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 장
권영벽의 안내를 받아 곰산밀영지에 들어와 이곳 밀영에 있는 귀틀집안마당에서 긴 통나무걸상을 깔고 김일성장군님과 마주앉은 박달은 여전히 자기가 꿈속에서 지내고있는듯 한 착각을 무시로 느끼군 했다. 이곳의 모든것은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것들이였으며 신기한것들이였다. 사람들의 모자에 달린 붉은별도, 그들이 입은 군복도 그들의 춤과 노래들도, 병실귀틀벽에 줄지어 나란히 세워놓은 숱한 총들도, 껍질벗긴 나무들에 씌여져있는 구호들도 심지어는 사령부출판소 책임자라는 나이든 사람의 고불통까지도 모두 처음보는것이였으며 신기한것들이였다. 이 모든 새롭고 신기한것들을 합친 총체적인상으로서 무척 놀랍게 생각되는것은 우리 조선에 그 겉모양새며 갖춤새며 해대는 본때며가 이렇듯 참신하고 위풍당당한 아주 새로운 군대, 얼핏 보기만 해도 기운이 솟고 자부심이 생기는 이런 군대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였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여태 전혀 본적도 없고 상상할수도 없었던 새로운 믿음직한 붉은 혁명군을 그 어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꾸려주었거나 와서 지원해주는것이 아니라 만나뵐수록 시시각각으로 비범하시고 위대하심을 느끼게 되는 푸르청청하게 젊으신 조선의 애국명장 김일성장군님께서 창건하셨고 지도하고계신다는것이 더욱더 놀라왔다. 다름아닌 이 사실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새 발견이였으며 신기한것중에서도 가장 신기한것이였다. 이로 하여 박달은 자기가 현실 아닌 꿈의 세계에 앉아있는것 같은 착각을 느끼군 했으며 그럴 때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실제 꿈속에서도 저렇게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던가, 저같이 눈밟는 뽀득뽀득 소리가 났던가 하고 생각을 더듬어보기도 했고 깔고 앉은 통나무의자를 만지거나 손가까이에 있는 애어린 분비나무잎사귀에 찔리워보면서 꿈속에서도 이렇듯 선명하게 터슬터슬하거나 혹은 따끔따끔한 촉감을 받을수 있었던가를 더듬어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환상적으로 그려왔던 조선인민혁명군 밀영에 실제로 와앉아있으며 또 오매에도 만나뵙고싶어했던 김일성장군님과 자리를 같이하고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확신하고 혼자 실없는 사람처럼 웃군 하였다. 《잠간만 실례하겠습니다. 급히 처리해줘야 할 일이 있어서 얼핏 안에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경위대장이 장군님께 그 무슨 귀속말씀을 올리자 장군님께서는 면담하시던 자리를 뜨시며 박달에게 량해를 구하시였다. 《어서 일을 보십시오.》 저 혼자생각에 잠겨있던 박달은 엉거주춤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황송스럽게 말씀드리였다. 그리고는 그 지휘원과 함께 사령부귀틀집으로 들어가시는 장군님의 뒤모습을 경건한 눈빛으로 바래드렸다. 맑고 청신한 날이다. 가지마다 층층 눈더미들이 무겁게 실려있는 분비나무들사이사이로 해살이 눈부시게 비쳐들었다. 잔등에 짤막한 기병총들을 멘 두명의 단발머리 녀대원이 손에 하나씩 든 하늘색 법랑바께쯔들을 가볍게 흔들거리면서 실개천쪽으로 걸어내려갔다. 흔들거리는 바께쯔에서 인 반사광이 박달의 눈에 비쳐들며 무언지 모를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어린시절에 어쩌다 얻어본 거울쪼각으로 해비침놀이를 할 때에 느끼군 했던, 동심세계의 즐거움같은것이였다. 녀대원들이 내려가고있는 실개천우로는 그물거리는 물안개가 피여올랐다. 역시 까닭모를 희열에 북받쳐 두손을 뻗치며 한껏 기지개를 켜고난 박달은 통나무걸상에서 일어나 몇걸음 오락가락하다가 불등걸이 한쪽으로 몰린 우등불을 손질하였다. 《왜 혼자 있소? 사령관동지께서 어디 가셨소?》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권영벽이다. 그는 박달을 구면친구 대하듯 했다. 《잠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박달은 눈짓으로 귀틀집을 가리켰다. 《어떻소? 아직도 장군님앞에서 몹시 어렵소?》 《첨엔 몹시 어렵던데 인차 풀립디다.》 《그것보, 내가 뭐랬소? 맘 푹 놓으라지 않았소?》 권영벽은 군복바지호주머니에서 가운데를 접은 얄팍한 소책자를 꺼냈다. 《심심할 때 짬짬이 보구려, 동무한테 주자구 〈대통령감〉한테서 하나 얻어넣었는데 깜빡 잊어버릴번 했구만.》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을 등뒤로 받으며 귀틀집안으로 들어갔다. 박달은 접힌데를 펴보았다. 누런 종이로 된 표지에는 아무 장식도 없는 네모테를 두른 한가운데 두겹의 등사글자로 큼직큼직하게 내리박힌 《三.一月刊》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그 왼쪽옆에는 그보다 좀 작은 글씨로 창간호라는것이 밝혀져있었다. 이것 역시 처음 대하는 새로운 잡지다. 표지를 펼친 그는 낯선 이 수수한 등사잡지의 첫페지에 실린 차례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였다. 창간사로부터 시작하여 기사와 론문제목마다 역시 자기가 전혀 모르고있은 새로운 세계의 생활소식들을 담고있는것 같아서 어느것부터 먼저 읽어봤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러다가 그 어떤 야릇한 시샘같은 호기심이 동했던때문인지 공산주의자들과는 전혀 융합될수 없을것 같은 종교거두의 방문소식에 대한 기사가 실린 페지를 펼쳤다.
천도교상급수령 모씨 우리 광복회대표를 친히 방문.
…사령관 김일성동지는… 조국광복회준비회로부터 추대되여 회장의 중책을 량어깨에 지닌후 정예로운 무장대를 직접 지휘하여 현재 림강, 장백내지 서북부 각지를 활무대로 하여 백전백승의 기세로써 일만비적들의 통치를 힘껏 소탕하고 천백만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있는 동시에 전국의 반일운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무를 주고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내외지에 있어서 유력한 대중적기초를 가지고있는 천도교 ××위원 모씨는 끓어넘치는 애국의 열정을 가지고 친히 우리 대표사령 김일성장군을 방문하였다. …전기 모씨는 개인적으로 우리 광복회 강령과 일체 주장에 대하여 찬성을 표시함과 함께 천도교청년당원 백만명을 조선독립전선에 출동시킬 의견을 명시하고 장래 조국광복회와의 보다 굳은 련락을 취할것을 깊이 약속하였다.
무어라 말할수 없는 충격이 가슴에 마쳐왔다. 천도교우두머리가 장군님을 만나뵈려고 찾아오다니?! 이것은 분명 자기의 상식과 평소의 감정과는 어긋나는 일이였다. 그 기사를 멍하니 들여다보고있던 박달은 가까이에서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머리를 들었다. 《혼자 앉아있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있습니까?》 권영벽이와 함께 귀틀집에서 나오신 장군님께서 그의 앞으로 다가오시며 다정한 미소를 보이시였다. 박달은 잡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장군님을 맞이했다. 《권영벽동지가 보라고 준 유격대잡지입니다.》 박달은 표지를 장군님께 뵈여드리며 어줍어하는 태도로 대답을 올렸다. 《〈3.l월간〉이구만. 앉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언덕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권영벽을 일별하시며 통나무걸상에 걸터앉으시였다. 《볼만한게 좀 있는것 같습니까?》 《겉보기엔 아주 수수한데 무척 구미가 동하게 하는 잡집니다.…》 박달은 진심대로 말씀드렸다. 《아직 기사 한건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얼핏 목차만 훑어봐도 전부 제가 모르던 새 소식들과 새로운 지식이 들어차 있는것 같습니다. 하나만 봐두 그렇습니다.》 《뭘 봤습니까?》 《천도교거두가 장군님께로 방문해왔다는 소식입니다. 정말 그런 사람까지 장군님을 찾아왔다니 놀랍기두 하고 별난 생각도 듭니다.》 긴 막대기로 한쪽에 굴러내린 통나무토막을 우등불속에 떠밀어넣으시던 장군님께서는 박달을 넘겨다보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왜 믿어지지 않습니까?》. 《종교쟁이가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을 찾아왔겠는지 해서…》 다시금 막대기를 놀리시던 장군님께서는 재삼 손을 멈추시였다. 《박달동무도 우리한테 오는데 그 사람이라고 왜 우리한테 오지 못하겠습니까?》 《저야 글쎄 공산주의를 신봉해오는 사람이니 그럴밖에 없겠지만…》 그의 말에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소리내여 웃으시며 막대기를 한옆에 눕혀놓으시였다. 《허허, 그건 마치 우리한테 찾아올수 있는 자격자와 무자격자가 있다는 소리같이 되는데 아마 여기 왔던 박인진도정이 박달동무의 그런 말을 들으면 그닥 좋아할것 같지 않습니다.…》 박달은 하마트면 손에 들고있던 《3.l월간》을 떨어뜨릴번 했다. 다름아닌 박인진이라는 말씀에 저윽 놀랐던것이다. 《그럼 여기… 이 기사에 천도교상급수령 모씨라고 한것이… 박인진도정입니까?》 무릎아래로 흘러떨어질번 한 잡지를 움켜쥔 박달은 약간 떠듬거리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박달동무도 그 도정을 알고있습니까?》 《면대하여 말해본적은 없지만 저도 알고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공산주의를 믿지 말고 천도를 믿으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저는 늘 그의 방해를 받아왔습니다.》 《그럼 어지간히 등지고 지내온셈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미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렇습니다. 그는 가까이할수 없고 가까이 하고싶지도 않은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도정과 가까이한것이 잘못으로 되지 않습니까?》 《그가 어떻게 돼서 왔는지를 저는 리해할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있기에는 그 령감이 유격대에 대해서도 뒤에서 좋지 못한 이야기를 돌렸습니다.》 《가령 어떤 이야기말입니까?》 박달은 딱해하며 망설이다가 내친김에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제가 길주경찰서류치장에 갇혔다가 갑산에 돌아와서 장군님유격대와 련계를 지어보자구 여러곳을 돌아다닐 때였는데 가림리의 한 동무가 하는 말이 바로 그 박인진도정이 그곳 천도교신자들과 마을사람들앞에서 유격대는 죄없는 애국지사도 함부로 붙잡아가고 돈과 재물을 내라고 강박한다고 악선전하더라는것입니다. 저는 방금 장군님께서 만나신 천도교상급수령 모씨가 박인진이란 말씀을 듣자 그가 찾아들어온데는 의심스러운 음험한 다른 목적이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너무 솔직히 말씀드리는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너그러운 웃음을 띠우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니 박달동무는 그 박인진도정이 우리의 비밀을 내탐해다가 적들에게 알리려는 내속을 가지고왔는지도 모른다는겁니까?》 