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호남평야의 변두리에 위치하고있는 전라북도 고창군은 곡창으로도 유명하지만 남서해의 어장 변산만을 끼고있어 고급어족들인 칼치, 도미, 준치, 조기 등으로도 유명했다. 들에는 오곡백과 무르익고 바다에는 살찐 고기떼들이 욱실거리는 말그대로의 무릉도원이였다. 게다가 소백산맥의 마지막줄기인 로령의 깊은 계곡마다에는 감과 배, 석류와 밤, 앵두, 오얏 등 갖가지 과일이 또한 풍성하여 그야말로 산해진미의 고장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자랑 못지 않게 이곳 사람들이 더 긍지로 여기는것은 자기들의 고향이 오랜 세월 외래침략자들과 맞서 싸운 항거의 전통을 지니고있는 자랑스러운 땅으로서 바로 여기서 동학이 일어났고 이 땅에 사는 자기들이 부패무능한 리왕조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은 갑오농민군의 후예들이라는 그것이였다. 이러한 생각은 이곳 사람들에게 남다른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전라도 고창 몰면 조선사람이라 못해여. 광복전엔 이북에서 오산을 꼽았다문 이남에선 고창이 민족정기의 본토인겨. 이곳 사내만이 진짜 대장분기라.》

이렇듯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내놓고 자랑하는 바로 그 고창땅에 태를 묻고 자란 광이였다.

그때 마을촌장이였던 아버지와 줄곧 농사일에만 파묻혀 살아오는 어머니가 낳은 2남1녀중 맏이인 광이가 곧 임진왜란때 유명했던 《7백의총》의 총관 고경명의 13대 증손이였다.

《7백의총》이 무엇이고 총관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수 없는 광이였으나 아버님이 가르치는대로 따라외우는수밖에 없었다.

《700의병들의 두령이 바로 총관이다 그 말이라. 긍께 너도 두령의 후손답게 름름한 대장부가 돼야 한다 이거라. 알긋나?》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용감한 의병대장의 13대 증손은 쩍하면 눈물을 보이군 하는 울보였다. 놀다 넘어져 살이 약간 긁히워도 울었고 어쩌다 어머니가 눈총을 쏠 때도 뒤로 돌아서서는 계집애처럼 콜짝거리군 했다.

《쟨 아무래도 태줄을 까꾸루 감고 나온거여.》

이웃들까지 이렇게 말하군 했다.

그래도 머리만은 남달리 총명해서 다섯살때 벌써 서당에서 가르치는 천자문과 사자, 추구를 휑하니 도통했는데 한자도 빠짐없이 뜬금으로 줄줄 내리엮을 때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숨이 막혀 바스라지는 소리를 낼 때까지 꽉 안아주군 했다.

《우아!-》

아들의 비명에도 아버지는 껄껄 웃어대기만 했다. 밤송이같은 턱수염을 아들의 볼에 힘껏 비벼대고 나서야 품에서 놓아주군 했는데 그때에도 어린 아들의 두눈에는 험상궂은 아버지의 애정표시에 진저리치는 두려움이 찔끔거리는 눈물로 삐여지군 했다.

《저런 놈 봤나. 스나자식이 저레 눈물이 헤퍼갖구 구실을 할란가 몰라.》

아버지로서의 단순한 걱정이 아니였다. 군일판에서는 인망있는 유지로 또 한다하는 활량으로 알려져있는 고승훈은 광복후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좌익운동의 선두에서 리세포위원장의 중임을 수행하면서도 맏아들에 대한 관심, 특히 교육에 대해서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들이 서당에서 소학, 학위집, 계몽편까지 통달하자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직접 엄한 훈장이 되여 곰방대를 물고 사랑방에 나섰다.

《물이 선소이 위지하고 물이 악소이 불위하라 하였느니라.》

아버지한테서 처음 들은 훈시였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허면 아무리 작은것이라 해도 좋은 일이면 작다 말고 해야 하고 아무리 작은것이라 해도 나쁜 일이면 작다 말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니라. 알겄느냐?》

《녜?》

의미가 알숭달숭하기도 했거니와 언제나처럼 곰방대를 물고 하는 말이라 입의 움직임이 불안전해서 똑똑히 가려들을수 없었다.

《사람은 자고로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선은 어떤 경우에도 악을 이길뿐더러 새로운 선을 낳기마련인거라. 그래서 예로부터 인자무적, 즉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고 했은즉, 꼭 가슴에 새겨두거라.》

《알겄습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을 계률처럼 받아들이는 맏이였다. 아니 받아들일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장남, 그것도 종가의 18대 종손이라는 어마어마한 위치가 아버지에게 항시 각별한 관심과 기대의 존재로 되고있다는 자각은 어린 광이에게 늘 무거운 사명감과 함께 부담스러움도 느끼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까짓 부담보다도 끼니때마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부엌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숟가락을 후후 불어댈 때에도 자기만은 꽁보리밥일지언정 사랑방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겸상을 한다는것은 어지간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였다. 그런 자기를 동생들이 곱지 않은 눈길로 힐끔거린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나기만 했다.

아버지가 바라는대로 아들은 학교에서 성적은 물론 품행까지도 언제나 《우》였다. 워낙 천성이 온순한 어머니쪽을 닮아 남달리 얌전한데다 늘 아버지의 엄한 요구까지 따르다보니 달리 삐여질래야 삐여질수가 없었던것이다.

동네친구들과 같이 놀 때에도 같이 섞여 웃고 떠들어대기보다는 제 혼자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말하자면 말이 적고 행동의 폭이 좁은 아이로 굳어져갔다. 그대신 어떤 정황에 부닥치면 그것이 좋으냐, 어떠냐를 먼저 따져보고 처신하는 생각깊은 소년으로 자라났다.

