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

 

대전감옥 6사는 《사상범》들만 구류하는 류치장이였다. 려수폭동관련자 한사람 그리고 자칭 《1급빨갱이》라고 자처하는 강원식, 거기에 새로 입방한 광이까지 세사람이 한감방에 있었다.

처음 만난다해도 아침기상으로부터 밥먹는것, 변소를 사용하는것까지 모두 한방에서 드러내놓고 하다나니 금시 친숙해졌다. 그러나 그들을 보다 친혈육처럼 가까와지게 만든것은 모두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억울한 신세라는 처지의 공통성이였다.

점검이 끝나면 한줌되는 꽁보리밥에 멀건 시래기국이 아침이였다. 일반사의 잡범들은 1등식으로부터 3등식에 이르는 등급식사에 차입까지 받아주었으나 《사상범》들에게는 차입은커녕 갓난아이주먹만 한 4등식이 고작이였다. 굶주림이라는 항시적인 형틀없는 고문이였다.

사실 허기와의 싸움이 제일 큰 고통이였다. 광이는 첫날 감방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깊숙한 안확속에 박혀있는 굳어진 눈동자가 송장을 련상시켰기때문이고 더우기 잠자리에 들때 본, 당장 배가죽을 뚫고 솟아나올듯 한 앙상한 갈비대는 도저히 사람의 배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이 얼마나 굶으면 저렇게 뼈속에까지 살이 파고들것인가!

매일 매시각을 배고픔에 시달리는데 저녁마다 일반사 구내식당쪽에서 들려오는 이것 사시오 저것 사시오 하는 호각소리는 그야말로 내장을 찢어대는 또 하나의 고문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쩌다 사식이 생기기라도 하면 세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꼭같이 3등분해서 나누어먹군 했는데 그때면 흡사 다섯살짜리 소꿉동무들 같았다.

《뭔 밥 그래 묵노?》

국에 밥을 말아 단숨에 훌 마셔치우다싶이 하는 광이를 지켜보던 원식이가 한 말이였다.

《여선 밥 그래 뚜께비 파리 잡아먹드키 묵으로 몬사는기라. 두세번 퍼먹어뿔모 다 없어지는 밥이기사 해도 입에 넣어 떡이 될 때꺼정 짓이겨야 해여. 그래야 이 빵간에서 젤 위험한 위탈을 막을수 있는기제. <무기>라카는기 오래오래 견디자모 밥묵는거부터 고치야 되는기라.》

15년을 구형받은 강원식은 벌써 위탈을 만나 나이론양말에 밥을 넣고 한창 주물러서 풀처럼 만들어먹군 했는데 그런 자기의 처지를 스스로도 《액체인생》이라고 비웃었다.

광복직후부터 지하조직에서 좌익운동을 하다가 체포령이 떨어지자 일본으로 도망가려고 했다는것이다. 밀선을 타자니까 먼저 나서는것이 배값이였는데 무일푼인 그로서는 어쩔수없이 강도질이라도 해야만 했다는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도와나서는 친구와 함께 곧 거제도 일판에서는 제일가는 갑부로 알려진 선주네 집을 습격했다. 복면을 쓰고 그 집에 뛰여들어 돈을 내라고 호통을 친 순간 기절초풍한 선주마누라가 뒤로 벌렁 넘어졌는데 그게 그만 뇌출혈을 일으킬줄이야. 그바람에 사상범인데다가 살인미수죄목까지 덧쓰게 된 정치, 형사 2중범이 되고 말았다.

《근데 그 선주마누라가 누군고 하면 전번에 거제도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김영삼이 에미다 그 말이라. 그노마 유세때마다 난 <빨갱이>피해자다, 우리 어머닌 <빨갱이>가 쥐겼다, 그렁께 난 골수반공투사일수밖에 없다, 날 찍어라 하고 싸다닝게여.

결국 그노마 자슥 지 에미 팔아묵고 국회의원이 된기고 난 그바람에 절로 <1급빨갱이>가 됐제. 내 이제 가막소 나가모 김영삼이 찾아가 네 이놈, 누구때메 국회의원 됐냐? 당장 그 값을 물어놔라. 할판이여. 흐흐…》

고독한 감방에서는 귀중한 존재였다. 덤덤하고 무심하게 생긴 두툼한 얼굴에는 그 무엇도 달관한 사람의 심오함이 비껴있는가 하면 어떻게 보면 리치와 계산에 이골이 난 탐욕이 깃들어있기도 했다. 한창 세간에서 불리우는 《굳세여라 금순이》나 《리별의 부산정거장》 같은 류행가도 곧잘 불렀고 신문한장 보지 못하는데도 새 소식이라는 소식은 다 물고들어왔다.

재소자들의 말에 의하면 최근 포목상으로 벼락부자가 된 그의 형이 감옥소장에게 목돈을 찔러주고는 매번 굉장한 차입을 들여보내군 했는데 거기에 눈알이 뒤집힌 담당이나 교도관들이 그에게는 하인이나 다름없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감옥을 제집처럼 여기였고 그런 자기의 처지에 못내 만족을 느끼는듯 했다.

《지금 바깥시상에서 젤 희얀한 소식이 뭔지 아노? 핵맹(혁명)이 일어난기라. 학생, 시민들이 떨치나갔고 리승만을 쫓아내뿌릿어. 고약한 두상태기 대통령 따보겠다꼬 나섰던 신익희, 조병옥이 다 잡아 묵드키 이번엔 지가 잡아 묵힌기제. 사팔귀정이라는기 이 말인기라. 암만 막되묵은 시상이라케도 일월성신은 제대로 돌아간다 이거여. 력사의 주인이 민중이란걸 이번에 우리 학생들이 멋지게 징맹(증명)한기라.

자, 이젠 시상이 활딱 뒤집혔은즉 잘되모 우리한테도 무슨 일이 있을란지 모른데이. 쥐구멍에도 해들 날이 있다꼬 젠장, 이팔망통 따라지목숨이던 우리가 삼팔광땡 한번 잡아볼란지 모른단 말여. 흐흐…》

아니나다를가 새로 들어앉은 《민주당》정권은 저들의 낯내기를 위해 각 방면에서 리승만독재를 《청산》한답시고 《개혁》들을 실시했다. 그바람에 광이도 여러 장기수들과 함께 《무기》로부터 20년으로 감형되였던것이다. 결국 15년후인 1976년이 만기되는 해였다.

원식의 시국객담도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까지였다. 이듬해, 비전향수들만은 따로 광주교도소로 이감되였던것이다.

전향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지었다는 광주교도소는 매방이 한평도 안되는 독감방이였다.

복도를 가운데 두고 량쪽으로 각각 서른 다섯개의 방이 있는데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사치스럽게도 《호텔》, 지어는 《특등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남의 눈치 보지않고 먹고 자고 뒤를 보는것은 틀림없이 《호텔》처럼 《편리》했으나 누워있느라면 꼭 널안에 들어가있는것 같아 허구픈 웃음이 샜다. 비전향자는 목숨이 있다해도 관속에서 지내라는 반주검 취급이였다.

여럿이 같이 생활할 때와는 달리 혼자 있기때문에 고독한데다 시간을 몰라 애를 먹었다. 아침인줄 알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보면 아직 한밤중일 때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어볼수 없었다.

감옥생활초기에는 허기를 참기가 그중 어려웠다면 독방에서는 무엇보다도 고독, 하루종일 아무 말조차 하지 못하는것이 제일 고통이였다. 몇달, 아니 몇년을 이렇게 살다나면 혹시 말을 잊어버리는 벙어리가 되지 않을가 하는 불안에 어떨 땐 혼자서 서당에서 배운 사자며 소학, 명심보감, 지어는 알파베트까지 중얼거리군 했는데 그때면 간수들이 혹시 정신이상이 생긴게 아닌가 해서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생 저런 고생 해도 역시 제일 견디기 어려운것은 비전향자들에게 가해지는 인간이하의 모멸이였다. 결국 고문 하나만으로는 전향시키기 어렵다는것을 알게 되자 놈들은 개나 돼지같은 인간이하의 동물취급으로 비전향자들의 인격을 말살하는데로 나갔다. 인간의 본능인 살아야겠다는 욕구와 그 대가로 치러야 하는 치욕의 호상갈등으로 하여 매 사람의 존엄을 파괴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체모마저 깡그리 거세하자는데 있었다.

《이건 감옥의 규률이니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이런 비인간적인 규률에는 복종할수 없소.》

《뭐? 비인간적? 그래 너들도 인간이야? 빨갱이도 사람인가 말여.》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고는 소나 개를 길들일 때처럼 온갖 주접스러운 일들을 끝없이 반복시키군 했는데 그대로 하지 않으면 또다시 달려들어 차고 때리고 했다. 그때면 분노와 울화로 하여 당장 미칠것만 같았다. 복종이란 흔히 성직생활이나 군대에서 쓰이는 말이였지만 비전향자들에게는 목숨과 교환조건으로 내놓는 일상적인 등가품이였다.

《정 인간답게 살고싶으면 이제라도 전향하는거라. 그렇지 않으면 개처럼 취급받다가 죽는 길밖에 없응께.》

놈들의 요구대로 전향을 한다면 그야말로 사람으로부터 개나 돼지로 전락되고 마는것이였다. 차마 그렇게는 살수 없기에 전향하지 않는데 전향하지 않는다는 리유로 동물처럼 취급받아야 하는 이 비참한 굴욕도 과연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정녕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으며 산다는것이 이다지도 귀하고 또 중한 일이였단 말인가!

사실 광이는 여태까지 자기가 왜 사는가에 대해 알려고 해본적이 없었다.알 필요도 없었던것이다. 생활이 저절로 그시그시의 과제들을 제시해주었고 그 실천에 몰두해 왔을따름이였다.

한데 지금은 시시각각 삶에 대해서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따져보게 되였다. 죽음을 생각한다는것은 결국 무엇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따져본다는 의미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고보면 삶과 죽음은 정 반대의 위치에 있는것이 아니라 아무런 간격도 없는 일직선상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어릴 때 《교리문답》이라는 책을 보던 일이 생각났다.

《너는 왜 세상에 태여났느냐?》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하느님나라에 가기 위해 이 세상에 태여났습니다.》

그 하느님이라도 믿었다면 하느님나라라도 동경해보련만 그렇지도 못한 자기의 처지에서는 암흑과 같은 지옥의 천길나락에 떨어질수밖에, 그렇지만 기름가마가 펄펄 끓는다는 그 련옥의 세계가 지조를 버려 사람아닌 존재로 살기보다는 훨씬 더 편하고 자유로운것 같아 혼자 있을 때면 조용히 속으로 외우는것이였다.

《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아니 사람답게 살기 위해 세상에 태여났다. 때문에 죽을 때까지는 기어이 사람으로 남아있으리라!》

2

 

하지만 감옥생활은 광이를 그 하나의 생각에만 매달리게 하지 않았다.

사면팔방이 담벽으로 둘러막힌 옥안이였으나 그안에서 겪는 육영지환은 결코 바깥세상 못지 않게 모질고 쓰리다는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것은 바로 집소식,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하고있는 비참한 처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여서였다.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면회를 와도 집일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무언이였다.

옥살이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하여 다 잘있다, 우리 걱정은 말그라 하면서 교도관에게 사정사정해서 베개통만 한 구매물을 차입시켜주고는 돌아서군 했었다.

그러나 광주교도소에 면회왔을 때는 어머니자신이 먼저 눈물부터 머금었다. 그 눈물은 애써 참으려고 해도 어쩔수없이 솟구쳐나오는 그런 눈물이였다. 우무러져 들어간 광대뼈를 터갈라진 손등으로 훔쳐대는 불쌍한 모습을 보느라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어무이요. 이젠 참고 견딜만 합니다. 6년이 지났응께요. 내 걱정은 마시고 집소식이나 자상히 알려줍시요. 어무이건강은 어떻습니까?》

《걱정말그라. 덫에 걸린 새끼 두고 죽은 에미 없응께.》

변호사를 대느라고 빼암산밑에 있던 논 600평을 팔아치운 후부터는 거지신세나 다름없이 되였으리라는것은 알고있는터였다. 그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손도 녀자들뿐인 집안인데 농사는 어떻게 짓고 살림은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그래도 그사이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마을수호신이 있다는 당산재에 새 묘소를 꾸렸다는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이였다.

《광진이도 이젠 고등학교에 다닐텐데.》

입산할 때까지만 해도 국민학교에 다니던 애리애리한 막내동생이였다. 어째선지 한쪽 고무신은 늘 손에 쥐고있던 모습이 먼저 떠오르군 했다. 뒤꿈치가 닳아터지고 코투리가 찢어져 신을수도 없는걸 언제나 보물처럼 쥐고 다녔었다.

《고등핵교에 들어가긴 했제. 근디 등록금을 내야는디 낼수 있는가 말여. 석달 물지 몬한께 절로 퇴학이 됐뿐거라. 차라리 잘된겨. 이름 석자 쓸줄 알고 신문보모 되는기제. 공부는 무신 공부라. 지도 이제부턴 농사를 짓겠대여.》

어머니는 태연한척 했다. 워낙 체질이 약한 동생이여서 농산들 제대로 지을가싶었으나 그 말을 하면 어머니가 괴로와할것 같아 말머리를 돌렸다.

《광희는요? 지금 신혼살림이겄는디.》

시집가기 전에 얼핏 면회를 왔던 광희였다. 오빠를 감옥에 두고 시집가는 동생, 오빠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인줄 뻔히 알면서도 가는 이 못된 동생을 욕해달라며 몸부림쳤었다. 대상자가 리리에 있는 토건회사 직원이라던가?…

《그 광희가 다시 집에 온겨.》

《다시 오다니요?》

《쫓기온기라. 아까지 배갖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숨에 젖어들었다.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던 어머니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여겼는지 얼른 고개를 들었다.

《첨엔 그렁그렁 사는것 같더니 남편되는 사람이 올봄에 회사서 해직된 다음부터는… 회사선 사원정비라는 명목이지만 그거는 겉이고 속은 매부를 <빨갱이>로 둔 사람을 쓸수 없다는기제. 청부업인께 주문하는 사람들한테 신용이 있는 직원이여야 한다는겨.

