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 장
밀영지를 떠나 적구에 나가셨던 장군님께서는 적배후교란작전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시고 한동안 떠나계시던 정든 백두산밀영으로 돌아오시였다. 그동안 밀영에 남아서 호젓이 지내던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마치 오래 보지 못하던 어버이를 맞는 어린것들마냥 기뻐했다. 매달리다싶이 둘러싸는 그 단출한 식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인사를 나누시던 장군님께서는 맨뒤자리에 외따로 떨어져 서있는 권영벽을 보시자 눈빛이 류달리 빛나시였다. 그를 파견하신 이후 전장에 나가시여서도 내내 그의 일이 어떻게 돼가는지 몹시 궁금하셨던 장군님이시였다. 《아, 영벽동무가 와있었구만!》 장군님께서는 성큼 그에게로 다가가시며 반갑게 손잡아주시였다. 《언제 왔소?》 《좀전에 돌아와서 방금 군복을 갈아입은 참입니다.》 《수고했구만. 무사히 돌아와줘서 고맙소. 자, 올라갑시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으시고 사령부귀틀집으로 향하시였다. 그가 그간 사업해온 정형을 료해하시려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 전리품들을 모으랍니까?》 전장에서 돌아온 전투원들의 짐이 여느때없이 많은것을 어느결에 눈치챈 사령부군수관 김주현이 장군님께로 가까이 오며 넌지시 여쭈었다. 《전리품?》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칫하시였다. 《가만 좀 이따 봅시다. 내 권영벽동무를 만난 다음에 동무를 찾겠소.》 《알겠습니다.》 김주현은 뒤쪽으로 물러갔다. 사령부귀틀집은 장군님께서 어느 시각에 돌아오셔도 썰렁하지 않도록 훈훈하게 덥혀져있었다. 《영벽동무의 이야기를 듣기전에 먼저 내가 알려줘야 할 한가지 기쁜 소식이 있는데 혹시 들었는지도 모르겠구만?》 군모와 전투가방을 손수 말코지에 걸어놓으시던 장군님께서는 권영벽을 돌아보시였다. 《무슨 소식입니까? 전 아직 아무 소식도 얻어듣지 못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솜군복외투까지 걸어놓으시고 난로가에 다가오시였다. 《그간에 생긴 일이 적지 않소. 앉읍시다. 앉아서 얘기합시다.》 장군님께서는 권영벽이와 함께 난로가에 마주앉으시였다. 그리고 매우 궁금해하고있는 권영벽에게 곽두섭의 애인인 조분옥을 최현부대에서 찾아냈다는 소식부터 알려주시였다. 《네?!》 그 소식을 접한 권영벽은 대뜸 눈가에 핑그르 물기가 어렸다. 《그걸 두섭이, 그 친구가 압니까?》 《알다마다 이미 상봉까지 했소. 발을 좀 상해서 후방병원에 와서 치료받고있는걸 거기 가서 만나보게 했소. 나는 아직 짬을 못내서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번 만날 작정이요…》 장군님께서는 권영벽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 이야기를 한참동안이나 들려주시였다. 《그 친구 오래동안 남모르는 속을 태웠는데 참 잘됐습니다.》 권영벽은 제가 더 기뻐하며 눈물어린 눈을 슴벅거렸다. 장군님께서는 그간에 있었던 다른 소식들도 간단히 들려주신 다음 이제는 권영벽의 이야기를 듣자고 하시며 리제순에게 갔던 일부터 꺼내시였다. 《영벽동무를 다시 만나게 돼서 제순동무가 좋아했을거요. 그 사람이 우리한테 왔다가 내려간 담에 적들의 의심을 사지 않고 무사히 넘겼습디까?》 《네, 놈들을 그럴듯하게 업어넘기구 그전보다 더 신임받으며 지냈다고 합니다.…》 권영벽은 리제순이가 적들을 업어넘기던 이야기를 들은대로 말씀드렸다. 《…여기서 강습을 받고 〈보따지〉동무네 하고 같이 내려가자마자 사령관동지께서 일러주신대로 먼저 20도구경찰분서에 찾아가서 행풀이부터 했다고 합니다. 유격대에 붙잡혀갔다가 겨우 살아서 도망쳐온 사람의 흉내를 내면서 〈당신네는 촌장 하나 보호해주지도 못하는데 나는 무서워서 못살겠다, 조선에 다시 나가 살겠다.〉하고 그럴듯하게 엄살을 피웠더니 놈들이 의심하기는커녕 미안해하면서 촌장일을 하자는 사람이 없으니 제발 조선에 가지 말아달라고 빌붙더라는것입니다. 그래서 제순동무는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 유격대그림자만 봐도 벌벌 떨면서 쥐구멍부터 찾는 당신네가 촌장을 어떻게 지켜주겠는가. 나는 더는 당신네를 믿지 못하겠다.〉하구 뻗댔던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그놈들이 자기네는 유격대를 겁나하지 않는다고 제법 호통치면서 〈당신이 유격대에서 도망칠 때 유격대가 어디 있었는가, 지금은 어디쯤에 있을것 같은가, 당신 눈앞에서 유격대를 요정낼터이니 길을 안내해달라.〉그러더랍니다. 제순동무는 자기는 무서워서 길안내는 못서겠는데 유격대가 어디 있다는건 알려주겠다, 당신네끼리 가라고 하면서 〈보따지〉동무네 전투조가 매복하기로 약속돼있는 장소로 놈들을 보냈다는겁니다.…》 《허허… 제순동무가 각본대로 연기를 썩 잘했구만.》 장군님께서는 얼었다가 녹은 손을 맞비비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내 그때 〈보따지〉동무가 돌아와서 하는 말을 듣구서도 그럴듯하게 해댄것 같다고 짐작했지만…》 《네, 그래서 놈들이 제순동무를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수 없게 됐다고 합니다. 그바람에 제순동무는 안전하게 조국광복회지방조직들을 결성할 준비사업을 추진시킬수 있었다는겁니다. 제가 내려갔을 때는 이미 여러 마을들에서 조직에 가입시킬만한 사람들을 다 만나서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권영벽은 머리속에 새겨둔 기억을 더듬으며 장백현 20도구 신흥촌에서부터 시작하여 19도구의 여러 마을들, 흥산과 주경동, 약수동, 대사동, 평강덕 등 상강구일대의 각지에서 진행한 공작정형과 조국광복회지하조직결성실태에 대하여 세세히 말씀을 드렸다. 비상히 기억력이 좋은데다 지난날의 지하공작사업을 통하여 기록을 남기지 않고 모든것을 기억해넣는데 숙달된 권영벽은 한번 보거나 들은것은 마치 촬영하여 머리속에 끼워두기나 하는듯 절대로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는 이번에 압록강연안일대에 꾸려놓은 조직들의 회원구성과 인원수, 각 조직의 책임자들과 회원들의 이름까지 죄다 기억하고있었다. 이따금 한두마디씩 물으시면서 그의 조리있는 이야기를 내내 주의깊게 들으시던 장군님께서는 장백에서의 공작정형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퍼그나 기뻐하시였다. 《이번에 내가 전투부대를 데리고 하강구쪽에 나갔던 걸음에 그 방면에서 활동하고있는 김동무를 만나서 그간의 공작정형을 현지료해해봤는데 그쪽에서도 일이 괜찮게 진척되여가고있소. 그만하면 장백일대에는 어디나 굵직한 뿌리들을 뻗친셈이니 이제는 잔 뿌리들을 뻗쳐야겠소. 지회조직들밑에 많은 분회들을 조직해서 광범한 대중의 토양속에 잔뿌리들을 내리는 사업을 벌려야 하겠소.》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지회산하의 분회들은 분회에 망라될 대상들의 특성에 맞게 청년들속에서는 청년조직의 분회를, 부녀들속에서는 부녀회형식의 분회를 내오는 식으로 조직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네. 리제순동무가 살고있는 신흥촌같은데는 지회산하에 벌써 몇개 분회를 내올수 있는 가능성이 보입니다. 신흥촌청년들로써 곧 청년분회조직을 내올수 있고 부녀회도 인차 내올수 있습니다. 20도구에도 리취면장을 비롯한 사람들로 곧 분회를 조직할수 있을것 같고 재천수와 장흥촌에도 분회를 내올 가능성이 보입니다. 19도구지회산하에도 인차 여러 분회를 내올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19도구에는 촌마다 거의다 분회를 내올수 있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이번에 부대를 데리고 적구에 나갔다가 오시던 걸음에 리구장을 직접 만나보시고 실태를 료해해보신데 대한 말씀을 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급속히 확대되여가기 시작한 조국광복회조직들을 효과적으로 장악지도하기 위하여서는 지회조직우에 지구단위로 되는 상급조직을 내오는것이 좋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아직은 지회조직이 썩 많은편은 아니니 장백지구를 상하 두개의 강구로 나누어 구위원회를 조직해도 될거요. 그러나 지회조직이 더 많아지고 사업범위가 앞으로 더 넓어지구 커지면 상강구, 중강구, 하강구 이렇게 세개의 지역으로 나누는게 편리할것이요. 그우에 조국광복회 장백현위원회를 내와서 통일적인 지도를 보장하게 하고… 그건 좀더 연구해서 별도로 토론해봅시다.》 그이의 말씀을 명심해듣고있던 권영벽은 연구해서 대책안을 제기하겠다고 대답을 드렸다. 《옳소. 그렇게 해서 뒤에 따로 토론해봅시다. 그건 그만하구… 이젠 갑산에 들어갔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장백지구에서의 공작성과에 자못 흡족해지신 장군님께서는 박달에게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박달이란 사람을 만나봤소? 만나봤다? 리제순동무하고 같이 갔소?》 《네, 제순동무가 미리 간다는 련락을 하게 하고 같이 떠났습니다.》 권영벽은 자기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박달이가 상당히 치밀한 호위대책까지 취해놓은데 대하여 상세히 말씀드리였다. 《허― 역시 빈틈이 없구만. 신변호위까지 조직했다니… 그래 어서 계속하오.》 권영벽은 박달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과 국내의 애국자동무들에게 보내신 장군님의 친서를 받아들었을 때의 그의 감격에 대하여 말씀드리고나서 자기의 군복안주머니에 건사해가지고 온 유지에 싼 신문기사쪼박묶음을 꺼내여 장군님께 드렸다. 그이께서는 의아해하시며 유지를 펼쳐보시였다. 《이게 뭐요? 신문쪼박들이 아니요?》 《네, 우리 인민혁명군의 활동에 대한 국내신문기사쪼박들을 모은것입니다. 박달동무는 류치장안에서 휴지로 주는 신문쪼박에 우리에 대한 기사만 보이면 그것들만 따로 모아 옷혼솔갈피에 감춰두군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감〉이 글쓸 종이를 아껴 모아두듯 했구만.》 《네, 그 동무는 사령관동지의 친서를 받아보구 아무 말도 없이 한참동안이나 가만 앉았다가 바로 이걸 내놓지 않겠습니까. 우리에 대한 자기의 립장과 자기 신분을 확인할수 있는건 이것밖에 없다는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장군님을 꼭 만나뵈우려는 자기 심정을 전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 제가 이걸 사령관동지앞에 갖다 올리고 그 심정도 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하하…》 문득 그이께서는 호탕한 웃음을 터치시였다. 《그 사람이 아주 걸작이요. 사람이 원체 걸작인것 같소.》 그렇게 말씀하시며 한참동안이나 그냥 소리내여 웃으시는 장군님의 눈가에 축축한 맑은 이슬이 번쩍였다. 비록 얼마 안되는 보풀이 일고 손때가 묻은 몹시 구겨진 신문쪼박들을 모은것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유격대를 몹시 동경해온 박달이의 심정이 충분히 짐작되셨던것이다. 《네, 사람이 대틀이구 걸작은 걸작인것 같습니다. 저와 인사하구 마주앉은지 얼마 안돼서 한가지 물어보자구 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인민혁명군안에 국제당에서 나온 상주일군은 없는가구 그러질 않겠습니까?》 《뭐 국제당 상주일군이?!》 장군님께서는 그만 아연해하시며 또다시 폭소를 터뜨리시였다. 《네, 그 동무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국제당에서 직접 조직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부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는겁니다.》 《그래 그 동무가 진상을 알고는 뭐랍디까?》 《우리들 스스로가 직접 조직하고 지도하는 혁명군이라는것을 알자 기뻐하면서도 국제당상주일군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좀 섭섭해하였습니다. 앞으로 조선에 새 당을 내오는데는 국제당과의 깊은 련계가 결정적이라고 생각는겁니다.》 《허허… 그거 정말 웃기는구만.》 그이께서는 다시금 어이없으신듯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박달동무는 우리가 동포들을 랍치해간다는 신문들의 보도기사가 사실대로인가 하는데 대해서도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옆에 있던 리제순동무를 실례로 들면서 리동학경위대장동무가 제순동무를 우리 밀영에 데려올 때도 제순동무가 앞으로 적들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랍치되여갔다는 소문을 내게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박달동무는 제순동무를 한바탕 원망하더군요. 지난번에 자기한테 왔을 때 그저 바삐 서두르면서 자기가 알고싶은걸 물을 짬도 안주었다는거지요.》 《허허허… 아무래도 박달동무한테 우리 유격대와 밀영에 대한 견학을 조직해주어야 할것 같구만. 그 동무도 그걸 몹시 바라는것 같은데.》 《사실 그 동무는 갑산공작위원회라는걸 조직해놓고서도 투쟁로선과 방법을 몰라 여러군데 헤매다녔다고 합니다. 그 동무가 자작 조직한 갑산공작위원회라는 조직은 공산주의혁명과 조국광복에 대한 리념뿐이구 강령도 규약도 갖추지 못하고있었습니다.》 《만나줍시다. 나도 그 동무를 만나보고싶은데 적당한 시기를 택해서 그 동무를 우리 밀영에 데려오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권영벽은 밀영에 대한 박달의 방문승인이 내린데 대하여 제일처럼 기뻐하며 활기있게 대답하였다.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마침내 권영벽이 장백지구와 갑산지구에서 수행한 사업에 대한 보고를 끝마치자 장군님께서는 중요한 공작성과가 또 있는것 같은데 왜 다 말하지 않는가고 하시였다. 무엇을 념두에 두시고 하시는 말씀인지 얼른 가늠해낼수 없었던 권영벽은 어리둥절해하였다. 《자기가 한 일도 짐작이 채 가지 않는 모양이구만. 밀영에 돌아와서 〈김빠이〉에 대한 소식을 못들었소?》 《네?!… 못들었습니다.〈김빠이〉가 누굽니까?》 《아주 깜깜이군. 금이발쟁이 풍산청년말이요. 풍산에서 살다가 장백에 넘어가서 뜨내기품팔이군으로 떠돌아다녔다는 사람을 어디서 만난 일이 있지 않소?》 그제야 권영벽은 눈빛이 반짝했다. 《네,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 그 동무가 이마 넓은 유격대원을 만났다기에 권영벽동무를 만났겠다고 짐작했는데 틀림없었구만. 그 동무가 우리한테 찾아와서 입대했소.》 권영벽은 놀랐다. 《언제말입니까?》 《동무가 떠난지 한주일쯤 지나서 왔을거요. 풍산의 고향동무까지 한사람 차고 오다가 같이 오던 동무는 잃어버리구 혼자 찾아왔는데 우리 동무들이 처음에 적의 밀정이 아닌가 해서 붙잡아꽁지기까지 했댔소. 그런걸 내가 직접 만나보고 입대시켰소. 지금 사자봉밀영에 가서 훈련을 받고있소. 그 리창선동무가 금이발을 했다고 해서 오자마자 〈김빠이〉라고들 하던데 아주 쓸모있는 사람이요. 그 동무가 우리를 찾아 들어온걸 보구 나는 영벽동무가 대중정치공작사업을 성과적으로 해나가고있다는것을 벌써 알고있었소.》 장군님께서는 난로너머로 권영벽을 정겹게 넘겨다보시며 치하하시였다. 《저는 리창선동무가 그렇게 빨리 우리 사람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영벽동무가 어떻게 잠시 만난 사람을 교양해놨던지 창선동무는 영벽동무를 만난 그날밤으로 입대할 결심을 가졌다고 하오. 그 동무는 우리에게 천도교인들속에 침투할수 있는 길을 열어줄수 있소.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하는데서 천도교인들을 전취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소. 로동자, 농민 같은 기본군중은 확고히 우리를 지지하고있기때문에 그들을 조국광복회에 망라시키는것은 크게 어려울것이 없소. 그러나 천도교인들은 그렇지 않소. 관념론적인 세계관에 지배되여있는 그들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무턱대고 적대적인 립장을 취하고있는데 상층의 그런 립장이 아래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있소. 그런데 우리가 전취해야 할 수많은 가난한 농민군중이 천도교인으로 되고있다는데 문제가 있소.》 《이번에 박달동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갑산지방에서도 천도교 세력밑에 많은 가난한 농민들이 들어가있기때문에 골치아파하는것 같습니다. 천도교령북도정이라는 사람은 가난한 농민들을 모아놓고 우리에 대한 악선전까지 하는데 그게 영향이 좋지 못하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 리창선동무가 바로 천도교도정의 제자입니다.》 《제자일뿐아니라 천도교청년당에서 핵심당원이였던 동무요. 그런만큼 리창선동무를 길잡이로 해서 령북천도교도들의 우두머리인 도정과의 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려야 하겠소. 김주현동무가 선발대로 나왔을 때 사업해놓은것도 있고 해서 천도교장백종리원장이라는 사람은 우리에 대하여 좋은 립장을 취하고있소. 리창선동무의 말을 들어봐도 이번에 풍산에서 올 때 왜놈들에게 들켜서 아주 위험한 고비에 처했던 모양인데 종리원장이라는 사람이 숨겨줬다질 않소. 그리고 창선동무가 유격대로 찾아가는 걸음이라고 하니 길차비까지 해주더라는걸 보면 우리의 동정자로 된 사람이 틀림없소. 그러므로 창선동무와 그 종리원장을 통해서 도정을 전취하면 령북일대의 수많은 가난한 농민교도들을 거의다 조국광복회조직에 인입할수 있을것이요. 천도교도정과의 사업을 잘해야 할 또 다른 리유의 하나는 령북지대의 각 군과 읍들에 주재하고있는 〈동아일보〉지국장들이 례외없이 천도교도들이거나 그 영향밑에 있는 사람들이라는것이요. 