상급학교 지망생들의 과외수업때였다.

학교에서는 군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위해 매일 과외수업을 조직했다. 초라한 시골학교라 교구비품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것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저녁이면 남포등심지를 돋구어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 저녁때식이 자체해결인것은 두말할 여지없었다.

그래도 중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아이들이여서 저녁밥쯤은 도시락뚜껑이 불룩하게 싸오군 했으나 광이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였다. 점심밥조차 감자를 박은 보리밥이 고작인데 저녁이라니… 집안사정으로 봐서는 도저히 진학을 꿈꾸기 어려운 형편이였지만 이번에도 장손에 대한 아버지의 엄격한 요구가 따랐던것이다.

《옥불탁이면 불성기요 인불학이면 부지도라 했으니 배우도록 해라.》

옥은 닦지 않으면 그릇이 안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모른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좇을수밖에. 하지만 매일처럼 밤늦게까지 허기를 참아야 하는 고통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밥시간이면 의례 우물에 가서 맹물을 들이키고는 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쳐다보며 저게 싸락쌀은 못돼도 밀가루가 돼서 펑펑 쏟아지면 얼마나 좋을까이. 그러면 먹고싶은 칼제비국이나 한번 실컷 배터지게 먹어볼낀데 하는 생각에 옴하군 했다.

《너거 오늘도 저녁밥 몬싸온겨?》

한마을에 있는 용재가 묻는 말이였다. 그의 얼굴에는 뻔히 아는 사실을 묻는데 대한 게면쩍음과 함께 자긴 먼저 한술했다는 거북함도 배여있었다. 키가 껑충한 아이들이 그런것처럼 그도 마음만은 남달리 여리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부추길 때면 원두막이나 과수원에 곧 잘 기여들어갔고 덕화천이 얼었을 때는 보란듯이 맨 먼저 얼음판을 건느는 똥배짱을 시위하기도 했다.

광이에 대해서는 남달리 적극적이였는데 그것은 너무도 째지게 가난한 살림에 대한 또 너무도 말없이 얌전한 친구에 대한 동정으로 해서였다. 거기다가 자주 자기 학습을 도와주는데 대한 신세갚음도 있으리라.

《가자! 이 창자에서 괭이새끼가 우는디 뭔 공부가 된다냐! 날 따라 와라.》

용재가 끌고간 곳은 철뚝너머에 있는 무우밭이였다.다짜고짜로 밭으로 들어선 그는 서슴없이 무우 하나를 뽑아 밭머리로 내던졌다.

《자, 묵어라!》

휙 하고 날아온 팔뚝같은 무우가 이파리채 발앞에서 나딩굴었다. 당장 손이 목구멍에서 뻗쳐나왔으나 광이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언제나 이런 정황에 부닥치면 먼저 떠오르군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뇌리를 쳤기때문이였다.

《물이 선소이 위지하고…》

배안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련발했다. 먹어야 하나 먹지 말아야 하나. 옳은 일이냐 잘못된 일이냐 하는 생각이 참을수 없는 허기와 뒤엉켜 엎치락뒤치락 하는 바람에 눈앞이 마구 빙빙 돌아갔다.

《씨발! 무꾸 하나 묵는다고 잡아갈것이여? 시상에 요런 잘못 없는 사람이 워디 있을까이.》

자기가 저지르는 행동을 타당화하면서 부추겨대는 용재였지만 그래도 광이는 쉽사리 무우를 집을수 없었다.

어느새 용재는 새로 뽑은 무우대가리를 입에 대고 빙빙 돌려대기 시작했는데 무우는 마치 기계속을 거친것처럼 껍질이 새말가니 벗겨지고있었다. 곧 어석버석 하고 무우가 입안에서 바스러지는 소리에 당장 창자가 비틀어지는것 같았다. 저절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이전 뛰자! 외팔이주인한테 걸렸다간 껍대기 벗어야 하는기라.》

어느새 먹던 무우꽁다리를 집어던지고 철뚝을 향해 겅중거리며 뛰여가는 용재를 따라 가느라니 어쩐지 눈물이 찔끔 삐여져나왔다. 자꾸만 팔뚝같은 무우가 그대로 있는 밭머리를 돌아보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금시 허기져 쓰러질것 같으면서도 가슴속에는 한가지 생각, 아무리 작은것이라도 옳지 않는 일이라면 해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았다는 기쁨이 솔곳이 자리잡는것이였다.

그만치 광이는 아버지의 요구라면 절대로 어겨서는 안될 철리로 받아들이는 어질고 착한 아이였던것이다.

2

 

마을사람들은 어떤 대소사가 있을 때는 물론 무슨 알고싶은 문제가 생길 때도 어김없이 아버지 고승훈을 찾아오군 했다.

《공산당이 좋다는기 참말이다요?》

《신탁통치가 뭐고 군정청이라는건 뭣이여?》

이런 정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것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것까지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대답해보시오. 누구나 똑같이 평등하기 사는 시상이 좋은가 아니믄 잘 사는 놈들만 살기 되여묵은 시상이 좋은가? 그건 두말할것없이 만인팽등, 바로 그런 시상이 소원이겄제. 그런 시상이 바로 이북이다 그 말이여. 암, 우리도 꼭 그렇게 살아야 해여.

그란디 알아야 할건 그런 시상은 절로 오는기 아니고 우리모두가 마음을 합치고 손발을 합칠 때에만 만들어진다 이거라요. 알겄제요?》

그러다가도 한잔 걸치기만 하면 걷어붙인 한쪽다리를 철썩철썩 때리며 《창부타령》이나 《장화홍련전》의 판소리가락도 멋들어지게 불렀는데 특히 그가 《춘향전》의 리별장면을 외울 때면 온 마을아낙네들은 물론 조무래기들까지 다 모여들군 했다.

