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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손기척을 내며 선생의 방으로 들어서던 나는 주춤하지 않을수 없었다. 웬 낯모를 처녀가 선생과 마주앉아 있기때문이였다. 첫눈에도 꽤 이쁘장하게 생긴 처녀였다. (담당간호원인가?) 탁우에 의료가방이나 청진기따위가 보이지 않는것으로 보아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별로 놀랄 일은 아니였다. 매일처럼 어린이들이나 호텔종업원들이 선생들의 호실에 찾아와 축하공연을 하는가 하면 어떤 친절한 사람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보신탕이며 닭곰까지 해가지고 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마주앉아 있는 두사람이 빚어내는 분위기는 그런 친밀감이라기보다는 어딘가 공식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도 줄곧 부동자세로 굳어져 있는 처녀라면 역시 풀어지지 않은 기색으로 나를 흘끔 곁눈질해 보는 선생이고 보면 두사람 다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은 눈치였다. 《안녕하십니까.》 두손을 모아쥔 처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였다. 어깨우로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리칼이며 커다란 두눈에 어글어글한 눈동자가 류달리 인상적이였다. 《작가동지가 고선생님을 취재하신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실은 저도 선생님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청년출판사〉에 있는 은옥경이라고 합니다.》 (취재?) 나는 은연중 이마살이 모아졌다. 용모에 대한 인상은 감정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인지 곱살하던 처녀에 대한 인상이 대번에 흐려졌다. 글을 쓰는 사람의 공통된 심정은 자기의 취재대상이 다른 사람에게 침해당할 때에는 마치 약속을 한 련인앞에 제3자가 끼여드는것처럼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법이다. 더우기 나의 기분을 거슬리게 한것은 은옥경이라는 낯설지 않는 이름이였다. 분명 꽤 짭짤한 서정시들과 색갈이 있는 가사들을 써서 지상에도 가끔씩 얼굴을 내밀군 했었는데… 그런 녀기자이고 보면 이미 작가가 약속한 취재대상을 앞질러 마주하고 있다는것이 온당치 못한짓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것이 아닌가?!… 나의 그런 기분상태를 짐작이라도 한듯 처녀가 조심스레 뒤를 달았다. 《저… 전 그저 한가지만 취재하면 됩니다. 소년빨찌산으로 이름을 떨친 선생님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겠기에…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중에서 소년빨찌산출신은 유독 고선생님 한분이 아닙니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여서 그런지 요즘은 독자들로부터 매일같이 그 성화가…》 (그렇다?…) 약간 숨이 나갔다. 글쎄 그 정도라면… 오랜 시간이 걸릴것도 아니여서 계속 한자리에 같이 앉아 저마끔 질문의 소나기를 퍼붓는것으로 선생을 딱하게 하지 않아도 될것이였다. 전투실화나 교양기사로 쓴다 해도 100매가량의 원고면 될테니까 하루 취재면 넉근하겠지. 그렇지만 오금은 박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취재면 되겠구먼.》 《예, 전 다만 선생님의 빨찌산시절 얘기만 들으면 됩니다.》 자기가 끼여든걸 못내 미안해 하면서 혹시 거절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 하는걸 보면 례절도 있고 눈치도 있는 처녀였다. 《그렇다면 같이 들읍시다. 나도 오늘은 마침 선생님의 빨찌산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차례니까.》 마치 큰 선심이나 베푸는 사람처럼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선생은 여전히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지 노상 궁싯거리기만 했다. 어쩐지 처녀쪽으로는 눈길을 돌리기도 꺼려했다. 마치 선이라도 보러 온 대상을 마주 한듯 줄곧 뻣뻣이 긴장돼 있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샜다. (장가 안든 사람은 나이가 있다 해도 속은 여전히 새파란 모양이지?) 확실히 선생은 처음 받아 안은 인상과는 많이 달랐다. 무척 강인하고 예리하면서도 결패를 앞세우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는데 오히려 더없이 온화하고 부드러워 마치 다심한 녀성과 마주앉아 있는듯 한 기분이였다.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이며 엄한 아버지밑에서 자란 어릴 때의 생활을 알게 되여서가 아니였다. 너무나도 인상과 성격이 대조되기때문이였다. 사람은 흔히 첫인상과는 반대되는 성격이 많다는것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그래도 선생처럼 인상과 성격이 대조적인 사람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리만큼 단정하고 고지식한 사람이여서 마음이 풀어지지 않으면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성미라는것이 떠올라 나는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었다. 《말씀하십시오. 선생님, 사실 우린 이미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시도 쓰고 가사도 쓰는 동문데… 이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총창우에 평화가 있다… 바로 그 노래가사를 쓴 동무입니다.》 《그래요?》 그제야 선생은 처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노래 나도 압니다. 많이 들었어요. 우리의 총창우에 평화가 있다!…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정말 맘에 꼭 드는 노랩니다. 그런데 이거 유명한 시인을 제때에 몰라봐서…》 새삼스런 눈길로 처녀를 일별한 선생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 가사를 쓴 시인이여서 그런지 역시 용모도 날카롭게 생겼네요. 초면에 실례되는 말입니다만…》 그러고보니 예리한 면이 없지 않는 은옥경이였다. 짙은 눈섭밑에서 집요하게 응시하는 눈길이며 약간 두드러질사 한 관골 그리고 꼭 다물려진 자그마한 입술… 수집은듯 귀밑머리를 쓸어 올리던 옥경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호- 하고 가는 숨을 내뿜었다. 1
《복수》련대 1중대, 광이가 소속된 부대였다. 그러나 대원들은 그를 입대하면 의례히 가지게 되는 가명인 삼진이가 아니라 본명대로, 아니 광이라는 의미대로 미친 아이로 치부했다. 《아무래도 정신이 나갔뿌린겨.》 《오죽하믄 저리 됐을까이. 쥐-길놈의 새끼들!》 대원들도 아버지가 희생되면서 입산한 광이라는것을 모르지 않는터여서 될수록 너그럽게 대하려고 했지만 한사코 뿔을 돋구는건 광이쪽이였다. 그는 아무때나 혼자였다. 늘 혼자 있으려고만 했다. 모두가 빙 둘러앉아 통밀이나 감자로 끼니를 에울 때조차 어느 틈에 끼여 있는지, 자리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많았고 남들이 더덕이나 바위취를 캘 때에도 멀찌감치 돌아앉아 맨땅을 우비기 일쑤였다. 캄캄한 밤에도 무섭지 않은지 메고양이처럼 혼자 온 산판을 헤매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무기도 배당되지 않았고 전투에도 참가시키지 않았다. 《삼진이, 어드래? 유격대가 힘들지?》 후퇴때 대오에서 떨어져 부득불 산에 들어오지 않을수 없었던 인민군대출신인 덕구아바이의 말이였다. 평북도 벽동내기, 텁텁한 농사군의 구수한 흙냄새가 온몸에 흠뻑 배여있는 령감이였다. 무슨 말을 해도 고향에 있는 자기땅 3천평에 대한 자랑으로 결론을 짓군 했다. 아름다운 수풍호반 정경이나 그 호수에 우글거리는 잉어나 뱅어들에 대해, 지어는 보고싶은 처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다가도 마지막엔 꼭 《아마 지금쯤은 한창 가을걷이에 바쁠기야. 도오티. 올해도 그 노랑지리 3천평에 총알같은 금나락이 꺼지도록 실렸을꺼니》 하고 그 3천평에 대한 《후렴》만은 잊지 않았다. 《힘이 들고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하는거이 유격대고 그럴수록 맘부터 합쳐야 하는거이 유격대야. 그래야 쌈도 제대로 할수 있으니꺼니… 내가 말하자는건 마음을 늦추어라 이거야.》 그럴 때면 광이는 마치 자기를 해치려는 어떤 원쑤를 마주한 그런 눈길로 아바이를 노려보군 했다. 한마디만 더하면 당장 덮치기라도 할것 같은 기세는 잔뜩 독이 오른 승냥이새끼 그대로였다. 한번은 나무를 하러간 광이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가 보니 한아름이나 되는 느티나무 그루터기를 아예 묵사발이 되게 만들고 있었다. 도끼를 내려칠 때마다 허연 도끼밥이 마구 튕겨 오르는데 매번 입에서는 《이새끼!》,《개새끼!》,《죽어라!》 하는 욕사발이 터져 나왔다. 나무를 한다기 보다 신들린 무당같은 모습에 차마 말릴념도 못하고 돌아섰다는것이다. 오락회때였다. 웃고 떠들던 대원들이 광이를 지명했다. 어떻게든 자기 울타리에서 벗어져 나오게 하자는, 그래서 같이 어울리자는 심산에서였다. 지명을 받고도 여전히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그의 어깨를 옆동무가 흔들었다. 《놔요, 이걸!》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치는 그의 두눈에서는 파란불이 팔팔 일고 있었다. 《노래를 불러요? 내 눈엔 지금도 아버지의 모습, 그 얼굴이 없는 처참한 모습만 보이는데 노래를 부르란가요? 놈들이 총탁으로 때리서, 총창으로 내리찍어서 얼굴이, 머리가 다 없어져뿌린 그 모습만 보이는디…》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갈려있었다. 《그래서 원쑤를 갚자고, 그래서 이 〈복수〉련대를 찾아 왔는디 왜 총도 안주고 전투에도 안참가시키고… 거기다 이젠 노래까지? 다들 좋겄습니다. 노래가 나옹께요. 하긴 노래가 나오겄지요. 복수도 하고 그래서 갚을 원쑤도 없을 팅께요. 그렇지만 난 억울한기라요. 살아있는기 부끄럽단 말인겨. 아버지원쑤도 갚지 못하고 이렇게 노래만 하고 있는기 죽기보다 더 괴로분기라요.》 피발이 선 눈길로 대원들을 쏘아보며 주먹을 휘둘러대는 품이 당장 무슨 일을 저지를것만 같았다. 아니나다를가 일은 터지고 말았다. 삼진이가 없어졌던것이다. 점검해보니 무기는 없어진것이 없는데 수류탄 두개가 무기창에서 흔적을 감춘것이였다. 《어리다고 우리가 무관심했던겨.》 기태소대장의 말이였다. 그의 지시로 부대는 일단 회문산을 떠나 방장산 거칠봉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대리탈자가 생기면 의례히 취하는 조치였다. 엄혹한 산생활에 겁을 먹고 초기에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수심 하나로 유격대에 들어왔다가 복수가 성사되지 않을것 같으면 대오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았던것이다. 그들이 체포되거나 자수할 경우를 타산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덕화리에 나가있던 대원이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돌아 왔다. 《아, 덕화리 <보루대>가 터졌지 뭡니까! 경찰 두놈이 즉사하고 무기가 털리웠당께로, 온 마을이 온통 뒤집혔지라우.》 《누가 쳤다오?》 소대장이 다그쳐 물었다. 《거야 뻔한게지유, <항미련대>친구들이 아니고 누구겠나요. 그네들이 우리한테 한방 멕인겁니다. 보아라, 우린 이렇게 싸운다, 너거네들 뭣하고 있느냐고.》 소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루대》를 습격한다면 사전련락이 있었을것이고 차후대책에 대한 합의가 없을수 없기때문이였다. 《동문 이 길로 회문산으로 들어가 낌새를 봐야겠어. 개들이 그리로 출동할수 있으니까. 그리고 혹시 삼진이가 우릴 찾아 거기로 갈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소대장은 고개를 기웃했다. 쬐꼬만 16살짜리 소년이 그것도 단신으로 《보루대》를 습격한다는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 습격은 광이의 소행이였다. 경찰 세놈이 한곳에 모여 화투를 치고있을 때 수류탄을 던져 넣고는 무기를 가지고 달아빼왔다는것이 보고의 전부였다. 마치 살구나무에 돌멩이를 던져 살구 몇알을 땄다는 식이였으나 입가에는 아직도 서늘한 웃음, 살기가 일렁이였다. 신발은 어디다 벗어 팽개쳤는지 맨발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래도 어깨엔 두자루의 칼빈총이 횡십자로 지워져 있었다. 그날 저녁 기태는 광이와 마주 앉았다. 《그래 이젠 마음이 후련하냐?》 《이제부텁니다. 총을 구했응께요.》 《총을 구하자고 <보루대>를 쳤냐? 그것도 혼자서?》 《소대장동지도 혼자서 라용균네 집을 치지 않았습니까.》 합법때에는 군민청부위원장, 입산후부터는 련대소속 독립소대를 지휘해오는 기태였다. 륙척이 넘는 키에다 우락부락한 생김새며 툭툭 불거진 성격이 꼭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그대로여서 이름대신 관운장으로 통하기도 하는 그였다. 일단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어려운 전투도 제때에 멋지게 해제끼군 해서 지휘부에서는 힘든 과제가 나설 때마다 그에게 맡기군 했다. 특히 대낮에 단신으로 《국회의원》 라용균네 집에 들어가 3만여발의 총탄과 수십만원의 현금을 탈취한것은 지금도 전 유격대의 화제거리였다. 《그땐 집주위에 우리 대원들이 다 매복하고 있었지. 사전정찰도 빈틈없이 했고. 어쨌든 오늘 삼진이가 한 행동은 용감한것이 못돼! 왜냐? 아무 타산도 없이 벌린 행동이였으니까. 죽어도 좋다 하고 하는 행동은 객기에 지나지 않아. 무모한 객기! 알겠어?》 (객기?) 리해할수 없다는듯이 광이는 소대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 명심해야 하는거이…》 옆에 있던 덕구아바이가 끼여들었다. 《누구나 부모의 원쑤를 갚아 자식된 도리를 하는것도 응당하디. 그렇지만 우린 유격대원이야. 단지 부모의 원쑤나 갚자고 산에서 싸우는기 아니란기다. 유격대원들의 최대의 도리는 애국이라는걸 명심해야 해. 나라앞에 지닌 도리를 다하는것, 이것이 바로 우리 빨찌산의 첫째가는 임무고 본분이라는기다.》 (최대의 도리?)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어쩐지 쿵 하고 흉벽을 쳤다. 《이제부턴 삼진이 공부를 해야겠다.》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광이에 대한 학습방조는 만삭인 승옥이에게 맡겨졌다. 충청도 충주태생으로서 더없이 마음씨가 고운데다가 그 마음씨처럼 얼굴역시 보기드문 미인이였다. 얼핏보면 잡지표지나 영화간판에 나타날 그런 미모의 녀인, 몸매조차 더없이 걀람하고 체소해 보이는 녀자가 어떻게 이런 험한 산중에서 싸울가 하고 의문이 들 지경이였다. 부모들과 두 오빠 다 수도사단공세때 피살됐는데 남원군당 부부장이던 남편은 지금 《항미련대》 참모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역시 부모형제들이 다 학살되여 산에 들어 왔으나 부부간이 한 부대에 있지 못하는것이 유격대 규률이였다. 《자, 이것부터 통달을 해유.》 그가 내민 책은 빨간 천뚜껑을 해씌운 《김일성장군략전》이였다. 《이건 그저 보는것이 아니고 자자구구를 달달 외워야 하는거예유, 알았어유?》 《그러지요.》 미인이라는데도 있었지만 자기를 애숭이로 여기는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말끝마다 예입을 써주는데는 어지간히 불편했다. 그런것만큼 약속을 어기지 못할 어려움도 있었다. 그래도 그와는 즐거웠고 학습도 재미가 있었다.