우리는 그 지국들을 통해서 적의 군사 정보자료를 비롯한 많은 자료를 얻을수 있을뿐만아니라 지국들에서 신문사에 올려보내는 합법적신문들의 보도기사를 통해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에 대한 선전사업을 할수도 있소…》 권영벽은 자기가 리창선을 만났을 때 들었던것보다 훨씬 더 많고 중요한것을 지금 처음으로 들으면서 장군님의 비상한 혜안에 새삼스럽게 감탄하였다. 천도교도들과의 사업방향에 대하여 말씀하신 다음 장군님께서는 김정보에 대하여 알아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권영벽은 리창선이를 만났을 때와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료해한대로 말씀을 드렸다. 그 말씀을 드리면서 그는 문득 김정보가 리창선의 두번째 혼사를 주관했다던 말이 생각났고 이어 창선이가 그 혼사를 어떻게 처리하고 입대했는지 궁금스러웠다. 《나도 창선동무에게서 김정보에 대한 료해를 했는데 영벽동무가 알아본것과 자료들이 일치하오. 그 령감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동네에서 인심을 얻고있는것을 봐도 그렇고 정 나쁜 사람같진 않소. 그래서 내가 그 령감의 청대로 한번 만나보자고 하는데 그새 그럴 시간이 없었소.》 김정보에 대한 이야기까지 끝나고 이제는 일어나게 되였을 때 권영벽은 아까부터 못내 궁금스러웠던 리창선의 개인적운명에 대해 알고싶어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망설였다. 《더 무슨 할 얘기가 있는게 아니요?》 장군님께서 이렇게 물으시자 권영벽은 솔직히 말씀드렸다. 《네, 한가지 알고싶은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다른게 아니구 그 리창선동무가 이미 약속되여있었던 혼사문제는 어떻게 하고 입대하였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금시초문이신듯 되물으시였다. 《이미 약속돼있은 혼사라니? 그 동무는 이미 상처하였다는데 그건 무슨 소리요?》 《후실을 맞기로 돼있었다는 말을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은 일언반구 없었소.》 무슨 영문인지 짐작이 간 권영벽은 혼자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합니다. 그 동무가 그 이야기를 하면 입대를 거절당할가봐 그 말만은 아예 비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동무는 지양개에 있는 마씨로인의 딸과 혼사가 돼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김정보 로인이 깊이 관련돼있습니다. 그 김정보로인이 우리한테 붙잡혀와있기때문에 그 동무가 더구나 그 혼사이야기를 안한것 같습니다.…》 권영벽은 자기가 아는대로 혼인이야기를 자상하게 말씀드렸다.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시면서도 심각한 기색을 띠우시였다. 《그 동무는 김정보령감이야기만 하고 제 혼사이야긴 하지 않았소. 그런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자쪽에 온다간다 말없이 우리한테 왔다면 문제가 아니요. 만약 그렇게 됐다면 녀자쪽에서는 얼마나 락망하고있겠소? 우리가 자기 랑군을 앗아갔다고 여기지 않겠소?》 《네, 그렇게 여길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불행했던 딸이 다시 행복하게 되는가 생각했는데 사위감이 없어졌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우리가 그런 불행을 안겨줘서야 되겠소? 당장 어떻게 처리하고 입대했는지 알아보고 만약 그냥 뿌리치고왔다면 그 동무에게 단단히 비판을 주고 우리가 책임지고 그 결혼을 성사시켜주도록 합시다. 그거 정말 뜻밖의 화단이 날번 했구만…》 장군님께서는 허거프게 웃으시고나서 권영벽이더러 사자봉밀영에서 훈련하고있는 리창선을 찾아가서 천도교도정과의 사업에 대한 협의도 하는겸 혼사문제에 대하여 알아오라는 과업을 주시였다. 바깥 어디선가 흥겨운 하모니카가락이 울려왔다. 즐거운 무도곡 선률이였다.
바깥에서는 하모니카소리가 그냥 들려왔다. 누구인지 이번 출전에서 로획품으로 얻은 새 하모니카를 아마 시험연주라도 해보는 모양이다. 흥이 난김에 곡을 바꾸어가며 계속 불어댄다. 《음, 누군가 했더니 우리 꼬마로구만!》 권영벽을 바래실겸 문밖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저녁해볕이 따뜻하게 비쳐내리는 저편의 진대나무우에 걸터앉아 하모니카불기에 열중하고있는 꼬마전령병 주봉길이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시였다. 《그새 꽤나 발전한것 같습니다. 제법 감상할만 합니다.》 잠시 귀기울이고섰던 권영벽의 입속말이였다. 《음, 꽤 들을 멋이 있소.》 《저만하면 이제는 노래경연에 경위대선수로 내놔두 망신은 안시킬것 같습니다.》 리동학경위대장처럼 귀밝은 봉길이가 어느결에 여기서 나누는 낮은 말소리를 들었는지 문득 뒤돌아보더니 후닥닥 뛰여일어나며 하모니카를 슬그머니 바지호주머니에 넣고말았다. 장군님께서는 김주현을 보내달라고 권영벽에게 일러보내시고 전령병 주봉길을 가까이에 부르시였다. 눈이 말똥말똥해 서있던 봉길이는 다람쥐마냥 보르르 달려왔다. 《내가 봉길의 배낭에 잘 건사해두라고 한것이 있지?》 《14도구시가지습격전투후에 맡기신것 말입니까?》 《옳소. 그걸 꺼내서 내 책상우에 갖다놔주시오.》 봉길이는 물러나려다가 그뿐인가고 묻는다. 《또 있지.》 전령병은 두번째 지시를 기다렸다. 《그담엔 제자리에 돌아가서 다시 하모니카를 불면 되오.》 생글 웃는 봉길이의 한쪽볼에 보조개가 패인다. 주봉길은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그이께서 귀틀집에 도로 들어가시기전에 벌써 일러준대로 해놓았다. 집안으로 들어오신 장군님께서는 바깥에서 다시 들려오는 전령병의 하모니카소리에 맞추어 부지중 가벼운 휘파람소리를 내시다가 사령부군수관 김주현을 맞아들이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오늘따라 유별히 흥겨운 기분이심을 눈치챈 김주현은 저도 괜히 싱글벙글하며 그이께서 권하시는 통나무걸상에 무랍없이 넌떡 들어앉았다. 《군수관동무는 전리품이라면 누구보다 냄새를 잘 맡는데 어떻소? 좀 회계를 쳐봤겠지?》 장군님께서는 마주앉은 그를 다정하게 넘겨다보시였다. 《이번엔 아직 별로…》 《시치미를 따지 마오. 동무의 눈이 다 말하고있는데두?》 장군님의 입가에서는 만족스럽고 유쾌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네, 좀 대강 알아는 봤습니다.》 김주현은 자기가 알아본것을 몇가지 꼽았다. 《그것 보지. 요긴한것은 벌써 다 알아냈구만.》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소리내여 웃으시더니 어조를 바꾸시였다. 《군수관동무도 잘 아는것처럼 우리가 여기 백두산밀영에 나와 자리잡고 새롭게 투쟁을 벌린 다음에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아주 잘돼가고있소. 눈부신 전과들도 계속 올리고있고 지휘원들과 전투원들의 사기도 매우 높소. 조국광복회운동도 착착 성과적으로 진행돼나가고있소. 우리 혁명은 지금 바람을 탄 불길처럼 기세가 좋다고 할수 있소. 이것은 많은 동무들이 남호두회의와 동강회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투쟁한 대가로 얻어지고있는 성과들이요. 우리에게 훈장이나 메달같은것이 있다면 영웅메달을 달아줘야 할 동무들이 많을거요.…》 어느결엔가 통나무의자에서 일어나신 장군님께서는 집안을 거니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금 특출한 공훈을 세운 우리의 혁명전사들에게 달아줄 훈장도, 메달도 없소. 남호두회의이후 무송에서 우리가 주력부대를 새로 조직편성한이래 수많은 동무들이 우리 혁명발전에서 큰 공로를 쌓고 큰 기여를 했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들을 표창해주지 못했소. 물론 우리 동무들은 내가 주는 한마디의 치하만으로도 최상의 영예로, 최고의 표창으로 여기고있소. 그러나 어쩐지 그런 말로 하는 평가만으로는 좀 허전한것 같구만. 뭔가 기념이 될만한것을 표창해준다면 그걸 두고 쓸 때마다 자기 긍지를 더 높이 가질것 같거던.》 정숙하게 앉아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던 김주현은 장군님의 의도를 알아채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령관동지, 말씀드릴만 합니까?》 그는 뭔가 속궁냥있는 가벼운 웃음을 띠우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말하기를 기다리셨던듯 통나무의자에 와앉으시였다. 《어서 말해보오.》 《저 제가…》 김주현은 여전히 웃음을 띠운 입술을 감빨았다. 《여직껏 사령관동지의 그 심정을 헤아려 건설적인 의견을 제기하지 못했는데 지금 말씀을 듣고보니 생각되는것이 있습니다. 전리품이나 모연자금을 리용해서 금시계, 만년필같은 귀중품을 구해두었다가 어떤 기회에 모범적인 동무들에게 표창으로 수여하면 어떻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김주현은 자리에 앉았다. 《옳소.》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우시였다. 《동무가 면바로 알아맞혔소. 표창으로 수여할만한 귀중품이나 기호품들, 이를테면 손목시계나 회중시계라든지 만년필이라든지 권총 혹은 단검이라든지 또 하모니카나 좋은 수첩이라든지 하는것들은 보관해두었다가 빛이 나게 써야 하겠소. 무엇이든지 의의를 부여하면 다 가치있고 귀중한것으로 되는 법이요. 이 겨울을 보내고 새해봄을 맞게 되면 모든 동무들이 고대갈망해오던 국내작전을 단행할수도 있을것 같은데 그 력사적인 작전을 기회로 해서 잘 싸운 동무들을 표창할수 있도록 미리 이제부터 군수관동무가 표창감을 잘 마련해두는게 좋겠소.》 《알겠습니다. 사령관동지, 그건 념려 마십시오.》 김주현은 활기있게 말씀을 드렸다. 《앞으로 공로있는 조국광복회 지방조직일군들에게도 표창할 생각이니 그런줄 알고 미리살이를 잘하오. 그런데 이에 대해선 당분간 동무하고 나하고만 알고있어야 하겠소.》 《명심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 일어나시는것을 본 김주현은 이야기가 끝난줄로 짐작하고 옷깃을 잡아당기며 따라 일어났다. 《아직 가지 마오. 잠간만.》 그를 멈춰세우신 장군님께서는 붉은 탁상보가 씌워져있는 통나무책상곁으로 다가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그 책상우에 놓여있던 검은색 공단으로 싼 물건을 김주현에게 주시였다. 《이걸 가지구 새 군복 한벌을 지어 장철구아주머니에게 입혀드리도록 합시다. 그 아주머니에게 옷을 지어입혔으면 해서 마련해온 옷감이요.》 《…》 김주현은 옷감을 두손으로 받아든채 얼어붙은듯 꼼짝 않고 서있었다. 《내가 늘 철구아주머니의 손에서 밥을 받고 아주머니가 빨아준 옷을 받아입으면서도 아주머니를 잘 돌봐주지를 못했소. 저 먼저날밤에 보니 불티에 태워 구멍난 솜옷을 기워입었더구만. 그런걸 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날번 했소. 통강냉이를 삶다가 깜빡 졸아서 그렇게 됐다는데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랬겠소. 혼자서 숱한 사령부식솔의 식사를 보장하느라 철구아주머니의 수고가 여간이 아니요. 그러면서도 혹 나많은분이 주책없이 벌써 새옷을 태우고 찢기고 해서 헌옷으로 만들어 기워입었다구 흉보지나 않을가 해서 그러는지 사람들앞에 나서기를 거북해하는것 같더군…》 김주현의 눈길은 벌써 아까부터 가슴에 안은 옷감에 못박혀있었다. 하지만 그가 왜 눈을 들지 못하는지 아실리 없는 장군님께서는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마침 이번에 좋은 감이 생겼는데 몸에 꼭 맞게 잘 해입혀드리도록 합시다. 그속에 있는 은회색캬바직천으로 겉을 하고 그 검은 공단으로 안을 대서 솜옷을 만들면 나이든분이 겨울에 입기 좋을거요. 군복천감은 또 따로 그속에 있는데 그것도 좋은 천이요. 누구보다 마음고생도 많이 해왔고 또 모든 우리 동무들의 어머니나 친누이처럼되여 우리를 육친처럼 돌봐주며 수고도 많이 해오는 아주머니인데 잘 해입혀서 훤하게 내세워드려야겠소. 이제 나가는길로 인차 재봉대에 보내서 옷을 짓게 하시오. 치수를 잘 재서 꼭 맞게 해야겠소.》 김주현은 돌아가도 좋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는 그를 보신 장군님께서는 무엇인가 이상한것을 감촉하시였다. 《무슨 할 말이 있소?》 김주현은 주저주저하며 창백해진 얼굴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잔이슬방울같은 식은땀방울들이 돋아있었다. 그는 새파래진 입술을 움직거렸으나 말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요? 왜 그러오?》 장군님께서 근심스럽게 물으시였다. 《사령관동지… 제가… 제가… 그만…》 김주현은 떳떳하게 고개를 쳐들지 못하였다. 《무슨 일인지 그렇게 말하기 힘들어하오? 거기 앉아서 침착하게 말해보시오. 앉소.》 장군님께서는 통나무의자에 걸터앉으시였다. 하지만 김주현은 앉지도 못하였다. 《철구아주머니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여기 없으면… 어디 갔소?》 《병원에 가있습니다. 후방병원에… 보냈습니다.》 그이께서는 흠칫 놀라시였다. 그사이에 장철구의 신변에 그 무슨 불상사라도 있은줄로 여기신것이다. 《그래서 아까 우리가 돌아올 때 철구아주머니가 안뵈였구만. 어디 상했소? 혹은 앓소?》 김주현은 손등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훔쳤다. 《아니 몸은… 성합니다.》 《그런데 병원엔 왜 갔소?》 《제가 보내서… 사령관동지께서 출전하신 사이에 병원으루…》 더듬거리며 가까스로 말마디들을 이어가던 김주현의 웅얼웅얼하는 말소리는 중도에서 끊어지고말았다. 부지중 통나무걸상에서 움쭉 일어나시는 그이의 안광에서 시퍼런 번개불같은 섬광이 번쩍였다. 《사령부작식대에서 내보냈단 말이요?》 저력있게 울려나온 그이의 거쉰듯 한 음성이 침묵이 서린 무거운 공기를 뒤흔들었다. 문풍지가 부르르 떨었다. 《네.》 김주현은 겨우 소리를 냈다. 《어째서?》 《그 곰의골밀영에 들어온 밀정에게서 도끼와 독약봉지가 나온 다음부터… 저는 사령관동지의 신변 가까이에는 깨끗한 사람을 둬야겠다구 생각했습니다.》 장군님의 안광에서는 다시금 시퍼런 불꽃이 번쩍였다. 벼린 칼날에서 이는듯 한 푸른 섬광이였다. 《그럼 철구아주머니는 깨끗치 못한 사람이란 말이요?》 《…》 《동무는 그 아주머니가 독약을 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단 말이지?》 《…》 대답 못하는 김주현의 머리는 더욱더 깊이 수그러졌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소? 누구의 지시루?… 누구의 승인을 받고?…》 억이 막히시여 가쁜 숨을 몰아쉬시는 장군님의 안광에 번쩍이는것이 핑 어렸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소? 음? 이거야 곰이 제 주인을 해치는격이 아니고 뭐요? 곰이 제주인을 잘 재우겠다구 파리를 잡는다는것이 제 주인을 때려죽였다더니 동무야말로 나를 위한다는게 나를 어떻게 만들었소? 우리에게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주던 마음 깨끗한 그를 내쫓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소?》 잠시 얼어붙은것 같은 침묵이 서린 가운데 그이의 높은 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여기서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은줄은 모르고 철구아주머니에게 이제는 새옷을 해입히게 됐다고 좋아하며 왔댔소. 그런데… 동무는 내가 없는 사이에 그를 내곁에서 쫓아버리다니? 동무가 어쩌면 그럴수 있소?》 장군님께서는 한숨을 억제하시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뙤창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뒤짐지으신 그이의 손가락들이 후들후들 떨렸다. 《…다른 사람이 그런 실책을 범했다고 해도 모르겠소.》 한참만에 다시 말씀을 이으시는 그이의 목소리는 통분함에 젖어있었다. 《그렇지만 동무야 내 뜻을 제일 잘 알고 받들어주며 사업해온 지휘관이 아니요? 동무는 우리의 항일무장투쟁로선을 받들구 화룡지방에서 반일유격대를 뭇기까지 한 사람이 아니요? 혁명투쟁 경력도 오랜 주현동무가 어쩌면 그렇게 경솔하게 일을 저질렀는지 도무지 리해되지 않소. 그래 우리가 마안산에서 〈민생단〉보따리를 태워버리구 지난일을 무효로 선포한게 언제요? 반년도 더 지나지 않았소? 그런데 왜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불탄 재무지를 헤집어보는거요? 무얼 얻겠다구?》 장군님께서는 그냥 뙤창가에 마주서신채 김주현을 돌아다보시였다. 《동무는 그 묵은 재무지를 헤집기가 끔찍스럽지 않소? 애매한 우리 사람들이 모해를 받아 억울한 죽음을 당하구 의심을 받구 루명을 쓰고 기를 못펴며 지내던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구 몸서리쳐지지 않소? 동무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 아물어가던 지난날의 상처자국을 다시금 들쑤셔 상처가 도지게 할수 있소? 동무가 어떻게 우리 가슴을 긁어 피눈물을 짜게 만들수 있단 말이요?》 그이께서는 김주현에게로 돌아서시였다. 《제가… 그만… 신경과민적으로… 경솔하고 협소하게…》 흐느낌소리를 삼키며 겨우 몇마디 토막토막 끊기는 말소리로 웅얼거리던 김주현은 더 말을 못하고 비칠거리더니 통나무의자에 주저앉고말았다. 여전히 노기를 띠신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시고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돌아서시여 귀틀집구석쪽으로 걸어가시였다. 그랬다가 다시 돌아서시여 좁은 귀틀집안의 이곳저곳으로 말없이 한동안 거니시였다. 점점 더 깊은 어둠이 깃들어가고있는 집안에서는 그이의 무거운 발자국소리가 멎더니 다시금 그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 어조는 측은했다. 《주현동무, 립장을 좀 바꿔놓고 생각해보오. 