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제1부 지리산   제1장 대나무는 혼자서 자라지 못한다

 

 

제7장 극한점에서
 

1
 

《약속대로 식량을 보내지 못해서 참 죄송하오. 그사이 물방아간집에 일정한 량의 식량을 마련해놨는데 변절자 로영한놈이 병졸들을 데리고 와서 그냥 감시하고있어서 빼낼수 없었소.》

권영태가 미안해하며 하는 말이였다.

《…》

갑동은 탓할수 없었다. 지금 형편에서 식량을 확보해놓은것만 해도 권영태의 노력과 수고를 평가해주어야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지리산의 절박한 형편은 확보된 식량수자가 아니라 다문 얼마만이라도 실물이 필요한것이였다.

《어떻게 하나 오늘중으로 그 식량을 운반해내야 하겠습니다. 한시가 급해서 그럽니다.》

갑동은 사정조로 말하였다.

《아니 물방아간집 접근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건 호박 쓰고 돼지우리 기여들깁니다. 쌀 몇가마니때문에 생명을 도박할수야 없지 않소.》

《권동지, 생명을 내걸고라도 그 일은 해야 합니다. 무모한 희생은 백해무익이지만 혁명에 반드시 필요한 희생은 서슴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유격지구의 생명이 그 쌀에 달려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위하여 한두사람 생명쯤 바칠걸 각오해야 하는것이 현 실태입니다. 권동지, 나하고 둘이서 시방 백척간두에 올라있는 우리 무장대지휘부를 구원합시다.》

《안된다지 않소. 지금 여기 나와있는 로영한이란 놈이 어떤자 인지 알기나 하오? 지금 사령부 조직부장까지 하고있는 형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변절한 그런 놈이요.》

《?…》

《그놈은 적아에 다 잘 알려진 놈이요. 그자의 아버지는 입산하여 적들에게 희생되였는데 그 아버지의 자식인 그자는 난관에 신념이 흔들려 투항자수해버렸소. 우리 유격대를 잘 아는 놈들이 적이 되니 더 문제요. 로영한이 확실히는 몰라도 그 방아간이 유격대비밀아지트라는것을 비스듬히 알고 딱 지켜보는것이요. 자, 이래도 거길 가잡니까?》

《…》

갑동은 쉬이 용단을 내릴수 없었다. 변절자가 지켜보고있는 곳에 나타난다는것이 그 얼마나 위험한가를 그는 잘 알았다.

(생명을 내대고라도 성공하면 별문제이지만 식량을 빼내지도 못하고 목숨만 바친다면 그것은 무모한 희생인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아니 맞받아 들어가야 한다. 이런 경우 모험이 없는 성공은 기대할수 없다. 설사 성공 못하고 내가 희생된다 해도… 나 하나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동지들을 구원할수만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동지들이 건재하여 내 몫까지 통일혁명에 이바지한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렇게 결심하고나니 속이 한결 개운해졌다.

《권동지,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 혼자 가서 그놈과 부딪쳐볼테니 성공하여 신호를 하면 식량운반이나 조직해주시오.》

《아니 그렇게야…》

갑동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권영태는 난감해서 어찌할줄 몰라했다.

이때 뜻밖에도 부엌에서 다 들었던 모양 콩동무가 들어오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저와 함께 갑시다.》

《?!》

《?…》

두사람은 다 깜짝 놀랐다.

《권동지는 이자 황동지가 한 말대로 식량운반조직이나 미리 해놓으십시오. 황동지, 어서 떠납시다.》

야무지고 담찬 그를 바라보는 갑동의 가슴속에 뜨거운것이 욱 치밀었다. 아, 저 어린 녀성이 지리산을 구원하고저 희생을 각오했구나! 하지만 저 어린것을…

갑동이 선뜻 동의하지 않자 콩동무는 자기를 못 미더워 그러는줄 알고 다시 한마디 했다.

《황동지, 저를 믿어줘요. 콩새는 조막만 해도 태풍속을 쌩쌩 난답니다.》

《!》

콩동무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있던 뜨개질을 끝낸듯 한 양털실내의를 권영태에게 내밀었다.

《맞겠는지. 오늘부터 입도록 하세요.》

나이는 비록 어려도 안해된 자각으로 늘쌍 바람 찬 길을 헤쳐 다니는 랑군을 생각하여 한뜸한뜸 저 내의를 떴으리라. 그 눈처럼 희고 따스한 촉감이 오는 양털내의를 권영태는 선뜻 받지를 못해하였다.

잠시후 황갑동은 동작이 날래고 경쾌한 콩동무를 앞세우고 권영태네 집을 나섰다.

방아간집까지는 퍼그나 가야 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맵짠 추위도 추위려니와 적들이 경계진을 치고있는 안장바위릉선을 꼭 지나야 하는데 그 통과가 문제였다. 저녁 어스름을 타서 둘이 은밀히 눈속을 벌벌 기여 안장바위릉선을 타고넘는데 어디선가 가까운데서 총성이 났다. 그래서 그들이 무조건 굴다싶이 얼마 안 가서 정신을 차려보니 총소리만 요란하고 달빛에 비친 나무가지들에서 눈만 털어내고있었다.

안장바위릉선을 배밀이로 벗어나자 그들은 눈을 털고 일어났다. 둘은 다 눈사람처럼 되여버렸다. 그런 경황에서도 콩동무는 방긋 웃어보이였다.

《갑동아저씨- 춥지 않아요?》

《콩동무는?》

《저넌 콩이 아니나요? 콩이 어는걸 보았어요?》

《허허, 하긴 그렇지, 여하튼 콩동무는 어린 녀성으로서 용하이. 난 처음 길 떠날 때 같아서는…》

《그래요?! 선요원동지, 우리 권동지 가져온 <시조집>에서 보았는데 이런 시조 알아요?》

《어떤 시조말이요?》

《깜장새 작다하고 대붕아 웃지 말아

구만리 장천에 너도 날고 나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니 네오 내오 다르랴》

《허, 구만리 장천에 너도 날고 나도 난다. 참 외워둘만 한 좋은 시조여. 허허.》

콩동무가 몇발자욱 뒤에서 따라오다가 놀라운 비명을 올렸다.

《아니. 선요원동지, 그 오른쪽다리 장딴지에 얼어붙은게 피 아니나요?》

《뭐 내 다리에 피가?》

《서라요, 어디 보자요.》 갑동이를 세워놓고 키를 낮추며 한쪽 장딴지를 내려다보던 콩동무는 놀라와했다.

《엄니, 이걸 어쩌나. 총알에 맞았댔군요.》

《총에? 어제 밤에 놈들의 추격을 받을 때 한방 얻어맞았는가?》

《한방 얻어맞았는가가 다 뭐나요? 제가 총 맞은것도 모르고 계속 걸어왔으니 우둔하기란 꼭…》

자기 속내의를 찢어 상처를 싸매주고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며 콩동무가 물었다.

《어때요, 꽤 걸을만 해요?》

《아까 모르고있을 때보다는 아프지만 그런대로 걸을만 하구만.》

《그럼 됐구만이라. 호호, 여하튼 장수는 장수예요.》

《장수는 장수인데 아직 량쪽 재개미에 날개가 채 돋지 못한 절반짜리 장수인게라. 허허, 갑시다.》

《가자요 계속! 앞으롯!》

그들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 이튿날이 되였다.

어떤데서는 뻔뻔한 눈천지를 같이 구을러 내리다보면 둥글둥글 눈바위처럼 된다. 그래서 몽두깽이로 서로 그 눈바위를 깨면 그속에서 마치 닭알속에서 병아리가 까져나오듯 콩동무가 우정 《삐욕!》 하고 병아리울음소리를 흉내내면서 나와서 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군 했다. 갑동이 그 언제인가 대원사전투직전에 김지희전투사령이 선사해준 군용시계의 두터운 얼음을 깨고보니 벌써 오후 다섯시였다.

갑동은 다리에 총상을 입은걸 알지 못했을적에는 몰랐댔는데 안다음부터는 점점 움직이기가 힘들어지는것이였다. 마지막에는 한발자욱을 옮겨디디기가 고통스러워서 지팽이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여기로 오기 전에 근 일주일간을 굶어 몸이 허약해진데다 많은 피를 흘렸지, 상처도 얼고 몸도 얼고… 한번 주저앉기만 하면 다시 일어날것 같지 못해서 계속 걸었다. 바로 이런 가장 어려운 대목에서 혁명가의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갑동이였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내내 생각해요? 선요원동지.》

콩동무의 물음에 갑동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이 다리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지리산의 흰 눈을 붉게 물들이면서 자기가 걸어보고서야…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이라는 혁명송가의 구절구절에 담겨져있는 깊고깊은 뜻을 다소나마 알것 같구만. 그럴수록 만주광야 숫눈길을 백포자락 날리시면서 앞장에 서시여 헤쳐가신 우리 김일성장군님에 대하여 더욱 뜨거워지는 추앙심을 가지고 생각하게 되는거요.》

그의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경모의 정 넘치는 말에 감동된 콩동무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조용히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
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황갑동은 웅글은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김일성장군의 노래》야말로 우리 지리산빨찌산들이 바로 이런 때에 불러야 할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들은 사흘만인 다음날 아침에야 악전고투끝에 평촌마을 물방아간집에 겨우 당도할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면서 총에 맞은 종다리에 심한 동상을 입어 상처가 성나기 시작한데다가 독감에까지 걸려 고열이 오르면서 몸살이 나는 바람에 황갑동은 더는 한발자욱도 움직일수 없게 되였다. 제일간 빨리 물방아간집에 데리고 들어가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할 형편이였다.