《열네살의 장군님!》 《빼앗긴 나라를 찾을 결심을 품으시고 압록강을 건느신거라요.》 《20살!》 《유격대를 창건하시구 사령관이 되신겁니다.》 《그 후는요?》 《장장 20여성상을 백두산에서 싸우시다가 33살때 마침내 왜놈들을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신겨. 긍께 우리 해동조선은 김일성장군님의 나란겨. 말하자믄 조선의 장군님이 아니라 장군님의 조선인겨. 그렁께 우린 앞으로도 김일성장군님을 받들어 싸워야만 나라를 통일할수 있고 민족의 번영도 이룩할수 있지라.》 장군님략전에 이어 조선로동당강령, 당성강화에 대한 전원회의보고서 그리고 뜻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공산당선언》,《민족주의 제문제》,《변증법적유물론》같은 책들을 닥치는대로 탐독했다. 승옥이는 학습외에도 아지트를 잡는 조건이며 비사리나 꽃대나무로 꼬깔불을 피우는 방법, 뚜껑이 없는 남비로 밥을 하는 리치들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는데 그때면 은연중 집에 있는 어머니생각이 나군 했다. 《워매, 그 손이 뭔거유?》 한번은 말리워 두었던 아구사리잎으로 남자들이 피울 담배를 말고 있는 그를 보며 광이가 소리쳤다. 그토록 얼굴이 고운데 비해 두손만은 형편없이 크고 험했던것이다. 오랜 농부, 그것도 막일로 터갈라진 작인의 손 그대로였다. 《어려서부터 죽세를 해서 그래유.》 죽세, 대나무로 광주리나 바구니를 엮는 일이였다. 그 일을 하면 남자들 손도 곧 꺾쇠처럼 되고 만다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여러 부대들에서 쓰는 싸리광주리나 쌀을 이는 바구니는 다 그의 솜씨였다. 사실 승옥이는 그 손이 말해 주는것처럼 일단 전투를 할 때면 놀라울만치 담차고 용맹스러웠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쌀가마니따위는 한손으로 휘둘렀고 적들을 우회할 때에도 웬만한 릉선쯤은 언제나 맨 앞에서 훨훨 날아 넘었다. 그리고보면 사람의 기질이나 성품은 얼굴보다도 두손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장 출산을 앞둔 그였으나 언제나 남들과 똑같이 전투도 하고 일도 했으며 또 락천적으로 지냈다. 아마 멀지 않아 태여날 새 생명에 대한 각별한 애착이 무시로 그를 발랄하게 만드는것 같았다. 《삼진동무, 내가 이 앨 밸때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유?》 《글쎄요.》 《아, 글쎄 황소만한 호랑이가 치마속으로 훌 날아드는게 아니겠어유, 응 바로 이게 태몽이구나 하는 짐작이 들자 그때부턴 내내 이앤 틀림없이 호랑이를 닮은 호걸이다, 장군감이다 하는 생각이 들지 뭐예유, 우습지유? 그래도 첨엔 산에서 싸우자면 아이가 있어서는 안되겠기에 동무들 몰래 석류나무뿌리를 얼마나 달여 먹었는지 몰라유. 그런데도 안 떨어지유. 꼭 붙어 있는거예유. 그런걸 보면 이앤 확실히 억센 대장부가 틀림없어유. 그렇지유?》 홍조어린 승옥이의 얼굴에는 약간의 부끄러움도 있었으나 자랑의 빛이 더 력연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안해한테 태기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전 련대에 비상을 걸어 대원들을 정렬시키고는 복수련대의 박승옥동지에게 감사를 준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모두들 무슨 소린가 해서 어리둥절 했다는것이다. 그 정도라면 몰라라 그날밤으로 대원들과 함께 산에 주둔해 있는 《토벌대》를 습격하여 전에 없는 혁혁한 전과를 올림으로써 앞으로 태여날 자식을 위한 멋진 《축복전투》까지 치르었다는것이다. 그 바람에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는 물론 전 유격대가 관심을 가지는 아이로 되였던것이다. 《벌써 난 애이름을 다 지어놨어유. 뭔것 같애유?》 《글쎄요.》 광이는 이번에도 그렇게밖에 대꾸할수 없었다. 《성칠이, 성수산에서 잉태를 하고 이 거칠봉에서 해산을 하게 되니 한자씩 따서 성칠이라고 할래유, 어때유?》 《근디 혹시 사내가 아니구 계집애가 나면 워찌는겨?》 《계집애?》 승옥이는 자기가 딸을 낳을수도 있다는데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것 같았다. 《딸이라도 성칠이라고 해야지유 뭐.》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기웃거렸다. 《계집애 이름이 성칠이면 별날가?》 《아따! 이름은 둘째치고 그 호랑이같은 녀장수한테 어떤 사내가 당할란가 몰라.》 《호호.》 《하하.》 두사람은 마주보며 큰소리로 웃어댔다. 한달후에 승옥이는 출산을 했다. 사내아이, 미래의 장군감 성칠이의 출생이였다. 2
부대에 나어린 처녀가 새로 들어왔다. 입대가 아니라 월북하기 위해 북으로 가는 동행을 찾으려고 잠시 입산한 윤희애였다. 후퇴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머니는 외딸인 자기를 버리고 어디론가로 가버렸다고 했다. 광이보다 한살 아래였다. 《북에는 왜 간다는겨?》 전선이 고착되면서 좌익들에 대한 놈들의 탄압과 학살만행이 더욱 심해지자 월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것을 광이도 모르지 않았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북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누구나 하늘처럼 여기는 그 세상에 저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일군했다. 바로 그래서 이북으로 간다는 희애가 더 올곧지 않았던것이다. 《여선 살수 없응께 가는거지. 누굴 믿고 살아?》 동그란 눈을 할기죽 흘기는 양이 네가 나를 보호해 주기라도 하겠느냐는 표정이였다. 호두알같이 야무진 생김새처럼 속대도 여간 당돌한 처녀애가 아니였다. 《둘째삼촌이 의용군으로 떠나면서 꼭 뒤따라 오라고 했지라. 여선 나 혼자 못산다며 거 가야 공부도 하고 맘놓고 살수도 있다는겨.》 《맞았다. 희애말이.》 대뜸 덕구아바이가 맞장구를 쳤다. 《거길 가야 누구나 맘껏 공부도 하고 노래도 부를수 있는기야. 니것 내것 따로 없이 농사도 짓고 일도 하는 세상이니까. 기다려라. 내가 희앨 꼭 데불다 줄테니. 피양에 데불다 주겠다는기다.》 《피-양?… 거 가믄 악대도 있는겨? 극장도 있고?》 《암, 있다마다. 극장도 있고 악대도 다 있지. 곡마단꺼정 있으니꺼니.》 덕구아바이를 맞갖잖게 흘기고난 광이는 다시 희애를 돌아보았다. 《누가 거가 좋다는걸 모른디야? 거가 좋다는걸 몰라서가 아니고 여서 싸울 생각을 해야 한다 이거라. 다 가뿔모 누가 여서 싸울거라?》 《워메, 지가 뭐 빨찌산대장이라? 놀랍제요.》 어처구니 없다는듯 희애는 다시금 눈을 흘겨붙였다. 비록 나이는 아래였으나 밋밋한 체격이며 생각깊은 눈길은 광이보다 더 숙성해보였다. 그런 우월감으로 해선지 설사 광이가 유격대원이라 해도 쉽사리 끌리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도대체 뭔말 하자냐?》 《여선 녀자들도 싸운다 그 말이다. 봐라! 저 승옥동진 갓난애까지 있지만 을매나 잘 싸우냐. 그기 바로 애국이 아이겄나.》 《애국? 난 그런거 못해여. 녀자가 어떻게 이런 험한 산에서 싸운다냐?》 도저히 가당찮다는듯 희애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런데 그런 희애의 생각을 휘딱 뒤집어놓는 사건이 있었다. 희애만이 아니라 모든 대원들을 경악케 한 사건이였다. 그것은 월동준비를 위해 보급투쟁에 나갔던 대원들이 적들과 조우한데서 시작된 일이였다. 그날도 광이는 만장탄이 된 자기의 칼빈탄창을 끝까지 풀어 제꼈다. 일단 총을 쏘면 상대놈의 얼굴을 기어이 벌집으로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그럴 때면 그의 눈에서는 그 새파란 불이 일었고 입에서는 짐승같은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미친사람, 광이의 본색이 그대로 드러나군 했던것이다. 《철수준비!》 덕구아바이의 명령대로 쌀들을 짊어 지던 대원들이 우뚝 굳어 졌다. 네명중 한사람이 없었던것이다. 재호, 희생일가 아니면 부상일가? 오래 따져볼것도 없었다. 첨부터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던것으로 보아 도주가 틀림없었다. 달아난것이다. 말 타고 장가가던 일과 갓 시집온 안해에 대한 흉내로 대원들을 자주 웃기던 그였었다. 한두달이 지나자 점점 말이 적어지고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아지더니 겨울이 가까와 지면서부터는 하루 한두끼 그것도 멀건 죽물로만 살게 되니까 그 고달픈 처지를 항변이나 하듯 텅텅 부어 오른 얼굴을 들고 누구라 없이 멍하니 바라보군 했었다. 그러던 그가 갔다. 괴롭고 춥고 배고프고 안해가 그리워 갔다. 그냥 간것인가 아니면 변절인가? 이번엔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일단 거처지를 미리 꾸려 두었던 연지봉의 월동트로 옮기기로 했다. 그날 밤중의 벼락이동이였다. 눈에 발자국이 찍히지 않게 양지쪽을 택하느라고 이동이 끝난건 새벽녘이였다. 《이 움속에서 겨울을 나는겨?》 처음 들어와 보는 월동트를 요리조리 신기하게 돌아보며 희애가 물었다. 사실 로숙에 비하면 온돌방만치나 아늑한 곳이였다. 땅속이긴 해도 구들과 부엌이 있고 때에 따라서는 통풍도 할수 있게 뙤창까지 마련돼 있었다. 단지 《토벌대》들이 바로 옆을 지나가도 알아채지 못할만큼 철저한 안전과 위장이 담보돼야 했다. 그래야 한해겨울을 무난히 날수 있었다. 《뛰긴 왜 뛴거지? 재호라는 사람말여.》 《아, 색시생각난께 뛴거지 뭐야!》 퉁명스런 광이의 대꾸였다. 실상 아무리 따져봐도 재호가 나쁜 맘 먹고 뛴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언제나 처에 대한 정에 넘쳐있던 사람, 거기다 남달리 큰 체격으로 하여 허기를 참기 어려웠다는것이 다른 하나의 리유라면 리유라고 할수 있으리라… 《색시생각 나믄 뛰는겨? 그럼 색시 있는 사람은 쌈 몬하것네.》 《몬하는게 아이고 방해가 된다 이거라. 그렇께 내처럼 암것도 없는 사람이 더 잘 싸운다 이거여.》 《헹, 그라모 평생 장가가지 말아야제.》 《와 장가를 안가? 희애가 있는디.》 《피-누가 지 각시된디야?》 이젠 이런 롱담도 무랍없이 하는 사이였다. 지난 여름 룡추폭포에서 희애가 미역을 감겠다고 했을 때부터 한결 가까와진 이들이였다. 《미역? 정신 나긋나, 저 폭포밑엔 소가 있는디 명주꾸리 세개를 풀어 넣어도 모자란디야. 여기가 매해 사람 하나씩은 꼭꼭 잡아묵는 곳이여!…》 그러나 희애는 벌써 옷을 활활 벗어 던지고 있었다. 《보지마!》 어느새 봉긋한 가슴우에 두손을 포개얹은 그가 이쪽을 힐끔 돌아보며 되알진 소리로 웨쳤다. 하얀 등살이며 밋밋한 허리가 눈부리를 화끈하게 지지는 바람에 광이는 얼른 바위뒤에 가붙었다. 첨벙 하고 물에 뛰여드는 소리와 함께 흑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 (저 기집애 무섭지도 않는가?) 점점 멀리로 헤염쳐 가는 소리가 들릴수록 광이는 불안했다. 당장 희애가 그 무시무시한 소에 빨려 들어갈것만 같아서였다. 저도 모르게 바위뒤에서 나선 그는 폭포쪽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오지마!》 째는듯 한 날카로운 소리가 그의 달아오른 얼굴을 후려쳤다. (좋다. 어디 실컷 미역이나 감다가 소에 콱 빠지기나 해라. 암만 살려 달라고 소리쳐도 돌아보지 않을팅께.) 홱 하고 뒤로 돌아서서 저벅저벅 걸음을 옮길 때였다. 《가지 마-아!-》 이번에는 다급한 웨침이였으나 광이는 못들은척 하고 그냥 걷기만 했다. (어디 혼나보랑께. 보지도 말래, 오지도 말래, 가지도 말라니 난 이렇게 한자리에 있을것이여.) 《빨리 와- 빨리!-》 어딘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두팔을 허우적거리던 희애가 물속에 꼴깍 잠기는것이였다. 순간 광이는 머리칼이 곤두서는것 같았다. 