근거도 없는 지난 허물을 트집잡아서 만약 우리가 동무를 따돌리고 내쫓는다면 어떻겠소?…》 《…》 침침한 집안에는 숨막힐듯 한 침묵이 서렸다. 김주현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철구아주머니는 우리밖엔 믿고 의지할데 없는 외로운 사람이요. 혁명에 충실했던 남편도 자식도 나쁜놈들때문에 잃었소. 그의 남편은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혁명의 이름을 붙일만큼 혁명을 사랑했고 혁명에 충실했소. 아들에게 〈혁명〉이라는 말 그대로 이름을 붙이면 적들의 의심을 살가봐 그 두 글자를 바꾸어서 〈명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오. 그런 사람이 혁명을 하다가 혁명의 배신자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했소. 명혁이도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진행한 나쁜놈들때문에 결국 산속을 헤매다니다가 병걸려 얼어죽었소. 철구아주머니도 두번씩이나 〈민생단〉혐의자로 몰려 갖은 치욕과 수모를 다 당하다가 우리에 의해서 구원받았소. 이런 철구아주머니에게는 세상에 우리처럼 믿고 의지할 사람이 더는 없소. 그런데 우리가 그를 배척했으니 어떻겠소? 가장 믿고 의지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배척당하는 마음의 고통은 가장 저주하던 인간에게서 받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법이요. 철구아주머니는 하늘같이 믿었던 우리에게서 배척받기보다는 나쁜놈들에게서 죽는편이 나았을게라구 모질게 생각할수도 있소. 지금 와서 쫓을바엔 전에 자기를 포섭하지나 말았으면 하고 원망할수도 있소.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됐소? 기만자가 되고 위선자가 되지 않았소? 인간의 믿음을 우롱하는 사기군이 되지 않았소? 자기가 약할 때는 환심을 사기 위해 믿음을 베푸는척하고 자기가 강해지면 자기를 믿고 따르던 인간도 헌신짝처럼 쥐여던지는것처럼 비렬한짓이 어디 있겠소? 인간의 신뢰를 유린하고 우롱하는것처럼 도덕적으로 악한것은 없소.》 장군님께서는 몹시 가슴이 쓰리시였다. 마안산에서 《민생단》혐의를 받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던 아동단원들과 4중대동무들을 만나보던 때를 내놓고는 오늘처럼 가슴아픈 일을 당해보긴 처음인 장군님이시였다. 한구석에 돌아서시여 지치신듯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던 장군님께서는 한팔로 귀틀벽을 짚으시고 그팔에 이마를 기대이시였다. 머리를 들고 그이의 뒤모습을 지켜보며 자책의 모대김으로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이그러뜨리고있던 김주현은 혼신의 힘을 짜내여 비칠거리며 일어났다. 《사령관동지, 죄송합니다. 저는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사령부에서 책임적인 사업을 할 면목이 없습니다. 저를… 저를 처벌해 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팔에 기대셨던 얼굴을 드시고 잠시 김주현을 눈여겨 돌아보시다가 그 구석에서 돌아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난로가로 다가오시여 다시금 통나무걸상에 지치신듯 한 몸을 실리시였다. 벌써 귀틀집안은 마주앉은 사람의 얼굴을 가려볼수 없으리만큼 어두워졌다. 그이께서는 난로문짬으로 너울거리는 불빛을 들여다보시며 퍼그나 가라앉으신 음성으로 조용히 타이르시듯 말씀하시였다. 《주현동무, 동무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가장 큰 정력과 노력을 기울이고있는가를 잊은것 같소. 우리는 지금 다문 한사람이라도 더 혁명을 하자는 사람, 혁명을 해야 할 사람을 얻어내고 만들어내서 우리의 혁명대렬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애쓰고있소. 우리가 조국광복회를 창건하고 광범한 대중속에 그 조직을 확대하고있는것도 수많은 사람들을 혁명을 하자는 사람, 혁명을 해야 할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였고 동무가 선발대로 나와서 정치공작사업을 했던것도 국경연안지대의 대중속에서 혁명을 하자는 사람, 혁명을 해야 할 사람을 한사람이라도 더 얻고 더 만들기 위해서였소. 또 지금 권영벽동무를 비롯한 많은 우리의 정치공작원들이 사선을 넘나들며 대중을 교양하고 조직을 꾸리는것도 바로 그것을 위해서요. 혁명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혁명은 빨리 승리하오. 나는 우리 조선사람들을 모두다 권영벽이나 김주현이나 장철구같은 혁명가로 만들고싶소. 바로 그렇게 하자고 애쓰고있소. 그런데 동무는 편견에 사로잡혀 우리 대렬에서 혁명을 해오던 사람까지 떼여내고있으니 어떻게 되겠소? 나는 많은 물을 채우자구 애써 동을 막고있는데 동무는 한쪽으로 솔금솔금 동을 허물어 이미 채워뒀던 물까지 흘려버리게 하는셈 아니요? 그게 어떤 물이요? 우리 조국을 강탈한 강도일제를 우리 조국땅에서 휩쓸어내여버릴 대하가 되고 대해가 될 물이요…》 조용한 음성이시였으나 마디마디 김주현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말씀이였다. 김주현의 바지무릎에는 가슴에서 솟구친 피눈물같은 눈물방울들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철구아주머니가 따돌리워간 사실이 알려지면 지난날 〈민생단〉혐의를 받은적이 있는 부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오. 이때까지 혁명을 잘해오던 그 숱한 사람들이 다 손맥이 풀릴거요. 우리 혁명의 핵심들인 그들이 손을 놓으면 우리 혁명은 어떤 지경에 이르겠소?… 지금 후방병원에는 곽두섭동무의 애인인 조분옥동무가 와있소. 그 동무도 지난날 혐의를 받고 숱한 고생을 했소. 나는 그 동무가 자기 애인곁에 와서 활개를 쭉 펴고 혁명을 잘하게 하자고 일부러 데려왔소. 그 동무를 따라서 거기에는 먼 림강마의하산간에서 혁명을 하자고 우리한테 찾아온 처녀도 있소. 그들이 철구아주머니가 무엇때문에 병원에 따돌리웠는가를 알게 된다면 과연 여기에 온 보람, 우리에게 온 행복을 느낄수 있겠소?… 어느 면으로 보나 동무의 이번 처사는 우리의 혁명위업을 그르치는 엄중한 과오로 된다는걸 알아야 하오. 그만하구 돌아가서 잘 생각해보시오.》 김주현은 그냥 한참동안이나 머리를 수그리고 앉아있다가 소리없이 일어나 출입문쪽으로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 그날저녁 장군님께서는 라명희가 날라다 차려놔준 식사를 전혀 축내지 못하시였다. 음식상에 마주앉아 눈에 익은 놋수저를 잡으시자 문득 끼니 때마다 음식을 차려놔주고 수저 드시는것을 보고야 조용히 물러나가군 하던 살틀한 작식대원의 모습이 눈앞에 비껴들며 마음을 아프게 찔렀던것이다. 남들이 뜨뜻한 집안에서 더운 음식을 마주하고 앉은 지금 철구아주머니는 어디서 어찌고있을것인가? 장군님께서는 웬일인지 철구아주머니를 마안산에서 처음 만나시였을 때 보시던 그 불쌍하고 가긍하던 정상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시였다. 묻는 말에도 제대로 대답 못하고 쳐다보는것마저 무서워하며 자꾸만 구석으로 구석으로 비실비실 물러앉던 람루한 차림의 녀대원… 아주머니에게는 죄가 없다고 이제는 머리를 당당히 들고 살며 싸워야 한다고 거듭거듭 일깨워주시자 오열을 터뜨리며 진창투성이의 그이의 신발을 붙잡고 거기에 얼굴을 묻던 흩어진 머리… 모두가 즐거운 저녁상에 마주앉을 이 시각에 그 녀인만은 그전날처럼 나무가지에 옷을 갈가리 찢기며 처참한 정상으로 차디찬 그 어느 숲속에서 외로이 헤매고있지나 않는지? 혹은 명혁이를 잃었던 때처럼 눈우에 쓰러진채 눈보라가 자기를 영원히 눈속에 묻어주기를 기다리지는 않는지? 혹은 그 어딘가 숨어서 우리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또 부르며 울고있지나 않는지? 도대체 병원까지 무사히 가닿기나 했는지? 도중에서 무슨 모진 마음을 먹고 어쩌지는 않았는지? 수저를 도로 내려놓으신 장군님께서는 전령병 봉길이를 김주현에게 보내시여 철구아주머니가 병원까지는 무사히 가닿았는지를 알아보라고 하시였다. 잠시후 돌아온 봉길이는 철구아주머니를 데리고 떠났던 후방부 운반대장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으므로 철구아주머니가 제대로 무사히 가닿았는지 혹은 가닿지 못했는지 그것을 모르고있다는것을 사실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러니 가는 도중에 무슨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바깥에서는 휘몰아치는 눈보라속에서 밀림이 울었다. (장군님! 장군님!) 그 어디에서인가 애절하게 부르는 철구아주머니의 가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것만 같다. 어디서 새여나오는 소리인가? 눈구뎅이속에선가? 꽉 엉킨 나무덤불속에선가? 아니면 그 어느 벼랑밑에서인가? 장군님께서는 마음이 진정되지 못하시여 그대로 귀틀집안에 계실수 없으시였다. 철구아주머니를 괴로운 번뇌와 한탄과 절망속에 시달리도록 버려두신채 그냥 앉아계실수 없는 장군님이시였다. 이 시각에도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있을것을 생각하실 때 그 당자보다 오히려 더 마음이 괴로우시였다. 혁명은 무엇때문에 필요했으며 무엇때문에 시작한것인가? 바로 인간들에게서 온갖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만사람이 고통없이 살기를 바래서 혁명에 나섰고 혁명을 해오는것이 아니였던가? 그러한 혁명가들이 같이 혁명해오던 사람에게 오히려 없던 고통을 들씌우고 안겨주고서도 과연 마음편할수 있단 말인가? 솜외투조차 걸치지 않으신채 문밖에 나서시여 눈보라이는 어두운 숲을 바라보시며 잠시 서계시던 장군님께서는 뒤따라나온 전령병에게서 솜군복외투를 받아입으시고 권총을 받아차신채 전령병을 데리시고 길을 떠나시였다. 이미전부터 후방밀영지를 돌아보시는 겸 홍두산초막의 김정보와 병원에 와있는 조분옥을 만나실것을 계획해오셨던 장군님께서는 장철구가 없어진 이 밤으로 그 걸음을 앞당기시였다.
장군님을 뵈온 뒤에 인차 그길로 리창선을 만나러 사자봉밀영에 갔던 권영벽은 저녁늦게야 돌아왔다. 날은 이미 저물고 소백수골은 희미한 달빛속에 잠겨있었다. 바람에 요동치는 컴컴한 분비나무숲속에서 해쓱하게 언 쪼각달이 얼른거렸다. 그는 리창선을 만나본 결과를 장군님께 알려드리려고 곧장 사령부귀틀집으로 올라갔다. 뙤창 창문지에 어린 불빛이 바람에 날려와 창턱우에 수북이 쌓인 눈을 불그스름하게 비쳐내렸다. 자기가 없는동안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모르는 권영벽은 장군님께서 계시는줄로 알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텅 빈것 같이 휑뎅그렁해보이는 집안의 상머리에서는 한 단발머리녀대원이 혼자 조용히 눈물짓고있다가 얼른 눈굽을 훔치며 일어났다. 장철구아주머니가 그사이에 단발을 했는가 하고 이상하게 여기며 가까이에 다가가보니 눈을 들지 못하고 외면하는 그 얼굴은 뜻밖에도 라명희였다. 《네가 여기서 웬일이냐?》 머리를 들고 그를 쳐다보는 명희의 이쁜 두눈에 금시 눈물이 그득히 괴여올랐다. 권영벽의 눈길은 상우에 놓인채로 있는 음식그릇들을 더듬었다. 음식이 담긴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릇들이였다. 수저를 대지 않은 그 음식그릇들에서는 김도 떠오르지 않았다. 식어버린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어디 계시니?》 《저녁도 안드신채… 철구아주머니를 찾으시려구…》 울며 가까스로 대꾸하는 명희의 말은 토막토막 끊기였다. 《철구아주머니를? 그 아주머니가 어데 갔게?》 《장군님께서 저희들을 데리구 출전하신 사이에… 그 아주머니를 사령부 가까이에 두고 사령부작식을 시킬수 없다고 멀리 돌려놨다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누가?》 따져묻는 권영벽의 목소리는 격해졌다. 《사령부군수관동지가…》 《주현이가?… 어째서?》 《적들이 독약봉지랑 도끼랑 채워서 밀정들을 사령부가까이에까지 침투시키는데 그전날에 〈민생단〉 혐의가 있던 그 아주머니를 어떻게 그냥 사령부가까이에 두겠느냐구…》 지난날 《민생단》혐의가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만 들어도 권영벽은 소름이 끼쳤다. 그가 아는 혁명자들은 거개 그 《민생단》감투를 썼거나 쓸번 했다. 권영벽이도 쓸번 하였고 김주현이도 그런 감투를 쓸번 했다. 꿈결에 들어도 속이 뒤집힐 그 《민생단》말마디를 다시 꺼내기가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 사람은 이미 백지화된 그 억울했던 지난날을 들춰내여 장군님께서 전장에서 돌아오신 이 저녁에 진지도 못드시고 눈보라치는 밤길을 떠나시게 한것인가? 명희한테서 얼마나 기막힌 일이 벌어졌는지를 자초지종 알게 된 권영벽은 억이 막혀 한동안 아무말도 못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군수관이…》 《없어요. 그런 사달을 쳐놓군 어디 뺑소닐쳤는지…》 흉금을 다 털어놔도 무방할 권영벽의 앞이였으므로 저혼자 속상해 울고있던 라명희는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면서 혼자소리로 푸념하듯 하소연하였다. 《이건 머리 크다는 사람들이 더 장군님의 속을 태워드린다니까. 뒤에선 군수관이 저러지 앞에선 중대장이 애말려드리지. 정말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곽두섭동무가? 그는 또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거냐?》 《놈들이 사처에서 득실거리며 미친개처럼 싸다니는 적진속을 야간행군하는데 담배를 피우면 글쎄 어떡한단 말예요? 우리뿐이라면 몰라두 장군님을 모시구 행군하는데 놈들이 그 불빛을 봤더면 무슨 변이 일어났겠어요? 아무리 담배피우고싶은들 그게 정신 있어요?》 《그게 정말이냐?》 분기가 치밀어오른 권영벽은 머리칼이 꼿꼿이 살아올랐다. 그는 통나무걸상에서 일어났다. 《너희네 중대장은 어디 있니?》 《우리 중대병실에 있을거예요.》 명희는 그렇게 대답해놓고나서 문득 무엇을 상기했던지 황황히 권영벽을 붙잡았다. 《그렇지만 만나 일러주려거든 후에 일러주구 먼저 작식대에 가세요. 작식대에서 오빠 저녁을 내놓은채 자릴 못뜨구 기다리구있어요. 장군님께서 식사를 못하시구 떠나가셨는데 오빠까지 식살 안하면…》 그러나 권영벽은 이미 출입문밖에 나섰다. 바람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눈가루를 휘몰아왔다. (어쩌면 곽두섭이가 그럴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분한 생각만 그의 가슴속에 꽉 들어차있었다. 곽두섭은 그의 중대병실 맨 안쪽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만나자는 짤막한 외마디말로 불러내고 돌아서다가 석유등불밑에 앉아 솜장갑을 깁고있는 오중흡이 눈에 띄우자 그도 역시 불러냈다. 베여낸 톱자리가 소반만치나 넓고 번번한 나무뿌리곁에서 멈춰섰다. 쪼각달은 바람에 인 눈가루속에 빛을 잃었지만 곽두섭을 노려보는 권영벽의 두눈에서는 푸른 린광이 일었다. 《두섭이,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분별없는 사람이 됐어?》 잠시동안의 숨가쁜 침묵끝에 권영벽의 입에서 불쑥 튀여나간 말이다. 그전날 같은 중대의 지휘관들이였으며 막역한 친구지간이기도 한 그들은 지금도 자기들사이에서는 너나들이로 주고받는 때가 종종 있었다. 완전히 심장을 열어헤치고 이야기하게 되는 지금같은 때였다. 곽두섭은 대꾸없이 황소같은 숨만 쉬였다. 《난 자네가 어떻게 그럴수 있었는지 도무지 리해되지 않네.》 영벽은 역시 자제하려고 애쓰는 목소리로 안타깝게 말했다. 《내가 무슨 일때문에 그러는지 자네 좀 생각되는게 있나?》 《있네.》 혀아래소리로 대꾸하는 곽두섭은 눈길을 바로 들지 못했다. 《뭔가? 한번 자네 입으로 좀 말해보게.》 《잘못했네. 내가 그만 참질 못해서…》 곽두섭은 입술이 탈탈 말라드는지 혀로 추기고 말을 이었다. 《…인내성이 모자라서 야간행군질서를 어겼네. 장군님사랑에 응석꾸러기가 되구… 들떠가지구… 그랬네.》 그 말에 권영벽은 참아오던 분기를 더이상 억눌러내지 못했다. 《인내성이 모자라서 야간행군질서를 어겼다구? 자넨 그렇게밖에 생각 못하나? 자넨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배신행위를 한줄도 모르는가?》 곽두섭은 일순 흠칫 놀라며 당황해진 눈길로 그를 건너다보았다. 《담배질이나 했다는것자체가 문젠가? 그 불빛때문에 사령관동지를 모신 부대를 위험에 빠뜨릴수 있다는걸 자네가 그래 모르고있었단 말인가? 누구에게 위험을 끌어들이는짓이란걸 자네가 몰랐단 말인가? 자네가 한짓이 장군님을 모시고 다니는 친솔부대의 지휘관이 할수 있는짓인가? 응?》 불같이 뿜겨져나오던 권영벽의 말마디들이 문득 목에 걸렸다. 뒤말을 잇지 못하고 울대뼈만 움씰거리는 그의 눈에 분함을 참지 못해 솟아오른 그 무엇인가가 번쩍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가… 자네가 어쩌면 그렇게 배은망덕하게 행동할수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리해하지 못하겠네.》 한참후에 다시 이어지는 권영벽의 말소리는 갈려있었다. 《장군님께서 자네 일때문에 얼마나 속태우시구 마음쓰셨는지 자네 알기나 하나? 자네의 그 분옥동무를 찾아내시려구, 자네의 마음을 밝게 해주시려구 장군님께서 얼마나 애쓰셨는지 자네 알기나 하나?》 《…》 《나는 오늘 공작갔다와서 분옥동무를 찾아냈다는걸 알았네. 자네가 그렇게 애태우던 분옥동무를 만났다는것두 알았네. 나를 만나시자 분옥이를 찾아서 자네곁에 데려온 그 소식부터 전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난 울었네. 자네 일이 너무 기뻐서만 운줄 아나? 자네네 일때문에 그토록 애쓰신 장군님의 뜻대로 된것이 너무 좋아서 울었네. 이제는 장군님께서 자네와 자네 애인때문에는 마음을 쓰지 않게 된것이 기뻐서… 울었네. 그런데 자넨 뭔가? 자네 어떻게 그럴수 있나?》 머리를 들고 얼핏 권영벽을 쳐다보는 곽두섭의 두눈에도 번쩍이는것이 어려있었다. 