박달은 대답에 앞서 외람된 말씀을 아뢰게 되여 미안한듯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장군님께서도 이미 잘 아시겠지만 최린을 비롯한 천도교쟁이들은 다 왜놈의 개로 변질된지 오랩니다. 그자들은 벌써 오래전에 우리 겨레의 량심을 팔아먹은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박달의 눈빛에서 타오르는 증오를 보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도 없이 그를 심중히 건너다보시더니 가벼이 머리를 끄덕이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등불 한쪽옆에 무져있던 절반씩 빠갠 통나무장작무지에서 장작 몇가치를 들어다 불우에 얹으시였다. 《최린을 비롯한 천도교상층의 부패변질이 어느정도라는건 나도 알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가벼이 손을 터시고 우등불주변에서 천천히 거니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러나 천도교인 전체를 최린이와 같은 매국반역의 무리로 봐서는 안됩니다. 천도교상층과는 달리 대부분의 하층교도들은 가난한 농민군중들입니다. 지방천도교도들의 지도적인물가운데도 민족적량심과 애국심을 간직하고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것을 갈라보지 않고 천도교를 믿는 사람이라 하여 모두 최린이와 같은자들로 인정한다면, 그래서 그들을 배척한다면 우리는 적지 않은 가난한 농민군중과 애국적인 교인들을 잃어버릴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를 믿는다는 그 단 한가지 리유로 해서 이 사람들을 밀어내고 좀 괜찮게 산다고 해서 저 사람들을 밀어내고 왜놈들의 심부름이나 듣고 그놈들이 주는 배급이나 타먹는다고 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는 식으로 다 멀리 하면 혁명을 할 사람이 몇이나 남겠습니까? 박달동무가 생각하는것처럼 몇몇 사람을 가지고 과연 조선독립을 시킬수 있으며 앞으로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해낼수 있겠습니까? 혁명이란 대중을 위해 하는 사업인만큼 대중이 나서야 승리를 거둘수 있습니다. 한사람의 대중이라도 전취해서 혁명력량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혁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킬수 없습니다. 한사람이라도 더 얻자면 사람들을 그 어떤 편견에 의해 한색갈로 보고 한본새로 대하지 말고 사람을 하나씩하나씩 따로따로 보고 평가하고 대해야 합니다. 박인진도정을 봅시다. 물론 박달동무가 말한것처럼 그 도정은 우리 유격대에 대해서 곡해하고 나쁜 선전도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였기때문이 아니라 적의 악선전과 우리에 대한 몰리해때문에 그렇게 된것입니다. 그에게는 많은 제한성이 있지만 왜적을 미워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변함없는 마음이 있으며 조국광복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좋게 보고 그가 우리의 적극적인 지지자, 동정자로 되게 함으로써 그의 영향밑에 있는 수많은 가난한 농민군중을 조국광복회조직에 망라시킬것을 결심하고 그와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박인진도정과의 사업을 어떻게 하여왔으며 그가 마침내 어떻게 장군님께까지 찾아오게 되였으며 또한 밀영에 와서는 어떤 자세와 립장에 서게 되였는가를 자상히 말씀해주시였다. 《…결국 지난달까지만 해도 우리에 대해 악선전을 하던 그 도정이 여기서 내려간후에 어떻게 되였습니까? 17도구를 비롯한 장백각지와 풍산지구를 비롯한 령북의 여러 지방의 천도교도들중에서 벌써 많은 사람들이 박인진도정을 뒤따라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되였고 여러 광복회 하부조직들이 생겨났습니다. 뿐만아니라 박인진도정은 전국의 천도교도들이 부패변질된 천도교중앙상층과 결별하고 조국광복회의 기치를 따르게 할 결심으로 우리의 정치공작원과 함께 지금 서울에 올라가있습니다.…》 지난날 도저히 자기들과는 융합될수 없는 적대적인 인물로 간주하고 배척했던 박인진도정이 이미 자기보다 많은 일을 했고 훨씬 크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장군님의 믿음직한 보좌인물로 된 사실앞에서 박달은 지금껏 자기의 그릇된 편견과 좁은 소견이 자기자신을 얼마나 심하게 결박했고 또 자기자신에게서 얼마나 많은 활동공간을 빼앗았던가를 깨달았다. 박인진의 실례를 드시고 자기를 깨우쳐주시는 장군님의 말씀은 너무나 사리정연하고 설득력있고 너무나 정당하셨기때문에 알고 보면 그토록 옳은것을 모르고있었다는것은 부끄러운 일이였고 가슴아픈 일이였다. 그러나 박달은 부끄러움대신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별세계를 발견하기라도 한것 같은 환희를 느끼며 벌쭉벌쭉 웃었다. 더우기 장군님께서 지난 시기의 모든 광복운동과 공산주의운동이 바로 근로인민대중과 유리되여 진행된탓으로 실패를 면치 못했다는 심각한 력사적교훈을 명철하게 찍어 밝혀주실 때 그는 너무 기뻐서 안절부절못하며 두손으로 자꾸만 무릎을 어루만졌다.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라는 장군님의 그 말씀 또한 어디서도 못들었고 어떤 책에서도 못보았던 전혀 새로운 명제였던것이다. 마음의 눈이 트인 그는 한층 더 새로운 눈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장군님께서는 어디에서 이런 비범한 혜안과 비범한 사고를 얻으셨을가 하는 왕청같은 생각에 자주 빠져들군 하였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보니 언젠가 리제순동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만 눈이 트이는것 같습니다. 보미끼였던것이 활 벗어지고 뿌옇기만 하던 눈앞이 환해진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 화제가 끝났을 때 박달은 두손으로 앞이 쭉 열려지는 시늉까지 해가며 마냥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런 기회에 제 장군님한테서 꼭 알아보고싶은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전령병이 법랑고뿌 두개를 쟁반에 받쳐들고 와서 통나무걸상의 한끝에 올려놓고 우등불우에서 끓고있던 주전자의 물을 따라놓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물고뿌를 드시고 김을 부시던 장군님께서는 물고뿌를 내리우시며 무엇인지 주저하지 말고 어서 말하라고 선선히 응하시였다. 《다름이 아니라…》 박달은 또 벌쭉 웃으며 비위좋게 운을 뗐다. 《조선의 무산혁명을 수행하자면 아무래도 혁명의 전위대인 당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옳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엄숙하게 수긍하시였다. 《조선에 당이 나오자면 국제당에서 내와도 좋다는 비준을 내려야 하겠는데 그런 비준을 받자면 유격대에 국제당에서 나와 주재하는 사람이 있는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장군님께 묻고싶은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국제당의 주재원이나 파견원같은 사람이 없는 형편에서 앞으로 유격대가 주동이 돼서 새로운 조선당을 창건하자면 국제당과의 련계와 비준문제를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하시겠는지, 현재는 어떤 식으로 어느만큼 련계되여있는지 또 언제쯤 비준받아 당을 내오게 되겠는지… 전망이겠습니다. 이런것들을 알고싶습니다.》 장군님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비끼시였다. 그이께서는 약간 미안해하시는듯 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유감스럽게도 그점에 대해서는 박달동무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대답을 줄수 없습니다. 당창건을 위한 국제당의 비준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나는 전혀 머리를 써본적이 없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던 박달은 다시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당창건을 위한 국제당의 비준문제를 생각해보신적이 없으시다니?! 조선에 새로운 당을 내오기를 바라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그에 대하여 생각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장군님께서 그에 대해 생각해보신적이 없으시다면 과연 장군님은 공산주의와는 무관계한분이신가? 세상에는 《조선공산군》사령관으로 알려지고계시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공산주의와는 인연이 없으신 순수한 애국명장, 애국위인이신가? 이런 종잡을수 없는 의혹이 박달의 머리속에 소용돌이쳤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마 국제당의 비준을 매우 절박하고 절실한 필요불가결의 사활적인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야 할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가슴을 앓고 머리를 쓰는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박달은 얼핏 마천령초막에서 만났던 피신객들이 생각났다. 《제가 갑산공작위원회라는것을 만들어낸 이후에 어떻게 그것을 이끌고 나가고 어떻게 투쟁해야 될지 막막해서 경험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닌 일이 있습니다. 그때 마천령의 무인지경 깊은 산속에서 지난날 공산주의운동이나 적색농조, 로조운동들에 관계했다가 거기 피신해와서 숨어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 내와야 할 새로운 당조직을 국제당의 비준에 이르게까지 하는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하는걸 가지구 서로 끊임없는 열렬한 론쟁을 하였습니다. 당을 먼저 조직하고 국제당의 비준에 제기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지금 형편에서는 대중단체를 먼저 조직하고 그후에 당을 조직하고 국제당의 비준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대체로 그런 두가지 견해를 가지고 옥신각신이였는데 양보가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한옆으로 약간 기웃하시였다. 《내가 듣기에는 그 량측 견해에 별다른 차이는 있는것 같지 않은데 그렇게 옥신각신할게 있습니까. 