더는 비명도 물방울을 날리는 몸부림도 없었다. (아이구, 저게 소에 빨려 들었구나.) 광이는 정신없이 달려갔다. 나무가지에 목덜미가 긁히우고 옷가지가 찢어지는것도 몰랐다. 물가에 이르자 옷을 입은채로 물속에 풍덩 뛰여들어 미친듯이 폭포쪽으로 헤염쳐 갔다. 마침 물속에서 새까만 머리가 떠오르며 모지름 쓰는 처녀의 얼굴이 언뜻했다. 다짜고짜 머리칼을 움켜쥔 그는 자기에게로 끌려오는 처녀의 몸뚱이를 한팔로 휘여 감았다. 《희애, 정신차려, 뭔일이여?》 그러나 희애는 대답대신 오만상을 찌프린채 한쪽 종아리를 쥐고 몸을 비틀어 댔다. 《쥐가… 다리에 쥐가 오른겨…》 《쥐가? 어디?》 하지만 광이는 그만 굳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제야 자기가 몸에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희애를 안고 있다는것을 알았기때문이였다. 파아란 물결속에서 일렁이는 처녀의 젖가슴이며 백옥같이 하얀 살결을 내려다보는 순간 정신이 휘-도는것 같았다. 매끌매끌한 알몸뚱이를 안고 있는 손이 불에 덴것처럼 점점 달아오르기만 하는데 버둥질하는 처녀를 놓으려 해도 어쩐지 두팔이 전기에 감전된듯 풀어지지 않았다. 어쨌던 그날 광이는 손에 자개바람이 일때까지 희애의 종아리를 문질러댔다… 그때부터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오누이라도 되는듯한 친밀감, 아니 한순간에 소년, 소녀시절을 뒤에 남기고 갑자기 어른으로 성장한듯한 감을 느끼게 되였던것이다. 《난 우쨌든 이번 월동만 나면 북으로 간다는겨.》 희애의 말에 광이는 코등을 문지르며 씩 웃었다. 《그라모 나도 가야할가 분디.》 《누가 같이 간대여?》 이때 갑자기 《쉿》하는 소리가 트안을 휩쓸었다. 최대의 위험신호, 당장 전투준비를 요구하는 비상신호였다. 모두의 눈길이 기태에게 집중되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 감시구때장을 들치고 밖을 내다보던 광이는 깜짝 놀랐다. 한개 중대쯤 될가?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보아라부대》 망나니들이 아래골짜기에 운집해 있었다. 이제부터 산봉우리로 톺아 오르며 수색을 하려는게 틀림없었다. 투항변절한 자들, 빨찌산에 대해 남다른 원한을 품은 자들로 조직된 악당들이여서 악착하기가 여간 아니였다. (놈들이 어떻게? 이 연지봉아지트를 알놈은 없겠는데…) 이런 생각을 굴리던 광이는 맨앞에서 길잡이를 하는 놈에게 시선이 미친 순간 그만 숨이 멎는것 같았다. 재호, 그처럼 어리무던하다고만 여겼던 그, 다만 힘이 들어 달아 났을뿐이지 결코 변절은 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그가 아닌가?!… 《일단 투쟁에서 물러서면 저길로 굴러 떨어질수밖에 없는거여!》 권총을 거머쥔 기태가 하는 말이였다. 《물론 저 재호도 첨엔 변절할 생각까지 안했을수 있지. 그러나 놈들이 가만 놔두질 않아. 개들 세상에 염소나 양이 공생할수 없듯이 개로 돼야만 살아날수 있으니까. 결국 이 길이냐 아니면 저 길이냐 하는 두길, 그것이 바로 사람으로 사느냐 아니면 개로 되느냐 하는 갈림길이지.》 창황중에도 아버지가 하던 말이 되살아났다. 이놈의 세상은 큰 길이 옳은 길일수 없고 어진 사람이 착하게만 살수 없다던… 말로만 알고있던것을 오늘은 눈으로,심장으로 새기게 되는듯 했다. 《재호도 트의 위치는 모르는것만큼 최대의 은밀성을 보장할것, 만약 놈들이 트를 발견하는 경우 그땐 모두 결사전을 각오할것!》 수류탄이 분배되였다. 《워찌는겨?》 턱밑으로 파고든 희애가 참새처럼 할딱거렸다. 《죽지 않으면 살래기지. 기침은 물론 숨소리도 내지 말아야 혀, 알겄지?》 광이는 얼른 승옥이가 있는 쪽을 돌아 보았다. 성칠이가 걱정스러워서였다. 트이동때 찬바람을 맞은 탓인지 열이 나면서 몹시 보채기 시작했던것이다. (무사해야겄는디, 저 성칠이가 울지 말아야겄는디…) 광이만 아니라 대원들모두가 이 한가지 생각이였다. 벌써 성칠이를 부둥켜안은 승옥이는 한쪽 구석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래도 간간이 짓눌린 성칠이의 기침소리가 담요짬으로 새나왔다. 마침내 놈들이 산릉선으로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트를 어떤 곳에 잡는다는것을 잘 아는 놈들이여서 여간 검질기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밑을 깐깐히 들여다보는가 하면 맨땅을 총창으로 꾹꾹 찔러대기도 했다. 앞선 놈들이 트가까이로 다가오는지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며 두런두런 주고받는 말소리까지 똑똑히 분간할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성칠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숨이 막혀 악을 쓰는, 더는 견딜래야 견딜수가 없어 터뜨리는 비명이였다. 순간에 불과했으나 모두가 와뜰 하며 소스라쳤다. 대원들의 화살같은 시선이 일시에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는 승옥이에게로 날아가 꽂혔다. 그때 지붕에서 흙이 푸실푸실 떨어 져 내렸다. 놈들이 지붕을 밟고 지나가는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그냥 지붕우에서 무엇인가 찔러대는 놈이 있었다. 측백나무와 가시덤불이 엉켜 있는 땅밑을 파고 들어가 든든한 서까래로 받쳐놓은 지붕인데 그런 속을 뚜지는것을 보면 여간내기가 아닌것 같았다. 무슨 냄새라도 맡았는가? 아니면 혹시 성칠이의 울음소리라도?… 이제 만약 다시 성칠이가 울음소리를 내면 그때는 끝장이다. 제발, 제발… 숨이 막히다못해 흉곽이 아프게 조여들어 견딜수 없을 지경이였다. 머리우에서 적병놈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중대장님, 분명 무슨 소리가 났는뎁쇼.》 《뭐야? 틀림없어?》 《틀림없심더.》 《다시 깐깐히 수색해봐.》 인제는 결사전을 하는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둠속에서 사나운 눈빛들이 번뜩이고 수류탄이며 총창을 거머쥐는 소리가 부시럭거렸다. 또다시 떨어 져 내리는 흙덩이들, 뭐라고 떠들어대는 목소리… 그 순간 성칠이가 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리는 없이 가냘프게, 애처롭게 어머니의 품에서 발버둥치기만 했다. 다시금 긴장한 눈길이 승옥이에게 쏠렸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절망적인 눈빛이기도 했다. 까짓거, 울어라, 아무래도 결사전을 벌릴텐데 실컷 울기라도 해라 하는 자포자기적인 표정이였다. 소대장의 입에서 당장 《앞으롯!…》 하는 구령이 떨어지려는 바로 그 순간 승옥이가 얼른 한손을 내들며 머리를 저었다. 잠간만!… 하는 의미의 신호였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승옥이를 주시했다. 한동안 성칠이를 내려다보던 승옥이가 이젠 안심하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됐어요, 이젠… 애기가 잠들었어요.》 가느다란 한줄기 해빛이 작은 손거울로 반사하듯 승옥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치 꿈이라도 꾸는듯 한 얼굴을 따뜻이 비쳐주고 있었다. 그 얼굴은 우는지 웃는지 조용히 잠들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위험은 사라졌다. 트주변을 벌집 쑤시듯 하던 놈들이 종내 헛물을 켜고 룡추골어귀로 내려가고 있었다. 수류탄을 틀어쥐고 최후를 각오하고 있던 대원들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던 기태소대장이, 혀를 깨물고 있던 덕구아바이까지 가슴속에 차있던 숨을 활 내뿜었다. 그때에야 광이도 뒤로 벌렁 나가넘어졌고 눈을 감고 있던 희애도 살며시 눈을 떴다. 기태소대장이 승옥이에게 소리쳤다. 《승옥동무, 이젠 성칠이에게 젖을 물리시오. 맘놓고 울지도 못했는데 젖이라도 실컷 먹게 해야지.》 승옥이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이였다. 다들 밖으로 나가 놈들이 산판에 와서 무슨짓을 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승옥이만은 성칠이를 안고 가둑나무들이 들어차 있는 산비탈로 휘청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덕구아바이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기태소대장에게 귀띔했다. 《승옥동무가 좀 이상합니다레.》 기태는 물론 대원들도 무슨 말인가 해서 그를 멀거니 쳐다보기만 했다. 《저것 좀 보라구요. 아무래도 제 정신 같지 않단 말이외다.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해요. 빨리 따라가 봅시다레.》 가슴을 찌르는 예감에 모두 승옥이가 걸어간 곳으로 밀려갔다. 그러나 곧 한자리에 멈춰선채 굳어 지고 말았다.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승옥이가 산비탈 바위우에 모포로 감싼 성칠이를 눕혀 놓고 끅끅 숨 막히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것이였다. 참을길 없는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해 손톱으로 땅을 허비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성칠아- 내 아들아…》 모두가 흠칫했다. 그러나 어째선가고 무엇때문인가고 물어 보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서로 마주보는 눈길이 처음엔 의혹과 함께 설마하는 공포가 스쳤으나 곧 너무나도 기가 막힌 사실에 몸서리쳤다. 담요안에서 질식한 성칠이가 그만 숨을 거둔것이다. 결국 동지들을 위해 어머니가 아들을 희생시킨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장군감, 그처럼 헌헌장부로 키우리라던 아들이였으나 조국의 푸른 하늘조차 맑은 눈동자에 새겨보지 못한채 죽은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일도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정신없이 어린것을, 인제는 영영 숨을 죽인 성칠이를 마구 흔들고 쓸어 보면서 꺼이꺼이 흐느끼는 승옥이의 울음소리는 목이 갈리여 들릴듯말듯 나직했지만 그것은 온산을 찢고 하늘을 찢고 가슴까지 갈기갈기 찢어 발기는 그런 울음이였다. 《성-칠아-》 광이는 주체할길없이 솟구치는 오열을 목이 터지게 씹어 삼키며 이발을 앙다물었다. 온 가족이 다 피살당하고 하나뿐인 피줄마저 잃지 않으면 안된 승옥이, 그런가 하면 나서부터 사랑을 받을 대신 마음껏 웃어보지도 울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성칠이를 생각하니 억이 막히였다. 이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비참한 사실을 그 아버지가 안다면 얼마나 가슴을 치며 절통해 할것인가!… 과연 무엇이 이런 엄청난 슬픔을 강요하고 또 어째서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자식이 이런 고통을, 이런 죽음을 당해야 한단말인가?… 비로소 광이는 투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준엄한것인가 하는것을 새롭게 깨달았고 희애역시 그날부터 유격대원이 되였던것이다. 3
