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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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춥고 지지리 긴 겨울의 시달림을 받는 백두원시림지대에도 늦게나마 봄은 오기마련이다. 그 봄이 아무리 늦되여도 역시 봄이였다.

3월하순에 접어들자 초막의 지붕밑에 매달린, 곽두섭의 다리통같이 실한 고드름들에서 낮이면 락수물방울이 쭐벙쭐벙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춘분날 한낮에는 여러개의 고드름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샘물가 둔덕우의 개버들은 상기도 허리까지 눈속에 묻혀있었지만 눈우에 내놓인 발가우리한 가지들에서는 어느덧 햇버들강아지들이 패여났다.

재물에 삶은 붕대들을 헹구러 샘물터에 나갔던 조분옥은 눈우에서 피여난 그 버들강아지들을 발견하자 지체없이 몇가치 꺾어들고 초막으로 달려들어왔다.

《히야― 이게 뭐요? 버들개지 아니요?》

밤에 등화용으로 쓸 광솔따러 갈 차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곽두섭은 희색이 만면하여 마주 들어오는 분옥의 품에서 기막히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털보숭이 버들강아지들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버들개지예요! 버들개지가 피였어요!》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들어온 그 귀여운것들을 한가치씩 나누어주는 분옥이의 눈에는 감격의 이슬방울까지 맺혀있었다.

《챠― 이거 정말 희한하다 !》

《아― 요놈, 깜찍스럽기두! 》

좁은 초막안에 갇혀살다싶이하며 지루한 겨울을 나고있던 《만강》과 신아바이는 그 귀염둥이들에게 저마끔 아낌없는 애무를 쏟아부었다.

《신아바이, 볼에 대보시라구요. 얼마나 보드라운가… 갓난애기 같다니까.》

만강부락을 흘러내리는 만강천에는 개버들이 무성하고 봄마다 그 무성한 가지들에는 수없이 많은 햇버들강아지들이 피여났지만 《만강》은 버들강아지를 난생처음 보는 젊은이마냥 신기해했다. 년초에 있은 문암동전투에서 왼쪽다리에 관통상을 받은 《만강》은 아직도 바깥출입을 못해서 나무들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줄을 몰랐다.

《갓난애기같은게 아니라 요놈들두 갓난애길세. 봄아씨가 눈이불밑에서 낳은 첫 애기들이란 말이야.》

신아바이는 년장자답게 《만강》을 깨우쳐주며 눈웃음쳤다. 사령부가 주력부대를 이끌고 무송쪽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최현부대에서 다시금 사령부에 통신을 날라오다가 발에 동상을 당하여 최현부대에 돌아가지 못한채 여기서 지금껏 치료받고있는 그도 역시 언제나 초막안에 갇혀살았다.

《봄의 첫아기라… 그거 정말 그럴듯 한데요.》

《개버들이 많다는 만강에서 자란 자네가 상기 그것두 모르다니? 봄은 언제나 버들개지를 먼저 파해서 자기가 온다는걸 알리군하네. 이를테면 봄통신을 보내는셈이지. 우리 〈아바이〉가 가장 중허구 긴급한 일에 늘 나를 파했듯이말일세.》

4사통신원은 자기네 부대장 최현을 우리 아바이라고 말하군 했다.

초막안에는 웃음이 넘쳤다.

《하, 이 아바이가 정말…》

《만강》은 어림없는 말씀을 한다는듯 눈알을 굴렸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를 모르시오? 아리랑타령에는 제비가 봄통신원으로 노래되여 있단 말입니다.》

신아바이는 도리머리질을 했다.

《제비도 물론 봄통신을 날라오긴 하네만 첫 통신을 가져오는건 요 버들개지들이야. 버들개지들이 전해주는 봄통신을 받으면 그때부터 까막까치들은 새끼낳이차비를 서두르며 새 보금자리를 틀기 시작하구, 굴속에서 잠을 자던 뭇짐승들두 기지개를 켜며 동면에서 깨여나구, 깊이 쌓였던 눈도 꺼져들며 눈석이를 시작하거던. 그런 뒤에 눈속에 숨어있던 봄아씨가 나타나지. 이제 연분홍저고리에 초록치마단장을 한 어여쁜 봄아씨가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며 〈만강동무, 안녕하세요?〉하구 해사한 웃음을 던질 때면 무뚝뚝한 자네두 헤벌쭉해지고말걸세. 그런 때가 오래지 않았네.》

신아바이는 봄아씨의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만강》의 잔등판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만강》은 정말 벌써부터 헤벌쭉해서 샘물터에 다시 나가려는 조분옥이더러 빈 깡통에 물을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분옥이는 쌀바가지삼아 쓰군하는 빈 깡통에 물을 담아주고 다시 샘물터로 나갔다. 그것은 부대가 무송쪽으로 이동해갈 때 그들에게 보내준 소고기통졸임이 들었던 깡통이였다. 《만강》은 물이 담긴 그 깡통에 개버들가지들을 꽂았다.

《자, 통신원아바이, 이걸 좀 번져지지 않게 잡소다. 아바이대신 사령부통신을 날라왔는데 잘 모셔야지.》

《내 대신 사령부통신을 날라왔다구 ?》

신아바이는 그의 요구대로 깡통이 넘어지지 않게 붙잡으면서도 그 말에는 의견이 있다는 눈찌다.

《아, 이 〈동무〉들이 오죽 수고했소? 그 깊은 눈속을 헤치구 나와서 우리한테 부대가 다시 나올 봄이 오고있다는걸 알려줬는데 그게 사령부통신이나 다를게 뭐 있소?》

《만강》은 호주머니에서 꺼낸 헝겊오래기로 깡통을 벽에 걸수 있게 고리를 만들었다.

《…》

말싱갱이에 지는적 없는 신아바이지만 《만강》의 그 말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령부에서는 부대를 이끌고 무송쪽으로 이동해가면서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였었다. 환자들이 월동하며 치료할 식량과 부식물과 약품들을 메고 왔던 분옥이가 장군님께서 그들 환자들에게 보내시는 말씀을 전해주었던것이다.

봄에 다시 상봉하자, 부디 그날까지 치료를 잘하여 건강을 회복하라,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나 모두 함께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자… 그것이 장군님께서 무송으로 떠나시기전에 그들에게 보내오신 말씀이였고 당부였고 약속이였다.

그러므로 봄이 온다는것 그것은 곧 부대를 이끄시고 무송쪽으로 가신 장군님께서 돌아오실 때가 박두했다는것을 의미했으며 그들도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했다. 하고보면 《만강》이 버들강아지를 보고 헤벌쭉해진것은 미구에 봄아씨를 만나게 된 기쁨때문이였음이 분명했다.

《자네 말이 옳네. 내가 날라왔어야 할 사령부통신을 내가 이렇게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보니 이것들이 수고했네그려.》

신아바이는 마치 자기가 사령부통신원이기나 한것처럼 《만강》의 롱말에 수긍했다.

《기특두 하지. 이 갓난아기들이 그 깊은 눈속을 헤치며 통신을 날라오다니… 나처럼 동상을 당하지 않게 바람들 구멍이랑 없나 잘 살펴보구 제일 아늑한 자리에 매달아야겠네.》

곽두섭은 통신원아바이의 말을 등뒤로 들으며 초막밖에 나섰다.

얼굴에 끼얹히는 청신한 밀림속의 아침대기는 전에없이 산뜻하면서도 부드럽다. 살갗을 찌르는것 같던 추위가시는 이제 영영 빠져버린것인가? 숲사이로 비쳐드는 아침해볕은 전에없이 따스한것 같고 늘 보아오는 그 나무, 늘 보아오는 그 숲도 이 아침따라 류달리 생기를 머금은것 같고 활기를 띤것 같다.

주위의 모든것에서 어제와는 다른, 그 어떤 기이한 변화가 갑자기 시작된듯 한 느낌과 함께 자신도 알지 못할 감흥과 희열에 잠긴 곽두섭은 괜히 저혼자 싱글벙글 웃으며 저절로 향해지는 발길을 따라 샘물터로 걸어갔다. 광솔을 따러 가기전에 분옥이도 보고싶고 눈속에서 태여난 버들강아지도 보고싶은 두섭이다.

눈속을 흐르는 샘물도랑옆에 앉아서 붕대오리들을 헹구고있던 분옥은 빠득빠득 눈밟으며 다가가는 곽두섭의 묵직한 발걸음소리를 듣고는 물에 젖은 발그레해진 손을 치마자락에 대충 훔치며 일어났다. 뒤돌아보지 않고서도 그는 누가 자기 등뒤로 다가오고 있는가를 알고있었다. 복부의 상처가 거의다 아문 곽두섭이밖에는 바깥나들이를 할수 있는 다른 환자가 없는것이였다.

돌아서며 얼핏 정겨운 눈길을 들었다숙이는 분옥의 애틋한 량볼은 수집음때문에 대뜸 홍조가 피여 새빨갛게 물들었다. 다른 환자들이 있는데서 아무렇지 않다가도 단둘이 만나게 될 때에는 항상 숫색시마냥 몹시 수집음을 타는 분옥이다. 눈부시게 비쳐드는 아침해빛을 받으며 홍조로 불타는 얼굴을 갸웃이 숙이고 선 그의 모습은 눈속에서 피여난 한떨기 진달래꽃마냥 유별나게도 아름답다. 해빛이 반짝이는, 윤기나는 어린애입술같은 분옥의 자그마한 입술은 금시 여름 아침이슬을 머금은 빨간 꽃잎 그대로였다.

자기 애인의 눈부시게 아릿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처음보는 곽두섭은 그만 버들강아지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얼이 빠진듯 한참동안이나 아무말없이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분옥이를 보고 또 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자기 곁눈에 얼핏 비껴드는, 샘물도랑을 따라 흘러내리는 붕대오리들을 보고

《아, 아, 저저 !》

놀란외마디소리를 지르며 손에 들었던 낫가락으로 건지려들었다.

《아이참! 가만계셔요!》

그가 허리를 굽히지 못하게 막아나선 분옥은 물도랑을 따라 도랑옆의 눈을 헤치고 내려가며 흘러내린 붕대오리들을 건져냈다.

《백두산밀영에 처음 도착한 다음날 라명희도 이런 창피를 당했다더니…》

건져낸 붕대들을 쥐여짜들고 가까이 다가오는 분옥의 이야기였다. 수집음속에 천진하게 웃는 그의 오목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이런 창피라니?》

《소백수가에 나가앉아 빨래감 몇가지를 빨다가 손수건을 흘려버렸다나요. 명흰 그런줄도 모르고 앉아있었는데 장군님께서 그걸 건져다주시더라질 않겠어요?》

《원, 저런! 뭘 했게 것두 모르구 앉아있었담?》

분옥은 눈을 곱게 할길뿐 거기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허리를 굽히거나 배에 무리하게 힘을 주지 마세요. 아직 온전하게 다 아물지도 못했는데…》

곱게 할겨보는 그 오목눈, 가벼이 나무라며 타이르는 그 조용한 목소리에 담겨져있는 깊고 뜨거운 정을 온몸으로 느낀 곽두섭은 그저 가슴이 뭉클했다.

분옥은 쥐여짠 붕대오리들을 툭툭 털어가지고 그것을 널어놓으려고 한무데기의 개버들이 우거져있는 둔덕으로 올라갔다.

《보세요. 아침에 나와보니 어제까지 커다란 망울만 달렸던게 이렇게 소담스레 피여나지들 않았겠어요?》

눈속에서 피여난 버들강아지들을 그대로 피여난 자리에 두고보니 한결 더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 깊은 눈속에서 이토록 부드럽고 연약하고 애된것들이 어떻게 태여날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했다.

《곱지요?》

《음, 곱소.》

《이 보드라운 털을 좀 봐요. 어쩌면 이런 고운 털로 몸을 감쌌을가요?》

《추위를 견디며 태여나자니 털로 감쌌을테지. 갓난애기들도 보슴털이 있지 않소?》

잠시 덤덤히 개버들만 보고있던 분옥은 또 문득 말을 꺼냈다.

《지난해보다 철이 일러지는가보지요?》

《글쎄…》

《지난해엔 눈이 왔댔지요.》

《이때쯤말이요?》

《지난해 이날말이예요. 오늘이 무슨 날이던지 생각나지 않으세요? 지난해 이날 마안산에 눈이 몹시도 내리던 일이…》

곽두섭은 가슴이 뜨끔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요?!》

분옥은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 바로 오늘이였다.

곽두섭의 눈앞에는 대뜸 그 잊을수 없는 마안산 가문비나무숲속의 구새먹은 봇나무곁에서 있었던 그날의 정경이 떠올랐다. 웃어야 할 그날 부둥켜안고 울어야만 했던 불행한 비밀약혼자들을 축복하여 구슬픈 하늘이 축축한 백설의 꽃보라를 들씌워주던 일이며 분옥이가 흐느낌을 삼키며 자기의 군복단추를 바꿔달아주고 바꿔달아가지던 일이며…

이제야 곽두섭은 아까 분옥이가 여기에 핀 버들강아지를 꺾어 들고 초막에 나타났을 때 왜 그리도 감격하여 눈물까지 글썽했던지 그리고 분옥의 가슴에 달린 저 웃주머니단추가 어찌하여 오늘따라 저리도 윤기나게 반짝이고 있는것인지를 깨달았다. 역시 녀자란 이를데없이 찬찬한 반면에 사대들은 덜퉁한가부다. 이날이 자기 생활에서 어떤 깊은 뜻을 가지고있는가 하는것조차 모른채 이날을 맞다니?

《그럼 그렇다고 귀띔이라두 해줄거지…》

곽두섭은 약간 무안한김에 괜히 애꿎은 분옥이를 나무랐다.

《나도 알고있어야 어째서 이 버들개지들이 다른 날 아닌 바로 오늘 피여나줬는지 알고 같이 더 기뻐했을게 아니요? 하여튼 좋소. 이제라두 알았으니 이분네들의 축복을 받아야지.》

곽두섭은 허리를 굽히고 버들강아지들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기분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분옥이를 돌아다보았다.

(자, 저 귀염둥이들도 우리를 축하해주는 날인데 무심하게 지낼수야 없지.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가?)

이런 생각에 잠긴 곽두섭에게는 문득 기막히게 아름답고 눈부신 이 아침의 설경, 정든 초막, 눈속에서 봄소식을 전해준 버들강아지들을 분옥이의 모습과 함께 담아 영원한 기념으로 남겼으면 싶은 생각이 솟구쳐올랐다.

《아이참, 왜 자꾸 그렇게 찬찬히 보세요?》

《음? 아, 여기에 〈대통령감〉이 가까이 있었으면 사진이나 한장 찍었으면 하는 생각이 나서말이요.》

분옥이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소리없이 웃었다.

《왜 웃소?》

《언젠가 우스개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요.》

《무슨 말?》

《종이가 있었으면 담배나 얻어피우겠는데 성냥이 있어야지… 하던 말씀말예요. 그전에 담배를 끊기전에…》

 《아, 그랬던가? 그렇지만 그것과 이건 다르단말요. 그건 종이도 담배도 성냥도 없이 알짜 빈손으로 하는 소리지만 〈대통령감〉만 곁에 있으면 지금은 능히 사진 한장 얻어찍을수 있소. 내가 설전에 있은 어느 한 전투때 사진기 한대 로획한걸 그 령감한테 준게 있소. 내가 부탁하면 제깍 한장 찍어줄거요. 이런 날 여기서 둘이 같이 한장 박아두면 앞날엔 그 이상 더 큰 기념으로 될게 아마 없을거요. 먼 앞날 해방된 조국땅에서 행복하게 살 때 문득 그 사진을 앞에 꺼내놓았다고 상상해보오… 만일 우리에게도 귀여운 어린것들이 있게 되면 우리는 그애들앞에서 오늘을 옛말해주겠지… 너희 아버지, 너희 어머니들이 어떤 투쟁과 시련속에서 너희들의 오늘을 마련했는지 너희들은 모를거다. 자, 이것 봐라. 여기서 우리는 1937년의 봄소식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약혼 한돌을 맞았다. 여기서 우리는 멀리 가신 장군님께서 나오시기를 손꼽아기다렸다.…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테요? 사진뒤장에 적어둔단 말이요. 〈백두밀림에서 희망찬 1937년 봄소식을 접하며〉혹은 이렇게 적을수도 있지. 〈장군님을 기다리던 1937년 봄에〉…》

분옥은 가늘게 한숨을 쉬였다.

《전 아직 사진이란걸 한장두 찍어보질 못했어요.》

곽두섭은 놀랐다.

《그렇다면 더구나 꼭 한번만이라두 찍어봐야겠구만. 찍기요. 이제 장군님께서 부대를 거느리고 나오시면 〈대통령감〉한테 말해서 찍기요. 그 령감이 나하군 그럴 사이가 아니니 들어줄거요. 장군님을 따라 조국땅에 진군한 기념으로 찍든지 혹은 부대앞에서 결혼하는 날 기념으로 찍든지 둘이 나란히 박아두기요. 어떻소?》

분옥은 눈빛을 반짝이며 행복에 겨워 생글거렸다.

《전 아까 버들개지가 핀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겠어요?》

《어디 좀 들어봅시다. 그 당실한 이마뒤에 얼마만큼이나 현명한 생각이 깃들어있는지 나야 알아야지.》

《아이참!》

분옥은 또 눈을 할긴다.

《나무람 말고 어서 말하오. 괜히 해본 소리요. 내 진지하게 듣겠소. 무슨 생각을 했댔소?》

《이제 장군님께서 부대를 거느리시고 조국땅에 원정나가실 때 우리 장군님께 무슨 차림을 해올릴가 하는 생각을 했댔어요.》

분옥이의 그 갸륵한 심정이 뭉클 곽두섭의 가슴을 찌른다.

《그래서 ?》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보통대원들과 다름없는 옷차림으로만 지내시는데 저는 조국인민들앞에 나서시게 되실 그 원정때만이라두 장군님께 색다른 차림을 해올리고싶어요. 조국인민들이 그처럼 간절히 뵙고싶어하던 장군님을 인차 알아뵐수 있도록말이예요. 아마 장군님께서는 사양하실거예요. 그렇지만 조국으로 나가시는 이번 기회에만은 지휘관들도 한결같이 우겨서 우리 재봉대원들이 마련해올리는 차림을 기어이 하시도록 해야 할거예요.》

《옳소, 그래야지. 아주 그럴듯한 생각이요. 그런데 어떤 차림을 해드린다?》

조분옥의 구상에 열렬히 공감한 곽두섭은 제사 더 흥이 나서 몸이 달았다.

《장군님께서 봄과 함께 돌아오시구 봄과 함께 조국진군을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봄외투같은걸 마련하면 좋을것 같아요. 제가 지난겨울에 병원에 있다가 재봉대에 가자마자 장군님께서 사령부작식대 철구어머니에게 새옷을 지어주자시며 손수 마련하신 은회색 캬바직천을 김주현동지가 재봉대에 가져온걸 본적이 있었어요. 전 그때도 그 천으로 장군님의 봄가을외투를 지어드렸으면 하는 생각이 났댔어요.》

《옳소, 생각나오. 사령관동지께서 라명희동무의 의견이랑 참작해서 친히 그 색갈의 천을 고르셨지.》

《그런 은회색이 좋지 않아요? 밝고 은근하고 고상하고… 그런 색의 고급세루직같은걸로 지어올리면 아주 보기 좋을거예요. 그 후리후리하신 자태에 얼마나 잘 어울리겠어요.》

상상속에서 자기가 지어올린 차림을 하신 장군님을 뵈옵는 분옥의 밝고 희망찬 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했다.

《옳소. 은회색세루직으로 하기요. 천은 내가 구하겠소. 그러면 분옥이가 짓소. 장군님의 은정속에 그 어느 누구들보다 복많이 받은 우리 두사람의 지성인줄 아시면 장군님께서도 받아주실거요.》

더없이 마음이 흡족해진 곽두섭은 한참동안이나 분옥이와 둘이서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땅에 나가게 될 미구의 봄원정을 두고 가지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나서 다시 많은 기쁨이 겹친 오늘을 무엇으로 어떻게 기념하겠는가 하는데로 돌아왔다.

《이러구보면 오늘은 더구나 무슴슴하게 지낼수 없는데 뭘로 기념하면 좋을가? 우리가 주인들인데 기념마련이야 우리가 해야지. 무슨 사회측의 복안같은게 없소?》

분옥은 어이없다는듯 웃었다.