양순하던 사람이 술을 묵기 시작했지라. 첨엔 지 팔자 망쳐놓았다는 투정이더니 나중엔 그런 오빠 있다는걸 와 숨겼냐며 이년 저년 하고 막 행패질이여. 때리고 차고.》

어머니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 소식을 듣고 리리에 가봉께 말이 아니여. 아가 입술이 터지고 이마가 멍들고… 이게 뭔짓이냐고, 안살모 그만이제 때리기는 와 때리는가고 들이대자 되래 제편에서 소리질러. 당장 제 신세 망친 손해배상 하라는겨. 청구서까지 내놓으믄서. 그리고는 방바닥을 내리치며 왕왕 통곡을 해여. 기가 차제.》

《…》

광이는 억이 막혀 뭐라고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광희를 쫓아낸 남편에 대한 불만만이 아니였다.《죄》진 자기때문에 죄없는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어야 하는 세상, 그렇다고 그 억울한 사연을 어디에 가 하소연할데도 없는 세상, 도리여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고 묵묵히 감수할수밖에 없는 비정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새삼스레 끓어올랐다.

그러니 이 세상은 한사람이 《죄인》이 되면 그 가족친척들도 몽땅 죄인이 되여야 한단 말인가! 양순하던 사람을 해직시켜 미치게 만드는가 하면 광희는 리혼당해 쫓겨나게까지 했다. 그럼 지금 광희의 배속에 있는 아이의 운명은 장차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 모든 슬픔과 고통을 한가슴에 안고 허위단심 모지름을 쓸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감옥안에 있는 자기만 아니라 감옥밖에 있는 가족들도 모진 옥살이를 하고있구나! 이 세상은 결국 안팎이 다 감옥이구나 !…

면회실 구석에 앉아있는 감독자를 얼핏 돌아본 어머니는 조용히 모두쉼을 내쉬였다. 이제부터는 면회때마다 감옥측에서 요구하는 말을 하지 않을수 없다는 눈치였다.

교도소에서는 응당 할수 있는 면회도 비전향수들에게는 멋대로 제한하군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전향공작에 협조해야만 면회가 허가되는데 그것도 형식적으로 권고한 가족들에게는 다음번 면회가 중지되기도 했다. 때문에 다음 면회를 위해서 부득불 전향을 권유해야만 했고 또 그것을 듣는척 할수밖에 없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전향을 하믄 역이 준다는디 그럴 생각은 없는겨?》

희뿌연 아크릴창 너머에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어쩐지 말이 나타내는 의미와는 다른 뜻이 어려있었다.

《제 마음이야 어무이가 알지 않습니까.》

《알기야 알제. 그란디 사정이 있는거라.》

어머니는 곧 눈길을 떨구었다.

《사정이라니요?》

《얼마전에 희애가… 그 녀자가 집에 찾아온겨. 감옥에서 6년을 살고 출소하는 길로 곧바로 우리 집에 왔지라.》

《?!》

광이는 저도 모르게 숨이 꺽 막혔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였다. 무엇때문에 희애가 우리 집엘 찾아간단 말인가?… 그렇게 묻고싶었으나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먼저 지가 어떤 녀자라는걸 다 말해. 산에서 같이 싸운거랑 그때 서로가 한 약속, 그라고 붙잡히서 재판 받던것꺼정. 자긴 갈 곳도 없거니와 너하고의 약속때문에 우리 집을 찾았다는겨. 너만은 배반할수 없다는기제.

지 말로는 니가 출소할 때까지 몇년이고 기다리겠다는거라 글쎄 이걸 워찌여? 말은 고맙지만 그렇게 하랄수도 없고 또 그 말을 그대로 전하믄 니 마음이 얼매나 아플가 하고 생각하문서두…》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어머니는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왜 우는지 광이는 그제야 짐작이 갔다. 기약할수 없는 옥살이를 하고있는 아들의 비참한 처지가 집에 찾아온 희애로 하여 더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것이리라. 그 녀자를 품에 안고 잘 왔구나 며늘애야! 하면서 머리를 얹어줄수도 없고 그렇다고 쫓아낼수도 없는 어머니여서 그처럼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눈물을 쏟는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느 길도 택할수 없는 어머니!…

그러나 광이의 심정은 그렇듯 애절한 어머니의 마음과는 판 다른것이였다. 그에게 희애는 잊을수 없는 사랑이면서도 모든 기대와 희망을 무너뜨린 야속한 어제날의 련인이였다. 분노라기보다는 쓰라린 련민이, 멸시라기보다는 참을길 없는 아픔이 가슴을 짓누르는것이였다.

《어머니, 난 그가 집에 찾아올줄은 차마…》

광이는 펄떡거리는 심장의 경련에 몸을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산에 있을 때 그 녀자와 약속이 있었던건 사실입니다. 글치만 그는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전향했지요. 감옥생활을 이기지 못해 전향했단 말입니다. 물론 억대우 같은 남자들도 녹초가 되여 쓰러지는 이 감옥에서 녀자의 몸으로 견디여낸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난… 난 배반당한 이 마음을 돌릴것 같지 못합니다. 물론 그 녀자야 아니라고 하겠지만…

아니, 아니예요! 그는 나를 배반했습니다. 불의와 타협하구 애국을 포기함으로써 나까지 배반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 녀자한테서 뭘 더 바라겠습니까. 기다린다구요? 천만에!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배반당한 사람의 울분은 마치 파묻어놓은 지뢰와 같은지 그것을 누가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무자비하게 폭발하는상 싶었다.

사실 광이는 저로써는 희애에 대한 저주나 분노의 감정은 물론 그와 있었던 모든 추억들까지 이젠 깨끗이 지워버렸다고 여기고있었으나 그것은 결코 없어진것이 아니라 터지기를 기다리는 지뢰가 되여 가슴속 깊은곳에 묻혀 있었던것이다.

《어무이요. 내 걱정은 마십시오. 그때문에 내 마음이 아픈건 조금도 없습니다. 다 잊어뿌럿응께요. 난 그렇게 몬살아요. 억울하게 돌아간 아버지를 위해서도 그렇고 같이 싸우다 옥살이를 하고 있는 동지들을 봐서도 절대로 그럴수 없는겁니다. 당장 제 갈데로 가라십시오. 다시는 집에 발길질도 못하게 하란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불같은 말이 마구 쏟아져나왔지만 더 이을수가 없었다. 어느새 앞으로 다가선 감독자가 팔을 잡고 뒤로 돌려세웠기때문이였다. 우악스런 손길로 잔등을 밀어 다짜고짜 면회실밖으로 내몰았다. 면회중지, 이쯤되면 앞으로의 면회를 기대하기 어려운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광이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늬때없이 개인 날이여서 무등산의 뚜렷한 자태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니 새겨져 있었으나 그것조차 그에게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는 오직 창녀와 같이 타락해 버린 희애모습뿐이였다.

(뭐? 전날의 약속? 기다리겠다구? 더러운 년.)

눈앞에 희애가 있다면 뺨을 무섭게 후려갈기며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고싶었다.

이제 와선 자기가 체포된것은 물론 20년이라는 세월을 옥살이 하는것까지도 다 희애가 전향했기때문인것처럼 여겨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가슴속에는 오직 광기 비슷한 증오와 그 증오가 불러일으키는 분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괴로운 상념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그런것처럼 그는 벽쪽으로 돌아서서 거기에 누군가가 못으로 새겨놓은 시구절을 더듬었다.

《설사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참고 견디면 반드시 기쁨의 날 찾아오리니.》

언제나 위안과 고무를 받군 하던 시구절이였지만 오늘은 거기에 항변이라도 하듯이 소리쳤다.

《참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 더우기 기쁨같은건 바라지도 않는다.》

3

 

1965년, 다시 전주교도소로 이감되였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는 해도 바로 멀지 않는 곳에 집이 있다는 사실로 하여 어쩐지 여느 교도소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가끔씩 소갈재를 넘어가는 통근차의 기적소리가 들릴 때면 저절로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목이 메여오르기도 했다.

면회는 여전히 금지상태였다. 가족들이 전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내려진 가해처분이였다.

작년 봄에 있은 광희의 편지에 오빠의 마음을 안 어머니가 희애에게 오빠때문에 더는 속태우지 말고 새 생활을 꾸리라고 했다는 사연이 적혀있었다. 그 말을 듣자 희애는 곧 어딘가로 떠났다고 했다.

이젠 광진이까지 세 식구가 농사를 지으니 힘든줄 모른다는 위안과 함께 얼마간은 면회가기 어려울것 같으니 그리 알아달라는 사정이였다. 말하자면 교도소의 요구대로 전향을 바라면 오빠의 마음이나 괴로와질뿐이니 면회를 가지 않겠다는것이였다.

그 마음은 충분히 리해되였으나 그래도 아침에 까치가 울면 혹시 오늘은 누가 면회를 오지 않으려나 하고 기다리게 되였다. 그게 바로 감옥에 있는 사람의 심정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취조실에 불리워간 광이는 방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흠칫하지 않을수 없었다.

늘 자기를 마주하던 취조관이 아니라 몸집이 우람찬 사나이가 두손을 깍지 낀채 책상에 앉아 집요한 눈길로 자기를 주시하기때문이였다. 새 사람이 나타난데 대한 호기심도 호기심이였으나 보다는 어디서 본듯 한 인상에 끌려 눈살을 좁힌 순간이였다.

《아-니?!》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비명이였다. 치째진 눈섭이며 네모난 턱, 더우기 어떤 경우에도 입으로만 웃군 하는 서늘한 웃음… 분명 기태였다.

(이자가 어떻게? …)

불시에 후두둑 하고 가슴이 뛰면서 산에 있을 때의 일들, 그중에도 산을 내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대립됐던 일이 먼저 뇌리를 쳤다. 산에 그냥 남아있는다는건 죽음을 기다리는 무모한짓이고, 이젠 새로운 투쟁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산을 내린 그가 아니였던가. 그 말을 투쟁을 포기하기 위한 변명으로, 자기 처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여기면서도 놈들의 개만 되지 않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런데 그가 나타난것이다.

(어째서? 무엇때문에?)

이번에는 이런 의혹이 가슴을 조이였다. 광이는 자기의 신경이 마치 어떤 나사에 감기는 악기의 현처럼 점점 팽팽하게 헹기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기태의 출현이 그때 자기가 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있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한것이 아닐가 하는 기대를 지울 길이 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8년만에 만나게 되는 옛 상관에 대한 한가닥의 미련이기도 했다.

《오래간만일세.》

귀에 익은 그 석쉼한 목소리가 저절로 쿵 하고 가슴을 울리였으나 광이는 순간도 놓치지 않고 기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은 말로 나타내지 않는 감정이 얼굴에 더 명백히 어리기도 하는 법이니까…

《난 지금 자네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네. 그때 적상산에서 산을 내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엇섰던 일을 되새기면서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나타났을가? 혹시 감옥에까지 나타난걸 보니 변한게 아닐가? 산을 내리더니 역시 개가 되고만것이 아닐가 하고 의심하겠지. 안 그런가? 그렇네. 난 변했네. 자네의 말대로 하면 개라고 할수 있지.》

《?!》

광이는 나사에 감기던 자기의 신경이 대번에 뚝 하고 끊어지는것을 느꼈다. 다소나마 그에게 미련을 품었던 자기가 더없이 용렬한 천치처럼 여겨지면서 그런 통절한 분노가 곧 불같은 증오로 끓어번졌다.

(종내 개가 되고말았구나. 더러운 놈…)

기태에 대한 누를길 없는 저주도 저주였지만 광이의 마음을 더 괴롭히는것은 인간이 어쩌면 이다지도 쉽사리 또 정반대로 변할수 있을가 하는 인간에 대한 회의, 도저히 믿어지지도 않고 믿을수도 없는 인간량심의 타락에 대한 절통함이였다. 은연중 전투때마다 대오의 앞장에서 성난 표범처럼 돌진하던 기태의 모습이 떠올라 더 무거운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알아두게. 내가 자네한테 온건 이미부터 자네만은 꼭 한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이라는걸. 그 리유가 뭔가 하는건 이제 말해주지.

그러나 그보다 먼저 말해야 할건 자네가 개라고 타매하는 내가 이젠 바로 사람이라는거네. 울안에 갇혀있다가 뒤늦게야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사람이란 말일세.》

광이는 아연한 기색으로 기태를 노려보았다. 자기의 추악한 변신을 그처럼 태연하게, 뻔뻔스럽게 지껄여대는 그가 놀랍기만 했다.

《자네는 분명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변할수 있을가 하고 놀랄테지. 그러나 사람은 변해야 하네. 변하기때문에 사람이야. 변하지 않는건 시체와 바보뿐이라고 하지 않나.

참, 자네가 즐겨하던 말이 생각나네. <군자대로>, 나 역시 한땐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 뜻을 따르려고 했지. 그러나 그 큰길이 어떤것인지 알게 되면서부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것도 알게 됐단 말이네.》

얼마나 확신에 넘쳐 말하는지 광이는 과연 이 사람이 한때 빨찌산 소대장을 하던 사람이 맞긴 맞나 하는 의혹을 다시금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생각에 옴할 때마다 이마살을 찌프리고 천정 어딘가를 응시하는 버릇은 이전과 같았으나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시름겨운 모두숨을 내뿜는 모습은 전에 없던 행동이였다.

《산을 내린 내가 체포되여 서약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난 앞으로의 투쟁에 대한 결심은 버리지 않았네. 때가 되면 다시 투쟁에 나선다, 그 기회를 기다릴뿐이다 하고 말이네.

그러나 나는 날이 가면서 그런 때가 쉽사리 차례지지 않는다는걸 알게 됐지. 산에 남아 싸운다는게 무모했던것처럼 사회에 나와 그런 기회를 기다린다는것 역시 막연하다는걸 알게 됐단 말일세.

세상은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와는 달라졌어. 우리가 총을 들고 나선다고 해서 겨레가 바라는 통일이 이루어지는것도 아니고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오는것도 아니라는거네. 알겠나? 더우기 우리 한반도의 운명이 몇몇 빨찌산들은 물론 이남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변화되기는커녕 보다 막강한 외세의 힘에 따라 좌우지되고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알게 됐지. 어떻게 해야겠나? 어느 길을 택해야겠나?

첨엔 고민도 없지 않았네. 산에서 싸우던 때와는 전혀 다른 번민에 사로잡혔기때문이지. 하지만 나는 곧 하나의 결론을 찾았네. 그건 바로 내가 여태 너무 외곬이였다는, 가망성이 없는 목적에 희망을 걸고 헛된 길을 걸어왔다는 자신에 대한 회오였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던 길이 큰길이 아니라 만사람이 따를수밖에 없는 큰길이 따로 있다는것이였네.

그때부터 내 좌우명이 어떻게 바뀐지 아나? <군자대로> 대신 <군자도 종시속>이라는것이네. 아무리 대장부라 해도 시국을 따를수밖에 없고 그게 바로 어쩔수 없는 인생의 리치라는거네.》

(군자도 종시속이라구?)