채찍같은 소나리가 후려치는 캄캄한 밤이였다. 얼마나 세차게 퍼부어대는지 눈을 뜨기는 고사하고 숨조차 들이쉬기 어려웠다. 노상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쳐대야 바로 코앞에 있는 희미한 창문을 가려볼수 있었다. 희애가 보급대상으로 삼고 들어간 집이였다. 남포등이 켜진지 퍼그나 됐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없는걸 보면 사정이 여의치 않는게 분명했다. 요즘은 빨찌산에 대한 경계가 얼마나 심해졌는지 처음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덮어놓고 신고를 해야 했고 매 집에 있는 량곡도 며칠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지서에 가서 등록을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래서 보급공작시간도 폭우가 쏟아지는 자정으로 정했던것이다. 광이는 얼굴에 쏟아져내리는 비물을 연신 푸푸 하고 불어대는 소대장을 흘끔 쳐다보았다. 웬만해서는 쌀이나 후방물자를 구하는 보급투쟁에는 잘 비치지 않는 그였으나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직접 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식량대용이던 바위취는 말할것도 없고 넌출을 따라가며 캐던 더덕조차 찾기 어려워진데다 부대에 재귀열환자까지 퍼지기 시작한 정황은 부득불 소대장자신을 공작에 나서지 않을수 없게 했던것이다. 범도 궁하면 가재잡이를 하는수밖에. 그러나 지금은 범이라기보다 뻣뻣이 굳어진 자세며 비물이 턱으로 줄줄 흘러내려 마치 허연 수염을 달고있는것처럼 보이는 모습은 꼭 두억시니 같았다. 기다리기에 지쳤는지 미간을 찌프린 그가 턱으로 들창을 가리켰다. 가까이 다가가 집안동정을 살펴보라는 뜻이였다. 생기기는 도끼로 대충 다듬은것처럼 울퉁불퉁해도 아무 일이나 고양이 생선 덮치듯 단번에 또 깜쪽같이 해치우지 않고는 속이 풀려 하지 않는 그였다. 전투도 미리 공개하고 하는 전투는 말없이 하는 전투에 비해 그 가치가 10분의 1도 안된다고 여기는터여서 그가 지휘하는 전투는 언제나 돌발적이고 충격적이였으며 그래서 그만치 위험도 컸고 소문 또한 요란했다. 다른것은 나무랄데없는 지휘관이였으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땐 조급해하는것이 탈이였다. 그래도 광이가 그를 남달리 여기는건 일단 자기가 옳다고 결심하면 조건을 가리며 우물쭈물하거나 누구의 눈치를 보는 일없이 완강하게 내밀어 기어이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사내다운 패기였다. 그야말로 대로를 활개치는 군자요, 그 어떤 장애도 서슴없이 짓밟고 나가는 대장부의 전형이라고 생각되였다. 토벽을 뚫어 낸 들창에 다가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양철처마를 두드려 대는 비소리에 아무것도 가려들을수 없었다. 할수없이 창을 에돌아 집모퉁이로 나서는데 마침 번쩍하고 작렬하는 번개불이 비스듬히 걸린 구유통과 함께 살집이 피둥피둥한 황소를 환하니 눈앞에 새기였다. 크니까 황소라고 느꼈을뿐이지 번개불에 비친것은 《백소》였다. 마구간도 그옆에 있는 헛간까지도 온통 회가루를 뿌려놓은듯 새하얗던것이 다시 캄캄한 칠흑속에 파묻혔다. 가재처럼 발부터 들이밀어 구유통밑을 겨우 새들어 가자 이번엔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에 놀랐는지 황소가 허연 눈알을 디룩거리며 마주 쏘아보았다. 앞채로 통하는 일각문을 넘어 뜰안에 들어섰을 때에야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것 참, 신통하웨다. 오늘 찾아오길 잘했단 말이웨다. 마침 처까지 아이 학교입학때문에 군에 가고 없으니 얼마나 신통한 날을 골라왔나 말이요. 물론 그런걸 사전에 다 알고왔겠지만… 걱정마시우. 우리 집엔 쌀이나 소금만 아니라 기름도 있수다. 들깨기름말이요. 산에선 그것도 필요하갔지요?》 광이는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미리 알아보기는 고사하고 마을과 얼마간 떨어져있는 집이여서 찾아들었는데 이렇게 고마울데라구야! 말씨로 보아 이북에서 온 피난민이 분명했다. 쉽지 않는 주인의 고마운 인정에 당장 방에 뛰여들어가 손을 덥석 잡아주고 싶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혼자 왔슈? 그 많은걸 녀자몸으로 어떻게 가져간다구?》 《주인님이 주신다면야 우리 동지들이 언제라도 찾아오지요. 그래 언제쯤 오면 좋을가요?》 《글쎄…》 동안을 두었던 주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 오늘은 홀몸이란 말이우?》 《그래요.》 희애가 아직은 이쪽 사정을 털어놓지 않은 모양이였다. 상대를 충분히 믿을수 있을 때까지는 일행을 로출시키지 않는것이 보급투쟁에서의 원칙이였다. 서뿔리 덤비다가 피해를 입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던것이다. 처음으로 보급투쟁에 나선 희애지만 역시 오달진 성격대로 빈틈이 없었다. 《그럼 오늘은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주인님의 고마운 인심을 전하면 우리 동지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보매 약속대로 일단 밖에 나와 소대장의 지시를 받은 다음 차후행동으로 넘어갈 심산인것 같았다. 《아니, 이보게 체네! 폭우가 쏟아지는 이 밤에 어딜 간다고 그러나. 괜한 고생말고 저 아래방에서 그냥 쉬라구. 내가 돌봐줄테니.》 각근한 어조는 마치 자기 집에 온것으로 알고 안심하라는 정이 깃들어있는가 하면 돌봐주겠다고 한 마지막말에는 어쩐지 야릇한 비양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전 가얍니다. 동지들이 기다린께요.》 《그럼 거기 잠간 앉게나. 내 할말이 있으니.》 어딘가 마디진 목소리였다. 《사실 체네가 오늘 이렇게 날 찾아왔지만 나 역시 이전부터 자네들을 찾던 사람이야. 알갔나? 왜 찾았는가?… 그건 이제 내 얘길 들으면 알게 돼. 그런데 먼저 묻고 싶은건 사전에 우리 집사정을 알고 왔을텐데 어째서 한가지만은 몰랐는가 하는거네. 그것도 제일 중요한걸 말이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담배대를 뽑아 입에 무는것 같았다. 《그게 뭔지 아나? 그건 바로 내가 빨갱이들에 대한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품고 이북에서 월남해온 사람이라는거야. 알갔어? 난 지금도 우리 집을 하루아침에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버지까지 비명에 돌아가게 한 그 악귀같은 놈들을 생각하면 속에서 불이 일고 치가 떨려 견딜수가 없어. 어느때던 기어이 그 복수를 하리라고 벼르던 사람이야. 빨갱이들에 대한 피맺힌 복수를 일일천추로 고대하던 사람이란 말이야. 자 이쯤하면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갔지?》 《?!》 이게 무슨 일인가? 가슴이 철렁했다.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더니 이런 반동놈의 집일줄이야! 결국 승냥이굴에 뛰여든 셈이였다. 속에 그런 칼을 품고있으면서도 희애를 슬슬 구슬려댄걸 보면 여간 흉칙한 놈이 아니였다. 저놈을 어떻게 한다? 어느새 소대장이 뒤에 다가섰다. 우람찬 체구의 륙척장신이 어떻게 구유통밑을 빠져나왔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으나 그걸 따지고말고 할 계제가 아니였다. 량쪽 눈섭이 곤두서 있는것으로 보아 그도 벌써 방안의 낌새를 알아차린듯 했다. 《널 우리 집에 보낸 이상 너의 패당들이 어느 때던 이리로 올텐즉 그땐 네놈들을 몽땅 잡아치울테다. 야, 이걸 봐. 이게 뭔지 알아? 이 줄만 잡아당기면 마을에 상주하고있는 경찰들이 당장 이리로 들이닥치게 돼있어. 네놈들을 잡기 위해 이젠 마을에 경찰들이 상주해있고 매 집에 이런 신호줄까지 있다는걸 몰랐지? 이 빨갱이새끼들, 오늘이 마지막인줄 알아라.》 이젠 매 집이 신호줄로 련결되고 경찰들까지 상주하다니! 주인놈이 어째서 기세등등했는지 짐작이 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방에 뛰여들어 주인놈을 요정내고싶었으나 그 신호줄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주인놈이 거기서 순간이라도 떨어지는 기회를 노려야 했다. 광이는 자기를 마주보는 소대장의 눈빛을 통해 그도 같은 생각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두사람이 밖에서 기회를 노리고있다는것을 아는 희애역시 속으로는 그 한가지 생각뿐이리라. 그러나 혹시 희애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라도 하지 않을가 하는 불안이 가슴을 조이였다. 《근디 워찌요?》 희애의 목소리였다. 주눅이 들거나 공포에 젖어있기는커녕 언제나처럼 당돌한 어조였다. 《암만 기달려도 오늘은 우리 동지들이 오지 않을팅께. 내가 가서 보고를 해야 오겄는지 말겄는지 결정하는겨. 우리 빨찌산이 뭐 그렇게 쉽게 붙들린데여?》 《야, 이년아! 내가 누군줄 알아! 전쟁초기엔 <치안대>에도 발을 들여놓아 숱한 빨갱이들을 내 손으로 이리 굽고 저리 데쳐봤단 말이다. 흥, 네놈들이 하는 수작들을 몰라서? 등치면서 간빼먹는 놈들, 깝질을 벗겨도 300리나 내뛰는 놈들, 그렇지만 오늘은 내 손에서 절대 빠지지 못해! 그래 네까짓 놈들이 암만 발광해야 국군을 당하고 미군을 당할것 같아서 지랄이야? 안돼, 안되구말구, 아니, 이년이… 아니…》 갑자기 주인놈의 비명소리와 함께 방안그림자가 파도쳤다. 희애가 주인놈에게 달려든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태와 함께 방문을 차고 뛰여든 광이는 대뜸 뒤로 자빠져있는 주인놈의 가슴부터 타고앉았다. 신호줄은 바로 머리우에서 대룽거리고 있었다. 《어?-》 저도 모를 괴상한 소리를 지른 주인놈이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삽날처럼 모가 난 뾰족한 턱이며 감때사나운 눈초리가 첫눈에도 여간 능칼진 놈이 아니라는것이 알렸다. 《이놈아!》 추상같은 호령과 함께 놈의 멱살을 틀어쥔 기태가 귀싸대기부터 한대 올려 붙였다. 얼마나 드센 타격인지 놈은 바람에 불린 나무잎처럼 순간에 방구석에 곤두박혔다. 부시럭거리며 일어나는 놈의 면상을 이번에는 날창같은 구두발길이 날아가 꽂혔다. 벽체가 부르르 떨면서 남포등이 그네처럼 흔들거렸다. 《뭐가 어쩌구 어째? 월남하기전엔 <치안대>에 있었다구?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마침 잘됐다.》 천정에 닿는 키며 우람한 몸집, 거기다가 천둥같은 목소리로 하여 웬만한 놈 같으면 벌써 넉살이 떨어졌으련만 기태를 쏘아보는 주인놈의 눈길은 사뭇 독기가 서려 있었다. 반들거리는 눈길이 이제라도 기회만 있으면 신호줄을 잡아당길 속심이 헨둥했다. 그러나 신호줄은 벌써 희애가 한손에 감아쥐고 칼로 토막내고 있었다. 그것을 여겨보던 주인놈은 마치 사지를 잘리우기라도 한것처럼 괴상한 신음을 토했다. 《으 흐흐… 읏흐! -》 방바닥을 내려치는 주인놈의 통탄은 다잡은 《빨갱이》를 놓쳤다는 통분함과 함께 죽이자던 놈들에게 도리여 자기가 죽게 되였다는 돌이킬길 없는 절망으로 하여 끊어졌다가는 이어지고 이어졌다가는 다시 끊어지군 했다. 《으흐흐…》 《이놈아! 그래 이북에서 갖은 못된짓을 다하다가 이남으로 도망오면 여기선 편안히 살줄 알았느냐. 바로 너같은 놈들 없애자고 총을 든 우리들이고 너같은 놈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싸우는 우리들이다.》 광이는 창황중에도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쳤다. 이북에서 이남으로 도망쳐 온 주인놈과 이남에서 이북 같은 세상을 만들자고 싸우는 자기들, 한나라 지경에서 같이 살면서도 어째서 이다지도 판이하고 적대적이란 말인가? 자기들을 잡겠다고 노리던 놈이 결국 자기들한테 되잡혔지만 자기들 역시 지금 놈들의 포위속에 있지 않는가. 잡고 잡히우고 죽고 죽이고… 자기들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쩐지 살벌한 남북의 현실, 복잡한 《한》반도의 축도처럼 여겨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기태의 말처럼 바로 주인놈같은 반동들때문에 고생하는 자기들이였고 그래서 싸우지 않을수 없는 자기들이였다. 