《우리 그 일이야 뭘 기념셈에 넣겠어요? 우리 두사람끼리만 있는것도 아닌데…》

《아, 이거 금시 현명한 생각을 하던 사람이 못난소릴 하누만. 그런 이야길 장군님께서 들으시면 큰일나겠소. 장군님께서는 놈들의 〈동기대토벌〉작전이나 파탄시키고는 기어이 온 부대가 다 모인데서 보란듯이 우리 결혼식을 하자고 여러번 말씀하셨소. 내가 그만 홍두산전투에서 부상당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지 그렇지 않았더면 지금쯤 온 부대앞에 우릴 내세워주시구 축하해주셨을거요. 사령관동지께서 분옥일 뭐 괜히 나한테 보내신줄 아오?》

《저도 그건… 알아요.》

《알면서 뭘 그냥 한 초막에서 형제보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한테까지 계속 비밀로 붙이겠다는거요? 그 사람들은 뭐 우리가 어떤 사이인줄 모르는줄 아우? 그 사람들두 귀가 있구 눈이 있는데…》

분옥이는 호― 하고 가는 한숨을 내쉬였다.

한참 궁리하던 곽두섭은 사방을 두릿두릿 둘러보다가 한그루의 잣나무가 비껴들자 애인에게 단호히 언명했다.

《이렇게 하기요. 내 잣을 따올게 점심에 잣죽이나 쒀놓고 모여 앉아 우리는 여사여사한 사이요 하고 씨원히 털어놓고 알려주기요. 동무들도 좋아할거요.》

그 말에 놀란 조분옥은 그의 성한 팔을 붙잡았다.

《안돼요. 그 몸으로 안돼요. 제가… 제가 따로 생각해둔게 있어요.》

《정말이요?》

《정말이예요. 그러지 않아 요즘 신아바이가 입맛이 없어하길래 오늘 점심엔 좀 색다른걸 해올리자고 생각하고있었어요. 두고 보세요.》

《좋소. 그럼 점심에 그걸 하구 저녁엔 잣죽을 쑤고… 그럼 더욱 좋지?》

조분옥은 부목을 떼지 못하고 목에 걸고있는 왼팔을 가지고 잣을 따게 되면 나아가던 상처들이 덧쳐진다고 말리려들었으나 곽두섭은 기어이 우겨대며 거듭 매달리는 분옥이를 가볍게 떠밀치고는 눈덮인 숲속으로 향하였다.

항상 곁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안될 다른 두 환자때문에 잣따러 갈 형편이 못된 분옥은 더는 두섭을 말려내지 못하고 뒤에 남았다.

《그럼 조심해서 몇송이만 따가지고 돌아오세요.》

《걱정마오. 한사람앞에 한송이씩만 차례지게 따고 돌아올테니…》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주의하겠소.》

《어디 넘어져서 상한데를 다치면 안돼요.》

마음놓이지 않는지 분옥은 걱정도 다심했다.

《넘어지지 않겠소. 어서 들어가 다른 동무들이나 돌보구려.》

《주변을 잘 살피며 다니세요. 짐승이나 또 혹시 적들이 어디 보이지 않는가…》

《원 걱정두… 여태 꿈쩍 나타난적 없는 적이 부디 오늘같은 날 이 눈깊은데 올테요?》

《놈들이 언제 온다구 통지하구 다녔던가요? 그렇게 맘을 늦추고 다니지 마세요.》

《알겠소. 일러준대로 만사에 명심하겠으니 안심하오.》

분옥은 곽두섭이 숲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샘물터의 개버들둔덕에 지켜서있었다.

《조심해요.》

또다시 근심에 겨워 당부하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이미 꽤 멀어진 뒤에서 들려왔다. 자기를 생각하는 분옥이의 그 따뜻한 마음을 받아안은채 곽두섭은 숲속의 생눈길을 헤쳤다.

여러날만에 들어와보는 숲은 전에 못보던 진귀한 짐승들의 발자국과 딱따구리의 나무쫏는 소리와 나무우에서 소리없이 흩날리는 눈안개와 깊은 겨울잠을 깨치는 밀림의 야릇한 기척소리와 이름모를 새가 금시 틀기 시작하는 둥지와 노곤하게 취하게 하는 달작지근한 훈향으로 곽두섭을 유혹하며 깊이 끌어들였다.

곽두섭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봄! 봄!

이 봄은 그에게 있어서 참으로 행복스러운 봄, 환희에 찬 봄이였다. 내내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으면서 어느 시각에나 그를 볼수 있고 그 정다운 목소리를 들을수 있고 살뜰한 애무의 손길을 받을수 있는것처럼 행복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서로 몹시 그리웠던 그들은 처음으로 같이 지내면서 삶이란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고 랑만적인것인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재작년봄, 번민속에 모대기던 처창즈의 봄에는 인생이란 괴롭고 쓰디쓴것이였다. 지난해 봄, 눈물속에 비밀약속을 하고 또 피눈물속에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였던 마안산의 봄에는 삶이란 곧 슬프고 가혹한것이였다.

그러나 삶이란 그런것이 아니였다. 아무런 구속도 받음이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해 봄을 맞아보니 삶이란 곧 기쁨이였고 환희였다.

초막에는 그들외에도 두사람의 환자가 같이 지내고있었으므로 분옥이와 두섭이만 따로 만나게 되는 기회는 거의나 없었다. 얼마전부터 유일하게 바깥으로 나다닐수 있게 된 곽두섭은 《만강》과 신아바이 몰래 분옥이와 만나는것이 어쩐지 동거자들에게 미안스러워서 스스로 밀회할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때에도 그런 기회를 한번도 리용하지 않았다. 조분옥이 역시 곽두섭이보다 상처가 심한 다른 두사람을 더 돌봐주고 보살펴주면서 그들곁에 더 오래 그리고 더 자주 붙어있었다. 하지만 곽두섭은 다른 환자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조분옥의 뒤모습을 보기만 해도 아니 그의 옷자락스치는 소리나 늘 분주하게 서도는 그의 조심스러운 인기척을 듣기만 해도 그저 모든것이 다 즐겁고 유쾌하기만 하였다.

조분옥이가 자기곁에 와서 자기를 간호해주게 된 때로부터 곽두섭은 한번도 상처의 동통이 가해주는 육체적아픔이라는것을 느껴보지 못하였다. 일순간의 아픔을 느끼다가도 자기곁에 다가오는 그의 근심어린 눈을 보거나 아프냐고 묻는, 사뭇 놀라와하는 목소리를 듣거나 조심스럽게 상처를 다루는 그 부드러운 손길을 감촉하기만 하면 웬일인지 심장을 찌르는듯 하던 상처의 동통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그대신 그것은 일순간에 가슴을 찌르르하게 자극하는, 스스로도 알지 못할 희열로 바뀌여지고 마는것이였다.

사랑하는 사람곁에서 자신에게 미쳐오는 따뜻한 정을 항시적으로 느끼며 지내는 이 나날은 삶이 아침해빛에 령롱히 반짝이는 이슬처럼 찬연하고 달빛아래 구을며 춤추는 벽계수처럼 명랑하고 즐거운것이였다.

그 즐거움, 그 기쁨을 누리며 행복을 깊이 체감하면 할수록 그는 자기가 부상당한 기회에 자기들이 겨울동안 같이 지낼수 있도록 해주신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군 하였다.…

깊은 숲속에는 상기도 눈이 허리를 치게 쌓여있었다. 웅뎅이진곳에는 키를 넘게 쌓여있기도 했다. 그런데서 잣송이가 달려있는 잣나무를 찾아내기는 조련치 않았다. 그러나 곽두섭은 깊은 눈속을 헤치며 분비, 가문비나무숲속에 드문드문 섞여있는 잣나무를 찾아서는 낫으로 찍고 다듬어 방망이같이 만든 나무토막을 던져 가까스로 한송이한송이씩 잣송이들을 땄다. 한송이의 잣송이를 얻기 위해 때로는 열번도 나마 눈속을 헤매며 나무토막을 찾아서 다시 또다시 던지기도 했고 몇차례씩 눈속에 번져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조심하느라 했지만 부목을 댄 팔굽을 나무에 찧고는 전신을 쑤시는 동통때문에 한참씩 신음소리를 삼키며 주저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나 남들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자신도 즐거움을 맛보기 위하여 스스로 하자고 맡아나선 일은 언제나 고역으로 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 일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거기에서 더 큰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것이다.

곽두섭은 희망찬 봄통신을 받은 오늘 벗들과 분옥이를 더욱더 기쁘게 해줄것을 생각하니 엎어지고 쓰러지고 뒹굴어도 힘이 나고 용기가 났다. 물론 무리한 체력의 지출에 비해서는 수확물이 많지 못하였다. 짐작으로 둬시간가량 눈속을 헤바라돌아다니며 땄다는것이 고작 열한송이, 광솔을 따넣으려고 허리에 찼던 자그마한 마대자루밑굽에 겨우 한벌 깔리나마나했다.

(한사람앞에 세송이씩은 차례지게 따야지.)

자기때문에 몹시 근심하고있을 분옥이를 생각하여 모자라는 한송이만 더 따가지고 돌아가리라 작정하며 잣송이가 달린 나무를 찾고있을 때 별안간 어디에선가 가슴을 선뜻하게 하는 외방의 총소리가 울려왔다.

한번도 총성이 울린적 없던 이 밀림속에서 불현듯 울려온 그 총소리는 순간에 불길한 예감을 자아냈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도사린 곽두섭은 잠시후 몰방으로 터지는 여러방의 총소리를 다시 들었다. 널장으로 물장구를 치는듯한 긴긴 메아리가 정적이 깃들었던 밀림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곽두섭은 무작정 초막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잣나무들을 찾아 여기저기 헤바라돌아다녔으므로 초막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얼른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돌아다닌 발자국을 일일이 쫓아갈수는 없다. 어림짐작으로 헤덤비며 걸었다.

(무슨 총소리일가? 누구의 총소리일가?)

초막에는 단 한자루의 총밖에 없다. 그런데 두번째로 울린 총소리는 몰방으로 터진것이였다.

더는 들려오지 않는 그 정체모를 불안한 총성… 곽두섭은 아무리 해도 불길한 생각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그는 제발 초막에서 아무 일도 없기만을 바라면서, 오직 그것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허겁지겁 걸음을 옮겼다. 초막으로 간다는것이 어느쪽으로 가는지도 모른채 무턱대고 눈길을 헤쳐갔다. 자기가 낫과 잣송이가 든 자루를 어디에다 떨어뜨렸는지도 몰랐다. 그는 걷지 못하는 동무들과 애인이 있는 초막을 찾아 눈속에 엎어지고 자빠지고 구을고 딩굴면서도 또 나무가지에 옷과 얼굴과 손을 찢기우고 미투리 량쪽을 다 잃으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후각을 자극하는 매캐하고 알싸한 연기내를 맡았다. 더욱더 겹쳐드는 불안속에 우뚝 멈춰서서 새삼스럽게 사위를 돌아본 그는 왼편 수림속에 자욱하게 서린 연기를 보았다.

그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돌려졌다.

그을음을 머금은 연기는 앞으로 나갈수록 점점 더 짙었다. 눈물이 나고 기침이 났다. 숨이 콱콱 막혔다. 연기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나무가지들이 얼굴을 허비고 옷자락을 물어뜯었다. 그래도 두섭은 멈춤없이 연기의 구름속을 뚫고나갔다.

 마침내 그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연기의 장막속에서 불길이 너울거리고있는 커다란 무지를 보았다. 사방 어디나 연기로 뒤덮여 있어 여기가 어디며 그것이 무슨 불무지인지 곽두섭은 인차 알아 차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그를 그 불무지쪽으로 잡아끌었다. 곽두섭은 넋없이 그리로 다가갔다. 무엇엔가 걸채여 엎어졌다. 부목을 댄 팔에서부터 무서운 동통이 일어나 심장을 찌르고 들었다. 일순간 정신을 잃은채 눈속에 엎드려있었다.

얼마후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든 곽두섭은 바로 자기 눈앞에 손으로 꺾은 자리가 난 한무더기의 개버들이 서있는것을 보았다. 꺾이지 않은 가지들에는 버들강아지들이 달려있었다. 아까 분옥이와 같이 사진을 찍었으면 했던 샘물터… 여기가 바로 초막이 있던 자리라는것을 안 곽두섭은 벌떡 일어났다.

(아, 이게 웬일이냐?)

너무나 엄청난 재난을 불시에 당한 그는 어째서 초막이 없어지고 그자리에 커다란 불무지가 생겼는지, 동지들과 분옥은 어째서 보이지 않는지, 또 자기가 지금 꿈을 꾸고있는지 혹은 산 정신으로 서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졌는가를 문득 깨닫고 불타고있는 초막자리로 달려갔다. 바람이 불타는 초막에서 재티를 날려 그에게 덮씌웠다. 해는 짙은 연기구름속에서 잉걸불덩어리처럼 변했다.

이미 숯막대기로 변해버린 서까래 한끝에 새까맣게 그을은 깡통이 깔려있었다. 곽두섭은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 깡통에 물과 함께 웃음을 담아주던 분옥이, 그 깡통에 익살과 함께 버들강아지를 꽂던 《만강》과 신아바이는 어디로 갔느냐?

곽두섭은 초막주변수림속을 미친듯 돌아치며 초막의 동거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바이!》

《〈만강〉동무!》

《분옥이!》

눈우에 시뻘건 피얼룩을 점점이 남기며 어느 누구인가 절벽쪽으로 기여간 자리와 그쪽으로 쫓아갔다가 되돌아온듯 한 몇놈의 왜군의 군화자리가 나있었다. 허둥지둥 그쪽으로 찾아나가던 곽두섭은 마른 송라를 가지에 드리운채 죽어버린 강대나무줄기에 눈익은 빼또칼이 꽂혀있는것을 보았다. 깎개질을 좋아하던 신아바이가 단검삼아 즐겨쓰군 하던 칼이였다. 바깥출입을 못하는 아바이의 애용칼이 어찌하여 거기에 꽂혀있는지 그런것에 의문을 품을 경황없이 피얼룩을 따라 절벽끝으로 달려나간 곽두섭은 낭떠러지밑 넓은 바위돌우에 랑자하게 피를 뿌려 두리의 눈을 온통 시뻘건 피빛으로 적신채 누워있는 신아바이를 내려다보고 가슴을 떨었다.

《아바이! 신아바이!》

내려갈수 없는 절벽밑에 대고 울부짖는 곽두섭의 부름소리는 이미 원쑤놈들에게 마지막으로 자기의 호신용 빼또칼을 던지고 장렬한 최후를 마친 신아바이의 죽은 넋을 살려내지 못했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분함을 못이겨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절벽끝에서 되돌아선 곽두섭은 아바이가 남기고 간 빼또칼을 뽑아 틀어쥔채 다시금 다른 두사람을 찾아 밀림속 여기저기를 헛되이 헤발며 돌아쳤다.

《〈만강〉동무!》

《분옥이!》

피타게 울부짖는 그의 부름소리는 연기에 뒤덮인 숲속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만강〉동무!》

《분옥이!》

긴 여운을 끌며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그의 부름소리에 화답해오는것은 총성마냥 울리는 불티 튀여나는 소리들뿐이였다.

또다시 불러보고 또다시 찾아봐도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사람들아! 왜 대답들이 없느냐?》

언땅이 꺼져내리도록 내리치는 곽두섭의 주먹에서는 피가 터쳤다. 황황 타는듯한 두눈에서는 시뻘건 눈물방울이 줄줄이 굴러떨어져 갉히고 검댕이 묻은 두볼로 흘러내렸다.

 

2

 

광막한 밀림속에 홀로 남은 곽두섭은 그날밤을 불타버린 초막자리에서 뜬눈으로 밝혔다.

목덜미를 선뜩하게 하는 한줄기 차디찬 바람이 재티를 날리며 스쳐지나더니 문득 머리우에서 새가 우짖었다.

다 사위여가는 불무지를 마주하고 그냥 우두커니 앉아있던 곽두섭은 무심중 머리를 들었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푸름푸름해진 하늘이 그의 눈에 비껴들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비분과 고독, 공허감에 사로잡힌채 꼬박 앉아서 언제 밤이 지났는지도 모르고있은 곽두섭이다.

잠을 깬 새들이 새날을 맞아 우짖고있다.

이맘때면 분옥은 벌써 자기들한테 조반을 차려주군 했다. 부대가 무송쪽으로 가면서 남겨준 입쌀에 콩을 약간 섞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쑨 따끈따끈한 죽을, 혹은 콩을 섞은 통강냉이죽을 군용밥통에 가득가득 담아서 한그릇씩 안겨주군 했다. 밝은 다음에 연기를 내면 안되겠기때문에 (연기를 내며 불을 피우면 위치가 알려지기때문이다.)언제나 새벽조반을 짓군 했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놈들은 분옥이도 앗아가고 동무들도 앗아가고 초막도 앗아가고 죄다 앗아갔다.

곽두섭에게는 다정한 사람들도, 아늑했던 보금자리도, 즐거운 조반식사도 다 없어졌다. 먹을것도, 변변히 입은것도, 몸 붙이고 살만한 잠자리도 없이 곽두섭의 혼자몸만 남았다. 분옥이가 없어지면서 그 모든것도 동시에 없어졌다.

분옥이가 있을 때에는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잠자리걱정, 통채로 살아갈 걱정을 모르고 살아왔다. 어디에다 먹을것을 두었는지, 바느실과 꿰진데를 기울 천쪼박은 어디에다 두었는지, 무슨 약재를 어디에다 두었는지, 또 어떤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눈속에서 캐다가 무슨 약을 만들어 써주었는지 그런것들을 몰라도 되였고 또 모른채 살아왔다. 그 모든것은 다 분옥이가 맡아놓고 해주었다.

분옥이가 없어진 지금에야 곽두섭은 그가 비단 애인이였을뿐아니라 누이이기도, 어머니이기도 하였다는것을 통절한 슬픔속에 깨달았다.

초막의 어디엔가 쌀도 있었고 소금도 있었고 배낭들과 밥통들, 도끼와 한자루의 총까지도 있었건만 그 모든것 역시 분옥이와 함께 원쑤놈들에 의하여 없어졌다.

지금 그의 수중에 있는것이란 불에 타고 쭈그러든 깡통 한개와 나무에 박혔던 신아바이의 빼또칼뿐이다.

막막한 생각에 잠긴채 산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쓸쓸히 앉아 있던 곽두섭은 재티를 날리고있는 거의다 사위여가는 불무지를 보고있다가 불현듯 귀가에 울려오는 조분옥의 속삭임을 들었다.

《…불만 있으면 살수 있어요. 저도 마안산에서 얼어죽을번 했다가 총탄화약으로 불을 얻어내구 살아났어요.》

금시 귀전에서 울린 그 분옥이의 목소리에 놀란 곽두섭은 눈을 들고 앞과 옆과 뒤를 살펴보았다. 눈에 비쳐드는것은 불탄 나무그루들과 재가루에 덮이우고 연기에 그슬려 몹시 어지러워진 눈뿐이였다.

불을 죽이지 말고 살려내라고 일러주는 분옥이의 말을 상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곽두섭은 엉거주춤 궁둥이를 들다말고 도로 앉았다. 장밤을 꼼짝않고 앉아있다가 불시에 일어나자니 아직 온전치 못한 왼다리만이 아니라 성한 오른다리도 무릎뼈가 뻣뻣하고 힘줄이 켕겼다. 무릎뼈를 한참 주물러주며 아픔을 무릅쓰고 다리를 약간씩 폈다굽혔다 하고난 다음에야 가까스로 일어나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겨짚었다.

삭정이들을 주어들고 불타버린 초막자리로 돌아오던 곽두섭은 개울을 건너다가 얼음버캐가 앉은 개울옆에 강냉이 몇알이 떨어져 눈속에 박힌채 얼어붙어있는것을 보았다.

사위여가던 불무지에 삭정이들을 가려놓고 되돌아선 그는 개울옆에 돌아가서 적 《토벌대》놈들의 군화발자국이 난 그 눈속에 얼어붙은 강냉이알들을 한알한알 주어 (더러는 빼또칼로 뜯어냈다) 호주머니에 넣었다. 한줌가량 잘되였다.