당을 먼저 내와야 한다는 견해나 군중단체를 먼저 조직하고 당을 내오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나 결국 국제당의 비준을 받아야 당이 자기의 존재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는데서는 일치하는것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무우를 먹어야 하겠는데 대가리쪽부터 먹어야 하겠는가 꼬리쪽부터 먹어야 하겠는가 하는 차이뿐이지 어쨌든 국제당에서 먹으라고 한 다음에야 먹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같지 않은가말입니다?》 새삼스럽게 언듯 그이를 쳐다보는 박달의 눈에 불꽃이 튀였다. 《장군님께서는 신통히 그 사람들을 만나신것 같이 말씀하십니다!》 박달은 온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바로 그 사람들은 감자를 먹다가 그런 식의 말다툼까지 했습니다. 감자를 구워먹는게 좋은가, 삶아먹는게 몸에 좋은가 그 따위걸 가지구 몇마디 왔다갔다하더니 또 당을 먼저 내와야 한다거니 군중단체를 먼저 내와야 한다거니 하는데루 번지질 않겠습니까. 아주 하치않은 문제를 가지구두 서로 의합이 안되기때문에 그렇게 피대를 세우고 옥신각신이였습니다.》 《그것 참 별난사람들입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떠한 론거를 가지구 그렇게 눈만 뜨면 피대를 돋구는겁니까? 어디 좀 자세히 들어봅시다.》 박달은 장군님앞에 거기서 자기가 이틀동안 묵으며 보고 들은 정형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어딘가 구슬프고 어두운 빛이 어린 안색으로 시종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시였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마침내 박달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장군님께서는 통나무걸상에서 일어나시며 량팔을 가슴에 결어얹으시였다. 《나는 듣고도 그게 무슨 리론인지 통 모르겠습니다. 리론같지도 않은 소리들입니다. 그게 어디 맑스주의를 알고 레닌주의를 알고들 하는 소립니까, 그래도 공산주의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그이께서는 혼자말씀처럼 외우시며 먼 남쪽하늘가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그리고 한참동안 서계시였다. 고요하던 밀영지에 한줄기 바람이 나무우듬지들을 가볍게 스치며 지나갔다. 《초막에 들어앉아 그런 리론같지 않는 허튼소리들이나 하며 공담만 벌려서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돌아서시며 다시 말씀을 꺼내시였다. 《그런 공담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합니다. 실천행동이 필요합니다. 혁명을 하겠다는 각오와 열망을 가지고 혁명을 하자고 달라붙으면, 현실로 육박해들어가면 현실이 무엇을 내와야 하는가를 깨우쳐줄게 아닙니까?…》 어느덧 그이께서는 가슴에서 풀어내신 두손으로 전진하고 육박하는 형용을 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문제는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조선독립과 조선무산대중의 해방을 위하여 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싸우자고 보면 조직이 있어야 할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가운데 당원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단 셋이라도 있다고 하면 당소조를 조직할수 있을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 먼저 반제동맹이라든지 로농동맹같은 동맹소조를 조직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런데서는 동맹조직을 먼저 뭇고 그 조직에서 투쟁을 통해 단련되고 검열되고 성장한 핵심들을 추려가지고 차츰 당소조를 내올수도 있습니다. 실정에 따라 이렇게 조직할수도 있고 저렇게 조직할수도 있는데 무엇이 신비한것이 있다고 공담으로 싸움질이나 하겠습니까. 쓸데없는 파싸움을 하면서 아까운 정열과 시간들만 허무하게 내버리고있습니다. 혁명할 생각이 있으면 박달동무처럼 무슨 조직이나 내오는데 착수해야 할게 아닙니까. 갑산공작위원회라는것은 당조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조직이 아니지만 그 조직으로 혁명을 해보자고 하는게 아닙니까. 혁명을 하자고 그런 조직이라도 만들지 않았습니까?》 박달은 진땀이 나도록 마음이 송구해지는 가운데서도 또 역시 아까와 같이 온몸이 둥 떠오르는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보잘것 없는 자기같은 사람에게도 공담질만 일삼는 파싸움군들한테 하나의 교훈으로 될수 있는 작은 싹이나마 있었다는것을 알게 된 지금 그는 진리는 이렇듯 가까운데 있었구나 하는 장쾌한 느낌에 휩싸였던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실정에 맞게 빨리든 혹은 늦게든 내오게 될 당조직을 어떻게 국제당의 비준을 받은 인정된 존재로 만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수수께끼여서 박달은 그 문제를 재삼 상기하게 되자 약간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바로 이런 그의 마음속을 제때에 들여다보시기나 하신듯 장군님께서는 아까 있었던 그의 질문에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당창건을 위한 국제당의 비준문제에 대해서 그 사람들도 그렇고 박달동무도 그렇고 매우 관심이 많은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공연한데다 너무 머리를 쓰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이 문제를 박달동무가 일부러 중대한 문제로 상정하고 물은만큼 나는 이에 대해 박달동무에게 좀 알아보고싶은것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다시금 자리에 와 앉으시며 정색하여 물으시는바람에 박달은 저윽 긴장감을 느꼈다. 《네,무엇인지?》 그는 두손을 무릎에 얹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맑스가 공산당을 처음으로 창건할 때에 누구에게서 공산당을 조직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는가 하는것입니다.》 뜻밖의 물으심이였다. 말문이 막힌 박달은 당황한 눈길로 이쪽저쪽 헛눈을 팔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산과 숲과 집과 눈과 고드름들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대답올릴 말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된 박달은 장군님께 그저 헤식은 웃음만 보여드렸다. 《다른걸 한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박달이 당황해하는 양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을 다시 건네시였다. 《박달동무는 갑산공작위원회라는 조직을 무을 때 어느 누구에게서 승인을 받았습니까?》 《네?!》 어망결에 박달은 눈을 크게 뜨며 궁둥이를 약간 들었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생각지 않았던 함정에 갑자기 쑥 빠져든것 같은 심정이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그 누구의 승인이 없이는 당을 창건하지 못할것 같습니까?》 장군님의 이 말씀은 마치 자기를 함정속에서 끌어내주시기 위하여 내려뻗쳐주신 은혜로운 손길처럼 안겨왔다. 《박달동무는 그 누구의 승인이나 비준을 받고 조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무의 승인도 받지 않고 조직을 만들었고 그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그 조직은 존재했습니다. 당을 만드는것도 그렇습니다. 그 누구의 승인이나 비준에 관계치 말고 우리스스로 당을 만들면 당이 생기는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더러 조선에서 당을 창건하라 하지 말아라 하고 명령하거나 지시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선당을 만들고싶어서 만들어놓으면 그 누가 승인하든 말든 우리의 당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은 지구가 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득한 옛날부터 돌고있었던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동설을 인정하기전에도 지구는 돌고있었습니다. 지구는 자전하며 공전한다는것을 인정하든 안하든 계속 돌았고 또 계속 돌기때문에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결국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국제당이 승인하든 안하든 스스로 당을 조직하고 이렇게 조직한 당이 혁명투쟁을 잘 수행해나간다면 국제당은 자연히 따라다니면서 승인하자고 할것입니다.》 빠져나갈길 없던 함정속에서 구원의 이끄심을 받아 탁 트인 대지우에 올라서서 푸른 하늘과 눈부신 태양을 가슴에 안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다름아닌 이 순간의 박달이와 같았을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로운 태양을 우러러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는 박달의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쿵쿵 환희의 북소리를 울렸다. 그 북소리와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는 만세의 환성이 귀가 멍멍하도록 솟구쳐올랐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그는 장군님앞에 깊이 머리를 숙였다. 이것은 1936년이 저물어가던 그해 12월 25일에 있은 일이였다.