반동들이 없는 세상, 그런 놈들이 있어서는 절대로 살지 못할 세상이기에 싸울수 밖에 없고 또 싸워선 반드시 이겨야 할 자기들이였다. 그래서 혁명이였다. 《여보게!》 갑자기 주인놈이 숙이고 있던 머리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두눈에 서려있던 독기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간절하고도 비굴한 애원이 어려 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의 표정이 이렇게도 쉽사리 변할수 있다는것이 어쩐지 놀랍기만 했다. 이젠 분하다거나 원통하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우선 살고부터 봐야겠다는 단 하나의 욕망뿐인지 쳐다보는 꼬락서니가 꼭 용서를 바라는 삽살개의 표정이였다. 《내가 왜 자네들 수고를 모르겠나. 산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을텐가 말이네.》 표정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이렇게 바꿀수 있다는것이 더 놀라왔다. 《닥쳐라 이놈, 네놈이 어떻게 우릴 알아! 그래 <빨갱이>라고 온 집안이 도륙당한 우리 동지들의 사무친 원한을 네가 알기나 해? 같이 싸우는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제 아이까지 희생시키는 어머니의 심정을 네놈이 아느냐 말이다. 어불성설도 유만부동이지.》 《우리 집엔 당신들이 바라는 쌀도 있고 소금도 있소.》 《그래서?》 《그걸 몽땅 주겠으니 가져가우.》 《가져가지.》 《소도 있으니 거기다 싣고 가라구요.》 《그렇게 하지.》 《그러니 제발 목숨, 목숨만 살려주우.》 그제야 기태의 한쪽 입귀가 실룩했다. 입이 웃으면 눈도 따라웃는것이 례사로운 표정이련만 이럴 때의 그의 눈은 오히려 더 서늘한 빛을 띠였다. 《목숨? 그래 네 목숨값이 그게 다냐?》 《아니 더 있소. 돈도 있고 금붙이도 얼마간 있으니 그것도 다 가져가우. 대신 그저 목숨만, 제발 목숨만…》 방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주인놈을 보느라니 광이는 어쩐지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래도 독기를 품고 마주 쏘아볼 때가 훨씬 사람다왔다. 《그러니 꼭 살고싶단 말이지…》 기태의 신호에 따라 희애와 함께 곡간으로 찾아 들어간 광이는 주인의 《분부》대로 우선 두가마니의 쌀과 약간의 소금을 마구간으로 날랐다. 그리고는 소잔등에 기르마를 얹은 다음 그우에 멜바로 든든히 비끄러 맸다. 기름도 있었으나 그것은 《양보》할수 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는 40리 산길을 폭우속에서 소와 함께 질주해야 하기때문이였다. 다시 방에 돌아왔을 땐 아래방으로 내려 갔는지 소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주인놈만 여전히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까처럼 엎드려 있는것이 아니라 잠이 든것처럼 두눈을 감은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있었다. 처단된것이다. 4
정전이 되면서 빨찌산토벌을 맡아나선것은 괴뢰륙군 5사였다. 전쟁때 세운 《무공》을 빨찌산토벌로 더욱 빛내이라는 리승만의 《특명》이였으나 배경은 워낙 악질적인 《반공》부대라는데 있었다. 놈들은 처음부터 대대적인 무력으로 빨찌산토벌에 나섰다. 정규사단무력에 비하면 적수공권이나 다름없는 유격대였지만 일단 아지트 비슷한 냄새를 맡기라도 하면 풀대 하나 없이 초토화했다. 그와 함께 각지에 있는 도당, 군당들에 대한 습격도 놓치지 않았는데 남원에는 《빨갱이완전소멸》을 위한 재판소까지 설치해놓고 토벌하여 체포하고 처형하기 위한 이를테면 《용공세력말살》의 세가지 조건을 그쯘하게 갖추었던것이다. 놈들이 얼마나 극악하게 날쳤던지 1953년 가을에는 벌써 충남, 경북, 경남, 전남도당이 다 파괴되고 숱한 유격부대들도 해산되지 않을수 없었다. 신문과 보도들은 매일처럼 《공비》들을 《토벌》하는 5사단의 혁혁한 《전과》를 대서특필했다. 놈들의 공세로 하여 도당에서는 부득불 련대를 해산하고 소부대활동으로 넘어갈데 대한 조치를 취했다. 그래도 전북도당만은 아직 회문산에 건재해 있다는것을 모두들 커다란 위안으로 삼고있었다. 언제나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을 나타내군 하던 기태였으나 요즘에 와서는 더욱 말수더구가 적어 졌다. 대원들을 바라볼 때마다 번뜩이군 하는 눈길조차 이전같은 섬광대신 어떤 초조와 불만이 어리군 했다. 하긴 매일처럼 당성강화를 위한 학습과 토론, 그외에는 지휘부에서 무슨 지시가 없을가 하고 기다리는 마냥 지루하고 따분한 나날의 련속인데야. 《안되겠어. 더는 이대로 있을수 없어!》 그는 혼자소리처럼 되뇌이군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소대장의 한쪽 입귀가 비죽하니 들려 있는것을 본 대원들은 하나같이 긴장했다. 그 입귀가 일어 설때마다 범상치 않은 일이 터진다는것을 잘 알고 있는 대원들이였던것이다. 흥분을 누를 때면 그런것처럼 그는 한참 하늘을 쏘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통보에 의하면 아이젠하워특사가 탄 특수렬차가 이 호남선을 통과하오. 그걸 우리가 까자는거요. 장성 갈재굽인돌이에서! 어떻소?》 언제나 즉석에서 결심하고 행동하는것을 철칙으로 삼는 그였으나 이번에는 대원들에게 어떤가고 물었다. 그만치 심중하고도 어려운 과제가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니 이번 전투도 상부에서 우리한테 맡겼겠수다?》 덕구아바이가 웅근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니, 내 자체의 결심이요.》 소대장은 단호한 눈길로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목적은 뭔가? 그 전투로 하여 놈들의 정수리에 불벼락을 안기는 동시에 위축된 빨찌산들의 기세를 돋구자는거요.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것을, 살아서 싸우고 있다는것을 세상에 보란듯이 시위하자는거요. 틀림없이 온 나라가 법석 끓을거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으나 로당원인 덕구아바이만은 다시 고개를 기웃거렸다. 《소대장동무, 그런 전투야 응당 도당의 승인을 받아야지요.》 《전투는 도당이 아니라 내가, 아니 우리가 한단 말이요!》 소대장의 결심은 확고했다. 바로 그런 결패와 배짱이 있어 남다른 위훈도 많이 세운 그가 아닌가. 광이는 덕구아바이의 지나친 걱정이 언짢았다. 얼마나 대단한 결심인가. 아이젠하워의 특사를 사로잡거나 죽여버린다면 소대장이 말한것처럼 온 나라는 물론 세계가 다 법석 끓을것이 아니겠는가! 소대장이 전투명령을 내렸다. 《렬차는 오늘 밤 11시에 통과하오. 레루를 들어내는 임무는 덕구동무, 용진동무, 태식동무, 원호동무, 칠성동무들이요. 렬차습격은 내가 직접 지휘하겠소!》 그는 습격조와 엄호조성원들까지 한사람한사람 이름을 불렀다. 일단 결심만 하면 절대로 물러서는 일이 없는 그였다. 《지도 참가하겄습니다.》 자기 이름이 없는데 불만을 느낀 광이가 팔을 쳐들어 보이며 나섰다. 사실 그는 보급투쟁에서 돌아올 때 소와 함께 언덕에서 나딩군바람에 한쪽 어깨를 상했는데 팔을 들어 보인것은 이젠 그 상처가 다 나았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곳 갈재를 넘어가는 철길은 내가 학교 댕길적마다 글로 댕기서 누구보다도 잘 알지유.》 《그래? 그럼 삼진이도 가자!》 간단한 주의사항과 함께 군호, 비상선이 하달되였다. 《니는 와 자꾸 나서기만 하냐? 대장도 아인기.》 전투준비를 하는데 옆에 다가선 희애가 새초롬해서 내쏘았다. 물론 남들이 듣지 못하게 하는 말이였다. 《대장은 아니래두 쫄병은 되지 말아야제. 앞장서지 않음 쫄병인기라.》 《잘한다 잘한당께 지 죽는 줄도 모르는겨. 그러다 진짜 죽으믄 워찌여?》 행군때마다 늘 척후를 담당했고 전투에서도 남다른 용맹을 떨치는것으로 하여 광이에 대한 소문이 자자할 때였다. 도당위원장까지도 모임때면 그를 늘 《꼬마돌격대장》이라고 자랑하며 모범으로 내세우군 했다. 《걱정 말그라. 죽지 않을팅께!》 《지가 뭐 하느님인가?》 《왜 난 하느님 못된다냐?》 그런데 그날 광이는 정말 하느님이 있다는 천당으로 갈번 했다. 아니 천당이 아니라 천길 아득한 지옥의 나락에 굴러 떨어 졌던것이다. 이젠 죽었구나, 이게 바로 죽음이구나 하는 절망으로 모든걸 포기했던 자기가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저로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행운이 아닐수 없었다. 렬차가 통과하기로 된 시간을 앞두고 철길의 레루 한구간을 들어낸 대원들은 산비탈에 매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동차를 탄 적들이 나타난것이였다. 거기엔 철길순시를 맡은 놈들이 빼곡이 타고있었다. 아이젠하워의 특사가 타고 갈 렬차를 호위하는 놈들이였다. 예견치 못했던 일이여서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격준비!》 기태소대장이 나직한 소리로 웨쳤다. 이윽고 놈들이 탄 전동차가 해체된 철길에 와 멎었다. 《이건 뭐야!》 장교놈이 전동차우에서 소리치는것과 동시에 기태의 구령이 울렸다. 《사격!-》 일제사격이 퍼부어졌다. 전동차에서 뛰여내리던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딩굴었다. 《쏴라- 모조리 죽여라!-》 어느새 그뒤를 따르던 놈들까지 전투준비를 하고 달려들었다. 기태소대장이 곧 대원들을 뒤쪽 야산으로 물러서게 했으나 강력한 집중사격에 벌써 몇사람이 허리를 꺾으며 쓰러졌다. 수적으로, 화력에서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들은 포위환을 좁히며 밋밋한 야산을 총탄의 우박으로 휩쓸기 시작했다. 누구나 유격투쟁에서는 신속한 습격과 철수가 기본방식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는 정황이였다. 포위되면 전멸이다. 오직 이 한가지 생각만이 소대장뿐아니라 모두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포위를 뚫어야겠소. 결사대로 나설 사람은…》 소대장이 얼핏 뒤돌아 보았다. 결사대가 당장 육탄이 되여 포위를 뚫어야 했던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적들의 화력이 집중될 때 나머지 기본력량이 빠져나갈수 있는것이다. 광이도 그런 소대장의 의도를 알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칠성동무, 경팔동무, 삼진동무!…》 광이는 금시 심장이 뚝 멎는듯 했다. 《옛!》 하고 대답을 해야 했으나 혀가 가드라든것 같았다. 《삼진이!》 다시 불러서야 대답을 했다. 어쩐지 부끄러웠다. 죽음이 두려워서라기보다 너무도 위급한 정황이 마음을 얼어붙게 한것임을 그는 알지 못했다. 후에 가서야 사람은 언제 어느 때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서슴없이 자기 생명을 내던지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 그였다. 그러자면 마음을 받쳐주는 신념의 기둥이 든든해야 했다. 떳떳하고 장한 그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고 거기에 늘 준비되기까지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고보면 그날 결사대로 나가기까지 그가 겪게 된 짜릿한 공포와 자기를 타매한 수치심은 사실 후날 감옥에서, 적들의 모진 고문과 회유앞에서 굴함없이 싸울수 있게 한 신념의 한가닥 성장과정이기도 했다. (죽었구나!) 