아무리 추악한 자도 자기를 변명할 말이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서글프게 여겨졌다.

《물론 난 그동안 부동산회사에 취직도 했고…》

광이를 바라보던 기태의 시선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것은 흔히 기질적으로 완강한 사람이 자기자신을 변명할 때 짓군 하는 어줍은 실소였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가졌네. 비록 세방살이긴 해도 서른이 넘을 때까지 산생활을 한 나에겐 아담한 보금자리가 아닐수 없었지. 끼니때마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재롱을 피우는 어린것을 볼 때면 내자신이 산에서 겪은 일들이 악몽처럼 되새겨지면서 자네들생각에 목이 메이군 했네. 불쌍해서 견딜수가 없더란 말일세.

바로 그때 내가 누구를 만난지 아나? 감옥에서 전향을 하고 6년만에 나온 희애를 만났어. 출옥하는 길로 자네 집을 찾아갔지만 자네를 면회하고 돌아온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고민에 잠겨있더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절망에 싸여있더란 말일세. 더우기 자네를 위하자고 전향한것이 오히려 자네를 괴롭히는것으로 되였다면서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나를 붙들고 통곡을 하더란 말일세.》

《…》

광이는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그처럼 속으로 타기해마지 않았고 어느때던 가슴을 치며 통탄할 때가 있으리라고 믿었던 희애였으나 정작 갈 곳이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한다는 말을 듣자 명치끝이 저려들었다. 특히 자기를 위해주려고 감옥에서 먼저 나온것이 도리여 자기를 괴롭히는것으로 되였다면서 통곡하더라는 말은 가슴에 걸려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난 산에 있을 때부터 자네들 사이를 좋게 여기였네. 그 천진하고 발랄한 모습에 우리의 앞날이 있는것 같아 보기가 즐거웠고 그래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도 참아내군 했지. 그런데 내가 산을 내릴 때까지도 자네들은 그냥 남았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나?

난 희애에게 말했네. 너무 상심말라고, 늦게나마 희애가 옳게 결심했다고, 삼진이도 어느 땐가는 꼭 희애처럼 제 운명을 개척할 날이 있을거라고 말이네.

그때 난 결심했어. 자네를 찾아가자. 자네를 만나 불쌍한 희애의 처지에 대해 말해주자, 그리고 세상이 어떻다는걸 또 인생이 어떻다는것도 말해주자 하고 말이네.》

광이는 기태가 하는 말보다 희애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진정할수 없은 마음이였다. 감옥에서 나가기는 했으나 황량한 불모지와 같은 모진 세상의 풍파에 부대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그의 모습이 영화화면처럼 뚜렷이 새겨지는것이였다.

《내가 오늘 자네를 찾은건 자네가 이젠 무모한 길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인간으로서의 리성을 찾길 바라서네. 어머니와 동생, 불쌍한 희애를 봐서라도 생각을 달리하란 말일세. 물론 내가 이런 말 한다고 해도 아직은 자네가 날 증오한다는걸 아네. 그렇지만 난 자네를 동정하네. 진정으로 말일세. 왜냐하면 그건 바로 내가 이젠 사람이고 자넨 아직 우리에 갇혀있는 짐승이니까.》

(제가 사람이고 내가 짐승?)

혐오스럽기보다 어처구니없기 짝이 없는 소리에 광이는 버쩍 정신이 들었다. 연회색 가을철코트를 걸친데다가 기름기가 번질거리는 기태의 얼굴을 보느라니 이번에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더럽게 타락할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허비였다.

산에서 투항한 재호가 《토벌대》를 끌고 아지트를 습격하러 왔을 때 일단 투쟁에서 물러서면 저 길로 굴러 떨어질수밖에 없다고, 투쟁이냐 아니냐 하는 두 길이 바로 사람으로 사느냐 개로 되느냐 하는 갈림길이라고 하던 그 기태가 오늘은 종내 개가 되여 나를 회유하려 감옥에까지 나타난것이 아닌가!

누구나 가정을 꾸리고 살뜰한 처자가 생기면 저절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는것일가? 아니 《세상》을 알게 되면 그 세속의 물결에 파묻혀 은연중 자기를 잃는 청맹과니가 되고 마는것일가? 세속의 우매와 추악앞에서 사람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인간실격자!

광이는 새삼스레 인간에 대한 의미, 삶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듯 했다. 그토록 강의한 의지를 지닌 인간도 자기의 뜻을 버리면 여지없이 연약한 동물로, 쓰레기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이였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였다. 일단 부패된 고기덩어리처럼 자체가 마지막까지 썩어들어 갈뿐아니라 그 악독한 균을 다른 대상에까지 전염시키기 위해 발악한다는것이였다.

《왜 아무 말이 없나?》

기태는 고개를 기웃하며 의미있는 눈길로 광이를 주시했다. 가소롭게도 자기의 화려한 변신에 대한 반응을 듣고 싶은게 분명했다. 확실히 느끼는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사람은 출중한 인격자만 아니라 더러운 인간추물을 통해서도 인생의 철리를 깨닫게 될 때도 있는것 같았다.

《난 오늘…》

온몸이 우들우들 떨리는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광이는 씹어 뱉듯이 말했다.

《사람이 어떻게 짐승으로 변하는가를 똑똑히 알게 됐다. 그리고 죽어도 너처럼 더럽게는 살지 말아야겠다는, 그래서 기어이 사람으로 남아 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질뿐이다.》

《역시 넌 어쩔수 없는 놈이야.》

책상을 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기태는 입으로만 웃는 그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아무리 동정을 해도 사람으로 돌아설 여지가 없는 놈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어느때건 후회할게다. 가슴을 치며 통탄할게다. 그러나 후회란 언제나 늦은 법이라는걸 명심해라.

내 두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볼테다. 사람으로 살겠다는 네놈이 어떻게 짐승처럼 비참하게 죽어가는가를 말이다.》

기태가 나가며 쾅- 하고 닫는 문소리보다 더 큰 충격이 광이의 심장을 때렸다.

4

 

(더는 참을수 없다!)

한두해도 아니고 3년이 넘도록 면회를 금지당해 오고 있는 광이로서는 바깥소식에 대한 궁금증으로 하여 미칠지경이였다. 어머니며 광희, 광진이를 비롯한 집식구들의 소식도 소식이였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길 없는 희애에 대한 소식도 못내 알고 싶었다.

사실 40리 안팎에 집을 두고도 몇년째 소식조차 모른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였다. 차라리 가족, 친척들이 다 북에 있어 면회를 기다리지도 않는 비전향수들이 부러울 때조차 있었다.

광이는 곧 징벌을 받지 않는 한 면회할 권리가 있다는 재소자들의 처우규정을 걸고 감옥측에 항의를 들이댔다. 비록 사소한것이라 해도 굴욕을 참아내지 못하는 올곧은 성미가 그 어떤 저돌적인 흥분과 결합되여 폭발한것이였다.

《그러니 이 량반이 정 징벌을 받지 못해 몸살이 났소그랴.》

악한으로 소문난 오계장특유의 신소처리방식이였다. 놈은 밥이 적다고 항의하면 찬을 많이 주었다고 찬을 줄였고 찬이 짜다면 또 밥이 많아서 그렇다고 밥량을 덜군 했다. 지어는 수인복이 작으니 바꿔달라고 하면 그 옷에 몸을 깎아 맞추라는 판이였다.

얼마나 악질인지 고문을 해도 고무호스가 아니라 자전거사슬로 후려쳤고 언제나 자기가 때리는 수자를 《하나, 둘》 하고 소리내여 세라는 놈이였다. 의식을 잃으면 그옆에 앉아 입가에 실실 웃음을 날리며 전쟁때 자기가 어떻게 《빨갱이》들을 우물에 처넣었는가를 념불처럼 외우군 했는데 그때면 마치 학대망상증에 걸린 정신병자를 마주한것 같아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날부터 광이는 정말 징벌방에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징벌을 가하겠으니 이젠 면회소린 입밖에 내지도 말라는것이였다. 그놈이 내려치는 쇠사슬이 살점을 물어뜯을 때마다 광이는 어디 보자, 나도 가만있지 않을테다 하고 속으로 별렀다.

거듭되는 타격에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면 어느새 물고문이 시작되였다. 놈은 물고문을 해도 물을 강제로 먹이는것이 아니라 얼굴우에 얇은 천을 씌우고는 주전자로 물을 솔솔 부어대군 했는데 물에 젖은 천이 코와 입을 막아 숨을 쉴수 없어 고통스러워 하는 그 모습을 보자는데 있었다.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소지의 등에 업혀 방에 돌아올 때면 온몸이 저리고 쑤셔 꼼짝할수가 없었다. 뒤수정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채였기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눌수 없어 얼굴은 바닥에 박고있어야만 했다. 할수없이 눈앞에 놓여있는 밥그릇을 이발로 물어 밥을 바닥에 쏟아놓고야 먹기 시작하는데 흩어진 밥알을 핥아먹느라면 저로써도 꼭 짐승같다는 생각을 피할길이 없었다. 그때마다 은연중 기태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내 두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볼테다. 사람으로 살겠다는 네놈이 어떻게 짐승처럼 비참하게 죽어가는가를 말이다.》

(네놈들이 아무리 나를 짐승처럼 대해도 난 끝까지 사람이라는걸 증명하고야말테다.)

세상에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람들이 많은 법이다. 오계장처럼. 그러나 반대로 약자에겐 약하고 강자에겐 강한 사람도 있는것이다. 광이와 같이.

그래서 결심한것이 단식이였다. 이번에는 처우규칙에 해당되는 응당한 요구를 했는데도 그것을 묵살하고 징벌하는 오계장을 직접 행형법위반, 직권람용으로 걸었던것이다. 《죄수》가 간수를 단죄한다는것이 감옥에서는 드문 일이였으나 광이는 누가 이기는가 보자는 배심으로 달라붙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멋대로 날뛰는 오계장을 징벌하고야말 결심을 통방으로 동지들에게도 알리였다.

《단식?》

어느 날 운동시간에 최남규가 광이에게 물었다.

《내가 죽던가 아니믄 그놈의 모가지를 따겠다는겁니다.》

《그러니 자기의 목숨을 그놈의 모가지하고 바꾼단 말이요?》

남규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광복후 평양에서 한다하는 대학교수로 있다가 전쟁에 참가한 그여서 그런지 남달리 의젓하고 도고한데가 있었다. 나이도 쉰줄에 가까운 좌상이였으나 눈빛만은 언제나 이글거리는 불을 담고 있었다.

《특사》, 감옥에서는 누구나 그를 이렇게 불렀는데 그것은 그가 후퇴시기 빨찌산에서 싸우다가 그것마저 형편이 여의치 않게 되자 놀랍게도 당시 륙군참모총장이던 정일권을 직접 찾아 간데서 비롯된 별명이였다.

《내가 정일권을 찾아온 인민군 <특사>라는걸 알라.》

정일권과는 고향도 한고향이고 일제시기 만주 광명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이태동안이나 한집에서 같이 하숙한 막역한 사이였는다는것이다.

그들의 대화가 처음엔 어릴적 고향이야기로 《야, 자.》 하고 시작됐지만 다음엔 인민군과 《국방군》의 대결로, 그러다가 마감엔 혁명가와 반역자사이의 《이놈, 저놈》 하는 치렬한 론쟁으로 번져진데 대해 장기수들은 물론 교도관들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재판에서 《무기》형을 언도받자 그는 자기는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군관으로서 옛지기를 만나려고 했을뿐이며 그것도 자진해서 제발로 찾아 갔다면서 증인으로 정일권을 짚었던것이다. 그래선지 결국 15년으로 감형되였는데 바로 래년이 만기되는 해였다.

그새 정일권은 이제라도 량심을 찾으라는 남규의 권고와는 반대로 점점 매국배족의 길을 걸어 미국대사, 《외무부장관》을 거쳐 지금은 《국무총리》자리에까지 게바라 올라가 독재《정권》의 충실한 밀대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인디아의 간디도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했지.》

남규는 광이를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사상과 인권에 대한 소신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식을 했고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소. 하지만 동지는 계장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항거하기 위해 단식하려는데 그것이 밖에 알려 지지도 않을뿐더러 강제급식이라는 또 하나의 비인간적인 만행에 부딪치게 되오. 그래도 견딜만 하오?》

《견디야지요.》

《알아두오만…》

광이의 어깨에 손을 얹은 남규는 타이르듯 말했다.

《감옥에서는 자기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것도 하나의 투쟁이요. 그런 감정이 곧 신념은 아니라는거지. 신념이 확고한 사람은 결코 사소한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단 말이네.》

(자기 감정?)

광이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니 내가 제 감정만 앞세운다는건가? 그것이 자기 힘을 믿지 못하는 신념이 약한 표현이라는건가? 천만에!)

그는 자기도 이젠 남못지 않는 신념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것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자기의 신념이 어떤것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더 단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다졌다.

단식 사흘째가 되자 관례대로 강제급식이 시작되였다. 강제급식을 당할 때마다 광이는 자기가 완전히 덫에 걸린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버둥칠수록 덫은 더욱 고통스럽게 온몸을 조여들었다.

한놈이 턱을 움켜쥐고 목을 잔뜩 뒤로 젖히면 다른 놈이 제꺽 입에 쐐기를 틀어 박았다. 혀끝에 느껴지는 껄끄러운 나무의 감촉과 함께 미끄러운 호스가 목구멍에 틀어 막히면 대뜸 왁하고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배속에 있는것을 토해놓기 시작했다. 토할 때 나무쐐기가 빠지는 순간 다시 이발을 사려 물고 고개를 비틀면 이번에는 거품같은 미음이 코구멍과 눈두덩우로 마구 흘러 내렸다.

몽롱한 의식속에서도 어릴 때 옆집 개가 쥐약이 든 음식을 먹고 죽어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옆으로 네다리를 뻗은 개는 배속에 든것을 몽땅 토하면서 죽어 갔다. 토할 때마다 앙상한 갈비뼈가 마치 손풍금의 바람주머니처럼 늘어났다 줄어 들었다 했다. 내가 지금 바로 그 꼴이리라.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한모금의 죽도 한방울의 물도 받아 들이지 않을테다.

어떤 땐 배가 고파 사과씨, 수박껍질까지 다 씹어먹던 자기가 오늘은 죽물 한모금마저 넘기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처사, 정녕 사람으로 산다는것이 이렇게도 가혹한 모순에 차있고 이다지도 괴로운 고통에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

열흘이 넘자 어떤 회의감에 젖어들기도 했다.