콩동무가 빈 물레방아간안에 부상자를 은신시키고 먼저 방아간집에 은밀히 접근하여 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그 집에서 두간두간 울려나오는 귀에 익은 말소리를 들어보니 그것은 틀림없이 자기들이 제일 피해야 할 자수자인 로영기의 동생 로영한이였다.

그런데 일이 공교롭게 될려니 그 집에는 바로 최대위라는 불악당 같은 놈이 자수자인 로영기의 동생이라는 작자를 앞세우고 와서 떡 지키고 앉아있는 극적인 정황이 조성되여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할것인가?)

콩동무의 생각은 복잡했다. 그렇지만 이 피할수 없는 극적인 정황이 조성된 마당에서 그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2
 

《외삼촌 계시나요? 외삼촌, 제가 왔어요.》

《…》

콩동무가 못내 가슴을 조이다가 용기를 내여 속에서 고무줄 같은것으로 완전히 놓지 않고 아직은 꼭 잡아당기고있는듯 한 은근한 소리로 물방아간집 주인을 찾았으나 아무 대척이 없다.

(분명 안에 사람이 있긴 있는것 같은데?)

여느때 같았으면 자기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반가와 문을 벌컥 열 주인들이였다. 그는 밖을 내다보기 위해 문창호지가운데에 붙인 유리쪼박으로 누구인가 자기를 살피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그 떳떳치 못한 비렬한의 살기가 내뻗치던 눈길이 콩동무의 눈길과 마주치자 비로소 방문이 벌컥 열리였다. 아니나다를가 괴뢰군 장교복을 입은 한 자가 토방으로 불쑥 나섰는데 그가 바로 오늘의 변절자 로영한이였다.

미리 각오는 하고있었지만 정작 이렇게 정면으로 부딪치고보니 일순 당황해났다.

한쪽 어깨에 카빈총을 걸멘 그자는 경계심과 살기 어린 눈길로 콩동무의 뒤에 누가 달리지 않았나부터 확인했다. 그런 다음 말을 걸었다.

《요고 콩동무 아니여?》

(모르는체 제칠가, 아니 이런 때 한술 더 떠야지.)

《아니 로아저씨구먼요? 그 괴뢰군 중위의 변장이 아주 잘 어울리는데요.》

《…》 로가는 비록 나이 어리고 착한 소녀 같지만 매우 깜찍한 이 콩동무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하였다.

《그 그런데 이 눈보라 심한 날에 갑자기 무슨 일로 콩알 같은게 요기꺼정 굴러들어왔는기요?》

《우리 권동지가 로선생이 자수해버렸다는 말은 헛소문이라고 하면서 아무렴 뭍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뭍이 된다한들 아버지도 입산하여 전사를 하시고 형님인 로영기동지도 지금 지리산에서 한다하는 지휘관으로 잘 싸우고있는 사람이 투항자수란게 말이 됩니까.》

《…》
로영한의 얼굴은 지지벌개졌다. 그는 요 조꼬만 녀자가 자기를 떠보는 소리인지 진실인지 가늠이 안 가는듯 잠시 대답을 못했다. 콩동무는 이 낮도깨비같이 앞에 나타난자를 여겨보면서 련속 공세를 들여댔다.

《근데 여기 와보니깐 어때요. 비상아지트들과 식량보급아지트랑 다 무사한것 같은가요?》

《…》 그 물음에 로가는 대바늘끝으로 급한데를 찔리기라도 한듯 흠칫 놀라기까지 하면서 서털구털하게 대답하는것이였다.

《저 거시기 그 그거야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직접 여기 앉아있는 물방아간집 주인들에게 물어보지.》

콩동무는 그 말을 어떻게 리해해야 될지, 이 마을 아지트들만은 자기는 다치지 않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바로 그걸 알아내라고 하여 자기가 여기까지 와서 지키고 앉아있다는 소린지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 한쪽에 꿀먹은 벙어리마냥 무거운 마음으로 앉아있는 방아간집 부부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외삼촌, 그사이 평촌에 다른 일은?》

《… 아, 아직꺼정은 별다른 일이 없구만이라.》

(아, 됐구나. 아직까지는 비밀아지트들이 살아있다니. 그러니 이놈은 아직 이곳 아지트형편을 장악하고있지 못했다는 말인가.)

이때 갑자기 밖에서 억제된 기침소리가 들렸다. 오는 길에서 독감에까지 걸린 황갑동이가 물레방아간안에서 내다보면서 깇는 기침소리임을 콩동무는 이내 알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에게 위험이 닥쳐왔다는것을 간파한 로영한은 민첩히 총에 장탄을 하며 소리쳤다.

《누구얏?》

방아간쪽에서는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로영한은 눈앞의 콩동무와 함께 누가 와서 방아간에 숨어 자기를 노리고있다는것을 판단했다.

신경이 매우 날카로와진 그는 콩동무의 가슴에 갑자기 총구를 들이대며 따졌다.

《똑바로 대라! 저게 누구야?》

《흥, 저 방아간에 한사람만 온줄 알아요.》

《그래 너 나를 잡으러 왔어?》

《물론.》

로영한의 눈길은 불안으로 허둥거렸다.

《그만 총구를 내려요. 나를 쏘면 당신몸뚱이는 분틀구멍이 된 다는걸 명심해.》

콩동무의 호통이 얼마나 맵짰던지 로영한은 스르시 총을 당겨세웠다.

《당신이 어떻게 처신하는가에 따라 체포해갈수도 있구, 그만둘수도 있어요.》

《조건이 뭔데?》

《그건 우리 대표동지가 말할거예요.》

콩동무는 방아간쪽에 대고 소리쳤다.

《황동지- 황동지 한분만 이리로 오세요.》

콩동무와 로영한의 대결을 지켜보고있던 황갑동은 그 한마디에서 콩동무의 기지를 간파하고 당당한 자세로 방아간을 나서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아, 황과장동지.》

로영한은 얼굴에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아는체를 했다. 황갑동이도 그자와 몇번 만난적이 있어 알고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상대를 무섭게 견주어보던 갑동의 첫마디부터가 격분에 차있었다.

《투항변절자 로영한이,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고싶었다. 처음 네가 자수했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더니 죄다 사실이였구나!》

《일이 어쩔수없이 그렇게…》

《뭐 어쩔수없이 그렇게 되였다구? 뻔뻔스러운 놈 같으니라구. 근거지해산때 아버지랑 형이랑 다 산에 올라와있으니까 너는 하산을 해서 어머니나 모시면서 비합투쟁이나 하라고 할적까지만 하여도 죽어도 지리산에서 죽겠다던 네가,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앞에서 거적때기를 너무 허비며 통곡을 해서 열손가락이 다 피가 터져서 벌겋게 된 주먹으로 동가슴을 치며 죽어도 끝까지 아버지의 원쑤를 꼭 갚겠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맹세하던 네가 아니였단 말인가? 그런데 그 손가락의 아픈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그때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싸우다가 놈들에게 붙잡히기만 해도 죄가 되겠는데 제 발로 걸어 내려가서 자수를 해? 자수를?》

《…》

《네가 동지들의 눈을 괴이고 가만히 혼자 하산을 해서 경찰서로 자수하러 내려갈 때 산에 묻혀있는 아버지의 원혼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던가. 이 지리산이 두렵지도 않던가 말이야?》

《… 그러니 어쩌겠소. 적구에 내려가 살고있던 이젠 하나밖엔 남지 않은 우리 어머니를 경찰지서에 인질로 잡아다놓고 내가 내려오지 않으면 죽은 시체를 삼장골어구의 바위에다가 내다놓겠다는것을, 나는 정말이지 나 하나가 살아보자고 해서가 아니라 엄니가 불쌍해서, 어떻게 하든지 그 엄니를 살려보자고 해서 하는수없이 자수럴…》

《자꾸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신성한 어머니들의 이름을 팔지 말아. 제가 죽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더러 개가 되라고 가르칠 어머니들은 없는 법이야. 내가 알아보니 당신네 어머니는 산에서 싸우다 깨끗이 전사를 한 남편을 모시고있는것을 긍지롭게 생각하고있는 그런 어머니였어.