불무지곁으로 돌아온 그는 쭈그러든 깡통을 한발로 벋디디고 성한 손으로 쭈그러진데를 대강 폈다. 검댕이를 눈으로 닦아내고 그 깡통에 강냉이알을 절반만 넣어 불우에 놓고 닦았다. 몇알이 깡통속에서 튀여나버렸다. 법랑소랭이를 가마삼아 걸군했던 자리에서 납작한 돌 한개를 얻어다가 깡통을 지질러놓아 튀여나는 강냉이알들을 잃지 않게 했다. 고소한 내가 났다.

밑에 들었던 강냉이알들은 절반쯤씩 까맣게 탔지만 우에 있던 알들은 설었다. 그러나 어제 조반을 먹은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은것 없는 곽두섭에게는 고마운 끼니거리였다. 낟알이면 한알도 흘리는적이 없었던 분옥이가 곽두섭이 이런 처지에 처할줄 미리 알고 흘렸던것인지?

조반을 마치고난 그는 다시금 깡통에 묻은 검댕이를 눈으로 닦아내고 역시 눈을 퍼담아서 불우에 올려놓았다. 눈을 가득 퍼담았지만 녹으니 밑굽을 겨우 적시나마나한 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깡통을 불우에 올려놓은대로 뜨거움을 무릅쓰고 손에 눈을 퍼담아서 깡통속에 쏟아넣었다. 눈덩이가 깡통옆으로 흘러떨어지며 연기섞인 증기와 함께 재티를 날려 깡통을 온통 휩싼다. 아마 물보다 재가루가 더 많이 깡통속에 들었을것 같다. 그러나 더운물을 마시고 언속을 덮히기 위하여 곽두섭은 몇차례 눈을 퍼담았다.

마침내 깡통안에서 김이 나오고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났다. 마음 급해진 곽두섭은 눈에 손을 적시고 깡통을 집어내려고 들었다. 긴 나무저가락을 만들어가지고 가까스로 집어내다가 그만 삭정이 저가락이 부러지는통에 아쉽게도 깡통을 떨어뜨려 끓인 물을 다 쏟뜨리고말았다.

아무 보람없이 애만 쓰고 한바탕 재만 뒤집어쓰고난 곽두섭은 다시한번 더 깡통에 눈을 녹여 끓였다.

재가 씹히는 더운물을 다 들여마시고나니 속이 훈훈해지며 밤사이에 얼었던 몸도 풀릴것 같았다. 노곤한 취기와 졸음기가 밀려들었다.

구들이 놓였던 자리에 쌓인 숯덩어리들과 재를 대강 밀어낸 곽두섭은 아직도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있는것 같이 느껴지는 구들장우에 드러눕자마자 잠들고말았다.

심한 오한기를 느끼며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눈앞에서 은빛 알갱이들이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번뜩거렸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얼른 가늠이 가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 그는 그것들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반짝이고있는 뭇별들이라는것을 알았다. 아침에 누웠던것 같은데 밤이 되도록 취한채 정신잃고말았던것이다.

일어나자고보니 아직도 정신이 어질어질한것이 머리가 휭 휘돌리우는것 같았다. 그는 맥을 버린채 그냥 누워있었다.

《일어나시오. 그렇게 박약한 의지를 가지고 담배를 끊자는 결심은 어떻게 지켜왔소?》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는 장군님의 모습…

곽두섭은 재무지에서 몸을 털고 일어났다.

의지를 되살려낸 곽두섭은 엄혹한 추위와 굶주림속에서 기어이 삶을 견디여내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벌리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 그는 초막이 불타던 날 정신없이 달려오는바람에 잃어버렸던 마대자루를 찾아냈다. 그 헌 마대자루와 함께 잃은 낫은 어디에서 떨어뜨렸는지 끝내 얻어내지 못했다. 마대자루안에는 그날 따넣었던 열두송이의 잣송이들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그는 그 잣송이들을 불에 구워냈다. 분옥이와의 약혼 한돌을 기념하여 잣죽을 쑤자던 그것이 자기혼자의 마지막 식사로 되고말았다는 생각으로 하여 그는 눈물과 함께 그 잣알들을 겨우 씹어삼켰다.

며칠동안 곽두섭은 잣을 따다가 하루에 몇알의 잣과 눈을 녹여서 끓인 맹물로 생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잣송이들도 거덜이 났다. 아무리 나무토막을 올리던져도 미치지 않고 더구나 기여오를수도 없는 잣나무우듬지에 달려있던 마지막 잣송이들마저 죄다 따내고보니 더는 잣송이를 얻어낼데가 없었다.

곽두섭은 빼또칼로 잣나무 껍질을 발가 그 쓰디쓰고 아리고 뻣뻣한 껍질을 억지로 씹어삼키려 했지만 잣나무껍질은 소나무껍질처럼 먹을만한것이 못되였다. 아무리 애써 씹어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그것을 뱉어버리고 이번에는 풀을 찾아헤맸다.

여름에는 고산의 밀림속에도 여러가지 풀이 얼마나 무성한가. 그러나 허리를 치게 쌓인 눈속의 밀림에서 풀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였다. 정작 무우나 배추시래기처럼 끓여먹을수 있는 마른풀을 찾자고보니 그러한 풀이 겨울의 밀림속에는 없었다.

며칠동안 맨 눈만 녹여먹은 곽두섭은 허기증때문에 손발이 후들거려 도무지 움직여낼수 없었다. 풀을 찾아 매일 눈을 헤집고 언땅을 파헤치군한 손은 얼어서 진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먹을만한 풀을 찾아내지 못하면 굶어죽고만다.

곽두섭은 눈속을 뒹굴다는 가고 기다는 다시 뒹굴기도 하면서 밀림속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무슨 나무덩굴인지 꽉 얽혀서 동굴처럼 안이 둥근데로 쑥 머리가 빠져들었다. 몹시 얽힌 나무덩굴들과 나무가지들, 거기에 달린 나무잎들때문에 눈이 거의나 스며들지 못한 그 이상한 나무동굴속에서 곽두섭은 아주 희한한것을 발견했다. 약간 얼기는 했으나 새파란 기운을 잃지 않은채 파랗게 마디지며 올리뻗은 줄기, 줄기에 올라붙은 칼집모양을 이룬 작은 비늘같이 생긴 잎사귀들… 속새풀이다.

《이게 산돼지가 뜯어먹고 산다는 속새풀이요. 산돼지가 먹는것이면 사람도 먹고 죽진 않을거요.》

2련대가 사령부를 찾아올 때 언젠가 오중흡이 이런 말을 하며 이 속새풀줄기를 우등불에 구워서 물을 빨아먹은적이 있었다. 그때 곽두섭이도 권영벽이도 오중흡의 본을 따서 먹어보았다. 꽤 먹을만 했다.

곽두섭은 속새풀을 빼또칼로 베여다 썰어서 깡통에 삶아서 거기서 우려낸 물을 마시기도 하고 줄기를 그냥 구워서 물을 빨아먹기도 했다. 이제는 그 나무동굴속에 속새풀이 있는 한 굶어죽을 념려는 없었다. 다만 그의 가장 무서운 적수로 되는 산돼지란놈들이 그 속새풀무더기에 달려들지 않기만 한다면. 날마다 곽두섭은 속새풀을 뜯고는 (그것도 몹시 아껴가며) 자기가 기여들군 했던 자리를 나무가지로 가리워놓군 했다. 그랬지만 이 유일한 량식은 메돼지들의 기습을 받아 얼마후에 몽땅 략탈당하고 말았다.

메돼지들이 샅샅이 뜯어먹고 발로 짓뭉개버린 속새풀밭에서 빈손으로 돌아선 곽두섭은 또다시 막막해지는 가슴을 붙안고 불타버린 초막자리로 돌아오다가 지팽이가 눈속에 깊이 쑥 빠져드는 바람에 발을 걸채이며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이번에는 다시 손이 눈속에 빠져들며 무엇인가 껄껄한 나무껍질같은것을 짚었다.

급히 눈을 헤쳐본 그는 분비나무껍질로 뚜껑을 해씌운 새까만 작은 토기단지가 그 눈밑의 검불속에 감춰져있는것을 보았다. 단지속에는 새뽀얗게 성에가 낀 콩알들이 깔려있었다. 둬사발은 착실히 됨즉했다.

곽두섭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초막이 불타던 그날아침 분옥이가 버들강아지가 핀 개버들가지를 꺾었던 곳이였다.

곽두섭은 분옥이가 쌀씻으러 개울가로 나왔을 때마다 이 개버들숲에 드나들던것이 생각났다. 알뜰한 살림군이였던 분옥이가 끼니때마다 조금씩 절약한 콩알들을 이 단지속에 건사하느라고 자주 이 개버들숲에 들락거렸다는것을 곽두섭은 지금에야 알아차렸다.

고마운 분옥이! 초막이 불타던 날 그가 버들강아지를 꺾어다 주었던 그 개버들에는 파릇파릇한 애잎들이 내밀리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양지쪽에는 땅이 드러난곳들이 나지고 개울물은 눈석이물이 흘러들어 아침보다 퍼그나 불어났다.

부대가 돌아올 날이 가까와오는데 분옥은 어디에 가고 여기에 콩알을 모아둔 단지만 남았는가?

콩단지를 안아들고 애잎들이 내밀린 개버들속에 퍼더버리고 앉은 곽두섭은 후루루 귀전에 이는 바람소리와 함께 새 한마리가 자기 머리우에 와앉는것을 느꼈다. 부대와 분옥이의 생각을 하고앉았던 그였지만 자기를 나무등걸로 알고 새가 날아와 앉는것이 어이없어 개울옆으로 내려갔다. 물이 잔잔한데를 골라 자기의 몰골을 비쳐보았다. 오래동안 깎지도 못했고 세수하지도 못했고 면도질도 못한 머리와 얼굴은 나무검부레기와 거미줄과 재가루와 검댕이가 묻고 엉키여 묵은 풀덤불같았다. 자기스스로도 저 물속에 비쳐진것이 과연 사람이며 자기인지를 의심할수밖에 없는 괴상망측한 형상이였다.

곽두섭은 슬픈 마음으로 도저히 세수할래야 세수할수 없는 진물이 줄줄 흐르는 자기의 끔찍하게 헌 손을 내려다보았다.

불현듯 어디에선가 메아리소리가 울려왔다.

으―아― 하고 긴 여운을 끄는 그 소리는 밀림속에 서서히 잦아들었다가 얼마후에 다시 울려왔다. 처음에는 무슨 짐승의 울부짖음소리인줄로 여겼다. 그러나 거듭거듭 울린 그 소리는 분명 누구인가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오래간만에 이 적막한 밀림속에서 울리는 사람의 목소리! 곽두섭이에게는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혹시 《토벌대》놈들이 저들끼리 불러대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는 얼른 콩단지를 눈속에 파묻고 일어났다. 질척질척해진 눈을 마구 밟으며 불타버린 초막자리에서 멀리 피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던것 같다. 뒤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같은것이 나더니 그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오며 웨쳐대는 소리가 그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서라, 거기 가는게 누구냐?》

마지막 결사전을 각오하며 지팽이를 단단히 움켜잡고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그냥 한발두발 옮겨놓던 곽두섭은 분명한 조선말로 다시 웨쳐대는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누런 솜군복에 회색털모자, 허리에 권총갑을 찬 사람이 질척거리는 눈을 헤치며 다급히 그를 쫓아왔다. 뒤쫓아오며 소리쳤다.

《서라, 나는 유격대다. 거기 가는게 누구냐?》

아직 먼눈으로는 적인지 혹은 유격대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유격대로 가장한 적일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여전히 곽두섭의 머리에 남아있었다.

《서라, 나다. 오중흡이다. 거기 가는게 누구냐?》

곽두섭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오중흡이라니?!

몸을 피해선 나무뒤에서 한발 나선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넋잃은듯 바라보았다. 옳았다. 그리웠던 전우가 옳았다.

《중흡이!》

오래간만에 입에 올려보는 그리웠던 전우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목이 콱 메여올라 입밖에 소리를 내지 못했다.

바삐 달려오던 오중흡은 몇걸음앞에 와서 멈춰섰다. 분명 병원에 남아있던 사람으로 알고 뒤쫓아온 그였으나 정작 가까이 오자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하여 한참동안 그를 미심쩍게 훑어보기만 했다.

곽두섭은 자기앞에 이전날 자기 중대의 최성필소대원들 몇사람과 재봉대의 최희숙이랑 서있는것을 보았다. 곽두섭은 봄이 되면 오겠다던 그 부대가 마침내 돌아온줄로 여겼다.…

하지만 잠시후 알고보니 부대는 사령부와 함께 무송의 동강숲속에서 조국진군준비를 위한 맹렬한 군정훈련을 진행하고있다는것이였다.

오래지 않아 단행하게 되는 조국진군때에 원정대원들에게 입힐 600벌의 새 군복을 제작하기 위하여 오중흡중대장 (그는 곽두섭이 부상당하여 후송된후에 2중대정치지도원으로부터 곽두섭이 맡고있던 중대를 지휘한다고 하였다.)의 인솔하에 최성필이네 한개 소대원들과 재봉대원들만 먼저 백두산밀영으로 다시 나왔다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백두산밀영으로 내보내시면서 무송으로 부대가 이동할 때 이곳 재봉소근처에 파묻고갔던 재봉기들을 찾으러 여기에 오면 꼭 병원에 들려 병원동무들을 만나보고 부대소식도 알려주고 동무들의 생활도 돌봐주라고 당부하셨소. 부대와 외따로 떨어져있는 분옥동무랑 고생하겠다고 걱정하시며 약품과 식량과 새 내복들까지 친히 보내주셨소. 이것은 분옥동무의 손이 텄을게라고 하시며 따로 분옥동무를 주라고 보내신 크림이요.》

오중흡이 배낭속에서 하나하나 꺼내놓는 물품들과 포장한 곽채로 건사해가지고 온 크림통을 본 곽두섭은 참고참았던 눈물을 쏟뜨리고말았다. 조분옥이와 함께 재봉대에 같이 있었던 최희숙이도 오중흡이와 최성필이와 다른 사람들도 북받쳐오르는 눈물을 새겨내지 못했다.

 

3

 

조선인민혁명군 대부대의 국내진공작전을 단행할데 대한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의 결심이 드디여 선포된 1937년초봄의 서강군정간부회의후 무산방면으로 보조타격을 진행하기로 된 최현의 4사부대와 림강방면에서 보조타격을 진행하기로 된 2사부대들은 먼저 떠나가고 주공을 담당한 주력부대는 한달반가량 서강에서 얼마 멀지 않는 동강의 깊고 안전한 밀림속에서 조국진공작전을 위한 맹렬한 군정훈련을 마친 다음에야 행동을 개시했다.

5월중순, 만강천여울에서 이 봄의 첫 총성을 울린 주력부대는 적들의 주목을 무송쪽에 끌어놓은 다음 어제날의 신입대원들을 미구의 당당한 조국원정대원들로 키워준 정든 동강의 숲을 떠나서 마침내 또다시 그립던 백두산밀영으로 나왔다.

백두산밀영은 봄과 함께 돌아오신 장군님을 청초한 새 모습으로 맞아들였다.

봄비에 씻기운 밀영지의 숲에는 청신한 봄빛이 짙게 서려있었다.

여러달동안 떠나계시던 고향집에 다시 돌아오신듯 반갑게 느껴지시는 사령부귀틀집안에 먼 행군끝의 행장을 풀어놓으시고 수건을 어깨에 걸치신채 밖으로 나오시던 장군님께서는 하얗게 꽃핀 마가목나무우에서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너풀거리며 춤추는 홍모시범나비를 보시자 잠시 걸음을 멈추시였다. 올해에 처음 보시는 나비였다.

지난해 소백수골에 처음 오셨던 날 밤에는 눈이 무릎을 넘게 내려 백두산밀영에서의 첫 아침에 호함진 첫눈을 구경시켜주더니 그때의 그 때이른 첫눈에 짓눌려 기를 못펴던 마가목나무가 오늘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백두산의 희귀한 홍모시범나비를 불러다 구경시켜준다.

좋은 계절이다. 나비들은 활기를 띠였고 생기를 머금은 땅은 신록으로 단장되고있다.

권영벽이와 라명희를 압록강변의 새 공작지로 떠나보내시던 날 곽두섭이네 중대원들이 눈무지를 헤쳐놓고 춤추던 야외훈련장자리에도 새초들이 성큼하게 자라오르고 어느새 제 모색을 갖춘 두메국화떨기들이 봄비에 미역감은 신선한 모습을 보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공지옆을 지나 소백수개울로 내려가시였다. 메마르고 앙상하기만 하던 개울가의 개버들가지들은 윤기가 찰찰 흐르는 싱싱한 푸른 잎사귀들로 가리워졌다. 낮추 뻗은 몇몇 가지는 무성한 신록의 무게를 못이겨 휘우듬하니 드리운 가지끝을 개울물에 담그고 흔들거렸다. 기운차게 흐르는 소백수가 튕겨올리는 물방울들과 한줄금 휘뿌리고 지나간 좀전의 봄비가 남겨준 비방울들이 청초한 버들잎사귀마다에서 찬란한 영채를 뿌리며 령롱하게 반짝였다. 구름을 헤치고 비껴내린 신선한 해빛이 그 물방울들을 신비한 보석알갱이들로 만들어버린것이다.

봄비에 약간 젖어 얼마간 무거워진 낡은 겨울솜군복을 벗으시여 개울가의 키낮은 강대나무가지우에 널어놓으신 장군님께서는 풀물과 흙물이 올라 하얬던 본바탕색을 알수 없이 된 젖은 행전을 풀어내시고 꿰맨 자리가 있는 낡은 지하족과 발싸개를 벗으시였다. 쉬임없이 내처 서둘러오신 강행군으로 하여 화끈화끈 달아오르시였던 두발을 개울물에 담그시니 대뜸 기분이 날듯이 상쾌해지시였다. 맑고 정갈한 소백수는 정신이 들게 시원했다.

이 개울가에 앉아 빨래하던 라명희가 흘려버린 손수건을 건져주느라 개울물에 손을 적시시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권영벽이와 라명희네 일은 어떻게 다 제대로 잘되여가고있는지?

그동안 사령부곁을 떠나서 장백과 국내에서 지내며 활동하고있는 그리운 동지들의 모습이 흐르고있는 개울물우에 삼삼히 떠올랐다.

한결같이 귀중한 그 동지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앞에 그리시던 장군님께서는 삭정이가 부서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시였다. 빈배낭을 어깨에 멘 철구였다. 그는 마치 장군님께서 뒤돌아보실 시각을 기다리고있었기나 했던듯 명랑한 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장군님, 저 하얗게 꽃핀 구름나무우에 걸린 무지개를 보셨습니까? 올해 들어 처음 비낀 봄무지개입니다.》

여기서는 그 희한한 봄무지개가 개울 저편의 봇나무정수리에 걸린것으로 보이시였다.

무지개 비낀 개울 저편의 하늘에서는 햇비가 내리고있었다. 파랗게 열린 구름짬으로 비껴내리는 해살에 보슬비 방울들이 반뜩거리며 숲우에 흩날렸다.

《내가 나서자란 고장에서는 첫 봄무지개를 보면 그해에 운이 좋다구들 했습니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도 보시라고 알려준 모양이다.

장군님께서는 즐거운 웃음을 머금으시였다. 무지개를 손에 잡아보시려고 만경봉의 소나무에 오르시던 유년시절에 대한 한토막의 추억이 얼핏 갈마드셨다. 이 나이지숙한 작식대원에게도 자기나름의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으리라고 생각되시였다.

《그럼 아주머니한테 올해에 크게 운이 트이자고 여기에 봄무지개가 비낀 모양입니다.》

《제 운이야 어디 따로 있습니까? 제 운이야 그저 장군님의 운을 따르기마련인걸요.》

소박한 작식대원은 자기 마음속에 환기된 예감을 감춤없이 드러내놓았다.

《우리가 백두산밀영에 다시 오자마자 저런 봄무지개가 여기 비끼는걸 보니 올해에 우리 유격대에 운이 크게 트일것 같은 생각은 듭니다. 제가 미신같은 소릴 한다고 나무람을 마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그전에 보신 어느 한 소설책에 징조란 자연과 인간의 공감일것이라고 씌여져있던 구절이 생각나시였다.

