수 있을것 같았기때문이고 더우기는 그런 세상에 대한 환멸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이 북으로 들어 오는것으로 되여야 작품의 대단원도 그럴듯하게 마무리될것 같아서였다. 《아니예요. 그럴수가 없었던거예요.》 자못 심중한 선생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집형편이 결혼 같은건 생각도 할수 없게 했던겁니다.》 (집형편?) 어느새 화제는 벌써 오늘 취재해야 할 내용, 바로 내가 관심하는 곬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도 출옥전에는 생각이 많았어요. 감옥에서 나가면 무엇부터 할것인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지을것인가 아니면 도시에 나가 적당한 일자리를 잡을것인가? 물론 가정을 꾸릴 생각도 없었던건 아니지만 당분간 어렵다는것은 알고 있었어요. 출옥했다 해도 여전히 보안관찰대상인 나같은 사람한테 어떤 녀자가 쉽사리 운명을 맡기겠나 말입니다. 그래 나는 우선 집에 들려 어머니에게 인사를 올리고는 동지들부터 찾아 볼 작정이였습니다. 산에서 같이 싸운 동지들이며 감옥에 있다가 먼저 출소한 동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싶기도 했거니와 그들한테서 조언을 받자는것이였지요. 그들에 대한 소식은 승옥누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응께요. 그런데 집에 들려보니 사정은 그런 계획들을 다 무시해 치웠어요.》 나는 내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선생의 생활이 휘여들지 않는것이 은근히 불만스러웠다. 《어머니는 벌써 일흔이 넘은 나인데다 광희는 몇해째 앓는 연주창이 도져 일도 못하지 광진이는 그새 <사우디>로 이민을 가고 없었으니까요. 어머니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나를 더듬으며 그러안을 때 내가 느낀게 뭔지 압니까? 그대로 말하면 제 새끼에게 피와 살을 다 뜯기우고 허울만 남은 어미거미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는 모습이였지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차마 마주 볼수가 없었어요. 새삼스레 불효자식된 죄책과 함께 이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없었어요.》 《그 책임이 어떻게 선생님한테 있습니까? 또 책임을 진다 한들 어떻게 지신단 말입니까?》 리해되지 않아서라기보다 분해서 하는 옥경이의 말이였다. 사실 이지러진 세상이 파헤쳐 놓은 한 가정의 불행을 어떻게 한사람이 책임질수 있단 말인가! 《다른 방도가 있어요? 돈을 버는거지요.》 《돈?》 옥경이와 나는 동시에 마주보았다. 《나도 아직 돈이 뭔지 잘 모를 때지만 돈이 없으면 살아갈수 없는 세상이니 돈의 노예가 되는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런 결심을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는 뭔 소리냐고 펄쩍 뛰여요. 장가부터 들라는거지요. 눈을 감기 전에 손자를 안아 보는게 소원인데 그 소원마저 들어주지 않겠느냐며 제발 한번이라도 에미말을 듣는 자식이 돼달라는거예요.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허비던지… 난 과연 한번도 어머니의 말을 제대로 듣는 자식이 못되는구나 하는 생각에말입니다. 한데 그런 어머니와 한편이 된 사람이 바로 승옥누님이였지요. 희애를 설복해서 가정을 꾸리게 한 그 승옥누님이 이번에는 나를 설복하는거예요. 가정부터 꾸리라고.》 《그 당시 희애는 어땠습니까? 그에 대한 소식은 알고 있었습니까?》 희애의 말이 나오자 나는 참지 못하고 선생의 말허리를 꺾었다. 희애에 대한 관심이 어느덧 옥경이로부터 나에게로 옮겨진 셈이였다. 《암요. 그에 대한 소식도 승옥누이를 통해 알고 있었어요. 부산에서 자그마한 미장원을 경영하면서 통일운동에도 적극적이라는거예요. 남편이 아주 착실한 사람인데 벌써 두 아이까지 데리고 화목하게 산다는거지요.》 《?!》 나는 어안이 벙벙해 졌다. 수난자로서 불우한 운명에 처해 있어야 할 희애가 도리여 남편과 함께 화목하게 살다니? 행복이나 불행은 다 제나름의 법칙이 있어 그 단계를 뛰여 넘을수도 피할수도 없는 법인데 어떻게 그럴수 있단말인가? 《그런데 내가 그때 승옥누이의 말을 듣고 놀란게 있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선생은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우선 그들 부부가 낳은 맏아들의 이름이 성칠이라는거예요. 거칠봉에서 죽은 승옥누이의 아들이름을 따서 앞으로 그 성칠이가 못다한 뜻을 잇게 하겠다는거지요. 승옥누님을 위로하자는데도 있지만 보다는 그들 자신의 결심이기도 했어요.》 우리는 절로 숙연해지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런데 더 놀란건 바로 그 남편이 희애와 나와의 관계를 다 알고 있을뿐더러 충분히 리해까지 한다는거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희애도 희애지만 그 남편이라는 사람을 리해할수가 없었어요. 세상에 어쩌면 자기 처의 과거, 그것도 한 남자에 대한 그처럼 뿌리깊은 애정을 리해할 사람이 있을가 하고 말이예요. 퍽 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그때까지만해도 난 내가 품은 그런 느낌이 바로 내 자신이 너무도 오래동안 인간세상, 그것도 진실한 사람들과 떨어져 산데 있다는걸 미처 몰랐어요. 감옥생활이 나를 그만치 딴 세상의 이방인처럼 만들어 버린겁니다.》 이번에는 뒤통수를 한방망이 되게 맞은것 같았다. 내가 머리속에 그리던 생활과는 너무나도 반대되는 사실이였다. 희애와 선생과의 관계를 다 알고 있을뿐아니라 그런 과거사를 리해했다는 남편, 그러고 보면 희애와 남편사이에는 분명 일반부부로서는 리해하기 어려운 류다른 사연이 있는것 같았다. 그들사이에 있을수 있는 일들을 머리속에 그려보며 그것들을 선생과 련결시켜 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다만 여태껏 내가 공식처럼 여겨오던 생활의 법칙과 률조들이 일시에 삼거웃처럼 복잡하게 엉켜 돌아 가면서 머리를 어지럽힐뿐이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얼굴이 달아 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선생은 오랜 감옥살이로 하여 이방인처럼 돼버렸다고 하지만 난 어째서 이 사실이 이토록 놀랍고 기이한것인가? 선생을 세상과 갈라놓은건 감옥철창이라면 나는 무엇으로 하여 그런 생활을 리해조차 할수 없단 말인가! 남녘생활에 대한 무지, 그곳 인간들을 제대로 리해하지 못하면서 선생의 작품을 쓰겠다고 나선것이 못내 부끄럽기만 했다. 문득 이방인이란 말이 새로운 의미로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러고 보면 남북에 갈라져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한피줄을 잇고 한지맥에서 살면서도 이젠 생활도 감정도 정서도 리해하기 어렵게 된 딴 세상의 이방인들이 아닌가! 방금 리기렬렬사에 대한 옥경이의 말을 들을 때와는 정 상반되는 심정이였다. 《그건 그렇고 내가 더 결혼을 단념한데는…》 그런 일들보다 더 절박한 사정은 따로 있다는듯이 선생은 심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조카 문수때문이였습니다. 어릴 때 다리를 다쳐 절다나니 직업도 변변치 못해 집에서 농사일이나 돕고 있었는데 서른살이 됐는데도 아직 장가를 못가고 있었어요. 생전처음 보는 조카였지만 난 그의 얼굴에 비껴있는 우수와 비애를 똑똑히 알아 보았습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운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의 구슬픈 표정이였지요. 그런데 그런 그가 글쎄 나를 동정하는겁니다. 힘을 주려고 애쓰는거예요. 내가 집안일을 두고 고민에 잠겨있을 때면 절룩거리며 옆에 다가와 삼촌, 걱정 말아요. 내가 있잖아요. 누가 뭐라던 난 삼촌을 존경해요 하는거예요. 날때부터 나때문에 불행하면서도 오히려 나를 동정하는 문수를 보면서 내가 느낀게 뭔지 압니까? 자기때문에 불행한 처지에 빠진 사람한테서 동정을 받는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는것이였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참기 어려운 아픔이 아닐수 없지요. 나는 어쩐지 자기가 더없이 죄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여태껏 주위사람들한테서 듣던 <너도 사람이냐?> 하는 절규가 이번에는 내 자신이 나를 향해 웨쳤습니다. 나는 그때에야 인간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는것 같았어요. 감옥에선 신념을 지키는것으로 인간이라는것을 증명했다면 이제부터는 나때문에 불행에 빠진 가족들을 위하는것으로 인간이라는걸 증명해야 한다. 이런 결심을 품게 됐단 말입니다. 그때 난 결심했어요. 가족들은 물론 불쌍한 문수를 위해서라도 있는 힘을 다하자. 살을 베고 뼈를 깎아서라도 가족들부터 살리자! 그나마 나에게 힘이 남아 있다면 그건 나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들을 위해 있는것이다. 나에겐 결코 내 일신상의 문제로 해서 옆을 돌아볼 자유도 없거니와 뒤를 돌아볼 권리도 없다 하고 말입니다.》 나직한 선생의 목소리였으나 충격을 금할길 없었다. 《나는 곧 그새 서울로 이사가서 도매상을 차리고 있는 고향친구 용재에게 부탁해서 일자리를 하나 구했습니다. 조그마한 프라스탁공장인데 일용세소품이나 잡화들을 만드는 공장이였지요. 낮에는 낮대로 일을 하고 밤에는 또 밤대로 경비를 설수 있다는 조건부계약으로 말입니다. 이때부터 나의 로동생활, 서울생활이 시작됩니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고를수가 없었다. 옥경이 역시 줄곧 강건너쪽에만 시선을 던지고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는데 눈가에서 뭔가 반짝하는것이 빛을 뿜었다. 눈물이였다. 얼른 선생의 팔을 잡은 나는 강가에 있는 나무의자로 다가갔다. 잠시 쉬고싶기도 했거니와 보다는 옥경이에게 선생이 보지 않게 눈물을 닦을 여유를 주고 싶었기때문이였다. 2
서울은 그야말로 요지경속이였다. 한뽐 기장의 네모난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감옥뜨락이 아니면 가끔 운동시간에 나와 보는 파란 하늘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광이로서는 바깥세상 특히 서울은 아무리 해도 리해되지 않는 낯선 이방이였다. 번쩍번쩍 하는 고층유리집들이며 오불꼬불한 글씨의 현란한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로 활보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너무나도 괴이한 모습에 아연해지다 못해 자기가 어떤 알지 못할 세상에 내던져진게 아닌가싶은 당혹감을 금할길 없었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리발소라고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것 같은 막 길러 풀어헤친 사자머리였다. 그러나 그중에는 놀랍게도 그런 개화되지 못한 《원시인》들에게 반발이라도 하듯 보란듯이 새파랗게 박박 밀어붙인 사람도 있어 틀림없이 저 사람은 중이겠거니해서 자세히 보면 웬걸 옷은 중이 입는 도포나 장삼이 아니라 무릎이며 엉덩이를 일부러 찢어서 다닥다닥 기워놓은 청바지차림이였다. 도대체 누가 남자고 녀잔지 분간하기도 어려웠거니와 첨부터 녀자라는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더 해괴했다. 절반나마 그대로 드러나있는 불룩한 젖가슴이 걸음을 옮길적마다 출렁출렁 춤을 추는데 저러다 혹시 발이라도 걸채여 몸이 앞으로 숙어지면 그것이 통채로 쏟아지지 않을가 하고 걱정스러울 지경이였다. 거기다가 목이며 귀며 손목들은 어째서 온통 파랗고 누런 사슬로 묶어 놓았는지 왜 저다지도 《죄수》가 되여 수정을 차지 못해 몸살일가 하는 의혹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음파사앞을 지날 때였다. 점방 가득히 진렬되여 있는 라지오며 록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광이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었다. 들려오는 소리가 노래라기보다 당장 숨이 넘어갈듯 꺼이꺼이 흐느끼는 통곡이기때문이였다. 아무렴 노래를 부르겠지 곡을 하랴싶어 다시 귀를 기울이는데 갑자기 《야, 야아, -앗》 하는 굉장한 고함소리가 터져 올랐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으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고함소리는 바로 이제껏 흐느끼던 가수가 터뜨리는 비명이였는데 그 순간부터는 흐느끼기는 고사하고 삽시에 미친사람으로 돌변하여 야만적인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 어 워 잇히…이 얏… 차라!》 (미쳤어! 울다가 웃고 그러다가 다시 소리치고… 사람도 미치고 세상도 온통 다 돌았어!) 모르긴 해도 광이는 서울의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기가 정을 붙이기는 고사하고 순간의 마음의 안정도 얻을수가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민가협》이나 《민주로총》에서 조직하는 통일행사들외에는 공장일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공장이라고 해야 파비닐들을 녹이는 가열로와 사출기 그리고 몇개의 수지형타설비들이 전부였지만 그것을 다섯명이 순간도 멈추지 않고 가동시킨다는것은 조련치 않았다. 일단 로가 시동되기만 하면 다섯명은 일제히 기계의 부속이 되여 원료를 장입하거나 가마를 휘젓거나 절단기를 분주히 눌러대야만 했다. 로에서 익힌 원료가 사출기를 거쳐 형타에 부어질 때까지 약간만 지체되여도 제품이 오작으로 되기때문이였다. 광이가 하는 일은 주로 무기능자들이 맡게 되는 파비닐을 로에 장입하는 단순한 일이였으나 어떤 일이던 겉발림식으로 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천성이 그를 온종일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먼지속에 딩굴게 했다. 그렇게 땀을 뽑고 목욕을 한 다음 저녁을 먹고 나서는 또 밤경비를 서야 하는 야근이 시작되였다. 사장네 집에 달려있는 차고를 작업장으로 개조한터여서 부지가 넓은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가소제가 있고 생산된 제품들이 있기때문에 화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무리하지 마시고 쉬염쉬염하세요.》 