1937년 새해가 밝아왔다. 그것은 송구영신의 감회를 자아낼만 한 아무 유별한 자연의 혜택도 따로 없이 범상하게 시작된 새해였다. 신년축하엽서에 흔히 그려지군 하는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주는 백설의 꽃보라도 없었고 하늘땅을 뒤덮는 장엄한 눈보라도 없었고 대원시림이 들려주는 장중한 자연교향악도 없었고 빛나고 장쾌한 아침도 황홀하고 장려한 노을도 없었다. 섣달그믐날과 마찬가지로 아무 특징도 없이 지극히 평범한 여느날같이 시작된 새해여서 이 1937년에 삼천리강토를 들썩하게 하고 세계만방을 뒤흔들어놓는 거대한 사변이, 당시대의 신문들이 특간호들을 찍어 뿌리고 력사가들이 현대조선사의 페지에 대문자로 특기하고 후세의 조각가들과 건축가들로 하여금 만대에 길이 전할 기념탑을 높이 세우지 않을수 없게 한 위대한 사변이 일어나리라는 자연의 조짐은 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례사롭게 시작된 이해에 자기들의 운명과 조선의 운명이 달라지고 력사의 흐름도 달라지게 되리라는것을 깨우쳐주는 장쾌한 뢰성벽력이 자기들의 머리우에서 삼천리강산을 진감하게 되리라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것을 알고계신분은 오직 김일성장군님 한분뿐이시였다. 조국으로 진군하기 위하여 백두산에 나오시였고 조국으로 진군할 가장 적당한 시기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이곳 소백수골의 백두산밀영지에 자리를 정하신 다음 지난 몇달동안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로고를 기울여오신 장군님이시였다. 새해에 잡히면서 력사적인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에 의한 국내작전준비는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 오래지 않아 치르게 될 그 거사를 준비있게 맞이하며 북부국경일대에 꾸려지고있는 《우리 세상》을 튼튼히 하고 나아가서 함경산줄기와 랑림산줄기를 타고 나가면서 조선반도의 깊이까지 넓혀나가도록 하시기 위하여 장군님께서는 범상하게 시작된 1937년 새해의 벽두에도 범상치 않은 각가지 비밀사업들을 포치하시였다. 정초의 그날은 백두산밀영지의 겨울날치고는 드물게 맞다들린 온화하고 잠풍한 날씨여서 유격대원들은 바깥으로 손저어 불러내는 날씨의 유혹에 못견뎌 야외훈련장으로 쓰군 하는 공지에 쓸어 나와 실내상학의 휴식시간을 즐기고있었다. 두리에 눈이 한길도 넘게 쌓인 공지복판에서는 녀대원들과 남대원들이 어울려 돌아가며 춤을 추고 공지가 비좁아 춤판에 끼여 들지 못한 사람들은 공지가생이에 빙 둘러서서 박장을 치며 노래를 불러주거나 하모니카반주를 해주었다. 곽두섭중대장이 단장이 되여 조직한 《금연단》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축들은 뒤에 멀찍이 물러들서서 실내상학을 하는동안 참고 참아왔던 담배의 쓰겁고도 향긋한 맛을 보면서 취한듯 한 눈으로 잘 놀아대는 춤군들을 구경하고있었다. 비록 스스로 단장이 되여 《금연단》을 조직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담배연기만 맡으면 생리적고통을 느끼군 하는 곽두섭중대장은 얄밉게도 자기를 괴롭히는 향긋한 담배냄새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하여 일부러 춤판에 뛰여들어 나무장대같이 꿋꿋한 다리를 건득건득 들었다내리며 꺼꺼부정해서 돌아갔다. 노래박자에 맞지도 않고 볼품도 전혀 없는 그의 엉터리춤이 오히려 가관이여서 한다 하는 춤군들마저 자리를 비켜서서 박장대소하며 좋아들 했다. 춤판이나 노래판이 벌어지면 의례히 앞장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라명희도 한바탕 춤추며 돌아가다가 춤판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보따지》경위대장의 부름을 받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춤판에서 나온 라명희에게 리동학경위대장은 귀속말로 일렀다. 《사령부에 올라가오. 사령관동지께서 동무를 찾으시오.》 무표정한 얼굴로 극히 실무적으로 재빨리 말하는 경위대장의 눈을 쳐다보아서는 장군님께서 무슨 일로 갑작스럽게 자기를 부르시는지 기미를 챌수 없었다. 라명희는 자기 신상에 얼마나 중요하고 거대한 변화가 생기게 되는지를 짐작도 못한채 이마에 함함이 돋은 땀방울을 씻으며 사령부귀틀집으로 올라갔다. 그는 언제인가 장철구아주머니에게 해입히실 새 옷감을 택하실 때처럼 장군님께서 그 어떤 문제를 놓고 녀대원들의 견해를 들어보시려고 찾으시는줄로나 여겼다. 《한참 흥이 나게 춤추던 동무를 불러서 안됐소. 어서 여기 안쪽으로 들어와 앉소.》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김을 몰몰 날리며 사령부귀틀집출입문안에 들어선 라명희에게 장군님께서 미안쩍은듯이 말씀하시였다. 금방 춤추고난 덕에 장미빛열기가 오른 라명희의 눈부시게 어여쁜 용모는 너무 살갗이 해맑아 약간 창백할사하게 보이던 여느때보다 한결 진한 건강미를 보이고있었다. 눈더미에서 반사되는 해빛이 눈을 시게 하는 바깥에서 갑자기 어둑시근한 사령부귀틀집안에 들어선 라명희는 장군님외에도 또 한사람이 안구석쪽에 앉아있는것을 어렴풋하게 가려냈지만 그가 누구인줄은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뙤창의 어둑스레한 조명에 눈이 익혀진 다음에야 그 구석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이 즈음에도 여전히 좀처럼 보기드문 다름아닌 권영벽이라는것을 알았다. 《안쪽으로 들어오라는데 왜 쭈밋거리며 그냥 거기 서있소? 명희동무도 수집음을 탈 때가 있구만. 어서 여기 가까이 와 앉소.》 웃음절반으로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이였다. 라명희는 귀틀벽밑에 있는, 다리를 집안바닥에 그루박아 고정시킨 긴 통나무걸상의 한끝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장군님께서 웃음어린 말씀을 하셨지만 집안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떠돌고있었다. 라명희는 자기가 들어오기전에 장군님과 권영벽사이에 무엇인가 심각한 이야기가 있은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장군님께서는 얌전히 머리숙이고 앉은 라명희의 단정한 모습을 이윽히 지켜보시였다. 라명희는 붉어진 얼굴을 깊이 숙이고 앉아 긴 통나무걸상가생이의 껍질을 공연히 손톱눈으로 긁어냈다. 《동무네 곽두섭중대장은 명희동무의 녀성적인 우점을 스무가지도나마 들질 않겠소? 내 그래서 명희동무가 얼마나 녀성적인가 하는걸 한번 시험쳐보자구 명희동무를 찾았소.》 여전히 웃음속에 하시는 말씀이였지만 라명희는 저윽 긴장감을 느꼈다. 아직 무슨 까닭으로 자기를 찾으셨는지 알수 없었지만 정말로 녀성으로서 망신스러운 그 어떤 처지에 빠지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든것이다. 《자, 그럼 내가 몇가지만 좀 물어봅시다. 망신스럽더라도 대답은 어디까지나 솔직하고 진실해야 하겠소. 명희동무는 물동이를 이는 법을 잊지 않았소?》 정말로 녀성의 자질과 관련되는 그 새삼스러운 물으심에 라명희는 어쨌으면 좋을지를 몰라하며 눈길을 들었다. 하지만 자기를 건너다보시는 장군님의 부드럽고 자애에 넘친 시선에서 진지한 대답을 바라시는 그이의 뜻을 읽은 명희는 유격투쟁에 참가하기전까지는 늘 이였지만 그후에는 거의나 물동이를 이여보지 못했다는 대답을 올렸다. 《인민들의 마을에 들었을 때 더러 이여보지 않았소?》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물으시였다. 《이여봤는데 너무 오래 돼서 잘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가 여기서 이여보라면 자신이 없겠소?》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대덕수마을에 들렸을 때 주인집 물을 길어주려고 오래간만에 물동이를 이고 나갔다가… 깨뜨린 일이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또 망신을 당할가봐 어느 마을에 가서도 물을 길어다주려구 물동이를 이고 나서지 못했습니다.》 라명희는 솔직히 말씀드렸다. 《아, 그런 일도 있었댔소? 그럼 그 문제에 대해선 령점을 매겨야겠구만.》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뒤켠에 앉아있는 권영벽을 돌아보시며 소리내여 웃으시더니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녀인네들이 웃어른앞에 절을 올리는 법은 알고있소?》 《네.》 《주민지구에 갔을 때 로인들에게 절을 올려봤지?》 《올려봤습니다.》 라명희는 대답을 올리면서도 내내 어째서 오늘은 장군님께서 전에없이 이런 왕청같은 새삼스러운 물으심만 하실가 하고 이상스럽게 생각했다. 《그건 됐구만. 우선 인사법을 안다는게 중요하오.》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며 또다시 권영벽이쪽을 돌아보시였다. 《사람과의 사업은 우선 인사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이니… 물동이는 그 다음에 이게 될거구.》 장군님께서는 혼자말씀처럼 외우시였다. 《네, 그렇습니다.》 내내 말없이 앉아 그 무슨 책인가 들여다보고있던 권영벽이가 낮은 음성으로 침착하게 대답을 올렸다. 그리고는 라명희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다시 자기가 보고있던 책장에 눈길을 떨어뜨렸다. 아마도 그는 장군님께서 라명희를 무슨 일로 찾으셨는지를 잘 알고있는듯 했다. 그러면서도 라명희에게 그 어떤 시선의 암시도 주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아던정보던정은 어데로 갔는지 알수 없달만치 너무나도 매정스러운 오빠였다. 라명희는 장군님의 웃음기어린 물으심과 권영벽이한테 하시는 앞뒤를 가늠할수 없는 토막말씀들이 무언가 범상치 않은 깊은 뜻을 가지고있음을 감촉하자 저으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명희동무!》 마침내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지으셨던 미소를 거두시며 정색하신 표정으로 그를 건너다보시였다. 라명희는 통나무걸상을 어루만지고있던 두손을 슬며시 무릎우에 얹으며 걸상 한 귀퉁이에 새까맣게 태운 자리를 낸 담배불자국에 떨어뜨리고있던 시선을 들어 장군님을 쳐다보았다. 《사령부에서는 명희동무에게 중요한 새로운 과업을 맡기기로 결정했소.》 그 말씀이 떨어지자 라명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다시 자리에 앉히시고나서 말씀을 이으셨다. 《오늘부터 동무는 부대를 떠나서 적후공작임무를 수행해야 하겠소.》 라명희는 후끈후끈하게 달아있었던 온몸이 일시에 서늘하게 식어들며 심장이 쩌릿해지는듯 한 느낌이 들었다. 일시나마 장군님께서 계시고 권영벽이가 있고 다정한 전우들이 있는 밀영을 떠나게 된 서운함과 위험한 적후공작을 수행하게 되였다는 의식으로부터 자연히 우러나오는 그 어떤 순간적긴장감때문이였다. 웬일인지 이 순간 라명희는 얼핏 권영벽이쪽으로 시선이 갔다. 때마침 권영벽은 눈으로 읽고있던 책장을 번지고있었다. 책에 열중한것인지 혹은 책에 열중한척하고있는것인지 반쯤 숙이고있는 두드러진 넓은 이마만을 보아서는 알아챌수 없었다. 《새로운 과업을 영예롭게 접수하고 신임에 보답하겠습니다.》 라명희는 주저없이 선뜻 일어나서 활달하게 자기 결심을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하지만 권영벽은 그냥 책에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라명희쪽에 아무러한 주의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씨원스럽게 대답해주어 고맙소. 앉소, 앉아서 듣소.》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대견하게 웃으시며 자리에 앉으라고 가벼이 손짓하셨다. 《명희동무의 그 씨원한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놓이오. 일시 군복을 벗고 부대곁을 떠나가는게 좀 섭섭할거요. 명희동무가 없어지면 부대에서도 특히 오락회때마다 좀 심심해지겠지. 아마 중대에서는 명희동무가 적후공작을 내려가게 되는줄 알게 되면 다른 녀동무를 바꿔보내자고들 할는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이 공작에는 꼭 라명희동무가 필요하니 수고해줘야겠소.》 장군님께서 친히 라명희에게 과업을 주신적은 한번도 없으시였다. 라명희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자기가 받게 되는 과업이 얼마나 무겁고 중대한것인가를 가슴깊이 느꼈다. 《제가 장군님께서 신임해주시는대로 과업을 감당해내겠는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충성을 다해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 《그렇게 성실한 각오만 가지면 감당키는 어렵지 않을거요. 