《우리 유격대에 운이 크게 트일것 같다? 그거야 좋은 생각인데 나무랄게 있습니까. 우리들자신이 계획대로 일을 잘 추진시키면 불원간에 아주머니가 바라는대로 될수 있습니다.》

천진스러운 웃음을 띠우고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던 사령부작식대원은 별안간 웃음을 거두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장군님의 말씀이 일순간에 심각해지지 않을수 없을만큼 그의 내심을 자극했다는것이 잠시후 불쑥 나온 그의 간단한 몇마디 청원의 말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장군님, 국내작전대에 속할 사람들을 인차 뽑으시리라는데 저도 원정대에 넣어주십시오.》

빨래돌우에 걸터앉으시여 손을 씻으시려고 광목내의소매를 거두시던 장군님께서는 손을 멈추시였다.

《그걸 누구한테서 알았습니까?》

웃음어린 장군님의 시선을 받은 작식대원은 손에 들고있던 빈배낭을 괜히 주무르며 잠시 주밋거리더니 약간 당황해하는 눈길을 쳐들었다.

그는 말마디들을 떠듬거렸다.

《어제밤에 경위중대실에서… 경위중대동무들이 저들끼리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미리 청원을 해두는 그의 심정을 잘 아시고도 남음이 계시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과연 비밀이 없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아주머니를 두고다니면 우리 사령부 사람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먹여줄 사람이 없는데 사령부에 속한 동무들이 그런 손해를 보잘턱이 있겠습니까.》

장철구는 기쁨에 넘친 환하고 밝은 웃음을 지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천진한 소녀와도 같이 한순간에 명랑해진 장철구는 머리를 갑삭 숙이더니 경쾌한 걸음으로 그이의 곁에서 물러났다.

《어딜 갑니까? 빨래를 나왔으면 여기서 하십시오.》

《아닙니다, 장군님.》

《그 배낭을 빨자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장철구는 발씬 웃었다.

《산나물을 뜯어볼가 해서 그럽니다.》

역시 사령부의 주부다왔다.

《우리 밀영지에 어떤 산나물이 있는지 알아도 둘겸해서. 전에 와있을 때는 눈이 덮여있어서…》

장철구는 하던 이야기를 중둥무이했다. 전령병 봉길이가 와삭와삭 숲을 헤치며 개울가로 달려왔다.

《리동학경위중대장동지가 권영벽동지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김주현동지와 오중흡중대장동지도 같이 왔습니다.》

그는 숨이 차서 헐썩이며 다급하게 보고를 드렸다. (서강회의 때 사령부 경위대는 경위중대로 개편되고 경위대장이였던 리동학은 경위중대장이 되였다.) 무엇에 대해서나 경위중대장의 본을 따기 좋아하는 봉길이는 말씨도 《보따지》중대장처럼 빨라지는 때가 많았다.

 《알겠소. 내 곧 들어간다고 이르오.》

장군님께서는 서둘러 지하족을 신으시였다. 한시바삐 만나 그간에 진행한 사업들에 대하여 보고받고싶으시였던 사람들이였다. 그래서 백두산밀영에 오시자 곧 리동학을 권영벽에게, 김주현을 오중흡에게 보내시여 그들에게 사령부가 백두산밀영에 다시 왔다는것을 알려주고 데려오도록 하셨던것이다.

장군님께서 강대나무가지우에 널어놓으셨던 솜저고리를 미처 입으시기전에 오래간만에 보시는 그 낯익은 모습들이 저앞의 숲속에서 줄레줄레 나타났다. 앞에서는 회색 조선바지저고리에 검은색 조끼를 받쳐입은 이마 훤칠한 권영벽이가 바삐 걸어왔고 그 바로 뒤에서는 색날은 솜군복차림의 오중흡의 동실한 얼굴이 나타났다. 권영벽은 어찌나 경황없이 오고있었던지 자기에게 인사하는 철구도 보지 못하고 그옆을 지나쳤다.

《내가 인차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왜들 나오시오?》

장군님께서도 반가움을 못이기시여 몇걸음 그들에게로 마주가시였다. 권영벽이도 오중흡이도 2련대가 백두산밀영에 처음 도착하던 그날처럼 장군님앞에 이르자 눈물들이 글썽해지며 금시 울어버릴것 같은 얼굴을 숙여 인사들을 했다.

《오래간만인데 손들이나 잡아봅시다. 내 손이 좀 젖었소만…》

굳게 맞잡은 손길들에서 그간 몹시 그리웠던, 혈육보다 더 가까운 사령관과 전사들사이의 동지적사랑이 전류처럼 통했다. 전사들은 건강하신 장군님을 뵈옵는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장군님께서도 무고한 그들을 만나신것이 무엇보다 기쁘시였다.

《권영벽동무는 앓지 않았소? 전보다 좀 축간것 같구만?》

장군님께서는 권영벽을 정겹게 돌아보시며 다정하게 물으시였다.

《아닙니다. 싸움판을 떠나 편안하게 지내며 해볕을 덜 쐬인탓에 창백해져보일겁니다. 한번도 앓지 않았습니다.》

권영벽은 겸손한 웃음을 띠웠다.

《동무일이 편할턱이 있소? 너무 무리했던모양이구만. 라명희동무는 건강하오?》

《네.》

《어떻소? 〈주부역〉을 그럴듯하게 해내오?》

권영벽이가 잠시 주밋거리며 대답못하고있는 사이에 맨뒤에 나타난 경위중대장이 끼여들었다.

《그럴듯합니다. 군인티를 말끔히 벗구 제앞에서까지 촌거리 색시처럼 처신하는데 깜짝 놀랄 지경이였습니다.》

《연극하는것 같이 어색한데는 없었소?》

《저도 첨엔 속았습니다. 권동무네가 거접하는 집을 찾으려구 우물에서 동이를 이고 가는 한 녀인을 불러세웠는데 묻고보니 라명희동무가 아니겠습니까? 물으면서도 어딘가 낯익다 생각했지만 명희동무인줄 인차 몰랐습니다.》

《허허허… 눈이 밝은 경위중대장동무가 속을사 했다니 위장을 괜찮게 하고 지내는 모양이구만.》

장군님께서 즐겁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네, 명희동무는 집앞에 촌사람들이 흔히 사갈만한 잡화들을 벌려놓고 위장으로 팔군하던데 그것도 아주 천연스럽게 하질 않겠습니까.》

《그게 아주 그럴듯하오. 그렇게 해놓으니 조직원들과 련계를 맺는데도 자연스럽고 편리할게거던. 그리구보니 명희동무도 어지간히 로숙한 공작원으로 성장된게구만. 정말 동무들도 무지개를 봤소?》

《봤습니다.》

한결같은 대답이였다.

《그거 다행이군. 철구아주머니의 말이 첫 봄무지개를 보면 그해에 운이 크게 트인다는거요. 아마 농민들이 봄씨앗을 묻은 뒤에 비가 내리기를 갈망하던 나머지 그런 말을 만들어낸것 같은데 철구아주머니는 봄무지개를 보면 좋다구 일부러 나한테 무지개 선걸 알려주질 않겠소?》

날랜 리동학경위중대장은 봇나무가지를 꺾어들고 몇사람이 둘러앉을만한 풀밭을 골라내여 이슬을 털어냈다.

그가 이슬을 털어내고 마련한 풀밭자리에 둘러앉자 장군님께서는 하시던 말씀을 이으시며 마주앉은 권영벽을 건너다보시였다.

《봄무지개를 보면 좋다는 철구아주머니의 예언이 얼마나 맞는지 어디 권동무의 이야기부터 들어봅시다. 자세한 보고는 따로 듣기로 하고 전반적인 리해나 가질수 있게 간단히 말해보오. 장백과 국내형편은 지금 어떻소?》

권영벽은 앉음새를 바로하며 낮고 웅글은 목소리로 정중히 말씀드렸다.

《정세는 지금 아주 좋습니다. 장백지대는 완전히 우리 세상으로 화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동안 장백의 크고작은 거의 모든 마을에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왔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현위원회는 두개의 구위원회만으로 현내의 조국광복회하부조직들을 지도하기가 어렵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한개의 구위원회를 새로 조직하여 현위원회아래에 상강구, 중강구, 하강구 위원회들을 내왔습니다. 조국광복회 장백현위원회는 실제적인 장백현의 통치기관으로 되고있습니다. 현내의 대부분의 구장, 촌장들은 거의다 우리 사람들입니다. 적지 않은 준비된 조직원들을 적의 경찰, 특무기관에 침투시켜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당위원회 산하조직을 여러곳에 내오고 조국광복회조직에서 준비된 핵심회원들을 받아들여 당조직을 확대했습니다.…》

나무들과 풀숲을 가볍게 스치는 선들선들한 바람이 누기찬 대기와 함께 진한 햇풀냄새와 꽃향기를 날라왔다. 들크무레하면서도 비릿한 물비린내와 함께 섞여 봄비를 맞은 밀림의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는 그 냄새는 맡을수록 좋았다.

비맞은 나무애잎들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활기있게 반짝이며 우수수 설레이고 이슬로 맺혔던 비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권영벽은 튼튼히 꾸려진 조국광복회조직들에서 육성된 뭇청년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것을 열망하며 사령부의 승인이 내리기를 기다리고있는데 대하여, 앞으로의 전인민적항쟁을 준비하여 이달 5월초에 17도구와 풍산의 조국광복회조직내 핵심청년들로 첫 생산유격대를 시범적으로 조직한데 대하여, 백두산근거지를 국내깊이 확대하시려는 장군님의 전략적구상을 실현할 목적으로 믿음직한 조직원들을 파견하여 랑림산줄기, 부전령산줄기, 백두산줄기, 함경산줄기, 태백산줄기들에 밀영들을 설치할수 있는 좋은 장소들을 물색해놓은데 대하여, 박인진도정이 새로 수백명의 교인들을 조국광복회조직에 인입하고 풍산의 천도교청년당원들속에서 핵심광복회원들을 선발하여 생산유격대를 조직하도록 한데 대하여, 국내의 갑산과 신파지구의 당소조와 조국광복회조직들이 급속히 확대강화되고있는데 대하여 간명하게 이야기하였다.

햇풀대를 뽑아쥐시고 향긋한 풀내를 맡아보시면서 그의 간단명료한 보고를 마감까지 주의깊게 들으시던 장군님께서는 마침내 풀대를 던지시며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사이 동무네가 정말 큰 수고를 했소. 적구에 내려가 상주하면서 위험도 많고 난관도 많았겠는데 대단한 일들을 해놓았소.》

그이의 과분한 치하의 말씀에 권영벽은 황송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어줍게 웃었다.

《저희들의 수고라는게 사실 별반 없었습니다. 그동안 사업조건이 아주 유리했습니다. 부대가 적의 주의를 무송쪽으로 끌고갔기때문에 활동하기가 퍽 좋았습니다.》

권영벽이 올리는 말씀에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바로 그걸 목적해서 우리가 한동안 여기를 떠나 무송으로 들어갔으니만큼 그랬을거요. 그렇지만 백두산주변일대를 완전히 우리 세상으로 만드는데야 여기 남아 활동한 동무들의 수고가 더 많았을게 아니요? 정말 수고했소.》

거듭 권영벽을 치하하시고나신 장군님께서는 김주현이와 오중흡이쪽을 돌아보시며 말씀을 건네시였다.

《오중흡동무네 일은 어떻게 됐소? 과정은 략하고 결과부터 들어봅시다.》

김주현이 앉은자리에서 앞질러 보고를 드렸다.

《오중흡동무가 재봉대원들과 최성필소대원들을 발동해서 다 준비해놨습니다.》

《됐소? 얼마나?》

반겨 물으시는 장군님의 안광에서 기쁨의 불꽃이 일었다.

《600명분 여름군복, 군모, 탄띠, 행전, 지하족 일식을 다 갖추어놨습니다. 600명의 두달분 식량은 이미 확보돼있습니다. 물자와 식량을 해결하는데서는 권영벽동무와 리제순동무가 직접 많은 조직들을 발동시켜 후원사업을 조직해주었습니다.》

활기있는 그의 대답에서도 만족을 느끼신 장군님께서는 풀밭에서 일어나시였다.

《그러니 피복운반문제만 해결하면 모든 준비가 만전을 기하는셈이군. 대단한 일들을 해놨구만! 장하오! 아주 장한 일들을 했소!》

장군님께서는 따라일어선 김주현이와 오중흡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시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사령관동지, 오중흡동무가 군복견본을 가져왔습니다.》

다시 김주현이 아뢰는 말씀이였다.

《가져왔소? 그거 잘했소. 어디 봅시다.》

그 말씀을 듣자 전령병이 얼른 사령부귀틀집으로 달려갔다.

《나머지군복들은 어디 뒀소?》

《지양개에 새로 설치한 밀영에 있습니다.》

오중흡의 대답이였다.

《그럼 날라오지 말고 거기 가서 갈아입히도록 합시다.》

사령부귀틀집으로 갔던 주봉길은 오중흡의 배낭을 메고 달려왔다. 그는 곁에 오자바람으로 풀밭우에 몇벌의 군복과 군모들을 꺼내놓았다.

남대원용과 녀대원용 그리고 지휘관용 군복들이였다. 군모에는 붉은 천으로 박은 오각별이 달리고 군복웃저고리에는 조임깃이 달려있고 소매에는 붉은 령장이 있었다. 중대장이상 간부들의 웃옷에는 주머니 네개, 대원들의것에는 아래주머니 두개, 바지는 모두 승마바지모양이였다. 녀자들에게는 물론 주름치마가 더 차례지게 되여있었다.

《희한하구만! 새 도안대로 만드니 아주 보기도 좋소. 이제는 낡은 솜군복을 벗고 이 새 군복차림으로 우리 인민들앞에 나서게 됐소.》

손수 주름살을 펴보시고 군모를 써보기도 하시며 새 군복들을 한참이나 살펴보신 장군님께서는 따로 정히 싸서 내놓은 보자기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이건 뭐요? 이건 군복이 아니요?》

《재봉대동무들이 국내작전때 사령관동지께서 입으셨으면 해서 봄가을외투를 한벌 정성스럽게 마련했습니다.》

오중흡이 솔직하고도 엄숙하게 말씀드리고나서 보자기를 헤치고 그속에 접혀있던 옷을 펼쳤다. 금시 뽀얀 서리가 내려앉은것 같이 빛갈이 은근하고 고상한 은회색봄가을외투가 새파란 햇풀우에 펼쳐졌다. 바늘자리마다에서 재봉대원들의 각별한 정성이 느껴지는 옷이였다.

《고상한 색갈의 천으로 아주 잘 지었구만. 모든 동무들에게 다 이런게 한벌씩 있었으면 좋겠구만. 이런 천이 더 없소?》

《한감밖에 얻지 못했댔습니다.》

오중흡이 아뢰였다.

《모든 대원들에게 다는 못입혀도 지휘관동무들 한테만이라도 입혔으면 좋겠소. 이제 좀더 구해서 제작해낼수는 없을가?》

그이의 물으심에 오중흡은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동무들이 나한데만 입히자고 애당초 짜고든 모양이구만. 앞으로는 나한데만 이러지 않도록 하오. 다같이 뜨뜻해야지. 이번에는 국내작전을 생각해서 동무들이 일부러 성의껏 마련했으니 내가 질수밖에 없는것 같구만.》

아래사람들의 성의를 마다하실수 없으시여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어주시는 그 말씀에 김주현이도 오중흡이도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듯 다시 벙글거렸다.

구름은 어느덧 종적없이 사라졌다. 씻은듯이 개인 하늘에는 흐르는 물소리와 우짖는 새소리, 찌르륵거리는 풀벌레소리들로 가득찼다.

《재봉대동무들이 퍽 고생들 했겠구만? 오중흡동무, 앓는 동무들은 없소?》

다시금 대견스럽게 새 군복을 살펴보시고계시던 장군님의 물으심이였다.

《두달가까이 그 동무들은 거의나 밤잠을 못자고 밤낮으로 물감을 들이고 재단하고 마선을 돌렸습니다. 성수나는 일이 돼서 그런지 한 동무도 앓아누운 동무가 없었습니다. 다들 건강합니다.》

《수고한 모든 동무들에게 이제 국내작전에 대한 총화를 할 때 표창도 하고 평가도 합시다. 병원에 남아있는 동무들은 어떻게 됐는지 련계를 가졌소?》

불시에 김주현이와 오중흡, 권영벽의 얼굴에서 여직껏 내내 사라질줄 몰랐던 명랑한 웃음이 지워졌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알아차리신 장군님께서 그들을 찬찬히 눈여겨 보시며 묵묵히 대답을 기다리시였다.

《뜻하지 않았던 불상사가 났습니다. 림시병원이 지난 초봄에 예견치 못했던 적들의 불의기습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곽두섭동무만은 묻어둔 재봉기를 찾으러 갔던 오중흡동무네를 만나게 되여 살아남았는데…》

권영벽은 뒤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동무들은?》

장군님께서는 오중흡에게 직접 물으시였다.

《4사부대통신원이였던 신아바이는 림시병원옆에 있는 낭떠러지밑에서 찾아냈습니다. 적의 기습을 당할 때 벼랑턱에 기여나가 스스로 투신한것 같습니다. 〈만강〉동무는… 불탄 초막자리에서 이십리가량 떨어진 골짜기에서 찾아냈습니다. 적들이 붙잡아가다가 학살했던것 같습니다.…》

《조분옥동무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리를 못쓰는 두 동무를 보호하자고 적을 유인하려다가 적들에게 잡혀간것 같습니다.…》

《행처를 알아내려고 노력했지만 여직껏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권영벽의 말이였다.

《…》

풀밭에는 침묵이 서렸다.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한동안 무거우신 걸음으로 풀밭을 거니시였다.

《두섭동무는 어디 있소?》

문득 걸음을 멈추시며 물으시였다.

《우리가 새로 설치한 밀영에서 치료받고있습니다.》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못했소?》

《이제는 거의다 완쾌되였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백두산밀영으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기로 우리를 따라올것 같아서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저 코트도 그 동무가 재봉대동무들에게 부탁해서 짓도록 했습니다.》

 《알겠소. 내 곧 들어간다고 이르오.》

장군님께서는 오중흡을 의아스럽게 건너다보시였다.

오중흡은 장군님께 올린 코트를 짓게 된 경위를 간단히 말씀드렸다.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개울가로 무거운 걸음을 옮겨짚으시였다.

개울물은 여전히 기운차게 물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수면에 드리운 개버들가지는 여전히 빠른 물살에 밀리우며 흐느적거렸다.

《권동무.》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뒤돌아서시며 권영벽을 찾으시였다.

《혁명조직들을 발동해서라도 조분옥동무가 어떻게 됐는지 꼭 알아봐야 하겠소. 알아보고 늦지 않았으면 빨리 손을 써야 하겠소.》

개울가에는 차츰 숲그림자가 짙어져갔다.

 

4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4월초에 서강을 떠난 최현부대는 백두산을 멀리 북쪽으로 에돌며 무산방면으로 은밀히 이동하다가 5월초부터 강력한 보조타격을 개시했다.

화전현 황구령에서 적의 한개 대대를 순식간에 섬멸해버린 전투를 벌린것으로 적들의 주의를 자기들에게 끌기 시작한 최현부대는 앞뒤좌우에서 달려드는 적을 끌고 무산방향으로의 행군을 계속하다가 안도현 진창부근에서 맞다든 가장 악질적인 적《토벌》부대인 《신선대》를 악명높던 대장놈과 함께 단 한놈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

그리고 5월 15일에는 두만강을 건너 삼엄한 적의 국경경비지점의 하나였던 무산의 홍암마을과 삼수평에 둥지를 틀고있던 적들을 동시에 들이쳤다.

이러한 련속타격으로 함남북일대와 백두산동북일대 적들의 무력을 자기들에게 집중시킨 최현부대는 이틀후 두만강 북쪽기슭의 곰의자리에서 추격해온 적들로 하여금 저들끼리 서로 맞불질을 하여 숱한 무리죽음을 내게 한 다음 또다시 두만강을 건너 삼지연쪽으로 깊숙이 뻗어들어왔다.

5월 20일 베개봉기슭에 이른 부대는 개울가의 숲속에 천막을 쳐놓고 하루밤을 여기서 숙영하였다.

쉬임없이 이어온 전투와 강행군에 지친 대원들은 자리에들 눕자마자 곤하게 잠들었다. 그러나 이날밤 최현련대장은 좀처럼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귀물인 호박물부리에 담배를 끼여물고 우등불곁에 오래동안 앉아있었다.