광이를 대할적마다 사장이 하는 말이였다. 30대의 새파랗게 젊은 사장은 언제나 광이를 비전향장기수, 장기구금 통일인사라는것으로 하여 각근하게 대해 주었다. 아무리 바빠도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이나 통일집회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시간을 보장해 주었고 자기 역시 그 모임에 같이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한 우월감도 숨기지 않았는데 그것은 보안관찰에 묶여있는 사람을 다름아닌 자기가 일자리는 물론 잠자리까지 대주고 있다는 이를테면 자기 희생에 대한 겸손한 시위였다. 사실 한때 학생운동으로 대학에서 제적, 구속까지 된 경력이 있는 그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경비를 설뿐아니라 달린채에서 세방살이까지 하고있는 광이였던것이다. 같이 일하는 로동자들도 얼굴을 익히면서부터는 존경과 함께 선의를 품고 묻군 했다. 어떤 투쟁을 했고 그토록 모진 옥살이를 하면서도 어떻게 전향하지 않을수 있었으며 또 그런 한생으로 하여 어떤 미련이나 후회는 없는가고, 《난 그저 사람이 량심껏 살아야 한다는 그 한가지 생각뿐이였어요. 행복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불행했다는 후회는 없어요.》 그 말을 어떻게 리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사람이 사흘 굶고 석달 녀자옆에 가지 못하면 짐승으로 되고 만다는데, 결국 석달사흘이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린다는데 석달사흘은 고사하고 3년석달, 아니 33년이라니 원…》 비좁은 세방살이문틈으로 내다보는 바깥세상이지만 한두달이 지나면서부터는 점점 주위에도 익숙해졌다. 아침 9시가 되면 세탁소의 총각이 《세-에타악이요.》 하고 웨치며 골목을 누빈다든가 10시쯤에는 수도의 검침원이 온다든가 또 오후 두세시에는 교회에서 나온 전도사들이 꼭 굴비 한두름 사라는 투의 간지러운 목소리로 하느님을 믿으라고 호소한다던가 하는것이 동네의 분위기였다. 그중에도 광이가 새롭게 알게 된것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완전히 두쪽으로 구분되여 있다는 사실이였다. 자동차가 겨우 어길만한 도로를 경계로 하여 이쪽은 그래도 밥술깨나 먹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맞은켠에는 겨우 세집을 면할 정도의 빈곤한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쪽에는 좀 반반하게 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다방이며 맥주집,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가 하면 맞은편에는 구차한 살림살이를 상징하듯 애새끼 불알만한 귤을 한무데기씩 쌓아 놓은 로점상이나 가락국수, 라면 등을 파는 초라한 구멍가게들이 전부였다.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차츰 알게 되였는데 복덕방을 하는 류령감은 퇴직경관인데 집장사를 하다가 거덜이 나자 복덕방으로 나앉았다는것, 《희망》다방을 차리고 있는 생과부는 시집간지 한달만에 남편이 급사하는 바람에 재가를 했으나 그 남편과 또 성격이 맞지 않아 다시 독립했다는것, 그리고 붕어빵을 구워파는 정씨는 그래도 고향에서는 논마지기나 있던 사람이였지만 남의 권고로 오골계를 기르다가 그만 폭삭 망하고 야간도주하다싶이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라는것이였다. 모두가 다 제나름의 세파를 거쳐 왔고 또 힘겹게 헤쳐 가고 있는 사람들이였다. 《정신 나긋나? 주야근무가 무엇이여, 죽자는겨?》 용재가 찾아왔다. 광이를 대할 때면 왜서인지 긴 목을 빼들고 눈알을 부라리며 불평부터 쏟아 놓는것이 그의 버릇이였다. 친구를 위하는데 습관된 인정많은 사람은 반가움도 불만으로 나타내는 법인지. 그러나 오늘은 광이를 공장에 소개할 때 처음 얼마간은 밤경비를 서고 곧 낮근무만 하기로 한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는데 대한 핀잔이였다. 《환갑이 다 된 나이란걸 알아야 해여.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여우같은 계집을 하나 얻어 토끼같은 새끼는 봐얄게 아녀.》 도매상의 일로 하여 하루도 번한 날이 없는 용재였으나 틈이 생기기만 하면 광이를 찾아와 한바탕 부산을 떨군 했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사이이기도 했거니와 자기가 감옥에 있을 때에는 당산재에 있는 아버지묘소에까지 꼭꼭 찾아가 벌초를 해주고 술도 부었다는 그를 대할적마다 광이는 어쩐지 초로가 다된 자기들이지만 33년이라는 세월이 순간으로 압축되면서 마치 고향에서 같이 지내던 어릴 때의 일을 그대로 연장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군 했다. 그를 볼 때마다 먼저 생각나는것은 처음 서울에 올라 왔을 때 시내구경을 시켜준다며 탑골공원이며 여의도를 거쳐 삭도를 타고 남산에까지 올라가 야경을 부감한 뒤 돌아올 때 있은 일이였다. 길거리에 있는 구인광고판옆에 그만한 크기의 광고가 따로 한장 붙어 있었다. 《뽀삐야 돌아와 다오. 정말 너없인 못살겠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것 만들어 줄게. 호주산임, 방울목걸이에 알락무늬가 있음. 련락인 후사함. 937-4785》 《이게 무엇이여?》 누구를 찾는다는것은 알수 있었으나 정확한 내용은 파악할수 없어 광이가 물었다. 그러나 용재는 아무 대꾸도 없이 공중전화기앞으로 다가가 전화번호를 돌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거기가 개 찾는 집이지요? 아, 그렇게 덤비지 마시고 좀 차근차근… 녜, 맞습니다. 얼룩무늬가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냐구요? 잘 기억하십시오. 여긴 황천동 개소주집인데 아주 진국으로 고아 놓았으니 어서 찾아 가십시오.》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용재는 이발만 보이는 황소웃음을 씩 하고 웃어 보이였다. 어릴적 남먼저 참외밭에 기여 들어 갈 때에도 잘난체 하는 놈들에게 고라니를 먹였을 때에도 바로 저런 웃음을 웃군 했었다. 오늘도 그는 광이를 길건너에 있는 포장마차로 끌고 갔다. 술이라고는 입에 대지 않는 광이라는것을 알면서도 그는 올적마다 광이를 포장마차에 데리고 가군 했는데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이는것 같았다. 이미 낯을 익힌 주모가 반가이 눈인사를 보내며 언제나 그들이 청하군 하는 두홉들이 소주병과 함께 못난 녀자의 주둥아리같은 닭똥집을 탁우에 내놓았다. 술을 붓고 난 용재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번에 춘천에 갔다가 맞춤한 녀자가 하나 있다길래 만나봤어. 교사출신인데 나이는 마흔셋이구 생기기도 그만하면 해반주그레 하데그랴. 근디 아니여. 자네 얘길 했더니 대뜸 나이타령, 재산타령 거기다 빨간 딱지까지 들먹이는거라 넨장, 너도 아니구나 하고 돌아 섰지라.》 다른건 몰라도 광이가 가정을 꾸리는것만은 전적으로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고 여기는 그여서 만날적마다 철없는 막내동생을 대하듯 어떤 녀자를 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시시콜콜이 곱씹군 했다. 《뭐니뭐니 해도 녀자는 마음이 기본이라. 얼굴 밴밴한건 1년, 재산이 있다는건 3년밖에 못가지만 그래도 마음 무던한건 죽을 때까지 가는겨. 긍께 절대 얼굴에 속거나 재산에 반하지 말고 마음 하나만은 똑바른 녀잘 골라야 한다 이거다. 알긋나?》 그의 이런 충고가 이미 아들딸 둘을 다 세간 내고 처와 단 둘이 살고 있기는 했으나 처가 별스레 투기가 심한 기승스런 녀자여서 가정생활에서는 어지간히 골머리를 앓고있는 그자신의 사정과도 관련되여 있다는것을 광이도 모르지 않았다. 자주 입버릇처럼 《무슨 녀편네가 그리도 사나울까이. 첨에 고분고분해 주었더니 이젠 상투꼭대기에 앉아 오줌까지 싸자는거라. 내 드러워서.》 하고 투덜거리군 했다. 《그까짓 계집이나 새끼는 해서 뭘해여? 그보다 먼저 있어야 할기 하도 많은 세상인디.》 《따는 그래. 유전이 무죄고 무전이 유죄라는 세상에서 사는 불쌍한 인생잉께.》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가방 옆주머니에 끼워 있던 신문을 뽑아 들었다. 《이걸 봤나? 오늘 석간인데 여길 좀 보게.》 용재가 가리키는 곳에 광이는 시선을 모았다. 《한끼에 490만원짜리 상을 독식!》 제목이 흥미있어 읽어보니 어느 재벌회사 사장네 집에 한마리에 70만원씩이나 하는 애완용비단잉어 《니시끼 고이》가 일곱마리나 있었다는것이다. 일본에서 사온 그 관상용비단잉어는 호르래기를 불면 일렬로 사열하고 피아노를 치면 꼬리를 맞비비며 고고나 디스코까지 맵시있게 추는 재롱을 피웠는데 그만 내정을 수리하다가 세멘트의 독성을 깨끗이 헹구어 내지 않은채 잉어들을 련못에 넣는 바람에 하루밤사이에 떼죽음을 당했다는것이다. 그통에 비싼것이라면 누구나 오금을 펴지 못하는 세상이지만 갖은 양념을 다해 버무린 비단잉어찜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아 결국 사장운전수가 혼자서 독차지했다는 내용이였다. 《세상은 이런 판이여. 한끼에 490만원짜리가 있는가 하면 우린 겨우 300원짜리 쐐주나 빨아야 하니.》 손에 든 잔을 그는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 우린 이렇게 쓴 쐐주로 목구멍을 지져도 <니시끼 고이>를 기르는 놈들은 향수 같은 브렌디로 혀바닥을 추기겄지? 제길, 언제가야 잘 사는 놈 못 사는 놈 따로 없이 목에 힘주고 한번 살아보겄는지. 다른게 없는겨. 그저 이 땅이 하루빨리 민주화가 돼야 하는거라.》 신문을 뒤적거리던 광이는 은연중 용재의 말을 되뇌였다. 마치 민주화가 되기만 하면 저절로 잘살게 되는것처럼 말하기때문이였다. 그도 용재가 사회나 정치에 대한 제나름의 견해가 있기는 해도 그것이 모가 없이 두리뭉실한 성격처럼 누구나 품는 일반적인 생각일뿐 한걸음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용재자신은 매번 자긴 여당이 아니라 야당, 그것도 혁신정당의 확고한 지지자라는것을 자랑스레 말하군 했다. 《그러니 민주화만 되믄 누구나 맘편히 잘 살게 된데여?》 무우를 설겅설겅 썰다가 어느새 미나리를 다듬는 주모를 얼핏 스쳐본 용재가 조심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암, 거야 뻔한 리치지. 민주화가 못됐응께 독재정권이 폭력정치를 일삼는거고 이런 비단잉어나 키우는 재벌들이 외국자본과 함께 지맘대로 이 땅을 뜯어 묵는거라. 그러다낭께 서민들은 생존의 위협까지 당해야 하는 막다른 처지에 빠져 있고. 글쎄 외채 500억딸라가 무엇이여. 국민 한사람당 100만원의 빚을 걸머지고 있다니 말이 되여?》 《난 그기 이 땅이 민주화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거라.》 《그기 뭔디야?》 용재가 정색을 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은 사회가 민주화되지 못해서가 아니고 우리 민족이 분렬돼 있기때문이라는것이여. 국토의 분렬, 민족의 분렬이 바로 온갖 고통의 원인이다 이거라. 이 나라 력대 정권이 다 분렬을 구실로 독재를 하고 민주를 말살하는것만 봐도 명백하지 않는가 말여. 그렁께 우리의 투쟁은 무엇보다 분렬을 가시기 위한 투쟁, 통일을 위한 투쟁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여. 야권에서는 선 민주, 후 통일이라는 말을 하는데 천만에, 가지 잘리운 나무에서 어떻게 꽃이 피여? 진정한 민주는 통일에 있고 오직 통일만이 우리가 잘 살수 있는 길인거라.》 감심한 눈길로 바라보는 용재의 표정은 광이한테 이토록 명백한 통일에 대한 견해가 정립되여 있을줄은 미처 몰랐다는 기색이였다. 사실 자주 만나기는 했어도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처음이였다. 《가유명사에 30년 부지라더니 그동안 굉장한 철학가가 됐네그랴. 응? 그럼 통일은 어떻게 해야 되는겨?》 《거야 미국놈부터 몰아내야지.》 《미국놈?》 용재의 목젖이 꿈틀했다. 여느 때도 웅근 목소리였지만 단마디로 부르짖을 때면 그 소리가 엄청나게 우렁찼다. 그러나 목소리보다 더 큰것은 그의 휘둥그래진 두눈이였다. 《아니, 아직도 감옥살이가 모자래서 그래? 보안관찰대상자가 반미강연을 다 한당께. 아줌씨, 이 사람을 어찌까? 관할경찰서에 칵 고소해뿟가?》 주모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벌써 얼근한 취기가 올라 있었다. 그런것쯤은 자기도 다 리해한다는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주모는 국자로 오뎅국물만 휘젓고 있었다. 《몰아내다니 어떻게 몰아낸단 말여? 미국이 나가지도 않겠거니와 나가서도 안된다는것이여. 그래도 이 땅에 우리의 <우방>이고 세계유일초대국인 미국이 버티고 있응께 평화가 유지되는거라. 알겄어?》 《평화?》 광이는 저도 모르게 입귀를 실룩했다. 그것은 용재만이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대한 불만이기도 했다. 《그래 이것도 평화여? 독재정치에 시달리고 외국독점에 예속되고 그래서 더는 못살겠다고 젊은이들이 매일처럼 몸을 불사르는데 이것도 평환가 말여. 이 이남땅의 모든 재앙이 다 미국놈들때문인데 그놈들이 있어야 하다니? 바로 자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때문에 통일이 안되는것이여.》 《뭐라?》 다시 두눈이 휘둥그래진 용재가 입을 딱 벌렸다. 《이거 정말 큰일나겄네. 이젠 나까지 가막소귀신으로 만들지 못해 몸살이여? 제발 그런 얘긴 그만 두고 들기나 해여.》 그러면서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놀랍제요. 감옥살일 하더니 이젠 아주 새빨간 주사파가 다 되고 말았당께.》 술을 좋아 하기는 해도 주량은 별반 시원찮아서 한두잔에 벌써 얼굴이 빨개지고 눈꼬리가 처지군 했는데 지금은 그 얼근한 취기마저 가셔지는 모양이였다. 미소를 띄운 광이는 의미있는 눈길로 용재를 바라보았다. 뭔가 용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마침이다 싶었다. 언젠가부터 자기의 가슴을 틀어잡고 어려울 때마다 힘을 주고 용기를 주던 사실에 대해서만은 용재에게 털어놓고 싶었던것이다. 《내 한마디만 하지. 난 아직 주사파는 못되지만 이북이 어떤 나라라는것만은 똑똑히 알아. 바로 그걸 알게 되면서 내 인생관도 명백해 진거라.》 오뎅국물을 휘젓던 주모가 손을 멈추고 광이를 마주 쳐다보았다. 그것은 어떤 경계의 눈빛이 아니라 기대와 호기심이 나타내는 표정이였다. 그런 주모의 표정이 어쩐지 광이에게 더 힘을 주었다. 《비록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있다 해도 이북사람들은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한결 더 당당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지.》 