《…아이고 여보 도련님, 리별이 웬말이요. 이제 허신 그 말씀이 진담이요 롱담이요.》

슬픔에 겨워 몸부림치던 춘향이의 애원이 어느덧 호걸스런 리도령의 목소리로 변한다.

《…춘향아, 나는 간다. 너는 부디 우지 말고 로모하에 잘 있거라.》

근엄하던 그의 표정이 이번엔 사색이 된 춘향이의 모습으로 바꿔진다.

《춘향이, 일어나서 한손으로 나귀정마 부여잡고 또 한손으로 등자디딘 도련님 다리잡고 아이고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날 다려가요. 아니, 얘 향단아, 건넌방 건너가서 마나님께 여쭈어라. 도련님이 가신단다. 이 춘향이 사생결단한다고, 죽는줄이나 아시래라. 아이고 도련님, 도련님… 구궁탁궁딱, 따다다닥…》

북장단에 어우러진 그의 소리가락이 잦아들 때면 아낙네들은 늘 때국물이 재들재들한 소매깃으로 눈굽을 찍어대기가 일쑤였다.

《확실히 우리 말 세포위원장이 범인은 아닌겨. 일반 사람들은 알지도 몬하고 할수도 없는 일을 척척 해제끼는거라.》

《저 훤한 이목구비만 보드라꼬. 마음만 먹으믄 꼭 해내고야 만당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광이는 자기에게는 매우 엄격한 아버지지만 더없이 존경이 가면서 앞으로는 아버지말씀을 더 깊이 명심해야 하리라는 결의에 넘치는것이였다.

그런 아버지가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또 하나 가르친것이 있었다. 그것은 《군자대로, 대로무문》이라는것이였다. 대장부는 언제나 큰길로 가야 하고 그 큰길에는 문이 없다는 뜻으로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비굴하게 살지 말고 떳떳이 참된 길을 걸으라는 의미였다.

본래는 《대도무문》인것을 그는 《대로무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대도라면 큰길이 아니라 큰 도적 말하자면 도적놈에게는 문이 있을수 없다는 왕청같은 뜻으로 곡해될수도 있다는 제나름의 해석으로 해서였다.

아들에게 가르친 이 교훈은 사실 그자신의 인생관이기도 했다. 일단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면 아무리 어렵고 난감한 처지에 빠진다 해도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고 일이 제대로 안될 때에는 이발을 앙다물고 돌부처처럼 굳어지군 했는데 그렇다고 결코 누구에게 구원을 청하거나 하소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이런 불거진 성미를 잘 알고있는 식구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에 간참은커녕 한마디의 의견조차 내놓기 꺼려했다. 다만 웃목에서 낟알을 고르던 어머니가 조심스레 한숨을 내뿜을 때마다 광이는 아버지가 하는 일은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남편에 대한 걱정과 세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것만이 천분이라고 여기며 그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불쌍한 생각으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얘, 광이야!》

어느 날 여느 때없이 가라앉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광이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우리 방장산 별바위에 갔다와야겄다.》

《거긴 왜요?》

옛날부터 집안의 우환이나 재앙을 막기 위해 방장산에 가서 치성을 드리는것이 이 고장 풍습이였다. 남들은 소원성취를 위해 치성을 드린다지만 이 고장은 반대로 화를 면하기 위해 치성을 드렸다. 그만치 환난을 많이 당한 곳이여서 생긴 유습이기도 했다.

《아, 느거 아부지 집 떠난지 열흘이 넘었는디 소식이 없잖냐 말이다. 요즘 세월이 하도 수상하니 맘 놓겄냐 어디. 무슨 일이 있어도 있는거야. 그렇지 않고야 여태 소식이 없을리 없을게 아이겄냐?》

아버지앞에서는 드러내지 않는 정성을 뒤에서는 곱으로 나타내는 어머니라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그래도 광이는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란거 미신이라요.》

《미신? 그래도 요즘 세상 어디 알겠디야? 어제는 신탁이라더니 오늘은 반탁이래 낮에는 양과자 사먹으라더니 밤에는 또 양과자 불매운동이란다. 귀신인들 정신을 차리겄냐 말이다. 잔말 말고 후딱 가서 덕화리에 있는 백부님이랑 양이, 찬이 삼촌들 다 모셔 오너라. 그래야 아버지가 무사혀.》

사실 광복후엔 문맹퇴치요 인민위원회요 하며 온 마을이 한동아리가 되여 법석이더니 제주도 4.3봉기에 이어 5.10단선, 려수군인폭동을 계기로는 사람들이 반동이요 인민공화국이요 하면서 이편 아니면 저편으로 대쪽갈라지듯 했다.

한데 요즘에 와서는 그렇게 갈라진 량쪽이 행동으로 넘어가 한쪽은 《빨갱이》청산으로 살기등등 했고 다른쪽은 또 피해다니면서도 삐라요 습격이요 하고 분주했다. 그야말로 어리벙벙해 있다가는 저도 모르게 눈깔빠질 시국이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피해다니는 쪽이였다. 세포위원장이여서 그런지 그만치 위험도 뒤따랐다. 따져보면 어머니의 걱정이 공연한것은 아닌것 같았다. 열흘전 아버지가 집을 나갈 때도 갖가지 연장을 멘 진구 아버지랑 마을장정들과 함께였었다. 어째서 열흘이 넘도록 돌아 오지 않는것일가? 또 어째서 어저께는 불시에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친것일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것은 온 가족이 별바위에 가서 치성을 드린지 며칠이 지난 새벽이였다. 광이가 눈을 떴을 땐 목에 수건을 두른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어머니를 안심시키고있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컸으면 투정 한마디쯤은 할수도 있으련만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떨군채 손톱으로 장판바닥만 썰고있을뿐이였다. 다만 옆에 놓인 한말들이 쌀자루만은 의외였다. 그러니까 그새 아버지가 쌀을 구하러?