벗들에게는 허심탄회하고 성실할수록 훌륭하고 현명한 처사로 되지만 원쑤들에게는 자기를 잘 감추면서 능숙히 기만할수록 현명한 처사로 된다는 점만 명심하면 동무의 몫은 랑패없이 실행할수 있소.》 그렇게 고무적으로 타일러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 출입문앞으로 바삐 달려오는 신발소리가 들린것이다. 손기척소리도 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선것은 전령병 봉길이였다. 사령부귀틀집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것을 본 그는 문앞에 멈춰선채 밑도끝도없이 준비가 다 되였답니다 하는 외마디 보고를 장군님께 올렸다. 장군님께서는 알겠다시며 그더러 춤판에 나가 하모니카나 불라고 이르시였다. 빠득거리는 전령병의 눈밟는 소리가 출입문밖에서 멀어지자 장군님께서는 마침내 명희가 가슴조이며 기다리고있던 새로운 과업의 내용을 말씀해주시였다. 《명희동무도 이제는 좀 알아야 될 때가 됐기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지금 장백과 북부국경지대에는 조국광복회망이 이미 널리 펼쳐졌소. 장백에는 벌써 상당히 많은 마을들에 조국광복회조직이 생겨났고 그것이 더욱더 확대되여가고있소. 얼마전에 우리 밀영에 왔다간 박달동무는 갑산으로 돌아가자마자 자작조직이였던 〈갑산공작위원회〉를 〈조선민족해방동맹〉이라는 명칭밑에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으로 개편하고 국내에 우리의 조직망을 넓히기 시작했소. 박달동무보다 좀 앞서서 역시 여기에 왔다간 박인진도정은 우리의 정치공작원들과의 련계밑에 장백지대와 풍산을 비롯한 령북일대의 천도교인들속에 조국광복회조직들을 내오고 그것을 넓혀나갈뿐아니라 전국의 천도교인들을 반역적이고 반동적인 천도교중앙상층의 영향으로부터 떼여내여 조국광복회의 기치밑에 돌려세워놓기 위한 대담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벌리고있소. 이밖에도 국내 각지에서 조국광복회운동이 활발하게 번져나가고있소. 그런데 지금 장백의 리제순동무도 그렇고 천도교의 박인진도정도 그렇고 갑산의 박달동무도 그렇고 사업을 점점 더 거창하게 벌려나감에 따라 우리 사령부의 의도를 제때에 알려주고 지도를 줄 사람을 자기들옆에 보내달라고 제기들을 해왔소.…》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요구를 고려하여 장백과 국내의 혁명조직들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할수 있는 지하공작의 중심거점을 설정하기로 하였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앞으로 변화되게 될 새로운 정세의 요구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제 얼마후에 사령부는 주력부대를 거느리고 당분간 적들의 주목을 다시 무송쪽으로 끌고가면서 장백과 국내의 북부국경일대를 비워놓자고 하오. 장백과 북부국경지대에 널리 뿌리박기 시작한 혁명조직들이 적의 주목이 다른데로 돌려진동안 튼튼히 자라게 하기 위해서요. 이것은 올해에 있을 국내작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요…》 장군님께서는 사령부가 주력부대를 이끌고 무송쪽으로 당분간 이동하는것이 앞날의 국내작전에 어떻게 이바지되는가에 대하여서도 간단히 설명해주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령부가 당분간 무송쪽으로 가있는동안 압록강연안에 남아 활동하게 될 동무들은 조국광복회 조직확대사업을 우리 사령부의 의도대로 지도방조하면서 조국광복회 장백현위원회를 결성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장백현당위원회도 결성해야 하오. 박달동무가 왔을 때 조직한 국내당공작위원회의 활동을 적극 강화해서 국내에 당조직들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도 적극 밀고나가야 하고… 이런 사업과 함께 지하혁명조직들을 발동시켜 국내작전을 위한 물질적준비, 말하자면 원정대성원들이 입을 군복감, 신발, 식량을 비롯한 일체 준비를 갖춰놔야 하오…》 명희의 마음을 더없이 황홀하게 하는 이런 말씀을 한동안 해주신끝에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중요사업을 위해서 바로 그도 당분간 부대에서 떨어지게 된다는것을 이야기해주시였다. 그리고 드디여 어떤 형식으로 적후에 침투하게 되는지를 알려주시였다. 《라명희동무는 권영벽동무와 함께 부부로 가장하고 적후에 가게 되오. 그런만큼 이제 밀영을 떠난 시각부터는 동무의 일거일동이 김수남이라는 품팔이군으로 변신되는 권영벽동무의 새색시처럼 보이도록 만전을 기해야겠소. 말을 하거나 물을 긷거나 걸음을 걷거나 방아를 찧거나 물건을 사거나 무엇을 하든 유격대에서 나간 사람의 티가 나지 않게 해야 하오. 알겠소?》 라명희는 귀바퀴까지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진 얼굴을 쳐들지 못하였다. 여직껏 그렇게도 떳떳하고 당돌하게 쳐다볼수 있었던 권영벽을 그는 곁눈질로 훔쳐볼수도 없었다. 울기가 오르고 귀가 멍멍해져서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씀도 제대로 잘 들리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장백과 국내의 조국광복회망에 하달되는 사령부의 지령이 대부분 그들의 《집》을 거치게 되리라는것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업내용과 공작방법에 대해서는 권영벽이가 아니 이 시각부터 《한집사람》이 된 김수남이가 공작지로 가면서 혹은 장래에 같이 손잡고 사업해나가는 과정에 필요한 정도로 가르쳐주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활달하고 씨원씨원한 라명희였지만 그는 장군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그 각별한 신임과 무겁고 영예로운 과업을 안겨주신 배려에 감사의 말씀을 변변히 올리지도 못한채 사령부귀틀집에서 물러나왔다. 그는 외진 숲속에 들어가서 몇번이나 눈세수질로 마냥 달아있는 얼굴을 식히며 오래도록 혼자 있었다. 그날 오후 라명희는 권영벽이와 함께 정든 백두산밀영을 떠났다. 라명희는 자기가 길혜선철도부설공사장에서 일하던 《김수남의 안해》로 되였다는 사실외에는 아직은 모르고있는것이 너무나 많았다. 아직은 자기들과 같은 특수임무를 받은 동무들이 자기들에 뒤이어 국내와 장백의 각지에 얼마나 많이 파견되여나갔는가 하는것도 아직은 국내 북부국경지대와 장백일대에 얼마나 조밀한 조국광복회망이 뒤덮여지고있는가 하는것도 다는 알지 못하였으며 《자기들의 집》이 압록강이 굽이치는 넓은 량안에 그 얼마나 굳건한 《우리 세상》을 꾸리고 백두산줄기와 함경산줄기와 랑림산줄기를 타고넘어 저 멀리 조국땅 깊은곳까지 그 《우리 세상》을 얼마나 넓게 펼쳐나가게 되는지도 잘 알지 못하였다. 보천보의 밤하늘에 광복의 홰불이 타오른 이해의 초여름에 가서야 라명희는 백두산밀영을 떠나던 정초의 이날에 어찌하여 장군님께서 춤판에서 희희락락하여 돌아가던 자기를 갑작스럽게 사령부에 부르시여 김수남의 안해로 가장시켜주시였던가를 비로소 완전히 깨달았다. 많은것을 륜곽적으로밖에는 알지 못한채 백두산밀영에서 떠나가던 이날 이 길에서는 군대식의 걸음걸이를 새색시의 걸음걸이로 고쳐보느라 애쓰면서 이제 또 마을에 가서 뭇녀인네들앞에서 물동이를 이다가 떨어뜨리지나 않을가 하는 걱정으로 속을 썩였다.
1월 12일과 13일, 새해에 접어들어 또다시 곰의골밀영지에 기여들어보려던 적《토벌》부대들을 곰의골어귀에서 연거퍼 무찔러 버리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대부대를 거느리시고 적진으로 나가시였다. 1월 23일 장군님께서는 16도구 문암동 샘물터근방에서 불시에 맞다든 일만혼성부대를 족치신데 이어 장백의 곳곳에서 미친개처럼 싸다니고있던 크고작은 적《토벌》부대들에 줄벼락을 안기신 다음 홍두산밀영으로 들어가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을 단숨에 없애치우려던 저들의 기도가 뜻대로 되지 않게 되자 일본천황 쇼와는 1월 25일 대본영의 제기를 수락하여 자기의 시종무관 시데이를 특별사신으로 파견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유격활동으로 인하여 《치안유지》가 엉망으로 돼버린 압록강, 두만강 연안의 국경일대를 한달동안 현지시찰함과 동시에 조선총독 미나미대장, 관동군사령관 우에다대장 및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 고이소대장 등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토벌》공세를 더욱 강화할데 대한 대책을 모의케 하였다. 그리하여 천황의 시종무관 시데이는 도꾜로부터 압록강상공으로 날아넘어왔다. 국경일대의 적《토벌》부대들은 자기들의 무력함을 천황의 특사앞에 보이게 된 수치를 만회하기라도 하려는듯 그 어느때보다도 발악적으로 날쳤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결코 천황페하에 대한 충성이 부족된것은 아니라는 인정을 받자고들었는지도 모른다. 새로 조성된 이런 정황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적의 《동기토벌》을 결정적으로 격파할 당면대책을 협의하시기 위하여 홍두산을 떠나 수십리눈길을 헤치시고 횡산으로 가시였다. 그것은 음력설무렵이였다. 그날밤 장군님께서는 그곳 횡산의 자그마한 귀틀집에서 앞날의 국내진공작전까지 예견하는 새로운 당면한 전략전술적대책을 토의하시였다. 그 이튿날에는 재봉소와 무기수리소, 출판소에서 복무하는 후방성원들을 찾아가시여 그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시였다. 음력설날에는 병상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설명절을 맞게 된 환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횡산밀영을 떠나시여 근처에 널려있는 여러곳의 유격대비밀처소들을 거치시면서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보살펴주시고 지도해주시였다. 이처럼 가장 랭혹한 추위가 엄습했던 음력설무렵에도 그 어느 한곳에서 단 하루나마 편히 쉬지 못하시고 백두원시림속 여기저기 널려있는 유격대원들의 비밀처소를 일일이 찾아다니시며 지도사업을 하시고 홍두산으로 돌아오신것은 눈보라속에 자주 가리워 지군하던 한낮의 언겨울해가 번들령마루를 넘어선뒤였다. 홍두산에는 스무나문명의 곽두섭이네 중대원들이 있었다. 환성을 올리며 바깥으로 마중나온 그 곽두섭이네 중대원들속에 끼여있는 지양개의 김정보와 리창선의 장인인 마로인을 대하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저윽 놀라시였다. 아주 뜻밖의 손님들이였다. 김정보와 마로인은 벌써 이틀째나 여기와 묵으면서 장군님께서 돌아오시기를 시각마다 고대하고있었다는것이다. 《리창선동무가 여기 없어서 섭섭하게 됐습니다. 멀지 않았으면 이제라도 불러왔으면 좋겠는데 그 동무가 지금 여기서 륙칠십리나 되는 먼데 떨어져있습니다.》 장군님께서 마로인과 인사를 나누시며 미안스러워하시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황감한 말씀입니다. 제가 여기 온것은 제 사위되는 사람이나 보고싶어서 온것이 아니올시다. 저희들 외로운 늙은이들에게 사위를 맞도록 크나큰 덕과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이 불민한 늙은이가 해가 바뀌도록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조차 올리지 못했소이다. 