처음 머리를 스쳐간 생각이였다. (죽으면 어때? 끝까지 해볼 판이지!) 다음 순간에 떠오른 각오였다. 그는 칼빈총을 움켜쥐고 적들속으로 뛰여들었다. 누가 먼저 쓰러졌고 누가 뭐라고 웨쳐댔는지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놈들을 향해 몰사격을 퍼부었고 또 어떻게 갈재너머에 있는 덕화천까지 달려갔는지, 어떻게 그 아스라한 절벽우에서 돌덩이처럼 내리굴렀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가물가물해지는 의식속에서도 온몸을 토막내는듯 한 동통과 함께 아래도리가 축축히 젖어든 감촉을 느꼈을 때에야 겨우 눈을 뜰수 있었다. 여전히 사위를 분간할수 없는 밤이였다. (살았는가?) 꿈이 아닌가 싶어 몸을 움직여 보는데 옆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파묻는것도 구찮은디 기양 물에 던지뿌릿가?》 《뭔 소리냐. 끌고가야 빨갱이잡은 공을 세울게 아녀!》 《젠장, 춥긴 왜 이리 춥은거지? 공이고 뭐고 난 그저 빨리 뜨뜻한 아래목에 파묻혀서 쐐주잔 빨 생각밖에 없다. 제밀할!》 세놈의 순시대가 물가에서 자기의 처리방도를 놓고 떠드는 중이였다. 기를 쓰고 따라왔으나 열길이나 되는 절벽에서 내리뛰는것을 보고는 아예 죽탕이 된 시체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아직 숨이 붙어있다는것을 알긴 했지만 다 죽은 놈을 업고 30리나 되는 밤길을 가기가 끔찍했는지… 하긴 광이도 학교때 미역을 감던 생각 하나로 물이겠거니 하고 뛰여 내렸는데 웬걸 물은 강바닥을 절반도 적시지 못하고 있었던것이다. 《이렇게 해여.》 한놈이 갑자기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저놈을 끄슬고 가긴 힘등께 모가지만 따갖고 가자는거라. 어때여?》 등골이 오싹해진 광이는 얼른 물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온몸이 찢어질듯 저리고 아팠으나 이발을 사려물고 한번 또 한번 딩굴었다. 헤염을 치자는것도 아니였고 칠수도 없었다. 다만 붙들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목을 잘리울수는 없다는 한가지생각에 그저 몸을 물에 맡겼을뿐이였다. 달도 없고 별조차 없는 캄캄한 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것은 전라남도 황룡강하류, 임실부락에서 사는 어부네 집이였다. 알고보니 사흘만이였다. 새벽그물을 거두러 나갔던 사공령감이 너럭바위우에 얹혀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집으로 업고왔다는것이다. 그러고보면 자기의 목숨도 어지간히 질긴축이라는 생각에 허구픈 웃음이 샜다. 《그러니 예수처럼 죽었다살았다 했구만 그래. 음, 허허.》 부대에 돌아 왔을 때 소대장이 한 말이였다. 지가 뭐 하느님이야 하던 희애말이 떠오르면서 정말 죽었다살아난 예수같은 거룩한 기분이 들어 광이도 히죽이 따라 웃었다. 《그만하면 이젠 진짜 빨찌산이야. 당당한 돌격대장이란 말여.》 광이네의 육탄돌격으로 습격조는 무사히 빠져나올수 있었으나 도당에 불려간 기태는 책벌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의 용맹과 지휘능력을 한번 과시해보려고 무모한 전투를 자의대로 조직했던 그로서는 뜻밖에도 불신임이라는 타격이 따랐던것이다. 그때부터 그가 말이 적어지고 때없이 우울해진다는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후날 얼마나 무서운 후과를 빚어내는가 하는것은 미처 몰랐던것이다. 5
《내가 얼매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는가말여.》 이렇게 쏘아붙이는 희애의 두눈에는 물기가 번뜩였다. 《소대장보고 막 해댄겨. 삼진이는 어디 내뿔고 혼자 왔는가고, 당장 찾아내라구 말여!》 충분히 그럴수 있는 희애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희애만은 소대장에게 제 하고싶은 소리를 다하군 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여느 대원들에게는 그처럼 엄격한 기태였지만 희애에게는 정도이상의 아량을 베풀군 했는데 그때마다 두사람의 관계는 마치 한쪽은 응당 투정을 하고 또 한쪽은 그것을 너그러운 아량으로 받아들이는데 습관돼 있는것 같았다. 《내가 왜 죽을까이. 희애가 있는디.》 사실 광이는 희애만 옆에 있다면 자기는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아니 설사 죽었다해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광이가 18살 나이에 들어서던 때의 일이였다. 흔히 피가 동이로 차있다고 하는 시절, 사내로서의 면모가 수염이 나는것으로부터 알려지는 시절, 무모한 용기와 모험도 서슴지 않으며 불길처럼 자신을 태우는 시절이였다.… 그날부터 광이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래야 얼마간의 《다이야찡》가루약과 가둑나무뿌리, 쑥잎을 상처에 갈아대는게 고작이였다. 그런 볼품없는 약에 비하면 상처는 무려 세군데나 되였다. 어깨는 총탄이 스쳐간 찰과상이였고 파편이 파헤친 허벅다리는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으며 발뒤꿈치뼈는 또 금이 간 상태였다. 그래도 희애는 온갖 정성을 다했다. 아침저녁 쑥으로 소독한 상처에 가루약을 치고는 붕대를 감아주는가 하면 어디서 구해오는지 토밥같이 부근부근한 버드나무 속살로는 발목을 감싸주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허벅다리 상처가 조금이라도 도질 기미가 보이면 서슴없이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내군 했는데 그때에도 얼굴 한번 찌프리지 않았다. 마치 이제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였다는 기색이였다. 《희애, 신셀 어찌 갚을란가 몰라.》 온갖 주접스러운 시중을 다 들어야 하는것이 미안스러워 한마디 할 때면 희애는 언제나처럼 그 동그란 눈부터 꼬부장하게 휘였다. 《혁명동지끼리 신세란기 무엇이여, 내 이름이 왜 희앤줄 알아? 기쁠 희자에 사랑 애자, 내한텐 은제나 기쁜 일과 사랑만 있다는겨. 알것어?》 정말 그런것 같기도 했다. 희애와 마주하면 아무리 괴롭고 울적할 때도 활기가 돌면서 웃음이 나오군 했는데 그때면 그의 몸에서 넘쳐나는 생기와 활력이 어느새 자기 몸에 옮겨지는듯 싶었다. 첨엔 그저 천성이 발랄하고 오돌찬 처녀로만 여겼댔으나 같이 생활하면서 보니 그저 밝고 명랑한것이 아니라 마음속 밑바닥에는 남다른 온정이 고여 있었다. 확실히 제말대로 그의 가슴속에는 남들과는 대비할수도 없는 그런 기쁨과 사랑이 충만돼 있어 그것을 쏟아놓지 않고는 견디지 못해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그만 그와는 정반대 되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은 모두가 월동트를 꾸리기 위해 적상산으로 작업을 떠나고 둘만 산에 남게 된 날이였다. 한동안 자리를 떴던 희애가 어슬녘에야 나타났는데 그의 손에는 여느때 보지않던 군용밥통과 남비가 들려 있었다. 《그기 뭣이여?》 언제나처럼 대답대신 입을 오무린채 광이앞에 쪼그리고 앉은 희애는 남비뚜껑부터 열어 보였다. 놀랍게도 김이 문문 이는 소고기국이였다. 밥통에는 하얀쌀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아-니?!》 광이가 펄쩍 뛰였다. 기뻐서가 아니라 아연해서 터뜨리는 비명이였다. 부대에는 전번 보급투쟁에서 얻은 쌀과 소고기가 얼마간 남아 있었지만 월동용식량이라는것으로 하여 매끼 한줌씩 그것도 더덕이나 콩을 섞은 죽으로만 끓이군 했다. 소고기 역시 소금에 절궈둔채 웬만해서는 절대 다치지 않았다. 빨찌산생활은 없을 때는 없어서 배를 곯았고 있을 때는 또 아끼느라고 배를 곯았다. 식량이 있다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는데 그래서 더 아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런데 그걸 희애가 제 맘대로 퍼낸것이다. 그것도 동지들이 없는 때. 엄격한 생활규정에 대한 란폭한 위반도 위반이였으나 광이를 더 참을수 없게 만든것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정직하고 착하게만 살아야 하며 그것이 곧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는 기준이라는 체질화된 철리를 희애가 너무나도 태연하게 유린했기때문이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이런 행동은 강도나 살인보다도 더 악하고 혐오스런 짓이였다. 《어서 묵고 빨리 낫기나 해여. 이걸 묵어야 새살이 돋는거라.》 《뭐라?》 마치 처음보는 사람이기라도 한것처럼 희애를 찬찬히 여겨보던 광이는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너도 사람이여? 량심이 있는가말여. 그 쌀과 고기를 우리 동지들이 얼마나 아낀다는걸 몰라서 맘대로 손을 대여? 손이 떨리지도 않아? 부끄럽지도 않은가 말여, 그리고 봉께 넌 도적이여 도적!》 《도적?》 그제야 광이가 무엇때문에 성을 내는지 깨닫게 된 희애의 두눈이 금시 꼿꼿해졌다. 어떤 자책은 커녕 도리여 자기의 선의에 대한 무시와 진정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으로 하여 몸을 바르르 떨었다. 《지가 구해온 쌀을 먹는것도 도둑이여? 그것도 내가 먹겠대여? 삼진이가 먹고 빨리 나으라고…》 새된 소리로 항변하던 희애였으나 철석 하고 광이의 손이 뺨을 후려치는 바람에 그만 아연실색했다. 《누가 이런걸 먹겠대여? 니는 이걸 묵어야 새살이 돋는다지만 난 이걸 묵으믄 사람이 아닌기라. 도적인겨. 아니, 도적보다 더한 배신자, 동지들을 속이는 배반자가 되는거라. 그래 내가 이걸 묵고 워찌 동지들을 마주 본단 말여.》 《…》 광이를 바라보는 희애의 눈길은 노여움이라기보다 어떤 놀라움, 마치 안심하고 길을 걷던 사람이 갑자기 천길 낭떠러지를 마주 했을 때와 같은 그런 눈길이였다. 전혀 알지 못했던 광이의 새로운 모습에 질겁한 표정이였다. 한참 그 자리에 서있던 희애가 뒤로 홱 돌아 섰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회나무들이 우거진 산비탈로 사라져 갔다. 결국 언제나 기쁨과 사랑만을 주던 희애의 행동이 광이에게는 모욕과 분노로 되였고 그것이 희애에게는 견딜수 없는 슬픔과 원망이 되여 가슴에 새겨 졌던 것이다. 그날 밤이였다. 혼곤히 잠들었던 광이는 이상한 기척에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옆에 왔는지 자기 손을 꼭 쥔 희애가 앉아 있었다.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자기가 지나쳤다는 가책으로 하여 가슴이 아렸다. 별치않는 일에도 정도이상으로 격해질 때가 있는 괴벽한 자신을 탓하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너무했응께 용서해여.》 희애가 고개를 저었다. 《아녀, 내가 암것도 몰랐던겨. 빨찌산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것도,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싸우는가 하는것도…》 《이 봐라. 우리가 산에서 이런 고생을 하믄서도 견딜수 있는기 바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때문이 아니것나. 지보다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는기 빨찌산이고 깨끗한 량심으로 사는기 빨찌산이라. 그기없으믄 우린 하모 다 죽어뿌렀을거라.》 《그런겨. 내가 삼진일 너무도 몰랐던겨. 내가 아까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 고개를 든 희애가 빤히 쳐다보았다. 《내 이름이 사랑애 자가 아니라 슬플 애 자라는것이여. 삼진이한테나 동지들한테 사랑이 아니라 괴로움을 주었응께. 그치? 아마 그기 내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라.》 《그란 말 말그라. 사람한테 운명이 따로 있는기 아닌기라. 니 옆에 내가 있고 내 옆에 니가 있으믄 되는기제 운명이 뭣이여. 난 니가 옆에 있응께 얼매나 힘이 나는지 몰라. 니도 이제부턴 힘들때믄 날 생각하그라. 그라믄 우리 둘이가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나 같은것잉께. 알것지?》
