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제1부 지리산   제1장 대나무는 혼자서 자라지 못한다
 

제6장 불타는 지리산
 


1
 

황갑동일행은 셋이였다.

그들은 리현상, 김지희의 전투병단이 주둔하고있는 곳에 경상남도인민유격대 정치책임자를 안내해주고 자기네 거처지로 돌아가는중이였다.

천왕봉은 아직 아득히 먼데 해는 이미 서천으로 퍼그나 기울어있었다.

김지희전투병단에서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한 후 수십리 산길을 내처 걷다보니 다리가 뻐근하고 속도 출출해났다.

《과장동지, 어차피 밤중에야 부대에 도착하겠는데 어제 곰 잡아먹은 곳에 가서 때식이나 하고 갑시다.》

일행중 나이가 그중 어린 련락원이 건늬는 소리였다.

갑동은 반사적으로 하늘의 해와 멀리 천왕봉을 가늠해보며 대답했다.

《그러기요.》

그들은 얼마간 더 걷다가 좌측 골짜기로 내려갔다.

어제 이맘때의 일이였다. 부대에 식량이 떨어져 아침식사도 변변히 못하고 떠나온지라 모두 허기가 져 걷는데 일행중 한사람이 《아, 저 곰.》 하고 바쁜 소리를 쳤다. 모두의 눈길이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해졌다.

그 오솔길에서 아래켠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아름드리 강대나무중간에 한마리 곰이 매달려있는것이 눈에 띠였다.

날이 추워지니 들어가 동면을 할 구멍을 찾고있던 모양이였다.

곰은 뒤늦게야 인기척을 느끼고 멀거니 마주 쳐다보았다.

도 정치책임자의 호위병이 날쌔게 어깨에 메고있던 장총을 벗어 곰을 겨냥하였다.

둔하면서도 영민한 곰은 자기에게 큰 위험이 닥쳤다는것을 직감한듯 재빨리 나무뒤켠으로 몸을 숨겼다.

호위병이 우회하여 총을 겨누니 곰은 또다시 본래 있던쪽으로 돌아왔다.

그러기를 몇번…

갑동은 그것을 보니 속이 좋지 않았다. 자기 혼자라면 그 곰을 그냥 살려두고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허기져있으니 말릴수가 없었다.

총소리가 울리는것과 동시에 곰이 땅바닥에 쿵 떨어질 때 갑동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일행은 곰을 골짜기로 메고 내려가 각을 떠 불에 구웠다. 산사람들 누구나 비상용소금주머니는 가지고 다니는터여서 곰고기는 먹을만 했다.

갑동이도 속이 텅 빈 때라 몇점 들기는 했지만 별로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때 먹다 남은 고기와 내장물을 옆의 나무가지에 걸어 감추어 놓으며 돌아올 때 먹자고 한것이 바로 이 애젊은 련락원이였던것이였다.

곰고기로 요기를 하고 다시 떠날 때 갑동은 어디선가 산이 타는 냄새 같은것을 느끼였다. 처음에는 방금전에 나무불을 피워놓고 곰고기를 구워먹었으니 그 불내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걸을수록 그 냄새는 더 심해지는듯 했다.

갑동은 그 어떤 예감이 들어 바람이 불어오는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저기 동산쪽 하늘에 시꺼먼 구름 같은것이 떠오르고 첩첩히 어깨를 결은 산들은 온통 여름안개같이 자욱한 연기에 휩싸여있었다.

그날 해는 아직 서산우에 떠서 저녁노을을 만들고있었는데 웬 왕청 같은 동쪽켠의 높은 산봉이 황혼빛에 물드는가싶은 혼돈을 가져오더니 그 어근의 산들이 벌겋게 물들여지기 시작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저녁노을이 서쪽하늘이 아니라 동녘에서 타오르기 시작한다는것부터가 괴이스러운 현상인데다가 아침노을이나 저녁황혼은 서서히 시작하여 한껏 타오르다가 산우로든지 아래로든지 점차 사그러지는것인데 이것은 인간이 대자연에 대고 지른 큰 산불이였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 산들은 하늘과 함께 온통 진한 피빛을 피워올리고있었다.

이윽고 그중 어느 한 산봉으로 제일 먼저 기여오른듯 싶은 가느다란 불뱀 같은것 하나가 대가리를 바딱 쳐들고 나타나서는 산릉선을 따라 기여다니면서 여기저기 불을 달아놓고있었다. 처음에는 빨간 색실 같은것이 별나게도 고와보이는것을 갑동은 이상스레 여겼다. 다음에는 그 빨간 실뱀 같은것이 량옆으로 퍼지면서 서로 손을 잡고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그 불띠는 역시 첫눈에는 이 산의 붉은 리봉같이도 보였지만 그뒤로 온산을 태우며 저녁하늘로 활활 솟구치는것은 그 산이 좋아서 타는 불색머리수건일수는 없었다. 하나의 불진을 이룬 그 산불은 아래쪽으로 뿔뿔이 쏟아져내리듯 구르기도 하고 곤두박질치기도 하면서 골짜기로 꺼지듯 사라져 보이지 않더니 웬걸 그 이쪽 다음산들을 넘어섰을 때에는 벌써 곱게 보이던 가느다란 색실일수가 없었다. 그 형편없이 굵어진 불뱀의 대가리는 빨간 혀바닥을 날름거려 무성하던 수림들을 집어삼키며 불사태를 일으켜 다시 산을 타고 급속히 쏟아져내리는것이였다. 그다음의 산고개에 올라섰을 때에는 벌써 그 거만하고 횡포해진 불구렝이의 아구리에는 시꺼먼 연기뭉텅이가 물려있었으며 이쪽으로 돌진해 내려오는 그 기세는 자못 공포를 일으킬만 하였다.

《아, 저 불! 이쪽으로도 산불이 넘어오구만이라-》

다급히 웨쳐대는 어린 련락원의 그 소리에 놀란 갑동이 돌아보니 아닌게아니라 이자 그 오른손켠의 산불과는 반대방향의 왼손켠 산등으로도 불길이 넘어오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그것도 약과였다. 그날 밤 어둠이 짙어가면서부터 더욱 선명해지며 멀리 가는 그 산불은 지리산의 여기저기에서 타붙기 시작하면서 멀리 뒤쪽의 노고단에도 옆쪽의 반야봉에도 그리고 제일 높은 천왕봉에도 다 미치여 화광이 충천하면서 지리산의 백리 수림의 바다를 태우고있었다. 갑동은 여기저기 사방으로 포위해 들어오는 방향과 목표가 뚜렷한 산화재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적들이 지리산 도처에 불을 질렀구나.)

갑동은 어렵지 않게 적들의 흉계를 판단할수 있었다.

련전련패하니까 이제는 화공전을 벌리는것이였다.

통일된 하나의 조국, 인민이 주인된 나라를 념원하여 처자권속을 떠나 산발을 누비며 풍찬로숙하는 의로운 유격대원들을 깡그리 불태워죽이려는것이다. 천추에 용서 못할 인간백정무리들, 그는 치를 떨었다.

지난 9월부터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은 지리산, 태백산, 오대산 등 남조선도처에서 활동하고있는 인민무장부대들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공세를 개시하였다.

미제의 지령에 따라 로구 리승만이 직접 집행하는 특수작전이였다. 놈들은 괴뢰군 사단과 련대들, 전역의 경찰들을 총동원하여 대《토벌》공세를 벌렸지만 수세에 몰리자 이제는 《화공작전》을 시작한것이였다.

그날 밤이 깊어짐에 따라 그 주변의 산이라는 산은 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전부 불바다, 불천지로 변하고말았다. 어쩌면 바람 탄 불길이라더니 불길이 바람을 탔는지 바람이 불길을 탔는지 알길이 없었다. 어쨌든 이때까지는 바람소리만으로 들어왔던 그 눈보라를 타고 어디론가 미친듯 몸을 비틀면서 질주하고있는 그 불빛의 세찬 불바람을 갑동은 놀라움을 가지고 바라볼뿐이였다. 그날따라 바람은 왜 그리도 세찼던지 나무들만이 아니라 비가소성물질인 바위와 흙으로 된 거대한 가소성물질이기도 한 온 산을 태워 가진 그 산들의 불룡들은 기승을 부리며 이 산에서 저 산으로 허양 건너뛰여 날아지나면서 온갖 짐승들도 공포에 질려있는 깊은 계곡들에 무시무시한 불그림자를 던지군 했다. 불길들이 먼저 산봉들의 숲언저리우를 태우며 일차적으로 휩쓸고 지나간 뒤로 수많은 나무아지들과 선채로 죽은 마른 강대들이 불쏘시개가 되였는지 산림에 인차 대화재가 일었는데 진짜 산불은 그것이였다. 화르륵 화륵, 소리를 내며 거만해지고 횡포해진 불머리를 잔뜩 쳐들어 기승을 부리며 마주 달려오는 두 산의 불길은 바로 그것이 목적이기라도 한듯이 서로 밀고 닥치고 두손아귀로 끌어당기기도 하면서 요란한 불싸움을 벌렸다. 맞부딪치면서 커다란 불기둥으로 만들어져 솟구치더니 글쎄 공기중에 그 무엇이 있겠다고 깡그리 태워가지며 땅과 하늘사이에 불천지를 만들어버리는것이였다. 산이 혼자 타들어오는것은 그래도 어떻게 피할수도 있으련만 량쪽에서 동시에 지른 산불들이 맞부딪쳐 흙도 바위도 물도 다 태우면서 마치 화산과도 같은 폭발을 일으키는상싶은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자연의 현상은 이 세상에 더 없을것 같았다.