《아버지, 한가지 여쭈어도 좋겄습니까?》

광이로서는 많은 생각끝에 하는 질문이였다.

《그래라.》

《은제나 아버진 사람은 큰길을 가야 한다, 그게 옳은 길이다 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그랬제!》

《그란디 어째 아버진 피해다니기만 합니까? 뭔 나쁜 일을 합니까?》

《나쁜 일?》

아버지는 한동안 어리둥절한 표정, 그러나 그 표정은 곧 아들이 이젠 이렇게 컸는가 하는 대견한 기색으로 변했다.

《내가 하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니다. 되려 옳은 일이기때문에 피해다니는거다.》

《옳은 일이믄 어째 피해다닙니까?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끼고 그런 사람은 적이 없어야 하지 않겄습니까! 왜 인자무적이라 합니까.》

아버지는 생각깊은 눈길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광이야, 이걸 보아라.》

아버지는 옆에 있는 쌀자루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이게 뭔지 알겄냐? 우리 가평리에 사는 600여호나 되는 사람들의 인장이다.》

(인장?)

광이는 새삼스런 눈길로 쌀자루를 여겨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아버지가 기울여보이는 자루에서는 쌀이 아니라 도장이 무너져내렸다.

《이걸 그냥 도장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미국놈들이 이 이남땅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랴고 리승만일 내세워 괴뢰<정부>를 조작했지만 이남민심은 그걸 반대하고 있는거라.

우리 마을사람들은 하나같이 곧 이북에 설 공화국을 지지하고있다. 그래서 매 사람들이 난 공화국을 지지합니다, 김일성장군님만을 지지합니다 하는 의사를 인장을 찍어 표시했고 그걸 가지고 가는 대표를 평양에까지 파견했다. 그러니 이건 공화국과 김일성장군님을 지지하는 우리 마을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라 그 말이다. 알겄느냐?》

그제야 광이는 놈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인장을 따로 모았다는것을 알았으나 한가지 의문만은 여전히 가셔지지 않았다.

《그라믄 왜?… 모든 사람들이 다 바라는디 워째…》

아버지는 아들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가를 리해했다.

《모든 사람들이 바란다면 응당 옳을틴디 왜 숨어서 하느냐 하는거지? 바로 그게 문제여, 이 땅에선 옳은 일도 내놓고 하지 못하니까 그게 잘못된것 아니고 뭐냐.

생각해 보아라. 옳은 일조차 숨어서 해야 한다면 그건 벌써 바로된 시상이 아니지 않겄냐! 아무리 대로무문이라 해도 문이 많은 시상, 아무리 인자무적이라해도 적이 많은 시상이 바로 이눔의 시상인기라, 알아두어라. 그렁께 이눔의 시상은 큰길이 되려 잘못된 길이고 적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눔이다 그 말이다.》

《?…》

이제까지 아버지가 강조하던것과는 정 반대되는 내용에 광이는 어리둥절했다. 대로무문이라 했는데 큰길이 잘못된것이고 인자무적이라 했는데 착한 사람으로서는 살수 없는 세상이라잖는가! 그리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무한히 어질어야 한다는 요구와 그래서는 살아갈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씀, 그 하나하나의 의미는 알만한듯 했으나 그것을 하나로 융합시키기는 어려웠다. 융합되기는커녕 도리여 서로가 상반되여 있는것이였다. 사실 그것을 리해하기에는 아직 너무도 어린 광이였다.

3

 

드디여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라는기 무엇이여?》

말로는 들어 왔으나 명백한 인식이 필요했다. 가평천에서 가재잡이를 하다가 그것이 싫증나면 소갈재언덕에 기여올라 기마전으로 진지차지놀이를 하는것이 전쟁에 대한 표상의 전부였던것이다.

《아 전쟁도 몰라? 진짜 총멘 어른들이 싸우는거라. 꽈당꽈당!》

《총만 아니고 대포나 땅크가 38선에서 붙었다 그 말이여.》

(대포나 땅크? … 38선에서?)

광이에게는 그 말의 실질적인 의미보다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달포전 학교에 새로 나타난 배석장교가 갑자기 군사교련을 선포하던 일과 그때 자기가 곤죽이 되도록 얻어 맞았던 일이였다.

그날 군복을 입고 쌍안경을 낀 북어짝처럼 바짝 마른 자가 교단에 나타났다. 벌써 4학년생이상은 물론 3학년생들중에서도 키가 크고 몸집이 실한 아이들은 모조리 군대에 뽑아 간터여서 무슨 변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가보다 하고 술렁술렁하던 때였다.

《듣거라. 오늘부터 재학생전원이 교련을 받게 되였다. 날로 우심해지는 38선의 위기상황으로 하여 취한 당국의 긴급조치니 그리 알고 전력하여 훈련에 참가해야겠다. 우선 당장 준비해야 할것은 매 학생이 무명베 스무자, 쌀 서말, 밥그릇 두개, 숟가락 하나를 지참하는것이다. 래일 모레까지, 알겠느냐?》

아이들은 한결같이 눈알을 뒤집으며 아우성을 질렀다. 그 많은것을 어떻게 당장 마련하느냐 하는것이였다. 《흥, 흥!》 코나발이 울고 《피, 피!》 입방귀가 터졌다.