입술을 실룩거렸지만 한마디의 말도 번져내지 못한 그는 가슴이 답답한듯 목단추를 끄르며 큰숨을 내쉬더니 눈이 덮여있는 그 소반같은 나무뿌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오늘 밀영에 돌아와서 소사건 얘길 듣구 정말 놀랐네. 그걸 다름아닌 자네가 저질렀다는 말을 듣구 슬픈 생각까지 들었네.》 권영벽은 구슬프게 말을 이었다. 《장군님께서 한사람의 인민이라도 더 전취하시려구 갖은 애를 다 쓰시는데 자네가 신입대원 한둘을 옳바르게 일러주구 잘 가르쳐주지 못해서 그런 일을 저지르게 하다니? 장군님께서는 자네한테 분옥동무를 찾아주시려구 마음쓰시는데 자네는 장군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인민을 잃으시게 해드리려구 왼새끼를 꼰건가? 자넨 그렇게두 지각이 없는가? 그런 일루 장군님께 애말려드린것두 부족해서 또 장군님신변에 위험을 몰아오는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정세가 얼마나 준엄해진 때인데 자네 그런 정신없는짓을 하는가? 응?》 곽두섭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나무뿌리우에 걸터앉은채 여전히 일언반구의 대꾸도 없다. 바위돌마냥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 모양이 권영벽에게는 야속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한결 더 안타깝게 울렸다. 《자네도 장군님께서 이밤에 어디로 가셨다는걸 모르지 않겠지? 뭣때문인가? 주현동무가 장군님께서 뜻하시구 바라시는것과는 상반되는 청천벽력같은 사달을 쳤기때문이네. 그 일때문에 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속타시고 가슴아프셨으면 저녁도 못드시고 이 눈보라치는 밤길을 철구아주머니를 찾으시러 떠나셨겠나? 그런데 그이의 속을 태워드리구 가슴을 아프게 해드리는게 주현동무만인가? 뒤에서는 주현이가 그랬지, 앞에서는 자네같은 사람이 또 그렇게 속태워드리지… 이렇게들 우리 유격대안에서 장군님을 가장 잘 받들고 모셔올려야 할 머리 큰 지휘관들이 장군님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리구 속을 태워드리구 해서야 어떻게 그이께서 2천 3백만겨레를 묶어세워 광복의 성전에로 향도하셔야 할 그 거창하고 위대한 사업에 전심전력할수 있으시겠나? 그 어느때보다 힘차게 내달리는 우리 혁명의 바퀴가 되고 굴대가 되여 그이께서 바라시고 뜻하시는대로 조선혁명의 전성기를 향해 내달리는데 이바지해야 할 우리가 그 길을 가로막는 돌멩이가 되고 웅뎅이가 되고 가시쇠줄이 되고 함정까지 되여버린다면 그처럼 장군님과 인민앞에, 성스러운 우리 혁명앞에 무서운 죄행이 어디 있겠나?…》 눈보라속을 헤쳐나온 쪼각달빛에 권영벽의 량볼에서는 두줄기의 시내물이 번쩍거리듯 했다. 오중흡의 얼굴에서도 가는 물줄기가 번쩍거렸다. 《생각들해보게. 그래 우리가 이렇게 되자구 그 먼 교하에서 불원천리하구 백두산으로 달려나왔댔나? 그래 우리가 이렇게 장군님을 모셔드리자구 장군님을 찾아서 추위와 굶주림과 총검의 숲을 헤치며 왔댔나?… 중흡이, 말해보라구, 이렇게 속을 태워드리구 애를 먹이자구 왔는가 말일세? 어째서 자네는 가만 둬뒀나? 이 덩지값도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분별없는짓을 저지르는데 왜 자넨 막지 않았나? 자넨 불빛을 봤겠지? 왜 가만둬뒀나? 담배에 인백였다구 인심을 썼나? 왜 볼기라두 치지 않았어? 그렇게들 장군님을 모실바엔 차라리 장군님곁에 오지들이나 말거지. 왜들 장군님곁에 와서 애를 말려드리는가? 나는 장군님곁을 떠나 적후로 나갈 때마다 자네들이 늘 장군님을 모시고있기때문에 잘 모시리라 마음을 놓고 가군 했네. 자네들이 이렇게 모시고들 있는줄은 몰랐네. 내가 자네들을 너무 믿었던게 더 분하네.》 권영벽은 등을 돌리고 돌아섰다. 그리고 두사람을 뒤에 남겨 둔채 향방없는 걸음을 몇걸음 내짚었다. 별안간 뒤에서 거목에 그 무엇이 부딪치는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났다. 권영벽은 멈춰서며 뒤로 돌아섰다. 곽두섭이 머리를 싸쥐고 앉아있던 그 소반만한 나무뿌리우에 혁띠채로 풀어낸 권총집이 팽개쳐져있었다. 한옆에는 벗어놓은 군모가 있었다. 《영벽이, 나를 갈겨치워라! 나를 쏴라!》 그뒤에서 솥뚜껑같은 손으로 자기 가슴을 움켜잡은 곽두섭이가 피타게 소리쳤다. 《씨원히 없애치워라, 나를 쏴라.》 마음의 고통으로 하여 잔뜩 이그러진 그의 온 얼굴이 달빛에 번쩍거렸다. 권영벽은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마냥 다시 돌아서서 바람이 눈가루를 휘몰아오는 눈덮인 숲속으로 그냥 걸음을 옮겼다. 울부짖는 바람소리보다 더 거센 곽두섭의 울부짖는 흐느낌소리가 뽀얗게 서리는 눈보라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길을 갈수록 눈보라는 더 심하게 일었다. 한옆이 이지러진 쪼각달이 눈보라속에 어슴푸레한 빛을 던졌으나 뽀얗게 서리군 하는 눈가루때문에 두세걸음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길을 헛들기도 하시고 눈구뎅이속에 빠지시거나 딩굴기도 하시며 재봉소에 이르시였을 때에는 이미 쪼각달이 기울어버린 뒤였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여난 재봉대원들은 한밤중에 불현듯 나타나신 장군님을 놀라움으로 맞이했다. 김확실은 이틀전에 후방부 운반대장과 함께 이곳에 들린 철구아주머니가 자기들을 만나자 정신을 잃고 까무러쳤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에 얼마나 머물렀소?》 《눈보라가 심해서 여기서 하루밤 묵고 어제아침에 떠났는데 운반대장아바이가 말에 태워가지고 갔습니다. 그런 뒤엔 병원까지 무사히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김확실의 대답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래일이나 모레 다시 들리시여 그때는 몇시간 지내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재봉대원들을 의혹속에 남겨두신채 날밝을 시간까지만이라도 쉬고 떠나시라는 그들의 간청을 마다하시고 다시금 어두운 밤길을 떠나시였다. 새벽이 가까와오면서 눈보라는 더욱더 기승을 부렸다. 보이지 않는 비자루로 얼굴을 끊임없이 후려치는것 같은 눈보라였다. 숨이 턱턱 막히고 언 속눈섭이 껍진껍진 맞붙군했다. 때때로 바람에 몸이 날려 나무를 그러안으시고 한참동안씩 모진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셔야만 했다. 마침내 바람이 기승스럽던, 벌거숭이 이깔나무들만 서있는 산 말랭이를 넘어 아름드리 분비나무들이 꽉 들어찬 골짜기에 내려서신 장군님께서는 희미한 전지불빛속에 얼씬 비쳐드는 희끗거뭇한 이상한 형체를 보시고 주춤 걸음을 멈추시였다. 눈가루가 뽀얗게 서린 굵다란 쇠스래나무밑에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거뭇거뭇한 형체가 온통 눈범벅이 된채 엎드러져있었다. 전지불로 주의깊게 주변을 비쳐보시며 그리로 가까이 다가가시던 장군님께서는 거기서부터 얼마 못미친데서 움푹 꺼져든 눈구뎅이와 그 눈구뎅이에 빠져들어 몹시 신고했던 흔적을 발견하시였다. 파헤쳐지고 짓뭉개여진 눈에는 사람의 얼굴자국과 손자국이 찍혀져있었다. 누구인가 빠져 신고하던끝에 가까스로 기여나와 몇걸음 옮겨보려다가 기진맥진하여 저쯤에 가서 쓰러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에게 전지불을 들리시고 바삐 쓰러져있는 사람곁으로 달려가시였다. 《누구요?》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소리치시며 눈우에 온통 눈투성이가 된채 엎드려져있는 사람을 무작정 들어일쿼 품에 안으시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묻어오른 눈을 손바닥으로 훔쳐내시였다. 전령병이 비치는 전지불빛에 눈부스레기가 점점이 남아있는 그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김주현이였다. 《주현동무!》 전지불빛에 눈이 시여 눈시울을 바로 뜨지 못하던 김주현은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장군님의 격하신 음성을 듣자 일순간에 정신이 들었던지 그이의 품에서 움쭉 허리를 일으켜앉았다. 그리고 자기의 어깨와 잔등에서 눈을 털어주시는 장군님을 잠시 말없이 쳐다보았다. 《제가 왔는데… 왜 사령관동지께서도 여기 오셨습니까?… 이 눈길에… 이 어두운 밤길에… 제가 일을 쓰게 못해서 사령관동지께서까지…》 김주현은 말끝을 마무리지 못하고 흐느낌소리를 터쳤다. 장철구를 찾아서 다시 장군님곁에 데려다 놓으려고 눈보라 사나운 밀림의 어두운 눈길을 홀로 헤치며 여기까지 오는동안 자기를 가차없이 타매하고 저주해온 김주현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비록 아직 장철구는 찾지 못하시였지만 이러한 김주현을 만나신것이 더없이 반가우시였다. 진정으로 김주현이다운 김주현의 새 면모를 보신것이다. 《주현동무, 고맙소.》 장군님께서는 정겹게 속삭이듯 말씀하시며 김주현의 모자에 묻은 눈까지 말끔히 털어주시였다. 많은 뜻이 담겨진 그 한마디의 말씀앞에서 김주현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장군님께서 병원가까이에 이르시였을적에는 밀림속에 우련한 새벽빛이 비껴들기 시작할무렵이였다. 한결 수그러든 바람결에 초약 달이는 냄새와 연기내가 실려왔다. 시꺼먼 아름드리 거목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가문비나무숲속에서 크지 않은 귀틀집 한채가 나타났다. 거리가 차츰 더 가까와지자 처마밑에 드리운 굵다란 고드름들이 자기의 자태를 드러내며 차겁게 번들거렸다. 지붕우에서부터 땅바닥에까지 거의 미치게 내려뻗친 굵은 그 고드름들은 투명하고 울퉁불퉁한 수정기둥으로 귀틀집을 둘러막은것 같이 보였다. 장군님께서는 온몸에 묻으신 눈을 털어버리실념도 못하시고 문을 여시였다. 더운 기운과 함께 확 풍겨나오는 초약 달이는 김내… 타래치며 구름같이 자욱히 문간에 서리는 증기의 안개… 어두운 집안의 모든것을 가리워버린 그 안개는 장작불이 타고 있는 부엌아궁에서부터 차츰 걷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탕관 대신으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부엌아궁속에서 끓고있는 작은 법랑소랭이가 나타났고 다음에는 그것을 지켜 부엌아궁이앞에 앉아있다가 바삐 치마폭으로 눈언저리를 훔치고 문쪽을 돌아보는 자그마한 녀대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철구아주머니였다. 《누… 누구신지?》 철구아주머니는 놀라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울음기 섞인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는 온통 새하얀 눈사람이 되시여 들어서신 장군님과 봉길이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징군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출입문에 붙인 창호지를 통하여 희미하게 비껴든 새벽빛을 받으며 의아스럽게 쳐다보는 철구아주머니의 얼굴을 잠시 지켜보기만 하시였다. 며칠사이에 갑작스럽게 겉늙고 수척해져보이는 그 얼굴에는 금시까지 부엌앞에 앉아 남모르게 흘리던 눈물자욱이 채 지워지지 않은채 남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희미한 새벽빛속에서도 철구아주머니의 귀밑에 전에 보지 못하시던 몇오리의 흰 머리칼이 생겨난것을 대뜸 가려보시였다. 며칠만 그대로 지냈더면 그 머리가 온통 새하얗게 세여버리고 말았을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하루밤이라도 번지지 않으시고 그를 찾아 떠나오신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잃을번 했던 귀중한 사람을 찾아내고 잃지 않게 되신 크낙한 기쁨때문에 장군님께서는 이 순간 가슴뭉클해지는 행복감을 체험하시였다. 그것은 천만금을 주고도 얻어낼수 없을 행복한 체험이시였다. 철구는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 이 어뜩새벽에 소백수골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이 횡산골짜기의 외딴 귀틀집에 찾아오실수 있으리라는것을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철구는 누가 무슨 일로 환자들이 잠도 깨지 않은 병원귀틀집에 서슴없이 들어섰는지를 몰라 의심스럽고도 불안스러운 기색으로 장군님과 봉길이를 번갈아 훑어보는것이였다. 《철구어머니, 아 이거… 아직두 몰라… 보겠어요? 체… 제길!》 봉길이는 벙어리장갑을 벗은 손으로 입술과 코끝을 비벼댔다. 《…볼째기가 너무 얼어서 말두 제대루 못번지겠네.》 그는 이렇게 저혼자 두덜거리면서 장군님께서 계신쪽으로 돌아섰다. 《사령관동지, 제 눈을 털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벙어리장갑으로 그이의 옷에 묻은 눈을 털기 시작했다. 철구는 흠칫 놀랐다. 가벼운 전률이 철구의 온몸을 휩쌌다. 다시는 사령부근처에조차 얼씬할수 없게 된 자기앞에 영영 못뵈올줄 알았던 장군님께서, 아무리 뵙고싶어도 아무리 그리워도 아무리 그 다정한 음성을 듣고싶어도 가까이 범접할수 없을줄로만 알았던 그 장군님께서 바로 자기앞에 문득 나타나셨다는것을 알게 된 철구는 한순간 자기 눈을 믿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봉길이가 눈을 털어드리는 그이의 옷에서 자기의 손길이 미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만은 눈감고서라도 삼삼히 떠오르군 하던 바늘자리들이 나타나고 그이께서 천천히 벗어드시는 성에낀 털모자밑에서 오매에도 그리웠던 그 다정하신 영상이 안겨오자 그는《아!》하고 가벼운 탄성을 지르며 어푸러질듯 장군님앞으로 한발 내짚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는 문득 자기몸에 그 무슨 독약이 묻어있다는것을 자각한 사람마냥 두손을 슬며시 치마폭에 감추며 황황히 뒤로 물러섰다. 그를 찾아서 눈보라치는 어두운 밀림을 밤새껏 헤쳐오신 장군님앞에서 반가운 웃음을 보일 대신 비실비실 구석쪽으로 물러서는것이였다. 단 하루이틀이라도 어디 가셨다가 돌아오시면 허겁지겁 마중나와 인사하며 두손으로 그이의 언손을 감싸주며 자기의 체온으로 녹여주군 했던 아주머니였다. 그럴 때면 어머니와도 같이 살틀한 정이 느껴지군 했던 그 손이 앞으로 내미신 장군님의 손을 피해 치마뒤로 감춰지고있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속으로 울음을 삼키시며 억지로 웃음을 보이시였다. 《오래간만인데 어째서 손을 감춥니까?》 철구아주머니는 당황하여 어쩔줄 몰랐다. 《제 손이 어지러워서… 재가 잔뜩 묻어서…》 《일없습니다. 손에 재가 묻었다고 마음에도 재가 묻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주밋거리며 얼른 내밀지 못하는 철구아주머니의 자그마한 손을 다정히 잡으시였다. 그리웠던 장군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감촉하는 순간 철구는 참고참았던 설음이 북받쳐올라 그만 자기도 모르게 장군님의 손을 감싸잡고 머리를 숙였다.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 눈물이 그의 손에도 떨어지고 장군님의 손도 적시였다. 《림시 여기 일을 봐주러 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새 앓지나 않았습니까?》 《네…》 장철구는 그냥 한참동안 울고있다가 문득 자기 손으로 장군님의 손에 묻은 눈물을 훔쳐드렸다. 《장군님 손이 몹시 얼었습니다. 이 추운 새벽에 무슨 일루 이 먼데로 오시느라구 이렇게 몸을 얼궜습니까?》 장철구는 그이의 손을 주물러드리며 또 울음섞인 목소리로 걱정부터 했다. 《내가 찾아본지 오랜 환자동무들을 만날겸 멀리에서 우리에게 온 분옥동무랑 곱단동무랑 아직 만나보지 못해서 그 동무들을 만나보자고 왔습니다. 오늘 하루사이에 돌아볼데가 많아서 밤걸음을 떠났습니다만 마침 철구아주머니에게 볼일이 있다는 김주현동무가 길동무로 돼줘서 산보삼아 걷기가 좋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서글서글하게 말씀하시며 바깥에서 들어오기를 주저하고있다가 그제야 문을 열고 뒤늦게 들어서는 김주현을 정겹게 돌아보시였다. × 사령부에서 간부 아닌 보통사람이 나타나도 혹은 가벼운 부상을 당한 새 경상자가 오기만 해도 더없이 기뻐하는 병원사람들에게 있어서 장군님께서 오신 이 아침은 명절중에서도 아주 희한한 명절로 되였다. 장철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음에도 몸에도 날개가 달린것처럼 활기를 띠고 들떠서 덤벼치며 돌아갔다. 지금껏 노상 한 구석에 드러누운채 까딱 움직이지 못하던 중상자까지도 이 아침에는 아무의 부축도 받지 않고 저절로 일어나 앉았을뿐아니라 언제나 미간에 깊숙이 패여있던 내천자모양의 주름살들을 가신듯 없애고 벙긋벙긋 웃기만 했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생기와 행복이 넘쳐흘렀다. 이 뭇사람들가운데서도 분옥이와 곱단이처럼 이 아침이 평생 잊을수 없는 기념일로 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장군님을 몸가까이 뵈옵거나 모시는것이 첫번 일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분옥이와 곱단이에게는 장군님을 뵈옵는것이 난생 처음으로 되는 기회였다. 그것도 이미 만나뵈옵기전부터 하늘같으신 은혜와 남다른 어버이사랑을 받아안은 딸들이 지금껏 한번도 뵙지 못했던 자애로운 아버지를 처음 만나뵙는것과 같은 그런 뜻깊은 첫상봉이였다. 그러므로 이 샘물골의 자매는 장군님을 뵈옵는 첫순간부터 보이기 시작한 눈물을 온 아침동안 거두지 못한채 내내 행복에 겨워 젖어있는 반짝이는 눈들을 장군님한테서 돌리지를 못했다. 장군님께서도 역시 이 아침은 매우 기쁘고 즐거우시였다. 김주현의 참다운 면모를 보신데다 다시 웃게 된 장철구를 보시게 되고 또 차도많은 환자들을 대하시게 되셨을뿐아니라 건강해지고 생기에 넘쳐있는 조분옥이와 오곱단이까지 만나보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기쁨이 아름이 벌게 겹치고 또 겹치신셈이였다. 그런중에서도 숱한 곡절을 겪어온 조분옥을 만나보시게 된것은 각별히 인상깊고 감개무량하시였다. 세상에 흔치 않을 아주 기괴하고 불우한 처지에서 사랑을 맺지 않으면 안되였던 이 녀대원, 그 사랑을 나타내기만 하면 사랑자체는 물론 애인의 생명까지도 잃게 할수 있었던탓으로 애인을 한번도 떳떳이 애인으로 대해보지 못한채 리별의 고통을 겪어왔고 만난을 겪어온 이 녀대원에게서 밝은 웃음을 보시는것이 장군님께는 참으로 큰 기쁨이였고 행복이시였다. 이날 아침 장군님께서는 철구아주머니가 꼭꼭 눌러가며 두둑이 담아드린 밥 한그릇을 다 잡수시였다. 엊저녁식사를 건느셨던때문인지 몹시 달게 잡수시였다. 《언제 먹어봐도 철구아주머니가 지은 밥이 역시 별맛입니다.》 웃으시며 하시는 그이의 진정어린 말씀에 철구아주머니는 그이께 올리려고 들고가던 물그릇에 그만 저도 모르게 맑은 이슬방울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철구아주머니가 지어준 밥을 억지로 받아안고 앉아 숟갈질을 하던 김주현이도 숟갈질을 더 못하였다. 《곽두섭동무와 조분옥동무의 결혼식때에는 철구아주머니가 지은 밥을 큰상에 놔야 하겠습니다. 내가 곽두섭동무한테도 말했는데 놈들의 〈동기토벌〉이나 물리쳐놓고 온 부대가 다 모일만한 때가 되면 다 모인데서 저 동무네 결혼을 선포할 작정입니다. 그땐 아마 군수관동무가 뽕이 좀 빠져야 할거요. 뽕이 빠지더라두 곡절많았던 결혼인데 주현동무가 턱을 단단히 써줘야지.》 장군님을 모신 병원안에 즐거운 웃음이 차고넘쳤다. 웃음어린 뭇시선이 한껏 붉어진채 얼굴을 들지 못하는 조분옥의 머리와 어깨와 잔등을 살틀히 어루만졌다.