아무것으로도 막을수조차, 말려낼수조차 없는 그 불가항력적인 불과의 대격전속에서 모든것이 타고 죽고 한줌의 재, 한줄기의 연기로 사라져갔다. 그 뜨거운 숨막히는 매연과 눈조차 뜰수 없는 불의 소나기속에서 제일 먼저 뛰여나온것은 불을 제일 싫어하는 지리산속의 시뻘건 불범들과 백범들이였다. 산돼지들의 두목인 걸구가 이때를 당하여 앞뒤로 갈팡질팡하다가 지리산의 굴밤을 먹여 자래운 아들 손자 손녀 외손 고손… 대가정을 이룬 자기 무리를 이끌고 늘어져 땅에 닿는 빈 젖통의 행렬도 함께 이끌고 죽기내기로 그 불길속으로 마구 돌진해들어가는것이였다. 첫눈이 내리는것을 기다려 어느 한 굵은 나무통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시작했던 곰이 매캐한 연기냄새에 잠에서 설풋 깨여 재채기를 하면서 밖으로 대가리를 내밀었다가 이 지리산에서 나서 생전 처음인 그 대산불을 보고는 작은 눈이 째여질듯 커져가지고는 내리지도 못하고 오르지도 못하고 우왕좌왕이다. 꽁무니를 지지며 올라오는 뜨거운 화염에 쫓기운 그놈의 큰 곰은 나무꼭대기까지 게바라올라가 불길에 휩싸인채 나무를 꽉 그러안고 타죽으면서 하늘을 향해 무섭게 울부짖는것이였다. 이때까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것이 맹수들이거나 사람인줄만 알았던 노루와 사슴, 토끼와 다람쥐들도 불속에서 뛰여나와서는 사람들이 있는데로 피해오군 했다.

범도 쫓아가서야 잡아먹을 정도로 날래다는 산달조차도 불에 쫓기여 다니다가 불속에 들고 그 날아다니다싶이 하는 잣나무밭의 검은 청서도 꼬리에 불이 달려가지고는 짹짹대면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에로 넘어뛰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버렸다. 나는 재간을 얼마간 가지고있는 장끼마저도 불에 데여 날아올랐다가는 앉을데를 찾지 못해 빙글빙글 돌기만 하다가 뜨거운 화기가 확 끼쳐올라오는 어느 도롱봉의 불속에 곤두박혀 그 짧고 단박한 울음소리의 덩어리와 함께 타죽어버리고마는 판이였다. 지어는 물가의 가재까지도 뜨거운 불비에 발갛게 익어가면서도 그냥 벌렁벌렁 기고있었다.
그처럼 날랜 산짐승들, 날짐승들의 형편도 이러할진대 잔혹한 《토벌》의 불길속에 휩싸여 죽은, 포위망에 든 지리산인민들과 애국적인 빨찌산들의 그 불에 타죽는 처참한 광경이야 어찌 다 말할수 있으랴!

놈들이 불지른것은 산들만이 아니였다. 마을의 집들도 학교와 병원들도 불타고 여러 절간들도 다 불타버렸으니 불탁우에 올라 앉아있던 석가모니도 그만 불타서 옆으로 쓰러지면서 그 불악귀같은 리승만에게 더없는 저주를 퍼붓는상싶었다. 실로 이 지리산이 생겨 나 처음인 뜻밖의 불의지변의 불란리였다.

그 이튿날부터 계속 불타고있는 지리산의 인민유격대 중요방어요충지들에 대한 괴뢰군대와 경찰들의 련합으로 이루어진 대《토벌》부대들의 본격적인 협공이 개시되였다. 포와 장갑차, 비행기들까지 동원한 놈들의 발악적인 공세는 처음부터 맹렬하였다. 그 산불과 총포의 포위망속에서도 유격대원들은 현대적무기로 완전무장한 오만해진 적들과 용감히 맞받아 싸웠다. 적들은 《투항하라, 투항하면 살려준다!》고 소리쳤지만 갑동이와 동행하던 젊은 련락원들은 물론이고 빨찌산들중 그 누구도 생명을 건지겠다고 놈들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적에게 투항하여 구차히 사느니 오히려 그 무서운 불속에 스스로 뛰여들며 《통일된 조선 만세!》를 소리높이 부르면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었다.

지리산은 자기의 장한 아들딸들인 그 애국청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2

 

그때로부터 며칠후 저기 동산에 떠오르는 해도 연기에 끄슬리여 검누렇게 여겨지는 이른아침 불타다가 남은 나무그루터기같은 한 사람이 지리산에서 나와 이쪽저쪽으로 비트렁거리면서 걷고있었다. 식물이고 동물이고 땅밑의 개미새끼까지도 다 죽어버려 생명의 기척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산속에서 그래도 타죽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오는 사람, 갈가리 찢기운 옷이며 맨발이며 험해진 손이며 땀투성이, 피투성이의 얼굴이며가 온통 숯가루로 어지러워져서 하나의 걸어다니는 큰 숯덩이처럼 보인다. 그의 얼굴에서 금시 꾸역꾸역 연기라도 피여오를것만 같다. 하루이틀사이에 그의 옆에서 나어린 련락원들을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고 총에 맞아 죽어갔는지 모른다. 그는 련락과장 황갑동이였다.

지금 그를 지배하고있는것은 어떻게 하던지 불탄 지리산에서 살아남은 동지들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였다. 주위에 동지가 많을 때는 그리 몰랐는데 수많은 동지들을 잃고 홀로 남은 지금에는 한사람의 동지가 그 얼마나 귀중한가를 절감하게 되는 그였다.

동지! 그것은 생의 불씨이고 혁명의 밑천이고 의지해야 할 조직인것이였다. 동지를 찾아내 손을 잡아야 자신이 살수 있고 한번 나선 통일혁명의 이 길도 끝까지 갈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는 길에 나선것이였다.

그는 지금 지리산초입마을의 비밀아지트를 찾아가고있었다.

거기 가면 적들이 대《토벌》작전전에 공작을 내려와있다가 건재해있는 동지들의 행처를 찾을상싶어서였다.

그가 비청거리며 골짜기를 한창 내려가는데 갑자기 《쉬익-》 하는 소리가 귀청을 째더니 멀지 않은 앞에서 쾅! 포탄이 작렬하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넙적 엎드리였다.

순간 그는 적들이 포위진을 풀지 않고있다는것, 자신이 발각되였다는것, 더 내려가서는 안되며 이제는 죽든살든 되돌아 뛰여야 한다는것을 간파했다.

그가 벌떡 일어서 뒤로 돌아서니 다시 박격포탄이 날아와 앞에서 터졌다. 놈들은 총을 쏘지 않았다. 놈들은 무엇이라 소리를 쳤다.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갑동은 그것들이 자기를 희롱하고있다는것을 느꼈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의 고립무원함과 무력함, 가련함을 느껴본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기지 못한 지는 싸움을 한자의 패배감과 수치감을 이처럼 뼈저리게 느껴본적도 없었다.

옆봉우리우에서 내려다보면서 쏘는 박격포인지라 피할길이 없었다. 다시 한발의 포탄이 날아와 터질 때 발뒤축이 선뜩 했다. 파편이 스친것이였다. 그는 너무 급해맞아서 상한 다리를 끄을며 그옆의 개울창을 대피호삼아 뛰여들었다. 그 순간에 갑동은 무슨 구름몽둥이 같은것으로 뒤통수를 치는것 같은 된타격을 받고 그만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것은 어슬녘이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두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것이였다.

(아까 무엇이 머리를 치면서 두눈에서 시퍼런 불찌가 튀여날 때 혹시 눈이 멀지나 않았을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손을 눈에로 가져갔다. 그저 앞이 보이지만 않을뿐 눈이 아프지는 않았다. 발뒤축이 띠끔띠끔해오길래 만져보았더니 손이 축축했다. 별로 크게 상한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다른쪽 다리 하나가 무릎마디아래로 없어진것이다. 아무리 만져봐도 뼈무릎관절까지만 만져질뿐 분명히 그아래로는 잡히지 않았다.

《아, 이 일을 어찌한담? 왼다리 하나가 파편에 맞아 달아난가본데 다리 하나만 가지고야 어떻게 련락임무를 계속 수행한단 말인가. 제미럴 일두, 이제는 선요원노릇 하기도 다 틀렸군!》

이렇게 맹랑한 걱정을 하고있는데 맨 별일이였다. 정갱이 하나가 파편에 맞아 달아났다면 몹시 아플터인데 마비되여 그러는지 전혀 동통이 없었다. 그리고 끊어져나간 험한 상처자리도 없고 둥근 복사뼈도 맷맷한것이 그대로 있는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도대체 내 다리 하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몸에 아직 그냥 붙어있다는건가 아니면 어디로 달아났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두손으로 조심히 만져보았더니 글쎄 다리가 파편에 얻어맞아 끊어져나간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그냥 붙어있는것 같았다. 어떻게? 개울가에 뒹굴어 들어갈 때에 장마가 밑의 흙은 다 파가지고 간 그 엉성한 나무뿌리밑에 한 무릎이 그만 빠져들어간채 아직 빼지 못하고있었던것 같았다. 그 나무뿌리밑에서 무릎을 빼고나서 한쪽 다리를 앞으로 쭉 펴보았더니 아무 거침이 없이 펴지는것이 아닌가. 몇번 무릎을 굽혔다폈다 해보았다. 다리만은 완전히 정상이였다.

《야 다리를 하나 찾았다.-》 그는 너무 좋아서 소리라도 치고싶었다.

갑동은 자꾸만 띠끔띠끔 아파오는 자기의 머리에 제일 큰 문제가 생겼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손으로 조심히 만져보았다. 무슨 쇠꼬챙이 같은것이 머리 한옆에 박혀있는것이 손에 잡혔다.

(이건 또 뭐야?)

다시 만져보니 그 쇠붙이는 틀림없이 파편쪼박이였다.

(아! 이것때문에 눈이 다 안 보이더랬구나! 젠장 이놈의것을 빼여 팽개쳐야지!)

그는 마음을 단단히 사려먹고 그 파편을 손끝으로 꽉 잡아 힘껏 당겼다. 뿌지직 소리와 함께 온몸에 전률을 일으키는듯 한 격심한 아픔이 오면서 그것이 뽑혔다. 그는 그만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것은 그 누구인지 알지 못할 사람, 자기를 어디론가 업어가고있는 한 이름 모를 동지의 잔등에서였다. 처음에는 비몽사몽간에 자기의 몸이 어디에 실려서 섬진강물결을 타고 둥둥 바다로 떠내려가고있는것 같았다. 눈은 아직 보이지 않았으나 머리의 상처가 쑤시던것도 좀 나았고 아까 머리에서 파편을 잡아뽑을 때 자기의 몸에서 영영 떠나버린줄 알았던 인간의 의식이 다시 엉망이 된 골안에 들어와 하나하나 정돈을 해나가면서 제자리를 잡는듯 정신도 점점 맑아졌다.

(그런데 지금 나를 이렇게 힘들게 업고 가는 사람은 누구일가? 몸이 이처럼 튼튼하고 실한걸 봐서는 아마 키도 큰것 같고 별로 한번 추슬러업는 일도 없이 그냥 수굿하고 걷는걸 봐서는 힘도 장사인 억대우 사나이 같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주 어릴적에 학질에 걸려 엄마의 등에 업히여 의원네 집에 갈 때처럼 이리도 마음이 푹 놓일가. 이 고마운 동지는 도대체 누구일가?)