그러니 당신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거기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그랑한것이야.》

《…》

《내 말 틀렸어? 하나 물어보자구. 그래 네가 자수하고 어머니곁에 내려오니까 어머니가 잘했다고 하면서 고와하던가 미워하던가? 어디 곧이곧대로 말해보라우.》

《소…솔직히 말하면 우리 어머니는 그날 나를 갖다가 아…아부지를 배신한 불초자식이락고 이 뺨을 치면서 개…개자식이라 했둥마.》

《그랬을테지. 원시 그것이 우리 어머니들인게라. 당신들같이 자식된 도리도 인간된 량심도 혁명가로서의 자각도 없는 못난 자식들이 있어 우리 훌륭한 아버지, 어머니들을 모욕하는게라 이 말이여. 부모님들앞에 지은 그 죄만 해도 백번 죽어 마땅하지.》

《… 그러기에 내 덜컥 자수를 해놓고보니 후회막심도 하고 마음의 죄스러움과 고통을 이기지 못해 혼자서 수태 울기도 했구마. 원래 생활에서 결함과 부족이 많고 바른길을 걷지 못하고 비뚤게 걷는 사람들이 더 마음속에 내내 극을 안고 산다기에 무슨 소린가 했둥마 자수자의 눈물이란 어떤것인지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는게라서…》

《그까짓거나 알아선 뭘해. 더러운 배신자의 눈물을…》

《자기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남의 말 함부로 하지 마소.》

《뭣이? 자기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 나도 지리산에서 근 3년동안 눈물도 피도 흘려봤고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속에서도 참을만큼 참았고 이겨낼만큼 이겨냈고 견딜만큼 견디여냈단 말요. 그렇지만 인간의 인내성과 의지에도 한계가 있는것이니 나는 이 이상은 더 못 참겠단 말요. 이 이상은… 모든것에는 다 림계점이라는것이 있는거요. 림계점이라는것이…》

《림계점이라는건 또 다 뭐요?》

《림계점이라는것은 어느 한계점에 이르게 되면 물질의 물리적성질이 달라지는 점이라 이 소리요. 모든 물질에는 그 물질의 림계부피, 림계압력, 림계온도라는것이 다 있는건데 가령 물이 끓는 림계온도는 100도씨인것이고 물이 어는 림계온도는 0도씨인것만큼 0도 이하로 내려가기만 하면 물의 물리적성질은 액체로부터 고체로 변한다 이 리치가 아니겠소.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인것이 심장마저 금시 얼어터질 지경에 이른 혹한의 극한점, 너무 굶어서 위가 들어붙게 되는 아사직전의 림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종당에는 견디여낼 사람이 없는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당신은 그가 아무리 혁명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고난의 극한점, 림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것처럼 그 혁명가의 근본성질도 변한다 이거요?》

《바로 그거지요!》

로가의 그 말에 황갑동은 최대의 모욕과 분격을 느끼며 격한 소리를 터뜨렸다.

《여! 그따위 허튼 궤변을 가지고 한마디만 더 지껄여봐라. 죽여버릴테다-》

갑동은 그만 리성을 잃다싶이 두손으로 박달나무지팽이몽둥이를 머리우로 번쩍 쳐들었다.

《선요원동지!》

당장 사람을 칠것 같은 갑동이를 앞에 있던 콩동무가 제지시키지 않았던들 무슨 변이 일어났을지 모를 일이였다.

격해진 황갑동은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해 씨근거리면서 이 얼빠진자의 머리를 계속 주어박아대듯 준렬히 규탄했다.

《너는 물이 100도씨면 끓어서 기체가 되여버리고 0도씨아래로 내려가면 얼어서 얼음이 되는것처럼 우리 투쟁에 나선 사람들까지도 혹서, 혹한의 극한점에 도달하게 되면 더이상 견디여내지 못하고 자수도 하고 변절투항도 하는것이 응당한 귀결이라는 소린데 닥쳐라! 그래, 엄동의 설한풍속에서 손발이 얼고 코와 귀가 얼어서 떨어져나가고 마지막엔 두눈알까지도 얼어서 허옇게 된 우리 동지들이 극단의 어려운 한계점에 아직 이르지 않아서 혁명정신 변치 않고 싸우는줄 아느냐. 총사, 동사, 아사자들이 왜 조국의 하늘, 저 푸른 대공을 두눈 부릅뜨고 쳐다보던 그 자세로 굳어져 지리산을 베고 죽는줄 너는 모를테지.》

《…》

《놈들의 동기<토벌>후 가장 간고한 시련의 시기를 맞아 다 불타버린 우리 지리산이, 우리 통일혁명이 지금 통털어 극한기를 극복해나가느라고 온갖 간난신고를 겪고있는것만은 사실이여. 그러나 생각해봐라. 20여성상 백두광야의 피바다, 불바다속을 헤쳐 오늘에로 도달할수 있었던 조선혁명은 그런 극한점을 이겨내는 심한 좌절과 고통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혁명이란 바로 너들이 말하는 그 림계점을 극복해나가는 투쟁과정인것이고 우리 혁명가들은 그런 림계점에 도달할지라도 한번 결심품었던 통일혁명의 길에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목숨걸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는걸 늦었지만 이제라도 알아둬라.》

《…》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똑똑히 기억해두라. 바로 그 고난의 언덕길과 준엄한 시련의 가파로운 고개길의 최정점인 그 극한점의 계선을 지나도 추호의 동요와 변심도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혁명가로 남아 영생하는것이고 그와 반대로 그 한발자욱만 더 넘어서면 되는 바로 그 극한점에서 물처럼 끓어서 한줄기의 김으로 변해 흔적없이 사라지던가 얼어서 부동의 자세인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리고 다시 풀려서 자기의 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마는자들은 너처럼 혁명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배신, 변절, 전향의 길을 걷는다 이 말이여. …하기는 인간이 되기를 그만두고 혁명을 다 줴버린 너같은자앞에서 이런 말을 해야 소용이 없는줄 알면서도 네놈이 노엽힌 지리산의 고귀한 령혼들을 위안하고저 너를 단죄하는것이다!》

《… 황 …황형, 죄많은 이 몸을 죽여주시오. 이 총으로 한방 쏘아주고 가시오. 사람이라서 이리 되고봉께 진저리쳐지는 이 세상 더 살고싶어지지도 않는구만요. 흐… 흐윽-》

《내가 구태여 죽여주지 않아도 너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다. 죽고 사는건 네가 결심해라. 너에게 한가지 요구가 있다. 이 마을에서 즉시 물러가고 안장바위릉선 경계선도 어떻게 해서든 철수시키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우리가 습격하겠다. 그렇게 하겠는가?》

《…》

선뜻 대답을 못하고 점도록 있던 로영한은 말했다.

《이 마을에서는 제가 다 데리고 즉시 철수하겠는데 안장바위릉선만은 내 마음대로는 못하는것이니 만약 철수하지 않아도 나에게 책임을 따지지 말아주시오.》

가련한 인생인 로영한은 방아간집 뜨락을 나서 어깨를 푹 떨군채 아래쪽으로 걸어내려갔다.

로영한이 멀어져가자 갑동은 콩동무의 작은 손을 덥석 잡으며 감심해서 말했다.

《콩동무, 어떻게 저자를 다뤘기에 반항 한번 못하고 물러가오?》

《호호, 그건 황동지가 론리정연하게 그놈을 다불러댔기때문이지요 뭐.》

콩동무는 방아간에 많은 유격대원들이 와있는것처럼 말하여 로영한을 위압한 자신의 기지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았다.

《저는 황동지가 우리 혁명자체가 그 극한점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과정인것이고 우리 혁명가들은 한번 먹은 마음 변하지 말고 끝까지 헤쳐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던 말을 듣고 많은걸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제부텀 전 그 말을 저의 량심으로, 강한 의지의 량식으로 삼아가지고 쪼간히 흔들림도 없이 끝까지 꿋꿋이 헤쳐나가는 혁명의 전사가 되렵니다. 그러고 보면 황동지가 한 그 훌륭한 말은 뭐라더라 거시기 <림계점>에 대한 우리 빨찌산의 불변철학이라고 할는지요?》

《아따, 이거 사람 웃기지를 마오. 철학이라는 철자도 모르는 내가 무슨 빨찌산의 불변철학을 다… 그 로가라는 얼빠진 자식이 하도 혼자 다 유식한체 하면서 떠벌이기에 생각나는 그대로 한 소리를 가지고서 원…》

《제 모르는 소견이지마는요, 학자들이 책속에 묻혀앉아서 머리속에서 꾸며내는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 혁명하는 사람들이 투쟁속에서 맹글어내여 그처럼 입에서 저절로 슬슬 풀어져나오는것이 진짜 쓸모가 있는 우리 철학 아니겠습니까?!》

《글쎄 정 그렇다면 어디 우리 지리산의 엄혹한 겨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지리산의 철학이라 이름 붙여두고 봅시다. 까짓거 허허.》

《호호, 지리산의 철학이라. 참 멋있네요.》
 

3
 

1950년 여름 인민군대에 의한 남반부 넓은 지역의 해방과 그후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시련을 걸치면서도 더욱 활성화되였던 유격투쟁의 또 한해가 지나간 1952년 2월 어느날이였다.