최현련대장이 붉은 비로도주머니에 넣어 건사하군 하는 그 호박물부리를 꺼내물었다고 하는것은 부대의 어느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있었다. 마음이 내키면 자기가 입고있던 옷이나 신발, 자기가 애용하던 권총따위는 두말할것도 없고 가장 신임하고 아끼는 전령병이나 지휘관까지도 서슴없이 남에게 넘겨주는 최현이였지만 소왕청 마촌에서 장군님을 처음 만나뵈왔을 때 첫 상봉기념으로 선물받은 담적색 호박물부리만은 다른 사람이 잠간 쥐여보는것조차 싫어했고 사령부출판소의 《대통령감》에 짝지지 않을만치 담배를 즐기면서도 그 호박물부리로 담배를 피우는적이라군 거의나 없었다. 그러기에 지난 초봄 서강에서 《대통령감》을 만났을 때에도 그 귀물을 구경시켜달라는 성화에 못이겨 잠간 빛이나 뵈였을뿐 그와 헤여지는 날까지 한번 물부리담배질은 안하고 마라초대로만 피웠다.

최현련대장이 그 호박물부리를 꺼내물 때는 오직 장군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때뿐이였다. 그리운 가족이 보고싶어질 때 품속깊이 고이고이 간직했던 가족이나 그리운 사람의 사진을 꺼내게 되는것처럼 그는 장군님을 그리거나 장군님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평소에 그렇게도 소중히 건사해두고 좀처럼 꺼내지 않던 호박물부리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꺼내여 거기에 담배를 끼여물군 하였다.

련대장이 그렇게 호박물부리를 물고 앉았을 때에는 아무도 그의 생각을 방해하거나 그의 주의를 다른데로 끌어서는 안된다. 그럴 때 련대장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는것은 련대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철칙으로 되여있었다.

베개봉에서 숙영한 이날밤에도 최현은 바로 장군님에 대하여, 장군님께서 친히 단행하시게 될 국내진공작전을 어떻게 더 원만히 보장해드릴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자기 부대가 이미 사면팔방으로 둘러싼 적의 포위속에 들어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느쪽으로 돌아서나 앞에는 적들이였다. 끊임없는 강행군과 힘에 겨운 전투들로 사람들은 지쳤고 량식은 떨어져가고 신발들은 이제 더 걸을수 없을만치 다 꿰져버렸다. 이제는 빨리 적의 포위환을 뚫고 빠져나가 부대를 휴식시켜야만 할 형편이였다.

그러나 이미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셨는지도 모를 장군님의 앞길을 안전하게 해드리려면 그 길을 가로막아선 적들을 한놈이라도 더 자기한테 끌어당기고 하루라도 더 끌어당겨야 한다. 자기들에게 더욱더 많은 적을 끌어오고 더욱더 여러날 끌면끌수록 장군님의 앞길에는 위험이 적어지고 장군님의 조국진군은 순조롭게 된다.

바로 이때문에 최현은 지금껏 더 많은 적의 포위속에 드는것을 바라왔고 기뻐했으며 적들이 자기들에게 몰려오지 않고 따라오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했고 속상해했다.

이 시각에도 최현은 무슨 수로 적들의 주의를 더 많이 자기쪽에 끌어올것인가를 궁리하고있었다. 하여 그는 장군님께서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진출하시게 될 혜산―보천방면의 적들을 끌어오기가 매우 알맞춤한 포태리어방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분주탕을 피울 작정을 했다.

포태리에는 혜산에 있는 채목공사기업주 다가세란놈의 포태리벌목작업현장사무소가 있다고 한다. 이 현장사무실을 치고 일본인 현장주임 가와시마를 사로잡게 되면 그 소식은 즉시에 보천과 혜산에 날아갈것이며 저희네 사람을 잃은 적들은 제 사람들의 주둥아리가 무서워서라도 우리를 수색, 추격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놈들을 끌어당기는데서는 왜놈군대나 경찰 몇놈을 쏴죽이는 전투보다 도리여 나은 수로 될수도 있다.

마침내 이런 결심을 내린 최현은 다 피워버린 담배꽁초를 재와 함께 털어버리고 호박물부리를 군복저고리자락에 알뜰하게 닦아서 비로도주머니에 넣어 잘 건사한 다음 자못 흡족해진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부대는 베개봉기슭에서 떠나 포태리벌목현장의 한 지점인 7토장쪽으로 진출하였다.

이날은 아침부터 눈이 섞인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후에는 한시간나마 굵다란 눈송이까지 펄펄 날렸다. 백두밀림에 갓 피여나기 시작한 꽃떨기들과 나무잎들이 때아닌 백설을 들쓰고 새하얀 눈꽃으로 변했다.

7토장주변의 여러곳에 적정감시와 경계근무성원들을 배치해놓은 최현련대장은 연기가 나지 않는 나무들을 골라서 불을 피우고 때를 넘긴 점심식사를 하는겸 휴식하면서 진눈까비에 젖어든 옷들과 신발들을 말리우게 하였다.

그자신도 불무지옆에 앉아 젖은 군복과 발가락짬에서 물이 질벅거리는 꿰진 지하족을 말리우면서 전령병이 불에 구워준 감자 서너알을 돌소금에 찍어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고나서 마라초 한대를 말았다.

《삼손동무가 웬 사람을 데리구 옵니다.》

금방 만 담배를 물고 불이 달린 나무꼬챙이를 집어들던 최현은 뜨거운 감자알을 넋없이 입에 넣었다가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바빠하던 전령병이 일러주는 말을 듣고 얼굴을 돌렸다.

나무껍질들이 잔뜩 널려있는, 진눈이 한벌 깔린 좁다란 숲속길로 큰길쪽에 경계근무를 나갔던 류삼손(류경수)이가 얼굴이 류달리 붉어보이는 사민 한사람을 끼고 철벅거리며 걸어왔다. 오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던 류삼손은 최현련대장과 눈길이 마주치자 데리고오던 사람을 길에 세워둔채 젖은 숲을 와락와락 헤치며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웬 사람이요?》

최현련대장의 물음이였다. 불을 못쪼이고 큰길옆에 나가 꼬박 진눈까비와 눈을 맞은 류삼손은 볼과 입술이 푸릿푸릿하게 얼어있었지만 대답하기전부터 헤벌쭉 웃었다.

《처서군입니다. 적정을 알아보자구 멈춰세웠댔는데 포태리벌목작업현장주인놈의 집을 귀신같이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저사람 말이 자기가 알려주는걸 알고가면 현장주임 가와시마라는놈을 감쪽같이 사로잡을수 있다는겁니다.…》

류삼손은 알아본 적정이 어떻다는 말은 없고 왜놈현장주임을 사로잡자면 자기가 데려온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내속의 말만 하였다.

최현은 어째서 이 7토장쪽으로 진출했는가를 아직 누구에게도 이야기한적이 없었다. 벌목작업현장사무소를 습격하고 현장주임을 사로잡을데 대한 계획은 지금껏 그 혼자만 아는 비밀이다.

《저 사람이 현장주임의 집을 잘 아는지 어쩐지 동무는 어떻게 알았소? 일부러 물어봤소?》

《아, 그런게 아니라 적정을 알아보자구 큰길로 지나가는걸 세웠습니다. 당신이 어디서 오는가 물으니 보천보에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오면서 왜놈군대나 경찰들이 어디쯤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걸 본게 없는가 물으니 보서인지 뭔지 하는곳에 경찰대가 한 사오십놈 트럭을 타고와서 내리는것밖에 다른건 본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담엔 이 어방 어디에 왜놈이 없는가 물어보니 벌목작업현장주임이야기를 합디다. 그래서 좀 자세히 물었더니 제 손금 보듯 휑하게 아는 사람이였습니다.…》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고 싸우고싶은 생각이 가득한 류삼손은 저절로 포태리벌목작업현장사무소를 겸한다는 현장주임의 집을 들이치고싶어 오금이 저려났던 모양이다. 하긴 류삼손은 눈치 역고 날래면서도 침착하고 총 잘 쏘는 싸움군이다.

전전해 겨울의 어느 매복전투때였다. 싸움이 한창인판에 메돼지무리 수십마리가 야단스러운 총소리에 놀라서였던지 매복진오른쪽으로 불의에 돌진해내려왔다. 그것을 본 최현련대장은 그쪽에서 적을 향해 불질을 하고있던 류삼손에게 오른쪽을 봐라 하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그가 어찌랍니까 하고 소리쳐 물어오자 갈기라고 승인했다. 류삼손은 너무 좋아 히죽 웃더니 제앞으로 다가드는 적을 향해 한방 갈기고는 옆으로 달려드는 메돼지를 향해 한방 갈기고 하면서 그야말로 량쪽으로 사격을 엇갈아댔는데 적들을 몽땅 요정낸 다음에 죽어자빠진 메돼지를 거둬보니 자그만치 일곱마리나 되였다.

이런 류삼손이가 붉은바위전투가 있던 날에는 두만강을 넘어서자마자 도하지점을 지켜 강역에 남게 되였다. 그 어떤 명령에 대해서건 군말없이 집행하던 그가 강역에 남으라는 명령을 받은 순간에만은 울먹거리는 어조로 생전 하지 않던 불평을 한마디 내비쳤다. 어쩌다가 내 나라 땅에 왔는데 아무 활약도 못해보게 막대기 꽂아놓듯 보초를 세운다고.

조국땅에 와서 실컷 원쑤를 족쳐보리라 마음먹고 왔으나 아직 총 한방 못쏴본 류삼손은 련대장의 마음을 움직여 무슨 싸움이건 벌리게 해볼 속심으로 기회가 있을적마다 놓치지 않은것이다.

《…저 사람이 그 가와시마라는 현장주인놈의 현장사무소 겸 사택으로 사용하는 집을 건설할 때 그 공사에 동원돼서 땅굴을 팠답니다. 주력부대가 국경일대에서 맹활약을 벌리는데 겁먹은 가와시마놈은 새로 집을 지으면서 자기의 방에서 땅굴을 통해서 뒤산으로 빠져나가는 비밀지하통로를 만들어놨다고 합니다.》

《비밀지하통로?!》

그것은 어제 베개봉근처의 벌목로동자부락에서 최현련대장자신이 직접 료해할 때에는 듣지 못하던 이야기였다.

련대장이 구미동해하는 눈치를 챈 류삼손은 제가 알아낸 한가지 비밀을 더 귀띔해주었다.

《또 하나 묘한건 그 집으로 들어가자면 정문을 통과해야 한다는데 사람이 찾아가면 정문에 지켜서있는 정문지기가 가와시마의 방과 통해있는 줄을 잡아당겨서 손님이 온걸 먼저 알리게 돼있는것이랍니다. 그 줄을 살랑살랑 당기면 가와시마의 방에 달린 방울이 살랑살랑 울리는데 그건 위험치 않은 손님이 왔다는 신호로 되고 줄을 세게 당기면 수상한 사람이 왔으니 위험하다, 주의하라 하는 신호로 돼있다는겁니다. 가와시마란놈이 아주 약은놈인것 같습니다.》

《꽤 머리를 쓰는놈일수두 있지. 됐소, 저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구, 데려오우.》

최현련대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떨어지자 류삼손은 껑충 뛰여 저편에서 기다리고있던 처서군에게로 달려갔다.

…이날밤 류삼손소대는 가와시마의 사택 겸 포태리벌목작업현장사무소로 되고있는 집을 기습하고 창고에 있던 식량, 피복, 지하족들을 한짐씩 지고 가와시마를 붙잡아왔다.

이튿날아침 최현은 로획물자의 대부분을 주변의 화전민들과 로동자들에게 나눠주도록 명령하고 가와시마에게 한장의 편지를 씌웠다.

수신인은 혜산에 있는 그의 고용주인 다가세, 편지내용은 신성한 조선땅에 와서 조선사람의 고혈을 짜내고 조선의 귀중한 국보인 백두산림자원을 강탈해온 기업주 다가세를 협력한 죄상으로 하여 조선인민혁명군부대에 체포되여 압송당하게 되였다는것과 조선의 산림자원을 략탈한 대가로 우선 5월중에 일금 3천원의 현금을 조선광복혁명 군자금으로 조선인민혁명군에 정중히 봉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범 다가세를 대신하여 현장감독이였던 가와시마가 조선인민혁명군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것이였다.

류삼손이가 데려왔던 처서군을 통하여 이 편지는 그날로 혜산으로 발송되였다.

7토장에서 다시금 베개봉기슭의 숙영장소로 되돌아온 최현부대는 하루밤을 더 이곳에 머물렀다가 사처에서 쉬파리떼마냥 새로 몰려든 적들까지 달고 백두의 깊은 원시림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이야말로 적들을 끌고 몽몽한 안개속으로 들어가는격이였다.

 

5

 

봄빛이 짙던 령북의 푸른 산들에 때아닌 눈이 내렸던 지난 5월 스무하루날밤 포태리에 있는 다가세 벌목현장사무소에 조선인민혁명군의 불벼락이 떨어지고 그곳 가와시마현장주임이 붙잡혀갔다는 통쾌한 소식과 함께 무산, 청진, 라남, 회령, 길주, 연사, 혜산, 호인, 신갈파, 독산… 함남북 각지의 일본군수비대들과 경찰대들이 대거출동하여 삼지연과 베개봉 일대에 쓸어들어 백두산동남쪽기슭의 밀림을 샅샅이 뒤지며 가와시마를 붙잡아간 최현부대를 찾고있다는 소문이 짜하게 퍼지고있을무렵, 박달은 리제순의 련락선을 통해 아무날 압록강을 건너와 달라는 권영벽의 긴급비밀통신련락을 받았다.

약속되여있는 날 새벽, 약속되여있는 시간을 맞추어 압록강을 건너선 박달은 강건너편 버들숲속에서 기다리고있던 리제순을 따라 권영벽이가 기다리고있다는 신흥촌 뒤산으로 올랐다. 아침해살이 비쳐들고 풀숲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 산에 있는 한 굴속에서 그는 권영벽을 만났다. 권영벽이도 그를 만나기 위해 새벽걸음을 걸어왔는지 풀잎들이 붙어있는 그의 한복바지아래도리가 이슬에 젖어있었다.

권영벽은 그를 반겨맞았을뿐 호출한 까닭은 말해주지 않았다.

림시아지트로 쓰고있는 굴속에는 리제순이가 미리 준비해둔듯 한 자그마한 오지단지 두개가 있었다. 리제순은 그 단지들을 열고 우선 탁배기를 한보시기씩 떠서 두어순배 돌렸다. 덜덜 떨리던 몸이 대뜸 훈훈해졌다. 리제순은 두번째 단지속에 들어있는 미시가루로 권영벽이와 박달에게 간단한 아침요기들을 시키고는 나무를 한짐 해지고 자기 집쪽으로 내려갔다.

박달은 권영벽을 따라 다시 길을 떠났다. 새잎이 돋기 시작한 이깔나무숲속에는 눈이 미치는데마다에 연분홍진달래꽃들이 떨기떨기 피여있었다. 새들이 우짖고 대기는 그지없이 청신했다.

풀숲의 이슬을 털며 앞서 걷던 권영벽은 새초가 새파랗게 무더기진 덕판의 어느 한군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새초덤불속에 해묵은 락엽이 덮인 자그마한 옹달샘이 있었다.

《여기서 세수나 하고 갑시다.》

권영벽은 허리춤에서 광목수건을 뽑아들며 박달에게 말했다. 세수를 해야 한다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음에도 어쩐지 박달이에게는 권영벽의 그 말이 퍽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은 세수를 하고 다시 한참이나 숲속을 헤쳐갔다. 오래지 않아서 개짖는 소리와 소영각소리가 들려오고 두엄냄새가 풍겨왔다. 불탄 나무그루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부대기밭들이 나타나고 그 밭들가운데 띠염띠염 오막살이집들이 널려있는 자그마한 마을이 보였다.

《섯!》

애잎들이 달린 가둑나무숲속에서 나직하면서도 담찬 목소리가 울리더니 왼손에 반들반들 윤기나는 보총을 든 산뜻한 새 군복차림의 젊은 유격대원이 그들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는 권영벽을 알아보자 몸을 바로잡으며 새빨간 붉은별이 박힌 모자채양에 오른손을 올려다붙였다.

《안녕하십니까?》

《수고하오. 내가 모시고오는 손님이요.》

보초대원은 박달을 눈여겨 살펴볼뿐 더는 아무말 없이 통과시켜주었다.

그들은 파종한 부대기밭고랑을 지나 마을길에 들어섰다. 여라문그루의 이깔나무가 지경을 이루고 서있는 어느 한 숲속밭에서 대여섯명의 장정들이 움직거렸다. 그들은 한창 밭도 갈고 씨도 뿌리고있는참이였다. 보탑을 잡고 천지각황소를 몰아가며 가대기질을 하는것도, 곽지를 들고 씨뿌릴 홈을 파나가는것도, 두엄삼태기를 끼고 두엄을 뿌려나가는것도, 뒤짐을 지고 씨뿌린 밭이랑을 묻어나가는것도 누런 새 군복바지에 흰 광목돌찌, 누런 군모를 쓴 인민혁명군대원들이였다. 종곡다래끼를 안아들고 씨를 뿌리는것만 중년의 아낙네가 담당했다.

군복저고리들이 걸려있는 밭머리의 지경나무밑에서 목이 성큼하고 다리 가는 처녀애가 포대기에 애기를 싸업고 맨발로 풀숲을 조심스레 골라디디며 진달래꽃을 꺾고있었다.

권영벽은 박달을 데리고 마을끝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집으로 갔다. 싸리나무로 낮은 울바자를 둘러친 귀틀집이였다.

삽짝문안에 애잎이 돋고 꽃망울이 진 어린 돌배나무가 한그루 서있었고 좁은 마당앞의 터밭에는 뾰족뾰족한 마늘잎들이 돋아나있었다. 그 마늘밭에서는 금방 깨여난 햇병아리들이 새까만 엄지닭을 뒤따라 한가로이 거닐며 모이를 찾고들있었다.

약간 커서 후렁후렁해보이는 새 군복차림의 애젊은 대원 한사람이 마당 한옆에 있는 넓다란 떡돌에 걸터앉아 자기앞에 궁둥이를 깔고 얌전히 앉은 흰 털보숭이강아지를 상대로 하모니카연주를 하고있다가 그 유일한 관람객이 갑작스레 일어나 대문쪽으로 돌아서며 콩콩 짖어대는것을 보자 벌떡 일어났다. 지난해말 곰산밀영에 갔을 때 낯을 익힌 장군님의 전령병 주봉길이였다. 그는 박달을 알아보자 익은 사과처럼 홍조를 띤 볼에 탐스럽고 귀여운 보조개를 지으며 웃었다.

《계시오?》

권영벽은 밑도끝도없이 불쑥 물었다.

《계시지 않습니다. 경위중대의 기관총분대동무들을 데리고 쌍가매네 묵은밭에 조를 심어주시러 나가셨습니다. 손님이 오면 곧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갔다오겠습니다.》

《보따지》중대장처럼 잰말씨로 대답한 전령병은 하모니카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사립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이제야 박달은 권영벽이가 자기를 장군님께서 계신데로 곧장 데리고왔다는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아까 새삼스럽게 세수를 시킨것이다. 그리웠던 장군님을 이제 곧 두번째로 다시 만나뵙게 된다는것을 생각하자 박달은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그는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권영벽이와 함께 사립문밖으로 나가 전령병이 달려가던 싸리울바자모퉁이를 돌아서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장군님께서 집뒤의 숲에서 나와 그들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시고계셨던것이다.

《박달동무가 옳군! 내 글쎄 치머리를 하지 않은것을 보고 박달동무인줄 알았습니다.》

《저뒤 숲속밭에서 여러분이 일하는걸 보면서도 사령관동지께서 거기 같이 계시는줄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권영벽이 몇걸음 마주가며 말씀드렸다.

《오래간만에 보탑을 잡아보았소.》

장군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박달의 손을 꽉 잡아 흔드시였다.

《박달동무를 오래간만에 다시 봅니다.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정겹게 박달을 살펴보시는 그이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내돋쳐있었다.

《조분옥동무 일에 대해서는 뭐 좀 알아낸게 없소?》

그것은 권영벽에게 건네시는 말씀이시였다. 어쩐지 그 어조에는 한줄기 심려의 빛이 비껴있었다.