《도…동무, 지금 나를 업고 가시는 동지가 누…누구십니까?》

검붉은 피에 말라붙었던 입이 떨어지면서 나온 부상병의 첫말을 들은 그 사람은 놀라운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흠치덕 몸까지 떠는것 같았다.

《동지 이름이라도 좀 아…압시다요. 어…어느 부대 소속의 누구신지요?》

《…》

《좀 통성을… 난 지리산의 갈범이라고도 고슴도치라고도 하는 련락이 주로인 사람인데 동지는?》

그제야 입을 여는, 몸집에 비하여 너무나도 유연함이 느껴지는 청아한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이자 지…지리산의 뭐시라고요? 다시한번 똑똑하게 내앞에서 말씀해보시오. 동지!》

《나는 지리산에 흔한 갈범이여, 지리산의 갈범! 그런데 그대는?》

《나…나는 지리산에 하나밖에 없는 도…도라무통이예요!》

《뭐시 도라무통이여?》

《보…보고싶던 우리 호랑이아저씨!》

《도…도라무통동무! 어디 가서 혼자 굴러다니다가 인제야 내앞에 다시 나타났노? 엉-》

덕금은 멈춰서 갑동을 땅에 내려놓았다. 둘은 오랜만에 한덩어리가 되여 뜨거운 눈물로 상처입은 가슴들을 적시였다.

한참 울고나서였다. 덕금은 지방련락공작 나갔다 오던 길에 개울창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가 보니 뜻밖에도 갑동이더라는것이였다. 그는 이 어방에 얼마전에 자기가 만들어놓았던 비상아지트가 있으니 그리로 빨리 찾아들어가잔다.

《황동지! 다시 업혀요. 자!》

《무거워서 혼났지!》

《아니 그간 몸이 얼마나 쇠약해졌는지 막 햇가와졌는걸요. 더 무거웠으면 좋겠어요. 짐이…》

《짐이?》

《언제인가 황동지 말하지 않았어요? 우정과 동지애 그리고 사랑은 인간이 언제나 어깨에서 내려놓지 말고 늘쌍 제 잔등과 같이 지고 다녀야 하는 소중한 마음의 짐이라고요?》

《무학무식인 내가 언제 그런 돈먹은 소리를 했더냐싶구만!》

《호호. 솔직히 육체적준비는 빵점인 제가 련락원이 처음 되여 가지고 부끄럽게도 남성동지들에게 끌리워서, 업히여서 다니다싶이 할적에 그 얼마나 황동지를 한번 업어주고싶었는줄 알기나 하세요.》

《내야 그걸 알턱이 없지. 나야 늘 업어주고 거기는 늘 누이동생처럼 이 오빠 같은 사람의 잔등에 업히여다닐줄로만 알았지 이리 짐이 바뀌여질줄이야 어이 알았겠소. 그래서 그 누구인가 서로 주고받는 정이 있어야 동지라고 했던가?》

《부상을 입고 눈은 보지 못하면서도 사설은 많구만요.》

《어쨌든 힘들고 간고해도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서 싸울수 있다는건 실로 기쁜 일이지.》

《자 그만하고 제게 어서 업혀요. 제가 오늘은 이때까지 업히여만 다니던 그 빚 단단히 갚아드릴라요. 다는 못 갚아도…》

《그럼 어디 한번 나를 업어주고싶은것이 바람이였다는 우리 도라무통동무의 그 최대의 소원을 들어주는 의미에서 다시 업히여본다? 허허허.》

《호호…》 강덕금은 큰 부상을 입고도 웃는 그의 락천성에 감탄하였다.

녀동무에게 업히여 어디인지 자기는 알수 없는 곳으로 가고있는 갑동이의 생각은 깊어졌다.

(사람이 남을 업어주면 어려울적에 나를 업어주는 사람도 생기는구나! 사람은 우정과 사랑, 동지애의 측면에서 몇가지 류형이 있다고 전에 누구인가 나에게 웃으면서 말한적이 있었지. 첫 부류로서는 자기는 남에게 주지는 않으면서 늘쌍 웃으면서 받아가지기만 하는 사람, 둘째 부류로서는 자기는 받지 못하면서도 남에게 늘 주기만 하면서 사는 사람, 셋째 부류로서는 이건 남에게 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맹물단지같이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사실은 자기의 진정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생활의 길, 혁명의 길을 함께 헤쳐나가는것이 가장 리상적인 우정과 사랑, 제일 진실한 동지관계가 아니겠는가?

동지! 어디에 있다가라도 제일 어려워하고 아파하며 고통스러워 할적에 찾아와주는것이 바로 참된 동지가 아니겠는가.

제 먼저 자기를 바칠줄 아는 그런 사람에게는 소리쳐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것이 동지요 필요할 때에는 동지이고 돌아서면 그만인 그런 사람에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 바로 그렇듯 신성한것이 동지인것이다.)

1949년∼1950년의 겨울은 실로 준엄하고 엄혹한 겨울이였다. 오죽하면 1949년 9월부터 1950년 2,3월사이의 5∼6개월동안의 《토벌대》들의 전과자료를 체계적으로 장악한 일본의 한 출판물이 이런 글까지 실었겠는가.

《…리승만군대의 장병들과 경찰들로 구성된 <토벌대>련합군들이 지리산 하나에서만 <토벌>해버렸다는 공비의 수자가 총 남<한> 인구의 수보다 3명이 더 많다고 한다. 3명이 더!》

물론 자기들의 전과를 올리기 위한 과장된 수자이기는 하지만 이 적들의 동기《토벌》기간에 타사, 화사, 동사, 아사, 총사로 초기 20만 입산자중에서 10만명은 아마 더 죽었을것이였다.

이 시련의 겨울을 갑동은 덕금이때문에 굶어죽지도 얼어죽지도 않고 따뜻한 치료를 받으면서 살아났고 점차 회복되여갔다.

덕금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벽 일찌기 먼 마을로 내려가 먹을 쌀과 부식물을 구해들였으며 밤이면 어디에 가서 불에 달구어 가슴에 품고 온 불돌로 얼어드는 동지의 발을 녹여주군 했다.

덕금이의 정성치료의 덕분으로 갑동은 다리와 머리의 상처도 다아물어가고 제 발로 지팽이없이 걷게도 되였다. 그리고 시력도 점차 회복되여갔다.

그런데 제일 문제가 식량이였다.

적들의 《토벌》때 지리산 아근마을은 거의다 불타버리고 먼곳에 가서도 식량을 구해오기 어려웠다. 여기에 그냥 남아있다가는 굶어죽을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 갑동은 덕금이와 함께 부대지휘부를 찾아 길을 떠나기로 했다.
 

3

 

황갑동은 간난신고끝에 강덕금이와 더불어 겨우 부대를 찾았다. 그렇지만 가보니 지휘부의 형편도 말이 아니였다.

적들의 《대토벌》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났으며 수림은 물론 병실마저 다 타버린 유격지구에는 아무것도 남은것이 없었다. 놈들이 여전히 봉쇄를 풀지 않아 보급로는 차단된지 오래되였다. 혹한에 눈까지 매일 퍼부어 풀뿌리도 캐먹기 곤난했다. 난방조건이 변변치 않은 가설막에서 며칠씩 굶다보니 얼어죽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련달았다.

황갑동은 막다른 골목에 다달은 부대형편을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체포되여 죽는 한이 있어도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 선을 이어 식량을 해결할 결심을 했다.

그는 한밤중에 부대를 떠났다. 적들의 경계가 해이되는 시간을 리용하기 위해서였다. 놈들이 있음직한 곳에서는 오솔길로가 아니라 산중턱을 가로질러 나갔다. 속이 비여 다리가 허청거리는데다가 눈에 미끄러지기도 하여 거리가 축나지 않았다. 네댓시간 걸어서 날이 밝을무렵에야 겨우 목적한 폭포거리에 닿은 갑동은 주위를 살피며 은밀히 한 집으로 다가갔다.

눈속에 쌓인 자그마한 집이였다.

그가 만나려는 사람은 산청군조직책임자인 권영태였다. 권영태는 군안의 조직들을 발동하여 인민들을 계몽각성시키면서 인민유격대에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성심성의로 원호하는 책임적인 일군이였다.

주인을 찾으니 마치 북방의 에스키모족 처녀애와도 같이 아래우에 눈처럼 샛하얀 무명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네모난 재빛고깔모자를 쓴 자그마한 처녀애가 나와서 반기는것이였다.

《어른들이 집에 있느냐?》 갑동이의 첫 물음이다.

《어른들이요?》

그 처녀애가 되물었다.

《그래, 집주인들이 있는가 말이지?》

《저…제가 주인인데요?》

《아니아니, 꼬마녀주인 말고 큰 주인말이다.》

《그런데 저…혹시 사천비행장에서 오시는 길인 <포장>동지는 아니신지요?》

《포장?》 그것은 자기와 권영태 둘만이 알고있는 암호였다.

《내가 <포장>인지 어떻게 아노?》 갑동은 이 처녀애가 어떻게 그때 일을 알고있을가? 하고 생각하며 물었다.

《옳구만요.》

소녀처럼 보이는 그 녀자는 권영태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갑동이에게 그때의 일을 상기시켜주었다.

장마철이였다. 그날따라 억수로 비가 들입다 퍼부어 갑동은 길을 잃고 헤매이다나니 전투시간이 림박해서야 현지에 도착했었다. 박격포까지 힘들게 메고 갔던 권영태 등의 희생적인 투쟁으로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철수하던중에 북마산에서 적들에게 사면포위에 들었다.

이때 한 겁많은 친구가 박격포를 버리고 사람만 빨리 뛰자고 하였다. 그런것을 갑동이가 저지시키고 자신들이 맡아나섰다.

《아니, 이것이 어떻게 로획한 박격포라구 이 좋은걸 여기다 그냥 내팽개치고 간다는거요? 이런 급했을적에 쓰는것이 바로 박격포제라. 권동무 우리 한방 갈겨보지 않겠소.》

《그리 합세다. 포수가 별사람들이겠소. 포에서 포알이 나가게 만들면 포수지요 허.》

놈들의 집중사격에 포수 둘이 엄페지에 들어가서 머리를 내밀지 못하는새에 황갑동이와 권영태 두사람이 급히 박격포를 전개하였다. 갑동이 포수가 되고 영태가 장탄수가 되였다. 갑동은 박격포를 어떻게 쏜다는것은 알지만 거리각도를 조절할줄은 잘 몰랐다. 그래 적들이 몰려 올라오고있는 방향에 포신을 비스듬히 세우고는 구령을 쳤다.