당시 황갑동은 오직 자기자신의 힘으로 만난을 극복해나가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품고 서부쁠럭(군사집단)인 기백산부대 련락과의 파괴된 비상아지트를 꾸리는 사업에 전심전력을 다하고있었다. 련락과는 농골 민가에 있었다. 그래서 우선 기백산속에다가 비상아지트를 꾸리고 련락과성원들도 자기의 직성에 맞게 새로 꾸리다싶이 했는데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일이 잘되려고 그랬던지 련락원과 같이 용추사근방으로 가는데 이상한 사람들 5∼6명이 도망가는것을 붙들어보니 거제도포로수용소를 탈출해서 북상할 생각으로 며칠을 걸어오다가 붙잡힌것이였다. 그들은 전부 6명인데 3명은 남쪽사람이고 3명은 북쪽사람으로서 결국 본래 인민군출신이 절반이고 의용군출신이 나머지 절반이였다. 거제도수용소 소장 롯트의 랍치사건때 탈출에 성공하여 쪽배를 타고 남해기슭으로, 거기서 하동으로, 지리산으로 헤매던중인데 갑동이 만나 같이 사업하지 않겠느냐고 의사를 물었더니 좋다고 하여 련락원으로 인입하였다. 그로서는 큰 보배를 얻은셈이였다.

련락원은 아무라도 하는 일이 아니였다. 단련이 있고 훈련이 있고 시련을 겪어본 사람만이 할수 있는 조련치 않은 일이였다. 련락원들은 작은 소리도 먼 거리에서 가려들어야 하고 냄새도 역시 멀리 떨어진데서도 맡아야 한다. 걸을 때에도 소리가 안 나게 돌이나 나무, 풀을 잘 리용하여야 하고 지나간 자취를 절대로 남기지 말아야 한다. 적들이 혹시 련락원들을 생포하면 신발부터 보는데 그들의 신발은 앞뒤가 닳지 않고 장심이 닳아있다. 그들은 음식도 될 수록 냄새가 나는걸 먹지 말아야 하고 고양이가 자기가 눈 똥을 땅에 파묻고 가듯이 배설물도 깨끗이 묻어놓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련락원의 대변끝은 항상 새까맣게 타서 있다는 소리가 있는데 우연치 않은 일이다.

련락원들이야말로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잠도 일정한 거점에서만 자는것이 아니다. 걸으면서도 잔다. 그렇게 오래 숙련되면 박쥐나 올빼미와 같이 된다. 아무리 칠흑같은 밤도 낮같이 된다. 련락원은 죽어도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 하는것인데 특히 련락쪽지를 생명처럼 다루어야 한다. 급박한 정황에서 쪽지를 삼킨다고 해도 놈들에게 생포되게만 되면 악한들이 식도를 칼로 가르고서라도 지어는 위안에 들어간것이라도 꺼내여보는 정도이니만치 자폭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산채로 절대로 잡히지 말아야 한다.

기백산련락과에는 이런 금옥같은 선요원들이 수십명이 있었다. 기백산련락과는 지리산의 상선 중앙선 하선을 유지하는 중요한 곳으로서 통일적인 련락거점이니만치 인원이 50명은 되여야 하는것인데 그렇게 못되는 실정이였다. 기백산련락과는 책임자는 물론 갑동인것이고 함남사람인 표동무를 부과장 겸 정치책임자로 하고 뚱보동무는 문화사업을 방조하면서 선동원역할을 하였으며 거기에 식사책임자가 한명 있었다.

갑동이의 경험에 의하면 빨찌산을 옳게 하려면 련락사업과 거점유지사업이 80프로는 차지해야 되는것 같았다. 그는 지형지물을 잘 리용하여 한번 잡은 《비트》(비밀아지트)를 다른 사고없이 오래 유지하는 특기를 가지고있는것으로 해서도 이름난 선요원이였다.

그가 기백산련락과를 운영함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은 《불꽃사단》의 존재였다. 《불꽃사단》은 순전히 15∼16살의 청소년들로 조직된 생신한 부대였는데 싸움마당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여드는 그야말로 무서운 불꽃들인것이 강군중에도 진짜 강군이였다. 사령은 조도원이, 부사령은 같은 마을에서 자란 김종식이로서 배짱이 잘 맞았다. 이 부대의 맹활동으로 하여 서부지역인 덕유산, 기백산, 떡갈산, 황매산일대는 경찰서, 지서들이 싸움을 완전히 포기하고 떨고만 있었으며 《토벌대》놈들은 소문만 듣고도 전의를 잃고 전투를 포기하고 달아나는 정도였다.

이런 군사적인 안받침이 있었기에 기백산련락과는 적들의 발악적인 공세속에서도 정상적인 자기 활동을 할수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지리산을 다 안고 살면서부터는 정신적으로도 활동적으로도 자유롭고 완전히 확신에 넘쳐있었다.

그의 지리산에서의 생활과 활동에서 최절정기를 이루었다고 할수 있는 이 시절에 그는 《그 어느 놈이든지 이 지리산에서 어디 한번 이 황갑동이를 잡아봐라!》 하는 식으로 배심을 부리며 살았다.

이런것으로 하여 얼마전에는 지휘부의 한사람과 크게 다툰 일까지 있었다. 지하에서 비합법투쟁을 하다가 아버지가 학살된 후 그 원쑤를 갚겠다고 동생 로영한이와 같이 입산한 사람이였다.

초기에는 빨찌산의 담비라고 불리울 정도로 날래여 싸움도 잘하고 기지도 있었으며 일정한 리론도 가지고있었다. 그후 오라지 않아 상부의 신임을 얻어 유격대지휘부에서도 일하였으며 얼마전부터는 갑동이와 함께 여기에 새로 임명되여 와서 서부집단 부사령관까지 하고있었다.

원래 혁명이 승승장구할 때에는 기가 올라서 전진하는 부대의 사단장도 시킬지 모르겠지만 혁명이 퇴조기가 와서 형세가 불리할 때에는 후퇴하는 부대의 분대장도 못 시킬 사람, 아직도 대학생기분이 농후한 로영기였다. 그는 동생의 자수사건이 있은 후로는 갑자기 과잉열성을 내면서 《설사 그것이 내 아우나 내 형이 아니라 내 아버지일지라도 혁명을 배신하는자는 내 손으로 쏘아 죽여버릴것이다!》라고 웨치면서 좌기를 부리군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철저성을 증명하려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동생의 자수는 어찌할수없이 그로 하여금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살게 만들었고 자기도 모르게 심대가 약해지면서 못내 동요심도 일게 했다. 그래서 투쟁에 나선 사람들의 주위환경변동이 본인들에게 주는 영향관계에 대하여 주의를 돌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친척형제들중에 한사람이라도 변절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흔들리면서 따라 변절하게 될수도 있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는 하나의 증시였다.

로영기는 최근에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 해서 일종의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늘 불안을 금하지 못해하였다. 그의 머리속에서 도대체 어떤 정신운동이 벌어지고있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그러나 자루안의 송곳은 감출수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그의 입에서는 종잡을수 없는 말이 튀여나오군 했다.

어느날 그는 황갑동에게 느닷없이 이런 말을 던졌다.

《여보, 련락과장동무! 나는 처음 입산할적에는 지리산이 상당히 큰줄 알고 담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면서 일해도 모자랄것 같더니 지금은 왜서인지 지리산이 점점 좁아진다는 생각이 들군 하는데 동무는 그렇지 않소?》

《허, 왜요? 나는 점점 지리산이 더 커지는것 같은데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건 아직도 황동무가 랑만을 가지고 혁명도 대하고 이 지리산도 대하고있다는 실증인데 천진한데가 있구만.》

《그건 무슨 소립니까?》

《그저 그렇다는 말이지.》

《…》

《내 구빨찌산인 련락과장동무에게 나의 솔직한 고민 한가지를 말하겠는데 랭철성을 가지고 지적하면 여기 지리산에서 계속 장기전을 하기는 곤난할것 같소. 극상 5∼6개월을 견지해도 대단한 이 크지 못한 산에서 벌써 우리가 몇해째나 악전을 치르고있소. 적어도 놈들과 장기전을 붙으려면 저 백두산만 한 종횡무진의 활동무대를 가져야지. 이건 너무 협소하단 말이요.》

《물론 백두산은 여러가지 면에서 지리산에 대비할수조차 없이 큰 산인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인 백두산은 위대한 김장군님의 산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백두산이 커서 거기서는 우리 항일의 전사들이 장군님을 받들어 강도 일제와 싸워 조선혁명을 승리해 갈수 있었고 여기 지리산은 그보다 크지 못하기때문에 투쟁의 승리를 가져오기가 곤난할것이라고만 사고한다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시다싶이 우리 이 지리산이 얼마나 대활한 투쟁의 무대입니까?》