《그래, 그럴겨.》 고개를 까닥이던 희애가 광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광이 역시 저도 모르게 한팔로 희애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저절로 후두둑 하고 가슴이 뛰면서 이상한 소용돌이가 전류처럼 온몸을 누볐다. 여태껏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그런 류다른 걱정이 명치끝을 치받는 동시에 어떤 공포가 온몸을 엄습하는것이였다. 문득 언젠가 보았던 희애의 그 눈부신 알몸이 눈앞에 새겨지면서 목이 타오르고 입안이 말라 들었다. 쿵쿵 하는 심장의 박동만이 점점 더 귀를 멍하게 할뿐이였다. 분명 자기가 더는 넘어서지 말아야 할 계선에 이르고있다는것을 직감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어쩐지 그 리성에 반발하듯 온몸은 불덩이처럼 달아 올랐다. 《아…》 애처롭게 내뿜는 희애의 흐느낌이 불꽃처럼 목언저리를 태우는 순간 광이는 저도 모르게 전률했다. 사람의 행동이란 리성을 뛰여넘는 특별한 리치를 가지고 있는 법인지, 그 순간부터 그는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활활 타번지기 시작한 불길이 공포에 굳어진 자기의 온몸과 마비상태에 빠져있는 자기의 넋을 무섭게 태우기 시작했던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광이는 희애가 울고 있다는것을 알았다. 차분히 내려덮인 긴 속눈섭밑에서 솟구쳐 오른 눈물이 눈귀로 소리없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광이는 희애의 이 눈물이 분명 아까처럼 자기 잘못에 대한 속죄로 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새로운 희애로 갱신되면서 새롭게 알게된 기쁨과 함께 앞으로 자기가 바쳐야 할 진정한 사랑에 대한 무한한 동경으로 하여 흘리는 눈물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난… 난 이젠 삼진이거라여.》 갈린 목소리로 되뇌인 희애는 속삭이듯 뒤를 이었다. 《이제부턴 살아도 삼진이 하고 살고 죽어도 삼진이 하고 죽을것이여. 좋지?》 대답대신 광이는 다시금 희애를 가슴에 꼭 그러안았다. 6
뜻밖에도 부대에 도당부의 간부들이 내려 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위원장이 부위원장과 다른 두 사람을 더 대동하고 내려 온것이였다. 보통 일이 아니고야 도당책임일군들이 아지트에까지 직접 찾아오는 일은 없는터여서 모두들 눈이 퀭해졌다. 광복전에 벌써 모스크바 고급당학교를 졸업하고 전평(전국로동조합평의회)의 간부로 있다가 전쟁때부터 도당책으로 일하는 방준표위원장의 남다른 경력도 경력이지만 바로 그가 지금은 남조선에 있는 유일한 당조직의 책임자라는것으로 하여 더 긴장해졌다. 그런데 대원들을 더 어리둥절하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도당위원장이 도착하기 바쁘게 덕구아바이를 따로 불러들인것이였다. 누구든 부대에 내려오면 소대장부터 찾는것이 관례였으나 이번에는 그를 젖혀 놓고 덕구아바이를 찾았던것이다. 《뭔 일일가요?》 광이의 물음에 모두들 고개를 기웃거렸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여서 가늠조차 할수 없다는 표정이였다. 간부문젤가 아니면 부대활동과 관련된 문제일가?… 어떤 문제든 소대장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수 없다는거야 명백하지 않는가. 《아마…》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기태였다. 《표창일거요.》 《표창?》 《아무튼 덕구동지만큼 잘 싸운 사람이 누구요. 쌈도 제일 많이 했고 개도 그중 많이 잡았으니까. 지휘부에서는 나를 처벌하긴 했지만 이럴 때 덕구동질 표창해서 우리의 사기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여긴거요. 이제 며칠만 있으면 인민군명절이 아니요.》 자기가 아닌 덕구를 찾은데 방점을 둔 그의 추리였다. 그리고 책벌을 받고 있는 자기 처지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얼마나 요란한 표창이길래 도당위원장이 부위원장과 함께 내려온단 말인가. 공화국영웅칭호라도 수여된단말인가. 모임을 끝낸 도당위원장이 아무말도없이 자기 호위원을 데리고 떠난것은 두시간후였다. 무엇때문인지 부위원장과 또 한사람은 그냥 트에 남아 있었다. 분명 아주 중요한 문제가 토론되고 결정된것이 틀림없었으나 그런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되는것이 조직규률이여서 모두가 벙어리랭가슴 앓듯 했다. 덕구아바이 역시 여느 때없이 심각한 기색이면서도 두툼한 입가에는 얼핏얼핏 미소가 스치기도 했는데 그런 괴이한 모습이 대원들을 더 몸살이 나게 했다. 정말 굉장한 표창이라도 받았는가?… 덕구아바이표정은 흐뭇해하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괴로와하는 기색이였다. 도당의 특별한 신임을 받고있다는 긍지와 함께 언제나 생사를 함께 해온 전우들에게도 말해선 안될 비밀때문에 더 난처해하는것 같았다. 그가 사람들의 지꿎은 눈길을 애써 피하는것을 볼 때면 광이는 왜서인지 섭섭한 감이 들면서 무슨 비밀인지 캐보고싶은 생각까지 일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것을 알게 되였다. 밤에 보초근무를 교대하고왔을 때 기태소대장과 나누는 덕구아바이의 말을 듣게 되였던것이다. 《나도 내가 책벌을 받았기때문에 따돌리운다는걸 아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건… 그래서 더 섭섭하단 말이요.》 《그런게 아니라니까요.》 《그럼 뭔가 말이요?》 신경질적인 기태의 대꾸에 덕구아바이는 안타까운듯 한숨만 내뿜었다. 《물론 덕구동무가 오랜 당원으로서 비밀을 생명처럼 여긴다는건 아오. 그렇지만 나도 믿지 못하겠소? 나 역시 당원이구 소대장이란 말이요.》 《내가 왜 소대장동물 믿지 못하겠소.》 《그럼 말 좀 하시구려. 무슨 일로 도당위원장이 찾았는지?》 광이는 어찌된 일인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자기가 뜻밖에도 중대비밀을 엿듣게 되였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졸아들었다. 자리를 피하던가 귀를 막기라도 해야 했으나 신경은 도리여 곤두서기만 했다. 끙끙 갑자르던 덕구아바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소대장동무가 곡해할가봐 말하는데 이 비밀만은 꼭 지켜야 하우다. 알갔소? 사실은 내가… 내가 평양으로 가게 되였단 말이웨다.》 《평양에?》 흐느끼는듯 한 기태의 목소리였다. 《지금 이남에 있는 당조직이나 유격대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다는거지요. 그래서 김일성장군님께 실태를 보고드리고 가르치심을 받자는게 도당에서 내린 결론이웨다. 도당부위원장과 또 한명의 대표를 평양에 파견하는데 날더러 길안내를 하랍디다. 이게 어디 간단한 임무요? 우리 유격대는 물론 이남사람들의 생사가 달려있는 임무가 아니웨까.》 《정말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간단 말이요?》 《쉿- 제발 떠들진 말아주우다. 도당위원장동지가 오죽하믄 놈들과 맞다들어도 안된다, 싸워서도 안된다, 죽어서는 더욱 안된다고 신신당부했갔소? 그저 무조건 살아서 분계선을 넘으라는거지요.》 광이는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그 사실이 더없이 놀랍기도 했거니와 그런 희한한 사실을 내놓고 말하지 못하는것으로 하여 더 가슴이 터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도 이젠 비밀이 목숨처럼 귀중하다는것을 알고있는 구대원이였다. 다음날 새벽, 덕구아바이일행이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원들은 언제면 돌아오는가, 돌아올 때 무엇을 가져오겠는가 하며 마치 보급투쟁을 떠나는 사람들을 바래우듯 했다. 희애역시 덕구아바이에게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손거울만은 꼭 구해와야 한다며 몇번씩이나 다짐을 두었다. 하지만 광이만은 아무 말없이 뜨거운 눈물로 덕구아바이를 바래우며 제발 무사하기를, 임무를 기어이 수행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먼저 날아온 소식은 도당부가 습격받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였다. 남조선에 있는 유일한 도당조직이여서 놈들이 호시탐탐 탄압의 기회를 노리고있다는것과 그래서 도당부도 자주 위치를 옮기군 한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그 습격으로 하여 도당일군들은 물론 마지막까지 결사전을 벌리던 도당위원장까지 무참하게 학살되였다는 소식에는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니 이젠…》 기태의 네모난 턱이 움씰했다. 이젠 어떻게든 지리산이나 태백산에서 분산활동을 하는 빨찌산과 련계를 맺는 길밖에 없었다. 더 놀라운 소식이 날아든것은 보름이 지나서였다. 평양으로 떠났던 덕구일행에 대한 소식이 《대한일보》 1면에 대문짝만 한 기사로 실렸던것이다. 《…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 중앙당과 련계를 맺으려고 월북하던 이남당대표(전북도당 부위원장 정원진 외 3명) 오대산에서 포위! 추격끝에 체포하려는 순간 서로 껴안고 만세를 웨치며 자폭! 휴대품들을 조사한 결과 중앙당에 보고하는 이남당조직들의 실태자료와 편지, 맹세문들로 확인됨!》 모두가 돌처럼 굳어지고말았다. 《덕구아부니… 어쩌면…》 두손에 얼굴을 묻은 희애가 갑자기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기 시작했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모두가 희애처럼 몸부림치며 엉엉 울고싶은 심정이였던것이다. 제일 심한 충격을 받은것은 기태소대장이였다. 인제는 부대전체의 운명이 자기 한사람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그를 잠도 끼니도 잊게 하는상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대원들을 다 모이게 했다. 사뭇 심각한 기색으로, 어떻게 보면 비장한 결심이 어린 눈길로 그는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다 알다싶이 이젠 우리를 이끌어줄 당도 지휘부도 없소. 중앙당과는 련계조차 맺을수 없었소. 결국 우린 완전히 고립무원한 상태에 처해있소.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병자처럼 누렇게 뜨고 눈확이 쑥 들어가있는 소대장의 얼굴을 광이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오늘과 같은 정황에선 부득불 우리스스로가 새로운 출로를 찾아야 한다고 보오. 한마디로 말해 오늘의 이 살벌한 환경에 맞는 투쟁을 벌리자면 이대로 산에 있을게 아니라 산을 내려야 한다는거요. 