《장탄- 쏴-》

쿠쿵- 첫 방은 저 멀리 적들의 퍽 뒤에 날아가서 떨어지고말았다.

황갑동은 이번에는 돌리개를 와짝 돌려 박격포신을 바짝 세웠다. 코앞에까지 빠득빠득 기여올라오는 적들을 몰살시킬 궁냥으로 그렇게 한것이였다.

《다시, 복수탄 재워! 쏴-앗-》

그러자 거의 90도각으로 세운 포신에서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르르르-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사라지는듯 싶던 포탄이 자신들의 머리우에 날아오르더니 바로 코앞에서 꽈당! 하고 터지는것이 아닌가.

너무도 기겁하여 둘은 땅에 납작 엎드렸다. 흙과 돌이 머리와 잔등에까지 내리떨어졌다. 한참 있다가 그들이 다시 머리를 쳐드는것을 보고서야 은페지에서 진짜 포장이 달려나왔다.

《아이고매, 죽진 않고 산것이 천만다행이요. 그런데 허 이거 삼촌들 무슨 놈의 포를…그러다간 제 사람들이건 박격포건 다 잡아먹겠시다. 이리 비키소.》

그런데 이때 그들의 눈앞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산아래까지 다 기여올라와붙었던 놈들이 줄행랑을 놓는것이였다. 고지우의 빨찌산포병들이 죽을걸 각오하고 포병전의 력사에도 없는 최대근접사격을 하는것이라고 판단하고 놀라 도망치기 시작한 모양이였다.

《놈들이 도망을 간다. -핫 하하.》

황갑동이 희열에 넘쳐 껄껄 웃어대며 포병들에게 신나서 구령을 주군 했다.

《도망치는 적들의 꽁무니에 불을 달라- 련방 쏴라, 쏴!》

쉭쿵- 쉭쿵-

박격포탄이 련방 날아가 달아나는 놈들의 머리우에 떨어졌다. 전투는 완전한 승리였다.

그들은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기지로 돌아오면서 한마디씩 하였다.

《허, 곰은 곰이여!》

《그러기에 우둔한게 범잡는다는 소리 있지 않능기요?》

《여하튼 세계전쟁사에도 없을 포병전의 새 력사가 여기 지리산에서 창조된것 아니겠소. 모두 흙, 모래를 한바탕 뒤집어쓰고 묻혀버릴번은 했지만서두 말이지, 허허.》

《헛 허허.》

황갑동이 손을 내저어보이며 겸손스레 말했다.

《아니여, 다 아니여. 내 오늘 지휘관들이 늘쌍 우리 빨찌산들은 보총도 잘 쏘고 수류탄도 명중할줄 알아야 하지만 기관총이면 기관총, 포면 포, 못 다루는 무기가 없어야 한다고 해주던 말이 우연한 소리가 아니였음을 재삼 깊이 깨닫게 되는구만. 동지들! 나의 우둔으로 여러 동지들을 모두 상하게 만들번 한데 대하여 잘못을 비는바입니다.》

옆에 서있던 권영태가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오늘 보니 우리 선요원동지 걸음 잘 걷고 포지휘만 능숙하게 하는줄 알았더니 자기 비판 역시 잘하고 팔방미인이여 허허.》 하며 즐겁게 웃어넘기는 바람에 모두 따라웃었다.

…작은 녀주인이 입가에 방긋 웃음을 지으며 확인하듯 물었다.

《그때의 엉터리포장 갑동아저씨가 맞지요?》

《그래 그래, 그 엉터리포장이야.》

《갑동아저씨, 제가 이 집에서는 주인이고 제일 어른이니 저한테 믿고 말해도 돼요.》

《뭐 콩알맹키로 생긴 네가 이 집 주인이고 제일 어른이다?》

《호 그래요. 콩알은 작아도 엄지콩이 아니나요.》

《그래-애?》

《아저씨, 날 모르겠어요? 두해전 눈보라 심한 겨울날 삼장면 순두리골 귀틀집에서 만났던?》

《아니 그럼 네가 그때 죽창으로 큰 메돼지를 찔러 잡던 그 콩새란 말이냐?》

《예 그래요.》

《히여, 세상에…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처녀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은 그저 콩동무라고 부르면 돼요.》

《가만 가만, 뭐 콩동무?》

《그래요!》

《아니 그럼 권영태동지랑 나무권총을 만들어가지고 삼장면 경찰지서에 무기탈취 들어갔던 그 콩동무가 바로 동무요?!》

《네.》

《히야! 그 소문 들어가지고서는 적어도 우리한테 있는 <뚱보동무>만치나 덩지가 큰줄 알았더니 이것 정말 콩이다. 땅땅 여문 왕콩알.》

《호호.》

콩동무가 량볼에 보조개를 파며 웃었는데 여간만 귀인성스러워보이지를 않았다.

《왜 권영태동지는 보이지 않는가요?》

《권동지요? 조직원을 한사람 만나러 갔는데 인차 집에 돌아올것 같으니 들어와서 기다려주세요. 몸도 녹이시면서요.》

갑동은 그의 안내를 받으며 훈훈한 방으로 들었다.

콩동무가 똘똘 구을러 다니듯이 부지런히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니 역시 대나무가 유명한 고장이라 대나무장작 숯불이 이글거리는 쇠화로를 안아다가 앞에 놓아주었다. 활활 피여오르는 화로안이 일순 밝아졌다가 거멓게 보이기도 한다. 그랬다가는 다시 확 밝아지기도 하면서 묘한 음영을 나타냈다. 그 화기에 언 몸을 녹이면서 갑동은 화로불안에서도 밝은것과 어두운것의 교차가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하나의 혁명투쟁의 불길도 거의 백광에 가까운 빛을 내는 혁명의 전성기가 있는가 하면 아직 숯만이 남아있어 벌겋게 타는 혁명의 퇴조기도 있을수 있으며 혁명을 하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도 때와 환경에 따라 저와 비슷한 음영이 교차될수 있다는것, 그러나 참다운 혁명가라면 아무리 간고하고 준엄한 시련의 시기가 닥쳐온다고 하여도 마지막불찌가 남을 때까지 빛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이였다.

갑동은 이 녀자가 어찌 보면 나이로서 권영태의 딸까지는 몰라도 누이동생쯤은 될것 같은데 권동지, 권동지 하고 부르는걸 봐서는 그렇지도 않은것 같은 콩동무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지금 몇이서 사나?》

《저… 권동지하고 저하구 둘이만 있어요.》

《둘이요? 저 권동무하고는 어떻게 되는 사이기에?》

《한번 알아맞추어보세요. 이때꺼정 한사람도 바로 알아맞추는분이 없었는데요?》

《글쎄, 그저 가까운 이웃간만은 아닌것 같고 친척간이 되겠는지, 똑 어딘가 오누이같이 뵈이기는 한데 성뒤에 꼭꼭 동지자를 붙이는걸 봐서는 그렇지 않은것 같은것이 갈피를 잡을수 없구만이라.》

《호호,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것이니 이따가 권동지 온 댐에 물어보세요. 저는…》

《…》 갑동은 리해되지 않는다는듯 머리를 기웃거릴뿐이였다. 얼마간 있어 온몸에 밖의 찬 기운을 그대로 안고 권영태가 집으로 들어서며 반색을 지었다.

《아니, 이거 우리 <포장>동지 어떻게 여기까지 나타났습니까?》

《허허, 또 권동지하고 둘이서 놈들에게 최대근접사격으로 한방 먹이고싶어서요.》

갑동은 부대의 절박한 사정을 당장 말하고싶었으나 참았다.

권영태는 부엌에 나가서 달그랑달그랑 그릇소리를 내고있는 콩동무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 우리 집에 귀한 손님도 오셨는데 점심식사를 좀 빨리!》

(뭐, 《여보》? 분명 이자 여보라고 불렀지?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셈판인가?)

갑동은 20대의 장정인 권영태의 입에서 소녀처럼 보이는 콩동무를 《여보》로 찾는 그 소리에 아연해졌다.

《내가 잘못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권동지, 이자 콩동무보고 여보라고 부른게 사실이여?》

《아, 제가 그만 옛 <포장>동지앞에서 오발을…》

《오발을 했다 요것이요? 그럼 저 콩동무하고는 어떻게 되는 사인가요?》

《그저 내 누이동생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구만이라.》

《모를 소리인것이, 오빠를 동지자를 붙여서 부르는 일이 세상에 있는기요? 사람을 뗑- 하게 만들지 말고 동지끼리 똑바로 알려주소.》

권영태가 벌개지는 목덜미를 손으로 문대며 어색스레 말하는것이였다.

《저 콩동무로 말하잘것 같으며는 나의 충실한 방조자인 혁명동지일뿐만아니라 저…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제 안해가 되는셈입니다.》

《무엇이? 안해요?! 그러니 부인이란 소린데 그런것도 모르고 난 아까 그저 어린 가시내로만 알고 아이취급했으니 이런 실수라구야.》

《뭐랍니까.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지요.》

《그런데는 어떻게 되여?》

권영태가 묻는 의미를 알고 간단한 말로써 그 의혹을 풀어주었다.

《…그 사연을 다 이야기할려면 긴데 간추려서 말하며는요, 우리 마을에 아주 고약한 지주 한놈이 살고있었지요. 저 녀자의 부모들은 그 집 소작살이를 하고요. 그런데 어느해 여름 몹쓸 전염병인 장티브스가 돌면서 아버지가 사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서 그 집 외동딸을 지주놈의 빚값으로 자기네 머슴으로 질질 끌고 가는것이 내 눈에 뜨이지 않았겠소. 그때라서 나는 서울서 대학을 다니면서 방학에 집에 내려와있을적인데 끌려가면서 살려달라고 우는 그 처녀애를 보고 눈물이 나서 어디 견디겠더라구요.》

《그래서요?》

《그래 지주놈앞에 막아서며 이 집에서 진 빚이 얼마이기에 처녀를 끌고 가는가고 물었더니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더군요. 마침 내 호주머니에는 방학가서 쓰라고 어머니가 주었던 얼마간의 돈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돈중에서 갈라주어 지주놈과 회계장을 놓고 어린 처녀를 사가진셈이 되였지요. 팔려가던 도중에 또 잘사는 다른 집 도련님에게 재차 팔려가게 된 사실앞에서 억울함을 느낀 처녀애는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우고 슬피도 우는데 가슴이 더 아파오더만요.