그래 이번에 설인사겸해서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저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찾아왔소이다.》 마로인은 눈우에 엎드려 절을 올리려들었다. 그러는것을 장군님께서 만류하시며 어서 귀틀집으로 올라가자고 로인을 부축해 일궈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양개에서 온 늙은이들을 앞세우시고 사령부귀틀집으로 향하시면서 우선 곽두섭중대장에게 그간 이곳 유격대원들이 지내온 정형과 적정자료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시였다. 그리고 애인의 소식을 몰라 궁금해하고있을 곽두섭에게 조분옥이가 여전히 아주 건강한 몸으로 재봉소에서 잘 지내고있더라는것을 넌지시 알려주시였다. 며칠간 비여있었던 사령부귀틀집은 대뜸 눈에 띄우는 몇가지 새로운 변화로써 또한번 장군님을 놀라시게 해드렸다.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신 그이의 눈에 우선 비쳐든것은 구들목에 주인을 기다리듯 나란히 놓여있는 두컬레의 새 가죽장화들이였다. 한컬레는 눈덩이처럼 새하얀 가죽으로 지은것이였고 한컬레는 칠흑처럼 새까만 가죽으로 지은것이였다. 새까만 장화보다 약간 커보이는 새하얀 가죽장화의 안쪽에는 얼핏 보기에도 기막히게 부드럽고 폭신한 감촉을 주는 곱슬곱슬한 양털이 대여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놀라우신 시선을 집안쪽으로 옮기시였다. 참나무껍질로 결은 노전만 깔려있던 그 구들우에는 커다란 대폭의 아무 문양없는 담황색모포가 깔렸는데 장군님께서 자주 마주앉으시는 통나무 앉은책상의 앞자리에는 호랑이털가죽이 금시 주인을 모시련듯 얼룩얼룩 줄무늬진 위엄스러운 잔등을 눕히고 모포우에 공손히 엎드려있었다. 《늙은이들이 음력설을 맞으며 사령관동지께 올리자고 가져온 지양개인민들의 정성품들입니다.》 곽두섭중대장이 장군님께 비쳐드렸다. 그들의 지성어린 선물을 일일이 유심히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두 늙은이에게로 돌아서시였다. 《저것들을 가져오느라고 일부러 추운데 이 먼곳까지 오셨단 말입니까?》 김정보는 장군님앞에 경건히 머리를 숙였다. 《적으나마 우리 지양개백성들의 성의로 여기고 기꺼이 받아주신다면 장군님과 유격대앞에 죄송스럽던 내 마음도 좀 가벼워질듯싶소이다.》 장군님께서는 김정보앞에 빈 두손을 벌려보이시였다. 《나는 아무것도 드릴것이 없는데 원호물자도 아닌 이런 선물을 받아서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저희집에 사위를 주셨는데 어찌 그런 말씀 하시오니까?》 마로인이 황송스럽게 아뢰였다. 김정보도 장군님앞에 재삼 머리를 숙이며 그이의 두손을 맞잡았다. 《장군님은 죽어가고있던 우리 조선에 소생의 볕을 안겨주고계십니다. 그에서 우리가 받을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소이까?》 김정보는 만족스런 웃음을 띠우며 그이의 두손을 힘있게 흔들었다. 장군님께서는 심심 사의를 표하시였다. 잠시후 곽두섭중대장과 함께 사령부귀틀집에서 슬며시 빠져나간 마로인은 장철구에게 부탁하여 자기들이 마련해가지고온 설음식을 차려오게 했다. 사령관동지께서 돌아오실 때를 기다려 이곳 홍두산에서는 아직까지 음력설명절놀이를 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지양개손님들이 정성들여 갖춰가지고온 설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눈속에 얼궈둔대로 보관하고있었다는것을 아신 장군님께서는 군무중의 망원초성원외의 전체 대원들이 다 오도록 하라고 지시하시였다. 모두라야 홍두산에 있는 두개소대를 합쳐 열다섯사람밖에 안되였다. (2소대장이 인솔하고 문암동방향으로 진출한 정찰조는 여직껏 돌아오지 않았고 칼릉선마루의 망원초에도 네사람이나 올라가있었다. 중대의 나머지 력량은 부대의 기본력량과 함께 전장에 나가있었다.) 그 열다섯에 두명의 손님, 전령병 주봉길이, 작식대원 장철구 그리고 장군님까지 다 합쳐 꼭 스무사람이여서 크지 않은 귀틀집안에 모여앉기는 알맞춤했다. 유격투쟁을 시작한 이래 지난 다섯해를 거쳐오는동안 한번도 대해보지들 못했던 푸짐하고 진귀한 설음식이 여기저기에서 김을 몰몰 올리며 여러 유격대원들의 구미를 돋구었다. 음력설날 아침에도 눈을 퍼담은 법랑소랭이에 통강냉이를 넣어 끓여먹었던 유격대원들이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앞에는 찰떡도 놓이고 소갈비찜도 놓였다. 불쌍한 고아로 자라온 곽두섭중대장과 세상에 입쌀이나 배, 사과, 곶감따위가 있는줄도 모르는 개마고원에서 감자바우로 자라난 최성필이 그리고 거의 모든 대원들이 난생처음 보고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된 약밥과 수정과까지 있었다. 김정보는 찹쌀을 구해다가 이 음력설맞이를 위해 특별히 고아냈다는 대두병의 곡주를 부어 첫잔을 두손으로 정중히 장군님께 올렸다. 《장군님을 모시고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지 4천량백일흔번째의 해로 되는 정축년 올해 설을 쇠게 된 이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자리에서 제 한마디 여쭈고싶은 말씀이 있소이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선선히 응낙하시였다. 김정보는 풍채좋은 수염을 점잖게 내리쓸고나서 앞으로 두손을 맞잡아쥐며 말씀을 드렸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해에 이 홍두산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온 뒤로 죽어가는 고목같던 저의 마음속에도 소생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소이다. 비단 저뿐만아니라 이 마형의 마음속에서도, 우리 지양개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이런 소생의 싹이 다 움트고있소이다. 두말할것없이 이것은 장군님께서 죽어가던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소생의 볕을 비쳐주고 계시는 덕분이올시다. 그러하온즉 바라건대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움튼 이 싹이 된서리를 맞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도록 저는 장군님께서 부디 귀체만강하시고 만년장수하시여 우리 불쌍한 2천 3백만 배달민족을 위해 품으신 그 높으신 뜻을 기어이 성취해주시옵기를 삼가 바라나이다.》 말을 마친 김정보는 엄숙하고 경건하게 장군님앞에 허리를 굽혔다. 박수가 울렸다. 장군님께서도 모든 사람의 잔에 술을 붓도록 하시고 손수 부으신 잔을 김정보와 마로인에게 드리시였다. 그러시고는 감격에 넘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과분한 인사말씀에 겹쳐 표시해주신 우리에 대한 크나큰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전체 동무들과 함께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추석날을 백두산밑에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서 이렇게 인상깊은 음력설을 맞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조국의 광복이 료원한 장래의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올해봄쯤 되면 조선이 살아있을뿐아니라 왜놈들과 싸워서 능히 이길수 있다는것과 조국광복이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는것을 반드시 온 세상이 다 알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존경하는 두 로인님께서와 지양개의 부모형제 여러분들도 이해에 부디 기력들이 더욱 왕성하여 보람차고 희망차게 지내기를 충심으로 축원하면서 반만년 력사의 숨결이 끊어져가고있는 우리 나라가 소생되고 광복될 앞날의 승리를 위해서 모두 함께 축배를 들도록 합시다.》 감명깊은 그이의 말씀에 따라 모두가 술잔들을 들었다. 나이가 제일 어린 사령부 전령병 봉길이까지도 마실줄 모르는 술이였지만 잔만은 높이 쳐들었다. 지양개 로인들이 선물로 가져온 은제축배잔들과 유격대원들의 쭈그러든 자리들이 있는 늄고뿌, 사금파리가 일고 녹쓴 자리가 드러난 법랑사기고뿌들이 부딪치며 쟝그랑 달랑 귀맛좋은 소리들을 냈다. 부딪친 잔들에서 넘쳐나는 술방울들이 시큼하고도 향긋한 냄새를 온 집안에 풍기며 점점이 흘러떨어졌다. 담배를 끊었지만 술마저 끊겠다고는 하지 않았던 곽두섭중대장은 벌써부터 군침이 돌아서 입술을 감빨며 남몰래 두번째의 닭알춤을 삼켰다. 꿀꺽소리를 내며 우로 솟구쳤다가 내려가는 그의 툭 불거진 울대뼈를 곁에서 훔쳐본 최성필은 괜히 즐거워 히쭉 웃었다. 가장 즐거운 순간이였다. 아니 즐거움을 누릴수 있게 된 순간이였다. 타―앙 ! 첫 축배잔들이 맞쪼이는 흥겨운 음향을 짓누르며 돌연 어디선가 둔탁스러운 한방의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일시에 귀틀집안은 조용해졌다. 긴장한 침묵속에서 기승스레 울부짖는 바람소리가 활기롭던 연회장에 서린 불안을 덧쳐주었다. 들고있던 축배잔을 미처 내려놓기도전에 바깥에서 울부짖는 바람소리를 헤가르며 또다시 두번째의 총성이 메아리쳐왔다. 거의 동시에 다급한 발자국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리더니 온몸이 그대로 눈사람같은 한 보초대원이 집안에 뛰어들며 망원초가 있는 칼릉선마루에 적들이 올라서고있다고 소리쳤다. 너무 심하게 눈바람이 이는데다가 적들이 온몸을 백포로 둘러감쌌을뿐아니라 총신에까지 새하얀 붕대를 감아 철저히 위장하고 은밀히 접근했기때문에 놈들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들도록 보지 못했다는것이다. 《몇놈이나 되는것 같소?》 장군님께서는 비로소 들었던 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시고 조용한 음성으로 되물으시였다. 《새하얗게 망원초를 둘러쌌는데 그저 눈짐작으로 한 사오백놈 잘되는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꽈다당 지끈하고 여러개의 총성이 몰방으로 울리고 기관총의 련발사격소리가 언 공기를 썰며 날아왔다. 그 소리에 놀란 마로인이 들고있던 술잔을 떨어뜨리며 그릇을 마스는 소리를 냈고 김이 가득 서린 문가까이 있던 한 대원이 자기 등뒤의 귀틀벽에 기대세워놓아두었던 총을 잡느라 하다가 찰떡그릇을 엎질렀다. 《덤비지들 마시오.》 기관총의 련발사격소리를 짓누르시는 장군님의 저력있는 음성이 집안을 울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스무배나 되는 적들의 기습에 당황해져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부산스럽게 술렁거리던 사람들이 일순간에 조용해지며 모두 장군님만을 쳐다보았다. 《덤비지 말고 문앞에서부터 한사람씩 나가서 남쪽릉선의 눈얼음전호를 재빨리 차지하시오.》 그이께서는 곽두섭중대장에게 따로 그가 직접 망원초에 올라가 전투정황을 살펴보고 보초대원들을 인솔하여 적을 유인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적들에게 길을 열어주시오. 보초소에 있는 동무들을 철수시켜 처음에는 적들의 눈에 띄우도록 산릉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얼마후에는 골짜기로 돌아내려오도록 하시오.》 