산에서 내리느냐 아니면 그냥 남아서 싸우느냐 어느쪽을 택하겠소? 각자가 결심을 내리시오.》 너무도 뜻밖의 말에 대원들은 하나같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자기들의 기막힌 처지를 한탄하듯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지기도 했다. 《내 생각을 말하면 이젠 소대를 해산하고 각자가 산을 내려 적당한 자리를 잡고 때를 기다리자는거요.》 《소대장동지.》 자리에서 일어난것은 승옥이였다. 《소대장동지가 워찌 그런 말을 하셔유? 빨찌산은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해 목숨바쳐 싸워야 한다면서 언제나 우리의 앞장에서 용감하게 싸워오지 않았나유. 그런데 정세가 어렵다 해서 산에서 내리믄 워찝니까. 빨찌산이 산을 내삘고 어데서 싸울겁니까. 산에서 싸우는기 빨찌산이지 산을 내리는기 무슨 빨찌산이예유?》 소대장은 곧 눈살을 찌프리였다. 《누구의 지시를 받고 누구와 함께 싸운단 말이요?》 《지리산빨찌산도 있지 않아유. 련계가 안되믄 혼자락도 싸우는거지유.》 《그래 지리산기본부대가 어떻게 전멸됐는지 모른단 말이요? 그 숱한 사람들이 거의다 죽구, 잡혀가구, 뿔뿔이 흩어지구… 우리도 그렇게 되잔 말이요?》 《옳아요. 아무래도 산에서 더 싸우긴 어렵지라.》 소대장의 의견을 따르는 대원이 한마디 하자 여태껏 입을 다물고있던 사람들이 열을 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끝까지 산에서 싸워야 한당께.》 《아녀, 이젠 산을 내려야 해여.》 온 산판이 떠들썩해졌다. 안타깝고 분해서 가슴을 치는가 하면 갈피를 잡을수 없어 이편 저편으로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복새판을 비집고 다시 승옥이가 말했다. 《그러니 이젠 총을 놓자는거예유? 투쟁을 포기하자는거예유?》 《난 투쟁을 포기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소! 산을 내려도 투쟁을 멈춰선 안되는거요. 지하투쟁을 하면서 때가 오길 기다릴수도 있는거구… 난 어디까지나 희생을 피하면서 래일의 투쟁을 위해 준비하자는거요. 오늘과 같은 조건에서도 계속 산에 남아있는다는건 무모한 짓이요. 그거야말로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무모한 짓이란 말이요.》 순간 광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치면서 더는 잠자코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분이 용솟음쳤던것이다. 소대장은 달라졌다. 문득 처벌을 받고 우울해하던 표정이며 덕구아바이에게 어떤 비밀이냐고 따지고들던 일이 떠오르면서 그것이 그가 지금 말하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래일의 투쟁을 준비하자는 말과 련결되는것이였다. 《무모하다구요? 그 말이 생각납니다. 언젠가 내가 <보루대>를 쳤을 때 소대장동지가 그런 행동은 무모하다고 하던 말이 말입니다. 그땐 그 말이 가슴을 쳤습니다. 용감한게 뭐고 무모한게 뭔가 하는걸 두고두고 생각했응께요. 근디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 소대장동지가 무모하다고 하는건 산을 내리기 위한 구실같단 말입니다. 도망치기 위한 변명같단 말입니다.》 《뭐라구?》 기태의 눈이 대뜸 올라가붙었지만 광이는 더 야무진 소리로 웨쳤다. 《우리 보고 산을 내리자는건 개가 되란 소리나 같습니다.》 《개?》 《그렇지 않고 뭡니까. 재호가 달아났을 때 산을 내리면 개가 되기마련이라구 하지 않았습니까. 산에 남느냐 내리느냐 하는것이 사람으로 사느냐 개로 되느냐 하는 갈림길이라고 얼마나 절절하게 말했습니까. 그런 소대장동지가 오늘은 산에서 내리자니 우리 보고 개가 되란기 아니고 뭡니까.》 《옳아유. 삼진동무 말이 옳아유.》 다시 승옥이가 부르짖었다. 《이제 보니 소대장동진 달라졌어요. 일이 잘될 때엔 앞장에 서서 나가다가도 길이 막히면 먼저 돌아서는 사람, 남들이 보는데선 영웅이 될수 있어도 혼자 남으면 숨어버리는 겁쟁이예요.》 《어따 대구 그따위 소리여! 감히 대장한테.》 한 대원이 승옥이에게 곤대짓을 해댔다. 《빌어. 어서 잘못했다고 빌란 말여.》 《왜 빈단 말이요? 개가 되란 사람한테 어떻게 빌수가 있는겨.》 광이의 응수에 기태의 손이 대뜸 권총집으로 갔다. 《뭐야? 이 자식, 당장 죽여버릴테다.》 광이도 서슴없이 자기의 칼빈총을 꼬나들었다. 《아-니?》 너무도 살벌한 분위기여서 누구 하나 말릴념을 못했다. 단지 희애만이 총알처럼 튀여나와 광이의 앞을 막아나섰다. 《안돼요. 안돼! 그러지 말아요!-》 모두가 얼어붙은듯 꼼짝하지 않았다. 이처럼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무섭게 쏘아보리라고 누가 상상인들 했겠는가!…총을 겨눈 두사람은 부들부들 떨면서 노려보기만 했다. 《총을 내리라구요.》 《이게 뭔겨, 제편끼리!》 《승옥동무, 제발 말려요, 큰변 나겠당께.》 해가 서산너머로 기울면서 싸늘한 바람이 대원들의 퍼릿해진 얼굴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벌거우리한 락조가 기태의 관골이 불거진 얼굴을 비치면서 스러져갔다. 그는 더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눈시울을 떨며 소리쳤다. 《좋다 마음대로 해라. 난 나대로 싸울테니까. 누가 옳았는지 이제 알게 될거다. 자-나와 같이 갈 사람들은 나서시오.》 세사람이 나서자 또 한사람이 쭈밋거리며 총을 꺼꾸로 둘러메고 따라나섰다. 사람들의 얼굴에 시꺼먼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전 같으면 변절이라는 낌새만 채도 모두가 달라붙어 무자비하게 처단했는데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자기들을 지휘하던 사람이 떨어져나가는것이다. 그리고 그는 변절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을, 부득불 취하지 않을수 없는 새로운 투쟁방법을 선언했던것이다. 광이는 허탈상태에 빠진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슴이 미여지는듯 한 참을길 없는 아픔에 신음이 터져나왔다. 어제날 한 대오에 있던 동지가 하루사이에 다른 길로 가다니? 오랜 세월을 같이 싸웠다해도, 설사 그 과정에 피를 나눈 사이라 해도 앞날에 대한 지향이 다르고 선택이 다르면 그 순간부터는 남이 되고마는것이 아닌가! 그래도 광이는 그들을 향해 소울음을 터치며 도망치지 말라고, 개로 되지 말고 같이 사람으로 살자고 목터지게 웨치고싶었다. 그는 눈물이 어린 눈길로 남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부르짖었다. 《난 죽어도 저렇게 살지 않을기라요. 끝까지 사람답게 살거라요! 사람답게 살뿐아니라 더 잘 싸울기라요. 혁명을 위해, 나라의 통일을 위해 피 한방울까지 다 바치는 빨찌산이 될거라요.》 그는 자기의 결의대로 용감하게 싸웠다. 그때부터 그는 소대장이 되였으며 부대내 전체 당원들의 의사에 따라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광이가 화선입당을 한 날은 1954년 3월 23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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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게 내 빨찌산생활인데 이런 하찮은 내용이 글감이 되것는지 모르것네요. 글을 쓰는분들이야 보통 특별한 사건을 바라지만 나한텐 그런게 별로 없응께요.》 누구나 자기가 겪은 생활은 그것이 비록 평범한것이라 해도 남들과는 전혀 다르며 오직 자기만이 체험한 파란만장이라고 여기기마련이련만 선생은 반대로 말했다. 《그후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취재수첩에 뭔가 부지런히 적어넣던 옥경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은 빨찌산시기의 생활이 아직은 다 언급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게 내 빨찌산생활》이라며 매듭지으려고 하는가 하고 의아해하는것 같았다. 사실 그후부터 투옥되기까지의 생활, 기태나 승옥이, 희애의 운명에 대해서는 선생이 전혀 말하지 않았던것이다. 될수록 피하려는것 같기도 했다. 나로서도 궁금한것이 없지 않았으나 더 신경을 자극하는것은 처녀기자의 태도였다. 똑바로 마주앉아 선생을 쳐다보는양이 구체적인 세말사까지 다 듣기 전에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태세였기때문이였다. 하긴 오늘 하루밖에 취재할 여유가 없으니 그럴만도 한 일이지만 보다는 처녀가 보통 이악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길이 없었다. 번마다 감탄사를 련발하는가 하면 미처 새겨듣지 못한 지명과 사람들의 이름, 년도와 풍속을 일일이 되묻고나서 적어넣기까지 할 땐 작가가 내가 아니라 옥경이라는 생각을 피할길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도 자연 나보다 처녀를 마주보며 말할 때가 많았던것이다. 《사실 그때부터가 더 어려운 시기가 아니였습니까?》 《그렇다고 할수 있지요. 그러나 우린 곧 체포되였으니까요.》 《체포요? 그건 언젭니까?》 《그 이듬해 봄이였어요. 그런데 그때…》 나를 돌아보던 선생은 다시 창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라 무엇부터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하는 기색이였다. 나는 될수록 그 이야기는 래일, 처녀가 없을 때 혼자 조용히 들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원주필을 손에 든채 선생을 빤히 쳐다보는 처녀는 당장 파고들지 못해 안달이나 했다. (꽤나 보채는 처녀라니…) 사실 한 대상을 두사람이 취재한다는건 하나의 보물을 두사람에게 가지라는것이나 다를바 없었다. 바로 그것이 점잖치 못한 생각이라는것은 알면서도 나는 그 보물을 독차지하고싶은 유혹만은 어쩔수 없었다. 그때 마침 말쑥하게 차림을 한 선생의 담당안내원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취재중에 안됐습니다만…》 대극장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한 환영공연이 있기때문에 선생이 이젠 호텔을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것이였다.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반가운김에 얼른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안내원동무 덕분에 취재가 아주 잘됩니다, 예.》 《그래요? 잘된다니 반갑습니다. 시간을 봐서 또 오십시오.》 《또 오지요. 오지 않구요.》 그때까지 처녀는 그냥 한자리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돌아보지 않고도 조그마한 입술을 꼭 사려문채 락심천만해할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으나 나는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자, 옥경동무, 이젠 우리도 갑시다. 오늘 취재한것이면 짤막한 교양기사가 아니라 장편실화도 얼마든지 쓸수 있겠소. 그렇지 않소?》 《…》 여전히 아무 대꾸도 없던 처녀는 한참만에야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을 활짝 편 나는 옥경이를 앞세우고 유유히 호텔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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