술병을 든 광이는 용재잔에는 물론 자기 잔에도 부었다. 약이라도 먹듯이 조심스레 한모금 베여 마시고 난 그는 심중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감옥살이하면서 내가 제일 괴로웠던게 뭔지 알아? 물론 고문이나 굶주림이나 추위, 그런것도 참기 어려웠지. 그러나 보다 참을수 없었던건 강압적인 힘에 눌리워 짐승처럼 취급받는것이였어. 사람은 자기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힘앞에 견뎌낼 수가 없다는걸 느끼게 되면 약해지기마련이여. 그래서 고민하다가 목숨을 끊기도 하는거라. 나 역시 첨엔 그랬지. 굴욕과 저주와 분노, 비관, 이런 복잡한 감정의 련쇄반응으로 미칠 지경이였응께. 그런데 나에게 힘을 준것은 바로 이북이였어. 그때까지만 해도 난 이북의 사상이나 주의에 심취돼서가 아니라 바로 자네가 세계최강이라고 하는 미국과 1대 1로 맞서서 한번도 후퇴하지 않는 그 배짱과 결패에 감동되면서 사람도 바로 저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저게 바로 당당한 삶이구나 하는걸 깨달았단말여. 감옥에서 형리와 <죄수>의 관계가 바깥세상에서는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처지와 비슷하다면 나라들 간에는 오만무례한 미국과 다른 나라를 비유할수 있지 않겄나.》 어느새 화제는 이북으로 번져졌다. 《전에 있은 <푸에블로>호 사건이나 이씨간첩비행기, 판문점사건들도 그렇지만 이번 미국의 <핵위협>에 이북이 어떻게 나오는가 하는걸 봤지? 얼마나 담대한 대응이야? 다른 나라들은 절대 그러질 못해. 이북은 미국이 위협으로 나와도 무서워 하기는커녕 도리여 고슴도치처럼 이를 악물고 반격태세를 취하지. 고슴도치는 자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당장 달려들어 쏘지.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쏘고 또 쏘거던. 거기에 겁을 먹은 미국이 매번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던거라. 그런데 문제는 세상을 놀래우는 이북의 그런 대담무쌍한 대응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것이여. 그건 바로 김일성주석님과 함께 군대를 직접 맡아 령솔하시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단호한 결단과 의지에서 출발하는데 그분의 인생관은 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위해서는 상대가 누구던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싸운다는 확고한 신념이여. 난 거기에 감동된거라. 비록 다른 나라보다 크거나 잘 살지는 못해도 얼마나 민족의 영예를 중시하는가 말여. 사람의 최대의 행복이 인격이라면 민족의 최대의 행복은 존엄이 아니겠는가 말여. 난 그때에야 사람이나 민족의 가치는 바로 령도자에 의해 규정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고 그런 민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민족이라는걸 알게 되였어. 이런 사실들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고있던 나에겐 눈물이 나게 고마우면서 과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것이 어떤것인가 하는걸 새롭게 깨닫게 해준거라. 그때 내가 결심한게 뭔지 알아? 내 고향은 비록 이남이지만 나의 조국은 이북이다, 비록 감옥에 갇혀있긴 하지만 그분을 받드는 전사로 살겠다 하는것이였어.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바로 그 자부심이 나를 시련에서 견디게 해주었고 또 량심을 끝까지 지킬수 있게 해준 힘의 원천이였던겨.》 《…》 용재는 생각에 젖은 눈길로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된 광이의 새로운 모습에 말은 고사하고 마주 보기조차 저어스러운듯 했다. 《저, 한잔 권해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레 하는 주모의 말에 광이는 어리둥절해 졌다. 《어떤 뜻으로…》 《다른 뜻은 아닙니다. 그저 저의 고향 이북에 대해서 반가운 말씀을 해주시니 그게 고마워서…》 《아- 그러니 이북출신입니까?》 《녜. 전쟁때 부모님의 등에 업혀 월남했는데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생전에 자주 하시던 친척들이며 고향이야기가 생각나서… 죽기전에 가보기나 하겠는지…》 《가지 않구요. 꼭 가게 됩니다.》 광이는 그가 두손으로 내미는 술잔을 고맙게 받으며 힘껏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나서 오뎅 두접시를 더 청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데 대한 반가움과 함께 일종의 상업적인 보상이기도 했다. 《내 소원은 말여.》 한손을 용재의 무릎우에 올려놓은 광이는 혼자소리처럼 조용히 그러나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죽기전에 그분의 정치를 받아 보았으면 하는것이여. 만약 그게 어렵다면 잠시라도 뵙고 인사라도 올리고 싶은겨. 우리 민족을 그렇듯 존엄있는 민족으로 당당히 내세워 주시여 고맙다고 말이여. 그것도 어려울가?》 《…》 용재는 여전히 아무 대꾸도 없었다. 사실 광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의 그 간절한 소원을 풀게 될 력사의 순간이 마련되고 있다는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더우기 그걸 위해 이북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어떤 심혈과 로고를 바치고 계시는가 하는것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그가 그 믿어지지 않는 꿈같은 소식을 들은것은 이듬해 일본에서 건너 온 조일민을 통해서였다. 3
조일민이가 서울에 온것은 94년 가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김일성주석님의 서거에 대한 통절한 애환이 가셔지지 않고있을 때였다. 《하늘이 울고 땅이 운다!》 《만민의 태양이시여 부디 영생하시라!》 각지에 꾸려진 제단과 분향소들에는 여전히 조객들이 끊치지 않았고 각계 인사들로 무어진 조의단은 《조문간다, 길 비켜라.》며 앞을 막아나서는 전경들과 치렬한 몸싸움을 벌리기도 했다. 락성대의 《만남의 집》에서 추모제를 경건히 치른 비전향장기수들이였으나 너무나도 엄청난 비애의 여파로 하여 모두들 망연자실한 상태에 빠져있었다. 오죽하면 그 비보를 접한 순간 최남규, 윤형기 두사람은 의식을 잃고 졸도까지 했으랴! 《내 이 손을 꼭 잡으시고… 비료만 나오면 우리도 잘살게 된다고 하시던 주석님께서…》 가느다란 팔을 흔들며 이 말만 후렴처럼 반복하는 윤형기라면 일체 식음을 전페하고 기신없이 쓰러져있다가도 정신이 들기만 하면 이발이라고는 한대도 없는 입을 벌린채 아이처럼 왕왕 소리내 우는 최남규였다. 두사람 다 주석님을 직접 만나뵈온 사람들이였다. 최남규는 보안간부훈련소에서, 윤형기는 광복직후 흥남비료공장복구건설장에서. 정녕 주석님의 서거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있어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내린것이나 다름 없었다. 투쟁의 기치였고 신념의 기둥이시였던 김일성주석님!… 30년, 40년을 철창속에서도 오로지 북녘하늘을 우러르며 저 하늘에 태양이 있는 한 결코 괴롭지도 외롭지도 않다고 마음 다지며 희망과 신심을 가다듬군 하던 이들이였다. 그런데 그 태양이 스러지다니? 진정 믿을수도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 청천벽력이 아닐수 없었다. 《지옥같은 감옥에서도 오로지 주석님만 믿고 살아온 우리들인데 그런 우리들을 두고 먼저 가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아! 세상도 무심하고 하늘도 무심쿠나!》 《민가협》이나 《장기수후원회》성원들, 지어는 종교단체 성직자들도 경찰의 눈을 피해 매일처럼 《만남의 집》에 찾아와 비전향장기수들을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해주었다. 바로 그럴 때 조일민이 나타났던것이다. 《아니, 조동지가 어떻게?》 출옥후 편지나 전화로 서로 문안을 주고 받긴 했어도 그가 소문도 없이 서울에 나타나기는 처음이였다. 사실 그에게는 남다른 정을 느끼고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이였다. 84년, 그가 출옥해서부터 비로소 감옥안에 있는 장기수들에 대한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고 그로 하여 《국제대사령》을 비롯한 국제인권단체들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것이다. 《선생님들께 꼭 알려드려야 할 소식이 있어 왔습니다. 서신으로 전할가 했지만 아무래도 이 사실만은 직접 전해야겠기에…》 급히 달려온 사람처럼 단숨을 내쉰 그는 제잡담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서울분위기도 그렇지만 일본에 있는 동포들 역시 아직도 주석님서거에 대한 애도분위기에 휩싸여있습니다. 늘 서로 엇서기만 하던 총련과 <민단>이 주석님추도식을 계기로는 한자리에 같이 앉았지요. 동포들은 하나같이 주석님께서 돌아가시면서까지 민족의 천추의 념원인 통일을 우리의 가슴속에 새기셨다고, 그러니 이젠 통일을 위해선 누구나 마음을 합쳐야 한다고 말하지요. 사실 주석님께서 생전에 보신 제일 마지막문건이 바로 조국통일에 대한 문건이였답니다.》 조일민이 다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 바로 며칠전에 주석님의 추모제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갔던 총련 조의대표단성원들을 직접 만났댔습니다. 그들이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접견을 받았는데 바로 그 소식을 선생님들께 전하자고…》 입모서리에 힘을 주어 량볼에 괄호가 새겨지게 하는 버릇은 주로 자기 혼자 알고있는 비밀을 털어놓을 때 하는 그의 습관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총련 조의대표단성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이국땅에서 활동하는 총련일군들도 수령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마지막 유훈이 조국통일이라는것을 잊지 말고 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과감하게 벌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자면 남녘땅에서 온갖 시련을 다 겪으면서도 조국통일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비전향장기수들처럼 싸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시고는 그 비전향장기수들이 지금 수령님서거로 하여 얼마나 가슴아파 하겠느냐고, 그들을 옆에서 위로해주지 못하는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답니다.》 《?!》 모두들 번쩍 고개를 쳐들고 놀란 눈길로 마주보았다.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이여서 말은 못하고 눈들만 슴뻑이였다. 한참만에야 80고령의 리정령감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갈린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지금 그 누구보다도 가슴이 아프실 그분께서… 도리여 우리를 두고 그런 걱정을 다 하시다니? 아니, 아니, 이건 정말…》 그 이상 더 표현할길이 없어 팔소매로 눈굽을 닦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시울도 떨리고있었다. 누군가 더는 견디지 못해 조일민의 무릎을 거머쥐였다. 《계속하시우. 응? 그리구 또 무슨 말씀을…》 《어서요!》 놀라운 소식은 따로 있다는듯이 조일민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이께서는 조의단성원들에게 선생님들의 투쟁내용에 대해 말씀하시고나서 한때 유럽에서는 소설 <등에>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옥중투쟁으로 소문난 율리우스 푸치크 같은 사람이 대단한것처럼 선전했지만 30년, 40년동안이나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다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혁명적신념을 끝까지 지켜낸 우리의 비전향장기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량심과 신념을 지닌 혁명가들이며 조국의 통일을 위해 싸운 귀중한 동지들이라고 하셨습니다.》 《?!…》 감격의 선풍이 모두의 가슴을 휩쓸었다. 일시에 입을 벌리고 헉헉 흐느끼며 마주보다가는 저도 모르게 조일민의 팔을 마구 흔들어 댔다. 《가만, 가만. 다시 말해주우. 다시!》 《가장 깨끗… 한 량심이라구요? 그렇게 말씀하셨다구요?》 《예. 가장 깨끗한 량심과 신념을 지닌 혁명가들이며 자신의 가장 귀중한 동지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아!-》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것이 믿음이라고 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없고 믿음이 없으면 참사랑에 대해서도 말할수도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시금 서로 얼굴을 맞대고 비비고있은것은 광이와 최남규였다. 《이럴 땐 어째야 합니까. 예? 선생님, 뭐라구 말씀드려야 하나 말입니다.》 《우리더러 제일 귀중한 동지라고 하셨다우. 글쎄 내나 고광동지를 두고 그렇게…》 걷잡을길 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흐느껴 울다가 서로 붙안고 상대방의 가슴에 머리를 틀어박는 사람도 있었다. 인제는 눈물만이 말하고있었다. 그 뜨거운 눈물속에 그들이 한생 변함없이 지켜왔고 변함없이 간직해온 모든것이 들어있었다. 어느새 최남규는 벌떡 자리에서 뛰쳐 일어났다. 크나큰 격정에 가슴을 움켜쥐며 《장군님, 김정일장군님!-》 하고 목갈린 소리를 질렀다. 재작년, 리인모동지의 송환때에도 남녘땅에 남아있는 자기들을 두고 이북에서 많은 걱정을 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이께서 이처럼 마음속깊이 묻어두시고 날마다 마음쓰고 계시는줄은 미처 몰랐던것이다. 