그리되여 겨우 달래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는 부모들앞에 곧이곧대로 말해서는 잘 리해가 되지 않고 무슨 명분은 있어야겠고 생각다못해 <어머니, 어머니가 이제 나이도 드시여 동자질하기랑 힘들어하니께 어머니 앓기라도 하시면 병시중도 들어주고 때식 끓이는 일이랑 도와드릴수 있는 맘씨랑 곱고 착실해보이는 어린 아씨 하나를 제가 데려왔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어머니가 <그래? 어디 보자. 귀엽게 생겼구나. 작아도 고추알이라고 벌써 눈썰미랑 있어보이는게 잘 키우면 이 에미 늘그막동무로 될수 있을것 같구나. 니사 이 엄니한테 효자는 효자지. 참 용시!> 하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라.》

《그다음이라는건요!》

《원체 마음이 어진분이시였던 어머니는 그랑하지 않는데요 아버지도 그렇고 아홉이나 되는 식구들의 시중을 드는것만 해도 조련치 않은데 먼저 우리 집에 들어와 농사일이랑 돕던 친척까지도 제가 데려온 부모없는 처녀애를 완전히 종부리듯 하면서 천대하기 시작한다는데는 이게 또 야단 아니요. 세상 인심이란 다 그렇게 되여먹었더군요.

이젠 방학이 끝났으니 대학으로 돌아가야겠는데는 어디 발이 떨어져야지요. 그래서 부산으로 떠나기 전날 저녁에 저는 온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 저 녀자도 앉혀놓고 입을 떼기 힘든걸 끙끙 갑자르기만 하다가 말했지요.

<…지가 불초자식이다보니까 이 나이되도록 맞춤한 녀자를 하나 골라 제 없는 사이에라도 부모님들 봉양해드릴 생각조차 못하다가…하나 점 찍어두기는 했지만서두 아직 나이 작아서 집에 데려다가 얼마간 두려 했는데 암만 생각해도 저의 진의를 집안어른들앞에 솔직히 말하고 떠나도 떠나야겠기에…

제가 이번에 부모님들 허락 미처 받지 못하고 일사가 급해져서 그냥 데려온 이 량부모 잃은 녀자로 말하면 순전히 우리 집의 녀종이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아직은 그랑할 나이는 못되는지라 다른 동네 집들에서들도 그런 경우가 있고 또 세상에 민며느리라는것도 있는것만큼 아버님, 어머님께서 이 녀자를 지금꺼정은 그저 민며느리로만 받아주신다면 저는 대학가서 맘놓고 공부에만 열중하겠나이다. 온갖 잡념이 없이 말이지요.> 그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온 가족들이 깜짝 놀랐댔지요. 원래 말이 적고 속이 깊은 저의 부친님이 처음에는 몹시 노한 표정이길래 당장 무슨 날벼락이라도 떨어질것 같았지만 그러지는 않더군요. 제가 그렇게만 해주면 다른 대학생들처럼 난봉질도 안하고 학업에만 잡념없이 몰두하겠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무거운 한숨을 짓고나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으험, 다들 들은대로 이제는 사내대장부인 우리 19대장손인 영태가 다 뜻하는바가 있어 그런 헐치 않은 결심을 했겠은즉 오늘 한가지 다짐만 두려고 한다. 민며느리도 며느리인것만큼 네가 공부하는 동안 부모들이 맡아서 친딸처럼 보살펴주겠다만 네 마음놓고 가서 공부를 다하고나서 대학을 마쳤다고 눈이 높아져서 다 나이차게 된 남의 집 녀아를 버리는 일은 없겠지?…

좋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이 녀자는 결코 우리 집 머슴이 아니다. 앞으로 더 색시꼴이 잡힌 다음에는 영태의 배필로 삼을 우리 가문에 들어온 민며느리인것만큼 영태가 없는 동안에 누구라도 이전처럼 의지없는 녀자라고 해서 막 대하거나 조금이라도 천대구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다들 들었느냐?>

<예-> 모두가 머리숙여 대답했지요. 이렇게 되여 저 녀자는 우리 집 민며느리가 되였으니 말은 못하지만 그때 어린 마음에 속으로야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날 밤이였습니다. 내가 자고있는 방문앞에서 아까부터 들어오지는 못하고 아물거리기만 하는 사람의 작은 그림자가 비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구인지 들어오라는 내 말을 듣고서야 소리나지 않게 문을 열고 저축저축 들어서는 단발머리처녀의 두손에는 더운 김이 오르는 놋대야가 들리여있었습니다. 그는 영문을 몰라하는 저의 발치에 그 더운물이 담겨있는 대야를 가져다가 놓더니 머뭇머뭇 그 작은 손으로 나의 큰 발목을 잡아 더운물에 씻어주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일이 너무나도 뜻밖이고 감사하여 고마움을 표시해야 되겠는데는 생각다못해 내 발이라도 씻어주려고 마음먹었던것 같았습니다.

그 어린 가슴속의 뜨거운 진정은 고마웠지만 그걸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나는게 아니겠습니까. 아, 그때 얼마나 마음이 좋지 않아지면서 속이 울컥해지던지 나는 버럭 성을 내고말았습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짓이야? 아까 내 말 못 들었어. 이제부터는 우리 집 녀종이 아니라는 소리를? 그렁하겠거든 그 대야의 물을 가지고 당장…>

<도… 도련님! 이 철없는 소녀의 마음을 그래두 알아주신다면 제… 제가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도련님의 발이라도 저의 손으로 씨… 씻어드릴수 있게 해주사이다!>

<이… 이거 썩 일어나지 못하겠어? 너… 너는 나의 종일수가 없고 나… 나는 남의 손에 발이랑 씻기우는 도련님으로 살수가 없는거여.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란 말이지!>

<도… 도련님!>

그는 눈물로 오빠에게 매달리듯 내 가슴에 와락 안겨들면서 얼마나 울던지…

어찌하면 내가 대학기간 좌익서적에도 접하고 사회생활을 통하여 이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눈뜨기 시작한데도 있었지만 우리 집에 생동한 실체로 살아있는 그 불우한 녀자의 존재가 나로 하여금 무산계급의 해방과 나라의 통일을 위한 좌익운동에 나설수 있게 하였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가난과 고난, 시련과 투쟁은 사람들을 어릴적부터 일찌기 셈들게 만드는 성장의 촉진제라고 할런지요. 어려운 가정생활속에서 나이 이르게 철이 들어 오된데도 있지만 그는 점차 자기의 계급의식을 움트게 해주는 독서과정을 통하여 사회와 나의 생각을 리해하게 되였고 그후 나의 활동을 말없이 눈치로써 돕는 투쟁의 길동무로 성장하게 된셈이지요. 그러다가 하도 세월이 어수선하니 어머님이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녀자는 나이 좀 어려도 제구실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들의 성례를 이루도록 마음쓰시더니만 이르기는 하지만 드디여 자신이 저 녀자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민며느리의 머리를 얹어주시더군요. 그것이 고마워서… 우리는…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저 녀자는 나를 보고 여보, 당신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고 꼭 권동지라고 부르며 나도 많이는 여보 대신 집안에서도 콩동무라고 부르는데 습관이 되였는데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동지들사이의 별호로 되고말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러루한 사이입니다.》

권영태의 말을 다 듣고야 이 눈속의 얼음집에 깃든 류다른 사연을 알게 된 갑동은 못내 감심되였다.

《오늘 보니 세상에 부부 부부 하니 별 혁명부부가 다 있소잉? 허허.》

권영태가 부엌에 대고 점심식사를 재촉했다.

언 감자떡에 시원한 무우동치미를 그릇에 넘게 담아 들여온 콩동무를 정식 산손님에게 인사시키면서 주인이 말했다.

《자꾸만 나를 보고 지하투쟁은 성차지 않는다고 하면서 같이 입산을 하자고 매일마다 성화를 먹이더니 오늘 어디 선요원동지 오셨을 때 청을 드려보시오.》

《련락과의 중한 일을 맡아보시는것 같은데요. 우리를 선요원으로 받아주시기만 한다면 늘쌍 오누이로 가장하고 열성껏 선 이으러 다닐랴고 하는데 좀 도와주시지 않을랍니까?》

그 녀자의 말에 갑동은 웃어보였다.

《그건 다 좋은데 우리 빨찌산의 규률은 부부간이 한군데 있지 못하게 되여있어놔서 권동지가 옆에 없으면 부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대원을 누가 늘 친동생처럼 데리고 다니겠습니까. 허허.》

《그런건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는 콩동무라는 소리는 비록 듣지만 남에게 신세를 입히면 입혔지 남의 신세는 안 지면서 제 발로 걸어가려는 녀자니까요.》

《그렇다면 문제가 좀…》

《그리고 과장동지만 입 다물고 비밀을 지켜주시면야 우린 나이차이도 10년이상이고 제가 퍽 어리니껜 오누이라고 해도 곧이들을것 아닙니까?》

《그래도 두분이 헤여지기는 싫은 모양이구만요. 허허.》

세사람은 벌써 아무 흠없는 사이가 되여 찰기가 있는 웃음을 웃었다.

갑동은 쫄깃쫄깃한 감자떡맛에서 고향집생각을 불러오면서 영태가 미리 짐작하고있으면서도 말 않고있는 그 어려운 문제를 화제에 올렸다.

《…우리 유격지구형편이 이렇게 어려워 저를 이리로 보낸것입니다. 식량해결에 나섰던 많은 련락원들이 잡히고 선전책동무도 련락 가다가 동사했으며 조직책동무도 지방에 내려가고 없는 형편입니다. 거기서는 지금 내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있을겁니다.

권동지, 유격지구 조직체와 전투지휘부가 존재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운명적인 시각입니다. 시급히 식량과 신발, 옷가지들을 원호해주십시오.》

권영태는 신중해서 들었다. 유격지구의 엄혹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여있는 갑동의 쇠약해진 모습을 차마 마주볼수 없어 눈을 내려깔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소리까지 나왔다.

그가 한숨을 짓는것은 여기 형편도 그전 같지 않아 당장 효과적인 원호를 할수 없기때문이였다.