《아니 아니, 나는 투쟁무대의 반경만을 놓고 말하는건 아니요. 반경만을 놓고…》

《물론 그렇겠지요. 나도 고향마을 친구들과 같이 도장동을 떠나 지리산에 첫 발자욱을 들여놓을 때까지만 하여도 월출산 도갑사의 중출신인 한 유격대원에게서 지리산은 그 어디에서도 사람들이 한눈에 넣기 어려운 산이라는 말을 듣고는 말이지요. 그걸 거창스러운 지리산의 용적상개념으로서만 받아들였댔지요. 그러나 이 산에 들어와서 정작 지내보니 단순히 그런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웅장웅위한 지리산은 그 크기에 있어서 그래두 우리 나라에서는 손꼽히는 산인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지리산은 그 크기보다는 그 큰 그릇에 담겨있는 내용의 풍부성과 다대성에 더 큰 의의가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우선 지리산에는 여러개의 도와 군이 들어와 있었으며 여러개의 사단들로 조직편성되였다고 할수 있는 남조선인민유격대의 총지휘부가 튼튼히 자리잡고있는것이고 그뿐만이 아니라 그 수십개의 사단무력과 대비조차 할수 없는 인민들의 대부대, 20여만의 입산자들이 운명을 같이 걸고 들어와 있었댔지요. 그리고 여기서는 큰 지리산이 만들어준 리현상, 김지희, 조복만, 박영발… 그리고 <불꽃사단>의 사단장 조도원이, <외팔이부대> 사단장과 <외가리부대>의 사단장 등 걸출한 인민영웅들과 빨찌산의 유명한 용장들이 하나하나 배출되여나와 지리산의 크기를 더하여주었다고 할수도 있지요. 또한 이 지리산에는 없는것이 없었지요. 우선은 학교와 병원, 무기제작소와 피복창, 정미소와 된장공장, 제지공장과 인쇄공장… 완전한 하나의 독립적인 <자치공화국>이나 다름없는 자기 세계를 이루고있었다고 할수 있지요. 실로 외형상의 거창성과 그 풍격에 걸맞는다고 할수 있는 내용물의 풍부성과 다면성, 거대성 그리고 그가 뜻하고있는 사상정신의 높이와 강건한 의지, 불요불굴성과 조선의 통일을 열어갈 투쟁전망의 광활성과 승리의 기상으로 빛나는 크고도 광휘로운 산, 참으로 지리산이야말로 거룩하고도 위대한 산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대단하오. 대단해! 황과장동무는 어디까지 학교를 나왔소?》

《저는 소학교도 못 나왔습니다. 졸업증도 주지 않는 야학을 나왔다고 할는지요. 그런데 그건 왜서요?》

《너무 신기한 생각이 들어 그러오. 그런데 언제 그렇게 시인이 다 되였습니까?》

《이 지리산이 지금 전투적인 젊은 열정의 시인들만이 아닌 수많은 애국청년들을 시인으로 만들어주는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옳은 소리요. 그렇지만 이자 황동무가 이야기한건 지리산에 대한 시이지 력사의 현실은 아니다 이 말이요. 내 더 긴 말 않겠는데 한번 랭정한 눈으로 둘러보시오. 그전날의 지리산이 다 어디로 갔소? 동기<토벌>의 불에 타고 추위에 잔뜩 얼어서 졸아들어버리고, 이것이 바로 이 지리산이 점차로 작아지고있다는 표징들이 아니고 뭐요? 그나마 이젠 20만 입산자의 마지막사람까지도 다 묻어야 큰 돌뚜껑을 텅 하고 닫아버리게 될 지리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연피라미드로 되고야말 운명을 안고 죽어가고있는 지리산이란 말이요. 죽어가고있는 지리산!》

《무엇이라고요? 죽어가고있는 지리산?》

《그래! 동무도 나도 다 하나의 억울한 희생물이 되여 그 력사에나 남게 될지 말게 될지한 력사의 피라미드속에 산채로 매장될지도 모를 죽음의 산이라 이 말이요.》

《우리가 다 하나의 억울한 희생물이란 소리는 또 뭐요?》

《희생물이 아니면 뭐요. 아이, 어른, 청년, 로인, 부녀자 할것없이 먹을것도 없는 이 지리산에 미쳐서 다 들어오게 만들어놓고는 무책임하게 전선에서는 다 정전하여 지친 싸움을 그만두면서도 우린 뒤에서 계속 싸우다가 모두 지리산의 귀신이 되라 이 말이요?》

《로동지! 도대체 오늘은 어찌된겁니까? 나는 로영기부사령한테서까지 이런 소리를 듣게 되리라고는… 이건 불평불만정도가 아니라 우리 지리산과 혁명에 대하여 삿대질하는것이나 다름이 없는 하나의 배신적인 도전행위라고밖에 달리…》

《흥, 배신적인 도전행위라. 다른 사람들이 싸움을 그만두고 혼자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도 살아남을 인간의 권리를 위하여 정화를 할수가 있는것이 아니겠소. 이제 정전이 되고나면 죽어날건 우리밖에 없다는건 왜들 모르는지. 난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내 혼자서 최덕신이를 만나든가 채병덕이를 만나든가 아니면 리승만대통령을 직접 대상해서 지리산과 서울남산의 정화회담을 진행하겠단 말요. 통털어 죽어가고있는 이 지리산을 살리기 위해서 말이요.》

《아니 로동무, 당신 오늘 정신이 나가지 않았소? 그건 지리산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무서운 치욕을 들씌워 지리산을 영영 죽여버리는 미친짓이란 말이요, 미친짓!》

《그래, 나는 미쳤소. 사람이 미치지 않을수가 있는가? 나는 여기 지리산에 그 어떤 누리지도 못할 어리석어빠진 미래를 묻을수는 있지만 오늘을 묻어버리고 죽을수는 없단 말이요. 난 한번 번듯하게 잘살아보자고 해서 투쟁의 길에 나선것이지 죽자고 해서 나선 것이 아니란 말이요. 죽으려면 머저리같은 당신들이나 저절로 큰 무덤속으로 들어가시오. 나는, 우리는 살아야겠소! 이젠 내 말을 알겠는가?》

《알겠소!》

《알겠다면 선요원! 당신이 나서서 <지리산-남산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선을 이어주지 않겠는가?》

순간 황갑동이의 새파래진 얼굴에는 상대를 일순에 다 태워버릴듯 한 신랄해진 웃음이 비껴들었다.

《어리석소. 당신 잘못 봤소. 나는 빨찌산의 선요원이지 그런 배신자들, 민족반역아들의 더러운 선이나 이어주는 사환군이 아니란말이요. 이 개같은 자식, 승악하기 그지없는 놈, 이 철저한 혁명의 변절자!》

《닥쳐라!》

로영기는 미친듯 소리지르며 권총을 빼들어 갑동이를 견주었다.

《나를 모욕하는 놈은 이 자리에서 다 쏴죽이고 말테다!》

갑동이 그에 맞받아 늘 차고다니군 하는 수류탄을 뽑아들었다.

《어디 쏠테면 쏴봐라. 나는 나를 모욕하는건 참을수 있지만 우리를, 지리산을 모욕하는건 참을수 없다. 너같이 자기 아버지, 자기 조상을 모욕하는 민족반역자, 인민의 원쑤와는 같이 죽을망정 이 신성한 산에 함께 묻힐수는 없는것이다. 먼저 쏴라!》

로영기는 쏘지 못하고 총알이 재워진 권총을 들고 위험천만하게 갑동이앞에 미친듯이 다가들었다. 이때 반토굴귀틀집문이 벌컥 열리더니 기다렸던듯이 뛰여드는 한 녀대원이 있었다. 성난 강덕금이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짓들이예요? 로동무, 총을 내리지 못하겠어요?》

로영기가 얼굴만 반쯤 돌리며 덜된 건성질을 피웠다.

《너는 또 뭐냐? 비게덩어리같은 뚱보!》

《뭐요?!》 하는 순간 뚱뚱한 몸 그 어디에서 그런 재빠르고도 몽툭한 동작이 튀여나오는지 로영기에게 날듯이 달려들며 손칼을 만드는 덕금이의 가재미같은 손에 맞아 로가의 권총이 땅에 뚝 떨어졌다.

갑동이 웃음을 띠고 수류탄을 도로 제자리에 건사하는것을 기다려 땅에 나뒹구는 로영기의 권총을 집어들고 몸을 일으킨 덕금이가 쏘아붙였다.