아니, 저들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였다. 조일민이 곧 가방에서 한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이 무슨 책인가 하면 그이께서 대학때 보셨다는 책인데…》 그것은 프랑스의 부르봉왕조사를 취급한 책으로서 거기에는 1812년 나뽈레옹이 로씨야로 쳐들어갔을 때 수많은 프랑스병사들이 포로가 되여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된 사실이 적혀있었다. 프랑스포로들은 나뽈레옹이 망한 후 새로 들어앉은 부르봉왕조때에도 제 나라로 돌아가지 못했다. 로씨야에서 나뽈레옹때의 포로들을 데려가라고 했으나 부르봉왕조는 나뽈레옹때의 포로들은 우리가 알바 아니라고 하면서 돌려받기를 거절했던것이다. 그리하여 부르봉왕조의 버림을 받은 프랑스포로들은 로씨야의 감옥에서 얼어죽고 굶어죽고 병들어죽으며 참담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이런 내용에 대해 상기하신 그이께서는 나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생각할 때면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다고 하시면서 령도자와 혁명전사들간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답니다.》 (령도자와 혁명전사들의 관계!…) 광이는 무어라 형언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였다. 평생 한번도 사람대접을 받아보지 못했을뿐더러 감옥에 있을 때에는 프랑스병사들보다 더한 학대와 모멸에 가슴 쥐여뜯던 자기들을 혁명가로, 가장 귀중한 동지로 믿어주고 내세워주시는 그이의 불같은 인정에 저절로 눈굽이 달아올랐다. 어느덧 조일민의 두눈도 누를길 없는 흥분으로 번뜩이였다. 《그이께서는 그렇기때문에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남조선에서 고생하고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조국의 품에 데려올 결심이다, 지금은 비록 리인모동지 한분을 데려왔지만 앞으로는 그들모두를 데려올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에 대해 그토록 심려하신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 동시에 혁명동지들에 대한 우리의 혁명적의리가 어떤것인가를 온 세상이 알도록 하겠다, 그러시면서 그들을 데려오는 문제는 단지 우리 사람들을 데려온다는 단순한 인도주의문제가 아니라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친 혁명동지들에 대한 우리의 응당한 의무일뿐아니라 혁명전사에 대한 령도자의 응당한 도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두들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장군님!-》 더이상 할말도 없는 그들이였다. 눈물밖에는, 다함없는 경모와 감사의 념이 뜨겁게 흐르는 눈물밖에는 무엇으로도 표현할길이 없는 그들이였다. 《김정일장군님!-》 모두 일시에 조일민에게 달려들어 그의 어깨를 흔들어댔다. 조일민이 역시 그들과 함께 울었다. 《고맙습니다.》 광이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버지가 그처럼 그리던 세상, 그처럼 갈구하던 사랑의 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쓰러지면서도 그 참된 세상을 바랐고 따사로운 품을 그리였던가!… 어제는 그들모두를 대신하여 천대받던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깨닫게 해주시고 오로지 그길로 참되게 살도록 이끌어주시더니 오늘은 또 광이 자기와 같은 사람들까지 혁명동지로 따뜻이 안아주시는것이 아닌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분께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만은 꼭 올리고싶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도리고 혁명전사로서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저희들에게 차례지는 이 꿈같은 행복은 바로 당신, 세상에 다시없는 위대한 령도자인 당신을 모시고있기때문이라는것을 저는 오늘에야 똑똑히 알았습니다. 아, 동지!》 광이는 저도 모르게 동지라는 말을 되뇌였다. 한자 한자가 세찬 격랑이 되여 가슴을 쳤다. 혁명의 령도자와 혁명전사사이에 맺어 진 진정한 동지애가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비로소 가슴에 깊이, 뜨겁게 새길수 있었다. 그러나 전사가 령도자에게 바치는 충정에 비하면 너무나도 크고 뜨거운 전사에 대한 령도자의 사랑이 아닐수 없었다. 《며엉 천!… 철이, 영이, 일이야!…》 남규령감이 입술을 푸들거리며 두손을 공중에 휘저어댔다. 부지불식간에 고향과 자식들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였다. 《그래요. 최선생! 우린 고향에 가게 됐어요. 김정일장군님께서 우릴 불러주신단 말이예요. 그러니 앓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보고싶던 부모들도 만나고 처자들도 만나볼게…》 울먹거리던 최장기수 김순명이 끝내 황소의 영각소리 같은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그러자 방안은 또다시 흐느낌으로 변했다. 문득 고개를 든 김순명이 눈물을 씻으며 목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동지들! 힘을 냅시다! 우리의 머리우에는 여전히 태양이 빛을 뿌리고있소! 밝은 태양이! 지금 나의 심정은 저 암흑의 중세기에 태양중심설을 주장하다가 화형당하게 된 순간에도 재판장에서 <알프스의 빙하를 모조리 다 덮어씌워도 내 심장의 불은 끄지 못할것이요.> 하고 말한 죠르다노 부르노의 심정그대로요. 자, 우리모두 노래를 부릅시다. <동지애의 노래>를!》
울음에 젖은 그의 선창을 따라 모두가 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결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입술들은 하나같이 부들부들 떨었지만 노래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그날 저녁 광이는 조일민이와 마주앉았다. 아늑한 다방에서는 두사람의 격앙된 심정과는 달리 고독한 방랑자의 슬픔을 노래한 슈벨트의 《겨울나그네》가 조용히 울려퍼지고있었다. 《선생님, 전 더없이 행복합니다. 그런 위대한 사랑을 저도 선생님들과 함께 받고있으니까요. 확실히 인생의 최대의 행복은 자기가 사랑을 받고있다는것을 확신할 때라는 빅토르 유고의 말이 옳은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에게 어떤 사랑을 받는것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으로 봐서는 부모형제의 사랑이 아니면 애인이나 벗들의 사랑이였을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주고도 자기에게 오는 사랑은 한가닥도 느끼지 못하고 죽은 쟝바르장이나 곱추인 까닭에 어머니에게서조차 버림을 받고 가슴에 품은 사랑을 쏟아붓지도 못한채 에스메랄다의 시체를 안고 죽은 까지모도. 하지만 그 유고가 아직 세상에 살아있어 이 이남땅에서도 위대한 령도자의 이런 사랑을 받아안은 우리들을 본다면 이것을 과연 어떤 행복이라고 할가요?》 《나 역시 같은 심정일세.》 정녕 이런 행복이 어디 있을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최대의 행복일뿐아니라 또 누구나 감히 쉽사리 받아안을수 없는 그런 값비싼 행복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에 휩싸이게 될수록 광이는 한쪽으로 은근한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가 북으로 가게 되면 여기 있는 어머니며 가족들은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것이였다. 그나마 자기때문에 불행에 빠진 가족들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기로 각오했던 자기가 그들을 남겨두고 행복을 찾아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을 괴롭혔던것이다. 《전 오늘에야 왜 조국을 어머니조국이라고 하는지 그 의미를 알게 되는것 같습니다. 전에는 제가 남도 내 조국, 북도 내 조국이라고 했지만 이번에 돌아가면 당장 법무성 입국관리소부터 찾아가 국적을 바꾸겠습니다. 자기를 낳아 키워주고 보살펴주는 어머니가 하나지 둘일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래야 또 평양에 있는 선생님들과도 자주 만날수 있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확고한 결심에 넘치던 조일민의 표정이 갑자기 어린애와 같은 천진한 미소로 변했다. 4
드디여 분렬 반세기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북남수뇌상봉이 이루어지고 통일강령 6.15공동선언이 채택되였으며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송환도 명백해졌다. 오매불망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는 꿈같은 환희와 처자를 만나게 되였다는 기쁨으로 하여 비전향장기수들은 제정신이 아니였다. 누구를 보나 격정에 넘친 눈매들이였으며 환성을 터뜨리는 입술들이였다. 그저 모두가 말끝마다 하나같이 웃어댔는데 그것은 하는 말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행복한 나머지 모든것이 웃음으로 변해가지고 튀여나오는 그 즐거움을 억제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또 어딜 가나 후한 대접이였다. 《송추위(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나 《장기수후원회》, 종교단체들에서 조직하는 상봉모임, 강연회, 환송회가 그칠줄 몰랐고 그동안 친혈육이나 다름없이 옥바라지를 해주고 령치금이며 사식들을 마련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서로마다 자기 집으로 초청했다. 여느 때에는 《보안관찰법》에 따라 정기적으로 동태를 보고하고 다른 보안관찰대상자와 만났을 땐 날자와 장소, 대화내용을 신고하도록 요구하던 관할경찰서 직원들까지도 한결같이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를 선물했다. 신문, 방송, 텔레비죤에서는 매일처럼 평양수뇌상봉장면과 함께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초대모임들이 중계되군 했는데 며칠전에는 이채를 띤 리세호의 결혼식이 성황리에 소개되였다. 지리산빨찌산출신인 리세호가 30년간의 옥살이과정에 알게 된 신부, 처음에는 편지거래로 시작된 두사람이 어느덧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 마침내는 일생을 같이하는 부부로 맺어졌던것이다. 신부는 당년 42살, 부모없는 고아로 자라나 처녀때부터 청계피복로동자로 일하면서 운동권에 뛰여든 투사로서 지금은 투쟁 1선에서 활약하는 녀장부였다. 《어떠세요? 총각할아버지로부터 신랑으로 된 감상말이예요.》 결혼식을 취재하던 녀기자의 물음이였다. 《아이가 어른이 됐으니 마음도 더 크게 가지고 일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일을 념두에 두시죠?》 《그야 물론 통일조국의 리정표인 6.15공동선언을 관철하는 일이지요.》 《신혼려행은 어디로 계획하셨는가요?》 《우린 신혼려행만은 잠시 미루기로 했어요.》 옆에 있던 신부의 대답이였다. 《어째서죠?》 《틀림없이 래년쯤에는 통일렬차를 타고 평양이나 묘향산에 갈수 있을테니까요.》 와자자 박수가 터져올랐다. 머리에 백발을 얹은 비전향장기수들을 둘러보던 기자가 다시 신랑에게 물었다. 《비전향자로서는 <막둥이>의 결혼이여서 이렇게 모든 선배님들이 참가하셨는가요?》 《막둥이라뇨? 제 <동생>이 아직 하나 남아있습니다. 저기있는 고광동지.》 기자는 곧 광이에게로 다가섰다. 《선생님은 언제 화촉을 올릴 예정이세요?》 《글쎄요.》 《실례지만 배우자를 소개해주실수 있겠어요?》 《아직 전…》 우물쭈물하는 광이를 대신하여 옆에 있던 김용기가 한마디 비쳤다. 자기의 감옥살이체험을 수기로 출판해 일약 재사로 불리우는 동지였다. 《이 고광동지의 애인은 북에 있습니다. 평양에, 이제 우리모두 평양에 가서 요란한 성례를 올릴 계획이예요. 말하자면 우리 비전향자들이 남남북녀의 결합을 실현해보자 이겁니다.》 《네, 그러세요? 축하를 드립니다. 남북의 결합, 통일부부의 앞날에 부디 행복이 주렁지기 바랍니다.》 또다시 박수가 일었다. 미혼이 자기 한사람이고 평양에 간다는것은 사실이였으나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해본 광이였다. 도리여 그는 요즘 송환을 앞두고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로 하여 커다란 번민에 싸여있었다. 그것은 이젠 운신은 물론 말조차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어머니가 자기의 송환을 어떻게 여길가 하는것이였다. 틀림없이 대경실색할 어머니가 두손을 내저으며 절대로 안된다고,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며 발목이라도 잡는다면 그땐 어떻게 할것인가? 송환신청을 한 날 그는 집에 전화를 했었다. 《그럴줄 알았당께. 고진감래라는 말대로 고생, 고생하던 오빠가 북에 간다는기 기쁘긴 하지만 늙은 나이에 생면부지에 가서 살걸 생각하믄 걱정도 되는거라. 일점혈육 없는데서 어떻게 살것이여?》 광희의 말이였다. 혼자 몸으로 일에만 시달리다나니 이젠 남잔지 녀잔지 분간하기도 어려웠거니와 그런 외모처럼 속도 잔근심따위는 모르는 사내같이 돼버린 동생이였다. 조카 문수의 립장은 한결 적극적이였다. 《축하합니다. 난 혹시 삼촌이 송환신청을 주저하지 않을가 하고 걱정했댔는데 역시… 삼촌은 가야 해요. 뭣때매 산에서, 감옥에서 그 숱한 고생을 했나 말입니다. 가도 온 세상이 보란듯이 떳떳이 가야 해요.》 그런 문수가 고마왔다. 서른이 넘어 장가를 들었으나 다행히도 처가 여간 알뜰하고 이악한 녀자가 아니여서 고서점과 함께 차려놓은 페지수집상으로 근근히 연명해가는 집안이였다. 사우디로 이민을 간 광진이한테서도 가끔씩 편지와 함께 얼마간의 송금을 보내오군 했지만 그래도 일가를 버티고있는 기둥은 문수부부였다. 광이는 어머니앞에서 해야 할말들을 되뇌여보았다. 《어머니! 평생 효도 한번 드리지 못하고 고생만 시켜온 이 아들이 이번에도 어머니를 괴롭히는가 봅니다.》 사실 따져보면 60평생 단 한번도 어머니의 말을 제대로 들은적이 없는 자기였다. 