놈들은 지리산유격지구뿐아니라 아근의 마을들도 야수적으로 탄압했던것이다. 유격대에 남편과 자식을 보냈거나 련계가 깊은 집들을 색출해서는 가차없이 불지르고 학살해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2중3중의 감시를 펴고있었다.

그러니 유격대를 어떻게 도울지 막막했던것이다.

권영태는 선뜻 씨원한 대답을 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놈들의 탄압과 경계가 심하고 식량확보가 어렵다고 해서 인민무장대에 대한 원호를 계속하지 못한 죄책감 또한 컸다.

《황동지의 말을 이곳 조직책임자인 저에 대한 질책으로, 경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식량지원사업을 꼭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장은 어쩔수 없구만요. 우리의 식량확보거점이였던 평촌방아간이 놈들의 감시속에 들어있기때문입니다.

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일내로 얼마간 식량을 확보해서 이전에 가져다놓던 지점까지 가져다놓겠습니다.》

갑동은 그의 말에 눈굽이 뜨거워올랐다.

이곳 형편을 모르지 않는 갑동이로서 권영태가 이렇게 결심하는것이 매우 어려운 용단이며 그가 한번 한다고 하면 반드시 해내고야만다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고맙습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갑동은 그 집에서 쉬다가 날이 어두워 귀로에 올랐다.

수일내에 식량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는 길이였지만 황갑동의 마음은 무거웠다. 다문 몇키로라도 구해가지고 가야겠는데… 이 한생각만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부대로 가던 도중에 빈 배낭을 가지고 길에 나와 기다리고있는 강덕금이까지 만나고보니 더욱 생각이 깊어지는 황갑동이였다. 유격지구에는 지금 당장 식량이 필요한데 빈 몸으로 그냥 돌아갈수 없다는것이 그때 그의 생각이였다.

그리하여 갑동은 덕금이와 의논하던 끝에 고향마을로 들어간다는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 믿을것은 어머니와 고숙모뿐이라는 생각으로 다문 얼마간의 식량이라도 구해오기 위해 도장동의 집으로 찾아가보기로 했다.


4

 

불빛! 고향집의 그리운 불빛이 멀리에서도 지척인듯 정답게 안기여왔다.

갑동은 울렁거려지는 마음을 달래며 자기의 고향마을 녀동무와 함께 마을뒤산을 조용히 내리고있었다.

고향집창가에 어룽거리는 그 노란 등잔불빛은 오늘 밤에도 자지않고 이 아들을 기다려주는 어머니의 눈빛인듯 싶었다. 그런데 고향집은 갑동이 나서자란 그 집이 아니였다. 분명 집터는 그 자리 그대로인데 집은 옛집이 아니였다.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일가?)

틀림없이 《토벌》의 불을 맞아 타버리고 산에서 생나무를 찍어다가 급히 지은 새집 아닌 《새집》인듯 했다. 바로 그 집안에서 때아닌 깊은 밤중에 가마니치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귀에 익은 그 소리, 집은 달라졌어도 어머니가 대꼬챙이끝에 걸어서 짚오리를 먹이고 손이 맵짠 고숙이 단방에 내리쳐서 번마다 탕탕 찍어내군 하던 그 유난한 바디질소리만은 여전한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가마니를 치는 이 밤의 바디질소리도 어제날의 그 소리가 아닌상싶었다.

전에 어머니와 고숙이 가마니를 치는 그 바디질소리에는 살림이 째지게 가난하고 일이 고될망정 그래도 고난속의 즐거움과 기쁨과 희망이 담겨있었다고 할수 있었다.

가마니댁인 고모가 곧잘 부르군 하던 그 《가마니타령》이 뜻하고있는 애조에 젖은 서글픔의 하소와 고생가마니를 짜게 만드는 놈들에 대한 야유와 원망, 통털어 이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그 노래와 함께 울려나오군 하던 바디질소리, 거기에는 적어도 광복의 앞날을 바라고 눈물을 씹으며 원한의 가마니를 짜던 이 집안의 근면으로 살아가는 녀인들의 생활, 락천적인 로동의 률동과 선률이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그 가마니치는 소리에는 바로 그런것이 어디로 갔는지 다 없어져버린것이다. 대신 우울과 침묵, 무관심과 외면, 단념과 포기의 색조가 짙어보였다.

흉악한 놈들의 손에 온통 지리산이 불타고 모조리 파괴되고 죽고 했으니 그 《동기토벌》의 마수가 바디질소리의 뼈골에까지도 깊이 침투되여 그런 파괴적인 역할을 놀았다고 할수밖에는…

아직 다는 알수 없는 자기네 집 생활률조의 그 파괴는 공연히 갑동이의 가슴을 불안으로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갑동은 그동안 산에 들어가 죽기내기로 싸웠건만 종시 어머니와 고숙이 그 눈물의 가마니 짜는 놀음을 그만둘수 있게 해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가슴이 옥죄여드는것만 같았다. 그는 우선 함께 고향마을로 내려온 뒤집 처녀인 덕금이를 잠시 어둑시근한 집옆에 들어가 숨어있게 하였다. 그리고나서 뜰안 대추나무밑으로 몸을 들여세우며 밤새소리를 내였다.

그것은 전에도 더러 아지트에서 내려와 집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랑 먼저 묻군 하던 약속된 안전확인신호였던것이다.

풀국 풀국 푸-을-국…

그러자 가마니치는 그 소리가 뚝 멎었다. 방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잠시후 어머니와 고모가 긴장되여 뭐이라 소곤대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이어 방문이 성급히 열리면서 기다렸던듯이 등잔불빛이 신도 찾아 신을 사이없이 흰 버선발로 눈우에 나서는 어머니의 허둥거리는 모습을 비치였다.

이 세상에 오직 자식밖에는 없는지 이 아들에게 온 육신과 넋을 다 바치고 이제는 퍽 늙은 로파가 되여 허리까지 굽어진 아! 어머니.

《이자 금새 풀국이 우는 소리가 났는데. 어디에 우리 갑동이 오지 않았느냐?》

대추나무밑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만은 그 마음의 눈으로 제 아들을 찾아보는상싶었다.

《어머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 갑동이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갑동아!》

《어머니, 그동안 산에 올라가서 별로 큰일도 치지 못하면서 어머니도 바로 모시지럴 못하고 아버님 돌아가셨을적에는 몰라서 그랬다 하구 3년상 때에도 얼굴 한번 비치지도 못한 이 불초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맨땅에 두손을 내려짚으며 절로써 어머니앞에 용서를 비는 효성스러운 갑동이를 인차 뒤따라 나온 고숙이 일으켜세웠다.

《워매, 우리 갑동조카가 살아서 돌아왔구만이라.》

《고숙모님, 그동안 어머님과 함께 고생이 정말 이만저만 아니겠어요. 이 조카의 절을…》

《절은 무신 놈의 절얼, 싸게싸게 일어나랑께요.》

《…》 고숙이 극성을 떠는 바람에 갑동은 절도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와준것만 해도 고마워 죽겠는데. 추우니껜 어머님 모시고 자 얼른 안으로…》

사내없는 집살림을 도맡아해야 하는 험한 일이 만들어준 고숙모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럽지마는 않았다. 이제는 사망해버린 오래비의 안해만이 아니라 언제나 집에 없으면서도 집에 있는 사람인 갑동에 이르기까지 두 집안 식솔들의 생활과 앞으로의 운명을 다 맡아안고 걱정하며 사는 남자의것처럼 매듭이 생긴 고숙이의 아귀 센 손에 잡힌채 갑동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래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구들이 식지 않은 그 방 한쪽에서는 남동생이 고모네 어린 두 오누이를 옆에 눕히고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고숙은 지난 《토벌》때 가족, 친척들과 도장동사람들이 피할수없이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차마 눈뜨고는 볼수 없었던 참상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입산한 누구네 집식구들은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또 누구네는 다 불붙는 집속에 쓸어넣어 죽이고 모두 한우물에 빠뜨려 죽이였으며 나중에는 총살을 하다못해 한꺼번에 세워놓고 창으로 찔러 죽이고… 참으로 흉악한 불한당같은 놈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처참하기 그지없는 마을의 참화였다.

밖에 녀동무를 두고 들어와 마음을 놓지 못해하던 갑동은 어머니의 기색을 살피며 물었다.

《어머니, 집에 지금 다른 일은 없지요?》

어머니는 왜서인지 좀 당황해하면서 고숙과 뜻있는 눈길을 주고받고나서 다소 안심을 주었다.

《… 일이사 무슨 일이… 그래 산에서는 혼자 내려왔느냐?》

《아니요. 둘이예요. 다른 녀동무를 하나 데리고 내려왔어요.》

《제 한목숨 건사하기도 어려운 때에 동무꺼정 더불리고 이 위험한데를…》

《어머니, 산에서 먹을것이 다 떨어져서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집으로 내려왔어요. 량식만 좀 얻어가지고는 이내 돌아서려고 하니 저의 동무걱정은 너무 하지 마세요.》

고숙이 옆에 앉아있다가 무슨 생각이 났던지 한마디 곁들었다.

《혼자보다 둘이 더 좋을 때도 있지. 저승길도 동무가 있어 같이 가면 수월하다는 소리도 있등마. 추운데 어서 나가서 데리고 들어와요. 어떤분인지…》

《어머니, 어머니랑 고숙모랑두 알만 한 녀자이니 그럼 제가 나가서 그 동무를 좀 데리고 들어와 몸이라도 녹여가지고 떠날랍니다.》

《그리려무나, 누군지.》

이리하여 갑동이는 얼른 밖에 나가서 덕금이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아니 이게 누구요. 이 뒤집 덕금이가?》 어머니는 무등 반가와했다.

《… 어머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제 절을 받아주세요!》

이러며 차라리 곱게 머리숙여 단정히 인사나 드리고 그만두어도 좋았을걸 저는 그래도 그렇지 않아서 그 허리도 잘 굽히지 못하는 뚱보의 몸을 숙여 절을 한다는데는 이건 그야말로 말그대로 통배추같은 통절이였다.

《이 추운 겨울에 남자도 아니고 그 녀자의 몸얼 가지고 그래도 용시.》

이번에는 고숙에게 인사드려야 할 차례가 되였다. 《고숙모님, 그간 고생이 얼마나 많으셨습니까?》

《아유, 또 절얼 하려구요? 괜히 그리하느라고 품을 들이지 마소. 쪼간 이리 와서 앉기나 하고요.》

고숙이 손을 잡아끌어 옆에다 앉히우고보니 금시 방안이 꼴딱 차는것만 같고 그 몸집이 아마도 건너편에 자리를 잡은 자기 조카의 배는 될상싶어 저절로 입이 딱 벌어지는 모양이였다.