《권총건사를 잘해야겠어요 동지.》

《네가 뭘 안다고 삐치는거야?》

《나도 밖에서 들어오다가 다 들었어요. <서삐>(서부쁠럭)동무가 우선 옳지 못해요!》

《뭐 <서삐>동무? 나는 <서삐>동무가 아니라 서부집단 부사령관인셈이란 말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는 다 같고 같아요.》

《여긴 규률도 없고 상부도 없소? 이 망할 놈의 지리산에는?》

《자기 대접을 제대로 받으려면 이제라도 제정신 차리고 똑똑히 사시오. 그렇지 않다간 정말 용서받지 못하게 될줄 아시오!》

《좋다! 이제 내 말을 안 들었다가 앞으로 누가 후회하게 되나 어디 보자.》

그자는 덕금이가 다시금 말없는 경고를 담아 내밀어주는 권총을 신경질적으로 탁 채가지고는 귀틀집밖으로 휙 나가고말았다.

과장과 녀성련락원사이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과장이 먼저 무겁게 말문을 여는것이였다.

《오늘 보니 사람은 아무리 제 부친과 가족친척들이 적들에게 학살당한 사람이고 그 아무리 일정한 직책이 있는 간부일지라도 마감에 가서 봐야 안다는 말이 맞는것 같소.》

《그 말이 옳은가봐요.》

《저 사람이 말하는게 암만해도 재미없지?》

《그래요.》

《어서빨리 서부 군부대사령관 반판수동지와 다른 동지들에게 통보해주고 특별히 각성을 높여야겠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과장동지!》


4
 

이때로 말하면 《토벌》이 불붙어 지나간 뒤를 이어 재귀열이란 무서운 전염병이 지리산의 봉우리들과 골짜기마다에 창궐하던 시기였다.

미제원쑤놈들이 헬리콥터로 재귀열살인병균들을 산들마다에 살포하고 산바위틈에서 나는 식수박우물에까지 각종 세균을 뿌리는 비인도적이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감행하였다.(천인공노할 미제와 그 주구들의 이 살인적인 잔악성은 그후 전세계인류에게 밝혀져 만인의 격분과 증오를 불러일으켰었다.)

소백산에서 충북지구사람들이 제일 먼저 재귀열을 앓기 시작하였는데 전염성이 얼마나 빠른지 경각간에 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다싶이 하였다. 환자들이 발생하는 즉시로 환자아지트를 설정하여 격리시키는데도 빠른 속도로 열병이 퍼져 며칠사이에 덕유산, 기백산, 지리산에는 골짝마다, 산릉선마다 미처 다 묻어도 주지 못하고 그냥 눈우에 내다눕힌 죽은 시체들에서 이들이 게바라나와 벌벌 기여다닌다는데는 머리칼이 다 일어설 지경으로 끔찍한 광경이였다.

그때가 바로 그 무서운 전염병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지리산의 인명이 절반이상으로 줄었다는 소리가 돌던 최악의 시기였다.

게다가 놈들의 공세는 마감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발악적이여서 산이란 산들은 다 늦가을 거미줄치듯 했다기보다는 통채로 하나의 큰 철망을 덮어놓았다고 하는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것이다. 그것도 부족하여 산에다 밤이면 홍청색전등들까지 사방에 쫘악- 켜놓아 개미새끼 한마리도 얼씬하지 못하도록 피눈을 밝혔다.

그뿐이 아니였다. 교묘한 대렬와해공작으로 금방전에 곁에 있던 사람들을 생포, 자수, 투항시켜 그들에게 제창 령급, 위급, 장급으로 승급을 달아주어 괴뢰군옷까지 입혀 《보아라부대》라는것까지 만들어가지고 비밀아지트가 있는데로 끌고 몰고 다니면서 양키놈들, 괴뢰군경놈들의 상투적수법대로 동족상잔의 피로 지리산을 물들이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서 황갑동이자신도 피할수없이 재귀열에 걸렸지만 얼마나 죽을래야 죽을 짬도 내기 어려운 일사분란의 시절이였으면 심한 열병에 걸려가지고도 한번 자리에 눕지 못하고 서서 앓았겠는가!

놈들의 《토벌》공세는 나날이 심해지고 열병은 숙어들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지라 몸이 단단하기로 박달목침 같다던 그마저도 더는 자신을 견지하지 못하고말았다. 적탄에 맞아도 박격포탄파편이 발뒤꿈치를 뜯어가고 머리에 쇠붙이가 들어박혀도 제 손으로 뽑아던지면서 다시 일어나 걸었던 빨찌산의 강인스러운 선요원, 그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박테리아, 병원균이 달려붙어 자빠뜨린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된노릇인지 허벅살, 물살이라고 놀림을 받군 하던 덕금이만은 이들도 너무 엄청나서 달려들지 못하는지 다 교대로 한번씩 겪는데도 련락과에서 그만이 쓰러지지 않고 그 둔한 몸으로 재귀열에 걸린 동무들을 업고 환자아지트로 드나드느라고 극성이였다.

그 재귀열도 여러가지였는데 제일 급한 재귀열병사통을 앓으면서도 련락과의 일로 사면팔방으로 그냥 뛰여다니던 갑동은 그만 길에서 정신을 잃고 넘어지게 되였던것이다. 그는 동무들에게 업혀 환자아지트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앓아 자리에 누워있으려니 꿈속에서처럼 별 천만가지 생각이 다 열에 떠서 헝클어진 머리속을 꿰지르며 갖가지의 어지러운 환영이 되여 떠올랐다가는 어느것 하나라도 정지시켜 붙잡을라치면 수많이 몰려와서 아물거리는 잠자리떼의 꼬리에 묻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군 한다.

멀리는 가지 않고 인차 나타나군 하는 그 왕모기잠자리의 가는 꼬리를 붙잡고 지난날에 있었던 희로애락으로 가득찬 크고작은 희비극들이 불련속적인 영화의 토막장면들처럼 피뜩피뜩 나타났다가는 자취를 감춘다.

이번에는 큰 말소금쟁이 한마리가 부르렁거리며 어디에 가서 꽹과리소리, 장새납소리도 구수하여 땅냄새나는 민간농악대인지, 어느 중학교의 하늘에 대고 《락화류수》를 불어대는 학생악대인지, 아니면 풍짝 풍짜작, 어느 소도시의 허술한 관현악단일지도 모를 풍각쟁이들을 잔뜩 데리고 와서는 한바탕 귀가 멍멍해지도록 놀아 주고는 히히거리면서 악기들을 다 가지고 달아나기도 한다.

그러는가 하면 이번에는 추억의 고추잠자리가 무엇을 묻기라도 하듯 그 묘하게 생겨먹은 사람의 해골 같은 대가리를 갸웃거려보더니 소금쟁이를 쫓던 어린시절 소꿉놀이 단발머리 이웃집 덕금이도 데리고 와봤다, 왕청같은 도장동의 《가마니댁》인 고숙모도 청학동 치성터의 그 소복단장의 젊은 녀인도 데려다가 제비인 손동무의 옆에 세워주기도 한다. 김지희의 두 녀동무인 《붉은 세타의 녀두목》 리옥순이와 문복순이를 사진 찍어다가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술에 취해 늘 리태백이던 아버지와 억울한 매를 맞고도 불쌍한 자식들과 주정뱅이 그 아버지 하나밖에는 모르던 현모현처였던 어머니의 자애깊은 얼굴도 떠올려준다.

그런데 이 몇달사이에 파파 늙어 백발귀신이 되다싶이 한 어머니는 《갑동아, 너때문에 이 어머니가 이렇게 되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용서는 다 싫다. 그건 용서가 아니다. 아들인 너의 용서를 받기 전에는 나이 아흔이 되든, 백살이 되든 나는 죽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겠다.》 이런다.

가끔 가다가는 그놈의 잠자리들의 꼬리에 묻어 두사람, 자기의 녀동무와 키꺽다리 신사 로영기가 나타나군 하는데 낯짝이 사악스러워진 그놈이 손에 들어있는 칼로 큰 호박을 쿡 찌른다. 그러자 그 둥글호박은 붉은 피를 흘려가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다…

이런 비몽사몽간에 고열에 시달리며 헛손질로 지꿎게 달려드는 잠자리떼를 쫓아버리던 갑동은 자기가 그 무슨 사인교 같은데라도 타고 먼길을 둥둥 떠가는것 같은감을 느끼며 선듯해오는 촉감에 눈을 뜬다. 밖이다. 눈길의 썰매우에 모포를 뒤집어씌운 자기가 누워서 끌리여가고있다. 앞에서는 한 남자가 어깨에 멘 바줄로 끌고 뒤에서는 한 녀자가 따라오며 밀어주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이제는 퍼그나 온것 같았다.

《동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거요?》

《가만 누워계세요. 정신 좀 들었어요?》

그 퍽 온화한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아닌 덕금이다.

《강동무, 어찌된 일이요?》

《환자들을 옮기고있어요.》

《왜서?》

《상급의 명령으로요.》

《그건 갑자기?》

《그럴만 한 리유가 있는것 같은데 그 리유는 저도 아직 다는…》

새 환자아지트에 갑동이를 자리잡아주고난 덕금이는 여느때없이 몹시 서두르는 기색으로 그에게 말했다.