어릴 때에는 너무 착하고 고지식해서 속을 태웠고 빨찌산시절이나 감옥살이 할 때에는 또 버려서는 안될 지조로 하여 어머니의 애간장을 말리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희애에게 혼인신고서를 쥐여주며 감옥에 찾아오게 했던 일이며 그처럼 손자를 안아보는게 소원이라며 장가부터 가라던 간절한 당부가 되새겨지자 과연 세상에 자기처럼 불효막심한 자식이 어디 있을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때문에 한생을 고생과 눈물로만 보내신 어머니를 옆에서 끝까지 돌봐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이 아들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전 제가 가는 이 길이 어머니의 부끄럼 없는 아들로 사는 길이고 통일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잇는 길이며 더우기는 태양을 받드는 혁명전사의 응당한 본분이라는것만은 명심하고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아들의 마음을 리해하시고 여생이나마…》 저절로 목이 메여올랐다. 다른 동지들의 송환은 헤여졌던 가족을 만나는것으로 되지만 자기만은 새로운 리산가족으로 되여야 한다는 서글픈 사실이 새삼스레 분렬된 조국의 비극을 가슴에 사무치게 했다. 언제면 한쪽의 상봉이 다른쪽의 리별로 되는 일이 없이 자유로이 오가며 화목하게 살수 있을것인가! 하지만 이젠 그날도 멀지 않았다. 휘황한 통일의 려명이, 찬란한 통일의 서광이 밝아오고있는것이 아닌가! 바로 그때 광이를 찾아온 사람이 승옥이였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을 오로지 통일을 위한 투쟁에 바칠 불같은 각오에 충만돼있는 그는 출옥해서부터 줄곧 《통일맞이녀성회》부산지구 상임간사로 일하고있었다. 서울에 올 때마다 광이에게 들려 그동안 있은 일들을 털어놓기도 하고 사업상 방조를 청하기도 했는데 그의 부탁으로 부산이며 동래에 내려가 강연을 한적도 있었다. 머리는 백설같은 은발이였으나 마음은 아직도 젊은이 못지 않았다. 《오던 길에 먼저 삼진씨의 집에 들렸댔어요.》 언제나 그는 광이를 빨찌산시절의 가명으로 부르군 했다. 《우리 집에요?》 《년로하신 어머니가 혹시 송환되는 아들을 두고 상심하시지나 않을가 해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마음놓으실수 있게 차근차근 말씀도 드리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삼진씨를 대신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산에서 싸울 때부터 우리야 한식구가 아니였어요. 희애와 함께 인석씨도 같이 갔댔어요.》 광이는 저절로 코마루가 저려들었다. 얼마나 고마운 승옥인가. 출옥할 때에는 아직 감옥에 있는 자기를 대신하여 어머니를 찾아가 위로했던 그가 오늘은 또 북으로 가는 자기를 두고 걱정할가봐 어머니를 찾아간것이 아닌가! 한평생 남편도 아이도 없이 외롭게 살면서 그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을 깡그리 동지들과 통일운동에 바치고있는 승옥이! 정녕 이런 동지가 있어 자기가 있고 이런 사랑이 있어 자기가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가슴이 달아올랐다. 또 희애부부는 어떤가. 사실 그들을 마주할 면목조차 없는 자기였다. 감옥에 있을 때 벌써 《며느리》가 되여 어머니를 위해준 희애라면 그런 희애와 함께 그후에도 물심량면으로 식구들을 도와준 인석이였다. 그런 그들을 대할 때마다 광이는 옹색하기도 한 한편 어색한 감정도 피할길이 없었는데 옹색한것은 갚을길 없는 그들의 다심한 인정때문이였고 어색한것은 또 바로 자기들사이에 놓여있는 보이지 않는 간격을 아직도 서로가 완전히 넘어서지 못하고있다는 의식때문이였다. 확실히 련정이 얽혀있는 리성문제는 흐르는 세월이나 덧쌓이는 나이도 그것을 초월하지 못하는듯 했다. 한때 그토록 자기를 사랑했던 희애와 함께 살고있는 인석이라는 느낌은 그가 그처럼 자기를 위해주는데도 또 이젠 그토록 아득히 지나간 옛일임에도 불구하고 자못 어색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들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무언이였을뿐더러 오히려 자기들은 태여날 때부터 서로가 부부로 정해진듯이 행동하고있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그런 사이로 만들었는지 궁금했으나 두사람의 사정을 알고있는 승옥이마저 침묵을 지키는것으로 하여 광이는 자기가 알아서는 안될 어떤 비밀이 있는것으로 여기고 더 묻기를 단념했다. 그렇지만 한자리에 같이있을 때면 마치 주위에 폭발물이 있어 함부로 움직이기를 조심하게 되는 사람의 심정이 아닐수 없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러 녹이 쓸었다고 해도 폭발물은 어디까지나 폭발물이였다. 《우리가 같이 온건 삼진씨를 축하하기 위해서예요. 신문에 난 송환신청자명단에 삼진씨 이름이 있는걸 보고는 당장 올라가 축하연부터 하자고 얼마나 들볶아대는지. 인석씨 말이예요. 일단 마음이 동하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승옥이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오징어나 땅콩, 군밤따위를 벌려놓고있는 손수레군과 툭툭 타개진 국광을 좌판에 천원어치씩 쌓아놓은 로점아낙네들앞을 지나 번화가쪽으로 나섰다. 네거리에 솟아있는 인구탑은 순간도 멈추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 가면서 전광글자로 증가되는 인구수자를 알려주고있었다. 첫머리의 4,236만 얼마라는것은 고정되여있었으나 마지막수자만은 몇걸음 걸을 사이에도 피뜩피뜩 바꿔지군 했다. (저렇게도 아이들을 낳아대는가? 아이구, 또 하나… 하지만 나나 승옥누님은 저 수자속에 자기 하나밖에 없는 외토리가 아닌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어쩐지 서글픈 생각에 젖어 다시 인구탑을 바라보는데 그밑에 새겨진 구호가 안겨왔다.
아직 퇴근시간전이여서 그런지 도로는 조용한편이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말해야 할가 보군요.》 말없이 걸음만 옮기던 승옥이가 문득 생각난듯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부부에 대한 사연을 말이예요. 그들이 어떻게 서로 알게 됐고 또 어떻게 결합됐는가 하는거지요. 어떤 일이 있어도 삼진씨에게만은 그걸 비밀로 붙여달라는 희애의 부탁도 있고 또 내 생각에도 그래야만 되겠기에 말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아직은 아는척 하지 마세요. 특히 희애와 첫 남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이예요. 그건 희애에 대한 본의 아닌 모욕으로 될수 있으니까요.》 《첫 남자라니요?》 광이는 의아한 눈길로 승옥이를 쳐다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인석씨는 누님이 소개한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긴 해도 내가 그를 소개하기 전에 희애에겐 다른 남자가 있었어요,》 광이는 흠칫했다. 다른 남자가 있었다니? 놀라왔다. 아니, 알아서는 안될 어떤 비밀을 알게 된다는 막연한 긴장감이 마음을 사로잡는것이였다. 택시정류소에 이르자 손님들을 부르는 호객소리가 귀따갑게 들려왔다. 《신촌, 삼천원이요, 삼천원.》 《화곡동, 오천원, 오천원.》 《그냥 걸어가면서 얘기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승옥이의 권고에 광이는 고개를 끄덕이였지만 마음은 마냥 조급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실 희애에게는 인석이를 알기 전에 한 남자가 있었다. 희애의 미모에 홀딱 반해버린 광고회사의 영업과장이였다. 그만하면 학식도 재산도 남 못지 않았으나 그만 방정치 못한 처의 행실로 하여 온 세상녀자는 다 마귀고 요물이라며 불우한 자기 운명을 한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였다. 그러나 희애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희애의 아릿다운 모습과 함께 아직 미혼이라는 점, 특히 10년가까이 수도원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남다른 호감을 품게 했던것이다. 한번 리혼한 사람 특히 녀자의 배신으로 불행에 빠진 사람은 상대에 대한 의심을 앞세우며 이모저모로 따져보는 법이지만 또 그런 사람일수록 일단 믿어버린 대상에 대해서는 그만치 폭발적인 감정을 품기마련인것이다. 희애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남자가 자기 주위에 있다는걸 알지조차 못했다. 감옥에 있는 광이에게 혼인신고서를 가지고갔다가 그냥 돌아온 후여서 생각은 오직 어떻게 하면 광이를 돕겠는가 하는것뿐이였다. 10년 나마 기다려온 자기를 외면한 광이를 저주하며 당신도 사람이냐고 절규하고 돌아선 그였으나 헤여진 순간부터의 생각은 앞으로도 기약할수 없는 세월을 감옥에 묶여있어야 하고 그래서 필경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에게 마지막으로나마 있는 성의를 다하자는것이였다. 그것만이 자기가 할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며 의무라고 간주했던것이다. 더우기 그동안 자기를 한식구처럼 대해준 광이네 집사람들을 위해서도 뭔가 정성을 바치고싶었고 특히는 해외로 이민을 가지 못해 아글타글하고있는 불쌍한 광진이에게도 보탬을 주고싶었다. 그러자니 돈이 필요했다. 그 돈을 위해서는 무엇도 주저하지 않을 결심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과장이였던것이다. 과장은 희애를 만날 때마다 자기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믿을수 없는 세상과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너무도 쉽사리 믿어버린탓에 오욕과 고뇌에 시달리게 된 자기의 과거사를 털어놓고는 그렇지만 이젠 마음을 의지하고 살아갈 보금자리를 찾았으니 서로 한쌍의 원앙새가 되여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마음이 정해지면 언제든지 자기를 찾아오라고. 마침내 희애는 그의 집으로 갔다. 감정으로가 아니라 필요로 해서 가는 걸음이여서 떳떳치 못했으나 그런 망설임에 비하면 광이를 위해주고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던것이다. 《찾아와주어 고맙소. 난 당신을 알게 되면서 바로 당신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그런 녀성이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소.》 흥분이 어린 과장의 목소리였다. 《솔직히 말하겠어요.》 고개를 든 희애는 그를 마주보았다. 《전 결코 당신이 바라는 그런 녀자가 못돼요. 그렇다는걸 알아주세요. 그래도 당신이 저같은 녀자가 요구된다면…》 어줍게 속삭이던 말꼬리가 입안으로 잦아들었다. 《실은 저에게는 요구되는게 있어요. 그래서 왔어요. 그건… 얼마간의 돈이예요.》 대뜸 눈살을 좁히고 희애를 여겨보던 과장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돈이라니?》 희애는 자기 말이 상대를 괴롭히리라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숨기기에는 너무도 아름찬 감정이여서 광이와의 관계를 털어놓았다. 산에서 같이 싸울 때의 일이며 감옥에서 전향했던 일, 그후에야 잘못을 깨닫게 된 자기가 10년동안이나 수도원에서 속죄를 하다가 광이의 만기때가 되여 다시 혼인선고서를 가지고 감옥에 갔던 일, 하지만 광이가 전향을 거부한탓으로 모든것을 단념하지 않을수 없게 된 자기의 처지,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와 가족들을 위해 주고싶어 돈이 요구된다는것까지. 대리석으로 쪼아박은 조각상처럼 과장은 한자리에 굳어져있기만 했다. 거리의 네온불빛으로 하여 벌겋게 달아올랐던 그의 얼굴이 파랗게 창백해지는가 하면 또 하얗게 얼어들기도 했다. 《그러니 당신은…》 어느덧 과장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또 돈을 위해서 나를 찾아왔다는거요?》 그 어떤 모욕도 각오한 희애였다. 《그렇지만 당신이 절… 전 이미 모든걸…》 《아니, 난 당신의 마음까지 가져야겠단 말이요. 몸과 함께 마음까지 가질 때라야 진정한 부부라는걸 난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이란 말이요.》 그러나 그는 얼른 희애의 두손을 움켜잡았다. 《그렇지만 알겠소. 당신의 요구대로 합시다. 하나 한가지만 약속해주오. 부탁하건대 다시는 그 사람에 대한 말은 하지 않겠다는걸 말이요. 그럼 나도 리해하겠소. 아니 리해하려고 노력하겠단 말이요. 아무래도 다시 보지도 만나지도 못할 사람이 아니요.》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이라는데 방점을 찍는것으로 보아 거기에 희애의 과거에 대한 용서는 물론 자기 앞날에 대한 간절한 기대도 어려있는것 같았다. 금시 희애의 두눈이 꼿꼿해졌다. 어떻게 빈말로나마 광이를 잊겠다고 한단 말인가! 설사 그를 위한 돈이라고 해도 그를 위한 마음만은 버릴수 없었다. 만약 그런다면 자기야말로 더는 용서받지 못할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존재가 아닐수 없었다. 《그럴순 없어요. 저의 마음은 언제나 그이한테 가있어요. 제가 버린 그 지조를 그는 지금도 목숨으로 지키고있기에 잊을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거예요.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아마 죽을 때까지…》 세상에는 자기의 량심을 숨기지 못하는탓에 그 순결한 감정을 매도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자리를 차고 일어난 희애의 행동이 바로 그것이였다. 《뭐라구? 안돼, 못 가!》 뭐가 안된다는것인지 따져볼 겨를도 없었다.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희애는 자기가 어떻게 쏘파의 한쪽 구석에 구겨박혔는지 알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쏟아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웠고 치마자락이 헤쳐지면서 허벅다리가 드러났으나 그것조차 알지 못했다. 희애를 노려보는 남자의 두눈에는 불이 펄펄 일고있었다. 밤하늘에 타오르는 화광과도 같이 무시무시했다. 그처럼 순진하리라 여겼던 희애의 가슴에 그토록 뿌리깊은 사랑이 새겨져있다니! 분하고 괘씸했다. 오로지 깨끗한 사랑만을 바라는 그였으나 그 순결한 사랑은 감옥에서 나오지도 못할 수인에게만 쏟고있는것이 아닌가! 겉으로나마 그 진정을 감추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숨기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를 단념하자니 이젠 너무도 불같은 욕망이 가슴속에 끓어번지고있었다. 