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이 세상에 한번 태여나

나 하나의 안락을 찾다가 말랴

누구냐 이 나라를 지켜 나설 자

일어나라 청춘들아 목숨을 걸고

감옥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

 

-가요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에서-

 

 

 

서   장

 

그를 환갑이 지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아니 이제야 40대의 장년나이에 이른듯 단단하고 묵직해보이는 사람이였다. 어글어글한 두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나올 때엔 어쩐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군 했다는것을 미리 일러둔다.

한창나이의 젊은이들처럼 아직 흰오리 하나 없는 새까만 머리칼 역시 그의 결패있는 모습을 인상깊게 채색해주었고 키는 크지 않으나 상대방을 코끝으로 내려다보는데 습관된듯 한 자신만만 한 눈길이 더욱 함부로 호락호락 범접하게 되지 않았다. 아마 오랜 세월 옥중에서 적들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 굳어진 버릇이리라.

《반갑습니다. 선생님!》

내가 인사를 하자 그는 말없는 목례와 함께 얄팍한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찌르는듯 한 눈길은 순간도 나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찾아온 사유를 끝까지 밝히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취재를 왔습니다. 글때문에… 저…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려고…》

웬일인지 말이 잘되지 않았다. 그가 너무 유심히 뜯어보기때문인지 아니면 아무런 반가움도 표시하지 않기때문인지…

어쨌든 나는 거북스러움을 느끼며 찾아온 취지를 설명했다.

《글이라니유?》

대뜸 의혹의 빛이 그의 눈에 어리였다. 도저히 리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다시금 따지듯 물었다.

《나에 대한 글을 쓰신단 말씀이유?》

《예, 선생님의 생활을 내용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선생은 내가 말을 맺기도 전에 손을 저었다.

《그럴수 없어요.》

예견치 못한 일이여서 나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럴수 없다니요?》

《제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광입니다. 광이! … 넓을 광자가 그만 미칠 광자로 돼버린 사람이예요.

부모님들은 어릴적부터 무한히 어질고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지만 빌어먹을 세상은 나를 정반대되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렸어요. 그것도 성이 고가다보니 미쳐도 아주 되게 미친 사람이지유. 그런 사람에 대한 글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러나 나는 도리여 내가 써야 할 작품의 종자가 잡히는듯 한 흥분을 누를길 없었다.

(넓을 광자가 미칠 광자로 바뀐 사람이라…)

문득 로신의 작품 《미친 사람의 일기》가 머리를 스쳤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와 그것을 뒤받침하는 유교도덕을 미친 사람의 시점으로 해부하고 폭로한 작품, 그 무지한 질곡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잡혀 먹히우지나 않을가 하는 피해망상에 빠진 주인공이 어느 땐가는 자기도 필경 잡혀 먹히우리라는것을 예감하고 마침내 남을 먼저 잡아먹을것을 결심하는 이야기… 가혹한 페습과 악습으로 하여 미쳐버릴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인간량심의 절규!…

과연 고선생 역시 잡아먹고 먹히우고 하는 살륙의 각축전장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아니란 말인가! 암흑의 구렁텅이에 영영 파묻히고말았을 인간이 아니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로신의 주인공처럼 피해망상에 빠져 남을 해치려고 미친것이 아니라 도리여 온갖 악덕과 불의를 짓부시기 위해 손에 무장을 잡고 청춘을 불태웠을뿐더러 그래서 차례진 장장 30년이상이라는 길고긴 험난고초를 불사신의 신념과 의지로 꿋꿋이 이겨낸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만인이 우러르는 영광의 단상에 올라 영예의 승리자로, 력사의 거인으로 우뚝 솟아있는것이 아닌가!…

《광이의 수기!》

얼핏 이런 제목이 떠올라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데 선생은 한걸음 다가서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렇게 하는게 어떻겠어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중에는 나보다 훨씬 더 잘 싸운 동지들이 많은데 그분들에 대한 글을 쓰는것이 말이예유. 내가 그분을 소개하지요.》

이번엔 내가 아무 말없이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불굴의 통일애국투사인 비전향장기수 고광동지!… 그는 결코 지어낸 겸허의 표시로 사절하는것이 아니였다. 례의를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자기는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적합치 않다고 믿고있는것 같았다. 역시 불굴의 투사다운 인품을 지닌 결곡하고 소박한분이였다.

그럴수록 나는 선생에 대한 선망의 감정을 누를길 없었다. 마치 치렬한 격전에서 련승을 자랑해온 관록있는 체육선수를 마주하고있는 기분이랄가, 아니 그런 선수를 목마에 태우고 만장을 선회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어째선지 저도 모르게 비죽 미소가 흘러나왔다.

할수없이 나는 선생에게 최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비전향장기수 매 사람의 투쟁을 내용으로 한 소설을 쓸데 대한 과업을 우리 작가들에게 주셨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아니, 매 사람을요?》

이번에는 더없이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였다. 그리고는 이윽토록 생각에 잠기는것이였다.

《정말 놀랍네요.》

눈을 감고 긴숨을 내뿜으며 모지름 쓰는듯 하더니 나직이 감동에 겨워 말하는것이였다.

《미처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품에 안아주신것만으로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갖가지 사랑을 베풀어주신것만 해도 몸둘바를 모르겠는데… 이번엔 또 소설의 주인공으로까지 내세워주시다니…》

그는 다시금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사실 내가 선생에 대해서 아는것이란 1935년생으로서 지금 65살이라는것과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16살 어린 나이로 유격대에 입대하여 싸우다가 1956년에 체포되여 33년간이라는 긴 옥살이를 했다는것이 전부였다.

60평생 그가 헤쳐온 가시덤불길에 비하면 너무도 간단한 리력이였으나 그것이 그의 빛나는 한생, 자랑찬 한생을 말해주는데는 충분한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바로 조국의 품에 안긴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모두가 그렇게 몇줄로 당보에 소개되였지만 온 나라 인민은 물론 온 세계가 그토록 경탄하고 눈물로 환호하기에는 족하였던것이다. 그들의 경력이 그토록 짧은 문구로 개요될수 있은것은 바로 그들이 한생 변함없이 곧바른 신념의 한길만을 곧추 걸어왔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제 그의 한생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기나긴 세월 신념을 지켜 싸웠는가를 글로 써야만 했다. 또한 그가 남들과는 달리 부모형제들이 다 있는 정든 고향땅을 버리고 어째서 일점혈육 없는 북으로 오게 되였으며 더우기 예순다섯이라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아직 가정도 꾸리지 않은 깨끗한 숫총각으로 있을수밖에 없었는가 하는것도 알아야만 했다. 이러한 갖가지 의문은 그야말로 커다란 기대와 함께 기대가 자아내는 이상의 매혹이 아닐수 없는것이였다.

그런 남다른 욕구를 안고 찾아왔는데 막상 대하고보니 더없이 매력적인 호남아가 아닌가! 이런 멋쟁이 주인공이 나한테 차례지다니! 어쩐지 기쁨과 함께 두려움이 갈마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이런 느낌은 나만 아니라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 작가들모두가 꼭같이 맛보았을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첫날의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그처럼 훌륭한분들에 대하여 글을 쓰기에는 자기의 재능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죄스러움을 금치 못했을것이다.

이윽고 머리를 든 선생은 미소를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절 당장 취재하겠다는거예요? 그럼 응접실로 갑시다. 장군님의 믿음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야지요. 그런데 어찝니까. 난 사실 별로 할말이 없는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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