(이 잔인한 짐승들과 싸우는데 단식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방법이 아닐가? 과연 내가 자기 감정만을 앞세우는건 아닐가?)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치범 27명전원이 자기의 단식투쟁에 합류해 나섰던것이다. 집단단식이였다.

알고보니 그새 고문치사사건이 있었다. 박병일, 1선장교로 근무하다가 월북을 기도한 《죄》로 구형받은 그가 먹방에 끌려가 고문을 받던중 그만 숨이 졌던것이다. 다름아닌 오계장의 짓이였다.

《참을수 없소. 오늘부터 우리모두 단식으로 항의합시다.》

남규가 모두에게 단식을 호소했던것이다. 한결같이 호응해 나서면서도 모두의 걱정은 남규자신이였다. 누구보다 나이가 많은데다가 고질적인 천식으로 앓는 몸이였으며 더우기 래년에는 만기출소하게 될 그가 단식을 하면 틀림없이 형기가 늘어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런것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에게 호소했다.

《우리의 목적은 감옥에 아직도 이런 중세기적인 고문이 계속되고 있다는것을 세상에 고발하는 동시에 살인범인 오계장을 기어이 법적으로 처벌받게 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작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것이요.》

해당한 대책들을 취한 다음 일제히 단식에 들어갔다. 1주일이 되여 오자 거의 다 완전탈진, 실신상태에 빠졌으나 하나같이 완강하게 버티여 나갔다. 특히 남규는 정신을 잃은지 오래였지만 의무실에 가서조차 한모금의 물도 받아 들이지 않았던것이다. 그야말로 필사의 각오로 순간순간을 버티여 나가고 있었다.

광이에게는 그런 그가 놀라운 한편 눈물이 나게 고맙기도 했다. 마치 이번 집단단식이 자기를 위한 투쟁처럼 여겨졌고 또 자기때문에 빈사상태에 처한 남규 같았던것이다.

열하루만에 드디여 감옥소장이 나타났다. 여느때없이 후줄근한 기색이였다.

《법무부의 지시에 따라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의 요구대로 오계장을 해임하기로 했다는것을 알려 드리는바입니다.》

모두가 환성을 올렸다. 감옥안에서도 뭉치면 이기는구나. 집단의 힘이란 바로 이런것이구나.

그때였다.

《해임이라니?》

담가에 실려와 자리에 누워 있던 남규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우리의 요구는 … 해임이 아니라 … 어디까지나 오계장을 철저히… 철저히 살인범으로 처벌하는것이요. 그때까지 우린… 우린 절대로 단식을 풀지 말아야 하오. 절대로…》

《?!》

모두가 아연해졌다. 누구보다도 더는 단식에 견디지 못할, 아니 당장 생사기로에 놓여있는 그가 아닌가! 그런데 어쩌면… 하지만 그런 놀라움은 곧 불같은 탄성으로 변했다.

(그래, 바로 저것이 참된 신념이고 의지가 아니겠는가!)

그때 광이가 절감한것은 어떤것이 진정한 신념이며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것이였다. 신념이란 결코 누구나 가지겠다고 마음먹어서 가지게 되는것이 아니라 남규처럼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는 한순간도 박동을 멈추지 않고 온몸에 생명력을 부어주는 심장과 같이 정신적으로 남달리 완강한 사람만이 지닐수 있다는것이였다.

결코 사소한 감정이나 흥분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확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을 믿고 끝까지 그 목적을 관철하고야마는것이 바로 신념이였다.

그러나 그런 확신과 정당성을 가지기도 어렵지만 그만 못지 않게 어려운것이 그 신념을 언제나 변함없이 굳건히 지켜내는것인데 그것을 쉼없이 심장에 새기게 해주는것은 오직 식을줄 모르고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피, 즉 열렬한 의지라는것이였다.

신념이 심장이라면 의지는 그 심장을 뛰게 하는 피가 아니겠는가! 심장이 있어 피가 뛰고 피가 끓어 사람인것처럼 신념과 의지가 있어 참된 인간으로 되는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라도 한것처럼 흥분된 심정이였다.

남규의 주장이 모두의 일치한 제소로 되였고 그 제소가 다시 《법무부》에 상정되였다.

결국 열나흘만에 완전한 승리로 끝난 단식이였다. 저절로 미소가 흘러 나왔다. 실로 오래간만에 지어보는 회심의 미소였다.

광이는 이날 단식투쟁을 통해 자기가 뭔가 새로운것을 깨달았다는것을 알았고 스스로도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부터는 어떤 고통을 당해도 한결 의젓하고 태연한 마음으로 맞설수 있었다.

5

 

교도소마당가에 있는 하수구옆에 노란 개나리가 피여난 그 이듬해 봄이였다.

뜻밖에도 담당이 면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광희였다. 그처럼 면회를 기다리던 광이였으나 감옥에 찾아온 동생을 마주한 순간 반가움보다도 어쩐지 서글퍼지는 마음을 금할길 없었다.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잠간 만난 다음 8년만에 다시 보는 광희가 그새 완전히 딴사람처럼 변해 있었기때문이였다. 해빛에 탄 새까만 얼굴이며 때이르게 눈가에 새겨진 굵은 주름 그리고 북두갈구리같이 아귀 센 손가락마디들…

얼마나 고생이 심했으면 한창 피여야 할 30대의 녀인이 다 늙은 로파처럼 보이겠는가. 불쌍하다기보다 처참한 모습이였다. 식구들의 명줄을 걸머지고 아글타글한 고역과 함께 한창나이에 독수공방의 설음은 또 오죽할텐가. 가슴이 미여졌다.

그래도 광희의 얼굴에는 그런 고생쯤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그저 오빠를 만난 기쁨과 반가움밖에는 없는데 그 모습이 더 가슴을 허비였다.

《히야, 오빤 하나도 늙지 않았네. 저 높은 감옥담장이 바뀌는 계절도 흐르는 세월도 다 막아주는 모양이제?》

역시 광희다운 첫마디였다. 어머니쪽을 닮은 자기와는 달리 아버지를 많이 닮은 광희는 무엇 하나 숨기는것없이 속에 품은건 다 훌훌 털어 놓았다.

어릴 때에도 그네 탈 순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사내애들과 드잡이판을 벌리는가 하면 그 애들이 시까슬러대면 대뜸 털벌레를 잡아 집어던지군 했다. 그런 괄랭이여서 대하기가 맘 편하긴 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슨 말을 내뱉을지 은근히 두렵기도 했다.

《그래, 너도 늙지 않겠으믄 이제라도 감옥에 오는거라.》

서로가 눈물겨운 정상은 뒤전에 밀어 놓고 롱담부터 주고 받는것이 다행스러웠다.

《엄니는 건강해여. 작년 가을부터 용재네 밭 두마지기를 얻어 부치는디 벌써 밭갈이도 하고 씨도 뿌려 놨응께. 그래도 전쟁때 아버지들이 같이 잘못됐고 오빠하고도 남다른 사이라고 늘 우릴 생각해 주는겨. 용재말여. 하모 아가 둘이여. 농사 짓기가 구찮은지 읍에 나가 미장이노릇을 하지라.》

남달리 키가 껑충한데다 마음이 어진 용재가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것이 얼른 믿어지지 않았다. 나이를 따져보면 응당한 일인데도 못내 의심스럽기만 했다. 저녁밥 싸오지 못한 자기를 끌고 무우밭에 들어가 무우를 뽑아 던지던 일이며 그 웅글고도 힘찬 목소리로 온 마을이 떠나가게 서울이 해방됐다고 웨치던 모습…

그중에도 용재를 생각할 때마다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은 수업시간에 그와 함께 벌을 서고 그 앙갚음으로 《부르도크》에게 《복수》하던 일이였다.

국사시간, 갑자기 땡벌 한마리가 교실로 날아든 바람에 아이들은 서로마다 얼굴을 싸쥐며 책상밑에 머리를 틀어 박았다. 그러나 용재만은 언제나처럼 용감성을 발휘하여 책을 말아 쥐고는 팔을 획획 휘저어댔는데 그만 그 책이 손에서 빠져 나가 흑판에 돌아 서있는 선생의 잔등을 철썩 때릴줄이야.

《어느 놈이야?》

《부르도크》라는 별명을 가진 국사선생은 대번에 그 불룩한 량볼을 실룩거리며 으르렁댔다. 워낙 심술이 사납고 성격이 괴팍스러워 아이들은 그를 마주 보기만 해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폭군이였으나 그에게는 어울리지도 않게 《리왕조일가》라는 귀족같은 별명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태정태세문단세…》하는 리조 력대 27대 왕들을 순서대로 외우지 못하면 외우지 못한 수자만큼 손바닥에 채찍을 안기군 했기때문이였다. 그바람에 누구보다도 손바닥이 옴뚜꺼비처럼 부풀어 올랐던 용재였다.

《지가 뭐 리왕조일가라도 되는감, 드러워서…》

맞고 났을 때마다 용재는 손바닥을 후후 불어대며 투덜거리군 했다.

《역시 네놈이 틀림없지!》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용재를 흘겨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어째서인지 그는 용재를 특별히 미워했는데 용재의 말에 의하면 억울하게도 《부르도크》라는 별명을 바로 아무 상관도 없는 자기가 붙였다고 확신하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이리 나와, 오늘은 네놈의 버릇을 떼줄테다!》

대나무채찍을 거머쥐는 잡도리가 벌써 보통이 아니였다.

《저 실은 그런기… 부러 그런기 아니고…》

본래 말이 뜨기도 하지만 이럴 땐 반벙어리가 되고마는 용재였다.

《이 못된놈의 새끼!》

《부르도크》는 용재의 귀가 찢어지게 비틀어댄 다음 교실벽에 몇번이나 박차기를 시키고는 그래도 속이 내려가지 않는지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선생님!》

광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재가 책을 던진건 장난친기 아닙니다. 교실에 날아든 벌을 쫓으려다가 그만…》

《넌 또 뭐야? 이 못된놈을 두둔해? 이리 나와. 자고로 잘못을 범한 자와 비호한 자는 서로가 벌하게 되였은즉… 서로 마주 서서 뺨을 때려, 어서!》

언제나 그가 재미로 여기는 《형벌》이였다.

그러나 용재와 광이는 까닥 움직이지도 않았다. 설사 선생의 채찍세례에 이마가 터지는 한이 있어도 친구를 때릴순 없었던것이다. 할수없이 《부르도크》는 《일반형》, 걸상을 두손으로 버쩍 쳐들고 복도에 서있어야 하는 벌을 내렸다.

《내 가만 있지 않을끼다.》

들고있던 걸상을 잠간씩 머리에 내려 놓으며 용재가 속삭였다.

《뭔소리냐?》

《두고보랑께. 다음 국사시간엔 저 <부르도크>가 기절하고 말팅께.》

무슨 소린가싶었으나 용재는 한쪽 입귀를 벌름거리며 황소처럼 웃어댔다.

다음날은 첫 수업이 국사시간이였다. 그런데 《부르도크》를 기절시키겠다던 용재는 웬일인지 결석이였다. 여느때도 큰소리는 곧잘 쳐도 그대로 실행하지 않은적이 많은터여서 그저 분한김에 한 소리겠거니 했었다.

교실에 들어선 선생이 출석을 부른 다음 분필을 꺼내려고 분필통에 손을 넣었을 때였다. 갑자기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길길이 뛰여오른 《부르도크》가 교실문을 차고 복도로 뛰쳐 나가기까지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퀭해있던 아이들이 흑판으로 몰려가 분필통을 들여다 보았을 때였다. 모두들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글쎄 그 분필통안에 시꺼먼 살모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을줄이야.

모두가 하나같이 기겁을 했으나 광이만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어쩔수 없었다. 독사를 분필통안에 잡아넣고는 부재증명을 위해 결석한 용재…

그처럼 엉뚱하던 용재가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라니…

감옥에 있으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통해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기마련이였다. 감옥이 한자리에 있는 지구라면 바깥세상은 나날이 변하는 달과 같이 느껴지는것이였다.

《엄니는 그저 오빠가 출옥할 날만 기다리는겨. 이제 몇년만 기다리믄 된다문서 보름달만 뜨문 방장산 별바위에 가 치성을 드리지라. 제발 앓지도 말고 죽지도 않게 해달라고 말여.》

이른 새벽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논이며 밭고랑을 헤매고 다닐 어머니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그러다가도 감옥에 있는 아들생각으로 하여 눈앞이 흐려질 때면 볼을 타고 흐르는 그 눈물을 감자씨나 보리씨와 함께 고랑에 묻어 가리라. 그렇게 슬픔을 이겨가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리라.

5년, 앞으로 5년이라는 세월이 광이에게는 어쩐지 이제껏 옥살이를 해온 15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옥살이는 끝나갈수록 힘들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당장 출소를 눈앞에 둔 사람이 탈옥을 시도하다가 재수감되여 형기가 몇배로 늘어난 경우가 많다는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리해되는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출옥에 대한 재소자의 갈망은 마치 산꼭대기에서 굴러 내리는 돌처럼 감옥살이해야 할 나머지 기간과는 기하급수로 반비례하는것 같았다.

《광진이도 이젠 한다하는 농사군이겠군.》

《벼단도 몇단 지지 못하는기 무신 농사군이여. 장가갈 나이가 다됐는디 그저 배들배들 해여. 앓지 않는것만도 다행이제.》

《문수는 벌써 열한살이지?》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라는 조카에 대해 묻자니 어쩐지 목이 메여 올랐다.

《하모 4학년인겨. 그란디 다리를 다치서 놀고 있지라.》

《다린 왜?》

《차에 찧긴겨.》

《차에?》

놀라운 일일수록 태연하게 말하는 광희는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술취한 운전기사가 몰아대는 중형차에 세 아이가 치웠는데 다른 아이들은 약간한 부상이였지만 문수만은 전치 넉달의 중상이였다는것을 대수롭지 않는 일처럼 엮어댔다. 넉달까지 치료를 받았다면 아이가 불구가 되지 않았는지? 그 많은 치료비는 또 어떻게 감당했는지?

《운전기사가 잘못했응께 치료비야 응당 회사서 보상하는기제. 그란디 수술을 받고난께 아가 고만 한쪽 다리가 짧아져 뿌린겨.》

《다리를 전단 말이냐?》

《절어. 동네 아덜이 찔룩이 찔룩이 놀려댈적마다 첨엔 징징 짜쌌더니 이전 그거이 지 이름인가 해여.》

아버지없이 자라는것만 해도 속에 재가 앉았을텐데 불구로까지 되여 놀림받는것을 보는 에미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절룩거리며 뛰여다니는 어린 조카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자 광희를 그런 처지에 빠뜨린 세상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칼끝처럼 치솟아 올랐다.