《네, 아직… 알아낸것이 없습니다.》

《성한 사람이였으니 혹시 놈들이 그를 붙잡아다가 우리의 비밀을 뽑아볼가해서 깊숙이 감춰두고 뭘 얻자고 들수 있소. 어쨌든 백방으로 찾아보도록 제순동무에게랑 재삼 일러놓소.》

장군님께서는 권영벽이와의 사이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를 마치신 다음 다시금 안색을 달리하시며 박달에게 그의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시고 이어 갑산지방에서는 봄씨붙임이 어떻게 됐는지를 물으시였다. 박달이가 며칠전까지 다 끝났다고 대답올리자 그이께서는 다시 갑산지방에서는 주로 어떤 곡식들을 많이 심는가를 알아보시였다.

《제일 많이 심는건 감자입니다. 그담은 보리와 귀밀입니다.》

《벼농사는 어떻습니까?》

《갑산읍쪽으로 나가며 낮은 평지대에는 더러 논이 있습니다만 대개 랭해를 만나 수확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여기와 기후풍토가 비슷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압록강 하나를 사이둔곳이니 농사도 이쪽과 비슷할겁니다. 확실히 장백도 그렇고 갑산도 그렇고 다 백두산밑이 돼서 여름이 짧은것 같습니다. 지난해에 우리가 처음 되골령을 넘어 지양개치기에 들어서며 보니 그때에야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감자꽃이 한창이 아니겠습니까. 장백에 넘어와서 첫싸움을 대덕수에서 벌렸는데 그때 누렇게 익어가던 보리밭에서 왜놈들을 족쳤습니다.》

《네, 그 전투소식을 제가 길주경찰서류치장에서 알았습니다. 그게 9월초였는데 우리 갑산지방에서도 8월말이나 9월초가 돼야 감자꽃이 피고 보리가 익습니다.》

《그럴겁니다.》

장군님께서는 사위를 둘러보시더니 두그루의 봇나무가 서있는 산탁을 가리키시였다.

《먼 걸음을 바삐 오느라고 수고했는데 저기 가서 편안히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집안보다 저 그늘아래 풀밭이 나을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박달과 권영벽을 데리시고 봇나무아래 풀밭을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봉길이는 가서 시원한 랭수나 좀 떠오지.》

《넷.》

기운차게 대답한 주봉길은 외딴집쪽으로 날파람있게 달려갔다.

벗어들고계시던 군복저고리를 풀밭에 내려놓으시고 군모를 그우에 벗어놓으신 장군님께서는 박달과 권영벽에게 자리를 권하시고 자신께서도 앉으시였다. 어느결에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흰 털보숭이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그이의 두발사이로 다가들어 애무를 간절히 바라는 눈으로 그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가 당분간 무송쪽에 가있은동안 민족해방동맹성원들가운데서는 더러 신심을 잃은 사람들이 없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무릎사이로 다가든 강아지를 쓰다듬어주시며 박달을 돌아보시였다. 그 살뜰한 애무를 받자 강아지는 곧 응석을 부려 그이께서 신으신 도로기를 두세번 핥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자리에 배를 붙이고 얌전하게 드러누워 졸음을 청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유격대가 저들의 〈토벌〉에 못견뎌 무송쪽으로 쫓겨난것처럼 악선전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았기때문에 신심까지 잃지는 않았습니다만 장군님께서 가까이 계시다가 일시나마 멀리 가계시다는 소문이 확실해지니 좀 섭섭하였습니다. 이왕이면 늘 가까운데 계셨으면싶어서…》

박달은 어줍게 웃었다.

《개구리가 주저앉는것은 멀리 뛰기 위한것입니다. 주력부대는 그동안 무송쪽에 들어가서 조국으로 진군해나갈 정치군사적준비를 갖춰가지고 다시 백두산에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국내에서 무슨 사변을 일으키게 되는지 동무는 인차 알게 됩니다. 왜놈들이 지금 우리 조선이 다 죽은줄 알고있는데 이번에 한번 산 조선사람들의 된주먹맛을 톡톡히 보게 하자는것입니다.》

박달은 무릎으로 땅을 짚으며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장군님 친솔부대를 내보내시겠단 말씀입니까?!》

박달은 놀라서 소리치다싶이했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한 웃음을 띠우시며 박달을 다정히 손잡아앉히시였다.

《내보내는게 아니라 내가 직접 이끌고 나가자고 합니다.》

박달은 뭉클 가슴속에 치받쳐오르는 뜨거운것을 삼켰다.

《장군님께서 조선땅안에 불쑥 나타나시면 삼천리 온 강산이 끓어번질겁니다. 조선사람들은 그날을 목마르게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조국땅은 지금 살벌합니다. 지금은 나오실만 한 적당한 때가 못되는것 같습니다. 저놈들이 지금 얼마나 피눈이 되여 날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장군님께서는 친히 나오려 하지 마시고 장군님친솔부대만 조국땅에 나타나도 죽어사는 조선사람들이 숨이 나갈겁니다. 그저 장군님부대가 압록강을 건너와서 총을 몇방만 쏴도 조선사람들은 모두 큰힘을 얻게 될게구 왜놈들은 사색이 될겁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조용한 미소를 머금으신채 가벼이 머리를 드시였다.

《우리 인민들이 우리의 국내진군을 그처럼 고대하고있는데 내가 어찌 부대만 내보내고 혼자 백두산에 떨어져있겠습니까. 위험한 길일수록 내가 앞장서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조국땅을 더 깊이 밟아보고 내륙의 흙냄새랑 맡아보고싶습니다. 늘 백두산 부석만 밟고 지내는데 기름진 내륙의 내 나라 땅도 밟고싶구 그리웠던 내륙인민들도 만나보고싶습니다. 박달동무는 조국땅에서 늘 살고있으니 조국땅에 대한 그리움이라는걸 잘 모를수 있습니다. 우리 동무들은 조국에 갔던 정치공작원동무들이 어쩌다 조국의 한줌흙을 가져오게 되면 그 한줌의 흙을 놓지 못합니다. 이국에서 나서자랐기때문에 내 나라 땅을 백두산에 와서 처음 밟아본 동무들도 많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풀밭을 헤치시고 그밑에서 해묵은 풀잎사귀와 햇풀잎사귀들이 섞인 흙을 한줌 쥐시고 부스러뜨리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보기에는 여기 흙이나 조국의 흙이나 별다를바 없는것 같지만 조국땅에는 우리의 혈맥이 통해있는가봅니다. 태를 묻은 땅이여서 그런지… 하긴 그래서 조국을 어머니라지 않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하시던 말씀을 끊으시고 손을 터시였다. 봉길이가 군용밥통에 물을 담아들고온것이다.

두사람과 함께 시원한 샘물을 마시고나신 그이께서는 전령병에게 손님의 식사까지 준비하도록 일러보내시고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국내가 살벌하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내진군을 위해서 지금처럼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여있는 때는 없습니다. 우리가 놈들을 치고 광복의 홰불을 올리자고 점찍어둔데가 한군데 있습니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가 때리자고하는 그 주공방향으로부터 적들의 주목을 딴데로 돌려놓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2사부대를 림강방향에 보냈고 4사를 백두산동북부를 돌아 두만강을 건너 무산방향으로 진출하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은 이미 개시된셈입니다. 2사부대는 지금 림강쪽에서 적들의 주의를 자기들에게 끌고있고 최현동무네 4사부대는 무산쪽에서 적들의 주의를 끌고있습니다. 우리 주력부대가 조국으로 나갈 주공방향의 길은 환히 틔여져있는셈입니다.…》

(그러니 지금 벌어지는 사태만 봐도 장군님의 국내진공작전은 이미 반나마 승산이 나있는 일이 아닌가!)

박달은 자기 마음뿐아니라 몸까지도 둥 뜨는듯 한 느낌이 들었다.

《장군님, 저는 요즘 매일같이 신문에 나오는 최현부대의 국내출현소식을 보면서 사령부의 그런 깊은 속내는 모르고 최현동지네 부대의 행방을 찾자고 피눈이 되여 돌아치는 미친개놈들의 눈에 백두산속에 있는 밀영들이 하나라도 들짱나면 어찌랴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근심만 했댔습니다. 여기 어제 신문에도 실렸습니다만…》

하며 박달은 품속에 건사해가지고왔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꺼냈다.

《최현동지네 부대가 하는 노릇이 놈들을 유인해서 헛눈을 팔게 하느라고 일부러 꾸미는 수높은 장기수라는걸 유격대편인 저도 몰랐는데 놈들이 용빼내는 재간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속아서 줄줄 끌려다니다가 닭쫓던 개모양으로 어리뻥해질수밖에 있습니까.》

박달은 통쾌하게 웃으며 놈들을 경멸해서 접어든 신문장을 흔들어댔다. 그러는 박달이에게 장군님께서 손을 내미시였다.

《어디 그 신문을 좀 봅시다. 어제 받은 신문이면 나도 아직 못봤습니다.》

박달은 장군님께 정중히 신문을 올리며 송구스러운듯 변명조로 말씀드렸다.

《국내신문은 장백쪽이 우리쪽보다 늘 늦게 와닿기때문에 제순동무에게 보이려구 새벽에 집을 떠나면서 가져왔던겁니다. 사령부에 들여보낼것은 따로 건사해뒀습니다.》

《늘 산에 사는 우리는 동무네보다도 신문만은 늦게 보기마련이요.》

장군님께서는 신문장을 펼쳐드시고 기사제목들을 훑으시다가 한곳에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안개속에 사라지고만 최현일파의 행방

 

기보―함남 갑산군 보천면 포태리에 침입한 최현의 일당은 혜산읍에서 약 백오십여리나 떨어져있는 베개봉밀림속으로 도주하야 버린채로 함남북 량도 경찰서원의 맹렬한 수사도 비웃듯이 그림자를 감추고있다.

24일 오전 두시 현재까지 함북경찰서 토벌대 요시무라의 일대는 23일 정오 도경계선동방 련못부근까지 가서 수사하였으나 행방을 찾지 못하였으며 우에다부대는 대홍단 천옥당을 지나 오후 2시쯤 류곡동에 도착하였으나 역시 찾지 못하였으며 마쯔나가(무산수비대)부대는 그날 오후 8시반 농사동에 도착하여 원사동 일대에 뻗쳐서 찾았으나 발견할수 없었다고 한다.

목하 공산군의 행방은 전혀 오리무중에 있는데 아직도 베개봉부근의 밀림속에 숨어있는듯 하다고 하며 토벌대측에서는 그 산림을 둘러싸고 포위대형으로 지구전을 계속하고있다 한다. 그리고 공산군이 가지고있는 식량도 거의 없어졌을것으로 추측되여서 불원간 밀림으로부터 나타날것이며 토벌대측에서는 이에 만전을 기하고 계속 수사중이다.

함남경찰부에서도 이 형세의 급박함에 비추어 우에노경무과장이 도내 각 경찰서에서 150명의 경찰관을 선발하여 인솔하고 23일밤 현장으로 급행하여 각 토벌대와 호응하여 세방면으로 맹렬히 추격중이다.

 

그 보도기사를 주의깊게 훑어보신 장군님께서는 신문장을 권영벽에게 넘겨주시였다.

《어제밤에 입수된 통보자료도 그렇고 또 이 신문자료를 봐도 그렇고 확실히 최현동무네가 예견했던것보다 좀더 어려운 처지에 빠진것같습니다.》

자못 걱정스러워하시는 안색이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던 장군님께서는 권영벽이가 신문지에서 눈을 들자 말씀을 이으시였다.

《최현동무가 우리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작전을 용이하게 해주려고 너무 욕심을 부린 나머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것 같은데 그들에게 집중된 포위환을 속히 풀어놔주지 않으면 그 동무들이 적지 않은 희생을 낼수 있겠습니다. 도가 지나치면 생뚱같은 화를 빚어낼수도 있습니다. 박달동무가 가졌다는 우려도 무시해버릴수 있는 정도의 공연한건 아닌것 같습니다. 적들이 베개봉, 삼지연, 대홍단일대를 싸다니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은페돼있는 우리 밀영들에 우연히 들이닥칠는지도 모릅니다. 소경이 떡함지에 엎어지듯 말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장군님도, 그 말씀을 듣고있는 권영벽이도 입술에 엷은 웃음들을 담으시였다.

《최현동무네를 위해서도 그렇고 백두산지구밀영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아무래도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을 예정보다 앞당겨 단행해야 할것 같구만. 그렇지 않소?》

그것은 의논이 아니라 이미 내리신 결심이였다.

《그렇게 앞당겨 추진시키겠습니다.》

권영벽의 대답 역시 명령을 받아안은 전사의 립장 그대로였다.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박달에게 눈길을 돌리시며 말씀을 건네시였다.

《박달동무에게서 최현부대에 대한 적들의 동태도 알아보고 또 부탁하고싶은 일도 있고 해서 내가 만나자고 했는데 거 마침 동무가 내 의도를 신통히 알아맞히고 어제 신문을 가져온것 같습니다.》

박달은 어줍게 웃으며 뒤덜미를 어루만졌다.

장군님께서는 박달의 한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으시며 마치 량해나 구하시듯 뒤말을 이으시였다.

《말이 났던 김에 부탁하자던 이야기까지 마저 합시다. 뭔가 하면 보천보시가지에 대한 상세한 략도가 시급히 필요한데 그것을 3~4일내로 해낼수 있겠습니까?》

《예?!》

박달은 흠칫 놀랐다. 축포의 불꽃이 눈에서 튀여나기라도 하는듯… 충격적인 희열이 발사시키는 놀라움이였다.

보천보! 그곳은 박달이 지금 살고있는 갑산땅의 한 지점이다.

예로부터 두메중에서도 상두메의 대명사로 불리워오던 갑산땅이 미구에 광복의 홰불이 타오르게 될 영광의 성지로 선택될줄 그 어느 누가 알았으랴!

박달은 울고싶을만치 기뻐 장군님의 손을 꽉 감싸잡으며 큰소리로 대답드렸다.

《감사합니다. 그런 중대과업을 저에게!… 제 합니다. 념려마십시오.》

《부탁합시다. 빨리 하겠다고 설치지 마시오. 아주 치밀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모르게 극비밀리에 하시오.》

장군님께서는 략도에 담겨져야 할 내용들과 략도작성에서 류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일러주시였다.

그 이야기가 끝났을무렵에 전령병 주봉길이 집옆의 밭머리에 나타났다. 장군님께서는 벗은채 놓아두셨던 웃저고리를 집으시며 풀밭에서 일어나시였다.

《전령병이 올라오는걸 보니 점심이 다 된것 같은데 내려가서 점심이나 자시고 19도구 지양개 절골수림에 넘어가 우리 동무들이 총쏘는게나 같이 구경하도록 합시다.》

박달은 귀가 환해졌다.

《저도 정말 총쏘는걸 보고싶습니다. 그런데 략도를 빨리…》

《략도?… 그건 총쏘는게랑 구경하구 가서 해도 됩니다. 그럴만한 여유는 넉넉하니 걱정마시오.》

박달은 자기에게 얼마나 크나큰 영예가 기다리고있는줄은 상기 알지 못하고있었다.

《사령관동지, 철구아주머니가 점심식사를 마련해놨습니다.》

《봉길이가 싱글벙글하는걸 보니 오늘 점심엔 뭐 빛다른게라도 있는게군?》

《주인집할머니와 철구아주머니가 병풍나물이란걸 뜯어왔습니다. 그것으로 쌈을 싸먹는다는데 아주 맛이 좋답니다. 그래서 오늘점심은 병풍쌈을 해잡수시게 갖췄답니다.》

《귀한 손님도 왔는데 마침 잘됐구만. 그런 나물이 있는줄은 나도 몰랐소. 아마 이고장 특산물인 모양이군.》

장군님의 발밑에서 뱅뱅 돌며 꼬리치던 털보숭이강아지는 점심이 마련됐다는 전령병의 말을 알아듣기나 한듯 제먼저 앞질러 뽀르르 집쪽으로 달려내려갔다.

×

박달은 어느 한 소대나 중대쯤되는 성원들이 평소에 하군하는 사격련습같은것을 보게 되는줄 알고 장군님을 따라갔다.

그러나 절골수림속에 들어섰을 때 그는 오늘 자기가 보게 되는것이 단순한 사격련습이나 사격훈련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일부러 나무들을 베여내고 사격좌지를 꾸리고 목표물들을 세워놓은 사격장에는 수백명의 대원들이 모여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운이 솟는 끌끌한 모습들이였다. 한결같이 시누런 새 여름군복차림에 번쩍번쩍 윤기나는 총들… 영접대형을 짓고 들어선 팔팔한 젊은 대원들은 그로 하여금 자기도 당장 그 대오속에 뛰여들고싶은 강한 충동을 주었다.

《사령관동지, 조국진군원정대에 선발된 각 부대성원들은 원정 준비에 대한 최종검열을 받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련대장 강세호의 청청한 목소리가 숲속에 찌렁찌렁하게 울렸다.

《사격경연을 시작합시다.》

그의 보고에 답례하시고 지시를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약간 둔덕진 언덕우에 마련되여있는 통나무의자에 박달이더러 같이 앉아보자고 하시였다.

박달이가 앉기를 사양하자 그이께서 박달의 팔소매를 잡아이끄시였다.

《그러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국내혁명조직대표가 이런데 앉지 않으면 누가 앉겠습니까. 오늘은 국내진공을 앞두고 하는 사격경연이니만큼 우리끼리 조용히 하지만 이제 국내진공을 마치고 돌아오면 인민들과 같이 성대한 련환대회를 가지자고 합니다. 그때 박달동무도 형편을 보아 초대할수 있는데 미리 련습삼아 이런데 앉아보는게 나쁘지 않습니다.》

박달은 장군님께 끌리여 송구스러운대로 통나무걸상에 엉거주춤 앉았다. 그는 이미 조국진군전투의 승리는 기정사실로 되고있다는데 대하여 조금도 놀랍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놀란것은 지난번에 곰산밀영에 며칠 가있은 때에도 이렇게 믿음직한 대군이 장군님의 휘하에 준비되여있고 이리도 희한한 중무기들과 신식무기들이 그쯘하게 갖추어져있는줄까지는 몰랐다는 그 사실이였다.

《저기 저 동무가 쓰게 되는 기관총이 경위중대 기관총반장이 다루는 기관총입니다. 저 동무들은 〈리명수기관총〉이라고들 부릅니다. 지난 2월에 있은 리명수전투때에 로획했다고 그런 별명을 붙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첫 사격자로 사격좌지에 나선 대원앞에 놓여있는 기관총의 래력을 알려주시였다.

기관총앞에 엎드린 사수는 능숙하고 날랜 솜씨로 사격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기관총을 드다뤘다. 절칵거리는 쇠맞히는 소리들이 절도있게 울렸다.

사격지휘관의 머리우에 들려있던 붉은 삼각수기가 아래로 떨어지고 《사격!》하는 구령소리가 났다.

물씬 연기뭉치를 날린 기관총부리에서 여무진 련발사격소리가 귀따갑게 울렸다.

저앞에 주런이 세워놓은 일여덟개의 목표판근처에서 총탄에 잘라진 나무가지들과 나무잎들이 놀란 참새떼마냥 튀여올랐다.

쌍안경을 드시여 목표물을 살펴보신 장군님께서 먼저 박수를 쳐주시자 다들 야― 환성들을 올리며 손벽들을 쳤다.

《이걸로 한번 보시오. 여덟개의 목표판에 다 한두방씩 맞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쌍안경을 박달에게 쥐여주시였다.

《어떻습니까? 구멍이 보입니까?》

《네, 인절미에 구멍을 뚫는대도 저렇게 곱게 뚫어낼것 같지 못합니다. 구멍도 어찌나 큰지!》

《단꺼번에 저 목표판들에 다 명중시킨다는것은 보통솜씨가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은근히 경위중대의 기관총사수를 자랑스럽게 소개하셨다.

이번에는 뚜루룩 하는 긴 련발사격소리가 울리자 그옆의 가지에 매달려있던 여라문개의 유리병들이 일시에 차례로 박산이 났다. 왜놈의 대갈통들이 그렇게 박산이 날것을 상상한 박달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껑충껑충 뛰여오르며 박수를 쳤다.

《허허, 박달동무도 이만저만한 감정가가 아니로군. 아직 첫사람이니 너무 기운을 뽑지 말구 뒤사람에게 박수칠 기운을 남겨놓으시오. 모두 훈련들도 잘했지만 여기서 불합격이면 원정대에서 밀려날가봐 오늘은 볼만하게들 갈겨댈겁니다.》

웃음섞이신 장군님의 말씀이시였다.