《어느놈이야?》

안경을 벗어 제끼고 눈알을 부릅뜬 교련감이 두손을 허리에 올려 붙였다. 이따위 코흘리개들에게는 첫날부터 군대맛이 어떤것인가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것도 과히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 미끼를 찾는것 같았다.

《똑똑히 듣거라. 군대라는건 오직 명령과 복종이 있을뿐이다. 명령에 복종할수 없는자 있으면 앞으로 나서라. 사내답게, 당당하게!》

학생들은 일시에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입을 비죽거리며 코나발을 불어대던 친구들이 독수리에 놀란 까투리새끼들처럼 한껏 모가지를 틀어 박았다.

광이는 저도 모르게 한걸음 나섰다. 교련감의 말처럼 사내답고 당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저히 그걸 준비할 힘이 집에 없다는걸 알기때문이였다.

무명베 스무자에 쌀 서말이라니? 하지도 못할것을 어떻게 한다고 한단 말인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솔직하고 정직해야 하는것이다.

《지는 몬하겄습니다.》

《뭐야?》

이건 도대체 어떤 풀메뚜기야 하는 표정으로 교단에서 뛰여 내린 교련감은 곧바로 광이앞으로 다가섰다.

《다시 말해봐!》

《우리 집은 당장 그걸 준비할 힘이 없습니다.》

모두들 아연한 기색으로 광이를 돌아보았으나 그는 되려 리해되지 않는 눈길로 그들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렇다?…》

교련감의 입가에는 랭소가 스쳤는데 그것은 명령에 불복하는 자가 어떤 벌을 받게 되는가를 손수 시범으로 보여줄수 있게 된것을 못내 만족하게 여기는 흐뭇한 미소였다. 미끼가 물렸으니 이젠 보란듯이 잡아채야 하는것이다.

《이 새-끼!》

대뜸 눈에서 파란 별찌가 튕겨 올랐다. 두번째 타격에는 하늘이 기우뚱 하고 모로 자빠졌다. 회초리같이 가느다란 작잔데도 손아귀만은 어찌나 센지 광이는 순간에 코를 박고 땅바닥에 구겨박혔다.

《다시 말해봐! 그래도 못하겠어?》

《몬하겄습니다.》

일어나려고 비칠거리는데 이번에는 발길질이였다.

《그래도 못하겠는가?》

《몬…》

입안에 피가 고여 말을 이을수 없었다.

《조-옷타! 넌 오늘부터 정학이다. 알겠어? 모두 듣거라! 만약 이놈처럼 비상물자를 마련하지 못하는 자는 교련을 반대하는 자이고 교련을 반대하는 자는 빨갱이들과 내통하는 불온분자가 분명하다. 그렇게 알고 조처할테니 각자는 심중하게 처신하라.》

모든 사실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아뢰지 않을수 없었다. 뭐라고 하실가? 난생처음 자기 혼자서 결심하고 나름대로 행동한것이 옳았는지 어쩐지 광이로서는 판단을 내릴수 없었다. 어떤 리유에서던 정학을 당했다는것은 그처럼 공부를 중시하는 아버지에게 충격이 아닐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을 조이였다.

《그 얼굴이 뭐냐?》

도저히 싸움이라고는 하지 않을 아들이라는것을 알기때문에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불만에 젖어 있었다.

《쌈 헌게 아니고…》

여사여사 해서 이리이리 됐다고 사정을 다 말할 때까지도 생각에 잠겨있던 아버지는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었다. 부어오른 아들의 상처를 다시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철썩 하고 광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됐어! 큰일은 아니지만 네가 한 행동이 옳다! 솔직하게 제 마음을 드러내고 그 마음이 시키는대로 처신했다는게 마음에 든다. 군자는 바로 그래야 혀.》

광이는 놀란 눈길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어머니의 넉두리가 가슴을 허비였다.

《시상에 원, 군자는 해서 뭣해여. 제발 남들처럼 눈치, 코치라도 있어 매나 맞지 않을기제…》

《뭐라? 바로 그 눈치, 코치가 사람을 베리는것이여.》

버럭 소리를 지르며 눈까지 흘겨붙이는 아버지였다.

전쟁이 일면서부터 광이는 마을에 무어진 소년조직에 소속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열댓명이나 되는 꼬마대원들이 무기까지 척 갖추었다. 무기래야 뾰족하게 깎은 대나무창끝에 반질반질 콩기름을 바른것이 고작이지만…

임무는 대체로 삐라살포가 아니면 인선, 즉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서 큰소리로 상부의 지시나 새 소식들을 전달하는 일이였다. 인선임무수행에서는 언제나 목소리가 남달리 큰 용재가 한몫 했다. 그의 굵고 우렁찬 목소리는 온 마을을 한바퀴 돌고도 빼암산을 징징 울렸던것이다.

《해방이여, 해방! 전쟁 사흘만에 서울이 해방됐대여!》

《한강을 도하한 인민군대 수원 치고 대전으로 진격! 진격!》

《어제 리리, 군산 점령, 래일이모 우리 말에도 온다는겨. 만- 세!-》

모르긴 해도 전쟁이라면 권투시합처럼 한대 치면 한대 맞고 맞으면 다시 공격하는 일진일퇴의 격전인줄 알았는데 이건 그냥 노도처럼 한쪽으로만 밀려드는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잘한다. 자-알 혀!》

《만-세!- 인민군대 만-세이!…》

광이도 성수가 났다. 임무도 이젠 련락이나 삐라살포 정도가 아니였다. 리인민위원회로부터 인민군대에 지원물자를 마련할 지시가 떨어지는가 하면 패잔병의 만행으로부터 마을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피신처를 알선하기도 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사면팔방에서 밀려드는 피난민들의 거처지를 마련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마을이 해방되던 날이였다.