《문수 애비도 애가 그렇게 됐다는걸 알것지?》

《알아. 새색시 데불고 살믄서도 우리 모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코 한번 내밀지 않던 사람이 집에 불쑥 나타난거라. 첨엔 역시 피가 피구나 했제. 암만 미워도 지가 낳은 새끼 다칫다고 찾아왔는데 쫓을수 있어? 근디 워찌는지 알어? 문수호적이 아직은 지한테 붙어 있응께 회사서 주는 보상금을 지가 타야 한다는겨. 보상금 뜯어 먹자고 찾아 온기라. 기가 차제.

어무이가 펄쩍 뛰며 쫓아낼 땐 언젠데 이제 와서 아들타령이냐고 대들자 대뜸 재판에 걸겠다 어쩐다 하고 부산을 떨어. 청부업회사서 일한 사람이래서 재판물계는 손금보듯 환한겨. 결국 보상금절반을 앨겨 간거라. 그걸 보믄서 내가 안기 뭔지 알아?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건 새빨건 거짓말이라는것이여. 피가 뭐야! 피보다 진한건 돈이여, 돈! 안그래? 오빤 여서 그런 걱정 모른께 얼매나 좋아.》

롱담처럼 던지는 말이 광이에겐 비수가 되여 가슴에 박혔다.

(피보다 진한건 돈이여, 돈!)

모진 세파의 닥달속에서 어느덧 인생을 나름대로 도통한 누이동생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외모만 아니라 속까지도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세상은 사람을 이렇게 모질게 만들고 있구나. 정녕 리해할수 없는것들이, 눈물나게 만드는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였다. 하지만 그 하많은 괴로움을 숨기지 않고 입밖에 그대로 드러내는것으로써 오히려 괴롭지 않다는것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광희를 대하기가 더 고통스러웠다.

문득 생각난듯이 고개를 든 광희가 정색한 어조로 말했다.

《참, 오빠, 승옥이라고 알제? 박승옥이 말여.》

(승옥이?)

하도 오래간만에 듣는 이름이여서 얼른 실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곧 한 녀인의 모습이 현상액에 잠긴 인화지처럼 서서히 눈앞에 새겨 지는것이였다.

뼈저린 추억, 그렇다고 잊을수도 잊어서도 안될 추억이였다. 미인에게는 불행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남달리 불우한 운명에 부대낀 그, 부모형제들이 몽땅 피살당하는것만 해도 가슴이 터지는데 하나밖에 없던 갓난애기 성칠이마저 잃었으니…

더우기 빨찌산마감시절까지 남편의 생사조차 모르면서도 총을 잡고 있어야 남편과 만나게 된다면서 기어이 전투의 앞장에 서군 했었다. 그런 남다른 통한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서도 내색은커녕 완강한 의지로 괴로움을 이겨 가는것을 보면서 인간의 참된 신념에 대해 새롭게 새긴 자기가 아니였던가.

《출소하는 길로 우리 집에 왔어. 산에서 남편까지 잃고 옥바라지 해주는 혈붙이 하나없이 15년이나 감옥살이를 했는데도 오빠대신 엄니한테 인사를 하자고 찾아 왔대여. 그 많은 고생을 한 사람같지 않게 되려 우릴 위로하는겨. 얼마나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맘고생 많았느냐고, 아들이 하는 인사로 알고 받아 달라고…》

장장 15년, 온갖 고문과 회유속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지켜낸 승옥이에 대한 소식은 뜨거운 감동과 함께 어쩐지 쿡 찌르는 아픔으로 가슴에 다가들었다. 결국 인생이란 어떤 길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걷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진리가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눈시울이 달아 올랐다.

(고맙소, 승옥동지! 내 평생 동지를 잊지 않겠소. 평생 동지처럼 살겠소.)

《그날 그 언니가 누구와 같이 온줄 알어?》

《?》

혹시 희애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광이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왜서인지 출옥후 집에 들린 다음부터는 근 10년동안이나 소식이 없다는 희애에 대한 안부를 내심으로 몹시 알고싶었으나 그것을 내놓고 말하기는 꺼리게 되였다.

기태가 와서 희애에 대해 말해준 다음부터는 무시로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군 했는데 어떤 때에는 불쌍하게도 누구의 보호도 없이 다리아래에서 거적때기를 쓰고 누워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그와는 정반대로 양담배를 입에 물고 아양을 떠는 기지촌의 양공주아가씨 모습으로 비껴지기도 했다.

감옥살이 초시기까지만 해도 희애에 대한 감정이 오직 저주와 분노였다면 이제와서는 어째선지 동정과 련민이 앞서는것이였다. 처음에는 모든 녀자들가운데 그가 가장 비렬하고 증오스럽게 느껴져 어느때건 찾아가 기어이 복수하고 말리라는 맹세를 거듭했으나 이제 와서는 그가 불쌍한 녀자로 여겨지면서 다시 만나보고 싶어지는것이였다. 아무리 큰 상처도 첨엔 피가 나고 아프지만 세월이 지나면 아물기마련인지.

투쟁에 대한 명백한 각오가 없이 생활을 그저 자기 감정으로만 대하고 리해한 처녀, 그런 처녀가 나를 위하려고 한 행동이 결국 애국과는 반대였다는 그 무서운 사실을 그가 지금은 어떻게 리해하는지! 전에는 그것을 증오하고 타매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리해되였다. 리해될뿐아니라 용서해 주고 싶었다.

사실 희애가 산에 들어와 그냥 눌러 있은것도 거기서 이러저러한 고초를 견디여 낸것도 어떻게 보면 자기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한두달도 아니고 근 5년이나 죽음의 사선을 함께 헤쳐오지 않았던가. 그때 그가 자기에게 남겨준 가지가지의 추억들이 이제 와선 마냥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중에도 자기 품에 안겨 《난 이젠 삼진이거라여.》 하고 눈물을 머금고 속삭이던 모습은 정녕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서로가 사랑을 알게 된 동시에 또 앞날까지 약속했던 그 애틋한 추억을 되새길 때마다 그는 더없이 소중한것을 영영 잃어 버렸다는 아쉬움과 함께 자기가 본의 아니게 한 처녀의 순결을 유린했다는 구속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아쉬움과 죄책감, 서로 상반되는 이 두가지 감정이 언제나 마음을 괴롭히는것이였다.

그때 한 약속을 어길수가 없어 출옥하는 길로 우리 집부터 찾아간 희애가 아닌가. 그후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희애도 이젠 서른셋, 출옥한지 10년이 돼오니 가정을 꾸리고 안착된 생활을 하고 있겠지. 아이가 있으면 둘쯤은 되리라.

광희는 한동안 말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보매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을가 어쩔가 하고 망설이는것 같았다.

《엄닌 이 말은 입밖에 내지도 말랬지만 난 오빠가 그 소식을 알아야 맘 편할거라 여기는겨. 그치? 그날 희애가 같이 왔어.》

정작 희애의 이름을 듣자 광이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다시금 빤히 마주보는 광희의 눈빛은 흔히 녀자들이 비상히 중요한 말을 할 때마다 짓군 하는 그런 눈길이였다.

《근데 글쎄 9년전에 우리 집에 왔던 희애가 그 다음부턴 줄창 수도원에 가 있었대여, 놀랍지라? 자기가 전향한건 물론 기태를 만나 하소연한것까지도 죄스럽기만 해서 그걸 빌려 수도원에 갔대여. 그때부터 자긴 오빠와의 약속대로 오빠가 출소하기만 기다린다는겨.

그동안 지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더 똑똑히 알게 됐는디 그럴수록 마음이 괴로와 차마 찾아올수가 없었대여. 그러다가 새밑에 승옥언니를 만나고는 다시 우리 집에 올 결심을 했다는거라.

그가 뭐랬는지 알아? 자긴 어디까지나 오빠의 희애람서 어떤 일이 있어도 오빠가 출소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겨. 이제까지 기다렸는데 이제 5년이야 더 못기다리겠남서… 히야, 그런 춘향이 같은 녀자가 있은께 오빤 얼마나 행복해여.

그날 희애를 붙들고 눈물을 짓던 엄니가 이제부턴 암데도 못간다고, 우리 집에서 한식구가 되여 같이 살아야 한다고 했지라. 그러면서도 엄닌 절대로 그런 말을 오빠한테 하지 말래여. 길한 일은 입에 올릴수록 흉조로 변한담서 미리부터 새망 털어선 안된다는겨.》

《?!》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에 광이는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수가 없었다.

(희애가 여태껏 나를 기다리다니?)

놀랍다기보다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나 자기를 저주하며 몸부림쳤기에 10년 세월을 고스란히 기다렸을것인가! 그때 기다리겠다고 한 그 약속을 그대로 지킨 희애라는 생각이 들자 이제까지 그에게 품었던 동정은 어느새 자기에 대한 뼈저린 자책으로 변했다.

사실 산에 있을 때 그를 제대로 이끌어 주기만 했어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것이 우리의 사랑을 지키는것이라고 말해주었어도 희애가 오늘과 같은 처지에는 빠지지 않았을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자긴 노상 이를 갈며 저주했는가 하면 가슴을 치며 통탄하지 않았는가!

(희애!)

광이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너무도 가혹했다고 천백번 용서부터 빌고싶었다.

여태까지는 희애에 대한 자기의 감정이 지나간 쓰라린 추억의 한 토막에 지나지 않고 청춘기에 우연히 만난 한 처녀에 대한 미련에 불과하다고 여겼댔으나 희애가 10년동안이나 자기를 기다렸다는 놀라운 소식은 대번에 그런 감정이 변명이고 억지임을 깨닫게 했고 나아가서는 자기 역시 희애를 속으로는 더없이 그려마지 않았다는것을, 그래서 자기들은 이미부터 달리 될래야 될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듯이 느껴지는것이였다.

그는 광희가 무슨 말을 더 했는지 또 언제 면회실에서 나갔는지 알지 못했다.

6

 

희망, 뉘라서 희망이야말로 괴로울 때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그 음악은 어둑컴컴한 감방안에 있는 광이의 눈앞에 이제까지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황홀한 화폭들을 펼쳐나갔다. 이제 몇년후면 차례질 꿈같은 생활, 청춘을 고스란히 바쳐 자기를 기다려 온 희애와의 감격적인 상봉, 소박한 혼례식과 동지들과 친지들의 열렬한 축하, 차마 이뤄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눈물겨운 결합이여서 더 뜨겁게 타오를 희애에 대한 애정, 3년, 앞으로 3년이면 바로 그 꿈이 현실로 피여나는것이다.

감옥안에 갇혀있는 자기가 차마 그런 생활을 꿈 꾼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호화롭고 사치하여 더없이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선택된 행복자처럼 여겨지는것만은 어쩔수 없었다.

(희애, 이제 3년만 기다려주오. 그러면 내 그때 가선 희애를 고생시킨 그 보상을 열배, 백배의 사랑으로 보답하리라.)

이제까지 견뎌온 17년간의 고생쯤은 앞으로 3년이면 깨끗이 청산되고 기꺼이 보상까지 될듯 싶었다.

그런데 그런 앞날에 대한 꿈같은 희망은 그해 여름에 발표된 력사적인 7.4남북공동성명으로 하여 더 무섭게 타올랐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 분렬 4반세기만에 남북이 처음으로 합의한 통일대강으로 하여 온 3천리강토가 통일열기로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당장 38선이 무너지는것 같았고 7천만 겨레가 부둥켜 안고 웨치는 통일만세의 함성이 감옥안에까지 들려 오는것만 같았다.

광이는 그 환희의 물결속에 행복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기와 희애의 모습을 똑똑히 그려보았다.

그때부터 그는 자기 주위에서 울리는 음악을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장중한 교향곡으로 받아들였고 그 장중한 선률은 광이를 시시각각 더 아름답고 황홀한 세계로 이끌어갔다.

그렇게 1973년이 지나가고 74년이 왔다. 이제 만 1년 남짓하기만 하면 20년간의 옥살이를 깨끗이 털어버리게 될 바로 그해 가을, 감옥뜰안에 있는 감나무잎사귀들이 노랗게 황이 들어 한잎 두잎 떨어져 갈무렵이였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바깥세상에서 불어닥친 일진광풍이 그처럼 오매불망, 일일천추로 그려오던 광이의 꿈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렸던것이다.

《사회안전법》, 작년부터 《유신》체제의 총통으로 군림한 독재자가 새로 만들어낸 그 악법으로 하여 일체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법적시효가 다 백지로 되고 만것이였다.

만기가 되였다고 출소되기는커녕 전향하지 않는 한 세월없이 감옥에 묶여있어야 했고 이미 출소한 사람들까지도 전향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다시 감옥에 잡혀 들어 와야만 했다.

모든 감옥들에는 《법무부》와 《정보부》의 막강한 력량으로 새로운 《전향공작전담반》이 꾸려졌는가 하면 매일처럼 들이대는 취조나 고문도 여느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전향이냐 아니면 죽음이냐 하는 이 하나의 기준에 따라 가해지는 악착한 고문은 성성하던 사람을 삽시에 혈압이 튄 식물인간으로,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정신병자로 변신케 했다. 지어는 고문의 어혈로 먹방구석에 며칠째 버려져 있다가 누구도 모르게 미이라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얼마나 고문이 지독했으면 수십년을 완강하게 버텨온 사람들까지도 절망에 싸여 감방벽에 머리를 들이받거나 담요깃을 뜯어 만든 바줄로 목을 매 자살하겠는가!

바깥세상도 숨막히게 험했다. 매일처럼 민주인사나 단체들에 대한 체포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인혁당》을 재건한 사람들이 학생운동세력과 련대하여 공산혁명을 일으키려 했다는 소식이 전해 지는가싶더니 벼락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된 다음날 새벽엔 벌써 여덟명 전원이 교수형에 처해 졌던것이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암흑시대, 공포시대의 도래였다.

광이는 물론 다른 비전향장기수들도 마침내 자기들에게 제일 엄혹한 시련이 닥쳐 왔다는것을 륙감으로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불시에 들이닥친 홍수에 휘말려 든 사람의 심정은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면할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야 살아날수 있겠는가 하는것이 선차적이다. 그래서 주위부터 돌아보게 되고 옆에 짚검불이라도 있으면 무작정 움켜쥐게 되는 법이다.