적막한 시골생활에서 제일 그리운것은 사람이다. 시골에 손님이 오는 때처럼 경사스러운 일이 더는 없을것이다. 적적하고 무료하기 이를데 없던 홍두산시골에 경사가 생겼다. 호젓하던 이곳 초막에 후방부 운반대장이 나타난것이다. 성필이네는 몹시 반가와했다. 여느때도 그러했지만 더구나 장군님을 만나서 꼭 중대히 건의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기어이 만나뵙도록 해달라는 김정보의 주제넘은 면담요청이 제기된 이후에는 갑절이나 더 소백수골에서 사람이 들어오기를 고대해왔던 그들이였다. 성필이와 《만강》은 김정보가 장군님께 감히 오만무례하고 불손하기 짝없는 면담요청을 제기한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 괴이한 애물두상태기를 여사여사하게 처리하라는 그 어떤 결정적인 대책이 취해지리라고 확신하고있었다. 어쨌든 이번에 소백수골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날에는 김정보문제는 결판이 날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괴짜령감때문에 이 갑갑한 시골초막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갈망을 품어온 그들이였다. 다른 한편 김정보 역시 자기 나름으로 이번에 초막에 손님이 오게 되면 자기의 정중한 요청에 대한 답변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왔었다. 그러나 이곳 초막 사람들이 한결같이 반가이 맞아들인 후방부 운반대장은 김정보문제와 관련한 그 어떤 사령부의 결론이나 답변도 가져오지 않았을뿐더러 그닥 신통한 새 소식들도 가져오지 못했다. 기껏 가져왔다는것이 말기르마에 싣고온 식량과 부식물 그리고 사령부작식대원으로 있던 장철구아주머니가 후방병원으로 조동되였다는 정도의 주로 후방소식 몇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소백수골에서는 거의다 출전하고 몇몇 사람들만 남아있는데 사령관동지께서도 언제 백두밀영사령부에 돌아오실지 알수 없다고 하였다. 초막에서 하루밤을 묵은 후방부 운반대장은 이곳 시골사람들에게 서운함만 남겨놓고 말을 타고 다시 횡산쪽을 향하여 눈보라이는 길을 떠나가고말았다. 그는 백두산밀영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봉소에 들려 새로 지은 버선과 속내의들을 말기르마에 싣고가야 한다는것이였다. 초막에는 또다시 김정보와 그를 지키는 최성필이네 두사람이 남았다. 어쩌다 나타났던 후방부 운반대장이 드세찬 코고는 소리를 내주고 말이 투레질도 하고 말오줌냄새도 풍겨준 그 몇시간동안은 그래도 무엇인가 더러 듣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고 생활의 약간한 변화도 있어 살것 같았지만 다시 세사람만 남고보니 몹시 허전하고 쓸쓸하고 갑갑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귀빈들이 불쑥 초막에 들이닥쳤다. 이날도 진종일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불어대는지 금시 눈을 치고 들어와 언손을 녹일라 하면 또다시 출입문을 여닫을수 없을만치 눈이 쌓이군했다. 그러므로 성필이와 《만강》은 시간이 멀다하게 겨끔내기로 초막밖에 나가 눈을 쳐야만 했다. 바로 그 시각에도 최성필은 바깥에 나가서 초막을 묻어버리다싶이 날려와 쌓인 눈을 치고있었고 《만강》은 저녁지을 차비를 하려고 부엌에 내려가 어물거리던 참이였다. 아무 할일 없는 김정보는 초막구들우에 팔굽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이른바 스스로 《홍두대》라고 부르는 곰방대(김정보는 홍두산초막에 와있는 사이 너무 갑갑한 나머지 장기쪽과 장기판 그리고 나무뿌리로 곰방대를 하나 깎아 만들었다.)에 담배를 피우면서 대통에서 고요히 피여오르는 실연기를 감상하고있었다。 불현듯 초막밖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수 없는 최성필의 다급한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만강》이 바삐 초막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그 역시 외마디탄성을 지르며 후닥닥 초막밖으로 달려나갔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출입문을 닫는것마저 잊어버렸다. 구들복판에 움쭉 일어나앉으며 열린대로 있는 문밖에 눈길을 던진 김정보는 초막앞의 눈에 묻힌 잣나무숲속길로 온몸이 새하얘보이는 두세명의 사람들이 눈보라속에서 얼씬거리며 다가오는것을 보았다. 그중에서 하반신에 너펄거리는 보자기를 둘러친것 같은 괴상한 차림을 한 유별히 작아보이는 사람은 맞받아불어가는 바람을 막느라 팔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리우면서 비척비척 걸어오고있었다. 눈칠엄두도 내지 못한 그 잣나무숲 사이길에는 눈이 무릎을 넘게 쌓여있어 초막을 향해오는 손님들도, 그들한테로 황급히 마중가는 성필이네도 눈속에서 선헤염치듯 했다. 문간에 눈가루를 휘몰아다가 회오리치게 한 세찬 바람이 출입문을 매정스레 덜컥 닫아버렸다. 그만 아쉽게도 적적하던 산골초막에 불쑥 찾아든 미지의 손님들을 관찰할수 없게 된 김정보는 한결 더 어둑어둑하고 침침해진 초막안에 홀로 앉아 귀를 도사렸다. 문앞으로 다가오는 빠득거리는 여러사람의 발자국소리와 말소리들이 들리기까지의 몇분동안이 김정보에게는 몹시 갑갑하고 지루했다. 《홍두산바람이 유명하다더니 듣던바대로 꽤 사납구만. 그래 이 바람세찬 벽지에서 어떻게들 지내오?》 윙윙 울부짖는 바람소리를 짓누르며 바로 초막 출입문앞에서 우렁우렁하고 저력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저 그럭저럭… 지냅니다.》 앞서의 음성에 비기면 모기소리같이 가늘게 들리는 최성필의 목소리였다. 《그저 그럭저럭 지낸다? 대답이 씨원치 못한걸 보니 이 산골서 지내기가 별로 신통치 않는 모양이구만. 하하하.》 통쾌한 웃음소리가 초막을 통채로 들었다놓는듯 들썽하게 울렸다. 그 웃음소리에 이어 옷과 신발에 묻은 눈들을 탁탁 털어버리는 소리들이 났다. 《자 어떻게 사는지 어서 집안으로 들어가봅시다.》 덜컥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리더니 키가 후리후리한 낯선 손님이 기웃이 초막안을 살펴보며 문지방을 넘어섰다. 옷에서 버석버석 얼음스치는 소리가 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손님은 부엌바닥에 내려서며 구들에 올리대고 인사말을 건넸다. 구들복판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마음속으로는 호기심을 품었으면서도 겉으로는 시답지 않은 눈길로 살피고있던 김정보는 뜻하지 않은 그 인사말에 약간 당황했다. 초막에 이따금 나타나군 했던 다른 유격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들어선 손님도 역시 자기를 구들바닥에 놓여있는 목침이나 부엌아궁속에 넣어 불태워 없애치울 썩은 나무등걸을 대하듯 별로 거들떠보지조차 않으리라고 생각한 김정보였다. 유격대원들에게 붙잡힌이래 그 어떤 인사말도 받아보지 못했던 그는 손님의 인사말이 자기 뒤에 있는 그 어느 다른 사람에게 한것이라고 착각하고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뒤에는 초막 뒤벽밖에 있을 사람이라군 없었다. 그는 뒤늦게나마 입에 물고있던 곰방대를 뽑아들고 례의를 차려《피차올시다.》 하고 앉은자리에서 점잖고도 위엄스럽게 머리를 끄떡였다. 그리고서야 다시 곰방대를 물고 풀썩풀썩 연기를 뿜어올렸다. 초막에 두번째로 들어선 손님은 앞사람보다 키가 작고 세번째로 들어선 손님은 그보다 또 좀더 작은 치마입은 녀대원이였다. 아까 열린 문밖으로 내다볼 때 아래도리에 보자기를 두른것 같이 보인 사람이 바로 이 나이 지숙한 녀인이였던 모양이다. 성필이와 《만강》은 맨 나중에 들어왔다. 집안이 어둑어둑한데다가 희미한 저녁빛이 비쳐드는 출입문창호지를 등지고들 서있었으므로 김정보는 손님들의 얼굴은 거의나 가려볼수가 없었다. 그저 키와 어룽어룽한 륜곽만으로 누가 누군지 어림짐작해낼수 있을뿐이였다. 두번째와 세번째로 들어선 키작은 사람과 녀성대원은 김정보에게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다. (대체 웬 유격대원들인가? 녀성병정까지 끼여있겠다? 좀 유별난 손님들인데… 헌데 앞사람은 나한테 인사말을 건넸겠다? 어찌 된셈인가? 들어서는 참 나를 보자 자기네 사람인줄로 잘못 여기고 실수한게 아닐가? 혹은 그 어떤 사람에게 대해서나 인사성 밝고 친절하게 대하는 젊은이기때문일가? 어쨌든 좀 유별난데가 있는 젊은이야.) 김정보의 관심은 저도 모르게 맨 앞서 들어왔던 키가 후리후리한 젊은이에게 쏠렸다. 그 젊은이는 잠시 초막안을 말없이 휘둘러보고나서 부뚜막앞에 바싹 다가서더니 먼저 가마뚜껑부터 열어보는것이였다. 그 젊은이의 온몸에서 청신한 기운이 확 풍겨왔다. 그리고 또한 유난히 이채로운것은 여전히 잘 알아볼수 없는 그 얼굴에서 두눈이 신비스러울만큼 번쩍번쩍 정기를 뿜는것이였다. 《점심식사는 해자셨군.》 가마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젊은이는 가마뚜껑을 도로 닫으면서 다소 안심되는듯 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래 〈만강〉동무의 생일날에는 무엇을 해자셨소?》 《사령부에서 보내준 밀가루와 고기로 만두를 해먹었습니다.》 최성필의 자랑스러운 대답이였다. 무슨 이야기들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김정보에게도 그제야 짐작되는것이 있었다. 얼마전 어느 하루 아침 김정보도 천만뜻밖에 돼지고기 소를 넣은 만두를 먹은 일이 있었다. 유격대에 잡혀온 뒤에 그런 색다른 음식을 받아보는것이 처음인 그는 자기의 의혹을 감추지 않고 유격대에서 무슨 명절되는 날이냐고 물었다. 그에 대답하여 《만강》은 자기네 유격대가 어느 한 밀영에 기여들려던 함흥 74련대의 왜군을 족치고 크게 승전한 턱이라고 말했다. 이제 알고보니 그게 바로 《만강》의 생일음식이였던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해자셨구만! 우리도 그날 여기나 왔더면 푸짐한 접대를 받았을걸… 허허…》 역시 그 이채로운 눈빛을 가진 사람이 걸걸하게 말하며 웃었다. 《그래도 아마 생일날에 제집에서 먹군 하던 차조밥이나 농말국수보단 못했을거요. 그날은 부모생각두 간절했을거구. 어떻소. 〈만강〉동무? 요즘은 집생각이 나지 않소?》 《만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안납니다.》 《허― 안난다?》 분명 웃사람의 어조였다. 《왜 부모처자가 그립지 않겠소? 집생각이 나지만 나라와 혁명을 위하여 몸바치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지고 집생각을 이겨나가는것이겠지. 어떻소, 그렇지 않소?》 김정보는 《만강》이 머리를 긁으면서 고개를 숙이는것을 어렴풋하게 알아보았다. (그래 분명 저 사람은 보통대원은 아니여, 벌써 사람들을 대하고 다루는 품이 웃어른이여. 무슨 직분에 있는 사람일가? 들어서자마자 가마안부터 살펴보고 생일날 먹은 음식을 알아보고… 혹시 새로 올라앉은 군수관이 아닐가?) 김정보는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왜들 구들에 올라가지 않고 비좁은 부엌바닥에들 서있소? 올라들갑시다.》 구들목에 성큼 올라선 그 사람은 김정보쪽에 등을 돌려대고 앉아서 꽤 신고스럽게 꽛꽛하게 언 미투리를 벗었다. 그전 군수관이 신었던 지하족보다도 못한 막농사군들이나 신군하는 삼신이였다. 누런 종이를 붙이고 덧붙인 아주 작은 뙤창을 통해 비쳐든 퍼그나 희미한 빛이 그 젊은이의 솜옷 한어깨에 있는 기운자리를 약하게 비쳐주었다. 그런즉 전 군수관보다 약간 낮은 자리에 있었거나 있는 사람일듯 했다. 큰 버선바람으로 구들에 들어선 그 젊은이는 초막안의 이구석 저구석을 돌아보기도 하고 구들을 짚어보기도 했다. 김정보의 존재는 안중에 없는지 아예 곁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처음에 인사말을 건네기에 초막으로 찾아왔던 기왕의 유격대사람들과 좀 달리 자기를 대하는가 여겼더니 그 역시 구들바닥에 놓인 목침이나 나무등걸만치도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분명 처음에 실수해서 건넸던 인사말을 뉘우치고있는지도 모른다. 《어허 으흠―》 이구석 저구석 휘도는 그 사람의 거동을 훔쳐보고있던 김정보는 자기가 결코 목침이나 썩은 나무등걸따위 취급이나 받을 존재가 아님을 선언하듯 항변적으로 마른 기침을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김정보의 생존선언을 아예 못들은것처럼 무시해버리면서 초막안이 왕왕 울리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자기들끼리의 말만 했다. 《불은 괜찮게 드는것 같구만. 구들이 구석까지 따끈따끈한걸 보니,》 《네, 불은 지피기만 하면 구들고래에서 내내 우뢰소리를 내며 막 빨아들입니다.》 이번에도 조장인 최성필이가 대답했다. 《이 천장구석엔 무슨 성에가 이리두 많이 돋았소? 귀틀이 잘못 물려서 짬이 난게 아니요?》 《네, 좀 짬이 있습니다.》 《왜 막지 않고 둬두오? 환기창 삼아 그냥 뒀소?》 《그저 집안이 그닥 춥지 않아서…》 최성필은 말끝을 흐리마리했다. 《바닥이 더워도 겉바람이 세면 감기에 걸리기 쉽소. 잘 막는게 좋겠소. 덮기는 무얼 덮구들 자오? 변변히 덮을것들이나 있소?》 《있습니다. 저먼저 군수처에서 모포 한장을 보내주었습니다.》 《한장뿐이요?》 《한장이면 넉넉합니다. 큰게 돼나서 〈만강〉동무하구 같이 덮고도 남습니다. 더구나 교대교대 자기때문에…》 《손님은 뭘 덮고?》 《여기 오는 손님이란건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오는 손님한테 덮을게 없을 때엔 우리 모포를 드리군 합니다.》 《아니 우리 사람들이야 무슨 손님이겠소?》 《아… 그… 저…》 성필은 갑자기 당황해서 인차 말을 번지지 못하고 갑잘랐다. 《자… 자기가 입고 온… 외… 외투를 덮군했습니다.》 구석에서 나누어지는 그 이야기에 김정보도 저윽 놀랐다. 손님이라니? 성필이가 떠듬거리며 외투소리까지 하는걸보니 분명 자기에 대해 《손님》이라고 불렀던게 틀림없다. (이게 도대체 어인 일인가? 반역죄를 저지른 죄인 잡아다놓고 죄인 대하듯 하는 나를 두고 《손님》이라? 초막에 들어서는 참 인사말도 건네고… 짜장 이게 야릇한 일이로다. 혹시 저 사람네들의 사령관이라는 김장군이 내게 대한 무슨 분부라두 내린게 아니여? 장군이 여사여사하게 하라구 일러보낸 사람 아니면야 저럴수 있나? 어디 좀 두고보면 알테지.) 김정보는 곰방대를 나무재털이에 탁탁 쳐서 재를 떨고는 다시 새 담배부스레기를 대통에 다져넣었다. 야릇한 흥분때문에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가슴속깊은데서 아무렴 그러면 그렇겠지 하는 배심이 새삼스럽게 살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쌈지에서 부시와 부시돌과 부시깃을 찾아내여 부시를 쳤다. 손이 후들거려 자주 빗맞았다. 그런대로 펑끗펑끗 몇번 불꽃이 튀였는데 불이 깃에 달리지 않았다. 《이젠 불 켤 때도 되지 않았소?》 마치 김정보가 불을 켜지 못하고있는것을 지켜보고나 있었던듯이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 그런데 잣나무관솔불이 돼서 그을음이 심하기때문에…》 그래서 켜기를 망설였다는 최성필의 어조였다. 《여기야 관솔불밖에 뭐 있겠소. 불이나 켜구 저녁차비들이나 하지.》 성필이에게 그렇게 일러주고난 그 사람은 김정보앞으로 다가와서 청신한 기운을 풍기며 점잖게 마주앉았다. 《내가 쳐드리지요. 이리 주시오.》 김정보는 부시를 치던 손짓을 멈추고 자기앞에 손을 내민 그 낯선 유격대원을 흘끔 치떠보았다. 역시 얼굴은 잘 가려볼수 없으나 두눈에서 마주보는 사람이 정신이 들만치 빛이 번쩍번쩍나는 사람이다. 젊은이는 단매질로 부시깃에 불을 달아주었다. 김정보는 담배에 푼푼히 불이 달릴 때까지 몇모금 연거퍼 빨았다. 찌륵찌륵 대진 끓는 소리가 났다. 《좋지 않은 담배지만 한대 마오.》 김정보는 젊은이앞에 담배쌈지를 끌어다 놔주었다. 《나는 아직 담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젊은이는 쌈지를 들어 담배냄새를 맡아보고는 쌈지의 앞주머니에 부시와 부시돌을 넣어주었다. 《여기 와서 담배는 어디서 얻어 피웁니까? 성필동무네가 얻어다 줍니까?》 《그렇소. 성필〈동무〉네가 공급해준 〈덕〉이요.》 김정보는 비양조로 대꾸했다. 《담배도 피울줄 모르는 성필동무와 〈만강〉동무가 담배를 구해다 공급했다니 다행입니다. 더러 담배가 떨어지진 않습니까?》 《〈다행히〉 떨구진 않았소. 