바로 그런 모순된 사실이 더 욕망을 키질하는듯 했다. 절망과 욕망, 도저히 넘어서지 못할 그 엄청난 단애를 오락가락하는 리성과 감정… 주체할길 없는 충동에 못이겨 그는 무작정 희애의 멱살을 흔들어댔다. 나무가지를 흔들어대자 열매가 떨어지듯이 희애의 브라우스단추들이 후두둑하고 떨어져나갔다. 대뜸 헤쳐진 옷섶사이로 드러난 하얀 목살과 함께 풍만하게 솟아오른 젖무덤. 순간 그는 돌연 다른 사람으로 변한듯 했다. 희애에 대한 사무친 증오가 그에 대한 횡포한 사랑으로, 그 사랑이 다시 참을길 없는 애욕으로 끓어올라 무시무시한 남자의 본능으로 타번지기 시작했던것이다. 그 본능은 곧 미칠듯 한 광기로 폭발되면서 그를 야수로 변신케 했다. 야수의 이발에 뜯기우는 연약한 짐승처럼 포악스런 남자의 광란에 희애의 옷들이 찢어져나갔다. 그러나 갑자기 희애가 무서우리만치 단호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흩어진 머리카락이며 헤쳐진 브라우스앞섶을 여미고난 그는 과장을 쏘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쪼아박듯이 말했다. 《내가 당신의 돈을 가지려는것이 잘못이였다면 당신이 내 마음을 가지려는건 더 큰 오산이라는걸 알아두세요. 안돼요. 안되구 말구요.》 그리고는 저로서도 알수 없는 그 어떤 분노와 절망과 자기에 대한 비탄의 감정이 일시에 파도처럼 밀려와 얼른 두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희애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것을 승옥이가 안것은 얼마후였다. 그동안 지리산에 가있었던것이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여러구의 빨찌산시체가 발굴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렬사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또 죄를 지었나 봐요.》 초점없는 눈길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는듯 한 희애의 모습에 승옥이는 가슴이 찢어지는듯 했다. 《이번에는 삼진씨의 깨끗한 마음을 몇푼의 돈으로 얼룩 지으려 했으니까요. 어쩌면 나의 자그마한 성의마저도 삼진씨에겐 괴로움으로만 덧씌워지는걸가요. 이게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운명일가요? 아니면 그 운명이 주는 가혹한 징벌일가요?》 승옥이는 그 사실이 너무도 기가 막혀 지리산에 같이 갔던 인석이에게 털어놓았다. 신학대학 교수로 일하는 인석은 독실한 천주교신자일뿐아니라 《민가협》의 핵심역원이기도 했다. 장대한 기골이며 시원시원한 성격은 성직자라기보다 억센 근육을 자랑하는 체육선수같기만 했다. 지리산렬사들을 확인한 다음 그 자리에 추모비까지 세울 계획으로 땅주인과 교섭했으나 한사코 주인이 땅값부터 내라고 야질거리자 대뜸 주머니에서 소절수를 꺼내주고는 결코 이 돈을 땅값으로 여기지 말라, 렬사들의 고귀한 넋이 당신 같은 사람한테 다시 우롱당할가봐 그런다고 소리쳤던 그였다. 《그 녀자를 한번 만나볼수 없을가요?》 희애에 대한 전후사를 듣고난 인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때에야 승옥은 그가 오직 성직에만 전념하기를 각오하고 일생 독신으로 살것을 결심한 사람이라는것이 상기되였다. 나이는 서른다섯, 희애보다 세살 아래였다. 《아니, 그럴것없이 이제 당장 가 만나봅시다.》 일단 결심만 하면 행동에는 단호한 그였다. 그길로 두사람은 희애가 있는 서면하숙집으로 갔다. 인석이를 소개할 때까지도 희애는 승옥이가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데리고온 신부로 알았는지 입가에 서글픈 미소를 띠웠다. 《저를 위해주시는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신부님이 기도해주셔도 소용이 없어요. 저에겐 이젠 남은것이라군 아무것도 없어요. 더 잃을것도 더 절망할것도 또 더 흘릴 눈물도…》 《아닙니다. 그렇게 불같은 사랑을 지닌분의 심장이 그렇게 나약해질수 없습니다. 희애씨가 당하는 고통은 희애씨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모두의 고통이고 모두가 나누어져야 할 고통입니다.》 인석의 억양은 위로가 아니라 명령이라도 하는듯 했다. 《너무 괴로와하지 마십시오. 지금 희애씨의 처지에서는 흩어진 자기를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자학은 금물이예요. 자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한동안 희애를 지켜보던 인석은 왜서인지 퍼그나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혹시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다시 찾아와도 괜찮겠습니까?》 희애는 그 말을 어떻게 리해했으면 좋을지 몰라 승옥이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하도록 해. 대학일도 보시지만 <민가협>에서 우리와 같은 일을 하시는분이야.》 이렇게 얼버무린 승옥이였으나 그 역시 인석의 마지막말만은 되새겨보지 않을수 없었다. 며칠후였다. 또다시 찾아온 인석이가 가쁜숨을 내뿜었다. 《누님이 절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전 어떤 일이 있어도 희애씨와 함께 살 결심인데 그가 절 받아주지 않는군요.》 《살다니요?》 승옥은 아연해졌다. 《사실 전 10년동안이나 성직자로서 순결과 복종과 신빈을 외워왔고 교단에서도 그렇게 설교해왔습니다. 하지만 희애씨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그의 가슴속에 새겨진 모진 상처는 도저히 설교나 미사로는 메꿀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녀자를 만난 순간부터 전 그의 고통을 나누어가지자고, 그것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자고 결심했지요. 수십년간 감옥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주려는 녀자이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여주고싶고 또 그런 깨끗한 마음이 동정받기는커녕 유린당해야 하는 현실이 저주롭기에 그를 돕겠다는것입니다. 병든 령혼은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뿐 아니라 삶의 진실을 포착해야 한단 말입니다. 난 그걸 바로 나에게 내린 신의 계시로 여깁니다.》 그의 말 한마디한마디가 승옥이에게는 흉벽을 두드리는 뢰성처럼 안겨왔다. 세상에 이런 사랑도 있을가 하는 생각, 한남자의 가슴에 이처럼 크고 뜨거운 사랑이 간직될수 있을가 하는 믿어지지 않는 사실로 하여 놀라웁기만 했다. 《그럼 대학일은 어떻게 하시고요?》 《벌써 속계에 돌아간다는 환속진술서를 학장한테 제출했습니다.》 그의 눈은 자기 결심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것을 확신하는 사람의 눈이였다. 그때부터 두사람의 교제가 시작되였던것이다…
《벌써 25년전 일이예요.》 덕수궁 담을 끼고 걷던 그들은 어느덧 광화문네거리에 이르렀다. 맞은편인 신문로쪽을 얼핏 돌아보고난 승옥이는 눈가에 웃음을 담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곡절도 있었어요. 왜 그렇지 않겠어요.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의 갑작스런 만남인데. 그런데 놀라운건 처음엔 서로 다른 나무를 접해놓은것 같던 두사람이 해가 갈수록 점점 푸르싱싱한 거목으로 자라나는것이였어요. 그때 내가 그들을 보면서 느낀게 뭔지 아세요? 서로 다른 두 나무를 하나로 튼튼하게 접목시킨건 바로 삼진씨라는것이예요. 그 과장이라는 사람은 삼진씨때문에 희애를 버렸지만 인석씨는 바로 삼진씨를 알게 되면서 희애를 더 리해하고 사랑하게 됐으니까요.》 (?!) 광이는 리해할수가 없었다. 다만 그 사실을 왜 여태껏 비밀로 붙여왔는가 하는것이 짐작되면서 그토록 가슴저린 사연이 있는줄은 모르고있었던 자기가 죄스럽기만 했다. 과연 무슨 말로 희애를 위로하며 인석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단 말인가! 그처럼 모진 피해를 입은 희애에게 안됐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도 가혹한 인사가 아닐수 없고 그렇다고 인석이에게 그런 처지에 있는 희애를 리해해줘 고맙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또 너무나도 서글픈 감사가 아닐수 없으리라. 서점들이 빼곡이 늘어서있고 문방구들과 전자제품상점들이 줄지어있는 거리에 들어선 승옥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곧 한 곳을 가리켜보였다. 《저기예요.》 광이의 눈에는 《평양옥》이라는 간판이 달린 겉보기에도 꽤 아담한 음식점이 안겨왔다. 5
《이 <평양옥>이 어떻습니까? 우린 선생님을 한발 먼저 평양에 모시고싶어 이 집을 택했습니다.》 여느때처럼 호방하고 활달한 인석이였으나 오늘은 어쩐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설교하던 그가 희애의 고뇌를 알고는 진정한 사랑으로 그 아픔을 덜어주고 자기 역시 새롭게 갱신되지 않았는가! 사실 광이는 신이나 교리에 대한 표상을 세상풍파를 견디여내지 못한 사람들의 은신처에 불과하다고 여기고있었다. 많은 경우 신앙이란 삶에 대한 의욕, 미래에 대한 확신, 자기 힘에 대한 자신심이 결여되고 용기와 환희를 잃어버린 넋의 환영에 지나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석의 경우에는 달랐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희애를 위해준 그 마음이 고맙고 그 각오가 미더웠으며 그래서 그의 름름한 모습이 더없이 돋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옆에 서있는 희애는 마주보기조차 어려웠다. 얼마나 많은것을 잃고 빼앗기고 희생까지 당했는가! 오늘에야 알게 된 그 가슴저린 과거사를 상기할수록 자기가 죄스러웠고 그럴수록 또 그런 수모와 설음을 혼자 가슴에 안고 몸부림쳤을 그가 눈물이 나도록 애처롭기만 했다. 그런 광이의 마음을 알리 없는 희애는 고개를 숙인채 미소를 머금고있는데 그 미소는 광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 안다는 이를테면 흔히 녀자들이 다정한 사람을 대할 때 짓는 미소였다. 그 모습이 더욱 광이의 심장을 비틀어댔다. 오늘하루는 꼬박 이 《평양옥》에서 새울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한 인석은 송별회를 의의있게 장식하기 위해 북남수뇌분들의 상봉장면이며 비전향장기수들의 생활을 수록한 록화물감상과 함께 여러사람들이 광이에게 보내는 축하편지의 랑독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보면 오늘의 송별회를 위해 미리부터 왼심을 써온 인석이가 분명했다. 아니나다를가 방에 들어서니 벽에는 벌써 《환송》이라고 써붙인 큼직한 두 글자가 향기 그윽한 장미꽃속에 묻혀있었고 그 량옆에는 똑같은 크기의 두개의 족자가 드리워져있었다. 하나는 달마가 갈대로 엮은 떼를 타고 강을 건느는 《절로도강도》였고 다른 하나는 《질풍지경초》라는 고사성구가 힘찬 한서체로 새겨져있었다. 바람이 사나울 때에야 곧은 풀을 안다는 뜻이였다. 《저희들의 소박한 정성이니 받아주세요.》 희애의 말이였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며 눈가에 새겨진 주름들이 오늘따라 눈뿌리를 아프게 찔렀다. 《이걸 볼 때마다 이 뜻으로 살려는 우리의 마음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고른것이니 성의로 알고 받아주세요.》 광이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뜻으로 안겨왔다. 포교를 위해 파도를 헤치는 달마의 모습이 현실에서 고통을 겪는 희애의 고뇌를 알고 속세로 돌아온 인석이처럼 여겨지는가 하면 모진 바람에 짓눌려 몇번이나 꺾어질듯 휘여들었으나 끝까지 버티고 일어선 희애의 일생이 성구의 의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뜻대로 살겠다고 했지만 거기에는 벌써 그들의 남다른 인생이 뚜렷이 각인돼있었다. 《감사합니다. 선물에 담긴 의미를 잊지 않겠어요.》 광이는 자연스럽지 못한 자기의 인사가 저로서도 불만스러웠다. 언제나 이들을 마주할 때면 저도 모르게 굳어지군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마지막까지 그들과의 간격은 해소될것 같지 않았다. 모두가 식탁주위에 둘러앉자 옥색치마저고리를 우아하게 차려입은 중년녀인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평양옥》의 마담이였다. 《송환되시는 선생님을 <평양옥>에 모시여 저희들은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평양으로 가시는분들, 또 평양에서 오시는분들을 모시자고 새로 개업한 통일음식점입니다. 평양을 비롯한 이북을 소개한 책자들과 이북에서 류행되고있는 가요테프들 그리고 비록 서울산이긴 하지만 <평양처녀>들까지 있으니 마음을 풀고 기꺼이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모두에게 골고루 뿌리는 마담의 미소가 신호이기라도 한듯 각가지 문양고운 치마저고리를 입은 《평양처녀》들이 젖은 수건과 함께 음식들을 날라왔다. 상우에 놓이는 음식들도 하나같이 숭어회며 메밀묵, 녹두지짐 등 다채로운 평양료리들이였고 술 역시 네모난 각병에 담긴 《평양술》이였다. 광이는 자기가 정말 평양에 와있지 않나 하는 착각에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였다. 이 모든 광경을 무대뒤에서 지켜보는 감독처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인석은 이젠 자기가 나서야 할 차례라는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른기침을 기었다. 《에, 우리는 오늘 북으로 송환되시는 선생님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그의 어조는 마치 이제까지는 서론에 불과하고 이제부터야말로 본론이라는듯 했는데 교단에서 미사를 하던 사람이여서 그런지 자못 숭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보매 그는 오늘모임은 더없이 정중하고 엄숙해야 할뿐더러 그래서 일생동안 모두의 기억속에 영원히 간직돼있어야 한다고 확신해마지 않는것 같았다. 《그럼 먼저 우리를 대표해서 승옥누님의 송별사가 있겠습니다.》 