광이의 머리속에 먼저 떠오른것은 희애였다. 자기가 출소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희애가 이 일로 하여 얼마나 괴로와 하며 통탄할것인가. 전에는 그 어떤 고통도 즉 고문이나 굶주림이나 고독이나 다 자기 혼자와의 싸움이였다면 언젠가부터는 자기만 아니라 희애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되였다.

자기 혼자의 문제라면 얼마든지 참을수도 견딜수도 있었지만 자기를 위해 모든것을 바쳐왔고 또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희애가 있다는 사정은 그로 하여금 이때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위구와 불안에 휩싸이게 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조일민이 주먹을 떨며 분에 넘쳐 소리쳤다. 서울대학에서 공부하는 재일교포 류학생으로서 방학때 일본에 건너 갔다가 평양에까지 갔다 온것이 《죄》가 되여 무기형을 언도받은 그였다.

《글쎄 이런 무법천지가 어디 있나 말입니다. 하긴 <한국>이 일본말로는 <강고꾸>, 바로 감옥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런 판에 항소가 다 뭡니까. 내가 어리석지.》

그는 자기에 대한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항소를 했는데 그때 재판정에서 한 그의 진술은 온 보도계를 들썩하게 했다.

《남도 내 조국이요 북도 내 조국인데 서울에 와서 이남현실을 알게 된 학생으로서 응당 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게 아닙니까. 북에서는 내가 서울류학생이라는걸 알면서도 체포하기는커녕 따뜻이 맞아 주던데 여기서는 어째서 잠간 다녀온것조차 중죄인으로 돼야 하는가요?

그리고 난 무엇보다 재일교포 2세로서 우리 나라 허리에 그어져 있는 38선이라는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우리가 얼마나 못났으면 남들이 들어와 저들의 리익을 위해 멋대로 그어놓은 선, 글쎄 그게 뭔데 주인인 우리가 마음대로 오가지 못한단 말입니까?》

너무도 정당한 진술로 하여 량심적인 변호사들은 물론 민주단체들도 그에 대한 구원운동을 벌리고 있었다. 일본에 있는 그의 모교친구들과 선생들은 《조일민을 구원하는 회》까지 만들어 맹렬한 항의운동을 들이대고 있었다.

일본에서 면회 온 어머니가 새 내의를 령치해주어도 같이 있는 장기수들에게 미안하다고 입지 않고 있다가 운동을 나갈 때마다 감독자의 눈을 피해 그 내의를 건조장에 걸어놓군 했다. 후에 운동을 나간 사람이 입게 하기 위해서였다. 더우기 환자가 생기기만 하면 자기의 령치금으로 동지에게 필요한 약들을 서슴없이 사들이군 했는데 그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억세게 생긴 얼굴이며 장대한 체구, 거기다가 호방한 성격은 어느모로 보나 유도 2단의 유단자다운 듬직한 배짱이 느껴지는 대장부였다.

《선생님, <사회안전법>에 묶이고보니 한가지 골치거리가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속심까지도 광이에게는 서슴없이 털어놓는 그였다.

《다른건 참고 견딜수 있는데 약혼한 처녀가 문제란 말입니다. 이미 약혼을 했으니 다른데 가겠다진 않지. 그렇다고 언제 출옥할지 모를 나를 기다리라고 할수도 없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명절때면 어김없이 정성스런 차입품을 준비해가지고 감옥에 찾아오는 그의 애인에 대한 말을 들을 때마다 희애에 대한 생각에 잠기군 하던 광이였다. 비록 약혼한 사이는 아니라 해도 희애에 대한 자기의 걱정 역시 조일민의 심정과 조금도 다를바 없었다.

《처녀의 결심은 어떤겨?》

《죽어도 기다리겠다는거지요.》

《그럼 됐구만.》

희애는 과연 어떤 생각일가? 기다릴가? 설사 기다린다 한들 기약도 할수 없는 세월을 어떻게 기다린단 말인가. 더우기 희애야 나이가 있지 않는가. 이젠 서른여덟, 이미 늦기도 했거니와 녀자로서는 더는 넘겨서는 안될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자기도 정작 세월없이 나를 기다리자니 기가 막혔던지 한가지 방도를 찾아냈다며 편지에 써왔는데 그게 어떤건지 압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난감할 때마다 주먹으로 코등을 문지르군 하는 그의 버릇은 마치 어린 아이를 방불케 했다.

《글쎄 자기도 이번 여름방학때 도꾜로 갔다가 거기서 평양으로 가겠다는겁니다. 그다음에 다시 서울로 오겠다는거지요. 그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될테니 감옥에 들어오게 된다는게 아닙니까. 그렇게라도 같이 감방에서 고생해야 맘 편할것 같다고, 그러다가 우연히 얼굴이라도 볼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거지요. 나 참.》

같이 웃으면서도 웃을수만은 없는 사실이였다. 제 나라 한쪽을 다녀온것으로 하여 죄인이 되여야 하고 그런 죄를 지어야 애인하고도 만날수 있는 현실,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통일을 념원하는 젊은이들의 상봉장소가 감옥이여야 하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노릇이였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구나 하는 비참한 생각이 가슴을 허비였다.

그러던 어느날, 고문에 녹초가 된 조일민이 소지의 등에 업혀 돌아왔다. 얼굴이 부어올라 눈도 뜨지 못하던 그가 힘겹게 몸을 비비적거리며 돌아누웠다.

《선생님, 지금 일부 동지들이 어떤 문제를 론의하는지 압니까? 무슨 방도가 있어야지 이대로 있다간 모두가 감옥에서 죽고 만다는거예요.》

《방도라니?》

《살아야 통일운동도 할게 아니냐고, 고문으로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기보다는 가도장이라도 찍고 나가는게 어떤가 하는거죠. 그다음에 본격적인 투쟁을 한다는겁니다. 4사에 있는 류동지랑 장동지가 그런 말들을 해요.》

《?…》

처음 들어보는 말이였다. 하긴 이대로 당하기만 한다는건 죽는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것도 아무 흔적도 없이 억울하게 잠식해 버리는것이였다.

벌써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곁을 떠나갔는가. 환청, 환시에 걸려 고생하다가 숨진 손동지, 고문도중에 심장발작을 일으켜 두눈을 부릅뜬채 숨을 거둔 박동지, 이렇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바에야 차라리… 그들의 말이 옳을수 있다. 이대로 감옥에서 죽어야 하느냐? 아니면 나가서 싸우느냐?

문득 한가지 추억이 뇌리를 쳤다. 빨찌산 때 일이였다. 그때 기태는 말했었다. 산에 그냥 있는다는건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무모한 짓이라고, 이런 조건에서는 새로운 투쟁이 필요하다고.

확실히 지금도 그때의 상황과 다를바 없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 살벌한 정황이였다. 그래도 산에서는 무기가 있어 싸울수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투쟁은 고사하고 한마디의 항변조차 하기 어렵지 않는가. 그런데도 이대로 참는다는것이 과연 무모한짓이 아니란 말인가! 가도장이라도 찍고 나가 새로운 투쟁을 벌리는것이 옳은 처사가 아니란 말인가!

순간 그는 흠칫했다.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던 어떤것이 불시에 흉곽을 헤치고 불쑥 솟구쳐 올랐다.

(아니, 내가 순간이나마 그렇게 생각하는것은 나약해진 표현이다. 가장 어려운 때 앞을 막아나선 시련에 위구를 품고 물러선다는것을 의미한다. 결코 운명에 타협하지 말아야 할 신념이 다소나마 물러진 표시인것이다.)

신념이란 지니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기가 더 어렵다고 하던 남규의 말이 떠오르는가 하면 이 길이냐 저 길이냐에 따라 사람으로 사느냐 짐승으로 되느냐 하는 생활의 진리가 새삼스레 상기되기도 했다.

과연 그렇게 주장하던 기태가 궁극엔 어떤 개가 되고 말았는가! 최근 다른 동지를 통해 들었던 기태의 소식이 머리에 떠올랐다. 부동산회사 간사로 일하던 그자가 무슨 욕심이 동했던지 사장로파를 칼로 찌르고 회사재산을 송두리채 털어가지고 어디론가로 달아 났다는것이였다. 그바람에 국내에는 물론 해외에까지 그의 지명수배가 배포됐다는것이였다.

《개가 다시 사람으로야 되지 못하지. 얼마나 더 추악하게 타락하는가 하는것뿐이니까.》

광이는 다시금 자신을 랭엄하게 돌이켜 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과 환경에는 차이가 없다. 산에서 감옥으로 장소가 변한것외엔 아무것도 달라진것이 없다. 부닥치는 시련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것도 그것들을 량심과 지조로 이겨내야 하는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제 와선 달리 생각한단 말인가? 그러니 그새 내 량심이 변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설마? 그런데 어째서?

그는 자기 마음속에 자리잡는 이런 동요가 무엇때문에 일어나는지 그 까닭을 알수 없었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한 한편 두렵기까지 했다.

7

 

《말해두지만 당신, 이번이 마지막기회라는걸 알아야 해요.》

《전향공작전담반》이 나와서부터는 거의 매일처럼 겪어야 하는 문초였고 고문이였다. 《정보부》에서 나온 이마가 밴질밴질한 취조관, 서울놈 특유의 자세와 억양으로 입술을 나불거릴 때면 광이는 그 주둥아리부터 한대 쥐여박아주고싶은 충동을 누를길 없었다.

대학때에는 종교를 전공했으나 후에 심리학, 그것도 범죄심리학을 연구했다는 이자는 마주앉을 때마다 죄와 신앙을 결부시키기 좋아했는데 죄의 반대는 신앙이고 신앙에 의거하지 않는것은 모두 죄라고 하는가 하면 죄는 무지에서 오는 범신론적인것이라고 떠벌이기도 했다.

더우기 죄는 신앙에서 절망적으로 자기자신이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절망적으로 자기자신이기를 바라는것이라고 지껄일 때면 이자가 과연 교회산지 아니면 선교산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째서인지 그런 거치장스러운 서론은 피하고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않는 예지가 필요하죠. 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일생 회복이 불가능하다는거예요. 인생은 체육경기처럼 3전 2승부가 아니라 단 1회승부다 이 말이예요.》

취조를 당할 때마다 그런것처럼 광이는 될수록 무언으로 대하면서 대신 속으로만 대꾸하군 했다.

단회승부든 3전 2승이든 난 벌써 이긴거나 같다. 산에서 싸울 때 끝까지 싸웠응께 한번 이긴거고 이번에 감옥에서까지 견뎌내믄 두번째 이기는거다.

《누구나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라 강자의 편이라고 하죠. 그렇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알아둬요. 당신을 위해줄 법은 있으니까 네.》

이놈의 세상에 두가지 법밖엔 뭐가 있어? 무법과 불법.

《전에도 말했지만 난 당신이 주장하는 주의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요. 그 주의라는것도 결국은 인간이 살아가는 한가지 방법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자신이 죽은 다음에 무슨 주의든지간에 필요가 뭔가 하는거죠.

난 당신이 민주주의를 따르라는 말은 안해요. 단지 이번 기회에 그 페쇄된 굴레에서 벗어나 한번이라도 자기만 아니라 부모나 형제들도 생각할줄 아는 인도주의자가 돼보라는거예요.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쯤은 지킬줄 알라는걸 호소하는거예요. 네.》

이놈아, 넌 부모형제들에게 도리를 지키라지만 우리 부모형제들은 벌써 네놈들한테 당할대로 다 당했다. 억울하고 비참하게. 한사람이 《죄인》이 되면 온 가족이 다 죄인이 되여야 하는데 내가 이제 도리를 지킨다고 그 희생이 보상되겠느냐. 그리고 난 사람의 최대의 도리가 부모에 대한 효도보다 애국을 위한 량심이라는걸 안다. 산에서 싸울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취조관은 책상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똑똑 두드렸다. 대꾸가 없어 불만스러울 때마다 취하는 행동이였다. 토닥거리는 박자가 빠르면 그만치 초조해 한다는것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비교적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당신은 고향이 이남이죠? 대답해요.》

《물론.》

《가족이나 친척들도 다 이남에 있죠?》

《그렇소.》

《가족만 아니라 당신을 10년나마 기다려오는 애인이 있다는것도 우린 알아요. 그쵸?》

《…》

광이는 담당관을 마주 보기만 했다.

《알고보니 그 녀인은 지금 당신 어머니를 시어머니처럼 성의껏 모시고 있고 당신이 출옥하면 함께 살 전세집까지 마련하고 있다는거예요. 네, 얼마나 고마운 일이예요. 아릿다운 녀인이 기다리겠다, 집이 있겠다, 거기다 당신도 이젠 40대, 더는 헛되이 보내서는 안될 청춘의 황혼기가 아닌가 말요.》

인생의 쾌락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거역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을 진정으로 동정해마지 않는다는 담당관의 눈길을 대하는 순간 광이는 저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졌다. 담당관이 하는 말을 통해 여태껏 자기를 괴롭히던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였기때문이였다.

그것은 바로 희애였다. 희애와의 앞으로의 생활, 애타게 기다려 왔던것만큼 더욱 간절해지는 그 천추의 숙원이 바로 자기 감정을 흔드는 요소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릿다운 녀인, 전세집, 청춘의 황혼기… 취조를 받는 과정에 자신의 허점을 깨닫게 된다는것이 일종의 아이로니가 아닐수 없었으나 감옥에 찾아온 기태를 통해 느꼈을 때처럼 그런 경우도 있다는것이 새삼스레 신기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던 희애의 사랑이 이제 와서는 자기를 괴롭히는 고통의 근원으로 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다. 확실히 나에겐 신념과 량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외에 또 하나의 정열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나를 괴롭혀온것이다.

광이도 자기와 희애의 관계를 알고있는 놈들이 희애를 직접 감옥에 끌고 오지 못하는것으로 보아 희애가 결코 그자들의 요구(전향권고)에 응하지 않기때문이라는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규정에는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지만 《전향공작전담반》이 나와서부터는 그 어떤짓도 가리지 않았던것이다.

《그 녀자를 만나보았어요. 그 녀인을 보며 내가 생각한게 뭔지 아세요? 어째서 죄는 남자가 짓는데 그 벌은 녀자가 받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의 허무한 부조리와 함께 도스또엡스끼의 소설 <죄와 벌>이였어요. 네.

대학생 라스꼴리니코브는 선택된 인간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죄를 범할 권리가 있다는 이른바 초인주의사상에 젖어 전당포 로파를 살해하죠. 바로 당신이 자기 주장에 포로되여 행동한것처럼 말이예요.