내가 아껴 피우기도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우리 동무들은 뭐니뭐니해도 담배가 바른것이 제일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담배가 떨어져 기갈이 날 때면 가둑잎을 담배대신 피우군 하지요. 이 외진곳에서 담배를 떨구지 않았다니 그만하면 담배대접은 잘 받은셈이겠습니다.》 불현듯 초막안에 깃들어있던 어둠속에서 첫눈에 얼핏 보아서도 아주 뛰여나게 이목이 준수한 젊은 청년의 웃음지은 용모가 나타났다. 성필이가 부엌에서 켜단 조명용 관솔불을 그들 두사람 가까운데로 올려다놓은것이다. 대뜸 끌리여 눈을 떼지 못할만큼 푸른 젊음과 건강미에 넘치는 퍼그나 단정하면서도 의젓해보이는 그 얼굴에는 보조개를 가진 인자한 미소가 떠돌고있었다. 정기가 넘쳐 흐르는 두눈에는 어딘지 모르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러잡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마주 대하자 곧 사귀고싶어지는 청년이였다. 《보아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는것 같은데 젊은이는 날 대하기가 꺼려지지 않소?》 《나는 선덕어른을 일부러 만나보러 온 사람입니다.》 《나를…?!》 김정보는 입에 물려던 곰방대를 내리웠다. 그리고 마주앉은 청년을 새삼스레 유심히 건너다보았다. 자기의 별호를 알고있을뿐더러 일부러 자기를 만나러 왔다는것이 놀라와서였다. 《그럼 젊은이는 김장군께서 나에게 파해보낸 특사이시오?》 《내가 사령관입니다. 어른께서 나에게 중히 이깨워줄 말씀이 있으시다기에 한번 들어보자고 들렸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여유있는 웃음을 머금으시고 침착하게 말씀하시였다. 저윽 놀란 김정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틀고앉았던 올방자를 풀고 한쪽무릎을 엉거주춤 일으켜세웠다. 《그냥 편히 앉으십시오.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장군님께서는 활달하고도 의젓하신 손짓으로 제지하시였다. 김정보는 그이의 권대로 슬며시 무릎을 내리고 다시 올방자를 틀면서 여전히 너그럽고 상냥한 웃음을 띠우고계시는 그이의 서글서글한 용모와 름름한 자태에서 반신반의하는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성필이네가 입은것과 다를바 없는 수수한 솜군복같은 토목으로 지은 행전과 큰 버선, 구들목에 벗어놓으신 미투리, 성필이가 받아 뒤벽의 나무옹이에 걸어놓은 개털모자… 차림새에서 다른점은 역시 성필이가 받아서 개털모자밑에 걸어놓은 야전가방과 권총집뿐이였다. 그런 야전가방이나 권총은 군수관도 메고 차고 했었다. 《으흠.》 김정보는 목청을 가다듬느라고 헛기침을 하며 곰방대를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길게 드리운 반백의 풍만한 턱수염을 내리쓸었다. 《늙은이를 골려주는건 온당한 처사가 아니요. 나는 젊은이가 보던중 의젓하고 점잖은 유격대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그렇게 함부로 늙은이의 신뢰를 저버리시오? 어서 김장군께서 분부하신 용무나 말하오.》 뜻밖에 김정보의 노염부터 사신 장군님께서는 약간 아연해지시며 성필이며 봉길이를 돌아보시다가 싱긋 웃으시며 다시 김정보를 건너다보시였다. 《내가 선덕어른한테서 사령관이라는 인정을 받자면 어떻게 해야 될것 같습니까?》 김정보는 담배를 두어모금 뻐끔뻐끔 빨았다. 《어쨌든 참 말할 재미는 있는분이요. 그걸 몰라서 나에게 묻소? 어서 무슨 분부를 받구 왔는지 그게나 말하오.》 《나는 그걸 좀 먼저 알고싶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유쾌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김정보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내가 군사에 청맹과니라고 생각지 마오. 자고로 어떤 군사에 있어서나 사령관은 그에 어울리는 풍격을 구비한다는것쯤은 상식중의 상식인데 어찌 유격군에서라고 사령관과 일반장병들과의 사이에 무슨 구별이 없으리란 말이요? 아무렴 당신네 김장군이 지금 이 초막안에 있는 당신네들 같은 광목솜옷따위나 입구 저따위 미투리나 신고다니리란것을 누가 믿겠소? 도대체 당신네 사령관은 이같이 허술한 이런 벽지초막에 오실리도 없소. 그분이 나를 만나실 의향이 계시다면 수하사람을 파해서 데려가면 데려갔지 죄인 취급하듯 해서 가둬둔 사람을 스스로 찾아다니는따위의 체면 깎이는 걸음을 하지 않을거요. 듣자니 당신네 김장군은 20대청년장군이시라던데 사람은 젊을수록 자존심이 강하기마련이요. 젊을수록 그 기상이 푸르청청한때문이겠지. 젊으신 당신네 사령관이라고 례외이실수 있겠소? 내 말이 어떻소?… 말없이 웃기만 하는걸 보니 더는 할 소리가 없는게로군.》 사리정연한 자기 말에 스스로 만족해진 김정보는 처음으로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미 담배불이 죽어버린 고불통을 수염투성이의 입언저리에 가져갔다. 《허허…》 장군님께서도 소리를 내시여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그건 아직 우리가 어떤 군대인가 하는것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인민혁명군은 인민의 아들딸들로 조직됐구 인민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군대입니다.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입니다. 우리 인민이 미투리나 짚신을 신고 사는데 사령관이라고 어찌 미투리를 신지 못하겠습니까? 나에게는 지금 번쩍거리는 장화같은것도 없지만 미투리를 신었다고 해서 군사지휘와 통솔에 지장받은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무렴 사람이 사람을 거느리지 신발이 사람을 거느릴수야 없지 않습니까?》 출중한 인물 아니면 도저히 할수 없을 그 범상치 않는 말씀에 얼떨떨하여 김정보가 무어라 대꾸할지 몰라하고있는데 한옆에서 그를 쏘아보고있던 최성필이가 김정보에게 쏘아붙였다. 《령감, 그게 무슨 본때요.》 분김에 씩씩거리며 그는 새파래진 입술을 짓씹었다. 처음 김정보를 붙잡아올 때 성이 독같이 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성필동무, 그게 무슨 불손한 태도요?》 장군님께서도 조용하나 엄하게 성필이를 꾸짖으시였다. 그러자 성필은 그이 옆에 꿇어앉으며 간청하듯 아뢰였다. 《사령관동지! 이 벽창호같은 령감태기를 아예 상대치 말아주십시오. 우리하군 영 통하지 않는 젠벽입니다. 괜히 상대해주셨다가 화만 당하실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말은 들은척도 않으시고 그의 무릎을 가벼이 떠미시였다. 《저리 가서 철구아주머니를 도와 어서 저녁이나 짓도록 하오. 동문 상관할바 아니요.》 《사령관동지!!》 안타까이 쳐다보는 최성필에게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엄하신 눈길로 물러가라고 질책하시였다. 최성필은 어쩔수없이 씩씩거리며 마지못해 옆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자기앞에 앉아계시는분이 다른이 아닌 유명한 유격대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이심을 비로소 확신한 김정보는 입에 물고있던 곰방대를 황황히 뽑아쥐고 두손으로 구들바닥을 짚으며 그이 앞에 희슥희슥한 반백의 머리를 숙였다. 《이 미거한것이 미처 장군을 알아뵙지 못해 죄송하오.》 그는 진정으로 미안해하며 사과를 겸하여 새삼스럽게 인사를 드렸다. 《아까는 장군이신줄 몰라보고 장군이 먼저 해주신 인사에 변변한 답례말도 올리지 못했소. 뒤늦었지만 섭섭해마시고 내 인사를 받아주시오.》 《아까 인사를 나누었는데 또 무슨 재벌인사를 하겠습니까?》 그이께서 만류하셨지만 김정보는 더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나는 장군께서 날씨까지 사나운 오늘같은 날 이러나저러나 유격대에서 목을 베인대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처지에 있는 나를 만나주시려구 일부러 이 심산유곡의 빙천설지를 찾아주실줄은 상상도 못했소. 고목같은 이 늙은것의 진정을 헤아려 몹시 바쁘실 귀중한 시간을 떼내여 친히 이 홍두산 깊은 오지초막에 갇혀있는 나를 방문해주신데 대하여 장군께 먼저 감사를 올리는바이오.》 김정보는 다시한번 머리를 숙였다. 《내가 여기로 걸음한데 대해서는 특별히 감사받을 일이 못됩니다. 근처에 따로 볼일도 있고 해서 왔던차에 겸사 여기에 들렸을뿐입니다.》 기실 장군님께서는 장철구를 다시 사령부작식대원으로 소환하실겸 횡산지구의 후방기지들을 순회하시게 된 이번 기회에 사령부의 안전후보지로 내정되여있는 홍두산밀영까지 돌아보시려고 거기 오셨다가 김정보를 만나보시기 위하여 다시 이 초막이 있는데로 들어오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병원에 따라왔던 김주현이도 그냥 함께 데리고 오시려다가 사령부와 주력부대의 세간살이를 도맡다싶이 하고있는 그까지 갑자기 없어진채 여러날 백두산밀영을 비워두실수 없으시여 그만은 소백수골에 돌아가도록 하시고 곁에서 떨어지고싶지 않아할것 같은 철구는 데리고 오셨다. 《너무 겸손하신 말씀이요. 장군님께서 이 늙은이를 안중에 두시지 않았더면 그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셨겠소?》 《그야 응당한 일 아니겠습니까? 로인님이 우리를 위해서 긴하게 일러줄 말씀이 있다는데 항일전에서 선배되시는분께 우리가 참고삼을 무슨 교훈적인 좋은 이야기라도 있는지 들어봐야 할것 아닙니까?》 김정보는 불이 꺼졌던 고불통에 다시 불을 붙였다. 《나한테서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어봐주시겠다는 그점 특히 고맙소. 그런데 내 우선 한가지 묻고싶은것은 나를 항일전 선배로까지 불러주는 유격대에서 어째서 나를 그 무슨 피의자 취급하듯 해서 이 심산벽지에까지 끌어다놨는가 하는것이요.》 《로인님이 우리 유격대에 대해서 곡해하고 험담한다는 이야기를 좀 들었습니다. 그새 여기 와서 지내며 늙은분이 여러모로 불쾌하고 불편한 점이 많았으리라고 짐작됩니다.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널리 량해해주셔야 하겠습니다.》 《나를 붙잡을 때에야 나를 편안스럽게 해주자고 단행한 처사가 아니였을게 틀림없지 않소? 나에게 기껏 불쾌와 불편을 줘놓고 량해니 뭐니 하고 말씀할바에야 애초에 그렇게 란폭한 처사를 하지 말았어야지. 초면에 이런 직바른 얘기부터 한다고 장군께서 섭섭히 여기실지 모르겠소만 그렇지 않으시오, 장군?》 김정보는 노여움이 살아올랐다. 곰방대에서 피여오르는 실연기가 파들파들 떨며 타래졌다. 내내 너그러운 웃음을 띠우고계시던 장군님께서도 차츰 웃음을 거두시였다. 《우리 동무들이 로인님에 대하여 깊이 알아보지 못하고 좀 경솔하게 처사했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잘못을 인정하는데 그리 린색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신이 아닌이상 누구나 만사에 티끌 한점 없이 원만을 기할수는 없습니다. 더우기 성필동무랑 아직 원만한 처사를 기대하기엔 너무나 젊고 또 보고 배운것도 너무나 적은 나이가 아닙니까? 만일 여기서 그 누구를 탓해야 한다면 공정한 립장에서 누구보다 먼저 선덕어른자신을 탓해야 할줄 압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내가 나를 탓해야 하다니?》 《내가 알기에는 우리 동무들이 모연하는 목적을 명백히 밝히구 설명했다는데 어째서 로인님은 자신을 지금같은 처지에 빠뜨렸습니까? 만약 로인님이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것이라든지 또는 모연에 응할수 없는 까닭이라든지 설명하고 깨우쳐줄 이야기가 있으면 차근차근 깨우쳐주고 설명해줄 일이지 그렇게 란폭하게 처사할 법이 있습니까? 사령관인 나까지도 깨우쳐주겠다는 어른이 저 성필동무네 같은 유격대의 평대원 한둘을 설득시키기는 고사하고 불명예스럽게 처신해서 저 동무들께까지 괴롬을 준걸 도대체 누구탓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걸 과연 어른다운 처신이였다구 할수 있겠습니까?》 무안해진 김정보는 괜히 어험어험 헛기침질을 하며 몸둘바를 몰라하더니 이윽고 장군님을 정시하였다. 《그 지당하신 말씀을 듣고보니 내가 도리여 면목이 없이 됐소. 하고 본즉 내가 스스로 화를 사서 고생해온셈이였구만. 저 사람네 앞에서 이거 일이 되려 창피스럽게 됐소.》 김정보는 성필이와 《만강》쪽을 돌아다보며 호방하게 소리내여 웃었다. 장군님께서도 다시 소리없이 웃으시였다. 《그러나 그 화가 로인님한테나 우리에게나 도리여 복으로 될는지도 모르니 아직 후회하긴 이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우리는 우리와 손잡고 싸우려는 우리의 동정자, 지지자들을 데려오는 경우에도 그들의 신변상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우정 우리에게 나쁘게 구는 사람을 붙잡아오는것처럼 가장합니다. 그래야 그분들이 돌아가서 적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오히려 신임을 받으면서 우리 일을 잘 도울수 있기때문입니다. 만일 로인님도 우리한테 붙잡혀온것으로 되지 않고 무사히 돌아간다면 필경 왜놈들의 의심을 받게 될것이고 여러가지 시끄러움을 당할것입니다.》 《딴은 그렇군!》 《로인님이 이 초막에 와서 지내게 된 덕에 로인님에게나 우리에게나 다같이 리득으로 될 의롭고 성스러운 일을 위해서 서로 손잡고 뜻을 같이하게 된다면 그에서 더 좋은 일이 없을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화가 도리여 복으로 되는셈이 아니겠습니까.》 유격대를 설득시켜 그 뭇 끌끌한 젊은이들과 같이 제딴의 《리상촌》을 본때있게 꾸려볼 속심인 김정보는 그이의 말씀에 진정으로 공감이 갔다. 《그러니 후회하긴 이르단 말씀이였군.》 《그렇습니다. 후회하게 될지 안하게 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일입니다. 이제부터 로인님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보고 또 로인님도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보신 연후에야 의합이 되는가 안되는가를 알수 있을것입니다.》 《그 역시 매우 지당한 말씀이요.》 김정보는 또 한번 머리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는 장군님께서 이토록 사리에 밝으시고 현명하신데 대하여 마음속으로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렇게 현명하신만큼 자기의 교훈적인 조언도 쉽게 깨치고 받아주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그럼 어디 나를 만나시자는 까닭을 말씀해보십시오. 우리에게 중히 일깨워주자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디 들어봅시다.》 장군님께서 진중하게 말씀하시자 김정보는 약간 난색을 지으며 저켠구석에서 아까부터 눈이 올롱해서 줄곧 감시하듯 자기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는 어린 전령병 봉길이와 부엌에서 불을 때면서 이따금 도끼눈으로 자기를 흘끔흘끔 치떠보고있는 최성필이 그리고 가마목에 돌아앉아 저녁차비를 하고있는 장철구를 저어하는듯 한 눈길로 휘 둘러보았다. 《만강》은 바깥에 경비를 나가서 초막안에 있지 않았다. 《장군의 수하병정들이 눈들이 말똥말똥해 앉아 다 듣는 이런 좌석에서야 어디 말할수가 있겠소? 장군님께서 무방하다면 추운대루 바깥바람을 좀 쏘이면서 얘길 나누든지 혹은 적당한 다른 밤시간을 타는것이 어떠시오?》 《내 체면이 우리 사람들앞에서 깎일가봐 그러십니까?》 《내가 체신머리없이 수하사람들 보는데서 사령관의 권위를 훼손해서야 되겠소? 장군이 아무리 겸손하기로서니…》 《그건 공연한 걱정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일러줄 이야기라는데 모두 함께 들으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로인님앞에는 자기 체면따위나 생각할 졸장부가 앉아있지 않으니 안심하고 하고싶은 이야기를 툭 털어놓고 기탄없이 하십시오. 그런 체면을 생각했다면 아마 나는 로인님과 마주앉지부터 않았을것입니다.》 《장군께서 그렇게 대범하니 내 주저없이 말하리다.》 김정보는 난색을 거두고 화색을 띠우며 다 피운 곰방대를 재털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방정하게 세우며 가슴에 풍만하게 드리운 희슥희슥한 수염을 두세번 내리쓸었다. 풍신좋은 늙은이의 얼굴에는 기나긴 인생행로를 걸어오며 세상의 온갖 달고 쓴맛을 다 보아온 인생선배다운 주름살들이 위엄스럽게 잡혀있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내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는 말이 있소만 나는 이 초막에 와서 저 성필이네와 같이 지내 보기전까지는 장군휘하의 공산유격대에 대해서 그릇되게 알고있었소.〈공산비적〉이라고 하는 말이 왜적들이 유격대를 모독해서 지어낸 못된 말인줄 모르구 공산로서아에서 생겨나온 그 무슨 〈비적〉들인줄로 여겼소. 내 그래서 유격대에서 모연금때문에 내집에 찾아왔을 때 너희들이 진짜 조선독립을 뜻하는 의로운 광복군사일것 같으면 감히 나를 몰라보고 아닌밤중에 권총차고 내앞에 뛰여들수 있느냐고 노발대발 호통치구 그 덕에 결국은 예까지 불잡혀오기도 했소만… 나는 그때 저 성필이네가 유격대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운다고 하는 말을 나헌테서 돈과 재물을 얻어가지려구 꾀하는 허튼소리로 여기며 듣질 않았소. 장군도 잘 아실터이지만 그럴밖에 없는것이 지금껏 조선독립을 이룩해보겠다구 총잡고 싸우는 광복군사가 조선에건 만주에건 중국관내에건 어디 남아있는게 있소? 이 장백땅오지에도 더러 남아서 가끔 인가에 나타난다는건 진짜 마적이나 비적들밖에 없는 형편인데 〈공산비적〉이라고 불리우는 유격대를 처음보게 된 장백사람들가운데 그를 조선독립을 뜻하는 새로운 의군으루 여길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그럴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 대해서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 수긍하시였다. 