무슨 군중집회라도 사회하는듯 한 어마어마한 소개에 미소를 머금던 승옥이였으나 곧 인석이의 의도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전 우리모두의 마음을 담아 북으로 송환되는 삼진씨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우린 삼진씨와 헤여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헤여진다는 석별의 정보다 몇배 더 큰 기쁨과 자랑에 넘쳐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영예로운 칭호, 비전향장기수, 통일애국투사의 영광을 지닌 삼진씨가 우리의 둘도 없는 동지이기때문이고 또 이젠 영원한 리별이 아니라 멀지 않아 통일이 약속된 우리의 북쪽땅으로 가기때문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그 험한 산에서 또 싸늘한 감방에서, 그렇지만 얼마나 귀중한 진리를 이 세상에 새겨놓았습니까. 내가 이 자리에서 하고싶은 말은 삼진씨는 승리자라는겁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 모질고도 간고한 싸움에서 이겼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인간의 신념을 묵살하려는 탄압에 맞서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주었기때문에 승리자라는거예요. 반통일세력의 억압에도 통일의 의지를 끝까지 견지함으로써 민족운동의 정통성을 확보해냈기때문에 승리자라는겁니다. 그런 삼진씨를 보면서 우리는 승리는 역시 끝까지 정의를 위해 지조와 의리를 량심으로 지켜 싸운 사람에게만 차례진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확신하게 됩니다. 자 우리의 축하를 받아주세요.》 박수소리에 묻혀 광이의 잔에 술을 붓던 승옥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부디 건강하세요.》 광이는 명치끝이 찌르르 저려들었다. 자기가 승리자라면 그것은 자기를 변함없이 지켜주고 이끌어준 태양의 빛이 있었기때문이고 그와 함께 옆에서 자기를 살펴주고 아껴준 이들이 있었기때문이 아닌가! 사실 자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것을 바친 이들인가? 투쟁이 얼마나 준엄한가를 가르쳐준 승옥이라면 희애는 자신의 뼈저린 체험을 통해 량심의 귀중함을 되새기게 해주었고 인석이는 또 참다운 사랑이 어떤것인가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두서를 잡을수 없었으나 광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먼저 동지들에게…》 그는 자기 목소리 같지 않은 소리로 띄염띄염 말을 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부터 드려야겠습니다. 빨찌산시절은 물론 30년이 넘는 옥살이기간 얼마나 많은 고무와 사랑과 눈물로 나를 위해주었습니까. 아무리 비참한 인생이라 해도 돌이켜보면 그 아픔과 슬픔의 가시덤불속에는 기쁨도 있기마련인데 나의 경우에는 그건 바로 동지들입니다. 동지들이 나의 기쁨이였고 희망이였고 인생의 전부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늘까지 견딜수 있은것도 그래서 오늘의 영광을 받아안을수 있은것도 다 동지들의 사랑이 있었기때문입니다.》 광이는 목이 메여 말을 이을수 없었다. 《선생님!》 인석이가 얼른 광이쪽으로 돌아앉았다. 그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광이를 위한것으로 되여야 할 환송회가 자칫하다가는 방향을 잃고 탈선될수 있다는것을 느끼고 제때에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태도였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것을 주셨단 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걸 가르쳐주셨으니까요.》 하지만 이 한마디로는 충분한 설명이 못된다고 느꼈는지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된바에는 아무래도 자기의 심정을 밝히지 않을수 없다는 태도였다. 《선생님이 우리때문에 괴로와하시는것 같기에 또 혹시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을 안고 북으로 가실가봐 걱정이 돼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는 옆에 있는 희애를 얼핏 보았는데 희애도 동감이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젠 숨길것도 없습니다. 사실 인생을 다 산 나이에 이런 말 한다는것이 우습기도 합니다만 인생이 뭔가 하는걸 아는건 역시 인생이 끝나갈 때라는것만은 맞는것 같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중한것을 주셨는가 하는걸 말씀드리지요. 제가 처음 이 사람과 살자고 결심한 동기는 순수한 동정에서였습니다. 순결을 부르짖으며 이 사람을 우롱한 과장에 대한 분노와 함께 비참한 처지에 있는 희애양을 구원해야겠다는 생각이였지요. 그때 전 이건 바로 하느님이 나에게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주시는거다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걸 사랑이라고는 할수 없었지요. 전 이 사람과 살게 되면서 점차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였습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위해 왜 일생을 바치는지 또 어째서 이 사람이 그런 선생을 배반한 자기를 그처럼 타매하는지… 제가 처음으로 느낀건 의혹과 놀라움이였습니다. 세상에는 운명의 십자가를 스스로 걸머지는 사람도 있구나, 그러나 그 놀라움은 점차 공감으로 변했습니다. 선생님이 바라는것이야말로 가장 순결한 사람의 응당한 요구가 아닌가 하는것이였지요. 그때에야 전 다소나마 선생님의 고상한 넋과 함께 이 사람의 진정을 리해할수 있었고 그 진정이 이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변화시켰습니다. 말하자면 사랑이였지요. 제가 그때 느낀건 참된 사랑은 결코 몸이나 마음에 있는것이 아니라 서로의 뜻이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피여난다는것이였습니다. 다시말해 선생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이 사람의 죄책이 저로 하여금 이 사람에 대한 새로운 감정과 함께 바로 저자신의 인생좌표도 다시 정하게 했던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태여나는 과정이였단 말입니다. 결코 제가 성직자였기때문에 이런 말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은 오직 선생님에 대한 존경, 선생님의 인생관에 대한 매혹때문이였습니다.》 또박또박 찍듯이 하는 그의 말에서 광이는 그자신이 겪은 고뇌와 번민 그리고 그 과정에 찾은 귀중한 진리를 깨달을수 있었고 한 인간의 인생전환을 뚜렷이 절감할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는 자기에 대한 죄책과 회오에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런 말을 들을수록 나는 괴롭기만 합니다. 동지들의 그런 진정에 사소한 보답은커녕 평생토록 시름만을 안겨온데다가 당장 헤여지게 된 오늘까지도 가슴에 맺힌 그 모진 상처를 한번 살틀히 쓸어주지 못했으니… 사실 내가 고생을 했다면 그건 이 세상의 악법이 준 단순한 고생이지만 동지들이 겪은 고생이야 나때문에 얻은 마음의 고생이 아니였습니까. 내가 제일 가슴이 아픈건 <죄>많은 나때문에 동지들이 한생 너무도 곡절이 많았고 그래서 남달리 불행했다는것입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불행이라니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인석이가 정색을 했다. 심각한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는 모습은 당장 어떤 중대한 결심을 각오한 사람의 표정이였다. 《그럼 좋습니다. 편지를 하나 공개하지요. 사실 이 편지는 선생님이 후에 보시라고 조용히 드릴가 했는데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공개해야 할가 봅니다.》 분명 누군가 자기의 송환을 축하하여 보낸 편지라고 여긴 광이는 덤덤한 눈길로 편지를 꺼내드는 인석이를 여겨보았다. 《이 편지는…》 자기 말의 중요성을 부여하듯 인석이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뒤를 이었다. 《지금 서울구치소에서 복역중인 김기태씨가 보낸것입니다.》 (기태가? 감옥에서?) 광이는 흠칫하지 않을수 없었다. 부동산회사 관리인노릇을 하던 그가 사장로파를 칼로 찌르고 재산을 털어가지고 어디론가로 도망갔다는 사실은 알고있었으나 그새 체포되여 감옥에 있다는것은 금시초문이였다. 저절로 온몸이 굳어지는듯 했다. 인석이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삼진씨가 북으로 송환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에게 직접 전할 기회가 있을것 같지 않아 희애씨에게 이 글을 씁니다. 이미 먼저 전향을 한데다가 전향한 희애씨에게 잘했다고 했고 감옥에 있는 삼진씨를 찾아가서는 이젠 사람으로 돌아서라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짐승처럼 비참하게 죽어가는가를 지켜보겠다고 했던 내가 이런 글을 쓴다고 비웃지 마시오. 나도 이젠 인생을 살만치 산 사람이고 희로애락을 맛보면서 사람의 한생이 새옹지마라는걸 느낄대로 느낀 사람이요. 난 자기 죄를 변명하지도 않거니와 그 벌을 탓하지도 않소.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고 락이 있으면 화를 당할 때도 있는게 인생이 아니겠소. 그러나 한가지만은 말하고싶은게 있구려. 그것은 바로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정해지는가 하는것이요.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일생에서 가장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때는 반드시 편안한 길도 그옆에 있기마련이라는거요. 그때 그 두 길중 어느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데 어려운 길을 택하면 괴로와도 사람으로 남는것이고 쉬운 길을 택하면 편안해도 짐승으로 되고만다는것이요. 투쟁을 피해 산에서 내린 그 첫걸음이 은연중 나로 하여금 세상이 달라졌다고 보게 하고 그것이 본래의 뜻을 포기해버린 두번째 걸음으로 이어져 인제는 이렇게 영영 다시 솟아날수 없는 구렁텅이에 매장되게 된것이요. 결국 사람은 편안한 길을 위해 한걸음 잘못 디디면 그 후과는 끝이 없는 수렁에 빠지는것처럼 깊이깊이 함몰되고만다는것이요. 나는 쉬운 길이 옳을수 없다는 진리를 편안한 길을 택해 인생의 막바지에까지 굴러떨어진 오늘에 와서야 삼진씨의 한생과 비교해보면서 절감하지 않을수 없소. 누구나 인생에 대해 말할 땐 행복과 결부시키기마련이요. 공자는 인생이 행복을 위해 하늘에서 받은 광명의 편조라고 했고 파라문교도들은 인생이 더 큰 행복에 도달하려는 령혼의 순례라고 했소.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인생이라고 했지. 그러나 삼진씨는 다르오. 그 반대요. 인생은 결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고통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지켜 정해진 길로 마지막까지 가는 그것이라는걸 증명했단 말이요. 그것이 가장 참된 인간의 가장 값비싼 인생이라는걸 보여주었단 말이요. 난 이 엄연한 진리를 이 컴컴한 감방에서 이미 인간이기를 그만둔 일반사의 잡범들과 있으면서 가끔씩 특별사에 있는 <사상범>을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솔직한 심정이라는것을 첨부하지 않을수 없소. 나도 이젠 내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서기는 어려우리라는걸 모르지 않지만 북으로 가는 삼진씨에게 나의 이런 마음이라도 전달됐으면 하는 기대에서 쓰는 글이라는걸 희애씨가 리해해주길 바라오. 부디 잘 가라고, 축하한다고 전해주시오.》 《…》 모두가 숙연한 침묵에 잠기였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했던 짐승이 다시 인간으로 되살아나기 위한 몸부림, 아니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짐승의 마지막울부짖음…) 광이는 감옥에 갇혀있는 기태의 초췌한 모습을 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태씨가 말한것처럼》 승옥이가 생각깊은 어조로 말했다. 《삼진씨는 우리들에게 인생이 무엇이고 행복이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가르쳐주었어요. 그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우린 앞으로도 통일을 위해 더 힘차게, 억세게 살아가겠어요. 우리의 이런 마음을 이북동포들에게도 꼭 전해주세요.》 《…》 또다시 침묵이 깃들었다. 《그럼 이제부턴…》 방안분위기로 봐서 이젠 다음순서로 넘어가야 한다고 여겼는지 인석이가 얼른 두손을 들더니 손벽을 쳤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했던것처럼 마담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섰는데 그의 손에는 통기타가 들려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모임은 일체 인석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로 이미부터 약속이 돼있는것 같았다. 방구석에 놓여있는 걸상을 당겨놓은 마담이 그 풍만한 가슴에서 울려나오는듯 한 저음으로 말했다. 《그럼 평양으로 송환되실 선생님을 위해 노래 한곡 선물하렵니다. 지금 이북에서 류행되는 테마송인데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의미라도 그대로 전달해보겠습니다. 제목은 <심장에 남는 사람>》 이윽고 기타의 경쾌한 전주에 이어 부드러운 녀성저음이 조용히 방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광이는 어쩐지 그 노래가 방금 기태의 편지가 남긴 여운과 함께 자기의 심정, 당장 헤여지게 될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있는것 같았다. 서로 헤여지지만 심장속에 남아있는 사람들,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있을 다정한 사람들… 정녕 어떻게 이들을 잊을수 있단 말인가! 승옥이며 희애며 인석이 그리고 최남규, 조일민이… 어쩐지 가슴이 저릿하게 저려들었다. 그의 눈길은 어느덧 희애에게 가있었다. 고개를 숙인채 조용히, 숨을 죽이고 듣고있는 희애 역시 자기와 똑같은 심정이라는것을 느끼게 되자 기타의 간주가 더욱 가슴에 파고들면서 못 견디게 심금을 울리는것이였다.