온 마을사람들이 떡을 치고 막걸리를 곳고 꽹과리를 두들기며 인민군환영준비로 들끓었다. 광이네 소년단도 소갈재등판에 널려 꽃다발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꽃다발이래야 국화나 채송화가 겨우 한송이씩 박힌 풀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선 인민군대는 잠시도 지체할수 없었다. 그만치 남진의 길이 바빴던것이다. 전 남녘의 해방이 오늘이냐 래일이냐 하는 급박한 정황이여서 떡이나 막걸리는 고사하고 바가지에 떠주는 샘물로 목을 추기는게 고작이였다.

《아저씨! 돌아갈 땐 우리 마을에 꼭 들려얍니다. 예? 신림면 가평리, 덕화천을 넘어서면 첫 마을이 바로 우리 마을이예유. 알았지유?》

탱주나무가 우거진 동구밖까지 대오를 따라가며 소리치는 광이를 지켜보던 한 인민군군관이 전투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은빛이 도는 쇠붙이를 꺼내 얼른 주머니에 찔러주었다. 난생 처음보는 물건이였다.

(이게 뭘가? 인민군대가 쓰는 무긴기제?)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후두둑 뛰면서 주머니에 함부로 손을 넣기도 주저되였다.

《저 인민군대아저씨가 이런 무길 주었는디…》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무기》를 꺼내보이자 그걸 여겨보던 리위원장은 눈이 퀭해지더니 갑자기 방안이 떠나가게 웃어댔다.

《이눔아! 이건 무기가 아니라 하모니카라는거야. 하모니카! 자…》

입에 대고 후르륵 하고 불자 놀랍게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헤- 시상에 이런 나팔도 있는감?)

그날부터 광이는 괴춤에 그 하모니카를 꽂고 다니면서 심심하면 꺼내불군했는데 노래를 익히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소리를 내보고 싶어서였다.

《붕-뱡-삥》

벌집같은 칸살들에서 새나오는 그 절묘한 소리만 들어도 더없이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돌아 온 아버지가 심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안되겄다. 이제부턴 인민군대가 후퇴해야 된가부다. 아무래도 아녀자들만 집에 남고 스나들은 산으로 가야겄다. 광이 너도.》

《후퇴요?》

광이는 리해할수 없었다.

《후퇴란기 물러선다는기 아닙니까. 래일이믄 부산이 해방된다고 했는디 어째 물러선단 말입니까.》

《그랬제. 그런디 곤죽이 되두룩 두드려 맞아 사등뼈가 분질러진 괴뢰군이 미국에 대고 행님! 도와주쇼. 행님 아니몬 나 죽습니다 하고 애걸복걸 했지라. 그렁께 미국이 좀만 기다려라, 내 곧 간다 하고 저거들만 아니라 세계 여러군데 있는 졸개들까지 긁어 모아갖고 인천에 기여든거라. 얼마나 너절하고 드리운 처사냐. 그렁께 너도 이제부턴 단단히 맘먹고 네 할바를 해야 혀. 알겄지?》

사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으나 준엄한 생활이, 처절한 현실이 광이에게 앞길을 깨우쳐 주었고 나이를 초월하게 만들었던것이다.

4

 

일시적인 전략적후퇴가 시작되였다.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쌕쌔기들이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써는가 하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포탄들이 불비처럼 사방에서 터져 올랐다. 하늘과 땅, 바다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여 곤두박질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몸서리치게 되는것은 다 죽었다가 살아난 반동들의 살륙만행이였다. 뱀이란 놈은 아예 도륙을 내서 칼탕을 쳐야지 설잡으면 이슬을 먹고 다시 살아나 더 악독해진다던가?

《향토방위대》요, 《청년방위대》요 하는 놈들의 만행으로 하여 동네에서는 매일처럼 아우성과 곡성이 그칠날이 없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좌익이라면 좌익이랄수 있는데 좌익이면 곧 《빨갱이》요 《빨갱이》면 여불없이 처단이였다. 그런데 그 《빨갱이》라는 기준이 인민군대나 산에 있는 유격대에 쌀 한짐 지고 간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미국놈들을 양코배기, 노랑대가리라고 놀려 댄 아이조차 한무리로 몰아붙이였다.

어느날이였다.

마을사람들을 몽땅 가평천둔덕으로 몰아 세웠다. 언제나처럼 《빨갱이소탕》을 위해 서귀포에서 살륙전을 따로 훈련받았다는 그 까까머리 《토벌대》의 강압이였다. 놈들이 얼마나 살기에 차고 포악했던지 마을에 중대가리들이 얼른거리기만 해도 사람들은 대문부터 닫아걸고는 방공호로 피하군 했다.

《빨갱이》세상이 어떤것인가를 보여준다면서 동네 좌상할아버지의 수염을 비틀어 쥐고 며느리에게 절을 시키는가 하면 《빨갱이》가 어떻게 머리를 들고 다닐수 있느냐며 엎드려 네발걸음을 하게 하는 놈들이였다.

《잘 알아 듣거라!》

가평교 나무다리우에 올라선 대장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옆으로는 바지저고리를 입은 근 스무명이나 되는 마을사람들이 손을 결박당한채 한줄로 서있었다.

《우린 우리가 토벌한 곳에 만약 한놈의 빨갱이라도 살아 있으면 우리 스스로가 자결을 각오한 멸공투사들이다. 빨갱이들을 죽이지 못하면 제가 죽어야 하는것이 바로 우리 운명이다. 오늘 우린 여기 있는 스물세놈의 빨갱이들을 총살하지만 이달까지 모조리 잡아내지 못하면 우리 자신들이 여기서 죽을것을 약속한다. 그러니 우릴 도와 나서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함께 여기서 죽어야 한다는걸 명심하라.》

마치 사약이라도 받는 놈처럼 비장하게 웨쳐댔다.