그러나 주인공은 곧 량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죄의식에 모대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바로 그때 상냥한 창녀인 쏘냐를 알게 되여 비로소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결국 그 녀자의 사랑에 감동된 주인공은 마침내 자기의 살인을 자수하게 되고 씨베리야로 류형을 떠나가요.

그들의 운명이 어쩐지 당신들 두사람의 운명과 겹쳐지면서 어째서 당신은 이 인간생활의 명백한 철리, 인간감정의 당연한 순리를 외면할가 하는 생각을 지울길 없었어요. 네.

여태까지 나는 죄의 반대는 신앙이라고 믿어왔지만 이제 와서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아요? 사랑만이 타인이 존재하는 세계에서의 나의 출현이다. 어때요?

그래 그 아릿다운 녀인과 꿈같은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사랑을 택하겠어요 아니면 또다시 기약없는 감옥살이를 계속하겠어요? 만기로 출소하게 된 해에 <사회안전법>이 나왔다는것이 당신에게는 운수가 나쁘다고 할수밖에 없지만 어쩌겠어요. 이제까지의 20년은 다 무효로 되고 새로 감옥살이를 시작해야 하니까요…》

《…》

광이는 뭐라고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앞으로의 일이 암담하기도 했거니와 보다는 자기와 희애와의 관계를 전향의 미끼로 삼는 교회사놈이 가증스러워서였다.

《그럼 그건 그쯤해 둡시다.》

놈은 언제나 광이가 대답에 궁해하는 눈치가 보이면 화제를 돌리군 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자기의 공작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것을 느끼기때문이였다.

《내가 당신한테서 꼭 알고싶은것이 있어요.》

놈은 자리를 고쳐 앉으며 탁우에 있는 담배갑을 집어들었다.

(알고싶은것?)

광이는 교회사를 뚫어지게 마주 쏘아보았다.

《그건 바로 당신이 어째서 한사코 고향도 아니고 일점혈육도 없는 이북을 그렇게 동경하는가 하는거예요. 녜. 혹시 고향이 북이거나 부모처자가 이북에 있는 비전향자들인 경우에는 그래도 리해가 돼요. 그렇지만 당신이야…》

취조관이 바뀔 때마다 물어보는 말이였다. 그것만은 누구든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사실 숱한 비전향자들중에 광이처럼 이북과 아무런 혈연도 인맥도 없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것이다.

광이는 다시금 곧바른 눈길로 교회사를 직시했다. 물론 해외에서 살면서 《남도 내 조국, 북도 내 조국》이라는 조일민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그로서도 할말이 있었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를 통해 사람은 뜻을 귀중히 여기고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양 받아왔다. 그것을 리론적으로 안받침한것이 비록 《물이 선소이 위지하고 물이 악소이 불위하라》거나 《인자무적》, 《대로무문》과 같은 고사성구에서 비롯된것이긴 해도 사람이 좋은 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엄정한 진리만은 명백했다.

그렇게 가르치던 아버지가 놈들에게 무참히 희생되였을 때 그리고 어릴 때부터의 꿈이 여지없이 유린되였을 때 그가 깨달은것은 이 세상엔 정의란 없고 인간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미쳐버리거나 피를 물고 복수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결론이였다.

그런데 자기가 바라는 그러한 리상적인 세상이 있고 그런 꿈을 소중히 키워주는 제도가 있었다. 빨찌산 때 덕구령감과 감옥에서 최남규를 통해 이북사회에 대해, 그런 꿈같은 현실을 펼쳐주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해 들으며 더더욱 마음을 굳힌 그였다. 특히 세계최강이라는 미국과 당당히 맞서 이기는 이북의 모습을 통해 경탄과 감동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였을 때 미국은 얼마나 많은 무력을 이북수역에 들이밀었는가. 원자력잠수함, 항공모함, 각종 신예전투기와 폭격기, 세계가 당장 전쟁이 터진다고 아우성이였다. 그렇지만 이북은 좋다, 너희들이 《보복》이면 우리도 보복이고 《전면전쟁》으로 나오면 우리도 전면전쟁을 한다고 선언했다.

세상에 미국과 전쟁하자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그 반년후에 있은 《이씨121》간첩비행기가 령공을 침범했을 때도 이북은 단호히 그걸 요격해서 탑승원 수십명을 바다에 수장해버렸다. 그때도 미국은 숱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동해에 급파했지만 이북은 전국에 전시체제를 선포하고 총 반격의 태세를 갖추었다.

이 모든 사실이 광이를 무한한 충격과 함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것이다.

《물론 가족도 중요하고 고향도 중요하겄지요. 그러나 난 그보다 사람이 자기 존엄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수 있는 그런 세상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겨. 그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수 있는 세상, 또 그것을 생명으로 여기며 담보해주는 세상, 누구나 그런 곳을 리상향으로 택하는거야 응당한 리치가 아니겠소.》

《그러니 자생적인 <북한>숭배자로구먼.》

《<북한>?》

광이는 대뜸 손가락으로 교회사를 겨누었다.

《당신도 한반도사람이요? 말해두지만 얼마전에 있은 력사적인 7.4공동성명은 남북이 합의한 민족최대의 통일대강이요. 그 성명에서 남북은 한민족임을 확인했고 서로 비방중상도 하지 않기로 했소. 더군다나 그 합의를 아직은 그 누구도 취소하지 않았는데 말단 조사관에 지나지 않는 당신이 뭐길래 함부로 그 합의를 거역하는거요. 방금 한 발언을 취소하시오. 취소하기 전에는 취조에 응할수 없소.》

교회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히쭉 웃었다. 칼날같은 적의가 번득이는 살기찬 랭소였다.

《뻐꾸기같은 사람.》

뻐꾸기는 딴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그 둥지에서 까나온 새끼는 딴 새끼들을 내쫓고 나중에는 제가 자라난 그 둥지마저 허물어버린다는 뜻이였다.

《그럼 오늘은 이만합시다.》

이런 날이면 고문실에 끌려가 반주검을 당해야 했다. 뱀같은 채찍에 살가죽을 뜯기운 다음에도 몽둥이찜질에 온몸이 시퍼렇게 이물어 기신도 할수 없이 늘어졌을 때에야 고문이 멎었다.

그때부터 광이는 전에 없던 괴이한 환각에 시달리게 되였는데 그것은 고문을 당할 때마다 눈앞에 나타난 희애가 맥없이 늘어져 있는 자기 가슴에 파고들어 뭐라고 간절히 속삭이는가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치기도 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엉엉 목놓아 울어대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두귀를 량손으로 틀어 막군했다.

8

 

놀랍게도 그 희애가 감옥에 찾아 온것이였다. 그해 가을이였다.

담당으로부터 면회온 사람이 희애라는것을 전달 받은 순간 광이는 대뜸 벅찬 충격과 함께 그와는 정 반대되는 감정, 혹시 자기들의 관계를 알고있는 교회사의 공작이 아닐가 하는 의심을 누를길 없었다.

희애가 놈들의 강요에 못이겨 찾아오지 않았을가 하는 의심은 어쩐지 점점 가슴속에 차오르는 기쁨을 밀어내면서 온몸이 굳어지게 했다. 마치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은 사람이 불시에 독한 술을 물었을 때의 심정이랄가.

단단히 마음을 도사려 먹은채 면회실에 들어선 광이였으나 그는 그런 의심보다 먼저 자기 눈부터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녀자가 희애라니?)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이며 대리석으로 새긴듯 까딱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 그리고 한쪽 이마를 가리우며 어깨우로 비스듬히 흘러내린 머리칼로 하여 퍼그나 정숙하게 느껴지는 녀인은 아무리 봐도 옛날 그처럼 당돌하고 발랄하던 희애가 아니였다.

희애가 이렇게 변하다니? 곱게 다듬어진 턱과 꼭 다물린 입술은 15년이라는 세월을 압축하여 옛 모습의 흔적을 얼핏 새겨 주는듯도 했지만 생각깊은 진지한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보다 더 놀라게 되는것은 용모로 보나 몸가짐으로 보나 그 사이 희애가 자기가 상상하던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현숙하게 변모돼 있다는 사실이였다.

《희애예요.》

광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외모는 변해도 목소리만은 변하지 않는지 그 류달리 맑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대번에 이 녀자가 틀림없이 희애라는것을 알려주면서 온몸의 피를 설레게 했다.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늦게에야 찾아 온걸.》

고개를 숙인채 겨우 들릴 정도로 가늘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는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해묵은 비탄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애절한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얼마나 자신을 뼈저리게 뉘우치며 타매하고 있는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처음 《희애예요.》라고 한 말이 혼돈과 의심에 싸여있던 자기를 깨우쳐 준 하나의 개시음이였다면 이번에 들려 온 그의 목소리는 지난날의 잊지 못할 추억들을 불러 일으키는 다정한 선률이였다. 그러나 그 선률은 곧 괴상한 불협화음에 휩싸여 광이를 당초에 품었던 의혹으로 되돌려 세웠다.

(희애의 출현은 분명 전담반의 계획된 음모가 아닐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혈육도 친척도 아닌 그가 감옥에까지 찾아올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금 온몸이 긴장되면서 자기들 사이에 놓여있는 엄연한 단애를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떻게 온겨?》

광이는 제 목소리같지 않는 소리로 물었다.

《이미부터 전 어느땐가는 꼭 당신앞에서 이렇게 지난날의 잘못을 빌 날이 있으리라는걸 믿었어요. 그날만을 기다려 왔지요. 용서를 받는 동시에 항시 저를 괴롭히던 죄의식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자의 상처는 쉽사리 아물어도 녀자의 상처는 일생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투쟁을 포기한 다음에 투쟁이 무엇이고 사랑을 잃은 다음에야 사랑이 무엇인가를 안 미련한 녀자의 후회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렇지만 이제라도 이 용렬한 죄인을 용서해주세요.》

성상앞에 선 독실한 신자의 모습 그대로 두손을 모아쥐고 고개를 숙이는 희애의 모습은 세상에서 유독 자기 한사람만이 소외당한 불행한 인간이였다는것을 절감케 하는 비통한 모습이였다.

《사실 제딴엔 조금이라도 마음의 고통을 덜어볼가 해서, 속죄를 하면 전생의 죄가 다소나마 씻어 진다기에 수도원에 들어갔지요. 9년동안이나 성상앞에 꿇어 앉아 참회를 했지만 그 어떤 고해성사도 제대로 되지않았어요. 아마 저의 마음속에 새겨진 커다란 동공은 결코 기도나 참회로 메꾸기에는 너무나도 깊은 나락이 아닐수 없었는가봐요. 전 그때에야 비로소 인생은 결코 새롭게 시작할수 없다는 리치를 깨달았어요.》

너무도 진지하고 사려깊게 변한 희애의 모습에 재삼 놀라게 되였다. 말까지도 사투리가 없는 표준말이여서 더 어리둥절해 지는것이였다.

《그래도 저에게 하나의 기대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감옥에서 고생하는 당신을 기다린다는것이였어요. 언젠가는 닥쳐올 앞날에 대한 이 한가닥의 기대가 저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지요. 괴로울 때마다 서로를 생각하자고, 그러면 힘을 합치는것으로 된다고 한 당신의 말을 되새기며 당신과 함께 고생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또 그것이 죄많은 저에게 차례진 응당한 벌이라고 여기면서 모든 고통을 달게 받아 들였어요. 그렇게 5년, 10년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래년이면 출소하겠지 했댔는데…》

오래동안 헤여졌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처음에는 외모의 변화에 놀라게 되지만 차츰 그가 지닌 용모의 특징이며 익숙된 습관까지도 알아보게 되는 법이다. 말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이 숙이고 상대를 조심스레 쳐다보군 하는 버릇, 특히 상대방의 감정이 어떤가를 미리 짐작하고 짓군 하는 그 눈빛에서 옛날 희애의 낯익은 모습을 가려보게 되자 은연중 지나간 추억의 구슬픈 선률이 가슴을 헤집으면서 희애에 대한 사랑이, 표현못할 애정이 세찬 파도가 되여 가슴에 밀려 들었다.

《전 결코 그때를 잊을수가 없어요.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세상을 알게 되고 또 사랑을 알게 되고… 아마 그래서 녀자들은 그 귀중한 진리와 행복을 가슴에 새겨준 사람을 평생 잊을수도 배반할수도 없는가봐요.》

광이는 심장의 박동이 점점 빨라지는것을 느꼈다. 희애가 자기에게 바쳐온 희생, 눈물겨운 사랑을 되새기게 되자 그런 희애를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도리여 잠시나마 의심을 앞세운 자기가 더없이 죄스러웠다. 그토록 갸륵한 그의 진정을 외면하고 질시한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는 어쩐지 희애가 겪은 모든 불행이 바로 자기때문이라는 느낌을 피할길이 없었다. 산에서 맺었던 정으로 하여 그때는 물론 감옥에서도 갖은 고생을 다하게 한것이며 출옥후 자기 집을 찾은 그를 다시 수도원으로 가지 않을수 없게 한 매정한 처사, 그래서 10년이상이나 홀몸으로 고통스럽게 지내게 한것까지도 다 자기탓인것만 같았다. 전에는 희애가 자기를 괴롭히고 불행에 빠뜨렸다고 원망했으나 지금에 와선 바로 자기가 그를 그런 처지에 빠뜨렸다는 자책마저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사실 면회 온 광희를 통해 희애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잊으려고 했고 영영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사랑을 되찾게 되였다는 기쁨만이 아니였다. 보다는 희애가 자신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다시 투쟁대오에 들어서겠다는 각오로 받아들여 졌기때문이였다.

그때부터 광이는 무시로 통일을 위한 투쟁에 나선 희애의 모습이 꿈에서만 아니라 생시에도 눈앞에 뚜렷이 새겨지군 했는데 그때마다 더없는 힘과 기쁨과 자랑을 느끼군 했다.

지금 그는 희애의 입에서 새롭게 변모된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그 말이 한마디라도 새나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이윽고 희애의 목소리가 조용히 고막을 두드리였다.

《전 어디까지나 당신의 희애예요. 그렇지요? 우린 벌써 그때 약속하지 않았어요. 오늘 제가 찾아온건 바로 그 약속을 더는 미룰수가 없기때문이예요.》

(더는 미룰수가 없다니?)

희애의 말을 그대로 받아 외우던 광이는 무심결에 그가 내미는 한장의 종이를 받아 들었다. 순간 그는 소스라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천만뜻밖에도 혼인신고서였던것이다.