요란한 박수갈채속에 첫 사수가 들어가고 두번째 사수가 나와 기관총을 버티여놓자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기관총사수와 기관총에 대하여 소개하여주시였다.

《박달동무는 함경도사람이니 〈큰아매〉요 〈노큰아매〉요 하는 사투리들을 잘 알겠는데 저게 바로 〈노큰아매기관총〉입니다. 기관총들가운데서 로장이라는것입니다. 우리가 지난해봄에 이 주력부대를 조직하려고 북만쪽에서 백두산을 향해 나올 때에는 여라문명 되는 사람과 저 기관총 한문밖에 가진게 없었습니다. 그때 일을 저 〈대통령감〉이 잘 압니다만…》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리동백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지난번에 곰산밀영에 들어갔을 때 박달은 권영벽의 소개를 받아 거기에 나타난 리동백과 안면을 익혔을뿐아니라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까지 되였다.

《마침 잘 왔습니다. 대통을 보고서야 담배생각이 난다더니 나야말로 이제야 박달동무에게 손님대접을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배가 있으면 박달동무에게 손님접대로 좀 주십시오.》

장군님께서 리동백에게 청하시였다. 그런 세심한데 대해서까지 관심을 돌려주시는 장군님앞에서 박달은 가슴이 찡하게 저려들었다. 사실 그는 새벽에 압록강을 헤여건너올 때 담배를 쌈지채로 강물속에 떨어뜨렸으므로 여직껏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있은것이다.

《아침부터 가만 보니 담배를 안피우는데 아마 담배가 없는것 같습니다. 전번에는 꽤 담배를 피우는것 같던데.》

《네, 저한테 담배가 있습니다.》

리동백은 담배를 쌈지채로 꺼내여 박달이의 무릎에 놔주었다.

《담배야 〈대통령감〉한테밖에 더 있습니까? 이제는 모두 〈금연단〉에 들어놔서 담배를 빌릴만한 사람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시고는 유격대에서는 모두가 《금연단》에 들었는데 《대통령감》만은 유독 애연가동맹의 위원장 겸 단독 맹원으로 남아있다고 웃으시며 박달이에게 알려주시였다.

《장군님, 금연이 군사적명령으로 떨어지면 저도 담배를 떼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담배때문에 부대의 군사행동에 저촉될 행위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야 어쩌겠습니까.》

리동백은 장군님앞에서 비위좋게 변명을 했다.

《글쎄 그래서 나도 강권을 못합니다. 젊은 동무들이라면 내가 기를 써서라도 뚝 끊어버리라고 권하겠습니다만…》

장군님의 어조에서는 정이 뚝뚝 흘러떨어졌다. 한집안식구마냥 다정하고 허물없이 담소하시는 장군님과 《대통령감》… 박달은 다정한 가정적분위기에 잠겨들었다.

얼마후 《대통령감》이 물러가자 장군님께서는 명상에 잠기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좋은 령감입니다. 어쩌다 담배를 말만한 종이가 생겨도 그것으로 담배를 마는 법이 없습니다. 거기에 글을 쓰겠다고 아껴서 모아둡니다. 그랬다가는 그런 종이쪼각에 글을 깨알같이 박아씁니다.

〈3.l월간〉의 많은 페지들에 실리는 원고들이 그렇게 씌여집니다. 저 령감은 담배가 없인 글을 못쓴다고 합니다. 자기가 글을 쓰는것이 아니라 담배가 글을 써준다고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저 령감한테는 〈금연단〉에 들라는 권고를 하지 말라고 〈금연단〉성원들에게 오히려 사정합니다.》

장군님곁에 앉아있느라면 어찌하여 자꾸만 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이 넓어져보이고 원쑤 아닌 우리 사람들은 다 그처럼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로 돋보이는것인지? 박달은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기관총수들의 사격경연을 마친 사격좌지에는 보총수들이 나와 줄지어섰다. 저앞의 나무가지들에는 새 유리병들을 매달았다.

여러개의 나무가지들이 기관총탄알에 맞아 꺾어지고 잘리여졌다.

매캐한 화약내가 서린 가운데 몰방으로 터지는 총소리들이 울리고 유리병들이 부서져나가고 햇나무잎사귀를 단 이깔나무 잔가지들이 튀여올랐다. 총구마다에서 날아오른 화약연기들이 바람에 맑게 가셔진 대기를 흐려놓군 했다.

《저 동무가 부대안에 〈금연단〉을 조직한 〈단장〉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에 붉은 종이꽃을 달고서도 얼굴에 전혀 웃음을 띠우지 않는 억대우같은 사수를 눈짓으로 가리키시였다.

《한때는 저 동무도 담배를 몹시 즐겨해서 〈막담배〉라는 별명까지 붙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담배를 끊을만한 의지를 못가진 사람이 혁명의 시련을 어떻게 견디랴고 생각하고 담배를 끊었습니다. 바로 그런 의지를 가졌기때문에 저 동무는 지난 겨울에 동무들을 잃고 혼자 남게 되였지만 만난을 극복하고 불사신처럼 죽음을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조국진군원정대에도 속하게 됐습니다.… 혁명하는 사람에게는 저 동무와 같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박달에게는 화제의 주인공이 새삼스럽게 돋보였다. 아니 그에게는 장군님앞에서 조국진군의 군사적준비를 최종 검열받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돋보였다. 그에게는 그들모두가 영웅들이였고 저마끔 자기의 독특한 매력을 가진 훌륭한 사람들이였다.

사격경연을 보면서 장군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그는 더욱더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속에 남고싶었다. 그들과 함께 영웅들의 대오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활기있게 산야를 주름잡고 다니며 지내고싶었다. 처음으로 장군님을 만나뵈오러 왔을 때보다 더 강렬하게 이런 욕망이 그의 가슴을 불태웠다. 하지만 지난번에 입대를 청원했을 때 그가 해야 할 사업이 총을 잡고 싸우는것보다 더 어렵고 더 중대한 사업이라고 깨우쳐주시던 말씀을 그는 잊지 않고있었다. 속이 달아서 혼자 가슴을 태우던 그는 마침내 한가지 청원만이라도 올려보기로 마음먹고 용기를 내여 말씀을 드렸다.

《장군님, 저도 이번 원정대에 속해서 뒤시중이라도 들게 해주실수 없겠습니까. 유격대에 들여달라는게 아닙니다. 한번만 총을 메고 따라가서 적들을 족치는걸 보고싶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오. 오늘 본것을 전투를 본셈으로 여기고 딴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박달의 얼굴에 나타난 섭섭한 기색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좀 섭섭할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박달동무가 우리와 같이 행동하면 박달동무가 로출될수 있습니다.》

박달은 무안한 가운데도 가슴이 뜨거웠다.

《장군님, 제 그만 그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장군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대신 오늘 내가 박달동무에게 총쏘는 법은 배워주자고 합니다. 이제는 박달동무도 권총을 비롯해서 모든 종류의 총을 다룰줄 알아야 할 때가 됐습니다. 이제는 조선민족해방동맹내에서도 인민적항쟁을 위한 준비로서 생산유격대를 조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책임자인 박달동무부터 생산유격대를 조직하고 지도할수 있게 모든 총을 다 쏠줄 알아야 합니다.》

박달은 조국해방을 위한 전인민적항쟁의 위대한 시각이 멀지 않은 장래에 다가왔다는것을 그리고 장군님께서 오늘의 사격경연장으로 자기를 데리고 오신것은 단순히 사격경연관람을 시키시기 위한것이 아니였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너무나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저고리가슴자락을 주무르며 장군님을 우러러 뵙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이 희한한 사격경연과 자기의 사격련습에 련이어 그 얼마나 크나큰 영광이 자기를 기다리고있는줄은 아직 몰랐다.…

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 소년에게 글쓰는 법을 익혀주듯 친히 그의 사격자세를 바로잡아주시고 팔을 쳐들어주시고 손을 잡아주시면서 권총과 소총의 사격법을 익혀주시고 쏴보게 해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휴식하신 다음 그를 외진 숲속으로 데리고가시였다.

한폭의 붉은 기발이 나무가지에 매여 드리워져있는 그 좁은 공지에는 권영벽, 김주현이와 리동학을 비롯한 몇사람의 지휘성원들이 기다리고있었다.

무슨 일인지를 모르고 장군님께서 권하시는 붉은 기발 앞자리에 앉은 박달은 둘러앉은 여러 사람들의 얼굴에 여느때 없는 엄숙이 비껴있는것을 보았다.

《그럼 시작해봅시다.》

잠시 좌중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 조용하고도 웅글은 목소리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동무들이 다 잘 알고있는것처럼 지금으로부터 90여년전에 맑스와 엥겔스가 하나의 유령이 배회한다고 표현한 새로운 사상, 공산주의사상이 처음으로 과학적인 정식화를 띠고 인류사회에 나타났습니다. 그 〈공산당선언〉을 내놓은후 맑스와 엥겔스는 자기들이 진리로 간주하고 선언한 공산주의혁명위업을 위한 투쟁의 전위부대로서 제1국제당을 창건하였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누구의 승인밑에 〈공산당선언〉을 작성했고 공산당을 창건하였는가? 아무도 그것을 승인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념에 따라 그렇게 하였습니다. 우리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인민의 민족적해방과 계급적해방을 이룩하며 현세계의 온갖 질곡과 예속에서 인류를 해방하기 위하여서는 근로인민대중을 세계의 지배자로 전환시켜야 한다는것을 자기의 신념으로 삼고 이 신념대로 세계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승인을 받고 그런 신념을 얻었는가? 아닙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이런 신념을 가지라고 한 사람도 없고 또 그런 신념을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들 이전에는 그러한 주의주장이 없었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신념을 우리에게 줄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신념에 따른, 우리의 투쟁을 인도할 우리들의 당을 창건하자고 합니다.…》

몹시 송구스러운 가운데서 장군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박달은 그이의 말씀속에서 자기 이름이 튀여나오자 바짝 긴장해졌다.

《여기 앉아있는 박달동무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전위조직을 몹시 갈구해왔습니다. 박달동무는 조선에 당조직을 내오자면 반드시 그 어느 다른 사람들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것처럼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은 맑스주의를 외우면서도 맑스가 그 누구의 승인을 받음이 없이 스스로 맑스주의를 내놓았고 공산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하는 사이비맑스주의자들, 얼뜨기맑스주의자들을 자기보다 나은줄로 여긴탓입니다. 박달동무는 그 얼뜨기들보다 덜 때묻고 순진하고 순결하고 성실한 맑스주의신봉자인 자기가 월등 낫다는것을 자신은 몰랐습니다. 진리란 언제나 쉽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탐구자에게는 그 진리가 항상 가까이 있습니다. 박달동무는 자기의 성실성으로 조선혁명의 참다운 진리에 접근할수 있었습니다. 이 동무는 우리와 만난 다음 곧 조선혁명의 진리를 자기의것으로 접수했습니다. 그때부터 박달동무는 우리와 신념을 같이하게 됐고 우리와 영원히 한길을 나가기로 마음다져 나섰습니다. 박달동무는 이미 자기의 실천활동으로 그가 우리의 동지이며 나의 동지라고 여기서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선언할수 있는 믿음을 주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박달동무를 우리와 영원히 뜻을 같이할 동지로 굳게 믿으면서 장래에 우리가 창건할 우리 당의 첫 국내소조원으로 삼을데 대하여 이 자리에서 엄숙히 제기합니다. 박달동무에 대한 보증은 나와 권영벽동무가 직접 서겠습니다.》

박달은 귀안이 왕왕 울려 나중에 무슨 말씀을 더 하셨는지도 잘 기억되지 않았다. 이 한순간에 자기 생애에서 어떠한 전환이 일어나고있는지도 인차 깨닫지 못했다. 어째선지 그저 울고싶어지기만 했다.

처음으로 《공산당선언》이라는 비밀소책자를 신비감속에 읽으며 당이란 자기에게 있어서는 아득히 먼곳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신기루와 같이 느끼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 고상하고 신성한 이름이 불시에 자기에게 달리고있다는것을 과연 어찌 믿을수 있으랴.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보증으로 그에게 가장 신성하고 영예로운 공산주의혁명전위의 칭호를 주시고계시는것이 아닌가!

박달은 뿌옇게 앞을 가리는 눈물속에서 여러개의 손이 엄숙히 쳐들리는것을 보았다.

(우리한테는 불가능한 모든것이 어째서 장군님께서는 다 가능한것으로 되며 우리한테는 그렇게도 어렵게 느껴지는것이 어째서 장군님한테서는 쉽게 풀려지는가? 기성의 모든 관념이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구속으로 되는데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가? 그 까닭은 어디 있는가?)

박달은 이런 왕청같은 생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러면서 흔히 자기같은 범속한 사람들은 기껏해야 이미 주어져있는것을 리용하고 응용하는데 지나지 않지만 장군님께서는 어떤 성질의것에 대해서나 없는것, 없던것을 새로 만들어내신다는데 그 까닭이 있지 않을가 하고 생각했다.

 

6

 

사흘후 보천보시가지략도를 작성해가지고 다시 온 박달을 데리고 곰산밀영에 가계신 장군님께로 보고드리려 갔었던 권영벽은 보천보와 그 주변일대에 대한 최종현지정찰을 그 자신이 직접 진행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또다시 장군님곁을 떠났다.

예정보다 앞당겨 당장 단행하기로 된 국내진공전투를 원만히 보장하자면 박달이가 가져온 략도와 사령부에 종합된 적정자료들을 다시한번 철저히 현지에서 확인하고 무슨 변화나 변동이 없는지를 시급히 알아야 했다. 더우기 장군님께서 친히 거느리시게 될 원정부대를 가장 안전한 통로로 보천보에까지 안내해가기 위해서는 그 길을 자기가 직접 밟아봐야만 하였다.

이 정찰을 수행하고 이어 장군님을 모시고 보천보에 나갔다가 백두산밀영에 돌아갈 때까지 한동안 《집》을 떠나있자면 적들의 눈을 속일수 있는 그럴듯한 구실이 필요했다. 왕가골에서 남의 《소작》을 붙이며 사는 《농사군》이 한창 바쁜 농사철에 열흘이상이나 《집》을 떠나있게 된다는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나 의심을 사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권영벽은 왕가골에서 흡수한 믿음직한 조국광복회원인 최경화를 시켜 고향에서 부친이 병사하였다는 《부고》를 장백에 가서 우편으로 부치게 하였다.

다음날 우편배달부가 장백우편국 일부인이 찍힌 《부고》편지를 그의 집에 전하자 동네사람들은 그를 찾아와 조의를 표시하며 바쁜 농사걱정을 말고 어서 고향에 가서 사망된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권하였다. 그 《부고》편지를 본 안시공경찰서에서는 고향방문에 필요한 압록강《도강증》을 발급해주었다.

권영벽은 라명희가 미리 새로 마련해놓은 옥양목바지저고리를 입고 사망된 부친을 찾아뵙기 위해서 고향인 명천군 상가면에 한 십여일간 다녀오겠다는 소문을 놓고 보천보정찰의 길을 떠났다. 그는 보천보로 가던 길에 리제순에게 잠간 들려 장군님께서 몹시 걱정하시는 조분옥의 행적을 한번 더 조직원들을 발동시켜 알아봐달라는 당부를 재삼 해두기를 잊지 않았다.

한편 곰산밀영에서 소집하신 국내당공작위원회 회의(보천보시가지략도를 가지고 왔던 박달도 참가하였다)를 결속지으신 다음 소백수골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최현부대의 행처를 찾아서 베개봉, 삼지연, 대홍단일대를 맹수색하고있는 적들에게 대처한 만단의 안전책을 강구해놓으시고 조국진군원정대에 속하게 된 성원들을 데리고 백두산밀영을 떠나시였다.

원정대에 속하게 된 기본전투성원들의 대부분은 그냥 지양개의 절골수림속에 머무르며 대기하고있었다.

이곳에서 원정대의 대렬편성을 마감으로 아퀴지으신 장군님께서는 흠할데 없이 잘 준비된 원정대를 거느리시고 상풍동마을을 거쳐 우럭골 가마웅덩마을로 내려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곳에서 보천보에 현지정찰을 간 권영벽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마감준비를 다그치시였다.

장군님께서 자리잡고계시는 마을의 외따른 돌배나무집으로는 사람들이 분주히 찾아들고 또 분주히들 떠나갔다.

국경연안에서의 적들의 움직임이 시각마다 장군님께 보고되고 지방조직들에서 보내온 통보자료들이 수시로 사령부에 들어왔다.

김운신을 비롯하여 압록강지형에 밝은 대원들로 구성된 도강보장소조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압록강기슭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강물깊이와 강물너비를 재여보군 했다.

압록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난대로 줄어들지 않아서 도강보장성원들은 은근히 안타까와들 했다. 백두산 깊은 계곡들에 남아있던 눈들은 아직도 눈석이물을 내려보내고있었다. 그런데다 5월 하순에 두차례나 상당히 많은 봄눈이 내렸고 몇차례의 봄비도 내렸다. 그리하여 압록강은 한여름 장마철때처럼 불어나있었다.

압록강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물깊이와 물너비에 대하여 보고할적마다 속상해하는 대원들과 다를바없는 심정이시였던 장군님께서도 친히 몇번이나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숲머리에까지 나오시여 뿌옇게 흐린 압록강의 풍만한 봄시위물을 굽어보군 하시였다.

압록강물을 좀더 불어나게 한 부슬비가 내린지 이틀째 되던 날, 보천보에 현지정찰을 갔던 권영벽이가 돌아왔다.

그날도 어쩐지 금시 비가 쏟아져내릴것처럼 하늘이 침침하게 흐려있었다.

강물이 여전히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김운신이네 도강보장조원들에게 좀더 상류쪽으로 올라가서 적당한 도하지점을 찾아보라고 일러주시고 친히 마당밖에 나오시여 그들을 바래워주신 장군님께서는 집안으로 들어가시려고 발길을 돌리시려다가 저아래 숲속길로 김운신이네와 어기면서 웬 사람이 바삐 걸어오는것을 보시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비록 먼빛이였으나 누런옷에 검정조끼를 받쳐입은 그 사람의 모습에서 기다리시던 권영벽의 넓은 이마와 걸음걸이를 쉽게 알아보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마당밖으로 마중나가시였다. 권영벽은 저쯤에서 벌써 인사를 올리고 연방 팔소매로 땀을 훔치며 가까이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와지고보니 누런옷이 아니라 새로 지어입은 흰 옥양목바지저고리에 어디에서 묻혔는지 흙이 잔뜩 발려있었다.

《갔다 오느라고 수고했소. 그런데 오다가 어디 넘어진게 아니요?》

그에게로 마주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는 땀에 젖은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인사말씀을 건네시였다. 권영벽의 온 얼굴이 열에 뜨고 땀에 번들번들 젖어있었다. 흙이 발린 새옷도 땀에 푹 젖어 살에 붙은 어깨자락에서는 김이 물물 날렸다.

《넘어지진… 않았습니다.》

권영벽은 흙묻은 소매로 땀 흐르는 넓은 이마를 훔쳤다.

《척후정찰겸 보천보에 가본 감상이 그래 어떻소? 박달동무의 보고자료하구 차이나는게 더러 있소?》

《기본적으로… 별차이가 없었습니다.》

《별차이가 없다? 그러면 이제는 이미 세워놓은 계획대루 내밀면 되겠구만. 지금 보천보에서 곧장 오는 걸음이요?》

《네,… 그런데 오다가…》

웬일인지 권영벽은 갑자기 목이 메인듯 뒤말을 잇기 힘들어 했다.

《오다가 무슨 일이 있었소?》

《네…》

눈길을 들지 못하는 권영벽의 눈가에 핑 물기가 돌았다.

장군님께서는 흙이 발리고 땀에 젖은 그의 옷을 재삼 유심히 훑어보시였다. 그의 신발도 온통 흙투성이였다. 어쩐지 옷에 묻은 흙과 흙투성이 신발에 무슨 곡절이 있는것 같이 느껴지시였다. 권영벽의 태도로 보아서도 어떤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으시였다.

《무슨 일이요?》

장군님께서는 미리 마음을 다잡으시며 조용히 재차 물으시였다.

권영벽은 가까스로 얼굴을 들고 약간 떠듬거리며 말씀을 드리였다.

《…그동안 행적을 몰라서 저희들이 애써 찾던 조분옥동무가…》

권영벽의 목에서 울대뼈가 움씰거렸다.