그때 광이가 본것은 《아버지!-》 하고 웨치며 다리우로 달려가던 용재가 총을 멘 보초의 발길에 채워 돌멩이처럼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였다.

사실 용재 아버지는 당원도 아니였고 이렇다하게 활동한것도 없었다. 다만 인심이 후한 천성대로 밤낮없이 고생하는 리위원회 일군들에게 주먹밥을 들려주던가 방장산이나 회문산으로 들어가는 피난길을 안내해 준것뿐이였다.

창황중에도 언젠가 본 우화 한토막이 생각났다. 사슴이 헐레벌떡 뛰여 가면서 토끼에게 말한다.

《토끼야, 빨리 도망가! 토끼는 눈이 빨갛다고 승냥이가 다 잡아죽인대!》

한참 같이 도망가던 토끼가 사슴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도망가냐?》

그러자 사슴은 답답하다는듯이 토끼에게 대꾸한다.

《내가 어디 토끼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어야 말이지.》

그 우화처럼 토끼와 비슷하면 다 잡혀야 하고 죽어야 하는 세상이였다.

순간 따당 하는 총소리와 함께 남달리 우뚝 솟아있던 용재 아버지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우… 어어》

알아듣지 못할 비명을 토해낸 용재가 다시 땅을 허비며 둔덕을 기여올랐다. 저도모르게 그리로 달려가려던 광이는 누군가의 손에 붙들리였다. 돌아 보니 어머니였다.

《가만 있그라. 까딱하믄 너도 죽는거라.》

목소리는 물론 온몸까지 와들와들 떠는 어머니였다.

《저기 너거 아부지가… 너거 아부지가 없는것만도 천만다행이제. 제발 무사혀야겄는디 제발…》

후퇴하는 인민군대와 함께 행방을 감춘 아버지였다.

다음날 《토벌대》 세놈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이년아! 세포위원장인 네 남편 모가지 따자구 왔다. 대라! 어딨어? 앙?!》

《몰라유.》

《몰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였다.

《그-래?》

모과같이 울퉁불퉁한 빤빤대가리를 슬슬 쓸어만지던 두목놈이 옆에 있는 장작더미로 다가갔다.

《그럼 입을 열게 해줄가. 한번 맛을 보면 생각날수 있을팅께!》

광솔가지가 삐죽삐죽한 장작개비를 골라쥔 놈은 다짜고짜 그것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후려쳤다. 얼굴을 싸쥔 어머니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자리에 나동그라졌다.

얼른 어머니를 부둥켜안은 광이는 피가 랑자한 어머니의 얼굴부터 살폈다. 섬찍했다. 한쪽볼의 살점이 뭉청 떨어져 나간데다가 허연 광대뼈가 사기쪼각처럼 부서져 있었던것이다.

《개-새끼들!》

광이는 나무무지옆에 있는 도끼를 움켜쥐였으나 어느새 날아든 발길질에 허궁 나가 떨어졌다. 뒤미처 달려든 놈들이 사정없이 짓뭉개기 시작했다. 광이는 땅에 코를 박고 피거품을 토하며 몸부림쳤다.

(두고보자. 새끼들! 가만 두지 않을끼다!-)

난생처음 겪는 울분이 피를 끓게 하는 동시에 불같은 증오심이 온몸을 불태웠다.

그날 밤 광이는 아버지가 담배를 썰던 낡은 장도칼을 꺼내여 숫돌에 갈고 또 갈았다. 그것을 하모니카대신 괴춤에 꽂고 나섰다. 어머니와 용재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사람들의 원쑤를 갚아야 했다.

확실히 순하고 어질게만 살수 없는 세상이였다. 또 그렇게 살래야 살수도 없는 세상이였다. 아니, 그렇게 살아서는 안될 세상이였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문득 아버지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알아두어라. 이놈의 시상은 큰길이 잘못된 길이고 적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놈이다. 그러니 이제부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겄지?》

비로소 그 의미가 리해되는듯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철리를 아들에게 말로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 아들의 뇌리에가 아니라 심장에 새겨 주었던것이다.

아버지의 희생, 그것은 정녕 너무나도 기가 막힌 참사가 아닐수 없었다.

집을 나간지 몇달째 소식이 없는 아버지였으나 식구들은 그래도 붙잡히지 않았다는 하나의 사실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매일밤 칠성단지우에 초불과 함께 정수를 떠놓고 썩살이 박힌 두손을 맞비비며 제발 무사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가긍한 정상, 더우기 얼굴 한쪽이 우무러들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느라면 광이는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아버지! 붙잡히믄 안됩니다. 불쌍한 어머니를 봐서라도 절대로 잘못되믄 안됩니다. 우린 그저 아버지가 무사하기만을 빕니다. 빌고 또 빕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체포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광이는 한달음에 30리가 넘는 군경찰서로 달려갔다. 벌써 경찰서 앞뜰에 있는 아름드리 팽나무주변에는 숱한 사람들이 어깨성을 쌓고 있었다. 무작정 사람들짬을 비집고 들어선 광이는 눈앞에 펼쳐진 뜻밖의 광경에 소스라치지 않을수 없었다.

차마 눈을 뜨고는 볼수 없는 참상이였다. 세사람이 팽나무에 결박되여 있는데 누가 누군지 얼굴조차 분간할수 없었다. 온통 터지고 깨지고 짓이겨진 모습이였다. 제대로 보이는건 허연 목뿐이였다. 분명 두목급 《빨갱이》들이라 하여 나무에 묶어 놓은채 여러놈이 총창, 총탁으로 얼굴을 마구 내리찍은게 헨둥했다.