유격대원들이 다 나가버린 뒤에 말코지에 걸려있던 혁띠와 함께 권총을 벗겨차시고 쌍안경을 거신 장군님께서는 침착하고 여유있게 털모자의 귀덮개를 내리우시며 김정보와 마로인에게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섭섭해하시는 웃음이였다. 《오늘은 두분께 우리 동무들의 노래와 춤도 보이면서 하루 즐겁게 지낼가 했는데 저놈들이 음력설명절놀이도 못가지게 하니 어쩌겠습니까? 유감스러운대로 두분께서는 여기 남아계시면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시느라 오늘까지 들지 않고있은 설술도 드시고 설음식도 잡숫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지 않게 되면 정황이 불리해져 여기서 움직이는 일이 생길 때 얼수도 있고 또 시장해서 우리 젊은 사람들을 따를수도 없을것입니다. 너무 불안해마시고 든든히들 잡수십시오.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주겠으니 그때까지는 여기에 가만히들 계십시오.》 털모자를 눌러쓰신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시고 바람같이 사라지시였다. 텅 비인 집안에는 늙은이 두사람만 남았다. 방금전까지 화기가 떠돌던 귀틀집안이 음산하고 어수선해졌다. 불현듯 휙휙 불어치는 바람을 썰어대는 아츠러운 금속성이 금시 덮칠듯이 다가들더니 꽈당탕거리며 그 어디선가 아주 가까운데서 굉장히 요란스러운 폭음을 터뜨렸다. 구들이 통채로 들썩거리고 귀틀집 출입문이 들부셔지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려졌다. 와시시 천장으로부터 마른 흙부스레기들과 부스러진 나무잎들이 날아떨어지고 귀틀짬에 틀어박았던 이끼들이 빠져내려 음식들우에 어지러이 널렸다. 문을 닫으려고 부엌에 내려섰던 마로인은 또다시 귀틀집을 들부실듯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날아오는 박격포탄의 비행음에 놀라 그대로 바깥으로 내달아나갔다. 그러나 곧 대경실색한 비명을 지르며 문턱앞에 자빠졌다. 자빠진 그를 덮씌우며 눈덩이와 눈가루가 문안으로 날려들고 귀틀집지붕우에 무엇인가 묵직한것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포탄파편에 옆구리를 잘리운 거목이 자빠지면서 내는 단말마의 비명이 폭음에 멍멍해진 고막을 아츠럽게 긁었다. 천장과 귀틀집벽에서는 또다시 흙부스레기와 검불과 이끼들이 떨어져 내렸다. 잔굽에 넘치도록 담겨진대로 한방울도 축나지 않은 술들이 땅의 진동에 부르르 떨며 찰랑거렸다. 금방 저 축배잔을 잡았던 사람들가운데서 과연 몇사람이나 살아남아서 이 잔을 다시 잡을수 있을것인가? 아니 장군님께 올리자고 정성들여 마련해온 이 숱한 음식들을 왜놈들의 아가리속에 그대로 고스란히 처넣게 되는, 가슴치며 통탄할 슬픈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김정보와 마로인이 지금 어찌 장담할수 있으랴? 김정보와 마로인 자신들도 또한 여기서 살아돌아갈수 있다는것을 어찌 믿을수 있겠는가? 사오백나마 되는놈들이 쓸어들었다니 장군님께서 아무리 천변만화의 전법을 가지셨다손치더라도 벌써 형세는 기울어진 싸움이다. 대적해 싸울 유격대병력이라야 장군님의 작식을 맡았다는 아낙네병졸까지 합쳐 스무사람도 못된다. 유격대한사람이 스물다섯배나 되는 적을 상대하여 싸우는 판이니 무슨 수로 당해낸단 말인가? 먼지를 들쓴채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는 김정보에게는 자기가 이끌던 독립군부대가 전멸당하던 태룡강전투에 대한 쓰라린 추억이 되살아났다. 자기 부대의 최후패망을 가져다준 그 태룡강격전에서 그들과 맞선 적들은 두배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식총과 신식대포와 신식전법을 쓰는 강적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수백의 부하들이 아까운 목숨을 바쳐 태룡강을 피로 물들이며 필사대적한 결과로 얻어진것은 더 춰설 여지없는 비참한 패배, 부대의 종말이였다. 포탄파편에 허벅다리를 찢기우고 실신당한 김정보가 삼백여부하들의 시체를 태룡강가에 남긴채 그 사지판에서 겨우 살아 남을수 있은것은 지금의 마로인이 그를 버리지 아니하고 업어내왔기때문이였다. (강자 필승하고 약자 필패하는것은 인력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만물 생사존망의 철칙일진대 어찌 이 불민한 늙은것이 장군님을 처음 대했을 때 더 우기지 못하고 장군님과의 론전에서 그리도 쉽게 물러나앉았던고?) 비탄속에 빠진 김정보는 자신이 전에 명백히 깨닫고 인정했던것마저 스스로 의심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하긴 낡은 사고와 관념이란 집요한것이다. 한번 뒤집혔다 해도 틈만 있으면 되살아나려고 하는것이다. 모처럼 주어졌던 그 절호의 기회에 장군님을 끝끝내 설득시켜 드리지 못한탓으로, 지금 장군님과 아까운 조선의 젊은이들을 오늘의 비참한 종말속에 몰아넣게 되였다고 뒤집어 생각하며 저절로 가슴저려한 김정보는 곽두섭중대장앞에 놓았던 커다란 늄고뿌를 들어 거기에 담겨져있던 흙먼지가 떠있는 반병이나 될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뜨끈한것이 마구 지지는듯이 목안으로 흘러들며 가슴속에 서린 아픔을 짓뭉갰다. 가슴속은 더욱더 쓰려났다. 빈 늄고뿌를 아무렇게나 마구 던져버린 김정보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마구 쾅쾅 두드렸다. 《내사 죽어쌀놈이지. 내사 죽어쌀놈이야!》 혼자 중얼거리던 김정보는 문득 요란스럽게 삐꺽거리는 문소리를 듣고 출입문쪽을 돌아다보았다. 마로인이 바깥으로 나갔다. 눈바람과 함께 번들령쪽에서 울려오는 총포성이 집안이 들썩하게 쓸어들었다가 다시 문이 닫기면서 약간 낮아졌다. 최성필이 마주앉았던 자리에 놓여있는 커다란 법랑고뿌에 다시금 손을 뻗쳐 역시 그안의 술도 단숨에 마셔버린 김정보는 자기앞에 놓여있는 술잔을 들다가 잠시 그것을 유심히 보았다. 그의 시선은 장군님께 깔아드렸던 호랑이 털가죽에로 옮겨졌다. 그 호피우에 이제 왜놈군대의 장교놈이 앉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번개같은 생각이 갈마들자 김정보는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그 호피를 둘둘 감아 옆구리에 안았다. 그것은 장군님을 모시자고 일부러 애써 마련한 백두산호랑이의 털가죽이다. 장군님밖에는 그 누구도 그 호피우에 앉을수 없다. 장군님께서 앉으실수 없게 되는바에는 그 호피를 태워없애버려야 한다. 조선이 진짜로 영영 망해버릴지 모를 이 불행하고 불우한 날 아무리 슬픈 종말을 당한다 해도 장군님께나 김정보, 이 늙은것에게나 거듭 욕된 일을 당하게 할수는 없다. 개놈들! 안돼! 안될 일이다. 네놈들이 이 산을 점령하고 우리 조선의 끌끌한 젊은이들과 쓸모없는 부실한 늙은이들의 피로 홍두산의 눈을 붉게 물들인다 해도 백두산장수를 모셨던 이 호피는 절대로 타고 앉지 못하리라. 김정보는 방바닥에 벌려놓은 음식그릇들을 피해디디며 문쪽으로 다가갔다. 《집안에 가만히들 계시라는데 왜들 다 나오십니까?》 문을 열고 마로인을 앞세우시며 집안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 성에가 하얗게 불리신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며 김정보를 의아히 바라보시였다. 《그건 뭡니까? 어디로 나가자고 그럽니까?》 김정보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그저 멈칫한대로 서있었다. 《괜히 불안해하며 찬데로 나올가봐 내가 들어왔습니다. 바깥은 몹시 춥습니다. 지독하게 춥습니다. 내 말을 믿고 안심하고 술도 드시고 음식도 드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마로인의 등을 밀어 구들에 올라가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다시 나가시려 하시였다. 《장군님 !》 김정보는 황겁히 그이를 불러 멈추시게 했다. 옆구리에 끼였던 호피를 마령감에게 안기고 구들에서 장군님께로 내려간 김정보는 온통 눈투성이인 장군님의 왼쪽팔소매를 두손으로 꽉 거머잡았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어서 몸을 피하소이다. 저 마령감이 이곳 지리엔 밝으니 천행으로 빠져나갈수 있을는지도 모르웨다. 지금이라도 내 이 한마디 말만 들어주소이다.》 간절히 아뢰며 장군님을 쳐다보는 김정보의 눈에는 피잉 눈물이 괴여올랐다. 《나를 피하라는 말씀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오른손으로 잡아쥐셨던 노루발쪽문손잡이를 놓으시고 김정보에게로 돌아서시였다. 《사령관이 피해달아나면 나를 믿고 싸우는 우리 대원들이 어떻게 싸워이기겠습니까? 지금 얼마나 많은 적들이 달려들었는지 알겠습니까?》 《장군님, 그걸 잘 알기때문에 하는 소리웨다. 이미 승패는 정해진 싸움이니 어서 지체 말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장군님은 자기 일신을 그렇게 함부로 사지판에 내맡기실 개인의 몸이 아니올시다.》 《걱정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시작한셈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김정보의 어깨를 가벼이 어루만지시였다. 김정보는 억이 막혀 약간 취기오를사한 눈을 크게 뜨고 장군님을 잠시 놀랍게 쳐다보기만 했다. 《아니 스물다섯배도 넘는 적을 어찌 당해낸다고 그런 장담을 하십니까?》 《쌈은 군사가 많은쪽보다 머리를 잘 쓰는쪽이 이긴다는거야 선덕어른도 알지 않습니까? 오백놈이 아니라 천놈이 쓸어와도 외나무다리에 맞다들면 한놈씩밖에 건너올수 없습니다. 오늘 싸움에서 우리는 저놈들에게 외나무다리만 놔주고 다리목을 지키는 셈이니 이건 이긴 싸움이 아니겠습니까? 자, 올라들가서 마음 푹 놓고 지내다가 총소리가 멎은 다음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놈들을 잡아족쳤는가 나와 구경을 하도록 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김정보의 어깨를 가볍게 떠미시고는 아까보다 더 밝은 웃음을 귀틀집에 남기시며 다시금 전장으로 나가시였다. 어쩐지 만사가 다 꿰진것 같다가도 장군님과 마주서기만 하면 금시에 만사가 장군님께서 뜻하신대로 잘돼갈것 같이 믿어지게 되니 이것은 도대체 무엇때문인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 장군님께 설복당하고만 자신을 새삼스럽게 돌이켜본 김정보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출입문을 열고 나섰다. 대뜸 숨이 콱 막히게 하는 눈바람이 그의 가슴과 얼굴을 떠밀었다. 《아차, 마형! 내 그 털벙거지나 벗겨 이리 던지우.》 마로인은 호피를 안은대로 안쪽에 들어가 말코지에서 김정보의 털벙거지를 벗겨들고 나왔다. 《이 호피는 어떻게 하시겠소? 쌈터에 내다가 장군님께 깔아올리겠소?》 《아, 호피?!》 그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있은 김정보였다. 《그건 마형이 맡소. 촌시도 잊지 말구 끼고있다가 형세가 글렀거든 절대로 저 오랑캐놈들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불을 살라주오.》 당부하고 밖에 나서려는 김정보를 이번에는 마로인이 불러세웠다. 《선덕님, 바깥은 몹시 날쎄가 사나운데 눈속에 엎드려 쌈하는 우리 유격대군사들에게 저 술을 들고나가 따라주면 어떻겠는지?…》 그전에 독립군이 눈속에서 쌈할 때는 일부러 술을 나눠준적도 있었다. 김정보와 마령감은 술이 든 대들이병과 커다란 법랑사기고뿌 하나씩을 들고 유격대원들이 엎드려있는 눈얼음으로 된 전호에로 찾아갔다. 속눈섭이 대뜸 껍진껍진하게 맞붙는 지독한 추위다. 