잠자코 앉아있던 희애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숨을 고루는듯 하더니 갈린 목소리로 속삭이였다. 《그래요. 삼진씬 저에게 아니 우리모두의 심장속에 영원히… 영원히 남아있을 사람이예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듯 다시 숨을 고루던 희애였으나 가슴속에 이는 충동을 이길수 없었던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한마디 하겠어요. 사실 삼진씨가 이 이남땅에서 한 모든 고생은 다 저때문이라고 할수 있어요. 감옥에서 전향했던 일이며 10년 나마 기다리다가 혼인신고서를 가지고 감옥에 찾아갔던 일,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그건 결코 사랑이 아니였을뿐더러 삼진씨에 대한 가장 가혹한 배반, 모진 고문이 아닐수 없었어요. 전 지금도 그때 삼진씨에게 한 말을 생각하면, 당신도 사람이냐고 했던 말을 돌이킬 때면… 아- 그런 저를 용서할수 있어요? 그러나… 제발 이제라도 용서해주세요.》 두손을 모아쥐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희애의 모습은 정녕 이제라도 자기의 머리우에 장검의 일격이 떨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였다. 《결코 용서받을수 없는 죄인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삼진씨에게 부탁드리고싶은게 있어요. 부탁이라기보다 저의 소원이기도 해요. 그건 삼진씨가 북에 가선 조금이라도 행복해주었으면 하는것이예요. 남에선 저때문에 불행했던 삼진씨이기에 북에 가서는…》 어느덧 그의 목소리는 갈려있었다.
《삼진씨는 행복해야 해요.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해요. 설사 참된 인생은 행복이 아니라 자기 뜻을 지켜 정해진 길을 가는것이라 해도 삼진씨만은 행복해야 해요. 일생 자기의 뜻을 지켜냈고 정해진 길을 따라 마지막까지 걸어온 삼진씨이기에 남달리 행복해야 한다는거예요.》 희애는 마치 누가 자기 말을 막지나 않을가 하고 불안해하는것 같았다. 《그렇지만 걱정이 없지 않아요. 떠나는 삼진씨를 축하해야 할 이 마당에서 이런 말한다고 나무람하지 마세요. 말하지 않으면 제 마음을 숨기는것 같기에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겁니다. 이제 북에 가면 대단한 환영을 받겠지요. 온 나라가 떨쳐나 상상할수도 없는 영광의 단상에 비전향장기수들을, 삼진씨를 올려세울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곧 행복의 전부가 아니지 않겠어요. 아무리 뛰여나게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행복이 저절로 따르는건 아니니까요. 저는 저의 체험을 통해 행복을 어떻게 잃게 되고 또 어떻게 다시 찾게 되는가를 알았어요. 그러나 제가 다시 찾을수 있었던건 그래도 다소나마 젊음이 있었기때문이예요. 하지만 삼진씨는 이젠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예요. 그리고 거기엔 옆에서 각근히 도와줄 혈육도 지기도 없어요. 과연 그런 삼진씨가 어떻게?… 그걸 생각하면…》 어느덧 희애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광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일생을 두고 바라마지 않는 간절한 기원이 어려있는 동시에 그 기원이 이제는 때늦은것이라는 숨길수 없는 비탄도 어려 있었다. 《그래도 저는 두손 모아 빌겠어요. 그처럼 바라던 세상에 가게 되였는데 이제라도 제발… 훌륭한 녀성을 만나… 조금이라도 행복해주기를 빌고 또 빌겠어요. 그러니 부디…》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자 입을 싸쥔 희애는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6
한식경이 가까와오자 유보도는 점차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처녀교양원의 손에 이끌려 꼬리잡이를 한 유치원꼬마들이 어미닭을 좇는 병아리무리처럼 공원쪽으로 밀려가는가 하면 느티나무그늘아래에선 밀짚모자를 눌러쓴 로인들이 장기판을 주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가을이라고 하지만 한낮의 해빛은 아직도 살갗을 따갑게 지지였다. 《선생님이 북에 오셔서 제일 먼저 느낀건 어떤겁니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서라기보다 선생의 얼굴에 어려있는 지난날의 그늘을 말끔히 가셔주고싶었던것이다. 알고싶은것은 없지 않았지만 오늘은 남쪽생활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을 생각이였다. 《제일 먼저 느낀거요?》 그윽한 눈길로 강변을 둘러보던 선생은 곧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야외에 나와 평양의 수려한 풍치를 부감하느라니 새삼스레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나는 모양이였다. 《우스운 말 같지만 어릴 때 본 <교리문답>에서 너는 왜 이 세상에 태여났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였지요. 나는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나라에 가기 위해 이 세상에 태여났다고 하는 대답말입니다.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나야말로 <하느님>을 따라 <하느님나라>에 온 사람이 아닙니까. 젊은이들이 우리를 목마에 태우고 광장에 모인 수만군중의 바다를 헤칠 때 아- 여기가 바로 천당이구나. 내가 드디여 그 천국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였어요. 아버지가 말하던 대로무문이라는 말도 사람은 바른길로 가야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늘의 해빛은 그 무엇으로도 가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였어요. 글쎄 넓을 광자를 쓰던 내 이름이 미칠 광자로 되였다가 마침내는 빛 광자가 되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미칠 광자로부터 빛 광자! 뭔가 번쩍하고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그 한마디 말에 수난많던 선생의 과거와 영광이 집약되여있다는 사실이 나를 못내 흥분시키는것이였다. 남과 북에서의 판이한 인생, 고진감래라기보다 고진광래라고 해야 할 선생의 운명!… 나는 옥경이를 돌아보았다. 가슴에 이는 충동을 그에게 털어놓고싶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는 줄곧 아까부터 한자세로 굳어져있기만 했다. 보매 아직도 선생의 남쪽생활에 대한 여운에 젖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일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것 같았다. 그런 심정이 리해되지 않는건 아니였으나 그래도 이럴 땐 처녀다운 다감한 감정으로 분위기를 맞추어야겠는데 제 생각에만 옴해있는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역시 처녀들이란…) 《그러나 한편으로는 괴롭기도 해요.》 《괴롭다니요? 무엇이 말입니까?》 옥경이의 침묵이 나로 하여금 선생에 대한 정도이상의 관심을 표시하게 했다.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선 아무것도 주지 않고 모든걸 저세상에 가서 줄테니 참고 견디기만 하라는 하느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입만 벌리면 감사하다는 말을 그치지 않는데 나를 새 세상에 불러 재생시켜주시고 이런 만복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해같은 사랑에 어떻게 감사를 드리고 보답을 해야 할지… 사람은 자기가 사랑을 받고있다는것을 느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 말이 자기 본위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사랑에 대한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법인지… 나의 머리속에는 인간세상에 있다는 여러가지 사랑이 떠올랐다. 혈육간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그리고 신자들이 외우는 무사무욕하다는 자기 희생적인 사랑, 그러나 그 모든 사랑을 다 합친것보다 더 크고 뜨거운 장군님의 사랑을 과연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것인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같이 오지 못하고 먼저 간 동지들때문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처럼 아들을 만나게 되였다고 좋아하던 최남규동지며 북으로 들어오다가 피살된 덕구동지, 그들이 오늘 여기에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족들이라도 꼭 만나고싶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싸웠는지 또 가슴에 어떤 소원을 품고 돌아갔는지 알려주고싶어요.》 《선생님!》 그제야 옥경이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분들에 대해서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출판사에는 각도에 파견된 특파기자들이 있으니까 그들에게 부탁하면 가족들의 행처나 안부를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최남규선생은 함북 명천이고 덕구동지는 평북 벽동이라지요? 그다음에 또 어떤 동지들이 있습니까?》 문득 희애에게 꼭 북으로 들어오라고 당부했다는 삼촌이 떠올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생이 만나고싶어하는 사람들을 다 찾아주고싶었던 나는 희애의 삼촌을 찾는것은 바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생에 대한 글을 쓰면 혹시 그 글을 보고 찾아올수도 있지 않을가? 막연하기는 해도 그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산뜻한 운동복을 입은 두 처녀가 앞에서 마주 걸어오고있었다. 창만 있는 운동모자를 쓰고 정구채를 쥐고있는것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정구장으로 가는 길인듯 했다. 무엇이 바쁜지 거의 반달음을 하다싶이 하고있었다. 《너 오늘도 박동무의 전위를 설테야?》 《아니, 관두겠어. 자꾸 욕만 하는거.》 《뒤에서 힘들게 만들어주는데도 앞에서 제때에 따먹지 못하니 그렇지.》 《아무래도 우린 손발이 맞지 않는가봐.》 《손발이 맞으려면 마음부터 맞아야 해. 알아?》 《마음부터? 헹, 그럼 련애를 해야게?》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두 처녀가 참새처럼 포르륵 날아갔다. 청류관 맞은편에 있는 련못주위에서는 한패의 조무래기들이 《낚시질》에 여념이 없었다. 낚시래야 막대기끝에 하얀 명주실을 매놓은것들인데 미끼라도 물려놨는지 저마끔 물속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도시 한복판에 있는 련못이여서 겨울에는 아이들의 스케트장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더 인기를 끄는것은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의 고정된 기념촬영장이라는것이였다. 화목을 상징하는 련꽃들이 만발한 련못에 정각까지 있어서 그런지 신혼부부들은 대체로 여기를 찾군 했는데 여기서 사진을 찍기만 하면 어느 신랑, 신부나 다 부용당에서 백년가약을 맺는 리도령과 춘향이가 되는것이였다. 오늘도 벌써 차에서 내린 한쌍의 신혼부부가 여러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정각으로 오르고있었다. 그들뒤로는 둘러리와 함께 사진사는 물론 록화기를 둘러멘 촬영가까지 따르고있었다. 정각가까이로 가던 우리도 걸음을 늦추며 행복에 넘쳐있는 신혼부부를 지켜보았다. 뭇사람들의 시선에 어딘가 어줍어하면서도 못내 태연한척 하는 신랑이라면 연분홍꼬리치마를 한손으로 살짝 쳐들고있는 신부는 고개 한번 들지 못했다. 《고개를 드시라구요. 첫날 고개를 못 들면 평생 눈물로 산다우다.》 그 말이 효과를 보았는지 고개를 들사 하던 신부였으나 누군가 《든다, 든다.》 하고 소리치자 얼른 다시 고개를 가슴에 파묻었다. 《부끄러워하기나 새나. 부끄러워할건 따로 있시요.》 웃음이 터졌다. 촬영위치를 잡기 위해 이쪽으로 걸어오던 사진사가 무엇때문인지 우리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는것이였다. 우리 세사람, 아니 고선생을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입을 딱 벌리는데 당장 무슨 고함이라도 지를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외에도 그는 나에게로 다가서더니 무슨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입속말로 물었다. 《혹시 옆에 있는분이 비전향장기수선생이 아닙니까? 맞지요? 신문에 난 사진을 보면서 내 이름과 비슷해서 기억해두었는데… 이름이 고… 고광동지! 옳지요? 틀림없지요?》 그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정각으로 뛰여올라갔다. 《뭐, 비전향장기수선생?》 신랑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하나같이 우리쪽을 돌아보았다. 자기가 신랑이라는것도 잊었는지 뿌르르 잰발로 계단을 내려온 그는 무작정 선생의 손목부터 잡았다. 《선생님,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축하합니다.》 고생이 많았다는것과 축하한다는 말이 얼마나 모순돼있는지 그런것은 안중에도 없는상 싶었다. 뒤미처 따라온 신부가 마치 시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리는 며느리처럼 공손히 머리를 숙이였다. 《선생님, 저희들의 인사를 받아주십시오.》 《아니, 이러지들 마세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동무들이 아니예요.》 선생은 어쩔바를 몰라하며 두손을 내저었다. 그러다가 정식으로 신랑신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지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부디 행복의 꽃을 활짝 피우며 백년해로하기를 바랍니다.》 선생의 축하에 신랑은 마치 상관으로부터 감사라도 받는 병사처럼 발뒤꿈치를 딱소리가 나게 붙였다. 《선생님도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꼭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박수가 터져올랐다. 스스럼없는 신랑의 말이였으나 그 한마디가 어쩐지 나의 가슴을 쿡 찌르는것이였다. (그래, 행복해야지. 행복해야 하구말구.) 《선생님, 우린 결혼식날 선생님을 이렇게 만난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여기면서 저희들도 일생을 꼭 선생님처럼 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기념으로 사진 한장 같이 찍어주지 않겠습니까?》 온몸에 군대의 절도와 패기가 그대로 배있는 신랑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신부가 곧 선생옆으로 다가섰다. 결국 신랑신부사이에 선생이 서게 되였다. 《아니, 안됩니다. 첫날인데 부부사이에 내가 끼우다니요?》 《이게 더 좋습니다. 선생님.》 벌쭉하고 웃은 신랑이 선생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래야 우리들중 누구도 감히 <전향>하지 못할게 아닙니까. 그 어떤 시련과 풍파가 있다 해도 말입니다.》 《하하!》 《허허!》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박수로 환영하는데 록화촬영가는 정신없이 그 모습을 화면에 수록하고있었다. 《어쩌면… 신랑, 신부가 오늘은 선생님의 둘러리가 되고말았군요.》 량쪽에 신랑, 신부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 선생을 보면서 옥경이에게 말했다. 《옥경동무, 난 오늘에야 내가 해야 할 일이 뭔가 하는걸 명백히 깨닫게 되는것 같소. 물론 선생에 대한 글을 쓰는것도 중요하지. 그렇지만 선생의 생활부터, 바로 저 옆자리에 세울 대상자부터 찾아야겠다는 결심이요. 그렇지 않소? 선생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아는 우리가 아니고 누가 선생을 도와주겠는가 말이요.》 나를 빤히 바라보던 옥경이가 생각에 잠기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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