그렇지만 광이는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목에 할퀸 자리와 팔굽의 인두자리, 특히는 자기를 안아줄 때마다 마구 비벼대던 그 턱수염으로 아버지를 알아보았던것이다. 아버지앞에 어푸러진 그는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이렇게 살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지리라는것을 언제 한번 상상이나 해보았던가!… 두눈을 뜨게 하려고 손으로 어루 쓸었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는 아버지였다.

누군가 팔을 잡았으나 그는 여전히 아버지를 부르며 눈을 뜨게 하려고 모지름을 썼다. 이윽고 아버지의 입귀에서 시꺼먼 피가 흘러나오는것을 보았을 때야 그는 비로소 아버지가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다는것을 알았다.

땅을 허비며 목놓아 울던 그는 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자기의 옷자락으로 정히 닦기 시작했다.아버지의 턱수염이 손바닥을 아프게 찔렀다. 여전히 살아 있는것은 턱수염뿐인듯 했다. 그런데 자기는 아버지의 이 턱수염을 얼마나 싫어했던가…

그는 자기의 한쪽볼을 아버지의 턱수염에 가져다 대였다. 또다시 자기를 으스러지게 안고 수염뿌리로 꽉 눌러주기를 바라며…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움직임도 없이 축 늘어져 있기만 했다.

아- 눈앞이 핑 돌고 온몸을 불로 지지는것 같은 전률에 저절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발을 사려문 그는 늘 품고 다니던 비수로 팽나무에 동여진 바줄부터 끊었다. 손이 화들거려 칼끝이 손등을 마구 찔렀으나 그것조차 가리지 못했다.

늘어진 아버지의 시신을 둘쳐업기 바쁘게 그는 산으로 향했다. 이 처참한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아니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대신 자기 혼자 똑똑히 보고 똑똑히 기억하고 백배, 천배로 복수해야 한다는 그 일념뿐이였다.

안침진 곳에 자리를 잡은 그는 형체도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그처럼 다정하게 웃던 눈도 엄엄하던 입모습도 찾아 볼 길이 없었다. 다만 휑하니 뚫어진 안확과 엄청나게 길게 늘어진 턱뿐이였다. 너덜너덜한 저고리단추가 헤쳐진 사이로 보이는 가슴은 벌써 컴컴한 보라빛, 자주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버지-》

저도 모르게 목놓아 아버지를 부르자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아버지의 얼굴에 적시는 순간 불현듯 아버지가 하던 말이 되살아났다.

《스나자식이 저래 눈물이 헤퍼갖고 구실을 할란가 몰라.》

이제라도 아버지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했다. 어릴 때에는 왜 자주 눈물을 흘려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지 못했는지 돌이켜보면 그 아픔이 천갈래 만갈래로 가슴을 허비였다.

《알겄습니다. 아버지! 다시는 울지 않겄습니다. 이젠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똑똑히 알겄습니다. 아버지가 바라신대로 꼭 사내구실을 하겄습니다.》

절대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그것이 생전에 아버지가 바란 요구일뿐아니라 억울하게 돌아간 아버지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마지막도리라고 여긴 그는 어금이를 사려물었다. 관자노리의 힘줄이 퍼렇게 살아나면서 귀속에서 잉 하는 소리가 났다.

(다시는 눈물을 보이지 않을테다! 그 눈물을 이제부턴 복수의 피로 받아내고야 말테다.)

그날로 그는 전북유격대가 활동하고 있는 회문산으로 들어 갔다. 그때 나이가 열여섯살이였다.

 

×

 

취재길에서 돌아오며 나는 생각했다.

광이의 소년시절, 그는 그 어느때보다도 모질고 험한 세파의 격랑속에 휘말려 들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것처럼 그 역시 자기가 바라거나 원해서가 아니라 주위에서 활활 타번져 오른 불길이 그를 삼켜 버렸던것이다.

광복의 감격과 함께 소용돌이친 좌우익의 대결, 가렬처절했던 전쟁의 포화, 그로 하여 더욱 첨예하게 격화된 인간들의 대립, 그 과정에 그는 비로소 세상을 알게 되였고 사무친 원한을 품게 되였으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새기게 되였던것이다. 아버지가 가르쳐준대로 마침내 군자가 되여 대로에 나선것이다.

그러고보면 매 사람의 인생은 어쩔수없이 당시의 환경으로부터 주어지고 거기서부터 출발하게 되는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남녘에 계실 그의 어머니며 가족들 그리고 그후 일들에 대해 알고싶은것이 많았으나 더 묻기를 삼가했다. 삼가했다기 보다 아끼기로 했다는것이 더 정확하리라. 서뿌른 질문으로 여기저기를 마구 건드려 그의 추억과 사색을 흐트러뜨리고싶지 않았을뿐더러 그렇게 되면 회고자와 청취자간의 감정이 융합되지 않는다는것이 취재를 통해 얻어 진 나의 경험이였다.

나의 취재계획에 의하면 처음엔 가정환경과 어린 시절, 친척들과 동무들, 다음은 빨찌산생활에 이어 기나긴 감옥생활과 신념을 지켜 싸우던 가지가지의 투쟁이야기, 끝으로 조국의 품에 안기기까지의 곡절많은 생활의 이모저모를 순차적으로 빠짐없이 새겨두어야 했다.

차분해 보이면서도 강직한 투지가 어려있는 선생의 표정이 다시금 눈앞에 얼른거렸다.

나는 래일의 취재에 대한 흐뭇한 기대를 안고 황혼이 깃든 창광거리를 힘차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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