《그렇소이다. 지내보지 않고 원쑤놈들이 지어낸 못된 소리만 얻어들은 사람들은 다들 〈비적단〉인줄로만 알지요. 헌데 내 이 초막에 들어와서 저 사람네와 같이 며칠 지내본즉 〈비적〉은 무슨 말라빠진 〈비적〉이겠소? 천하에 량인도 그렇게 어질고 순하고 정직하고 참된 량인들이 어데 있겠소? 고현놈들! 그런 량인의 군을〈비적〉들이라니…》 김정보는 불쑥 치받쳐오르는 울기때문에 약간 후들거리는 손을 또다시 곰방대가 있는데로 뻗쳤다. 《그전에…》 빈 곰방대를 입에 물고 쌈지를 헤치던 김정보는 문득 물었던 빈 곰방대를 뽑아들며 말을 이었다. 《의병들이 국권을 회복해보겠다구 화승총을 들구 산에서 살며 저 섬오랑캐놈들과 대적해 싸울 때도 저 고현놈들이 〈화적〉이니 〈비적〉이니 온갖 못된 이름을 다 갖다붙이더니 지금 유격대를 〈공비〉라고 하는게 꼭 그 모양 그 본새란 말이외다. 천하에 무도한 날강도놈들… 남의 나라를 백주에 도적질한 날도적놈들이 제 나라 찾자구 싸우는 의군더러 〈비적〉이라구?…》 김정보는 희번득거리는 눈알을 굴리며 빈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이 순간의 그의 기상은 자못 엄엄했다. 그는 한참만에야 담배를 담지 않은 빈 담배대를 빨고있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담배쌈지에 손을 뻗쳤다. 《이거 내 말이 좀 곁가지를 칠번 했군.》 담배를 피워물고 연거퍼 몇모금 빨고난 그는 끊어졌던 말을 이었다. 《내 하자던 얘긴즉 여기 와 지내며 보니 장군휘하의 유격대란것이 전에 우리가 해본 독립군들보다 때벗이를 한 신식독립군이더라 그 말씀이요. 내 비록 유격대를 몇사람 상대해보진 못했소만 차림새며 언행들을 두루 살펴볼것 같으면 총들도 신식총이구 행동거지들두 고루하질 않구 말들도 개명한 언사들을 쓰는게 과시 신식조선독립군이 분명치를 않겠소? 어떠시오 장군! 내가 본것이 옳으시오?》 《비슷합니다. 어서 말씀을 계속하십시오.》 《내 비록 붙잡혀와있는 몸이지만 아직까지도 기가 죽지 않고 활약하는 신식독립군을 만났다는게 얼마나 희한한 일이요? 사실 내 저 사람들앞에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소만 한여름에 시원한 샘물을 만난 때처럼 기분이 좋았소. 저 먼 로서아나 몽고땅에 가면 세상이 온통 모래천지로 된 사막이라는 곳이 있다는데 그런데서는 물이 발라서 사람이 못산다는 이야기를 내 들은적 있소. 그런데서 어쩌다 물을 만나면 얼마나 반갑겠소?》 《사람 못살 사막에 어쩌다 있군 하는 샘물을 오아시스라고 합니다. 그런데서는 사람도 살고 나무와 풀도 자라고 짐승도 삽니다.》 《나는 그런 샘물을 뭐라고 이름하는지 몰랐소만 내사 바루 사막에서 샘을 만난것 같은 감상이였소…》 김정보는 대진 끓는 소리를 내며 또 몇모금 고불통을 빨았다. 《…이 시원한 샘물이 광복의 대하를 이루어 사람 못살 사막같이 돼버린 저 삼천리강토를 적시며 흘러나간다면 숨답답하게 지내고있는 2천 3백만 우리 겨레앞에 얼마나 창창한 살길이 열릴손가… 혼자 이런 꿈같은 생각을 가려보는 이 늙은것의 가슴속에서는 피눈물이 떨어지는것 같았소. 내 이런 얘기도 오늘 장군앞이니 툭 털어놓고 하오만…》 또다시 늙은이의 입에 물린 곰방대안에서는 대진 끓는 소리가 찌르륵거렸다. 《왜 그런 희망찬 생각을 하시면서 이왕이면 피눈물을 흘리겠습니까? 맑은 기쁨의 눈물을 지을수도 있지 않습니까?》 진중히 앉아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이야기가 동강난 틈에 조용한 어조로 곁드시였다. 《장군의 말씀대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슴속에서 피눈물 아닌 맑은 기쁨의 눈물을 지을수 있었다면 내 부디 할일 많으실 장군을 만나 이렇게 이야기를 벌려놀 작정을 했겠소? 내 이 고목같이 굳어진 팔다리를 들구라도 한바탕 춤이나 추고 집에 내려가서 가산을 다 털어서라두 의연금을 마련해 한시바삐 바치자구 훨훨 날아가구 말았지.》 《그렇게 못하실 까닭은 무엇입니까?》 《장군께 내 한가지 물어보기요. 사막에 있는 그 샘이라는데서 대하가 흘러내려본적도 있소?》 《사막을 지나 흘러내리는 강들은 있지만 작은 샘물에서 그렇게 큰 대하가 이루어져 사막을 적시는 경우는 없는것 같습니다.》 《바로 그렇소. 유격대가 광복의 대하로 돼서 삼천리에 굽이쳐 흘러나갈수 있다면 왜 피눈물을 흘리겠소? 넓은 사막천지에 하나밖에 없는 그 샘마저 조만간에 다 말라버리고말것을 생각하니 피눈물이 나지. 그 아까운 샘이… 조선에 더는 없을 끌끌한 젊은이들의 마지막무리가 불원간에 흔적없이 사라질것이 원통스럽기때문이요.》 무거운 한숨소리와 함께 이렇게 말한 김정보는 무릎우에 내려 들고있던 고불통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나 인차 기침을 일으켜 한참동안이나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얼굴을 돌린채 쿨룩거렸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기침을 멈추고 다시 얼굴을 돌리기를 기다리셨다가 말씀을 건네시였다. 《우리가 광복의 대하되여 굽이치게 될지 아니면 말라버리는 샘으로 조만간에 존재를 마치게 될지 그것 역시 두고봐야 할일이 아니겠습니까?》 김정보는 입언저리와 수염에 묻은 침방울을 훔치고난 손수건을 밤색 비단조끼주머니에 쑤셔넣으며 희슥희슥한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치 늙은 사자가 털이 거푸수한 머리를 젓는듯 했다. 《아니외다, 장군! 그건 두고봐야 알일이 아니외다. 망국의 설음속에 살아온 우리 겨레가 이미 근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두고두고 보아왔구 그 결말이 어떠하다는것을 이제는 알고도 남은 기정사실이요. 오랜 세월을 거쳐 검증을 받아 명명백백하게 결판을 본 기정의 사실이외다. 천하무적의 의기로 항일대전의 새 길에 나서신 푸르청청한 장군께는 지금 하늘의 별이라도 딸것 같은 자신심으로 충만되여있어 이 늙은 패장의 말이 청승맞은 자기 변명처럼 들릴수도 있소. 허나 아는 길도 물어가랬다구 선험자의 교훈에 대해 심사숙고해보심이 랑패없을줄 아오.…》 《우리가 새로 시작한 항일전이 성패가 이미전부터 운명지어진 승산없는 혈투라고 한다면 우리는 애당초 이런 싸움을 벌리지부터 않았을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너그러우신 웃음속에서 저력있는 음성으로 단호히 잘라 말씀하시였다. 늙은 김정보는 이번에는 머리만 아니라 고불통을 든 손까지도 휘휘 내저었다. 《40여년전 이맘때에 저 충청도 제천땅에서 우리 나라 근대사에서 맨 선참으로 왜적을 반대하여 의병투쟁의 기치를 추켜들고 전국 8도강산에 그 뜻을 고하여 나섰던 류린석선생도 〈정의앞에는 대항할 적이 없다는 말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고 언명하셨댔소. 가망없는 싸움을 벌린다고 믿지를 않으셨소.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나서 저 연해주 우쑤리지방에 있는 남만비촌에서 홍범도의병대장, 리범윤의병대장을 비롯한 각지 의병장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참의회〉를 뭇고 류린석선생을 13도의병총재로 모셔올릴 때도 의병대장들 모두가 국권회복의 성업을 기어이 달성하게 되리라고 기대했소. 꼭 되고말 일같이만 여겨졌기때문에 망국의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이번에는 새로 독립군을 무어서들 싸움을 새로 벌려본게 아니겠소? 리동휘가 왕청 대전자에 동림무관학교를 세우고 신민회의 다른 패거리들이 류화현 삼원포에 신흥강습소를 설치하구 정의부패는 화전에 화성의숙을 세우구 또 홍범도나 서일이같은 사람들이 〈포수단〉이요 〈중광단〉이요 하는 숱한 독립군단체와 독립군양성소를 만들어낼 때는 과연 그 누가 조국광복이 올라가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했겠소? 기미년 하추에 〈조선독립군〉사령 홍범도대장이 수백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갑산, 혜산 일대와 만포, 강계, 자성 등지에 련속 나타나 왜놈군사를 삼대베듯 하며 맹호같이 날뛰고 또 이듬해 경신년 여름 왕청봉오골에서 숱한 왜군에게 즉살탕을 먹일적에는 정말 조선독립이 금시 다 되는것 같았지요. 허지만 어떻게 됐소? 봉오골싸움을 치른지 불과 넉달이 되나마나해서 화룡 청산리싸움을 당하고나서는 난다긴다하는 홍대장도 약자필패의 교훈만 받아안고 쏘중국경의 흑룡강쪽으로 간신히 피해 가있다가 흑하참변을 기해서 지리멸렬되고말지 않았소? 나도 구한국 군인총을 왜군놈들에게 바치지 않고 그대로 의병부대에 들어갔을 때에는 우리 싸움이 승산없는 쌈으루 되리라고 생각질 않았소.》 김정보는 고불통을 빨았다. 피여오르는 실연기로 하여 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히고 희망찼던 지난일을 더듬는 로인의 얼굴에 일종의 서글픈 미소가 떠돌았다. 《그게 정미년이였으니 어언 30년전일이요. 그 전전해 을사년에 을사망국조약을 강제루 맺게 하여 우리 나라 외교권을 빼앗아낸 악귀같은 이등박문이란놈이 우리 나라 내정권까지 죄다 빼앗아내는 〈한일협약〉이란걸 또 내리먹이구 불과 한주일 못돼서 우리 조선군대를 해산시켜버리지 않았겠소? 그날이 바로 정미년 팔월 초하루날이였는데 이날아침 왜놈들이 조선군대를 해산시킬 음모를 하고있다는걸 미리 눈치채고있던 우리 시위대 1련대 1대대장인 박성환참령은 망국에 겹친 망군의 비분을 참을길 없어 자결로 항의불복했소. 왜놈들이 우리 군대를 해산시키려 한다는 소문에 이를 갈고있던 우리는 박참령의 자결소식을 듣자 무기고를 털어 손에 총을 잡고 일본교관놈을 쳐죽이구 폭동을 일으켰소. 우리가 병영을 박차구 거리에 나서 왜군과 싸움을 벌리자 시위 2련대의 1대대와 2대대 군인들도 합세해서 놈들과 시가전을 벌렸소. 그때는 무서운게 없었소. 놈들은 남대문과 서소문성벽에 대포와 기관포까지 걸어놓고 우리가 성문을 돌파하지 못하게 하느라고 악을 썼지안 보총밖에 쥐지 않은 우리 폭동군인들은 성난 사자처럼 용맹스럽게 싸웠소.》 김정보는 두손으로 그때 싸우던 모습을 형용하면서 말을 이었다. 《놈들은 우리보다 몇배나 많았지만 우리 힘을 당해내지 못했소. 탄약이 떨어지지만 않았더면 쪽바리놈들은 그때 그자리에서 멸종됐을거요. 우리 폭동군인들도 무리로 쓰러졌소. 그러나 우리는 전우들의 시체를 넘어 적포에 육박해서 적을 무찌르구 남대문성문을 열어제꼈소. 그길로 우리는 총을 멘대루 곧장 의병부대를 찾아가서 의병이 됐소. 그때는 온 나라 도처에서 우국충정을 지닌 애국용사들이 의기를 들고 일떠섰소. 우리 조선군대가 해산될 때 그 수가 9천명밖에 안됐다는데 그가운데서 절반이나 되는 사오천명의 해산군인들이 의병부대에 들어갔소. 거기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소. 농사군이건 장사군이건 대장쟁이건 백정이건 포수건 유생이건 군인이건 가림없이 닥치는대로 손에 총과 도끼와 죽창과 검을 들고 왜적을 우리 조국강토에서 몰아내보자고 싸웠소. 어찌나 의병이 많았던지 그 정미년 초겨울에 강원, 경기 량도 의병들만 한데 모여 서울을 총공격해들어가자고 경기도 양주 왕방산에 모인적이 있었는데 그 수가 무려 만여에 달했소. 거기서 강원의병대장 리린영이란 사람을 13도의병총대장으로 삼고 허위를 군사장으로 삼아 서울총공격을 결정지었는데 그때는 나도 일조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을듯싶더군. 허기야 그때 군사장 허위 인솔하의 선발대가 서울 동대문밖 30리앞에서 기본대오가 이르기전에 우세한 왜군의 공격에 좌절당하지 않고 또 공교롭게도 부친사망을 당해 일시 고향에 다니러 갔던 리린영총대장이 놈들에게 발각되여 잡히지 않았더면 력사에 다시없을 서울총공격의 기회에 국권회복의 대망을 성취했을지도 모르오. 30여년전 그때만 해도 왜적의 무리가 지금처럼 우리 강토에 많지는 않았소. 아니 내가 만주땅에 넘어와 독립군부대를 끌고다니던 20여년전까지도 독립이라는 숙원을 이룩하는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못해낼 일로는 여겨지지 않았소.…》 김정보는 긴 한숨끝에 다시 말을 이었다. 《허나 강약이 부동하니 강자필승 약자필패하는것은 사람의 힘으로써는 어찌할수 없는 자연의 리치요. 자연계에서나 인간세상에서나 약육강식은 약자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막을길 없는 법칙인가보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장군께서는 나를 패배주의자라고 할지 모르나 그것은 피치 못할 약자의 운명임을 우리 세대의 교훈으로 장군께 아뢰고싶소.》 《그 교훈으로부터 우리에게 권고하고싶은것은 무엇입니까? 어쨌으면 좋겠다는것입니까? 투항하면 좋겠습니까?》 그이의 미간이 처음으로 약간 찌프러지시였다. 《투항이라니?!》 김정보는 눈을 흡떴다. 《내가 어찌 그 철천지원쑤 왜적에게 투항을 설교하겠소? 아니외다. 장군! 지금 대적해 피를 흘리는것은 헛된 일이라는 말씀이요. 힘을 길러 강자가 될 때까지 일시 총을 감추고 대세를 엿보며 힘을 기르는것이 좋겠소.》 《그 총은 언제까지 감추고있어야 할것 같습니까?》 《김장군, 이런걸 좀 생각해보셨소? 저 왜적들이 수십만 장학량군이 틀고있던 동삼성을 불과 5~6만 군사로 하루밤사이에 삼켜버렸다는걸… 지금 장군의 휘하에 몇만이나 몇천의 유격대병정들이 있는지는 나는 모르오만 기껏해야 몇만이상 더 되겠소? 그 병력으루 수십만 왜적을 상대해서 승산이 있을것 같소? 지난세기말부터 얼마나 많은 조선의 끌끌한 젊은이들이 국권을 회복하고 조국광복을 이룩해보겠다구 젊은 피를 뿌리며 악전고투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바쳤소?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흘린 피가 삼천리강토와 만주광야를 적토로 만들고 우리 나라 강들은 수십년간 붉은 피에 적셔져 푸른 빛을 잃었지만 적은 더욱더 강세해지구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더욱더 찾을 가망이 없게 됐소. 이제 이 나라엔 제 나라를 찾자는 마음을 변치 않고 간직한 인걸도 없소. 오직 김장군 한분밖에 없소. 이러한 장군마저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승산없는 싸움을 무모하게 벌리기만 하면 우리 조국의 광복위업에 대세가 유리하게 기울어질 때 그 누가 항일대전의 최후전장에 기치를 들고나서겠소? 장군! 내가 지양개에 리상촌을 꾸려놓고 장래에 나라를 떠메고 나갈 인재를 양해보자구 꿈꾸어오면서도 그걸 제대로 해오질 못하였는데 나를 대신해서 휘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내려가 대세를 엿보며 항일대전을 용이하게 결속지을 결정적인 힘을 마련함이 어떠시겠소?》 로인의 진지한 시선앞에 장군님께서는 딱한듯 한 미소를 보이시였다. 《지난 여름에 왜적들도 나에게 그 비슷한 제의를 해왔습니다. 내가 길림에서 학교를 다닐 때 동창생가운데 회교를 믿는 집안의 자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가만히 거리에 나와 부모 몰래 돼지고기를 사먹군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회교도라고 하지요.》 《그놈이 에미애비도 속이구 제 신앙에도 변절하는놈인걸 보니 종당에는 나라도 팔아먹었겠군.》 《바로 맞혔습니다. 지난 여름에 우리가 무송에 나와 활동할 때에 알고보니 그놈은 일본놈 〈토벌대〉대장이 되였습니다. 지금은 장백에 나와 〈토벌대〉를 끌고다닌다고 합니다. 우리가 서간도 일판에서 군세를 강화하고 맹활약을 하게 되자 하루는 이놈이 부하를 보내여 중대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비밀리에 꼭 만나게 해달라는겁니다. 그놈이 대체 무슨 소리를 줴치는가 좀 들어보자고 나는 우리 유격대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놈을 한번 만나주었습니다. 그때 그놈이 나와 동창이라는 반연을 가지고 왜놈들의 특사로 나한테 왔는데 나에게 백리 지양개골보다 좀더 큰 땅덩이를 떼여줄터이니 항일전을 그만둬달라는 왜놈들의 제의를 전했습니다. 나는 너무 적어서 싫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놈은 한개 군만한 땅덩이면 동의할수 있느냐구 물었습니다. 그것도 적다고 했습니다. 그놈이 다시 더 크게 부르는걸 나는 그것도 적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놈이 얼마나 요구되는가고 묻기에 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조선땅을 통채로 내주기전에는 우리는 손에서 총을 놓지 않을터이다 하구말입니다.》 장군님의 안광에서 푸른 영채가 번쩍번쩍 빛났다. 김정보는 홀연 넋을 압도당한 사람마냥 멍청해진 눈길을 비범한 그이의 안광에서 떼지를 못하였다. 《을미 의병장 류린석선생이 의병을 일으키며 8도 여러 고을 인민들에게 고한 격문에는 아마 이런 구절도 있던것 같습니다. 〈오랑캐로 변해서 어찌 세상에 설수 있겠는가. 이렇게 되면 공과 사를 막론하고 온전히 보존하여나갈 가망이 없으니 화나 복을 가릴것 없이 나라 위해 죽을사자 한글자를 지켜야 한다. 피를 마시며 맹세했으니 성공과 실패의 여하는 따질바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제 나라를 위하여서는 비록 패하여 죽는다 해도 원쑤들과 끝까지 싸우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인것 같습니다.》 김정보는 혀끝으로 말라든 입술을 추겼다. 《우리 겨레는 류린석선생의 지론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십년간 피를 바쳐왔소. 그래서 얻은것은 실패뿐이요. 이제는 분별없이 헛된 피를 흘리는데 대하여 랭철하게 생각해볼 때가 된지도 오래오. 성공의 가망없는 피를 계속 흘리게 한다는것은 무익하고 어리석기 짝없는짓이요. 대성할 앞날을 위해서 이 나라의 뜻있는 젊은이들의 피를 아껴야 할 때요. 후날의 성공을 위해서 장군도 제 목숨을 중히 건사할줄 알아야 하오.》 《우리 선친은 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군 하셨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싸우다 광복의 뜻을 이룩하지 못하면 네가 계속하고 네 대에도 못하면 너의 아들의 대에라도 반드시 나라를 찾아야 한다라고말입니다. 