《분옥동무가… 희생되였습니다.》

그는 가까스로 말을 맺었다.

장군님께서는 대뜸 가슴이 서늘해지시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격하신 장군님의 목소리가 침침한 하늘로 날아올랐다.

《…》

권영벽은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게 확실한 소식이요?》

장군님께서는 목소리를 눅잦히려 애쓰시며 다시 물으시였다.

《네…》

권영벽은 이마에 흐르는 땀과 함께 눈굽을 흘러넘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자기의 부친을 잃고 장군님앞에 왔을적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자기의 가장 가까운 전우인 곽두섭의 애인이였으며 오래전부터의 전우이기도 했던 조분옥의 상실에 대해서는 북받치는 눈물을 억눌러버리지 못하였다. 자기보다도 더 가슴아파하실 장군님께 이 비통한 사실을 알려올리지 않으면 안된것이 더구나 가슴이 저려 눈물을 금치못하는 권영벽이였다.

《언제?… 어디서 그렇게 됐다는거요?》

잠시후 또다시 물으시는 장군님의 음색도 변하시였다.

《어제밤에… 장백읍 뒤산에서…》

《어제밤에? 대체 누가 그 소식을 가져왔소?》

《제가… 직접…》

《동무가 직접 당해보았소?》

《오늘새벽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걸 알았습니다.…》

권영벽은 눈물을 삼켜가며 가까스로 자기가 듣고 본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드렸다.

《제가 보천보현지정찰을 마치고 오늘새벽에 혜산서 압록강다리를 건너 장백에 넘어섰는데 강변풀밭에서 두 소년이 소를 먹이면서 이상스러운 얘길 나누고있었습니다. 유격대누나의 연설이 어떻구 왜놈들의 눈깔이 어떻게 뒤집히구 하는 말들을 하는데 무슨 범상치 않은 곡절이 있는 얘기였습니다. 그 애들한테 알아보니 놈들이 어제저녁에 장백소학교운동장에 사람들을 강제로 몰아다놓고 그앞에서 연설을 시켰다는 한 유격대녀대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놈들은 유격대에 들어 산에서 여러해동안 고생하다가 살길을 찾아 도망쳐나온 녀자의 말을 들어보라고 소개하면서 사람들앞에 험상한 유격대솜군복차림의 단발머리녀자를 내세우더라는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뭇사람들앞에서 벌린 그 녀자의 입에서는 놈들이 소개한것과는 전혀 다른 불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나는 일가족 일곱식구모두를 원쑤에게 잃은 사람이다. 나는 그 원쑤를 갚는 동시에 원쑤놈들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하여 스스로 유격대에 들어갔고 거기서 보람차게 싸우다가 불행하게 체포된 사람이다. 원쑤놈들의 악선전에 속지 말라. 김일성장군님이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여러분들의 참된 해방군이며 혁명군이다. 장군님을 따라 싸우는 길에서만 여러분들의 행복도 조국의 해방도 찾을수 있다. 장군님을 따라 원쑤놈들과의 싸움의 길에 나서라…〉

그런 불같은 연설에 바빠맞은놈들은 황겁히 그 녀자를 끌어내렸으나 그 녀자는 놈들이 입에 수건뭉치를 틀어막는 순간까지 원쑤놈들에게 굴하지 말고 싸워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권영벽은 목이 메여올라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놈들은 그 녀대원을 마구 구두발로 차고 총탁으로 때리며 급급히 어디로인가 끌고갔는데 밤에 학교 뒤산골짜기에서 몰방으로 터지는 심상치 않은 총소리가 났다고… 그 말을 듣고 어쩐지 꼭 조분옥동무일것만 같아서 저는 간밤에 총소리가 울렸다는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가서 알아봤습니다. 그것은 확실한 이야기였습니다. 간밤에 놈들이 그 녀자를 몰고 산에 올라갔고 총소리도 났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사살당했다는 녀대원을 찾아보았습니다. 놈들이 사살한 현장에 이르니 거기에는 이미 어뜩새벽에 올라와서 분옥동무를 찾아헤맨 두명의 조국광복회원이 있었습니다.… 분옥동무는 이슬맺힌 풀밭에 쓰러져있었습니다. 온몸에 피가 즐벅한데… 눈만은 감지 못한채 뜨고있었습니다. 눈가에는… 이슬이 한방울씩 맺힌대로 있고… 얼굴은 조국땅쪽으로 돌린대로 있었고… 그리고 손으로는 가슴을 꽉 그러쥐고있었는데… 그 손을 펴보니… 이 단추를 틀어쥐고있었습니다.》

권영벽은 후들거리는 손으로 조끼주머니속에서 건사해가지고 온 단추를 꺼냈다.

장군님앞에 내든 그의 땀난 손바닥에는 고리에 낡은 군복천실밥이 그대로 묻어있는 한개의 포금단추가 놓여있었다.

권영벽이한테서 지난날 곽두섭이와 조분옥이 사이에서 있은 비밀약혼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낱낱이 들으시였던 장군님께서는 그 단추가 무슨 단추이며 그것이 어떤 뜻깊은 사연을 간직하고있는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아시고계셨다. 곽두섭이와 마안산에서 비밀약혼을 하던 날 서로 바꿔달아가진 단추였다.

그 단추를 받아드시는 장군님의 손도 떨리시였다. 남들보다 더 수모받고 마음고생도 더 많이 했고 눈물겨운 사연도 많이 겪었기에 부디 남들보다 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랐던 그 조분옥이가 이 단추 하나를 남겨둔채 이렇게 장군님의 마음까지 어여주면서 일찍 가버릴줄 그 누가 알았으랴.

《그래 그 분옥동무가 지금 장백뒤산에 누워있소?》

갈리신 음성이시였다.

《분옥동무를 남모르게 안장해주려고 저보다 먼저 간 조직원동무들과 같이 지양개골어구 산쪽으로 옮겨다 안치해놓았습니다. 차마 그냥 거기에 눕혀두고 올수가 없어서… 저 골짝 맞은편 데기우의 좀 가까이다가…》

장군님께서는 서편쪽으로 얼굴을 돌리신채 한참이나 묵묵히 서계시였다. 크나큰 비애가 그이의 번쩍이는 안광에 비껴있었다.

《그 동무가 지금 거기에 혼자 누워있겠구만?》

《네.》

다시금 장군님께서는 저편 숲으로 슬픔어리신 눈길을 보내시였다.

한참만에 장군님께서는 낮은 음성으로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그동안… 분옥동무가 적들속에서 홀로 지내며 얼마나 우리를 그리워했겠소? 가봅시다. 지금 혼자 외로이 누워있다는데 두섭동무랑 같이 가서 잠간만이라도 동무해줍시다.》

그러시고는 조분옥이에게로 가실 차비를 하시려고 돌배나무집으로 걸음을 옮기시며 뒤에 와 있었던 리동학경위중대장에게 곽두섭동무를 데려오라고 이르시였다. 오중흡이와 장철구아주머니도 가까이에 보이면 같이 데려오도록 하라고 덧붙이시였다.

×

얼마후 리동학은 곽두섭이와 오중흡, 장철구들을 데리고 마당안에 들어섰다.

금방 총을 거꾸로 잡고 꼬누어들기내기를 하여 부상당하기전의 건강과 시력을 완전히 회복했다는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단연 우승했던 참인 곽두섭은 온 얼굴에 웃음이 넘치고있었다. 그는 이긴김에 기분좋아서 사립문옆에 서있는 권영벽을 향해 다정한 눈인사를 보내는가 하면 자기의 아래도리에 매달리는 이집 털보숭이 강아지한테도 애무의 눈길을 보냈다.

《사령관동지! 저희들을 찾으셨습니까?》

곽두섭은 장군님앞에 경례를 붙이며 이렇게 물으면서도 싱글벙글했다.

오늘따라 유별스럽게 활기있고 명랑한 그의 얼굴을 대하신 장군님께서는 봄외투호주머니속에서 조분옥이 남겨놓고갔다는 그 포금단추를 부르쥐신채 잠시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이토록 기분좋아있는 곽두섭의 앞에 그 단추를 내놓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통한 소식을 전해주자니 너무나도 가슴이 떨리시여 말씀을 입술에 담으실수 없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곽두섭의 웃음어린 얼굴에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시며 묵묵히 서계시다가 끝끝내 어째서 찾으셨다는 말씀을 못하시고 그저

《우리하고 같이 좀 갈데가 있소.》

그러시고는 전령병을 돌아보시였다.

《련대장동무들에게 전체 원정대원들이 조국을 향해 임의의 시각에 떠날 행군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게 하라고 일러놓소.》

말씀을 마치신 장군님께서는 마당밖으로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곽두섭은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한채 장군님을 뒤따라 나섰다.

그러나 얼마 안되여 그는 차츰 이상스러운 분위기를 감촉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도 활기와 웃음을 보지 못했을뿐더러 웬일인지 자기를 외면하는듯 한 느낌을 받았던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것을 꺼려할뿐아니라 전혀 말들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가? 어디로 이렇게 급히 갈가?)

곽두섭이에게는 자못 의혹을 자아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영벽동무는 어디서 저렇게 흙칠을 잔뜩 했을가? 며칠만에 만났는데 왜 반가운 인사말 한마디 없이 나를 외면하였는가?

무엇때문에 아까 나를 얼핏 돌아볼 때 눈에 눈물이 글썽했던가? 무슨 일로 장군님께서는 여직껏 입지 않으시던 은회색봄외투를 입으시고 길을 나서신것일가? 분옥이가 장군님께 지어드렸으면 하고 그리도 갈망하던 저 봄외투를…)

문득 야릇하고 불길한 예감이 그의 가슴을 찌르고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나 어디로인가 가고있는 이 걸음이 분옥이때문인듯 한 생각이 번개마냥 비쳐들었다. 자기에 대한 뭇사람의 돌변한 태도…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여느때는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까닭모를 불안은 점점 더 지꿎게 그의 마음속에 갈마들었다.

(혹시?)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무섭고 불길한 예감은 다시금 번쩍하고 그의 뇌리에 비쳐들었다. 곽두섭은 그 방정맞은 무서운 생각을 떨어버리려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그럴수 없다.)

장군님께서는 점점 더 급하신 걸음으로 걸으시였다. 나무가지들이 새 봄외투자락을 걸어채는것도 무관하시고 길잡이로 앞선 권영벽을 뒤따라 가시며 온몸으로 숲을 와삭와삭 헤치시였다. 그이의 바로 뒤에 선 리동학이 역시 발목이 긁혀 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쁜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기에 모두 이렇게 경황없이 갈가. 어째서, 무슨 일로?)

곽두섭은 더욱더 얄궂게 갈마드는 불안에 가슴을 떨었다.

(아니, 아니다. 그럴수 없다. 그럴수 없다.)

그는 앞을 가로막는 나무가지를 마구 꺾어대며 허둥지둥 뒤따랐다.

가파로운 내리막을 톺아내린 일행은 무릎까지 치는 19도구하를 그냥 신발들을 벗지 않은채로 건넜다. 장군님께서는 봄외투의 아래자락이 강물에 젖어버리는줄도 모르시였다.

다시 가파로운 건너편 산비탈을 톺아오르면서 곽두섭은 틀림없이 자기와 관련된 매우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겼으리라는것을 더욱더 명백히 깨달았다. 어찌하여 장군님께서 부디 자기들만을 찾으시여 갈데가 있다시며 이리로 데리고 오시는가? 하필 어찌하여 꼭 자기들뿐인가? 자기와 오중흡이와 장철구아주머니뿐이다. 철구아주머니는 마안산에 있을 때부터 분옥이와 가깝게 지내던 작식대원이다. 권영벽이와 오중흡이는 전부터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이들이다. 어째서 꼭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들뿐인가?

곽두섭은 더 이상 걸어가기가 겁이 났다. 한걸음 한걸음 길이 축나는것이 두려웠다.

×

그곳에 당도하시는 순간까지도 장군님께서는 그동안 애써 찾으시던 녀전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나마 보실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시였다. 권영벽이 어떻게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으셨건만 어쩐지 그렇게만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권영벽을 뒤따라 당도하신 이깔나무숲속의 공지에는 이미 봉분해올린 하나의 자그마한 무덤이 봉긋하게 솟아있었다.

그리웠던 녀전사의 모습대신 삽자리를 생생히 간직하고있는 하나의 젖은 흙무지를 대하신 장군님께서는 숲가에 멈춰서신채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녀전사는 어데 가고 녀전사가 홀로 누워있다던 여기에 낯선 하나의 흙무지만 솟아있는것인가?

《어디 있소?》

장군님께서는 자꾸만 시선을 끄는 그 낯선 흙무지를 피해 공지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다가 권영벽에게 물으시였다.

《분옥동무가 어디 누워있소?》

이미 녀전사가 하나의 흙무지로 변해버렸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으시여, 당장은 도저히 믿고싶지 않으시여 하시는 물음이였다.

너무도 억이 막혀하시는 장군님앞에서 권영벽은 저기에 안장돼있다는 말씀조차 올리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 얼마나 애써 먼 림강 마의하산골에서 찾아서 곽두섭의 곁에 데려다놓으신 조분옥이였던가? 그가 행복하기를 얼마나 장군님께서 바라오시였던가.

이것을 곽두섭이보다도, 저 무덤속에 누워있는 조분옥이보다도 더 잘 아는 권영벽은 장군님께서 지금 체험하실 비통한 심정이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또한 누구보다 절절히 느끼고있었다.

 한참동안 낯선 흙무지를 지켜보시며 망연히 서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곽두섭의 곁으로 다가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직까지 영문을 모른채 그 어떤 불길한 예감에 잠겨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있는 곽두섭의 한손을 말없이 잡으시고 자신의 봄외투주머니속에서 지금껏 부르쥐고계시던 포금단추를 꺼내시여 그의 손바닥우에 놓아주시였다.

자기의 손바닥우에 놓인, 눈에 익은 단추를 받아본 곽두섭은 일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분옥동무가 우리곁을 떠나 여기 와서 누워있소.… 어제밤에 희생됐소.…》

금시 벼락을 맞고 굳어진듯 멍하니 서있는 곽두섭의 팔을 끼여 잡으시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시여 무덤쪽으로 향하시였다.

곽두섭은 상기도 얼마나 엄청난 불행이 안겨졌는지를 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마냥 약간 허둥거리며 그이께서 이끄시는대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무덤가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곽두섭의 팔을 놓아주시며 가까스로 말씀하시였다.

《분옥동무요. 먼저 만나보오.》

그렇게 알려주시는 장군님 자신께도 그 낯선 흙무지가 조분옥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생소하시였다.

곽두섭은 무덤앞에 채 다가가지 않은채 멈춰서서 잔뜩 의혹과 공포가 서린 눈길로 그 낯선 무덤과 장군님과 권영벽, 오중흡이와 리동학, 장철구를 번갈아보고만 있다가 불시에 온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포금단추를 틀어쥐고있는 주먹을 땅에 박으며 머리를 떨어뜨렸다.

《으흐흐!》

그는 넓다란 잔등판을 흐득흐득 떨며 소리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지켜보며 서계시기 괴로우시여 돌아서 몇걸음 물러나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뜩 장철구아주머니와 마주치시였다.

《장군님!》

그이를 쳐다보는 철구아주머니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있었다.

《분옥이가… 분옥이가… 정말입니까? 정말 저게 분옥입니까?》

《…》

장군님께서는 나이든 작식대원의 두손을 꽉 잡아주시기만 하셨을뿐 아무런 대답도 못하시였다.

장철구는 오열을 터뜨리며 그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장군님께서도 나이든 작식대원의 군복어깨우에 이슬방울들을 떨어뜨리시였다.

혁명의 간고한 길을 헤쳐오신 지난 10여년동안 장군님께서는 수많은 혈육들과 동지들과 전우들을 원쑤놈들에게 빼앗기셨고 그때마다 크나큰 비애를 겪으셨지만 지금 이 시각같은 비통함을 매번 같은 정도로 체험해보신것은 아니였다. 가슴아픈 상실중에서도 조분옥의 희생은 유별스럽게도 가슴을 아프게 긁어내리는 상실이였다. 아마도 그것은 혁명에 말없이 충실해왔던 이 녀전사가 그 충실성에 합당한 응분한 행복을 너무나도 짧게 누린 반면에, 아니 거의 누려보지 못한채 고뇌와 불행만을 거듭 겪다가 가장 행복할수 있게 된 순간을 앞에 두고 떠나버린탓인지도 모른다.

어릴적부터 고생하며 자라왔고 원쑤놈들에게 일곱식구를 다 잃고 혁명에 참가한 이후에도 나쁜놈들에게서 《민생단》으로 몰려 억울한 루명을 쓰고 갖은 수모를 다 당해왔던 조분옥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권영벽에게서 분옥이가 곽두섭이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면서도 그것을 비밀에 붙이지 않으면 안됐던 사연의 이야기를 듣던 일을 잊을수 없으시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기어이 행복한 날을 마련해주고 그들이 혁명의 길에 함께 나란히 서서 자기들의 사랑과 우정을 더 아름답게 꽃피우게 해주시리라 마음먹으시였다. 그래서 멀리 림강의 산속에 가서 외따로 떨어져 지내던 분옥을 찾으시여 곽두섭의 곁에 데려오시였다. 그리고 놈들의 《동기토벌》이나 무찌르고 한숨 돌릴만한 때가 되면 부대가 다 모인 자리에서 그들의 결혼을 선포하고 축하해주며 즐겨주시자고 하시였다. 리창선의 잔치를 서둘러 하게 하시면서도 이들의 결혼선포를 늦구신것은 마음놓고 즐기게 해줄수 있는 때가 되기를 바라신때문이였다. 곽두섭이가 홍두산에서 부상당하지만 않았어도 동강에서 전 부대가 모여 조국진군준비를 갖추며 군정학습을 하던 때에 그렇게 할수 있었을것이였다.

그러나 지금 지내놓고보니 더 좋은 때를 기다리신것이 후회되시였다. 이렇게 될줄 아시였더면 분옥이를 마의하부근산골에서 찾아데려왔을 때 치러주셨더면 가슴이 이토록 아프지는 않으실것 같으시였다.

군모를 벗어드신채 분옥이의 무덤앞에 마주서신 장군님께서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분옥동무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바라오던 력사적인 조국진군이 개시되게 된 뜻깊은 시각을 앞둔 이런 때에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나에게는 조국으로 입고나갈 옷을 마련해주고서도 분옥동무는 원정대와 함께 조국땅으로 나가지 못하고 여기에 홀로 남게 되였습니다. 적탄에 맞아 부상당하여 림강 마의하의 산속에 홀로 떨어졌을 때에도 죽지 않았고 중대를 찾아헤매다가 진펄에 빠지고 마안산의 눈속에 묻혔을 때에도 죽지 않고 억척같이 살아나 우리곁에 왔던 분옥동무가 원쑤놈들앞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것은 우리의 성스러운 혁명위업과 혁명가의 고귀한 삶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원쑤놈들은 분옥동무에게서 우리 사령부의 행처와 행동기도를 비롯해서 권영벽동무와 같은 우리의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정형들에 대해서까지 많은것을 알아내려고 갖은 발악을 다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분옥동무는 끝끝내 혁명가의 지조를 지켜내고 고귀한 삶을 빛나게 마치였습니다. 분옥동무는 비록 우리곁을 떠났으나 그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 그 비밀을 지켜낸 우리의 조국진군과 우리의 혁명위업은 그가 바랐던대로 되고야말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목숨바쳐 지켜준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것을 세상앞에 보여주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분옥동무를 위해서 조총을 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조국땅에 나가 원쑤의 머리우에서 원쑤놈들을 전률시키는 위력한 조총소리를 울릴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숙연히 머리를 숙이시며 눈을 감으시였다.

권영벽이도, 오중흡이도, 리동학이와 장철구도 그이를 뒤따라 모자들을 벗고 애석하게 돌아간 전우를 추모하여 묵상하였다.

침침하게 흐린 하늘에서는 굵은 비방울들이 휘뿌려내리기 시작하였다. 압록강건너의 저 조국땅을 함께 밟지 못하고 조국의 대안땅기슭에 묻힌 녀전사에게 바치는 하늘의 눈물이였는지… 그것은 이 봄의 마지막 비였다.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비방울들은 조분옥의 무덤앞에 말없이 머리숙이고 서있는 사람들의 옷뿐만아니라 마음속까지도 축축히 적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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