《아니, 이건?…》

《그래요. 혼인신고서예요. 이젠 거기에 수표를 해주세요.》

그제야 광이는 혼인, 약혼문제라면 면회가 허용된다는 재소자들의 처우규칙이 상기됐다. 그러나 더욱 어리둥절해 지기만 했다. 어떻게 감옥에 있는 사람과 약혼을 한단 말인가! 숱한 세월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옥에 있는 사람이 약혼했다는 사실은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것이다. 곧 이상한 불안이 전류처럼 피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거기에 수표를 하면 래년 3월, 형기의 연장이 없이 석방될수 있다는거예요.》

《석방?》

광이는 대뜸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럼 이 혼인신고서가?…)

그제야 광이는 희애가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되는것 같았다. 혼인신고서에 수표를 받기만 하면 형기를 연장하지 않고 석방시켜 준다는 전담반의 그럴듯한 꼬임에 넘어간 희애가 아닌가!

결국 전향서대신 혼인신고서로 나를 유혹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설마 그럴수야? 아니, 틀림없다! 희애는 분명…)

광이는 희애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뜻하지 않던 면회와 혼인신고서, 수표와 석방에 대한 담보…

필경 희애는 공작반의 요구에 따라 나를 유혹하고 있다. 설사 강압적인 요구가 아니라 해도 혼인신고서에 수표를 받아 오기만 하면 출소시킨다는 담보를 받았으리라.

자기를 바라보는 희애의 눈빛은 어떤 불안과 공포와 함께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 지리라는 간절한 기대도 어려 있었다. 투쟁을 포기한 다음에야 투쟁이 무엇이고 사랑을 잃은 다음에야 사랑이 무엇이라는것을 알았다고 했지만 그것은 말일뿐이고 실지로는 놈들의 강요대로 움직이고 있는 희애라는 생각이 들자 분노라기보다 어떤 슬픔이 목을 메웠다.

(10년세월 나를 기다렸다면서도 어째서 아직도 나를 제대로 리해하지 못하는걸가? 어째서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지키려고 하는것을 그렇게도 리해하지 못하는걸가?)

이런 느낌은 곧 희애에 대한 감정을 서글픔으로 변하게 했을뿐아니라 보다 이젠 자기는 완전히 고독하다는 의식으로 하여 비통하게까지 만들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겼던 광이였으나 그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알게 되자 그런 생각은 고사하고 아무리해도 자기와 희애는 같이 결합될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를 찾아온 그가 못내 야속스럽기만 했다.

만일 그때 희애가 자기한테서 완전히 멀어졌다면 분노와 불행만을 느꼈을뿐 지금 가슴을 지지는것 같은 도저히 다잡을수 없는 정신상태에는 빠지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사실 저도 몇번이나 곱씹어 생각해 봤어요. 혹시 저의 청이 당신을 괴롭히지나 않을가, 노엽히지나 않을가 하고 말이예요. 그러나 아무리 따져봐도 한가지만은 명백했어요. 그건 바로 당신의 깨끗한 량심에 대한 증명이예요.

만약 이제 당신이 감옥을 나선다고 해서 당신을 탓할 사람이 있겠어요? 당신의 량심과 지조를 의심할 사람이 있겠는가 말이예요. 당신은 이미 자기의 신념이 어떤것인가 하는걸 온 세상에 시위했어요. 시위하고도 남았어요. 20년 만기를 다 채웠는데도 계속 온갖 구실을 붙여가며 족쇄를 채우고 있는 법이나 세상을 탓하면 탓했지 절대 당신을 탓하진 못해요. 못하고 말고요.

당신도 지금 일부 장기수들이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감옥에서 나오고 있다는걸 아시겠지요? 사람들이 그들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아세요? 질시나 모멸인줄 아세요? 아니예요. 도리여 뜨거운 동정과 사랑이예요.》

더는 아량을 베풀수도 숨박곡질할 필요도 없다는것을 느낀 광이였지만 의외에도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신념이나 량심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필요한것이여.》

《그래도 자기 인생을 걱정할 앞날이 중요하지 이미 증명된 신념을 계속 고집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어떤 벼락같은 소리가 튀여 나올것 같았으나 이번에도 희애의 시선을 피하게 되였다.

《희애, 이걸 알아야 해여. 실련의 고통은 일시적이지만 불행한 결혼의 고통은 평생을 따르는거라. 내가 바라는건 그저 희애가 이제라도 더 헛된 세월을 보내지 말고 하루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새 생활을 꾸리는것이여. 그기 바로 자기를 위한 일이고.》

《새 생활을 꾸리라구요? 그게 자기를 위한 일이라구요? 어쩌면 그런 말까지…》

질겁한 눈길로 마주보던 희애가 가는 비명을 터뜨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말하지요. 솔직히 말하겠어요. 제가 오늘 당신을 찾아 온게 뭐 제 혼자의 결심인줄 아세요?》

(이제야 속심을 드러내는구나.)

《벌써부터 찾아올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용단을 내릴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망설이기만 했지요. 그런데 그런 저에게 힘을 준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당신 어머님이예요.》

《어머니가?》

광이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요. 어머닌 요즘 매일처럼 당신 말씀만 해요. 다른 사람들은 감옥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어째서 우리 광이는 나오지 못하느냐고, 이러다간 아들을 보지 못하고 죽을것 같다며 자꾸 눈물을 흘리시군 해요.

그러다가 며칠전에는 저의 손을 붙들고 이런 말씀을 했어요. 눈을 감기 전에 아들을 보는게 소원인데 그 소원을 풀어 줄수 없느냐고, 그걸 풀어 줄 사람은 바로 희애밖에 없을것 같은데 이번엔 혼인신고서를 가지고 찾아 가보는게 어떠냐고, 법무부에 알아보니 혼인신고서에 수표를 받기만 하면 만기때 석방될수도 있을것 같다면서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광이도 사람인 이상 이젠 희애가 불쌍해서라도 신고를 받아 들일거라고…》

《?!》

광이는 삽시에 발밑이 꺼져 내리는것 같았다. 이젠 어머니까지 전향을 바라다니? 얼마나 괴로움이 컸으면, 또 얼마나 불행을 면한 아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으면 그런 부탁을 다 하랴. 더우기 아들을 기다리는 희애를 보기가 얼마나 민망스러웠으면 그의 손에 신고서까지 쥐여 주었으랴!

가슴이 찢어 지는듯 했다. 정녕 어머니도 이젠 지쳤으리라. 아들을 기다리기에 지치고 그 아들을 기다리는 희애의 모습에 지치고 또 한많은 세상에 지쳤으리라. 언제한번 웃어보기는 고사하고 한두해도 아닌 근 스무해를 늘 근심을 안고 불안에만 떨어온 어머니가 아닌가!

은연중 어머니가 바라고 희애가 원하며 또 자기 역시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화폭들이 눈앞에 새겨졌다.

희애와 함께 나란히 엎드려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는 모습이며 옥동자를 안은 희애가 행복한 미소를 짓고있는 모습이 확대되여 안겨오기도 했다. 화목한 가정, 다정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마 그런 속에서 있다면 어머니가 당장 10년은 젊어지리라. 그렇지만 앞으로의 그 행복을 위해 결코 지금의 고통을 벗어 던질수는 없었다.

문득 기태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젠 어머니와 동생, 불쌍한 희애를 봐서라도 생각을 달리 하란 말일세.》

광이는 자기가 만약 어머니의 소원이나 희애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여태껏 지켜온 신념을 스스로 짓밟는것으로 될뿐아니라 기태처럼 자기 량심을 매도하는 추악한 배신자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는 그 명백한 사실을 왜서인지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저의 청은 물론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도 받아들일수 없다는거예요?》

《난 그저 내가 지켜 온 량심과 신념이 단란한 가정과 량립될수 없다는것인데 그게 결국은…》

《그러니까 저같은 녀자는 될대로 되라는거지요. 일생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죽으라는거지요? 그게 응당하다는거지요?》

원망이 어린 야속한 눈길로 쳐다보는 희애의 표정은 아무리해도 자긴 절망에서 헤여날수 없는 불행한 녀자라는 처절한 모습이였다. 두눈에 핑하니 눈물이 어리는가 싶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얼른 두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마주 쏘아보는데 그 눈길은 광이가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는 원망과 비탄과 함께 증오가 어려있는 눈길이였다.

《과연… 과연 당신도 인간이예요? 피가 있고 정이 있는 인간인가 말이예요!》

나직하게 웨치는 소리였으나 그것은 마치 피를 토하는것 같은 통절한 부르짖음이였다.

《당신도 인간이예요?》

희애가 남긴 이 마지막말은 시퍼런 도끼가 되여 광이의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아니 그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도저히 뽑을래야 뽑을수가 없는 화살로 되여 버렸다.

그때부터 광이는 매일 밤 그 원망에 찬 희애의 부르짖음이 귀가에서 맴도는가 하면 어떨 땐 불시에 눈앞에 나타난 그가 저주와 조소를 머금고 웨치는것이였다.

《당신도 인간이예요?》

희애의 그 말을 되새길 때마다 그는 이상하게도 언제나 두가지 모습이 동시에 떠오르군 했는데 하나는 희애에게 혼인신고서를 쥐여주며 광이도 사람인 이상 이젠 더는 모른다고 하지 않을거라고 한 어머니의 모습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와는 반대로 고문을 가할 때마다 《너도 인간이야? 빨갱이도 사람인가 말이야!》 하고 웨치던 교형리의 험상궂은 표정이였다.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이길래 사람에 따라, 처지와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비쳐든단 말인가. 나를 낳은 어머니나 악마같은 교형리들은 물론 나를 위해 모든것을 바쳐 온 희애까지도 나에게 사람인가고 따지고 드는것이 아닌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증오하는 사람이 다같이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데 그럼 난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사실 나야말로 제딴에는 가장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으로 남아있기 위해 모든걸 바쳐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정녕 진정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것이란 말인가!)

이런 고민은 마음을 괴롭히다 못해 그를 더없이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허구픈 탄식이 터지게도 했다.

밤새껏 그 말을 되풀이하다가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를 괴상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귀속에서 잉 하는 아츠러운 환청이 고막을 긁어대군 했는데 그리고보면 희애가 쏜 화살은 그냥 화살이 아니라 시시각각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심신을 괴롭히는 독이 발린 화살이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고문실에 끌려간 광이는 고문기술자 《백정》과 마주하게 되였다. 본래는 형사를 해먹던 자로서 제가 추적하던 상대를 때려 죽인것으로 하여 교도소로 전근해온 살인전과자였다. 한쪽볼을 찢으며 건너간 칼자리와 함께 그 험상궂은 상처처럼 온갖 고문을 다 들이대면서도 말은커녕 표정변화 한번 없는 놈이여서 모두들 몸서리를 쳤다. 권도 유단자인 그놈의 주먹에 벌써 목대가 부러지거나 갈비대를 꺾이운 재소자가 한둘이 아니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백정》은 웬일인지 광이를 쳐다보기는커녕 책상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책상우에는 한벌의 새옷, 재빛이 도는 털쟈케트가 펼쳐져 있었는데 여느때없이 진지한 눈빛은 마치 자기의 직분이 고문이 아니라 전당포주인으로 바뀌기라도 한것 같았다.

(저 옷에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놈이 이리도 심각해 졌을가? 어떤 단서를 쥐거나 증거라도 찾으려는게지?)

하지만 놀란것은 한참만에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는 그자의 독백이였다.

《아무래도 색갈이 틀렸어. 환갑이 지났지만 어머니한텐 너무 로색이 아닐수 없거던.》

(어머니?)

문득 이자에게도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이런 악한에게도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를 위하는 효심이 있다는것이 못내 불가사의하기만 했다.

(하긴 이자도 사람인 이상 어머니가 있을수밖에!)

그러나 곧 이자가 사람이라니?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생사람의 목을 비틀고 갈비대를 분질러대는 놈이 어떻게 사람이란 말인가? 하는 의혹이 솟구치면서 불현듯 이 《백정》의 몸에도 과연 피가 있는지 어떤지 확인해 보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충동은 이상하리만치 맹렬한 불길이 되여 온몸을 사로잡는것이였다.

(그래, 어디 사람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자!)

이런 결심이 든 광이는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있는 《백정》의 뒤로 다가가 갑자기 놈의 목을 으스러지게 감아 쥐였다. 그리고는 날짐승을 덮치는 야수마냥 닥치는대로 놈의 상판을 물어 뜯었다.

《으악!》

너무도 폭발적인 광이의 행동에 눈알이 뒤집힌 《백정》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얼굴부터 싸쥐였다. 얼핏 손을 떼는 순간 뭉청 떨어지다싶이한 놈의 커다란 코가 입우에서 대룽거렸다. 입안으로, 턱밑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광이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너도 분명 사람은 사람이구나!》

부르르 몸을 떨며 놈을 쏘아보는 광이의 두눈에는 평시에 볼수 없었던 싸늘한 랭소와 함께 새파란 불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처참한 아버지의 시신을 맨땅에 묻고 입산한 초시기에 나타난 그 광기였다. 아니 그때보다도 더 사나운 분노의 폭발이였다.

그바람에 그는 정신착란이라는 엉뚱한 진단으로 한동안 금치처분의 대상이 되여야만 했다.

1977년, 만기를 다 채운 광이였지만 비전향이라는 리유로 석방되지 못했다. 그해부터 교도소에서는 매해 한번씩 그에게 전향여부를 확인하고는 거기에 불응하면 시험에 떨어진 학생을 류급시키는것처럼 2년 또 2년씩 옥살이를 연기하군 했다.

그렇게 감옥에서 70년대를 보내고 80년대를 맞이해서도 계속 《류급》만을 거듭하던 광이는 89년에 가서야 《졸업》을 할수 있었다. 그것도 그가 시험에 《합격》해서가 아니라 진급시험제도 즉 비전향자를 묶어놓던 《사회안전법》이 페지되였기때문이였다.

마침내 그는 21살부터 54살이라는 33년간의 기나긴 반생의 옥고를 자기의 신념과 의지로 꿋꿋이 이겨냈을뿐아니라 그것으로 하여 자기가 사람임을 그것도 가장 깨끗한 인간임을 온 세상에 자랑차게 시위했던것이다.

《류급》만을 거듭하던 그 13년간에 그가 잊을수 없었던 일은 대법원에까지 항소를 했던 조일민이 법정투쟁에서 이김으로써 《무기》로부터 10년으로 감형되여 출옥한것이고 다른 하나는 희애가 감옥에 면회온 이듬해 승옥이가 소개한 어떤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는 더없이 다행스럽기도 한 한편 또 놀랍기도 했던 사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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