우리 부친이 별세하시면서 나에게 남겨준 유일한 재산은 권총 두자루뿐이였습니다. 부친은 나에게 유언하시면서도…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 그러나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의 몸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 고 거듭 일러주셨습니다. 그런데 로인장은 우리가 목숨을 아껴 당분간 총을 놓으라고 이르고있습니다. 우리 선친이 로인장보다 내게 대한 사랑이 덜했겠습니까?》 《…》 김정보는 눈길을 어름어름하며 아무말도 못했다. 잠시 그를 넘겨다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조선사람들이 수십년간 숱한 피를 흘리면서도 아직까지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지 못한데는 물론 여러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옳바른 투쟁의 길을 찾지 못하고 무턱대고 싸웠다든가 광범한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싸우지 못했다든가 반일투쟁단체들이 서로 뭉치지 못하고 저마끔 제멋대로 제 고집대로 놀았다든가 기타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습니다만 그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일시적 실패와 난관앞에서 상심하고 기가 꺾여 투쟁을 포기해 버린데 있습니다. 원쑤들과 맞서 끝까지 싸울 대신 로인장처럼 총을 줴버리고 항일전에서 물러나 앉아버린데 있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조선의 정신, 조선을 기어이 독립시키겠다는 결심과 의지를 꺾고 기가 죽어버린데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하시면서 한손으로 총을 줴던져버리는 형용을 하시기도 하시였고 두손으로 모든것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을 형용해보이기도 하시였다. 그리고 김정보앞에 손바닥을 내드시고 묻기도 하시였다. 《불굴의 기개로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우리를 내놓고 지금 과연 조선천지에 몇몇이나 있습니까? 산발적으로 소극적인 항거를 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나타나긴 합니다만 전반적으로는 잠잠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때문에 왜적들은 지금 조선이 거의다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로인같은분들까지 총을 버리고 〈리상촌〉이요 뭐요 하는 허황한 꿈을 꾸면서 들어배기고보니 왜놈들은 제놈들의 세상이 완전히 됐다고 생각하고있고 또 아직까지 약간이나마 뜻을 가지고있던 조선사람들도 이제는 조선이 다 죽은줄로 알고있습니다. 조선이 어째서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지난날에는 조선독립을 시켜보겠다고 이런식 저런식으로 버둥거려보던 사람들이 초지를 버리고 변절, 투항했거나 부패, 타락하여 모든 형태의 반일투쟁선상에서 물러나앉은탓입니다.》 김정보는 머리를 수굿하고 앉아 덤덤히 곰방대만 빨았다. 《…자기들이 능력이 모자라고 힘에 겨워, 또 자신없어 투쟁할수 없으면 응당 자기들이 잡고 싸우던 총을 뒤사람들에게 넘겨주며 너희들이라도 독립전을 계속하라고 일러야 하겠는데 로인장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아까운 총을 압록강물에 처넣고 지양개골에 들어와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총 한자루를 얻기 위해서 싸움을 벌리던 초시기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아시겠습니까? 나는 사실 로인장이 어떤분인가를 알아보는 과정에 총들을 땅속에 파묻지도 않고 압록강물에 처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한가지 리유만으로도 싸우는 조선의 젊은이들의 이름으로 엄중처벌해 마땅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죄악적인 일입니까? 로인장은 저 아주머니랑 보기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나이 마흔가까이 된 녀인도 나라를 찾기 위해 남편을 대신하여 총을 잡고 항일전을 계속하고있는데 잡았던 총까지 버리다니… 지난날 어쩐다던 사람들이 제가끔 이런저런 리유와 구실로 자신을 변명하며 반일투쟁선상에서 다 물러나고보니 이제는 우리 조선이 말그대로 사경에 처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로인장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로 어르신네들이 왜적을 향해 쏘던 총도 놓고 왜적들을 치던 항변의 목소리도 그쳐버린탓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온몸이 몹시 후더워지는것을 느끼시고 솜군복저고리의 웃단추 몇개를 끌러놓으시였다. 《아닙니다. 안됩니다. 어르신네들이 바로 조선이 지금처럼 죽어가도록 방임해버렸기때문에 우리는 지금 더욱더 총을 억세게 틀어잡고있습니다. 모두가 총을 놓았기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항일전의 기치를 높이 들고있어야 합니다. 우리마저 총을 놓는다면 조선은 정말로 영영 죽어버리고말것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총을 놓지 않고있기때문에 조선사람들이 조국광복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있을것입니다.》 《장군, 그에 대해서는 나도 경의를 표하고 또 기뻐했던바이요.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았소? 말라버린 사막의 샘같다구… 놈들은 조만간에 대군을 동원해서 유격대를 전멸시키려들거요.》 《그래 우리가 말라버릴 샘처럼 졸지에 사라져버릴것 같습니까?》 《나는 그것을 심히 우려하오. 적은 너무나 많고 너무나 강하오.》 《옳습니다. 적은 너무나 많고 너무나 강합니다. 그 강적은 지금 우리를 전멸시키려고 수십만 대군과 대포들과 비행기까지 동원해가지고 우리가 있을만한 고장이면 어디건 참빗으로 훑듯이 훑고있습니다. 얼마전에 조선총독 미나미와 관동군사령관 우에다란놈들이 도문에서 비밀회담을 벌리고 조속한 시일안으로 우리를 전멸시킬 꿍꿍이를 했습니다. 저놈들은 이 겨울안으로 우리를 멸종시키자고 달라붙었다고 합니다. 이제 여기에도 오래지 않아 적들이 밀림을 훑으며 들이닥칠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사히 살아남을것입니다. 그건 내가 장담할수 있습니다. 로인장은 이 겨울에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을뿐아니라 더욱더 강성해지는것을 꼭 보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봄이나 여름쯤에는 우리가 조선땅에서 지펴올리는 광복의 불길도 볼수 있을것입니다. 그때에는 로인장도 우리의 투쟁이 승산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수 있게 될것입니다.》 《장군은 무엇으로 승산을 내다보고 그렇게 장담하시오?》 《적은 물론 많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적보다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강하기때문입니다.》 《장군휘하의 군사가 그렇게 많으시오?》 《지금 우리의 유격대원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만간에 우리 유격대도 거군으로 발전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인민들의 힘을 합치면 어떠한 강적도 우리를 당해내지 못할것입니다.》 《백성들이요? 맨주먹밖에 없는 백성들이야 무슨 맥을 추겠다구 그걸 다 셈에 넣으시오?》 《로인장도 지난날 산에서 여러해 지내봤다니 곰이 산청을 훔쳐먹는걸 더러 본적이 있겠습니다? 그런걸 구경한적이 있습니까?》 갑작스럽게 왕청같은 질문을 받은 김정보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곰이 산청을 훔쳐먹는건 못봤는데 내가 한번 멋모르고 꿀통에 달려들었다가 혼난 일은 있었소.》 《왜 혼이 났습니까?》 《벌한테 쏘이지 않고 산청을 얻어가지려면 연기를 피우고 달려 붙어야 한다는데 그러질 않고 무턱대고 욕심부린탓이였소.》 《그거 아주 좋은 체험을 했습니다. 나는 곰이 산청을 먹으려고 벌통에 달려들었다가 벌떼한테 끝내 쫓겨달아나는걸 구경한적이 있습니다. 그 덩지 큰 짐승이 조그마한 벌무리들이 와와 달라붙어 온몸을 마구 쏘고 눈까지 쏘니 꼼짝을 못하고 데굴데굴 구는게 가관이였습니다. 앞도 보지 못하고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벼랑에서 허궁 떨어져 즉살탕을 당하는걸 보니 통쾌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지금 조선땅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두개 사단의 병력을 주둔시키고있습니다. 그게 몇만명 됩니다. 거기에 일제관헌들과 순경들을 비롯한 왜놈들을 모두 합쳐 백만이나 2백만쯤 된다고 칩시다. 조선사람들이 다 들고일어나서 왜놈 한놈에게 열명이나 스무명이 달라붙어 벌떼가 곰을 쏘듯 한다면 어느쪽에서 못견딜것 같습니까? 우리 유격대는 총을 쥔 적과 맨 앞장에서 대적할것입니다. 아마 선덕어른같은분은 나이든분이니 왜놈의 새끼손가락쯤 맡아도 될것입니다. 아무렴 로인장이 그놈들의 손가락 하나야 당해내지 못하겠습니까?》 장군님을 우러르는 김정보의 눈빛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그렇지만 조선에 젊은이도 하많은데 나이든 로인장같은분들한테까지 손에 피를 묻히게 할 필요는 없을것입니다. 싸움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고 늙은이들은 뒤에서 응원이나 해줘도 될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로인장은 우리 조선의 젊은이들이 왜적과 싸워이기라는 응원쯤이야 못하겠습니까?》 《왜적과 결판을 가르는 쌈을 벌린다면야 왜 응원정도뿐이겠소? 나도 총만 잡으면야 아직 몇놈쯤이야 못당해내겠소? 헌데 리치는 과연 지당하오만 그 리치대루 성사될수 있겠소?》 《그 리치대로 성사되는가 안되는가 하는건 모든 조선사람들의 결심에 달려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자리에서 본다면 로인장의 결심여하에도 달려있습니다. 로인장은 누구를 편들고싶습니까?》 《그거야 물으나마나 당연한 일 아니요? 나야 조선사람편이지, 말하자면 장군의 편을 들지.》 《그러면 로인장은 로인장이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도 우리편을 들자고 할수 있습니까?》 《그것도 물론 할수 있지.》 《그러면 리치대로 못될게 뭡니까? 한사람이 열, 열사람이 백, 백사람이 천사람씩 우리편을 들어 싸우자고 선동하고 들어일구면 2천 3백만을 궐기시키는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문제는 우리 조선사람들이 남녀로소 가림없이 모두다 원쑤 일제와 대적하여 싸울 결심을 품고 항일전에 한결같이 궐기해나서는가 나서지 않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지난날 수많은 조선의 애국지사들이 피흘려 싸웠지만 종시 조선의 독립을 이룩하지 못한것은 조국광복을 위한 모든 운동이 통일적인 정치강령과 정확한 투쟁방침에 따라 전개되지 못했고 반일애국력량의 공고한 통일단결을 이룩하지 못하고 고군독전한데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이와 같은 쓰라린 교훈과 경험으로부터 조국광복의 성스러운 임무를 다하기 위한 기본정치강령과 투쟁과업을 내놓고 그 기본정치강령에 따라서 지난봄에 국내외의 모든 반일애국세력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이 뭉친 거족적애국세력에 대한 통일적인 령도를 보장하기 위한 총령도기관으로서 조국광복회라고 하는 전민족적통일조직을 무었습니다. 우리는 이 거족적조직의 강령으로 10대강령을 작성하고 온 조선민족이 계급이나 성별, 지위, 당파, 나이 그리고 종교 등의 모든 차이를 불문하고 일치단결해서 철천지원쑤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과 싸워 조국을 광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데 대해서 호소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정보에게 조국광복회 10대강령의 내용들을 간명히 설명해주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모든 차별을 론하지 않고 늙은이와 젊은이, 남자와 녀자 할것없이 선덕어른과 같이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식량이 있는 사람은 식량을 내고 기능과 지혜가 있는 사람은 기능과 지혜를 바치면서 2천 3백만 민중이 일심동체가 되여 반일조국광복전선에 총동원된다면 왜놈들은 괴멸될것이고 우리 민족의 해방과 우리 조국의 독립은 이룩될것입니다. 우리의 호소에 응해서 조국광복회가 창립된지 불과 몇달 안되는 사이에 이 거족적인 조직에는 벌써 수많은 조선의 근로자대중과 반일우국지사들, 량심적인 각계의 인사들이 가입했습니다. 조만간에 회원수는 10만, 20만, 30만으로 늘어날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빠른 속도로 이 회가 팽창되면 아마 몇해사이에 조선사람의 거의 모두가 조국광복회의 기치아래 결집될것이며 그것은 곧 그대로 거대한 반일항전세력으로 전화될수 있는 강한 민중부대입니다. 이 세력이면 어떤 강적인들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지 못하겠습니까?》 장군님을 우러르며 말없이 앉아있던 김정보의 두눈에서 한쌍의 섬광이 번쩍이였다. 그것은 걸출한 영걸에 대한 경탄의 불꽃이였고 민족의 구세주를 발견한 희열의 발산이였다. (이분은 범속한 인물이 아니다. 과시 천재라 일러야 할 위인이시다!!)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앞에 앉아계시는 이 청년장군이야말로 열화와 같은 애국충정과 불굴의 의지와 비범한 지략을 지닌 절세의 애국자이며 희세의 영재이며 출중한 령수라는것을 자기의 온 넋과 심장으로 체감하였다. 그와 동시에 일찌기 우리 민족이 이분과 같은 영걸을 모시지 못했기때문에 나라를 통채로 왜적들에게 강탈당했고 숱한 피를 흘렸지만 빼앗긴 나라를 찾지도 못했다는것을 선명히 깨달았다. 마땅히 나라의 운명을 일신에 걸머져야 할 이런 위인이 어찌 이제야 이 나라에 출현하신것인가? 희세의 영걸을 발견한 기쁨으로 말하면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지만 이러한 영걸이 너무나 뒤늦게 나타났다는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기쁨에 뒤이어 가슴을 어이는 슬픔에 눈굽이 척척해진 김정보는 무릎우에 올려놓고있던 두손을 내리워 구들바닥을 짚으며 약간 갈린 목소리로 장군님께 아뢰였다. 《장군앞에 내 머리가 절로 숙여지오. 장군의 그 지론이 더 이의를 여쭐 여지없이 너무나 정당명확하여 나도 공감할수밖에 없소. 그 리치를 따르면 어찌 조선독립이 하늘의 별따기로만 남아 있겠소? 말씀만 들어두 답답하던 가슴이 열리구 앞길이 트이오. 하지만 세상만사가 옳은 리치대로만 되지 못하는게 항다반사라 장군이 구상하신 거족적인 항일대전 역시 그 지론대로 성사될지 어찌 장담할수 있겠소? 내 머리로는 그 비범하신 지론의 정당함을 깨치고도 남음이 있소만 마음으로는 아무리해도 그대로 될지 의심을 버릴수 없소.》 《그럼 이 일도 두고 봐야겠군요? 어디 그럼 로인장의 숙제거리로 두고 보도록 합시다.》 장군님께서 웃음을 머금으시며 말씀하시였다. 《편벽한 늙은이가 너무 솔직하게 말한다구 나무렴하지는 마시오. 그건 내가 숙제거리로 간직하겠소. 그러나 장군의 지론이 너무나도 정당하여 응분한 공감을 일으키는바이니 내 이제부터 장군이 벌린 항일대전을 충신이 되여 돕고 따르겠소. 늙은것의 이 말을 믿어주오. 장군을 앞에 모시고 이런 말씀을 여쭈기는 뭣하오만… 우리 겨레가 일찌기 모셔보지 못했던 비범한 영걸이 천재의 지략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백성들을 잘못만나 나라를 위한 큰 뜻을 맘껏 펼쳐보지도 못하고마는 일이 없도록 내 한몸이나마 성심으로 후원하겠소. 바라건대 장군의 안녕이 불쌍한 우리 겨레에게 광복의 대망으로 되였으니 부디 조심해 싸워주기를 바라오. 하늘이 우리를 도와 장군의 뜻대로 광복이 이룩되는 날에는 온 나라가 섬겨야 할 나라님이 되셔야 할 존재라는 자각을 한시도 잊지 말고 내 말을 명심해주오.》 김정보는 그 희끗희끗한 머리를 숙여 장군님앞에 절을 올렸다. 《말씀하시던중에 갑자기 이건 뭘 이러십니까? 젊은 사람에게 이러시면 저만 옹색하지 않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로인의 팔을 잡아일으켜 세우려고 하시였다. 그러나 김정보는 그이의 손을 경건히 막으며 정중히 아뢰였다. 《이건 내가 한백성으로 온 겨레가 아껴야 할 장군앞에 올리는 진정의 청으로 받아주시길 바라오.》 김정보는 다시금 깊숙이 절을 올렸다. 초막안에는 가마에서 떠오른 김이 자옥히 서렸다. 그 김과 함께 구수한 쌀 익는 냄새가 초막안에 떠돌았다. 가마는 벌렁벌렁 소리내며 끓었다. 거품을 일으키며 세차게 뿜어대는 김은 나무가마뚜껑을 뚱구쳐 사이를 벌려놓았다. 그러나 가마목에 지키고 앉아있던 장철구와 부엌앞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성필은 가마뚜껑이 열리는줄도 몰랐다. 김정보가 장군님앞에 거듭거듭 절을 올리는 모양에 눈을 팔고있었던것이다. 그렇게 볼모양있게 절을 올리는것을 그들은 일찌기 어디서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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