《아이고매 성님, 이 웅장스러운 덕금의 몸 좀 보세요. 내 더러 지리산에 녀자빨찌산들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두 이런 녀장군 같은 녀성유격대원이 있다는건… 정말이지 앞집 새애긴 여전히 몸이 실하오, 잉-》

《…》
《놈들이 지리산에서는 량식이 다 떨어져서 모두 굶어죽었다 하등마 뭘 자시고 이리 되였는지 그 <토벌대>덜이 여기 이 빨찌산아줌마를 한번 와서 보았다가는 그만 기절초풍을 하겠구만이라. 호호. 그건 그런데 아지미는 이 뚱뚱한 몸을 가지고 빨찌산을 어떻게 하는지 세상에 원…》

《그렇지 않아도 거짓소리 아니라 여기 앉아계신 갑동오빠한테랑 여러 동지들에게 늘 무거운 짐으로 얹혀다녀 미안할 때가 많구만이라요.》

《늘 그런것만은 아니랍니다.》 갑동이 웃으며 진정의 말을 했다.

《항시 짐으로 얹혀다니는것마는 아니고 자기의 실한 어깨에 반대로 남의 무거운 짐을 지어다줄 때도 더러 있거든요. 제 지난해 초겨울에 놈들의 총에 맞아 정신잃고 쓰러졌을적에도 우리 이 빨찌산이 다 아는 지리산의 <뚱보동무>가 혼자서 나를 업고 수십리 산길을 헤쳐오지 않았던들 나는 오늘 어머니한테 살아 돌아오지도 못했을겁니다.》

《오, 그랬댔구만.》 고숙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 새애긴 우선 무슨 일을 시켜도 옆에서 보기가 말부지를 않을것 아니겠소? 벼섬을 하나 머리에 이워주어도 씽씽, 하다못해 무거운 가마니짝을 하나 메워주어도 남정네들 부럽지 않게 건득, 안 좋갔나요.》

《허허, 고숙은 그저 상기도 가마니 가마니…》

《그래서 어찌할수 없는 <가마니>댁이 아니여, 호호.》

《호호호.》

모두가 오랜만에 소리내여 웃어보는 즐거운 순간이였다.

그 만시름을 잊게 하는상싶은 안온한 가족들의 웃음을 밑에 펴서 새 말자리를 만들어보며 갑동이 그저 지나가는 소리인것처럼 한마디 반롱담, 반진담을 했다.

《저, 어머니하고 고숙만 그리 반대 없으시다면 이 덕금동무가 지난 초겨울 강추위에 발을 심하게 얼구어 동상까지 입어 걸음을 잘 걷지 못하는 형편에서 이렇게 장참 데리고다니다가 무슨 뜻밖의 일이라도 생기며는 안되는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고숙이 짐작되여오는 다음말을 성급히 재촉했다.

《그래서 본인은 말 잘 안 듣지만서두 여기 떨구어 내가 그전에 입산하기 전에 강대선형님이랑 같이 쓰던 뒤산 아지트가 아직 살아있는것 같으니 어머니와 고숙이 좀 수고스럽더라도 거기에 잠자리도 뜨시하게 마련해주고 끼니나 건느지 않도록 걱정해주신다면 제가 해동머리가 되면 꼭 산에서 내려와서 다시 이 덕금이를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렵니다. 그러면 동삼은 가고 봄이 오겠지 도루 가기야 하겠습니까?》

《…》

어머니도 고숙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의여서 그런지 신중한 낯빛들이 되여 아무 응대도 없었다.
《어머니 그리고 고숙모님, 제 이렇게 하는 딱한 부탁 처음이자 마지막잉께 어떻게 좀 맘놓고 가게 들어주실랍니까? 아니며는?》

좀전까지만 하여도 뜻밖인 아들의 귀환을 그리도 다행스럽게 기쁘게 여기며 그처럼 따뜻하게 뜨거운 정 넘치게 굴던 어머니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지는것을 갑동은 감촉했다.

《그건 안된다. 아무리 산에서 고생하다가 어찌다 집에 내려온 자식의 말이락고 해도 그 부탁만은 절대로 이 에미는 들어줄수 없다!》

《예에?》

《왜냐하면 갑동이 네가 더 가슴아파할가봐 오늘은 이런 말 안 하려 했다만 네가 도장동의 청년들과 처음 입산을 할적에 밤가루, 미시가루서껀, 찹쌀가루 닦은걸 산꿀에 잠그어서 만든 태식이랑도 다 배낭에 든든히 챙겨서 제 손으로 등을 밀어 떠나보낸게 누구냐. 이 엄니랑 걱정이 되여 전에 산에서 내려와 집에 들린 너에게 그리하면 사내가 큰일 못 친다, 집걱정을랑 하나두 하지 말고 뒤를 돌아보지 말구서 한번 결심품고 떠난 길 그냥 곧게 가라고 말한게 이 에미하구 고숙이 아니였단 말이냐? 그런데 어떻게 되였니. 그후의 일들이 … 아버지도 그리고 그 사람이 좋던 고모부와 둘째 매형꺼정도 입산자의 가족, 친척들이라서 놈들이 다 끌어다가 처참스레 죽여버렸다는거야 너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제라. 이젠 무섭구 끔찍하구 몸서리가 다 쳐진다. 그런데 이제 한번 더 우리 집에 그런 액운이 겹쳐들었다간 나는 늙은것이 더 살지 못하고 징한 이놈의 세상 버리고 훌 가삘면 뭐라느냐? 그렇지만 아직 이 집엔 하나밖엔 남지 않은 너의 동생하구 고무네 어린 오누이가 살아있지 않느냐. 너도 이젠 자기의 길만 길이라고 하질 말고 지금처럼 눈길꺼정 콱 막혀버렸을 때엔 어린 동생들, 사촌들 생각도 좀 하고 지살궁리도 해야 쓰지 않겠니?》

《…》

좀 뜻밖인것은 있어도 여기까지는 그래도 자기 하나의 입산으로 하여 가족, 친척들이 당한 무서운 참상들의 체험자, 목격자인 어머니로서는 십분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되였다. 그런데 고숙의 다음말부터가 문제였다.

《성님, 그저 막무가내로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우리 집안식구들이 다 죽지 않고 애들서껀 모두 무사히 살릴수 있는 길을 우리 함께 찾아야제라.》

《어떻게 말입니까?》

갑동이 물은 소리다.

《싸움도 시작할 때야 다 이기고 살자고 해서 하는것이제 처음부터 지고 죽을걸 바라고 하는것은 아닌디. 이젠 그만큼 해봤으면 짐작이 생겼을터이니 이기지 못할것이 뻔한 싸움을 지리산에 혼자 남아서 한다고 후에 죽은 다음에 누가 갑동이 사나이대장부, 지리산의 영웅이였다는 소리를 한단들 무신 소용있는기요?》

《그래서요?》

신경이 돋기 시작한 갑동이의 그 물음에는 갈구래기가 달려있었다.

그 갈구래기로 채겠으면 채서 입이 찢어져나가건 코가 떨어져나가든 이미 안속으로 갑동이 언제이건 집에 한번 들리기만 하면 단단히 붙잡고 꼭 해주려고 마음먹은지 오랜 고숙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발꺼정 얼었다는 이 뒤집 덕금이도 산에 올려보내 죽게 만들지를 말고 갑동이도 이번길에 아예 산을 영영 내려 이 호박맹키로 뚱실뚱실하고 맘이 곱고 무던스러운 마을처녀에게서 빨찌산의 누더기옷이나 다 벗어 팽개치게 하구선 잔치상도 안겨주고 새 생활을 찾아 엄니랑 잘 모시면서 선산이나 제대로 돌봐드리면서 살며는 좀 좋겠나요?》

《그러니 날더러?》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같은 생각인게라 이 고숙도 엄니라고 생각되며는 한번 내 말을 잘 새겨듣고 결심해요.》

《그렇다면 날더러 이제 와선 입산전으로 되돌아오라 그것인데 고숙모님은 그래 그 고생가마니치기를 계속해도 일없다 이 말인가요?》

《이 <가마니댁> 타고난 팔자야 어디로 가겠소. 난 혼자 죽도록, 두팔이 다 떨어져나가도록 고생고생 하면서 가마니를 계속 짜고짜도 일없으니, 제발 갑동조카, 다시 지리산으로는 들어가지 말아요. 지리산은 오늘은 저도 죽고 가족, 친척들도 죽이고 제 마을사람들과 자기 민족을 다 죽이는 죽음의 산으로 되였응께 그래도 죽겠으면 오르고 살겠으면 내리오!》

《…》

《그리고 마을의 입산자가족들은 다 붙잡혀가서 대체로 죽었는데 그래두 우리 집만 이렇게 댕그라니 살아 남아있는것이 이상하다는 생각 안들어요? 조카 하나가 여직 몽퉁이구렁이맹키로 목숨이 질려서 거기에 달린 우리 식구들 목숨도 여직까지 끊어삘지 않고 놔둔게라. 내 말뜻 알아묵었소? 지금 우리를 살릴수 있는것도 갑동조카이고 우리를 죽일수 있는것도 다 갑동조카라는것만 알고 시간 끌지 말고 지금이라도 요 건너에 경찰지서가 새로 생겼응께 둘이 싸게 가서 자수를 해요. 그러면 살려주마고 나한테도 미리 약속이 다되여있으니.》

갑동은 그 소리까지 듣고나니 너무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성이 나고 독이 오를수록 점점 더 소리가 작아지는 사람인 그는 별로 성내지도 않고 조용한 비웃음을 입가에 물고 고숙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시 빤히 쳐다볼뿐이였다.