《저, 과장동지! 나는 급히 임무가 제기되여 더 옆에 있어드리지 못하겠어요. 그러니…》

《무슨 임무이기에 그처럼 급하게?》

《급해요. 그렇지만 과장동지는 모르셔도 돼요.》

《그렇다면 더 붙잡지 않겠으니 싸게 떠나시오.》

《다르게는 생각말아요. 후에는 다 알게 될테니까요.》

《지금 말하고 가면 안되오?》

《네, 아직은 절대비밀이니까요.》

《이 과장한테두?》

《그래요! 과장동지, 어찌하면 제가 인차 돌아서지 못할수도 있어요. 아니,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는 그런 길인지도 몰라요.》

《아니 그건 무슨 소리요?》

《별건 아니구요. 그저 해본 소리예요. 저는 중요한 련락임무를 받아가지고 떠날적마다 꼭 살아서 돌아온다고 기약하기 어려운 길을 간다는 각오를 가지고 떠나는데 습관되여있으니까요.》

《모를 소리요…》

《저는 시간이 바빠서 떠날려고 해요. 제가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이 편지속에 있으니 제가 떠난 다음에 혼자 보도록 하세요. 그럼 병치료를 잘…》

《강동무!》 갑동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며 불렀다.

덕금이는 벌써 비밀아지트에 없었다.

갑동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앉아 덕금이가 남기고 간 그 편지를 꺼내여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대에게!

 

정작 펜을 들고보니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바이 알길 없는 그대 귀중한 벗에게 마지막으로 이 글월을 남깁니다.

그동안 서로 더 친밀한 인간의 정 나누고싶어도 그래서는 안될 우리이기에 늘 가까이에 있어도 몸만은 멀리 두려고 애썼으며 심장속에는 사랑이 있었건만 그저 마음속의 오빠로만, 동지로서만 지내야 했던 저였습니다.

존경하는 황동지!

저는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 이리도 급히 길을 떠납니다.

지리산에 올라선지도 여러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변할수 없는 한 모습, 어찌할수 없는 뚱보인 이 몸을 다스리며 처음으로 단독임무수행의 길로 자진하여 떠난답니다.

어디로 왜서 가느냐고 물으실테지요. 이제는 대답드릴수 있습니다.

저는 놈들이 금시 몰려오는 길에 《지뢰》로 묻히고저 간답니다.

우리 기백산에서 뜻밖에 큰 변절자 한놈이 나타났구만요. 황동지는 사람을 바로 보았댔습니다. 로영기는 정말로 나쁜 놈이였습니다.

지리산의 배신자인 로영기.

자기 마음속에서는 왜서인지 지리산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면서 심한 동요를 보이던 그자는 종시 지리산에 등을 돌려대고 공작지에서 체포되자 그길로 놈들에게 투항자수해버리고말았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자는 즉시로 《보아라부대》에 들어가서 괴뢰군 소령의 계급장까지 어깨에 붙이고 보란듯이 우쭐해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개가 사람이 되기는 어려워도 인간이 개로 되는것은 순간이고 간단한것 같애요.

이제 불일간에 그 로영기란 놈이 《보아라부대》의 앞장에서 누런 개, 검은 개들을 끌고 통털어 여기 기백산근거지로 접어들지 몰라요. 그자는 우리 기백산의 기밀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있는 원쑤가 된 변절자로서 절대로 살려둘수가 없는것은 물론 그놈을 죽여 로영기 그자가 《토벌대》놈들을 끌고 들어오는 그 외통길을 《도람통》 이 한몸이 그대로 지뢰가 되여서라도 막아야겠기에 제가 나섰습니다.

우리의 지리산을 지키고 동지들을 지키고 그리고 환자아지트에 병들어 누워있는 귀중한 전우들과 당신을 지켜드리기 위해 저는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는 이 마지막길을 웃으면서 떠나간답니다.

 

여기까지 편지를 읽고난 갑동은 소스라쳐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머리를 무엇이 휙 잡아휘두르는것 같은것이 몸을 일으킬수도 없었거니와 일어선다고 해도 이미 떠나가버린 녀동무를 붙잡을길이 없었다.

그는 절박감을 어찌할수 없어 하면서도 손에 들고있는채로인 편지만은 계속하여 읽고싶어졌다.
 

황동지,

한때 나를 사로잡았던 경찰놈들까지도 너 그 뚱보같은 무거운 몸을 가지고 어떻게 빨찌산을 하냐고, 어디서 혁명에 미친 녀자라고 말한적 있다고 했지요. 그건 사실이였어요. 저는 바로 혁명에 반하여 끝까지 죽어도 혁명 하나만을 따라가자고 맘먹었던 사람, 정말이지 혁명에 미친 녀자였어요. 그런데 저를 이렇게 혁명에 온넋을 깡그리 빼앗기고 따라다니도록 만들어준 사람이 하나 있었어요.

그 사람은 내가 녀고시절에 흥미를 가지고 보던 그 어떤 소설의 남주인공처럼 키도 후리후리, 눈은 부리부리, 목소리는 우렁우렁… 사내싸게 잘 생긴 그런 미남청년도 아니였구만요.

어느 소설가도 자기 장편의 남주인공으로는 잘 써주지 않을지도 모를 그 매력적인 유모아스러운데가 있는 곡마단의 유쾌한 희극배우에게서나 빌려다가 붙인것 같은 끝이 몽투그레한 코를 제외한다면 키도 남자로서는 별로 크지 못하고 특별하게 생긴데라고는 하나도 없어 어디 잘 생긴 사나이라기보다는 녀자처럼 곱게 생겼다고나 할수 있는 홍안청년, 성미도 조용해 도대체 산에 들어와서는 무슨 일을 맡아하는지, 어디에 없어졌다가도 얼마후 수림속에서 조용히 나타나 그립던 전우들의 손을 한번 꼭 잡아보는것만으로도 좋아 눈물을 글썽이군 하던 인정많은 사람, 세상에 녀자들앞에서는 사내를 뽐내지만 실상은 범가죽을 쓰고있는 시라소니같은 남자가 아니라 겉에는 순한 사슴이나 노루, 지어는 토끼가죽을 써도 좋으니 속에는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점잖게 조용히 들어앉아있는 남자! 자기 사람들앞에서는 천상 어지고 순하다가도 적들앞에서는 금시 맹수가 되여 무섭게 날뛰여 싸우는 그 불범같은 모습이 진짜 사내의 증명인 그런 남동무 하나가 저에게 있었답니다.

언제인가 그는 늘 짐으로 되여 미안해하는 저에게 이런 뜻있는 말을 해준적이 있었어요.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처자들과 부모형제들에 대한 사랑, 조국과 인민에 대한 참된 사랑이란 스스로 큰 의무를,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강동무는 어떤지…>

후에 지내놓고보니 그 황동무야말로 마치 말띠라도 타고난 사람처럼 늘 제스스로가 택한 남의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할가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혁명에 넋을 잃기 전에 먼저 그 훌륭한 사나이, 인간 혁명가에게 마음반하여 한걸음한걸음 따라온것이 오늘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황동지! 솔직히 고백하건대 어찌할수없이 그대를 생각하게 되고 그대가 그리워만 지고 그대만을 벗으로, 동지로 따르고만 싶어지는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면 저는 동지를 몸과 마음 다 바쳐 사랑하고싶었음을 처음으로 고백드리며 한가지 용서를 빕니다. 구수한 토장에 까나리를 넣고 보골보골 끓인 그 호박장을 우리는 서로 영영 맛보지 못하고마는가 봐요…

그리고 제가 오늘 헤여지는 마당에서 제일 마음에 걸리는것은 집에 계시는 어머님과 고숙모님문제예요. 모름지기 그때 어머님과 고숙모님은 어떻게 하든지 아들과 조카를 산에 들여보내여 죽이지 말고 살리려고 해서 그랬을거예요. 그래 놓고 지금 얼마나 가슴아파 하시겠나요.

그분들로서는, 어머니로서는 다른 사람 아닌 아들의 용서를 받고싶어하는거예요.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면 꼭 용서를 드리도록 하세요.

제 어머니도 용서하지 못하는 아들은 장차 그 누구도 용서하지 못해요. 다른것도 그렇지만 아픔을 이겨내야 하는 그런 용서가 없다면 이 민족의 화해와 단합도 나아가서 통일도 가져오기 어려울거예요. 민족간의 큰 용서, 용서할수 없는것을 큰 맘 먹고 용서해주는데 우리 민족통일도 있는거예요.
당신이 어머님을 마음속으로 용서해주신다면 제가 죽어서라도 그대에게 <아리랑>을 불러드리렵니다.
그럼 부디 병이 완쾌되여 끝까지 굴함없이 잘 싸워주기를 바라요.