하늘땅을 뒤덮은 눈바람속에서 콩볶듯하는 총성과 폭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피양― 피양― 눈먼 총알이 아츠러운 비명을 지르며 눈참호속으로 달려가는 늙은이들의 머리우로 날아지나갔다. 총알에 맞아 잘라진 가문비나무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졌다,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던 김정보는 후각을 뭉클 자극하는 피비린내와 함께 눈우에 시뻘겋게 번진 피자국을 보자 가슴이 섬찍해지며 일순간 멈춰섰다. 끝끝내 조선의 끌끌한 젊은이들의 피가 이 홍두산의 눈을 물들이기 시작한것이다. 《가야 하오. 어서 떠나시오. 지체말고 어서 떠나시오.》 김정보는 콩볶듯하는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서도 얼마 멀지 않은 앞에서 울려오는 장군님의 목소리를 가려들었다. 그는 앞으로 나갔다. 이쪽으로 백포를 들쓴 등을 돌려대고 앉은 대원의 어깨너머로 팔소매와 복부에 시뻘겋게 피가 내밴 장대한 젊은이가 담가우에 누워있는것이 보였다. 김정보는 그가 고급권연을 권해도 본척하지 않던 《금연단장》곽두섭중대장임을 인차 알아보았다. 아까까지 그렇게도 혈색이 좋던 중대장은 우둘투둘한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령관동지, 제발 부탁입니다… 저때문에 네명을 떼고나면… 어떻게… 어떻게 합니까?》 중대장은 푸르게 색이 죽고 탈탈 마른 입술을 놀려 겨우 말을 번지며 그의 옆에 꿇어앉으신 장군님께 간청했다.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장철구가 드리는 백포를 받으시여 그것으로 곽두섭중대장의 몸을 덮어주시고 가생이를 꼭꼭 여며주시였다. 《안심하고 가서 치료받고 하루빨리 완쾌되도록 하시오.》 다정히 타이르신 장군님께서는 일어나시며 어서 떠나라는듯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시였다. 담가가 들리였다. 이 순간 곽두섭중대장은 혼신의 힘을 다 짜내여 소리쳤다. 《사령관동지!!》 다시 옆에 다가서시는 장군님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괴여올랐다. 《사령관동지를 보위해야 할 제가… 혼자도 아니고… 네사람씩이나 달고가게 되면… 제가… 제가… 어떻게 가슴이 아파서 살랍니까? 나를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나를 사령관동지의 곁에 두어 두십시오.… 죽더라두 사령관동지의 곁에서 죽게 해주십시오.》 그는 갈린 목소리로 가까스로 토막토막 말마디들을 이으며 말을 마치더니 담가에서 굴러떨어져내리려고 안깐힘을 썼다. 장군님께서는 백포밑에서 버둥거리는 그의 성한 팔과 다리를 붙잡으시며 가볍게 나무라시였다. 《큰 사람이 왜 이렇게 못나게 구오?》 그러시고는 백포자락으로 귀전으로 흐르는 곽두섭의 눈물을 훔쳐주시였다 《이런 날엔 눈물도 나오자마자 얼음으로 변하니 가면서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마오. 자, 떠나시오.》 부상당한 곽두섭중대장을 후송할 임무를 받은 한명의 남대원과 장철구를 포함한 세명의 녀대원들은 또다시 《사령관동지!》를 목메여 부르는 곽두섭의 애타는 울부짖음소리를 바람에 날리며 멀고먼 후방병원을 향해 전투장을 떠나갔다. 눈전호초입까지 그들을 바래주시고 돌아오시던 장군님께서는 대두술병과 고뿌를 들고 서있는 김정보와 마령감을 보시자 우뚝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건 뭡니까? 술이 아닙니까?》 《장군님, 술입니다.》 《아, 그래 아까 맛을 못봤지. 어디 조금만 맛을 봅시다.》 장군님께서는 김정보가 내주는 술병을 친히 받아안으시고 고뿌로 질끔 부어 그 맛을 보시더니 대견스러운듯 웃으시였다. 《이 대두병의 술을 내가 통채로 다 써도 되겠습니까?》 그이의 물으심에 김정보는 의아해하며 선선히 대답을 올렸다. 《그건 바로 장군님께 올리자고 가져온 술이 아닙니까!》 《고맙습니다.》 그에게 사의를 표하신 장군님께서는 전령병 봉길이를 찾으시였다. 《이게면 상처소독에 능히 알콜대신으로 쓸수 있으니 담가대원들을 쫓아가서 병원에 보내도록 하라구.》 봉길에게 술병을 안겨보내신 다음에야 장군님께서는 전투장에 나온 두 늙은이를 나무라시였다. 그러나 김정보는 기어이 우겨 전호에 남았을뿐아니라 마로인과 분담하여 전투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이 전장에서 새해음력설 술을 한고뿌씩 마시고 언몸을 녹이게 했다. 마지막으로 한고뿌 남은 술을 다시금 장군님께 올리려고 그이께로 갔을 때 몸소 기관총을 잡으시고 맹렬한 사격을 퍼붓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불시에 사격을 멈추시고 기관총을 옆으로 눕히며 눈더미속에 질러넣으시였다. 차지직… 눈이 데는 소리를 내며 삼단같은 증기구름이 뽀얗게 치솟아올랐다. 기관총신이 어찌나 달았던지 더 쏘실래야 뜨거워서 총을 잡으실수 없으셨던것이다. 《장군님, 한순배 돌고 요게 남았습니다. 제 아까 장군님께서 나가신 사이 속상해서 연거퍼 두홉이나 혼자 들이켰는데 장군님께서도 한잔만 들어주소이다.》 기관총을 식히시는 짬에 김정보는 마지막으로 남은 술을 따라 장군님께 올렸다. 《고맙습니다. 이걸 잘 쓰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뿌의 술을 기울이시여 몇군데 물집이 부풀어오른 시뻘겋게 데이신듯 한 왼손바닥에 부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남은 술을 다시 병에 넣어달라고 부탁하시고 눈속에 총신을 처박았던 기관총을 드시고 또 불을 뿜으시였다. 김정보는 적진을 노려보시는 장군님의 안광에서도 시퍼런 두줄기의 불줄기가 뿜어져나가는듯 한 환각을 느꼈다. 그 불줄기들이 날아가고있는 저 앞산의 칼등같은 릉선우에서 아물아물하던 하얀 삽살개같은것들이 연해연방 가파로운 눈덮인 벼랑으로 굴러떨어져서는 아득히 꺼져든 골짜기의 눈함정속에 자취를 감추군 했다. (오호라! 저게 바로 왜놈들에게 놔준 외나무다리렸다! 저쪽도 벼랑, 이쪽도 벼랑, 만명의 놈들이 쓸어온대도 네놈들은 천상 저 칼등같은 외통길로밖엔 올수가 없지. 과시 일당백으로 싸워이기실 묘수로다!) 김정보는 머리를 저혼자 끄덕이며 눈바람에 날리는 반백의 수염을 흐뭇하게 내리쓸고 또 쓸었다. 그리고는 곽두섭중대장이 잡고 싸우던 총을 틀어잡고 자기도 싸움판에 끼여들었다. 마로인도 최성필에게서 총과 수류탄을 얻어쥐고 그전날 독립군시절에 김정보의 휘하에서 화승총질을 하던 본때로 쏴갈기군 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겨우 살아남은 패잔병놈들이 숱한 주검들을 눈함정속에 버려둔채 달아나버린후에 두 늙은이는 출출했던김에 배불리 저녁을 먹고는 인차 깜빡 잠들고말았다. 늙은 몸으로 한바탕 싸움판에 끼여들었던지라 몹시 피곤했던데다가 낮에 부어놓은대로 술잔들에 남아있었던 술을 반주로 해서 달게들 저녁을 먹은탓으로 식곤증까지 몰려든것이다. 김정보와 마로인은 자기들이 깜빡 잠든 사이에 장군님께서 최성필을 조장으로 하는 야간습격조를 파하신줄을 몰랐다. 밤중에 떠들썩하는 소리를 듣고 깨여난 두 늙은이는 온통 눈투성이가 되여 황소숨들을 쉬며 들어서는 최성필이네를 보고 저윽 놀랐다. 더더구나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한것은 최성필이네를 뒤따라 보지 못하던 유격대군사들이 잔뜩 쓸어드는데 그속에 마로인의 사위인 리창선이도 끼여있은것이였다. 새로 나타난 그 군사들은 어린애들처럼 장군님께 매달리며 너무 좋아서 웃고 너무 좋아서 울며 눈들을 슴벅슴벅한다. 《아니 대체 자네들이 어찌된셈인가? 엉? 륙칠십리밖에 있다던 자네들이 어떻게 이 밤중에 여게 문득 나타들 났나말이여?》 마로인은 물론이였고 창선이의 잔치때에 주례를 섰던 김정보도 리창선을 보자 기쁨에 앞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아― 좀… 이거 너무 숨이 차서… 좀 말을 시키지들 마시우다.》 두 늙은이에게 에워싸인채 귀틀집 한쪽구석에 털썩 주저앉은 리창선은 숨이 차서 헐떡헐떡하며 말도 제대로 못했다. 두 늙은이는 눈과 성에가루가 새하얗게 덮씌운 그의 털모자를 벗겨주고 솜군복웃단추도 벗겨주었다. 모자를 벗긴 창선의 얼굴과 앞을 헤친 가슴에서는 뚜껑을 열어젖힌 끓는 가마에서처럼 김이 물씬 솟구쳐올랐다. 수십리밖에 있다던 사람이 여기 나타나자 이 모양이 됐을진대 죽을 기를 다해서 달려온 형국이다. 가까스로 좀 숨을 돌리고 하는 말을 들어보니 숱한 왜놈들이 홍두산쪽으로 들어온 발자국자리를 보고 장군님께서 위험에 처하신줄 알고 수십리길을 한달음에 달려온 참이라는것이다. 이리로 오다가 여기서 나간 야간습격대의 습격을 받고 또 겨우 살아도망치던 놈들을 맞받아 요정내고 다시 장군님께서 진짜 무사하신지 그냥 마음이 놓이지들 않아서 죽을 힘을 다해 달려왔다는것이다. 《아 우리 정치지도원동지가 어찌나 비호같이 앞장서 뛰는지 정말 겨우 따라왔소다. 저하구 키랑 비슷한데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눈보라도 미처 그분을 못따르더라니까.》 《그게 어느분인가?》 《그 아까 우리를 다 들여보내고 맨 마지막에 들어온분 있지 않아요? 야 저기 저쪽 그림자밑에 가리워져있는 저분…》 마로인과 김정보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속에 가리워져있는 오중흡정치지도원을 여겨보았다. 《흠… 그분이 과시 충실한 일군일세. 장군님의 신변걱정때문에 맨 앞장에서 달려오구서는 정작 장군님앞에 와서는 자네들, 아래사람들을 먼저 장군님앞에 들여보낸걸 보면 사람이 진국이구 속이 깊은이야.》 김정보는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다. 《잔치때 유격대에서 사위를 데리구 왔던 이마 벗어진 사람(권영벽)은 제 부친 두벌흉사를 겪으면서두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일을 그르칠세라 이를 앙다물고 참았다더니 이 사람네 중대정치지도원이란 저 사람은 장군님의 신변을 걱정해서 수십리밤길을 달려왔다니 정말 이토록 장군님께 충실한 군사들로 뭉쳐있는 유격대를 놈들이 무슨 수로 꺾어내겠소이까!》 《마형 말도 지당한 말씀이요. 과시 우리 장군님유격대는 무적불패의 군사임에 틀림없는줄 내 오늘에야 깊이 깨치게 되는구려》 김정보는 위엄스럽게 수염을 내리쓸었다. × 홍두산전투후 이 겨울 장백에서의 마지막 대전투들인 도천리전투와 리명수전투로써 적의 《동기토벌》작전을 완전히 파멸에로 몰아넣으시고 싸움을 빛나게 아퀴지으신 장군님께서는 권영벽과 라명희를 적구에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대로 이해 3월초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다시 되골령을 넘으시여 무송땅으로 향하시였다 이 출발에 앞서 장군님께서는 사령부 군수관 김주현에게 백두산밀영을 책임적으로 철저히 은페상태에서 지키면서 권영벽, 리제순이와의 련계밑에 주력부대가 다시 밀영으로 돌아올 봄까지 국내진공작전때 대원들에게 입힐 군복천과 식량 기타 군수물자들을 준비해놓으라는 과업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재봉대의 조분옥을 찾으시여 도천리, 리명수전투들에서 로획한 식료품통졸임들과 약품들을 친히 안겨주시면서 후방병원에 남아서 곽두섭중대장을 비롯한 몇몇 중상자들을 간호할데 대한 개별과업을 주시였다. 봄이 되면 부대가 다시 나올테니 그때까지 환자들을 잘 간호하여 그들모두가 조국진군대오에서 빠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그이께서는 거듭거듭 당부하시였다. 그 은정깊은 장군님의 뜨거운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은 조분옥은 또한번 감격의 이슬로 눈섭을 촉촉히 적시며 그리웠던 애인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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