《고숙모님! 지가 꼭 놈들한테 제발로 찾아가서 자수를 해야 되겠습니까?》

《딴 길은 없응께 그래야제라. 늙으신 엄니를 생각해서두… 정 본인이 못 가는 경우에는 가족, 친척들이 대신 지서에 찾아와 신고를 해두 자수로 쳐주고 살려준다 했으니…》

《그만두씨오!》

고숙의 그 말에 갑동은 분노라기보다는 마음이 허거프도록 슬퍼지는것이였다. 그는 이제 더는 발붙임을 할수 없는 단애절벽끝에 가서 서있는것 같은 자신의 절망을 느끼는 순간 그래도 이 세상에 믿을것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어머니의 소연해진 얼굴을 마지막기대를 가지고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희들은 시간이 급해 이만으로 집을 뜰랍니다. 어머니 한분이사 여전히 지가 처음 입산하던 날과 마찬가지로 이 아들을 눈물없이 다시 싸움길로 떠나보내주시겠지요?》

《…》 왜서인지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머님께 한가지 부탁할랍니다.》 그의 말은 어쩐지 매우 쓸쓸하게 가슴속깊이에서 울려나왔다.

《산에 올라가서 밥해 먹을수 있는 쟁개비 같은거 하나 하구 쌀이 좀 없겠지요?… 그리고 어머니… 고기가 먹구퍼요. 닭이라도 한마리 있으면언 좋고요… 없으면 그만두셔도 돼요.》

《갑동아!》 어머니는 목메여 불러놓고도 이내 다음말을 잇대지 못했다.

《가지 말아, 가면 죽는다. 나는 널 못 보내겠다. 다시는 아무데로도 보내지 않을란다. 내 아들아-》

어머니는 그 강마른 손에 모성애를 담아 아들의 손을 고집스레 꼭 잡고 놓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이-》

고숙이 다시 나섰다. 그렇지만 아까와는 방법을 달리하는것 같았다.

《정 이 고숙의 말 안 듣고 죽어도 산에 가서 싸우다 죽겠다면 할수 없는 일이여. 떠나더라도 좀 여기서 둘이 다 어디 가지 말고 기둘리씨요. 내 나가서 쌀이랑 닭마리서껀 집에 있는대로 준비를 해줄것이니…》

말은 그렇게 순순히 하지만 선요원의 오랜 경험으로 아무래도 고숙의 눈치가 심상찮다는 생각이 든 갑동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잘 뛰지도 못하는 덕금에게 먼저 나가라고, 비상접선장소에서 만나자고 눈길로 신호를 보냈다.

눈치만은 빠른 덕금이가 소변을 구실로 밖에 나가는것을 불안한 눈길로 보는것은 물론 고숙이였다.

뒤가 좀 안심치 않아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해하며 그가 밖으로 나간지 이슥해질 때까지도 뭘 준비해주겠다던 고숙은 왜 그런지 모르게 안절부절 그냥 들락날락만 하는것이 아무래도 재미가 적었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속히 집을 나서는것이 옳겠지만 아무리 별별 소리들이 다 돈다고 할지라도 고숙이 제 조카를 경찰에 신고하랴 싶어 두루 어머니와도 마저 할 이야기도 있고 하여 시간을 지체하게 되였다.

그런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 놀란 밤개의 소리가 점점 이쪽으로 속도있게 가까와지는것이 아닌가. 벌써 어떻게 누구의 신고를 받은 모양인 아까 저 건너에 있다던 경찰지서의 놈들이 곧장 이리로 달려오는 구두발소리가 가까와지는것이 분명했다.

(아차 늦었구나. 그놈의 설마가 사람을 죽게 만드는구나.)

갑동은 이 급박한 순간에 고숙과 시비를 캘 경황도 없는지라 무조건 옷자락을 붙잡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뒤문을 박차고 산으로 냅다 뛰여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그저 뒤산으로만 치달아오르고있는 갑동이, 그는 지금 뛴다기보다 땅을 골고루 다 밟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뜨문뜨문 건너 뛰면서 산을 정말이지 주름잡고있었다. 그러면서 순간도 덕금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하고있었다. 한발 앞서 집을 뜨기는 했으나 심한 동상까지 입어 퉁퉁 부어오른 그 발로 아직 멀리는 가지 못했으리라는데 생각이 미친 그는 경찰놈들의 검질긴 추격의 총성을 자기 꽁무니에다가 달고는 갑자기 뛰는 방향을 옆으로 돌리였다.

그는 놈들쪽을 돌아보며 웨쳐댔다.

《갑동이 여기 있다! 야 이 규택이 그때 그 꿩병아리처럼 목 비탈아 죽일놈의 마름놈새끼야, 그 양키놈들의 발바닥이나 핥아묵어. 흐왓핫하!》

《…》

따라올념 못하고 놈은 눈먼총질만 해대는것이였다.


5

 

갑동은 이내 돌아서 덕금이와 사전약속이 되여있었던 비상접선장소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아지 못할 불안이 엄습해왔다.

(어떻게 놈들에게 붙잡히지나 않았는지. 혹시는 내가 시간이 많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니 걱정스러워서 기다리다 못해 찾아서 떠난것이나 아닌지… 만일 찾아 떠났다면 어디로 갔을가?)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굴려보던 그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한번 자기 집쪽으로 다시 내려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밤의 산길은 방금전까지 여기서 추격전의 총성이 울렸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어쩐지 무거워만 지는 발걸음으로 한참 내려가 집가까이에 이르렀다.

집은 무거운 정적에 휩싸여있었다. 바디질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등잔불빛만이 비쳐나왔다.

그 불빛은 이미 아까의 그 불빛이 아니였다. 좀전까지만 하여도 자기에게는 어머니와 고숙이 살고있는 집, 그리운 희망의 집, 따뜻한 사랑의 집이였다면 오늘 밤엔 어머니와 고숙은 살고있어도 다시는 들어갈수 없고 또 들어가서는 안될 남의 집이고 원망과 저주의 불빛이였다.

갑동은 그것이 지척이건만 불시에 한없이 멀어진 그 집과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만 빙빙 돌면서 집안을 주시해보고있을뿐이였다.

산에서 집없이 싸우던 기나긴 낮과 밤들에 얼마나 그립고 와보고싶던 집이였던가.

그 얼마나 보고싶던 어머니와 고숙이였던가. 그런데 자나깨나 마음속에서 그 애틋한 어머니의 사랑과 다심한 고숙모의 뜨거운 정이 하나의 불빛이 되여 타오르군 하던 자기 집에서 그런 무서운 일이 기다리고있을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그렇게도 자기를 늘 살뜰히 생각해주고 믿어주고 끔찍이도 아껴주던 어머니와 고숙이 그렇게 나올줄이야.

다른 사람이 그랬다고 하여도 모르겠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로 가까운 집안사람들, 사랑하는 어머니와 고숙모인것으로 하여 더욱 심각하고 더욱 가슴아프고 더욱 마음쓰린 일이였다.

아, 그 누가 그렇듯 정의롭던 민주의 마을, 그처럼 많은 입산자들을 낸 애국의 마을이였던 그리고 그토록 빨찌산원호에서 하동군적으로도 모범이였던 혁명의 마을인 여기 도장동을 한해겨울동안에 이렇게 만들어놓았단 말인가.

죽어도 빨찌산하는 아들의 옆에, 조카의 곁에 남아있을줄 알았던 내 어머니와 내 고숙모를 이 지경으로 만든것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 나에게서 이 세상의 가장 귀중한 사람들, 사랑하는 어머니와 고숙까지 빼앗아간 너의 이름은 철천지원쑤 미제와 그 주구 리승만도당이여! 피의 절규와 규탄이 있으라. 저주, 저주가 있으라!)
갑동은 아직 등불을 끄지 않고있는 자기 고향집을 향하여 마음속 울분을 터치였다.

《내 어머니, 내 고숙모가 다 옳기는 옳은기여? 어제날의 가마니댁인 그 고숙, 어제날의 현모였던 그 어머니는 다 어디로 갔소-오-?》

이때 그의 뒤에 조용히 다가서는 한 젊은 녀인이 있었다.

《워매, 과장동지두 이리 혼자서 울먹일 때도 있는가요? 여기 있는줄도 모르고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덕금이, 참말이지 미… 미안하오…》

덕금을 보자 더욱 슬퍼지고 설음이 북받쳐올라 코소리를 내는 갑동이에게 덕금이가 애써 웃어보이며 말을 했다.

《과장동지, 우리 슬퍼도 눈물을 보이지 말자요. 지금 쓰려오는 그 마음을 제 왜 모르겠나요. 그렇지만 내앞에선 약한 눈물은…》

《…》

《오늘 보니까 우리에게는 하나이면서도 둘인 어머니가 있었구만요. 하나는 자기의 몸을 낳아서 키워준 어머니요, 다른 하나는 그 어머니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어머니조국이고 우리 마음의 어머니인 인민이제라, 혹시 앞의 그 어머니는 살다가 죽을수도 있고 일시적이나마 싸움마당에 나선 아들의 맘을 잘 리해하지 못해 눈먼사랑으로 제 자식 손발을 묶을수도 있지만 후의 어머니인 그 조국, 그 인민은 자기의 아들딸들을 버리고 떠나는 법을 모른다고 했어요. 우리 눈물을 거두고 큰맘먹고 삽시다!》

《덕금동무! 내 언제가도 그 말 잊지 않겠소. 다 알만 하겠는데. 그냥 떠나자고보니 마음속의 용서가 되지 않아서 이 발이 떨어지지를… 내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몰래 제 아들을 깨워 우리를 경찰에 고발을 한 그 고숙은 절대로 용서할수가 없소. 그것도 무슨 내 고모고 사람이여, 인간인가 말요?》

《과장동지, 아서요. 사람이 그리하면 못 써요. 어머니나 고숙이 제 자식, 제 조카를 해치자고 그랬겠나요. 위해 준다는것이 그렇게 된걸요. 후날 꼭 우리를 리해하고 오히려 자랑으로 여길 날이 올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주어서…》

《황동지!》

갑동이와 덕금이! 그들은 그날 밤은 산속에서 지새우고 새날이 훤히 밝아 멀리서도 주위를 감시할수 있게 되였을 때 지난 밤에 어머니와 약속이 있었던 장소에 행여나 해서 가보았다. 거기 깊은 눈속에는 퍼그나 되는 쌀과 된장, 성냥과 쟁개비 그리고 삶아서 구럭에 넣은 살진 개 한마리가 파묻혀있는것이 아닌가.

자기들이 일러주는 말은 듣지 않고 집을 다시 뛰쳐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둘이 굶어 죽지는 말라고 어머니와 고숙이 가져다가 묻어놓았을것이다.

그걸 받아들었을 때 이때까지는 눈물을 보이지 않던 갑동이였지만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는 지리산에 두고 온 그 훌륭한 전우들과 지휘관들을 생각해서도 그렇고 맨 얼음을 깨물면서라도 끝까지 혁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는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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