1952년 2월 3일
당신의 뚱보로부터

 

그 편지의 마감까지 다 읽고나니 그만에야 눈물이 콱 쏟아지려 하는것을 참을길 없는 갑동이였다.

갑동은 환자아지트에 누워서 병마와 싸우면서도 낮이나 밤이나 《뚱보동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동시에 그와 직결되여있는 로영기란 놈의 출현에 대하여 신경이 씌여짐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렇지만 변절자 로영기는 그 누구의 손에 응당한 징계를 받았는지 며칠이 지나도록 기백산에 다시 살아서 나타나지 못했다. 따라서 《뚱보동무》도 아직까지는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이 아무데서도 없었다.

아마도 그는 자기가 떠나면서 남긴 편지에 썼던것처럼 자수전향을 하여 괴뢰군 소령까지 되였다는 로영기가 속한 변절자들의 부대인 《보아라부대》의 기백산으로의 기동을 막는 하나의 큰 지뢰가 되여 빨찌산의 《도람통》으로서의 자기 결정적인 사명까지 다하고 최후를 마쳤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갑동은 환자아지트에서 걱정놓고 병치료를 받고있는 자기들의 몸이 편할제 마음은 오히려 더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죄스러워지면서 덕금이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는가 하는 그 한가지 근심걱정으로 속을 태웠다.

기백산전체에 대한 위험은 덕금이의 결정적인 역할에 의하여 막아졌다고 할수 있는데 환자아지트에 대한 위험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부터 닥쳐들었다.

당시 환자아지트가까이에 자리잡고있던 거창군조직에서는 식량이 없어 다 굶어죽고있는 형편인데다가 자기네 성원들도 여럿이 들어가 있는 비상아지트의 환자들도 식량타격을 심하게 받고있다는것을 알고 자체로 보급투쟁을 조직했었다. 고재근방으로 나가서 식량공작을 잘해가지고 오는데 눈발자국을 따라 올라온 지방경찰들이 해질녘에 환자아지트를 완전포위하고 생포하려고 달려들었다. 손들고 나오면 살려주겠다고 소리지르는 한편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그 총탄에 맞아 제일 먼저 전사한것이 경남도 녀맹선전부장이였고 거창군인민위원장은 손들고 나왔으며 갑동은 보급을 갔던 성한 동무들의 부축을 받아 맞총질을 해가면서 야음을 타서 포위를 겨우 뚫고 나올수 있었다.(뒤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다 희생되고 몇사람들만이 실신상태에서 개들의 담가에 메여서 어디론가 끌려갔다는것이였다.)

경찰놈들의 추격은 항상 검질긴것이여서 갑동은 밤새 제정신인지 남의 정신인지 어디로 끌려가고있는지도 모르고 업히우기도 하면서 사선을 헤쳐나갔다.

계속되는 놈들의 추격을 받으며 향방없이 쫓기우노라니 자기네 빨찌산이 주동에 서서 공세를 들이대며 지리산에서 주인노릇을 하던 지나간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것이였다. 6.25전 빨찌산은 거점을 산상에 두었다면 9.28후 빨찌산은 산을 내려와서 있지 않았는가.

싸움도 직접 도 야산대들과 합동하여 필요할 때에는 본때있는 유격전들도 벌리지 않았던가.

대표적인 투쟁으로서는 1951년 12월에서 1952년 2월사이에 벌어졌던 일련의 전투들 경남 303부대와 102부대, 전북 외팔이부대, 《불꽃사단》들이 병력을 합동하여 벌렸던 안성, 설청, 북상, 안의, 진안, 장수, 서상 사면으로 포위해들어오는 적들의 포위를 깨고 오히려 적들을 괴멸시키던 전투는 얼마나 신이 났던가.

다시 노랑개, 검정개들이 무주, 병곡, 월성 농골을 목적으로 기여들던 원쑤놈들을 섬멸시키던 전투는 또한 그 얼마나 통쾌했던가. 리현상사령의 남부군이 지리산에 들어왔을 때에 경남, 전남무력이 다 합동해서 진행했던 시청골 내대 피의 복수전에서는 그야말로 대승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피아골싸움에서만은 실패했었다. 시청골 내대전투를 분수령으로 하여 피아골싸움으로부터 놈들의 세차지는 제2차 동기《대토벌》에 기가 꺾이여 점차 상승일로로부터 하강선을 그으며 좌절을 당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황갑동이였다.(피아골은 력사적으로 조선민족의 처참한 무리죽음을 낸 곳으로서 피아골이 아니라 피의 골짜기였다.)

그날 밤의 포위에서는 겨우 벗어날수가 있었지만 보다 크고 본격적인 《토벌》의 포위망안에 들었다는것을 알길이 없는 황갑동이네들이였다. 그 본격적인 포위망이란 놈들이 《서부쁠럭》전체, 덕유산, 기백산, 가약산, 떡갈산에 대한 집중공세, 집중포위전을 이르는 소리다.

황갑동은 맵짠 눈보라속에서 적들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강인하게 죽지 않고 눈우에서 재귀열을 털어버리면서 병마와 싸워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아 동지들을 놀래우군 했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포위망의 깊고깊은 자루속에 저절로 들어가는 형상일줄은… 기백산에서 덕유산으로! 다시 적들과 맞다들어 기백산을 지나 더는 갈데가 없게 된 가약산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제2의 피아골로 될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황갑동이네들이 쫓기여 가다가다 못해 앞이 막히운 곳에 다달으니 치마바위였다. 절벽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무도 아찔하여 발바닥으로부터 온몸에 짜릿한 전률이 다 흘렀다. 저밑에서는 눈에 묻힌 깊은 계곡이 죽음의 아가리를 항 벌리고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눈이 쌓이고쌓여 흰 치마폭처럼 바위를 덮으며 내려간 그 치마바위아래의 산이 씽- 랭기를 풍기며 올라와서는 갑동이의 이마를 치는것 같았다. 앞에도 적, 옆에도 적, 뒤에는 단애절벽, 아무리 휘둘러보아야 절벽강산이라더니 앞이 캄캄해왔다. 더는 갈데가 없었다. 그는 이때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무서운 자신의 절망감을 느껴본적이 없었다. 다시는 헤여나올수 없는 깊은 눈의 함정우에 서있는것이다.

(아니, 나는 지금 삶과 죽음의 계선, 앞으로도 뒤로도 단 한발자욱도 움직일수 없는 무서운 극한점에 서있는것이다.

그러나 난 이 《극한점》에서 추호의 동요라도 보여 놈들에게 투항자수할수는 없는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순간 비장한 결심이 어리였다.

(나도 먼저 간 선렬들처럼 여기서 이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구나. 나도 드디여 예서 당하게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뇌를 치는 순간 황갑동은 지리산이 갑자기 작아진 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변절자 로영기라는자가 말하던 지리산의 용적이, 지리산의 반경이 작아졌다고 하던것과는 다른 의미에서였다. 그것은 지리산이 아무리 크고 큰 산일지라도 더는 갈 곳이 없어 막다른 골목에 빠진 사람이 가지게 되는 분하고 억울하고 절통한 절망적인 느낌이였다.

이 지리산과도 이로써 작별할 시각이 닥쳐왔다는것을 알게 된 참대숲의 《갈범》은 하늘과 땅을 향해 피타는 절규를 터뜨리며 울부짖었다.

《아- 지리산이 큰줄 알았등마-》

그는 통분스레 웨쳤다.

그의 웨침소리에는 기막힌 울음이 섞여있었다.

황갑동은 다 잡아놓은 먹이에로 접근하는 사나운 맹수들과도 같은, 자기네들을 향하여 총들을 꼬나들고 한발자욱한발자욱 접근하고있는 적들을 노려보다가 옆에 있는 바위꼭대기에 우뚝 올라섰다.

순간 눈보라마저도 끊친듯 사방은 숭고한 정적에 휩싸였다.

황갑동은 숭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지리산과 마지막리별의 인사를 하였다.

《지리산아, 나는 죽어도 네 품에 안겨서 죽을 너의 아들, 내 저 더러운 놈들의 손에 붙잡혀서 죽을수 없기에 이 길을 택한다. 아, 사랑하는 나의 지리산아, 내 조국통일의 그날 환생하리니 나를 기다려다오.》

그는 마치 지리산이 자기에게 준 억센 나래로 산악을 날아내리기라도 할듯 아래로 몸을 날리고야말았다.

밑에서 기다렸던듯 눈덮인 절벽바위가 그를 받아주었다. 치마바위우의 흰 주름살이 약간 물결치듯 하던것이 불시에 사태를 일으키며 아래로 쏜살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바위와 산이 통채로 무너져 내리는상싶은 눈사태는 황갑동이의 몸을 휩쓸며 산파도를 타고 저아래 멀리까지 물결치듯 흘러내리고있었다.…


- 제1부 끝 -
(2001년 4월 장수산에서)

-> 이 도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보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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